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치니치 잇슈(一日一種) / 전선영 / 박진영
출판 : 가지
출간 : 2022.02.01
리뷰를 쓰면서 확인해보니 이 책의 삽화들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었다! 묘사가 섬세하고, 색 표현도 뛰어나서 당연히 그림 작가가 따로 작업한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것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꿈이나 이미지들을 떠오르는 대로 그려낼 수만 있어도 좋은 기록이 될 텐데.
산책하다 보면 독특한 빛깔의 작은 새들을 만날 때가 있다. 본격적으로 새를 보기 위해 나선 외출은 아니었지만, 잠시 멈춰서 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참새는 익숙해서 좋고, 박새는 귀여워서 좋고, 직박구리나 황금새나 멧비둘기 같은 자주 보기 힘든 새를 보면 오늘 하루는 조금 특별한 하루가 되려나 싶어지기도 한다.
<동네에서 만난 새>는 제목과 표지가 너무 귀여워서 고른 책이다. 이름 모를 새들을 마주칠 때 조금은 더 반가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동물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게 내게는 약간의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어쩌다 관심 가는 분야를 만나도 덕후나 마니아라고 칭하기엔 모자란 애매한 애정을 품는 편인데, 어떻게 하면 이 거리감을 넘어서 푹 빠질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꽤 궁금하다. 대개 조금씩 건드려보는 정도로 깔짝거리다 마는 편이라 뭔가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 (간단히 말하자면 깊이가 없다고 느껴져서 괴롭다.) 그렇다고 호기심이 생길 때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더 알아갈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셈이니- 늘상 얄팍하게 판만 벌리고 있다.
유튜브나 다양한 플랫폼들이 늘어가면서 개인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깊이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 일반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전문성이나 덕력을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열정과 헌신에 경외심이 든다. 문제는 나도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봤을 거라는 점이다. 욕심이 조금이라도 나는 분야에서 기가 꺾이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자기 합리화의 유혹에 빠져든다. '나는 가볍게 좋아하는 거니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니까'.
여러 모로 혼자 부끄러워할 때도 많지만, 지금은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만큼'에는 충실하자" 정도로 정리해두었다. 무리하다가 애정이 식는 것도 비극이고, 괜히 열없어하며 손도 대지 않는 것도 비극이다. 하다 보면 자신의 애정도에 적합한 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 불편하다면 좀 더 노력하거나 좀 덜 하면 될 일이다. 노력하기는 싫은데 상대방처럼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제일 좋지 않으니, 욕심이 나면 당장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자고 마음먹었다. 영 손이 가지 않거나 그 정도의 열정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실 자체에 괴로워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빨리 '욕심이 나는' 영역을 찾아 만족할 때까지 파고들어야 할 일인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내가 찾은 답이다.
결론은, 그림 너무 귀엽다!!!!!
가볍다면 가볍지만 책의 목적 자체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책이니만큼 충분히 만족스럽다.
추천!
-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로는 새가 바로 곁에 있어도 그 모습이나 소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아주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무의식 중에 우리 동네에 사는 산새, 물새가 눈에 들어오고 지저귐이 들리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길 것이다.
- 까마귀는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데, 먹이를 먹을 때도 다른 새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호두나 조개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행동이 자주 관찰된다. 호두는 껍데기가 단단해서 까마귀라고 해도 그걸 직접 깨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높은 데까지 날아올라서는 지상으로 떨어뜨려 깨 먹는다. 꺄지지 않으면 다시 떨어뜨리기를 시도한다. 주로 딱딱한 도로나 하천 부지의 돌 위에 제대로 맞춰서 떨어뜨린다고 한다. 갈매기 같은 새도 상공에서 조개를 떨어뜨려 깨는 행동이 관찰되었다.
