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엘리 에드워드 베리스 / 김성균
출판 : 우물이있는집
출간 : 2022.04.25
이 책은 고대 로마 시대의 터부와 미신에 관해 다루는 책이다. 그러나 해당 의례나 기도문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으며, 그보다는 그와 관련한 고대인들의 믿음과 의식을 해석하려 시도했다. 따라서 현대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고, 상당 부분 추정에 의거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료적인 가치보다는 저자의 의견을 따라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주류와 다른 주장들이 많은 것에 비해 근거 자료로 든 주석들이 대부분 원전이었으므로, 저자의 해석 자체가 근거가 되고 만 점이 걸렸다. 해당 분야에서 저자의 평가를 확인해보고자 했으나, 평가 및 언급이 적어 판단이 어려웠다.
애초에 기대했던 방향성과는 다른 책이었다. 내가 아쉬운 지점들은 먼저 프레이저의 저서에서 상당 부분을 발췌해오는데, 완전히 겹치는 발췌가 최소 두 군데에서 발견된다. 중복되는 부분을 생략하고 차라리 해당 의례를 더 상세히 소개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다음은 수오베타우릴리아에 관한 해석이다. 'suovetaurilia'는 수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화성-마르스에게 수소(황소), 돼지, 양을 바치던 제의의 명칭으로 알고 있다. 이는 번역상의 오류일수도, 원저자의 오류일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꽤 크게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다. 끝으로, 분야가 분야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참고문헌들의 대다수가 접근성이 다소 낮아 비교검증이 어렵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반면, 로마 시대의 의례 풍습과 믿음을 큰 원형적 분류를 통해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해석이었다. 해석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분석적 접근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을 높이 산다. 개인적으로는 피와 아마포에 관한 설명에 큰 흥미를 느꼈다. 또한 기도와 주문의 정의와 비교 부분은 꼭 읽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들을 많이 나열했지만, 내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었을 뿐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현존하는 역시분헌들에서 발견되는 로마 종교는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이다. 로비 종교를 연구하는 현대의 학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들 중 하나는 이 다양한 요소들 -원시적 요소들, 라틴계 요소들, 에트루리아계 요소들, 동양계 요소들- 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라틴문학에 친숙한 일반적인 비교종교학자들조차 종교 및 미신과 관련된 엄청나게 많은 사설 및 견해를 아무리 많이 섭렵하더라도 과거와 현대의 원시인들이나 야생 원주민들과 문명인들 사이에서 신봉되는 모든 종교의 공통 요소들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발달한 종교에서 발견되는 그런 공통 요소들은 원시 요소들로 간주되어도 무방하다. 여느 '인간 종족'의 종교를 파악하려는 연구도 바로 그런 원시적 공통 요소들을 출발점으로 참아야 할 것이다.
- 이렇듯 인간에게 실재로나 잠재적으로 해롭거나 이롭다고 인지되는 신비 영능이 '마나'라는 명칭을 얻는다. 마나가 항상 해롭다고 인지되면 '터부'로 지칭된다. 우리는 이런 터부를 '부정적 마나'로 지칭할 것이다. 마나가 항상 이롭다고 인지되면 그냥 '마나'로 지칭된다. 그러나 이런 마나는 '긍정적 마나'로 지칭되어야 더 좋을 듯하다. 그래도 '주술행위로써 혹은 주문(이나 기도)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강행하려는 긍정적 마나를 보유한 개인이나 사물이나 행위'와 '터부로 지칭되는 것을 보유하거나 혹은 부정적 마나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은 것을 보유한 개인이나 사물이나 행위'의 근본적인 차이는 당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마나도 부정적 마나도 인간이나 행위나 사물을 통해 경험되기 전에 이미 잠재적 위험이나 잠재적 이득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부정적 마나'의 경험적 결과들이 증명해온 바대로라면, '부정적 마나'의 위험성은 잠재적인 것인 동시에 실질적인 것이다. 긍정적 마나의 경험적 결과들이 증명해온 바대로라면, 주술행위는 '마나'의 잠재적 이득을 실익 숲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부정적 마나' 또는 '터부'의 잠재적 위험성은 경험되면 실질적 위험성으로서 실감된다. 인간은 그런 위험성을 피해야 하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면, 그렇게 위험한 것의 감염성感染性 해악을 물리치는 정화 의례들을 거행해야 한다.
- 원시인은 낯선 외지인을 '마나'라는 일반명칭을 부여받을 만한 기묘한 영능의 보유자로 간주한다. 외지인은 '원시인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미지의 숲'에서 나왔기 때문에 원시인에게 해로울 수도 있고 이로울 수도 있다. 외지인이 원시인을 공격하면 원시인은 '외지인이 해로운 영능(부정적 마나)을 보유했다'라고 실감한다. 그때 미지의 숲에서 나온 두 번째 외지인을 목격한 원시인은 첫 번째 외지인의 해로운 영향을 상기한다. 그리하여 원시인은 외지인을 봐도 굉장한 공포감을 느끼지만 '외지인을 접촉한 것'을 보거나 '실제로 외지인이 나온 곳과 동일한 곳에서 나온 것'을 봐도 굉장한 공포감을 느낀다. 원시인은 자신이 만약 외지인을 피하지 못하고 접촉해야 하거나 외지인의 소유물과 흔적들을 접촉해야 한다면 그것들의 해악들에 감염되지 않도록 정화 의례를 거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장군들과 병졸들뿐 아니라 그들의 군마馬들과 무기들도 전쟁터를 떠나 로마 시내로 귀환하기 전에 정화 의례를 치러야 했다. 왜냐면 그들과 군마들 및 무기들은 전쟁터에서 반드시 적군을 접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리뷰자 주 : <여사제 잇파트>에서 글램록들이 잇파트와 마틸다를 마나라고 칭한다.)
