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마이크 둘리 / 장은재
원제 : The Top Ten Things Dead People Want to Tell You
출판 : 라의눈
출간 : 2017.10.18
제목만 보고 영계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인생의 태도>부터 현실 창조에 대한 책들을 줄줄이 이어서 읽고 있게 되니 살짝 어질어질했다. 읽던 도중 눈이 계속 헛돌아 머리를 식힐 겸 읽었던 것이 <나의 비거니즘 만화>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 부분을 읽게 되니 잠깐 숨이 턱 막혔다.
- '잡식 동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해 보이는 해결책이 궁금하다면, 동물을 먹기 전에 자문해보라. '내 앞에 있는 고기를 먹는 것이 나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다른 음식보다 선호해서인가?'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된걸까 싶기도 하다. 특정 방향으로 등을 밀리고 있는 기분인데, 변화는 기쁘게 받아들이겠지만 '어떻게' 변해야 할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장까지 있으니 도망칠 수는 없을 것 같다.
-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방향으로든 움직여라.
걱정 고민이 전혀 없는 삶은 없겠지만,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지금의 자신이 배우고 느껴야 할 것들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리고 허용할 수 있게 되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큰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기를.
- 어쨌거나 당신은 우주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삶에 대해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정말 알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를 전부? 나의 경험과 실험에 따르면 분명히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다시 말해 진실을 알고 그 진실에 따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이들이 '살아 있으면서(깨어난 상태에서)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이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지상에서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실수는 없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더 나아지게 하며,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도 언젠가는 이해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온화한 지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삶에서 얻을 수 있었던 명명백백한 증거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의미 있고 심오한 수준까지 뜻대로 그 지성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 일찍부터 나는 질문하고 질문하면서(의심할 바 없이 이런 일은 당신의 삶에서도 일어났다), 한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할수록 더 필연적으로 그 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 속에서 답을 얻은 경우도 있고, 불가사의한 형식으로 내게 스며든 답을 얻기도 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찾아낸 답 역시 필연적이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다룰 내용들을 고려하면, 당신은 이전에 한 번도 생각 못했던 방식으로 이 주제들을 숙고할 준비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 단, 당신이 책 전체의 맥락을 무시하고 구절, 문장, 단락에 집착하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책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러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어가거나, 아니면 손도 대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냥 책을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게 하라. 그러면 어느 날 독서광인 친구가 이 책에 '꽂혀서' 한꺼번에 다 읽고, 그 내용을 당신에게 전해주게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이 죽은 이들 모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죽은 이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이해가 부족했던 삶의 본질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헛된 복수를 도모하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악마 루시퍼를 피해 다니거나, 좋아하는 예언가의 사진에 대고 애걸하는 일에 정신이 팔린 존재들도 분명 있다. 결국엔 그들도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깨달음에 이를 것이란 사실은 낮이 가고 나면 밤이 오는 것만큼이나 명확하지만, 죽음이 자동적으로 깨달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죽음이란 지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웃고, 울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고, 다음에 할 일을 준비하는 일종의 재정비 단계다.
- 저세상은 사람들을 아주 빨리 치유하고 아주 많은 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후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자신의 인내와 성공, 특히 그런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도움이 됐을 때를 축하한다. 또한 자신의 혼란과 오해, 특히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을 보고 다시 괴로워한다. 이것이 아마 그곳에서 겪을 일 중 가장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절대 강요된 것이 아니고, 악마가 관여된 것도 아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듯이, 유일한 심판관은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배우고, 진보하고, 진실에 가까워지고, 더 지혜롭고 사랑스러워지고, 더 위대해지면서, 또 한 번 더 위대해질 준비를 갖춘다. 저세상은 사람들을 아주 빨리 치유하고, 아주 많은 것을 약속해주므로 교훈을 배우기 위해 후회하며 반성하는 일에 필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죄는 당신을 가르칠 뿐 벌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아무리 심한 오해를 했더라도 그렇다.
