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더글러스 애덤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일루젼 2012. 1. 3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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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국내도서>소설
저자 :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 / 공보경역
출판 : 이덴슬리벨 200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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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나는 아직 '안내서'를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은 '안내서'를 읽고 나서 읽으면 필히 후회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인 듯 하여 일부러 순서를 바꾸었다.
이어지는 것은 '길고 어두운 영혼의 티타임'. 여기까지 읽고 '안내서'를 읽고, 그 다음 '닥터 후'를 볼 계획이다.
 
즉,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다분히 고의적인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만들어진 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내 기준에서는) 선택들에 의한 일이었는데, 이 책을, 그것도 딱 필요한 부분까지 읽고 나서 '만들어진 신'을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잠시 중단하고 그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도 읽은 상태였고. ('이블린 워'는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제외한다)

이럴 때, 나는 가끔 모든 일에는 그 나름의 순서가 안배된 게 아닐까, 하는 망상에 빠지는데.
사람의 자유 의지와 선택에 의해 수많은 패러렐 우주가 펼쳐지는 상상을 하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뭐, 나에게만 신기한 일이겠지만, 우연한 순서와 우연한 시기에 접한 것들이 딱 그때 고민하고 있던 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 일들이 있단 말이다. 내 경우는 읽을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전혀 의도치 않은 부분들이 연결될 때 주로 그런 것들을 느낀다.

자. 그래서.
나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문체가 상당히 재미있다.
구어체에 가까운, 그리고 이과 nerd 들을 던져놓으면 주로 중얼거릴 법한 화법들이 쏟아지는데, 그 내용을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진단 말이지.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단점은, 정신이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흐름을 놓치기도 하기 때문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ㅋㅋ

조각들은 조각 조각. 하지만 그걸 주워모아 당신의 눈앞에서 맞춰주지는 않겠어요.
이건 세모, 이건 네모, 그리고 아까 봤던 그 빈 자리가 네모였던 것 같군요, 그러니까 세모는 다른 곳이겠지.
라는 식으로 모아낸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현실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와는 전혀 별개로 즐거웠다.
(아, 그런데 고든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 그가 진정으로 가장 절실히 바랬던 건 뭐였던 걸까?)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식기세척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해주고 직접 식기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비디오녹화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이 화면을 직접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을 덜어준다. 전자수도사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점점 성가시고 부담스러워지기만 하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자수도사는 내부에 결함이 생겨 무작위로 모든 것을 믿게 되었다. 심지어 솔트레이크시티 같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존재도 믿었다. 그런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 골짜기와, 유타주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치인 5000억 광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믿었다.

(그러나 이 수도사는 40억년을 떠돈 외계인의 유령에게 빙의된다ㅋㅋ)

"양자 수준에서는 사건들이 확률의 지배를 받지만 확률은 계산 되기 전까지는 실제 사건들과 관련 지을 수 없어. 혹은 네가 다소 괴상한 맥락에서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해보자면 확률을 계산하는 행위 자체가 확률 파형의 붕괴를 초래하게 돼. 그 시점까지는 전자의 행동 양식에 관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고 확률 파형과의 공존도 가능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는 거야. 확률 계산을 하기 전까지는. (중략)
... 양자 수준에서의 확률적 행동의 결과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서 설명한 게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야. 즉, 일상적인 수준에서 쉽게 이해되도록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지. (중략)
... 우선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서 상자에 집어넣고 완전히 봉하는 거야. 그 상자 안에 방사성의 작은 덩어리, 그리고 독가스가 든 유리병도 같이 집어넣어. 그렇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방사성 덩어리의 원자가 붕괴해서 전자를 방출할 가능성이 50 대 50이 되는 상황에 이르는 거지. 원자가 붕괴하면 독가스가 나와서 고양이는 죽는 것이고 붕괴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 확률이 정확히 50 대 50인 거야. 방사성 덩어리의 원자 하나가 붕괴하느냐 아니냐의 확률이 50 대 50이지.
내가 알기로는 그 실험의 포인트는 바로 이거야. 단일 원자의 붕괴가 양자적 수준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관찰되기 전까지는 어떤 쪽으로도 결론이 안 나. 그 상자를 열고 관찰을 해야만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다소 특이한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지.
즉, 실험자가 상자를 열기 전까지 그 고양이는 중첩 상태에서 존재한다는 거야. 상자 안에서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었을 확률은 별도의 파형으로 서로 포개져 있지. 슈뢰딩거가 이런 개념을 도입한 것은 양자역학 이론의 불완전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어."

(어쩐지 빅뱅 이론이 생각나는군. 하지만 가끔은 이런 이야기들이 편안하기도 해. 아주 가끔.)

밤이라는 표면 위에 두껍게 나 있는 상처 자국처럼.

(이 책이 문학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해주는 문구.)

즐겁게 잘 읽었다. 초반에 조금만 공을 들여 적응한다면 신선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점점 '안내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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