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획] 아주 구체적인 위협 - 유네스코가 말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달라진 일상

일루젼 2022. 9. 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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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진우 / 민정희 / 김한솔 / 김추령 / 채수미 / 최경호 / 윤순진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2.09.07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현재 세계 인류가 유래없는 기후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누구나 익숙하게 여기는 '기후 위기'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것일까?

 

각 분야와 입장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기후 변화와 위기는 단순히 지난해보다 조금 더 춥고 더운 날씨, 잦아진 홍수와 가뭄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 인한 질병과 전염병, 닥쳐오는 식량 위기와 멸종, 실업과 돌연사 및 주거지 공동화(空洞化)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실존적 위기였다.

 

당장 식량 수입이 막힐 경후 자급률이 20% 언저리를 맴도는 한국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마트와 인터넷에 널린 주전부리와 밀키트를 보면 실감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현 상황을 나타내는 수치와 지표들은 '극도로 위험함'을 깜빡거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상황을 희망도 절망도 걷어낸 시선으로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해야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개인이 에너지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는 스마트 그리드 체제와 제로에너지빌딩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고, 또한 사업체들이 생산해내는 물품들을 보다 친환경적인 방향성으로 이끄는 소비자 정치활동 및 유권자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김추령 저자의 글 중 '개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지나치게 일상적인 단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 깊게 남았다. 거대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장기적 계획 또한 함께 가져가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표라는 말로도 읽혔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6년의 공교육을 포함해 길게는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오지만, 막상 경제와 생활 전반에 필요한 '삶'에 관한 지식은 백지에 가까운 채로 '알려주는 대로 따르는 법'에 익숙해진 채 덩그러니 놓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와닿는 바가 컸다.

 

각 장마다 도입부를 가상의 에피소드로 연결시켜 두었는데, 이전 내용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른 에피소드에도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모든 분야가 연결되어 있으며, 실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 속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기 위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기후 협약 및 1.5도 합의에 관한 내용이 거의 모든 장에서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해당 내용을 하나의 장으로 뽑아 기반 지식으로 설명하고, 이후 장에서는 필요한 경우 그래프나 해당 내용과의 연결점만 들어 곧바로 저자의 주장을 펼쳐나갔더라면 보다 밀도 있는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의미 깊게 읽었다.                                                     

        

 


   

 

우리가 해냈는지는
당신만이 알 것입니다.

 

 

-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활방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나 생산과 소비를 대하는 입장의 전환을 말하지 않고서는 기후위기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네스코가 2019년 기후변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그 제목을 "변화해야 하는 것은 기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Changing minds, not the climate!"로 정한 것은 적절했습니다. 이것은 이 책을 기획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기후위기에 대해 시종 굳게 지키고 있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저는 이 참에 우리의 삶에 '생태적 전환 ecologicalturn'을 이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어적 전환, 문화적 전환에 이어 기술적 전환, 정보적 전환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봉착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생태적 전환입니다.

 

- 제가 기후변화에 관한 강연을 할 때 종종 내거는 제목이 있습니다.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책을 쓰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지원하며 경고했던 '불편한 진실'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후 점점 더 불편해져서 지금은 정말 위협적인 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불편한 진실을 해결해 줄 기술이나 방안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지만, 저는 그보다 더 현실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그저 조금씩만 더 불편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하루아침에 우리의 삶을 <나는 자연인이다> 수준으로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조금만 불편하게 살자는 겁니다. 웬만한 거리는 걷고,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접을 수 있는 장바구니 하나쯤 호주머니나 핸드백에 상비해 다니며 비닐봉투를 받지 않는 정도의 '조금 불편한 삶'을 살자는 겁니다.  

 

-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 "플라스틱 빨대는 없나요? 전에는 이런 종이 빨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 "제 동생처럼 플라스틱 빨대가 필요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아요. 뇌병변 장애인 같은 경우에 빨대 없이 물을 마시면 사레가 들리기 쉬운데, 사레가 들리면 질식의 위험이 있거든요. 그리고 죽이나 미음 같은 유동식을 먹어야만 하는 장애인이나 환자들도 플라스틱 빨대는 필수고요." 

