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웨인 다이어 / 도지영
출판 : 비지니스북스
출간 : 2021.08.20
'웨인 다이어'의 저작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치우치지 않는 삶> 정도를 읽어보았는데 매 권마다 저자에 관한 이미지가 조금씩 변화한다. 나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책에서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이번 책은 읽는 동안은 흐르는 듯이 매끄럽게 읽어나갔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 다소 막막해졌다. 어느 지점에서 보는 관점으로 리뷰를 써야할지 모호하다. 애초에 '심상화'나 '시각화', '내면의 반영' 등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들이라면 거리감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일상-심리-상위자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툭툭 튀어나오는 경우에는 어떤 입장에서 리뷰를 해야할 지 조금 당황스럽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영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런 관점을 굉장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내용들과 연결해서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장점이기도 하다. '수행'적인 느낌이나 '자기 계발' 같은 느낌이 확실한 책들은 실제 삶과 거리를 두기가 쉽다. 하지만 <마음의 연금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코 앞에 대고 흔들면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는 느낌에 가깝다. 도망칠 구석 없이 거울을 마주하는 느낌이라- 거리감을 두기가 어렵다.
음.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 분들께라면 선뜻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이 표현이 생소하고 낯선 분이시라면, 혹은 뜬구름은 싫다는 분이시라면 이 책은 언젠가 다른 기회에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아마도 그는 세상의 좋은 부분을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할 것이다.
"내면의 높은 자아가 세상의 그릇된 부분이 아니라 옳은 부분에 집중할 때 생산성은 더 높아집니다. 부정적인 기운은 흘려보내고 에고와 자아도취의 방해를 피하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평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아마도 다이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일, 좋은 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속으로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인생에서 펼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 심지어 자기 안에서도 그런 면을 보게 된다. 더는 적용되지 않는 규칙, 누군가 씌워놓은 규칙을 바탕으로 처신하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때 스스로에게 화를 내지 마라.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내리거나 집착하지 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라.
- 앞으로 이야기할 새로운 사고방식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얻으면 내가 옳거나 상대방이 옳거나를 벗어나 극적인 자유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해도 그에 맞서 싸우거나 설득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저 사람이 지금 있는 곳이 저기야.' 다시 말하지만 좋고 나쁨은 판단하지 마라. 그저 그대로를 바라봐라. 그러면 모든 생명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랑이 생긴다. 깨어남의 과정을 시작할 때는 이런 변화로 거의 압도될 정도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느꼈던 사랑과 비슷하게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적이나 경쟁자(더는 이런 단어를 쓰지 않겠지만)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서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누구도, 무엇도 다치기를 원하지 않게 된다.
-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람들의 사상이나 행동을 바꾸려고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 것도 깨어남의 일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들이 내게 해가 되는 일을 하더라도 말이다. 혼란스럽거나 무질서한 상황을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다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사람들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돕고 전쟁이나 증오가 사라질 때까지 이를 계속한다.
- 어떻게 그만둬야 하느냐고 묻겠지만 답은 사실 간단하다. 그냥 그만하면 된다. 그뿐이다.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 그만두자.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즉 누군가가 내 생각을 통제한다고 믿는다면 누가 그런 생각을 품게 하는지 찾아서 데려오라고 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치료하면 당신의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끝난 일이지. 나는 그 일을 해결했어. 나는 적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있고 싶어. 화내고 싶진 않아. 그냥 그런 생각은 밀어내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싫어."
- 하지만 많은 상담사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건 실제로 그 문제를 마주하려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에요." 그러나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항상 문제를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길거리에 소의 배설물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음, 난 괜찮아. 저 사이로 지나갈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친 짓 같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빙 둘러 갈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둘러 가야 할 때가 많다.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생각도 둘러 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그냥 하면 된다. 더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 당신의 인생이 당신을 위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만일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삶이 비참함과 우울함으로 가득하다면, 항상 뭔가를 좇아야 하거나 만족스러울 때가 없다면, 화가 많이 난다면, 늘 일을 미루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라면 인생 뒤의 환상을 보라고 권한다. 한발 물러서서 의식의 작은 한구석에서 이렇게 말해보자.
"마감일자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이미 이 일을 하고 있어. 이 일이 바로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선택한 내 역할이야. 이 일을 계속 선택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이 역할을 맡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이 망가지거나 엉망진창이 되도록 두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마감 일자를 앞두고 A 유형 행동을 많이 하거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다는 이유로 짜증이 난다면 멈춰서 물을 거야.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 내면의 대화는 의견을 쌓아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의견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사람이 (물론 선의에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그 안은 의심으로 가득하다. 목적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높은 자아를 알지 못하는 건 이런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다. 에고가 작동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에고에 관해 자세히 다룰 텐데, 여기서는 다만 더 높은 곳에 이르려면 항상 우리와 함께하는 신 혹은 사랑스런 존재를 알아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라. 계속 내면의 대화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그저 관찰하고 비판하지 마라. 관찰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조용하고 텅 빈, 보이지 않는 그 장소에 다다르면 '호랑이를 가둔 창살 사이의 공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음악을 만드는 음표 사이의 침묵이다. 우리에게는 침묵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가져라. <도덕경>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비움에 이르라. 고요함을 지켜라. 세상 만물의 움직임을 통해 만물의 끝이 시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라."
