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웨인 다이어 / 이한이
원제 : Happiness Is the Way
출판 : 더퀘스트
출간 : 2020.06.19
이 책을 끝으로 웨인 다이어의 저작은 당분간 쉬려고 한다.
<인생의 태도>는 어떤 식으로 삶을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자아상을 찾아낼 것인가에 관해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친절한 애정으로 상대를 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해야 한다'가 아닌 '하고 싶어서 한다'가 이끄는 삶을 그려나가라는 저자의 주문에서 강한 울림을 느꼈다.
최근에는 평균과 보편의 덫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죽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변 정리를 해두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대부분은 '우울', '위험', '소름 끼침' 등을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화제를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은,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자연적인 현상을 애써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거의 모든 존재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죽음 또한 당연히 맞아야 할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다시 말해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공포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당장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또 하루의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다. 매일 사랑하는 이들을 좀 더 열렬히 사랑하고, 사소한 시빗거리는 '내 생애 마지막 기억을 이런 것으로 채울 수는 없어'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고, 가장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를 채우기 위해 최선의 선택들을 하는 것이 "정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현재 죽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러하다. 존재의 상실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기회가 닿으면 더 생각을 풀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 생각이 보편적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컸고, 지금같은 생각으로 정리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내가 의문인 점은 나의 생각이 '평범'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해서 교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스스로를 '죽음 찬양자'라고 여긴다거나, 타인 및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문제가 될까?
종 모양의 정규분포 그래프를 보자. 가운데 가장 두꺼운 분포집단을 기준으로 삼아 그것을 '평범'이라고 규정한다고 하면, 양극단은 '평범하지 않은'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있게 자신은 평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보편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어있다. 모든 면에서 평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안드로이드'라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레디메이드'해서 공장 기초 세팅으로 깔아놓은 '평균' 설정의 인간형 생물체가 아닌 다음에야 절대적인 평범은 존재할 수 없다. 당신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당신은 주량이 얼마나 되는가? 당신은 늦잠을 자는가, 자지 않는가?
수많은 기준들 속에 어떤 점은 평균 범위에, 또 어떤 점은 범위 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다면성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까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런 자신을 긍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모호한 꼬리표를 붙여 집단 안에 소속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그 집단이란 것이 모래알들이 모인 환상일지라도.
이렇게 생각해보자. 정말로 대다수가 위치한 지점이 '균형'적인 '평균'이라면, 현 사회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발생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회 인구의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인데 어째서 인간관계가 스트레스가 되는 걸까? 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는 걸까? 아마도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그들이 평범하지 않았거나. 둘째, '평범'이라고 규정한 가치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만약 이 분포 곡선이- 입시 성적이나 수입에 관한 그래프라면 중간에 위치하고 싶어 할까? 극소수에 속하는 오른쪽 끝을 원하지 않을까?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내 지점'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에 관한 평가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 홀로 있는 사람을 좋게 느낀다면 홀로 있는 것이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멋진 일이죠. 당신이 지금 그토록 멋진 사람과 함께 있을 기회를 얻은 겁니다. 하지만 홀로 있는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늘 빈자리를 채워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다닐 겁니다.
-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랐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자아는 내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갑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무척이나 어리석은 짓이죠. 나라는 사람은 전적으로 내가 믿기로 한 것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당신이 둔하다거나, 요리에 꽝이라거나, 수학에 젬병이라거나, 별로 매력적이지 않거나, 가진 게 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이 자신의 인생에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 지금의 결과는 그동안 스스로 해온 선택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비난의 수레바퀴에서 내려와 자기 책임(self-responsibility)이라는 기차에 올라타세요. 자존감이 있다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란 전적으로 자신을 믿기로 선택한 것들로 이뤄집니다. 이 모든 것이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 딱 한 가지만 바꾸면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말입니다.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감정은 생각에서 온다. 그러므로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면 좋지 않은 감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죄책감, 걱정, 후회, 자기부정,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등 모두 생각에 대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자신을 가두는 이런 감정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미쳐버릴 것 같은 환경에서도 차분하게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반응에 책임을 집니다. 계산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하지도 않고, 감정 없는 사람처럼 굴지도 않습니다. 그저 세상을 부정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방법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떤 일에도 건전한 반응을 하도록 연습하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끼어들었을 때도 이들은 순간 치미는 화를 내뿜지 않고 이렇게 말하죠. "저 사람이 오늘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게 두진 않을 거야. 이건 내 인생이니까. 오늘은 내 인생에 단 하루뿐인 날인걸. 오늘은 두 번 오지 않아."