-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군대의 기묘한 관행 하나를 기록했다. 고대 로마의 군법에는 '불명예스러운 위반행위를 저지른 군인에게는 그의 정맥靜脈을 절개하여 "나쁜 피"를 배출하는 형벌을 부과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있었다.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정맥 혈액을 배출하는 형벌은 처음에는 의술이었지만 나중에는 갖가지 위반행위를 저지른 모든 군인에게 적용되었으리라'라고 추정했다. 이런 혈액 배출 관행의 기원은 로마인들의 더욱 오래된 과거사에서 유래한다. 고대 로마에서 '피에는 인간의 생명 원리가 들어있다'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불명예스러운 군인의 불명예 행위들이 그의 생명 -피- 을 나쁘다고 증명하는 만큼 그의 몸으로 더 좋은 생명이 유입하려면 그의 나쁜 피는 뽑혀버려져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 고대 로마인은 자신의 생일에는 오직 피를 흘리지 않는 제물만 게니우스 genius에게 바칠 수 있었지만 아마도 다른 날들에는 동물을 제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네르바 기념 축제의 첫날에는 동물들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다. 카피톨리움에서는 베누스에게도 테르미누스에게도 동물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았다. 팔레스 기념 축제 (파릴리아)에서도 처음에는 동물이 제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했듯이, 초창기 로마의 축제는 핏자국을 전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파울러는 '제물들의 피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피를 언급하지 않은 이런 묵계가 바로 '피는 터부였다'고 암시한다는 사실을 파울러는 인식하지 못한다.
- 마르쿠스 키케로는 "로마인들은 외지인들을 혐오한다"고 솔직하게 기록했다. 세르비우스 호노라투스가 기록했듯이, 옛날의 로마인들은 "환대받을 권리(유스 호스피티 ius hospitii)"를 보유하지 않은 외지인들을 거의 환대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웃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기이한 불쾌감을 느꼈다. 고대 로마인들이 마르시인 Marsi들 -로마 시민권을 쟁취하려는 전쟁에 참전한 이탈리아 동맹의 주도자들- 을 마법에 결부했다는 사실도 그토록 기이한 불쾌감을 증명한다. 마르시인들은 그리스의 여신 키르케의 후예들로서 키르케의 마법능력들을 물려받았다고 믿겼다.
- 동방의 숭배의례들에서는 아마포가 사제복들의 공통 재료이자 성물聖物들을 덮는 베일들의 공통 재료였다. 그러나 로마의 종교 의례들에서는 모직물이 정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동방의 숭배 의례들에서 공용되던 아마포가 로마에서는 부정적 마나를 추가로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컨대, 이 연구서의 제1장에 예시된 텔리프론의 일화에서 시체에 생기를 불어넣던 이집트 예언자는 아마포 의복을 입었다. 우리는 이시스 숭배 의례 집전자들이 아마포 의복을 입었다는 사실도 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를 숭배하던 비밀 교단에 입회한 루키우스 아폴레유스는 아마포를 '성물들의 가장 수순한 덮개'로 칭했다. 그가 기록했듯이, 오르페우스 추종자들과 피타고라스 Pythagoras (서기전 570경~495) 추종자들은 모직물을 불결한 것으로 간주했다. 유태 예언자들은 아마포 의복을 입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봤듯이, 고대 로마인들은 아마포를 시체들과 주술 -특히 전사한 적군의 망령들을 혐오되게 만드는 주술- 에 결부하여 생각했으므로 종교의례용 아마포를 이상하게 느끼는 감정을 품었다. 그런 반면에 동방의 숭배의례 집전자들은 정규적으로 아마포 의복을 입었다. 이런 사실은 고대 로마에서 다른 이유들 때문에 부정적 마나를 타고난 재료의 위험성을 증대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므로 고대 로마에서 아마포를 금기시한 터부는 죽음을 금기시한 터부 및 외지인을 금기시한 터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을 수 있다. 더구나 고대 로마에서 모직물은 종교의례들에 공용되었을 뿐 아니라 아마포보다 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지만 아마포는 비록 새로운 재료였으되 죽음, 주술, 이질적인 의례들에 결부되었으므로, 로마의 신들이 아마포를 거부했어도 당연했을 것이다.
- 고대 로마의 주술의례들은 끈이나 실로 갖가지 매듭을 만드는 절차와 그렇게 만든 매듭들을 사용하는 절차를 공통적으로 겸비했다. 예컨대, 티불루스는 사랑하는 델리아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그녀의 쾌유를 기원하는 주술 의례를 집전하면서 "모직 두건을 머리에 쓰고 튜니카를 풀어헤쳐 입은 채로" 로마의 주술 여신 트리비아 Trivia에게 아홉 가지 맹세를 했다.
