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호즈미 / 조은하
출판 : 애니북스
출간 : 2013.11.08
<결혼식 전날>에는 6편, 아니 정확하게는 7편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어떻게 이어 세느냐에 따라 5개이기도, 6개이기도, 7개이기도 한 이야기들.
리뷰를 쓰려고 정리하면서 보니 거의 10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책을 읽음으로써 국내에 번역 출간된 호즈미 작가의 모든 저서를 읽게 되었다. <우세모노 여관>, <안녕 소르시에>, <나의 조반니>까지 다해도 많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모두- 깊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묘한 매력이 있다. 따뜻하고 섬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뭐랄까- 너무 '인간적이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결혼식 전날>은 예전에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던 듯.)
내게는 무척 '호'인 작품들이다. <우세모노 여관>도 그랬지만 <결혼식 전날>에 실린 단편들은 아주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손쉽게 계를 넘나드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반전'이라고 부를 테고, 누군가는 '감동'이라고 부를 것이다.
다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잠깐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에서 '호'를 느끼는 사람들의 내면에 고여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취향은 공명으로부터 생겨난다.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라는 조언은 삶의 만족도나 예술적 영감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와 공명하는 것들을 자주 접함으로써, 외부를 통해 내부를 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내 안의 것들로 누군가에게 떨림과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리뷰는 나중에 써야지
끝.
- "손 잡고 자도 돼?"
"... 그러든가."
"어라-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고분고분하시네."
"아... 그거야... 울고 있으니까..."
- "다음엔 내가 아빠한테 놀러 갈까? 이제 나 혼자서도 전철 탈 수 있어!"
"... 안 돼."
"왜 안 돼?"
"... 절대, 안 돼!"
- "조금만 더 ... 있다가 가면 안 돼?"
"내년에 보자."
- 우리 아빠는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만나요. 오봉 때밖에 못 만나요. 하지만 그거 말고는 평범한 아빠예요.
- "그 당시에 너한테 그런 얘기 어떻게 했겠냐... 딴사람들한테는 다 얘기해도 너한테만은 말할 마음이 없었어. 로쿠로... 너도 사실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잖아?"
- "쌍둥이 형제의 첫사랑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무슨 업보 같지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차일 땐 차이더라도 고백이나 시원하게 해 볼 걸 그랬어. 그래도 난 형이 부러워죽겠어. 시로 형."
- 그리고 유키코의 장례를 치르고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로쿠로는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내겐 관 속에 잠들어 있는 로쿠로의 표정이 "아무래도 유키코는 내가 가져야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결국은 그 당시 유키코가 진짜 누굴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된 건가?'
"... 그 친구한테 고백하기 전부터 그 친구가. 유키코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란 걸 알고 있었어. 로쿠로."
- "아! <Yesterday once more>이다. 옛 생각나는 노래네요. 저 카펜터스 Carpenters 무지 좋아해요. 이 두 사람 남매잖아요."
"저도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내일 그 애가 결혼을 해요."
- 집은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낯선 고장에서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어린 베티가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 자주 이 허수아비 곁에서 밤을 보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얘기들. 리버풀 출신의 4인조 그룹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내딛고, 반전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이 광활한 세상 속에 우리가 맘 편히 있을 곳은 여기뿐이었다.
- "이제야 알게 된 건데, 그거 날 위해서 그런 거였지? 그렇게 오빠만 괴롭힘을 참으면 나한테까지는 손대지 않았으니까.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전혀 몰랐어. 그래서 큰아버지가 다그쳐도 오빠가 깨뜨린 거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 안 했던 거지?"
"... 옛날 일은 다 잊었다니까."
"... 미안해, 오빠."
"..."
"오빠 줄 토스트 다 태워버렸어."
"..."
-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활짝 웃는 얼굴로 베티가 그 남자를 바라보던 그날 밤, 난 홀로 이 고장을 떠났다.
- "근데 늑대가 키웠다는 그 소녀는 인간 세상에 나오고 나서 죽지 않았어? 그에 비해 당신은 이 뉴욕에서도 꽤 씩씩한 것 같은데?"
"그럼! 난 원래부터 뉴욕 체질이었나 봐! 여기 온 지도 벌써 10년이나 됐고!"
"..."
"고맘게 생각하고 있어, 앤지. 당신이 날 거둬주지 않았더라면 난 틀림없이 맨해튼의 유령이 됐을 거야."
"과연 그럴까? 당신이라면 '다른 여자 품'에서도 잘 해냈을 것 같은데?"
- 이곳 생활은 그 빌어먹을 촌구석과 달랐다. 엄하게만 대해서 항상 부딪치기 일쑤였던 큰아버지 부부도 없었고 죽을힘을 다해 지켜야만 하는 존재도 없었다. 베티를 보호하는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다. ... 아니, 애초부터, 처음부터 그런 역할은 있지도 않았던 거다.
