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요네자와 호노부] 안녕 요정

일루젼 2022. 8. 7. 12:16
728x90
반응형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원제 : さよなら妖精 

출판 : 엘릭시르 
출간 : 2015.11.05 


한국어로 된 인사는 첫인사와 끝인사가 동일할 수 있다. "안녕."

<안녕 요정>은 그것을 이용한 말장난인 듯하다. 원제는 사요나라를 사용해 '안녕히'의 어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번역제만을 들었을 때는 어느 쪽의 안녕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양쪽 모두를 의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먼저 저자는 충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한 상황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마야가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발견한 '비가 오는데 우산을 손에 쥐고도 쓰지 않고 달려가는 남자'나, 다 함께 발견한 '붉고 흰 떡이 바쳐진 무덤' 등이다. 모리야나 다치아라이의 추론을 통해 예상되는 상황을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전체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게임 속의 게임 같은, 작은 유희라고도 볼 수 있겠고 상황을 파악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저자가 명확하게 드러냈던 힌트들은 오히려 그대로 버려진다. 센도는 마야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나이가 18살이라고 알려주었고, 마야는 그럼 자신보다 한 살이 많다며 자신이 17살임을 나타낸다. 모리야는 마야가 17살로 자신과 동갑임은 인지했지만 센도가 자신보다 한 살 많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다. 나는 송별회에서 센도가 한 살이 많다는 것에 놀라는 모리야에게 놀랐다. 

 

또 다른 힌트는 "우리나라 같으면 산이 많습니다"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부 쪽으로 갈수록 산지가 많아진다는 설명 또한 본문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둘을 연관 짓지 않는 것은 모리야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독자에게 던지는 정정당당한 승부수일 수도 있다. 충분히 공정한 정보들을 제공했고, 주인공은 이 중 일부만을 사용해 결론에 다다랐다. 당신은 어땠는가?라는. 

 

역자의 표현처럼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미스터리가 설명된다고 해서 상황이 반전되거나 해결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여전히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흘러가고, 그저 누군가는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고, 상황들이 설명된다고 해서 변하지도 않는다. 이 점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또 다른 미묘함은 모리야와 다치아라이의 관계일 것이다. 이즈루의 반응을 통해 모리야가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관계성일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그 점이 '모리야'라는 인물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키가 된다. "-냐"라는 어투로 번역된 점도 그의 말씨에 대한 단서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 일기이며, 동시에 여전히 미성숙한 소년다운 치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녕 요정>을 읽은 것은 <왕과 서커스>에서 다치아라이의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데, 전작이라고 불리는 <안녕 요정>을 읽었음에도 <왕과 서커스>에서 언급된 '친구의 죽음'과 '정말 몰랐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번역되지 않은 다른 소설이 더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가 직접 표현했던 대로 <안녕 요정>과 <왕과 서커스>는 등장인물이 겹치기는 하지만 독립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검색해본 바로는, 기자일 때 겪은 사건은 별개의 건이고 본문 중에 마리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안녕 요정>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이라고. 다치아라이가 등장하는 베루프 시리즈로는 <진실의 10미터 앞>이 남아있다고 한다.)

 

즐겁게 읽었다.        

 

 


   

- 일기장을 펴고 4월 23일을 찾았다. 모호한 기억 속에 몇몇 선명한 장면이 있다. 나를 가까이서 빤히 쳐다보는 눈, 굽슬굽슬한 검은 머리, 하얀 목덜미, '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수국. 그것을 광원으로, 범위를 넓혀가듯 조금씩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낸다. 방금 생각났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어째서 그것을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느냐 하면, 그녀는 그 외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의식이 넉넉해야 비로소 예절을 안다고 한다. 가난해지면 머리까지 아둔해진다는 말도 있다. 즉 예절이란 일부 성인을 제외하고는 배가 불러야 생각할 수 있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뜻이리라. 참으로 지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눈앞의 토끼를 잡지 않으면 내일의 해를 볼 수 없는 사내에게, 창을 든 손에 힘을 주는 것 이외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하다는 이야기다. 

