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궤도] 궤도의 과학 허세

일루젼 2022. 7.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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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궤도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2.06.22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빨려들듯이 매끄럽게 읽히는 것에 비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안구의 흰자와 길들여짐의 관계성, 온난화가 초래하는 빙하기, 시선이 양자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 등등.

그럼에도 적절한 드립과 예시들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한 핵심들을 쏙쏙 머릿속에 새겨준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입자 이론의 역사>를 읽었더라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현재 활동명 '궤도'로 '약', '공진'(현재는 부재), '항성'(비고정 멤버)과 함께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을 진행하고 있다. 현실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실 현실 속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단어 선택은 적절하지 않다) 다양한 주제들에 쉬우면서도 묵직한 설명을 제공한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바에 기초해서 현상들을 해석한다. 하지만 같은 현상을 두고도 어느 지점에선가 갈라져 제각각의 해석이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모든 결정은 제각각의 가치가 있겠지만, 한 개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때 과학적 기초 지식이나 사고 습관이 있다면 조금은 더 현명하고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을 조금 더 호기심 어린 즐거움으로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닥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은밀하게 숨겨진 과학적 발견을 해내는 건 정말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과학을 끊임없이 두근거리도록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 역시 의미가 있다.

 


 

- 과학자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건강을 해치는 것이야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느새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각자의 성취 단계를 엄격하게 비교당하며 검증받아야만 한다. 아무리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는 실사판 트레이너라고 해도, 만약 대학에 가기 위해 포켓몬의 종류와 특징, 등장 위치, 진화방법 등을 외우거나 수학적으로 피카츄의 백만 볼트가 방사되는 각도를 계산하는 시험을 몇 번 본다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는 띠부띠부씰조차 거들떠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과학은 여기쯤 와 있고, 상처받은 대중은 삶의 모든 곳에서 다시는 과학을 우연히도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험이라는 물레 바늘에 찔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영원한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 한번 깊이 잠이 든 사람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힘겹게 몸을 일으켜도 다시 이불로 들어가 버린다. 손바닥의 단면적이 작아 아빠보다 아픈 엄마의 등짝 스매시가 필요한 순간이지만, 과도한 폭력은 가정의 불화를 부를 뿐이다. 일단 일어나게 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과학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은 역시 과학 그 자체다. 대신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과학이 우리에게 다가오던 모습과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은 오직 술술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쓰였다. 깊은 과학적 성찰이나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논하지 않는다. 깊이 있는 과학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좋은 책은 이미 다양한 곳에 너무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결론은 허세다. 다만 불쾌하지 않고 누구나 부릴 수 있는 아주 귀여운 허세다.

(리뷰자 주 : 단, 같은 운동량이라 가정했을 때. 대개 엄마는 아빠보다 근육량이 모자라고 팔 길이가 조금 더 짧은 편이므로 동일 운동량이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으며, 따라서 '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 만약 과학이라는 경이로움의 금은보화가 튼튼한 금고에 담겨 있다고 가정한다면, 경비가 삼엄한 공간 안쪽에 설치된 거대한 금고문을 여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교육 현장에는 이미 많이 있다. 다만 금고 근처에도 오지 않는 청소년들이나 금고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성인들은 더 이상 금고를 열고자 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어떻게든 금고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이 책은 일단 금고만 열면 얼마나 훌륭한 광경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과학자가 얼마나 멋지고 과학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이야기하고,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에도 초점을 맞춘다. 앞으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금고를 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태어나서 스스로 금고 앞에 서는 첫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금고는 아주 조금씩 열릴 것이다.  

 

- 과학적 시선을 통해 해상도가 달라진 또렷한 눈으로 세상을 좇으며 매일매일 가슴 뛰는 과학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은 결코 쉽고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이미 세수와 양치를 마친 그대라면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 버린 상쾌한 과학의 세계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한번 깨고 나면 한밤중까지 침대 위 보드라운 이불의 촉감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게 바로 그대가 기다리던 과학 허세다. 

 


 

- 그럼 잠시 다른 독성물질들도 한번 보자. 옥타데칸산, 옥탄산, 페닐알라닌, 도코산산, 포름알데히드, 벤젠 유사체, 황화합물... 어휴, 듣기만 해도 독소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모든 것은 달걀에 포함된 성분이다. 달걀이 이렇게나 무서운 음식이었구나. 달걀말이 잘못 먹었다가 돌연사할 수도 있겠어. 맞다, 지금 장난치고 있는 거다. 

