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조선우] 패턴 인식 독서법 - 서양 철학사와 함께하는

일루젼 2022. 2. 4. 03:33
728x90
반응형

 저자 : 조선우
출판 : 책읽는귀족 
출간 : 2017.04.10 


       

흥미로우면서도 괴롭게 읽었다. 책읽는귀족 출판사의 디오니소스 프로젝트 책들을 상당히 관심 있게 읽고 있었기에, 이번 책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가 출판사의 대표라는 것, 여성이라는 것을 중반쯤 읽어가면서야 알게 되었는데 조금 변명을 해보자면 저자가 감독을 보고 영화를 고르듯 나는 작가나 출판사를 보고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렇게 선택한 책은 읽기 전에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다 읽은 뒤에 확인한다- 

 

책은 크게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서양철학의 큰 흐름을 이룬 사상이나 인물과 책읽는귀족에서 출판한 책 한 권을 매치시켜 풀어나간다. Thinking(T)에서는 철학사를, Text(X)에서는 선택한 책의 발췌문을, Reading(R)에서는 연결해서 읽는 흐름과 저자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이후 덧붙는 구성 Pattern(P)에서는 추가적인 저자의 의견이나 독서법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문체로 인해 남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단호하고 신랄한 표현들이 시원하기도 했으나 나와는 결이 맞지 않는 편이었다. 굳이 저자의 분류법대로 나누자면 나는 이성 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저자가 사용하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단어는 내가 느끼기에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에 더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고 물상적인 것들을 감성이라고 표현하는 부분들에서 거부감이 느껴져 몰입이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대한 정의가 저자의 것과 달랐던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니체에 대한 선호나 클린 대한민국 등은 결국 초인, 또는 엘리트에 의한 시스템적 압제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상주의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는데... 무엇보다 이상은 절대로 인간의 욕망을 이길 수 없다는 저자의 가치관과 거짓말을 비난받아야 할 죄로 지정해 클린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 사이에서는 꽤 간극이 느껴진다. 

 

또한 '왜냐하면' 이후 근거가 아닌 동어반복이 부연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자와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눈에 걸린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내가 호감있게 보던 출판사의 대표라고 하니 보다 이상적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던 모양인데,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가치관적 모순이나 개인적 가호가 나와는 결이 달랐기에 편안하게 읽지 못한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모습이 있기에 눈에 들어왔던 게 아닐까 싶다. "책의 독"에 빠진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름답게 구조화될수록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넘어서 자타를 품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소개된 10권의 책들 중에선 절반 조금 넘는 책들을 읽어보았는데, 추가적으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해당 출판사의 책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예정이다.  

 


   

- 우리나라는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누가 들고 있던 가방, 누가 입고 있던 옷, 누가 가진 차를 갖지 않으면 부끄러워하는 사회가 되었다.  

 

- 일단 서양 철학은 일반적으로 '고대 철학 - 중세 철학 - 근세 철학 - 현대 철학'으로 아주 크게 나눠진다. 그리고 고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앞서 길게 그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던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그 출발점이 '신화'이다. 그리스 철학으로 가는 입구에는 비철학적인 대상인 '신화'가 문지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화 속에는 철학의 문제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기에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심리학자인 융에 따르면, 각 민족마다 간직한 신화에는 공통적인 원형이 있다고 한다. 그 원형이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음은 북유럽 신화인데, 잠시 맛을 보고 가도록 하자. 

 

- 독서에 대해 말할 때 항상 안타까운 것은 우리 독서 문화의 현실이다. <우리는 어떻게 북소믈리에가 될까>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베스트셀러에 너무 좌지우지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아니라, '남이 좋아하는 책'을 사는 것이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써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독서 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현상이다. 사람은 다 저마다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흥미도 다른데, 왜 모두 남들이 읽는 것을 따라 읽는 것에 익숙한 걸까.

 

-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바로 "열린 생각의 구조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왜 베스트셀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베스트셀러는 '내'가 선택한 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 책이 좋아서 읽는데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내 취향이 대중과 맞아서 읽는데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계속 읽어라 하고 말하겠다. 하지만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잘 알 것이다. 핵심은, 독서를 안 하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만 읽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베스트셀러까지 읽는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모두가 한 종류의 책만 읽는다는 게 문제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휘둘리지 마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주도적인 독서'를 하라는 이야기다. 남에 의해 선택되어진 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독서를 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건 쉬운 일이다.  

 

- 나는 고등학교 때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을 굳이 에세이라고 장르를 밝히는 건, 아직까지도 이 책이 소설이라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때문에 마 교수는 마치 소위 '야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셈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마 교수를 비난하는 걸 난 많이 봐왔다. 요즘도 그렇다.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모른 채, 단지 그냥 소문 때문에 마 교수가 무슨 교수냐, 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봤다. 그래서 나 보고도 왜 그런 사람의 책을 줄기차게 출판을 하느냐, 다른 책을 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물며 소위 유명한 작가마저도 그런 충고를 내게 했다. 

