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재경 엮음] 고양이 - 그러자 모든 사람이 따뜻해진다 녀석의 아름다움이 불러온 사랑으로

일루젼 2022. 1. 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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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운 에이킨, 메리 올리버, 나오미 쉬하브 나이,

리샤르트 크리니츠키, 오스카 와일드, 루이스 캐럴, 장 그르니에, 

샤를 보들레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한스 카로사, 폴 발레리,

프란츠 카프카, 에드워드 리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외

출판 엮음 : 이재경 

출판 : 에이치비 프레스 
출간 : 2021.06.23


 

표지에 반해서 사두고 이제서야 읽었는데, 편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왼 페이지가 여백이 될 경우에는 한 두줄의 원문을 발췌해서 상응하는 위치에 표기해두었는데, 묘하게 읽는 맛이 더 살아나는 기분이라 좋았다. 원문 전체가 실린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긴 시간에 걸쳐 사랑해온 고양이. 

 

나만 고양이 없어- 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라.

 

 

 


 

You, a friend of loftier mind, a

Answer friends alone in kind.

 

 


심지어 유령도 공간처럼

시선과 충돌하면 쟁강 울린다.

하지만 저기 저 검정 털에 닿으면

아무리 강한 시선도 소멸하고 만다.

마치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광인이 칠흑 같은 어둠을 치받다가

그만 병실의 쿠션에 부딪혀

풀썩 주저 앉는 것처럼.

고양이는 지금껏 받은 시선들을

뚱하게 으르다가

그냥 데리고 잠이나 자려는 듯

제 몸에다 감추어 버린다.

그러다 잠에서 깬 듯 불현듯 얼굴을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러면 나는

 

고양이의 호박 같은 눈에서 뜻밖에도 

내가 던졌던 시선을 다시 마주한다.

 거기 멸종한 곤충처럼 사로잡혀 있는 

내 시선을.

 

-<검은 고양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당당하고, 다정하고, 거만한 친구,

황공하게도

내 옆에 앉아

영롱한 눈으로 찬란히 웃어 준다.

금색 눈이여, 나는 그 황금빛 페이지에서

사랑의 빛나는 보상을 읽는다.

검정과 하양이 어우러진

경이롭게 풍성한 털,

매끈매끈 복슬복슬 한밤의

구름과 달빛처럼 밝고 포근해

내가 바치는 숭배자의 손길을

더없는 다정다감함으로 갚는다.

개들은 마주치는 모두에게

아양을 떨지만, 그보다

고고한 마음을 가진 친구여, 너는

동급의 벗들에게만 응답한다.

 

- 〈고양이에게〉 중에서, 앨저넌 찰스 스윈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너의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 꽃이에요, 

이 하늘이고 이 의자예요. 

나는 그때의 폐허였고, 

그때의 바람, 그때의 온기였어요. 

내가 변장했다고 나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 

당신이 자신을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로 생각하는 거예요.

대양의 소금처럼, 

허공의 외침처럼 

사랑 안의 합일처럼 

나는 나의 모든 모습들 속에

고루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면 그것들이 내 안으로 돌아올 거예요. 

지친 새들이 저녁이면 다시 둥지로 찾아들 듯이 말이죠.

고개를 돌리고 이 순간을 지워요. 

생각의 대상을 두지 말고 생각해요.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입으로 물고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곳으로 데려가죠. 

그 새끼고양이 처럼 자신을 비워 봐요.

〈고양이 물루 Le Chat Mouloud〉 중에서, 장 그르니에

 


- 우리 고양이 루비가 죽고 얼마 후 리버 피닉스도 세상을 등졌다. 1993년은 그런 해였다. 그해 11월 친구가 내게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수필집 <섬 Les Iles>을 주었다. 친구가 뒷장에 "오직 한 가지, 생(生)에 전념할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까지 써서 선물한 그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책 속의 <고양이 물루>를 읽으며 어려서는 조랭이떡처럼 앉고 자라서는 꿀 덩어리처럼 지나가던 루비 생각을 많이 했다. 읽는 동안에도 루비가 턱으로 문을 밀면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고양이는 공포는 있어도 부끄러움은 없었다. 회피는 있어도 주눅은 없었다. 행복을 찾듯 햇빛을 좇고 사랑을 구하듯 온기를 맡는 생명체였다. 참된 삼차원을 살고, 허공의 주름 속에 숨은 존재들을 목격하고, 틈틈이 많이 자면서 생을 꿈꿨다. 카뮈가 말한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을 부단히 과시했다. 경계할 것을 끈질기게 경계하고, 사랑할 것을 의심 없이 사랑했다.

- 모르는 이는 고양이가 인간과의 교감에 야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와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어느 날 고양이가'내가 너에게 내 영역을 허하노라.' 하는 눈빛을 보인다. 그 눈빛을 영접하면 그걸로 아무 여한이 없있다. 인간은 한낱 미물이었다. 이렇게 고양이에게 빼앗긴 마음을 영미와 유럽의 여러 시인이 읊었다. 그중에서 42 수를 이 책에 실었다. 고양이에 대한 시들이자 사랑과 자유와 그리움에 대한 시들이다. 심장에 고양이 발자국 낙인이 찍힌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SF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우리가 이승에서 고양이에게 보인 태도가 천국에서 우리의 위상을 결정한다."고 했다. 내가 만났던 고양이들, 천사를 대신해 이곳에서의 시간을 채우고 하늘로 돌아간 고양이들, 오늘도 어딘가에서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들이여, 행복하기를, 고양이가 불행한 곳에 삶은 없다.

- 존 키츠 John Keats

1795-1821. 영국의 낭만파 시인.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Ode on a Grecian Urn>의 마지막 줄 "아름다움은 진실이요. 진실이 곧 아름다움이다ㅡ그것이 네가 지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이며, 그것만이 네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는 영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절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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