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바딤 젤란드 / 정승혜
원제 : TAFTI La Sacerdotisa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18.10.12
읽기 전부터 책 속 화자의 어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각오했던 것보다는 다정하다고 느끼면서 읽을 수 있었다.
타프티가 알려주는 현실 선택의 기본적인 원리들은 호혜성, 알아차림, 의지를 가진 선택과 심상화처럼 이미 알려진 원리들과 유사하다.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현실의 원리를 거울을 이용해 이원성과 연결성으로 설명한 부분과 뇌가 기억을 위한 장치는 아니라는 부분 등이었다.
또한 '땋은 머리'가 '등 뒤 날개뼈로부터 살짝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는 설명에서는 곧바로 '돈 후앙'이 떠올랐다. 저작들이 발표된 시기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중첩이 될 때는 조금 더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직전, <하루 한 장 마음챙김>에서 쓰려고 생각했다가 잊어버린 내용이 떠올랐다. 탄소의 순환에 관한 생각이었다. 처음 지구가 생성되며 만들어진 탄소는 운석이나 우주선의 입출이나 우주풍, 원소 붕괴 등으로 인해 약간의 변동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그대로 지구 영역 안에 존재하고 있다. 대기권 안에 갇혀 순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탄소 원자 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한 때는 이산화탄소였다가, 공룡이었다가, 다이아몬드였다가, 식물의 이파리였다가, 다시 내 세포의 구성 성분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몇 분 뒤 내 날숨을 통해 세계 어느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수련법들에서 호흡이 중요한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탄소뿐만이 아니다. 다른 모든 원소 또한 그러하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중성미자까지 가지 않아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말 그대로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관점을 조금 바꿔서, 원소의 결합과 분해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면 환경 문제도 보다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 같다는 다소 먼 미래의 꿈을 꿔보며, 일단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스트레스에 가득 차 스스로의 깃털을 뽑는 앵무새 같은 행위들은 조금씩 줄어들지도 모른다.
거기서 조금 더 확장된 생각은 보살 서원으로 튀었다. 전체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달성한 자'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실현이 되므로 유의미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다다른 자'가 자신의 완성을 잠시 미루고 아직 다다르지 못한 자신의 다른 면들을 연민과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돕는 것은, 심리학에 말하는 내면 아이 치유 작업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내가 당시의 나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주어 성장시키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타프티가 계속해서 '나의 아이들'이라고 부른 것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등등의 잡생각으로 뻗어나가며 읽어보았다.
즐거웠다.
- 예를 들어 너희는, 너희 자신이 어떤 의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너희에게 이식된 의견이다. 또 너희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줄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거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느냐? 그럴 리 없다. 너희는 그저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니까.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존재', 이것이야말로 너희에게 딱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 너희의 삶,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희의 본질, 즉 영혼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체에서 다른 실체로 변화한다. 한때 너희는 물고기, 공룡, 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파충류였다. 그러나 지금의 너희가 이만큼이나 진화했다고 자만하지 말기를. 그렇다 하더라도 나만큼 완벽한 존재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기어가야 하니까. 너희는 먼 옛날 너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실체는 영혼의 개별적인 삶이니까. 혹은 개별적인 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영혼을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가 있어야 한다. 육체 안의 영혼은 존재하면서 여러 형태를 가지게 되지. 즉, 육체는 일종의 우주복인 셈이다.
- 다시 한 번 방법을 설명해주겠다. 잠에서 깨어나 주의를 땋은 머리에 집중시키고 그 느낌을 땋은 머리에 유지하면서, 바라는 바가 실현되는 모습을 스크린에 비춰보는 것이다. 이렇게 너희는 미래 프레임을 비출 수 있으며, 그 프레임은 곧 실현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너희는 이 모든 것들을 단 한 번의 동작으로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 땋은 머리는 마치 영사기와 같이 작동한다. 너희는 원하는 만큼 꿈과 소망을 내부 스크린으로 쏘아 보낼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제자리걸음처럼 미미하다.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너희가 의도의 외부 중심을 사용해서 생각과 말과 형상을 상영할 때이다. 그러니 현실에 뭔가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너희만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땋은 머리의 끝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존재했던 신체의 일부처럼 땋은 머리 전체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원하는 만큼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켜도 된다. 그럴 때 땋은 머리를 감지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반드시 눈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눈은 감고 있어도 좋고, 아예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여도 괜찮다.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땋은 머리를 사용해서 생각과 말과 형상으로 미래 프레임을 그리는 것이다.
- 그림자는 만질 수 있지만 형상은 만질 수 없지. 그림자는 거울 면 앞에 있지만, 형상은 거울 안에 있다. 거울면은 물질세계고 그 건너편에는 꿈의 세계, 혹은 영화 필름 보관소가 있다. 너희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물질세계는 필름을 따라 움직이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필름이 일차적이고 영화는 이차적인 것이기에 실제는 거울 너머 어딘가에 있는 형상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영화 필름 보관소에 무수히 많은 미래의 가능태가 존재하지. 그러면 한번 직접 판단해 보거라. 만약 미래가 현실이라는 거울의 반대편에 있다면, 바로 이 거울 면에만 존재하는 일반적인 힘이 그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 절대로 불가능하겠지! 열심히 힘을 가해 거울을 깨뜨려버리고 결국엔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을까? 그럼, 그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너희가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거울의 반대편에서 그 세계의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으로는 어떻게 갈까? 너희에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사실 너희는 이미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 너희가 잠에서 깨어나 시나리오에서 분리되었을 때 사실은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현실의 거울 표면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사물의 표면이나 벽과는 완전히 달라서, 그것을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리고 형상과 그림자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를 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 불쾌함을 드러내면 자동으로 최악의 현실이 선택된다. 유용함이 있는 현실을 고른다면 그 유용함은 바로 너희의 것이 될 것이다. 지난번에 배웠던 모순적인 원칙을 다시 되새겨보기로 하자꾸나, 시나리오를 선택하지 말고 목표 프레임을 선택해야 한다. 이 원칙은 여태껏 이미 일어난 실제와 싸워 이길 수 있으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 또한 다가오는 현실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모순적이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지.
- 목표가 어떻게 달성되는지 너희는 알 수도 없을 것이고 알 필요도 없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왜냐하면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나서 너희가 공포와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면 목표 현실을 선택하는 능력에 크나큰 심리적 장벽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운 너희의 목표를 시나리오가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 너희 자신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고 너희 자신이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냐? 너희가 할 일은 달성하고 싶은 '결과'를 아는 것이며, 땋은 머리를 사용하여 생각과 언어와 형상으로 그에 맞는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결과까지 도달하게 될 것인지 시나리오가 알아서 너희를 안내해줄 것이다.