- 과학이 친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뭔가 생소한 화학물질의 이름만 들어도 무조건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발바닥에서조차 독소를 뽑아내게 된다. 사실 앞서 말한 나트륨, 콜레스테롤 등을 우리는 매일 배출하고 있다. 이걸 오줌을 싼다고도 하고 땀을 흘린다고도 표현한다. 발바닥 패치 역시 자연스럽게 배출된 땀을 흡수하고 땀과 반응하여 그 흔적을 검은색으로 남기는 것뿐이다.

-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유사과학, 사이비 과학들이 많다. 이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고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이걸 과학이라고 하면 확실하게 나쁘다. 적어도 과학은 아니니까. 

 

- 마지막으로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일을 하던 한 여성 과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정말로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극도로 중력이 강한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이 거의 정지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저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흐를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빠르게 흘러가는 우주의 시간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 우주의 종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는지보다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 더 중요하단다. 천생 과학자다. 

 

- 영국의 외로운 모쏠 피터는 애인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과연 내 이상형에 해당하는 여성이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에 몇 명이나 있을지 계산해보기로 했고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가설을 찾아냈다. 바로 '만나지 못한 여자 친구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외계인과 같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사용했다. 이게 뭐냐면 우주에서 우리와 통신이 가능한 외계인의 숫자를 예측하는 간단한 식이다. 이 식을 통해 그는 영국에서 자신과 연애가 가능한 여성의 숫자를 계산해보았다. 속칭 '데이트 방정식'이다. 

[ 내가 사는 지역 인구수 → 그중 이성(여자 혹은 남자)의 비율 → 지나가다 만날 확률 → 나이가 맞을 확률 → 비슷한 교육환경에 있을 확률 → 매력을 느낄 확률 → 그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 ]

 

- 그럴듯하다고? 이 내용은 심지어 논문으로도 나왔다.

(저자 주 : [Why I don't have a girlfriend: An application of the Drake equation to love in the UKJ, Peter, 2010.)

 

- 별과 행성, 이 조합은 함께 왈츠를 추듯이 공전하고 있다. 공전이라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주위를 달이 공전하고 있지만 지구도 사실 달 주위를 공전한다. 다만 지구가 훨씬 무거워서 달에 비해 아주 작은 원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혼자 있는 모쏠별과 행성이 딸린 부모별은 움직임이 미세하게 다르다. 아무리 작은 행성이 딸려 있어도 별은 그 영향으로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움직인다. 즉, 혼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만약 조금씩 흔들린다면 주변에 우리가 관심을 보일 만한 외계행성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 전자는 누군가 들여다보자마자 갑자기 수줍은 입자처럼 단 두 줄만 벽에 그리는 것이 아닌가(3차 멘붕)? 언제 파동이었냐는 듯이 정확하게 입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몰래 혼자 공을 찰 때는 한 번에 3명에게 동시에 공이 가다가 누군가 호날두가 어떻게 차나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공은 1명에게만 간다는 말이다. 

- 비상식적이고 과학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보지 않으면 파동이었다가 누가 보면 입자로 변신! 눈 감으면 파동, 눈 뜨면 입자!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될까? 실제로 아인슈타인도 우리와 똑같이 생각했다. 보기 전까지 입자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면 누구도 보지 않으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이냐 하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봐라. 달이 있지? 그런데 아무도 달을 보지 않았으면 달은 없는 거고 누군가 최초로 달을 봤기 때문에 달이 있는 건가? 꼭 인간만 봐야 하는 건가, 공룡이나 삼엽충이 봐도 되는 건가?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책을 덮고 싶겠지만 읽은 게 아까워서 읽게 되는 양자역학! 조금만 참으면 행복이 온다. 

- 이건 본다는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보는 게 뭘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본다는 과정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빛이다. 만약 암실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바로 우리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빛, 광자가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본다는 건 특정한 물체에 부딪혀서 튀어나온 광자가 우리 망막에 맺히는 현상이다. 광자가 보유한 정보를 우리가 읽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광자를 그 무언가에 던지는 셈이다.

