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바딤 젤란드 / 정승혜
원제 : Priestess Itfut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19.05.20
일종의 고전이라 불리는 <트랜서핑 시리즈>를 아직 읽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타프티 시리즈>를 먼저 읽게 된 것이 추후 트랜서핑을 읽을 때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여사제 타프티>에 등장했던 '타프티'가 등장하는 픽션이 아닌 픽션이다. 꿈속을 헤매고 다니며 그 책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타프티를 먼저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그 책의 강한 어조와 독자를 조롱하는 농담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을 조금 주저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타프티(Tafti)'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 '잇파트(Itfat)'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즐겁게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소설의 형태이기도 하고,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어 두께에 비해 수월하게 읽힌다. <여사제 타프티>에서 가르쳐주었던 '땋은머리 사용법'을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실천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각종 동화들이 뒤섞인 환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다
'어제의 내가 과연 오늘의 나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세계를 이동하는 것은 '나'라는 의식을 가진 '주의'이며, 그것은 각 세계에 존재하는 '나'의 마네킹으로 육화 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일뿐이며 내가 기억하는 과거와 예상하는 미래는 현재의 필름에 가장 가까운 가능태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어제의 나'란 존재한 적이 없는 존재이다. 그렇게 '기억'하는 현재의 내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타프티가 말해주지 않은 것>을 <트랜서핑>보다 먼저 읽게 될 것 같은데, 그 책에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크다.
즐거웠다.
-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 일어난 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내일 일어날 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아무것도 쉬운 것은 없으며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 말이다. 어제는 어디로 사라졌으며 내일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면, 어쩌면 어제와 내일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오늘과 바로 지금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어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고, 내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시간은 어디에서도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혹은, 그런데도 어떤 물리적 현상이기는 하다는 말일까?
- 자, 미래는 시간과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헛된 개념이다. 과거는 그래도 제법 현실적이다. 수많은 유적이 과거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깨진 그릇들과 고적들은 그저 낡아버린 현재에 불과하다. 그런 과거의 표면 위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러면 그 사건들은 애당초 어디에 보관되는 것일까?
-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사실 과거는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이 그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별들은 자기 자신을 태우며 빛을 내다 소멸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전에 생겨났든 우리는 지금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별들도 수백만 년 전에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는 그저 광선 안에 유지되는 것일 뿐일까?
- 그때였다. 스승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내용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꿈에서 생시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누군지, 정말 나는 누구인지 자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나는... 이건 내가 아니야." 그녀가 큰 소리로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나다!"
하지만 그녀의 주문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선언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만약 그녀가 끝내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바람처럼 들려오던 속삭임이 말한, 온전하게 그녀 자신의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여기서 '온전하게'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 또 다른 기억이 그녀에게 희망의 섬광을 일으켰다. 꿈속에서 정신을 차려야만 꿈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보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뭔가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왜 이상한지 고민해야 한다.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다.
- "메타현실이다." 속삭임이 움직이기를 멈추고 말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사방에서 들려왔다.
"메타 현실이 무엇이냐?"
"현실의 복제품이지."
“오 세상에, 더 자세하게 알려주지 못하겠느냐? 복제품이라니?"
"모든 것의 시작이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것의 출발이지."
"이 도시는 뭐지?"
"있을 수 있었던 것을 본떠 만든 모델이다."
- "나는 등 뒤에서 뭔가 이상한 감각을 느낄 때가 있어." 마틸다는 등 뒤를 열심히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어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 리본에 집중하면서 뭔가를 강하게 바라기만 하면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면서 내가 상상한 그 일이 일어난 게 말이야!"
"정확히 어떤 감각을 느낀 거니?"
"날개뼈 근처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나른한 느낌이었어. 뭐랄까 마치..."
- "현실은 마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숨겨진 생각처럼 몸의 앞쪽이 아닌 등 뒤쪽에서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에 의해 통제된다. 뭔가를 아주 격렬하고 간절하게 원한다면 너의 바람이 정말로 일어날 것이라는 속마음이 되도록 해야 한다. 뭐 이런 거였어."
"정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는걸." 마틸다가 말했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게 원래 뭐라는 거야?"
"아주 희미하게는 기억이 나는데." 잇파트가 말했다. "마치 기억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이 그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다는 느낌이야. 그것도 조금씩 일부만 기억나."
- "내가 배웠던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과, 현재에 일어나는 일,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은 전부 같다는 사실이야."
"무슨 뜻이야?"
"전부 똑같다는 말이지."
"파티, 이번엔 네가 뭔가 너무 어렵게 설명하고 있어. 하나도 모르겠다고!"
"너의 언어로 말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일과 현재에 일어나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전부 영화야. 전부 과거에 미리 촬영되었던 것들이거든. 오래전에 촬영되고, 나중에 일어나거나 일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거지. 이해하니?"
"어떻게 그런 일들이 과거에 기록되었다는 거니? 누가 그걸 기록했는데?" 마틸다가 놀라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어. 완전히 기억이 나질 않아. 그저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과거에 일어났던 일, 현재에 일어나는 일,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은 전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아."
"어떻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모델이 있고, 그 모델의 원래 모습인 현실이 존재한다고 상상해봐. 이미 일어난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과거와 미래의 모델이야. 지금 일어나는 일은 현실이고, 모든 모델과 그것의 원래 모습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헬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인데!" 마틸다가 말했다.
- "틸리, 잊지 마, 생각을 할 때조차 조심해야 해." 잇파트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거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오직 생각과 조건만이 있을 뿐이야. 네가 생각해낸 조건들은 반드시 현실에 영향을 준다고."
"조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현실이 어떤 상태여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을 조건이라고 하는 거야."
- "글을 쓰고 등장인물을 삭제하는 일을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브룬힐다가 물었다.
