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초엽 / 최인호
출판 : 마음산책
출간 : 2021.11.01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시키는 화풍의 삽화들이 매력적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무게감 있는 색감과 표현, 인물의 자세나 구름이 떠있는 커피잔 등이 좋았는데, 급히 찍었더니 사진은 그 색감을 다 담지 못해 아쉽다.
다만 표제작인 <행성어 서점>의 삽화에 있어서는, 나는 빨간 핏빛 슈트에 검고 각진 선글라스를 쓴 긴 머리의 여성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 당황했다. 새삼스럽지만 같은 글을 읽으면서도 각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게 마련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개인적으론 빨간 슈트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로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진 단편집이었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 수록된 단편들은 각각의 독립적인 단편들이지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나는 이렇게 하나의 세계 속의 서로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겹쳐가는 구성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쩐지 정말로 존재하는 세계의 일인 것처럼 느껴져서다.
개인의 차원, 개인의 시각을 잃지 않는 김초엽의 글들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번 김초엽의 단편들은 독자들이 무심코 등장인물들과의 사이에 위치시킨 벽의 경계를 더듬고 있다.
'이것은 과연 실존하는가?'
'내'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 순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디까지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까. 혹은 자신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선인장 끌어안기> : 고슴도치나 선인장으로 자주 표현되는 '적절한 거리'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단편.
접촉이 실재하는 고통으로 감각되는 이에게 사랑과 고통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그 고통이란 두려움과 어떻게 닮아 있는가.
그러나, 육체라는 벽에 갇혀 타인과 진정한 의미의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cyborg_positive> : 사이보그 '임에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이보그 '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이 취향에 따른 선택의 영역인지에 관해서는 자신하지 못한다. 선택의 결과로 감수해야 할 것들을, 과연 '아름다움'의 관점에서만 선택할 수 있을까. 인공물의 범위를 보형물이나 미용 성형으로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화자가 사고로 눈을 잃은 것, 그리고 아이보그를 삽입하기로 선택한 것은 사실 선택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당연하게 느껴지는 결정이다. 그렇게 약간의 다름을 가지게 된 이들에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당히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들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할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를 더듬는 일은 때로는 낮부끄러우면서도 때로는 매끈하다. 경계의 어느 편에 서느냐는 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 한 장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단편은, 실제로 본문을 읽기 전 찾아본 사진에서 내가 받았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더 음색에 입혀진 감각에 관련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었는데, 저자는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두 직업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와는 달리 똑같은 외모의 두 남자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주 달라보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공통점.
그것은 이 단편들을 읽어나가는 하나의 키이기도 했다.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 내가 감각하고 인지하는 세계와 당신이 감각하고 인지하는 세계는, 사실 전혀 같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완전히 동일한 '진실'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젖는다. 나는 이 단편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선인장 끌어안기>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성어 서점> : 공용어의 탄생과 수많은 언어들의 사멸은 언어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미래인 듯 하다.
보고 듣는 언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언어로 치환해주는 번역 기능을 이용해 더이상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사라진 세계. 그럼에도 화자는 교본을 만들 만큼 행성어에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 뇌파 교란을 이용해 번역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장치한 책들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할 정도로. 이제는 사어가 되어가는 행성어로 쓰여진데다 번역이 되지 않기에 누구도 '읽을 수 없는', 그렇기에 '이국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런데 왜 저 수트 입은 사람은 자꾸만 방문해 몇 권씩이나 책을 사가는 걸까? 이 책은 읽을 수 없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붉고 잘 빠진 수트의 상상에 사로잡혀버린 단편이었다.
<소망 채집가> : 소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상상의 영역에 남겨둘 때만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모순 속에, 그 소망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구현한 '화자'는 계속해서 변해간다.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의 표현태는 보는 이들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타나겠지.
'그래도 이제 가야 해. 알면서도 다들 너를 기다리니까'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 게 될 것이다.'
본문 중의 이 문장들에서 나는 곧 다가올 미래를 예감한다. 그리고 보다 강렬하게 현재를 살라는 메시지를 감각한다. 미래를 미래로 남겨둘 때 소망은 덧없는 꿈이 되어 바스라진다.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 개인적으로는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던 단편이었다.
아픔과 애절함조차 도취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잊는다. 얼마전 X 세대 감성이 재유행했던 현상을 MZ 세대의 시각으로 바라본 듯한, '내가 그리운 것은 그때의 감정이 아니라 그때의 나야' 같은 문장이 잘 어울리는 단편이었다.
그러나 복고는 그리움의 정서를 포함한다. 강렬한 그리움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낳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데... 잘 부르긴 하네.'
<포착되지 않는 풍경> : 디지털 시대에 필름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일은 일종의 희귀한 체험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최고급 망원렌즈 카메라들도 DSLR화 되고 있는 추세에, 2-30대들은 오히려 예전 똑딱이 필카의 감성을 찾고 있다고 한다.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그런 구형 사진기로도 기록할 수 없는, 전자기 입자들의 폭풍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에 대해 그리고 있다. 때때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기록법은 직접 그리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늪지의 소년> :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늪 속에 존재하는 집단적 존재와 소년과의 교류는 내게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먹는다'는 행위는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두 존재 모두에게 먹기 이전과 이후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분자와 입자를 교류하는 행위는 먹는 것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봄으로써, 같은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그를 이루던 분자가 나를 이루게 된다. 그런 존재의 뒤섞임.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인식은 개체로서의 인식과 어떤 차이를 갖는가?
