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바이런 케이티 / 스티븐 미첼 / 김윤
출판 : 침묵의향기
출간 : 2013.09.17
틀림없이 좋았는데, 이상하게 내 것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상대방에게서 싫은 점을 발견하면 나는 그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검열하는 습관이 있어서일까. 과거의 내가 갖고 있었던 -지금의 나는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타인에게서 볼 때 더욱 엄격해지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이다. 그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이래야만 한다'는 잣대나 엄격한 일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매 순간을 충실하게 감각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 완전히 체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바이런 케이티가 제시하는 방법 중 '뒤바꾸기'는 <킹크>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허용하기와 아주 닮아있다. 그래도 된다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문장도 있다는 '자극'은 개인의 허용범위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문장에 강한 거부감이나 고통이 느껴진다면 그 지점이 바로 질문을 시작해야 할 지점이다.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내가 함께 겪었던 일화, 그 사람이 이야기해 주었던 일화 등이 하루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이 책을 읽어본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영성 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선뜻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웠고, 무엇보다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의 어떠한 부분에서 나오는지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고 읽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멈추라는 말과 함께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을 읽건, 읽지 않건 평온과 행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네 가지 질문>은 완전한 일상과 실생활적인 대화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꾸만 양말을 바닥에 던져놓는 아이들 때문에 괴롭다면, 정말 그 양말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인지 / 아이들이 괴롭게 하는 것인지 / 아니면 양말을 바닥에 던져서는 안 된다는 내 생각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는 심리학적인 것도 같다.
하지만 질문의 적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이 책은 전혀 고통이나 괴로움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며, 그것을 감각하게 된다면 그 순간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완전히 동의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이들도 틀림없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더더욱 선물하면서도 조심스러워졌다.
부디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되, 나는 내가 보내고 싶은 축복을 보낸다.
끝.
고통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 바이런 케이티-
- 세 자녀를 둔 재혼한 어머니로서 좋은 직업이 있고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살던 케이티는 십 년에 걸쳐 분노와 피해망상, 절망의 나락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두 해 정도는 극심한 우울증 때문에 집을 나설 수도 없었고, 몇 주일씩 침대에서 떠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목욕이나 양치질도 할 수 없었고, 일은 침실에서 전화로 했다.
- 결국 그녀는 섭식장애여성들을 위한 요양원에 스스로 들어갔다.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도 다른 여성들이 그녀를 몹시 무서워해서 케이티는 혼자 다락방에서 지내야 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케이티는 방바닥에서 누워 자다가(그녀는 자기가 침대에서 잘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거기에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이라는 어떠한 관념도 없었다.
- 케이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 '작업'을 이해하려면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케이티는 말한다. 그런데 '작업'은 마음에 관한 최근의 생물학적 연구 결과와도 잘 들어맞는다. 현대의 신경과학은 익숙한 내면의 이야기가 자아의식을 갖게 하며, 이 이야기가 나오는 근원은 '해석자'라고도 불리는 뇌의 특정 부분이라고 말한다. 저명한 신경학자 두 명은 최근 '해석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진실을 왜곡하며 신뢰하기 힘든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말한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즉 인간의 왼쪽 뇌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이야기들이 늘 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또 마이클 가자니가는 이렇게 말한다. "왼쪽 뇌는 자기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음을 자기 자신과 당신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엮어 낸다. 해석자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때조차 자기만의 생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향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 고통스러운 자리로 빠져드는지를 설명해 주며, 케이티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알아차린 사실도 이것이다. 그녀가 발견한 '스스로 질문하는 법'은 마음의 다른 능력을 이용하여, 마음이 스스로 만든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발견하게 한다.
'작업'은 그저 네 가지 질문일 뿐 그 무엇도 아닙니다.
어떤 동기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대답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처음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과 씨름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질 것 같아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수동적이 될 거예요. 행동할 의욕까지 잃을 거고요."
- 나는 대답 대신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자리를 잃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와 "나는 일자리를 잃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기력하게 들리나요?
- '작업'은 당신이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야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일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각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용납하거나 시인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갈등과 혼란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을 마음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 점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나는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합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거부하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을 거부하면 긴장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맞서기를 멈출 때 행동은 단순하게, 물 흐르듯이, 친절하게 두려움 없이 일어납니다.
- 나는 온 우주에서 세 가지 일만을 봅니다.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
(내게는 '신'이라는 말이 '현실'을 뜻합니다. 현실은 신입니다. 현실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통제, 당신의 통제, 모든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을 신의 일이라고 부릅니다.)
-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은 대부분 마음으로 자기의 일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너는 직장을 구해야 해,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 너는 시간에 맞춰 와야 해, 너는 건강해야 해"라고 생각할 때 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있습니다. 지진, 홍수, 전쟁, 혹은 내가 언제 죽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 나는 신의 일에 간섭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남의 일이나 신의 일에 간섭할 때는 분리가 일어납니다.
- 내가 마음으로 어머니의 일에 예를 들어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야 해"와 같은 생각으로 간섭할 때 나는 즉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통이나 외로움을 느꼈을 때는 늘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만일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고 있고 나도 마음속에서 당신의 삶을 살고 있다면, 여기에 있는 나의 삶은 누가 살까요? 우리는 둘 다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으로 남의 일에 간섭할 때 나는 내 삶을 살고 있지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 의아해합니다.
-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최선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일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포장해도 그것은 순전한 오만이며, 그 결과는 긴장과 걱정, 두려움입니다. '나는 내게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는가?' 내가 할 일은 이것뿐입니다.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합시다. 남을 위해 남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 전에...
- 세 가지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일에 머무른다면, 삶은 이제껏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혹시 다음에 스트레스나 불편한 마음이 느껴지거든, 지금 마음속에서 누구의 일에 간섭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 한동안 이렇게 실천해 보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당신의 삶은 저절로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믿지만 않으면 생각은 해롭지 않습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 대한 집착입니다.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 생각을 살펴보지 않은 채 진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집착하는 생각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 '나'라고 얘기하는 것을 진짜 '나'라고 믿습니다. 어느 날, 숨 쉬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숨 쉬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놀랍게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내가 생각되어지고 있었고, ...
- 조사되지 않은 이론으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고,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때, 당신은 내가 '꿈'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꿈은 괴로운 꿈으로 바뀔 때가 많고, 때로는 악몽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그런 이론에 대해 '작업'을 해서 그 이론이 진실한지 확인해 보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작업'을 할수록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줄어듭니다.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당신의 세계는 얼마나 많은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나요? 조사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 이제껏 내가 경험한 모든 스트레스는 진실하지 않은 생각에 집착한 까닭에 일어났습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생각 뒤에는 늘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은 생각이 있습니다. "바람이 계속 불면 안 돼"나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해야 해"와 같은 생각들. 우리는 현실에 반하는 생각을 믿고, 그 뒤 스트레스를 느끼고, 다음에는 그 느낌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만들어 냅니다. 최초의 원인인 생각을 이해하는 대신에, 우리 바깥을 바라봄으로써 스트레스받는 느낌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위안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거나 섹스, 음식, 술, 마약, 돈 등에 기대려 합니다.
- 우리는 고통스러운 느낌에 쉽게 휩쓸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느낌은 "당신은 지금 꿈속에 빠져 있어요”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자명종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 우울과 아픔, 두려움은 "지금 당신의 생각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지금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빠져 있어요"라고 말해 주는 선물입니다.
