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그렉 이건] 내가 행복한 이유

일루젼 2022. 8. 2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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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그렉 이건 / 김상훈

원제 : Reasons to be Cheerful
출판 : 허블 
출간 : 2022.08.16 


       

최고다. 강렬하다.

'SF 작가들의 작가'라는 수식언이 결코 과하지 않다. 대체 언제 발표된 것인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묵직한 문장과 설정이었다. '모든 것은 결국 그 원형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번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들은 주로 90년대 위주로 발표된 글들로 알고 있는데, 이미 그 시대부터 지금의 시류를 꿰뚫는 SF가 나오고 있었다. 최근까지 유명세를 떨쳤던 SF 작품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되짚어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이제야 읽었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적절한 사랑>

정말 신선했다. 인간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기관을 '뇌'라고 한다면, '뇌'의 생존은 그 인간의 생존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얼핏 단순해 보이는 구조 뒤에는 성 윤리와 인공 신체, 일종의 마인드 업로딩까지 설계되어 있다. 상상을 상상에서 그치지 않게 하는 치밀함은 그 '가능할 법함'에 있다. 사용하지 않는 기관의 위축까지 고려한 글쓰기에는 찬탄만이 나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닌 그녀였기에 가능했다면, 마찬가지로 그녀이기 때문에 그가 아닌 것이다. 

 


<100광년 일기>

우주 속에 다양한 은하와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어딘가에서는 다른 시간선을 가진 은하도 존재할 것이다. 그중 계의 수축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은하가 발견된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관측 망원경은 기본 원리인 방출된 광자를 수신하는 대신, 이쪽의 광자를 '빼앗기게' 된다. 틀림없이 지금 내가 관측하고 있지만, 과거로부터 역관측을 당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곳에서 반사된 광자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 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하루에 100 단어 정도 분량의 텍스트를, 매일.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일생을, 내가 직접 기록한 문장으로 만나게 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기분은? 바꾸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허무한 노력까지도 이미 존재했던 미래인 걸까?

 

인간의 자유 의지와 결정론, 광자 원리를 유려하게 엮어낸 단편.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것이 결정되어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았다. 내가 읽은 그렉 이건은 휴머니즘적이고, 절대 신과 광신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 작가다. 그의 소설이 휴머니즘 SF와는 결을 다르게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행복한 이유>

행복함, 충만함, 불행함, 박탈감 같은 감정들은 흔히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난 어떤 것이라고 여겨지게 마련이다. 정신적이고, 실체가 없는 것.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이미 해피 드럭 같은 감정을 조절해주는 정신과 약물들이 존재한다. 그중 대다수가 기전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감정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감정' 또한 물질이니까. 

 

이에 관한 소설이 바로 <내가 행복한 이유>이다. 특정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게 되어 모든 것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소년이 겪게 되는 일련의 -혹은 일생의- 삶. 그것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에게는 모두 '똑같은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

어쩌면 'reasons to be cheerful'은 이것을 가리키고자 했던 게 아닐까.  

 


<무한한 암살자>

나는 이 단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묘하게 사이버펑크적인 암울함이 느껴지는 문장과 분위기가 좋았다.

이전에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플레이하면서 생각했던 잡생각은 이미 매력적인 단편으로 발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일한 나'라는 개념에 세뇌되어 있다. 이 순간, 내가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한다면 '그것을 택한 나'라는 단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매 순간은 '모든 가능성의 나'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에 가깝다. 사실 파고들어 가자면 그 분기점을 정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지만.

 

예를 들자면 지금 당신이 의자에 앉아 있다고 하자. 그 순간은 의자에 계속 앉아있는 당신, 일어나는 당신, 엎드리는 당신, 물을 마시는 당신, 노트북을 켜는 당신, 한 다리를 꼬는 당신 등의 수많은 당신들의 중첩체이다. 가장 '많은' 당신이 겹쳐진 '고밀도'가 현실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마저도 충분히 각각의 현실로 분기되어 공존이 가능하다. 이것이 '멀티버스'다. 

 

그리고 <무한한 암살자>는 이 설정을 실로 잘 구현한 단편이다. 마블 세계관을 즐겁게 향유한 분들이라면 이 역시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

'신의 심판'에 매달리는 이들은 대개 자신의 불안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은 것인데,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에게 없기에 '증명'을 원한다는 것을 스스로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부를 향해 쏘아낸 불안과 불만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믿음을 박해받는' 경험을 하게 될 텐데... 슬픈 일이다. 

 

'이렇게 정교한 바이러스가 설계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차치하고, 몇 세대에 걸쳐서도 안정적으로 변이가 억제될 것인지를 묻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 단편은 우선 그 모두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지만 '나'이기도 한 존재는, '면역'이라는 측면에서 이물질인가? 혹은 나의 분신인가? 

SF로만 보아 넘기기엔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단편이다. 

 


<행동 공리>

경험을 사서 '임플란트'를 할 수 있는 시대. 얼마 전 읽었던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이 단편에 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행동 공리>는 오히려 '그렇게 변화된 나' 역시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정 프레임을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통찰 또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서로 모순되는 가치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은 정신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 모순을 스스로 자각한다면'.  

 


<내가 되는 법 배우기>

이 단편도 무척 인상 깊었다. 이 공포는 내가 어린 시절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공포였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인가? 혹은 '진짜'일 수 '있는가'?

 

현재 인기를 모으고 있는 마인드 업로딩의 시원점이 될 수 있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보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렉 이건이 구사하는 이런 중의성 또한 매력적이다.

 

몇십 년 동안 내가 해온 선택과 사고방식의 패턴을 학습한 보석이 노화하는 뇌를 대체한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노화'하거나 '사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의미를, 이 단편에서는 주목하지 않은 그 부분을 최근의 SF에서는 보다 깊게 다루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겨>

이 단편 제목의 번역은 조금 의아하다. 이렇게 감성적으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chaff'에 '겨, 겉껍질' 같은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chaff'는 군사 작전에서 레이더 망을 교란시켜 추적을 피하기 위해 흩뿌리는 금속 조각 같은 것을 의미한다. 소설 내에서는 양자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번역가 분이 '김상훈'이시니 아마 이 부분을 놓치셨을 리는 없고, 식물학자와 아마존 같은 삼림이라는 부분을 고려해 이런 제목으로 정하신 게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려운 단편이었는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글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완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의도'와 '내게 와닿은 의미'를 구분해서 읽고자 노력하는 습관은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읽은 대로, 받아들인 대로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읽는 읽기는 위험하다. 언제나 '상대가 말하고자 한 바'와 '내게 느껴진 바'를 분리해서 듣고 말해야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오해를 줄일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유전자적 한계, 생물학적 양육 환경 등으로 고정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뿌리부터 지워낼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업장 소멸과도 연결된다. 오롯이 '내가 선택한 대로' 이루어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흔히들 완벽하고 온전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식물 뿌리 같은 것들로 한계와 경계를 상상하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흩어져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의 존재로 뭉쳐주고 보호해주는 겉껍질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충분히 흔들리고, 이것과 저것 사이의 모순을 함께 뒤섞을 수 있는 혼란한 하나의 존재로 지켜주는.

 

이 단편 안에서 라르고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족쇄를 풀어주는 '회색 기사'를 개발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통한 변화가 반드시 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한 '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껍질 제거는 무정형의 괴물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chaff'는 유인물이자 미끼이자 교란물이자 의미 없는 부산물, 그리고 껍질이었다.  

 


<루미너스> 

'빛으로 이루어진 컴퓨터'라는 설정은 환상적이었지만 실상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든 사물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지금의 밀도로 뭉쳐지기까지의 시간과 다시 빛으로 환원되기까지의 시간을 늘려놓은 것일 뿐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물질계에 순수한 빛으로 구성된 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다면? 도체의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빛의 컴퓨터'는 무한에 가까운 연산 속도를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단편은 빛의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이 점이 내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 부분이었다. 소설의 핵심으로 삼아도 좋을만한 놀라운 설정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부수적인 설정으로 소모할 수 있는 대범함, 그리고 그 이상의 구성력.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1998년으로 20년도 전임을 고려하면, 그렉 이건은 정말 천재인 것 같다. 그가 실제 과학자로 활동했었다는 것은 틀림없이 큰 도움은 되었겠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환상적인 글을 설명할 수는 없다. 

 

수학적 공리들 간의 모순. 하나의 '참'이 '거짓'이 되는 경계. 아직 어린 우주였기에 자신의 논리로 짜내려 가기 전에 '나타나 버린' 것들을, 그 실존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회할 수밖에 없는 '경계'. 

 

이것으로 일어나는 세계의 소멸과 존속은 <나인 폭스 갬빗>에서의 역법 전쟁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큰 스케일로 1+1=0일 수 있는 세계 -일종의 양자적 차원- 으로의 도약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등장인물은 수학적 말살이 인간의 뇌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존재할 수 있는 하나하나의 독립된 세계 자체가 인간이라고도 생각한다. 한 인간은 자신만의 논리로 구축된, 상호작용을 하면서도 독립된 세계이므로.

 

실로 훌륭했다.  

 


<실버파이어> 

그렉 이건의 시선이 어느 쪽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나는 이미 감염자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한 아미쉬 파와 눈물의 길, 헤르메틱스 모두에 관심을 두었던 적이 있는데, 저자가 꼬집고자 했던 것은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 그것들을 차용해 '자신'을 포장하고 설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점에서 이미 글렀다. 광신은 교리의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 문제를 '보지 않는' 것과, 애초에 교리 자체가 '필요 없었던' 것이 근원이다. 자신을 옹호하기 위한 껍질로 전락하는 순간, 그가 휘감은 것이 무엇이든 그 존재는 소라게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한다. 