- 다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올린 적은 있었다. 그 허수아비는 지금도 고향을 떠나버린 오빠를 대신해 여동생을 지켜봐 주고 있을까?
- "왜 그래? 안 기뻐? 친동생 아니야?"
"맞아요. 하나뿐인 여동생이죠."
"그럼 자네..."
"캔자스에선 여동생을 지키는 게 내 모든 것이었어요. 근데 그 녀석이 저 혼자 어른이 되어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난... 뉴욕으로 도망쳤던 거예요. 10년이 지난 지금... 그 녀석의 행복을 어떻게 축하해 줘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 도망쳐왔다, 라. 뉴욕에 온 놈들 태반이 그런 녀석이야.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뭔가 달라진다거나 그렇지는 않아. 오히려 시간이 흘러 냉정을 찾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지.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거 아닐까? 받아들이는 것 말야."
"..."
"하나뿐인 여동생이지? 자넨 하나뿐인 오빠일 테고."
- "... 진짜 신기하네. 그렇게 쬐그맣던 베티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생글거리고 있다니 말이지. ... 근데 이 몸은 허수아비를 옮기느라 진이 다 빠졌네. 아~ 정말 못 말리는 여동생이지? 입만 열면 '부탁이야 제발' 소리를 해대더니 결국엔 저 혼자서만 행복해지려 하고. 난 대체 뭐였냐고. ... 얼른 행복해지기나 해라."
다음은
네 차례야
"..."
'잘못... 들은 거겠지?'
- 그러고 보니.. 그 엽서를 보낸 건 대체 누구였지?
- 뭐... 누구면 어때.
- 아마도 그때 난 수명이 다했던 모양이다. 저항할 여력도 없이,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죽은 몸뚱아리는 우거진 나무 숲 속에서 썩어 ...
- 난 죽었다.
- "15년도 전에 한 권 쓴 게 전부인데 소설가는 무슨."
"그건 아니죠. 한 권이라도 썼으면 된 거 아녜요?"
"... 너 같은 꼬마가 뭘 알겠냐.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 "이렇게 깜깜한데 글이... 써져요?"
"불을 켰는데 안 써지면 불을 꺼도 마찬가지야."
- "원고... 백지네요?"
"원래 종이는 백지인 게 정상이야."
- 지독하게 춥다. 아, 그렇구나. 이제 곧 죽는구나. 그냥 이대로 여기서 아무도 지켜봐 주지 않는 가운데.
- "저기..."
"왜요?"
"그냥 물어보는 건데, 죽은 까마귀가 사람한테 빙의하는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 뭔 소리예요? 또 그 이상한 꿈 꿨어요?"
- "이상하다 싶었어. 몇 번이고 기억해 보려고 애를 써봤어. 근데... 친척이라는 네 이름이 난 도무지 기억이 안 나."
-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먼저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돼."
- "히야~ 재밌는데요!"
"감사합니다..."
"이거 혹시 실화입니까?"
"아하하하! 아뇨, 그럴 리가요."
"그렇죠? 농담은 그만하고... 시노다 씨가 이런 작품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 "정말로 재미있네요. 분위기도... 전과 다른 게, 뭐랄까 문체가... 음... 유연하다고 할까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겪으신 건가요?"
"하하하. 아뇨,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
"예? 뭐지? 너무 궁금한데요."
- "실은 최근까지 잠깐 같이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나잇값도 못하고 조금 야단을 맞았어요."
"시노다 씨가요?"
"하하, 예, 뭐. 그래서...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같이 살았던 사람인데... 이 소설을 쓴 건 뭐랄까... 부족하지만... 그 애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 며칠 전 어떤 남자가 날 제 집으로 데려왔다.
- 전화를 건 사람은 이 남자의 매형. '에리'는 이 남자 누나의 이름... 이었던가?
- 아무래도 아주 급한 일인 모양이다.
- 이 남자는 내가 우는 건 모두 밥을 재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바보 같으니. 뭐, 할 수 없지. 난 메시지를 들은 입장으로서 일단 할 만큼은 했다.
- 이 무뚝뚝한 남자는 집에 돌아오면 으레 저렇게 중얼거리며 저걸 마신다. 그런데도 늘 모자란 듯 아쉬워한다. 그렇게 좋아하면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면 될 걸, 이해할 수가 없다.
- "나 말야... 고양이 키우는 거 처음이야. 재작년까지 같이 살았던 누나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거든."
그 누나한테 지금 큰일이 난 줄도 모르고-
- "... 어, 왜? 왜 그렇게 보는 거냐... 무섭게..."
- "어? 지금 병원이라면 누나, 설마..."
- "태어났어?!"
- 하긴 내겐 죽든 태어나든 별 차이 없다. 자연의 이치일 뿐이니까. ... 하지만 뭐지? 이 남자가 이토록 기뻐하는 얼굴은 처음 본다.
- 아아- 정말, 인간이란 역시 이해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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