"작가가 된 이후로," 야옹이가 대답했다. "책에 쓰인 것들이 자주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의 현실에서는 무엇을 쓰든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죠."
- 우리의 주인공들에게 뭔가 믿을 수 없는, 심지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첫째로, 지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독자 여러분은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들이 겪은 일에 놀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이 책에서는 '현실이 알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어떤 것이 불가능한 일인지 권위를 가지고 선언하기에 인간은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이미 익숙해진 선입견을 벗어던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일들이 가득한 아주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적다.
-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는 120억 광년 전의 모습이다. 천문학적인 단위이다. 그 전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다음엔 뭐가 있다는 말인가? 우주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오직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찌 됐건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우주는 140억 년 전에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지점보다 한참 과거의 일이다. 물론 만약 '모든 것이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빅뱅 이론이 올바른 이론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천문학적인 범위를 넘어서면 몇십억 광년인지 모를 만큼 멀리 떨어진, 보이지 않는 은하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또 무엇이 있을까? 무한한 공백? 과학자들에게는 오직 보잘것없을 정도로 작은 현실의 일부만 보인다면 사실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러니 그곳에는 여전히, 끝없는 무지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지구에 있는 모래알 전체의 개수는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보다 적다. 그리고 모래알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수는 모든 별들의 숫자보다 많다. 모래알 속에는 원자의 우주 전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원자 속에 존재하는 우주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왜냐하면 모래알 속을 향하는 것도 지구의 바깥을 향해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우주에 대해서, 아니, 실제에 대해서 우리의 지성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꿈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실물처럼 느껴지고 전부 만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걸요. 그러면 진짜 현실과 가짜 현실은 뭐가 다른 거죠?"
"그거야 물론!" 잠수함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진짜 현실에서 살고 있고, 꿈은 잠들었을 때 보는 것이죠!"
"여러분은 똑같이 꿈에서도 잠들 수 있어요. 그리고 꿈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고요." 카라밀라가 대답했다. "그러면 첫 번째 꿈이 진짜 꿈이고 두 번째 꿈은 진짜가 아닌, 삽입된 꿈인가요?"
-"이건 우리 몸에 남아 있는 흔적 기관인데 마치 땋은 머리처럼 생긴 에너지 다발이야. 평소에 땋은 머리는 눈에 띄지 않지만 영화가 멈췄을 때는 그것이 보이게 돼. 보여?" 잇파트가 마틸다에게 옆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네 머리에도 똑같은 것이 달려 있어!"
"등 뒤에 뭔가... 뭔가 나른한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어..." 마틸다는 두 손으로 뒤통수를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만져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걸." 그녀가 놀라며 말했다.
"땋은 머리는 만질 수 없어." 잇파트가 대답했다. "있는 듯, 없는 듯, 몸의 가짜 기관처럼 느낄 수밖에 없지. 사람들이 팔을 절단하고 난 뒤에도 팔이 있다고 느끼는 것과 똑같아. 너는 등 뒤에 무슨 느낌을 가지기라도 했지만, 나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어. 그 느낌 자체를 잊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드디어 기억해냈어! 나의 땋은 머리가 느껴진다고!"
"하지만 나는 네가 말한 그런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데." 마틸다가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등 뒤에 집중할 때만 어떤 느낌이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야."
"바로 그 감각이야!" 잇파트가 외쳤다. "바로 그렇게 느끼는 거야! 땋은 머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일 때만 활성화되는 거야. 그럴땐 등에서 살짝 올라가기도 하지, 보여?" 잇파트는 마틸다에게 다시 자신의 땋은 머리를 보였다. "여기에 집중했더니 조금 올라갔지. 하지만 집중하기를 그만두면 다시 내려가는 거야."
- "주의는 기울이되 고개는 숙이지 않아야 한다. 찬양하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아야 한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창조주와 함께 창조를 해야 한다.” 잇파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그분과 함께 창조를 할 수 있습니까?" 거인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우리는 그분보다 낮은 존재가 아닙니까!"
"너희가 낮다고? 그것도 아주 건방진 생각이구나." 잇파트가 대답했다."너희는 그와 동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창조주는 애초에 그의 모습을 본떠 그의 모습과 비슷하게 너희를 만들었다. 그가 왜 그렇게 했겠느냐?"
“저희가 그에게 고개 숙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의 모습을 본떠 그의 모습과 비슷하게'라고 했다. 왜 하필 이렇게 말했겠느냐?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이느냐? 그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그들을 존중한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창조주 자신이 직접 결정했겠느냐? 아니다. 그는 그렇게 부질없는 것들을 결정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그는 창조한다. 너희와는 다르게 그는 할 일이 전혀 없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반면 너희는 창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잇파트가 계속했다. "계속해서 놀라고, 전쟁과 파괴를 만들어내기만 한다. 너희는 그에게고개를 숙이면 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 살생을 저지르고 뭔가를 파괴해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거인은 받침대를 향해 몸을 돌려 두 팔을 뻗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명령하노니 이루어지거라!"
드디어 나머지 동상들이 깜짝 놀라고 마틸다와 잇파트가 만족할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성공한 것이다. 받침대들이 사라지고 그자리에는 타프티의 실제 세계에서 본 것과 꼭 닮았지만 크기만 동상의 키에 맞도록 훨씬 커진 아름다운 집들이 나타났다.
"놀랍구나!" 잇파트가 외쳤다.
"브라보!" 마틸다가 외쳤다.
"오오오! 우우우!" 동상 무리가 외쳤다.
"다음은 누구냐?" 잇파트가 물었다. "용기를 내어라!"
무리에서 용감한 동상이 나와 두 팔을 내밀고 외쳤다. "명령하노니 이루어지거라!"
