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스쥔] 미식가를 위한 식물 사전 - 식물학자가 들려주는 맛있는 식물 이야기 43가지

일루젼 2022. 10.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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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스쥔 / 홍민경
출판 : 현대지성
출간 : 2022.07.15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다른 책이었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식물학'에 있어서는 확실히 권위자이지만 딱히 미식가나 의학자, 역사가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데 <미식가를 위한 식물 사전>은 해당 내용을 모두 다루는 일종의 식물 에세이다. 

 

언젠가 대구에서 바나나 열매가 맺혔다는 사진이 이슈가 되었었다. 조사 결과 파초 열매라고 결론이 났다는데, 어째서 그렇게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것인지나 한국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었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생기셨었다면 이 책을 통해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초록색의 오이가 어째서 '황과'라고 불리는지(중국 표기), 왜 중국 사람들은 사과는 나누어 먹되 배는 그러지 않는지, 생으로 먹는 것이 익숙한 과일들을 다양하게 먹는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알게 되실 것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저자가 주로 드는 예시들이 대부분 중국의 사례에 국한되어 있으며, 일부 내용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고 읽으시길 추천한다. 종의 이름이나 분류는 대체로 국제 표기를 따르며, 번역 명칭의 경우 국내에서도 사용하는 명칭으로 번역된 경우가 많아 그대로 읽으셔도 될 것 같다. 

(사족. 생각해보면 나는 학부 때 생약학을 정말 싫어했었는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식물도감을 즐겨 찾아봤던 걸 생각하면, 의도와 목적에 따라 같은 상황도 꽤나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미식의 측면보다는 다양한 식물들의 특성과 분류에 관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장점이었다. 그에 더해 자연스러운 중국 식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중국 내의 지역 특색에 대해서도 겉핥기나마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특히 죽순이 대나무 종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식재료라 스퀘어대나무의 죽순은 언젠가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 

 

끝.


   

오늘날은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미식가들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혀로 맛을 보고, 뇌로 밥을 짓는다. 
간절히 꿈꾸던 음식을 즐기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 인류가 발전해온 과정을 연구하다 보면 먹거리의 역사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된다. 과거에 인류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고,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농업과 목축업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먹거리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배를 채우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먹는 음식을 꼼꼼히 살피며 영양과 건강을 챙기는 일에 집중한다. 먹거리의 이모저모를 따지는 수준이 까다로워지면서 미식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 먹거리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저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로 들어가 질문했는데, 그때마다 늘 성실하게 답변해주었다. 예를 들어, 블루베리와 꼭 닮은 하얀색 과일이 무엇인지, 허브의 일종인 소회향 dill과 회향 fennel은 무엇이 다른지 물어보면 그는 답변을 달아주었다. 그 하얀색 과일은 인동딸기 snowberry인데 독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소회향과 회향은 모두 미나리과라서 생김새가 아주 닮았답니다. 소회향은 미나리의 맛이 좀 나지만 회향은 아니솔 Anisole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맛이 달라요. 

 


 

- 신선하고 달콤한 맛으로 따지자면 솜대보다 해밀턴의 대나무 hamilton's bamboo, Dendrocalamus hamiltonii가 훨씬 우세하다. 윈난성의 관광지 시솽반나에서 처음 이 죽순을 맛보았을 때 나는 요리사가 음식에 설탕을 넣은 줄 알았다. 나중에 다시 들렀을 때 일부러 주방으로 찾아가 아직 양념하지 않은 재료를 살짝 맛보았고, 그제야 죽순 자체의 단맛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대나무는 최대 27미터까지 자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나무 몸체가 길다 보니 죽순 하나가 1~2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로 크다. 죽순은 간장이나 된장 등을 쓰지 않고 기름에 볶기만 해도 미식가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맛을 낸다.

- 해밀턴의 대나무가 감미로운 맛으로 승부를 보는 반면 스퀘어대나무 square bamboo, Chimonobambusa quadrangularis의 살짝 쓴맛은 오리고기나 햄처럼 기름진 재료와 잘 어울린다. 산에서 이 대나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나무의 단면이 네모난 모양이고 마디가 가시 투성이기 때문이다. 산에 올랐을 때 무심코 이 대나무를 손으로 잡기라도 하면 가시에 찔려 유혈 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맛은 기가 막히게 좋다. 이 대나무의 죽순을 삶아서 말리면 날것보다 훨씬 맛있다. 하지만 삶아서 말린 죽순을 사려고 시장에 갈 때마다 허탕을 칠 때가 많았다. 이 죽순은 삶아서 물에 담근 뒤 꺼내 햇빛에 말린 다음 다시 연기에 그을려야 할 만큼 손질 과정이 번거롭고 오래 걸려 그리 많은 양을 팔지 않았다. 이렇게 손질한 죽순은 맛이 좋고 인기가 많아서 원산지 주민들만 먹기에도 부족했고, 우리 연구진도 그곳에서 일할 때만 가끔 맛볼 수 있었다.

 

- 학자들은 실 같은 김이 조개껍데기로 파고들어 가는 과정을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아기 김인 사상체를 또 다른 조류 식물로 착각했다. 게다가 사상체에 콘코셀리스 로세아 Conchocelis rosea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조개껍데기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콘코셀리스 로세아의 생애주기는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또 다른 포자, 즉 각포자 conchospore를 만들어내고, 이 포자가 자라서 김 모양의 해조류가 된다. 그러나 이런 김의 크기는 김국 한 그릇에 몇십 개를 넣어야 할 정도로 가소롭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바닷물의 온도가 김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이다. 김이 자라는 환경은 반드시 저온 상태여야 하는데, 바닷물의 온도가 섭씨 15도보다 낮아지면 작은 김이 신기하리만치 커다랗게 성장한다. 그래서 겨울과 봄은 김 생산 시기로 따지면 그야말로 황금기다. 김의 생애 주기는 1950년대가 되어서야 밝혀졌고, 1959년 일본 아리아케 해 有明海에서 이를 활용한 첫 번째 김 양식장이 만들어졌다. 그 후 김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수온을 제한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저온에 망을 걸어두는 냉장발 방식이 등장했고, 비로소 서민들의 밥상에 김이 자주 올라가게 되었다. 

 

-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엿이 그렇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음력 12월 23일에 자기 집 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탕구아 糖瓜(마늘 모양의 엿_역자)를 사서 부뚜막 신의 초상 앞에 바친다. 그 엿을 먹고 하늘에 올라간 부뚜막 신은 옥황상제에게 그 집에 대해 좋은 말만 해준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23일에는 당과를 입에 붙여요>라는 노래도 생겼다. 부뚜막 신의 치아에 과연 엿이 붙어 있을지 여부는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설탕 통 속에 있던 설탕을 엿으로 변신시킨 마법에만 쏠려 있었다.

 

- 얼음사탕 sugar candy은 흑설탕이나 백설탕을 이용해 새롭게 결정체로 만들어낸 결과에 불과하다. 제조법은 아주 간단하다. 설탕을 끓여 다시 시럽으로 만든 액체나 완제품 설탕이 되기 전 단계의 시럽을 붓고 대나무 조각 같은 흡착 용기를 넣어둔다. 그러면 시럽에 함유되어 있던 설탕이 서서히 결정체를 형성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순도 높은 얼음 모양의 사탕을 얻을 수 있다.  

 

-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런 설탕 제조 공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만 황토를 새로운 흡착제로 바꾸고, 대나무 조각 역시 새로운 흡착 용기로 대체했을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제조 과정을 보면 흑설탕과 백설탕, 얼음 설탕은 반제품과 완제품이라는 차이만 가진다. 흑설탕과 나머지 두 설탕의 성분을 살펴보면 백설탕과 얼음 설탕은 완전히 같은 물질이다. 일각에서는 흑설탕 속에 남아 있는 불순물이 우리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일까? 어쩌면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흑설탕의 놀라운 기능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흑설탕의 영양 성분은 백설탕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리뷰자 주 : 백설탕과 흑설탕의 차이는 당밀을 완전히 제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흑설탕(브라운 슈가)은 흑당(원당, 블랙 슈가)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판되는 흑설탕은 백설탕으로 정제한 후 색깔을 입힌 것이 더 많다는 점에 유의할 것.)

 

- 내 입맛은 외할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졌다. 외할머니의 요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할머니의 특별 레시피로 만든 황먼지(중국식 찜닭_역자)나 펀정러 粉肉(고기에 쌀가루를 묻혀 찌는 요리_역자)도 아닌 아주 평범한 파 국수였다. 파 국수에 들어가는 재료는 국수, 간장, 돼지기름, 파가 전부다. 만드는 방법도 아주 간단해서 밑간 재료인 간장, 돼지기름, 파를 넣어 끓인 국물에 삶은 국수를 넣은 후 간을 하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파 국수가 바로 완성된다. 짭조름한 맛의 간장, 끈끈한 점성을 만들어내는 돼지기름, 그리고 파의 향이 조화를 이루면 평범한 국수도 어느새 여느 맛집 메뉴 부럽지 않은 멋진 음식으로 탈바꿈한다. 향긋한 파가 빠진다면 짜고 느끼한 맛의 평범한 국수로 전락할 정도다.

 

- 어떤 요리든 언제나 파가 화룡점정이다. 두부실파무침부터 대파해삼무침, 파전, 파 향 새우볶음에 이르기까지 파는 모든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파는 맛이 가장 다양한 채소이기도 하다. 파를 생것으로 먹으면 알싸하게 입안을 자극하지만, 열을 가해 구우면 부드러워지고 기름에 튀기면 파 향이 짙어져 식욕을 돋운다. 다만, 파를 오래 내버려 뒀을 때 역한 냄새가 나는 게 흠이다. 지금 파의 유통량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파의 종류와 모양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그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어떤 파를 선택해야 할까?