- 진실하지 않은 이야기에 따라 살면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자명종을 존중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바깥을 향함으로써 그런 느낌을 바꾸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보다 먼저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느낌은 당신이 생각에 빠져 있음을 깨우쳐 주는 자명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작업'을 통해 진실하지 않은 생각을 조사할 때마다, 당신은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오도록 인도를 받습니다. 자기를 진정한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믿으면, 그리고 행복이 아닌 다른 이야기에 따라 살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 불에 데자마자 손이 움직입니다. 손에게 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실하지 않은 생각이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을 이해하면, 당신은 그 생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생각이 있기 전에는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 생각이 고통을 일으킵니다. 그 생각이 진실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역시 고통이 없습니다.
- '작업'은 이런 식으로 작용합니다.
"그 생각을 믿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불 속에 있는 손.
"그 생각이 없다면 나는 누구일까?" 불길 밖에 있는 우리는 생각을 바라보고, 불 속에 있는 손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원래 위치로 돌아갑니다. 누구에게 지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그 생각이 다시 올라오면, 마음은 저절로 불을 떠납니다. 우리는 '작업'을 통해서 내적인 원인과 결과를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모든 고통이 저절로 풀리기 시작합니다.
- '작업'이 너무 단순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는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묻습니다.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종이에 쓰고,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뒤바꾸세요. 어느 누가 짐작하겠어요? 자유가 이렇게 단순할 수 있다는 것을...
- 마음을 종이에 옮기기. '작업'의 첫 단계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판단을 종이에 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당신을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사람, 애증의 감정이 엇갈리는 사람, 당신이 싫어하거나 염려하는 사람에 대해 쓰세요. 생각하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기 바랍니다.
- 이 일이 어렵게 느껴져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남을 판단하지 말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직시합시다. 여전히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판단합니다. 진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남에 대한 판단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업'을 통해서 그런 판단들이 마침내 종이에 있는 그대로 표현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그리고 가장 역겨운 생각들까지도 조건 없는 사랑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처음에는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 쓰기를 권합니다. 그 사람은 부모나 애인일 수 있고, 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가장 효과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비록 그 사람을 99퍼센트 용서했다고 해도, 완전히 용서하기 전에는 당신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직 용서하지 않은 나머지 1퍼센트는 당신이 맺고 있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관계에서도 똑같이 갇혀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 '작업'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처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쓰지 않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처음부터 자기를 판단하게 되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 동기를 갖게 되거나, 아무 소용이 없던 해결책을 내세우게 됩니다. 먼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질문하고, 뒤바꾸는 것은 참된 이해를 향해 곧장 가는 길입니다. 충분히 오랜 기간 질문하여 진실의 힘을 신뢰하게 된 뒤에는 자기를 판단해도 좋습니다.
- 처음 시작할 때 비난하는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키면, 초점은 자기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편안한 마음으로 가감 없이 자기의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이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고 굳게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시력은 다른 사람을 볼 때는 좋은 편이지만 자기 자신을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 '작업'을 하다 보면 당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바깥의 있는 모든 것이 자기 생각의 반영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이야기꾼이자, 모든 이야기를 바깥으로 투사하는 사람이며, 세상은 당신의 생각들이 투사된 이미지입니다.
- 태초부터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이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문제에 거꾸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업'을 통해 배우는 것은, 투사된 대상이 아니라 투사하는 영사기 (마음)를 바꾸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영사기 렌즈에 보풀이 있는 거친 헝겊을 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스크린에 흠집이 있다고 생각하고서, 흠집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바꾸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투사된 모습들을 바꾸려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거친 헝겊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르게 깨닫는다면, 영사기의 렌즈를 깨끗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통이 끝나고 천국에서의 작은 기쁨이 시작됩니다.
- "왜 다른 사람을 판단해야 하죠? 모든 게 내 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신뢰해 주세요. 먼저 다른 사람을 판단하세요. 그리고 간단한 안내를 따르세요."
- '작업'에 숙달된 뒤에는 죽음, 돈, 건강, 몸, 중독, 그리고 자기비판 같은 주제에 대한 판단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당신이 준비되기만 하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어떤 불편한 생각들에 대해서도 쓰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모든 순간들은 자유를 가리키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삶은 모든 한계를 넘어 더없이 친절하고 풍성해집니다.
- '작업'을 할 때는 판단들을 쓰지 않고 그냥 진행하려는 유혹을 따르지 않기 바랍니다. 생각을 종이에 옮기지 않은 채 머리로만 작업을 하려 하면, 마음은 당신을 교묘하게 속일 것입니다. 마음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져나가서, 원래의 문장(판단, 생각)을 뒷받침하는 다른 이야기로 도망칠 것입니다. 마음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지만, 종이에 쓰는 행위를 통해 멈춰질 수 있습니다. 일단 마음이 종이 위에서 멈추면, 생각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까닭에 쉽게 조사될 수 있습니다.
- 생각들을 종이에 쓸 때는 스스로 검열하지 말고 솔직하게 쓰세요. 펜과 종이를 들고 앉아서 기다리세요. 말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야기가 올 것입니다. 만일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다면, 또 종이에 쓰인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보려 한다면, 에고는 미친 듯이 써 나갈 것입니다.
- 이 양식에 쓰는 판단들은 '작업'에 사용될 재료입니다. 우리는 이 양식에 쓴 문장 하나하나에 순서대로 네 가지 질문을 하게 되며, 이 질문들은 우리를 진실로 안내할 것입니다.
- 다음은 '이웃을 판단하는 양식'을 완성한 보기입니다.
1. 당신을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싫은가요?
2. 당신은 그 사람이 어떻게 바뀌기를 원하나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나요?
3. 그 사람이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행위, 태도, 생각, 느낌 등)은 무엇인가요?
4.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 그 사람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5.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목록을 만들어 보세요.
6. 당신이 그 사람(그것, 그 상황)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 탐구: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
1. 그게 진실인가요?
2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3.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4.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뒤바꿔 보세요.
- "그게 진실인가요?"
스스로 물어보세요. "폴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인가?" 고요하세요.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다면, 대답은 질문에 맞게 떠오를 것입니다. 마음이 질문하게 하고, 대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세요.
-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다음 질문들을 잘 살펴보세요. "폴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인지 내가 정말로 알 수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귀 기울여 듣고 있는지를 늘 확실히 알 수 있는가? 때로는 나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폴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폴을 어떻게 대하는지 조사해 보세요. 목록을 만드세요. "나는 그를 노려본다. 그의 말을 가로챈다.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에게 복수한다. 그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더 빨리, 더 크게 얘기한다."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서 계속 목록을 만들어 보세요. 당신이 그 상황에서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보세요. "나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스스로 고립된다. 많이 먹고 많이 잔다. 며칠씩 텔레비전을 본다. 우울하고 외로워진다."
당신이 "폴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믿을 때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고요히 침묵하며 알아차리세요.
-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이제, "폴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눈을 감고서, 폴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세요. 폴이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그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충분히 여유를 가지세요. 무엇이 드러나나요? 무엇이 보이나요? 그것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 "뒤바꿔 보세요."