- 나현선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전서경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전서경으로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고작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꾸었을 뿐인데 한 사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다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주변을 헤아리지 못한 데서 오는 수치심과 자괴감이 들었다.

 

- 계산대 앞에 앉은 전서경은 생각이 많아졌다.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변화는 분명 필요했다. 다만 이런 변화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를 위한 변화에는 더 섬세한 고민, 더 나아가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실천에만 머물지 않고,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전서경은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 1968년 미국의 생태학자인 개릿 하딘 Garrett Hardin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공유지의 비극 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짧은 에세이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면 사회나 국가의 이익은 증대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주류 경제학은 환경과 같은 공공재의 역할과 영향력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위가 공동체 공공재의 수용력을 넘어가는 일이 발생하면서 주류 경제학은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도 최소 비용, 최대 편익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했다. 그 두 개가 합쳐진 것이 '기후부정의'라는 개념이다. 환경, 평등, 정의가 경제적 가치와 동등한 위치에서 검토되고 숙의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선 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이라는 신화를 깨지 않으면 경제학과 상충되는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나치게 '경제적'인 이유로 사라지는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 

 

- 이진우(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 세계 인구는 1500년대를 기점으로 증가속도가 올라가다가 180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빨라진다. 시기별·지역별 편차가 있으나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여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까지 도입된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밀보다 훨씬 칼로리가 높은 사탕수수가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 새로운 식량작물 보급과 신농법 확산에 따른 생산성 증대는 영양상태를 개선해 사망률을 감소시켰다. 한편, 서유럽 지역은 식민지로부터의 식량 공급, 전염병의 온상이었던 상하수도의 개선, 의료보건 기술의 발전이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

 

- 급증하는 인구는 블랙홀처럼 식량을 빨아들이며 식량 수요를 높이는 원인이 됐다. 저임금의 노동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식량증산은 절박한 과제였다. 식량증산의 전환점은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이며 근대 지리학의 시조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Alexander von Humboldt에서 비롯된다. 1802년부터 중남미 3만 킬로미터를 누비면서 지리, 광물, 식물, 동물 등을 조사하던 훔볼트는 페루의 잉카 농부를 통해 과나페섬에서 신비한 물질인 구아노 guano를 알게 된다. 그는 1805년 바닷새의 배설물이 쌓여 화석화한 구아노 샘플을 프랑스에 건넸다. 성분 분석 결과, 질소와 인이 풍부해 일반 비료의 33배에 달하는 영양분 덩어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구아노 붐이 일어난다. 

 

- 1900년에 가까워지면서 초석의 매장량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천연비료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인공비료 개발에 몰두한다. 1909년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독일의 프리츠 야코프 하버 Fritz Jakob Haber가 그 해법을 만들어 냈다. 1913년, 그는 카를 보슈 Carl Bosch와 공동으로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마저 개발에 성공해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2만 킬로미터 밖의 한정된 초석을 두고 전쟁을 벌이지 않고도 전 세계의 농경지에서 질소비료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 세계 인구는 1960년 30억 3,000만 명에서 2015년에는 73억 8,0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자연 상태의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식량자원 생산성으로는 불가능한 결과다. 전 세계 인구 유지에 합성 질소비료가 기여한 정도를 연구한 한 데이터에 따르면(Erisman et al, 2008: 636~639), 196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13퍼센트(3억 9,000만 명)가 질소비료에 의해 부양됐다. 55년이 지난 2015년도에는 질소의 인구 부양 기여도가 절반에 가까운 48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지구 인구 10명 중 5명은 합성 질소비료로 키워진 식량으로 살고 있다.  

 

(리뷰자 주 : 연결 도서로 <공기의 연금술>을 추천한다.)