 

- 인문학을 경시하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의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니 개인의 내면세계가 정립되지 않고, 사회가 현실적인 이익만 쫓다보니 거짓말쟁이, 사기꾼들이 득세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편법과 거짓말로 온통 범벅이 된 인생이라도 성공만 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그게 바로 인문학으로 무장하지 않아서이다. 자신을 닦을 틈도 안 주고, 환경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뒤죽박죽이다.

 

- 자, 그렇다면 플라톤이 꿈꾸었던 국가를 잠시 살펴보자. 플라톤은 워낙 방대한 철학 사상을 펼쳤기에 우리가 그걸 여기서 다 훑어보고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이 책의 방향성을 놓고 볼 때에도 불필요한 일이다.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그가 어떤 색깔의 철학자였는지 잘 알 수 있다. 바로 그의 철학적 패턴 말이다. 그의 철학 색깔이 바로 그의 사상적 패턴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플라톤의 국가는 위대하고 완전한 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독재 국가이다. 이때 전제는 반드시 사람의 이데아인 '현명하고 위대하고 완전한'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사회 계약설의 국가론은 분명히 아니다. 우리가 윤리 시간에 배웠듯이,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정의와 덕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는 체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4주덕을 주장했는데, 지혜 - 용기 - 절제 - 정의이다. 즉, 지배 계층인 철학자는 머리(지혜)를 담당하고, 수호 계층인 군인은 가슴(용기)을 담당하며, 노동계층인 평민은 배(절제)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세계층이 조화롭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이상 국가(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 세상과 사람들의 인생을 관찰하다 보면, 작가들이 한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성격이 운명을 좌우한다. 물론 그렇게 생겨먹은 성격이 사주팔자이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타고난 성격을 고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하지만 불행한 미래가 뻔히 있는 걸 안다면, 자기 성격을 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미래라도 성격대로 그냥 살면서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살면 인생이 덜 불행하게 느껴진다. 자업자득이라는 걸 알고, 또한 그것을 자신이 용인했기에 별 불만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책을 놓지 마라. '책과 함께하면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라.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인생들이 나오고, 많은 사건들이 나온다. 그 인과관계를 잘 분석해 보라. 그러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 이처럼 뉴스라는 텍스트를 대할 때에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앞뒤 전후 맥락을 분석해 파악해야 한다. 독서라는 것은 반드시 단행본 형태의 책을 읽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형태든 텍스트를 읽는 건 모두 독서다. 언론에서 그냥 전달해주는 대로, '아, 오바마가 우리 교육을 칭찬했다니 우리 교육이 잘되고 있는 거네'라고 단순히 생각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1차원적 독서법이다. 그냥 텍스트에 있는 그대로 전달받고 받아들이면, 그건 기자 생각이고, 뉴스의 관점에 따른 정보일 뿐이다. 

 

-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권력층은 언론만 통제하고 관리하면 국민을 쉽사리 다스릴 수 있다. 독서를 하지 않는 국민은 생각하지 않는 국민이고, 생각하지 않는 국민일수록 통제는 쉬워진다. 왜냐하면 제시해주는 생각대로 따르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을 가진 국민보다 통제하기가 훨씬 간편해지는 것이다.   

 

- 나는 왜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질까 생각해 봤다. 내 주변에도 겁이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을 관찰하면서 왜 저렇게 벌벌 떨면서 매사에 걱정을 하고 겁이 많을까 한번 연구를 해봤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니,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자기가 모르는 게 많을수록 겁을 많이 내는 것이다.  

 

- 이제 교부철학에 이어 서양 중세 시대의 쌍두마차 격인 스콜라철학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스콜라 철학하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교부철학이 플라톤의 사상을 그 바탕에 두었다면,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을 가리키고 있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을 떠올리면, 신 중심의 스콜라철학에 어떻게 부합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위대한 것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는 한계에 부딪힌 교부 철학을 이어받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에서 유물론적인 부분은 제거하고 관념론적인 부분만 차용하여 몰락하고 있던 기독교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부흥시켰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이 유명한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 먼저 좀 살펴본 내가 이야기해 보자면, 인간의 운명은 성격에 좌우된다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내린 결론인데, 꼭 맞다고 이야기한다기보다 참고를 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주변을 보거나 영화나 책을 보더라도 성격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지어진다. 성격은 기질이라 타고난 것이기에 운명은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고 말하나 보다. 물론 운명의 개척론자들이 주장하는 건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 말에도 동의를 한다. 자신의 천성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평생 누르고 조절할 수만 있다면 운명은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기질을 바꾸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그런데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우선 자신의 성격과 인성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냥 표면적인 자신, 즉 자기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뭐 이 정도는 잘 알고 있을지라도, 자신을 객관화해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게 바로 소위 좀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자아 성찰'로 표현될 것이다.

