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브루스 D. 페리 / 오프라 윈프리 / 정지인
원제 : What Happened to You?
출판 : 부키
출간 : 2022.04.26
소아 정신과 의사이자 트라우마 연구가인 브루스 D. 페리와 오프라 윈프리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는 어째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째서 '오늘 당신은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리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기는 출생 직후라고 한다. 어떤 시기에나 강력한 경험은 그 흔적을 남기지만, 태어나서 최초로 접하고 경험하며 자신 안에 '외부 세계'를 구조화하는 이 시기에 겪은 경험들은 이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연상과 반응 패턴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이 설정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생후 1-2년 시기에 안전하고 사랑이 가득한 보육을 받은 아이가 이후 10여 년 간 깊은 고통을 겪은 경우와, 반대로 생후 1-2년 시기에는 방임이나 학대를 경험했지만 이후 10여 년 간은 잘 보살핌 받은 아이의 경우를 비교한다면 전자가 훨씬 긍정적인 상태였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런 사례를 들어 '트라우마'란 개개인의 시기와 상황,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임을 설명한다. 즉 같은 사건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경험과 인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그것의 강도와 접한 시기, 이후 그 경험을 희석할 수 있을 만한 완충 경험이 뒤따랐는지 등에 따라 무수히 다른 결과들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트라우마란 형사 사건처럼 극적인 것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울며 방치된 단 몇 시간의 경험, 그런 강렬한 순간은 모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로 인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이상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상 반응이란 괴상한 행동들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특정 상황 또는 특정 자극에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반응을 보인다 -즉 일종의 발작 버튼이 존재한다- 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예민한 구석' 또한 이런 트라우마의 흔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뭐가 잘못된 걸까'가 아니라 '저 사람은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라는 입장에서 이해와 수용을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특정 경험으로 인해 잘못 연결된 연상 작용이나 과도한 자극을 느낄 수 있고, 그 순간 그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그 트라우마를 경험한 시기로 돌아갔다고 봐야할 만큼 본능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의 설명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판단력과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뇌가 성장할 수 있는 시기까지는 완전한 보육이 필요하다.
2.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줄 수 없고, 현재 소진된 상태일 경우에도 적절한 반응성을 보일 수 없다. 즉, 건강한 성인이 보육을 담당할 때 고통과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
3. 이미 경험한 트라우마는 파인 살이 차오르는 형태의 회복이지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성인들은 각자의 상황과 단계, 경험에 맞춘 단계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4.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발견하면 그의 이전 경험을 듣고 그의 상처들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그를 도울 방법이 보인다.
이 설명들을 따라가다보면 많은 것들이 이해된다. 그저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던, 혹은 설명할 수 없지만 그건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거 특정 경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 그것을 극복하면 시간은 걸릴 지라도 점점 좋아질 수 있다는 설명은 무척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과 반응의 왜곡된 연결은 스스로 인식하기에는 힘든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피질 아래의 무의식적인 연결들이므로 개인적으로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상처 입은 아이에게는 상처 입었던 부모가 있으며, 그 부모의 기억과 경험으로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뿌리 깊게 이어져 오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이 누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또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건강해져야함을 강조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서로 건강한 관계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공동체- 그것이 확장된 시설과 사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미 상처입은 성인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가? 저자들은 사회적 관계성과 연결성이 가장 중요한 키라고 설명한다. 정말 '집'처럼 느껴지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주고받는 경험이 큰 치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전반에 걸쳐 개개인이 직접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기 보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가'의 설명에 더 집중된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4단계 구조로 이루어진 뇌의 구조에서 이성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피질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기저 구조가 이미 해당 자극을 위협으로 인지한 상태에서는 더이상 이성적이나 합리적인 반응을 보일 수 없는 상태가 되므로, 주변인들은 그가 다시 피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이 '당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나요?'가 아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것이다. 그런 연결성만이 트라우마 치유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다른 아쉬움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 수 있는 '판단'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다. 자신의 기준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고 싶어 하기보다는 '저 사람은 어린 시절 뭔가 나쁜 경험이 있었나 보군'이라는 색안경으로 그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건강하고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여야 타인에게도 부드러운 시선과 반응을 돌려줄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신과 관계 맺는 주변인들에게까지 연민과 관심으로 치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이 책을 읽으며 트라우마의 영향에 관해 이해한 이들은 이와 비슷한 의문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에 필요한 것이 보다 큰 단체의 지원과 복지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은 모두 다를 것이다. 트라우마 기반 접근은 일반적인 심리 치료와는 방향성이 다르며, 아이의 경우 주변 성인들까지도 함께 세션에 참가해야 치유 성공률이 높아진다.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진 전문 기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늘어갈 수록 건강한 사회가 된다.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한국 성인들은 고단한 삶에 지쳐있고, 세대마다 전쟁이나 급격한 경제 성장의 여파 등으로 일정 정도의 방치와 방임 속에 성장 -생존- 해왔다. 그래서인지 모두에게 조금씩은 집단적 트라우마 경험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모두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이해와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때에 수많은 다툼과 아픔의 재생산이 일어난다. 누군가에 대한 치유와 도움이 나의 박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과거 어느 시점의 경험들로 인한 두려움-자극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모든 것은 변화할 수 있다.
이제는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 공동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뚝 그치지 못해." 할머니가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제 얼굴은 바짝 굳어졌습니다. 심장도 달음질을 멈췄죠. 저는 단 한마디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널 사랑해서야." 할머니는 제 귀에 대고 늘 그렇듯 자기변명을 읊조렸어요.