 

팬데믹 상황이라 더더욱 와닿게 느껴질 법한 단편이다. 예기치 않은 상실과 고통 앞에 인간은 초자연적인 힘에서 '이유'를 찾으려 한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혹은 뭔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주어진 고통일 것이라고. 혹은 더 큰 의미를 위한 작은 희생일 뿐이라고. 

 

저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단언한다. 세상은 그저 그 나름의 이치와 원리로 돌아갈 뿐, 그 안에 인간의 '특별함'이나 개개인을 위한 '상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정함에 기대어 위로받으라.

혹은, 그 무정함을 사랑하라.  

 


<체르노빌의 성모>

내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걸까? SF라기엔 미스터리 소설이나 추리 소설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 안에도 가상현실과 NFT 개념, 나노 입자를 이용한 위치 분석과 트래킹 같은 초현실 기술들이 등장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이것들은 모두 '실현된 기술'이기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이 책 내의 작품 배치는 굉장히 잘 고려된 순서라고 느꼈다. <체르노빌의 성모>는 <실버파이어>와 연결되며 마지막 퍼즐을 닫아주는 마무리의 느낌이 확실하다. 또한 어느 정도 그렉 이건의 세계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잠시 신선함과 종교적 광기에 대한 서늘함을 느낄 수 있도록 중반부에 배치된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를 <실버파이어>에서 환기함으로써 느껴지는 회귀 원형 구조가 매끄럽게 닫히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강렬한 하드 SF가 <루미너스>에서 절정에 달한 다음, 서서히 서사적이고 휴머니즘적인 SF로 옅어지는 느낌도 매력적이다.

(물론 이 모든 느낌은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정교의 성모도 카톨릭의 성모도 자비의 성모일진데.

체르노빌의 비극 속에 새로운 평화를 꿈꾸었던 작품은 또다른 십자군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체르노빌의 성모>는 이콘이라는 형태의 성화를 둘러싼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파티마의 성모'와도 연결되어 읽혔다.

기적이 존재한다면 성모여, 모습을 드러내소서. 

혹은, 그러니 멋대로 기적을 믿고 좌절하지 말지어다. 

그 세 번째 예언이 핵에 관련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만큼 '체르노빌'과 '성모'의 연결이 강렬하게 눈에 걸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 이렇게 읽어내는 '나의 사고 패턴'은 지금껏 내가 경험해온 것들의 '축적'이며 동시에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보다 '충실하게' 이런 나로서 '살아내야' 한다. 이 패턴의 존재 가치가 없었다면 나는 물질로 구현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 나의 'Reasons to be Cheerful'인 것이다.

 

정말 행복하게 읽었다. 

 


    

 

 

 

 

- "남편분은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순간 나는 질끈 눈을 감았고, 안도한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39시간 동안이나 한숨도 못 자고 대기하면서 나는 불확실성 쪽을 두려움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과의사들로부터 크리스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거의 희망을 버리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새로운 몸이 필요합니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구구절절 듣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손상을 입은 장기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손상 정도도 심해서 개별적으로 장기이식을 하거나 수술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새로운 몸, 그 부분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너무나도 깔끔하고 너무나도 단순한 해결책 아닌가. 개별적으로 장기이식을 한다면 크리스의 몸을 여러 번 거듭해서 절개해야 한다. 설령 그 목적이 아무리 유익하더라도 수술을 하면 합병증의 위험이 계속 남게 되고, 그것은 즉 크리스가 영영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노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병원에 와서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사고 소식이 오보일 것이라는 부조리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크리스는 열차 사고 현장에서 멀쩡한 몸으로 빠져나왔고, 지금 수술실에 있는 사람은 실은 타인일지도, 이를테면 크리스의 지갑을 훔친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억지로 떨쳐내고, 남편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고 극히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는, 새롭고 완전무결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은 내가 한 망상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기적적인 집행유예처럼 느껴졌다. 

 

- 그런고로... 나는 죽음을 짓밟았고, 모성도 짓밟았다. 할렐루야. 희생이 필요하다면, 사람의 감정을 노예처럼 부리는 이 두 상태보다 더 좋은 희생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러는 것은 정말 쉬웠다. 내게는 논리라는 강력한 원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육체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내가 크리스를 애도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 자궁 안에 있는 존재는 아이가 아니었다. 따라서 적출된 뇌를 모성애의 대상으로 인정했다면 코미디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삶이 문화적이고 생물학적인 금기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금기를 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럴 방법을 찾아내는 듯하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문, 대량학살, 식인, 강간.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짓을 저지른 뒤에도 어린 아이나 동물을 상냥하게 대하고, 음악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멀쩡하게 기능하는 정상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나 자신의 사소한(게다가 완전히 이타적이기까지 한) 일탈 행위가 내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 <적절한 사랑>

 

 

- 시드니 도심의 보행자 전용 도로인 마틴 플레이스는 점심시간에 몰려나 온 인파로 평소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초조하게 훑어보았다. 그 시간에 거의 가까워졌는데도 앨리슨은 아직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다. 1시 27분 14초, 설마 나는 이토록 중요한 일을 잘못 기록한 것일까? 실수를 저질렀다는 기억이 아직 생생했을 때 기록했을 텐데? 그러나 그런 기억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다. 물론 내 정신 상태에는 영향을 끼치겠고 내 행동에도 당연히 영향을 주기야 하겠지만, 나는 이미 그 기억이 끼친 영향과 그 밖의 모든 영향들이 어떤 결과로 수렴될지를 알고 있었다. 이미 읽은 얘기를 고스란히 일기에 써둘 예정이기 때문이다. 

 

- "자, 방금 묘사한 상황 전체를 역전된 시간에 대입해 보십시오. 만약 검출기를 시간이 역전된 광원에 노출시킨다면, 검출기는 그 광원에 노출되기 전에 틀림없이 충전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검출기를 그런 광원에 노출시키기 전에 완전히 방전시켜놓고, 그다음에..."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 지구에서 몇천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소행성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첸의 은하와 지구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시선을 우연히 가로질렀다고 가정하자. 첸 은하의 시간 프레임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런 엄폐 현상이 지구 인근 궤도에서 관측되려면 30분가량의 지연이 발생한다. 이것은 소행성에 가로막히지 않고 통과한 마지막 광자들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러나 지구의 시간 프레임은 첸의 은하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지구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 '시간 지연'은 네거티브(-) 값을 갖게 된다. 지구에서는 첸 은하가 아닌 광자 검출기를 광자의 방출원으로 간주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검출기는 광자와 목적지인 첸의 은하로 이어지는 시선에 장애물이 없을 때만 광자를 방출하기 위해, 소행성이 시선을 가로지르기 30분 전에 방출을 멈춰야 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맥락에서 설명하자면, 검출기가 전하를 잃고 광자를 방출하려면 원인이 필요하다. 설령 그 원인이 미래에 존재한다고 해도 말이다.

 

- 제어할 수 없는 데다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소행성을 단순한 전동 셔터로 대체해 보자. 반사경들을 써서 지구와 첸의 은하로 이어지는 시선을 단축한다면 실험을 좀 더 조작이 용이한 규모까지 축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셔터와 검출기를 실질적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당신이 반사경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을 때 되돌아오는 빛은 과거로부터 온 신호다. 그러나 첸 은하의 빛을 반사경을 향해 비춘다면, 신호는 미래에서 온다.

 

- 첸의 업적을 이어받아 연구를 계속했던 해저드, 캐펄디, 우는 우주공간에 몇천 미터 간격을 두고 한 쌍의 반사경을 배치했고, 다중 반사를 이용해서 2광초를 넘는 광학적 거리를 확보했다. 이 시간 지연의 한쪽 끝에는 첸의 은하를 향하고 있는 망원경을 설치했고, 다른 한쪽 끝에는 검출기를 설치했다. (여기서 '다른 한쪽 끝'은 광학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로는 망원경과 함께 같은 인공위성에 수납되어 있었다.) 그들이 처음 실행한 실험에서, 망원경에는 소량의 방사성동위원소 시료의 "예측 불가능한" 붕괴와 연동된 전동 셔터가 부착되었다. 셔터의 개폐 시퀀스와 검출기의 광자 방출률은 컴퓨터에 기록되었다. 이 두 데이터 집합을 비교해 보니 예상대로 쌍방의 패턴은 일치했다. 물론 검출기는 셔터가 열리기 2초 전부터 광자를 방출하기 시작했고, 셔터가 닫히기 2초 전에 방출을 멈췄지만 말이다. 

 

- 다음 실험에서 그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스위치를 수동식 스위치로 대체했고,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불변의 미래를 바꿔보려고 했다. 몇 달 뒤의 인터뷰에서 해저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심술궂은 반응 시간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녹색 등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면 나는 녹색 버튼을 누르는 대신 빨간 버튼을 눌러야 했고, 빨간 불이 들어오면 반대로 녹색 버튼을 눌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신호와는 반대되는 색깔의 버튼을 누른다는 '힘든'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신호에 계속 '복종'하는 건, 단지 반사신경을 충분히 연마하지 못해서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당시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써서 전달 방법에 변화를 줘봤지만,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컴퓨터가 내가 셔터를 연다고 말하면, 컴퓨터가 어떤 표현을 썼든 간에 나는 셔터를 열었으니까요."

 

- "그럴 때는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 로봇이 된 느낌? 운명의 포로가 된 느낌?" 
"아뇨. 처음에는 그냥... 둔해진 기분이었습니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너무 둔한 탓에 반대 색깔의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모든 일이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셔터를 열라고 '강요'받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셔터를 열고 싶을 때만 셔터를 열었으니까요.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셔터를 열기도 전에 결과를 미리 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내가 셔터를 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당에, 새삼 '안 열고 싶어 한다'는 건, 과거에 이미 일어났다는 걸 알고 있는 어떤 사건을 바꾸고 싶어 하는 행위만큼이나 부조리한 일이라고 느꼈죠. 당신은 자기 손으로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까?"