 

- 우리는 의외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자신의 인성이 어떤지, 자기가 양심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인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관찰이 평소에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자기를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자기가 굉장히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그런 자신을 모르고 있다. 혹은 자기가 나름 선한 사람인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한 집이지만 거울에 비춰보면 거미줄만 쳐있는 폐가인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런 공포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탐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그 도구는 무엇일까. 바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우리는 시험을 치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게 아니다. 정답은 수험서의 맨 뒤에 있는 정답지에서 찾아라. 독서는 '생각의 고리'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책 속에 반드시 정답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만 보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 흐름이 무얼 이야기하는지, 어떤 진리를 감추고 있는지 그걸 찾아 생각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독서 여행'은 우리를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철학적 사유다. 철학이 별 거인가. 철학은 우리가 이렇게 사유하게 하는 과정이다. 나란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지 그걸 알아가는 탐색의 과정이 바로 철학이다. 어렵게 생각할 게 전혀 없다. 철학사를 달달 외운다고, 또 철학적 용어를 다 안다고 철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정보만 받아들이면 그건 그저 암기지, 철학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탐색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더보기

 

- 그래서 나는 독서에도 이런 이성과 감성의 패턴을 구분해서 분석해 가며 읽어간다면 그 책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방법으로 독서를 해온 결과, 나는 보다 쉽게 어떤 책이라도 그 주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아무리 복잡하게 말해도 이해하기 쉬웠다. 복잡한 미로 앞에 섰을 때, 미리 그 미로의 큰 구조가 담긴 설계도를 지니고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독서법을 다른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면, 독서에 대해 내가 느꼈던 모험심과 호기심을 독자들도 함께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가 얼마나 흥미롭고 활동적인 체험인지 익히 알고 있다면,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더 이상한 세상이 될 것이다.

 

- 지하에 있는 헬의 왕국에 가려면 험한 길을 따라 북쪽 끝에 있는 춥고 어두운 지역을 지나야만 했다. 고통스러운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왕국의 입구는 사람들이 사는 곳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날쌘 신 헤르모드조차 슬레이프니르를 타고도 아홉 밤 동안 달려야 겨우 니플헤임의 경계를 이루는 골(Giöll) 강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강 위로는 둥근 활 모양의 수정 다리가 있는데, 금으로 장식했으며 단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달려 있었다. 모드구드(Modgud)라는 무자비한 해골이 종일 지키고 서서 다리를 건너는 모든 영혼에게 통행료로 피를 받아냈다. 

 

- 유리 다리 한 가닥 머리카락에 매달려 

끔찍한 강 위로 뻗으니 

강의 이름은 꼴, 헬의 경계라네. 

거기 모드구드라는 처녀 지키고 서서

피의 통행료를 기다리네. 

보기에도 끔찍한 처녀,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수의와 관 덮는 천을 차려입었구나.

<발할라>, J. C. 존스

- 영혼들은 대개 말이나 마차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식구들이 장례식 때 같이 화장해 준 덕분이었다. 또, 북유럽 사람들은 반드시 고인에게 아주 튼튼한 신발을 신겼다. '헬 신'이라고 했는데, 험한 길을 가야 하니 고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걀라르(Giallar) 다리를 건너면 바로 철의 숲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나무만 있는데, 잎사귀가 모두 철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 숲을 지나면 '헬의 문'이 나왔다. 피에 얼룩진 사나운 개, 가름(Garm)이 그니파(Gnipa) 굴이라는 어두운 구멍 속에 웅크리고 앉아 문을 지키고 있었다. 가름의 화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헬 케이크'를 던져주는 것뿐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빵을 나누어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 패턴 인식 독서법의 총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책 <우리는 어떻게 북소믈리에가 될까>에서 쉬운 책보다는 어려운 책을 읽어서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고 했더니,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더러 있었다. 서평들을 보면, 쉬운 책을 읽어서 먼저 책에 대한 흥미를 생기게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독서에 대한 나의 다른 주장들에 대해선 동의를 하는 독자들이라도, 유독 이 문제만큼은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그런 서평을 읽다 보면서 대답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자리를 빌려 첨언하고자 한다. 우선, 쉬운 책을 한 권도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계속 쉬운 책에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 책을 대할 때 '생각의 깜박이'를 켜라.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이성적 사고를 옹호하는 책인가, 비이성적 사고를 옹호하는 책인가. 우선 작가의 말, 즉 머리말을 읽으면서 파악이 되기 시작한다. 그다음에 첫 장을 읽어 보자. 강조하는 단어와 자주 나오는 단어들의 색깔을 파악해 보자. 아, 이 작가는 과연 이성적 사고에 호의적인가, 아닌가. 비이성적 사고에 긍정적인가, 아닌가. 1장을 다 읽다 보면, 어느덧 작가의 생각의 방향이 점점 확실해진다. 자, 이젠 우리들의 '생각의 깜박이'는 한쪽으로 켜졌다. 그럼 그 방향으로 생각의 빛을 비추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작가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그 책의 내용을 미리 짐작해볼 수 있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 사실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은 마크 트웨인이 죽기 전에 네 가지 버전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중 '사탄의 조카'인 죄 없는 '사탄'이 처음 등장하는 두 번째 버전과 '꿈속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라는 이중적인 자아 개념을 도입한 네 번째 버전을 앨버트 페인이라는 편집자가 종합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 우리는 그 해답을 '감성'이라고 가정하고, 이 패턴 인식 독서법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의 책을 읽어 보면, 그 패턴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성적 산맥 쪽에 있는 책이 다 나쁘고 읽지 말자고 지금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단지, 정신사의 양쪽 산맥의 패턴을 분석해 보면 어떤 어려운 책이라도 쉽게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큰 흐름만 알아도 어떤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쉽다는 것이다. 그 작가의 패턴과 성향만 알면, 이 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몇 페이지만 읽어 봐도 그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향등만 있어도 쉽게 길을 찾아가듯이, 멀리서 보이는 불빛만으로도 그 책의 결론이 어디를 향할지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럼 그 이해 과정 역시 같은 패턴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내용이 나오더라도 그리 힘들지 않게 그 파도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파도는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가의 성향에 맞는 방향으로 내용은 흘러가게 마련이다.