 

- 물론 부차적인 것을 모두 허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용하는 김에 대중적인 격언을 하나 더 들자면,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전부 여러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다. 극히 단순한 이야기라 순순히 납득할 수 있다. 극히 단순해서 순순히 납득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적'이라 불린다. 

 

- 그러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는 중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하여간 행복한 게 가장 문제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의식이 넉넉한 사람이 예절을 알려면 의식이 한층 더 넉넉해지거나 일단 전부를 잃어봐야 한다. 어느 쪽이건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야기다. 옛날에 읽은 짧은 SF 소설 중에 모든 게 풍족한 세계를 그린 것이 있었다. 그 세계의 주민은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즐겨 자살했다. 사치병도 병은 병이다.

 

- 회백색 블레이저 위로 늘어진, 요즘 세상에 유행하지 않는 층 없는 생머리가 되레 눈을 끈다. 여자 친구들은 자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다치아라이 왈 "난 귀여운 유치원생 때부터 반드르르한 검은 머리를 동경했단 말이야. 힘들게 여기까지 길러놓고 자르면 머리카락이 귀신이 돼서 나올 거야"란다. 머릿결이 좋고 손질도 잘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다치아라이의 머리는 반드르르한 검은 머리다. 날씬하다기보다는 다소 마른 듯하고, 얼굴에서 그늘과 사나움, 그리고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치아라이의 외모를 평범하다고 하면 남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싶을 것이다. 키는 크다. 크기는 하지만 평균적인 남자 신장인 나보다 주먹 하나 정도 작다. 일부러 고고해 보이려는 건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초연한 분위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마니악한 인기가 있으려니와, 듣자 하니 오히려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다치아라이와 평범함 이하인 내가 친근하게 말을 나누게 된 배경에는 '센도'라는 별명이 있다.

 

- "아아, 됐어요. 드리죠. 원래 우산하고 책은 빌려주면 안 돌아오는 법이니까요." 

 

- 사진관 앞에서 만난 뒤로 이제까지 마야의 태도는, 의사소통이 완전치 못한 것을 감안하고 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여행지에서 의지하려던 사람이 막상 찾아와 보니 죽었더라 하는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서도, 마야는 말과 달리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오사카에 아버지가 있다는 구명줄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 태연함은 그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우리가 나서지 않았어도 마야는 혼자 힘으로 방법을 찾아냈을지 모른다. 아니,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을 경험적으로 예감했던 걸지도. 

 

- 때로는 나도 끼어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런 시간에 가치가 있느냐고 내가 묻자 마야는 그냥 그런 이야기에 학교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나아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마야와 내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그 감각은 독특하고 귀중한 것이었다. 

 

- 후미하라는 앞서 내가 뭔가에 전부를 걸 것 같지 않다는 뜻의 말을 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것이라면 전부를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접한 적이 없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0세기 일본에서 생활에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런 행복의 대가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먼 일인가? 실제로 마야는 이곳에 있지 않나. 

 

- "이런 이야기를 압니까? 미로 속에서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두 사람이 만나려면 한쪽이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나은가, 양쪽 다 움직이는 편이 좋은가. 어느 쪽일까요?" 
길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생각했다. 합리적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직감으로 대답했다.
"한쪽이 움직이지 않는 쪽?"
마야의 고개가 가로로 저어졌다.
"찾으러 다녀야 된다고?"
그러나 마야는 이것도 부정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리 약속을 해두지 않았을 경우 미로의 크기와 두 사람의 원래 위치로 결정됩니다."

(리뷰자 주 : 결말을 읽고 이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새롭다.)

 

- "일본에서 흰색과 붉은색은 한 쌍으로 '경사'를 나타내. 이건 잔치에 나온 거라서 흰색과 붉은색인 거야. '경사'라든지 '잔치'는 알아?"
"Da. 네."

"이 두 색이 같이 있으면 특별히 '홍백'이라고 불러. 게다가 이건 떡이거든. 떡도 일본에선 경사가 있을 때 먹는 음식이야."