 

[토머스 헤이거] 공기의 연금술

저자 : 토머스 헤이거 / 홍경탁 원제 : The Alchemy of Air 출판 : 반니 출간 : 2015.09.10 술술 풀려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질소 연구에 관한 역사적 흐름에서 세계대전 전후의 과학자들로 유명한

illusionofmoon.tistory.com

 

- 약 1만 년 전부터 기후가 안정되기 시작한 현세(홀로세) 이후에는 지역별로 이동이 더 다양화되는데 그중에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유목생활을 하던 아리아인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방향으로 남하한다. 일부는 카이베르 고개 Khaibar Pass를 넘어 인도아대륙의 입구인 간다라 지역을 지나 다섯 개의 강줄기가 흘러드는 펀자브 평원에 정착한다. 이들은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갠지스강 중류에 이른 후에도 한 번에 백 마리 이상의 동물을 제단에 바치는 희생제의와 육식 중심의 음식문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기원전 5~6세기 전후에 출현한 불교 중심의 당시 사상계가 강조한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라는 가르침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 이러한 불살생不殺生의 가르침이 확산되자 당시 인도의 브라만교(나중에 힌두교로 발전한 종교) 성직자인 브라만 사제들은 육식의 방법과 종류를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서서히 변화한 끝에 유목문화와 인도의 토착신앙이 융합한 힌두교는 육식과 결별한다. 신도 수가 10억 명이 넘는 힌두교가 엄격한 채식주의 종교가 되지 않고 유목 전통의 식단을 유지했다면 지구의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했을까?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 워싱턴주립대학과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쇠고기 햄버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2,5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큰 생수병(2리터 페트병) 1,250개 분량으로 샤워를 30일 동안 하지 않고 아껴야 하는 양이다. 여기에 숲 1.8평을 벌목해야 하고 사료 재배를 위해 비료, 살충제, 제초제, 항생제, 촉진제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리고 메탄가스 57그램 외에도 이산화질소, 질소, 질산염 등을 배출한다. 이 외에도 햄버거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과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최소한 A4 용지 한 페이지 이상이 필요하다. 그 햄버거가 하루에만 전 세계에서 1억 개 이상 소비된다. 

 

- 토양에서 자라는 곡물, 과수, 채소와 같은 식량자원을 포함해 식물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들짐승, 날짐승과 벌, 여러 곤충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때로는 바람이 힘을 보태기도 한다. 그리고 추수하기까지는 보이지 않은 많은 생명의 합주가 있어야 한다. 2019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환상의 버섯 Fantastic Fungi〉을 보면 인간이 그동안 과학이라는 돋보기로 코끼리 한쪽 다리만을 만지듯 지구의 생명체와 시스템을 설명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의 수전 시 머드 Suzanne Simard 박사의 인터뷰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 숲에 균류가 얼마나 많냐면, 발을 딛는 곳마다 그 밑에 균류들이 480킬로미터나 연결되어 서식해요.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요. 엄마 나무는 균근망 network을 통해 혈연관계를 인지하죠. 엄마 나무와 아기 나무가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겁니다. 서로 연결되어 탄소가 오가면 나무들은 약한 개체를 도와줍니다. 주변에 해충이 있어서 위험이 감지되면 엄마 나무는 아기 나무들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더 멀리 뻗어갈 수 있게 하죠. 마법 같은 일이에요. 균류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고요.  

 

- 최근 빈도가 높아지고 강도가 더해진 기후재난이 진짜 공포스러운 이유는 2022년 현재까지 배출된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에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루 중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은 태양이 하늘의 중앙에 위치해 직선으로 비추는 정오이지만 온도가 가장 상승하는 시간은 2시경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겪고 있는 가공할 수준의 기후재난은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어쩌면 그 이전에 배출한 온실가스의 결과다. 이것을 '이미 저질러진 온난화 committed warming'라고 한다. 그로부터 2022년 현재까지 수십 년 더 배출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의 결과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상태다. 