 

- 지금은 다들 마라샹궈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지만 산초가 처음부터 인간의 입속에 바로 들이밀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초가 먼저 놓인 곳은 신을 섬기는 제단 위였다. 혀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식물은 사람들의 경각심을 충분히 불러일으켰다. 산초의 자극은 인체의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방해해 그 자체로 위험을 알리는 경고가 되었다. 다행히 산초는 얼얼한 맛뿐 아니라 독특한 풍미를 가진다. 특이한 향이 나서 중국 고대인들은 이런 풍미를 신령에게 바치는 가장 좋은 선물로 여겼다. 산초는 난초, 계피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향료로 대접받았다. 문장가 왕일이 초나라의 고대 의식에 쓰는 문장을 모은 <초사 楚辭>에 "신이 내려오게 하기 위해 향이 나는 초를 쓴다"고 주를 달았다. 상주 시대부터 산초가 제사에 등장한 배경에는 산초가 신의 향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수당 隋唐 시대까지 산초를 제사에 쓰는 전통이 이어졌다. 

- 공물로 삼을 경우 알갱이 형태의 본래 모습대로 바치거나 초주 椒酒라는 술을 담가 제사상에 올렸다. 누군가가 공물의 덕을 보거나 행운을 빌기 위해 초주를 마시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산초는 사람의 위장 속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산초는 여전히 신성한 상징물에 머물러 있었고 초주를 마시는 행위 역시 제사 의식의 일부였다. 산초가 신의 음식인 만큼 이 식물은 무덤에 죽은 이를 매장할 때도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껴묻거리다.

 

- 원래부터 찻물을 우리는 데 표준이 되는 온도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옥로처럼 특별히 단맛이 나는 차는 섭씨 50도의 낮은 온도의 물에서 우려내야 한다. 쓴맛을 내는 녹차폴리페놀이 찻잎 밖으로 나오게 하는 대신 잎 속에 가능한 한 많은 양을 남겨두기 위해서다. 저온의 물은 단맛을 내는 아미노산을 잎에서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과 우유를 배합해서 맛을 내는 홍차와 비교했을 때 녹차와 보이차는 물과 접촉하기만 하면 되니 단순한 편이다. 차라는 기호 식품을 두고 어떤 차의 맛이 최고인지 논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윈난 사람들이 잎 차에 열중하는 만큼 마리포 사람들은 구운 찻잎을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베이징 사람은 재스민차를 선호한다. 어떤 차든 각자의 입맛에 맞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최고의 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고춧가루 대신 계피와 육두구를 넣어 마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료는 마침내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해 시대에 맞게 탈바꿈했다. 나아가 사람들은 바닐라와 코코아를 간단하게 배합해 지금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기본 풍미를 만들어냈다. 바닐라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향료로 디저트나 케이크뿐만 아니라 화장품에도 광범위하게 들어갔다. 심지어 담배에도 바닐라 추출물이 쓰였다. 만약 당신이 아이스크림 향이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다면 그 한 개비의 80퍼센트는 바닐라 추출물로 채워졌을 것이다.

(리뷰자 주 : 여기서의 '바닐라 추출물'은 합성 바닐라를 의미한다.) 

 

- 아름답고 매력적인 연꽃은 늘 시선을 사로잡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셔터를 누르는 손놀림을 바쁘게 한다. 식물학자라고 직업을 밝히면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화 荷花와 연화 蓮花는 어떻게 다른 가요?"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똑같습니다." '하' 자와 '연' 자는 같은 의미이므로 둘 다 연꽃을 가리킨다. 

- 전 세계의 연꽃과 식물은 두 가지 종류뿐이다. 동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종은 '연'이고, 또 다른 종은 미국 황련 Nelumbo lutea으로 저 멀리 태평양 너머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분석해 연꽃이 1억 3,500만 년 전까지 북반구의 모든 담수 수역을 뒤덮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 대멸종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분포 범위가 대폭 좁아졌지만 끝내 연꽃은 자신의 조력자로 인류를 찾아냈다. 연꽃은 다시 땅을 개척하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기록에 따르면 5,000년 전에 중국에서도 연꽃을 심기 시작했다. 최초의 연못은 관상용이 아니었고 식량을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창사 長沙에 자리한 마왕퇴한묘 马王堆汉墓에서 연근 조각이 가득 담긴 찬합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연근은 훌륭한 당류의 공급원이다. 식감이 좋아서 주식이나 부식으로 위장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 연근의 풍미는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흔히 여름철의 연근을 '과우果繡'라고 부르는데, 이 연근은 아삭하고 단맛이 나서 날것으로 먹기에 좋다. 겨울철의 연근은 서걱거리고 찰기가 있어 푹 삶아내 단맛 나는 간식을 만들 수 있다. 찹쌀을 넣은 연근찜과 연근갈비탕은 모두 겨울철 연근을 사용하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연꽃은 봄과 여름에 활발하게 성장해 연근의 당류는 자당과 과당의 형태로 존재한다.  

 

-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꽃은 수련과에 속했다. 이 식물들은 외모가 서로 비슷하다 보니 누가 봐도 한 가족처럼 보였다. 분류학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수련과 연꽃은 같은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련과 같은 속씨식물은 지구상에 가장 먼저 출현해 속씨식물이라는 하나의 식물군을 형성했다. 이 식물군은 식물계의 기반을 이룬다. 그러나 연꽃은 진정쌍떡잎식물에 속한다. '전문적인' 개념에 식욕이 떨어진다면 연꽃이 수련보다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 사실 수련과 연꽃은 아주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연꽃의 잎은 항상 수면 위에 올라앉아 있고 수련의 잎은 수면 위에 바짝 엎드려 있다. 잎의 차이는 수련이 수면 아래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두 식물의 꽃 모양도 거울을 갖다 댄 듯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연꽃의 색은 분홍색과 하얀색 두 종류밖에 없는 반면 수련의 색은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한창 유행했던 노래 <푸른 연꽃 藍蓮花>에서 말하는 푸른 꽃은 연꽃이 아니라 수련을 뜻한다. 

 

- 흥미롭게도 늙은 오이는 확연한 노란빛을 띤다. 오죽하면 늙은 오이를 초록색으로 칠해 풋오이 마냥 꾸민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실제로 박과 식물은 절대다수가 여주, 참외, 멜론처럼 익어가는 열매의 색을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꾼다. 오이가 노랗게 변하면 더는 아삭한 식감을 되찾을 수 없다. 안에 든 씨앗은 딱딱해지고 과육도 스펀지처럼 변화한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윈난과 구이저우에서 현지 조사를 할 때 노란 오이 품종을 먹어본 적이 있다. 애호박과 비슷하게 생긴 굵고 단단한 오이였다. 단단한 껍질을 벗기면 두툼한 청록색 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육 중간쯤의 딱딱한 씨를 제거한 뒤 무치면 일반 오이와 맛이 비슷했다.  


-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곰팡이가 핀 부위를 제거하고 과일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곰팡이에서 생기는 파툴린은 과실의 다른 부위로 퍼진다. 중국예방의학과학원이 곰팡이가 핀 사과의 파툴린 함량을 조사했다. 사과에서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곰팡이 부위에 있는 파툴린의 10~50퍼센트를 함유했다. 정상적인 부위라도 파툴린의 양은 1킬로그램당 무려 3밀리그램에 달한다. 과일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손질해서 먹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 외관상 뚜렷한 변화가 드러나는 썩은 과일이 아니더라도 맛이 변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의 상태가 변한 과일을 종종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래 내버려 둔 사과에서 술 냄새가 난다면 먹어도 될까? 뚜렷한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먹어도 무방하다. 특히 사과와 같은 과일은 오랫동안 보관했을 때 호흡할 산소가 부족해져 십중팔구 무산소 호흡을 하게 된다. 그러면 사과 속 당류 물질이 알코올로 전환되어 술 냄새를 풍긴다. 똑같이 술 냄새를 풍기지만 이미 검은색으로 변하고 물러진 사과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발효된 사과에 있는 다른 잡다한 균은 해롭다. 곰팡이가 핀 과일처럼 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 썩은 과일이라 해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충격이 가해졌거나 저온 상태에서 보관했다는 이유로 썩은 과일은 몸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곰팡이균이 생겨 변질했다면 과일을 당장 쓰레기통에 넣도록 하자.

 

- 살충제를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사용하더라도 사과 껍질에 잔류하는 농약의 양은 과육에 들어 있는 양의 20퍼센트를 웃돈다. 평범한 수준의 농약을 함유한다면 중독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과수 농가들은 더 크고 탐스러운 사과를 생산해야 돈을 벌 수 있다. 농가에서 사과에 기준치 이상의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을 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진짜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사과의 껍질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지만 그 속의 영양분은 증가하지 않는다. 유기농 과일이라면 으레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더 높을 거라고 착각하곤 하지만 형편없는 식감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일반 과일보다 더 비싼 돈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리뷰자 주 : 과육에 들어있는 농약의 20%가 맞는지? 20배나 200%가 아닐까? 실제 과육에 껍질에 잔류하는 농약의 5배의 농약이 흡수되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 배추는 어떤 요리에 이용하는지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해야 한다. 기억하건대, 전혀 쓰촨 요리처럼 보이지 않는 '카이수이바이차이 开水白菜'의 주재료는 배추가 맞지만 배추를 식초에 절이거나 볶지도 않고 잘게 썰어 소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름처럼 단순히 끓는 물에 배추를 집어넣는 요리도 아니다. 정확하게는 돼지나 닭 따위를 국물에 고아 배추를 넣고 끓인 요리다. 암탉으로 국물을 낸 뒤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달걀흰자와 함께 솥에 넣고 불순물과 기름을 걷어낸 맑은 국이다. 국물이 얼추 완성되면 입동 무렵 수확한 속이 꽉 찬 배추를 골라 바깥쪽의 질긴 잎은 벗겨낸 뒤 여린 속만 솥에 넣고 끓이면 된다. 서리를 맞은 배추라면 단맛이 더 강하다. 맑은 국물 속에 배추가 들어간 아주 평범한 국이지만, 한 술 뜨는 순간 단맛이 우러난 담백한 국물의 맛은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힌다. 카이수이바이차이는 입이 아리도록 매운 쓰촨 요리 사이에서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요리다. 