 

- "수국이라고 이 계절에 아름답게 피는 꽃이야. 종류에 따라서 흙이 산성이면 파랗게, 알칼리성이면 붉게 피지."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내 식물학적 지식이 옳다면 수국은 동아시아가 원산지다. 유럽에는 중국을 경유해서 유입되었을 것이다. 유럽 사람의 아시아 기념품으로 딱 좋으리라. 

 

- "Ovo je zaista lep. ... i veoma interesantan."

(리뷰자 주 : 이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 그리고 매우 흥미롭습니다.)

 

- 마야는 아마 이곳에 유고슬라비아의 성역을, 아마도 기독교 교회의 주변을 중첩시켜 비교하고는 그것에서 감개를 느끼는 것이리라. 어쩌면 다른 나라의 성역도 생각했는지 모른다. 나도 그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아니, 문제는 능력이라기보다 경험이다. 나는 아무것도 본 적이 없다. 역시 공유할 수 없다. 그것을 강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성립되는 불변의 법칙이겠지만 마야와 나는 근거하는 곳이 너무나도 다르다. 

 

- "저거, 모리야가 선물한 거야?" 
"그럼 안 되는 건가?"
잠시 침묵한 뒤, 시라카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있지. 모리야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나중에 마치한테도 뭐 선물하는 게 좋겠어."
"..... 왜?”
"그게 밸런스란 거야!"

 

- "받아 적을 만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웅, 그것은 제가...”
맞습니다. 당신이 정하실 일이었죠. 실례 많았습니다. 

- "신화가 없다고?"
다치아라이도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라가 있나?"
나는 알고 있었다. 신화가 없는 것은 마야의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일곱 개째의 문화라는 것을. 그것은 미합중국에 신화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리라. 마야의 유고슬라비아는 아직 태어나기 전이니까. 마야의 나라 사람들은 앞으로 신화마저 만들어갈까? 

 

- 나는 다치아라이를 불렀다. 이것은 명백히 이상하다. 뭔가가 있다.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치아라이라면 알지 않을까? 다치아라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응해서인지 아니면 그것을 무시한 건지 가볍게 팔짱을 끼더니 문제의 무덤 정면에 섰다. 흐응, 하고 중얼거렸다. 다치아라이가 보는 것을 나도 유심히 살폈다.

- 무덤은 새것이었다.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무들을 베었으니 비바람의 기세가 더할 텐데 하얀 화강암 표면은 아직 반질반질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솔도파는 아직 없었다. 무덤 정면, 묘석 본체에서 한 단 내려온 곳에 금속 향꽂이가 둘, 그 앞에 동그마니 놓인 홍백 만주, 공물을 놓는 위치로는 타당하다. 일요일에 핫도그 집에서 받은 찹쌀떡과 달리 모양을 잘 잡았고 크기도 일정하다. 다치아라이는 팔짱을 풀고 붉은 만주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보기에 만주는 적당한 탄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향꽂이 양옆에는 한층 큰 금속 깡통이 있다. 꽃병이다. 그중 오른편에 있는 깡통에만 샐비어 몇 대가 다발로 묶여 꽂혀 있고, 왼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 "후미하라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치아라이는 마야와 시라카와에게 말했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쉽지만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왜?"
"여기 있으면 아마 유쾌하지 않을 거야." 

 

- "홍백이 맨 처음 쓰였던 건 미즈히키야. 미즈히키가 홍백이었기 때문에 홍백이 경사를 뜻하게 됐다고 해." 
"미즈히키...?"
줄 맨 끝에서 시라카와가 가르쳐 주었다.
"선물 상자에 묶는 끈이야. 저번에 보여준 것 같은데."
"웅, 나중에 한 번 더 보여주십시오. 미즈히키는 어째서 홍백이었습니까?"
다치아라이는 공연히 변죽을 울리지 않고 설명해주었다.
"옛날에 중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이 붉은색과 흰색 끈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야. 중국으로선 의미 없이 그냥 한 거였지만, 일본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선물은 붉은색과 흰색 끈으로 묶어야 한다고 믿었다나 봐. 그게 나중에 홍백은 경사를 뜻한다는 걸로 변한 거야." 