- 1. 자신의 주의를 감시하기 위해서
2 유용함을 감시하고 찾아내기 위해서
3. 다가오는 프레임을 감시하고 비추기 위해서
그리고 시나리오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기 위해 순응하거라, 시나리오는 강처럼 항상 최적의 길을 따라 흐른다. 너희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목적지, 즉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계산하는 건 너희가 할 일이 아니다. 뉘앙스, 사람, 환경, 사건과 같은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이 모든 변수 중 단 하나를 통계한다고 해서 그 결과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그런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내지. 그러니 너희가 두 번째로 할 일은 시나리오를 따르는 것뿐이다.
- 순응한다는 것은 유용함과 허용하기의 법칙에 대해 너희에게 내가 알려줬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순응한다는 것은 힘의 지배를 느끼고 그 힘에 복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의식을 가지고 관찰하며, 거스르지 않고 이해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자주 있다. 시나리오가 너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느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이는 현존의 상태로 들어가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디로 따라가야 할지 현실이 분명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과 감각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존의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 단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 여기에서 너희는 주의 감시하기, 프레임 비추기와 유용함 끌어내기의 알고리즘에서 활성화되었던 여러 가지 활성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기술들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활성체를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 그 방법을 사용해야만 제때에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그런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제때에 깨어나는 능력,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 '줘'라는 말을 '가져'로 바꾼다. 이 내용을 생각해보면, 모든 행동은 현실의 거울이 가진 본질과 일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뭔가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하고 요구하기 전에 현존의 상태로 들어가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거라. 분명한 것은, 첫 번째 단계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너희의 경우엔 어떤 방법이겠느냐? 어리석은 달팽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일반적인 거울 앞에 서게 되어서야 자신의 행동을 모습과 일치시킨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아이들아, 너희는 이제 '거울이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그 자리에 거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고려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영리해졌다. 지금은 불분명하다 해도 앞으로는 이해하게 되겠지.
-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호의적인 대우를 받고 싶다고 하자. 거울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거라. 너희가 거울 속에서는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움직여보거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사랑을 쟁취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뿜어내고 사랑을 줘야 한다. 호의적인 대우를 구걸하지 말고, 매력을 보여주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거라. 이 법칙을 너희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과 너희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매력 있느냐? 아무 욕심 없이 베푸는 사람과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매력 있느냐? 또, 너희에게 진심으로 관심 가지는 사람과 너희에게서 관심을 기대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매력 있느냐?
- 그저 너희의 생각과 행동에 플러스(+) 표시를 붙이기만 하거라. 너희의 모든 '줘'에는 마이너스(-) 표시가 달려 있으며, 실제로는 그 말의 뜻과 반대로 작동한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도 마찬가지로 너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 그때 너희가 어땠는지 알려주겠다. 거울을 처음 봤을 때 너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울이 사물을 보여주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이 어마어마한 환상이라고 생각했지. 만약 거울을 습관처럼 보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거울이 만들어내는 환상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의 거울이 만드는 환상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공간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을 나누는 경계도 보이지 않는다. 즉, 너희가 거울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게다가 그 거울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너희의 모습을 비추고, 그조차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어떤 생각도 바로 비치지 않고 원인에 상응하는 결과가 항상 곧바로 뒤따라오지도 않지. 그게 얼마나 교활한 환상이냐. 그런 교활함은, 현실이 제가 거울에 비친 게 아닌 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 물론 그런 교활함에도 불구하고 환상을 억누를 수 있다. 너희는 이제 거대한 거울의 작동 원리를 알고 있다. 또, 그 안에서 형상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너희가 정한 형상이 그림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그림자가 형상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흉내 내거나, 사실은 아니지만 맞는 것처럼 흉내 내어 그림자를 형상으로 바꿀 수 있다.
- 예를 들어 너희가 지금 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보자. 마치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게를 둘러보며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하거라. 혹은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면 값비싼 물건이나 차, 요트, 휴양지에 관심을 가져보거라. 부(wealth)를 너희의 인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스타가 되고 싶다면, 아직은 상상뿐이라 하더라도 이미 스타가 되어 스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라. 이런 행동이 마치 장난처럼 느껴진다거나, 심지어는 너희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당혹스러워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진심으로 행동한다면 현실도 진심을 가지고 이 모든 행위를 받아들일 것이다. 현실은 거울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겠지! 너희가 할 일은, 너희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고, 되고 싶은 사람이 이미 되어 있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너희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흉내 내며 살아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모습을 장난처럼 여기면 안 된다.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겠지?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현실 장면은 계속해서 너희의 창작물과 일치하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현실은 착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착각을 미끼로 하여 현실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을 못 견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가 만들어낸 환상을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실제, 즉 너희의 삶이 흘러가는 필름에서도 똑같은 일이 생긴다. 매번 필름이 바뀔 때마다 의식은 또 다른 버전의 마네킹으로 들어가며, 마네킹은 그 프레임 속에서 살아나 너희 자신이 된다. 꿈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봤을 때,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이 말은, 너희와 똑같은 마네킹이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필름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심지어는 굉장히 특이하기까지 한 마네킹이 수없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필름이 가까이에 있다면 그 영화 속의 마네킹은 너희와 닮아 있으며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필름의 마네킹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언젠가 너희가 젊었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또는 한때 날씬했다가 나중에 살이 쪄서 달라지는 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네킹은 지금 당장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도 변할 수 있다. 너희도 깜짝 놀랄 만큼, 외모까지 금세 변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자신감, 매력, 친화력, 대담함, 지성, 전문성 같은 자질과 역량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주기에 앞서 너희에게 말해줄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거부하거나 본래의 모습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발전과 관련된 것이지. 특히 너희가 자기 자신을 좋아하며 변화하기 싫어하는 드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발전하기를 멈춰선 안된다. 발전을 멈추는 순간 후퇴만 남을 뿐이니 말이다. 너희 자신의 개성, 원칙, 신조, 신념 등을, 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변화시켜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라는 것은 너희 자신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자신을 바꾸지 않고, 창조하거라. 내면에 있는 창조자의 불꽃을 태우거라.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말고, 다른 달팽이들이 너희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도록 너희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거라. 너희만의 독특함을 받아들인다면 기준을 만들 수 있다. 독특함은 너희가 가진 전부이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 독특함이라는 것은 그 특성이 다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은 가치가 있을까? 그야 물론이지. 너희는 그런 독특함을 십분 활용할 수도 있고, 그러고 싶지 않다면 먼지가 뿌옇게 쌓인 장롱 속으로 던져버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너희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완전하지도 않다. 또한 너희가 영화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 너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가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믿기지는 않겠지만 바로 그 점이 너희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거라.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따라 해야 하는 것은 모방하는 대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 대상의 상태, 건강에 대한 자각, 기분, 분위기여야 한다. 감탄스러운 육체와 성격을 가지고 있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마음에 드는 상태로 들어가 보거라. 느낌이 어떠냐? 바로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상태다. 이 상태에서, 지금 너희가 가지고 싶어 안달 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라. 생각으로 가상현실을 만들거라. 그리고 땋은 머리를 이용해서 때때로 그것을 비추거라. 더 자주 그 현실에 대해 상상하면서 그 현실을 배경 모드로 재생시키거라. 꾸준히 해야 한다. 신체적 조건이나 그 외의 것들이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상태에서 살고, 그 안에서 살아나 습관으로 만들거라.