- 자연철학자 플리니우스는 기묘한 터부를 기록했다. 고대 이탈리아의 지방행정구역들 대부분에서 준수된 규칙대로라면, 여자들은 물레를 돌리지 말아야 했고 큰길에서는 물렛가락들을 남의 눈에 띄게 들고 다니지 말아야 했다. 왜냐면 여자들의 그런 행위들은 농작물에 해로울 수 있다고 믿겼기 때문이다. 이런 터부는 '물레에서 자아진 실들이 물렛가락에 얽히면, 공감 원리의 작용을 받는 농작물들이 잡초들에 얽혀서 자라지 못할 수 있다'고 여기던 미신의 발로였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미신 때문에 여자들은 케레스 기념 축제기간에도 물레를 돌리지 말아야 했다.
- 매듭들처럼 주술의례들에서 공용되던 반지들도 터부시 되었다. 유피테르의 사제는 '균열되지도 부러지지도 않고 보석류도 박히지 않은 완벽한 순수 금속 반지'를 착용하지 말아야 했다. 오비디우가 기록했듯이, 누마 폼필리우스가 파우누스의 신성한 무덤에서 종교의례들을 집전할 때에도 반지를 착용하지 말아야 했다.
- 역사시대에 청동은 종교 의례들에서도 주술 의례들에서도 통용되었다. 예컨대, 베르길리우스가 묘사한 '달빛 아래에서 청동 낫으로 약초들을 베는 마녀에게 디도가 조언을 구하는 장면'도 청동의 용례를 보여준다. (내가 제4장에서 살펴볼) 로마의 침묵이신 타키타 Tacita에 호소하는 주술 의례를 거행하는 늙은 마녀는 험담을 일삼는 어떤 사람의 입술을 공감 주술로써 결박하려고 작은 물고기의 대가리를 청동 바늘로 꿰맨다. 갈리아 출신 이탈리아 약제 기록자 마르켈투스 엠피리쿠스 Marcellus Empiricus(4세기 후반~5세기 초반)는 자신의 부적들을 제작하는 도구들에 갈대, 구리, 유리로 만들어진 도구들을 포함시키면서도 철제 도구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트루리아인들도 로마인들도 그들의 도시들을 건설하던 시절에는 오직 청동 보습들만 사용하여 밭이랑들을 팠다. 또한 그들의 사제들뿐 아니라 사빈족의 사제들도 청동 면도칼을 사용했다. 유피테르의 사제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는 도구도 쇠칼이 아닌 청동칼이어야만 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사제들의 예복을 동여매는 허리띠도 청동 죔쇠로만 고정되어야 했다. 마르스의 도약 사제들은 허리를 감싸는 청동 갑옷을 착용했다. 고트족 Goth이 이탈리아를 위협하던 시절의 어느 날에는 개기일식이 발생했고, 그날 밤에는 통곡소리와 세차게 타격당하는 청동기들의 굉음이 사방에서 끊이지 않았다.
- 터부시되는 대상들의 해로운 접촉 효과들을 제거하려는 주술행위들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된 정화 도구들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페브루아'로 총칭되었다. 예컨대, 물, 불, 모직물, 희생 동물 가죽, 월계 나무, 소나무, 밀알, 소금, 유황처럼 로마인들의 몸을 청결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모든 재료가 페브루아였다. 그들은 이런 페브루아를 사용하면 육체적 해악들 뿐 아니라 정신적 해악들마저 씻어버리거나 불태워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들은 페브루아로 총칭된 정화 도구들의 재료들도 접촉의 유해 효과들을 제거할 수 있는 영능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화 의례에서는 정화되어야 할 사람이나 사물을 접촉하는 정화 행위자를 돕는 주문이 영송되었고 조력 행위가 실행되었다. 그런데 접촉의 해악들을 막을 수 있는 위력을 보유한 정화 행위자도 신비한 자질(마나)을 보유한다고 믿겼다. 나뭇가지, 지팡이, 빗자루처럼 기다란 작대기들을 사용한 정화 행위는 액운을 막으려는 원초적 행위였다.
- 이런 정화도구들(페브루아)은 호신 부적들 및 행운 부적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페브루아는 우리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주문의 도움을 받는 정화 의례에서 사용되고, 페브루아의 재료들은 주술 의례의 기본 요소로서 사용된다. 그러나 호신 부적들이나 행운 부적들은 주술 의례와 무관하다. 요컨대, 부적의 효력은 수동적인 것이다. 그래서 호신 부적은 타고난 마나로써 액운을 막고, 행운 부적은 타고난 마나로써 행운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동일한 재료가 사용목적별로 페브루아 아니면 행운 부적 아니면 호신 부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고대 로마에서 터부시 된 사람들 또는 사물들의 유해한 접촉 효과를 제거하려는 정화 도구의 재료는 페브룸 februum (페브루아의 단수형)이었다. 그리고 주술행위와 무관하게 사용된 해악 퇴치 도구의 재료는 호신 부적이었고, 행운을 불러들인다고 믿긴 재료는 행운 부적이었다.
- 개선장군의 마차를 따라 로마 시대로 귀환하던 군졸들은 월계 나뭇잎들로 장식된 화환을 하나씩 걸쳤는데, 그 화환은 인혈 흔적을 지워주고 전사한 적들의 망령들을 쫓아낸다고 믿겼다. 이런 풍습은 월계 나무가 부적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예시한다. 로마 군대를 따라다닌 선전 사제는 신성한 정화용 녹초들 근대의 주술 의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마편초와 거의 흡사한 풀들을 지참했다.