 

- "처음엔 틀린 거였어도 점점 사실이 된 거야." 
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사물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대개 전적으로 믿을 건 아닌 것 같지만."
그 말을 끝으로 다치아라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올라올 때 보았던 분카 원년의 무덤 옆을 지나는데 마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고의가 아닌 전통의 창조입니다." 

 

- "... 우리가 왔기 때문이구나."
다치아라이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가까이 가고 싶은 상대가 아닐 것 같잖아?"
후지시바 시가 내려다보이는 묘지에 띄엄띄엄 선 묘석들, 그중 하나 뒤에 아름다운 꽃을 꽉 움켜쥐고 숨죽인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백 만주를 바치고, 샐비어를 바치고, 유족이 그것을 보기를 고대했던 사람이 우리라는 훼방꾼을 십중팔구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노려보고 있었을 사람이. 

 

- "미안해, 마야. 미안해." 
마야는 시라카와를 위로하듯 천천히 말했다.
"아니요. 이즈루, 저 즐거웠습니다. 이런 일은 어디에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고슬라비야 사람... 손님에게는 어느 나라나 좀처럼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가면이 없는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감탄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즈루, 고맙습니다." 
"마야!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리뷰자 주 : 이 대사를 읽었을 때 굉장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 그래, 마야는 경험을 쌓았다. 그것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늘 일은 불쾌하기는 했어도 일본에 사는 나에게조차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쌓아 마야는 지금의 마야가 됐을 것이다. 오늘 일도 경험으로 삼아 마야는 또 다른 마야가 된다.  

- "아니, 그런 게 아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뒤로 물러서는 것도 내키지 않을 뿐."
"아아, 그 기분은 나도 안다."

- 나는 평소 주로 오락 소설을 읽는다. 그러나 고교 생활을 하면서 교실에까지 책을 가져와 읽은 적은 없었다. 소설의 뒷이야기가 아무리 궁금해도 의식적으로 집에서만 읽곤 했다. 책을 읽는 인간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소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려니와, 구태여 소수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꼴사나운 허세라 생각하고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걸맞지 않은 행동을 입시 덕분에 얼버무릴 수 있었다. 자습하는 급우들 틈에서 거금을 들여 산 사륙판 책을 읽는데 후미하라가 들어왔다. 집에 가는 길에 들러본 모양이었다. 

 

- "산 거지? 대단하다 싶어서 그런다. 도서관에서 빌릴 생각은 못 해봤냐?"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보긴 했지. 여기 도서관에도 없고 시립 도서관에도 없더라.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한나절 들여 뒤졌는데도 못 찾았다."  

 

-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가. 자기 행동을 자기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기분이 찜찜하다. 머릿속으로 말을 궁리해보았다. 

 

- 원은 안개에 싸여 어둑어둑하지만 원 안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원 안에는 내가 있다. 후미하라, 다치아라이, 시라카와도 있다. 내가 선 장소는 비교적 원 중심에 가깝다. 후미하라도 그런 것 같다. 시라카와는 더욱 중심에 가까울 것이다. 다치아라이는 다소 바깥 테두리 쪽으로 쏠려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같은 원 안에 있다. 그 안에서 경쟁하고, 그 안에서 이기거나 진다. 아무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실은 이 원 안에만 있어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다. 

- 그런데 어느 날, 원 안으로 마야가 날아들었다. 듣자 하니 전혀 다른 원에서 날아왔다고 한다.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지만 뜻밖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어서. 아니,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수도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나는 생각한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올 수 있다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것도 가능할 게 틀림없다. 어쩌면 그림으로써 나는 원 안에 있을 뿐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그것은 말로 하자면... 

 

- "상상해 봐. 초승달 아래 내가 피로 얼룩진 칼을 들고 물가로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대답을 못 하고 있으려니 다치아라이는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너무 잘 어울리지? 그래서 싫은 거야."