 

- 최근에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사랑의 시대>를 보았다. 오래전에 <더 헌터>를 보았고, 같은 감독 작품이라 안심하고 봤다. 나는 책만큼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감독을 보고 정하는 편이다. 감독을 잣대로 두면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런데 배우를 기준으로 영화를 고를 때에는 실패할 때가 더러 있다. 왜냐하면 좋은 감독이 실력 없는 배우를 데리고는 반드시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지만, 영화의 일부분인 배우가 전체 영화를 다 살려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저리 같은 감독을 만나면 좋은 배우라도 영화는 엉망이 되고 만다. 

 

- 스토아학파의 철학은 그럼 어디쯤 있을까. 어느 패턴일까. 이쪽일까, 저쪽일까. 이성 쪽일까, 감성 쪽일까. 헷갈릴 때에는 도덕론을 살펴보면 된다. 덕(德)의 잣대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라고 했다. 이른바 욕망을 억누르고 절제를 실천한다.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쾌락을 버려라!"
이 말이 스토아학파의 모토라고 한다. 그러면 답은 이제 나오지 않았는가. 인간에게 자꾸 뭔가를 억압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이성 쪽의 정신적 산맥에 속한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이전에 본능이 있고, 유희를 즐긴다. 자꾸 규범을 만들고, 그 틀 안에 가두려는 것은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다.

 

- 오컬티즘에서는 정의와 불의 사이에 타협하지 않는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또한 무지한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개의치 말고, 바르면 해야 하고 그르면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대자연의 숨겨진 법칙들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알고 나면, 언제나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그 법칙에 따라 정돈해야 한다. 여러분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이 관련된 일에서는 바위처럼 굳세어야 하고, 중요하지 않은 다른 일에서는 언제나 타인에게 양보하고 따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언제나 점잖고 친절해야 하고, 사려 깊고 남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그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부분과 관련하여 <스승의 발아래서>의 일부를 좀 더 자세히 인용해 보겠다.

"여러분이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도(道)에서는 배울 것이 훨씬 많다.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도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배울 가치가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모든 지식이 다 유익하며, 언젠가는 모든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가장 유익한 부분인지 아닌지 유의해야 한다. 신은 지혜이며 사랑이다. 그리고 더 많은 지혜를 가지면 가질수록, 신에 대하여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워라. 그러나 우선 다른 사람을 돕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부터 배워라, 끈기 있게 공부해라.

 

- "그것을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그것들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때때로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있을 때, 육체는 이렇게 느낀다.

"내가 돕는다면 많은 성가신 일들이 있을 거야.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도록 내버려 두자."
그러나 진짜 자기 자신은 육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가 선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 육체는 여러분 자신의 가축이다. 즉 여러분이 타고 있는 말(馬)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육체를 잘 다루고 보살펴야 한다. 이 육체를 과로시키면 안 되고, 깨끗한 음식과 음료만을 먹여야 한다. 또 언제나 청결히 해서 아주 작은 티끌 하나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완전히 청결하고 건강한 육체 없이는 힘든 준비 작업을 할 수 없으며, 부단히 계속되는 긴장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육체를 통제하는 것은 언제나 여러분 자신이지, 육체가 여러분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