'불행하지 않아. 지금은.'
어쩌면 이건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듣고 싶은 대사일지도 모른다.
<시몬을 떠나며> : 표정과 함께 미묘한 감정들을 잃어버린, 그래서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시몬인과 화자의 대화는 긍정도 부정도 하기 힘든 영역에 속해 있었다. 스스로도 공감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한편, 그럼에도 표정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실제 감정과는 다른 표정을 지었던 일, 거짓인 줄 알면서도 예의를 위해 특정 표정을 지었던 일, 그 사람의 말이 아닌 표정을 보고 그 속내를 읽었던 일, 감추고 싶었던 것들이 표정을 통해 드러나 버렸던 일...
고작 안면 근육의 움직임일 뿐인데 표정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담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면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에 대해 신경쓰는 에너지를 진심을 표현하는 데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보다 진실한 교류가 될 수도 있다는 가정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피곤에 지쳐 표정을 잃어버린 퇴근길, 거울 속을 보면 우리는 이미 벗을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다.
<우리 집 코코> :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정말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미워할 수 있을까?
이 논리는 흔히 외계 생물이나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힌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돈이나 권력, 또는 연인이라면 어떤가?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에 손쉽게 사로잡힌다.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거나 미처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대상이 존재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함으로써,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아주 간단히 관심사에서 삭제된다. 그 상태의 사람을 정상 상태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에 나 역시 비슷한 가치를 매길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혹은, 나에게 방해가 되느냐라거나.
외계 식물 코코가 정말 무해한 행복 전파자인지, 인간을 세뇌시키고 있는지,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키움으로써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희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 실재하는 '현상'이다.
저자가 이 단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식물을 키우는 행복? 최근 늘어가는 반려동물에 관한 애정과 관심? 사람을 숙주화하는 종이 있다면 과연 인간이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지에 관한 우려? 그도 아니면, 몇 년을 주기로 너무나도 빠르게 태어나고 사라지는 '유행들'을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하면 느낄 수 있는 이질감?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녹아들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소망 채집가>와도 연결해서 읽을 수 있는데, 이 단편이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 단편에 등장하는 코코의 포자들은 <늪지의 소년>과도 연결된다. 이런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단편들 간의 연결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의미들까지 모두 <행성어 서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에 희미하게라도 무언가가 뿌리 내리기를 바랐던 저자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오염 구역> : <늪지의 소년>에 등장했던 오웬이 다시 등장하며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러스트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버섯의 균사체가 자라나는 모습이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수록된 일러스트는 물론 아름다웠지만 그 기괴한 느낌이 잘 살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외계 포자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서, 특정 지역에서는 광증에 사로잡히지 않은 인구가 있다고 해 조사를 위해 파견된 '파견자'.
그들이 발견한 것을 존속시킬지, 제거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말단은 직선이 아님을 떠올리게 된다. 언제나 치열하게 꿈틀거리는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감각된다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
과연, 공존만이 생존의 길인가? 그렇다면 이 마을은, 공존인가 숙주화인가?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감성은 익숙한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어준다. 이미 지구 곳곳에 인간이 아닌 외계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가정은 묘한 안도감을 가져온다.
'왜 우리는 이렇게나 다른 걸까'라는 고민을 내려놓고, 거품 질감의 진한 크림 수프를 한 술 뜨고 싶다. 그 부드러운 넘김과 향이면 많은 것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구름 커피는, 솜사탕 커피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단 건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가장자리 너머> : <오염 구역>과 <우리 집 코코>, <늪지의 소년>이 모두 이어지는 단편이다. 이토록이나 다른 이들이, 이렇게 서로를 상처주고 사랑하면서 부대끼는 이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뤄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큐브를 벗어나, 가장자리라는 틀을 넘어선 시각으로 바라봐야만 보이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김초엽의 이번 단편집은 각각의 글들을 그 자체로도 너무나 즐겁게 읽었고, 그것들을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치환해 읽으며 다시금 즐거웠다. 그리고 다시 단편들간의 가늘게 이어진 선들을 따라 보다 큰 의미로 상상해보며, 그때마다 다르게 와닿는 이미지와 해석들에 놀라워하며 읽었다.
부디 다른 분들께도 <행성어 서점>이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즐거움을 선사했기를 바라며.