 

- "유고슬라비야는 '남슬라브가 하나이기를'이란 이름입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는 우리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언젠가는 분명히 우리 유고슬라비야 사람이 일곱 번째를 만들어낼 겁니다."

 

- 침묵,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를 비로소 깨달았다. 
마야를 휩쓰는 힘의 크기. 그리고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마야의 강함. 순간, 현기증이 났다.
유고슬라비아는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마야는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우리와 함께 지낸 두 달간, 오늘 잔치의 여흥조차 마야는 양식으로 삼나. 그 명확한 방향성,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다는 실감. 둘 다 나에게는 손톱만큼도 없는 것이다. 

- 나는 생각했다. 말하려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내일이면 마아는 우리 앞에서 사라진다. 저쪽 세계로 돌아가버린다. 말을 하려는데 입이 또다시 마비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말하면 안 된다, 말해봤자 소용없다. 그런 생각이 쉴 새 없이 치밀었다. 

 

- 부족한 것 없는 나날 속에서 나는 무슨 실감을 가지며 살고 있을까. 지식과 인식을 쌓고 말을 사용해서 논의를 한들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무엇을 접했느냐고 누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서 손을 댄 것이 기껏해야 궁도다. 후미하라는 전에 내가 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열중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야 그랬을 것이다. 누카타가 외국 팝 음악에 미치건, 후미하라가 궁도에 힘을 쏟건, 내가 접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다. 그런 행복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교육도 받고, 몸에 탈난 곳도 없이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건 그냥 사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나는 내 그릇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 정도 되는 인간은 결코 적지 않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모리야 미치유키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그러나 이 건에 관해서는 상대적이고 뭐고 없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벌써 고교 생활이 끝나간다. 그러나 행복한 생활이 불만이라고 일부러 그것을 버리고 가드레일 밑을 잠자리로 삼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것은 그저 부자유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교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소수자임을 알면서 일부러 그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자기만족이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그러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난 이대로도 살 수 있어. 생물이니까 먹고 자기만 하면 살 수 있어. 일본에 있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래선 안돼. 어떤 형태로 그게 가능할지 지금의 난 상상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나도 어떤 형태로든 내 세계를 만들어야 해. ... 여기가 아닌 데로, 유고슬라비아로 데려가 줘."

 

- 마야는 내 좁은 세계에 숨구멍을 내준 방문자였다. 별세계에서 온 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마야는 마야의 시점에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는 미지의 입장에서, 내가 살아온 세계를 재해석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고 싶다. 아마도 살면서 처음 느낀 열정이었으리라. 나는 마야에게 반한 것이었나. 아니다. 나는 마야를 동경한 것이다. 

 

- "모리야 씨. 저는 유고슬라비야 사람의 문화를 만들 정치가가 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보고 다녔습니다.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모리야 씨는 무엇을 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야에 갑니까?"

"그러니까 뭔가를..." 
눈을, 눈 속 깊은 곳을 마야가 들여다보았다.
"뭔가?"
깨려던 술기운이 별안간 되돌아온 것처럼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야는 흡사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설득하는 듯한 온화한 표정이었다.
"모리야 씨, 유고슬라비야에는 아주 아름다운 장소가 많습니다. Blejsko(블레드), Postojnska(포스토이나), Ohrid IDubrovnik(오흐리드 이 두브로브니크). 여러 곳이 있습니다. 아주 멋져요.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관광에 목숨을 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야가 좀 더 조용해지면 이즈루와 마치 씨와 후미하라 씨와 함께 와주십시오." 

 

- 나는 이때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고 할지, 망연한 상태였다. 사고를 거치지 않고 해답을 깨닫는 지적인 순간, 발화. 원한다고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그것이 한순간 나에게 찾아들었다. 지금까지의 정보와 사고의 축적이 영감을 불러왔다. 나는 마야의 고향이 어딘지 직감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서서히 기억이 되살아났다. 