어렸을 때 저는 자주 '매'를 맞았습니다. 당시는 양육자가 체벌로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용인되던 시절이었죠. 저희 할머니 해티메이는 그 관행을 순순히 받아들였고요. 그러나 저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음에도 제가 당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저는 문제 될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걸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달라질 때나, 저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음을 의미하는 '눈빛'을 알아보게 되었죠. 할머니가 못된 사람이었던 건 아니에요. 할머니는 저를 걱정했고 제가 '착한 아이'가 되기를 바랐던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저는 '입을 다무는 것' 또는 침묵이 체벌과 아픔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이후 40년 동안 그 조건화된 순종의 패턴, 깊이 뿌리내린 트라우마가 제가 살면서 맺은 모든 관계와 상호작용, 제가 내린 결정들을 지배했지요. 매 맞는 일, 그런 다음 억지로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하는 일, 심지어 매를 맞고도 미소까지 지어야 하는 일은 제게 아주 오래가는 여파를 남겼고, 그 결과 저는 삶의 대부분을 남들 비위 맞추기의 달인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다른 방식으로 양육되었더라면, 경계선을 긋고 자신 있게 '안 돼'라고 말할 줄 알게 되기까지 반평생이나 걸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 브루스 페리 박사님에게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용감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수천 명에게서 배운 것은, 저를 보살펴 주었어야 마땅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부당한 취급이 제게 끼친 영향은 엄밀히 말해 감정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영향에는 생물학적 반응도 있었지요. 어려서 겪은 학대와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제 뇌는 적응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페리 박사님과 함께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바로 여기에, 우리의 경이로운 뇌가 지닌 독특한 적응성에 우리 모두를 위한 희망이 살아 있습니다. 앞으로 페리 박사님이 설명해 주겠지만, 우리 뇌가 스트레스나 생애 초기의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 어떻게 현재의 우리 존재와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과 그 이유를 결정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러한 관점의 렌즈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환경과 상황과 인간관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렌즈가 바로 우리 인생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열쇠입니다.
- 1991년 즈음 우리 트라우마 안식처(프로그램의 치료팀)는 입원병동에서 팀 회의를 열고, 트라우마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 '아동기 역경' -우리에게 치료받던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문제의 원인이었지요- 이라고 알려진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에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면허가 있는 임상 사회복지사로 늘 간결하고 함축적인 표현을 잘 찾아내는 조 포데라로가 말했어요.
"그건 바로 우리가 근본적인 질문을 '당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로 바꾼 일이죠."
- 오프라와 저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모든 경험이 우리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우리 각자가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연들과 과학적 개념들을 통해 모든 독자가 더 나은 삶, 더 충만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입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겉으로 무의미하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행동도 그 뒤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 알고 나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뇌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해 주는 우리의 일부이므로, 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때마다 그 사람의 뇌를 궁금해합니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건 그들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저 자신을 포함해 피해자 대부분에게 깊이 흐르는 공통된 줄기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건 순응하도록 길러진 사람은 모든 형태의 충돌을 불편해한다는 거예요. 싫다고 말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한 번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죠. 아니, 사실은 싫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배운 것이죠. 자신의 경계선을 스스로 설정할 자격이 있다는 의식을 계속 도둑맞아 온 겁니다. 이런 가르침에 대한 반응으로 많은 이들이 '싫다'는 자신의 감정은 묻어 버리고 남들을 만족시키려는 사람이 되지요. 저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고요. 오랫동안 저는 제가 사실은 원치 않는다는 걸 뻔히 아는 일에 대해서도 좋다고 말하거나, 제 주장을 내세우는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서 난처한 대화는 회피했습니다. 제가 아는 트라우마 피해자 중에는 스스로 끊어 내지 못해서 남들이 자기 대신 결단을 내리도록 몰아가며 상황을 망치는 행동만 계속하는 이들이 있어요. 여기서 남들이 대신 결단을 내린다는 건 그 상대방들이 먼저 이들과 관계를 끊거나, 친구 사이를 파탄 내거나, 직장을 잃게 만든다는 뜻이죠. 조금 전에 박사님이 친밀한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니 이런 일들이 떠오르네요.
- 그날 방송에서 유대 랍비이자 가족 치료사인 M. 게리뉴먼은 이혼이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실제로 죽음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를 각자 개별적인 두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더 큰 단위에 속한 하나의 단위로 본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혼이 가족 전체를 위해 가장 나은 선택일 때도,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그리고 만약 아이가 부모와 신뢰를 쌓기도 전에 부모 중 한쪽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거나, 가족 역학에 새로운 관계가 등장하면, 그 일은 자기 가치를 형성하는 일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요. 자기 감각 sense of self은 평생을 살면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스며들어 그 형태를 결정해요. 아이들이 부모의 결정에서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자기 가치에 관해 갖고 있던 믿음도 무너지고요. 크리스와 데이지는 제게 처음으로 부모의 결별이라는 트라우마에 관한 진실을 말해 준 아이들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고 믿지요. 크리스와 데이지의 이야기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 뇌는 의미를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죠. 만약 사람들은 선하다는 것이 우리의 세계관이라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타인과 나누는 상호작용에 그런 기대를 투사하고, 그럼으로써 실제로 그들에게서 선함을 이끌어 내게 되죠. 세계를 보는 우리 내면의 관점이 하나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는 셈이에요. 우리는 자기가 기대하는 것을 투사하고, 그 투사는 다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 많은 분들이 '싸움 또는 도피 fight or flight'라는 용어를 들어 봤을 겁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때 작동하는 일련의 반응을 일컫는 말이죠. 이때 뇌는 잠재적 위협에 관심을 집중하고, 불필요한 경신적 과정(삶의 의미에 관한 숙고나 다가올 휴가에 대한 공상 등)을 차단합니다. 시간 감각도 현재 순간에만 한정하고요. 여차하면 싸우거나 달아날 준비를 하려고 심박 수가 올라가 근육으로 피를 보내지요. 아드레날린이 온몸으로 쏟아지고요. 이런 반응들이 우리의 몸을 활성화합니다.