 

- 콜럼버스가 이끄는 배들은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마침내 낯선 땅 '서인도제도'에서 매운 향신료를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찾은 향신료를 후추라고 확신하며 '페퍼 pepp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후 이 향신료는 드디어 유럽 땅을 밟게 되었으나 진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밝혀졌다. 그가 발견한 땅은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이었고 그가 발견한 후추는 오늘날 우리에게 고추로 알려진 식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름 붙인 서인도제도와 페퍼라는 명칭은 지금까지도 쓰인다. 영어로 페퍼는 가짓과 식물인 고추와 후추과 식물인 후추를 동시에 가리킨다. 하지만 백후추 혹은 흑후추만이 길다란 덩굴에서 자라는 진짜 후추다. 기원전 4000년부터 미국 원주민이 이미 재배하고 있던 가짓과 고추속의 이 고추라는 식물은 미국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추속 식물은 20여 종이 존재하지만 사람이 재배하도록 변화한 품종은 고추 단 한 종이다. 모든 고추가 매운 것은 아니어서 고추의 원예 품종인 피망에서는 단맛이 난다.

 

- 레몬은 양쪽 끝이 뾰족한데 유자는 왜 몸통이 둥글둥글할까? 자몽은 왜 오렌지처럼 생겼을까? 오렌지는 왜 귤보다 껍질을 까기 힘들고, 오렌지 향은 왜 레몬 향과 비슷할까? 유자의 일종인 샤텐유와 자몽은 친형제 사이일까? 당귤나무과 귤인 빙탕청 冰糖橙과 사탕쥐 砂糖橘(설탕귤)은 한 가족일까? "귤을 회남 지방에 심으면 귤이 되고, 회북 지방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감귤의 가족 관계를 정의하는 단 한마디 표현으로 '복잡하다'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 환경은 생물의 성질을 바꿀 만큼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안자가 자신을 조롱하던 초나라 왕에게 재치 넘치게 쏘아붙인 것에 불과한 이 말은 식물학의 모범적 명제로 자주 거론된다. 대학 시절에 어떤 교수님께서는 이 말을 두고 환경이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했고 심지어 이 원리는 생태학 시험에 출제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귤과 탱자가 본래 한 가족이었는데, 단지 물과 흙이 달라져 탱자의 맛이 시고 쓰게 변한 것으로만 보였다. 

- 그런데 실제 상황은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탱자나무 Poncirus trifoliata와 감귤나무 Cirrus reticulata가 완전히 다른 종이라는 데 있다. 나무의 생김새만 살펴봐도 귤과 탱자는 칼로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된다. 귤보다 크기가 더 작은 탱자는 겨울이면 꽃과 잎이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반면에 귤은 겨울에도 여전히 푸른 잎들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 탱자의 잎은 세 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된 '삼출 겹잎'인데 귤은 잎 두 개가 하나의 대에 이중으로 달린 '홑몸 겹잎'이다. 또한 더위에 강한 감귤나무와 달리 탱자나무는 추위에 강해서, 야생 탱자는 회남 이북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만약 탱자를 남쪽 지역으로 옮겨 심으면 간신히 버텨낼 뿐 달콤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탱자나무는 운향과 탱자속으로 분류했고, 감귤나무는 운향과 감귤속에 속하도록 따로 분류해두었다. 

 

- 그래서 시트론은 멀리 타향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 그 결과 변종 시트론은 서방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대교에서 시트론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대인의 조상은 이집트에서 빈손으로 도망쳐 나와 대추야자 잎사귀, 도금양나무와 버드나무의 가지 그리고 시트론 과실로 초막집을 짓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네 가지 식물은 초막절(추수절 혹은 주님의 축제_역자)의 성스러움을 상징해서 초막절이 돌아올 때마다 품질 좋은 시트론종은 꽤나 높은 가격에 팔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트론의 관상 가치가 식용 가치보다 훨씬 높은 듯하다. 

- 한편 포멜로는 본디부터 식용으로 쓰였다. 포멜로 껍질을 냉장고 속에 두고 냄새를 제거한들, 심지어 폼알데하이드를 흡수하는 '신비한 식물'로 여겨진들 과일로서의 격에는 미세한 흠집도 나지 않는다. 넘쳐나는 수분과 오랫동안 저장해도 끄떡없는 신선도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완벽한 과일인지 알 수 있다. 과육은 맛있는데 껍질을 벗기기 힘들었기에 첫인상은 엇갈렸다. 보관이 쉽고 껍질을 까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어떤 사람은 포멜로를 천연 통조림이라고 일컫는다. 포멜로는 특유의 쓴맛이 난다는 특징도 지니는데, 이는 리모닌 limonin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실제로 감귤류 과일의 맛을 꼼꼼히 분석해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쓴맛을 지니고, 그 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 첫 번째 대혼란 이후 스위트오렌지와 비터오렌지의 중간 품종이 생겨났고, 감귤 가족은 순항의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확장했다. 예를 들어 비터오렌지와 시트론을 교잡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레몬 Citrus limon이 탄생한다. 어딘가에서는 레몬도 시트론과 포멜로의 교잡종일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비터오렌지가 레몬의 유전자를 형성하는 데 확실히 기여했다는 증거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본래 사람의 이를 삭혀버릴 수 있을 만큼 신 시트론과 비터 오렌지는 힘을 합쳐 산성도를 극대화한 품종 '레몬'을 만들어냈다. 이에 질세라 스위트오렌지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이들은 포멜로와 함께 자몽 Citrus paradisi을 탄생시켰다.  

 

- 신뢰할 수 있는 감귤 집안의 가계도를 만드는 것은 과학자들의 해묵은 소원이었다. 단지 뛰어난 맛이나 세계 과일 무역의 큰 축으로 기능하는 귤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자에게는 감귤 집안의 친척 이야기가 북유럽 신화에 견줄 만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가계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다른 어떤 과일의 역사보다 더 스펙터클하다. 미국 에너지부서 DOE 산하 유전체 연구소의 과학자는 귤, 오렌지, 유자의 DNA를 분석한 후 마침내 감귤 집안의 가계도를 완성했고, <네이처 Nature> 학술지에 2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해 정리했다.

첫째, 우리가 먹는 유자, 시트론, 오렌지는 각각 보이는 대로 정체성을 유지한다. 유자는 유자고, 시트론은 시트론이고, 오렌지는 오렌지다. 하지만 귤은 반드시 귤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둘째, 세상의 모든 감귤류는 서로 사랑하는 가족 공동체를 이룬다. 시트론과 유자는 각각 부친과 모친의 역할만 할 수 있는 반면에 귤은 양친의 역할을 모두 맡는다. 
셋째, 감귤 일가는 모두 히말라야 출신이었고, 800만 년 전에 산 아래로 뿔뿔이 흩어진 후 동쪽의 타이완으로 갈지,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로 갈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 비터오렌지가 다양한 자손을 퍼트린 이후 스위트오렌지도 유자와 교잡한 결과 자몽이 등장했다. 유자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은 자몽은 오렌지보다 훨씬 크다. 마지막으로 무더기로 쌓여 있는 감귤의 가계도를 요약해보자. 귤 더미 속에는 가짜 귤, 즉 '교잡 귤'도 섞여 있다. 진짜 귤은 순수한 탄제린의 혈통을 유지하는 귤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널리 재배되는 난펑 밀감이 바로 탄제린의 순수 혈통이다. 탄제린과 유자의 후손인 폰칸 Pon Kan은 초기 교잡종이었고, 미국 전역을 한때 휩쓸었던 클레멘타인 Citrus clementaina은 탄제린과 스위트오렌지의 교잡종이다. 한편,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칭젠 오렌지 품종 역시 스위트오렌지의 대를 잇는다. 탄제린과 스위트오렌지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있었고, 인류 역시 실생묘(두 종자가 발아하여 생장한 묘목으로 영양 번식된 삽목묘_역자)에서 우수종을 선별하면서 감귤 가족사를 더 꼬이게 하는 데 일조했다.

(리뷰자 주 : 이 '폰칸'과 '칭젠(청견)'의 교잡종이 '한라봉'이다.)

 

- 나중에 바나나가 보급되는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맛과 향도 세세하게 나뉘었다. 불만스러운 말들도 종종 들려왔다. "바나나를 산다고 하더니 그 돈 주고 파초 Musa basjoo를 사 왔네. 파초는 맛도 없고 떫어서 차라리 안 먹는 편이 나아"라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파초와 바나나의 차이가 대체 얼마나 큰지, 생김새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바나나든 파초든 모두 야생종 무사 아쿠미나타 Musa acuminata(줄여서 A)와 무사 발비시아나 Musa balbisiana(줄여서 B)의 후손이며, 둘 다 아시아에 분포하는 파초과 파초속 식물이다. 두 종 모두의 과육 속에 들어 있는 씨앗의 밀도가 높아 용과의 씨앗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크다. 바나나 한 다발을 먹고 난 뒤 150그램이나 되는 씨를 뱉어내야 하는 느낌을 한번 상상해보자. 씨앗이 모든 바나나에 깃들어 있었다면 바나나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 라이양에서 답사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 친구가 라이양 배 상자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배가 어찌나 큰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아내가 커다란 배를 하나 깎아서 내게 건넸다. 
"배가 너무 크네. 아무래도 한 번 더 갈라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손바닥이 이미 내 등짝에 사정없이 내리 꽂혔다.
"뭐라고? 지금 나랑 이혼하고 싶다는 거야? 무슨 사고를 친 건지 빨리 이실직고해!" 
전쟁의 서막이 오르려는 기미가 보이자 나는 사태를 얼른 무마하기 위해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도 그 큰 배를 혼자 다 먹어버렸다. 장담하건대, 중국인의 대다수가 배를 이용한 말장난을 핑계로 상대방에게 귀여운 협박을 해봤을 것이다. 사과 [ping guò]를 나눠먹는 일은 평안 [pingan]을 함께 누리는 것이고, 야리 [yā li] (중국배의 일종_역자)를 갈라 먹으면 이별 [li bić]을 재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과와 배는 같은 과일일 뿐이지만 글자는 달라도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말장난을 칠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식사량이 적어 배 하나를 여럿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 사람은 배를 보는 순간 오해를 받을세라 지레 겁먹고 얼른 몸을 사려야 한다. 요즘 마트에서는 둘로 '가를' 필요도 없을 만큼 작은 배 쿠얼러庫爾勒가 출시되고 있다.  