- 호흡과 생각은 합께 간다. 깊고 길게 들이마시고 내뱉어라. 심호흡에 집중하면 평화가 찾아온다. 심박도 호흡처럼 관찰에 집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만일 생각이 수면의 바로 아래 분석층에 있다면 장미를 떠올려라. 생각을 분석하는 일을 장미의 아름다움으로 바꾸면서 인도의 위대한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의 말을 떠올려보자. "장미꽃 속에는 이미 메시지가 담겨 있으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건네지 않는가? 그 메시지는 언어인 말과 달리 분석할 수 없다." 그렇다. 장미꽃에 담긴 메시지는 분석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 내면의 대화를 차단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렇다. 마음이 통합층에 있을 때, 즉 삶의 아름다움에 합일될 때 우리는 정신세계를 누리는 기쁨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생각도 버린다. 가능성의 들판으로 가는 길을 흐리는 내면의 대화는 전부 차단한다. 남보다 더 정신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나는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에고가 말을 건다. 이것은 함정이다. 전보다 정신에 집중하는 삶을 산다고 느낄 때, 전보다 깨어 있다고 느낄 때, 높은 인식이 주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경험할 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정신에 집중하는 사람이야.' '내 배우자는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정말 모른다니까.' 이는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사람, 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두려고 에고가 쳐놓은 덫이다.
- 너무 주제넘은 소리가 아닐까 싶지만 나는 그의 어떤 책이라도 지금 세상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위기든 기회의 순간이든,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젊을 때는 나이 들었을 때는 그의 책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지혜다. 아마도 다이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인생에서 주어진 환경이 내면세계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외부적인 조건을 이유로 화내거나 상처받고, 우울해하거나 슬퍼하고 두려워합니다." 한편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같은 상황도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문제나 어려움, 장애물을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에너지가 변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 문제가 곧 흩어져 사라질 일이라는 걸 알아. 항상 그렇듯 말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를 통해 무엇을 얻을지 확인할 기회야.' 이렇게 말입니다."
- 다이어는 두려움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라고 말한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보다 큰 존재다. 나는 내가 겪는 어려움보다 큰 존재다."
- 또 다이어는 요즘 우리가 집에서만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제안도 할 것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여기는 광활한 우주라는 점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지세요. 모든 것에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모든 일에 감사할 거리가 있습니다. 내면의 세계를 비판, 회의, 의심, 괴로움, 고통으로 채우기보다 항상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세요. 모든 생각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일이 펼쳐진다는 점을 일단 마음에 새기면 잘 안 되는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일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인식이 높아졌다는 걸 알게 됩니다."
- 그러면서 항상 걱정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애쓰는 게 최선은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에고는 말합니다. '모든 걸 걱정해야만 해.' 하지만 높은 자아는 이렇게 말하죠. '지금보다 더 몸을 낮춰 타인을 배려하고 인생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정신적 목표를 세운다면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있다는 걸 안다면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을 거야.'"
- 또한 문제점, 어려움, 장애물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전환의 관점, 즉 한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바뀌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 문제는 곧 흩어져 사라질 거야. 항상 그렇듯 말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이걸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기회야.'
- 예전에 여행 중에 호텔 방 열쇠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몹시 짜증이 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일이 생기면 시험에 들었다고 여긴다. 그런 일은 곧 해결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열쇠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2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열쇠를 찾았다. 열쇠는 그냥 나타났다. 간단한 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를 연습할수록 실제로 문제가 금방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만 열면 모든 게 가능해진다.
- 한때는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을 어느 날 '한순간에 이해하는 것' 말이다. 이는 자신을 활짝 여는 것으로써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인도의 한 고전을 읽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책을 다시 읽었더니 한순간에 전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또 전에는 서점에 가면 철학이나 유심론 혹은 형이상학 같은 부류의 책이 진열된 구역은 피해 다녔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제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세상에 있는 것, 그게 전부야.'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책이 꽂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번에 네다섯 권씩 사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예전에는 '이건 뭐지? 이 사람, 뭐라는 걸까? 그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지금 농담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책들을 한순간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책을 읽고 이해한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
- 깨어나기 시작하면 사물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 순간 새로워진다. 과거의 경직된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생을 그렇게 보낸다. 이미 굳게 믿고 있는 내용과 충돌하지 않도록 새로운 것을 계속 막으면서 말이다.
-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한순간에 마음을 연다.
- 한때는 나도 그 기내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 음식이 변한 건 아니었다. 변한 건 나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내 몸에서 막혀 있던 것이 뚫렸다. 사고의 영역에도 같은 개념이 적용된다. 먼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인다. '우주에는 긍정적인 힘이 있어. 나는 그런 힘의 일부야.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어. 나는 모든 인류와 이어져 있고 완벽한 세계에 살고 있어. 여기에 동시성 synchronicity(두 가지 이상의 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 옮긴이)은 있어도 우연의 일치는 없어.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거기서 배움을 얻기 위해 내가 여기 있는 거야. 용서도 삶의 한 방법이야.' 의식이 높아지며 이런 생각이 삶 속으로 들어오면 이때 등을 돌리거나 거부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 속으로 더 빠져든다.
- 예전에 당신은 오직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켰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이 손에 넣기 전에 내 것을 챙겨야겠어. 누군가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 정직하지 않게 대해도 괜찮아. 내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러나 조화로움이라는 삶의 가치를 알게 되면 이런 생각은 사라진다.
-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인생에서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면의 평안을 얻을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로 ...
- 물속의 물고기에도 본질이 있다. 식물에도 본질이 있으며 모든 생물에 본질이 있다. 그런 본질을 놓치는 이유는 무엇이 보이는지, 어떻게 하면 그걸 잡을 수 있는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잡을 수 없다고 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바람을 잡을 수 없으며 오직 바람이 지나간 뒤의 결과만 볼 수 있다. 그뿐이다. 하지만 바람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바람을 잡거나 만져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가 만질 수 있든 없든 그와 무관하게 바람은 존재한다. 대부분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 예를 들어 괴로움, 우울함, 불안함,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우리를 괴롭히는 A 유형(성급하고 충동적이며 원하는 대상을 적극적, 경쟁적으로 쟁취하려는 유형 - 옮긴이) 행동 등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깨어나면 그런 건 그저 과거의 일이 된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들로 자신을 못살게 굴지 않는다.