"나는 폴이 싫다. 왜냐하면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원래 문장을 뒤바꾸면, "나는 내가 싫다. 왜냐하면 나는 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당신에게 원래 문장만큼 진실하거나 더 진실한가요?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나요?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례를 계속 찾아보기 바랍니다.
- 원래 문장만큼 진실하거나 더 진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뒤바꾸기는 "나는 내가 싫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입니다. 당신이 마음속에서 자기의 일을 벗어나 폴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당신은 자기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나요? 그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을 때, 당신은 자기의 삶을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그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 동안, 당신이 폴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들을 수 있나요?
- 뒤바꾸기는 건강과 평화, 행복을 위한 당신의 처방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처방해 온 그 약을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나요?
- 어느 누군가의 '작업'이라도 당신의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 대화들을 당신이 쓴 것처럼 여기며 읽어 보세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대답을 그냥 읽지만 말고,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대답을 찾아보세요. 그 대화들에 최대한 가까이, 가슴으로 참여해 보세요. 당신이 읽고 있는 내용과 비슷한 일을 언제, 어디에서 경험했는지 찾아보세요.
- 다음 대화들을 읽으며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나는 늘 앞에서 설명한 순서대로 네 가지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순서를 바꿀 때도 있고, 다른 질문들은 생략한 채 한두 개의 질문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질문을 완전히 건너뛴 채 곧바로 뒤바꾸기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순서에 따라 질문하는 것이 효과를 잘 발휘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순서대로 질문하지 않아도 됩니다.
- 탐구가 내면에서 살게 될 때 질문들은 당신의 일부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권장된 순서대로 네 가지 질문을 모두 묻고 나서 뒤바꾸기를 할 때 가장 깊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양식을 이용하라고 강력히 권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 나는 가끔 "그 생각을 내려놓을 이유를 찾을 수 있나요?"와 "그 생각을 유지할 '스트레스 주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나요?"라는 두 개의 보조 질문을 사용합니다. 이 질문들은 세 번째 질문인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에 따른 추가 질문입니다. 이 질문들은 무척 유용할 수 있습니다.
-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고통의 진짜 원인이지만 감추어져 있어 알아차리기 힘든 '이야기'를 발견하도록 사람들을 도울 것입니다.
- '작업'은 어떤 해로운 행위도 묵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디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작업'이 친절하지 않은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대화들을 읽는 동안 어떤 말이 냉정하거나 무정하게, 또는 사랑이 없거나 불친절하게 들린다면, 너그럽게 대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경험해 보세요. 내면으로 들어가서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직접 탐구를 체험해 보세요.
- 사람들은 1986년 이전에 내게 종교가 있었는지 종종 묻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양말을 주워야 한다"는 생각이 내 종교였고,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나는 그 종교에 완전히 헌신했습니다. 그 뒤 '작업'이 내 안에서 살아 있던 어느 날, 나는 내 믿음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훈계하고 잔소리하고 나무랐지만, 현실은 아이들이 날이면 날마다 양말을 바닥에 벗어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양말이 바닥에 놓여 있지 않기를 바란다면, 양말을 주워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아이들은 양말이 바닥에 놓여 있어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가? 나였습니다. 내 삶을 힘들게 한 것은 바닥에 놓인 양말이 아니라, 그 양말에 대한 내 생각들이었습니다.
- 그러면 누구에게 해결책이 있는가? 역시 나였습니다. 나는 옳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나는 금세 양말들을 주울 수 있었고,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의 양말을 줍는 일이 즐거워진 것입니다. 그 일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허드렛일이 아니었고, 양말을 주운 뒤 말끔해진 바닥을 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이들도 나의 즐거움을 알아차렸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양말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 우리의 부모, 아이들, 배우자와 친구들은 우리 내면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문제를 들추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까지 다시, 또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그들은 순간순간 우리의 자유를 가리켜 줄 것입니다.
- 엘리자베스 :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케이티 : 뒤바꿔 보세요.
엘리자베스 :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케이티 : 당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들에게 요구하나요?
- 케이티 : 남편의 행복은 남편의 책임입니다.
마리사 : 맞아요.
케이티 : 당신의 행복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마리사 : 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케이티 : 당신 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마리사 : 그게 왜 그리도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케이티 : 아마 당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남편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 그렇게 생각하겠죠. "난 못해, 당신이 해줘요."
- 여기에서는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를 이용하여 탐구하는 더 많은 방법을 소개하며, 더 깊고 분명히 탐구할 수 있는 관점들을 보여 줍니다. 이 장은 무한한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당신을 도우려는 것입니다. 어디를 여행하든 탐구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입니다.
- '작업'은 언제나 우리를 참된 자기 자신으로 다시 데려옵니다. 하나의 믿음을 조사하여 이해하게 되면, 그 뒤에 있는 믿음이 표면으로 떠오릅니다. 당신은 그 믿음을 해결합니다. 다음에는 그 뒤에 있는 믿음을 해결하고, 또 그 뒤의 믿음을 해결합니다. 그다음에는 그 뒤의 믿음이 떠오르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은 모든 생각과 느낌, 사람과 상황을 친구로 여기며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문젯거리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 '질문 1'에 대한 대답이 '예'라면, 스스로 물어보세요. "그게 진실인지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자신이 쓴 문장이 진실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관점들을 떠받치는 것은 평생 갖게 된 믿음들이며, 그 믿음들을 지탱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증거들입니다.
- 1986년에 현실로 깨어난 뒤, 나는 대화를 하면서 또는 대중 매체와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이해와 관심이 부족해요", "요즘은 너무 폭력적이에요", "우리는 서로 더 많이 사랑해야 해요." 나도 전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믿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심하고 선하며 다정해 보이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믿을 때 내면에서 평화롭지 않은 스트레스와 근심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예를 들어 "사람들은 더 많이 사랑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면에서 이런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이 더 많이 사랑해야 하는지 내가 스스로, 내 안에서 정말로 알 수 있는가? 온 세상이 내게 그렇다고 말한다 해도 그 말이 정말 진실인가?"
- 그런데 내 안에서 대답을 들었을 때, 놀랍게도 나는 세상이, 조금도 남거나 모자람이 없이, 있는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관해서는 '해야 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지금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바로 지금 있을 뿐입니다. 진실은 모든 이야기에 우선합니다. 그리고 조사되지 않은 모든 이야기는 진실을 가립니다.
- 나는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게 진실인지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대답은, 질문처럼 하나의 경험이었습니다. "아니요." 나는 그 대답 안에 뿌리내리고 서 있을 것입니다. 홀로, 평화롭게, 자유롭게.
- '아니요'가 어떻게 옳은 대답일 수 있는가?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읽은 책들은 하나같이 그 대답이 '예'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진실 그 자체이며,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요'라는 내면의 대답으로, 세상은 늘 그래야 하는 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반대하는 안 하든 상관없이... 나는 온가슴으로 현실을 껴안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조건 없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 "나는 가슴이 아프다. 왜냐하면 폴이 내게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는 문장을 한번 봅시다. 당신은 "예, 진실이에요. 폴은 내게 화가 나 있습니다. 얼굴이 붉어졌고,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고, 내게 고함을 치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증거가 있습니다.