-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위협에 대한 반응 방식으로 이런 '각성' 반응만 있는 건 아닙니다. 너무 몸집이 작아서 싸움에서 이기거나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이 경우에는 뇌와 몸의 나머지 부분들이 부상에 대비합니다. 심박 수가 내려가고, 신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opioid가 분비됩니다. 외부 세계와 연결을 끊고 심리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로 도피하지요.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자신이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둥둥 떠다니며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 모든 것은 '해리 dissociation'라고 하는 또 다른 종류의 적응법에 속하는 일들입니다. 해리는 아기들이나 아주 어린아이들이 매우 흔히 보이는 적응 전략이에요. 싸우거나 달아나는 방법으로는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겠지만, '사라지는 방법'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자기 내면세계로 탈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그게 바로 해리입니다. (안전하고, 자유롭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세계로 후퇴할 수 있는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증가합니다. 그렇게 민감화된 해리 능력의 핵심 요소 하나가 남들을 만족시키려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갈등을 피하거나, 상호작용의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임을 깨닫게 되지요. 또한 자기 조절을 위한 일도 해리하는 방식 쪽으로 이끌린다는 것도요. 트라우마로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 사람들에게는 균형을 되찾는 일이 몹시 힘들고 지치게 하는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이거나 파괴적인 조절 방법들을 찾게 될 수도 있고요.
- 우리 뇌의 가장 놀라운 특징 하나는 각자의 세계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뉴런과 신경망은 자극을 받으면 실제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을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이라고 하지요. 뉴런과 신경망을 자극하는 건 우리가 겪는 구체적인 경험들입니다. 말하자면 뇌는 '사용 의존적'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에 관여하는 신경망은 아이가 실제로 피아노 연주를 연습함으로써 그 신경망을 활성화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경험 의존적 변화들이 다시 피아노 연주를 더 훌륭하게 만들고요. 이렇듯 반복을 통해 변화가 이뤄지는 신경가소성의 측면은 잘 알려져 있으며, 스포츠·예술·학문에서 연습이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죠.
- 신경가소성의 핵심 원리 하나는 특정성입니다. 뇌의 어떤 부분이든 변화시키려면, 바로 그 특정 부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싶다면, 단순히 피아노 연주에 관한 글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되죠. 건반에 손을 얹고 연주를 해야 합니다. 피아노 연주에 관여하는 뇌 부위들을 변화시키려면 그 부위들을 자극해야만 해요. 이 '특정성' 원리는 사랑하는 능력을 포함하여 뇌가 중재하는 모든 기능에 적용됩니다.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면, 사랑하게 해 주는 신경망은 발달하지 않아요. 바로 글로리아의 경우처럼요. 다행스러운 것은 사용하고 연습하면 그 능력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신시아는 자기가 "그 아픔"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라져 버리기를 기도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듯 강인함의 가면을 쓰고 견뎌 내는 법을, 강하게 버텨 내는 법을 배웠죠. 그러나 너무도 어두운 순간들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진지하게 고려했답니다. 결국 신시아는 우울증과 PTSD 진단을 받았어요. 진단을 받고 난 뒤, 신시아의 인생에 함께하던 사람들 모두가 신시아에게 힘이 되어 주지는 않았어요.
"내 말을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의 결정들, 내 경력, 부모로서 나의 능력 모두가 의문에 붙여졌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결코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시아는 자기가 필요로 하던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나는... 감정들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들로 인해 무력해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부끄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
- 신시아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자기 삶에 닥친 트라우마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보통 생애 초기의 경험들과 성인기의 의사 결정 패턴 사이의 관계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기 행동을 '그건 그냥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하지요.
- 재빨리 넘어가 버리려는 마음에서 그것을 가볍게 취급하고, (건강한 방식이든 해로운 방식이든) 무마하거나 그냥 묻어 버릴 방법을 찾아내지요. 트라우마와는 화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트라우마의 본질은 감정적 충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 트라우마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방치하면 신체와 감정에,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는 성인이 된 후로 그러한 트라우마의 결과들,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가져온 파괴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흡수했어요.
- 제가 보기에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때 쓰는 렌즈는 사실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생애 초기의 트라우마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하나 있지요. 그리고 그러한 트라우마의 결과이자 그 트라우마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내내 일상적으로 행하는 수많은 행위가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표면적으로는 잘못된 결정, 나쁜 습관, 자기 방해, 자기 파괴처럼 보여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듣게 하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이토록 강력하게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너는 뭐가 잘못된 거니?'라는 부적절한 방향의 비판을 피하게 해 주기 때문이죠.
- 저는 이 모든 고통이 똑같다고 확신해요. 거의 모든 파괴적 행동을 관통하는 절망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감정입니다. 자기가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우리가 축복을 스스로 차단하는 일이 그토록 잦은 이유는,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충분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당신이 집안 가득 좋은 물건들을 채우고 인생이라는 그림을 아름다운 액자에 끼워 넣었다고 해도,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깊이 묻어 두기만 한다면, 당신의 상처 입은 부분이 당신이 공들여 쌓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동안,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지금 여기 당신이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희망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도요. 신시아가 썼듯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지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 일은 한 번에 한 순간씩, 한 걸음씩 이루어집니다."
- 제임스가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어요. 사실상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해야겠지요. 마치 유령과 앉아 있는 느낌, 텅 빈 존재 같은 느낌이었죠. 제임스와 있을 때는 저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아이의 기록에서는 위탁 양육 아동들에게 흔히 보이는 '전형적인 트라우마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임스가 생후 3개월이었을 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듯한 엄마가 남자 친구와 함께 사라졌어요. 아이가 '보호소'에서 6주를 보내고 난 뒤, 혼자 살고 있던 외할머니가 제임스를 받아들이는데 동의했답니다. 이 할머니는 제임스를 키워야 하는 일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과거 기록을 살펴보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의욕도 없고 정도 없는 양육자의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하지만 외할머니도 본인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어요. 신체 학대도 성적 학대도 없었고, 마약 사용을 목격한 일도, 기타 다른 형태의 트라우마도 전혀 없었어요. 여러 기록을 보면 그저 무심하고, '지쳐 있고', 상호작용을 잘 주고받지 않는 성향, 언어적 상호작용이든 신체적 상호작용이든 최소한만 하는 양육 방식이 적혀 있더군요.