- '카르마 karma'는 신 God이라는 단어만큼이나 흔히 쓰이는 말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카르마는 절대 법칙이고, 채점표이고, 점수 시스템 같은 것인데, 단언컨대 그런 것은 없다. 만약 카르마가 있다면, 모든 현실을 지배하는 유일한 원칙인 '생각이 현실이 된다'와 상충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카르마가 절대적이라면, 당신이 누군가를 한번 속이면 당신도 속아야 한다. 그런데 당신이 속임을 당할 환경을 만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속을 수 있다는 걸까? 만약 당신이 남을 속인 다음, 그것이 잘못임을 재빨리 이해하고 그 즉시 '더 높은 수준'에서 살기 시작했다면, 평화롭고 정직하고 기쁨에 찬 생각만 하고 살았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적인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당신도 속아야 한다면, 그것은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TBT 법칙을 훼손한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아무도 카르마에 제한당하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라, 그러면 당신은 그런 종류의 '윤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 삶에서의 발견이나 탐구 중 어느 것도 당신과 당신의 망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각 생의 목표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느낌을 통해 당신이 선택한 것들을 경험함을 의미한다. 당신이 어린 (경험이 적은) 영혼이라면,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늘 편치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감정은 자주 상처 입고, 좌절할 것이다. 당신 자신이 그런 감정의 원천이며 주인이란 사실을 알아차릴 때까지 그것은 계속된다.
- 배우는 과정 초기에 느껴지는 불편이나 부자유는, 당신이 이미 한 선택 안에서 충분히 예상되고 고려된 것이다. 즉 '일괄 거래'에 포함되어 있다. 당신은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당신이 선택한 바로 그곳에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당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 불편한 것이 '삶이 힘들다'는 의미도 아니고, 당신이 항상 불편할 것이란 얘기도 아니다. 당신은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을 끌어안고 견디게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불쾌한 것을 바꾸는 존재다. 당신이 바꾸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 하나하나가 당신을 깨워 일으켜, 더 큰 실재와 더 위대한 당신을 드러낼 웅장한 진리를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창조된 현실 속에서 당신의 진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차리는 상태에 점점 더 가까워지도록, 고통과 불안이 도와주는 것이다. 당신의 위치는 바로 창조자 Creator다.
- 모험하는 사람이 원래 갖고 있던 계획이나 목적을 성취했거나, 더 이상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다른 대안이나 이를 목표가 없을 때, 삶은 저절로 끝난다. 하지만 언제 이런 기준이 충족되었는지 아는 일은 의식 수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다 이루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당신이 아직 마치지 못했다는 증거다.
- 죽음은 멋진 일이지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정글 속에 사는 것이 더 멋지고, 그것이 지금 당신이 살아 있는 이유다. 당신은 '죽음'으로부터 왔고, 거기로 되돌아간다. 전체적으로 보아 당신이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여기' 이승보다는 '저기' 저승이다. 그런데 '저기'에 있는 동안 당신의 주된 관심은 '다시 육신에 들어가는'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육신 밖으로 나가는 (유체이탈)' 경험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반대다.
- 당신의 삶은 무작위가 아니다. 설계에 의한 것이다. 신성神性, 즉 당신이 설계한 것이다. 죽은 자들이 알려 주고 싶어 하는 사실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모든 일은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당신은 더 높은 수준을 향해 꾸준히 진보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공간 안에서의 신의 궤적, 곧 영원한 확장이다. 죽은 이들은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주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길 바란다. 그것은 당신에겐 여전히 갈 곳이 있고, 만날 친구가 있고,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는 의미다. 삶에는 울음보다 웃음이 많고, 슬픔보다 기쁨이 많으며, 말 그대로 당신과 하나인 사랑으로 충만한 우주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죽은 이들은 당신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당신이 원한 그대로란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과거를 놓아버리고, 현재에서 당신의 남은 생을 만들어 가라. 끝까지 버티면서 인생이 주는 기회를 잡아라. 당신은 늘 성공하고 늘 기뻐하는 천성을 가진 존재임을 잊지 말라. 성공하고 기뻐하는 것은 신성의 성향이고, 불멸의 존재가 드러내는 특징이며, 당신의 타고난 권리이기 때문이다.