작가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내용이 '행성어'로 쓰여져 숨겨져 있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쯤은 그 진심까지도 읽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 처참하게 파손된 상태로 센터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로봇부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값도 비싼 코어 부위만 특별히 노려 파손한 것을 보면, 분명 기계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의 악취미일 거라고 센터 직원들은 혀를 찼다. 파히라의 집, 그러니까 '진공의 집'으로도 알려진 이곳을 살핀 이후에, 나는 파히라에게 기계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 집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파히라와 물체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목적을 최대한으로 달성하고 있었다. 파히라의 동선을 예측해서 동선상의 어떤 물체와도 충돌하지 않도록 움직이는 유리벽, 미세 공기층을 만들어내는 특수 소재 가구들, 철저한 비접촉 인식 기능을 보유한 가전제품들. 파히라가 집 안에서도 늘 타고 다니는 휠체어에는 커다란 부속장치가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파히라와 특수 소재 좌석 사이에 비접촉층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하나같이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낯선 물건들이었지만, 진공의 집에서 그것들은 마치 처음부터 한 세트로 설계된 설치미술작품처럼 어우러졌다. 끊임없이 드르륵 거리며 위치를 바꾸는 반투명 유리벽들의 움직임조차도 일종의 퍼포먼스 같았다. 그 색감, 배치, 구도에는 한때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이름을 날렸다는 파히라의 미감이 반영된 것이 분명했다.
- 처음에 파히라는 집이든 벽이든 다 부숴버리려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덕분에 나 역시 그 폭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파히라의 발길질을 노골적으로 피하자 그걸 눈치챈 것 같았다. 어느 날 파히라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봐. 네 주인을 그렇게 피해도 되는 거야?"
"당신이 저를 파괴하려고 하시니까요."
"넌 닿아도 아프지 않잖아. 부서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잖아."
"아프지는 않죠. 하지만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요."
"왜?"
"그렇게 만들어졌거든요."
파히라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일종의 고통인가? 내가 겪는 것과 비슷해?"
나는 파히라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전 로봇들은 비슷하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파히라가 느끼는 고통, 그리고 로봇들에게 입력된 두려움. 그것들은 구분되는 감각이다. 그리고 이전 로봇들은 바로 그 대답 때문에 파손되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 끝에 대답했다.
"제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당신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려고 하고, 저는 부서지는 것을 피하려고 하니까요. 엄밀한 의미에서는 다르지만, 기피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죠."
"그래? 기껏 로봇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벌벌 떨며 살다니. 정말 안타까운 삶이군."
파히라는 멸시 어린 어조로 말하더니, 그날 이후 나를 향한 폭력적인 행동을 그만두었다.
- “파히라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보육원을 후원했었죠. 그 병을 얻은 이후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다시 나타난 파히라에게, 우리는 소영이라는 아이를 소개해주었어요. 마침 파히라와 같은 접촉 증후군이 있는 여자아이가 보육원에 있었거든요. 파히라보다는 경증이어서 일상생활이 가능했지만, 또래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는 못했어요. 실수로 누군가와 살갗만 살짝 스쳐도 고통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다 보면, 아무리 선량한 아이여도 쉽게 다가갈 수는 없게 되지요. 하지만 소영은 보육원을 찾아오는 파히라와는 아주 쉽게 친해졌어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어야 안전한 지를 잘 알고 있었죠. 소영은 접촉 증후군을 갖고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은지를 파히라에게 차근차근 알려주었어요. 자신과 파히라가 마치 선인장 같다고 말해준 것도 소영이었어요. 쉽게 껴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멋진 모습을 보라고 하면서요."
- "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의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그 애에게서 떼어냈을 때 나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마비되어 있었고 시트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애는 이미 십 분 전 숨을 거둔 상태였지.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 파히라는 적막한 그의 집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짧은 침묵 끝에 파히라가 덧붙인다.
"이제는 아니야."
- <선인장 끌어안기>
- 리지의 눈은 아름다웠다. 사고로 눈을 잃기 전에도 그랬지만 아이보그를 장착한 이후에는 더욱 아름다웠다. 리지의 눈이 조명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사람들은 "네 눈에 빨려 드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길어야 십 분 정도의 짧은 영상에서도 아이보그는 시선을 끌었다. 브이로그를 업로드할 때마다 수백 개씩 댓글이 달렸다. "언니, 너무 예뻐요." "제 눈보다 예쁘신 것 같아요." "사이보그 눈이면 위축될 수도 있는데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그냥 일반인 눈보다 훨씬 나은데 꿀릴 거 하나 없음." "리지 님 힘내세요! 늘 밝게 웃는 모습 보고 싶어요."
- 기묘한 동정과 시혜적 태도가 섞인 댓글들을 볼 때면 리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대개의 댓글은 만족스러웠다. 아름답다, 예쁘다, 평범한 눈보다 사랑스럽다, 비율로 따지자면 그런 반응이 더 많았다. 유기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리지를 동경할 때마다 리지는 가슴 깊이 꿈틀거리는 어떤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자긍심일까?
- "저는 기계 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계 눈을 가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예요."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만만하게 내뱉었던 말은 어느새 리지를 상징하는 멘트가 되었다. 아이보그 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도 비슷하겠지.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
- <#cyborg_positive>
- "저, 두 분은 쌍둥이인가요?"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그 말에 서로를 마주 보았고, 모호한 미소를 지었고, 다시 우리를 보았다. 그 모든 동작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바람에 나는 마주한 거울 한 쌍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두 사람이 쌍둥이일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표정까지도 모두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멜론 장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쌍둥이냐고?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쌍둥이는 아니지만."
"그럼 아주 닮은 형제인가요?"