그러자 체스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온갖 도로와 산책로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 바다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우리를 놀리고 있어!" 마틸다가 격분하며 말했다.
"맞아, 현실은 간혹 사디스트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지." 잇파트가 말했다.
"이제 어쩌지?"
"저쪽으로 갈 방법을 찾아야지."
"만약 절대로 우리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내 기억으로는," 잇파트가 말했다. "뭔가 불쾌한 일이 일어났을 땐 현실을 보고 그 속의 나를 봐야 한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 같아. 틸리, 너는 무엇이 보이고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니?"
"나는 바다가 보이고 바다로 가고 싶어! 저거 말고 보이는 것이 또 있겠어?"
“바로 그거야! 너는 그걸 너무 간절히 원하고 있어."
“너무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너무 간절히? 그러면 너는 원하지 않는단 말이야?"
"원하지,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간절한 바람은 현실을 왜곡시킬 뿐이야. 그러면 현실은 너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려고만 하지."
"우와, 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야. 작용은 반작용을 낳는다. 그러면 원하기를 그만두라는 말이니?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네가 현실을 어떤 방법으로 왜곡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파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현실을 볼뿐 아니라 그 속의 너를 봐야 하지. 하지만 너는 지금 너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데? 나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원하면서 살아왔지만, 그게 지금처럼 나를 이렇게 고삐에 매어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우리가 메타 현실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어."
"알겠어, 그러면 나 자신에게 확실하게 말해둬야겠어.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바라는 것이 정말로 사라질까?"
"바람을 포기할 수 없다면 꾸며내야지. 현실을 속여야 해."
"꾸며낸다고? 그건 할 수 있지." 마틸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자. 뒷걸음질 쳐서 저쪽을 향해 가는 거야."
"아하하! 틸리-틸리! 그거 너무 터무니없어서 오히려 효과가 있겠는데? 너 정말 똑똑하구나!"
"맞아, 터무니없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난스럽게 웃으며 바다를 등진 채 뒷걸음질 쳐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말로 현실이 그들에 대한 반작용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들은 원래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파티!" 마틸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효과가 있어! 얼른 가자!"
- "응, 그러니 이제는 사슬의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영화에서 연극을 거쳐 삶으로 거슬러가는 거지."
"하지만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여기에서 연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야?"
"아니, 어떻게든 우리 자신의 영화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아나야만 해.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어."
"마치 영화의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살아나 화면 밖으로, 관객석으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니?"
"응, 비슷해."
- "꼭 그렇지는 않아. 너는 순결함이라는 것이 완전히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니?"
"음. 우리 세계에서는 '영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정신적으로 위대한 가치를 가지도록 요구하곤 하니까.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저속한 육욕'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곤 하지. 하지만 어떻게 그런 문제들에 대해 논할 수 있겠어? 종교인들이라면 오직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잖아."
"너희 세상의 종교인들은 옳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너희 세계의 극장에서도 죄악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의 한 측면을 보여줬을 뿐이야. 심지어 사랑의 한 측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내가 말했잖아,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게 마음에 들 수 있지?" 마틸다가 놀랐다.
"사랑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으니까. 바로 부드러움과 힘이야."
"부드러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힘은 어떤 힘을 말하는 거야?"
"그 자체의 힘이지 표현하는 힘이나 어느 정도는 공격적이기도 한 그런 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성?"
"그런 공격성이 아니야. 사랑에 빠지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워."
"섹스를 말하는 거니?"
"그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처럼 사랑도 역시 이중적이야. 그 속에는 부드러움과 힘이라는 두 가지 본질이 있지.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서 하나가 되는 거야. 부드러움이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부드러움은 그저 달콤한 시럽에 불과해. 심지어 약을 먹을 때도 그 약에 어느 정도의 독이 들어 있어야 효과를 낼 수 있다고."
- "파티! 너는 이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예전에 배웠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것들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너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네 말은, 사랑에는 두 가지 본질이 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아까 그 연인들에게는 어떤 본질이 깃든 걸까?"
"부드러움은 금색이고 힘은 짙은 빨간색이야. 그들에게는 아직 부드러운 감정만 발현되어 있어. 하지만 그건 시간문제에 불과하지."
"아하! 그래서 네가 이런 분장을 하고 있었구나, 파티! 그래서 네가 핏빛 분장을 하고 있는 거였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나는 다양한 분장을 할 수 있어. 아마도 내가 힘을 얻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핏빛 분장을 했나 봐."
- 그녀에게서 이따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야수의 표정 역시 먹구름보다도 어두웠다. 그는 자신이 아주 잔인하고 모질게 그녀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처녀는 무척 슬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야수에게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아주 아팠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의 무관심을 계속 느끼는 것은 그보다도 더 마음 아픈 일이었다.
- 야수는 부락이 보이는 장소까지 그녀와 함께 걸어갔고, 그 이후부터는 혼자 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돌려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더 이상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가 없는 자신의 동굴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동굴에는 자신의 여자가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의 여자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수의 몸은 매우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처녀가 삶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도 야수에게 내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단 하나의 이유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야수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런데 가만 보니, 그녀가 야수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가 야수를 사랑하는 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처녀가 왜 그런 척을 해야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녀가 왜 야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가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줬기 때문에?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서, 또는 목적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처녀와 이별한 뒤, 동굴 속의 삶을 어떻게 이어갔는지 야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처녀에게 못되게 굴었고 잘못된 방식으로 그녀를 대했다는 것, 그리고도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했었던 것에 대해 끊임없이 자책하며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그의 심장은 차가워졌고 바로 그 때문에 그가 지금처럼 짐승 같은 모습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 하지만 정작 그 자신만큼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가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가 브룬힐다에 대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주 우스울 정도다. 마치 그가 한때 아주 못되게 굴었던 것에 대해 창조주가 고의로 그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도 창조주는 야수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벌을 내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사람이라는 감정이 생기는지,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지, 그러면서도 왜 상대방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없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고,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냥 사랑하는 마음을 접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랑은 질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질문을 할 수 있든 말든, 하고 싶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질병처럼 당신을 감염시키는 것이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저 당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질병이라고? 좀 전에 보았던 '탈애 테라피'라는 치료 과정의 이름이 갑자기 야수의 눈에 번쩍 띄었다. 그중에서도 '당신은 아주 조금도 사랑받을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그의 마음에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그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은 느낌 말이다.
