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닐 게이먼 / 켈리 존스 / 마이크 드링겐버그 / 말콤 존스 3세 / 맷 와그너 / 딕 지오다노 / 조지 프랫 / 크레이그 러셀 / 이수현
출판 : 시공사
출간 : 2009.02.25
넷플릭스의 <샌드맨>을 보려고 작년부터 몇 차례 시도해 보았는데, 긴 호흡으로 집중할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아직도 시즌1 정주행을 마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원작이나 다시 뒤적여보았다.
사실 원래 읽으려고 했던 건 <샌드맨 - 꿈 사냥꾼>인데 찾지를 못해서 <샌드맨 - 안개의 계절>을 읽게 되었다. <꿈 사냥꾼>은 샌드맨 시리즈의 외전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미묘한 독립적인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워낙 좋아해서 알게 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샌드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통 샌드맨 시리즈를 접하는 순서와는 반대로 읽게 되었던 셈이다)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꿈을 사랑하려면 적절한 균형과 거리가 필요하다. 현실이 굳건하지 못한 채로 꿈에게 너무 다가가면 그에게 사로잡혀 버리고 만다.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현실 또한 사랑하면서 꿈을 사랑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사로잡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현실 - 혹은 ... 이 된다.
탁월함에 낭패스러운 면이 하나 있다면, 평범한 세계에서의 삶을 산 지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묘하게 마음을 갉아먹는 불안한 전망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썼다. "하찮은 것들이 완벽을 만들고 완벽은 하찮지 않다." 우리 시대, 조립 라인과 책임 전가와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의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다.
완벽, 탁월함. 이 얼마나 관능적인 연인인가. 그러나 일단 탁월함의 입술을 맛보고 나면, 일단 완벽에 빠져들고 나면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그저 평범한, 겨우 참아 줄 만한, 그럭저럭인, 별로 나을 게 없는 것들 속에 꽁꽁 묶여 지낸다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하염없이 끔찍하고 고되고 암담할 뿐이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인생은 그런 식이다. 가능한 것을 받아들이고, 비범한 꿈은 매진됐으니 클리셰라도 구매해야 하고, 현기증 나는 도약의 위험을 피하는 법을 배운다. 미겔 데 우나무노(1864-1936)는 이렇게 썼다. "불가능에 도달하려면 터무니없는 시도를 감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차르트의 현실을 건드리지 못하는 모든 살리에르의 그림자들, 가끔 나오는 아마데우스에게 좌절하여 비난을 퍼붓는 재능은 있으나 무시무시한 천재는 아닌 안토니오스들이 모범이 된다. 무능하고 평범한 이들에게는 탁월함이 즐거움과 경외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재능이 약간이라도 있는 이들에게는 양의 지방처럼 끓어오르는 미움과 질투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탁월함은 그 자체의 주인이며, 어디에도 충성할 이유가 없고, 어떤 지배자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 탁월함은 달의 은빛 얼굴처럼 순수하고 완전하게 존재한다. 건드릴 수도 닿을 수도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 주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하찮은 것들을 참아야 하는지 상기하게 만들기에는 좌절스럽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닐 게이먼의 <샌드맨>이다.
어떤 예술이나 과학 분야에서도 특별한 재능은 스스로를 드러내게 마련이고, 우리는 근근이 살아가면서 이 분야나 장르에서, 그 매체나 범주에서 이제까지의 노력이 얼마나 평이했던가를 이해하게 된다. 몬테베르디 전에 팔리스트리나, 윌리엄 버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보다 높은 성취가 있었던가? 마크 트웨인 전에 정점에 있던 이름들은? 월터 스콧 경, R. D. 블랙모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존 L. 설리반 이전에 톱밥 경기장에 피를 쏟은 이름 없는 맨주먹 복싱 챔피언들 누구와 탁월함을 비교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 샤카줄루,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모두 하나씩밖에 없다. 펠리니, 아니면 빌리 홀리데이, 아니면 조지 버나드 쇼에 이르기까지 가장 높고 가장 찬란하고 가장 조예가 깊은 이들을 대 보라. 그리고 비교해 보라. 그리고 그 후에 얼마나 최고점이 높아졌는지 보라. 갑자기 세상에 더 많은 햇빛이 비치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닐 게이먼의 <샌드맨>이다.