 

- 산돌배의 떫은맛도 이런 식으로 제거한다. 가장 간단하게 과실을 익히는 방법은 일정 기간 동안 용기에 보관했다가 꺼내 먹는 것이다. 중국 동부 지역 사람들은 배를 익히기 위해 특별한 비책을 고안했다. 바로 배를 얼리는 방법이다. 금방 나무에서 딴 참이라 아직 초록빛인 산돌배가 거무스름하게 얼 때까지 영하 30도의 환경에 둔다. 얼린 배를 끓이다가 한순간 찬물에 담그면 배가 물의 열량을 흡수해 그릇 속에는 얼음과 물이 혼재한다. 이때 표면에 붙은 얼음을 떼어내고 껍질을 벗기면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흘러나온다. 이제 배는 다 익었다. 

 

- 그 시절 어른들은 붉은색 과육을 선호한 나머지 모든 수박의 속이 하나도 빠짐없이 붉었다. 수박의 색깔이 한쪽에 치우치게 된 과정은 당근이 대표적으로 주황색을 지니게 된 사연과 유사하다. 그나마 농가에서 수박을 기르다가 남은 종자에 의지하던 시절이었기에 노란 수박 종자가 종종 수박 더미에 섞여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종자 회사의 수박씨가 보편화되자 노란 수박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와중에 진샤오펑과 같은 특이한 수박이 다시 등장했다. 이 품종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실제로 수박의 과육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하나가 아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자만 해도 세 개나 되고 각 유전자 자리마다 두세 개의 대립유전자가 위치한다. 이들 덕분에 수박 속은 다채로워진다. 야생 수박과 재배 수박은 하얀색, 담황색, 밝은 노란색부터 분홍색, 주황색, 빨간색에 이르기까지 색깔의 선택지가 다양하므로 구태여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해 과육의 색을 조작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당도는 붉은 수박을 따라올 수박이 없다. 붉은 수박 중심부의 당도는 노란 수박보다 높다.  

 

 -살구씨의 쓴맛이 썩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지만 이 쓴맛은 단 음식의 '물리는' 느낌을 완충한다. 그래서 살구씨로 만든 그 유명한 살구씨 차와 '행인두부'는 디저트계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행인두부에는 콩의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단맛 살구씨를 갈아서 끓인 물에 우유, 설탕과 함께 한천이나 젤라틴을 넣고 굳힌 요리인데, 완성된 모습이 우연찮게 두부와 비슷해 이름을 '행인(살구씨)두부'로 붙였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행인두부 한 접시를 먹는 것만으로도 입이 행복해지고 더위를 날릴 수 있으니, 행인은 여름철 별미로 손색이 없다. 

 

- 살구씨 차는 살구씨를 갈아 끓인 후 우유, 설탕을 넣어 맛을 내는 음료다. 만드는 방법은 두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베이징의 오래된 명물인 살구씨 차는 정제한 살구씨 가루를 주재료로 삼아 땅콩, 깨, 장미, 계수나무꽃, 건포도, 구기자, 앵두, 백설탕 등 10여 종의 부재료와 함께 주전자에 넣어 물을 붓고 끓여 마신다. 살구씨 차의 맛은 동백차 油茶의 단맛과 비슷하다.

 

- 웬만하면 산간 지역에서 자라는 살구나무의 씨앗을 많이 접하게 된다. 호기심에 이끌려 가공하지 않은 채 섭취했다가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을 제거하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살구씨를 물에 넣고 끓인 후 맑은 물에 24시간 담가 두었다가 물을 갈아준 다음 다시 한번 담그는 것이다. 그러면 사이안화물이 제거된다.  

 

- 단순히 인디고를 건져 옷감에 바른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염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옷감에 염료를 묻히기에 앞서 쌀뜨물, 술지게미 등의 원료를 이용해 다시 발효시켜야 한다. 인디고가 환원 반응을 일으켜 인디고 화이트라는 무색의 물질로 변해야 염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디고 화이트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그래서 석회가 다시 끼어들어 물에 용해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드디어 우리는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염료를 완성했다. 완성한 염색약에 옷감을 넣어둔다. 섬유에 인디고 화이트가 충분히 스며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옷감을 다시 꺼내 햇볕에 말리면 인디고 화이트가 다시 산화되어 인디고 블루로 변한다. 섬유 속에 숨어 있던 인디고 블루는 옷감을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인다.

 

- 합성염료가 대세인 오늘날에는 천연염료를 만드는 과정이 눈에 띄게 번거로워 보인다. 게다가 실컷 물을 들여도 쉽게 색이 바랜다. 천염염색은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우리 곁에 천연염료가 다시 돌아올 날도 머지않았다.

 


 

- 수제 버터 딸기잼 만들기 
먼저 딸기를 잘게 썰어 냄비에 담은 후 약간의 물을 넣고 끓인다. 딸기 500그램을 넣었다면 물은 작은 술로 두 번 넣는 것이 적당하다. 딸기가 어느 정도 삶아지면 완전히 으깨 즙처럼 만들고 계량해둔 젤라틴을 그 안에 넣는다. 그런 다음 버터, 설탕, 잘 풀어둔 달걀을 딸기잼 혼합물에 붓는다. 이때 온도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걸쭉한 잼이 될 때까지 계속 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이제 맛의 신세계를 열어줄 버터 딸기잼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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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남 지방에서는 여러 가지 축제가 열린다. 온 집의 그릇과 대야가 총출동하는 물 뿌리기 축제, 밤을 새워가며 모닥불 위를 뛰어넘는 횃불 축제, 사랑 노래가 무르익는 삼월삼 축제, 심지어 곡식이 주인공이 되는 햅쌀 축제도 있다. 특히 햅쌀 축제는 지노족 Jino, 하니족 Hani, 수이족 shui이 모두 즐기는 축제로 유명하다. 황금빛으로 출렁거리는 벼가 산간의 둑을 가득 메울 때쯤 축제가 시작되고, 성대한 축제가 끝나면 낫을 들고 벼를 수확해 쌀을 찧어 밥을 짓는다. 햅쌀은 귀한 손님에게 먼저 대접할 만큼 맛과 향이 좋다. 그래서 햅쌀 특유의 향긋한 향이야말로 진짜 쌀의 맛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아쉽게도 서남 지방이 아닌 산시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 다만 나는 어릴 적의 식습관 때문에 모양새가 둥글고 굵은 자포니카 Japonica형 멥쌀을 선호했고, 태국 같은 열대지방에서 재배하는 가늘고 긴 모양의 향미를 포함한 인디카 Indica형 멥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 그러던 중 윈난성 농업과학원에 들어가 1년 동안 벼의 유전체 지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나에게도 여러 종류의 쌀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연구소에는 여덟 개의 전기밥솥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고, 연구원들은 매일 각각의 밥솥에 담긴 갓 지은 쌀밥을 하나하나 맛보며 빛깔과 향에 점수를 매겼다. 쌀은 종류에 따라 찰기나 향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두 가지 특성을 한꺼번에 지닌 쌀도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쌀을 고르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 유교 경전 <예기 禮記>에서 언급한 최초의 감미료는 대추, 밤, 엿, 꿀이었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재료인 대추, 밤, 꿀은 모두 자연에서 나는 감미료다. 하지만 수확하는 데 시간적 제약이 따르고 당도도 그다지 높지 않아 단맛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이 재료는 항상 아쉬움의 대상이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설탕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설탕이 등장한 이후 흐른 세월은 약, 1,000년에 불과하지만 그전까지 수천 년 동안 단맛은 과일과 꿀에서 가뭄에 콩 나듯 얻게 되는 귀한 맛이었다. 이런 천연 감미료를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자연과 마주한 인간의 일종의 순종이자 타협이다. 반면에 엿을 먹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일반적으로 식물의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 다량의 에너지 물질을 저장하는데, 밀의 씨앗에 저장된 에너지 물질은 전분이다. 비록 포도당이 여러 개 연결된 물질이지만 전분은 전혀 달지 않다(그 맛이 궁금하다면 집에 있는 식용 전분을 찍어 먹어보자). 전분은 식물의 성장을 위해 직접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므로 밀은 전분 입자를 더 작은 에너지 분자인 맥아당으로 분해해야 한다. 맥아에 함유된 특수한 단백질 아밀레이스가 분해 작업을 완성한다(전분을 찍어 먹었을 때 입안에 살짝 단맛이 도는 것은 아밀레이스의 작용 때문이다). 종자에 비축해둔 에너지가 거의 모두 당으로 바뀌면 밀의 싹이 튼튼하게 자라기 시작한다. 당이 성장에 사용되기 전에 추출하면 가장 원시적인 맥아당, 즉 엿이 만들어진다.

 

-  밀 속에 함유된 전분을 맥아당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다른 곡식의 전분도 마찬가지로 아밀레이스를 통해 맥아당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전분의 함량이 더 풍부하고 단백질은 훨씬 적은 쌀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예비 맥아당의 원료다. 그래서 엿기름과 푹 쪄낸 쌀밥을 잘 섞어서 적당한 온도에 두면 쌀의 전분은 맥아당으로 변한다. 전분이 당으로 변하는 과정이 끝나면 발효된 원료에서 물을 짜낸다. 맥아당을 풍부하게 함유한 이 농축액을 끓여 물기를 뺀 다음 두드려주면 마침내 맥아당이 엿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 흑설탕이 붉은빛을 띠는 이유는 철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사탕수수 껍질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설탕을 제조할 때 사용하는 사탕수수 겉껍질은 보라색도 아닌 데다 대나무 모양이어서 대나무 사탕수수라고도 불렸다. 설탕을 붉은빛으로 만드는 주된 물질은 사탕수수즙 속에 함유된 폴리페놀 polyphenols이다. 이 물질 때문에 사탕수수즙이 가공 과정에서 산화하면서 유색 물질과 결합해 바나나나 사과처럼 갈변한다. 한편 사탕수수에 함유된 아미노산은 당과 마이야르 반응 Maillard reaction을 일으킬 수 있다. 마이야르 반응은 아미노산과 당이 단단히 결합해 유색 물질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사탕수수에 있는 철분도 색깔과 분명 관련이 있다. 철분은 일부 분자와 결합해 더 진한 붉은색을 낸다. 그러나 흑설탕이 붉을수록 철분 함량이 높은 것은 아니다.

