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젠 캠벨] 진짜 그런 책은 없는데요 - 또다시 찾아온 더 엉뚱한 손님들

일루젼 2022. 7. 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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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젠 캠벨 / 노지양

원제 : More weird things customers say in bookshops. 
출판 : 현암사 
출간 : 2019.05.18 


아쉬울 때 맺는 것이 좋았을까? 

1권 격인 <그런 책은 없는데요...> 만큼의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다. 지난 책에서는 해당 일화들의 배경이 반드시 서점이 아니더라도 있을 법한, 보다 넓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일화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서점'과 '손님의 상식 부족'에 너무 집중된 느낌이다. 해서 틀림없이 실화들일 텐데도 말장난을 이용한 유머집 같은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쉽다.

 

어느 업계나 동종업계에서만 통하는 애환 개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은 해당 업계의 영향력 안에서다. 외국인으로서 아슬아슬하게 따라 웃을 수 있었는데, 몇몇 부분은 웃음 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인지하고 있지만 체감할 수 없는' 진실을 떠올리면 약간 외로운 기분이 든다.

무언가를 읽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글자로 된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반가움.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오히려 이 쪽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서점 손님, 서점 주인, 사서,
애서가, 도서 수집가, 책벌레, 
침대 독서가에게
바칩니다.

    

 

- 가끔은 서범 직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람찬 직업 같기도 하다. 몇 달 전 한 손님이 정화를 걸어와 어렸을 때 갖고 있었다는 책을 찾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그 책을 구매해 손자 손녀들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서점에 재고가 딱 한 권 있었고 그 책을 손님에게 배송해주었다. 다음 날, 손님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책이 무사히 도착했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우리가 보내준 책이 그 손님의 책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갖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책의 앞장에는 이모할머니가 쓴 글귀가 적혀 있었고, 그녀가 일곱 살 때 책을 떨어뜨려 생긴 움푹 파인 자국도 똑같았다. 그분의 어머니가 40년 전 우리 서점에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집의 창고 세일에서 그 책을 팔았고, 어찌 된 일이었는지 하필이면 우리가 그 책을 보유하게 되었고, 어찌 된 일이었는지 그 손님이 하필이면 우리 서점에 전화를 했다. 이러한 순간들은 그저 축복일 뿐이다. 

 

- 매일매일 온갖 유형의 손님들이 찾아와 서점이라는 작은 세상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통해 서점이라는 이상하고 별나고 경이로운 우주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싶다. 괴상망측한 요구들, 엉뚱하고 황당한 답변들, 무례하고 속 터지게 하는 언사들도 있으나 그 무엇보다 아이들이 툭툭 던지는 예측불가의,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다. 

 

- 직원 : 손님,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

손님 : 네. 여기가 역사책 섹션이죠?

직원 : 네.

손님 :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은 갖다 놓으셨던데요.

직원 : 그렇죠.

손님 : 그런데 왜 제3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은 없어요? 어디에 두셨어요?

 

- (손님이 구매하지 않은 책을 들고 서점을 나가려 한다.)

직원 : 손님, 책값을 지불하지 않으셨는데요?

손님 : 아, 네. 알아요. 걱정 마세요. 내일 다시 가져올게요.

 

- 손님 : 여기엔 책이 되게 많네요.

직원 : 네.

손님 : 그럼 당신은 항상, 그러니까 여기에 앉아서 이 책의 권수를 세나요?

직원 : 아니요, 딱히 그러진 않죠.

손님 : 이 책 한 권 한 권 다 세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으세요?

직원 : 아주아주 긴 세월이 걸리겠죠. 수천수만 권이 있으니까요.

손님 :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직원 : 그건 안 세봐서 모르겠어요.

 

- 손님 : (친구에게) 너 책 다 읽으면 어떻게 해?

손님 친구 : 가끔은 불태워버려.

손님 : 뭐? 불태운다고?

손님 친구 : 응. 그러고 싶은 기분일 때가 있어. 

 

- 손님 : 저는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 그 책을 꼭 먹어요.

직원 : ... 네?

손님 : 그 책이 실제로 저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고 싶거든요. 그래서 책을 끝까지 읽으면 몇 페이지 잘라서 내가 먹을 음식에 넣어요.