- 이것이 흉내 내기일까? 그야 물론이지. 너희가 아주 진지하게, 꾸준히 연습한다면 그 기술은 현실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낼 것이다. 현실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내지 않은 환상을 아주 싫어한다. 따라서 너희가 만든 환상은 실현되거나 산산조각 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약한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환상이 산산조각 날 확률은 너희가 앞뒤 가리지 못하고 미련하게 행동하거나, 너무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아주 적다. 어린애들조차 연기는 연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하물며 너희가 그보다 못하지야 않겠지.
- 연기를 하는 데 있어 현실의 경계는 너희가 쉽게 정할 수 있다. 호감 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형상 선택하기 기술을 사용해서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발레 무대나 하키 경기장처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서 어떤 전문적인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희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필름의 일부분까지 도달해본 적이 없지 않느냐.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희의 연기가 효과가 더 적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전부 얻게 될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세 번째 행동이 필요하다.
- 세 번째, 자기 자신 움직이기. 한 사람의 현실주의자가 되어, 소파에 누워서 펼치는 공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중적인 세계에 살고 있어서,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현재 프레임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너희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 땋은 머리와 현실의 거울을 사용할 뿐 아니라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구체적인 훈련과 학습을 통해서, 식습관과 삶의 형태까지 바꿔가면서 자기 자신을 개선하거라. 그 노력은 절대로 너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 같은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너희는 푸른 호수에 있는 것 같은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는 데 반해 누군가의 날씨는 얼음 사막같이 혹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현실에서 날씨는 너희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조금 전에 말했던 바로 그 상태뿐 아니라 영혼이 있는 위치와 주변 환경에 대해 너희가 받아들이는 태도도 그 상태를 결정할 수 있다.
- 현실의 상태, 특히 너희의 상태는 '라다'라는 일반적인 용어로 정의할 수 있다. 레이디 마멀레이드에서의 라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수많은 뜻을 가지고 있지. 가장 먼저 라다는 조화를 뜻한다. '모든 게 순조롭고(라드노) 매끄럽게 풀릴 거야', '그건 만족감과 기쁨(두슬라다)을 가져다 줘'라는 말도 있지. '화합하다(라디트)'라는 동사는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다'라는 것을 뜻하며, '조화(라드)'라는 단어는 세상에 평화와 질서와 평안이, 즉 '모든 것이 안녕하다'는 말이다. 또한 라다는 연인을 뜻하기도 하지. 만약 삶을 사랑한다면 삶은 연인(라다)이 될 것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기쁨(우슬라다)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라다를 만들거라. 그리고 사랑에 빠지거라. 법칙을 기억하느냐? 유용함 끌어내기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너희가 살면서 손해를 가져다주는 사건을 겪을 확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라다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라다를 만드는 것, 즉 그에 일치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더 좋다.
- 라다는 만족감, 안정감, 사랑, 호의, 그리고 축제같이 밝은 분위기이다.
누구나 라다를 주변으로 방출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에게 이끌린다.
현실은 라다를 방출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다.
자신의 상태를 통제하고, 그 상태가 제멋대로 떠다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 자신의 상태를 제멋대로 떠다니게 내버려 두는 것은 꼭두각시처럼 누군가의 손아귀에 놀아나거나 그저 우연히 또는 다른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떠벌리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만의 라다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집단에 가든 빛을 가져다주거라. 자신만의 장면에서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그것도 축제의 오아시스를 만들어야 한다. 내 오아시스는 늘 나와 함께 있다. 내가 어딜 가든, 내가 있는 곳에 항상 오아시스도 있지. '라다'라는 단어로 하루를 시작하거라.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항상 라다의 상태로 들어가 있거라. 라다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불쾌함이나 공포나 분노감에 휩싸여 꼼짝도 못 하겠다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 말고 그저 한 번 지켜보거라. 라다가 아닌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 일어나는 너희는 현실과 너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한다. 돋보기를 통해 자신의 공포를 주의 깊게 한번 들여다보면 역설적으로 그 공포의 크기는 줄어든다. 그리고 현실을 관찰하면 그 현실은 너희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지. 현실은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하니 말이다. 그것은 옆으로 슬쩍 비켜서서, 너희를 통제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할 것이다. 다만 현실이 초조해하지 않도록,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고 곁눈질로 흘끗흘끗 지켜보거라.
- 나는 너희에게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한다. 또 너희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며, 너희의 인생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겠다. 왜냐하면 너희조차 자신의 삶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느냐. 자! 너희의 그 조그마한 의자에 좀 더 편하게 앉아 잘 듣거라. 현실은 너희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부터 시작해보자. 현실은 마치 양파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희는 그중에서 너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와 매일 잠들어 보았던 꿈의 세계만 알고 있을 것이다. 꿈의 세계는 너희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과거에 일어났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 또는 일어날 뻔했던 모든 일들이 저장된 영화 필름의 보관소 형태로 말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 보관소의 영화 필름 중 하나를 재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의 꿈은 환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이지. 필름은 물질이고, 너희가 보는 영화는 비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그저 단 한 번, 바로 지금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교체되는 영화 속의 프레임처럼, 찰나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실제이다.
- 첫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너희는 잠들어 있다. 그렇기에 너희는 어디에 있든 무력하지. 꿈이든 생시든 모두 너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꿈과 생시 모두에서 깨어나는 법을 알려주겠다.