- 하지만 다시 내면으로 들어가 보세요. 폴이 화내고 있는 대상이 정말 당신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나요?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만으로 확실히 알 수 있나요? 언젠가 당신이 두려움이나 화를 느꼈을 때, 그런 두렵고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당신은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설령 그 사람이 자기의 감정이 어떻다고 얘기한다 해도, 정말로 알 수 있나요? 그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나요? 자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잘 몰랐거나, 스스로 속았거나, 착각한 적이 한 번도 없나요? 폴이 '당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 진실인지 당신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 그리고 당신이 가슴 아픈 이유가 폴이 화내기 때문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폴이 내는 화가 실제로 당신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원인인가요? 폴이 미친 듯이 화를 폭발하고 있을 때도 당신은 다른 마음 상태에서 고요히 있을 수 있는 걸까요? 그의 말에 그저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요? 탐구한 뒤, 내 경험은 그러했습니다.
- 이제 질문과 함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세요. 폴이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게 진실인지 당신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폴이 담배를 끊으면 더 오래 살고 그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인지 당신은 알 수 있나요? 그는 내일 트럭에 치일 수도 있습니다. 길게 볼 때 폴이 담배를 끊는 것이 당신이나 그 자신에게 가장 좋을지 당신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폴의 삶에 무엇이 최선인지 당신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폴은 담배를 끊어야 한다". 그게 진실인지 당신은 백 퍼센트 확실히 알 수 있나요?
- 만일 당신의 대답이 여전히 '예'라면, 좋습니다. 이것은 그래야 하는 대로입니다. 당신이 쓴 문장대로 상대방이 정말 말하거나 행동했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게 진실인지 당신이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곧장 '질문 3'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혹시 조금 망설여지면, 다음에 나오는 방법들을 이용해 보기 바랍니다.
-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원래의 문장을 '~~~ 해야 한다'나 '~~~ 하지 말아야 한다'는 형태로 바꿔 보는 것입니다. 현실이 달라야 했다는 믿음 때문에 화가 난다면, "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나를 때렸기 때문이다"라는 원래의 문장을 "아버지는 나를 때리지 말아야 했다"로 바꿔 써보세요.
- 이 문장이 탐구하기에 좀 더 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형태의 문장에 대해서는 탐구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대답을 알고 있거나, 또는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실인가요? 분명히 진실입니다." 우리는 이 대답에 목숨이라도 걸 수 있겠지만, 바꿔 쓴 형태의 문장에 대해서는 그만큼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또 다른, 더 깊은 진실을 찾는 데 더욱 열리게 됩니다.
- 폴을 냉정한 사람이라고 보는 순간 당신은 냉정하지 않나요? 폴이 냉정하다고 믿을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 경험해 보세요. 몸이 긴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얼굴이 붉어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일까요? 당신은 그를 비판하면서 자기를 방어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런 반응들은 생각을 조사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 폴이 당신에게 심한 말을 하면, 당신은 그 장면을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이 재연하나요? 누가 더 냉정한가요? (당신에게 오늘 한 번 심한 말을 한) 폴인가요, 아니면 (그가 한 번 내뱉은 말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풀이한) 당신인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실제로 느끼고 영향받는 것은 폴의 행위 자체인가요, 아니면 그 행위에 대한 당신의 판단들인가요? 만일 폴이 심한 말을 했어도 당신이 그걸 몰랐다면, 그때도 마음이 괴로웠을까요? 잠시 고요히 침묵해 보세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세요. 마음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세요.
- 당신이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친구입니다. 당신이 내면의 숨겨진 비밀들을 분명히 보기 위해 종이 위에 판단하는... 당신이 적이라고 여긴 사람은 당신의 생각이 투사된 것입니다. 탐구를 통해 투사하는 자를 조사하면, 적은 친구가 됩니다.
- 뒤바꾸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의 판단은 자기 자신으로, 상대방으로, 그리고 정반대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로 많은 조합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뒤집어 보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뒤바꾸기를 최대한 많이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순진하게 집착하는 악몽에서 풀려나게 하는 뒤바꾸기들을, 그런 깨달음을 주는 뒤바꾸기들을 찾는 것입니다. 가장 깊이 꿰뚫는 뒤바꾸기들을 찾을 때까지 원래의 문장을 마음껏 뒤바꾸어 보세요.
- 예를 들어, "폴은 나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장을 봅시다.
상대방을 자기 자신으로 바꿔 보세요. "나는 나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그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입니다)"
자기와 상대방을 맞바꿔 보세요. "나는 폴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그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반대로 바꿔 보세요. "폴은 나를 존중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그렇게 할 때까지는)"
- 이렇게 발견하는 뒤바꾸기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원래의 문장만큼 진실하거나 더 진실한지 경험해 보세요. 이 뒤바꾸기가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나요? 그것을 인정해 보세요. 인정하기가 힘들면, 뒤바꾸기에 '때로는'이라는 말을 덧붙여 보세요.
- 언제나 네 가지 질문을 한 뒤에 뒤바꾸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 가지 질문을 생략한 채 곧바로 뒤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효과적으로 뒤바꾸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자기에게 되돌아온 판단은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질문은 먼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 질문들은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을 통찰하게 하며, 그 뒤 마지막으로 뒤바꾸기를 하면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납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질문들을 건너뛴 채 먼저 뒤바꾸기를 하면, 뒤바꾸기들이 가혹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작업'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잘못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뒤바꾸기는 자기 밖에서 본다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는 자기의 마음이 투사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이 거울에 비치듯 반영된 것입니다. 자신이 판단한 사람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게 되면,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도 잘못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 자기의 행동에서는 뒤바꿀 만한 것을 찾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자기의 생각에서 찾아보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폴은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로 바뀝니다. 당신은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있을 수 있습니다. 폴이 담배를 피워 온 집 안을 역겨운 냄새로 가득 채우는 장면을 마음속에 떠올릴 때, 당신은 잇달아 분노와 좌절을 피웁니다. 혹시 당신은 마음속에서 하루에 폴보다 더 많은 담배를 피우지는 않나요?
- 그렇다면 평화를 위한 당신의 처방은 스스로 마음속 담배를 끊는 것이며, 폴의 흡연에 대해 화를 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이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폴이 폐암으로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심장마비로 죽어야 할까요? 먼저 나에게 평화가 시작되게 합시다!
- 뒤바꾸기를 찾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담배'를 다른 말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요, 당신은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폴이 담배를 이용한다고 생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뭔가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나요? 음식, 쇼핑, 술, 사람들과의 관계들...? 뒤바꾸기를 통해 매우 겸손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뒤바꾸기는 "나는 폴에 대한 비난을 끊어야 한다" 혹은 "나는 기분전환을 위한 쇼핑을 끊어야 한다"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폴에게 조언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그 조언은 자기의 일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 뒤바꾸기는 새롭고 강력한 통찰을 안겨 줍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행위로 이어질 때 완전해집니다. 뒤바꾸기에 따라 살아 보세요. 남들에게 어떻게 설교해 왔는지를 알아차리면, 돌이키고 바로잡으세요. 그들에게 바랐던 것을 당신이 직접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에게 얘기하세요.
- 어떤 사람들의 삶은 일과 돈에 대한 생각들에 지배당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명료하다면, 어떻게 일이나 돈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뿐입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생각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 한 번은 나와 함께 '작업'을 하던 중역이 말했습니다.
"내 비서는 나와 함께 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일을 잘 못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섯 아이를 부양해야 합니다."