이번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대답했다.
"아니, 우리는 형제처럼 서로를 여기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더 긴밀하지. 연결된 동시에 분리되어 있고 말이야."
-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이걸 가져가거라. 손질이 좀 어렵겠지만, 반으로 잘 갈라서 씨를 긁어내면 된단다."
우리는 얼떨결에 멜론을 하나씩 건네받았다.
"우리 연주를 끝까지 들어줘서 기쁘구나."
나는 손에 쥔 커다란 멜론을 내려다보았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줄리가 끼어들었다.
"아저씨, 방금 '우리' 연주라고 했죠. 하지만 연주는 바이올린 아저씨 혼자 했잖아요."
줄리의 말에 멜론 장수는 주름진 입가를 슬쩍 끌어올렸다.
"저 녀석이 바이올린을 연주한 건 곧 내가 연주한 것과도 같거든."
"왜요?"
"우린 사실 쌍둥이도 형제도 아니란다. 동일한 존재의 다른 세계에 있는 판본이지."
-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내 말에 동시에 웃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그 웃음이 똑같아 보였다.
"나는 이쪽 세계에서 멜론을 팔고, 저 녀석은 그쪽 세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어느 세계에 있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지. 그리고 우리는 이 거리에서 종종 마주친단다. 또 다른 나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자주 마주치는 건 우리 둘이었어. 세상의 틈새로 가끔 끼어드는 불가피한 우연 같은 일이지."
- "자, 꼬마들아. 얼른 돌아가라. 이미 늦은 밤이니까."
-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 "당신은 아주 이상한 기계를 갖고 계시네요. 정말로 이상한 기계예요. 이 기계는 지금 제가 하는 말들을 글자로 바꾸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그 글자들을 보여주네요. 만약 당신이 제 말에 대답한다면, 이 기계는 그것 또한 글자들로 바꾸어서 저에게 보여주겠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오류 투성이예요. 이것 봐요, 방금도 제 말의 단어들을 잔뜩 빼먹었잖아요. 엉망진창이고,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아요. 이런 것이 왜 필요한가요? 여기에는 오직 당신과 나 두 사람만 있고, 우리는 둘 다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그냥 소리를 내어 대화를 하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 "우리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우주는 우리가 결코 인지하지 못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가득 차 있어. 그것들은 우리의 감각영역 밖에 있을 뿐 언제나 그곳에 실재하고 있어. 이제 이 기계의 글자들을 봐. 이 글자는 처음부터 글자였을까? 목소리가 전기신호로 전환되고, 전기신호가 빛으로 전환되어 이 기계에 글자들을 새겨 넣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을 읽지 못해. 그러나 우리는 전환된 빛을 보고, 전환된 소리를 듣고, 전환된 감각을 느끼면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정말로 듣고 본다고 생각하지. 만약 세상에 이미 그렇게 많은 전환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인간의 지극히 좁은 감각영역을 위해 작동한다면, 왜 어떤 종류의 전환만이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질까?"
- "하지만 당신과 나는 같은 현실을 공유하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요. 그렇잖아요? 당신은 지금 내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요? 내가 쓰는 말들을 볼 수 있지 않나요? 왜 기계들이 우리의 진실한 대화를 가로막도록 놔두어야 하지요?"
- "우리의 현실이 정말로 같을까? 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진실한 대화일까? 너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어떤 사람은 수요일에서 바닐라 냄새를 맡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결코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빨간색을 구분하지. 우리는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관점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자신의 수천 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동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진드기의 관점을 헤아려볼 수도 없겠지.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 "아, 그래요. 조금은 알겠어요. 지금 이곳에는 서로 다른 현실의 결이 있고, 그것은 당신과 나 각자의 것이군요. 그리고 이제 이 이상한 기계를 거쳐 또 하나의 현실의 결이 생겨났군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기계를 통해서 모두 각자의 현실의 결을 보겠군요. 그렇기에 이 기계는, 단지 수많은 현실의 결 중 하나일 뿐이겠군요. 그러니 이 기계가 유난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군요."
- "이제 저도 이 기계가 마음에 들어요."
-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 스무 살, 처음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은하계 여행자들에게 우리 행성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었다. 한때는 '행성어 교본'을 만들어 배포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게 헛된 꿈이라는 것을 안다. 10년이 지난 지금, 여행자들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을 책들을 사 간다. 그 책들은 영원히 펼쳐지지 않을 운명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눅눅한 아침에는 이런 서점 따위 망해라, 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런 서점 따위, 정말로 망해도 상관없다고.
- 그러니까, 일주일 전부터 서점을 찾아오기 시작한 여자가 수상했다. 특이한 손님이었다. 훤칠한 키, 번쩍이는 선글라스와 슈트. 여자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오후 내내 서가를 둘러보고는 해가 질 무렵 책 두 권을 사 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은 시각에 여자가 나타났다. 매일 두 세 권씩 사서 돌아가는 여자를 관찰하고 있자니, 너무나 수상했다. 읽지도 못할 책을 뭐 저렇게 많이 사 간단 말인가.
- <행성어 서점>
- 미래가 이제 현실로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이 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던 것도, 내 외형의 변화가 점점 빨라지던 이유도.