- 그러나 제임스에게는 모든 관계의 상호작용이 결국에는 관계를 끊는 것으로 끝났죠. 제임스에게 '타인들'은 안전하지 않았어요. 그의 세계관 안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주거나 떠나기만 하는 존재들이죠. 타인들은 신뢰할 수 없어요. 그때 저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의 한 가지 핵심적 측면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요?'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당신은 관심을, 보살피는 손길을,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한마디로 사랑을 받지 못했나요? 저는 방임이 트라우마만큼이나 해롭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죠. 발달기 중 어느 시기에 방임이 일어났는가? 방임의 패턴은 어떠했는가? 방임이 얼마나 가혹하거나 박탈적이었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절대적이고 철저한 방임은 아주 드문 일이므로, 방임이 일어났을 때 어떤 '완충' 요인이 있었는가?
- 가장 흔한 방임의 형태는 아무 패턴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양육입니다. 어떤 날은 아기가 울면 어른이 나타나 먹여 주고 돌봐주고, 또 다른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요. 또 어떤 날들은 누군가가 와서 고함을 지르고 아기를 흔들어 대고 다치게 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세계는 심한 조절 장애를 일으키죠. 발달 중인 뇌 시스템에 명확하고 조직적인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구조'가 아기에게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 아기의 세계는 예측할 수 없고, 거기서 '혼란스러운' 방임이 나타나죠. 그러면 핵심 시스템들이 분열적이고 무질서한 방식으로 발달하여 결국 기능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또 다른 종류인 '조각' 방임은 발달의 여러 측면이 정상적이며 몇 가지 핵심 시스템은 적절한 때에 발달에 필요한 경험을 얻지만, 한 가지 이상의 핵심 시스템이 그러지 못해서 건강한 발달의 결정적 측면 하나가 결여되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 아이가 매일 15가지 언어를 들은 경우에도 언어 와해가 일어납니다. 이 경우 아기의 발달 중인 뇌가 그중 어느 한 언어라도 의미를 파악할 만큼 각각의 언어에 충분한 시간이 할애되지도 않고 충분히 반복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언어 발달이 지연될 테고, 비정상적이 될 수도 있어요.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6주 동안 한 사람에게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돌보기 시작하고, 그러다 또 그 사람도 사라지고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면, 아기의 뇌에 건강한 관계의 신경망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구조가 확립될 만큼 충분한 반복을 그중 어느 한 사람과도 나누지 못한 것입니다.
- 살면서 많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누리기 위한 핵심은 생애 첫해에 소수의 몇 명과 안전하고 안정적인 돌봄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한 반복을 통해 토대, 즉 관계의 기반 구조를 다질 수 있고, 이 토대를 바탕으로 건강한 관계의 연결을 계속 키워갈 수 있죠. 다시 언어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일단 한두 가지 기본 언어를 배우고 나면 이어서 다른 많은 언어를 계속 배울 수 있잖아요. 하지만 갓난아기나 걸음마 하는 아기나 어린이가 '사랑'을 아웃 소싱하는 집안에서 자란다면, 핵심적 관계 능력의 발달이 저해되거나 정지되는 결과로 이어져 일종의 조각 방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 앞에서도 우리는 회복탄력성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도전에 직면하거나 심지어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도 어린이와 어른 모두, 우리 분야에서 쓰는 표현으로 '회복탄력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고, 앞서 말했듯이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은 고무공의 탄력성과는 다릅니다. 또한 무조건 존재하는 아동기의 속성도 아니고요. 트라우마 이후에 원래의 '기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역량은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그중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연결성입니다.
- 다시 한번 명백히 해 두자면, 회복탄력성은 심리 분야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맞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생물학적 상태를 유전자 발현 수준의 가장 작은 단계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면, 트라우마는 어떤 식으로든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 삶'에서는 어떤 뚜렷한 문제도 보이지 않거나 회복탄력성을 보여줄 때조차, 그런 생물학적 변화들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학교생활을 계속 잘해 나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할 수 있어요. 또는 아이가 이전의 정서적 기능 수준으로는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의 신경내분비계에 생긴 변화가 당뇨병 발병 가능성을 높였을 수 있고요. 이는 사실 ACE 연구가 증명한 사실입니다. 역경은 발달 중인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것입니다.
- 자기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엔가 다른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힙니다.
"당신은 과거를 탓하고 있군요." "당신의 과거가 핑계가 되지는 않아요."
맞는 말입니다. 당신의 과거는 핑곗거리가 아니죠. 하지만 하나의 설명이 되는 것은 맞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통찰을 주는 설명이지요. 저는 우리의 강점과 취약점, 독특한 반응 들은 전부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 표현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일어났던 일'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한 행위를 직시하고, 우리 삶 속의 트라우마를 덮고 있는 겹겹의 층들을 벗겨 내고, 우리의 과거가 지닌 날것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치유가 시작됩니다.
- 다행인 점은 학교들이 트라우마의 영향에 관해 배우고 평가하고 지원하고 가르치는 방식을 단순히 몇 가지만 바꿔도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극적으로 향상되며, 다루기 힘들고 혼란을 일으키는 행동이 줄어드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겁니다. 교실에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전략들을 사용한다면, 선생님들은 지원과 존경을 받고, 아이들은 그들의 필요와 강점 들이 무엇인지 밝혀지고 적절히 다뤄지며, 모든 결과가 개선되지요.
- 역경과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가 방금 말한 것 같은 임상팀을 만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에 치료사가 치료를 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깊이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는 몇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치료의 그물망은 하루를 보내는 동안 띄엄띄엄 여러 차례 일어나는 긍정적 인간관계에 기반한 접촉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랍니다. 심리치료사는 치유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필수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연결성'이 결여된 채 심리 치료만 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말이지요.