- "틸리, 아무 이유 없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을 말하지 마. 오직 특별한 상황에서만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을 거야. 나도 너의 이름을 그렇게 부를게."
"그건 왜? 왜 그건?"
"이곳에서 두 번째 이름은 뭔가 신비로운 힘을 가지는 것 같아. 내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갑자기 기억과 지식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어. 하지만 모두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내 머릿속엔 안개만 다시 가득해진 느낌이었어. 지금 네가 그 이름을 또 부르니 내가 꿈의 세계에 대해 알았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어."
"그게 뭔데?"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메타 현실과 꿈의 세계는 똑같은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언젠가 가르쳐줬던 거 기억나니? 우리가 꿈을 꿀 때 주의가 이곳으로 오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주의뿐만 아니라 육체도 이곳에 있어."
"그래, 그게 왜?"
"꿈은 관찰자가 있을 때만 재생돼. 만약 관찰자가 없다면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버리지. 모든 사건과 모든 시대는 하나의 끝없는 풍경 속에서 전부 얼어버리는 거야. 시간의 흐름도 사라져 버려. 하지만 꿈을 보는 사람의 주의가 이곳에 연결되기만 하면 멈춰 있던 장면이 다시 재생되지 시간이 흘러가도록 주의가 전원 버튼을 누르는 거야. 다시 말해 메타 현실 속의 시간은 오직 주의가 이곳을 날아다니며 보고 있기 때문에 흘러가는 거야."
- "나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우리는 바닥과 벽에 거울을 설치했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관객들이 구분할 수 없게 말이야. 뭐 그런 것들이었어."
"거울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는 안 돼. 현실 자체가 거울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모델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싫어하거든. 현실도 똑같이 네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 예를 들어 네가 한 것처럼 말이야."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현실은 누군가 자신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건 왜지?"
"양자역학에 그런 개념이 있어.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하지."
"틸리, 너는 어디서 그런 어려운 말을 알게 된 거니?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맞아! 하지만 지금 나는 틸리가 아니라 일리트야! 예전에 만났던 애인이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어. 그래서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나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거든. 그때 그가 말해준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는 기억에 남았지."
- "자, 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것은 만약 현실을 계속해서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미끄러져 나가 버린다는 데 있어."
"미끄러져 나가 버린다는 게 무슨 말이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기 싫어한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 빛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뭔지 알아내려고 끈질기게 매달린다면 빛은 절대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직선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작은 단위로, 양자로 흩어져버리기도 해. 빛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더욱더 알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리는 거야."
"틸리, 모든 것이 놀라워, 아주 훌륭해! 나 기억이 돌아왔어!" 잇파트는 마틸다의 손을 놓고, 뭔가가 걱정스럽거나 불안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의 드레스 치맛자락이 그리는 빛의 소용돌이가 밝게 빛났다.
- "알겠어, 알겠어. 이곳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내가 현실을 너무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었어."
"무슨 뜻이야?"
"그런 훈련이 있어. 꿈과 생시 사이의 경계에 있을 때 현실의 본질이 눈앞에 펼쳐질 수가 있거든."
"그래서 네 눈앞에도 뭔가가 열렸니?"
"응, 나는 현실이 연속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네가 말한 그 빛처럼 작은 파편으로 흩어져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어."
- "난 그저, 내가 어떻게 영화 장면 속의 등장인물이 된다는 건지 믿기가 힘들어."
"그러니 관찰자가 되어야지! 등장인물로 존재하는 것을 그만두려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감정은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깨우는 역할을 해야 해. 그건 반대의 습관을 들이는 거라고 볼 수 있어."
"파티, 그 말은, 너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꾸준히 노력만 하면 너도 그런 습관을 가질 수 있어."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마틸다가 물었다.
"나의 세계에서 현실을 보는 자들은 그런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배워." 잇파트가 답했다. "만약 네가 뭔가에 대해 겁을 먹거나, 걱정되거나, 화가 나는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잠에 빠지듯이 그 감정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거지. 감정적인 실신 상태와는 다르게 의식의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올바르고 분명하게 행동할 기회를 주는 거야."
"그러면서 대리석 조각이 되어가는 거 아니니? 감정도, 고통도 없는..."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말이 아니야! 네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감정이 거칠어지도록 내버려 둬도 돼.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미워해. 다만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해."
"훌륭하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면서도 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의식적으로 하라는 말이니?"
"고의적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 둘을 헷갈리면 안 돼. 의식의 상태에 있다는 말은 의도를 가지고,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원하는 만큼 장난을 쳐도 돼. 하지만 네가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싫어하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말이야. 너의 주의를 통제해야 해. 그것이 어디에 있고 무엇의 통제를 받는지 계속 감시해야 해. 네가 그것을 통제하는지, 또는 네가 연결되어 있는 영화 장면이 통제하는지 말이야. 자신의 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 "그러면 그 의식의 상태라는 거 말이야. 그 상태로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니?"
"아주 간단해. 자신의 목격자를 활성화시키면 돼."
"그건 뭐야?"