 

- 온실가스 줄이기의 본질은 어떤 제품을 사용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무無에서 만들어지거나 허공에서 떨어지지 않은 자원과 에너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키워졌으며 생명 그 자체인 식량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인류의 멸종을 막고 지구의 모든 생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전제되지 않은 녹색성장, 그린 제품은 기후위기를 핑계 삼은 사업일 뿐이다. 

 

- 전기차, 재생에너지보다 효과적인 것은 차 없이 생활하기이고 항공기를 이용한 출장이나 여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래프에서 전기차로의 교체 바로 다음으로 효과가 큰 것은 채식 위주의 식사이다. 나의 건강과 동물권,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선택에 해당한다. 자신의 체질, 건강 특성 등을 감안해서 적당한 채식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고 주 1회 등 기간을 정해 실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 민정희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사무총장) 

 


 

- 농민과 라이더, 건설 노동자, 물류센터 노동자, 석탄 화력발전소 노동자와 내연기관 산업 노동자, 이 여덟 명의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1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노동환경의 변화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것이다. 

 

- 문제는 이렇게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발전소와 내연기관 산업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일자리'라는 것이다. 석탄 발전소에는 석탄을 싣고 날라서 발전 터빈 안에 넣고, 타고 난 재를 처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발전소 장비를 수리하고 발전소 내·외부를 청소하며 정비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자동차 완성차 공장에는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엔진 부품을 오랫동안 조립해 온 노동자들이 있으며, 엔진과 관련된 부품을 납품하는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만약 석탄 발전소가 문을 닫고 내연기관차에만 필요했던 엔진 같은 부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게 된다면, 이들의 일자리 역시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들의 일자리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 택배 서비스는 자주 이용하지만 D씨가 일하는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이 어떤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전기는 매일 쓰지만 E씨가 일하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지역과는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환경을 위해 전기차로 차를 바꿀까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생각까지는 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가 안타깝긴 하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인 것일까? 

 

-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역시 내 삶과 관련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 김한솔 (경향신문 기자)

 


 

-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배울 거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여러분도 다음 시간까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오기로 해요!" 

 

- 민지영의 눈에 교무실 문 한편에 놓인 쓰레기통이 보였다. 누가 뭘 했던 건지는 몰라도 제대로 분리배출이 되지 않은 일회용품이 빼곡히 차서 쓰레기통 뚜껑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줍깅을 하던 아이들의 얼굴, 환경을 위해 이미 알아서 생각하고 행동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가르쳐 주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을 하는 일이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 은색 총알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은유된다. 우리 사회는 은연중에 은총알을 갈망한다. 2022년 1월 6일부터 시행되는 환경교육진흥법이 제정됐을 때, 환경부의 한 정책기획관은 "환경교육은 환경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발표를 했다. 가장 '저렴한 것'은 은총알을 바라는 이 정책기획관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오랜 교육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교육이 은총알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이 그렇게 오래도록 시행되어 왔지만, 사회는 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모순은 다양한 위기를 불러왔다. 또 모순과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그러나 교육이 과연 사이렌이 울리는 위기 상황에서 119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 현재 학교에서 시행하는 기후위기 관련 교육 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채식 급식을 감내하고, 분리배출에 눈을 부릅뜨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을 하고 있다. 또 '미래를 위한 금요일 FFF'의 깃발 아래 전 세계의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기후정책의 실행을 촉구하며 학교를 떠나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대응에서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일상생활 양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분리배출 자체보다도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은 행위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위가 비도덕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 교육을 통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규범과 가치의 변화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당장 탈탄소 사회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위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사한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고, 반복적으로 지구와 지구 위의 다양한 존재들을 위협할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멈출 수 있는 것이 규범과 가치, 사상의 변화다. 

 

- 교육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행된다. 그러니 당연히 제대로 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을 은총알 또는 저렴한 만병통치약으로 취급할 때 '비교육적’이 될 위험이 크다. 중요한 만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기후위기를 막는 '은총알'이 아니라는 인식이 기후변화 대응 교육의 출발점이다.