 

- 달이나 자동차나 젤리 조각처럼 작은 것마저도 광자가 부딪힌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근데 문제는 양자 세계에서 광자는 굉장히 큰 녀석이라는 점이다. 파동의 형태로 물결치고 있던 전자에게 광자처럼 거대한 입자 돼지가 날아와서 부딪히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고, 갖고 있던 파동성을 상실한 채 입자로 붕괴돼버린다. 우리야 그저 보려고 했을 뿐인데 전자 입장에서는 일방과실의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 과장하긴 했지만 이처럼 본다는 개념은 양자 세계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의미하며 보는 주체는 사람이나 동물처럼 생명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될 수 있다. 광자를 통해 우리가 관측을 해도 입자로 붕괴되지만 우리가 아닌 다른 물질, 예를 들어 마포구에 사는 김 미세먼지 씨와 살짝 닿아도 입자로 붕괴된다. 미세먼지와 상호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방법을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른다. 

 

 

 

더보기

 

- "요새 많이 피곤하지? 내가 기막힌 선물 하나 줄게. 이게 '디톡스 발바닥 독소 제거 패치'라는 건데, 이걸 양쪽 발바닥에 붙이고 누워서 자기만 하면, 몸에 있는 독소와 노폐물이 전부 빠지고 심지어 종아리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효과도 있어. 이것 좀 봐. 내가 찍은 사진인데, 어제 붙이고 자고 일어났더니 새카맣게 변했어. 독소가 다 빠진 것 같아. 너도 붙여줄게." 

- 마음은 고맙지만 발바닥에서 시커먼 독소와 노폐물이 빠질 정도라면 어디 거대한 구멍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피부를 뚫고 그 엄청난 독소와 노폐물이 빠지려면 이미 피부 자체가 거의 걸레가 된 상태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소를 한번 분석해보자. 제품에 적혀 있는 독소의 종류는 세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나트륨, 요소, 콜레스테롤... 듣기만 해도 심각한 독성물질들이다. 이 무시무시한 것들을 진짜로 빼내기만 한다면 건강해질 것 같다. 

 

- 소량의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장수하는 비결은 술이 이로운 작용을 해서가 아니라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 교육 및 생활수준 등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벼운 음주를 할 만한 충분한 여유가 있다"는 게 당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음주 자체가 당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적당한 음주가 오히려 건강에 좋다'라는 말이 이제 정말 술자리 최고의 허세가 되어버렸다. 

 

- 쥘 베른의 과학소설 <해저 2만 리>의 주인공 아로낙스 박사와 작살잡이 네드의 대화에서 심해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은 선장이 되어 노틸러스호를 몰고 깊은 바닷속을 휘젓고 다니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소설이 쓰인 1869년 당시는 아직 잠수함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었음에도 쥘 베른은 작품을 통해 매우 완성도 높은 묘사를 선보였고 오히려 이 소설이 이후 잠수함 관련 과학기술 발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창작자들이 영감을 얻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그 창작물을 연구자들이 재미있게 읽고 다시 실현 가능성을 실험해본다. 연구자와 창작자들이 오랜 시간 알게 모르게 협업해온 셈이다. 

 

- 영화나 만화에 등장했던 블랙홀은 대부분 검은 구멍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각본가인 조너선 놀런은 블랙홀을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려 4년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공부했고, 형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블랙홀을 영화 속에서 표현해냈다. 사실 블랙홀은 우주에 난 구멍이 아니다. 욕조 구멍도 아닌 것이 왜 감히 멀쩡한 다른 물질들을 빨아들이는 걸까?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만큼 빠른 녀석인 빛조차도 블랙홀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블랙홀이 만드는 중력이라는 구덩이 때문이다. 이놈의 구덩이는 깊이가 너무 깊고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주 한복판에 왜 구덩이가 생길까?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당신은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블랙홀이 단순히 구멍이 아니라 한물간 별의 변사체라는 진실을 알 때가 되었다. 

 

- 다만 아주 거대한 블랙홀이라면 블랙홀 안에 진입한 이후에도 몸이 끊어지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게 되고 먹고 마실 것만 충분히 준비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몸이 분해되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블랙홀 근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래서 혹시 블랙홀 밖 친구들이 봤을 때는 아주 여유 있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외부에서 관측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 지금까지 길들인다는 이야기를 마치 일방적인 관계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이 과정은 상호 간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개를 길들이듯이 개도 우리를 반대로 길들이고 있다. 인간이 진화해온 모습을 보면 허리가 구부정한 애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앞서서 길들여진 동물들한테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던 변화가 똑같이 나타났다. 인간도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 두개골 형태를 유지하면서 큰다. 마치 잘 길들여진 동물처럼 말이다. 