 

- "나는 죽도록 두려워할 게 뻔하니까 말이야. 너도 그러는 편이 나을걸."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틀림없이 그러마 하고 맹세했다. 이미 그랬으므로 맹세할 필요는 없었지만, 나의 불쌍한 절친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을 일기에 쓸 때가 되자 나는 프리아를 만나기 훨씬 전에 이미 기억해 둔 문장을 충실하게 되새김질해서, 새벽에 강도를 당한 그가 팔걸이 붕대를 하고 있었다고 간결하게 기록했다. 

- 충실하게 아니면 단지 시간의 고리가 닫혔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일기로 읽은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밖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또는... 둘 다일까? 이 와중에 동기 운운하는 것도 묘한 일이지만, 사실 그건 어떤 경우에도 들어맞는 얘기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형성하는 방정식들로부터 제외된다는 뜻이 아니다. 일부 철학자들은 아직도 '자유의지의 상실' 운운하면서 장광론을 펼치지만(아마 본인들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들에게 이 자유의지라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해 줄 유의미한 정의와 나는 여태껏 조우하지 못했다. 미래는 언제나 결정되어 있었다. 개개인의 유일무이하며 복잡한 유전 형질과 과거의 경험은 차치하더라도, 그 밖의 어떤 것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인간이 그 이상의 어떤 '자유'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인간의 '선택'이 인과관계에 절대적으로 기반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무엇이 그 결과를 정하는 것일까? 뇌 속의 양자론적 잡음에서 발생한 무의미하고 무작위적인 글리치? (이것은 양자론적 비결정론이 종래의 시간 비대칭적 세계관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된 가설이었다.)

 

-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미래에서 오는 정보의 노예가 되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일기에 적힌 인생 이외의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매달릴 필요를 느낀 적도 없었다. 예정 밖의 혼외정사를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일기에 무미건조한 선의의 거짓말을 기입할 때조차도 불안을 느끼지만, 일견 무해한 행간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가 될 예정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런다면 나의 전 인생은 유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 <100광년 일기>

 


- 결코 바뀌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S 중독자가 현실을 뒤섞기 시작하면, 사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그 <소용돌이> 속으로 파견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이유가 뭐냐고? 나는 안정돼 있기 때문이란다. 믿고 맡길 만하니까 맡긴다는 식이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할 때마다 내가 소속된 <기관>의 심리학자들은(매번 전혀 모르는 작자들이 온다) 출력된 보고서를 읽으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 일쑤고, 나는 <소용돌이>로 들어갔던 '나'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단언한다. 

 

- 평행세계의 수는 셀 수 없이 무한하며(여기서 말하는 무한은 단순한 정수整數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실수實數의 그것에 가깝다) 복합한 수학적 정의를 동원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수량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개략적으로 말해서 나는 말이 안 될 정도로 불변不變한 존재이며, 여러 평행세계에 사는 '나'들은 대다수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서로를 닮았다고 한다. 서로 얼마나 닮았다는 뜻일까? 얼마나 많은 세계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충분히 쓸모 있을 정도로 닮았다. 충분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 설령 그런 컬트 집단이 임무의 총체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과거에 몇몇 버전의 나를 실제로 죽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이번에 내 차례가 오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한하게 많은 버전의 내가 살아남으리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고, 개중에는 실제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와 완전히 똑같은 버전들도 있을 것이므로, 내가 이번 임무에서 죽을 가능성 따위에는 아예 신경을 끄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 S는 그 어떤 마약과도 다르다. S가 보여주는 꿈은 초현실적이지도 않고, 희열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시뮬레이터를 쓴 환각 체험, 가령 무제한적인 부유함이라든지 형언할 수 없는 쾌락 따위를 제공해 주는 공허한 판타지도 아니다. S가 제공하는 꿈은 사용자들이 글자 그대로 겪었을 수도 있는 인생들의 꿈이며, 세부에 이르기까지 각성 시의 삶 못지않게 현실적이며 사실적이다. 딱 한 가지 차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만약 꿈속의 인생이 유쾌하지 않게 변한다면, 당사자는 자기 마음대로 그 꿈을 중단하고 다른 인생의 꿈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S를 또 섭취하는 꿈을 꿀 필요는 전혀 없지만... 이따금 그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S 중독자는 제2의 인생을 조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인생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 따위는 없고, 변경 불가능한 결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도, 막 다른 길도 없는 인생인 것이다. 모든 가능성들은 영원히 열려 있으므로.

 

- S는 사용자에게 자기 분신이 살고 있는 어떤 평행세계에서도 해당 분신의 삶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쌍방이 대뇌생리학적으로 충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 S 사용자는 분신에 대해 기생적인 공명 링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쌍방의 유전자형이 완벽하게 일치할 필요는 없었다. 반면, 유전자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해서 무조건 분신과 공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아기의 성장 과정도 이 능력과 관련된 신경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대다수의 S 중독자들에게 이 마약은 상술한 능력 이상의 것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10만 명에 한 명 꼴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체들의 경우, 다른 세계의 꿈은 단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S를 쓰기 시작한 지 3년 내지는 4년째에, 자기가 선택한 분신을 아예 대체하려고 애를 쓰던 돌연변이체들은 급기야는 물리적으로 다른 세계로의 전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만약 내가 확산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버전은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경유해서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접근할 것이고, 도착 시각도 며칠에 걸쳐 있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버전이든 간에 허비한 시간을 그럭저럭 벌충할 수는 있지만, 평행세계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것이 뻔한 지연 시간이 끼치게 될 효과를 완전히 상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버전의 내가 <소용돌이>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가 각기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길이의 시간을 허비할 경우, 나의 모든 버전이 같은 방식으로 전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에 따르면, 특정 조건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틈새>가 생겨날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평행세계를 관통하는 <흐름>의 특정 부위들에만 쑤셔 박히고, 다른 부위들에서는 배제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0과 1 사이의 모든 수를 반으로 줄이고, 0.5와 1 사이를 빈칸으로 남겨두는 것과 유사하다. 하나의 무한을, 기수적基數的으로는 동일하지만 기하학적인 크기는 반인 다른 무한 속에 쑤셔 넣는다고나 할까. 그럴 경우에도 나의 버전들이 소멸하는 일은 없고, 같은 세계에 두 명의 내가 존재할 일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틈새>가 하나 생겨나는 것이다.

 

- 내 생각이 옳다면, 지금 내가 무슨 행동에 나서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밀고를 받은 나의 버전들이 모조리 <소용돌이> 밖으로 빠져나온다고 해도, 임무 자체에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측도가 0인 집합이 없어진다고 해서 신경 쓸 사람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한 개인으로서 내가 취하는 행동은 사태 전체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만약 내가, 오로지 나 혼자만이 임무를 포기한다고 해도, 손실은 극미하다. 문제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로 나 혼자만인지의 여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버전들 중 일부는 아마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내 성격이 아무리 안정돼 있다고 한들, 그런 행동으로 이어지는 유효한 양자적 순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선택들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까지 나의 분신들은 모든 선택지를 빠짐없이 선택해 왔고, 앞으로도 선택할 것이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나의 안정성은 내가 존재하는 모든 갈래 우주에서의 분포 및 상대적 밀도가 고정적이고 이미 결정된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럴 경우 자유의지는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모든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없으므로.   

 

- <무한한 암살자>

 


- 여자의 얼굴이 혐오로 일그러졌다. 

"바이러스가 무섭다는 이유로."

"그런 게 아니야! 물론 처음에야 그렇겠지. 인간은 약하고, 그런 인간이 선해지기 위해서는 이유가, 이기적인 이유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건 그런 이유 이상의 것으로 자라날 거야. 습관이 되고, 전통이 되고, 급기야는 인간 본성의 일부가 되겠지. 그럼 바이러스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 사람들은 완전히 변하게 될 테니까." 
"흠, 그럴 수도 있겠지. 일부일처제가 유전된다면, 나머진 자연선택이 알아서 해..." 
쇼크로스는 혹시 자신이 미치지는 않은 것인지 자문하며 여자를 응시했고, 절규했다.

"입 닥쳐! 이 세상에서 '자연선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고향인 미국의 윤락업소에서 진화론 강의 따위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신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서 대체 난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쇼크로스는 조금 냉정을 되찾고 이렇게 덧붙였다.

"난 전 세계의 문화에서 영적인 가치가 변화할 거라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야."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쇼크로스의 절규에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쪽에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얘기할게. 넌 이번 주에 내가 만나본 작자들 중에서도 가장 불쌍하고 맛이 간 사내야. 그래서 넌 특정한 도덕률을 골라서 거기 맞춰 살아가려고 결심했어. 그건 네 권리가 맞으니까, 잘해보라는 것밖엔 해줄 얘기가 없군. 하지만 넌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 것 같진 않아. 자기가 한 선택인데도 전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서, 단지 네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일념으로 너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머리 위에 유황과 지옥불을 쏟아부어 줄 하나님을 필요로 했던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번엔 자연재해를 뒤져보다가 지진, 홍수, 기근, 역병 따위에서 '죄인들에 대한 천벌'처럼 보이는 예를 걸러냈어. 혹시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네 편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믿었어? 하지만 네가 실제로 증명한 건 네 자신의 불안감이었을 뿐이야."

 

- "흠, 약속한 5분은 이미 지났고, 난 공짜로 신학 얘기는 하지 않는 주의라서. 하지만 너만 괜찮다면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 당분간은 너 같은 '바이러스학 전문가’를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질문해 봐."