"좋아요. 계속 일하게 하세요. 그래서 일을 잘하든 못하든 부양할 아이만 많으면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원들에게도 알려 주세요."
"음, 하지만 정말 그녀를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예, 이해합니다. 그럼 그녀가 하던 일은 유능한 사람에게 맡기고, 그녀는 다섯 아이들에게 돌려보낸 뒤 매월 월급을 지급하세요. 그것이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보다는 더 정직합니다. 죄책감의 대가는 비쌉니다."
- 그 후 그 중역이 양식에 쓴 글을 비서에게 읽어 주자, 그녀는 자신의 업무 수행에 관한 내용에 일일이 동의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당신이 상사라면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깨닫게 되면 대개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데, 그녀도 그렇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다른 회사에 취직하여 비슷한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좋은 직원인 동시에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역은, 알고 보면 자신처럼 그 상황이 불편했던, 비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 "안전하게 살려면 돈이 필요해"라는 조사되지 않은 생각을 믿고 있다면, 당신은 희망이 없는 마음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파산합니다. 주가는 폭락합니다. 화폐 가치는 떨어집니다. 전쟁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계약을 악용하고, 약속을 어깁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할 수 있습니다.
- 스트레스와 두려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만일 모든 문제가, 내면에서 평화롭게 느껴지는 한 가지 해결책으로 바뀐다면 어떠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돈을 벌도록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그런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없으면 돈을 그 이상 벌 수 없는지 당신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동기를 부여받으려면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필요해" 만일 그 이야기를 두 번 다시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 돈을 벌기 위한 동기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이용하듯이,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위한 동기로 화와 불만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만일 내가 건강하고 효과적인 운동으로 지구의 환경을 깨끗이 하고 싶다면, 나 자신의 환경부터 깨끗이 해야 합니다. 생각 속에 있는 모든 쓰레기와 공해를 사랑과 이해로 만남으로써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운동은 정말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구를 돕는 데 필요한 사람은 한 명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자유롭기를 원하면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를,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자기의 삶 전체를 희생하는 점에 대해... 그들은 가장 훌륭한 선생들이며, 그들의 삶은 유익하고 세상에 필요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감옥에 있어 한 아이가 당신처럼 살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남은 삶을 감옥에서 보낼 수 있겠어요?" 그러면 이 폭력범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내 말뜻을 이해하고 귀여운 어린애처럼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이 지구를 돕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 케이티 : 좋아요. 여기에서 멈춥시다. 혹시 삼촌의 말이 옳지만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요? 그 말은 비난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얘기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난'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면 깊은 곳에서 진실에 목말라 있습니다.
마티 : 좋습니다. 알겠어요. 사실입니다.
케이티 : 비난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말해 주는 어떤 사람이 있을 뿐이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의 말을 정말로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자유를 찾을 거예요. 당신이 자기라고 믿고 있는 '나'는 발견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어떤 사람이 말하면, 나는 그 말이 옳은지 알기 위해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그 사람이 말한 상황에서는 그 사실을 찾을 수 없어도 다른 상황에서는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이십 년 전의 어떤 상황에서는 그러면 나는 말합니다. "맞아요,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당신의 말이 어떤 면에서 옳은지 알겠어요." 우리는 여기에서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그는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 나도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함께 하며 연결됩니다. 우리는 둘 다 동의합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는 조각들을 그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의 시작입니다.
- 케이티 : 삼촌의 어떤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는 당신이 아직 보고 싶지 않은 어떤 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붓다입니다. (청중이 웃고, 마티도 함께 웃는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깨닫고 거짓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삼촌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당신에게 돌려주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말합니다. "그만하세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주로 마음속에서만 그렇게 말합니다. 삼촌에게 정직하게 말해 버리면 삼촌이 돈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또는 애정이나 인정을.
마티 : 삼촌은 나를 한 번도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케이티 : 좋네요! 나는 이 사람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티와 청중이 웃는다.) 그는 당신이 당신을 인정하도록 놓아두고, 자기의 진실에만 관심을 둡니다.
- 마티 : 삼촌을 직접 보고도 깨달은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케이티 : 내가 아는 건, 그는 당신이 아직 보고 싶지 않은, 당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는 당신이 (내면 깊은 곳에서)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것들로 당신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게 진실이에요. 당신이 친구에게 가서 "삼촌은 나한테 너무 부당하게 했어"라고 말하면, 친구는 "세상에, 삼촌이 너무하네"라고 말하겠죠. 적을 찾으라는 말이에요. 그들은 당신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당신은 피난처를 찾아 친구들에게 갑니다. 그들은 당신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니까요. 하지만 적들에게 가면, 그들은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솔직하게 말해 줍니다. 당신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삼촌은 더없이 소중한 것을 줄 거예요. 그러기 전까지는 삼촌을 원망하게 됩니다.
-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만일 '작업'을 한 뒤에 지구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게 되면,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마음이 완전히 평화롭다면, 왜 굳이 사회를 위해 행동하려 할까요?" 나는 대답합니다. "사랑이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 탐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스트레스나 화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입가에 침이나 흘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평화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준 사람들은 내가 아는 평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화가 없이도 완전히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자유는 행동합니다.
- 사람들을 데리고 사막에 가면, 그들은 선인장 아래에서 뒹굴고 있는 빈 깡통을 보고 말합니다. "대체 누가 이 아름다운 사막에 와서 이런 짓을 했지?" 하지만 그 빈 깡통이 사막입니다. 그것은 지금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인장, 뱀, 전갈, 모래, 깡통, 그리고 우리- 그 모두가 사막입니다. 이것이 자연입니다. 깡통 없는 사막이라는 마음속 그림이 아니라...
- 나는 스트레스나 판단 없이 그저 깡통을 줍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얘기한 뒤, 슬픔과 화를 느끼며 깡통을 주울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깡통이 옮겨질 때가 되면, 자연으로서 그 자리에 있는 나는 깡통을 주울 것입니다. 조사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면 나는 누구일까요? 그냥 즐겁게 깡통을 주울 것입니다.
- 케이티 : 스윗하트, 뒤바꿔 보세요. 어떤 경험을 할지 봅시다. 양식의 2번에 쓴 문장을 뒤바꿔 보세요. 대기업을 당신으로 바꿔서 다시 말해 보세요. "나는..."
마가렛 : 나는 내가 책임을 다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미래에 관심을 갖고, 환경을 보호하고, 제3세계 국가들을 지원하며, 동물에 대한 학대를 그만두고, 돈만 생각하지 않기를 원한다.
케이티 : 어떻게 느껴지나요?
마가렛 : 음, 나는 정말... 나는 늘 그렇게 하고 있어요.
케이티 : 똑같은 일을 해도 스트레스와 화, 좌절감 없이 일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당신이 우리 기업인들에게 독선적인 태도로 찾아올 때, 우리에게는 적이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맑은 마음으로 온다면, 우리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이미 가슴속에서 알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들려주는 얘기와 해결책을, 위협을 느끼거나 방어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다정하고 매력적인 사람,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경험입니다.
- 케이티 : 전쟁은 전쟁을 가르칩니다. 당신이 자기의 정신 환경을 깨끗이 하면, 우리도 우리의 물질 환경을 더 빨리 깨끗이 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은 옳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자유롭기를 바라나요?