- 그래서 우리는 '남 탓'을 나쁜 생각이라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생각들을 곱씹어보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살면서 장애물을 맞닥뜨려 화가 나고, 우울해지고, 효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생각을 재조정하고 행동을 바꿀 때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화를 다룰 줄 알고 그로 인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런 역량이 있지만 저절로 발휘되는 건 아닙니다. 화를 안에 꽁꽁 감추고 있나요? 좌절감을 계속 품고 있나요? 숨기거나 안고 있지 말고 밖으로 내보내세요. 그것이 더욱 건강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아니라면 그 편이 화를 제거하기 훨씬 수월해집니다. 베개 하나를 꺼내 들고 힘껏 벽을 때려보세요. 아니면 소리를 질러도 좋습니다.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분노를 동력으로 삼고, 건설적으로 이용합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상황은 어떤 것입니까? 정말로 뭔가가 불쾌할 때는 언제입니까?
-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알게 된 건, 평판은 신경 쓰지 않되 제 고유한 성격은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고유한 성격에 대해 저는 책임이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건 그들의 의견이고, 그들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기 때문이죠. 거듭 말하지만 그건 제 소관 밖의 일입니다. 제 손이 닿는 건 오직 저의 개성이에요. 이건 제 생각과 제 안에 존재하는 애정에서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평판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의 결과입니다. 마주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도록 스스로를 가르치고,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그와 같이 행동하세요. 그러면 우리 내면에 있는 것으로 반응할 기회가 생깁니다. 바로 사랑이죠. 가지지 못한 것을 나눠 줄 순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자기애는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자만심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만심과 자기애를 혼동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자만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자만심은 모습은 다를지언정 타인의 승인, 즉 외적 동기를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지 사람들이 알아주어야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게 됩니다.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는 일이죠. 자기애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 세상은 내가 준 것을 되돌려줍니다. 때문에 진정성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말한 대로 됩니다. 그게 인생에서 도달할 최선의 자리입니다. 다시 말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스스로 믿고 있는 것들의 합이라는 겁니다. 농담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기 위해,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현실을 왜곡해야 하거든요. 이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왜 그런 일이 필요한 걸까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죠.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한다면 현실을 왜곡하는 것임을 알아두세요. 이런 태도가 일정 기간 이어지면 습관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 습관은 언제든 고칠 수 있습니다. 진정성이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뭔가를 가장하며 살기보다는 자신이 뱉은 말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게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 마찬가지로, 제가 쓴 글도 저 자신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면서 매일 실천하는 일들을 글로 씁니다. 내게서 나오는 건 모두 내 마음속에 있던 것입니다. 내 아이들,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나 자신이 깨달음을 주는 본보기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그런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죠. 정작 본인은 탈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정직해야 한다고 벌을 준다면, 담배 연기를 상대의 얼굴에 뿜으면서 흡연이나 약물중독은 악이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 말을 들을까요?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자 하면 지금을 즐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열게 됩니다. 해야 하는 일들로 압박을 받으며 즐거움과 기쁨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아니라요. 말씀드렸다시피 돈, 권력, 승진, 보상 등의 성취는 진정한 삶의 목적을 제공해줄 수 없습니다. 대출금을 갚게 해 주고, 장식장 위에 올려놓거나 벽에 걸어둘 물건을 주긴 하지만 모두 외적 동기일 뿐입니다.
- 우리에게 삶의 목적의식을 제공하는 것은 내적 동기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세상을 얼마나 경험했는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런 일들이 중심이 되면 더 이상 인생의 사명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됩니다. 그게 우리를 찾아올 테니까요. 행복도, 성공도 그렇지만 목적 역시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소유하고 행동하세요.
- 뭔가를 얻어내려면 목표와 계획이 중요합니다. 목표를 성취하는 여정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그 밖의 다른 과정들도 중요합니다.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계획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 뭔가를 할 때 중요한 점은 원하는 것이 이미 이뤄진 듯 행동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이런 목표들을 세우고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을 거야!" "나중에 목표를 달성하면 얼마나 흥분될까?" 행복과 성공은 모두 내적 개념이며,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면 외적으로 분투하는 삶을 살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이미 이뤘다는 심리 상태이지, 분투하는 심리 상태가 아닙니다.
-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을 마무리하는 것,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마다 그 여정의 끝을 찾는 것, 좋은 시간들로 삶을 채우는 것, 그것이 지혜다." 또 이런 말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이것은 여행이다. 목적지가 아니다." 성공과 행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중요한 건 여정을 계속해나가는 발걸음마다 목표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분투하는 데 온 정신을 쏟으면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미래에 도달해야 할 목표에만 에너지를 쏟으면 '더 많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받는, 자아에 휘둘리는 사람이 됩니다. 목표에 도달했을 때 그것으로 뭘 할지 모르게 되는 거죠.