-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시켜보겠다. 아이들에게 불행한 결말을 가진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런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얘야, 결코 무서운 부분에서 책 읽기를 중단하면 안 된단다."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더 위대한 당신(신)'이 당신에게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물을 주었을 리가 없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정쩡해 보여도 '더 위대한 당신'의 의도를 의심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아주 좋게 끝날 것이니, 어떤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갈 가치가 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해피엔딩'은 결코 당신이 '죽을 때'가 아니다. 삶은 절대로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므로 당신은 역경을 넘어 행복해질 수 있다. 즉 '행복한 결말'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헤쳐 나가는 힘든 구간을 이해했을 때 오는 것이다.
- 진실을 발견하고 느낄 희열과 주체할 수 없는 황홀감을 상상해보라. 당신에게 다가오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도전이 주는 선물이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더 위대한 모험의 길을 밝히는 빛 속으로 대담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당신 스스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며, 어느 때 어떤 일이 모습을 드러낼지에 대한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함정처럼 보이는 것들은 지금까지 생각도 못했던 삶, 사랑, 실재에 관한 더 위대한 진실로 당신을 이끌기 위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주는 맞춤형 초대장이다. 상실이나 비극, 결점, 불완전성에 흔들릴 때, 당신은 그것들에 의해 추락할지 아니면 떠오를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이 갖고 있는 회복 탄력성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성공으로 나아가는 경향성을 감안할 때, 결국 당신은 향상하고 떠오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 다른 사람을 바로잡거나 바꾸려 하지 말라. 특히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겐 더욱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핑곗거리나 설명을 찾을 필요도 없고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이유도 없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치유와 기분 전환을 위해 쓸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창조하는 것이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생각, 모험으로 당신의 삶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문제는 그 문제를 만들어낸 '마음의 방식 mind-set'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이미 존재하는 '마음의 방식'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미 창조된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주의를 돌려 새롭게 창조하라.
- 그들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을 치유하고 인사를 나누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소송하는 것일 수도 있고, 거리를 두면서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그들의 선생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도 당신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들도 당신처럼 무엇이 효과가 있고 없는지를 배우고 있는 중임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다.
- 당신은 부모, 교사, 선배, 사장으로서 당신의 안내나 지도가 필요하거나 그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인도할 책임을 갖는다. 하지만 당신의 노력을 통해 그들이 행동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선택이 당신의 행복을 좌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슴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목적이므로 당신에겐 갈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허용하라. 갈망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삶에 가져오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의 꿈은 당신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자신 안의 드러머가 연주하는 박자에 맞춰 춤을 추어라. 춤추는 것을 서두를수록, 70억 다른 춤꾼들이 어우러진 교향악 한가운데서 당신만의 리듬을 찾아낼 것이다.
- 환영의 바다 안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증거가 모순될지라도 그들의 느낌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생명을 부여했던 거짓말을 꿰뚫어 봐야 한다.
- 당신의 전형적이면서 믿을 수 없는 한 생에 한정된 세계관을 감안할 때, 환생이란 개념은 존 도우 John Doe라는 남자로 세상을 떠난 후, 제인 디어 Jane Deer라는 여자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기만 하면 즉시 그릇된 함축이 드러난다. 새로운 제인은 실제로 옛날의 존인가? 아니면 새로운 제인은 그저 제인일 뿐인가? 맞다, 제인은 제인이다. 그렇다면 존은 어디 있는가? 존은 여전히 존이다. 하지만 존은 이 생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렇다, 존은 제인이 되어 돌아왔다.
- 어쩌면 한 사람의 개성 Personality 이란 것은 다른 화신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영혼 나무'에 달린 이파리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아마도 시간은 환영이니까, 모든 이파리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할지라도 그 모든 이파리가 동시에 연극을 진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보라. 이제 좀 더 명료해진 것 같지만 그만큼 더 많은 편차도 생겼다. 이제 우리는 존과 제인이 실질적으로 같은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경험과 소원으로부터 진화를 이루었고, 다른 사람의 기억과 다른 사람이 얻은 교훈, 경험, 성숙도, 재능, 매력을 넘겨받아 소유한다고 해도 두 사람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환생 비슷한 뭔가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건 한 생이 끝난 후에 다른 생이 시작되는 식으로 의식이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기는커녕, 각각의 생에 태어나는 화신은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영원히 유지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 관점을 나누어준다.