이 여자는 죽는다. 그는 최선을 다해 이 여자를 구하려고 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몇십만 명의 사람들도 이 여자와 함께 죽을 것이다. 쇼크로스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신앙이 광기로부터 그를 지켜줄 것이다. 
"네 하나님이 설계했다는 이 바이러스는 단지 간통자하고 게이들에게만 해를 끼친다고 했어. 맞지?” 
"응. 아까 얘기할 때 안 들었어? 바로 그게 목적이라고! 이 바이러스의 기제는 실로 교묘해서, DNA 지문을..."
여자는 마치 귀가 들리지 않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을 상대하는 것처럼 한껏 입을 벌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일부일처제를 신봉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커플이 있다고 가정해 봐. 그래서 여자 쪽이 임신했는데, 그 아기의 유전자는 당연히 어느 쪽 부모와도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지?"

 

-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 

 

 

- 대뇌 임플란트 기술은 원래는 비즈니스 종사자나 여행자들에게 즉각적인 외국어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판매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던 탓에 결국 어떤 엔터테인먼트 재벌에 인수되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1세대 임플란트들은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탄생했는데, 이것들은 마치 비디오 게임과 환각제를 뒤섞어 놓은 듯한 물건이었다. 향후 몇 년 동안 1세대 임플란트가 제공하는 혼돈과 기능 부전의 범위는 계속 확산되었지만, 그런 트렌드는 필연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뇌의 신경 결합을 아무리 휘저어 놓더라도 어떤 한계치를 넘으면 그런 기괴함을 즐길 수 있는 주체 자체가 소멸해 버리고, 다시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복귀한 사용자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른바 <행동 공리>라고 불리는 차세대 임플란트의 초기 제품들은 모두 성性에 관련된 것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 분야가 가장 단순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성애물>이라고 명명된 진열대 쪽으로 가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나 마나 합법적인 것들만 진열되어 있겠지만) 확인해 보았다. 동성애, 이성애, 자기 성애, 무해한 각종 페티시즘, 육체의 이런저런 엉뚱한 부위들에 대한 성욕 항진. 평소의 당신이라면 혐오하거나, 조롱하거나, 아니면 그냥 따분하다고 느낄 것이 뻔한 변칙적인 성행위를 갈망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뇌신경을 자발적으로 재배선하려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일까? 파트너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식의 극단적인 복종성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고, 현재의 큰 시장 규모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일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 상태에서는 단지 성가시거나 좀이 쑤시는 정도로 끝났을 성적 정체성의 일부가, 심리적 억제나 갈등이나 혐오를 극복하고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상반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어떤 것을 원하는 동시에 원하지 않는 모순적인 정신 상태에 대해 결국은 넌더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 부분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하게. 

 

- 다음 진열대에는 아미쉬 파에서 젠禪을 망라한 종교 관련 제품이 알파벳 순서로 진열되어 있었다.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 파의 교의를 이런 식으로 획득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했다. 본디 종교 임플란트란 사용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 기이한 모순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자> -'이런 진실이 자명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라는 선전 문구가 딸린- 라는 제목의 임플란트까지 있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불가지론자는 없는 걸 보니 의구심은 수요가 없는 듯하다.  

 

- 지금은 고뇌할 때가 아니다. 나는 이미 몇 달 동안이나 실컷 고뇌했고, 그런 상황 자체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더 이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인다면, 이 임플란트를 쓰도록 결심하게 해주는 두 번째 임플란트를 사야 할 판이다. 나는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 않다. 내가 범죄를 저지를 것을 보장하는 행위와도 거리가 멀다. 인간의 목숨 따위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수없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설정한 사흘은 단지 그 신념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밝혀줄 시간에 불과하고, 나의 태도가 뇌에 배선된 것이라고 해도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확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내가 변화하는 과정을 감시해 보려고 했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30초마다 자기 성찰을 행한다고 해서 자신의 윤리적 규범을 확인할 수는 없다. 내가 결코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 평가는 몇십 년에 달하는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미 낡아서 쓸모가 없겠지만) 게다가 이런 자기 평가 내지 자아상은 나의 행동과 태도를 반영하는 것 못지않게 그 원인을 제공해 왔다. 따라서 임플란트는 나의 뇌를 직접 변화시키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던 방식의 행동을 합리화해 줌으로써 나를 옭아매고 있던 피드백 고리를 깨 주고 있는 것이다. 

 

- 이번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날 밤 내가 느낀 것이다. 에이미의 죽음 -앤더슨의 죽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며, 파리나 아메바의 죽음이라든지, 커피잔을 부수거나 개를 걷어차는 일과 마찬가지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 

- 나의 오판은 임플란트가 기능을 정지하면 내가 그것을 통해 얻은 통찰이 그대로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 통찰은 의혹과 의구심에 의해 흐릿해졌고, 나 자신의 잡다한 신념과 미신 따위에 의해 어느 정도 약화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통찰이 내게 제공해 준 마음의 평화를 기억했고, 밀물처럼 몰려오던 기쁨과 해방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되찾고 싶었다. 단 사흘 동안이 아니라, 남은 인생 동안 줄곧 앤더슨을 죽이는 일은 성실한 행위 따위가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한 행위'도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모든 충동들과 동거하며, 머릿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의 존재를 감수하고, 혼란과 자기 회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확신이 주는 자유를 맛본 지금, 그것 없이는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 <행동 공리> 

 

 

- 내 머릿속에는 작고 검은 <보석> 하나가 들어 있고, 그 보석은 거기서 내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부모님한테 들은 것은 6살 때의 일이었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거미들이 나의 뇌 안에 미세한 금빛 거미줄을 쳐놓은 덕에, 보석을 가르치는 <교사>는 나의 뇌가 속삭이는 생각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보석 자체도 나의 오감을 엿듣고, 내 혈관을 통해 운반되는 화학적 메시지들을 읽을 수 있었다. 보석은 나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나와 완전히 똑같은 세계를 경험했고, 그와 동시에 <교사>는 보석의 사고思考를 감시하며 나 자신의 생각과 비교했다. 보석이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떠올리는 생각과 어긋나는 경우, 교사는 생각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이곳저곳을 수정했고, 보석의 생각이 나와 똑같아지도록 변화시킴으로써 보석 전체를 조금씩 재구축했다. 

- 무슨 이유에서?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게 되면, 보석이 나를 대신해 주기 위해서다.
나는 생각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불안과 현기증을 느꼈지만, 보석 쪽은 어떻게 느꼈을까? 

 

- '완전히 똑같았을 것이다'라고 나는 결론했다. 보석은 자기가 보석인 줄 모르기 때문에, 보석이 이 얘기를 듣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할 것이다. '완전히 똑같았을' 것이다. 보석은 자기가 보석인 줄 모르기 때문에, 보석이 이 얘기를 듣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 그런 다음, 역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랬으니까.)
...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는 진짜로 나일까, 아니면 내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조그만 보석일까. 

 

- 그러나 더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이런 의문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보석과 인간의 뇌가 동일한 감각 자극을 받는 한, 그리고 <교사>가 양자의 사고를 완벽하게 동기화해 주는 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인간, 하나의 의식, 하나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인간은 보석이나 인간의 뇌 중 하나가 파괴당하더라도, 아무런 지장도 없이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지극히 바람직한) 속성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예전부터 두 개의 폐와 두 개의 콩팥을 가지고 있었고, 100년쯤 전부터는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보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석은 중복성을 확보하고, 강건함을 담보하는 수단일 뿐이다. 

 

- 나는 부모님이 <전환>했다는 사실을 본인들이 고백하기 훨씬 전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30대 초에 <전환>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인간의 유기 뇌는 30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므로, 그런 상태까지 보석에게 모방하도록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래서 그 무렵에 신경계를 재배선해서 육체의 통제권을 보석에게 넘기고, <교사>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전환>한 후 1주 동안은 뇌가 외부를 향해 발하는 신호를 보석의 그것과 비교하게 된다. 이 무렵 보석은 당사자의 뇌를 어차피 완벽하게 복제한 상태이므로, 쌍방의 신호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 뇌는 제거된 뒤에 처분되고, 무균 배양된 해면상의 조직과 대체된다. 이 조직은 모세혈관 단위까지 원래의 뇌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폐나 신장과 마찬가지로 사고력은 전무하다. 이 가짜 뇌는 혈액으로부터 진짜 뇌와 똑같은 양의 산소와 포도당을 흡수하고, 조잡하지만 인체에는 필요 불가결한 몇 가지의 생화학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이 가짜 뇌 역시 인체의 다른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늙어 죽으므로 나중에 교체할 필요가 생기지만 말이다. 

 

- 그리고 내가 자력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의 지적 능력은 잘해봐야 평범한 수준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였다. 의식의 수수께끼를 푼답시고 시간을 낭비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고민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든지, 둘 중 하나다.
 
- "당신이 뇌졸중을 일으켰다고 가정해 봐."   
말이 술술 나온다. 
"그 결과 당신 뇌의 일부는 조금이지만 손상을 입었어. 그래서 의사들은 손상된 부위가 수행했던 기능을 대신 수행해 줄 기계를 당신 뇌에 이식하기로 했어. 그럴 경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당신일까?"

"당연히 그렇지." 
"그렇다면 같은 일을 두 번, 열 번, 아니 천 번 더 되풀이하는 경우는..."
"그건 처음과 같다고 할 수는 없잖아.
"정말? 그럼 당신이 '당신이 아니게 되는' 마법의 비율은 도대체 몇 퍼센트인 거야?"
대프니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낡고 진부한 논리를 동원해 봤자..."

 

- 매일 밤 침대에서 몇 시간씩 뜬눈으로 지새우며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보려고 노력했지만,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문제는 오히려 더 모호해지고 파악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었다. 애당초 '나'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체가 되어 있는 마당에,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과거의 나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런 작자들에 관해서는 소원해진 지인들의 경우 못지않게 모호한 기억밖에는 없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딱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온갖 변화에 비하면, 태어날 때부터 있던 유기 뇌를 잃는다는 건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죽음과 동일한 의미가 아닐까.