- 고대 로마에서 염소의 노내(카프로티내) 축제는 7월 7일(노내)에 거행되었다. 로마의 전설대로라면, 7월 7일은 로물루스가 마르스 평야에 있던 염소의 늪 Goat's Marsh에서 실종된 날이었다. 그날에는 저마다 여주인의 옷을 입은 여자 노예들이 길거리에서 마음껏 뛰놀며 행인들을 농락하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치듯이 가짜 투석전을 벌이곤 했다. 또한 여자노예들은 마르스 평야의 무화과나무 밑에서 축제용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즐겼다. 그리고 그들은 여주인들과 협동하여 신성한 무화과 꼭지의 수액을 채취하여 각자 준비한 유즙과 함께 염소 여신 유노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례를 거행했다.
(리뷰자 주 : 베난단티 또는 여주인과의 유사성이 보인다.)
- 주술 의례에서는 사람이나 사물을 중심으로 보호용 동그라미를 그리는 행위가 흔하게 실시되었다. 그렇게 그려진 주술 동그라미는 뱀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믿겼다.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돌듯이 행진하던 고대 로마인들의 의례도 바로 이런 믿음에서 유래했다. 그런 주술 행진 의례가 고대 로마에서 여러 번 거행되었다는 기록도 잔존한다.
- 한편 고대 로마인들은 대체로 왼쪽이 길吉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쟁기꾼은 고랑에서 배출되는 흙을 고랑의 왼편에 쌓으려고 쟁기 보습을 왼쪽으로 반쯤 틀어서 쟁기질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암부르비움 amburbium으로 지칭된 이 원초적인 쟁기질 의례를 묘사하는 연극이 매년 한 번씩 공연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단지 그런 의례는 도시를 한 바퀴 도는 주술적 행진 의례와 함께 희생 제례도 포함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 고대 로마에서 농장의 불제 의례(푸닥거리)는 주로 5월에 거행되었다. 그 의례에서는 저마다 화환을 걸친 참가자들이 돼지 한 마리, 양 한 마리, 수소(수오베타우릴리아 suovetaurilla) 한 마리를 앞세우고 농장 경계선의 외락을 행진하면서 주문을 영송하고 올리브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농장을 세 바퀴 도는 행진 의례를 끝낸 참가자들은 도살한 수오베타우릴리아와 돼지, 어린양,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바라며 수오베타우릴리아를 제물로 바치오니 부디 강건해지소서." 제물의 효험을 얻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제물을 바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 마르스여, 이 젖먹이 수오베타우릴리아가 당신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한다면 제가 이 수오베타우일리아를 바치며 당신의 용서를 구하옵니다." 그런데 만약 바쳐야 할 제물 하나 또는 여럿이 마르스를 만족시키리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돼지를 제물로 바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 마르스여, 제가 이미 바친 돼지를 당신께서 흡족하게 여기지 않으시므로, 이 돼지를 바치며 당신의 용서를 구하옵니다."
(리뷰자 주 : 'suovetaurilia'는 수소가 아니라 돼지, 양, 황소를 마르스에게 바치는 제의 자체의 호칭이다. 따라서 젖먹이 수오베타우일리아가 아니라 제대로 되지 못한 제의가 흡족하지 못하시다면 다시 거행하며 용서를 구한다고 이해해야 맞을 것이다.)
- 마르스에게 바쳐진 기도는 세 가지 요소를 겸비했다. 첫째 요소는 악영향들을 퇴치해달라고 마르스에게 바라는 염원이다. 왜냐면 마르스는 바로 그런 악영향들을 유발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들을 퇴치할 능력도 겸비했다고 믿겼기 때문이다. 둘째 요소는 농장에 호영향들을 불러들여달라고 마르스에게 바라는 염원이다. 셋째 요소는 신비한 효험이다. 이것 때문에 신은 제물을 받으면서 강력한 작용력마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을 겸비한 기도를 받는 마르스는, 당연하게도, 국가의례를 받는 전쟁신으로서 상징되는 완전히 발달한 신이다. 그러나 의례와 기도들은 더 오래된 원시시대에서 유래했다.
- 우리가 이 단원에서 살펴본 고대 로마의 종교적 주술행위들은 주술 대상들의 측면에서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째 부류는 '과거에 인간에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알려졌던 개인들과 사물들'을 실제로 접촉하는 행위의 유해 효과들을 제거하려는 주술행위들이다. 둘째 부류는 인간의 신체에나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적 해악들을 예방하려는 주술행위들이다. 셋째 부류는 타격인의 어떤 속성이나 타격 도구의 어떤 속성을 피 격인에게 전달하려는 주술행위들이다. 이런 행위들로써 진행되는 주술 의례들은 대체로 이중효과를 노린다. 그런 주술 의례들은 액운들을 물리치는 동시에 길운들을 불러들인다고 믿긴다.
