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쑤퉁] 나, 제왕의 생애

일루젼 2012. 2. 2. 19:39
728x90
반응형


나, 제왕의 생애
국내도서>소설
저자 : 쑤퉁 / 문현선역
출판 : 도서출판아고라 2007.06.01
상세보기



국내에서는 '측천무후'로 많이 알려졌을 쑤퉁. 하지만 정작 대표작으로는 '쌀', '홍등', '나, 제왕의 생애' 등이 언급되는 작가다. (잠시 찾아보니 상당히 다작을 한 듯. 전 작품을 읽어볼 생각은 없다)
 
역사소설로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며 가상의 나라와 시대를 배경으로 쓴 글.
그러면서도 문득 문득 어느 시대가 배경이 된 걸까, 찾아보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글이다.

쑤퉁이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제왕의 자리가 갖는 허망함, 화려하지만 어딘가가 결핍된 궁 생활, 그 화려함에 상반된 거칠고 고달픈 평민의 삶, 그런 것들이 아닌 것 같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의해 등 떠밀려, 생각지도 않았던 고된 자리에 앉혀진 한 소년의 내면에 관한 글. 그것 같다.

다섯번째 아들 단백. 왕위를 이을 거라고는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한 소년.
열 네 살의 나이에 할머니가 되는 '황보 부인'과 어머니 '맹 부인'의 섭정에 휘둘리기 위해 왕좌에 앉혀지는.
그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를 벗어나려고도, 이겨내려고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만 했던.
그것이 잔악해보일 정도의 충동적인 행동들로 이어진 듯 하다. 어쩌면 그저 보지 않기 위해, 눈 앞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는 타인과 삶에 대한 고민도, 거기서 나오는 가치관과 신념도 없었다.
처음의 그는 너무 어렸고, (사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뒤로는 꾸준히 도망쳤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준 여인도, 그의 벗이자 유일한 아군이었던 연랑도, 나라도, 그 무엇도 지키지 못했다. 
맞서 싸웠다면 단 하나라도 지켜낼 수 있었을 텐데. 최소한 시기라도 늦출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가 답답했고, 안쓰러웠고, 또 미웠다.
대부분의 성장물에 길들여진 심성 탓일 수도, 어쩌면 약간의 천성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그런 역할을 맡았다면 그때부터 노력해야 한다고. 그렇게 발버둥치며 노력해도 해를 끼치지 않기란 어렵다고.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 그렇다면 내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이복형제인 단문이 그토록이나 힘겹게 빼앗지 않아도 되도록.

결국 왕위를 잃고 원하던 자유를 얻은 소년, 아니 청년은 줄을 탄다. 자유롭게 하늘 아래를 떠돌며, 그가 좋아하던 새처럼 몸을 하늘에 맡기고. 그리고 그가 폐위된 5대 섭왕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묘한 마음으로 그의 예(藝)를 즐긴다.
그러나 기울대로 기운 국운은 결국 팽국에 의해 참수 당하고, 그의 광대패 역시 죽임을 당한다.

그는 끝까지 철이 들지 않은 채 비운의 소년왕으로 살았다.
그 스스로 잘 깨달은 것은 단 하나 뿐, 그는 왕위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 그 하나.
결코 자신의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을, 타인의 욕망들을 모아 날줄과 씨줄로 엮은 거미줄 위를 속을 텅 비운 가벼운 몸으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탔어야 하는 자리였음을.

루쉰에 비하면 조금 아쉽지만 충분히 좋은 문체와 글이었다.
다만.... 몽중몽이라... 안타깝다.


뱀발. 결국은 그가 떠나왔던 수도 경성으로 공연을 간 줄타기 왕 광대패. 하지만 그때 경성은 이미 팽국에 의해 함락된 상태였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들어선 그들은 닫힌 성 안에서 살육당한다.
그리고 단백이 아직 제왕이었던 때, 가극 공연을 위해 들어왔던 배우 소봉주가 비수를 들고 달려드는 일이 있었다. 여자 역을 맡던 그가 눈에 독을 품고 달려들었던 상황에 대해 '나'(단백)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장면을 이어서 생각하면, 나는 문득 전혀 다른 생각으로 튀어버리게 되었는데...
영화 "왕의 남자"가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그 마지막 장면에 공길과 장생이 줄을 타며 뛰어올랐을 때 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던 그 장면.

그리고 '금을 삼키고 죽었다'는 내용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어떻게 금을 먹고 죽을까.
음... 생각해 본 바에 의하면 가설은 두 가지.