-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그걸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집착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해온 일은 그저 한때 당신이 했던 선택 들일뿐, 우리에게는 언제나 마음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제 친구가 열여덟 살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힘들게 공부해서 의과대학에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마음이 바뀌었다고 합시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마음이 바뀐 게 바보 같거나 실망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퇴보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계획을 바꾸는 것은 인생에서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더 빠른 시간 안에 알려주는 계기일 수 있습니다.
- 기억하세요. 실패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난 지금 이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라며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가기보다는 무엇이 적합한 것인지 찾아야 합니다. 어째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쓰려고 하는 건가요? 누구도 자기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틀을 다시 짜고, 이 책에서 제가 지금까지 말했던 기술들을 받아들인다면 그 인생은 충분히 오래, 그리고 훨씬 더 의미 있어질 겁니다.
- 실험 참가자들은 몇 주동안 지하 벙커에서 지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그 어떤 도구도 없이 어둠침침한 조명 속에서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식사를 했습니다. 원하는 때 언제든 잠을 잘 수 있었고, 잠을 잔 시간은 기록되었습니다. 하루 중 몇 시인지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과연 잠을 몇 시간이나 잤을까요? 하루 평균 4.4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잠을 자거나 졸릴 때는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침에 어째서 일찍 일어나야 하지? 일어나서 어떤 거지 같은 일을 해야 할까? 그냥 이대로 좀 더 잘 수 없을까?' '아, 10시네. 졸릴 시간이군.'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죠. 필요하다면 잠을 자지 말라고 제안하는 게 아닙니다. 시계나 달력, 기타 일정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삶을 살도록 시도해보라는 겁니다.
- 이렇게 외부에서 동기를 부여받는 사람도 수없이 많지만, 어떤 이들은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에 다소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일이 잘못 돌아갈 때는 그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까진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옴짝달싹 못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죠. 외적 동기가 아니라 내적 동기를 기반으로 생각하도록 사고방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무엇을 더 나아지게 하고 싶은지 찾고, 스스로 그 일을 해보세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독단적이고 고집이 센 편인가요? 그런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현재에 집중해서 '나는 어떠하다'라는 문장을 사용해보세요. '나는 더 유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라고 말입니다. 행동이 굼뜨다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나요? 자신에게 '그래도 난 늘 제시간에는 끝내잖아'라고 말하세요.
- 두 번째 시험지에는 우리가 각자 짧은 자서전을 쓰는 데 도입부가 될 만한 것들이 무려 60가지나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쓰지 말라니요. 시험지 맨 아래에는 위대한 덴마크 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명구가 쓰여 있었죠. '내게 꼬리표를 붙인다는 건 당신이 나를 부정한다는 말이다.' 시험지를 나눠 준 카빈스키 교수는 강의실을 나갔습니다. 그 시험은 이제까지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어렵고도 절대 잊지 못할 과제였죠. 우리에게 '이름표가 붙지 않은' 부분을 규정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지만 일단 그렇게 하면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힘이 됩니다. 그것을 영혼이든 정신이든,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나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실제로 인생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좋아, 이런 깨달음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을 내 인생에 들이는 데, 관계를 나아지게 하는 데, 내가 생각했던 성공을 이루는 데 정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생각이 나의 인생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러면 자신의 생각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느끼게 될 겁니다.
- 앞서도 말했지만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내게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모두 내가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경험하며, 이는 어떤 일을 문제로 만들어버리도록 처리합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모두 내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역시 마음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해결책은 외부의 누군가나 뭔가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가여운 처지로 내몰았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을 제게 보내주세요. 제가 그 사람을 대할 테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처지가 더 나아지겠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문제만큼이나 해결책 역시 자기 안에 있음을 압니다. 기억하세요. 힘은 늘 내 안에 있습니다.
- 내가 하루 종일 한 생각이 바로 나 자신이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영업사원이고 고객을 만나러 가고 있다고 해봅시다. 당신의 정신, 인간성, 성스러움, 영원성 및 당신의 모든 것(눈에 보이지 않지만 웨인이나 조, 샐리라고 불리는 포장지 속에 담겨 있는)이 부정적인 생각에 매달려 있나요?