 

- 북극의 기후 상승이 다른 지역보다 빠르고 그로 인해 변화된 환경에 생태계가 적응하지 못하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상징적인 존재로 북극곰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극곰만이 문제일까? 그 교과서로 기후위기를 배운 학생들에게 기후위기란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이국의 땅에서 인간을 제외한 생태계가 혹은 환경이 처한 문제라고 오해하기 딱 좋게 구성되어 있다. '기후위기는 참 심각한 문제인데, 이 문제는 나의 문제는 아니야'라고. 그뿐만 아니라 교과서에는 기후변화를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지구공학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거대기술이 가지고 올 수 있는 한계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북극 항로 개척, 북극 자원 개발 등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도 쓰고 있다.

 

- 일부에서는 학교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거나 준비가 안된 어린 유권자들이 선거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무모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 있지만, 실은 이런 비판은 어른들에게 해야 할 일인 듯싶다. 왜냐하면 만 18세의 유권자들은 다른 어느 나이의 유권자층보다 선거의 이해관계자들과 얽힘이 적지 않은가. 금권·관권에 쉽게 굴복하는 유권자층은 오히려 이해관계가 살아온 세월만큼 얽혀 있는 어른들이 아닌가. 학교에서 유난히 '정치'라는 말에 화들짝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 때문이 아닐까? 

 

- 학교에서 절망의 쓴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순간 중 하나는, 기후변화 교육을 열심히 하고 난 후 '앞으로 더 열심히 분리배출을 하겠어요'라는 말이 대부분인 수업 소감문을 받아들 때, 또 너무나 열심히 페트병 라벨을 떼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다. 물론 당연히 페트병 라벨을 떼어내는 등 적정한 방법으로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모두 페트병 라벨을 제거하는 활동을 하는 것과 전국의 학생들이 애초에 라벨이 없는 페트병을 만들도록 정치적 힘을 모으는 것, 어느 것이 2050년까지 순탄소배출량 제로를 만드는 데 더 나은 길일까?

 

- 라벨 없는 페트병을 디자인하는 활동부터 건의하고 확산시키고 그리고 실현하는 소비자 정치활동, 시민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 급격하게 탈탄소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목표 때문만은 아니다. 본래 교육의 목적은 정치역량을 가진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기후위기 교육은 수동적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기존의 환경교육을 하면서 가장 큰 곤란함은 실천과 지속성이다. 이 문제는 기후위기 대응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교육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실천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위의 사례처럼 자유롭게, 스스로 정한 목표와 내용으로 실천적인 활동을 하며,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책임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기후위기 대응 교육에서 중요하게 지켜야 할 방법일 것이다. 

 

- '부엔 비비르 buen vivir' 혹은 '비비르 비엔 vivir bien'은 스페인어로 좋은 삶, 조화로운 삶이라고 흔히들 번역한다. 생존조차 벅찬 안데스의 고원에서 원주민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세계관이었다. 척박한 고원에서 오래도록 깃들어 살아왔던 부족들은 힘을 빼는 법을 알았다. 안데스의 고원으로부터 온 세계관의 핵심은 공생과 공존과 관계다. 그들은 '모든 것은 관계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며, 서로 접속되어 있다'라고 생각한다. 공생, 공존과 관계 중심의 사유가 에콰도르에서 자연에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들은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동물권을 넘어서야, 무생물로 분류된 자연이 제대로 보전되어야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동물권을 넘어선 자연권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의 사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이 본래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권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첫째, 학습자를 교화하지 말아야 한다. 즉, 논쟁을 교육활동에서 다룰 때, '올바른 견해'라는 이유를 앞세워 노골적인 방식 또는 미묘한 방식으로 학습자의 자주적인 판단이나 의견 제시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 둘째, 정치 영역과 학문 세계에서 논쟁적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되도록 수업시간에도 논쟁의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셋째, 학습자가 정치교육을 통해 정치 상황과 그에 따른 자신의 이해관계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주권자라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공동체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 당시 보이텔스바흐에 모인 교육학자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토론 과정에서 중요하게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 아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정치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담는 것이었다(설규주, 2018: 153~179). 이 원칙은 이후 여러 나라로 퍼져 학교에서 사회문제, 정치문제의 논쟁을 교육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회의가 이루어졌던 지역 이름을 따와서 '보이텔스바흐 합의 Beutelsbacher Konsens'라고 부르게 됐다. 