-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정하는 일은 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우리는 피부와 뼈, 근육, 연골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처리하고 경험하는 건 전부 마음을 통해서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체보다 훨씬 큰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 마음속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 생각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 언젠가 비행기를 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한 승무원이 비행기 공포증으로 힘들어하는 탑승객을 세심히 배려하며 애쓰는 모습을 봤다.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 승객이 비행기 사고를 얼마나 끔찍하게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으면 죽음은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이는 우주의 섭리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교훈을 얻었어요. 주어진 하루를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거죠."
- 이제 앞서 물음표를 달았던 세 번째 의식 단계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의식의 단계란 무엇이며 각 단계는 무엇이 다를까? 만약 세 번째 의식 단계에 있는 사람이 의식 단계를 높였을 때 어떤 일이 가능한지 알려주고 싶다면 일상의 의식 단계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 깨어 있던 짐이 꿈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 일상에 있는 척하면서 다른 차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더 이상 꿈과 같은 환상 속에서 살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고 그런 다음 다른 차원으로 떠난다.
-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마음과 영혼으로 아는 일이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지성을 갖췄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없애고 진정한 가능성과 행복으로 우리를 이끄는 지성 말이다. 당신은 이런 사실을 전부 보고 이해했다. 갈등 앞에서 편안해지고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현재를 즐기고 기쁨을 찾기 위해, 즉 큰 그림을 보기 위해 죽음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임사체험을 하면 된다. 다만 마음속에서 해야 한다. 명상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다음과 같은 시각화 기법도 있다.
- 마음속으로 자신의 장례식장에 참석했다고 상상해보자. 끔찍한 병으로 고통 끝에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장례식의 모습을 잘 살펴보라. 전부 경험하라. 그러는 동안 아마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이런 일이 굳이 실제로 일어날 필요는 없어. 마치 꿈꾸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겪어보고 진짜 같은 그 느낌을 얻는 거야. 그러고 나서 더는 육신의 세계에 그런 일을 불러 들일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는 거야. 나는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 큰 그림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지 좋다. 내 말은 육체의 세계, 물질세계에서 꼭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변신할 수 있고 육체를 초월해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아무런 한계도 없는 마음속에서 경험하라. 생각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 다음 생각에서 벗어나면 깨닫는다. '좋아, 이걸로 충분해, 이제 겪어본 일이야. 큰 그림을 보자. 그 일은 내 인생으로 불러올 일이 아니야.' 일단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속의 일로 그치면 큰 그림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 아마도 정신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은 환상을 볼 수 있으며, 환상을 경험하는 건 진짜지만 사실 그 환상은 진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다. 세상에는 이처럼 높은 의식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 높은 곳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애쓰며 도와준다. 여기서 더 높은 곳이란 어떤 모습을 갖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탈바꿈이다. 더 높은 곳에 이르면 우리는 다음 차원을 드나들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 차원, 또 그다음 차원... 이렇게 차원을 넘나들게 된다.
- 삶이라는 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어렸을 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꿈속에서 손에 쥐었던 삽은 환상이었지만 삽을 쥐는 경험은 정말 생생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죽어 육신을 떠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떠올릴 것이다. 살면서 쌓아 올린 것과 매달려온 모든 것, 즉 돈을 비롯해 가져 갈 수 없는 우리의 모든 '삽'은 전부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의식 단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든 걸 만들어냈다. 만약 매일 함께 싸울 파트너가 필요하다면 만들어냈을 것이다.
- 깨어 있는 의식은 꿈꾸는 의식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의식 속에서는 그 무엇도 우리를 제한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깨어 꿈꾸는 사람' waking dreamer의 상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나 소유물이 아니며 그런 것은 전부 꿈에서 필요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생이라는 꿈속에서 필요한 걸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꿈이 너무나 진짜 같아서 꿈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정확히 이야기하면 꿈은 꿈이다.
-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주 재미난 꿈을 꾸고 있었는데 다른 차원의 뭔가가 나타나, 예를 들면 벨이 울리거나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리거나 전화가 오거나 해서 눈을 떠야 했던 상황 말이다. 말하자면 반쯤 깨서 육체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럴 때는 순수한 생각의 세계에서 멋지고 좋은 것을 만들다 떠나온 것이므로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빨리 다시 잠들어서 꿈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고 싶어.'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청중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만일 여러분이 꿈을 만들었다면 왜 다시 잠들어 꿈에서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확인해야 할까요? 꿈의 내용을 쓰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인데 말입니다!" 이는 마치 작가가 이야기를 쓰면서 결말을 궁금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내가 쓴 이야기라면 원하는 대로 결말을 쓸 수 있다.
- 우리는 대부분 두려운 것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두려워 마주하지 않는 바로 그것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깨어나면,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를 내면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이 심상 mental image 임을 알게 된다. 나는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당신에게 마음을 쓴다고 해도 당신의 간이나 신장이 될 수 없으며 당신이 겪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당신의 간이나 신장이 아니다. 삶의 모든 것에 지각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즉 생각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생각은 죽지 않는다. 생명력이 있는 것, 지성이 있는 것, 완전한 것은 그 무엇도 죽지 않는다. 그저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는 것뿐이다.