"그렇다면 나를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필요 없어진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상징에 불과하잖아. 소망이 만들어낸 상징이고, 현실은 저 바깥에 있지."
"너는 소망의 집합이 아니야. 소망은 그 방 안에 있던 것들이지."
그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너는 소망이 아니라 실제로 도래할 미래를 보여주는 거였어. 2030년이 가까워지면서 예언 대신 실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너를 구성했어. 소망과의 간극, 현실과 기대의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지. 그래서 이제는 네가 2030년 그 자체가 된 거야."
- 그제야 내가 진짜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나는 막연하고 아득한 소망이 아니었다.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가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이끄는 자가 되었다가 밀려나는 자가 되었다. 소망의 표면 아래 진짜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 "아무도 이런 미래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야. 왜 나를 공개하려고 하지? 어차피 당신들은 상징이 아니어도 경험하게 될 텐데."
"사람들은 이제 곧 2030년을 맞이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몰라. 그래서 네가 필요해."
"나는 엉망진창이고, 내가 무엇인지 확신이 없어."
"다들 알아."
그가 말했다. 그는 천천히 나를 기다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슬퍼 보이기도 했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처음 나를 설계했을 때 그는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예측했을까.
"그래도 이제 가야 해. 알면서도 다들 너를 기다리니까."
-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볼지 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없다.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 <소망 채집가>
- 수지와 현희는 단지 사랑을 애절하게 묘사하는 어떤 시대의 유행이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래방, 수지 생각에는 노래방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았다.
"쟤 말야. 가사 내용을 보면 연인이 죽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잖아."
반투명한 창문 안쪽의 남자애를 흘끔 보았다. 그 애는 최근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울상을 짓던 녀석으로, 지금은 그저 자신의 노래에 심취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아까부터 그 애를 보고 있는 다른 여자애가 있었다. 현희가 말했다.
- "맞아. 이별 노래는 이용당한 거야. 공작새 깃털 같은 거지. 이별 노래를 멋지게 부름으로써 새로운 사랑을 갈구한다고 해야 하나."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현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수지와 현희는 다시 방에 들어가는 대신, 안에 남아있는 그 여자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로맨스는 시대의 발명품. 모든 사랑이 애절한 건 아니지만, 함께 공유할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다.
"근데... 잘 부르긴 하네."
수지와 현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 고전적 사진 촬영은 평범한 행성 여행자들이 감당하기에는 값이 비싸다. 리키가 다른 사진작가들에 비해 유독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촬영을 하려면 사진작가가 현장으로 함께 가야 하고, 촬영비에 정류장과 행성 왕복 비용을 포함하는 엄청난 '출장비'가 추가된다. 대개의 행성 여행자들은 그냥 관광지에 배치된 공용 촬영 드론을 쓰거나 자그마한 기록 로봇을 데리고 다닌다. 콘택트렌즈나 두뇌 임플란트의 간이 시각 기록 기능을 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고전적 사진 촬영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꾸준히 있었다. 아무리 촬영 AI가 발전해도 여전히 '누가' 사진을 찍어주는지, 얼마나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는지는 여행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리키는 바로 그런 여행자들 덕분에 생계를 유지했다. 행성 여행자들은 다들 비슷한 말을 덧붙였다.
"어, 사실 우리가 전에 이런 촬영을 해본 건 아닌데요. 그래도 신혼이니까 큰맘 먹고 처음 신청해보는 거예요."
- 문제는 '큰맘 먹고'에 있었다. 리키는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는 자신의 직업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특별한 순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그건 누구나 드론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노초 단위로 기록할 수 있는 시대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책임이었는데, 고전적 촬영의 낭만은 바로 그런 위태로운 지면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 그게 가능한 일인가? 수천 번의 웜홀 드라이브에도 멀쩡히 버틸 구형 카메라를 구하느라 얼마나 돈을 썼는데... 하지만 의심해볼 만한 이유였다. 우주는 넓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 <포착되지 않는 풍경>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 당장 그 애를 먹자.
그런 다음에는 흥분한 목소리들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좋아. 그 애를 먹자, 집어삼키자. 아래로 끌어들이자. 그 애는 새로운 분자야. 새로운 냄새야.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할 거야.
- 소년은 명백히 죽어가고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모두 상처 입고 멍들어 있었다. 꺼질 듯한 숨소리만이 색색거리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부패를 필요로 하는 죽음. 분해될 죽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바로 앞에 있었다. 우리는 물을 건너서, 또 다른 일부는 진흙과 바위 표면을 지나 소년의 피부에 접촉했다. 소년에게 닿은 우리 중 누군가가 실망스러워하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어. 숨 쉬고 있어. 지금은 먹을 수 없어.
- 아쉬워하는 기색이 우리의 연결망 전체로 퍼져나갔지만, 우리 대부분은 다시 침착해졌다. 일부의 죽음이 전체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 우리와 달리, 강한 개체성을 지닌 저 존재들은 신체 일부의 손실만으로도 쉽게 죽음을 맞이한다. 소년은 상처를 입었고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소년은 하루 내내 바위 위에 쓰러져 있다가, 아침이 되자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 낡은 가방에서 꺼낸 비스킷을 허겁지겁 삼킨다. 그러고는 주위에 고인 물웅덩이의 물을 마시고, 헛구역질한다. 다시 잠든 소년은 해가 질 때까지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이 나서 웅성거린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높은 새로운 분자를 갖게 될 거야.