- 암묵적 편견과 인종차별과 관련해 가장 포착하기 어려운 점 하나는, 한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이 언제나 그 사람의 행동을 추동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념과 가치관은 뇌의 가장 위쪽, 가장 복잡한 부분인 피질에 저장되어 있죠. 하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연상을 만들 수 있어요. 왜곡되고 부정확하고 인종차별적인 연상들 말입니다. 한 사람이 매우 진지하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신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종차별적 언사나 행위를 불러오는 암묵적 편견들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뇌의 순차적 처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발달기의 경험들이 뇌의 아랫부분에 우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온갖 종류의 연상들을 채워 넣는 힘을 지녔다는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 우리는 너무나 많은 백인이 "우리 집에서는 그 누구도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걸 들어요. 하지만 그건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그건 당신의 부모가 당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지요. 그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가 하는 문제이고요. 집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관해 말할 때 오고 가는 어조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그건 태어났을 때부터 흡수해 온 것들이고,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는 요점이 아니에요.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이 작동하고 있죠.
- 어린 시절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최초의 연상들을 형성할 때, 가장 주요한 영향은 부모에게서 받는 영향입니다. 사실 부모의 영향은 부모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에서 오지요. 또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에게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 암묵적 편견은 훨씬 더 변하기 어렵죠. 어떤 사람이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들은 뇌의 지성적인 부분에 들어 있는 것이고 암묵적 편견은 뇌의 아랫부분에 있으므로, 그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의 암묵적 편견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웃어넘기는 농담들에서, 내뱉는 말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하지요. 이런 점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과 관련되는 방식을 지켜보면 흥미롭습니다.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후 구조적 인종차별과 암묵적 편견, 백인의 특권에 관한 많은 대화가 터져 나왔지요. 이는 너무나 많은 오해들을 들춰냈고,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고통들이 표출되었어요. 물론 수없는 자기 방어도 낳았고요. "나는 한 번도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적이 없어" "내 몸에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뼈가 하나도 없어" 이런 말들요. 그런데 그건 뼈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뇌의 문제지요. 우리는 누구나 깊이 새겨진 편견들을 가지고 있고, 그 편견들 사이에는 인종차별적 연상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 암묵적 편견을 해결할 때 어려운 일은 제일 먼저 자신이 그런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견이 언제 표현되는지 잘 떠올려 보세요. 자신이 편견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 때와 장소를 예상해 보세요. 용기를 내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 자신의 편견을 불러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보세요. 그런 일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적정하고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회복탄력성을 키워 줄 수 있다는 것을요. 새로운 연상들을 만드세요. 새로운 경험을 해 보세요. 이상적인 것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로 가서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속한 범주가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들을 기반으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정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 언덕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직사각형의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의 기둥과 대들보에는 멋진 조각이 새겨져 있었어요. 그 큰 문으로 들어가면 마오리족 공동체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담으로 에워싸인 공간인 마라에 marae로 이어졌습니다. 그 직사각형 건물은 화레누이 wharenui라고 하며 마오리 공동체가 모이는 집회소였지요. 수십 명의 마오리족 사람들이 그 집회소로 가는 길에 줄지어 서 있더군요. 노인 한 명이 방망이를 들고 큰소리로 마오리 말을 하며 다가오더니 내 앞 바닥에 긴 잎을 하나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를 환영하는 포휘리 powhiri라는 행사가 시작된 것이었어요.
- 25년 전, 뉴질랜드 소아 학계의 선구자인 로빈 팬코트 Robin Fancourt 박사가 제게 뉴질랜드로 와서 발달기 트라우마와 뇌에 관한 제 연구에 대해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이에 저는 마오리 치유자들과 만날 시간을 주선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당시 저는 토착 원주민들의 치유 관행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었거든요. 트라우마는 항상 인류의 여정에서 한 부분을 차지해 왔고, 우리 조상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원주민인 퍼스트 네이션 First Nations과 메티스 Métis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노인들과 치유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가르침을 받으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면서 여러 토착 치유 관행들에 공통 요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리듬을 사용한다는 점,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다는 점이 가장 두드려졌지요. 하지만 아직도 제가 배워야 할 것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 이제 이틀 동안 저는 마오리족 공동체의 렌즈를 통해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해 배울 예정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얻은 가르침은 교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은 저를 앉혀 놓고 글을 읽게 하거나, 전통적 치유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틀 동안 저를 자기네 공동체에 푹 담가 뒀어요. 자신들의 지혜로써 제게 배움의 기회를, 하나의 경험을 선물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발견할 수 있는 심오한 것들이 거기 많이 있었지만, 제가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지는 저 자신에게 달린 일이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배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저 자신을 열 것인가, 아니면 그 경험을 그저 서구 의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관찰하고서 하나의 특이한 인류학적 주석으로만 여길 것인가의 문제였지요.
- 하버드의 한 연구팀은 최근 실시한 연구로 우울증과 연관된 모든 요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인이 연결성과 관련된 것임을 알아냈답니다. "사회적 연결이 주는 보호 효과는 유전적 취약성이나 생애 초기 트라우마의 결과로 우울증 발병 위험성이 더 높은 개인들에게도 유효하다"라고 밝혔죠. 우리의 연구 역시 그들의 의견을 확고하게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알아낸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는 어떤 사람의 현재 정신 건강을 판단할 때, 아동기의 관계 건강, 즉 연결성이 역경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또한 트라우마를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현재 정신건강 기능의 상태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요인이 그들의 현재 연결성이라는 것도요. 저는 마오리족 노인들도 생각나고, 트라우마, 불안, 우울증, 물질 남용이 '모두 다 같은 것'이며 그 모든 일이 전부 우리의 연결성 및 소속감과 관련된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생각나네요.
-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수천 명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제가 얻은 깊은 깨달음은 모든 고통이 다 똑같으며, 단지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각자가 선택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겁니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서로의 고통에서 배우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상실과 우리 모두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은 거대한 집단적 고통의 원천이지요.