- 삶에서 제3의 영역인 꿈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없고 어떤 한계도 없으며 진짜 현실이다. 꿈에서 우리의 몸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며 원래 갖고 있던 물리적인 형태를 초월한다. 꿈을 꾸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온갖 장애물이 실은 기회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꿈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꿈은 의식의 다른 수준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잠이 들면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다른 세계, 순수한 생각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산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오, 저는 몸이 없어서요. 그건 환상이에요."
- 꿈을 꾸고 있는 걸 아는 유일한 때는 깨어났을 때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하는 행동이 환상이라는 걸 알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한다. 이것이 꿈속 의식 단계에서 일상적인 의식 단계로 올라가는 문이다. 만일 한 의식 수준에서 다른 의식 수준으로 이동하려고 한다면 짐이 한 것처럼 위의 발판에 서 있는 누군가가 아래로 내려와 함께 서 있는 척하는 방법을 권한다.
- 대부분 사람은 평생 부모와 가정, 학교와 종교적 훈련 등에서 배운 단계에 따라 살아간다. 그 배움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다. 이는 전부 신의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적을 일으킬 곳으로 가려면 지금까지 배운 단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판 없이 단계를 지울 수 있다. 이제 당신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쓸 기회를 주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계약서를 바꿀 것이다. 새로운 계약서에는 당신의 생각, 행동, 전략을 비롯해 전에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내용이 들어간다. 당신은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전부 내려놓아야 한다.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동시에 한 군데 이상의 장소에 있을 수 있을까? 모습을 바꿀 수 있을까?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누군가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사람의 기운을 읽을 수 있을까? 중력을 거스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책을 덮어라. 여기서부터 우리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옷장 밖으로 나와 이런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는 비밀을 밝히려는 게 아니다. 옷장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뜯어내고 있다. 나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분명 알고 있기에 당신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 경험하면 "만족할 수 없어. 더 많이 가져야겠어."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더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높은 자아를 아는 자유, 내면의 신성함을 아는 자유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면 '나는 여기에 있어. 이게 바로 그거야. 이미 내게 있어'라는 감각을 느낀다. 우리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거나 빚을 지우거나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 혹은 중독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모두 거짓 자유다.
- 이번 장에서는 진정한 자유에 관해 알아본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만 생각하거나 자기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하지 않고 삶의 목적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누구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진정한 자유는 인식을 높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대부분 사람이 경험해온 바와는 아주 다르다. 진정한 자유는 깨어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결과이기도 하다. 어디로 갈지 선택하는 힘은 내게 있다.
- 내가 설명하는 아이디어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점을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내가 서명했던 계약을 바꾸는 걸 고려해봐야겠어. 결국 그 계약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어. 마음속에서 더 많은 걸 원한다는 목소리가 들려. 인생은 깊고 풍부하다고 느끼고 싶고 성취감이 있었으면 좋겠어. 목적에 따라 살고 싶어. 반짝이는 내면의 빛, 수많은 정신적 스승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해.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그럴 수 없었어. 지나온 시간에는 감사해.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있어야 했던 일들이니까. 하지만 여기서부터 앞으로 어디로 갈지 바꿀 힘은 내게 있어.'
- 당신이 알든 모르는 우리는 '주변부 거주자' tringe dweller다. 주변부 거주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스튜어트 와일드 Stuare Wilde가 만든 말이다. 와일드는 정말 이름처럼 살았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길들여지지 않았고 멋지고 고귀하며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책 <속삭이는 변화의 바람> The Whispering Winds of Change에 주변부 거주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읽어본 가장 심오한 이야기였다. 와일드는 주변부 거주자를 정신적으로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 일종의 네버랜드에 사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가 말하는 네버랜드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세상의 규칙에 따를 필요가 없는 곳이다. 주변부 거주자는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있으며 적대감과 증오와 갈등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사실 아주 많은 사람이 이 주변부 거주자에 속하며 당신과 나도 속해 있다.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목말라하고 있다. 세상에 정신적 가치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낮은 탓이다.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사실 정신의 부족함이 진짜 부족함이다. 주변부 거주자인 우리는 세상을 바꿀 의식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정신적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런 변화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가 정한 방식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악의적인 민족주의와 경쟁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려고 한다. 세상은 믿는 만큼 보인다.
- 자,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컵을 놓아버리려면 먼저 컵을 들어야 한다. 즉 컵을 들어 올려야만 내려놓을 수도 있다. 컵을 들지 않고 지나쳐버리면 놓아버릴 수도 없다. 처음부터 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용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컵을 들었다면 우리는 기능적 성인 반응 functional adult response이라 부르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 반응 wounded child response, 즉 "정말 끔찍하지 않아?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난 아직도 화가 나 있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기능적 성인은 상처받은 채로 살아가기보다는 컵을 들어 올려 문제를 다룬 뒤 흘려보낸다. 비판을 줄이면 문제를 그냥 피하기보다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용서다. 지금까지 깨어나 높은 인식에 이를 때 생기는 중요한 특성을 알아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이로움이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높은 자아를 따라 사는 기분에 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내면의 높은 자아를 마주하라. 내면의 높은 자아를 마주하겠다고 마음먹어라. 내면의 높은 자아에 관해 단순히 아는 게 아니라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란스러운 대화를 멈추고 내 안에 비어 있는 조용한 장소로 가면 훨씬 쉽게 높은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뒤에서 더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라. 그리고 매일 내면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라. 많은 사람이 당신에게 해준 이야기에 들어 있는 의심을 전부 지워라. 마음을 열고 회의적인 생각을 멈춰라. '나는 여기서 잠시 불신을 미룰 거야'라고 혼잣말하라.