우리는 소년이 물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일부가 되기를 기다린다.
- 그 소년은 숲길 너머에서 도망친 클론일 것이라고, 오웬 뭉치가 말해주었다. 인간들의 격리 도시에서는 죽어가는 인간들의 신체를 교체하기 위해 클론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그 클론들 중 일부가 저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로 도망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대부분은 우리가 몇 달 전 집어삼킨 생물학자 오웬이 알려준 것이다. 오웬은 인간들의 엄격한 규칙을 어겼고, 다른 인간들이 그 대가로 오웬을 이 늪에 던져 '처분'했다. 우리는 늪으로 가라앉은 오웬을 삼켜 분해했다. 그런데 그가 지닌 정신의 강한 고유성은 우리의 균사체 연결망에 소속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 나머지, 완전하게 소화되지 않고 그들끼리 뭉치를 이루었다. 그의 정신을 이루던 신경세포들은 균사에 달라붙어 기묘한 뉴런-균사 복합체를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때 인간이었던, 덜 소화된 그 균사와 신경세포의 뭉치를 오웬이라고 불러준다.
저 녀석은 곧 죽을 거야. 인간은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 없거든.
- 오웬 뭉치가 장담한다. 우리는 그 말에 종소리처럼 동조한다. 살해당할 운명에서 소년은 본능적으로 도망쳤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죽음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것은 개체 중심적 존재들만이 경험하는 모순이다. 그러나 소년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그 삶 역시 풍부한 감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소년은, 오웬은... 그들은 무언가 다르다. 우리와는 다르다. 늪 전체를 감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와 다른 존재다. 그들은 개별 개체에 갇혀 있다. 그들은 하나의 개체가 감각하는 지극히 좁은 세계밖에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개체성에 만족한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다.
소년은 우리에게 먹히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동일시했다.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살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오웬 뭉치에게 지금 너는 불행하냐고 묻는다.
불행하지 않아. 지금은. 하지만 이건 차선책일 뿐이야.
연결망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오웬 뭉치의 생각을 우리는 읽는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 늪 근처에 서식하는 다른 생명체들은 소년의 먹이가 되고, 마실 거리가 된다. 그것들은 소년의 몸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다시 늪으로 흘러 들어와 분해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식으로 우리와 소년 사이에 교환되는 분자들이 늘어난다. 소년의 몸은 늪의 입자들로 구성되기 시작하며, 우리의 균사체 연결망에는 한때 소년을 구성했던 입자들이 흘러 들어온다.
우리는 연결망을, 우리를 구성하는 다른 방식을 생각한다.
- 우리는 이전보다 소년을 가깝게 느낀다. 서로에게 흘러드는 물질들이 많아질수록 소년은 우리의 느슨한 망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 소년이 먹고 마시는 것, 호흡하는 공기, 소년의 신체를 구성했다가 늪으로 흘러오는 모든 입자들 우리는 물질을 공유한다. 이 늪에 머무르면, 소년은 언젠가 우리와 같은 물질에서 유래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의 균사체들과는 조금 다른 신체를 지닌, 우리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소년은 이따금 우리에게로 걸어와 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늪의 수면 위에 부유하는 우리를 살피면 마치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처럼.
- <늪지의 소년>
- 소은은 짧게 대답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대화를 끝낼 수도 있었지만, 소은은 말을 덧붙였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시몬에서 본 것들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 혼란스러워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마 이해하실 거예요. 어떤 의문을 풀기 위해서 그곳에 갔는데, 오히려 질문들만 가득 품고 온 기분이에요."
만약 시몬이 아닌 다른 행성이었다면 그곳 출신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의 바른 거짓말에 불과하더라도 아주 멋진 곳이었다고,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다고, 다시 오고 싶다고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은은 이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몬 인들에게 굳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 여자는 보란 듯이 자신의 가면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가 떼었다. 단단한 금속처럼 보였던 그것은 살짝 패였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가면은 증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미소를 잃었어요. 다음으로 눈물이 없는 슬픔을 잃었고, 비명이 없는 분노를 잃었습니다. 가면은 우리에게서 온갖 종류의 미묘한 감정들을 가져갔답니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소리치거나,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웃을 수는 없었죠. 웃기에는 너무 절망적이었으니까요. 서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고,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볼 수도 없었습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하학적 문양의 외계 기생물이 시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대신해버렸어요."
-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소은은 말문이 막혔다.