- 그리고 그 흔적은 당신에게도 남아 있다. 바로 흰자, 달걀 노른자 흰자 말고 눈동자의 흰자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은 눈에 흰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흰자가 눈동자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흰자가 많다고 시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공이 크면 클수록 시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흰자가 많으면 보는 성능이 떨어진다. 그럼 왜 이렇게 불리한 상황을 감당하면서도 흰자가 많아진 걸까? 역시 뭔가 이득이 있을 것이다. 흰자가 있다면 멀리서도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서로 마주 본다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소통하는 데 눈짓이 굉장히 많이 쓰인다. 눈동자의 방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가 잘 길들여졌다는 증거로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인공지능이 빨리 계산하도록 채찍질한다. 그 원리를 말로 설명하면 굉장히 간단한데, 경우의 수 전체를 놓고 답을 찾는 대신에 몇 가지 선택지를 임의로 뽑아놓고 그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 이번엔 '알파고 제로'라는 녀석이 또 나왔다. 기보 없이 0.4초에 한 수를 두는 방법으로 72시간 만에 490만 판을 혼자 두고 나서 기존 알파고와 붙었는데 깔끔하게 100전 100승을 했다. 인간의 기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스스로 바둑을 두며 학습했더니 오히려 잘못된 지식이나 선입견이 사라져서 훨씬 좋은 학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아예 '고(일본어로 바둑)'도 빼버린 '알파 제로'가 탄생했다. 바둑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의 룰만 입력하면 스스로 성장한다. 알파 제로는 불과 4시간 만에 체스를 마스터했고 24시간 만에 자신의 모태가 된 알파고 제로를 털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건 반칙이다. 

 

- 아무리 빨라도 빛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 아니,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질 자체가 없다. 우주의 시공간이 빛보다 빠르게 팽창하거나 회전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물질이 아니니 제외하자. 혹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무조건 가능하다고 해도 이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수치가 되어 흘러가 버린다. 즉,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과는 달리, 과거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당신의 달리기 실력 때문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 주 : 발견된 적 없는 가상의 입자 '타키온'은 제외. / 회전하는 블랙홀 내부에서는 가끔 시공간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 시간 지연 공식에서 시간이 음수가 되면 거꾸로 흐르는 것인데, 허수가 되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

 

-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습은 항상 과거이며 먼 곳을 볼수록 더 오래된 과거를 볼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집 창가로 뿌려지는 빛조차도 갓 태어난 따끈따끈한 빛이 아니라 대략 8분 전의 태양 빛이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 과거의 빛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자리를 잡고 과거에서 오는 빛을 만나 과거를 볼 수는 있다. 이 방법으로는 당신이 실수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과거로 돌아가 지갑을 찾을 수는 없지만, 지갑을 잃어버리는 순간의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뒤 지갑이 어떠한 역경을 겪게 되는지 차근차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과거로 가보자. 결국 우리는 시공간의 뒤틀림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가장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블랙홀이다.  

 

- 하지만 이건 우주가 오직 하나로만 이루어졌다는 단일 우주를 가정할 때만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리고 단일 우주는 타임 패러독스라는 무시무시한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방금 먹은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지만 사러 가기는 귀찮아서 타임머신을 타고 '갓 끓인 라면을 식탁 위에 두고 손을 씻으러 간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 다시 끓여둔 라면을 몰래 먹고 현재로 돌아왔다. 과거로 돌아가 라면을 먹은 시점에서 이미 라면은 없어졌다. 따라서 당신은 라면을 두 번 먹었지만 실제로 한 번밖에는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위내시경을 바로 받았을 때 배 속의 라면은 1인분인가 아니면 2인분인가, 단일 우주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답을 할 수가 없다. 과거가 바뀌는 순간 당신이라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이것을 '다중우주'라는 이론으로 해결했다. 실제로 우주는 1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과거로 가게 된다고 해도 당신이 도착한 우주는 출발한 우주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별개의 우주가 된다. 당신이 속한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과거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미래인인 당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현상'이 벌어진 또 다른 미래에 도착한 것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무언가를 바꾸어도 당신이 출발한 현재에는 영향이 없고 현재는 당신만을 상실한 채로 계속 시간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도착한 과거에서 부모나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은 이미 당신이 원래 알던 우주의 그들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무한한 우주가 있고 무한한 당신은 무한한 세상에서 무한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다양한 유체이탈 꿈들이야 어떻든, 현대 과학에서 유체이탈은 단지 뇌의 착각 정도로 해석한다. 과연 우리의 뇌는 어떻게 착각을 하는 걸까? 캐나다의 연구팀에서는 유체이탈이 가능하다는 사람의 뇌 영상 패턴을 조사해서 잠들어 있는 사이에 운동감각과 관련된 뇌의 일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의 뇌는 잠든 것처럼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치 온몸이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연습을 통해서 이러한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유체이탈을 통해 멀리 떨어진 방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는 경험담도 있다. 보다 과학적인 해석은 자는 동안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수한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것처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마치 내가 유체이탈을 해서 가까이 날아갔었다고 뇌에서 착각할 수 있다. 

