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웨인 다이어 / 오현정
원제 : Your erroneous zones
출판 : 21세기북스
출간 : 2019.08.14
어째서 원제가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리뷰를 쓰려고 찾아보다 보니 타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들이 있어서 연결된 모양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표현이 마케팅적으로는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제의 느낌을 더 살렸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손쉽게 빠지기 쉬운 자기기만의 함정들을 그물처럼 펼쳐놓으며 뼈를 때린다. 읽는 동안 책 전체에서 한 번이라도 '아야'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정말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는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자는 이전 저작들에서와는 다르게 한 발 물러선 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 자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한 적이 있다'는 형태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접근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으며, '남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하고 도망갈 구석 또한 모두 막아두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문제'는 어쨌거나 '문제'이며, 남이 그런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의 메시지를 조금 잘못 적용하면 흔히들 말하는 '넌씨눈'이 될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선 그게 좋을 수도 있겠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기피한다는 것조차 눈치를 채지 못하면 아무 문제도 없지 않을까? '넌씨눈'이 문제가 되는 건 그런 행동으로 인해 주변과 마찰이 생길 때이고, 스스로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본인 자체는 완전무결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완전체
사실 자신의 선택에 따라올 수 있는 결과들을 인지하고서도 '선택'한다면야 그의 삶의 방식인데 누가 입을 댈 수 있겠는가. 자신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서도 그 결과에 징징거리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는 경우에는 정중히 조율을 요청하고,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게 삶이 아닐까. 모두에게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렇게 조정과 소통을 거듭해가며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들이 옆에 남는 것일 테니까.
"중요한 것은 부당함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해 내가 어떻게 처신하느냐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인상 깊었다. 나의 감정적인 반응은 결국 내 책임이자 선택이므로, 스스로에게 가장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선택들로 삶을 채워나가자는 메시지라고 이해했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기를.
그것이 타인에 대한 착취가 되지 않을 수 있기를.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10가지 마음가짐
1. 먼저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는 정도가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
2.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다.
이 세상의 절반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
3.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과거의 나다.
4. 자책도 걱정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5.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
내가 원한다면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6. 모든 선택의 기준은 나다.
세상이 정한 옳고 그름에서 벗어난다.
7.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8. 미루지 않고 행동한다.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9.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나를 신뢰하며 독립적인 삶을 산다.
10. 내 안의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화로 생긴 스트레스는 결국 나를 향한다.
-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명료하다.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느끼며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에 대해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내가 그러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말이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불행하다고, 우울하다고, 기분이 상한다고 보탬이 되는 일이 있는지. 나를 맥 빠지게 하는 기분으로 몰아넣고 있는 생각은 또 어떤 것들인지.
- 오지는 자신만의 확고한 입장을 갖지 못한 채 사람들 사이에서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동조를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늘 입장을 바꿨다. 오지 자신은 없고 그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말을 결정하는 다른 사람들의 우연한 반응만 있을 뿐이었다. 오지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식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꿨다.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면 진실은 꼭꼭 숨게 마련이다. 반드시 동조를 얻어야만 한다면, 그래서 그런 신호를 내보낸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언제 어느 때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편향된 생각에 희생이 되는 것이다.
- 자신의 '걱정 시간'을 점점 줄여나갈 것. 오전, 오후 10분씩을 걱정하는 시간으로 지정하라. 그 시간 내에는 불행이 일어날 온갖 가능성에 대해 마음껏 고민하라. 그런 다음 정해 놓은 시간을 넘기는 걱정이 있으면 능력껏 생각을 제어하면서 다음의 '걱정 시간'까지 미뤄두라. 그렇게 하면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그런 낭비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걱정 지대'도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 어제, 지난주, 심지어 지난해에 걱정했던 모든 일에 대한 걱정 목록을 작성해볼 것. 걱정했던 일 가운데 단 하나라도 상황을 개선시켰는지 살펴보라. 걱정했던 일 가운데 어느 정도가 현실로 나타났는지 역시 살펴보라. 이내 그 걱정이 곱절로 낭비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걱정은 미래를 변화시킬 힘이 전혀 없다. 고민했던 불행도 막상 현실이 되고 보면 결국 사소한 일, 심지어는 전화위복이 되는 상황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리뷰자 주 :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솔직히 적중률이 높은 편이다. 예전에는 비껴가려고 노력했으나 지금은 부디 빠르게 배우고 끝낼 수 있길 바라는 편이다.)
- 그냥 걱정하라! 걱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걱정이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살펴보라. 즉 잠시 멈추고 누군가에게 "자, 나 이제 걱정할 거야"라고 말해보라. 그들은 아마 무척 황당해할 것이다.
-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규칙을 강요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 그들이 진정 그런 지시를 필요로 하는지, 또는 그런 지시가 없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지 물어보라. 어쩌면 그들이 훨씬 효과적이고 유연한 지침을 생각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 어떤 결정을 내릴 경우 옳은 결정이나 그른 결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것. 결정을 내릴 때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말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각각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다부지게 생각하라. 외적인 보장에 기대지 말고 자신을 믿고 결정을 내려라. 당신이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 자신은 어떤 규칙을 따르지 않기로 했노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 것. 그런 행동은 오로지 자신만의 문제이니만큼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라. 그렇게 되면 사회화를 거부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다른 사람에게서 찬사를 얻기 위한 것이 된다.
-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떠맡긴 역할을 버릴 것. 남자, 여자, 중년에게 으레 기대되는 위치가 아닌 자기 자신이 바라는 위치를 찾아라.
- 중요한 것은 부당함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해 내가 어떻게 처신하느냐다.