이건 비범한 작품이다. 아마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말하겠다. 사실이 그렇다. 게이먼 씨(자주 보는 지인에서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이고, 그냥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아직 절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라서 '게이먼 씨' 보다는 '닐'로 더 통하는)가 이 <샌드맨> 이야기들로 보통 매크로그래피로 알려져 있는, 마이크로그래피와는 반대로 맨눈으로 살피게 되어 있는 '큰 글씨작업'으로 내놓아서만이 아니다. 닐이 이 이야기들을 위해 창조한 설득력 있고 일관된 우주가 유례없어서만도 아니다. 존재와 신 같은 비존재들로 이루어진 만신전, 반-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 덧붙인 선행 연속체, 수정주의만큼 시선을 끄는 신선한 다신교가 깃든 잘 알려진 우주... 유례없다고는 볼 수 없다. 모든 환상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우주를 짓는다. 그게 "만약 ... 라면?" 게임의 방식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이 게임을 잘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아예 못한다(그래서 배우가 자기 대사를 만든다고, 진실이 허구보다 더 이상하다고, 한 장의 그림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고, 먼 우주에서 사악하고 엄청나게 영리한 외계인들이 빙글빙글 도는 접시를 타고 정기적으로 지구를 방문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외계인들은 소파에 앉아서 TV만 보는 인간들을 잡아다가 섹스를 시도하고 단지 웃자고 이 형편없는 섹스 파트너들에게 송유관 차만 한 기계 부속물로 직장 검사를 행한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사람은 그 일을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어 최고점을 높이고 세상에 더 많은 햇빛을 뿌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닐 게이먼의 <샌드맨>이다.
매크로그래피와 새로운 우주론에도 불구하고, 닐이 이루어 낸 결정적인 탁월함은 <샌드맨>을 읽으면서 받게 될 느낌에 있다. 지금 나는 새로운 것, 중요한 것, 만화계에서 날이면 날마다 스쳐가는 (재미있기는 해도) 덧없는 것들과는 다른 무엇을 읽고 있다는 느낌. <샌드맨>을 이끄는 지성인 닐의 전진을 이제까지 따라왔다면 (앞선 세 권의 그래픽 노블 <서곡과 야상곡>, <인형의 집>, <꿈의 땅>, 그리고 <샌드맨>의 세계로 묶여 나온 세 권의 박스 세트를 본 열혈 독자들에게 유효한 얘기다), 그렇다면 당신은 '심원한 즐거움과 자연 질서'의 초현실적인 재검토를 제공하는 걸출한 지성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당신은 (만약 당신이 아직까지도 순수한 지적 쾌락을 위해 독서를 하는 몇 안 되는 생존자라면) 분명히 게이먼표 개조 우주의 예기치 못한 기지와 장난스러운 심술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나라면 자주 이야기에 불가해한 사실들과 문학적인 그림들을 뿌리는 그의 박학다식함을 찬양하겠지만, 사실 사기꾼에게 사기를 치려면 아주 뛰어난 사기 예술가여야 하는 법이고, 그러므로 닐 '사기꾼' 게이먼이 지금 서문을 쓰는 사기꾼보다 더 폭넓게 독서를 하고 지식을 채워 넣었을 뿐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영리해 보이려고 여기저기에 '이그노란티아 레기스 네미넴 엑스쿠사트(법을 모른다고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같은 라틴어 문구며 'n'est-ce pas(그렇지 않은가)' 같은 프랑스어를 인용하는 내가 얼마나 사기꾼인지 아는 바, 닐에게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 놈인지 보여 주려고 애매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유지하는 만큼이나 다양하고 넉넉한 참고 도서관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
앞서의 요점에서 너무 오래 벗어나는가 싶기는 하지만 사례(f'rinstance)를 하나 들자.
<안개의 계절> 앞부분에서 모르페우스가 카인에게 지옥 방문 계획을 전하도록 할 때, 카인은 루시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하고, 타천사는 모든 미치광이 과학자와 멍청한 슈퍼 빌란과 텔레비전 전도사들이 수많은 기묘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 같은 놀랍고 열광적인 연설을 시작한다. 그는 이어지는 논리적인 헛소리의 정점을 이렇게 맺는다. "천국에서 노예가 되기보다는 지옥에서 군림하는 게 낫다."