두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현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프레임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너희는 그저 땅만 볼 줄 알기에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앞을 보는 능력, 그 능력을 너희는 '꿈에서 너희가 본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렸다.
세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프레임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너희는 그러지 못하지. 주의가 지금 이 순간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뭔가를 안다고 하여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너희는 현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 너희의 주의는 어디에, 어떤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었으며, 또 지금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 두 스크린 사이의 중간에 있는 점을 찾아보거라. 주의가 이 점에 있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자신의 생각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속의 너희를 볼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너희가 두 스크린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너희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누구도 너희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을 뿐이다. 혹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너희 스스로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을 뿐이다. 어른들은 그저 "여기를 봐, 내 말 들어야지, 내가 말하는 대로 해"라고 말했겠지. 너희는 그렇게 자신의 주의를 외부 스크린에 고정시키도록 길든 것이다.
- 그것이 바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으며 불행한 존재라는 비참한 생각에 빠져 외로움과 패배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였다. 너희는 그렇게 유일한 도피처인 내부 스크린에도 자신을 길들인 것이지. 주의는 점점 의식의 중앙에 머무를 줄을 모르고 스크린에 얽매여버렸고, 결국 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너희에겐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희는 자유로워지고, 꿈에서 본 것은 - 잠이 들어 꾼 꿈이든, 생시의 꿈이든 상관없다 - 의식적인 것이 된다. 너희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게 되며, 가장 중요한, '상황을 통제할 줄' 알게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지금은 그저 한번 거닐어보고 관찰해보거라. 예를 들어 의식을 활성화시켜 가게에 들러보거라. 점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원에게 뭔가 물어보기도 하고 그의 반응을 관찰해보거라. 그저 잠들지만 않으면 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되뇌며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고정해두어라. 너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너희를 바라보며, 왜인지 모르게 전에는 볼 수 없던 호의적인 태도로 너희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신기하지 않으냐? 그들은 너희와 다르게 계속해서 잠들어 있으며, 주의는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다.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시나리오 속의 일상을 살고 있는 것과도 같지. 그들의 생각은 흐릿하고 행동에는 의식이 없으며, 한마디로 영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너희는 그들과 다르게 꿈속에서 의식을 깨워냈으며, 스크린 속에 있다가 영화관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너희는 언제든지 스크린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며, 원한다면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여러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시나리오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상태에 있는 너희가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너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겠지. 걱정 말거라. 너희에게 호기심과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너희도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음을 내비치지 말거라.
- 그런데 그런 주변 사람들, 특히 일면 부지한 사람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너희에게 그런 호의를 보이는지 알고 있느냐? 그 사람들에게 있어 너희는 마치 어둠의 세계를 밝히는 반딧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상태에 있을 때 너희의 에너지는 특별하게 빛난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현실의 꿈속을 거닐기만 해도 너희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를 느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관심을 받게 되겠지. 사람들은 너희에게 반갑게 말을 걸어오고, 그들과 교류하며 보내는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영리해지거라. 현실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거라, 두뇌로 세상을 움직일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 알겠다. 겁먹지 말거라. 나의 연약한 아이들아,
- 나의 아이들아, 마지막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선택한다는 것은 프레임이 어떤 필름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너희가 이제껏 주의를 통제하는 기능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능력 역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실제와 싸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것 말고 뭘 하고 있느냐? 너희는 너희에게 이미 주어진 지금 이 프레임의 현실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제 알겠느냐?
-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진짜 실제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단 한 번, 바로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는 어쩌다 보니 이미 일어나버린 것에 불과하다.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일어난 것들뿐이니까. 현재는 과거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가 이미 저만치 뒤에 있긴 하지만, 현재 역시 찰나에 존재할 뿐이며 그에 대해서도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현재를 살면서도 항상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 너희의 주의는 현재 프레임에 얽매여 있지.
- 또, 주의에 두 개의 스크린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도에도 두 개의 중심이 있다. 바로 내부 중심과 외부 중심이다. 내부 중심은 너희의 모든 일상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두개골, 그중에서도 이마 부위에 있다. 그것은 단기적인 의도와 관련되어 있지. 너희가 뭔가에 집중할 때 미간을 찌푸리지 않느냐. 그리고 열중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근육이 긴장되지. 근육은 너희가 현재 프레임 속에서 일차원적인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외부 중심은 너희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부위이지만, 미래 프레임을 통제할 때 바로 이 부위가 사용된다. 너희도 외부 중심이 있는 곳을 지금 바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모두 의도를 통제하기 위한 땋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긴 머리를 땋은 것과 비슷한 에너지 다발이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는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각 같은 기관이다. 다만 머리처럼 아래로 축 늘어져 있지 않고 등뼈 쪽으로 내려가며 살짝 위쪽으로 비스듬히 솟아 있는 우스운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외부 중심은 그 땋은 머리의 끝에 있다. 두 날개뼈 사이 지점인데 등에 곧바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직감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숫자로 알려줘 봤자 아무 의미 없다.
(리뷰자 주 : 돈 후앙.)
- 외부 중심의 통제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주의를 땋은 머리의 끝에 옮겨놓고, 너희의 삶으로 끌어다 놓고 싶은 사건을 상상해보거라. 이 방법을 통해 미래 프레임을 비추면 그 프레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착한 아이들아,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너희는 의문을 가지겠지. 맞다, 이렇게 쉬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제껏 사용할 줄을 몰랐던 것이냐?
-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는 너희가 현재 프레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그저 눈이 보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해졌으며, 너희의 눈은 바로 앞에 있는 것만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너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활용해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런데 너희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느냐? 바로 외부 스크린을 보고 있단 말이다. 반면에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너희는 걱정과 고민을 보여주는 내부 스크린에 연결된다. 그런데 그 걱정과 고민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아느냐? 그 또한 너희가 보고 듣는 것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주의도 통제할 수 없으며 의도 역시 마찬가지로 너희가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수업에서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바로 기술부터 들어가도록 하지. 우선 직접 시도해보고, 이해는 그다음에 하거라. 너희에게는 그러는 편이 낫다. 그러면 잘 듣거라.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나 의식의 점으로 들어가거라. 여느 때처럼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자기 자신에게 되뇌거라.
두 번째,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켜라. 그리고 땋은 머리가 있는 곳을 느껴 보거라. 땋은 머리에 주의를 집중하면, 땋은 머리가 활성화되며 등에서 조금 위로 비스듬히 올라올 것이다.