"자신의 주의에 대한 주의지. 마치 조종 장치 같은 거야. 목격자는 네 주의가 어디에 있고 지금 네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어.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는지, 또는 외부, 그러니까 너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집중하고 있는지 말이야. 평범한 사람들의 목격자는 거의 항상 잠들어 있어. 그래서 그들의 주의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지. 반대로 현실을 보는 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그 공간 속에서 어떤 징조가 살짝만 보여도 그 속의 목격자가 바로 깨어나서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는 주의를 끌어내 더 높은 상태로 옮겨두게 되는 거야.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이는 의식의 중심에 두는 거지."
"아, 그런 거구나!" 마틸다가 외쳤다.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나의 주의가 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볼 수 있어. 현실이 보이고 동시에 그 현실 속의 나를 볼 수 있지. 헬라! 나는 자기 자신을 감시할 수 있어!"
- "맞아." 잇파트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감시할 때 목격자가 활성화 돼. 그는 잠들어 있지 않고, 너는 너의 행동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바람이 있을 때마다 목격자를 바로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그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그런 상황은 너의 주의를 삼켜버려서 결국 너는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꿈, 즉 실신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거야."
"어머, 맞는 말이야! 그러면 제때에 정신을 차리는 방법은 어떻게 익힐 수 있지?"
"그렇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놔야 해. 말 그대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뭔가가 나를 화나게 하거나, 뭔가가 나와 이 주변의 현실에 맞지 않을 때마다 곧장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 이렇게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거야."
- "그 감각이 뭐야? 그리고 어디에 있는 거야?"
"날개뼈 사이 부근이거나 그보다 조금 아래에 있어. 그리고 등에서 한 뼘 정도 떨어져 있지. 그 부위에서 뭔가 나른한 감각이 느껴질 거야.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워. 음... 한번 이렇게 해봐. 너의 몸 앞쪽, 가슴 한가운데를 뭔가가 관통해서 등 쪽으로 찔러 넣고 있다고 상상해봐. 그리고 그것이 등 쪽으로 튀어나온 거야. 무엇이 너의 몸을 관통했는지, 무엇이 등에서 튀어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 느낌이지. 그다음 그 감각을 등 뒤의 그 부위에 고정하고 네가 원하는 것을 상상하는 거야."
"알았어. 한번 해볼게."
잇파트가 그 말을 마치기도 채 전에 원기둥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곳에서 온갖 음식이 연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타프티-타프티!" 마틸다가 외쳤다. "사제여-사제여! 세상에! 이렇게 잘하면서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두렵다고 이제까지 불평한 거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었던 거니?"
"속마음을 사용해서 충동적으로 한 것뿐이야. 네가 설명해주는 동안 나는 계속 그 감각을 상상하고 느꼈어. 그리고 곧바로 맛있는 음식들을 상상했지. 우리 세계에서 명절마다 먹는 푸짐한 상차림 말이야."
- "현실은 의도적인 노력이나 명령의 지배를 받지도, 그렇다고 부탁이나 기도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는 점. 대신, 순간적으로 슬그머니 생기는 어떤 속마음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지." 잇파트가 말했다.
"그러면 그 속마음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거야?"
"때로는 저절로, 갑작스럽게 생기기도 하지. 하지만 의도적으로 속마음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 만약 간절하고 강하게 뭔가를 원한다면 그 바람이 속마음이 되도록 해야 해."
"하지만 나는 그런 속마음이 없이도 이 원기둥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어."
"그건 이 돌무덤 속에서나 가능한 거야. 이곳에서는 전부 쉽게 이루어져.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그보다 훨씬 어렵지. 메타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내가 죽음으로 이끌려가고 있을 때 나는 아주 간절하고 강하게 그 모든 일이 끝나기만을 바랐어. 그리고 그때도 성공했다고."
"그때 너의 손잡이를 사용한 거야. 물론 간절한 바람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속마음을 손잡이와 함께 사용하면 그건 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거야."
"나는 속마음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마틸다가 말했다.
"나도 아직은 확실하게 기억해내지는 못하겠어. 그저 현실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것을 싫어하고, 간절한 기도에는 무관심하다는 것만 알아. 그렇지만 속마음은 바람도 아니고, 명령도 부탁도 아니고 오히려 허용을 하는 것에 가까워. 현실은 마치 아이와 같아서, 그것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좋아해."
- 잇파트는 이번에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원기둥을 향해 다가가서 고개를 숙인 상태로 약간 몸을 살짝 구부렸다가 한 번에 몸을 펴며 어깨에 손이 닿도록 두 팔을 구부렸다. 그러자 원기둥에서 목이 가늘고 긴 호리병과 두 개의 정교한 찻잔이 올려져 있는 조각이 밀려 나왔다.
"파티, 방금 한 동작은 뭐야?" 마틸다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였어." 잇파트가 대답했다. "이 동작은 내가 한두 번 했던 동작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왜 이 동작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
"왜 필요한 건데?"
"순간적으로 손잡이를 활성화시키는 느낌이 들었어."
“흥미롭네.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마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잇파트가 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맞아, 뭔가가 느껴져. 하지만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네가 그 순간에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그래. 손잡이가 활성화되면 조건을 만들어야지. 다시 말하자면 속마음을 만들어내야 해. 그래야 네가 생각한 것이 실현될 수 있어."
"아, 그래,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지."
"지금은 원하는 것을 생각해서도 안 돼. 속마음이 있다면 손잡이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자, 너의 음료를 한번 마셔볼까!" 마틸다가 찻잔 하나를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굉장한 칼람바군!"
- "틸리, 너를 깨우지 않고 그저 밖을 내다봤는데, 웬 회색빛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뭐야. 너무 갑작스럽게 나에게 달라붙어서 놀랄 틈이 겨우 있었어."