독자가 전형적인 화물선의 선장 울프 라르센 역을 맡은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이 구절을 반복해서 인용하는 1941년판 워너 브라더스 작 잭 런던의 <바다의 이리> 영화를 보지 못한 경우를 감안하여, 닐은 이 경구가 밀턴의 실낙원(1667)에 나온다는 정보를 우리 머리에 주입해 준다. 책장을 넘겨서 그 부분을 한번 보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자신의 엄청난 박식함을 확신하는 진짜 지식인이라면 굳이 자신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에게 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닐이 우리에게 본래의 자신보다 더 영리한 인상을 주려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닐이 열성을 다해 온갖 지지대로 허구의 구조를 보강한 덕분에 우리는 지하실 석판도 훌륭한 화강암으로 만들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밀턴을 인용할 만한 탁월함. "때와 자리에 따라서 마음이 변해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리이니, 거기서 지옥이 천국으로, 천국이 지옥으로 될 것이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닐 게이먼의 <샌드맨>은 너무나 훌륭하고, 그야말로 새로운 최고점의 예라 할 만하여 우리는 읽으면서도 이게 그냥 재미있는 오락이 아니라 (물론 재미있는 오락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그래픽 노블에서... 원래 1990년 12월부터 1991년 7월까지 섹션 0부터 7까지 월간 만화책으로 나왔던 줄거리를 살피지는 않겠다. 이야기는 당신 앞에 놓여 있고, 뻔한 말을 다시 할 생각은 없다(1981년에 비평가 존 사이먼이 썼듯이: " ... 전임자들이 했던 말만 다시 하는 건 아무 쓸모가 없다." 셜록 홈스나 샘 스페이드 모방작들을 쓰는 사람들이 꼭 받아들여야 할 좋은 충고다). 닐이 운명에게는 그림자가 없다고 했는데 드링겐버그가 바로 앞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문질러 넣었다거나 하는 걸로 빽빽거리며 옥의 티를 잡는 사람이 될 생각도 없다. 그런 시시한 불평은 나처럼 영리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게이먼의 <샌드맨> 작업에 담긴 것처럼 탁월함이 수많은 사람에게 평범한 세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깨닫게 해 준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이 서문의 주제를 반복할 따름이다. 나는 이것이 사실임을 안다. 1991년 투쏜에서 열린 13회 세계환상문학상 시상식장에 앉아서 사악한 즐거움을 느끼며 닐이 그해 최고의 단편 소설 부문에서... <샌드맨> '만화'로 귀중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트로피를 받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말이다. 사악한 즐거움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준에 맞게 발표된 단편 소설이 상을 받으리라 기대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예술가인 척하는 작가와 화가와 비평가들이 이 배신자 만화가가 리츠만큼 큰 다이아몬드를 들고 가는 것을 숨을 꺽꺽거리며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수없는 콧방귀, 수많은 분개, 새로운 높이까지 치솟은 분노. 그리고 부정 투표가 있었다는 비명과 울부짖음들. 너무나 격분한 이들은 탁월함을 간과하는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었던 최고의 전문가들이 내린 이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서 컴컴한 비밀의 베일 뒤에서 환상문학 컨벤션을 운영하는 위대한 흑막은 하늘이 보우하사 '만화'가 진지한 예술품의 엉덩이를 차 버릴 기회는 고사하고 두 번 다시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하도록 규칙을 개정하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닐 게이먼의 <샌드맨>은 내가 1940년 96쪽에 15센트짜리 <뉴욕 월드 페어 코믹스>에서 처음 보고 사랑했던, 녹색 양복에 오렌지색 중절모를 쓰고 자홍색 망토를 두르고 1차대전기 보병 가스 마스크를 쓰고 무서운 가스총을 들었던 DC의 캐릭터를 다시 부활시켜, 불안으로 장식된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켰다. 경이롭고 재미있는 신화상일뿐 아니라, 평범이 평상시의 감옥인 세상에 나타난 탁월함의 상징으로. 그런데 게이먼이 한 일이 탁월하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수잔 손탁이 쓴 비평 때문에 안다. "진짜 예술에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불안! 당신도 환상문학상 시상식에 와 봤어야 한다. 벽돌 더미 같았던 그 멍청이들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게이먼은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멋지지 않느냐는 거다!
- 할란 엘리슨
- 운명의 정원에서는 어떤 길을 걷더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해서.