- 우리는 조절 장애 상태의 성인이 조절 장애 상태의 아이를 조절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지치고, 좌절하고, 조절 장애를 겪는 성인은 그 누구도 조절해 줄 수 없습니다. 당신도 지적했듯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교사, 지도자, 감독관, 부모, 코치 등 그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겁니다. 자기 돌봄이란 그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 돌봄을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건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입니다. 당신이 부모든, 교사들, 코치든, 치료사들, 친구들, 다른 사람들을 변화하도록 도울 때 사용할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당신 자신이란 것을 기억하세요. 관계란 변화를 위해 사용되는 화폐입니다.
- "어머니한테는 분명 아주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교육도 받지 못했고, 기술도 하나 없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임신한 거잖아요. 분명 많은 사람이 어머니한테 아이를 지우라고 말했을 거예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죠. 그 아이를 지켜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잠시 말을 멈췄어요.
"어머니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때가 많았다는 거 알아요. 어머니는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난 그걸로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게 괜찮다는 걸 알고서 떠나셔도 돼요. 제 영혼이 괜찮다고 해요. 꽤 오래전부터 괜찮았어요."
그건 신성하고 아름다운 순간,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어요. 어른이 된 후 저는 예전과는 다른 렌즈를 통해 제 어머니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저를 돌봐 주지 않고 보호해 주지 않고 사랑하거나 이해해 주지도 않았던 어머니가 아니라, 아직 자신도 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겁에 질리고 외로웠던,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한 명의 어린 여자로요. 저는 제가 필요로 했던 어머니가 되어 주지 않았던 일에 대해 수년 전에 어머니를 용서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걸 몰랐죠.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순간에, 저는 과거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에서 어머니를 풀어 줄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다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끝냈어요.
- 용서는 과거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바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고통을 여전히 꼭 붙들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요. 트라우마로 부서지고 상처 입었던 우리는 누구나 그 경험을 페리 박사님과 제가 말했던 외상 후 지혜로 바꿀 수 있어요.
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그들을 용서하세요. 당신의 과거에서 걸어 나와 당신의 미래로 가는 길로 들어서세요.
- 제 친구이자 시인인 마크 네포가 말했어요. 고통은 진실을 알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고요. 하지만 진실을 살려 두기 위해 고통까지 계속 살려 둘 필요는 없어요. 제 어머니를 제가 갖고 싶었던 어머니 상과 비교하기를 그만뒀을 때 평화로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과거에 어떠해야 했고 어떨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들에 집착하는 걸 그만두고 실제로 어떠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떨 수 있을지로 생각을 돌렸을 때요. 왜냐하면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또한 당신을 위해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은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힘 곱하기 힘 곱하기 힘은 곧 역량입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의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 페리 박사 : 리듬은 몸과 마음의 건강에 필수적입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리드미컬한 무언가를 꼽을 수 있을 거예요. 걷기, 수영, 음악, 춤,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 등등.
오프라 : 아기가 울 때 우리가 아기를 흔들어 주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건 아기가 스스로 진정할 수 있는 자기만의 리듬을 찾도록 도와주려는 행동이고요.
페리 박사 : 맞습니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진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은 우리에게 전염되지요. 아기가 기분이 나쁠 때는 우리도 기분이 나빠질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아기에게 다가가 아기를 안고 걸어 다닙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달래 준다고 느껴지는 리듬에서 시작했다가, 그게 효과가 없으면 아기의 조절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리듬 패턴으로 서서히 바꿔 가지요. 우리의 노력에 아기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아기를 달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리듬의 방식이 결정되는 것이죠. 우리는 자라면서 우리 자신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리듬과 활동을 하나하나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건 걷기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바느질이나 자전거 타기입니다. 누구나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거나 불안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 각자 선택하게 되는 활동이 있지요. 공통되는 요소는 리듬입니다. 리듬에는 조절하는 힘이 있어요.
- 오프라 : 다시 말해서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내적인 경험이 다르므로 장기적인 영향도 다르다는 것이로군요.
페리 박사 : 정확합니다. 장기간 이어지는 영향은 무엇이든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요인과 얽혀 있는데요. 이를테면 그 사람의 스트레스 반응의 형태(예컨대 각성인가 해리인가 둘의 조합인가)라는 요인도 있고, 스트레스 반응의 강도와 패턴이라는 요인도 있지요. 자기 교실에 불이 난 걸 본 1학년생은 공포로 반응했지만, 건물의 다른 곳에 있던 5학년생은 그만큼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학생에게 불은 거의 흥미진진한 것이었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이 난 내내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경험한 세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각자가 다르게 경험했기 때문에 스트레스 반응도 제각각 달랐죠. 수년간 업무 경험이 쌓인 소방수는 스트레스 반응이 적당한 정도로 활성화되었고, 그에게 화재 사건은 예상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일로 느껴졌을 겁니다. 그에게는 회복탄력성을 더 키우는 경험이지 트라우마가 아니었지요.
- 오프라 : 이는 곧 셀 수 없이 많은 어른들이 그 상처를 일상생활에서,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계속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그 상처를 다시 자기 자녀들에게 물려준다는 뜻이네요. 그리고 그 어른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페리 박사 :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그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반려자, 의사, 직장 동료들도 모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주 많은 오해가 생기고요. 게다가 때로는 그 오해들이 비극적 결말을 낳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양육자의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로 이야기했는데, 그 양육자들 역시 자신의 양육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의 영향은 세대를 건너고 공동체를 넘어 멀리 넓게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항상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우리의 핵심 질문으로 연민을 품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오프라 : 여러분이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 패턴을 생각할 때,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감정과 본능적 반응 사이에 작은 여백의 순간을 끼워 넣음으로써 스스로 현재에 깨어 있을 수 있고 결국에는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페리 박사 : 만약 부모와 아이가 함께 산책할 때 부모가 개와 산책하는 사람을 피하려고 길을 건너거나 아이의 손을 더 단단히 붙잡는다면, 그 아이가 개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조부모의 두려움은 부모의 두려움이 되고, 이는 다시 아이의 두려움이 되지요. 우리가 트라우마 치유처럼 개인적 수준의 변화와 예컨대 인종차별주의를 내재한 파괴적 정책들을 인식하고 바꾸는 것 같은 문화적 수준의 변화를 모두 포함하여, 의도적으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물려받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오프라 : 저는 여러 해 동안 저술가이자 영적 스승인 이얀라 반전트 Iyanla Vanzant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조상들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얀라는 "모든 가족에게는 육체적 특성이 유전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생각과 신념, 행동의 패턴과 병리가 있다"라고 말했죠. 앞 세대 사람들의 강점과 성공을 칭송하는 건 좋은데, "이 의식적·무의식적 특징 중 다수는 아주 강력하고 생산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라고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점에 대해 과학은 뭐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어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심리적 특성과 감정적 특성, 행동 패턴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가족 구성원에게서 다른 구성원에게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인지요?