- 깨어 있는 동안 꿈꾸는 연습을 하라. 꿈꾸기 위해 잠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라. 꿈꿀 시간을 잠시 가져라. 깨어 있는 동안 꿈을 꾸면 한계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마 어렸을 때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몽상가라는 별명이 붙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했던 일이다.
- 그러면 관찰자가 되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 '무엇도 잘못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라. 매일 이 확언을 반복하라. '나의 세계에서는 무엇도 잘못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확언 가운데 가장 좋은 확언이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매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보다 큰 존재다'라고 말하라.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보다 큰 존재다. 나는 지금 겪고 있는 문제 이상의 사람이다." 자신이 문제를 담는 그릇 이상의 존재라는 걸 확인해주는 이 간단한 말 덕분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이다.
- 이미지를 그려 문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조용한 곳으로 가서 눈을 감아라. 한동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일에 관해 생각하라. 의식의 검은 화면 위에 그 일이 나타나는 걸 보라. 문제의 모든 측면에 주목하라. 어떻게 보이는지, 언제 나타나는지, 마음속에 떠오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떤 고통과 공포를 느꼈으며 과거에 해결하려 하다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등 문제와 관련된 내용 중 떠올릴 수 있는 건 전부 생각해본다.
- 이제 자신과 문제를 분리하라. 문제가 마음속 스크린 위에 떠 있도록 그냥 두어라. 동정심 있는 관찰자가 되어 비판 없이 화면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라. 마치 영화를 보듯 문제를 바라보고 무엇이든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두어라. 무엇이든 문제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애정을 담아 허락하고 그저 지켜보라. 그러다 보면 문제가 변화하며 의식 속에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변화와 움직임을 보면서 에너지가 할 일을 한다. 는 걸 알고 그저 보살피는 눈길을 주는 관찰자로 남아 있어라. 이처럼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문제가 소멸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따뜻한 시선을 지닌 관찰자로서 계속 바라보면 된다.
- 인생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라.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라.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라. 만사에 지혜가 있고 만물에 감사할 거리가 있다. 내면세계를 비판과 회의, 의심, 괴로움, 고통으로 채우기보다 항상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모든 생각은 통제할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일이 펼쳐진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보다 감사하게 여기는 일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그러면 원하는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건 내면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 내면의 소음을 끄고 마음을 비우기. 인식을 높이는 세 번째 비결은 '내면의 대화'를 차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따라야 한다. 먼저 의심을 지우는 법을 배운다.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관찰자의 시선이 생긴다. 의심이 깨끗이 사라졌을 때만 관찰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관찰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면의 대화를 차단하면서 침묵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간다. 신의 눈으로 보면 더 특별한 사람이나 더 나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신성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누구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다. 만물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깨닫고 통합에 이르면 내가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에고가 좋아하는 덫이다. 에고는 우리가 이 덫에 걸려들기를 바란다.
- 언제든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라면 단 몇 초라도 좋으니 내면으로 들어가 조약돌을 깊은 곳으로 떨어뜨려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한창 회의하는 중에도 할 수 있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 내면을 조용하게 만든다. 조약돌이 연못에 떨어지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높은 자아의 차분함과 고요함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런 다음 회의 장소로 돌아가면 전에 없는 명확함을 느낀다. 에고가 아닌 높은 자아가 이 순간의 삶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면 생각과 결과를 분리할 수 있으며 여기서 오는 차분함이 큰 기쁨을 가져온다. 에고가 잠잠해지면 이기적인 욕망과 관련된 성질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외로움, 절망, 아픔, 분노, 두려움, 걱정은 이기적인 욕망과 관련된 성질이다.
- 에고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그러면 영락없이 답이 떠오른다. 책을 쓸 때 나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1년 정도 생각한다. 책을 쓸 준비가 되면 사무실과 집을 떠나 가까운 곳에 머무른다. 큰 방을 얻어 책으로 가득 채운다. 사람들이 보내준 책, 읽었던 책, 들어본 적 있는 책, 출판사에서 검토를 부탁하며 보내준 책 등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음을 확신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책이라 해도 내 의식의 일부는 그 안에 있었다. 아무 책이나 펼치면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 내용이 정확히 있다. 그래서 주변에 온갖 책을 두고 글을 쓰다가 무작위로 골라 들어 펼친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거기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인생에서 나타나는 무슨 일이든 높은 자아가 처리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더는 에고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에고가 아닌 진짜 자신의 소리를 들어라. 에고를 내려놓고 진짜 자신을 믿으면 기적이 펼쳐진다.
- 하지만 이런 생명체는 사실 우리 몸 전체를 생가한다. 위벽과 장, 발톱, 콧속에 있는 벌레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우리 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을 하나의 개체라 여기지만 우리는 우리 몸에 사는 수많은 종류의 박테리아 같은 생명체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일 걸으며 생각한다. '나는 한 개인이야. 나는 하나의 섬 같아.' 하지만 현미경에 보이는 수백만 생명체와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는 걸을 수도 없다! 우리 몸 안에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뭔가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를 망가뜨리는 건 '부조화'다.
- 세포가 내부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해 불편한 상태가 되면 암세포가 되어 다른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암세포는 스스로 망가지고 그 과정에서 몸도 망가뜨린다. 사회의 암적 존재도 그와 비슷하다. 스스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고 자신도 망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세포 속의 암이든 사회의 암적 존재든 암에 대한 답은 '조화'다. 우리의 내면이 조화롭다면 우리 몸속의 세포가 그렇듯 옆에 있는 사람과 협력할 것이다. 그것이 평화와 건강으로 이어지는 답이다. 이는 전부 형이상학에서 이야기하는 짤막한 가르침이다.