- 길은 계속 갈라지고 나뉜다. 운명의 정원에서는 내딛는 매 걸음이 선택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앞길을 결정한다.
- 그러나 평생의 걸음이 끝나고 돌아보면, 당신 뒤로 오직 하나의 길만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 앞을 보면 오직 어둠뿐일 것이고.
- 때로 당신은 운명의 길들에 대해 꿈을 꾸고 부질없는 생각을 하리라. 당신이 택한 길과 택하지 않은 길들에 대한 꿈...
- 길은 갈라지고 나뉘고 다시 이어진다. 누군가는 운명 본인조차도 어느 길이 어디로 가는지, 매 굽이와 꼬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지 못한다고도 한다.
- 그러나 운명은 안다 해도 말하지 않으리라. 운명은 비밀을 안고 있다. 운명의 정원. 당신도 보면 알리라. 결국 당신은 죽을 때까지 그곳을 헤맬 테니. 혹은 그 후에도.
- 시공간과 따로 떨어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이 정원의 독특한 지형을 이해하는 이는 오직 '영원' 일족의 '운명' 뿐이다. 운명은 안다. 그가 지닌 책은 상세한 미래와 과거의 지침서이며 정원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운명에게 배당된 길은 없다. 그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어떤 갈림길도 고르지 않는다. 그의 길은 바깥으로, 시간의 시작에서 모든 것의 끝까지 그려져 있다.
- "안녕하신가, 영원의 운명이여. 안녕하신가, 내 아이가 아닌 존재여. 안녕하신가."
- "이곳에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곳은 시작과 끝 너머에 있어요. 회색 여신들이여."
"정말로? 모든 것이 어딘가에서는 시작해야 하지... 그리고 여기도 다른 곳만큼 좋은 출발점이야. 모든 창조물에는 시작이 있다네. 영원의 운명이여. 모든 창조물에 끝이 있듯이."
- 운명은 명확히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의미로 동요한 채 성채로 돌아간다. 책을 훑어 보니 세 여신과의 만남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는 그 내용을 읽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 운명(Destiny)은 먼지와 밤의 도서관 냄새를 풍긴다. 그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 영원의 꿈(Dream). 아, 수수께끼로다. 이 측면(우리는 영원의 측면만을 인지한다. 거대하고 흠집 없는 보석에서 아주 작은 단면의 반짝임밖에 보지 못하는 것처럼)의 그는 깡말랐고, 피부는 눈송이 같은 색이다.
- 꿈은 인간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자를 드리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 "이야기를 더? 그럴 필요는 없다. 꿈이 지옥으로 돌아가는군. 시작되었다."
- 아득한 옛날, 장소 아닌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는 무수한 이름이 있었다. 아베르누스, 게헨나, 타르타로스, 하데스, 아바돈, 쉐올...
- "아, 이건 굉장히 진귀한 도서관이라네, 매튜. 여기엔 이제까지 누군가가 꿈꾼 모든 이야기가 다 있거든."
"그냥 책인데요."
"그렇지. 그러나 보통 책이 아니라네. 지구에선 찾아볼 수 없는 책이야. 예컨대 이 구획에는 작가들이 꿈에서가 아니면 쓰지 못했거나 끝내지 못한 소설들이 있지."
- "매튜... 우리 주군은 꿈이고... 여긴 그분의 성, 그분의 권좌라네. 꿈결의 심장부에 있는. 이곳에선 원하시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지."
- "2년 전에 지옥을 방문할 일이 있었지. 내 투구가 어떤 악마의 손에 들어갔고 내겐 그게 필요했다. 되찾아야 했어. 나는 문제의 악마 코론존과 겨뤘다. 그리고 이겼지. 그들은 내 투구를 반환했다. 불행히도 그 과정에서 나는 루시퍼 모닝스타, 빛을 가져오는 자의 적의를 샀다."
- "태초부터, 그는 창조자 최고의 창조물이었다. 천사 사마엘, 루시퍼는 그의 별명이고. '빛을 가져오는 자'란 뜻이지. 그는 모든 천사 중에 가장 현명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했어. 아마 그의 창조자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존재일 게다."
- "우리가... 아는 자로군. 그래, 알아. 여인에게서 태어난 첫 자식."