- 위험시된 개인들이나 사물들과 접촉하는 행위의 해악들은 여러 방식으로 퇴치될 수 있다. 인격신의 개념 같은 것을 아우른 발달한 종교들에서는 희생제물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 있거나 완벽한 의례가 반복적으로 거행되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술행위들의 대부분에서는 불, 물, 양털 같은 -고대 로마인들이 '페브루아'로 총칭하던- 일정한 정화 도구들이 사용되었다. 이런 도구들은 신체적 해악과 정신적 해악을 동시에 씻어버리거나 불태워버린다고 믿겼을 뿐만 아니라 그런 해악들을 퇴치할 수 있는 신비 영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도 믿겼다. 왜냐면 주술행위는 순전히 보조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대기, 지팡이, 마당비 같은 주술도구들은 비록 그런 신비 영능을 타고났어도 대개는 그것들의 사용자가 주문을 읊조려야 비로소 해악을 퇴치할 수 있다고 믿겼다. 고대인들 사이에서나 현대의 야생 원주민들 사이에서 그런 모든 정화 도구는 주술 의례에도 사용되고 종교의례에도 사용된다. 두 의례의 차이는 주술 의례가 개인 이익을 노리는 반면에 종교의례는 공동이익을 노린다는 사실에서만 생겨난다. 우리는 모든 정화용 주술 도구들이 고대 로마의 국가축제들에서 겸용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 축제들을 닮은 의례들은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가끔 발견된다. 이 사실은 그런 의례들의 공통 기원이 그런 축제들일 수 있다고 시사한다.
- 원시인의 심정은 자신이 언급하는 대상을 의인화하려는 성향을 띠도록 발달했다. 이런 성향은 대상에 정령을 부여하려는 성향(애니미즘)과 함께 생겨났다. 그것은 주문이 언급 대상을 다소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가 암시했다시피, 주문 대상이나 기도 대상을 향한 주문인이나 기도인의 심정적 태도가 변하면서 그의 주문 음조나 기도 음조마저 결국 변하더라도 주문과 기도는 서로 다를 수 없듯이, 주문과 기도 중 어느 것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변해도 주문과 기토는 서로 다를 수 없다. 주술 과정은 순전히 기계적인 과정이다. 주술 의례를 실행하는 개인은 일정한 효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그것은 주술행위와 주문이 완벽하기만 하면 반드시 발휘할 수밖에 없을 효력으로서 믿긴다. 주술행위와 주문에는 개인의 의지가 담긴다. 그러나 기도인은 신에게 기도한다. 그의 기도를 받는 신은 자신의 영향권 안에서는 전능하다. 기도인은 그런 신의 의지를 취득해야 한다. 기도인의 관점에서 그가 취득할 수 있는 타인의 의지는 신의 의지와 같은 것이다. 바로 이런 정황이 적어도 개인의 심정적 태도와 관련되는 한에서, 주문과 기도의 근본 차이를 유발한다. 왜냐면 주문의 효력을 결정하는 것은 주문을 읊는 개인의 의지이고 기도의 효력을 결정하는 것은 기도를 받는 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고대의 종교들이 단순해지고 무의미한 형식들로 퇴행하자, 의례와 관련된 신의 개념은 망실되었고, 기도는 주문의 본성을 재획득했다.
- 우리는 이 단원에서 고대 로마의 기도와 주문은 여섯 가지 공통점과 한 가지 본질적 차이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고대 로마에서 영송된 주문의 특성들을 고찰하고 그런 특성들이 고대 로마의 기도에서 발견되는지 여부를 알아볼 것이다. 우리는 고대 로마의 주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주문은 명령 형식을 띠었다. 둘째, 주문은 영송되었다. 셋째, 주문은 나지막이 읊조려졌다. 넷째, 주문은 반복되어야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섯째, 주문은 정확하게 발음되어야 했다. 여섯째, 주문은 대체로 사악한 목적들을 비밀리에 달성하려는 의도의 소산이었다. 일곱째, 어떤 신도 주문과 무관하다.
- 현존하는 고대 로마인들의 기도문들 중에 가장 오래된 두 건 -<아르발 형제단의 찬가>, <살리의 찬가>- 은 모두 영송되었다. 리비우스가 기록했듯이 "살리는 로마 시내를 행진하면서 그들의 찬가를 영송했다." 마르쿠스 카토가 <농업>에 기록한 고대 로마의 기도문들은 원래부터 운문들이었다. 그러나 의례 참배자의 기도를 권유하던 구령이 원래 디키토 diciro(말합시다)였고 칸타토 cantato(노래합시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마르쿠스 카토의 시대에는, 그런 기도문들이 "노래되었기"보다는 오히려 "발어發語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심지어 마르쿠스 카토의 기록에서 발견되는 것들마저 포함하는 이런 기도문들은 느린 박자에 맞춰 영송되면서 의례의 엄숙한 종교적 특성을 간직하는 시가의 성격을 현저하게 보유한다.
- 원시인은 주문에 걸려야 할 의지를 품은 개인의 이름만 언급해도 주문의 효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문에 걸려들 개인의 이름은 반드시 정확하게 발음되어야 했다. 바로 이런 주술 시대의 관습이 신들의 이름을 신중히 정확하게 발음하는 로마인들의 관습을 낳았다.
- 신을 기념하는 희생 의례에서는 신을 호칭하는 사람의 발음이 정확해야 했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발음도 기도 순서를 공지하는 사람의 구령만큼 정확해야 했다. 그런 발음이 조금만 틀려도 의례는 처음부터 다시 거행되어야 했거나 속죄용 희생 의례가 추가로 거행되어야 했다.