- 종종 나는 식당 종업원이나 항공 승무원, 택시 기사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서비스업을 정말 훌륭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수행하는 역할에게 말하는 거야. 저들은 종업원이라는 역할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일 뿐이고 그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
- 조화를 이루는 길은 생각하는 방식에 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를 미워한다 해도 우리 안에 사랑밖에 없다면 우리가 줘야 하는 건 사랑이 전부다. 게다가 사랑을 건네면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마음도 누그러든다. 사랑을 주는 사람을 미워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 특히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기분 상해하거나 화내지 않고 큰 그림에 집중하면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 '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대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진짜 나, 내 존재의 본질은 저 사람이 바라보고 말하는 이 몸이 아니야. 진짜 나는 내가 생각하기로 선택한 방식이야. 그건 저 사람이 결코 가질 수 없지.'
- 또한 이제는 갈등 상황을 피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덤비는 사람에게 맞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배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나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갈등이란 조화를 해치는 짓임을 깨닫는다. 맞서거나 대립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만든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옳다는 주장을 더는 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겐 각자 주어진 인생의 길이 있음을 알고 각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갈등 상황을 쉽게 피할 수 있다. 차가 막히거나 텔레비전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짜증 내는 사람이 있어도 이젠 괜찮다.
-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처음에는 마치 연기하는 것 같다. 해낼 때까지 해낸 척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곧 제2의 천성처럼 자연스러워진다. 당신의 인생에 더 이상 불화는 없다. 불화를 눈치채지도 못한다. 겁쟁이가 되거나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으며 피해자가 되지도 않는다.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일에는 그냥 들어가기를 거부하면 된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런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다. 그런 일에 끼어든다고 해서 내가 옳고 남이 틀렸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면 갈등 상황에 휘말리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부조화를 피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전쟁과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완벽함을 구성하는 요소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가지만 그 길 위에 서 있는 장소는 각자 다르다. 이 점을 이해하면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훨씬 쉽다.
- '화를 내서 벌을 받는 게 아니라 화가 너를 벌할 것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정말 와닿는 말이다. 심판의 날에 우리가 몇 번이나 화를 냈는지 계산해서 포인트 비슷한 것을 매기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화에 파묻힌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세상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기만을 바라면 화가 우리를 벌한다. 끊임없는 분노와 증오, 괴로움에 파묻혀 살게 된다. 이는 때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거나 세상일이 돌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무튼 늘 그런 부정적인 감정만 갖고 있다보니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그뿐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면 심박수가 오르고 온갖 질병에 걸린다. 그러니 그 누구도 당신을 통제하거나 내면의 신성함을 가리지 못하게 하라. 자신을 희생당한 사람이 아니라 신성함과 이어져 있는 일부로 여겨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이 세운 완벽한 계획의 일부다.
-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좋다. 당신은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생각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없애라.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부 선택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커다란 교훈을 얻는다.
- 심지어 '옹졸한 폭군'이라 불리며 깊은 분노와 좌절감을 안기는 사람조차 귀중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이므로 미워하거나 적어도 무시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했듯이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가 좋아하고 허락한 일만 신이 세운 계획이라고 믿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높은 인식에 도달하거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모든 일이 신이 세운 계획의 일부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신의 계획을 반드시 좋아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 아버지도 옹졸한 폭군이었다. 하지만 극적인 방식으로 내게 영향을 미쳤기에 나는 아버지를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여긴다. 내가 높은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치료사로서, 친구로서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의 인생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삶에서도 가장 큰 원한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
- 인생에서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때를 살펴보면 이혼, 파산, 설명할 수 없는 질병처럼 어떤 큰 고비를 맞이하고 난 후다. 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럴 뿐 아니라 집단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난과 분열 등 나라가 어려움을 겪으면 분쟁 해결을 위해 나라 전체가 기존의 사고 수준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인생의 몰락을 겪거나 옹졸한 폭군을 만나면 이는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진짜 기회다. 믿기 어렵겠지만 에고는 우리의 인생이 몰락하는 걸 두려워한다. 그보다 차라리 우리가 비참함을 꾸준히 느끼는 편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고, 우리가 이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몰락을 겪으면 우리가 신을 찾는다는 걸 에고는 알고 있다. 살면서 크게 힘들 때 사람들은 내면의 높은 자아를 찾고, 에고는 높은 자아가 우리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걸 두려워한다.
- 이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그동안 힘들었던 고비가 전부 우리의 인식 수준을 높인 추진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옹졸한 폭군을 만나면 분노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라. '지금 이 일은 내가 성장할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주려는 걸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가르침이며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에 적용된다.
- 이번 장에서 이야기한 여러 믿음은 전부 우리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라는 생각, 기분 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소비해야 한다는 생각,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 한다는 생각, 모두 거짓 자아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이런 거짓 자아의 메시지는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에고는 사람들이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면의 빛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 누구나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핵심은 타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을 전 세계에 적용할 수도 있다. 평화는 개인이 지닌 내면의 평화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계도 평화로울 것이다. 반대로 분노, 불화, 두려움, 불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으면 세계는 무질서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모여 시작된다. 옆에 있는 사람을 제치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일이다. 자신의 삶을 먼저 개선하고 이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눠라. 그리고 사람들이 옆에 있고 싶은 친절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일도 더 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영업소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아마 누구도 옆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직원은 보통 차를 많이 팔지 못한다. 이와 달리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직원은 대체로 영업 실적이 좋다. 만일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지루하게 지낸다면 지체 말고 떠나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지위에 따르는 돈, 타인의 의견, 에고의 여러 유혹에 갇혀 자신을 소모하지 마라. 늘 상상했던 인생을 떠올리며 여기에 집중하라.