- 당신의 가슴이 뛰고 있을 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관점 하나를 추가해보겠다. 누군가의 다음번 생애는 지금보다 더 이른 시점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이런 일은 모든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 우리의 주제와 관련성이 있으면서 흥미롭기도 한 사실 하나는, 현재 시점에서 어느 특정 행성의 문명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영적으로 동일한 가족에 속한다는 것이다.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행성의 원시 시대에 살았던 사람과의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 다만 한 가지 경고할 것이 있다. 당신 자신의 느낌, 추론, 삶의 경험을 통해 평가하기 전까지는 내가 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것이다. 부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무엇이 드러나는지 살펴본 다음,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따라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진실의 보물들을 찾아내기 바란다. 내가 공유하려 한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요약하자면, 지금 당신이 '모든 삶이 결국에는 도달하게 되는 중요한 교차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스스로 약한 존재라 여기며, 거의 전적으로 신체 감각에만 의지해 세상 모든 것에 이름 붙이고 정의하면서, 자신이 열심히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고, 머리야! 우리가 철부지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무지한 상태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우리는 환영에 마음을 뺏긴다. 판타지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자전거를 배울 때 필요했던 보조바퀴는 필요 없어진다. 오히려 우리를 뒤처지게 만들 뿐이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공연히 가슴이 찢어진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의 궤도를 바꿀 때이고, 죽은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훨씬 친근하며, 우리들 삶의 학습 곡선을 가능한 빨리 끌어올리고 싶어 안달하는 맏형이나 큰 언니 같은 존재들이다.
-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환영의 이분법인 듯하다. 당신에겐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앞이 있으면 뒤도 있어야 한다. 당신이 옳다. 당신이 존재하는 환영 속에서는 언제나 대립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시간, 공간, 물질이란 그저 환영일 뿐이다. 당신은 바깥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환영의 '교묘한 속임수' 속에서 무지한 상태로 살아간다. 자연스럽게 그런 불리한 조건 (물론 당신이 그런 상황 하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아래서는, 신이 존재한다는 신념과 동시에 그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악마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 사람들 대부분은 환영이 없으면 시간, 공간, 물질이 없고 따라서 이분법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분법이 없다는 것은 여기 혹은 저기라는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 빛도 어둠도 없다. 당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당신이 원하지 않은 것을 소유하는 일도 없다. 본질적으로 가야 할 곳도 없고, 사귀어야 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으며, 입을 것조차 없다. 모험도 없다. 재밋거리도 없다. 이것이 환영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이유다!
- 환영에 의해 가능해지는 즐거움과 모험의 대가는 빛이 있고 어둠이 있다는 등등의 낡고 시시한 '거짓말'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어디서 끝내야 할지 알기가 어렵고, 그럴 필요가 없는 '곳'에까지 이분법 개념을 적용하기 십상이다. 상처받고 두려워하면서도, 일부 사람들이 쓸데없이 악마와 지옥을 믿는 이유가 그것이다.
- 환영 안에서는 항상 반대편이 존재하는데, 환영은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정말 심오한 뭔가를 알려주고 있다. 바로 반대편은 이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시공간의 이분법이 대립 쌍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반대되는 것이 반드시 존재할 필요는 없다. 반대되는 것들은 당신이 창조하기 전까지는 잠재된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를 가지면 다른 쪽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슬픔을 알아야 한다. 빛이 있기 위해서는 어둠이 존재해야 한다. 시원함을 느끼려면 더운 것도 알아야 한다. 대립 쌍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분법은 양방향의 극단을 사용해 객관성을 창조하지만, 한쪽 극단을 알거나 경험함으로써 다른 쪽도 알거나 경험하게 되리란 생각은 참 순진한 것이다. 명심하자, 어쨌든 양쪽 모두 환영일 뿐이다.
