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원제 : 殺戮にいたる病
출판 : 검은숲
출간 : 2007.02.28
마지막 두 세장에서 뒤통수가 얼얼했다. 읽어가는 동안 약간씩의 위화감이 들었지만, 결말을 읽고 나서도 그것들을 제대로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인데다 여기저기서 언급된 제목을 많이 접했었지만 정작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이 읽었기에 약간의 충격이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파국>도 생각이 났지만, 그건 오히려 담백하고 건조한 편이었다. 뭐랄까, 나름의 투명함이 있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읽는 도중 잠깐씩 멈춰야 할 만큼의 끈적한 밀도가 있다. 조금은 불쾌감에 가까운 느낌인데, 그로테스크한 매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하의 내용은 상관없는 분들만 읽어주시길.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부분만 바라보고, 그것과 관련된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끈적하게 구성된 뒤틀림 아래로 깔린 '착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자는 사건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듯했던 마사코다.
그녀가 바라보는 아들과 아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그 사이의 갭을, 독자들은 보통의 어머니들이 가질 법한 애착과 싸고돎이라고 판단해버린다. 이런 선입견은 미노루의 내면에 또아리를 튼 비틀린 여성관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해 독자들의 눈을 가린다.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듯 보였던 모습들은 실제로는 나이보다 미성숙한 행동이었다는 것도, 어쩌면 그런 판단은 하나의 가치관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야 이해하게 된다.
같은 장면의 반복, 하지만 미세하게 달라진 묘사들은 멍하니 앉아서 기억을 더듬어야 겨우 원래의 위치 -그 언저리 즈음- 로 이동한다. 마사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진실은 아니다. 이는 히구치의 입을 빌어 표현된, 작가가 독자에서 당당하게 선언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대사에서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마사코가 아들의 방에서 찾아낸 비닐봉지는 피해자의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몇 월이었는지, 그리고 미노루가 그것을 자신의 방에 둔 적이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라.
마사코가 현관에서 발견한 흙 자국들은 아들의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미노루가 남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라.
마사코는 아들을 미행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아들의 행선지가 어디였을지를 다시 생각해보라.
마사코의 어투와 미노루에게 차를 권하는 어투를 다시 읽어보라. 한 번은 잠겼던 문과, 잠기지 않은 문을, 그리고 제자리에 있지 않았던 카메라와 그것에 대한 마사코의 언급을 생각해보라.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좇는다. 마사코에게는 아들만이 관심사였지만, 그 궤도의 가장 앞에 누가 있었는지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충격점이다. 미노루의 웃음과 선량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서만 의미를 갖지는 않았다. 통상적인 '성인'에게 기대되는 성숙함과 그의 부재는, 아비코 다케마루라는 작가를 통해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괴함을 보여준다. 그것에 관한 그녀들의 반응은 미노루의 '표면'을 이해해야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다.
표면과 이면. 이것은 미노루라는 캐릭터 안에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소설 전체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지만, 'mirror on the wall'이라는 바의 이름에서처럼, 그것의 거울상인 엘렉트라 컴플렉스 또한 하나의 축을 이룬다. 작가의 세계 속에서 '우리 모두'는 이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앓고 있는 정신을 가진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신화의 색채를 덧입힌다. 그저 표현형의 차이일 뿐, 이것들의 기원은 이미 인간의 정신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부정할 수 없는 원형이라는 듯이. 캐릭터들은 각자 조금씩 그리스 비극 속의 인물들을 닮아있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와 파이드라...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 만이' 결말은 아니라는 희망 역시 남겨둔다.
같은 병을 앓고 있더라도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
- 아아,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무서운 이 병과 그 비참함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숨기려 한다거나, 또는 실제로 숨길 수 있다거나,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게 사람들 사이에 숨어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이 병은 걸린 본인마저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숨어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 마사코는 매일같이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 생각을 했다. 속으로도 그렇게 중얼거렸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몇 번이나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숫자상으로는 최저기온이건 강설량이건 다른 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따뜻할 정도였다. 겨울을 싫어하는 그녀에게는 어느 겨울이나 '다른 해에 비해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 히구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노모토 입장에서도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일 거라는 생각에 겨우 참을 수가 있었다.
- 시마키 도시코는 병원에서는 일만 아는 재미없는 여자 축에 들었다. 백의의 천사라기보다는 늘 침착하고 냉정한 간호로봇, 결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대신에 환자의 죽음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내가 그래도 약간 기운이 있을 때, 둘이서 시마키를 두고 자주 농담을 했다. 그건 "저 간호사는 이럴 때 뭐라고 할까?" 하는 말장난이었다.