- "너는 그의 보호 아래 있지. 꿈이 너를 전령으로 보내다니 세심하군. 다른 어떤 사자가 왔어도 입에 제 간을 물고 돌아갔을 테니까. 꿈은 그걸 알고 있었어."
- "물론 너도 카인파를 알 테지? 영지주의 분파야. 2세기 경의. 그들은 신약을 거부하고 유다복음서에 찬성했지. 그들은 짐이 천국과 지상을 창조했고, 동생과의 불행한 사건에서 네가 박해받는 쪽이었다고 믿었지. 그들은 또 구원의 길은 육욕과 모든 유혹에 몸을 바치는 거라고 보았어. 그렇다고 카인파가 다른 종교인보다 여기에 많이 오는 것도 아니더군. 재미있지 않나?"
- "나는 필요한 물건을 찾아 꿈꾸는 자에게서 꿈꾸는 자에게로, 꿈에서 꿈으로 이동한다. 꿈들 속을 미끄러지고 스치고 나부낀다. 꿈꾸는 자들이 깨어나면 왜 이 꿈은 다르게 느껴지는지 의아해 하고, 삶이 얼마나 진실해질 수 있는지 의문하리라."
- "'시간, 시간이, 시간이 지났다' 말이군요."
(역자 주 : 로저 베이커의 기계 머리에 대한 전설에서 인용한 말. 이 전설에서 베이컨은 기계 머리를 만든 후, 도제에게 머리가 말을 하면 깨우라고 지시하고 잤다고 한다. 기계가 '시간'이라고 했으나 도제는 두려움 때문에 베이컨을 깨우지 않았다. '시간이'라고 했으나 역시 깨우지 않았다. 마침내 머리는 '시간이 지났다'고 말하고 폭발했다.)
- "가만. 엘리자베스 여왕... 컴퓨터... 자네... 젠장. 꿈속이로군. 그렇지?"
- "지옥에서는 매일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지. 영원히 흘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에."
-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한다, 루시엔. 때로는 우리가 따라갈 길을 고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선택이 우리를 앞서기도 하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있고."
- 세계들 사이 틈새엔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이다. 창조되지 않은 황무지에서, 무에서 무로 이동하며, 존재하지 않는 바람이 진공에 소리 없는 절규를 뿌린다. 너무 춥다. 여긴 장소가 아니다. 틈새일 뿐. 아무 곳도 아니다. 스치는 생각. 이곳에 머물 수도 있다. 탐구를 그만두고 영원히 무 안에 머물 수도 있다. 안전하고 춥고 고독하게. 아니다. 우린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바람이 잦아들고 있다. 비존재에서 존재로 이행하는 표시다. 이미 안개가 걷히고 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혼잣말을 한다. 나는 두렵다.
- "이곳은 천상의 그림자라는 걸 기억하게나. 더 정확하게는 천국의 어두운 반영이라고 해야겠군. 호수에 거꾸로 비친 풍경 같은..."
- "나는 프레스카우고, 이게 나의 벌이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브레스카우를 기억하지 않아, 아무도. 세상은 널 잊었어."
- "왜 그들은 온갖 실패를 다 내 탓으로 돌리는 거지? 난 그들에게 아무 일도 시킨 적이 없어. 한 번도. 각자 자신들의 작은 인생을 살지. 내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라고. 그러다가 죽어서 여기로 오면 (자기들이 옳다고 믿은 원칙을 위반한 죄로) 우리가 자기들이 원하는 고통과 징벌을 내려 주길 기대해. 내가 여기 오게 하는 게 아니야."
- "게다가 어떻게, 누가 영혼을 소유할 수 있겠나? 아니. 영혼은 그들 자신의 것이야. ... 그걸 정면으로 대하기 싫은 것뿐이지."
- "이렇게 전해지지. '로키는 라그나로크가 올 때까지 묶여 있으리니. 그때가 오면 거대한 겨울이 세계를 얼리고, 거대한 늑대들이 해와 달을 삼키며, 거인들이 죽은 자의 손톱으로 만든 배를 타고 전쟁에 나서리니... 그날 로키가 사슬을 끊고 하임달과 싸워 함께 죽으리라'. 나도 그 전설이라면 잘 알아, 교수대의 신. 그래서?"