- 이따금 몸을 떨고 울다가 잠에서 깰 때도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無가 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생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을 하면, 두려움과 견디기 힘든 고독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짐짓 넌더리를 내면서 고민하는 일 자체를 그만두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보석의 정신 활동의 본질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가 조우한 가장 중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고, 나의 고민이 하찮고 우습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매일 몇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환> 수술을 받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멀쩡하게 돌아가지 않는가. 난해한 철학 논쟁을 아무리 되풀이해 본들, 이런 현실 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 <내가 되는 법 배우기> 



- 실제로 핵을 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혹시 모종의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성스러운 아마존강의 하류에서 발견된 부작용이 화면발을 잘 받는 모종의 멸종위기종을 실제로 전멸시켜 버리는 당혹스러운 사태 따위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던 탓일까? 미국이 핵을 사용하는 것을 본 중동의 독재자 나부랭이가, 이것을 오랫동안 꿍쳐놓았던 빈약한 원자탄을 골치 아픈 소수민족 따위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신호로 해석함으로써 중동 전역을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와해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광신적인 반핵 환경보호꾼들이 재집권한 일본이 무역 제재를 가해 올 것이 두렵기라도 했단 말인가? 

- 나는 지정학적 컴퓨터 모델이 내린 결론을 제공받지는 않았다. 단지 명령을 하달받았을 뿐이다. 암호화된 이 명령은 우리 집 근처의 K마트의 유통 가격들이 업데이트되는 틈을 타서 점포 컴퓨터에 침입했고, 매장 형광등의 깜박거림을 통해 내게 전달됐다. 내 왼쪽 눈의 망막에 부착된 또 하나의 신경층에 의해 해독된 단어들이 슈퍼마켓 통로의 단조롭고 쾌활한 색조 위로 시뻘겋게 떠오른다. 

 

- 더 이상 연구해 봤자 기존 기술을 개량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55살이 된 라르고는 자신이 가장 창조적인 연구를 했던 시기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현재 마약 카르텔들은 엘니도의 몇몇 지역만을 점거하고 있고, 처음 왔던 유전학자들의 반은 카르텔과 결별하고 밀림에 자기만의 작은 유토피아를 세웠습니다. 현재 엘니도의 식물들을 프로그래밍해서 새로운 유전자를 발현시키고, 생물학적 통신망을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12명은 있는데, 그런 지식이 있다면 자기 영토를 확보하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숲의 정령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은밀하고 주술적인 힘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주술과 다른 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지만."

 

- "뇌 안의 뉴런 일부를 백기사와 비슷하게 변화시킨다네. 원래 기사들 못지않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유연해지도록 말이야. 하지만 백기사가 뉴런들 사이의 공간을 특정 전달물질로 그냥 채우는 데 반해 이 '회색 기사'들은 새롭고 효율적인 시냅스의 형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네. 게다가 제어는 식품첨가물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분비하는 분자들로 이뤄져 서로가 서로를 제어하는 식으로." 

-"기존의 뉴런들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한다고? 그럼 기존의 뇌 구조는... 녹아버리지 않아? 당신은 사람들의 뇌를 곤죽으로 만드는 신종 마더를 개발했고, 그걸 돈을 받고 팔 작정이란 말이야?" 
"곤죽이 아냐. 모든 과정이 극히 긴밀한 피드백 고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네. 회색 기사에 의해 개조된 뉴런들의 발화는 자체 분비하는 신경 전달 분자들의 전달 범위에 영향을 끼치고, 해당 분자들이 근처에 있는 시냅스들의 재연결을 제어하는 식이지. 필수적인 조절 중추나 운동 뉴런은 물론 건드리지 않아. 그리고 회색 기사들의 위치를 바꾸려면 강력한 신호가 필요하다네. 일시적인 변덕 따위에는 반응하지 않아. 어떤 뇌 구조든 간에 유의미한 효과를 얻으려면 적어도 1. 2 시간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기다릴 필요가 있어. 실질적으로는 일반 뉴런들이 학습 행동이나 기억을 코딩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단지 더 빠르고, 융통성이 있는 데다가... 훨씬 더 광범위할 뿐이라네. 인간의 뇌에는 10만 년 전부터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내 바이러스를 쓸 경우 반나절이면 리모델링이 가능하다네." 

 

-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정신 내부를 돌아다닌다는 건 미로 안을 빙빙 돌며 헤매는 행위나 다름없다네.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란 결국 그런 거야. 비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감옥. 코카인이나 헤로인이나 알코올 같은 조잡한 약물은 결국 몇몇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만든 것에 불과해. 아니면 LSD처럼 미로의 벽을 거울로 코팅했거나. 백기사가 한 일이라고는 같은 효과를 다른 방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고. 하지만 회색 기사는 미로 전체의 모양을 마음대로 다시 바꿀 수 있게 한다네. 우리를 쪼그라든 감정의 레퍼토리 따위에 감금하는 대신, 완전무결한 자율권을 부여한다고나 할까.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지."  

 

- "난 30년 동안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로 살아왔다네. 스스로 변화하기에는 너무 의지가 약했지만, 단 한시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잊은 적 없었어. 혹시 내가 의지박약이고 속부터 푹 썩었다는 사실을 체념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나마 덜 비열하고, 덜 위선적인 존재가 될지 곧잘 고민하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은 그러지 않았어." 

"그럼 지금은 컴퓨터 파일을 삭제한 것처럼 옛날 인격을 지웠다고 믿는 거야? 그럼 지금 당신은 뭐가 된 거지? 성인? 천사?"
"아니. 나는 단지 내가 되고 싶은 바로 그 인물이 됐을 뿐일세. 회색 기사를 쓸 경우 그 이외의 선택은 없어."

 

- <바람에 날리는 겨>

 

 

- 난해하며 순수하게 추상적이어야 할 <결점>이 피와 흙, 중역 회의실과 암살자, 권력과 실용주의가 소용돌이치는 세속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만고 불변하다고 굳게 믿어왔던 진리 역시 유사에 빨려 들어가서 소실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 모든 것은 농담에서 시작되었다. 논쟁을 위한 논쟁, 앨리슨 특유의,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단적인 논리.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다. 

"수학의 정리는 물리적인 계획에 의해 테스트되었을 때만, 또 그 계의 행동이 해당 정리가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참이 될 수 있어." 

 

- 나는 말했다. 

"물리적인 계들은 수학을 창조하거나 하진 않아. 그 무엇도 수학을 창조할 수는 없어. 수학은 만고 불변하니까 말이야. 설령 전 우주에 단 한 개의 전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수론 전체는 지금과 완전히 동일할걸." 
앨리슨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야 그렇겠지. 단 한 개의 전자, 거기 더해서 그걸 집어넣을 시공이 성립하려면, 양자역학 하고 일반 상대성이론 전부가 필요해지니까 말이야. 거기 수반되는 수학적 인프라는 말할 나위도 없고, 양자론적 진공에 떠 있는 단 한 개의 입자를 설명하려면 군론群論의 주요 결론의 반은 동원해야겠고, 그뿐 아니라 함수 해석이나 미분 기하학도..." 
"알았어, 알았다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겠어.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빅뱅 직후의 1 피코초 내에 일어난 사건들이, 빅 크런치까지 이어지는 물리적 계들이 필요로 하는 수학적 진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구축했다'는 얘기가 되어버려. 그럴 경우에는 일단 만물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학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 아냐? 그런 식으로 이론들을 모두 통합하면 그만이니까, 그 부분만 가능해지면 모든 설명은 이미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끝난 게 아냐. 만물 이론을 특정한 계에 응용하려면 여전히 그 계를 다루기 위한 수학 전체가 필요해지고, 그런 수학은 만물 이론 자체가 요구하는 수학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포함할 수 있어. 생각해 보라고. 빅뱅 후 150억 년이 흐른 지금, 느닷없이 등장한 누군가에 의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따위가 증명될 수도 있다는 얘기야." 

 

- "생각해 보라고. 설령 수학이 이 우주의 어떤 물체와도 관련이 없을 정도로 '순수'하더라도, 일단 네가 어떤 정리의 증명에 착수한 순간부터 그 수학과 너라는 실제 인물 사이에는 관계성이 생겨나게 돼. 그 정리를 입증하기 위해 넌 모종의 물리적 과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게 컴퓨터든, 펜 하고 종이든, 아니면 그냥 눈을 감고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을 뒤섞는 일이든 간에 말이야. 물리적 사건에 좌우되지 않는 수학 증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 사건이 네 뇌 안에서 일어났든 밖에서 일어났든 간에, 그 증명이 덜 현실적이 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거기까진 알겠어." 나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고 앤드루 와일스의 뇌는, 와일스의 육체와 계산할 때 썼던 메모지는, 페르마의 정리가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에 의해 그 행동이 결정되는 최초의 물리적 계를 구성했던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인간의 행위가 무슨 특별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만약 150억 년 전에 한 무리의 쿼크 물질이 똑같은 일을 무계획적으로 수행했다고 한다면, 그러니까 순전히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의해 우연히 그 가설을 검토했다고 한다면, 그 쿼크들은 와일스보다 한참 전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겠지. 우리가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 앨리슨은 마침내 놀리는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브루노,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수학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마당에, 내가 어떻게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어? 내가 뭐라고 대답하든 간에 그건 참도 거짓도 될 수 없어. 누군가가 실제로 그걸 실험해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 나는 내 노트패드에서 다른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써서 같은 계산을 해보았다. 결과는 처음 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나는 노트패드의 스크린을 응시하며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두 대의 컴퓨터가 어떻게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내 보려고 했다. 컴퓨터공학 교과서에 잘못 인쇄되어 있던 알고리즘 하나가 몇백에서 몇천 개에 달하는 불량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과거 실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금 실행한 계산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이었다. 