(저자 주 : [Voluntary out-of-body experience: an fMRI study], Andra and Claude, 2014.) 

(리뷰자 주 : 그렇다면 더 좋은 연구 주제가 된 것 같다. 자는 동안 수신이 가능한 감각/주파수 범위에 관한 연구가 나왔으면.) 

 

- 두려움은 이해하지 못한 현상이나 대상에게서 발생한다. 물론 재미로 작성된 귀신 이야기나 괴담 등의 허구에서 과학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것은 상당히 비과학적 태도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다면 굉장히 보람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혹시나 만에 하나 귀신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현재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3차원의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에게 이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겁내는 대신 인류를 대표해서 많은 질문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내가 골라줄 수 있다면 이것만큼은 꼭 물어봐주었으면 한다. "그곳에서 물리학의 기본 힘은 어떤 형태로 작용합니까?" 

 

- 현대판 빙하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온난화 현상이다. 온난화라고 하면 따뜻해지는 것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반만 맞는 말이다. 온난화 현상으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대서양으로 유입되는데, 녹은 빙하는 염분이 없는 담수다. 따라서 해수의 밀도가 충분히 높아지지 않게 되고 물이 심층으로 가라앉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적도는 점점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점점 차가워지면서 북쪽부터 빙하기가 시작된다. 

 

- 이 조합을 찾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직접 눈으로 보고 찾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찾아야 할 두 가지를 알고 있다. 이제 밝게 빛나는 별 하나, 그리고 컴컴한 돌 하나만 찾으면 된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빛나는 별이 너무 밝아서 돌덩어리의 반사광이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천장의 형광등 빛이 너무 강하면 책상의 스탠드는 켜나 마나 차이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밝은 별빛을 꼼꼼히 막아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행성의 희미한 빛을 찾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 최근에는 아예 인공구조물을 우주에 띄워서 밝은 빛을 차단한 뒤에 관측하는 우주망원경도 개발 중이다. 스타세이드 starshade라는 임무인데 해바라기 꽃처럼 생긴 야구장 내야 크기의 거대한 우주선으로 빛을 가려서 일종의 개기일식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지구에서도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낮에도 별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듯이 이 방법을 활용해서 숨겨진 외계행성을 찾을 예정이다. 

- 비슷한 방식이지만 또 다른 방법도 있다. 한밤중에 갑자기 누군가 불을 켠다면 너무 밝은 빛에 놀라 본능적으로 욕을 하면서 손바닥을 들어 빛을 막는다. 이것은 눈이 부시기 때문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무언가 빛을 가리게 되면 그만큼 빛은 줄어든다. 별빛을 외계행성이 가려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지구에서 관측되는 별빛이 줄어드는 현상이 관측된다면, 어딘가 숨겨진 외계행성이 손바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 세계는 12개의 기본 입자로 되어 있다. 바로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이다. 쿼크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렙톤도 환영을 받지 못하겠지. 그냥 간단하게 쿼크는 양념치킨, 렙톤은 프라이드치킨이라고 하자. 핫양념, 간장양념, 숯불양념, 닭강정, 불갈비, 갈릭 등 양념치킨에도 종류가 꽤 많은 것처럼, 쿼크도 업 쿼크, 다운 쿼크 등 6종의 쿼크가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프라이드치킨도 마찬가지다. 베이크 치킨이나 크리스피 치킨, 파닭 등 6종의 렙톤이 있는 거다. 가장 유명한 렙톤에는 전자가 있다. 이 12개의 치킨들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치킨에 디핑 소스가 빠질 수 없다. 이런 소스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아니다. 대신 소스들을 서로 교환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우주에 존재하는 힘이 작용한다. 이런 소스들을 매개 입자라고 부르며 광자, 글루온, Z보손, W보손이 있다. 