페리 박사 : 물론입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지요.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대물림'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경로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질문하신 두려움에 관해 생각해 보죠. 두려움의 감각이 유전되느냐고 물었을 때, 엄밀히 말해 당신은 두려움을 느끼는 특성이 우리 유전자에 부호화되어 있어서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모호해요.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꿔서, '두려움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부모의 두려움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분명 ‘그렇다’입니다.
- 페리 박사 :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진통제인 엔도르핀과 엔케팔린 구성된 내생성 오피오이드 endogenous opioid가 분비되고, 말 그대로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오프라 :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유체이탈 경험'이고,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페리 박사 : 맞습니다. 이런 해리 반응은 피하거나 달아날 수 없는 괴로움이나 고통을 겪을 때 나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우리를 보호하는 거예요. 달아날 수 없고 싸워도 소용이 없으니 심리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로 도피하는 것이죠. 자, 다시 무관심한 부모를 둔 아기의 경우로 돌아가 볼까요. 아기의 싸움 또는 도피 반응은 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울어도 아무도 안 오거나, 누군가 오긴 하지만 와서 화만 낸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막막한 이 아기는 빠져나갈 수 없는 이 괴로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리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빠져나갈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하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해리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해리하도록 돕는 온갖 신경생리학적 변화들이 일어나죠. 그중 하나가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오피오이드가 분비되는 것이고요.
오프라 : 사람들이 "모든 게 느리게 움직였어요" 하고 말하는 이유도 해리 때문인 것이죠?
페리 박사 : 맞습니다. 해리 상태에 있을 때는 시간 감각이 무너지죠. 몇 초 동안 경험한 일이 몇 분간의 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또 몇 분은 영원한 순간에 갇힌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요. 이따금 총격 사건을 겪은 FBI 요원들에게서 상황 설명을 들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그 사람들은 실제로는 10초 동안 벌어진 일을 8분에 걸쳐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 순간 그들의 뇌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마치 뇌가 몸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요. 사별로 인한 깊은 슬픔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 겁니다. 그 슬픔은 마비된 것처럼 멍한 느낌을 일으키죠. 때로는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기도 하고, 영화 속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들도 있죠.
- 페리 박사 : 지금 하신 말씀은 부분적으로 해리하는 것이 적응에 유리한 상황도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군요. 만약 전투 중인 군인이 각성 단계에서만 움직인다면, 그래서 도피 단계를 지나 싸움 단계로 나아간다면, 달려 나가다 총격을 당하게 될 겁니다. 이 군인이 자신의 피질 영역에 계속 접근하려면, 그래서 훈련받은 대로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어느 정도 해리가 필요합니다. 그건 생존을 결정하는 문제죠. 해리 반응이란 것이 없다면, 사람은 더 큰 위협을 느낄수록 더 큰 두려움에 빠지고 피질의 더 많은 부분이 차단될 거예요. 부분적으로 해리할 수 있는 능력, 위협적인 외부 세계와 일부나마 단절하고 훈련받은 행동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경쟁 스포츠나 성취의 압박이 높은 예술 분야에서 성공을 위한 열쇠입니다. '몰입'이나 '무아지경' 같은 말이 바로 이런 부분적 해리 상태를 묘사하는 데 쓰이죠.
- 페리 박사 : 당신은 바쁘고 도전과 요구가 가득한 삶을 살지만, 그 모든 스트레스 요인들을 받아들인 다음 경계선을 긋고 의도를 사용하여 삶이 주는 스트레스 패턴을 좀 더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적절한 패턴으로 만들지요. 그런 게 바로 치유적이며 회복탄력성을 키워 주는 스트레스 활성화 패턴입니다.
오프라 : 저는 게리 주커브에게서 의도의 힘을 배웠어요. 그 힘이 말 그대로 저의 모든 걸 바꿔 놓았죠. 게리는 제게 의도가 모든 생각과 행동에 앞선다는 것을, 내가 한 경험의 결과는 내가 거기 투입한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가르쳐 줬어요. 복잡하게 들리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이 일을 하는 나의 의도는 뭐지?'라는 질문 없이 시작되는 일은 없지요. 일단 그걸 깨닫고 나자 저는 다른 사람이 제게 원하는 일이나 제 생각에 그들을 기쁘게 할 것 같은 일이 아니라, 제 의도가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어요. 제 인생에는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지만, 의도의 힘은 제가 스스로 원하는 일만 하도록 경계선을 그을 수 있게 해 주었죠. 그렇게 하는 게 진짜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크든 작든 모든 결정을 내리면서 안 된다고 말할 줄 알게 된 것이 저를 치유해 주었어요. 의도가 제 삶을 구한 것이죠.