- 계속 상상해보자. 어떤 차가 당신 차를 쫓아오고 있다. 완전 미친놈처럼 당신을 따라잡으려고 신호도 무시하고 쫓아온다. 당신은 급히 핸들을 꺾고, 빠르게 질주하고,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저주하고, 공포에 질리고, 비명을 지른다. 그렇게 10km도 넘게 달린 끝에, 당신은 그놈과 결국 대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놈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짓 발짓으로 뭔가를 말하는 것 같다. 영 미친놈은 아닌 듯해서 당신은 차창 유리를 내리고 그의 말을 들어본다. 알고 보니 당신이 차 지붕 위에 열린 서류가방을 놓은 채 달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는 거다. 바보 멍청이!
- 또 상상해보자. 이번 생을 선택하면서 당신은 당신보다 삶의 경험이 훨씬 적고,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누군가의 안내자, 빛, 멘토가 되기로 결정했다. 당신은 원래의 목적을 잊은 상태로 지구에 와서, 당신과 친구의 인연을 맺은 이 평범치 않은 특징을 가진 사람을 뜯어보고 특유의 결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수선하고, 행동이 굼뜨고, 감정적 교류가 어려운 성격이다. 당신은 생각한다. 소위 친구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그래서 가르치고 길을 밝혀주기보다는 비교하고 깎아내리고 비판한다. 결국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지고 당신은 깊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열망으로 만들었던 기회를 날려버린다. "정말 정말 미안해!"
- 이제 이런 사랑의 세계를 상상해보자. 그곳엔 매일 태양이 빛나고 온갖 동물들이 즐겁게 뛰놀고 모든 남자, 여자, 아이들은 친절, 사랑, 봉사의 의욕이 충만하다. 그곳에도 역시 무한한 기회가 있다. 즉 당신은 늘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장소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 누구나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한다.
- 운명이 어떤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모든 결과들은 미리 알 수 있었던 거죠. 우리의 선택이 불러올 행복, 슬픔, 평화, 저항, 창조성, 반성 같은 것들은 미리 알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또 어떻게 일어날지는 가변적인 거예요. 내 '일생'에 처음으로(그래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답니다) 나는 무한에 도달했어요. 나는 우리의 모든 선택이 어떻게 접점과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지 보았어요. 그런 점점과 가능성들이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그 결정이 더 많은 접점과 가능성을 불러오는 거였어요. 나는 내 삶의 고통과 고립이 다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관점, 통찰, 결정, 조치들이 확연히 보였어요. 나의 문제 해결이 어떻게 엄마의 도전들을 보완할 수 있는지, 그렇게 했더라면 우리가 얼마나 더 훌륭하게 서로를 도울 수 있었는지도 보았어요. 엄마, 제발 엄마 자신을 용서하세요. 그건 내 삶이었고, 나의 결정이었어요.
- 엄마, 엄마가 겪기로 한 것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그것이 엄마의 선택이고, 그것을 끝내기로 선택할 때에만 끝낼 수 있는 거예요. 삶에서의 갈림길은 선물이에요. 선택하기만 하면 힘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걸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선물! 말처럼 쉽지 않으리란 것도 엄마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묘사하듯 명료하게 현실을 볼 수 있는 힘이 엄마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엄마도 알고 있어요. 엄마는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죠. 우리는 삶을 함께하는 동안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데 동의했고, 그렇게 했죠.
- 관련된 사람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예감이 클수록, 그것이 경험될 확률은 더 커진다. 자유의지가 주도하는 것은 맞지만, 논리적으로 개인들은 집단이 갖는 거대한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1. 한 개인이 아주 위대한 비전을 갖는 경우, 그 비전이 집단을 바꿀 수도 있다.
2. 집단적으로 부과된 제한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지는 무한하고, 행복과 성취를 찾아낼 가능성도 무한하다.
3. 개인들은 자신이 소속되겠다고 선택한 집단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 집단에 속해야 할 극도로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면, 어떤 제한이 있더라도 그 집단에 합류하는 것(그 시대에 태어난다든지)을 선택할 것이다.
부모를 선택하고 태어날 시대를 선택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가능성뿐 아니라, 더 큰 집단이 창조할 가능성과 기회들이 생애의 선택들을 이끈다. 당신의 삶이 매 순간 전개되듯, 당신의 미래와 당신이 계획한 일들을 성취할 기회도 매 순간 펼쳐진다. 성장해나감에 따라 당신의 야망이나 포부도 매 순간 새롭게 전개되고, 하나의 목적이 달성되면 또 다른 목적이 출현한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궤적들은, 당신이 한 생애를 선택하기 전에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숙고되고 평가된다.