세 번째, 땋은 머리에서 주의를 놓치지 않은 채로 미래 프레임을 상상해라. 생각으로든 말로든, 또는 스크린에 그리든, 원하는 방법으로 현실을 선택하거라.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키면 눈이 다른 모드로 전환되는 듯한 느낌이 올 것이다. 땋은 머리가 활성화될 때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느껴보거라. 눈이 살짝만 떠지면서, 마치 빛을 내는 것 같지 않으냐. 너희에게는 새롭고 낯선 모드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 꿈을 꾸는 동안에는 수많은 마네킹들 중 한 명의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꿈속에서 거울을 한번 보려고 해 보거라.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너희의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 영화 필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너희의 의식은 또 다른 마네킹으로 들어가고 그 마네킹은 현재 프레임에서 살아나 너희 자신이 된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지. 너희가 꿈에서 살기도 하고 생시에서 살기도 한다면, 너희는 과연 꿈속의 마네킹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
- 나의 착한 아이들아, 너희가 알아낸 그 사소한 사실은 너희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너희의 틀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너희는 꿈속을 부유할 것이며 운명 속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환상을 떨쳐내고 눈을 뜨는 순간, 영화 속에서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 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카이브에서 영화를 고르듯, 자신을 위한 영화를 직접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다.
- 새로운 습관과 상상도 예전의 습관과 생각이 형성되었던 방법과 똑같이 만들어진다. 바로 끝없는 반복이지. 예전에는 그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현실을 바라보며 현실을 따라잡는 데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프레임의 움직임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어떤 프레임을 통제할 것인지 맞춰볼 수 있겠느냐? 지금 이 순간을 담은 프레임이 아니라, 너희에게 점차 다가오고 있는 프레임이다. 너희도 이미 알다시피, 현재 프레임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다가오는 프레임뿐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몇 장 뒤에 있는 프레임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주의를 감시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엔 다가오는 프레임을 감시하거라. 여기에는 세 가지 활성체가 있다.
기대 - 뭔가 일어날 것이며, 뭔가를 기다리거나 기대하고 있다.
의도 - 어디론가 향하거나 무엇인가를 하려고 의도하고 있다.
문제 - 해결해야 하는 어떤 일이 발생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그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지 말고 바라지 말거라. 직접 현실을 선택하거라. 너희가 뭔가를 의도할 때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을 하려고 덤벼들지 말고, 먼저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라지 말고, 부산 떨지 말고, 그저 현실을 선택하거라. 그러면 이제 프레임 비추기 알고리즘을 알려주겠다.
1. 세 가지 활성체 중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판단한다.
2.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되뇌며 잠에서 깨어난다.
3.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키고, 그 느낌을 유지하며 현실을 선택한다.
4. 땋은 머리의 느낌을 버린다.
5. 중요한 사건이라면 프레임 비추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다가오는 프레임에 대해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라. 그렇게 하더라도 늘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엔 계속 잊어버리겠지. 오래된 습관은 그렇게 간단하게 버려지지 않으니 말이다. 오래된 습관은 뿌리째 뽑아내고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영리해지거라, 그리고 해 보거라.
- 여기엔 또 다른 뉘앙스가 있다. 나의 부지런한 아이들아, 너희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노력해야 한다. 프레임을 성공적으로 비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아니라 집중력이 필요하다. 단 몇 분간만이라도 집중할 수 있느냐? 1분이라도?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딱 그 정도뿐이다. 비추기 알고리즘을 조용히, 편안하게 해 보거라. 긴장하는 태도는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 절대로 금물이다!
- 왜인지 궁금하지 않으냐? 왜냐하면 노력을 하는 순간 너희는 의도의 내부 중심을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배운 것처럼, 현실은 외부 중심으로써 통제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보통 너희가 안간힘을 써서 하는 것이 뭔지 아느냐? 이미 일어나버린 실제와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미래 프레임이 다가왔을 때 뭘 하려고 하겠느냐? 완전히 똑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너희의 습관이 그렇다. 모든 것을 자신의 영향력 안에 두려고 하고, 자기 식대로 하려고 애쓰지.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미 촬영된 영화 필름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 아카이브에서 필름을 고르듯 미래는 오직 선택만 할 수 있다. 이제 그 차이를 이해하겠느냐? 차분하고 편안하게 하거라. 프레임을 비출 때 근육이 긴장된다면 그건 너희가 단기적인 의도를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거라. 활성화시키는 것은 오직 외부 중심인 땋은 머리만이어야 한다. 근육에 힘을 주듯 긴장시키거나, 도구처럼 손으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 땋은 머리는 별다른 노력 없이 아주 쉽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땋은 머리를 떠올리고, 느끼며, 편안하게 생각을 집중하거라. 그다음 그 느낌을 잃지 않은 채, 선택하려고 하는 프레임에 집중하거라. 원하는 그림을 상상하는 것도 똑같이 쉽고, 큰 노력이 필요치 않다. 근육은 편안히 긴장을 풀고 있어야 하고. 근육은 이 상황에서 쓸 필요가 전혀 없다. 땋은 머리와 프레임에 편안하게 집중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너희의 과제는 현실이 너희의 말을 듣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너희에게 다가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힘으로 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여기서의 원리는 현실을 거머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중심인 땋은 머리로 현실을 비추는 것에 있다. 너희는 영사기인 동시에 관객인 셈이다. 뒤에서는 프레임을 비추고 있고, 중심으로는 영화를 보고 있다. 마치 너희 자신만큼은 그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이.
- 이미 눈치챘겠지만, 외부 중심은 내 것이라고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미간을 찡그리듯 땋은 머리를 찡그릴 수는 없다. 그저 활성화시키고, 그다음 그것으로부터 생각의 흐름을 놓아줘야 한다. 앞쪽부터가 아니라 등 뒤부터 말이지. 너희가 늘 하던 것처럼, 고집스럽고 미련하게 미간부터 생각을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땋은 머리부터 놓아줘야 한다. 이해하겠느냐? 그저 프레임을 비추면 그 프레임이 알아서 실현될 것이다. 너희는 그것과는 무관하다! 그냥 그렇게 놔두면 되는 것이다!
- 너희가 '무관하게 있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아느냐? 나의 착한 아이들아, 내가 다시 한번 말해주겠다. 내부 중심이 아닌 외부 중심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지. 외부 중심은 다시 말해 너희의 한 단계 높은 자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을 사용해서 너희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땋은 머리의 끝부분에는 너희를 꼭두각시 인형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 있는 갈고리가 달려 있다. 여태까지 몰랐겠지만, 시나리오나 인형사가 너희의 의식을 조종하며 끌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희의 의식이 깨어나자마자 갈고리는 너희의 손아귀에 쥐어졌으며, 이제 너희는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너희는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팔다리만 허우적대는 꼴을 하고 있다. 누군가 너희의 목덜미를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조차 못하고,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온몸을 움직이려고 바둥거리기만 했지. 행동의 환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긴다.