직원 : 읽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책은요?

손님 : 당연히 그 책들은 안 먹죠.

직원 : 그렇죠. 그건 그렇겠네요. (잠시 침묵 후) 그런데 종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 뭔가요?

손님 : 대체로 스튜죠.

직원 : 그렇군요.

손님 : 애플파이도 썩 잘 어울려요. 먹을 만해요. 하지만 절대로 밀크셰이크에 책을 넣진 말아요. 한번 시도해봤는데 영 아니었어요.

직원 : ... 반드시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 손님 : 이 오디오북을 살까 하는데요.

직원 : 오디오북 좋죠.

손님 :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낭독자가 마음에 안 들어요.

직원 : 글세요?

손님 : 낭독자도 고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택할 텐데.

(영국 런던 출신 배우. 특유의 저음 목소리로 인기가 많다.) 

 

- (전화벨이 울린다.)

직원 : 여보세요?

손님 : 아, 전화받았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직원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 지금 손으로 쓴 메모를 보고 치킨 파이를 만들고 있는데요. 내가 쓴 글씨인데도 못 알아보겠어요.

직원 : ... 네.

손님 : 레시피를 확인해줄 수 있어요?

직원 : ... 어떻게요?

손님 : 아! 지난주에 그 서점 요리 섹션의 가장 꼭대기 칸에 있는 요리 책 중 한 권에서 레시피를 베껴 적었거든요. 그 서점에 갈 때마다 요리법을 하나씩 적었어요. 필요한 것만 적어 오면 되는데 책 한 권을 다 살 필요는 없잖아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쓰느라 그랬는지 글씨가 엉망이네!

직원 : ...

손님 : 육수를 넣은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잠깐 보고 와서 말해줄 수 있어요? 두껍고 큰 검은색 책이고 책등에 금색 글씨로 쓰여 있어요.

직원 : 안타깝지만 그 책은 오늘 판매되었네요.

손님 : 뭐라고요? 안 돼요... 나 필요한데! 왜 사가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어요? 

 

- 손님 : <제인 에어> 있나요? 우리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했어요.

직원 : 그럼요.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손님 : 고마워요. 그런데 말이에요. 내가 이 독서 모임이란 걸 가긴 가는데, 사실 책 읽는 걸 정말 싫어해요. 

직원 : 그러면... 굳이 왜 독서 모임에 다니세요?

손님 : 그러게요. 나도 모르겠다니까. (잠시 침묵)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런 제목의 책도 샀다니까요.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말하는 법>.

직원 : 네?

손님 : 네. (침묵) 근데 그 책도 안 읽었어요. 

 

- (한 커플이 계산대로 다가온다.)

직원 :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남자 : 네, 어휘 책을 찾고 있어요. <더 소어스 The Soars> 아니면 <더 사스 The Sars>예요.

직원 : 제가 둘 다 검색해서 정확한 제목을 알아보겠습니다.

여자 : 아, 아녜요. 제목 적어왔어요.(손님이 가방에서 냅킨을 꺼내 직원 앞에 펼쳐놓는다. 이렇게 적혀 있다. <더 사우루스 The Saurus>)

(동의어 사전을 뜻하는 시소러스 Thesaurus를 잘못 적은 것)

 

- 손님 : 아들에게 줄 책을 하나 사려고요. 그 애는 아직까지 종이책을 좋아하는 특이한 인간 중 한 명이죠.

 

- 손님 : 히틀러가 쓴 그 희곡 있습니까?

직원 : ...

손님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Titus Andronicus>라고 있잖아요. 모든 등장인물이 죽는 책.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살인, 강간, 생매장, 식인 등 온갖 끔찍한 행위가 등장하는 잔혹 비극이다.)

 

- 손님 : (계산대에 길게 선 손님들을 밀치고 와서 다른 손님을 응대 중인 직원에게 묻는다.) 예의에 관한 책은 어디에 있죠?

 

- <그런 책은 없는데요...>라는 책을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서 있는 독자들은, 약간 엉뚱하고 이상한 느낌을 풍기기도 했고 사람 이름을 헷갈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한 이상한 말들'을 들고 서점에 들어가서 손님과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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