- 까마귀는 또한 자동차를 이용해 호두를 깨는 모습도 종종 관찰된다. 차가 지나는 곳에 미리 호두를 놓아두고 바퀴가 껍데기를 밟아 깨지면 주워 먹는다. 빨간불 앞에서 정차한 차 앞에 호두를 놓아두고는 껍데기가 깨져도 파란불이 켜진 동안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먹으러 날아온다고도 한다.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이 사례가 처음 보고되었고 이후로 다른 지역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 까마귀 종류로는 크게 큰부리까마귀와 까마귀(일본에서는 이 종도 '송장까마귀'라고 부른다)를 자주 볼 수 있다. 전국을 둘러보면 비둘기나 까마귀나 종류가 더 많겠지만 보통 우리 주변에는 두 종류의 까마귀가 있다고만 말해도 평소 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많이 놀란다. 이 두 종류의 까마귀는 생김새와 몸짓에서 여러 차이가 있는데 가장 알기 쉬운 것은 울음소리다. 일반적으로 큰부리까마귀는 "까악까악" 하는 맑은 소리로, 까마귀는 "가악가악" 하는 탁한 소리로 운다. 큰부리까마귀와 달리 까마귀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운다는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 단, 이런 차이도 어디까지나 대체적인 경향일 뿐, 큰부리까마귀가 "가악" 하고 울 때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수컷의 인기 포인트는 어떤 생물 종이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여름철새인 제비는 목의 빨간 부분의 면적이 넓거나 색이 더 뚜렷한 수컷이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같은 제비 친척 중에서도 유럽의 제비는 꼬리깃의 길이, 미국의 제비는 배의 빨간 부분이 중요시되는 것을 보면 가까운 종이라 해도 인기 포인트는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다른 새의 경우를 살펴보면 참새는 뺨의 검은 부분이 크고 뚜렷하면 인기가 있고, 박새는 배의 넥타이 무늬가 굵을수록 인기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하지만 아무리 섬휘파람새라 해도 처음에는 노래가 서툰 개체도 있다. 첫 음을 빼먹기도 하고, 가운데 소리만 내고 뒤는 잊어버리기도 한다. 음정이 이상할 때도 있다. 소리가 많거나 적을 때가 있는가 하면 크거나 작을 때도 있다. 봄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 이렇게 이상하게 노래하는 개체는 대체로 어린 새다. 다행히 어린 새들도 반복해서 노래하다 보면 점점 실력이 좋아진다. 새는 어른 수컷의 소리를 듣고 우는 법을 익힌다고 한다. 자기 소리를 아빠 소리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새의 울음소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연구로 밝혀졌다. 이를테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새의 대표 종인 박새는 양육 중인 새끼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울음소리를 구분해서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부모 박새는 까치나 까마귀가 둥지에 다가오면 "찌까찌까" 소리를 내고, 그러면 새끼 새들은 까치가 그냥 지나가도록 몸을 한껏 낮춘다. 또 구렁이 같은 뱀이 둥지 가까이 다가오면 "재- 재-" 울어서 새끼들이 둥지에서 도망치게 한다. 박새는 또한 평소에 내는 울음소리 종류도 많고, 그것을 규칙적으로 조합해 복잡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다 상호 간에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예를 들어 경계하라는 의미의 "삐-잇삐"와 다가가라는 의미의 "지지지지"를 조합해 "삐-잇삐 지지지지"라는 순서로 울면 '경계하면서 다가가라'는 의미이고, 이를 서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사람 외 동물 가운데 문법에 따라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종은 박새가 처음이라고 한다.