- 오프라 : 박사님이 해 준 이야기 중에서 제게 가장 깊은 생각을 자극했던 것은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태어나는 것"이라는 말이었어요. 그 차이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페리 박사 : 작은 고무공 하나를 꼭 쥐거나 구부리거나 온갖 방식으로 힘을 가해도 결국에는 원래의 공 모양으로 돌아가지요. 이 고무공은 원래대로 돌아오는 탄력성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난 아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말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건 바로 그런 탄력성이에요. 아이들은 트라우마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마치 마법처럼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을 거라는 자신들의 희망 사항을 덮어놓고 믿어 버리는 겁니다. 그 아이들이 아무런 변화 없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정서적, 육체적, 사회적, 인지적 건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이 책 전체에 걸쳐 이야기해 왔듯이, 한마디로 사람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변하고 있어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가 한 모든 경험이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 뇌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연하기 때문이죠. 뇌는 항상 변화하고 있습니다. 철제 옷걸이를 생각해 보세요. 가령 배수관에 빠진 뭔가를 건져 내야 한다면 철제 옷걸이가 제일 유용한 도구죠. 옷걸이에 힘을 가해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듭니다. 이 옷걸이는 유연하죠. 그걸로 볼일을 보았으면 이제 다시 힘을 가해 원래의 모양으로 돌려놓으려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옷걸이 구부리기에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정확하게 처음과 똑같이 만들지는 못하죠. 굽혔던 자리에는 약한 지점들이 생겼을 겁니다. 같은 자리를 계속 굽혔다 펴기를 반복한다면 결국 옷걸이는 끊어질 겁니다.
- 오프라 : 박사님은 우리 세계가 관계의 측면에서 빈곤해졌다고 말씀하셨죠. 우리는 점점 더 적은 사람들과 만나는 환경에 살고 있고, 실제로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조차 우리는 서로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거나 완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지요. 이런 단절은 우리를 더욱더 취약한 존재들로 만들고 있어요.
페리 박사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멋진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 우리의 회복탄력성은 더 떨어졌다고 믿습니다. 스트레스 요인들을 인내하는 국민 전반의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우리의 연결성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이렇게 빈곤하다는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완충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의견이 자기와 다른 사람처럼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모든 대상에 대해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지요. 비교적 작은 도전들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태 의존적 기능의 결과로 과하게 민감해져 있을 때면, 우리는 재빨리 덜 이성적이고 더 감정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으로 넘어가지요. 우리는 차분하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숙고하고, 성찰하고, 상대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려 노력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프라 : 저도 늘 그런 모습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나 하거나, 누군가 아주 오래전에 한 말이 다시 떠오르면 '취소 문화 cancel culture'가 앞으로 나서지요. 아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
페리 박사 : 역설적인 사실은, 사람 사이 모든 의사소통의 특징은 소통 오류와 부조화가 일어나는 순간과 그에 뒤이은 복구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 오프라 : '타자'로요.
페리 박사 : 맞습니다. 이제 그게 우리 현대 세계에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매일 '새로운' 사람을 수백 명도 볼 수 있고, 이럴 때 뇌는 그 수백 명의 사람을 계속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친구인가 적인가? 나를 도울까 해칠까? 이런 모니터링은 몹시 지치는 일입니다. 감정 처리 역량을 소모하죠. 그래서 도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을 없는 존재처럼 완전히 무시하고 그들과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우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우리 곁을 스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느낌을 주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자기 보호를 위한 한 방법일 뿐일 수도 있어요. 하루 동안 여행을 하고 나서 '기진맥진한' 느낌이 들었던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한 일이라고는 몇 번 줄을 서 있다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었던 게 다라고 해도 말이죠.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뇌가 끊임없이 수천 가지 새로운 자극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기억합시다. 과하지 않은 정도라도 긴 시간 동안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지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 페리 박사 : 우리가 앞에서 특정 사람들이 학대당하는 관계를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관해 나눴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는군요. 우리의 뇌와 마음은 익숙한 패턴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심지어 그 패턴이 부정적일 때도 말이죠. 사람들은 결국 적응에 불리했던 이전의 패턴들을 반복하고, 대개는 자기가 그걸 반복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주변 사람들이 본인보다 상황을 더 분명히 인지하지요.
오프라 : 맞아요. 그리고 대체로 그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없지요. 저는 아동기 초기부터 제가 성공하려면 저 혼자 힘으로 이뤄 내야만 한다는 걸 알았어요.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안전 지지대'가 제게는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게서 어떤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걸 키워 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준 아주 특별한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어요. 그게 박사님이 이야기하는 바로 그거예요. 정말로 안전 지지대란 새로운 렌즈로 우리를 보아주고 시간을 내어 도와주는 단 몇 명의 사람일 수도 있더라고요. 제 선생님들은 트라우마 이해 기반 교육 같은 걸 알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제 그런 교육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고, 박사님의 획기적인 연구가 세상에 알려져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사람이 치유될 거라는 희망이 느껴지시나요?
- 페리 박사 :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며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설명을 듣고서 깊이 안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설명은 사람들에게 정신 질환의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그저 사람의 뇌는 그런 방식으로 조직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당신에게 있었던 일을 고려하면 정확히 예측되는 결과라는 걸 말해 줄 뿐이에요. 그런 다음 뇌는 유연하며 '가소적'이라는 것, 즉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그런 뒤에 그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는 시스템들을 변화시키도록 도울 계획을 함께 세우지요.
오프라 : '내가 겪은 일들이 내가 이런 종류의 감정들을 느끼도록 만들었구나. 그리고 이건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그건 아주 이치에 맞는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이로군요. 과거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서너 명의 아이를 키우는 과로하는 엄마라면, 그 모든 짐을 혼자서 지고 가려 애쓰는 동안 대처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 엄마의 건강은 자신이 깨닫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위험에 처해 있고요. 그러다가 자신이 그렇게 압도감에 짓눌리는 이유가 자신을 조절할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자신이 조절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거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
페리 박사 : 그건 대단히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는 학대를 당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도와달라는 요청이나, 트라우마 사건 이후 그 일을 겪은 공동체를 위한 조언을 구하는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그럴 때 제가 사실은 어른들과의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살고 그들을 가르치고 치료하는 어른들 본인이 조절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들이 잘 조절된 방식으로 현재에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연민을 품고 아이들을 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조절과 보상과 치유를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렇게 온전히 깨어 함께하는 순간들인데 말입니다. 아이들은 도우면서 어른들의 필요는 채워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작업은 별로 효과를 내지 못할 겁니다. 이는 트라우마 이해 기반의 모든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원칙입니다. 최전선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을 도와야만 한다는 원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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