"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 이제 소은은 그들의 진짜 표정을 상상하는 대신 그들의 진짜 마음을 상상했다. 그때 소은은 햇빛을 받아 기묘한 문양으로 물든 가면들을 보면서 그들이 '언젠가 또 만나요'라고 작별인사를 해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은 '당신은 이제 이곳을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 <시몬을 떠나며>
-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이제 코코를 기르지 않는 사람은 없지. 나처럼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나, 갓 태어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톡소플라스마 원충은 쥐의 뇌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키지. 톡소플라스마증이 나타난 쥐들은 겁을 잃고 고양이에게 매료되고, 고양이의 냄새를 두려워하지 않게 돼. 쥐는 자발적으로 먹이가 되고, 기생충을 전파하는 매개로 복무하게 되는 거야.
- 코코가 발산하는 물질이 단지 우리의 뇌를 교란하는 화학물질에 불과한지, 아니면 그보다 더 정교한 무언가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과학자들은 그것들이 자신을 퍼뜨리는 생존 전략이자 번식 전략의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어. 그 중대한 발표가 세계로 중계되던 날, 사람들이 코코를 끌어안은 사진을 올리며 했던 말들을 나는 기억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 사람들은 코코를 쓰다듬고 만지고 껴안으며 행복감을 느끼지. 이제 모든 사람이 코코를 사랑해. 코코는 가장 인기 있는 반려 종이 되었지. 굳이 지구의 생물에 빗댄다면 코코는 움직이는 동물보다는 고정된 식물에 가깝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인간들에 의해서 그것은 아주 멀리까지 가고 있어. 열대우림 한가운데에서, 화산 분화구에서 소금 호수에서도 코코의 종자가 발견되지. 그것들은 섣불리 싹을 틔우는 대신 숨을 죽이고 지구를 점령해가고 있어. 인간의 주머니 속에 숨어서,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은 채, 종자들만을 슬그머니 땅 아래에 숨기며.
가족들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도 어느 정도는 코코 덕분이었어. 코코는 희망을 주니까.
- <우리 집 코코>
- "제게는 아주 오랜 친분을 쌓은 생물학자가 한 명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어떤 늪에 아주 관심이 많아 수시로 그곳으로 향하곤 했어요. 그 녀석이 늪에 사는 기이한 생물체들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늪의 생물체들은, 놀랍게도 지구의 균류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동시에 그 연결망으로 일종의 집단 지능을 구축하고 있었어요. 기존의 생물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물들이었지요. 우리는 그것들이 분명히 외계에서 왔을 것이라고, 대침투와 함께 지구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아니면 적어도 외계에서 온 무언가에 오염되어 그렇게 지능을 갖도록 변형된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지금껏 지구에서는 발견된 적 없던 생물이었으니까요."
- "그런데 한참이나 연구가 이어진 끝에, 우리는 한 가지 기묘한 결론에 도달했어요. 어쩌면 우리의 가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었지요. 그것들은 외계에서 오지 않았어요. 원래부터 늪에 살고 있던 겁니다. 오래전부터, 지구가 외계종으로 오염되기 훨씬 전부터요. 우린 지구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외계 식물들이 지구를 뒤덮어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던 겁니다."
"그럼 당신은, 이 버섯들도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린 어찌 되었든 이 버섯들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상부에 우릴 처분하라고 알릴 겁니까?"
- 청년의 다급한 질문에, 라트나는 파견자들에게 내려진 지령을 생각한다. 침투체를 더 증식시키거나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면, 제거할 것. 그게 라트나에게 직접 손에 피를 묻히라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라트나는 조금 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 알약을 지연성 독약으로 대체할 수도 있었다. 몇 달쯤 뒤에 이곳에 의문의 전염병이 돌게 어딘가에 지뢰를 심어놓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라트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 <오염 구역>
- 다현은 얼떨결에 바 자리에 앉았다. 정말로 뭔가를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가게 주인까지 불러버렸으니 이제 와서 나갈 수는 없었다. 사장이 생수병과 컵을 내어줬는데, 처음 보는 브랜드의 물이었다. 컵에 따라 마셨는데 약간 짠맛이 났다. 주문하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메뉴판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오기 전 입간판에 '오늘의 정식'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떠올랐다. 사장이 바 자리에 냅킨을 채우며 말했다.
"메뉴는 따로 없어요. 오늘은 수제버거와 수프인데, 채식주의자들도 먹을 수 있어요. 대체육과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거든요. 괜찮으시죠?"
- 다현은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자몽을 슬라이스 해서 넣은 탄산수였다. 단맛은 거의 나지 않았는데, 원래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현에게는 마음에 들었다. 잠시 뒤 사장이 수프가 든 그릇을 내어놓았다.
"크림수프예요."
수프 표면에는 거품 층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스푼을 들어가져다 대자 액체가 아닌 거품을 한 스푼 떠올리는 질감이 느껴졌다. 입으로 가져갔더니 보이는 질감과는 달리 진한 액체 수프였다.
- 사장은 다현의 단순한 반응에도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는 샐러드가 나왔는데, 플레이팅이 예쁘게 되어 있었고 먹어보니 드레싱의 맛이 특이했다. 무언가 평범한 가게가 아닌 건 분명했다. 역시 이런 곳은 유진 선배가 왔어야 더 좋아했을 텐데. 하나같이 정성 들인 음식 같았지만 다현은 좋은 음식을 구분할 만한 미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프를 한 입 떠먹다가 주방 끝의 벽에 걸린 액자에 시선이 닿았다. 보란 듯이 내세워 걸어둔 것은 아니었지만 번쩍거리는 박이 입혀져 눈에 띄었다. 'Super-Super taster!'라는 글자 밑에 웃고 있는 사장의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배경에는 거대한 입술과 혀가 그려져 있어 액자 전체가 일종의 팝아트처럼 보였다. 다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사장이 말했다.