"놀랄 틈도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니, 놀랄 틈이 있었다고 정확히 말한 거야. 위험이 빠르고 갑작스럽게 덮쳐올수록 그만큼 제대로 단단하게 놀라버리게 돼. 그러면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고."
"정신을 차리다니, 무슨 뜻이야?"
"잠에서 깨어난다는 말이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현실을 보고 그 속에서의 나를 봐야 해. 반대의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 이해하겠니?"
"그래, 현실을 보는 사람들과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대화를 나눈 적이 있잖아."
"응, 아무튼 그렇게 놀랐는데도 내 목격자는 활성화되지 않았어.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받아들인다고? 뭘?" 마틸다가 놀라며 물었다.
"시나리오를, 하하하!" 잇파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붉은 여왕'이고 나를 어떻게 먹겠다는 거야?"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
"선택의 여지는 항상 있어.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둘 중 하나지. 받아들인다면 너는 영화에 사로잡히고 등장인물이 되고 말 거야. 게다가 관찰자가 잠들어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항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 "파티, 나 이해할 수가 없어, 나를 먹겠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그 말에 반대해도 좋아. 하지만 그건 다른 일이지.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것, 가능성이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야. 꿈속에서는 어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든지 전부 진지하고 현실처럼 보이지. 전부 익숙해진 일이니까. 현실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만 일어나잖아."
"그러면 받아들이지 않는 건 무슨 뜻이야?"
“네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야.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 시나리오를 바꿀 수 있어."
"만약 그게 꿈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지금 잠들어 있는 게 아니잖아?"
"똑같아.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지. 시나리오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바꿀 수 있어.”
"그러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면? 만약 일어나고 있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나 나나 충분히 잡아먹힐 수 있었잖아."
"하지만 너는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안간힘을 다해 너 자신에게 '이게 내 현실이라고? 아니야, 이건 내 현실이 아니야. 내 모든 일이 잘될 거야'라고 말했잖아."
"나는 내 손잡이를 사용했지. 그런데 너는 뭔가 다른 걸 사용한 것 같구나."
"응, 나는 시나리오를 깨버렸어."
- "그게 다야. 그러면 뭐가 더 있기를 바랐니?"
"음, 보통 모든 사람은 저마다 더 높은 수준의 본질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잖아."
"영혼! 그래 맞아 가지고 있지. 다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감지하거나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자각하지 못해. 더 높은 수준의 본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런데 어떻게 의식을 하지 못할 수 있지?" 마틸다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나는 나야! 나는 나잖아!"
"물론 너는 너지, 하지만 오직 그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했을 때 뿐이야. 너는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돌려놓았을 때에만 너 자신이 될 수 있어. 그것을 외부에서 재생되고 있는 영화와 내부의 생각에서 끌어냈을 때 말이야. 오직 그때만이 '너는 너'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야. 그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의식이 없는 등장인물이고, 영화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너는 너 자신을 자각하지도 못하고 너 자신을 통제하지도 못하지. 왜냐하면 너의 주의조차 어쩌지 못하니까."
"꿈과 생시 모두에서?"
"모두 똑같이."
"라하! 알겠다! 파티, 이미 이 주제에 대해서 여러 번 얘기했잖아, 그런데도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 이 모든 게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우니까."
- "파티!" 단둘이 남게 되자 마틸다가 외쳤다. "이제 알겠어!"
"뭐를-뭐를?" 잇파트가 물었다.
"전부 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네가 한 질문의 의미가 뭔지 말이야. 내가 자신에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나는 꿈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있는 거야. 그게 왜겠어?"
"왜일까- 왜일까?"
"왜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의도된 일이 아니라도 군말 없이 받아들이게 되니까.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고, 내 주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 거야. 나는 그저 아무 의식도 없이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만 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무력하게 발버둥 칠 뿐이겠지."
"전부 맞았어, 틸리. 이견 없이 수동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해야 하는 일을 전부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가능한 일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거고. 그런 일들을 전부 받아들인다면 분명히 꿈에 빠져버리겠지. 우리가 '받아들이는지 받아들이지 않는지'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해? 꿈을 꿀 때면 너는 무력하고 온갖 터무니없는 일들을 겪게 되지. 해야 하는 일을 네가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말이야."
"바로 그거야, 파티! 꿈을 꿀 때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의지도 없고, 나 자신을 통제하지도 못해. 그리고 외부의 뭔가에 조종당하지. 바로 꿈에게 조종당하는 거야. 하지만 생시에서도 똑같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차이도 크지 않지." 잇파트가 지적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마틸다가 말을 이었다.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말이야.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가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하는 거야. 만약 내가 그 일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내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에게 일어나버리니까."
"맞아. 만약 받아들인다면 영화가 너를 통제하게 되고 너는 등장인물로 변하게 되는 거지."
“응. 하지만 내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이거야. 그렇다면 '언제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라는 거. 그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있을 때지! 그 말은, 깨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것이 나의 현실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말이 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누구의 것인가? 나는 스스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영화가 나를 끌고 다니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지."
"전부 맞았어, 틸리."
“그러면 이제 그 의미에 대해서 말이야.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은 전부 알겠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너는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이었어. 이건 길 잃은 아이들에게나 물어보는 아주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말이야."
"아하하!" 잇파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바보 같네."
- "이상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나의 목격자를 활성화시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거야. '이제 나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나 자신의 것이다.'"
"역시 마틸다, 정말 똑똑해!" 마치 학생을 대하듯 잇파트가 칭찬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뭐였는지 기억하니? 목격자를 깨우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지?"
"주의가 어디에 있고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해. 나인지 아니면 영화 속의 장면에 조종당하는지 말이야. 간단히 말하면 현실을 지켜보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목격자를 활성화시키는 거지.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현실을 보고 그 속에서의 자신을 봐야 해."