 

- 오늘날 흑설탕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오리지널 식품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감미로운 맛을 향한 사람들의 집착은 흑설탕의 탈색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색소 흡착제는 황토였다. 사탕수수즙에 황토를 넣으면 유색 물질 대부분이 흡착되고, 여과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비교적 불순물이 적은 시럽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시럽을 냉각하기만 하면 순백색 설탕이 만들어진다. 

 

- 적어도 위진 시대 이후부터 이런 풍속은 '제사, 초주'와 함께 버려졌으니 양귀비의 침실 벽에는 아마 산초가 없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조비연은 산초로 온 벽을 다 칠한 궁전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녀는 예비 세자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냈을지도 모른다. 어느 해에 나는 간쑤 남부에 있는 바이룽강 유역으로 난초과 식물의 분포를 조사하러 갔다. 때마침 그곳은 산초 풍년이었다. 한 달 동안 버스에 올라탈 때마다 짙은 산초 향이 코를 찔렀다. 향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진했다. 매년이 시기만 되면 초방전에서 살았던 황후와 후궁의 인내심이 얼마나 강했을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 하지만 나는 산초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어느 날 성묘를 하러 갔는데 아들이 잎사귀 하나를 들고 신이 나서 달려와 내게 자랑했다. 
"아빠, 잎에서 귤 냄새가 나."
분명 산초와 비슷한 화자오(초피나무) 잎이었다. 산초는 감귤과 마찬가지로 운향과 식물이었기에 감귤향이 어느 정도 날 법도 했다. 잎을 하나 따서 햇빛에 비춰보면 이파리 위에 반투명하고 둥근 기름점이 많다. 감귤을 비롯한 모든 운향과 식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기름점 안에는 리모넨 limonene, 리날로올 linalool과 같은 방향유가 잔뜩 들어 있고 감귤 잎과 화자오 잎의 짙은 향도 여기서 나온다. 우리는 귤 향이 나는 잎을 잔뜩 따서 집으로 가져갔다. 실은 모든 산초 잎에서 귤 향이 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초는 실제로 산초속 식물의 집합체다. 여기에는 화자오, 죽엽초, 천초, 산초, 야초 등 최소한 다섯 종류가 포함된다. 이들의 냄새는 천차만별이다. 화자오는 리모넨과 리날로올을 풍부하게 함유해 감귤 향을 강하게 풍긴다. 반면에 산초에는 에스트라골 estragole이라는 화합물이 풍부해 후추에 가까운 시원한 향이 훨씬 많이 난다. 물론 우리가 산초에 주목하는 이유는 향보다 얼얼한 맛 때문이다. 

 

- 요즘 들어 시장에 나가면 칭화자오가 자주 눈에 띈다. 특유의 얼얼한 맛은 농어 요리나 매운 땅콩인 마라화셩 麻辣花生과 잘 어울리고 매운 조개류 마라하이꽈쯔 麻辣海瓜와도 찰떡궁합이다. 마라하이꽈쯔 요리를 먹고 난 후 혀는 불이라도 날 것처럼 아려오는데 속은 확 풀려서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산초에 얼얼하고 아리다는 뜻의 마 자를 써서 '마자오'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 완전히 익었을 때 수확하면 칭화자오는 얼얼하고 아린 맛을 낸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 팔리는 이 산초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산초나무 종의 열매다. 일반적으로 화자오는 표면이 거친 데 반해서 이 종은 겉이 매끈하고 기름점의 수가 비교적 적은 것이 특징이다. 갓 익은 칭화자오의 열매는 여전히 붉은빛을 띤다. 하지만 오랜 시간 저장해두면 어두운 초록색 혹은 검은색에 가깝게 변한다. 

 

- 일반적으로 차의 색과 맛을 평가할 때는 절대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찻잎의 품질은 색과 향, 식감을 결정하는 성분에 달려있다. 엽록소는 색과 향에 영향을 주고 특유의 쓴맛을 내는 녹차폴리페놀은 식감에 영향을 준다. 기름에만 녹는 지질류 물질과 함께 아미노산도 찻잎의 식감과 관련 있다. 

- 새로운 새싹은 볕이 강하게 내리쬐지 않는 봄에 더 많은 엽록소를 필요로 한다. 차나무의 새잎은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푸릇푸릇해진다. 세포를 만드는 아미노산과 지질 물질은 가지의 뾰족한 부분으로 모두 몰려든다. 이곳의 세포는 온도의 영향을 받아 느린 속도로 생성된다. 그 결과 찻잎이 신선한 맛을 내는 데 한몫하는 아미노산이 대량으로 축적된다. 물론 대사 활동은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 쓴맛이 나는 녹차폴리페놀과 같은 이차대사산물을 쌓아놓는다. 이로써 균형 잡힌 맛이 만들어진다.

 - 어떤 방법을 써도 찻잎에서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벽돌차에서 크게 발전한 재스민차가 등장했다. 재스민차는 적어도 찻잎에서 향을 맡을 수 있다. 나는 한창 유행했던 방향제가 떠올라 아무래도 이런 차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방향제를 조금이라도 과하게 뿌리면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대한 기억이 재스민차를 거부하게 만들어서 재스민차보다는 같은 시기에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건강 음료 젠리바오 健力寶, 코코넛 주스, 망고주스를 더 많이 마셨다. 재스민차가 불량품으로 판정받은 찻잎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차라는 소문도 돌았다. 불량품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궁여지책이라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며 재스민차와 거리를 두고 있다. 언젠가 벽라춘 碧螺春, 마오젠 毛尖 등과 같은 이름의 녹차도 상자째로 선물 받았는데 손님 대접용으로만 쓸 뿐 자주 마시지 않는다. 

 

- 여름에 기온이 올라가면 차나무는 왕성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뾰족한 가지 끝부분 속 임시 창고에 축적된 아미노산의 양도 확연히 줄어든다. 또한 잎의 대사 활동이 왕성해져 지나치게 많은 폴리페놀이 그곳으로 쏠린다. 결과적으로 쓴맛이 강해지는 것이다. 여름철의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엽록소를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와중에 빛줄기가 엽록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보호제 역할을 하는 색소 안토시아닌도 생산해야 한다. 안토시아닌에서는 쓴맛이 나 혀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게다가 찻잎의 색과 맛을 떨어뜨린다. 한 연구진은 여름철에 차나무가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봄철의 생장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차의 식감을 크게 개선했다. 광고에서는 마치 찻잎을 따는 소녀의 손끝에서 차 맛이 바로 결정된다는 듯 우리를 현혹한다. 실제로 차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어린 찻잎을 딴 후 유념(찻잎을 비비고 꼬는 과정_역자)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 녹차 잎을 채취하면 가능한 한 빨리 살청 殺靑(연한 새 찻잎을 고온으로 건조해 발효를 억제해서 녹색을 보존하는 과정을 가리킴_역자)을 해야 한다. 찻잎의 효소가 작용해 잎의 색과 풍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볶거나 전열 기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녹차를 말리면 당류와 아미노산 사이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새로운 풍미 물질이 생긴다. 

 

- 찻잎이 신선할 때 차를 마셔야 가장 좋다는 말이 모든 차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보이차의 경우 특히 그렇다. 차의 진한 맛에 특별히 집착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갓 만들어진 보이차에 실망할 것이 뻔하다. 보이차는 녹차폴리페놀의 함량이 높은 운남대엽종을 원료로 사용하기에 쓴맛이 유난히 강하다. 시후 西湖 룽징 龍井 지역의 찻잎을 레드와인에 비유한다면 보이차의 찻잎은 도수가 높은 고량주와 이과두주에 견줄 만하다. 웬만큼 차에 일가견이 없다면 강력한 쓴맛의 공세를 버텨내기 어렵다. 대엽종의 본고장 윈난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른 지역의 차가 맛이 부족한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짐작하건대 녹차폴리페놀의 함량에 차이가 나기 때문일 듯하다. 다행히 보이차는 오래 묵혀 발효할수록 쓴맛이 줄어든다. 발효라는 단어에서 요거트, 간장, 삭힌 두부 같은 발효식품을 연상할 수 있다. 식품에서처럼 보이차에도 발효 과정이 일어난다. 홍차와 마찬가지로 보이차가 향과 맛이 좋은 음료로 변신하려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이차는 발효 과정에서 매력을 꽃피운다. 찻잎 표면에 붙은 곰팡이가 분해한 전분은 미묘한 단맛의 원천이 되고, 효모균이 단백질과 아미노산을 만들어내 차 맛이 더 풍부해진다. 또한 녹차폴리페놀은 테아루비긴과 테아플라빈으로 변해 차를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몸치장을 마치고 나면 보이차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드러난다. 


 - 초청 녹차가 등장하면서부터 건조 과정은 모두 빠르게 덮어 말리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초청 녹차는 신선한 찻잎을 딴 후 살짝 시들면 바로 살청하고 손으로 비벼 가마솥에 볶은 다음 유념 작업을 하는 과정을 거친 차다. 차를 볶거나 말리는 데 설비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종류에는 흔히들 말하는 보이생차 曾洱生도 포함된다. 

- 곰팡이로 빼곡히 덮이는 발효 과정이나 술을 빚는 과정과 다르다. 홍차는 찻잎 자체의 변화 과정에 의존한다. 잎이 시들해질 정도로 햇볕에 말린 후 유념을 거쳐 세포가 각종 효소를 가능한 한 많이 방출하도록 꼬드기는 과정이다. 녹차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테아루비긴 thearubigins과 테아플라빈 theaflavin 등 풍미를 지닌 각종 물질로 변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다음 햇볕 아래 두거나 불에 쬐어 말리면 녹차와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홍차가 탄생한다. 