- 그러나 원시인은 '평소에 바라던 행위'를 모방하고 때로는 '주문이나 -방어용 행운부적 防禦符籍 amulet이나 공격용 호신 부적 護身符籍 talisman을 막론하는- 부적 charm의 도움을 받는 다소 신비한 행위'를 실행하여 자신이 바라던 결과를 억지로 도출할 수 있다. '주술'로 통칭되는 이런 '신비한 행위와 주문'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기묘하게 왜곡된 생각 습관에서 생겨난다. 그런 생각 습관에 사로잡힌 개인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가설을 끝내 확신해버린다. 첫째, 결과와 원인은 동일하다. 둘째, 인간을 닮은 것이나 사물을 닮은 것은 인간 자체이거나 사물 자체이다. 셋째, 생각의 유사성은 사실의 유사성이다. 넷째, 인간을 한 번 접촉한 것은 계속 접촉한다.
- 인류학자들은 타인의 유효한 행위를 모방하는 개인의 모방행위를 유감 주술 類感呪術 homeopathic magic로 지칭한다. 자신이 소유하거나 접촉한 옷가지나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사물들을 사용하여 실행하는 개인의 모방 행위는 감염 주술 感染呪術 contagious magic로 지칭된다. 공감 주술이라는 일반명칭은 유감 주술뿐 아니라 감염 주술마저 포함한다. 왜냐면 '주술의 영향을 받는 대상'과 '그 대상을 닮거나 접촉한 대상' 사이에는 신비한 공감대가 존재하리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주술 의례에서 감염 주술과 유감 주술이 동시에 구사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집 Eclogues>에 수록된 - 고대 그리스 시인 테오크리토스 Theocritos (서기전 3세기)의 목가시집 <Idylls>에 수록된 두 번째 시와 흡사한- <제8 전원시>의 "알페시보유스 Alphesiboeus의 노래"에 나오는 양치기 소녀는 떠나간 애인 다프니스 Daphinis를 귀향시키려고 주문을 읊조리며 정성껏 주술 의례를 거행한다. 이 주술 의례에는 정화수, 신성한 나뭇가지, 유향이 사용된다. 이 의례를 집전하는 소녀 -주술사 또는 무녀- 는 손수 만든 다프니스 인형을 세 가지 매듭진 색실로 감아서 묶는데, 그 순간에 유감 주술의 요소가 드러난다. 다프니스 인형을 색실들로 감아서 묶은 그녀는 "도시로 떠난 다프니스를 귀향시켜다오, 나의 부적들이여, 다프니스를 귀향시켜다오!"라는 주문을 아홉 번 반복하여 읊조리며 자신과 애인 다프니스의 해후를 기원한다. 그녀는 다프니스의 모습을 본뜬 진흙 인형과 밀랍 인형을 주술 의례에 사용한다. 진흙 인형은 마르면서 굳어가는 진흙처럼 다른 소녀들을 딱딱하고 무정하게 대하는 다프니스의 표정과 태도를 재현했고, 밀랍 인형은 애인(그녀)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에 녹는 다프니스를 재현했다. "똑같은 불을 쬐어도 이 진흙 인형은 굳고 이 밀랍 인형은 녹으니까 다프니스는 나의 사랑에 녹겠지"라고 그녀는 노래한다. 이런 주술 의례를 거행하는 그녀 -주술사 또는 무녀-는 보관하던 다프니스의 소지품들을 집의 대문 문지방 밑의 땅에 파묻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땅에게 말한다. "오, 땅이여, 이 물건들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이 담보물들은 다프니스를 나에게 반드시 반환할 것입니다." 이런 주술 의례에서 작용하는 요인은 '감염'이다. 왜냐면 땅에 파묻힌 물건들은 다프니스가 접촉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 타키투스는 피를 금기시하는 터부와 관련된 듯이 보이는 진기한 일화를 기록했다. 케루스키 족의 추장 아르미니우스 Arminius (서기전 18-서기 21)가 게르만족의 진영을 더 쉽게 탈출하려고 "그의 얼굴에 피를 발라서 흉측하게 변장했다"는 일화도 피를 금기시한 터부를 반영한다. 그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는 동종요법 원리를 응용한 이런 변장으로써 피와 죽음을 모면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얼굴에 피를 바르면 그한테 살해당한 인간들의 사악한 망령들은 그를 인식하지도 못해서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지 못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 그래서 로마인들은 전쟁터와 제단들에서 피를 날마다 접해서 피에 무관심했으리라고 추정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피를 무서워하는 미신적 공포심을 품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 평가의 타당성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여태껏 충분히 발견되었다. 피는 주술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주술 위력을 발휘하는 종교의례들에도 사용되었다. 피는 인간 영혼의 처소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살아있는 개인의 피를 타인의 머리에 묻히거나 바르는 행위는 위험시되었다. 핏자국들도 위험시되었다. 피를 동반하는 불가사의 현상들은 특히 불길한 징조들로 믿겼다. 그래서 피는 유혈죄를 씻어주거나 공범 약속들을 엄수시키는 신비 영능을 지녔다고 믿겼다.