- 그러나 이제 너희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갈고리를 직접 손에 쥐고 현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행동의 환상이 뒤집어지겠지. 누군가가 너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다. 너희가 현실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스스로 움직일 것이다. 자, 나약한 아이들아. 이제 환상은 파편이 되어 허공으로 흩뿌려질 것이다!
- 거울의 양쪽에 있는 모든 것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다만 한쪽 세계는 물질적이며 다른 세계는 비물질적이지. 거울 면에는 너희의 물질적 마네킹이 있으며 그 반대편에는 가상적인 마네킹이 있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너희의 주의는 거울의 경계를 넘어 가상적 마네킹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옮겨가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주의지만, 주의가 곧 너희 자신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상적 육체와 물질적 육체 모두,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하나도 따라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주의가 어떤 육체에 있는지이다. 만약 주의가 거울 면인 실제 프레임 속에 있다면, 너희는 완전히 시나리오에 얽매인다. 하지만 거울의 반대편인 형상 프레임 속에 있다면 너희는 자기 자신은 물론 다가오는 현실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주변 상황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자신의 동기와 행동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동시에 프레임 속에서는 너희의 힘과 팔다리를 사용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것이지. 그렇지만 현실을 통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주의와 의도와 메타력을 사용해야 한다. 메타력이 뭔지는 직접 그것을 감지하면서부터 차차 알게 될 것이다. 힘이 무엇인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메타력도 마찬가지다. 메타력도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길러내야 한다. 땋은 머리는 메타력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지. 프레임 비추기 알고리즘은 메타력을 길러내는 연습인 동시에 너희가 필요로 하는 현실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 여기에 덧붙여 너희에게 통제하기 활성체를 알려주겠다. 너희의 가장 해로운 습관은 시나리오를, 즉 사건이든 사람이든, 모든 걸 통제하려고 애쓰는 태도다.
1. 나는 사람이나 사건으로부터 뭔가를 원한다.
2. 나는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길 바란다.
3. 뭔가가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통제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놓아주고 순응하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거라. 그러면 순응하기의 알고리즘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1. 통제하기 활성체에서 자기 자신을 붙잡는다.
2.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되뇌며 깨어난다.
3. '첫 번째 지배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느낀다.
4. 답을 찾으면 그 지배를 따른다.
5. 답이 없다면 목표 프레임을 선택하여 다시 그것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것이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유용함을 가져다주는 예외이고, 다른 하나는 손해를 가져다주는 예외지. 손해를 가져다주는 예외는 이미 말했다시피 시나리오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반면에 유용함을 가져다주는 예외는 너희가 잠에서 깨어나 의식적으로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시나리오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건이지. 시나리오에는 너희가 영화 필름을 바꿔 다른 시나리오의 소유로 들어간다는 예외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다.
- 이 세계가 얼마나 흥미롭게 만들어졌는지 알겠느냐? 시나리오는 너희가 필름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건 창조자가 너희에게 부여한 특권이지. 그 누구도 아닌 너희에게만. 그 어떤 생명체도 그런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너희가 모든 법칙의 예외인데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이미 말했다시피 시나리오조차도 너희 앞에서 고분고분해질 수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너희가 현실을 선택할 때 지금 너희가 따르고 있는 시나리오는 너희를 놓아주고, 너희가 목표 프레임을 비출 때면 너희가 갈아탈 새로운 영화 필름에 자리를 내어준다. 너희도 알다시피, 너희에게는 내부 중심과 외부 중심, 이렇게 두 가지 의도의 중심이 있다. 내부 중심은 이마에 있으며 외부 중심은 땋은 머리의 끝에 있지. 내부 의도는 현재 장면에서의 일상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외부 의도에 대해서는 아직 '모든 일에 무관하게 행동한다'는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짝 언급만 했을 뿐이다.
- 땋은 머리를 활용하는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이미 배운 적이 있지, 복습을 한번 해보자.
1. 잠에서 깨어나 의식의 점으로 들어간다. (현존한다)
2. 땋은 머리를 활성화한다. (땋은 머리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느껴본다.)
3. 땋은 머리에서 주의를 유지한 채 목표 프레임을 선택한다.
현존의 상태로 들어서자마자 주의는 너희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땋은 머리를 활성화하는 순간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실은 너희가 쥐게 된다. 이제 그 실을 놓치지 않은 상태로 내부 스크린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거기에 미래를 그려라. 목표 프레임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의는 내부 스크린에 있으면서 동시에 땋은 머리에 있게 된다. 주의는 땋은 머리를 감지하면서 스크린에는 (형상, 언어, 생각 중 하나를 사용하거나 그 전부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내부 중심이 아닌, 마치 너희의 것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희의 것이 아닌 외부 중심을 가지고 그려야 한다. 너희는 모호하지만 감지할 수 있는 힘과, 너희 뒤 가까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느낄 수 없는 가상의 메타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사건과 무관하게 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모든 게 저절로 흘러가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능하게 하고 그 모습을 관찰한다.
- 그중에서도 가장 유용한 습관은 현실로부터 뭔가를 바라지 않고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지! 거기에서 파생된 것들도 물론 그만큼 중요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기대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의지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실망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뭔가를 바라고,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바로 잠에서 깨어나, '너희의 시나리오가 아닌 외부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바로 그 사실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도록 하거라. 너희는 자유가 없고 현실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주제의 틀에 매여 있는 등장인물처럼 상황의 틀에 자신이 매여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느낌에 불과할 뿐, 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그러니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 외에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나리오에서 분리되어 다른 영화 필름으로 건너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기다리고 의지하는 습관이 아무 쓸모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깨어나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 의식 없이 슬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잠에서 깨어나 유용함을 얻어내거라. 예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잠에서 깨어나 힘의 지배에 순응하거라.