- 우롱차 烏龍茶로 대표되는 청차 靑茶는 녹차와 홍차의 가공 공법을 결합해 만든다. 녹차처럼 직접 살청을 하지 않고 홍차처럼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키지도 않지만, 청차는 제 나름의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 맛있는 차는 좋은 찻잎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를 제대로 우려내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를 가장 이상한 방식으로 우려내는 곳은 윈난이다. 난초의 한 종인 파피오페딜룸 말리포넨스을 찾기 위해 디앤시난의 마리포 麻栗坡 현을 방문했을 때였다. 꽃이 필 무렵이었지만 방문 기간 내내 날이 습하고 추워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차를 매일같이 마셨다. 한기를 물리치려는 임시방편이었다. 아침마다 가이드는 차 때가 끼어 있는 주석 주전자에 찻잎을 반 정도 채워 넣었다. 그는 주전자를 화로에 올려 찻잎을 굽다가 찻잎에서 탄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미리 끓여둔 물을 부었다. 물과 찻잎이 한바탕 뒤섞여 끓어오르고 나면 탕약 같은 찻물이 두 개의 잔에 채워졌다. 그 차를 한 잔만 마시면 온종일산을 헤매고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그때는 차의 향을 중요하게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정신을 각성시키는 차의 진한 맛으로도 충분했다. 

 

- 차 애호가들은 찻잎을 우리는 물에 관해서도 예민하게 군다. 그들이 특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온도다. 정말 온도가 차의 풍미에 영향을 미칠까? 녹차폴리페놀은 일정 온도에 이르면 그제야 찻잎에서 빠져나온다. 보통 섭씨 80도 이상의 뜨거운 물에서 녹차폴리페놀이 찻물 속에 녹아든다.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찻물의 쓰고 떫은 맛은 마리포 현의 짙디짙은 차처럼 두드러진다. 

 

- 앵두의 뛰어난 맛과는 어울리지 않게 앵두를 심고 키우는 일은 앵두나무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혀를 내두를 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앵두를 입에 넣기까지의 과정도 바닐라 앞에서는 장난 이상으로 봐주기 힘들다. 바닐라의 성장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일 년 내내 밤낮의 기온이 섭씨 20도보다 낮으면 바닐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낮 기온은 섭씨 30도가 알맞고 습도는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된다. 최적의 환경이 모두 갖추어져도 바닐라는 무려 3년이 지나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이것은 겨우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 난초과 식물은 대부분 매우 낮은 확률로 자연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바닐라도 마찬가지로 나무 한 그루의 꽃봉오리 200여 개 가운데 고작 10여 개에서 열매가 열린다. 그마저도 전부 선택받은 꽃봉오리에 국한되어 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꽃가루의 전파는 중요한 단계로 알려져 있다. 꿀벌들이 꽃들 속을 헤치고 분주히 날아다니는 덕분에 우리는 아삭아삭하고 달콤한 사과와 매혹적인 리치를 먹을 수 있다. 바닐라의 고향에서는 특정한 종류의 벌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 이 벌은 효율성이 너무 떨어져서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받는 꽃송이의 수는 전체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바닐라 덩굴에서 수확하는 열매를 손가락으로 꼽아 셀 수 있을 정도다.

 

- 생산량을 늘리려면 사람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지만 이 방법 역시 쉽지 않다. 난초과에 속한 다른 식물처럼 바닐라의 꽃가루는 꽃가루 덩이를 형성해 한데 모인다. 꽃가루 덩이는 '작은 모자'라고 불리는 뚜껑 삭개 operculum에 덮여 있다. 작은 모자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현상을 막아 결과적으로 바닐라 생산에 차질을 빚는 주범이 되었다. 그러던 1833년, 한 소년이 바닐라를 인공 수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 지금 돌이켜보니 어릴 때 먹어봤던 아이스크림의 맛은 바닐린과 쿠마린에서 나온 듯하다. 진짜 바닐라와 합성 바닐라는 둘 다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적절히 그 맛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현실과 이상은 가까운 듯 먼 사이일 수 있다. 바닐라 향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 먹으며 RPG 게임 속 세상을 즐기는 행복을 무엇과 맞바꿀 수 있을까. 

- 식탁 위에서 연근이 홀로 자태를 뽐내자 연꽃과보다 훨씬 대가족을 이루는 수련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수련 집안에서는 순채와 가시연꽃의 연밥을 보내 연꽃이 가진 식탁의 지분을 빼앗았다. 순채는 시후춘차이겅 西湖純菜羹에 넣는 초록 잎으로 생김새는 목이버섯과 닮았다. 맛도 익힌 흰목이버섯과 비슷하다. 나는 '순로지사'라는 말을 들으면 순채의 맛이 궁금해진다. 순채와 농어 요리를 잊지 못하듯 고향을 그리는 마음 한 편의 순채 말이다. 가시연밥 역시 흥미로운 음식이다. 계두미 雞頭라고도 불리는 ... 

- 사실 황과는 호과가 잘못 전해진 이름이다. 오이는 원산지인 인도의 채소밭에서 일찍이 3,000년 전에 발견되었다. 훗날 남아시아 출신 민족이 오이와 함께 중국 남쪽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농학서 <제민요술 齊民要術>에도 그 당시 오이의 이름은 '호과'였다고 나와 있다. 확실히 황과라는 이름이 잘못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 조금 뒤에 쓰인 의학서 <본초습유 本初拾遺>에 비로소 황과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 지금 시장에서 파는 오이는 갈수록 예쁘장해지고 있다. 길고 곧게 뻗어 있을 뿐 아니라 꽃도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을 듯이 붙어있어서 시장의 오이를 볼 때마다 의심이 앞선다. 혹시 오이가 공업용 설비에서 생산한 일종의 제품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심지어 피임약으로 오이를 손질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피임약 처리를 한 오이를 먹으면 성조숙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라는 말이었다. 소문을 듣고 오이 추종자들은 오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 식물호르몬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화학약품이 아니다. 호르몬이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 한겨울의 북쪽 지역에서도 완벽한 모양의 토마토나 노란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식물호르몬 덕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채소의 생산 과정에는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 물질은 실제 식물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나프탈렌 아세트산 naphthaleneacetic acid이나 이사디 2,4-Dichlorophenoxyacetic acid, 2, 4-D가 있다. 식물이 스스로 분비하는 물질은 식물호르몬으로 부르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은 식물생장조절제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건강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명칭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화학물질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이목을 집중한다. 몇 년 전에 여자아이가 강제로 후숙한 딸기를 먹으면 성조숙증에 걸린다는 기사가 등장해 꽤 오랫동안 딸기 판매량이 급속도로 줄어든 적이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딸기는 갈수록 커지고 붉어져 탐스러운 모양새를 자랑하지만 딸기를 먹고 실제로 성조숙증에 걸린 사례는 보도된 적이 없다. 

 

- 현재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식물생장조절제는 에테폰 ethephon이다. 동물의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estrogen, 프로게스테론 progesterone, 테스토스테론 testosterone과는 화학적 구조나 기능이 확연하게 다른 호르몬이다. 더구나 식물 속에서 분비되는 생장 호르몬과 인간의 성장호르몬은 전혀 상관이 없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식물호르몬은 화학 신호를 주고받는 저분자 물질일 뿐 결코 세포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사람의 호르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식물호르몬과 작용하지 않는 이차대사산물이다. 최근 그중 하나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대두이소플라본 soybean isoflavone과 리그난 lignan 성분을 포함한다. 식물이 생장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폐경기 전후 여성이 적당한 양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섭취하면 여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져서 나타나는 골다공증, 식은땀, 홍조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식물생장조절제는 병충해를 예방하기만 할 뿐 식물의 생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기능과는 관련이 없다. 

- 레몬 오일을 사용해 마사지를 한 후 피부가 검게 변한 사례도 있었다. 서로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사례들의 배후를 조종한 것은 놀랍게도 하나의 화학물질 푸로쿠마린 furocoumarin이었다. 이 물질은 식물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빛에 민감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푸로쿠마린의 '범행 과정'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다.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일반적으로 이 화학물질이 320~380 나노미터 단위로 진동하는 자외선 파장을 강력하게 흡수한다는 것이다. 자외선의 높은 에너지로 기력을 보충한 후 푸로쿠마린은 '폭탄'이라도 된 듯 세포 속에서 파괴 공작을 벌이려든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도 푸로쿠마린은 DNA와 결합해 유전자를 정상적으로 복제하거나 전사(I A에 적혀 있는 유전정보를 mRNA로 옮기는 과정_역자)하는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산소가 모자랄 때는 세포막을 파괴해 세포를 죽여버린다. 이때 멜라닌 색소가 침착된다. 그 결과 발진이 일어나고 물집이 잡히면서 피부가 검게 변한다. 증상의 심각한 정도는 몸 상태가 어떤지, 빛을 얼마나 오래 쬐었는지, 어떤 식물과 접촉했는지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사람들은 모두 식물과 접촉한 후 밝은 햇빛에 노출되었고 결국 푸로쿠마린과 같은 '흑색 폭탄'이 터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채소의 섭취량을 조절하고 선크림을 바르는 등 자외선을 차단하면 폭탄의 뇌관을 미리 끊어낼 수 있다. 사실 푸로쿠마린이 갱생 불가한 존재는 아니다. 피부에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백반증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기도 ...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법만 유일한 선택지로 남는다. 효과는 매우 뛰어나다. 섭씨 4도에서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은 딸기는 8일 동안만 멀쩡하게 보관할 수 있고, 2주 정도 지나면 완전히 썩어버린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방사선 처리를 마친 딸기는 20일 동안 신선도를 유지한다. 방사선 조사 식품의 원리에 관한 설명에서 '억제'나 '사멸'과 같은 단어가 보이기는 하지만, 인체에 무해하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사선은 코발트60에서 나온다. 이 방사성 물질은 매우 강한 감마선을 방출하지만 감마선 사이에서 우연히 방출된 베타선을 차단하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 자가 결합한 사슬을 끊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슬이 끊어지면 단백질, DNA와 같은 중요한 물질은 비활성화하거나 심각한 오류를 일으켜 생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감마선에 직접 노출되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 혹시 방사선을 띈 음식물에는 농약을 친 다른 음식물처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물질이 남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먹는 음식은 주로 탄소, 수소, 산소 세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적으로 방사성을 지닌 극미량의 원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원자가 방사성이 전혀 없다. 방사성이 없는 원자는 고에너지 중성자와 부딪히고 나서야 비로소 방사성 물질로 변한다. 그러나 코발트 60이 방출하는 감마선에는 고에너지 중성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방사선을 띈 음식물에 잔류하는 '방사성 물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 방사선 조사는 미생물 속 분자를 파괴하는 멸균 작용으로 신선도를 유지하게 한다. 이때 영양 성분 분자도 함께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그럴 확률이 높다. 감마선은 분자의 화학 사슬에 충격을 가할 때 사람에게 유용한 부분과 쓸모없는 부분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방사선이 영양물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 방사선 처리한 딸기의 비타민C와 당 함량에 변화가 없었고 유기산의 함량만 0.84퍼센트에서 0.8퍼센트로 약간 떨어졌을 뿐이다. 물론 방사선은 딸기가 아닌 다른 식물이 생명 활동을 하거나 영양소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생강에 방사선을 쏘이자 투과량에 따라 초기 비타민C의 손실이 증가했다. 대량으로 존재하는 당류와 섬유소 같은 영양 성분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변질될 경우 손실될 영양 성분까지 예상한다면 방사선 처리를 하는 것이 더 많은 영양물질을 보전하는 데 유리하다. 방사선을 쬔 생강의 경우 저장 기간이 120일을 넘기면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은 생강보다 비타민C 함량이 더 높았다. 

