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랑]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일루젼 2022. 4. 24. 05:16
728x90
반응형

저자 : 이랑
출판 : 창비 
출간 : 2020.08.06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즐겁게 읽었었다. 나에게 '이랑'은 음악가보다는 '만화가'나 '작가'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이랑'이 사는 세계는 보다 섬세하고, 날카롭고, 부서지기 쉬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아슬함이 태연한 척 툭툭 던지는 유머 사이 사이에 녹아들어 있어 더욱 매력 있고, 또 안타깝다. 

 

'이길보라'의 <당신을 이어 말한다>에서였던 것 같다. 이랑이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자 돌연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하더니 보험 판매를 시작했다고. 우리들은 예술인이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금융도 잘 알아야만 한다고. 그러므로 이제부터 자신은 '금융예술인'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그의 작업과 활동들은 그에게는 '좋아서 하는 일'이자 그의 생계가 달린 '직업'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게는 합당한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워지는 지점, 대부분의 사람이 슬그머니 외면하는 지점. 이랑은 그 지점을 가리키며 외치고 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왜 배를 곯아야 하는가' 같은 담론이 아니다. 그저 '삶'일 뿐이다.

 

그것을 실재하는 무게 그대로 드러낸 이 책은 묵직하고, 유쾌하고, 또 먹먹하다.  

     

 


   

- 하지만 2016년 10월에 발매한 정규 2집 <신의 놀이>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자신이 있었고, 이번엔 두 부문의 후보이니 시상식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전에, 언제나 그렇듯 최악의 상황을 먼저 떠올렸다. 일단 상을 못 받는다는 가정을 해 보니, 시상식 날 하루가 굉장히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얼굴의 부기를 빼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하고,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굽이 있는 구두를 챙겨 신을 것이었다. 평소엔 화장도 하지 않으면서, 이날만 꾸밀 필요가 있나 싶지만 당일이 되면 그렇게 꾸밀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간 공식적인 자리나 중요한 날 '꾸미지 않고 나오는 여자'에 대한 수많은 비난들을 겪으며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다.) 열심히 꾸미고 시상식장에 간 나는 두세 시간 동안 기대감에 차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수상하지 못하면, 긴 시간 허망한 기분으로 박수만 치다가 돌아올 것이다. 심술 난 얼굴로 밖에 나와, 같이 간 앨범 제작사 대표와 공연 기획자에게 밥 먹자는 소리도 못하고 따로따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오게 될 생각을 하니 정말 싫었다. 

 

- 시상식 날 아침, 눈은 떴지만 몸은 일으키지 않은 채 아직 수상 여부를 모르는 수상 소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해 봤다. 십 대 때부터 프리랜서 창작자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명예와 권위'를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물론 준다면 고맙게 받겠지만) 이날 하루를 이 행사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핸드폰을 열고 은행 앱에 접속해 통장 잔고를 훑어보았다. 1월의 총수입을 계산해 보니 42만 원이었다. 2월의 수입은 96만 원이었다. 뮤지션으로, 영상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작가와 만화가로 게다가 선생님으로까지 한 달에 이틀 이상 쉬는 날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스스로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숫자였다. 나는 트위터를 켜고 이 숫자들을 적었다. 

 

- 도쿄의 일들로도 바빠 하루에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매일 밤 다음날 가야 할 곳을 미리 지도로 검색해 길을 찾아 놓고, 만나야 할 상대의 정보를 검색하고 새로 알게 된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읽었다. 항상 너무 많은 일을 혼자 해내야 한다.

비서가 있으면 좋겠다.
매니저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들을 고용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이 소화하고 뱉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소화도 안 되어 다시 역류할 정도로 일이 많은데, 왜 나에게는 비서나 매니저를 고용할 능력이 없을까. 

- 언제나 돈은 느지막이 들어온다. 공연이나 행사 출연료는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보낸 뒤 짧게는 2주, 보통은 한 달 정도 후에 지급된다. 잡지에 기고한 글의 고료는 잡지가 나온 다음 달 말에야 정산이 된다. 잡지가 나오기 한 달 혹은 두 달 전 미리 송고한 원고의 원고료를 받을 때까지 길게는 세 달, 네 달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잡지의 고료는 15~20만 원,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받을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나는 그 15~20만 원을 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네 달 동안 기억해야 한다. 