- 아주 기본적이고 백 퍼센트 성공하는 공식을 하나 알려주겠다.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기적이라고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즐기고 삶을 즐긴다면 삶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다. 단순히 자기 자신과 삶을 즐길 수 있다면 너희 자신과 삶 모두 자연스럽게 점점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너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종류의 틀과 기준, 조건과 제약이라는 너무나도 큰 짐을 짊어져야 했다. 그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방법으로는 그 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첫 번째, 단점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거라. 그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이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아주 파괴적인 상태이기 때문이지. 단점이 심화되면 더 크게 후퇴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구체적인 상태로 들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행동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두 번째, 삶에서 영감을 주고 활기를 불어넣으며 자신과 남들에게 유용함을 가져다주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을 권태롭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목표가 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목표가 없다면 권태가 생기지. 목표가 없다는 것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지향점이 없다면 움직임도 없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며, 에너지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마음속에 귀중하게 품을 수 있는 자신만의 목표와 소명을 찾거라.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거라. 그 어떤 소명도 없다면 너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 너희가 있는 그 자리는 그저 텅 빈 공간에 불과하다. 아직 소명을 찾지 못했다면, 세 번째 단계가 도움이 될 것이다.
- 세 번째, 소명을 찾았든, 아직 찾지 못했든,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창조하는 것에 집중하거라. 자기 자신을 계속, 항상 만들고 있어야 한다. 내면에 품은 창조주의 불꽃을 불태워 성장하고 발전하거라. '후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소명을 찾는 것, 소명을 실현시키는 것' - 이것이 성과를 위한 세 가지 방법이다.
- 너희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단 말이냐? 마법의 지팡이 따위는 없다. 땋은 머리가 있지만, 그것도 역시나 활성화해야 사용할 수 있지.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희도 이제 알았다시피, 목표는 '현실을 움직이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세 단계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자기 계발은 훌륭한 목표이자 길이다. 그 길에서 소명은 저절로 발견하면 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하듯, 나도 이것과 저것을 똑같이 천재적으로 할 수 있다.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되는가? 나도 마찬가지로 그와 똑같이 할 수 있으며, 찬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너희를 매료시킨 그 찬란함을 모두 너희 자신에게, 너희의 삶에 스며들게 하거라. 땋은 머리를 사용하여 너희의 의도를 선포하거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일일이 따라 하지 말고, 천재성이 영사되는 것만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하거라. 본질을 영사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형태를 영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 "나는 ~~ 이다. 사람들은 ~~~. 나는 늘 ~~ 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이런 사념체는 취향과 방식에 따라 만들어낼 수 있다. 땋은 머리를 활성화하여 너희가 만들어낸 사념체를 되새겨보거라. 소리 내어 말하든, 속으로 생각만 하든 상관없다. 진지하게 연기할 뿐이라고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너희가 주장한 것에 일치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거라.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그와 일치하도록 자기 자신을 창조해나가거라. 완전한 성공은 3단계 행동을 통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매력, 재치, 지성, 자신감, 천재성 같은 자질은 3단계 행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변수를 따진다면 조금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세 번째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외적인 매력은 너희가 단점이라고 여기는, 자신을 갉아먹게 하는 내면의 자질에 상당 부분 좌우되기도 한다. 뒤섞인 열등감은 눈에 띄는 흔적을 얼굴과 몸에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점을 가지게 되면 열등감은 저절로 사라지며, 그때가 되면 너희는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고 그만큼 더 나은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네킹의 육체를 훨씬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아니, 완전히 다른 마네킹의 육체로 들어가는 것이지. 충분한 끈기만 있다면 노화 과정을 거꾸로 돌려놓는 것조차도 가능하다. 너희의 육체적 변수는 DNA에 들어 있지만, 그건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DNA가 외모의 사소한 부분까지 결정할 수 있다. 그저 너희가 계획했던 방식과 차이가 있을 뿐이지. 너희가 나아갈 길이 장미가 활짝 핀 꽃 길이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약속한 적이 없지 않느냐.
- 각자의 취향과 형태에 따라 사념체를 생각해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사실 너희는 아무것도 고안할 수 없다. 즉, 말 그대로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사념체는 오직 주의를 통제하여 정보를 읽어내는 방법을 통해 만들 수밖에 없다. 너희가 누구인지 잊었느냐? 너희는 그저 영화 속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 두뇌는 세 가지 기본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능은 주변 세계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기능이다. 하지만 세 번째 기능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 바로 설정 기능이다. 기억과 사고와 상태를 설정하는 기능 말이다. 두뇌는 사고를 하지도, 기억을 저장하지도 않는다. 마치 무선 수신기나 원격 수신기처럼 작동하지. 뭔가를 생각할 때 두뇌는 영원의 아카이브에 있는 정보 단위(information unit)에 맞춰진다. 그리고 뭔가에 대해 생각할 때도 두뇌는 정보를 스캔한 다음 사고할 때 방출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정보 단위에 연결된다. 생각과 기억은 내부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정보가 있어야 하는 외부의 공간의 정보체에 저장된다.
- 시시각각 나타나는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거라. 현실의 효과는 시간이 조금 지나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거라. 뭔가가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 눈앞에 굳게 닫힌 문을 차분하게 노크하듯 잠시 기다리거라. 그 길이 너희의 길인지, 정말로 마음이 가리키는 길이 맞는지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너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자기 계발의 길이다. 물론 아무 길(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이나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영감을 주고 실질적인 열매를 맺게 할 그런 길 말이다.
-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오직 땋은 머리를 사용하여 현실의 거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인 거울을 보며 마네킹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을 금지하겠다! 전혀 효과가 없거나,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평범한 평면거울 앞에 서 있으면 일이 긍정적으로 진척되는 것만 보고, 동시에 부정적인 점은 무시하게 된다. 피하고 싶은 단점에 관심을 가져도 안된다. 단점은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자연스럽게 해결하거나, 자신만의 개성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그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저 단점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리뷰자 주 : 미러 워크 중이었는데... 음.)
- 마지막으로 땋은 머리와 관련해서 몇 가지 설명해주려고 한다. 첫 번째로, 땋은 머리가 말 그대로 땋은 머리와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느낌이 너무 흐릿하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거라. 감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래도 괜찮다. '마틸다'라는 내 친구는 땋은 머리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등 뒤에서 약간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신체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이 아닌 환각처럼 뭔가를 느끼지.
- 그 느낌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뭔가 감지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만약 그 느낌이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또한 괜찮다. 마치 쭉 뻗은 뻣뻣한 꽁지머리를 뒤통수에 붙였다고 상상해보거라.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머리카락의 존재를 느꼈다가 머리를 떼어냈다고 가정해보자. 그 꽁지머리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뒤통수에 달려 있었던 느낌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환각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런 환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불행이라고 여기지 말거라. 다시 시도해보면 되는 것이니. 뒤통수에서 등 가운데까지 화살이 수직으로 드리워져 있다고 상상하거라. 마치 벡터 같은 화살 말이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이제 화살이 돌면서 등 위쪽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거라. 그 환각을 느꼈느냐? 만약 느꼈다면이 느낌을 땋은 머리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여기면 된다.