(리뷰자 주 : 4개월 이전에 먹을 거라면 쬐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일찍이 18세기 말부터 영국인들은 망고스틴을 자국으로 들여오려고 시도했다. 당시 대영제국은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지구상의 모든 진귀한 화초를 모아 영국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싶었다. 진기한 화초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어떻게 운반하느냐가 문제였다. 일 년에 가까운 항해 기간 동안 이 식물들을 죽이지 않고 실어 나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식물을 보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각종 난방 장치와 온실이 속속 등장했지만 계속되는 노력에도 식물을 운송해 옮겨 심는 일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영국 본토에서 재배한 망고스틴은 1855년이 되어서야 처음 열매를 맺었다. 그때 비로소 영국 여왕은 이 열대 과일을 맛볼 수 있었다. 그 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망고스틴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점차 확산했다. 

 

- 여기서 나무를 통째로 옮길 수 없다면 씨앗만 가져다 심으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나무 옮겨 심기보다 씨앗 심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망고스틴 씨앗의 수명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온도와 습도 등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씨앗의 수명은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 망고스틴은 무성생식을 한다. 꽃은 다른 망고스틴 개체와 꽃가루를 주고받는 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씨앗은 씨방 내벽의 세포에서 자라난다. 망고스틴 씨앗에는 망고스틴 나무 모체의 복사본이 들어 있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씨앗을 이용해 망고스틴을 재배하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씨앗 대신 싹과 잎을 직접 활용해 조직을 배양하면 새싹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배양기의 성능이 나아지면서 건강하게 생장하는 망고스틴 묘목을 얻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 오이도 냉장고에 들어가면 표면에 반점이 생기고 과육은 물러진다. 온도가 낮아져 성벽 기능을 하는 세포막이 힘을 쓰지 못해 세포가 괴사하게 된다. 낮은 온도에서 동상을 입은 바나나든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은 사과든 모두 세포가 손상을 입는 것으로 귀결된다. 세균이 손상된 세포의 영양분을 선점해 먹어치우기 전까지 이 과일들은 비교적 안전지대에 놓여 있다. 맛과 식감은 살짝 떨어질 수도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손상된 세포에서 아미노산, 당, 무기염 등이 흘러나오는 순간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특히 진균의 생장에 알맞은 환경과 조건이 마련된다. 일단 이곳에 이미 곰팡이가 생겼다면 큰일이다. 

 

- 가끔 썩은 사과에 곰팡이가 피면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을 때가 있다. 별다른 이상 증세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행동에는 커다란 위험이 뒤따른다. 과일에 가장 많이 생기는 곰팡이는 푸른곰팡이 penicillium다. 이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파툴린 Patulin은 동물의 위장관의 일을 방해하고 신장 부종 같은 병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파툴린과 세포막이 한번 결합하기 시작하면 더는 되돌릴 수없다. 다시 말해, 파툴린이 세포와 결합해 엉겨 붙은 다음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세포를 손상시키고 심지어 암을 유발한다. 파툴린을 먹인 생쥐의 절반을 죽일 수 있는 양은 몸무게 1킬로그램당 수컷의 경우 46.3밀리그램, 암컷의 경우 29~48밀리그램이었다.  
 

 - 야외에서 조사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구이저우의 피망, 쓰촨의 하늘고추 朝天椒, 윈난의 주름고추 敏皮辣椒 등 남서쪽 지역에서 다양하게 재배되는 고추를 경험했다. 고추를 들여온 지 겨우 300여 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고추는 남서쪽 지방의 요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식재료다. 아메리카 인디언과 마야인이 사는 곳을 제외한 세계 곳곳에 이 식물이 알려졌던 것도 500년 전의 일이다. 

- 누군가가 보물을 찾기 위해 야망 가득한 여정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고추의 세계 정복이 시작되었다. 야심 찬 첫 발자국의 주인공은 콜럼버스다. 농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시고, 달고, 쓰고, 매운 기본적인 맛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각종 향신료에 주목했다. 유럽인들에게 향신료는 동방의 신비로운 나라에서 먼 길을 건너 운반되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았다. 당시 보물 중의 보물은 단연 후추였다. 특별한 매운맛을 지니는 향신료는 음식의 향미를 돋우고 소화를 촉진해 더부룩한 속을 편안하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다. 유럽인들이 후추를 갈망하던 마음을 요즘식으로 풀이하자면 한때 사람들이 샤넬 NO. 5 향수를 갖고자 열망하던 것과 같다. 유럽인들은 페르시아 상인으로부터 비싼 값에 후추를 구매했지만 양도 부족한 데다 공급마저 원활하지 않았다. 보다 못해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후추를 찾아 나서는 긴 여정의 닻을 올렸다. 

 

- 감귤 집안의 역사가 정말이지 너무 복잡한 탓이다. 임의로 두 종을 한데 엮기만 해도 새로운 종인 '사랑의 결정체'가 태어난다. 그 종의 후손들도 다른 감귤속 식물과 재결합해 더 많은 변이를 일으키며 또 다른 새로운 종류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인류는 그 가운데 가장 맛이 좋은 개체끼리 번식시켰고, 심지어 바다 건너까지 과일을 전파하며 진기한 변이 현상을 재촉했다. 결국 감귤 가족의 가계도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복잡하게 뒤엉켜버렸다. 

- 그러나 식물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시트론 Citrus medica, 포멜로 Citrus maxima, 탄제린 Cirrus reticulata이 감귤 가족의 진정한 3대 원로라는 것이다. 세 과일은 모양, 향, 맛 그리고 껍질의 두께가 다를뿐더러 각각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차이 난다. 

- 시트론은 3대 원로 중 가장 연장자다. 일반적으로 껍질이 과실 전체의 절반을 넘는 두께라 식용 부위가 너무 적기 때문에 흔히 과일의 범주 밖에 둔다. 이러니 절대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없다.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담긴 과일 바구니에는 작은 손 모양처럼 생긴 변종 레몬 '불수귤'도 간혹 등장한다. 그러나 시트론은 맛 좋은 과일을 원하는 사람들의 눈에 띌 만한 특징을 가지지 못한다.

- 오렌지는 포멜로, 탄제린의 특징을 조합한 과일로, 교잡 규칙에 따른 특징을 지닌다. 크기는 귤과 비슷하고, 그 맛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재배종 스위트오렌지(당귤 Citrus x sinensis)와 비터오렌지(광귤 Cirus x aurantiron)가 있다. 오렌지의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그 껍질이라 할 수 있다. 오렌지 껍질은 탄제린처럼 얇지 않아 탄제린 껍질을 벗겨내듯 손쉽게 손질할 수 없지만, 포멜로만큼 두껍지도 않아 포멜로처럼 힘겹게 애를 써야 하는 정도는 아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두 종을 교배시켜 오렌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종종 의심하지만 사실 포멜로와 탄제린은 자연적으로 결합했다. 오렌지는 인류가 육종 기술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언덕 위에서 사람들을 굽어보며 자신의 열매를 보란 듯이 과시해온 천연 교잡종이다. 

- 기원전 2500년에 중국에서는 벌써부터 오렌지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고고학 사료에서 발견되었다. 서양인들에게 오렌지가 알려진 시점은 그보다 한참 뒤였다. 무려 14세기에 이르러서야 포르투갈인에 의해 유럽 지중해 해안에 심겼고 1493년이 되어 콜럼버스가 두 번째로 아메리카 대륙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상륙해 뿌리를 내렸다. 오렌지는 그곳에서 진정한 낙원을 찾은 듯하다. 시장의 가판대에 놓인 수많은 스위트오렌지의 원산지가 미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광경이 오렌지의 고향마저 아메리카 대륙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다래가 뉴질랜드로 건너가 자라면서 키위로 변신해 몸값을 한껏 불린 스토리와 매우 흡사하다.  

 

- 동시에 시트론에게는 또 다른 후손 '라임'이 생겼다. 라임은 언뜻 보면 레몬과 비슷해 보이나, 잎과 꽃의 크기가 좀 더 작다. 원래 알려진 라임의 부계는 포멜로였지만 지금 와서 라임의 가계도를 보니 시트론과 포멜로만 결합한 결과로 태어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모계가 복잡한데, 이미 확인된 시트론 외에도 포멜로, 탄제린, 파페다 Cirus micrantha가 모두 '라임 만들기'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크다. 

- 첫 번째로 소개할 바나나는 꽤나 오래전에 조합된 AA의 2배체 그룹이다. 무사 아쿠미나타가 거느린 서로 다른 아종 사이에서 교잡이 일어나 만들어진 그룹이다. 재배종의 유전자와 이 그룹 야생바나나의 2배체 유전자는 일치하지만 야생종은 가격이 만만치 않아 쉽게 구할 수 없다. 마트에 적은 양으로나마 진열된 '황제 바나나'가 바로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 두 번째 바나나는 인도에서만 자라는 AB 그룹인데,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재배지가 한정되어 주목을 덜 받고 있다.

- 세 번째 바나나는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인 AAA 3배체 그룹이다. 상품 가치를 지닌 거의 모든 바나나가 이 가족 그룹에 속하는데, 그중 하나인 '캐번디시 Dwarf Cavendish' 품종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네 번째 바나나는 AAB 3배체 그룹이다. 이 조합은 인도 남부에서 발전했다. 서양인들은 과실을 발견하고 수분 함량이 낮은 편인이 바나나에 '플랜틴 plantain'이라는 별명을 따로 붙였다. 