-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두 가지였다. 종래의 수론에는 본질적인 결함이 있고, 자연수에 관한 플라톤적인 이데아는 궁극적으로 모순일 가능성. 또는 앨리슨이 옳았고, 몇십 억 년 전에 '계산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 일부를 일종의 대체 수론이 지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다. 

 

- 나는 크게 동요하기는 했지만, 반사적으로 이 결과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려고 했다.

"이 계산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관측 가능한 우주의 용적을 재는 세제곱 플랑크 길이 단위보다 더 크잖아. 만약 인더스트리얼 알제브라가 이걸 자기들의 외환 거래 따위에 악용할 작정이라면, 규모 자체를 좀 오판한 게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계산에 쓰인 숫자들이 설령 초천문학적으로 크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오작동한 것은 노트패드의 1024비트에 불과한 이진법 표시이기 때문이다. 수학의 모든 진실은 그것 말고도 무수히 많은 형태로 부호화되고, 반영된다. 만약 언뜻 가장 거창한 우주론에조차도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숫자들에 관한 논쟁처럼 보이는, 이런 식의 역설이 5그램짜리 실리콘 칩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지구상에서 이와 동일한 결함에 의해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는 시스템들의 수는 적어도 몇십억 개에 달할 것이다.  

- 이론상 우리가 찾아낸 것은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수학 체계들 사이의 경계 일부였으며, 이 두 체계는 각자의 영역에서는 물리적으로 참이었다. 일련의 연산들은 <결점>의 어느 한편의 영역 내부 -그것이 우리가 아는 기존의 수론이 적용되는 <이쪽 near side>이든, 아니면 대체 수론이 지배하는 <저쪽 far side>이든 간에- 에 온전히 머물러있는 한은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연산 과정에서 이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부조리가 발생하며, 그 결과 S에서 비S가 도출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대한 수의 일련의 추론들 -그중 어떤 것들은 자기모순적이고, 어떤 것들은 자기모순적이지 않다- 을 검토한다면, 모든 명제를 빠짐없이 <이쪽>이나 <저쪽>으로 할당함으로써 문제의 <결점>을 에워싼 영역을 정확하게 매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초기 우주에서 어떤 물리적 계가 수학을 테스트해 보고 있었어. 그런데 그 수학은 고립되어 있었고 기존의 모든 결과로부터 차단된 상태였지. 그래서 그 계는 그 시험의 결과를 무작위적으로 정할 수 있었던 거야. <결점>은 바로 그렇게 해서 발생했어. 하지만 현재 우리 쪽 영역의 수학은 모두 검토되었고, 모든 공백은 빠짐없이 채워졌어. 그런 상황에서 우리 쪽, 즉 <이쪽>의 물리적 계가 어떤 수학 정리定理를 검토한다고 상정해 봐. 그 정리는 과거에 이미 몇십억 번은 검토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논리적으로 인접한 명제들 역시 이미 결정되어 있어. 따라서 올바른 결과는 단 한 번의 증명 단계만으로도 나올 수 있어." 
"바꿔 말해서... 인접한 명제들에 의한 또래 압력이 존재한다는 거야? 모순 따위는 허용되지 않고, 무조건 우리를 따르라? 만약 x-1=y-1이고 또 x+1=y+1이면, x=y라는 선택지밖에는 남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결과를 지지해 주는 명제가 '인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거야. 진리는 국소적으로 결정 돼. 그리고 <저쪽> 깊숙한 곳에서도 역시 똑같은 일이 일어나. 거긴 대체 수학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고, 모든 검토는 서로를 강화하는 이미 확립된 정리들과, 우리에겐 비표준적이지만 그쪽에서는 '올바른' 결과에 둘러싸인 채로 이루어지는 거야." 

 

- "따라서 경계선상의 진리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고정되어 있지 않아. 두 영역 모두 전진하거나 후퇴할 수 있고. 모든 건 공리들이 검토되는 순서에 달려 있어. 만약 확실하게 <이쪽>에 속한 공리가 먼저 검토된다면, 그건 그보다는 취약한 인접 공리에도 힘을 보탤 수 있고, 결국 두 공리 모두 <이쪽>에 머무는 것으로 확정되는 식이지."

그녀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에 띄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순서가 역전된다면, 취약한 인접 공리는 반드시 <저쪽> 공리에 함락당해." 

 

- 루미너스는 글자 그대로 빛으로 이루어진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루미너스는 폭 5미터의 정육면체 모양의 진공실이 거대한 3열의 고출력 레이저에 의해 생성된 복잡한 정상파로 채워질 때 출현한다. 그런 상태의 진공실에 단일 파장의 전자빔을 쏘아 넣을 경우, 정밀하게 절삭해서 만든 고체 회절격자가 광선을 회절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질서 정연한(그리고 충분히 강력한) 빛의 배열은 물질의 빔을 회절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자들은 빛의 정육면체의 층에서 층으로 전송되면서 각 단계마다 재결합과 간섭을 되풀이하고, 그럴 때마다 생겨나는 위상과 강도의 변화 하나하나가 할당받은 계산을 수행한다. 게다가 루미너스는 시스템 전체를 나노초 단위로 재구성해서 당면한 계산의 수행에 최적화된 복잡하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만들어 낸다. 어떤 프로그램을 돌리든 간에, 레이저 배열들을 제어하는 보조 슈퍼컴퓨터들은 해당 프로그램의 특정 단계를 수행할 수 있는 완벽한 빛의 컴퓨터를 설계하고, 순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 그는 사려 깊은 어조로 말했다.

"만약 수를 셀 때 쓰는 우리의 산법이 이런 큰 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수학이라는 이데아 자체가 정말로 결함을 가지고 있고, 유동적이라는 뜻일까? 그게 아니면, 물질의 행동은 언제나 이데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봐야 할까?" 

"만약 모든 부류의 물리적 객체들의 행동이, 그것이 바위든 전자든 주판알이든 간에 예외 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데아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런 식의 행동을 야기했거나 규정한 것이 수학이 아니라면 뭐겠습니까?" 
위언은 곤혹스러운 듯이 미소 지었다.

"앨리슨은 자네가 플라톤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네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좌절한 플라톤주의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현실의 물체들이 그런 진리를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표준적인 정수론은 이런 명제들 앞에서도 여전히 참이라는 식의 관념적인 주장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린 그걸 상상할 수는 있잖나. 단지 물리적으로 실증하지 못할 뿐이지, 추상 개념에 관해 고찰할 수는 있다는 뜻일세. 예를 들어 초한수론을 생각해 보게. 그 누구도 칸토어의 무한 집합의 성질을 물리적으로 테스트할 수는 없어, 안 그런가? 우린 단지 멀찍이 떨어져서 그것에 관해 논할 수 있을 뿐이야." 

 

- 나는 내가 직접 아라비아 숫자를 종이에 써가며 계산할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멀찍이 떨어져서 논할'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앨리슨이 얘기한 '국소적 진실'의 개념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더 대담한 이론은 길이 100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딱딱한 철골을 머리 위에서 휘두른다면 철골의 반대편 끄트머리는 빛의 속도를 넘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식의 만화적인 '물리학'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을 불식할 수가 없었다. 

 

- 워크스테이션의 화면에 이미지가 펼쳐졌다. 처음에는 눈에 익은 <결점>의 맵이었지만, 루미너스는 이미 그것을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었다. 경계 바깥쪽에 펼쳐진 여백에서는 수십억 개의 추론 순환 고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전제를 입증함으로써 단 하나의 일관적인 수학이 지배하는 영역을 형성하는 추론들이 있는가 하면, 여백을 가로지르다가 자기모순에 빠져들어 반대편에 합류하는 추론들도 있었다. 나는 이런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연역 논리들을 머릿속에서 따라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려고 했다. 딱히 난해한 개념이 개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제들의 규모가 워낙 엄청난 탓에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만약 내 머리로도 따라갈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모순들로 인해 머리가 돌아서 헛소리를 지껄이게 될까? 아니면 모든 증명 단계를 완벽하게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거기서 도출된 결론을 피할 수 없는 자명한 결과로 인식하게 될까? 

- 앨리슨은 불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저건 우리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진리였을까? 아니면 방금 우리가 저걸 진리로 만든 걸까?"

<이쪽> 수학은 <저쪽> 수학을 100억 년 이상 전부터 줄곧 포위하고 있던 것일까? 혹은 루미너스는 방금 신천지를 개척했고, 물리적 계에 의해 단 한 번도 검토된 적이 없었던 영역 내부로 이쪽>의 수학을 적극 확장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을 알 방법은 없다. 우리가 설계한 소프트웨어는 전선戰線을 따라 매핑을 진행하면서 소속 미정의 명제들과 조우하는 즉시 <이쪽>으로 끌어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 우리는 <저쪽>이 쪼그라드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은 외딴섬을 불도저로 밀어버린다는 비유처럼 무지막지해 보이지는 않았다. 기묘하게 아름다운 크리스털을 산으로 녹이는 광경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당면한 위험이 눈앞에서 점점 줄어드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희미한 가책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의 수학은 이 기묘한 모순과 150억 년 동안이나 공존해 왔다. 그런데도 발견 후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것을 파괴하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궁지로 우리들 자신을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수치심이 몰려왔다. 
위언은 꼼짝도 않고 흘린 듯이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물리 법칙들을 위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강화하고 있는 걸까?"
앨리슨이 말했다.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우린 단지 그 법칙들이 의미하는 것을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
위언은 나직하게 웃었다. 

"방금 '단지'라고 했나. 어떤 미지의 복잡한 계들에 대해서, 우린 고차 레벨에서 그것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규칙들을 다시 쓰고 있어. 그게 인간의 뇌까지 포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 돌연히 어린 시절 이래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명석함의 감각이 나를 엄습했다. 마치 마음속에서 난생처음으로 숫자라는 개념 전체를 제대로 파악했던 순간을 다시 체험한 듯한 기분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내포한 모든 가능성과 그것이 시사하는 모든 파급 효과들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성인의 이해력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계시였지만, 여기에 신비주의적인 모호함이라든지 마약적인 도취 상태, 유사 성충동 따위의 불순물은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았다. 가장 단순한 개념들로 이루어진 깔끔한 논리 속에서, 나는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했고...
...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 거짓이었고, 모두 불가능했다.