(저자 주 : up, down, charm, strange, top, bottom 쿼크 등 6종. / 전자, 뮤온, 타우,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등 6종)


- 빛으로 우리에게 도달하는 모든 것은 전자기파다. 즉, 전자기력이 힘을 작용하기 위해서는 광자가 필요하다. 우주에서 가장 센 큰형 강력은 글루온을 통해 작용하고, 약력은 Z보손과 W보손이 담당한다. 뭔가 빠진 것 같지? 아직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기본 입자들조차도 전부 질량이 있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받고, 심지어 우리가 가장 흔하게 느끼는 것이 중력인데도 아직 못 찾았다는 게 재미있다. 대신 최초에 질량을 부여한 중력 앞잡이 녀석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힉스 보손이다. 

 

- 힉스 보손의 발견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냐면 단순히 새로운 녀석을 발견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전혀 새로운 형태의 입자를 발견한 것이다. 이건 어떤 과학자도 실험을 통해 발견될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갑툭튀 할지 아니면 아예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는 거였다. 내기를 좋아하셨던 스티븐 호킹 형님도 절대 발견을 못 할 거라고 100달러를 걸었었지만 또 졌다. 뭐, 물리학에서의 레알 위대한 발전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서 온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 사실 2011년 12월에 힉스 보손에 대해서 발표했을 때 그동안 똥줄 타온 실험물리학자들은 노력을 보상받는다는 생각에 기뻐했을지 모르지만 이론물리학자들은 그 발견이 잘못된 결과였기를 빌었다. 힉스 보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뭔가 더 놀랍고 흥미로운 전혀 다른 것이 또 있다는 뜻이고 이게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나 말고 다른 과학자들이 한 말이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들이다.

 

- 하지만 과연 그럴까? 힉스 장은 물질이 아니면서 어떤 에너지를 갖고 모든 곳에 균일하게 퍼져 있다. 딱 힉스 장이 보유한 에너지만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장들의 에너지를 합친 값은 구할 수 있다. 그 결과가 0이라면 진공은 비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0이 아닌 어떤 값이 나온다. 그리고 이걸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암흑에너지는 진공이 갖고 있는 에너지이며 이 텅 빈 우주공간의 에너지는 우주 팽창의 가속도를 통해 측정한다. 

- 힉스 장은 세로로 세워놓은 500원짜리 동전처럼 기회만 있으면 쓰러져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가려고 한다. 그 순간 힉스 장은 0이 아닌 특정 값을 갖게 되고 이 값이 기본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한다. 만약에 입자들이 질량을 갖고 있지 않다면 전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질량이 없는 빛은 힉스 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 힉스 메커니즘이 만드는 힘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힉스 메커니즘의 성질을 직접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힉스 장을 톡 건드려서 에너지를 주면 바로 입자가 된다. 이게 바로 힉스 보손이며 이게 힉스 메커니즘이 공상과학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말해주는 증거다. 앞에서 말한 힉스 보손의 스핀에도 깊은 뜻이 있다. 스핀이 0이라면 회전과 같은 시공간적 대칭 변환에 대해 변하지 않는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혼밥을 하는 사람처럼 다른 입자가 없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혼자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진공이라는 빈 공간 전체에 하나의 장이 온통 퍼져 있으며, 동시에 입자를 만들어낸다.

 

- 간단히 복습해보자. 힉스 장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며 그 결과로 우리가 느끼는 게 질량이다. 이 이론을 욕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힉스 보손(입자)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역전되고 이제는 거의 사실이 되었다.  

- 대기권 밖으로 원활하게 나갔던 로켓이 우주 쓰레기가 되어서 지구로 재진입할 때에는 여유 있게 대기권에 몸을 뜨뜻하게 지지며 들어온다.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주선이나 유성이 대기권으로 들어올 때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서 불타는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마찰열도 어느 정도 온도 상승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물체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떨어지는 물체의 앞쪽의 공기들을 엄청난 힘으로 누르게 되고 다른 열의 출입이 없는 상태에서 눌린 공기들이 마치 만원 버스의 내부처럼 온도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걸 단열 압축이라고 하는데 수천 도의 고온까지 온도가 상승해서 공기는 플라스마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우주 쓰레기들은 결국 지구의 땅을 밟는다. 