첫째는 딱딱한 고형의 금을 삼키고 기도가 짓눌려 죽는다. 혹은 금분을 흡입해 질식해 죽는다. (즉 Au 상태)
둘째는 왕수 등에 녹인, 액체 상태의, 사실상 금 이온을 삼키고 죽는다. (금 이온은 더 이상 안정하지 않으며, 금을 그 상태로 만들려면 상당히 유독한 물질들과 혼합해야한다)
열신권전에 의하면 위백양이 금을 엘릭서 상태로 만들려 했었다는데, 중국에서는 환약과 선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연금술에도 관심이 높았던 듯 하다. 해서 금색의 유독 물질이나, 왕수에 녹인 금을 삼켰던 게 아닐까.


뱀발 둘. 이야기가 좀 샜는데, 마푸체 인디언에게 사로잡힌 스페인의 발디비아의 죽음에 관한 설 중, 녹인 금을 목구멍에 부어넣어 죽였다는 설도 있는데 (필마이퀜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 M. Lobera / 팔이 잘리고 마푸체 인들에게 잡아먹혔다 - G. Marmolejo) 금은 녹는 점은 섭씨 1064.18 도, 끓는 점은 섭씨 2856 도 정도다. 
녹이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형벌도 아니고 우아하게 자살하는 중국 왕족이나 귀족이 뜨겁게 녹인 금을 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진짜 금 조각을 삼킨 케이스는 1864년의 홍수전. 빈부 차이가 없어지지 않는 악의 근원이 바로 금이므로, 자신은 원수같은 금으로 죽겠다고 숨이 막힐 때까지 금을 삼켜 죽었다고 한다. 
유사한 케이스로는 파리로 보내졌던 조선의 궁녀 리심(梨心). 고종의 궁중 무희였던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와 혼인하여 (고종이 그녀를 플랑시에게 하사) 조선 여인 최초로 유럽 땅과 아프리카 땅을 밟았으나 플랑시가 다시 서울로 부임하며 돌아왔다. 당시 그녀는 폐병을 얻어 쇠약해진 상태였는데, 귀국한 그녀는 조선에서는 여전히 노비의 신분이었으므로 다시 왕립 무희단에 끌려간다. 
이미 인권에 대해 자각한 상태였던 그녀는 결국 금 조각을 삼키고 자살했다고 나오는데, 프랑스 어로 feuille d'or을 삼켰다고 나온다. 

자. 그럼 역시 금 덩어리를 삼킨 것일까? 
吞金. 탄금. 이 한자는 뜻 그대로 금을 삼키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살하다는 뜻도 있다. 이런 관용적 용례도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금을 많이 삼켰단 말이다. ('나, 제왕의 생애' 중 평민 아이가 궁금해하는 부분이 나온다. 귀족은 왜 금을 삼켜 죽느냐고. 아마도 그런 사치스런 방법으로 죽을 수 있다는 과시가 아닐까,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작가가 이런 대화를 넣었다는 것은 한 번 챙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데서부터 나의 이 집요한 궁금증은 시작되었다...)

기뻐하시라. 나는 결국 영문 검색으로 정답을 찾아냈다. 해서 쑤퉁의 글에 대한 부분은 멀리 멀리 날아가고 이렇듯 뜬금없는 주제의 포스팅이 되었다...

<발췌 - The Civilization of China / Herbert Allen Giles>

To be allowed to commit suicide, and not to suffer the indignity of a public execution, is a privilege sometimes extended to a high official whose life has become forfeit under circumstances which do not call for special degradation. A silken cord is forwarded from the Emperor to the official in question, who at once puts an end to his life, though not necessarily by strangulation. He may take poison, as is usually the case, and this is called "swallowing gold."
For a long time it was believed that Chinese high officials really did swallow gold, which in view of its non-poisonous character gave rise to an idea that gold-leaf was employed, the leaf being inhaled and so causing suffocation. Some simple folk, Chinese as well as foreigners, belive this now, although native authorities have pointed out that workmen employed in the extraction of gold often steal pieces and swallow them, without any serious consequences whatever.

간단히 말하면, 고상하게 죽기위해 고위층 관리들은 황제로부터 명주 천을 받거나 (목 메기), 독을 먹을 수 있엇는데, 그걸 '금 삼키키'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중국의 고위 관리들이 정말 금을 삼켜서 죽었다고 믿어왔는데 금은 독성이 없으므로 금이 아니라 금박이 질식을 유발한 것으로 생각했다. (순수 금은, 특히나 이온이 아닌 Au 상태에서는, 매우 안정하므로 인체에 거의 무해하다고 볼 수 있다)
뭐, 하지만 지금은 중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중국 당국도, 금 채취에 고용된 일꾼들이 종종 조각을 훔치려고 삼켜도 별 일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아, 속은 기분이야. 그러니까 결국 음독을 아주 아주 고상하게 금을 삼켰다고 한 것 뿐이었던 건가....
하지만 우아하고 고상한 죽음하면, 역시, 독이긴 하지. 납득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