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저우무쯔] 정서적 협박에서 벗어나라 - 내 마음을 옭아매는 영혼의 감옥

일루젼 2022. 4. 24.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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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저우무쯔 / 하은지
출판 : 쌤앤파커스 
출간 : 2017.10.30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봤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매끄럽게 읽혔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모두가 예라고 하더라도 내 가슴이 아니오라고 말한다면, 내게는 아니오가 정답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에 따랐는데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형태로 나를 비난한다면 미리 스스로를 관찰해 정해둔 '정서적 경계선'을 지키며 상대와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감정'까지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거리를 두고 '존중'하면 된다. 자기 감정을 추슬러 소화해내는 것은 감정을 소유한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것 하나 못해주나', '결국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건데'. 

 

이런 말에 휘둘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기 시작하면 결국 스스로를 잃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조차 모른 채 억압된 상태로 남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가 대만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한국 내의 정서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것. 물론 저자가 책 내에 사례로 든 경우들을 살펴보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강하게 들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역시 현실을 반영한 말이므로 적절한 사회적 융통성을 발휘할 것. 

 

곧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에 관한 조언도 있으므로 참고하시고, 또 문제 상황에서 곧바로 대응하지 못하더라도 그 상황이 지난 뒤 자신이 그때 느낀 감정을 충분히 다시 느껴보고 해소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아버지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수없이 자존감이 깎여나가고, 엄마들은 아이의 성적에 따라 서열이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이 약한 부모는 자신의 '쓸모'를 아이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하려 든다. 부모의 '정서적 협박'에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들은 정신적인 성장이 멈춰버리기 쉽다. 나를 낳아준 사람, 세상의 모든 것과 다를 바 없는 부모에게서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상처는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힘이 없으니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고, 나를 키우는 힘도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도전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뒤늦게 용서를 빌고 후회하는 부모들이 내 주변에도 적지 않다. 아이는 부모의 자존감만큼 자란다. 생명의 지지대와도 같은 아이와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김미경 

    

- 부모와 자식, 배우자의 경우에 이 경계선은 훨씬 더 모호해진다. 이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각종 정서적 협박이 행해지곤 한다. 이런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일방적으로 '효도'를 강조하거나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강요하기도 한다. 혹은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살아야 해."라고 말한다거나 "나는 네 삶에 간섭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담을 요청하는 많은 이들의 삶에 이런 장면들이 시시각각 펼쳐졌다. 일상생활이 아닌 직장에서도 정서적 협박은 쉽게 볼 수 있다. 정서적 경계선이 모호한 상사나 동료가 있다면 그들은 자기 가족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해서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이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 원인은 '불분명한 정서적 경계선'이나 '정서적 협박'에 있었다.

 

- 일부 정서적 협박자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져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방의 바람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타인의 판단은 틀렸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여긴다. 가끔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서야 비로소 너무 무시했음을 깨닫지만, 곧바로 그런 행동을 합리화하고 결국 자신의 판단과 요구만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 말한다. 

 

- 그렇다 해도 이 책은 협박자의 민낯을 고발하고 질책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면 좋겠다. 사실 모든 사람은 정서적 협박자 혹은 협박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협박자와 피해자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두 역할을 결정짓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로써 반복되는 협박의 굴레에서 고민하는 것을 끝내고 그곳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존중과 사랑을 얻고, 깊고 평등하며 진실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길 소망한다. 

 

- 내 감정을 돌보는 연습은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타인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닐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감정과 생각을 보호하고 존중하려고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님을 기억하자. 상대방이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기적인 행동이다.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 생각과 감정을 돌보는 것은 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일이며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잊지 말자. 

 

- 어쩌면 과거에는 감정을 돌아볼 수 없었거나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민해 볼 기회조차 없는 환경에서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면서 타인 위주의 삶을 살아왔다면 스스로 보잘것없는 존재라 여기며 모든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는데 익숙해졌을 것이다.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불편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언제 가장 많이 화가 나는지, 어떤 일에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일에 가장 열광하고 즐거워하는지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내 감정을 돌보기 시작했다면 오랜 벗을 다시 알아가듯 나를 다시 관찰해야 한다.  

 

- 많은 사람이 '더 괜찮은 나'로 변하고 싶어 한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형편없다 여기고 심지어 내게 있는 특징을 부정한다면 오히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바로 난 최악이라고 느끼는 수치심에 빠져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내가 줄곧 '자기 수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 부족하다 느껴야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나를 그대로 수용하는 건 지나치게 너그러운 처사라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면 고칠 기회도 없으니 성장도 없을 테고, 그 자리에 머물 것 같은데요?"
이런 말처럼 자기 수용을 나에게 너무 관대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에는 같은 생각을 했었다. 

 

- 한번 생각해 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질책하고 비난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이다. 나의 특성이나 기질은 비난 후에 바뀌었을까? 아니면 일상에서의 작은 배움이나 꾸준한 연습을 통해 바뀌었을까? 만일 후자라면 그건 내가 원해서 했던 것이지 질책과 비난으로 인한 두려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을 향한 비난과 외부의 기대 때문에 이미 바뀐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 한다. 마치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골라내 하자는 없는지 검수하듯 기준에 맞추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된 양 꾸며내는 것이다. 그럴수록 내면에는 공허함만 차오른다. 

 

- 점점 그런 내가 미워진다. 연기하는 내가 밉고, 거짓 나의 모습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밉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한다. 그러니 '거짓 나'를 버릴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진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사실 거짓 나를 연기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여줄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조차 스스로를 수용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럴수록 진짜 모습을 보여주길 두려워하고 남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 앞에서는 다른 어떤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당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는가? 그 이유는 나를 믿어주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나 자신'이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면 어떨까? 잘하는 것도 있지만 못하는 것도 있는 나를, 잘난 부분도 있지만 못난 부분도 있는 지금 그대로를 질책이나 비난 없이 받아준다면 말이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모든 면을 남김없이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 앞에서 말한 비위 맞추기, 도피, 설득, 분노와 같은 대응책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책임지려는 습관과 그의 감정은 그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일단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려주면 그들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상대의 나쁜 기분이 설령 나와 관련 있다 해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기분이 나쁜 쪽 역시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서 서로 관계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새로운 사고방식이란 내 감정과 생각을 근거로 자신의 정서적 경계선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 과정은 불편하고 어색하기 마련이지만 결코 틀린 건 아니다. 경계선이라 함은 스스로 참아낼 수 있는 범주를 뜻한다. 즉 다른 사람이 이 경계를 침범하면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 범주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자신만의 정서적 경계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 경계선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이에 대해 누구에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다. 인정과 동의도 필요 없다. 설령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나와 함께 어울리고 싶다면 내가 용납할 수 있고 내 감정을 존중하는 소통의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 꼭 기억할 것이 있다. '정서적 경계선'과 '정서적 마지노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 말이다. 경계선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어디까지가 '나에게 속한 영토'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감정선을 정확히 찾도록 도와줘서 그 안으로는 침범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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