- 생각을 현실화하려면 기꺼이 그 일을 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저는 노력해야 한다거나, 미친 듯이 애써야 한다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거나, 나가서 단련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철학의 핵심은 '기꺼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늘 기꺼이 행동하는 누군가에게 이 말은 진실이죠. 저는 고아원과 위탁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 시절 저와 남동생, 그곳에서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매일 즐거운 날을 보내도록 저는 '기꺼이' 행동했습니다. 나중에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썼을 때 이런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광고할 돈이 없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선생님을 길바닥에 내보낼 순 없습니다." "아니요. 선생님은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진 못할 거예요." 살면서 저는 늘 누군가로부터 '아니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늘 그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어요. 그 말들이 저를 자극해 반드시 목표를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게 했거든요.
-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을 저는 '자신과 연애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나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물론이죠. 그게 저인걸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죠?"라고 되물을 거예요. 이미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척이나 분주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여기 있는지에 집중합니다. 이웃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죠. 이들은 인생에서 일어난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남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내면의 조언을 따릅니다. 애정에 기인한 내면의 신호 말입니다.
- 사랑의 보편적인 힘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존재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멋진 단독주택에 살고 있든, 감옥에 있든, 부랑자)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성스럽고 완벽한 우주의 일부죠. 이런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실제로 인생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론 늘 좋은 쪽으로 가리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제가 아는 건, 그저 문제에서 사랑의 길을 발견하려고 애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 얼마 전 친구 하나가 그 나이대 남성들이 걸리는 중증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어떤 병인지 알려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환자분이 이 암에 쓰러질 건지, 아니면 이 암을 쓰러뜨릴 건지 생각할 시간은 딱 15초입니다. 딱 15초뿐이에요. '이럴 수가, 이럴 순 없어. 억울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흥분되고 화가 나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왜 나야?'라고 중얼거린다면 이 암의 피해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겠죠. 하지만 지금 환자분이 걸린 이 병에 대응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삶에서 가장 큰 도전일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떠오른다면 이 병을 이겨낼 기회를 갖게 될 겁니다."
친구는 이 말을 듣고 암을 이겨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해냈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어떤 엄청난 일이 닥쳐와도 우리에겐 극복할 힘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 "나는 하루 종일 자네들 세 명의 일을 대신할 수도 있어. 자네들이 포장할 틈은 아예 없을 거야."
이 자리에서 저는 앞서 일당일 포장 점원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갇힌 일당일 포장 점원으로 살아갈 겁니다. 그는 포장 일이나 그 비슷한 일을 하며 살 것이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신이 승진에서 제외되어 기분이 무척 나쁘다고 불평할 거예요. 상사가 자신을 정말 싫어하며, 다른 사람들은 다 한 승진을 자신만 못 했고, 모두들 자기를 차별한다고, 그건 공정하지 않으며 어떻게 자기를 그렇게 대할 수 있냐고요. 그는 늘 불만에 차 있습니다. 늘 뭐가 가장 올바른 일인지 입으로만 잘 아는 사람이죠. 그는 자신이 하고 있고, 말하고 있는 바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모든 일이 내 식대로 이뤄져야 해. 나는 아무 문제도 없어. 직장에서의 태도도, 내가 하는 일들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내가 승진하지 못하는 건 모함 때문이야. 저들이 그걸 원치 않아서라고." 슬프게도 일당일 인간은 거의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은 선택,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삶에 책임을 지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반대로 일당백 사람은 어쩌면 마트 지점을 너덧 개 소유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그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을 거예요. 그는 성장 지향형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온갖 일을 시도할 겁니다. 그래서 그에겐 실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죠.
- 지금 당신은 이런 메시지를 보낸 셈입니다. '네가 풍선껌을 사고 싶다면 떼를 쓰면 돼'라고요. 이게 당신이 지금 아이에게 가르친 겁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풍선껌을 보면 이 버튼이 눌리죠. 제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울고불고하죠. 그러면 전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저기 있는 사람들한테 구경거리가 되고 싶어?" 그런 행동을 할 기분을 사라지게 하거나, 계속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전 겁을 주지도 밀어붙이지도, 꾀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아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데도 계속 아이의 점심을 만들어주고, 집안일을 해주고, 운전사가 되어주고, 무분별하게 돈을 쥐여주는 건 "나를 이렇게 막 대해도 괜찮아. 그렇게 해도 돼."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또한 부모로서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부모들이 나가서 돈을 벌고, 잔디를 깎고, 눈을 치우는 등 수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머릿속에 담고 있죠.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가 값비싼 옷을 사주기를, 방과 후에 자기를 데리러 오기를 바라게 됩니다.