- 그들은 종래의 산법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산법을 내 머릿속으로 처넣었을 뿐이었다. 예전 산법 위에. 
누구든 간에 루미너스를 통한 우리의 공격에 저항했던 주체는 가시를 아래로 뻗쳐 우리의 뇌 안의 메타수학, 산법에 관한 우리들 자신의 논증의 기반이 되는 산법을 고쳐 쓴 것이다. 우리가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흘끗 보고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 <루미너스> 

 

 

- 로라는 반항적인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내가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보이기라도 했다는 투였다. 실은 그런 객쩍은 감정은 아직 느낄 겨를이 없었고, 마침내 그런 감정이 솟구쳤을 때도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라의 성격으로 미뤄볼 때 씻으면 지워지는 가짜 문신일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피부에 붙이는 방식의 효소 패치를 쓴다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쉽게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염색 패치를 붙여 저렇게 피부를 물들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고로 나는 반항기의 자식 앞에서 올바르게 행동한 것이 맞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 정말 멋지구나!' 하는 식의 싸구려 반反심리학을 동원하지도 않았고, 개학한 뒤에도 그걸 지우지 않는다면 교장 선생한테 불리어 가서 잔소리를 듣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솔직한 불평조차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로라가 말했다. 
"엄만 아이작 뉴턴이 중력이론보다 연금술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걸 알아?"
"응. 그런데 뉴턴이 숫총각인 채로 죽은 건 아니? 역할 모델이라는 건 정말 근사한 존재야. 안 그래?"
앨릭스는 경고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곁눈질했지만, 로라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로라는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과학의 역사에서는 공식적인 설명에서 검열돼 삭제된 비밀이 산더미처럼 많아. 누구라도 원본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최근이 돼서야 백일하에 드러난 지식이." 

딸의 이런 발언에 대해 어떻게 하면 탄식하지 않고 성실하게 답변할 수 있을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나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는 너도 그런 지식 대부분은 과거에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런 지식은 실은 그리 흥미로운 지식이 아니라서 묻혔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말이야. 물론 과학자들이 탐구하려다가 막다른 골목에 빠진 분야 중에 실로 매력적인 것들이 포함돼 있다는 건 인정해야겠지만." 

 

- "응, 그 밴드는 나도 알아. 정확한 이름은 <뉴 헤르메틱스>인데, 게네들의 음악은 단순한 아이돌 음악이 아니라 대규모 컬트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 

 

- 시내를 향해 가던 도중에 도로 좌우에 몇십 곳에 달하는 광활한 담배밭들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건강에 유익한 작물로 다시 태어난 담배는 모든 경작지를 잠식하고 있었고, 그런 현상은 이런 교외에서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는 역설적이라고 하기에도 뭐할 정도로 진부한 현상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물론 기호품으로서의 니코틴은 압생트가 그랬던 것처럼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담배 자체는 그 어떤 시절보다도 많이 재배되고 있었다. 새로운 유전 물질을 도입하고 싶을 때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는 지극히 편리하고 효율적인 운반체가 돼주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 담배의 잎은 약제나 백신의 항원抗原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가격은 유전자 조작이 되지 않은 그 조상들의 수요가 정점에 달했던 시절의 무려 20배에 육박한다. 

- 클레이턴 부인의 고뇌는 부분적으로는 내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환자 가족을 위한 전문 카운슬링을 제공할 것이고 그것은 내 임무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내가 같은 경험을 할 것은 확실했다. 따라서 그런 일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며칠 지나지도 않아 피폐해질 것이 뻔했다. 

 

- <실버파이어>는 암보다 희귀했고, 심장병보다 희귀했고,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보다 희귀했다. 도시에 따라서는 총상보다 희귀했다. 그러나 그것을 예방할 방법은 없었다. 완전한 물리적 고립 상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지금 다이앤 클레이턴은 18살의 아들을 여름방학 동안 집에 가둬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자책하고 있다. 거듭 이렇게 자문하면서. 난 뭘 잘못했던 걸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난 무슨 이유에서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 

- 나는 그녀를 방구석으로 데려가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설득했어야 했다.

"이건 당신 잘못이 아녜요!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걸 예방할 수는 없었다고요!" 
또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고통을 겪죠. 아드님의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서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일에 의미 따위는 없으니까요. 아드님이 감염된 건 단지 그때 분자들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 스프링어는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중년의 친척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는 사내였고, 맥길대학의 이론학 부교수라고 했다. 여기서 눈치도 없이 '무슨 이론?'이라고 되묻는 사람은 오직 구제할 길이 없는 환원주의자뿐인 듯하다. 그의 전공 분야는 '컴퓨터와 영성'이라고 묘사됐다. 이런 와중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인터뷰 진행자는 스프링어에게 <실버파이어>에 관해 질문했던 것이다.  

- 인터뷰 진행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실버파이어>에 희생된 사람들은 에이즈가 불러일으켰던 사회적인 낙인과 히스테리 반응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계시는 건가요?" 
스프링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 시절 이래 문화 분석 분야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를테면, 버로스의 <붉은 밤의 도시>들이 출간 당시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좀 더 완전하게 침투했더라면, 에이즈라는 역병의 전개 양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가상시간학 분야의 중요한 화두이고, 제가 가르치는 박사과정 학생 한 명도 그걸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의 문화 형태들 덕에 우리가 <실버파이어>에 대해 충분히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글로벌한 테크노 아나키즘의 음성이라든지, 트레이딩 카드를 몸에 문신하는 바디 코믹스의 유행, 데스크톱용의 저렴한 달라이 라마 소프트웨어의 등장 따위를 감안하면... <실버파이어>가 마침내 자기 시대를 만난 리보핵산의 배열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실버파이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린 합성을 해서라도 그걸 만들어 냈을 겁니다!" 

(리뷰자 주 : '버로스'가 등장한 순간부터 우리는 저자가 윌리엄 S. 버로스를 어떤 의미로 차용해왔는지를 바로 눈치챌 수 있다. 버로스는 '창자로 줄넘기를 하는' 글을 쓰니까. 물론 매력적이게.)

- 마사는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마치 그때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는 듯이. 당신은 <실버파이어>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이 아이는 어떻게 행동했으면 그런 저주를 피할 수 있었는지 내가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가 제대로 거행하지 않은 마법 의식이 무엇이고, 자기가 어떤 제물을 바치지 않아서 이렇게 됐는지를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이런 반응을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여전히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비통함 앞에서 지식은 박막薄膜처럼 떨어져 나간다. 인생은 도덕극이 아냐. 병은 병에 불과하고, 그것에 숨겨진 의미 따위는 없단다. 우리는 신의 분노를 달래는 데 실패한 것도 아니고, 4대 정령과 거래하려다가 실패한 것도 아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어른이라면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런 지식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가 어떤 수준에서는 여전히 가장 힘들게 터득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인간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마사는 양팔로 자기 몸을 감싸고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아파요."

- "그런데 롤리에서 여기로 오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뭐였어요? 설마 롤리의 범죄율이 국내 도시 중 최고였다든지 뭐 그런 건 아닐 테고.”

이 부부가 높은 집값 탓에 여기까지 밀려왔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다. 

샐리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영적인 이유였어요, 클레어."

나는 눈을 깜짝였다.

- 올리버는 폭소를 터뜨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수상쩍은 곳에 온 건 아니니까!"

그는 자기 아내를 보며 말했다.

"방금 클레어 얼굴을 봤어? 혹시 모르몬교도나 침례교도들의 은신처에라도 온 게 아닌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어!"
샐리는 미안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영적이라는 건 물론 아주 넓은 의미예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도덕적 차원에 대한 감수성을 쇄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느낀 것에 가까워요."

- "저들을 우리를 위해서 대지를 치유해 주고 있어! 속죄하고 있는 거야! <눈물의 길>을 정화해 주고 있어!" 
<눈물의 길>이라고?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퍼뜩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물의 길>이란 현재는 조지아주 일부에 살던 체로키 원주민들이 1830년대에 미국 정부에 의해 머나먼 오클라호마주까지 강제로 이주당한 사건을 의미한다. 가혹한 강행군 중에 몇천 명이 사망했고, 일부는 도망쳐서 애팔래치아 산맥에 숨었다. 헤로도토스가 강제 이주의 실제 경로에서 몇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경우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은빛 존재들이 두 개의 댄스 플로어를 가로지르면서, 마치 무슨 축도를 하는 것처럼 양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실버파이어>가 그것하고 무슨 관계가...?" 
"환자들은 냉동 상태로 있으니까, 그들의 정신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서 <기쁨의 길>을 자유롭게 걸을 수가 있어! 그걸 몰랐어? <실버파이어>는 바로 그걸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모든 걸 재생시키기 위해서! 대지에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속죄하기 위해서!"

올리버는 절대적인 성실함이 담긴 얼굴로 나를 보며 활짝 웃었고, 사방을 향해 순수한 선의를 발산했다. 나는 아연실색하며 그를 응시했다. 이 사내가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했지만, 방금 그가 토해낸 말은 20년 전 에이즈야말로 자신의 영적 신념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라디오 전도사의 미친 헛소리를 뉴에이지풍으로 리믹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모두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 역사, 문학, 예술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방대한 정보의 보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힘들게 얻은 진실을 자식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도덕은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며, 의미 역시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고, 우리의 두개골 밖에 존재하는 우주는 우리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는 진실을.  