- 케이티 : 그저 '예, 아니요'로만 답해 주시고, 제발 정답을 말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틀린 대답이라고 생각되어도 자신에게 진실하게 느껴지는 대답을 해주세요. 그리고 허니, 걱정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만일 자기에 대한 깨달음이 문제들을 더 가볍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것을 원하겠어요?
- '현재는 미래보다 안 좋아. 내 뜻대로 하면 행복할 거야. 시간은 낭비될 수 있어. 내가 속도를 늦추면 내 고통을 알아차릴 테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거야.'
- 이런 밑바탕 믿음들에 집착하게 되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삶이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이런 믿음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낯익어 보인다면, 다음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조급해지는 마음 밑에 깔린 생각들을 적어 본 뒤, 그 생각들이 당신에게 정말로 진실한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 아무것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정말 근사하지 않을까요?
- 밑바탕 믿음들은 당신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되면 현실이 어떻게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당신의 두려움이 실제가 되면 현실이 얼마나 안 좋게 보일 수 있는지를 그 믿음들은 정확히 보여 줍니다.
- 이 모든 믿음들은 탐구되기만 하면 오히려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좋은 정보들입니다. 이 모든 믿음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곧 우리가 오랜 세월 짊어지고 온 고통스러운 믿음들은 우리에게 진실이 아니며 필요하지도 않음을 깨닫는 것, 그것은 한없이 자유롭게 하는 경험입니다.
- 다음은 당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런 믿음들의 몇 가지 사례입니다.
재수 없게 안 좋은 일을 당할 수 있다.
삶은 불공평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나는 상대방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은 슬픈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고민이 없다는 것은 무관심하다는 뜻이다.
착하게 살지 않으면 신에게 벌 받을 것이다.
죽음 뒤에는 또 다른 삶이 있다.
자녀들은 부모를 좋아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떤 끔찍한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
기억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작업'을 하는 데 올바른 방법이 있다.
세상에는 악이 있다.
- 이 문장들 가운데 당신의 자유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런 믿음들에 대해 '작업'을 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는 동안 자기를 방어하려 한다고 느낄 때마다. 또는 자기가 옳다고 확신할 때마다, 밑바탕 믿음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작업'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고 이런 믿음들이 일으키는 고통 없이 살고 싶다면, 이런 믿음들은 탐구를 위한 훌륭한 소재들입니다.
- 자기의 밑바탕 믿음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질문 1'을 위한 '진실의 증거'를 적어 보는 것입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질문2)으로 곧장 넘어가는 대신, 그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원래의 문장이 진실하다고 굳게 믿는 자리에 머무르세요. 그리고 그 문장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이유를 모두 적어 보세요. 이 목록은 수많은 밑바탕 믿음들을 분명히 보여 줄 것입니다. 다음은 '진실의 증거'를 이용하여 밑바탕 믿음들을 발견하는 사례입니다.
- 원래 문장 : 나는 내 아이들에게 화가 난다. 왜냐하면 그 애들은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진실의 증거 :
1. 자기 물건을 스스로 정리하라는 내 말을 무시한다.
2. 내가 고객과 통화하고 있을 때에도 소란스럽게 떠들고 싸운다.
3. 내가 관심 갖는 것들을 놀린다.
4.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서는, 내가 일하고 있거나 심지어 욕실에 있을 때에도, 즉시 돌봐주기를 바란다.
5.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감사히 여기거나 맛있게 먹지 않는다.
6. 젖은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들어온다.
7. 내가 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면, 나머지 애들이 그 애를 놀리고 서로 싸운다.
8. 내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 밑바탕 믿음들 :
1. 자기 물건을 스스로 정리하라는 내 말을 무시한다.
아이는 어른을 존중해야 한다. /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야 한다. / 사람들은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 내 지시는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길이다. / 내 말을 무시한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내가 고객과 통화하고 있을 때에도 소란스럽게 떠들고 싸운다.
어떤 일이든 늘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 아이들은 전화벨이 울리면 조용히 있도록 자제해야 한다. / 고객이 내 아이들보다 더 중요하다. / 내게는 남들이 내 아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하다. / 사람들을 통제하면 존경받을 수 있다.
3. 내가 관심 갖는 것들을 놀린다.
사람들은 나를 놀리며 재미있어하거나 즐거워하면 안 된다. / 자녀들은 부모가 관심 갖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서는, 내가 일하고 있거나 심지어 욕실에 있을 때에도, 즉시 돌봐 주기를 바란다.
상황을 보아 가며 원하는 것을 요청해야 한다. / 자녀들은 부모가 돌봐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욕실은 신성한 곳이다. / 다른 사람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책임이 있다.
5.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감사히 여기거나 맛있게 먹지 않는다.
자녀들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권한이 없다. /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 사람들은 내가 입맛을 바꾸라고 하면 그렇게 바꿔야 한다.
6. 젖은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들어온다.
나는 힘들게 일하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 자녀들은 집안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7. 내가 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면, 나머지 애들이 그 애를 놀리고 서로 싸운다.
나는 싸움을 일으킬 힘이 있다. / 내 잘못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 부모는 자녀의 행실에 책임이 있다.
8. 내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녀들은 친구를 보듯이 부모를 보아야 한다. / 자녀들은 감사할 줄 모른다.
- 밑바탕 믿음을 발견하게 되면, 그 믿음에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뒤바꾸기를 하세요. 이 믿음들에 대한 뒤바꾸기를 할 때는, 자기비판에 대한 뒤바꾸기처럼, 180도로 회전시켜 정반대로 바꾸는 것이 가장 타당할 때가 많습니다. 밑바탕 믿음 하나를 풀면, 연관된 믿음들이 모두 표면으로 드러나서 탐구될 수 있습니다.
- "내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탐구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밑바탕 믿음이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으며, 오히려 "내 삶에는 목적이 없다"는 말이야말로 고통을 줄 것이므로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듯한 이 믿음은 부정적인 듯한 믿음만큼이나 고통을 주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또 이 믿음에 대한 뒤바꾸기는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문장으로 밝혀집니다.
- 찰스가 탐구하기 전에 그랬듯이 만일 당신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당신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서서히 좀먹을 것입니다. 두 번째 대화의 루스처럼 아직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미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면, 삶은 골치 아픈 의무의 연속처럼 보일 것입니다. 찰스는 아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루스는 돈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전문가들이 알려 주듯이, 문제는 늘 우리의 조사되지 않은 생각들입니다.
- 찰스 : 나는 사랑하는 영혼의 짝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는, 몇 가지 심각한 '해야 한다'는 생각들 속에 빠져 있습니다.
케이티 : 아, 그래요! 좋은 말이에요! (청중이 웃는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방법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 케이티 : 그녀의 혐오는 누구의 일인가요?
찰스 : 그녀의 일입니다.
케이티 : 당신이 마음속에서 그녀의 일에 빠져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분리가 일어납니다. 공항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당신은 혐오스럽다는 느낌을 멈출 수 있었나요?
찰스 : 아니요.
케이티 : 하지만 그녀는 혐오스럽다는 느낌을 멈추어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영혼의 짝이라는 신화 때문에?
- 케이티 : 좋아요, 스윗하트. "아내는 남편을 혐오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그녀를 어떻게 대하나요?