- 예컨대, 초기 기독교신자 바르나바스 Bamabas(?~61)가 기록한 고대 유태인들의 민간 종교의례도 이 사실을 예증한다. 그 의례가 개시되면 극악한 유태 남자들이 예쁜 소녀를 살해하여 불태운다. 그러면 의례를 보조하는 소년들이 불태워진 소녀의 잔해를 수습하여 각자의 의례용 그릇에 담고, '보라색 양털과 우슬초牛膝草hyssop에 감싸인 작대기'로, 소녀의 잔해를 튕겨서 의례 현장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끼얹으면, 그 잔해를 맞은 사람은 자신의 죄가 씻겨나갔다고 믿는다. 그런데 유태교-기독교의 <구약 전서>에는 이 의례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의례는 유태인들의 민간 종교에서만 실행되었다고 추정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 모든 시대에 시체들은 기괴하게 여겨져서 정화 의례를 치러야 할 것들로 간주되었다. 잉글랜드 인류학자 겸 성과학자 어니스트 크롤리 Ernest Crawley(1867~1924)는 다음과 같이 썼다. "원시적 사고력은 죽음의 본성을 정의하는 개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지만, 사망자를 애도하는 풍습들이 암시하듯이, 평소에 죽음을 상대하는 원시적 신청은 신비한 공포심이다."
(리뷰자 주 : 다른 크롤리다.)
- 이런 흉일들에 적용된 터부가 만약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고 존재했을 수도 있다면 인위적 터부였지 정녕 원시적 터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터부의 유래는 또 다른 방향에서 설명될 수 있다. 힌두교 신자들은 '달이 이지러지는 기간(보름~그믐)의 날들'을 달(월력月曆)의 "어두운 절반"으로 총칭하고 '달이 커지는 기간(그믐~보름)의 날들'을 달의 "밝은 절반"으로 총칭한다. 그렇다면 '달이 가장 크고 밝은 보름날부터 다섯째 날(이두스)'을 뜻하는 라틴낱말 '퀸콰트루스 quinquatrus'는 '퀸퀘 quinque'와 '아테르 ater'의 합성어일 수 있으므로 '달이 이지러지는 흉일들의 다섯째 날'을 뜻한다. 이런 어원학적 사연대로라면, 투스쿨룸에서 사용된 라틴낱말 '트리아트루스 triatrus'는 이두스부터 셋째 흉일, '섹사트루스 sexatrus'는 이두스부터 여섯째 흉일, '셉테마트루스septematrus'는 이두스부터 일곱째 흉일을 뜻하고, '팔레르눔 Falernum'에서 사용된 라틴낱말 '데키마트루스 decimatrus'는 이두스부터 열째 흉일을 뜻하는데, 이 흉일들은 모두 '달이 이지러지는 기간의 날들'이다. '흉일'의 원뜻 -요컨대, 달의 어둠을 가리키는 '검은 날(흑일黑日)'- 이 망각되었을 때 로마의 대중심리는 '아테르'의 의미를 불길하거나 터부시 되어야 할 것으로 해석했다.
- 고대 로마에서 8월 24일, 10월 5일, 11월 8일은 '디에스 렐리기오시 dies religiosi'로 총칭되었다. 이 날들에는 망령들(마네스 manes)이 문두스 mundus를 거쳐 지상세계로 튀어나온다고 믿겼는데, 문두스는 로물루스의 도시(로마)의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 봇도랑 또는 입구의 명칭이었고, 그 봇도랑 또는 입구는 '지옥문'이라고 믿겼다. 이 날들에는 공공업무도 일절 실행되지 않았고 전투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으며 군대 신병도 전혀 징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터부는 '죽음과 시체들'을 금기시한 터부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그래서 2월의 파렌탈리아 기간(축제일들)과 5월의 레무리아 기간(축제일들)이 렐리기오시로 총칭되었다는 사실도 죽음을 금기시한 터부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2월의 파렌탈리아로 총칭된 기간에는 모든 신전의 대문이 닫혔고 모든 제단의 불이 꺼졌으며 결혼식은 일절 거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간에는 고위공직자들도 관복을 벗어두고 일반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평상복을 입었다.
-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연구서의 제2장과 제3장에서)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 터부들을 살펴봤다. 그런 터부들은 피, 여자들, 어린이들, 죽음과 시체들, 섹스, 남자들, 외지인들, 노예들, 아마포, 매듭들, 쇠,장소들을 금기시했다.
- 피를 금기시한 터부는 인간본능에서 생겨났거나 아니면 '죽음에 결부되는 연상'과 '죽음 현상에 고통을 결부하는 연상'에서 생겨났다고 알려졌다.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금기시한 터부들은 두 가지 사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첫째 사실은 그들이 신체적으로 연약하다는 것이고, 둘째 사실은 유사성을 근거로 삼는 익숙한 연상 법칙이 그런 연약성을 종교의례로 전이시킬 수 있지만 종교의례도 그런 연약성을 그런 연상 법칙에 전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월경혈과 출산혈의 존재는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기이한 신비성에 피의 기괴한 신비성을 덧보탠다.
- 시체를 금기시한 터부는 인간의 자기보존본능에서 파생했을 수 있다. 시체의 이질성은 시체의 불가사의한 특성에 추가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무엇보다도 중환자의 단말마들에 결부하여 연상하면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 성행위를 금기시한 터부는 '성행위를 마친 사람의 일시적 육체 허약 상태가 종교의례에나 일상생활 행위들에 주술적으로 전이될 것이다'라고 여긴 미신에서 파생했을 확률이 아마도 가장 높을 것이다.