- 아마 서양에서는 몇천 년 동안이나 혹세무민의 거대한 보루로 군림해 왔던 오래된 교조적 종교들에 대해 치명타를 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승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영성 spirituality이라는 이름의 감미로운 독이 기성 종교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실버파이어>

 

 

- "나는 당신이 원했던 일을 한 걸까? 이제 만족했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을 갈가리 찢어 파편들이 하늘거리며 지면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뒀다. 

 

- <체르노빌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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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새로운 육체를 잉태한 대리모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태어난 클론 아기를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클론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 대리모는 자신의 '정상적'인 임신을 나만큼이나 괴로워했을까. 타인의 DNA로부터 만들어진 아기 모양의 물체 -뇌 손상을 입은 탓에 사고 따위는 아예 불가능한- 를 잉태하는 행위와, 혼수상태에 빠진 연인의 뇌를 잉태하는 행위 중 어느 쪽이 더 쉬웠을까? 배 속의 존재에 대해 부적절한 사랑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느 쪽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 처음에는 마음속의 세세한 기억들도 언젠가는 흐릿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크리스는 단지 몸이 아팠을 뿐이고, 이제는 완전히 회복해서 내 곁에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몇 달이 흐르면서 일이 결코 그런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의사들이 내 자궁에서 뇌를 꺼냈을 때는 적어도 안도감을 느꼈어야 마땅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감동도 없었고 희미한 불신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시련이 너무나도 오래 계속된 탓에 이토록 쉽게 끝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트라우마도 없었고, 거창한 의식도 없었다. 나는 긴 산통 끝에 마침내 건강한 분홍색 뇌를 출산하고 기뻐한다는 초현실적인 꿈을 되풀이해서 꿨다. 설령 내가 그걸 원했다고 해도(분만을 인공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뇌는 안전하게 질을 통과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한 기관이었다. 결국 ‘제왕절개’를 써야 했다는 사실로 인해 나의 생물학적 기대감은 또 타격을 받았다. 

 

- 그가 집에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는 사랑을 나눴다. 나는 섹스는 당장은 어려울 수 있고,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한 뒤에야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그보다 훨씬 더 엄혹한 일들을 겪은 마당에, 나는 도대체 왜 그런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걸까. 도대체 뭘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까. 가장 중요한 순간, 엉뚱한 착각에 사로잡힌 근친상간 금기의 가련한 화신이, 19세기의 사이비 여성 혐오자 망령의 다그침에 못 이겨 침실 창문을 깨고 난입할 것을 기대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단순한 잠재의식에서 내분비계를 망라하는 모든 레벨에서 크리스가 나의 아들이라는 망상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2년 동안 태반 호르몬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호르몬이 촉발하는 행동 프로그램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그것을 완전히 무효화할 수 있는 정신력과 통찰력을 획득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 뇌를 마치 자기 아이인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거위처럼 멍청하다면 알에서 깨어나서 처음 본 동물을 자기 어머니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온정신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성은 본능에 대해 승리를 거뒀고, 나는 부적절한 사랑을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속의 한 형태를 해체해 본 나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일이 너무나도 쉽다고 느꼈다. 겉모습만 다를 뿐 동일한 종류의 속박을 간파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 내가 크리스에게 느꼈던 특별한 감정은 이제는 모두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생리 현상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여전히 정을 느끼고 욕망도 느끼지만, 예전에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그것이 없었다면, 크리스는 지금 살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아, 신호는 계속 전달되고 있다. 나의 뇌의 일부는 여전히 적절한 사랑을 느끼라는 신호를 열심히 보내오고 있지만, 현재의 나에게 그런 메시지들은 최악의 최루성 신파 영화의 약삭빠른 수법 못지않게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불신의 유예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랑을 시늉을 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타성 덕에 쉽게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일이 잘 돌아가는 한, 크리스와 함께 있는 것이 좋고 섹스가 만족스러운 한, 굳이 평지풍파를 일으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몇십 년 함께 살지도 모르고, 나는 내일이 집을 떠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 물론 크리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지금도 기쁘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를 살려낸 여자의 용기와 이타심을 존경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라면 결코 그런 일을 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함께 있을 때면 이따금 그의 눈에서 내가 잃어버린 예의 구제할 길이 없는 열정을 목격하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고, 이렇게 곱씹는다. 그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인간성을 잃었고, 그 탓에 불구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 기분이 이렇게 끔찍한 것도 당연하다.

 

-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하게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관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진실은 진실 특유의 차가운 열정을 내포하고 있었고, 특유의 조작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라든지 '통찰력' 같은 단어로 나를 공략하며, 모든 기만의 종말이 왔음을 설파한다. 그 진실은 날이 갈수록 나의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 힘은 워낙 강해서, 내가 후회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 <적절한 사랑>


- 한쪽 귓불에 쪼그라든 사람 엄지손가락을 매단 키가 큰 대머리 사내가 술집에서 뛰쳐나오다가 나와 부딪쳤다. 서로 몸을 떼어내자마자 사내는 나를 쏘아보며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신중하게 대응했다. 군중 속에는 사내의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었고, 그런 종류의 문제에 휘말려 낭비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나는 말대꾸 따위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았지만, 오만하거나 경멸적인 느낌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범하면서도 자신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런 세심한 대응은 효과가 있었다. 사내는 30초 동안이나 마음껏 나를 매도했지만, 반격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했는지 히죽거리며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쫓아오더니 내 곁에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있잖아, 방금 그 작자를 다루는 걸 봤는데 맘에 들더군. 세심하고 능숙한 데다가 실용적이었어. 100점 만점이야."  

 

- 그러나 나 자신은 가급적 이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여기서 선호라는 단어에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건전한 대응법은, 나 자신을 무수하게 많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간들 중 한 명으로 간주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지름길들을 무시하며, 정해진 절차를 충실하게 따르고, 나의 존재를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일이다. 도망치거나, 실패하거나 죽는 나의 분신들이 정 마음에 걸린다면 간단한 해결법이 하나 있다. 그들과 연을 끊으면 된다. 나의 정체성을, 즉 내가 누구인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수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경계선을 긋는 주체는 나다. 살아남아 성공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 밖의 분신들은 타인이다. 

- 전망하기 좋은 지점에 도달한 나는 세 번째 계측을 실시했다. 거리의 광경은 30분 길이의 녹화 동영상을 5분으로 줄여 편집한 듯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단지 화면 전체가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커플들은 예외로 치더라도 각기 다른 개인들이 홀연히 사라지거나 느닷없이 출현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툭툭 튀는 점프 컷을 방불케 했다. 행인들 모두가 적든 많든 함께 전이하고 있었지만, 특정 순간에 각자가 점유하는 물리적인 위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복잡했고, 결과적으로는 각자가 무작위적으로 전이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 한 걸음 더 나아간 나는 불현듯 찾아온 따뜻한 느낌에 놀라 멈춰 섰다. 내 머리카락과 피부의 표피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땀 같은 조그만 핏방울로 뒤덮여 있었다. 그제야 <꿈꾸는 자>의 얼굴에 떠오른 얼어붙은 미소를 본다. 
나는 생각한다. 무한한 세계 집합들 중 얼마나 많은 곳에서 나는 한 걸음을 더 디디게 될까? 그리고 얼마나 무수히 많은 버전의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뒤로 돌아 이 방에서 나갈까? 어차피 내가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살고,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치욕에서 구해내려고 하려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다. 

 

- <무한한 암살자>



- 23살에 대프니와 결혼했을 때 에바는 이미 먼 과거의 추억에 불과했고, 영혼의 교감 운운하는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대프니는 31살이었고, 박사과정을 밟던 나를 고용해 준 투자 은행의 중역이었다. 모두가 이 결혼은 내 출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대프니가 이 결혼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마 정말로 나를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성생활은 쾌적했고, 우울해질 때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통을 겪는 짐승을 위로해 주는 것처럼. 

 - 대프니는 아직 <전환>하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나 다음 달에 하겠다는 식으로 연기를 거듭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가 내놓는 핑계는 점점 더 터무니없는 것으로 변해갔다. 나는 마치 그런 고민 따위는 무관하다는 얼굴을 하고 그런 그녀를 놀리곤 했다. 

 

- "두려워서 그래."

어느 날 밤 그녀는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전환>을 하면 지금 있는 '나'는 죽는 게 아닌가 해서... 그러면 그 뒤에 남는 건 로봇, 꼭두각시 인형, 물건이잖아? 난 죽고 싶지 않아."

이런 대화는 나를 당혹감에 빠트리지만, 나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 <내가 되는 법 배우기> 

 

 
- 나는 동이 트기 전에 기상해서 단 10분 만에 짐을 꾸렸다. 그러는 내내 앨릭스는 침대에서 단잠을 방해한 나에게 항의하려는 듯이 중얼중얼 잠꼬대하고 있었다. 짐을 다 싸고 나서야 출발할 때까지 하릴없이 3시간을 더 때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다시 침대로 파고들었다. 다시 깨어보니 앨릭스와 로라 모두 이미 일어나서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로라 반대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넌 이미 잠에서 깼으니까 억지로 눈을 뜨지 않아도 돼' 하는 식으로 사람을 교묘하게 안심시키는 종류의 꿈 말이다. 내가 이런 기분이 된 것은 14살이 된 딸의 얼굴과 양팔이 빨강, 초록, 파랑으로 오색영롱하게 반짝이는 연금술 기호와 황도 12궁의 상징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상현실을 마치 환각 체험처럼 다룬 저질 영화에서 특수촬영 소프트웨어를 써서 빚어낸 등장인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행복한 이유(허블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의 작품들은 실로 경탄스럽다.” - 테드 창(소설가) “장담컨대, 일단 펼쳐 들면 끝까지 놓지 못할 것이다.” - 김초엽(소설가) 동시대 SF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마스터피스 ‘작가들의 작가’ 그렉 이건의 한국판 특별 선집의 첫 책
저자
그렉 이건
출판
허블
출판일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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