"좋은 일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야. 오히려 더 자주 봐야 하지. 우리 현실을 보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말하는 거지."
"글램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맞아 맞아, 그것도 맞는 말이야."
- "하지만 왜 악해진 거지? 마네킹이 그렇게 악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런데 우리 자신이 마네킹처럼 되어버렸어!"
"그래,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는 주변 환경에 적응을 더 잘했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아 있었지."
"그중에서도 마네킹이 가장 둔한가 봐. 마네킹에서 빠져나오길 정말 다행이야!"
"아직은 빠져나오지 못했어, 틸리, 우리는 그들의 영화와 그들의 역할에서 나온 것뿐이지.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몸속에 있다고."
"어머, 그러네!" 마틸다가 다시 문득 알아차렸다. "이 육체에서 얼른 빠져나와서 우리 자신의 마네킹으로 들어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의식이 다시 기회를 엿보다가 잠에 빠지려고 할 거야."
"잠에 빠지면 안 돼! 생각해봐.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무슨 뜻이지?"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의를 통제하는 거야."
"또?"
"네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해. 너 스스로 그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에게 조종당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인지."
"맞아. 주의가 시나리오에 조종당하면 너는 꿈에, 영화에 연결될 거야. 우리는 영화에 연결돼서 자기 자신을 잃었지. 이제 영화 장면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면 자기 자신의 주의를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야 해."
"그만, 파티, 나 완전히 깨어났어!" 마틸다가 말했다. "이제 네가 우리를 이동시켜줄 차례야."
"내 생각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육체로, 우리의 마네킹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면 이곳에 계속 있지 말고 우리의 육체로 얼른 돌아가자."
"그래, 거기에만 집중할게." 잇파트가 말하고는 자신만의 마법의 동작을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살짝 몸을 굽히고는 두 손이 어깨에 닿도록 팔꿈치를 구부리며 외쳤다.
"우-우-우-울---라!"
그러자 두 마네킹은 두 명의 우아한 여인들로 변신했다.
- "파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영화를 멈췄어." 잇파트도 가만히 움직이며 말했다.
"어떻게?"
"아주 쉬워. 내 손잡이를 활성화시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장면을 상상했어."
"그러면 마네킹들의 영화는 멈췄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는 멈추지 않은 거야?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거고? 멋지다!"
- 머리를 땋아놓은 것과 비슷하게 생긴 다발이 달려 있었다. 그 다발은 하얗게 빛나며 마네킹의 날개뼈 사이 부근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끝에서는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파란빛이 나오고 있었다. 다른 마네킹들에서도 똑같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신체 중 일부가 없는 마네킹에서도 말이다. 그들의 땋은 머리는 등이나 허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파티!" 마틸다가 흥분하며 외쳤다. "너에게도 똑같은 것이 있어!"
"뭐? 나에게도?" 잇파트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오, 세상에! 너도야!"
그들은 빛나는 땋은 머리가 그 둘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똑같이 수직으로 바닥을 향해 빛을 비추는 땋은 머리였다. 잇파트는 갑자기 무언가로부터 자극을 받은 듯 소리쳤다.
"틸리, 기억났어, 틸리!"
"뭐?"
"너의 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니?"
"뭐?" 마틸다가 당황스럽다는 듯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너의 주의를 돌려놔야 해! 얼른 자기 자신에게 말해. 나는 나다!"
"나는 나다." 마틸다가 말했다.
"나는 나다!" 잇파트가 반복했다.
그때 두 친구의 땋은 머리가 비추고 있던 파란 불빛이 사라지고, 오직 빛나는 땋은 머리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이제 알겠어, 나의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고!" 잇파트가 다시 외쳤다.
- "사실은 네가 땋은 머리를 느끼고 의도를 선언한 거야. 네가 현실을 선택한 거라고! 네가 죽는 결말이 나오는 그 영화 필름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의 다른 현실을 선택한 거지."
"정말로 현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니?" 마틸다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틸리, 우리가 이 대화를 한두 번 나눴니!" 잇파트가 외쳤다. "우리가 사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
"응, 그때 등장인물들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안 되고, 그저 그들을 통제하는 시나리오를 바꾸는 것만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나리오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러면 도대체 뭘 바꾸려고 해야 하지?"
"다른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영화 필름이지!"
"파티, 처음부터 자세하게 설명해줄래? 다른 현실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야."
"전부 아주 간단해. 땋은 머리에 집중한 다음 그것에서 주의를 놓치지 않은 채 생각과 말과 형상으로 네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장면을 상상하는 거야. 다른 말로 너의 의도를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선택하는 거지. 그다음에는 땋은 머리에서 감각을 놓아도 좋아. 다시 말해 비활성화한다는 말이야. 여기에 대해서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지. 다만 땋은 머리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 거지? 다른 영화 필름으로 이동한다는 말이니?"
"역시 우리 똑똑한 마틸다! 현재의 영화 필름에서 시나리오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할 필요도 없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현실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진 수많은 영화 필름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필름은 전부 다른 사건의 전개에 대한 시나리오를 담고 있어. 현재 영화 필름에는 없지만 다른 필름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네가 필요로 하는 프레임을 땋은 머리로 비추면 네가 그 영화 필름으로 이동하는 거야. 그렇게 된다면 아직은 네 것이 아닌 그 프레임은 너의 실제가 되는 거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실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상력에 땋은 머리를 더하라는 말이야?" 마틸다가 물었다.
"그건 아니야." 잇파트가 대답했다. "그저 상상한 것만으로는 부족해. 너의 확실한 의도, 즉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설정이 필요하지. 땋은 머리를 활성화시킨 다음 그것에서 주의를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는 이것을 원한다'고 의도를 선언하는 거야. 생각으로 상상할 수도, 말이나 형상으로 상상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확신에 찬 의도가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땋은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 거지. 바로 이것이 비법이야. 너는 자유롭게 현실을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있는 거야."