- 은의 도시. 방문자를 받지 않는. 이 도시의 거주자들은 도시 자체와 같은 순간에 창조되었다. 사건 이전의 어둠 속에서. 은의 도시는 첫 새벽 이전에 있었다. 이곳은 낙원이 아니다. 천국도 아니다. 이곳은 은의 도시이고, 창조물의 위계질서 바깥에 있다.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이름과 신원이 있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여길 만한 것도 있을 것이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중 두 명이 날개를 펼친다. 듀마, 침묵의 천사. 레미엘, 일어난 이들을 권장하는 자.
- "그들은 늘 하던 짓을 계속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말이야. 그게 지옥이야."
"찬성은 못하겠다. 난 지옥이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든. 그치만 어디에든 영원히 머물 필요는 없지."
- "옛날에 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기보다 높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 "시간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아? 그 여자가 다시 올 때까지?"
"몰라. 하지만 최대한 활용할 거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죽음 말이야? 아니면 삶?"
"어느 쪽이든. 둘 다. 어쨌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운 것 같아. 이제 삶이 우리에게 뭘 줬을지 보자..."
- "그대는 전할 말을 전했고, 내 답을 들었다. 그대는 의무를 이행했다. 그 문제는 끝났다, 클루라칸. 그대의 무례함이 실로 불쾌하구나."
- "나일 델타의 죽은 자의 신, 아누비스가 인간의 심장을 먹는 것도 보여. 아니, 인간 심장의 꿈이라고 해야 할까."
-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사들을 봐. 그들은 먹지도, 시시덕거리지도, 대화하지도 않아. 관찰할 뿐. 난 경외심에 사로잡혀 그들을 봐. 너무나 아름답고 멀군. 천사들의 발은 땅을 건드리지 않아. 꿈속에서조차도. 그들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이 가지도 않아."
- "이건... 이건 잘못됐어. 우린... 우린 반드시..."
- "날 해하려 하다니 어리석었다, 아자젤.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여기에서는. 여기는 내 집이다, 아자젤. 내 권좌, 꿈결의 심장부. 이곳의 현실은 내 소망에 따른다. 내가 원하는 그대로."
- 환대의 미묘한 부분이 드러나고, 누군가가 자진해서 떨어질 때 누군가는 떠밀리기도 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 "날 기억할 것 같아요?"
"난 언제나 네게 마음 쓸 거다. 나다."
"하지만 제가 그걸 알까요, 꿈의 왕 카이쿨? 제가 당신이 마음 쓰고 있다는 걸 기억할까요?"
"아니. 하지만 난 알 거야, 나다. 난 알 거야."
- "네가 어떤 육체를 입고 있건 꿈결에서 언제나 환영받으리니... 잘 있거라."
- "그건 옛 지옥입니다. 이유 없는 고문과 목적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었죠. 이유 없는 폭력은 이제 없을 겁니다. 더 이상의 고통도, 이유나 설명이 없는 괴롭힘도 없어요. 우린 당신을 아프게 할 것이고, 그게 미안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벌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속죄를 위해서죠. 그 후에는 당신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기 떼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당신도 고마워하겠지요."
"하지만... 이해를 못 하는군요. 그게 더 나쁘단 말이야. 훨씬 더..."
- 결국 이곳 역시 계획의 일부가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이 되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을까?
- [10월은 물론 책장을 넘기거나, 한 부분을 끝내거나, 책을 덮는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한 그는 또한 행복한 결말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그는 4월에게 말했다. "그냥 정원에서 양지바른 곳을 찾는 것과 같은 문제야. 황금 같은 햇살에 부드러운 풀밭, 쉴 만한 장소, 읽기를 멈출 만한 곳을 찾고 만족하는 거지."]
- <10월이었던 남자>, G.K.체스터튼 / 꿈의 도서관 소장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영 책수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0) | 2023.03.20 |
---|---|
[조지 맥도널드] 북풍의 등에서 (0) | 2023.03.19 |
[에르하르트 달] 발도르프 학교 외국어 교육 - 외국어 교육의 정신과 방법 (0) | 2023.03.06 |
[조지 셰프너] 산수의 감각 - 생각이 복잡할 땐 산수부터 해보자 (2) | 2023.02.25 |
[타냐 버브, 제프리 버브] 만화로 보는 이해하면 이상한 양자역학 - 얽힘에서 순간이동까지 수상한 과학 이야기 (0) | 2023.02.22 |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2) | 2023.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