- 전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화를 내고, 분노하고, 상처 입고, 좌절하면 그때가 삶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건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해요. 그래서 당신이 날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할 거예요."
- 그러기보다는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다음의 말을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해보세요. "나는 나를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 사랑을 세상에 전달한다. 누군가 이걸 받아들인다면 매우 멋진 일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이 지구 상에 업보가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오직 내 고통과 괴로움, 어려움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비애에 차 있을 때 사랑으로 품어주면 그 사랑이 되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다."
- 어린 시절을 잠시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행복한 아이였나요? 아니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가요? 용서를 통해 부모님과 관계를 조정해야 하나요? 행복한 유년 시절이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나요? 과거가 어떠했든 지금의 삶이 더욱 즐거워질 수 있도록 내면의 아이를 돌봐주고 일기를 써보세요. 그런 다음에는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자기 입맛대로 아이를 만들어가는 실수를 범하고 있진 않나요? 아니면 아이들에게 뭐든 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있나요? (아이가 없다면 친지나 친구의 아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떠올려도 좋습니다.) 자신이 부모 혹은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어땠는지, 그리고 거기서 느낀 감정들을 써보세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죄송합니다. 상급자를 모셔와도 같은 말씀밖에 드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오리 연못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걸 알았죠.
"잠시만요. 그러면 위로 가세요. 몇 계단만 올라가면 독수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누구든지 상관없어요. 그저 할 수 없다고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면 되니까 누구든 불러주세요. 무슨 확답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런 사람을 불러만 줘요. '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요."
결국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제게 독수리를 찾아주었고, 전 제가 원했던 비행기에 탔습니다. 모든 것은 예상한 대로 잘 풀렸습니다. 세상이 오리로 가득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오리는 아닌지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억하세요. 성공은 내적 과정입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태도를 가질 때, 결과적으로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삶에서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리뷰자 주 : 진상과 한 끗 차이. 굳이 차이점을 찾아보자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포기하지 않고 요구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 학교에서 일하던 마지막 몇 년 동안, 저는 학생들을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훈련 커리큘럼을 구상했습니다. 자녀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부모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삶에 만족하길 바라요. 인생에서 목적의식을 갖길 바라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후회하지 않는 법, 걱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지 않는 법, 늘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태도를 없애는 법,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미래나 과거만 바라보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법, 피해의식을 갖지 않는 법, 자기감정을 다루는 법은 대체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어째서 이런 과목들은 아이들 학교 수업에 없는 걸까요?
- 지금까지 말해온 대로,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내적 동기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인생의 사명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들은 내면의 신호를 참고합니다. 아이들은 대개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감에 귀 기울이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그것을 무시하라는 교육을 받죠. 어느 학교든 가서 교육철학에 관해 물어보세요. 그러면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학교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 모두가 완전한 자기 계발 및 자기실현에 도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모두에게 개인적인 발전 및 특정한 자아실현 목표를 부여하도록 개발된 커리큘럼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 말은 난센스입니다. 스스로 변화를 겪고 깨어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교사에게 "잠시만요. 왜죠? 어째서 이런 규칙을 따라야 하는 거죠? 우리가 좀 바꿀 수는 없나요?"라고 말하면 교사는 입을 다뭅니다. 아마도 어릴 적에 이렇게 말하면서 교사나 학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죠.
- 그동안 해온 일을 하면서 그 일을 부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재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우리가 내면의 신호를 듣고 그 일을 하게끔 지원해줄 겁니다. 내면에서부터 즐겁게 산다면 가진 것이 적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이 모으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그저 신화에 불과합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늘 그래 왔기 때문에 하던 일을 고수한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돌아올 것은 오직 자신의 불행을 비호하는 일밖에 없죠. 자신에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그 한계 때문에 얻을 게 한정적이라고 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믿으면, 다른 그림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마치 그 일을 하러 간 것 같은 그림이 내면에서 계속 공급되겠죠. 그 그림을 안내자로 삼고 계속 붙들고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그게 자연의 섭리입니다.
-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한 건 나 자신이고, 따라서 내면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우선하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능력입니다. 즉, 매일매일을 살고 기쁘게 그 삶을 겪어내는 방법은 최대한 이타적으로(혹은 최소의 이기심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 인생의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곁에 두세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 들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하려고 노력한다거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 이 개념을 머릿속에 넣어두세요.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살아가는 매일매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절대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와 문제를 일으키거나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는 방법조차 모를 거예요. 당신이 이런 밝은 빛이 되고 삶을 즐기게 되면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될 겁니다. 스스로가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본보기가 됨으로써 다른 사람을 돕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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