- 변화할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신호가 나타나고 정말 떠나게 된다. 있지 말아야 할 곳에 계속 머물면 상태가 악화되어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 신호가 무엇이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걸 곧 알아차릴 것이다. 에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높은 자아의 지혜를 믿어야 한다. 높은 자아는 우리가 실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은 완벽한 곳이므로 실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사는 완벽하게 이뤄지며 우리도 그렇다.
- 이런 생각은 무엇을 이뤄도 끝이 없다. '이직하면 괜찮을 거야', '승진 후에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고들 하던데', '은퇴 후에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고 들었어'. 그러나 사람들은 은퇴하면 옛날의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평생 '좋은 시절'은 없다. 좋은 날을 언제나 뒤로 미루며 바로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가수 칼리 사이먼이 말했던 '지금이 좋았던 시절'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지금 이뤄진다. 늘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생각하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신경 쓰는 사람은 매사에 감사하기보다는 영원히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할 뿐 절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당신은 이미 완벽하다. 모두가 성공하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 삶을 이끄는 격언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도착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게 이 격언에 담긴 생각이다. 하지만 목표를 설정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 산스크리트어에 '사토리' satori라는 단어가 있다. 배울 사람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면 평생 쌓아온 걸 바꿀 수 있다. 준비만 하면 된다.
-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목표의 중요성을 마음속에 새기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사람과 여기서 논쟁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내 말은 우리도 사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토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그럴 마음이 있다면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접한다. 사토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문제(어려움)를 뒤집을 거야. 나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내면의 높은 의식에 따를 거야. 난 혼자가 아니야." 이렇게 깨닫는 순간 인생의 목표는 전처럼 중요하거나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 인생의 모든 일에 목표를 세우고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신을 정말 웃기고 싶다면 네 계획을 신에게 말하라'라는 옛말이 있다. 매사를 계획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고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높은 인식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목표를 이루려고 분투하는 데 집중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 또한 사람들은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린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말 때문이다. 동기부여 전문 강사에서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매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 그렇다면 시각화를 이렇게 연습하는 건 어떨까? 1년 동안 매일 하루에 1,000번씩 생각을 연습하면 생각 속의 이미지가 내가 되고 내가 그 이미지가 된다. 연습을 통해 내면에 그 이미지가 쌓이기 때문에 시각화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13킬로그램 정도 살을 빼고 싶다고, 심박수를 낮추고 싶다고, 담배를 끊고 싶다고 해보자.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하루에 1,000번씩 떠올린다. '나는 독을 멀리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낫고 있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거나 종이에 그려도 좋다. 하루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디서나 그 이미지를 그리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면화되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보여. 이게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이야. 나는 다른 식으로 하지는 않을 거야. 그냥 이렇게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있어. 건강한 모습의 나를 보고 있어.' 담배를 끊거나 살을 빼거나 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표현 자체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위해 싸울 때마다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싸우고 나면 항상 전보다 약해진다. 항상 그렇다. 뭔가를 두고 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실패하는 방법이다. 마약과의 '전쟁'이 효과가 없는 이유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 다만 생각이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생각을 바꿀 수는 있다. 반대하는 쪽이 아니라 찬성하는 쪽을 떠올리는 것이다. 자, 마약을 비롯해 사람들이 손대는 온갖 끔찍한 것에 반대하는 대신 좋은 일을 하도록 권하면 어떨까? 원하는 만큼, 가능한 한 크게 깨어 있을 수 있는 마음과 의식을 지니는 일 말이다.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이 일이 아닌 사람임을 의식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사람이다.
- 사람들은 대부분 딱 한 번 시도하면서 자신이 끈질긴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네, 최선을 다했어요." 과연 며칠 동안이나 그랬을까? "아, 오늘 아침에만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한 번의 시도로는 투지가 있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고 시각화의 효과가 있는지 증명할 수도 없다. 시각화를 시도하거나 연습할 때는 반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속 이미지를 실현하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 사실 시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미지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면 움직이고,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10년 동안 하루에 18시간씩 일해야 한다면 위대한 일에는 시간관념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파고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한 이미지에 따라 기꺼이 움직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냥 끈질긴 게 아니라 매 분, 매 순간 무슨 일이든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 의지가 있다면 마음속에 그린 이미지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나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경험했다.
-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거나 바라는 수준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필요한 일을 기꺼이 하지 않았다. 멀리까지 가려고만 할 뿐 노력하기를 포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이건 못하겠어요. 제가 이 일을 그만두길 바라세요? 저는 평생 여기 있었어요. 제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다시 하고 경력을 바꾸기를 바라세요?" "제가 12킬로미터씩 달리길 바라세요?" "제가 초콜릿을 그만 먹길 바라세요?" "저보고 이걸 매일 하라는 말씀이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얼마나 기꺼이 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방법은 수도 없이 많으며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 그저 단순하게 부유한 모습을 그리면 짠 하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부자가 되는 모습을 그릴 때는 두 가지가 함께해야 한다. 첫째, 부자가 된 자신을 그릴 때 세상의 부족함이 아닌 풍요로움을 즐기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풍요로움을 만난다. '좋아,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그렸어. 이제 느긋이 앉아 세상의 풍요가 내 인생에 걸어 들어오는 걸 기다려야지.' 그냥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어떤 이미지를 그렸든 항상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 새로운 이미지에 맞춰 행동을 시작하라. 행동도 풍요로움의 하나다. 다음과 같이 확언하라. '나는 내 삶에 필요한 자원을 가질 수 있어. 신의 완벽함에는 실수가 없어. 나도 완벽한 신의 일부야. 나는 다른 인류와 구별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전 인류의 일부야. 신의 뜻이 무엇이든 그건 내 안에도 있어. 나는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자원을 받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 우리의 풍요로움에 관한 이미지도 늘어난다. 긍정적이고 풍요롭고 부유한 모습을 그리고 그에 맞춰 행동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행동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 생각을 놓지 마라, 결국 현실이 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되돌아본다. 이는 에고가 부추기는 일이다. 에고는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현재를 살라고 말하는 높은 자아와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고의 부추김에 이끌려 과거에 집착하는 일은 그만두고 현재로 눈을 돌려 우리의 인생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늘리고 싶은가? 예를 들어 긍정적인 일을 늘리고 싶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가능한 한 많이 하라. 긍정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되고 실제로 인생에서 긍정적인 일이 늘어날 것이다.