찰스 :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평면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케이티 : 당신은 그녀를 '실제로' 어떻게 대하나요? 그것이 어떻게 보이나요? 그것이 어떻게 들리나요? 눈을 감고 자신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그녀가 혐오스럽게 느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믿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을 때 당신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바라보세요.
찰스 : "당신은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
- 케이티 : 그 이야기를 유지할 '스트레스 주지 않는 이유'를 볼 수 있나요?
찰스 : 아니요, 이제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유지되도록 지켜야 하고 내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에 이르면, 우리는 영혼의...
케이티 : 아, 또 영혼의 짝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할 건가요?
찰스 : 예. 나는 정말로 거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케이티 : 예. 그럼 그녀가 영혼의 짝이라는 부분을 읽어 보세요.
찰스 :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케이티 : 내가 어떻게 하고 있다고 당신이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찰스 : 좋습니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 케이티 : 예. 당신이 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당신이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면, 당신의 개념들은 분쇄기 속에 들어간 고기입니다. (청중이 웃는다.)
찰스 : (웃으며) 좋아요. 마음껏 갈아 주세요. (더 큰 웃음)
케이티 : 나는 진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와 함께 이 의자에 앉으면, 그 사람 역시 그렇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원합니다.
- 케이티 : 당신이 믿고 맡기든 그렇지 않는 그 일은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다시 말하지만, 이해하기만 하면 삶은 아주 좋은 거처입니다. 삶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삶은 천국입니다. 조사되지 않은 이야기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찰스 : 그것이 정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케이티 : 지금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연극을 연출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며, 당신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아내를 떠나야 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내를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때까지는. 당신은 '있음'입니다. 당신은 '있음'으로서 '있음'과 함께 흐릅니다.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를 떠나지 않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습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의 연극이 아닙니다.
- 케이티 : 그녀가 오고,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 결과 당신은 순교자가 됩니다. 또는 그녀가 오고, 당신은 어째서 고마운지 얘기하고, 그 결과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당신은 자기 이야기의 결과물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탐구하지 않으면 이 점을 알기 어렵습니다. '작업'으로 아침식사를 하라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아세요. 내가 하는 말들은 당신에게 가치가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기다린 존재는 당신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과 결혼하세요.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평생 기다린 바로 그 존재입니다.
- Q.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어요
A.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하게 되면, 더 이상 결정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살면서 그저 기다리며 지켜봅니다. 그리고 결정이 제때에 내려질 것임을 알기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나는 미래가 없는 여자라고 즐겨 말합니다. 결정할 것이 없으면 미래를 계획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모든 결정은 나를 위해 내려집니다. 당신의 모든 결정이 당신을 위해 내려지듯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당신은 밑바탕 믿음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 43년 동안 나는 늘 미래에 대한 나의 이야기들을 믿었고, 나의 어리석음을 믿었습니다.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고 요양원에서 돌아온 뒤 가끔 긴 여행을 다녀오면, 집 안에서는 더러워진 세탁물들과 책상 위에 쌓인 우편물 더미, 덕지덕지 딱지가 붙어 있는 개 밥그릇, 어질러진 욕실, 설거지할 그릇이 잔뜩 쌓인 싱크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집안 꼴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설거지를 해라." 그 소리는 '불타오르는 떨기나무'에서 나오는 것 같았는데, 그 소리가 말했습니다. "설거지를 해라."
- 그다지 영적인 말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자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싱크대 앞에 서서 하나씩 그릇을 씻었고, 청구서 더미 앞에 앉아서 맨 위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날이 끝날 무렵 모든 일이 다 처리되었고, 나는 누가 또는 무엇이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 "설거지를 해라"와 같은 생각이 나타날 때 그 생각을 따르지 않으면 내면에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세요. 아마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오갈 것입니다. "나중에 해야겠어. 지금쯤은 끝내야 했는데... 룸메이트가 그 일들을 다 끝내 놓아야 했어. 내 차례가 아니야. 이건 공평하지 않아. 지금 이 일들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볼 거야." 이럴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 피로는 전쟁신경증과 같습니다.
- 내가 '설거지하기'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자기 앞에 있는 일을 사랑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목소리는 당신이 이를 닦고, 일터로 출근하고, 친구에게 전화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단순한 일들을 하도록 하루 종일 인도합니다. 그 역시 또 하나의 이야기지만 매우 짧은 이야기이며, 당신이 그 목소리의 지시를 따를 때 그 이야기는 끝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을 하는 데에 열리고, 기다리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우리의 삶에는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늘 우리 앞에서 펼쳐집니다. 설거지하기, 청구대금 지불하기, 아이들의 양말 줍기, 양치질하기...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할 일은 언제나 한 가지뿐입니다. 삶은 그보다 더 어렵지 않습니다.
- 루스 : 그 생각을 내려놓을 이유를 찾을 수는 있지만,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죠?
케이티 : 맞아요. '작업'은 깨닫기 위한 것이지 뭔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당신이 인식하는 대로 존재합니다. 맑음은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맑을 때는 아름다움만 보입니다. 다른 것은 보일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생각들을 인식하는 마음이며, 모든 것은 그 마음으로부터 펼쳐집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태양계처럼 기쁨으로 자기를 쏟아 냅니다. 내가 맑지 않을 때는 내 모든 광기(狂氣)를 세상으로서 세상에 투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미쳐있는 세계를 인식하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투사기가 아니라 투사된 모습을 바꾸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삶은 늘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혼돈이 혼돈에게 다르게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혼돈은 자기가 늘 그렇게 살아왔으며 우리가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거꾸로, 명백히 거꾸로 노력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생각들을 바깥세상 속에 내려놓지 마세요. 당신은 그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생각을 만든 건 당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들을 이해로 만나면, 세상이 바뀝니다.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바로 온 세상을 투사하는 투사기인 까닭입니다. 당신이 바로 투사기입니다! 다음 문장을 봅시다.
- 루스 :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거나 무서우면 안 된다."
케이티 : 아까 당신이 말했듯이, 제때에 앞서 결정하려고 애쓴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제때에 앞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정은 결정될 때 결정됩니다. 한 호흡도 더 이르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나요?
- 케이티 : 스트레스의 목적이 그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친구입니다. 스트레스는 자명종입니다. '작업'을 할 때라고 알려 주는... 당신은 그저 자신이 자유롭다는 자각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조사하면 참된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늘 실재합니다.
- 질문할 수 없는 생각이나 상황은 없습니다. 모든 생각, 모든 사람, 그리고 문제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당신의 자유를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있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껴지면, 질문해 보세요. 그러면 그 생각을 믿기 전에 느꼈던 평화를 다시 누릴 수 있습니다.