 

- 디저트 이야기도 당연히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딸기나 바나나 등 과일을 사용한 디저트가 많은데 이런 것들은 과일 자체가 맛있어야 디저트도 맛있는 법. 근데 갑자기 궁금하다. 과일은 껍질을 까 보기 전까지는 잘 익었는지 알기가 어려운데 과학으로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수박 아저씨가 칼로 잔인하게 수박을 쑤셔 한 조각 빼주기 전에 말이다. 수박의 경우 줄무늬가 진하고 꼭지가 마르지 않아야 좋은 수박이라고들 한다. 뭐, 신선도는 알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꿀수박임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샘플로 몇 개 골라서 과즙을 내고 당도를 측정했지만 요즘엔 훨씬 과학적이다. 근적외선을 쏴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으로 당도를 확인하는 것인데 과일 속의 성분에 따라 반사도가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달콤한지 알아낼 수 있다. 

- 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단 걸 너무 많이 먹으면 당화반응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게 매우 치명적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들은 정상적으로 조절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당화반응은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랜덤 반응이다. 당 덩어리가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흘린 침처럼 아무 단백질에나 철썩 달라붙는데 혹시나 중요한 단백질에 붙는 경우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특히 피부에 붙으면 피부 탄력이나 주름을 담당하는 단백질들이 빳빳하게 굳어버려서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가 되어버린다. 젊게 살고 싶으면 단 음식을 줄여야 한다.

 

- 태초에 우주 역시 다양한 힘의 형태를 갖춘 자식들을 낳았다. 만화에서처럼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도 출동하고 좋겠지만, 탄생한 힘들은 네 가지뿐이었다. 이들의 출산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상 네 쌍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굳이 형제 서열을 따지자면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순이다. 이 중 가장 맏형이지만 제일 약골인 중력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 우선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 일이 벌어졌다면, 그 범인은 대부분 중력일 가능성이 높다. 들고 있던 머그컵을 실수로 놓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주의함을 비난하겠지만, 실제로 머그컵이 깨지는 데 기여한 결정적인 힘은 중력에서 왔다. 애초에 중력이 머그컵을 당기지 않았다면 이런 실수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이렇게 핑계를 대다가는 '아싸'가 될지도 모른다. 또, 타고 가던 자전거가 옆으로 쓰러지는 것도 중력 때문이며 말뚝박기 놀이를 할 때 친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역시 중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이 화장실에서 큰일을 치를 때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갈색 친구가 원활하게 이별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그리고 그 외에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힘은 전자기력이다. 단순히 자석끼리 서로 당기거나 밀어내는 힘뿐만 아니라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의 반발력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고양이에게 기습뽀뽀를 할 수 있는 것도 전자기력 때문이며, 고양이가 당신 얼굴을 밀치고 따귀를 칠 수 있는 것 역시 전자기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당신의 입이 고양이의 뺨에 부딪치는 순간, 적절한 전자기력이 두 존재 간의 원자핵이 융합되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사전에 밀어냈기 때문에, 당신과 고양이 반경 수천 킬로미터 내의 문명이 보존될 수 있었다. 맞닿는 모든 물질은 전자기력에 의해 안정하게 유지될 수 있으며 바꿔서 말하면 물리학적으로는 보통 제대로 닿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뷰자 주 : 이 반발력이 없다면 당신은 고양이와 퓨전 상태가... 크흠.)

- 강력과 약력은 예능에 자주 나오는 아이돌보다도 실제로 만나기가 힘들다. 너무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강력은 원자핵을 만들어주는 힘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친구들로 이루어지는데 양성자는 양전하(+)를 갖고 있다. 자석의 같은 극처럼 양전하끼리는 전자기력에 의해서 서로 밀어내려고 한다. 가만히 놔두면 원자핵이 쉽게 분해돼버리는 상황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친하게 지내도록 하는 힘이 바로 강력이다. 전자기력보다 동생이지만 일단 완력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형이라도 어쩔 수 없다.

- 약력은 주로 핵붕괴를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 이 약력 때문에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약한 상호작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약력보다도 중력이 더 약하다. 대놓고 이름이 호구인 녀석보다 더 호구인 상황이니, 중력의 추락은 과연 어디가 끝인 걸까. 실제 힘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더욱 통탄할 노릇이다. 우선 약력보다 전자기력이 100배 강하고, 전자기력보다는 강력이 1,000배 강하다. 약력도 강력에 비하면 꽤나 약한 힘이다. 그러면 약체로 동네에서 유명한 중력은 얼마나 작을까. 강력은 중력의 무려 10의 44 제곱만큼 강하다. 100배가 0이 2개라면, 0이 44개 붙은 상황이니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나머지 세 형제들에게 수치다. 