 

- 논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입장을 가지고 논쟁의 주체로 참여하는 교육이 제대로 된 기후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당신은 무엇을 지지하는가? 또 왜 그것을 지지하는가? 혹은 왜 반대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 다만, 희망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 교육을 진행하면서 생활양식의 변화나 개인적인 실천의 영역에만 머물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꼭 이러한 논쟁을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것이다. 

 

- 이 외에도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다. 모든 논쟁이 그렇듯이 정해진 답은 없다. 답은 우리가 함께 소통하며 조율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매우 부족한 듣는 근육을 일찍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근육이 자라고 논의가 모이는 교육을 통해 결국에는 신기후체제의 새로운 규범이 형성될 것이다. 규범은 위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가능한 수평적으로 서로 다른 모양과 성질의 생각 조각들이 연결되어야 한다. 규범이 자라는 자리에 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 2050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우리는 성공했을까? 아이슬란드에서 오크예퀴들 okjokull이 죽었다. 그리고 나이가 700살이나 되는 예퀴들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예퀴들은 아이슬란드어로 빙하라는 뜻이다. 오크 ok 빙하는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위치한 방패모양의 순상화산인 오크 화산의 분화구 정상을 뒤덮고 있던 대형 빙하였지만, 빙하학자 오두르 시구루손 oddur Siguresson이 2014년 공식적으로 이 빙하의 사망선고를 내렸고, 이로써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공식적인 빙하가 됐다. 오크산 정상부를 다 덮을 만큼 규모가 컸었던 오크 빙하는 지금은 화산 분화구에만 일부 얼음이 남아 있다. 이곳에 가면 오크 빙하를 추모하는 비문을 만날 수 있다. 

 

 - 김추령 (신도고등학교 교사) 

 



- 우리 보건정책은 그 영향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는지 누적된 지식과 전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심도 있게 토론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후변화의 가속화를 우리의 건강, 질병에 미칠 영향력이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 팬데믹 이후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변화가 중요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음은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많은 조사에서 한국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되어 왔다. 그런데 왜 기후변화에 중점을 둔 보건정책 예산은 늘어나지 않는지, 기후변화는 왜 보건정책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으면 모른다고 답하기보다는 안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전혀 모르지 않기도 하고, 알고 있어야 바람직할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 그런데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우리가 이미 기후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짓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2017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모른다고 응답한 경우는 3.4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상현상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했을 때는 잘 모른다는 응답이 늘어났다. 어쩌면 첫 번째 질문에서 대다수가 알고 있다고 했던 것은 기후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라는 용어에 대한 친숙함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지 생각나는 대로 말하도록 했을 때, 건강과 연결 지어 설명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는 기후변화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식 속에 우선적인 문제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방증한다(채수미 외, 2017).  

 

- 기후변화가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 피해가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피해를 크게 입는 사람들을 취약계층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의 건강의 변화인지에 따라 위험의 방향도 다르다. 

 