 

- 그때 내가 분했던 것은 내 절실한 바람이 관광이라는 한마디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일 년. 일 년이면 여러 가지가 바뀐다. 입시 공부를 하는 틈틈이, 그리고 입시가 한창일 때도, 마야의 말은 늘 머릿속에 남아 종종 의문으로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일 년은 줄곧 생각해온 문제에 이럭저럭 대답을 도출해내기에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다. 작년에 내가 하려고 했던 일, 마야를 따라 유고슬라비아로 가려고 했던 일, 그것은 마야 말대로 관광일 뿐이었다. 아니, 그보다 못한,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 뭔가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 그런 기분으로 유고슬라비아에 간다고 뭔가가 어떻게 되리라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던가?

- 야마시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산들을 돌아다니며 유망한 광맥을 찾는 사람들. 물론 그런 게 그렇게 아무 데나 있을 리 없으니 대개는 허탕을 친다. 그래도 야마시에게는 광맥을 찾는다는 목적이 있다. 대부분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런 것은 처음부터 계산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어쩌면 뭔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의도로 산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당연하고, 성공이고 실패고 할 것도 없다. 나 같아도 그 행동을 피크닉이라고 부르겠다.

 

- 당시의 나는 마야가 이끌고 온 세계의 매력에 현혹되어 있었다.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드라마'에 매달리고 싶었을 뿐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명언한 덕에 위선자가 되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힌트는 곳곳에 있었다. 마야는 처음부터 자기는 이러저러한 목적을 위해 일본에 왔다고 똑똑히 밝혔고, 쓰카사 신사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그렇게 말했다. 다치아라이는 별세계를 동경하는 나를 간결하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마야는 그런 나를 가망 없다고 판단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했던 마야.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현혹되어 있던 나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마야는 나를 통렬하게 거절했다.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고 말았지만... 

 


 

-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보틀넥>의 주인공 사가노 료는 철저한 '무능감'에 사로잡혀 있다. 애인의 죽음, 형의 죽음, 최악의 가정불화, 자신을 둘러싼 온갖 불행을 그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가 그의 입버릇이다. 이 같은 '무능감'은 '전능감'과 결코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능감'과 '무능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그러나 애인이 떨어져 죽은 절벽에서 사고를 당한 그가 가게 된 또 하나의 세계, 자신이 아니라 이쪽 세계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누나가 있는 평행세계 (그렇다. <보틀넥>에는 무려 평행 세계가 등장한다)에서 그가 점차 알게 되는 잔인한 진실은 그의 현실 및 자기 인식을 거세게 뒤흔든다. 

- 지금은 청춘 소설의 범주를 벗어난 작품도 많이 쓰기에 이렇게 불리는 일이 별로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요네자와 호노부는 종종 '청춘 미스터리의 기수'로 불렸다. 그것은 일단 그가 이처럼 사춘기 특유의 오만함, 좌절, 불안, 아픔을 등신대로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특기할 것은 그의 청춘 미스터리가 단순히 청춘 소설 + 미스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미스터리의 축에 또 하나의 축을 접목시켜 미스터리의 결말이 또 한 축의 결말과 포개지는 구조를 선호한다고 한다. 작품 활동 초기에 그가 선택한 또 한 축이 바로 '청춘'이다. 사가노 료는 평행 세계의 누나 사키와 함께 두 세계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혹은 알려하지도 않았던 자기 쪽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진실은 료 앞에 매우 무거운 선택을 들이댄다. 또 <안녕 요정>에서 모리야는 전쟁이 벌어진 유고슬라비아로 돌아간 마야의 안부를 걱정해 그녀와의 추억에 비추어 그녀의 고향을 밝혀내려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신의 미숙함, 안이함을 깨닫는 결과로 이어진다.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곧 자기 인식의 조정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확고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미스터리가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의 매력은 일차적으로 수수께끼의 존재에, 그리고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모든 게 말끔하게 해결되고 질서가 회복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탐정이 범인을 밝혀냈으니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때고 이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요네자와 호노부의 미스터리에서는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더 큰 고민과 아픔과 노력과 결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질서 회복은 그 끝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지만, <안녕 요정>에서도, <보틀넥>에서도 <빙과>, <쿠드랴프카의 차례.>,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에서도 미스터리는 그런 의미에서 무력하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