 

- 일이 너무 많았고 쉬는 날은 한 달에 하루 이틀 있을까 말까 했다. 프리랜서라는 말의 '프리'가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 창작의 원동력은 가족에 대한 분노였는데, 사회에서 직업 예술가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너무 적은 수입에 더 큰 분노가 생겼다. 이 일을 하며 자주 들었던 말은 "네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냐."였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일들은 '돈을 벌어 먹고살게 하는 내 직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 오늘 J는 뇌파 측정기와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가지고 왔다. 나는 뇌파를 측정하는 기계를 머리에 쓰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댄 채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 읽는 내 표정들을 보면서 이 수치들을 모두와 공유하면 어떨까 상상했다. 퍼포먼스 행사장에서 나는 나의 수치를 기록하는 장치들을 달고 기다린다. 관객들은 한 명씩 내게 다가와 정해진 시간 동안 다양한 행동들을 할 수 있다. 사전에 안내문을 제작해 '이랑에게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정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1분 이내로 시간을 정하고 나는 한 사람씩 만난다. 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고 악수를 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들과 만나서 내가 느끼는 상태와 변화는 나에게 연결된 장치들이 수치로 기록해 내 뒤쪽에 있는 스크린에 띄울 것이다. 나와 마주 보고 앉은 관객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나에게 선물을 주거나 그동안 만나면 하고 싶었던 좋은 감상이나 칭찬을 해 주려고 찾아온 사람도 있을 테고,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려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것들을 주고 갈지 궁금하다. 다만 행사장에서 누군가가 나의 안전을 책임지고 지켜봐 주면 좋겠다.  

- 나는 언제나 나의 상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의 신체와 정신을 굴려 이 사회에서 작동을 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렇게 작동하는 나의 상태를 살피고 그것을 말하고 이야기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 혹 가까운 시일 내에 공연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어 일본에 공연을 하러 간다고 해도, 돌아와 2주 자가 격리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해외 출장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큰 리스크가 생겨 버렸다.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2020년 예상 엔화 수입'을 앞으로 금융 업무를 통해 채워 나갈 수 있을까. 의문과 기대를 품고 그나마 입문이 쉬운 편인 보험설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인생 처음으로 인터넷 강의도 수십 시간 듣고, 문제집도 풀고, 시간을 재며 모의고사도 보고, 하나씩 해 나가는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서 진행되는 교육 일정이나 시험 일정도 계속 밀리고 있어 자격증을 따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예상은 되지만, 사회적 불안감으로 어떤 일도 집중이 안 되는 와중에 틈틈이 공부라도 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최근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보험 설계사 자격을 취득한 일이다. 이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하도 놀라워하기에 그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지루하지 않을 지경이다. 내가 보험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시간이 생겼고, 돈이 없어졌고, 그래서 돈의 생태계를 알고 싶어졌다. 혼자 공부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돈과 관련된 직업인들 사이에서 직접 배우고 체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제와 관련해 직접 체험해 본 것은 다음과 같다. 

1. 임대 아파트 신청 : 떨어졌다. 2. 버팀목 전세 자금 대출 : 성공했다. 3. 주식 : 성공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4. 예금, 적금 등.

 

- 새로운 일을 하면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되고, 새로운 언어를 가지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금융 전문 용어들도 몇 번을 반복해서 보고 들으니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아직 그런 감정을 느껴 보지 못했는지 등등, 한 사람을 설계하는 데는 이렇게 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나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이 질문들에 금방 대답할 수 있다. 주인공의 역사에 온전히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빼먹은 부분들도 금방 찾을 수 있다. 내 주변 인물들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 나를 재료로 삼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관찰' 하고 '기록'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길이 드는 데까지는 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연결이 불안정해 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들었던 자기 목소리가 어땠는지. 굉장히 낯설고 '나'라는 걸 믿을 수 없지 않았나. 목소리뿐 아니라 내가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모니터 한다고 생각해 보자. 직업상 자기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해 오던 사람이 아니라면 꽤 충격일 것이다. 얼굴의 근육들이 움직이는 모습, 제스처를 사용하는 모습, 걸음걸이와 자세 등등, 예상외로 많은 부분들이 생각과 다를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설고, 그에 더해 매일 나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니 열심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슬프고 더럽고 추한 모습까지 모두 보고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나중의 발견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이 정도로 살기 힘들고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장해서, 미래에 받을 보상들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딱 맞는 수준의 위로가 되는 노래를, 그림을, 글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뻤고 이것을 나눈다면 다른 사람들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해 나눌 수 있었다.

 

- 나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하고 그리고 쓰고 내놓는 일은 직접 해 보지 않으면 그 즐거움과 기쁨을 알 수 없다.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재료는 바로 당신 자신이고 당장 오늘부터 관찰과 기록을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나 또한 그렇게 계속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또 세상에 내어놓을 것이다. 
 