- 다섯 번째 바나나는 인도, 필리핀, 뉴기니에서 기원한 ABB 3배체 그룹이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 주민들이 주식으로 삼는 식물이다. 이들은 '삶아서 먹기'라는 바나나 조리법을 찾아냈다. 이 바나나는 파초에 훨씬 가까운 유전자를 갖지만 여전히 '바나나'로 불린다. 특히 AAB와 ABB 그룹은 '대초大蕉’라는 이름으로 바나나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분류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 여섯 번째 바나나는 BBB 3배체 그룹이다. 이 바나나는 중국 윈난과 베트남 등지에서 보편적으로 재배한다. 광둥에서 자라는 대초도 구성원으로 포함된다. 이 그룹은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파초로 일컬어지는 바나나인데, 나중에 식물학자들은 이 조합도 대초로 다시 분류했다. 

- 이밖에도 4배체 AAAA, ABBB 그룹이 존재하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나나는 아니다. 그래서 간단한 유전학적 결론을 내리자면, 예부터 바나나로 불리던 정통 과일은 AAA 그룹이다. 정통 바나나를 제외한 바나나종이 모두 파초라면 AAB, ABB, BBB는 파초권에 속한다. 현재 중국에서 재배되는 바나나는 거의 AAA 그룹이다. 

- 초겨울 어느 날 동료가 봉투 하나를 품에 안고 사무실로 들어와 나눠먹자고 했다. 봉투에는 흑대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대추는 정말 특이했다. 껍질은 까맣고 과육 속에는 씨앗이 없어서 절대 대추 가족의 일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흑대추는 대추와 관련 없는 식물이다. 흑대추는 감나무과 감속 식물인 고욤나무의 과실이라서 고욤이나 군천자 君遷子라고도 불린다. 게다가 싱싱한 고욤의 모습은 대추라기보다 작은 감에 더 가깝고 말리는 과정에서 그 모양만 대추의 형태로 점점 변해간다. 

 

- 초등학생 시절에 고욤나무가 등장하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숲 속에 원숭이 형제가 살았는데 우직한 형은 부지런했고 욕심이많은 아우는 매사에 잔머리를 굴렸다. 숲속 가을 운동회가 열리던 날, 두 형제는 힘을 합쳐 우승을 거머쥐어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상으로 받았다. 아우는 얼른 톱을 가져와 나무를 반으로 자르더니 아래쪽에 있는 절반을 먼저 차지하고, 위쪽 절반을 형에게 건넸다. 아우는 뿌리가 달린 반쪽짜리 '감나무'를 심어 해마다 감 열매를 수확할 속셈이었다. 아우의 생각으로는 형이 가져간 줄기 쪽 부분은 감을 한 번 따먹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것처럼 보였다. 일 년이 지나고 열매를 수확할 때가 오자 동생이 정성껏 키운 감나무에 검은 대추가 열렸고, 형네 감나무에는 가지가 휘어지게 감이 열렸다. 

- 어째서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졌을까? 대부분의 감나무는 접붙이기할 때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쓴다. 상으로 받은 나무는 접붙이기한 감나무였기에 동생이 약삭빠르게 가로챈 밑동은 고욤나무였다. 고욤나무를 감나무로 생각한 아우가 쾌재를 부를 때 형은 다른 고욤나무 한 그루를 가져와 자신이 가진 감나무 줄기를 접붙였다. 형은 감나무에서 해마다 감을 딸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꾀를 부리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경종을 울릴 뿐 아니라, 식물학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 이제 감에 물린 사람들은 고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렇게 대추인 듯 보이지만 대추라고 할 수 없는 '흑대추'가 사람들의 구미를 당겼다. 중요한 사실은 고욤이 감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더 가깝고 훨씬 영양가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욤이 감 일가의 구성원인 이상 감과 유사한 성분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고욤도 많은 양의 탄닌을 함유하고 있다. 공복에 너무 많은 고욤을 먹으면 탄닌이 위액과 결합해 단단한 덩어리 형태의 '위석'을 만들어내 병원 신세를 지게 한다

 

- 나는 물질적으로 빈곤한 시대를 살았던 세대는 아니다. 어려웠던 시절, 대추야자(혹은 꿀대추)는 말할 수 없이 귀하고 값비싼 과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당을 낮춘 음식이 추앙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른들의 입으로 전해 듣기만 했던 대추야자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옛말이 되었다. 이제 정통 대추야자도 아닌 이라크 대추야자에 관심을 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라크 대추야자'라는 이름은 진실과 거짓의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이 열매는 대추야자의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이라크와 관련 있다. 그러나 이 열매는 대추에 속하는 식물도 아니고, 한자 이름처럼 '꿀'을 첨가해 가공을 거친 것도 아니다. 이라크 대추야자는 종려과 식물에 속하는 대추야자를 건조한 열매다. 열매가 열리는 대추나무가 야자나무와 닮아서 대추야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먹어온 콩은 18세기 초가 되어서야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인이 기존에 키우던 소, 돼지 등의 가축이 충실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므로 그들에게는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콩의 역할은 가축의 사료를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765년 선원 새뮤얼 보엔이 미국에 심은 콩은 더 넓은 땅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인 역시 콩을 식재료로 사용하기보다 산업적 가치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국내 농산물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농사짓기 좋은 땅으로 토양을 개량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질소 박테리아 함량이 높은 콩을 재배해 농지의 유기 질소 함량을 높였다. 이렇게 생산된 콩은 어디에 쓰였을까? 콩들은 두부 공장이 아닌 착유 공장으로 보내진 다음 식용유가 아닌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 속에 들어갔다. 사실 자동차를 생산하던 포드는 콩 요리에도 관심을 두어 콩 아이스크림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재미 삼아 콩을 맛보았을 뿐 콩 요리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콩의 기능과 그 가능성마저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콩기름과 단백질의 수요는 날로 치솟았고, 미국은 세계적인 콩 재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또한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더 편리하게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유전자 변이 콩도 등장했다. 글리포세이트 glyphosate를 넣은 제초제 라운드업 Roundup에 저항성을 가진 유전자 조작 콩은 몬산토가 낳은 첫 번째 유전자 조작 식품이다. 이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설계된 콩은 글리포세이트의 존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농부들은 이 제초제를 뿌리기만 하면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 꼭 필요하지만 번거로운 여러 가지 일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유전자를 가진 콩은 다른 콩처럼 싹을 틔울 수 있다. 누군가는 몬산토가 공짜로 두고두고 쓸 씨앗을 제공한 셈이 아닌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다들 종자를 받아두고 계속 심으니 회사만 억울한 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몬산토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해 종자를 남겨두었다가 다시 재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 종자를 보급하던 초기에는 농부들이 사사로이 종자를 식물체에서 직접 받아두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회사는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철저하게 조사해 그런 편법을 빠른 시일 내에 바로잡았다. 몬산토는 1999년에 씨앗 보관 제보를 500건 넘게 받자 그중 65명의 농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들은 헥타르당 2,0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 그렇다면 종자의 번식을 제한하는 기술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1998년 미국 농무부는 종자의 발아를 제한하는 기술을 발표했다. 종자를 테트라사이클린 tetracycline 용액에 담그면 생산량이 많고 병균에 강한 작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종자는 모두 번식을 할 수 없었다. 농민이 이 종자를 샀을 때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종결자'라고도 불린 이 기술은 종자 회사의 특허권 소득을 보장하는 귀한 재산이었다. 원리도 아주 간단했다. 종자의 생사를 통제하는 특수한 유전자를 삽입하고, 테트라사이클린의 작용을 시작 신호로 삼는다. 이 신호는 종자가 발아할 수 있을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유명한 과학 기자 다니엘 찰스 Daniel Charles는 유전자 조작 작물에 관한 그의 저서 <수확의 신 Lords of the harvest>에서 이렇게 비유했다. 종결자는 일련의 유전자로 구성되며, 유전 기능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 유전자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제 기능을 못하는 쥐덫처럼 개폐 기능이 느슨해져 종자가 정상적으로 번식하는 환경을 만든다. 하지만 테트라사이클린 용액으로 처리하고 나면 종자 속의 '쥐덫' 개폐 기능이 바로 작동하며 '달깍' 하고 문이 닫혀버린다. 이 과정을 거친 종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후손은 더 이상 싹을 틔울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도 '종결자' 기술은 실제로 응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 콩이 아닌 경우 무슨 문제 때문에 싹을 틔우지 못하는 걸까? 

(리뷰자 주 : 중국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 듯 하다.)

 

      

 

 

 

 

 

 
미식가를 위한 식물 사전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텔레비전 예능에는 ‘음식’이 단골 소재가 된 지 오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는 먹방, 레시피, 맛집투어가 인기 콘텐츠로 조회수가 높다. 이제는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식재료 구입부터 손질, 조리, 보관까지 셰프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졌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즐기는 것도 젊은 MZ세대 사이에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 재료, 특히 식용 식물에 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잘못 알고 있는 영양 상식도 수두룩하다. 『미식가를 위한 식물 사전』은 식욕만큼이나 강렬한 음식에 대한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식물학자이자 미식가인 저자는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식물에 얽힌 역사와 문화, 과학 지식은 물론이고 맛있게 음식을 요리하는 방법부터 영양 성분, 식재료 구매 시 유의 사항과 올바른 보관법까지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더불어 우리가 평소 식용 식물에 관해 품었던 궁금증을 풀어주고 팩트 체크를 통해 잘못 알려져 있던 상식을 바로잡아준다. 쌀, 고추, 감자, 마늘, 밀가루, 버섯, 콩, 김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부터 죽순, 바닐라, 망고스틴, 난초, 리치, 백합 등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식재료까지 43가지의 식물 이야기가 한 상 가득 펼쳐진다. 이 책은 우리가 먹는 음식의 맛과 향과 식감을 한층 더 맛있고 풍성하게 꾸며줄 것이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실력도 탁월하다.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한데 버무리면서 때로는 친숙하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치밀하고 신랄하게 이야기를 요리하는 솜씨도 책 읽는 맛을 더한다.
저자
스쥔
출판
현대지성
출판일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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