- 원래 의도했던 것 이상의 성취를 이루는 생애도 있을 수 있다. 혹은 크거나 작은 집단의 변화나 그런 삶에 처한 개인의 마음이 변함으로써 중요한 가능성들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죽음을 맞게 될까? 의도했던 삶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현존하는지,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당신의 목적은 당신의 장엄함을 재발견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과 좀 더 심오하고 근원적인 창조적 연결을 유지해야 함을 명심하자. 생각해보라! 형이상학적 자연법칙(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간의 연결을 지배하고, 창조자인 당신과 당신이 창조한 것 사이의 연결을 지배하는)을. 형이상학적 법칙에 따르면, 물질세계 내에서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당신의 생각 안에 존재해야 한다. 그 후 당신의 생각은 사물, 상황, 삶의 사건이 된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형이상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저절로 일어나면 현실의 질서를 지켜주는 물리 법칙들이 완전히 박살 나고 무효가 될 것이다. 형이상학적 법칙에 따르는 일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진 않지만 서서히, 그리고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경우 물리 법칙들과 협력한다.
- 금화는 느닷없이 당신 손바닥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이미 존재하는 금화를 당신에게 끌어당겨야 한다. 금화는 상인, 고객, 지인, 후원자, 상속인, 자녀, 부모, 배우자, 친구 등, 대부분 당신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통해 당신의 손바닥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금화를 원하면서 금화의 이미지를 당신 마음속에 잡아두면, 핵심적인 사람과 사건들로 완벽한 교향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일이 일어나고 난 뒤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상도 못 할 정확성을 가진 안무가 펼쳐지고, 당신에게 금화를 가져오는 일이 완수된다. '끌어당김의 법칙 Law of attraction'이 작동하는 것이다.
- 내가 말한 사실들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회의론자일 것이다. 당신은 오늘이 의미로 가득 차 있고, 당신은 당신이 가장 원하던 바대로의 존재이며, 당신이 가장 원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 당신은 삶의 마술사이고, 당신을 둘러싸고 춤추는 환영에 통달한 마스터이며, 은하계를 감싼 사랑과 순수 에너지의 해일이라는 사실 역시 믿지 못한다. 때때로 당신은 주차 공간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고 빚을 갚는 삶 가운데서 '괜찮은 사람'이란 것이 잔인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한탄을 즐기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 그런데 당신은 왜 지금 당장 죽을 생각이 없을까?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등,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말이다. 모든 일이 혼돈스럽고, 생을 거듭할 때마다 문제들이 축적되고, 이 모든 시련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데 왜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이번 장은 그런 당신을 위한 것이다.
-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당한 적이 없는 이들은, 사람들 모두는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들은 도전 과제를 갖고 있다. 인권을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도 별로 없고 강렬한 의심과 공포에 시달릴 필요도 없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자기 멋대로 지어낸 환상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이런 환상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공포, 부적절한 느낌, 당혹스러운 어색함, 갈수록 복잡해지는 고뇌의 뿌리에 유린당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 만약 유린당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면,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문제에 버금갈 만한 문제를 갖고 있음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유린의 경험이 끔찍하지 않다거나 비정상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범죄의 엄중함을 폄하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줄, 하지만 문제가 없는 삶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쇠는 늘 당신과 함께 있었다. 한 개인의 문제는 그것이 타인에게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 혹은 타인의 문제보다 큰지 작은지를 판단할 것이 아니란 얘기다. 두 사람 이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종의 공동 창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 즉 일어난 일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선택은 오직 당신 혼자 창조한 것이다. 당신이 왜 그 사건에 관여하게 됐느냐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일로부터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을 포착하고, 그 선물을 신중하게 이용해서 당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당신이 다음에 설명하는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차이에 걸려 넘어지지만 않으면, 당신의 왕국은 반드시 온다. 설령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확률이 당신에게 불리하게 조작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러한 단계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1단계: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상상하라. 마음으로, 혹은 생각으로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상상하라.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상상할 필요가 없다. 상세 계획에 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지 말고, 그 일이 완료된 상태에 집중하면 된다.