- 너무도 초라한 중력의 힘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어이가 없는데 과학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도대체 중력은 어릴 때부터 뭘 먹고 이렇게 약체가 된 것일까.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시공간과 차원에 대한 관점이다.

 

- 힘은 비록 솜방망이 수준일지라도 '사정거리'에 대해서는 중력과 전자기력이 확실히 승산이 있다. 약력이나 강력은 힘이 작용하는 거리가 굉장히 짧아서 매우 가깝지 않으면 제대로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중력과 전자기력은 작용 거리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이 말은, 즉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중력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온 우주 전체에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 중력은 가장 먼저 태어난 서열 1위이자 시공간을 주무르는 무지막지한 녀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해 빠졌을까. 딴 길로 충분히 새고 난 뒤에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과학자들은 혹시 시공간에 작용하는 유일한 힘이 중력이기 때문에 이 녀석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으로 새어 나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중력 자체가 우리 차원에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오는 힘이기 때문에 중력이 우리 세계에서는 약골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이미 유럽에서는 다른 차원에 대한 연구를 위해 커다란 도넛 모양 실험장비를 만들어서 작은 입자들을 지지고 볶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입자들을 충돌시키면 간혹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거나 우리 차원으로 넘어오는 부스러기가 발견될 수도 있다. 언젠가 다른 차원의 존재가 확실하게 증명된다면 중력도 약골이라는 오명을 벗을지 모른다.

(저자 주 : LHC(Large Hadron Collider)라 불리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

 

- 그런데 양자역학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1차 멘붕), 이게 고전역학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와 속도를 알면 모든 것을 깔끔하게 다 알 수 있다. 누군가 내게 갑자기 주먹을 날려도 주먹의 위치와 속도를 미리 알면 고전역학에서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라면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이 맞을 확률만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그 주먹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던 뒷사람을 때릴 확률도 있다. 아주 짧은 시간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양자역학이다. 이러니 과학자들이 이걸 좋게 볼 이유가 없다.

 

- 실제로 양자역학은 세기의 이빨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다. 1927년 이름만 들어도 종아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유명한 과학자들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모였다. 돈 많은 금수저 기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가 자기 이름을 붙여서 국제학회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다섯 번째 학회에 무려 17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어벤져스처럼 모였다. 여기서 원자모형을 만든 아이언맨 닐스 보어와 양자역학을 극도로 싫어했던 캡틴 아메리카 아인슈타인이 격돌했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 

 

-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보어가 아인슈타인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솔베이 학회에서는 닐스 보어가 완승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모순에 대해 이래저래 공격을 준비해 왔는데 보어 형님이 사실 토박이 설명충이라 아인슈타인이 공격을 포기할 때까지 미친 듯이 이빨을 털었다. 말파이트급 탱킹과 현란한 혓바닥 드리블에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결국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확립된 내용이 바로 보어가 연구하던 장소, 코펜하겐의 이름을 딴 ‘코펜하겐 해석'이다. 

 

- 사실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이용해서 양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현실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 경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며, 코펜하겐 해석이 맞다고 치면 고양이도 사실 파동이자 입자여야 한다는 것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결론이다. 다시 반양자역학파로 넘어갈 만한 강력한 유혹이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이미 해결되었다. 그래.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결론대로 고양이도 파동이자 입자가 맞다. 잠깐, 뭐? 고양이 액체설은 들어봤어도, 고양이 파동설이라니. 아, 고양이가 파동이었구나. 고양이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키면 벽에 여러 줄의 무늬가 나오겠네. 

-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고양이가 파동이자 입자인 이중성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건 맞다. 하지만 아무 때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조건이 필요하다. 진공이어야 하겠고 빛도 없고 관측도 없고 심지어 고양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원자들끼리도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고양이가 얼마나 복잡한 생물체인가. 서로가 굉장히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관측하지 않는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는 항상 입자로 존재한다. 이제 좀 이해가 가시는지? 

-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실험적으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질 수 있는 최소의 크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탄소 원자 60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 모양의 분자는 이중 슬릿을 통과했을 때 파동처럼 여러 개의 간섭무늬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단계는 이보다 100배 큰 바이러스다. 바이러스가 만약 간섭무늬를 그린다면 이중성을 입증한 최초의 생명체가 될 수 있으며 한 번에 두 군데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많은 연구가 아마 필요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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