- 작은 새를 관찰하다 보면 가끔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라고 할 때의 자세다. 하지만 이럴 때 새는 어떤 의문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사람에게 귀여움을 어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위를 잘 보려고 이런 자세를 취한다. 작은 새의 눈은 기본적으로 머리 옆쪽에 붙어 있어서 주변을 넓게 볼 수 있다. 주위 상황을 늘 확인하며 먹이나 천적을 찾기에 편리한 구조다. 다만 일부 맹금류는 천적에 대한 경계보다는 사냥감이 있는 전방 공간을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서 눈이 앞쪽에 쏠려서 붙어 있다. 새들은 또한 우리 인간과 달리 안구를 빙글빙글 움직여서 여러 방향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머리를 자주 움직여 여러 방향을 보려고 한다. 즉 작은 새가 고개를 갸웃할 때는 상공의 천적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 한편 새에게는 저마다 주로 쓰는 눈이 있다고 한다. 지켜보던 새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갸웃하는지, 개체마다 특이한 버릇은 없는지 관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 참새는 모래밭을 얕게 파고 그 속에서 날개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모래 목욕'을 한다. 공원이나 마당의 모래땅이 부자연스럽게 움푹 파였다면 참새가 욕실을 만든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모래 목욕을 하는 새로는 종다리, 꿩, 후투티 등이 있다. 또 특수한 예로 까마귀의 '개미 목욕'이 있다. 문자 그대로 개미 소굴 가까이에 눌러앉아서 개미 몇십 마리가 제 몸에 붙어 기어 다니게 하는 행동이다. 개미가 분비하는 포름산 formic acid 또는 개미산이라는 화학물질에 살균과 방충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상세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 제비와는 조금 다른 칼새류는 심지어 날면서 잠을 잘 수도 있다고 한다. 길게는 열 달 연속으로 계속 날았다는 기록도 있다. 제비과나 칼새과에 속한 새는 조류 중에서도 특히 공중 생활에 특화된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 번식이 무사히 끝나고 새끼들이 부모 곁을 떠나면 새들의 당면 과제는 다음 번식기까지 '생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새를 비롯한 박새과 새들, 오목눈이, 쇠딱따구리, 동박새 등은 번식을 끝나면 다른 종 새들과 뒤섞여 무리를 이룬다. 이렇게 무리를 이루면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고(때로는 가로챌 수도 있고), 천적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때로는 동료를 희생양 삼을 수 있는) 등 근사한 장점이 여러 가지 있다(단점도 있을지 모른다.).
- 그해 기후 조건과 먹이 사정이 나빠질수록 작은 새들이 다른 종들과 무리를 짓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새들도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자칫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종과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를 관찰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꺼번에 여러 귀여운 새들을 볼 수 있어서 새들의 이른 습성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 새들은 아침이 되면 또 뿔뿔이 흩어져서 저마다의 영역에서 먹이를 잡으며 보내다가 밤이 되면 다시 떼로 날아와서 잠자리에 든다. 백로류도 비슷한 패턴으로 낮에는 뿔뿔이 행동하지만 밤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집단으로 잠을 잔다. 한편 박새 같은 새는 거꾸로 가을에서 겨울 동안에 낮에는 다른 종 새들과 무리를 지어 지내다가 저녁이 되면 흩어져서 각각 다른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한다.
- V자를 이루며 이동하는 기러기의 행렬을 일컬어 '안항雁行'이라고 한다.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안항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꼭 기러기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들 가운데 민물가마우지 같은 새도 떼를 지어 이렇게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대열을 짓는 걸까.
- 사실 새들의 비행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고, 새들은 되도록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 한다. 새가 날개를 파닥이면 뒤쪽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뒤에서 나는 새가 그 소용돌이를 타면 양력을 이용해 스스로 세게 날갯짓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아끼며 날 수 있다. 떼를 지어 나는 새들은 이 원리를 이용하려고 조금씩 뒤로 비스듬히 자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V자 대열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J자가 되기도 하고 W자가 되기도 한다. 상공의 대기 상태를 비롯한 여러 조건을 따라 형태가 좌우되는 것 같다. 한편 선두에 선 개체는 이용할 소용돌이가 없으니 좀 불쌍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하루에 1000km나 이동하는 캐나다기러기 같은 새는 번갈아 선두를 바꾸며 날아간다고 한다. 단독으로는 힘든 철새의 이동도 무리를 지어 힘을 합치면 가능해진다는 것을 새들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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