- 남자들을 금기시한 터부는 '여자들과 다른 남자들의 신체적 차이'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 외지인들을 금기시한 터부는 '새롭거나 익숙잖은 것은 위험시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유래했을 수 있겠지만 '죽음과 피와 고통을 외지인에 결부한 연상들'에서도 유래했을 수 있다.
- 노예들을 금기시한 터부는 완전히 인위적으로 형성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노예들이 외지인들이었다고 가정된다면, 외지인들을 금기시한 터부의 유래는 노예들을 금기시한 터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아마포를 금기시한 터부는 '아마포를 시체에 결부한 연상', (아마포보다 더 오래전부터 사용된 직물인)'모직물과 비교되는 아마포의 이질성', '동방의 의례들에서 아마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 즉, '외지인과 외지의 것들을 금기시한 터부'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 매듭을 금기시한 터부의 유래는 명백하다. 왜냐면 공감 주술 원리가 이 터부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매듭은 무언가를 결박하는 것이므로, 매듭을 묶는 행위는 결박당하는 행위이다.
- 쇠를 금기시한 터부는 '철기시대의 초엽에는 낯설게 여겨졌을 쇠의 이질성', '자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쇠의 성질, '다른 쇠와 부딪히거나 암석과 부딪히면 불꽃을 튀기는 쇠의 위력'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 장소들을 금기시한 터부의 기원은 단일하지 않다. 터부시되는 모든 장소에서 기괴한 신비감을 유발하는 것들은, 예컨대, '죽음을 접촉할 수밖에 없도록 조성된 여건'이나 '불길한 재난을 연상시키는 징조'처럼, 특수한 원인들이다.
- 무화과 꼭지 수액은 정화 도구였다. 고대인들의 의례에서 사용된 그런 정화 도구들은 액운들을 물리치고 길운들을 불러들이는 정화 약제와 같다고 믿겼다. 역사시대에는 어머니들만 특별히 보호하는 여신에게 봉헌된 희생 의례용 제물들로 사용된 무화과 꼭지 수액과 젖(유즙)의 유사점은 의례의 목표를 아주 확실하게 드러낸다. 수컷 무화과 꼭지 수액이 함유한 번식력을 여신에게 전달하면 여신은 그런 번식력을 여자들에게 전달한다고 믿겼다. 특히 이 축제와 관련하여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의 기록에서는 "그들은 (수컷) 야생 무화과나무의 낭창낭창한 가지를 사용한다"는 진기한 대목도 발견된다. 그의 기록에서 그 무화과 나뭇가지의 정확한 용도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것을 일종의 회초리로 삼아 서로를 타격하여 무화과의 번식력을 주술적으로 전달받으면서 '임신-출산에 해로운 모든 악영향'을 물리치려 했다고 추정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고태 아테네의 축제 타르겔리에서는 파르마코이 pharmakoi로 총칭된 희생양 두 마리를 아폴론에게 제물로 바쳐서 액운을 퇴치하려던 진기한 의례가 야생 무화과 나뭇가지를 회초리로 삼은 타격 의례와 함께 거행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 고대에 인간의 생체기관들을 관할하던 진기한 여신 카르나는 이런 종교적 퇴행성을 명백히 예시한다. 로마 국가종교에서 카르나는 공인된 신이었다. 그러나 민간 종교에서 카르나는 마녀로 간주되었다. 여신 카르나는 현대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에도 잔존하면서 비록 카라도라 Carradora로 호칭될지언정 본질적으로 고대에 담당했던 기능들을 동일하게 담당하는 상냥한 정령으로 믿긴다.
- 유황은 정화 의례들에서 공용되었다. 왜냐면 유황불은 정화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황은 치유력과 살균력을 발휘한다.
- 현대의 야생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인들도 불은 생명체의 남성원리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을 고수하던 그들은 화덕에서 튀어나온 볼꽃이 신비 영능을 발휘하여 처녀를 잉태시켜 출산시킨다고 설명했다. 고대 로마에서 유익한 위력을 발휘하는 불은 베스타로 호칭되었다. 파괴력을 발휘하는 불은 불카누스로 인식되었다. 베스타의 성격은 단순한 여성 정령의 성격에서 조금도 더 발달하지 못했다. 왜냐면 베스타의 상징은 오직 베스타 "신전"에서 관리된 성화뿐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불의 유익한 동시에 유해한 이중성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당연하게도 파괴적 화신의 개념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명호] 욕망을 이롭게 쓰는 법 -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십시오 (0) | 2022.06.15 |
---|---|
[알렉산더 로이드] 메모리 코드 - 고통의 근원을 없애는 하루 10분의 비밀 (0) | 2022.06.14 |
[닐 도날드 월시] 신과 나눈 이야기 - 1 - 나는 너희가 원하는 걸 원한다 (0) | 2022.06.10 |
[바딤 젤란드] 여사제 잇파트 - 트랜서핑 V2.1 세상에서 가장 괴이하고 매혹적인 자기계발 픽션 (0) | 2022.06.02 |
[람타] 평행 현실 : 양자 장의 요동 (0) | 2022.05.26 |
[아테나 라즈] 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 경이로운 꿈의 메시지와 친해지기 (0) | 202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