2단계: 매일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여라. 몸을 움직여, 당신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뭔가를 하라. 실현될 꿈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노력이다. 그래서 당신의 행동은 늘 허망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은 필수다. 당신은 샴페인과 캐비아를 꿈꾸지만, 편의점 알바 면접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처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꿈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당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도 괜찮다.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라.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방향으로든 움직여라.
- 당신의 생각은 고유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갖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 인생의 소품과 연기자, 환경들을 마치 줄로 조종되는 인형처럼 여기저기로 옮겨 배치하고 당신을 이끌어 일생일대의 우연한 사건이나 예기치 않은 행운과 맞닥뜨리게 한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은 당신이 생각해왔던 것들을 서서히 완벽하게 반영하는 세계로 당신을 인도한다. 하지만 당신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오프라 윈프리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우연한 사건이나 행운 같은 것은 일어나기가 힘들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굉장하거나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삶의 마법이 작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 세부사항은 별 의미가 없다. 그것들이 아무리 멋지고 재미있고 강렬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의 삶에 세부사항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고, 세부사항이 스릴 넘치고 재미있을 리 없다는 의미도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 하지만 당신이 특정 세부사항을 고집하고 거기에 집착한다면 그것들은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쓰디쓴 좌절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첫째, 특정 세부사항은 당신의 원대한 계획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라.
둘째, 세부사항이 특정 경로, 특정 인물과 지나치게 얽혀 있는 경우 완전한 발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라.
- 생각을 '결정', '의도', '말', '행동'이라 바꿔 불러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유일한 삶의 변수다. 당신이 생각할 것이란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변수가 된다.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당신은 그 여행을 공들여 가꾸어 나가거나, 별생각 없이 놓아두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삶이란 배를 소중한 마음으로 운행할 수도 있고, 바다 위에 표류하게 내버려 둘 수도 있다.
- 크건 작건 당신이 의사 결정을 해야 했던 교차로마다 분화가 일어났다. 경로를 살짝 벗어난 경우라면 대개는 돌아와 합쳐졌다. 하지만 보다 큰 교차로는 심각하게 다른 경험, 완전히 다른 인생, 다른 직업, 다른 배우자와 자녀들, 다른 교훈과 발견 등 모든 것이 다른 경험을 불러왔다. 그리고 모든 현실 버전마다 그 핵심에는 당신이 있고 당신의 생각, 신념, 기대들이 있다. 생애들 안에서 수백 혹은 수천의 생애를 살게 되지만, 분명히 각각의 화신化身은 당신이다. 충격적이게도, 이 모든 화신에 동력을 공급하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도 그것을 안다! 말이 되는 것이다! 전압, 회전력, 양력, 마력 등 당신이 환영의 측면에서 힘을 측정했던 방법은 영적으로 힘을 측정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당신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나 여자, 아이 누구나 몇 마디 말로 산을 옮길 수 있다. 단지 음조만이 문제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쯤이면 당신은, 동물들 자신도 음식으로 소비될 개연성을 미리 알았을 거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렇다, 동물들은 그걸 알고 여기에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삶을 선택하기 전에 자신이 유린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중에 따라오는 유린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 '잡식 동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해 보이는 해결책이 궁금하다면, 동물을 먹기 전에 자문해보라. '내 앞에 있는 고기를 먹는 것이 나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다른 음식보다 선호해서인가?' 의심할 바 없이 당신이 굶어 죽을 지경이라면, 당신에게 먹히는 동물들조차 자신들의 생명이 당신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당신과 똑같이 '지상에서의 삶'을 갈망하는 다른 종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리뷰자 주 :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읽고 이 부분을 읽으니 마음이 더...)
- 결국에는 사랑과 환영이 공존하면서, 인간성의 표현과 존재의 기쁨을 위한 장엄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창조하는 무대를 만든다. 시간과 공간을 조종하고 굴복시키고 초월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당신의 환영은 자신이 지휘하는 에너지가 연장된 것(당신의 팔다리와 마찬가지다)이 바로 자신임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연관성을 빨리 보게 될수록, 당신은 더 빨리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게 되고,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켜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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