"그게 정말이야?" 마틸다가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네가 마치 구름처럼 자신의 꿈속에서 그저 이리저리 부유하기만 한다면 꿈은 실현되기가 힘들어. 하지만 땋은 머리와 의도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거의 실현되지. 물론 항상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전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어. 그건 전부 너의 선택이 얼마나 복잡한지 네가 땋은 머리를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어. 만약 실현되기 힘든 현실을 선택한다면 그건 목적이 달성된 영화 필름이 지금 네가 있는 영화 필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그 영화 필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지. 이루기 힘든 목표는 일반적으로 네가 하나의 영화 필름에서 다른 필름으로 이동하면서 목표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며 단계적으로 실현되는 거야."
- "그러면 이 땋은 머리를 가지고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니?"
"그럼! 내가 왜 땋은 머리를 흔적 기관이라고 불렀겠니? 사람들이 이 기관을 사용하지 않아서 쇠퇴해버렸으니까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해. 예를 들어 너와 나는 땋은 머리가 남들보다 더 큰 효과를 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해 적잖은 훈련을 거쳐야 하기도 해. 그래서 더 자주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거야. 꿈이 실현되는지 실현되지 않는지 불안해하며 현실에 뭔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말고 그저 너의 의도를 가지고 차근차근 현실을 선택하는 거지."
"파티!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인데! 심지어 다른 존재의 방식이야! 이게 얼마나 기발한지 알고 있니? 말 그대로 외계의 세계관이라고! 우리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 사람들은 뭔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사는 데에 익숙해졌잖아! 나무에서 갑자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으며, 기다리지 않아도 그저 현실을 선택하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 것 같아! 현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니! 이게 얼마나 훌륭한지 알고 있니? 주의를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이야! 네가 주의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줬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었는지 기억해?"
- "그렇고말고! 너를 너 자신으로 되돌리는 거잖아! 내가 한번 정리해볼게.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해 설정을 하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또는 뭔가가 나를 힘들게 한다거나, 나 자신이나 현실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그다음엔?"
"그다음에는 의식의 상태로 들어가 자신의 목격자를 깨우고 의식적으로 행동하기를 시작해야 해. 등장인물도, 관객도 아닌 의식을 가진 관찰자로서 말이야. 그러면 사건이 너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네가 사건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지."
"그러면 목격자가 왜 필요한지도 기억하니?"
"네 주의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구의 통제를 받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지. 너의 통제를 받는지 아니면 네가 속해 있는 영화 장면의 통제를 받는지 말이야. 자신의 주의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돼."
"맞아." 잇파트가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잠들거나 실신 상태에 빠지지않고 반대로 깨어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정반대인 습관을 들여야 해. 그리고 하나 더.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질문을 하는 것을 잊지 마. 네가 그것을 스스로 직접 원해서하고 있는지 뭔가에 이끌려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야."
- "맞아, 그것도 기억나 참, 하나 더 있어, 파티! 이제는 반대의 습관을 하나 더 들여야 한다고 하면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거니?"
"어떤 습관을 말하는 거니, 틸리-틸리?"
"현실에게서 뭔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말이야."
"정말 똑똑하구나, 틸리!"
"아니야, 나는 아직도 네가 말해준 것 때문에 다시 충격에 빠졌어." 마틸다가 계속해서 감탄했다. "정말 외계에서 온 지식 같아!"
"아니야, 틸리, 너와 나는 분명히 같은 행성에서 왔어." 잇파트가 말했다. "나의 세계에도 네 세계와 똑같이 해와 달이 있어. 그저 우리의 세계는 시간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야."
"그래도 너무나 멋진걸! 너는 그 지식이 있는 곳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지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겠지. 비록 지금은 그중에 많은 부분을 잊은 상태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문제고, 금방 기억이 돌아올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놀라울 뿐이야! 또 다른 훌륭한 거 기억 안 나, 파티?"
"기억나지!"
"그런데 왜 이게 흔적 기관이 된 거니?" 마틸다가 물었다.
"먼 옛날, 창조주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처음 만들었을 때 그 사람들은 현실을 통제할 수 있었어. 그야말로 땋은 머리를 완벽하게 사용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능력을 잃게 되었어. 왜일 것 같니?"
"왜?"
"자신의 영화에 빠져버렸거든. 마치 수족관 속의 물고기처럼 그저 자신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은 주의를 통제하는 것을 그만뒀지. 아주 중요한 건데 말이야. 그리고 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땋은 머리에 대해서도 잊게 돼. 왜냐하면 땋은 머리를 통제한다는 것은 주의를 통제한다는 전제 조건이 지켜졌을 때에만 가능한 거니까."
"'통제' 한다는 개념은 단순히 '소유' 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 잇파트가 설명을 계속했다. "사람들이 현실을 통제하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그들의 의도는 꿈과 갈망으로 바뀌어버렸어. 하지만 너도 이제 알다시피 땋은 머리는 꿈과 바람이 아니라 의도를 사용해야 하는 도구라고.”
"그런데 의도라는 게 뭔지 다시 설명해줄래?" 마틸다가 부탁했다. "의도란 '어떤 일이 네가 상상한 그 방식으로 너에게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하고 확실하게 설정해두는 거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확실하게 설정하는 결단력 있는 상태를 말하지. 그 차이를 알겠니?"
"응, 알겠어,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확실하게 하는 결단력, 동요하지 않는 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
"맞아. 그래서 우리의 손잡이는 바람의 땋은 머리가 아니라 의도의 땋은 머리야. 그 조건이 지켜졌을 때만 효과를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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