"초미각자 협회에서 받은 증서예요."
- 사장은 그 이후 식품 회사를 그만두고 반려동물의 사료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간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동물들을 위한 음식이 더 자신의 입맛에 맞을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다. 사료 회사에서는 다양한 반려동물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사료의 식감과 맛을 분석하는 시식가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영양 성분을 고려해 적절히 배합한 시제품을 만들면, 시식가들이 실제로 사료 시제품을 먹어보고 냄새와 질감, 점도, 맛을 평가하는 일이었다. 기계로 정량화하여 분석할 수 없는 특성들이 있었다. 사장은 그 일을 매우 잘 해냈다고 한다.
- "하지만 역시 맛은 없었어요."
사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고 보니, 동물들은 인간보다 맛을 훨씬 뭉뚱그려 인식한다는 거예요. 인간보다 시각이나 후각이 뛰어난 동물들은 꽤 많은데, 하필 미각만은 인간에게서 가장 극적으로 발전했다는 거죠. 그건 인간에게만 날숨 경로가 있기 때문인데, 음식을 삼켰을 때 입안에서 목의 뒷부분을 지나 코 안쪽으로 들어오는 냄새는 오직 인간만이 인식할 수 있대요. 동물들은 쿵쿵거려서 냄새를 맡을 수는 있지만 입안의 음식에서 향미를 느낄 수는 없다는 거죠. 동물들에게 인간처럼 요리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가능하다면 직접 물어보고 싶기는 했어요. 정말 그럴까, 혹시 반려동물들이 인간의 끔찍한 요리 실력을 그저 봐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어쨌든 그곳에서 먹은 것 중에는 도마뱀을 위한 사료 분말이 그나마 제게는... 재미있는 일이긴 했지만,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어요. 사료 테스트를 위해 강아지들을 자주 본 게 마음의 위안이 되었죠."
- "대학에서 가르치는 외계 생물학 기초 교재에도 있는 내용이더라고요. '만약 우리가 공통 조상을 가진 유사한 생명체들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다면 미각이 매우 다를 것이다. 미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도 문화와 환경에 따라 가장 다르게 발달하는 감각이다.' 물론 그 교재는 우리가 아직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제가 맛을 느낄 때 필요한 특정한 종류의 아미노산이 지구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어머니가 괜히 매일 영양제처럼 보이는 캡슐을 챙겨 드시던 게 아닌 거예요. 그건 지구인과 우리가 함께 음식을 나눠 먹을 수는 있어도 함께 음식을 즐기기는 힘들 것이라는 슬픈 선언에 가까웠어요."
-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 소년을 잘 설득하면, 그놈의 복제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끔찍한 일들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다시 시계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우리가 그 동굴에서 뭘 목격했는지 알아요? 놀랍게도 우리는 시계의 기계 부품들을 지지하는 수정 기둥을 감고 자라난 외계 식물을 발견했어요. 누가 찾아와 씨앗을 뿌렸을까요? 아니면 황무지마저도 파고든 외계 식물들이 그곳 동굴까지 들어온 걸까요? 어느 쪽이든, 지금 우리가 1만 년을 이야기하는 것이 터무니없다는 건 분명해요. 1만 년은커녕 수십 년도 지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종이 되어 있겠죠. 이 지구의 풍경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건 어떤 모습일까요. 정말 본부에서 말하는 것만큼 끔찍하기만 한 걸까요.
- 파견자들은 그 침투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식물들의 전파속도를 느리게 만들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차라리 침투에 적응하는 것이 더 낫다고도 말해요. 침투가 만들어낸 끔찍한 일들을 보면 그건 너무 순진한 이야기인 것 같다가도, 차라리 이 기막힌 외계종들과의 공생 방법을 찾아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 외계 식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건 우리 불동조 파견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문제이지요. 당신이 지난 조사를 통해 제안한 것처럼, 기이한 균류와의 신경계 연합을 형성하는 것 역시 가능한 방법 중 하나일 거예요. 운무림 마을 사람들이 비록 보기에는 끔찍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광증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발견이었어요. 혹시 그 사람들의 삶이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죠. 지구에서 살던 버섯들에게 우리 뇌를 넘겨주고, 외계종 식물과는 적당히 타협하는 것 말이에요. 글쎄, 아마 본부에서는 끔찍하다고 여기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 지금 저는 라트나가 보내준 샘플을 큐브 안에서 키워보고 있어요. 아쉽지만 이 균사들은 큐브 안에서는 제대로 성장하지 않고, 연결망을 만들거나 집단 지능을 형성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어쩌면 이 생물들도 그들 자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늪이라는 환경과 운무림이라는 환경. 그게 있어야만 이 생물들은 정말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일지도요. 우리가, 인간이 그런 것처럼 말이에요.
- <가장자리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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