- 화살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등 정중앙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희의 에너지체가 활성화 상태에서 화살의 위치와 방향을 알아서 가르쳐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화살 없이 날개뼈에서 약 50센티미터 미만 정도 떨어진 위치의 지점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아주 또렷하게 땋은 머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의 딸은 머리는 사용된 지 아주 오래되어 쇠퇴하였기 때문에, 조금 더 단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업그레이드된 달팽이들'을 위해 땋은 머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훈련이 있다. 몸의 중심축을 따라 아래에서 위로 에너지의 흐름이 올라온다고 상상해보거라. 숨을 들이마시고 발에서 머리까지 어떤 느낌이 상승하는 것을 느껴보거라. 그다음 위에서 아래로, 반대로 흐르는 흐름을 느끼거라. 숨을 내쉬며 하강하는 느낌을 느끼면 된다. 이렇게 몇 번 더 훈련해야 한다. 숨을 들이마시며 에너지가 위로, 내쉬며 아래로 흐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비록 느낌은 가상이지만 에너지의 흐름은 완전한 현실이기 때문에 충분한 훈련이 없이는 그 흐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 이제 너희로부터 두 개의 화살이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돌출되어 있다고 생각해보거라. 가슴(또는 배)에서 앞을 향하는 화살 하나와 날개뼈 중심(또는 더 낮은 부분)에서 뒤를 향하는 화살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앞을 향하는 화살이 수직으로 위를 향하고, 뒤를 향하는 화살은 아래를 향한다. 이때 두 개의 에너지의 흐름이 동시에 방출된다. 앞쪽 화살표를 통해 위로 흐르는 에너지는 중심축보다 약간 앞쪽으로 전신을 따라 상승하고, 뒤쪽 화살표를 따라 흐르는 에너지는 중심축의 약간 뒤쪽으로 전신을 따라 하강한다. 또는 그 둘이 '위치'에는 상관없이 하나는 위로, 다른 하나는 아래로 동시에 다른 방향을 향해 흐를 수 있다. 너희가 느끼는 바에 따라 다르다.
(리뷰자 주 : 나는 반대로 연습을 해와서 숨을 내쉴 때 등 쪽으로 상승한다. 설명을 의식하면서 흐름이 오히려 꼬이고 있는데, 일단은 새로운 방식대로 해보려 한다.)
- 이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연습을 거쳐야 한다. 그다음엔 숨을 내쉬며 이 두 개의 에너지 흐름을 화살표 없이 동시에 흐르게 하거라. 그리고 뒤통수에서 화살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켰던 것처럼, 똑같이 이번에도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켜 호흡을 조금 하고, 그다음 날숨에 그것을 급격하게 아래로 떨어뜨리거라. 훈련을 조금 하고 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만, 땋은 머리뿐 아니라 에너지 흐름 훈련을 할 때도 긴장을 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가 흘러가도록 방출하기만 하면 그 흐름은 스스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그 흐름을 놓아 보낸 다음에는 에너지가 스스로 흐를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거라.
- 과거의 것들이 전부 소멸하고 소실되었다. 전생은 이미 잊혔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너희에게 다시 한번 묻겠다. 이 모든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너희는 이번 삶에서 실수와 실패를 겪고 승리와 성공을 맛보기도 했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고, 그만큼 많은 것들을 이뤄냈지.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소용없고 헛된 일이었다는 말일까? 잊힌 꿈에서 소유했던 것을 가지고 올 수 없는 것처럼, 잊힌 삶에서의 경험을 돌려놓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너희에겐 여러 삶을 통해 축적한 개인의 힘을 가질 권리가 있다. 아무도 이 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겠지.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 개인의 힘, 영혼의 힘을 헛되이 소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삶이 무에서 시작되어서도 안 된다. 그건 우주의 실패이자 결함이다. 의지만 있다면 실패와 타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 다만 그런 너희, 부족한 생명체인 너희를 누가 필요로 하겠느냐? 심지어 나조차도 그런 것들은 필요 없다. 너희가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고 가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건 어떻게 할까? 아주 쉽다. 권리를 선언하는 자는 그 권리를 받을 수 있지. 말 그대로 너희는 선언을 해야 한다. '나는 내 권리에 대해 선언한다. 나는 내 권리를 돌려받을 것이다. 실현되었던 내 모든 삶의 힘을 가질 것이다.'
- 하지만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말이란 것은 그저 공기의 진동일 뿐이니 말이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뉘앙스가 하나 있다. 너희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가지고 있고 이제 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이제는 쇠퇴해버린 흔적 기관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땋은 머리다. 현실을 선택할 때 해왔던 것처럼, 땋은 머리를 사용하여 선언하거라. 그러면 힘이 너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자주 하거라. 머지않아, 그리고 점진적으로 너희는 너희 자신의 힘과 확신, 영혼의 힘이 커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반드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을 찾을 때면 언제든지 #나 자신의 힘이 실제로 커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 와 같은 형태로 사념 표시기를 사용하여 개선된 설계도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이제 여기에 대해서는 더 덧붙일 말이 없다. 얼마나 환상적인지 직접 확인하거라.
- 벡터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 '나는 현실을 선택할 수 있으며, 현실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내가 정한다. 동시에 사건의 흐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목표, 즉 목표 프레임을 선택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습관을 들이도록 하거라. 한때 내가 '힘은 현실의 엔진'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필름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힘이라고 했던 것을 말이다. 현실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힘은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힘은 항상 그것이 필름을 돌리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을 꽉 움켜쥐고 돕기 시작하지. 힘은 잠든 상태로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 꿈속의 텅 빈 마네킹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는 힘을 찾고 있다. 나는 힘의 위치를 찾고 있다. 모든 것을 힘을 가지고 할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명심하거라. 다시 말해 힘차고 기발하게, 진심을 다하여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힘은 너희의 것이 될 것이다.
- 자신의 손으로 창조해낸 기적에 들뜬 나머지 지나친 환희의 상태에만 빠져 있어선 안 된다. 현실에게서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혼자서만 기뻐하거라(현실은 아주 심술궂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앞에서 너희의 능력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지 말거라. 그리고 현실을 선택하는 기술과 마네킹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지 말거라. 어차피 그들은 너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기만할 것이다. 전체 문맥에서 기술만을 분리시켜 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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