- 얼마 전에는 책 한 권의 계약을 파기했다. 도저히 원고를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앞으로 언제가 되어도 할 수 없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사회의 기준들이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공부하고 따라 바뀌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이다. 내가 쓴 이야기의 인물들은 전형적인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내가 쓴 대사에 여성 혐오와 소수자 혐오가 드러나 있는 것 같다.

 

- 나는 '평가'를 두려워하는 걸까? 나와 내 친구들이 쓰는 욕, 낄낄거리는 농담. 내가 만드는 세계와 이야기. 인물들의 불완전함이 어떤 평가와 기준을 넘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것들이 내가 새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일까? 하지만 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 보지도 못했고 상상만으로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어떤 인물도, 그들의 어떤 대사도 100점 만점을 받을 수 없고, 그것은 이미 나온 작품도 앞으로 나올 작품도 그럴 것이다. 내가 그리는 배경은 그저 지금 내가 아는 세계일 뿐이다. 매일의 혼란과 매일의 좌절 그리고 잠깐의 행복과 짧은 사랑을 느껴 본 적 있는 세계 말이다. 
  

- 제일 힘들 때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 주는 친구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문장은 결혼할 때 신랑 신부가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그 문장이랑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까 해미는 내 신랑이나 신부 정도로 옆에서 힘이 되어 주는 친구다. 반대로 내가 해미에게 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해미는 정작 자기 힘든 일을 숨기고 나한테 잘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말하는 사람'이고 '들어주는 사람' 역할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해미가 나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해미는 '잘 들어주는 사람'인 타케시나 철희, 유리에게는 종종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 내가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해미를 만나면 항상 내 이야기를 먼저 줄줄 쏟아 놓는다. 

 

- 나 간암이래 헤헤.

더즌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해서 일단 바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내 몸뚱아리는 뒤죽박죽 엉킨 이불속에 같이 엉켜 있었고 누운 채 귀에 핸드폰만 갖다 댔다. 신호 연결음이 끊기고 소란한 주변 소리와 함께 등장한 더즌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랑아 나 암이래!

갑자기 눈물이 줄줄 났다. 내 우는 소리를 듣더니 더즌이가 웃으면서 울지 말라고 했다. 입원 준비를 해야 하니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했다. 진화를 끊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일 힘든 당사자 앞에서 내 감정부터 드러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실패했다. 몇 번이나 실수를 해도 왜 이렇게 고쳐지지 않는 걸까. 

- 이후 7월에 병원에 찾아가 체중이 20킬로그램 줄어든 카이 짱을 만났을 때 '건강해지세요'라고 쓴 카드를 전해 주고 돌아 나와 병원 화장실에서 엉엉 울며 카드에 쓴 말을 바로 후회했다. 언제부터 나는 '건강하다'는 게 우리 관계에서 당연한 것, 기본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심지어 나조차도 무리한 몸을 끌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면서 말이다. 왜 아픈 친구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울기부터 하고, 건강해지라는 카드를 적어 그걸 선물이랍시고 건네는 실수를 하는 걸까. 정말 병과 아픔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도 나는 그나마 빨리 실수를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이 짱에게 '건강해지라'고 쓴 카드에 대해 후회하고, 후쿠다 상과 상의해 카드에 적은 말에 대해 사과를 전하며 '건강해지세요' 대신 '아파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메시지를 바꿨다. 

 

- 나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한 간단한 지표로 수강생들에게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환경을 자주 묻는다. 어떤 이야기에서 막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서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나는지로 결국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어쩌면 '호구 조사'처럼 느껴지는 자기 환경을 설명하는 시간에 많이들 당황해한다. 

 

- 하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지표들을 거쳐 왔는지, 어떤 경험들을 해 왔는지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일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오랫동안 꺼려 온 이야기들을 어렵게 꺼내 그것들을 소리 내어 말하고 가사로 읊고 노래를 부르게 되곤 했다. 

 

- 유난히 텐션이 높은 이 리조트 직원들은 원래부터 '인싸'인 걸까 아니면 대기실에서 혹은 퇴근 후에는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을까. 관객이 전혀 볼 생각이 없는 3일간의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한, 일본에 사는 백인 공연 기획자는 내 공연을 자기 혼자 감상하려고 부른 걸까, 아니면 내게 좋은 리조트를 경험시켜 주며 호의를 표하려고 부른 걸까.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무엇도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해서 무엇에 집중하고 어디다 마음을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내 친구들은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