-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자마자 "그런데 성함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재미있다. 1분 동안 한 사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기억력이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훈련하는 완벽한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면 여러 상황에서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런데 그전에 걱정과 불안을 비롯해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배우면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마음을 집중해서 우리의 의식을 방해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뇌를 단련하다 보면 기적을 만날 수 있다.
- 매일 어디서나 마음 들여다보기. 명상하는 방법을 누군가에게서 정확하게 배워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사실 그건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명상을 해왔지만 누구도 내게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없다. 마음을 단련하는 법을 스스로 익혔지만 나는 마음속 공간에서 그리고 명상에서 깨어나 이 세상에 돌아와서도 기적을 만들어냈다.
- 어두운 방에서 사람들이 눈을 감고 빛을 만들어내는 건 흥미로운 모습이다. 빛을 만드는 데 눈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으로 빛 혹은 색깔, 냄새,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의심스럽다면 꿈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한다는 걸 기억하자. 꿈은 순수한 생각의 상태다. 명상을 할 때도 우리의 마음은 그와 비슷한 장소로 간다.
-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최면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알파 상태 alpha stance가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알파 상 상태로 들어가는지 배울 필요는 없지만 내가 하는 방법을 보고 영감을 얻을 수는 있다. 나는 24초를 재는 초시계를 사용한다. 미국 프로농구리그에서 사용하는 초시계다. 시계에는 흐린 빛이 들어오고 숫자 24에서 시작해 23, 22로 줄어들어 1까지 내려온다. 24에서 1까지 내려오는 동안 마음속에 숫자가 아닌 어떤 생각이라도 떠오르면 24부터 다시 시작한다. 16이 되었을 때 '오, 내일 아침 치과 예약을 잊으만 안 돼'라는 생각이 들면 24로 다시 돌아간다.
- 이렇게 명상을 연습할 때는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카운트다운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시계나 타이머도 좋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길게 잡거나 너무 짧게 잡으면 안 된다. 그러니 나처럼 24부터 시작해보자. 생각을 비우며 1까지 내려가려면 며칠이 걸리겠지만 계속한다. 중간에 끼어드는 생각 없이 24에서 1까지 갈 수 있다면 알파 상태가 된 것이다. 팔을 올렸을 때 아주 가벼운 느낌이 든다면 알파 상태에 진입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면 갑자기 머리에서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몸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24초를 재는 초시계가 없이도 알파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그냥 호흡만으로 알파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알파 상태가 편안해지면 높은 자아와 의논할 주제를 꺼낼 수 있다. 인생이나 아이들로 인해 겪는 어려움, 인간관계, 가야 할 목적지, 망설이고 있는 결정 등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명상에 진입하면 우리는 물질세계를 떠나 형체와 차원이 없는 생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자신이 관찰자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에 반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 내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저도 구도자예요." 이런 말을 하는 건 내가 많은 사람이 손에 넣지 못하는 세상의 진리와 법칙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도 그런 걸 찾고 있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즐겁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구도자가 아닙니다. 저는 발전하고 있어요. 꿈을 통과하고 그 과정을 전부 즐기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 저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합니다."
- 깨우침은 세상을 초월하는 섭리와 조화를 이뤘을 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깨우침은 찾는 게 아니다. 이해할 필요도, 동의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것이 섭리라는 걸 알기만 하면 된다. 깨우침이란 사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 상황을 개선하려는 바람도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러므로 그런 바람과 함께 배움을 얻는다. 상황을 개선하는 일, 즉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풀고 사랑을 펼치는 일에 집중하면 그런 마음을 세상에 펼칠 수 있을 때 높은 의식의 일부가 된다. 생각을 바꾸면 비극은 없다.
-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모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이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 돈을 갚지 않는 사람, 한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그게 그들이 인생길에서 서 있는 곳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신의 선물이다. 그들은 내가 나 자신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그냥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거야. 그에게도 내가 뭔가를 베풀 수 있는지, 그가 정말 내게 다가올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지.'
- 부정적인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서도록 허용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그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 사람의 의견이 우리의 의견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인생길의 어디에 서 있는지 보고 그의 행동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비참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기로 선택한 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있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가 차선을 양보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그 사람의 행동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저 사람은 진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이런 불평을 쏟아내지 마라. 그냥 전부 흘러가게 두어라. 그 사람의 차가 지나가게 두고 차선을 양보해줄 다음 차를 찾으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손을 내밀어 양보해줄 것이다. 그러면 그 운전자에게 미소를 보이고 고맙다고 말하라. 부정적인 면에 집착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깨우친 삶이다.
- 스와미 묵타난다가 남긴 멋진 말이 있다. "에고는 우리가 깨우침을 얻을 때 가장 크게 실망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깨우침을 얻으면 내내 높은 자아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깨우침을 얻었다는 건 완전히 깨어 있고 인식하고 있으며 진짜 자신의 모습인 내면의 신성함과 이어졌다는 신호다. 깨우침을 얻으면 더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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