- 아내가 세상을 뜨자 집으로 찾아온 도시코는 그런 '로봇'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섬세한 배려와 무언의 위로, 히구치는 그녀가 세 번째 찾아왔을 때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드라마처럼 전개되지는 않는다. 남에게 눈물을 보였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고통이 누그러드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따금 도시코가 찾아와 주는 걸 약간 기다리게 되었을 뿐이다. 오아시스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그에게는 바깥세상의 유일한 흥미 대상이었다. 그녀가 드나들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진짜 사람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 지금까지 다룬 엽기 살인,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역시 그 사건이었다. 몇 해 전, 온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자 어린이 연쇄 살인. 여러 의미에서 악몽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 그 자체만이 아니라 경찰에 대한 신뢰 추락, 매스컴의 실수로 쏟아진 잘못된 보도들, 범인 체포 뒤의 지나친 보도경쟁과 호러 비디오 규제를 비롯한 지나친 여론 반응들.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악몽 같았다. 누구나 그걸 두려워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최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이 사건 보도 자체가 일본 국민에게는 호러 비디오였다.
-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 또한 아니다. 히구치는 순간 기자들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그 분노의 창끝은 바로 자신을 향했다. 경부라고 부르는 바람에 우쭐해져서 그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이런 기사라면 그가 경찰 수사를 비난한 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도 없는 단계에서 '전직 경부'가 범인은 '성도착자'라는 소리를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가령 거기에 '아마'라는 말을 덧붙였다 해도, 아니 국민 전체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 해도.
- 그런 것은 모르지만 최근에는 8밀리미터도 상당히 보급되어 있다고 들었다. 크게 보기 힘든 물건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일단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애는 결코 비디오 마니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카메라를 사용하지도 않고, 보통 비디오도 이상할 정도로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다. 그 애는 아니다. 분명히 어딘가 제2의 여자 어린이 살인범 같은 남자가 있을 것이다. 주위 사람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자기 취미의 세계에 몰두하며, 방은 변태적인 만화나 비디오로 가득한-그런 남자의 범행일 게 분명하다. 다만 지금은 그 성욕의 대상이 어린 여자애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 히구치는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 속에 웃으며 지나가는 젊은이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너무도 다른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캠퍼스 한구석의 곰팡내 나는 한 방에서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야기는 정신을 앓는 남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그걸 듣는 우리도 앓고 있다. 구제할 수 없을 지경으로 앓고 있다. 가오루도, 나도. 그리고 아마 이 교수도.
- "죽음이란 것에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교수가 말했다.
히구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오루는 바닥을 닦은 걸레를 복도의 손 씻는 곳에서 헹구고 있다. 히구치가 거들려 했지만 그녀는 기어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데도 교수의 질문은 이어졌다.
"타나토스, 라는 걸 아시나요?"
- "원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가운데 한 명인데, 죽음을 관장하죠. 슈테켈이나 프로이트 같은 사람들은 그걸 '죽음을 향한 소망' 혹은 '죽음을 향한 본능'이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을 원하는 본능인 에로스에 길항하는, 죽음을 바라는 본능이 인간의 마음에는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던 거죠."
죽음을 향한 본능, 타나토스? 히구치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본능이라는 이야기인가.
"모든 생물은 언젠가는 무기질로 돌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무기질로 돌아가려 하는 경향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과는 완전히 대립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이 두 가지가 다투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이야기하는 거죠.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그런 주장을 부정했습니다. 타나토스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멜라니 클라인을 비롯해 극소수밖에 없습니다. 논리의 비약이 큰 데다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던 거죠."
- "그러나 저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죽음을 바라는 본능이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이란 의미에서요. 타나토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이론에 따르면 죽음을 향한 본능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 공격 충동의 배출구를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있고, 그 결과 남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그리고 반복 강박이라는 쾌락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타나토스 콤플렉스라고나 불러야 할 현상은 전혀 다른 겁니다. 묘지에 흥미가 있는 아이. 벌레를 죽이는 아이. 죽음을 소재로 하는 농담 등등.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흥미를 갖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는 왜 태어나는 걸까?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걸까?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 마사코는 매우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걸 생각해 내는 것은 자기의, 그리고 가정의 파멸과 연결되리라는 예감이 들어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무시무시한 파멸의 예감. 이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에 그런 것이 찾아올 리가 없다고 마사코는 믿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런 예감을 뇌리에서 씻어 낼 수는 없었다.
- "히구치 씨." 우동에는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오루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뭐지?"
"제 문제는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무슨 이야긴가?" 히구치는 정말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이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기사로 쓰거나 하면 제가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실 필요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역시 나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가 어떻게 느낄지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언제나 내 생각뿐. 내 문제를 생각하는 것만 해도 버겁다. 이 죽지도 못한 늙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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