- 이와 같이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관계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감염병과 그 대응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기후변화가 감염병의 위험을 얼마나 키울 것인지 계산해 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어떻게 감염병에 위협적으로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주택 내부에서의 에너지 사용량의 내역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난방 분야가 약 3분의 1로 가장 비중이 크다. 다음은 취사, 온수, 가전 및 기타, 냉방, 조명의 순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냉방의 비중이 급속히 늘고 있다. 단위면적당 에너지 집약도 Energy Intensity 차원에서 보면 난방 분야와 조명 분야는 2010년대 이후 각각 20퍼센트와 17퍼센트씩 개선되고 있는데, 냉방 분야가 9퍼센트 가까이 늘었다. 난방이나 다른 분야도 절대량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이는 지구 위의 전체 건물들의 연면적 자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변화는 겨울철 혹한이나 폭우 등의 현상도 일으키기에, 난방 수요나 기타 시설 유지를 위한 에너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경제발전에 따라 1인당 사용면적도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러한 문제는 기술발전을 통한 기계와 시설의 에너지 '절약'의 정도와 비례해서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에너지 소비를 0으로, 혹은 생산한 에너지와 소비한 에너지를 상쇄시키는 '제로에너지빌딩 ZEB'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관건이지만, 발전된 기술을 적용하여 신축 건물을 제로에너지빌딩으로 짓는다거나 기존 건물을 '그린리모델링'하여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우리도 이제 곧 500제곱미터 이상 건물은 다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된다. 그러나 집에서 아무리 에너지를 아껴도 매일 멀리까지 차량으로 출퇴근하거나 그런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면 탄소 배출은 더 심각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 우리 모두의 책임 역시 중요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가상발전소'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 독일에서 시작된 패시브 하우스의 개념은 '에너지 효율성, 쾌적함,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이다. 구체적으로는 직접적인 난방설비의 가동 없이, 보조적 수단만으로도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선한 공기의 품질과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집이다. 에너지 성능이나 단열 성능이 우수하기에 대체로 일반 주택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의 에너지만 써도 된다. 여름철 한옥도 패시브 하우스에 해당한다. 대청마루 북쪽의 서늘한 공기가 남향의 마당에서 데워진 공기 쪽으로 밀려오며 실내 온도를 어느 정도 서늘하게 계속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성능지표는 기후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설정할 필요는 있다. 연평균 기온이 국가마다 다르고, 한국의 경우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지내는 주거문화에 따라 온돌과 같은 바닥난방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공기를 덥히는 난방방식에 맞춰 설정된 독일의 '열부하나 연간 난방에너지 요구량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패시브 하우스가 말 그대로 수동적인 의미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집이라면, 능동적인 주택은 액티브 하우스다. 전기를 받아서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해서 외부에서 받아오는 전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거꾸로 전기를 보내줄 수도 있는 집이다. 이러한 패시브와 액티브의 개념이 합쳐진 것이 앞서 소개한 제로에너지빌딩의 원리라 할 수 있다. 

 

- 나라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러한 자체 생산과 에너지 절감 기술을 통해 들고 나는 에너지를 합치면 '0'이 되는 것이 용어상의 개념이다. 현실에서는 완전히 0이 되기 힘들더라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에너지가 극소화되는 건물도 제로에너지빌딩으로 인정한다.  

- 기존의 전력망은 중앙 집중형의 발전 형태에 따라 전력과 정보가 일방통행하는 공급자 중심으로 설비가 운영되고 있다면, 스마트 그리드 체제에서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발전소도 있지만 풍력, 태양광,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다양한 분산 에너지원'이 그리드에 동참한다.   

- 가상발전소가 대규모로 현실화되기 위해서 아직까지는 양방향 전력 흐름 제어 및 측정 기술, 스마트 그리드 구축, 전기요금 체계 개편 등등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과학자나 엔지니어,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니 일반 시민들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은 결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으며, 전문가들이 기술과 제도를 현실화시켜도 실제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① 참여자의 정보 사전 공유, ② 유사시의 공동행동, ③ 이후 보상체계에 대해 구축된 신뢰 등이 필수적이다.  
 