- 사실 미룬다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면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것은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뒤로 미루기' 오류 지대는 실행하지 않는 데 딸려오는 불안한 마음과 무기력 상태가 노이로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일을 미루고 나서도 죄책감이나 불안감, 초조함이 따르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계속 그렇게 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 장은 읽지 말고 그냥 넘겨도 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미루기는 사실상 최고의 현실도피다.
- 다음은 미적거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미루는 행위에 빠지게 하는 3단계 심리 상태다.
"일이 어떻게든 잘 됐으면 좋겠어."
"일이 더 잘 되길 바랐는데."
"아마 잘 될 거야."
여기에 바로 뒤로 미루는 사람의 기쁨이 있다. '좋겠어' '바랐는데' '아마' 같은 말을 하는 한은 현재 어떤 일에 나서지 않는 데 대한 구실이 생긴다. 원하고 바라기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동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 우리들은 '빛나는 졸업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 어떤 학문분야, 수학, 과학, 풍부한 어휘, 잡다한 기억력, 속독 등에 귀재인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지금 정신병원은 번듯한 학력을 가진 환자들로 넘쳐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하여간 똑똑함의 참된 척도는 하루하루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제대로 즐겁게 사느냐다.
- 따라서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한순간 한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똑똑한 사람이다. 물론 지적 능력은 행복을 위한 유용한 보조수단이다. 그러나 학교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혹은 적어도 불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똑똑한 사람인 것이다. 행복을 선택하면 '신경질'에 대한 궁극적인 방패막이를 얻게 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애초에 신경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경은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 인체를 해부해놓고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성깔을 부리고 있는 신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 똑똑한 사람들은 신경질을 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기에. 똑똑한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기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법을 알고 있다.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그들이 문제를 '해결'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닌, 자신이 행복하고 소중해질 수 있는 능력을 똑똑함의 자대로 삼는다. 문제가 해결되나 안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 당신이 진정 똑똑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힘겨운 상황이 닥쳤을 때 기분을 어떻게 다스리기로 작정했느냐에 따라 가득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삶의 고단함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엇비슷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다. 다이나 갈등 또는 타협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마찬가지로 금전, 나이 듦, 병, 죽음, 자연재해, 사고도 저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상황들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령 같은 의기소침이나 불행을 피해 가면서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문제들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행복을 저울질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무리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 스스로를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한 개인이 책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작당하는 세력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고 과정을 체득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 허나 우리는 그들이 나의 사고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사고 중추를 통제하는 것은 나뿐이다. 물론 일상생활이 아닌 조건부 실험 상황 등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다. 나의 생각은 나 자신의 것으로, 오로지 나만이 유지하고 바꾸고 통제할 수 있다. 소전제도 상식을 동원해 따져보면 별로 왈가왈부할 게 없다. 먼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머리가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울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심장 박동수가 늘어나거나 하는 여러 감정 반응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나의 사고 중추로부터 신호를 받지 않는 것은 없다. 사고 중추가 손상되거나 파손되면 감정 반응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뇌가 어떤 식의 손상을 입게 되면 육체적 통증마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가스레인지 위에 손을 올려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고 중추를 통하지 않고서는 몸의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위의 소전제는 진실 안에 들어앉은 셈이다. 감정을 느끼기에 앞서 항상 생각을 하게 되며 뇌가 없다면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 결론 역시 이치에 들어맞는다. 생각을 통제할 수 있고 그 생각에서 감정이 생긴다면 감성도 통제할 수 있다. 감정을 느끼기에 앞서 작용하는 생각을 잘 움직이면 되기 때문이다.
- 그가 샌프란시스코 본부에 있었을 때 미국의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이 북부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고 한다. 사병들은 그들의 몸으로 "환영합니다. 각하"라고 글씨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통령이 전용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 동료는 그것이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고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모두 상치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난동을 부리는 대신 그날 오후 혼자 몰래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꼴사나운 행사에 참여하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이 맡았던 '환영합니다'의 '다'에 점을 찍을 기회를 놓쳤을 뿐이었다.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깎아내리지도, 쓸데없이 싸움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저 어깨만 으쓱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저들 나름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뒀다.
- 사회화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그리고 묵묵히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 시류 편승이나 전혀 득이 안 되는 적대적인 시위를 할 필요도 없다. 어리석은 규칙, 전통, 정책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테지만 내가 반드시 그 일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양처럼 순종할 때 당신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길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족하다.
- 하지만 당신은 아니다. 수선을 피우는 것은 거의 어김없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자신에게도 더 많은 걸림돌을 만들어낸다. 조용히 우회하는 편이 훨씬 수월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 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책 표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다. 그다지 재미없더라도 끝까지 읽는다. 이미 절반 정도를 읽었기 때문이다. 절반을 읽었으니 마저 읽어야 한다는 식이다.
(리뷰자 주 : 아직 내려놓지 못한 강박.)
- 다른 모든 오류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런 보상들은 대체로 자신을 망치게 하지만, 그래도 굳이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나름의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 온갖 의무에 따르면서 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복종적인 데 대해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것. 이것은 '품행'이 방정할 때마다 칭찬을 받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퇴행적 보상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나의 행동 규칙을 정해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 외부에 순응하게 되면 발전이 없는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의무를 지키다 그랬노라고 말할 수 있다. 의무가 현상유지를 하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는 한 자신을 변화에 내던지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의무는 성장을 막는다.
- 자신의 행동이 올곧다고 생각하면서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무에 다른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경우 적개심을 품는다. 정해진 규칙에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을 치켜세우면서 우쭐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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