-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주택이라는 '자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부동산이 재산이라는 관점은 익숙하다. 아무리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며 사고파는 물건이라는 측면보다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점을 강조해도, 현대사회에서 주택이 개별 가구들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 따라서 가상발전소 운영에 참여하는 보상체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택들을 '탄소중립사회'에 맞춰 개량하는 과정에서 참여와 보상, 비용 부담의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 주택의 공급과 운영에는 투자자, 시행사, 건설사, 다주택자, 공기업, 사회적 경제주체, 법인 임대사업자, 개인 임대사업자, 1가구 1주택자, 세입자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주택 자체 역시 아파트, 다세대, 오피스텔, 단독주택 등 다양한 주택의 유형들이 다양한 입지조건에 놓여 있다. 한편 UN주거권 보고관이 지적했듯, 법적으로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아 주거복지와 에너지 효율화 사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1인 가구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 등 '비주택' 혹은 '비적정 주거'까지 아우르는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택을 개인의 자산으로만 보는 관점이나, 자산으로 보지 말자는 이상주의적 관점만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 녹색금융의 차원에서나, 주거권의 보장 차원에서 기존의 공급자 금융의 성격을 '시세차익 의존형 금융구조'에서 '장기 운영수익으로 초기 비용을 해결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 앞서 고령사회가 되면 개인의 전통적인 은퇴전략인 '생계형 임대수익' 추구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연기금을 지속적인 배당이 가능한 사업에 투입하는 것은 노후보장 시스템과도 연계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택과 주거의 탈탄소화의 과정에서 노후보장과 주거권 확보의 과제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서두에서 말한 '트릴레마'를 '일거삼득'으로 바꾸는 길이자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피난처인 주택을 해결책으로 바꾸는 방법인 것이다.

 

-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 기후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일도, 저기 멀리 북극이나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어느 일부 대륙만의 문제도, 특정한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 기후위기는 이미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현세대는 기후위기로 고통받기 시작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COP26에서는 파리 회의 이후 6년 만에 정상회의가 열렸으며 치열한 협상 끝에 글래스고 기후 합의를 대표 결정문으로 채택했다. 이 합의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엇갈리지만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의의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안정화한다는 지구적 목표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1.5도 이내로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파국적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탄소중립은 뒤집을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국제사회 모두의 공통 목표가 됐다.  
 

- 여전히 글래스고 회의 전과 회의 중에 제출한 2030 NDC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요구되는 충분한 상향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 배출 정점이 2018년으로 뒤늦어 2050년까지 남은 기간이 32년으로, 1990년부터 감축해온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은 기간이 짧은 데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크기 때문에 40퍼센트라는 NDC 목표 달성은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변화를 늦출수록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기에 빠른 대응은 필요하다. 

 

- 무엇보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우리가 야기하는 환경비용과 사회비용에 대해 제대로 부담하겠다는 지불용의를 가져야 한다. 무조건 싸게 쓰기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대표적인 예가 전기요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 이하로 OECD에서 4번째로 낮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 부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에는 부가가치세 10퍼센트와 전력산업기반기금 3.7퍼센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2021년부터는 기후환경비용은 분리 고지되고 있다. 그러나 발전과 송배전에서 발생하는 환경비용은 아직 세금에 충분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다. 

 

- 환경에너지 기후 관련 시민단체를 적극 후원하는 것도 현명한 시민의 역할이다.  

 



 

 
아주 구체적인 위협
지금까지 기후위기는 주로 환경오염의 문제로 다뤄졌다. 그 탓에 많은 이들이 북극곰의 비쩍 마른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실생활에서는 잘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2022년 8월 8일, 우리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일상을 위협하는지 목격했다. 단 하루 동안 쏟아진 폭우로 인해 세계적인 첨단 도시임을 자부하던 수도 서울이 물바다가 되어 수많은 피해를 남겼다. 한편, 유럽에서는 500년 만의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났고, 시민들은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이 책은 이처럼 이미 현실이 된 기후위기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지 식량·노동·교육·건강·주거 등 일상과 밀접한 주제들을 통해 조명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은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가 처한 현실이며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모든 분야의 해법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변화 없이 개인의 실천만으로 기후변화를 멈출 수는 없으며 보건정책과 주거정책을,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의 역할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주제를 따로, 또 같이 논의하는 이 책은 기후위기라는 복잡한 문제에 걸맞은 종합적 접근이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후행동부터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까지, 저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는다.
저자
김추령, 김한솔, 민정희, 윤순진, 이진우, 채수미 최경호
출판
동아시아
출판일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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