- 세상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거든 '작업'을 하세요. 모든 불편한 느낌이 있는 까닭은, 아픔이 있는 까닭은, 돈이 있는 까닭은, 담벼락과 구름과 개와 고양이와 나무가 있는 까닭은, 세상 모든 것이 있는 까닭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자기 깨달음.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생각이 거울에 비치듯 비친 모습들입니다. 자유를 원한다면 그것을 판단하고, 조사하고, 뒤바꿈으로써 자유로워지세요. 화나 두려움, 슬픔을 경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를 알아차리고, '작업'을 하세요. 세상 모든 것이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에 대한 '작업'을 잘한다고 느껴지면, 이제는 세계 곳곳의 굶주림이나 종교 원리주의, 관료주의, 정부, 섹스, 테러리즘과 같은 사회 문제들이나 마음에 떠오르는 불편한 생각들에 대해서도 탐구할 수 있습니다. 사회 문제들에 질문하고 판단들을 뒤바꾸면, '바깥'에 있다고 여겨진 모든 문제들이 사실은 자기 생각 속에서의 오해일 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양식에 쓴 내용이 사회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우선 평소처럼 네 가지 질문으로 탐구하세요. 그리고 뒤바꾸기를 할 때 그 문제를 '내 생각'으로 바꿔 보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적합해 보이면... 예를 들어 "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쟁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는 문장은 "나는 내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로, 또는 "나는 내 생각, 특히 전쟁에 대한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생각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로 뒤바뀝니다. 이 뒤바꾸기가 당신에게 원래 문장만큼 진실하거나 더 진실하나요?
- 그 뒤 1997년에 터키에 갈 때까지 나는 11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곳에서 택시를 탔는데, 차 안의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터키 음악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고 있었고 운전사는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려 대고 있었습니다(터키에서는 보통 경적을 울리는데, 그것은 신의 소리입니다. 6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들고 있었고, 모든 차량이 서로에게 경적을 울리며 운전하는데, 그 모든 것은 완벽한 흐름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로 몸을 돌리더니 활짝 웃으며 담배를 권했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담배를 받았고, 그는 내게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음악도 경적 소리도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려 대·고 있었지만,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나는 담배를 피워도 좋고 피우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알아차립니다. 그 근사한 택시 여행 뒤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을.
- 하지만 담배를 피워야 한다거나 피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관념이 일어날 때, 내가 그 생각을 믿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벗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은 생각들을 살펴보지도 않고 믿어 버리는데, 이런 생각들은 우리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이유가 됩니다. '해야 한다'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 만일 술이 당신을 병들게 하거나 분별력을 잃게 하거나 화나게 한다고 생각한다면, 술을 마실 때 당신은 질병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술이 있는 곳에서 술과 만나고 있으며, 술은 정확히 당신이 예상하는 대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조사합니다. 술을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술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오해를 끝내기 위해서. 만일 술을 정말 계속 마시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면, 술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술은 동정심이 없습니다. 술에는 피해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술에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오직 숙취뿐.
- 나는 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갑니다. 내 몸은 의사의 일입니다. 내 생각은 나의 일입니다. 그 평화로움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어디에 갈 것인지를 분명히 압니다. 그러면 몸은 아주 재미있어집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몸이 살거나 죽는 데 관심을 쏟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은 당신의 생각이 투사된 이미지며, 그 생각의 은유입니다. 거울에 비치듯 당신에게 다시 반사되는 이미지입니다.
- 1986년 어느 날 마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온몸이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모든 인대와 힘줄과 근육들이 극도로 팽팽해진 것 같았습니다. 죽은 뒤에 몸이 굳어지는 현상 같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하는 동안, 나는 완전히 고요했고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몸이 어떤 식으로 보여야 한다거나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생각들은 지나갔습니다. 이를테면 "오 맙소사, 몸이 움직이지 않아.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어"와 같은 생각들. 하지만 내 안에 살아 있던 질문들은 이런 생각들에 대한 집착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질문의 과정이 느리고 말로 표현되었다면, 이런 식이었을 것입니다. "너는 이제 다시는 걷지 못할 거야-스윗하트, 너는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니?"
- 이 네 가지 질문은 너무 빨랐습니다. 이 질문들은 생각이 일어나는 찰나에 그 생각과 만납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몸의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상태로 되돌아왔습니다.
- 케이티 : "딸의 마약중독이 손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뒤바꿔보세요.
샬럿 : 딸의 마약중독에 대한 내 생각이 내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케이티 : 예.
샬럿 : 정말 그렇습니다.
케이티 : 딸의 마약중독은 누구의 일인가요?
샬럿 : 딸의 일입니다.
케이티 : 당신의 마약중독은 누구의 일인가요?
샬럿 : 나의 일입니다.
케이티 : 자기의 일을 돌보세요. 다음 문장을 봅시다.
샬럿 : 딸의 마약중독은 그 애의 삶을 망치고 있다.
케이티 : 당신은 길게 볼 때 마약중독이 딸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샬럿 : 아니요.
케이티 :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그 질문에 대답해서 기쁩니다. 1986년에 딸에 대해 '작업'을 하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당신이 방금 찾은 진실을 발견하려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딸은 그 중독을 경험한 까닭에 오히려 지금 삶이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켜봅니다. 그러면 나는 온전한 정신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그래서 삶은 늘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설령 내 딸이 죽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나는 정말로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이 신에게 가는 유일한 길이라면, 당신은 이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 케이티 : 집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느끼거나 했나요?
빌렘 : 아마 아닐 겁니다. 나는 몹시 겁에 질려 있었으니까요.
케이티 : 자, 스윗하트, 당신은 그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나요? 몇 년 동안이나?
빌렘 : 아주 많이.
케이티 : 당신은 얼마나 더 많은 폭탄 소리를 들었나요?
빌렘 : 폭탄은 2주 동안 떨어졌습니다.
케이티 : 당신은 2주 동안 폭탄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경험했나요?
빌렘 : 55년간.
케이티 : 폭탄은 당신의 내면에서 55년 동안 떨어졌습니다. 실제 떨어진 것은 6년 중 일부였지요.
빌렘 : 예.
케이티 : 그러면 전쟁과 당신 가운데 누가 더 친절한가요?
빌렘 : 흐음.
케이티 :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인가요? 이 이야기를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빌렘 : 무서워합니다.
케이티 : 이 이야기를 믿을 때 당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세요. 폭탄도 떨어지지 않고 집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당신은 55년 동안 무서워했습니다. 당신은 이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내려놓을 이유를 찾을 수 있나요?
- 빌렘 : 나는 앞으로 다시는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지거나, 포로가 되거나, 굶주리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케이티 : 당신은 그 이야기를 다시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엾은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때 평화를 느끼거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시 작업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두려움 없이 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을 때, 당신의 '작업'은 끝이 납니다. 당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 한 사람뿐입니다. 내면의 폭탄들은 당신에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 뒤바꿔 봅시다. "나는 기꺼이..."
빌렘 : 나는 기꺼이 내 머리 위로 다시 폭탄들이 떨어지게 하겠다.
케이티 : 오직 당신의 생각 안에서 폭탄들은 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내면에서만 올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고대한다."
빌렘 : 그건 말하기가 힘들군요.
케이티 : 나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고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아직 이해로 만나지 않은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실의 힘을 압니다.
빌렘 : 나는 폭탄들이 다시 떨어지기를, 굶주리기를 고대한다. 굶주림은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잠시 멈춤) 아직은 가슴에 와닿지 않는군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케이티 : 지금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폭탄들이 떨어지기를 고대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만큼 인정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그 이야기가 다시 올라올 때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경험한 과정은 앞으로 며칠이나 몇 주 동안 당신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큰 쇠망치로 내리치듯이 당신을 내리칠 수도 있지만, 당신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고대하세요. 자리에 앉아서 남은 문제들을 적어 보세요. 55년 된 환영을 정신적으로 수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용기에 감사합니다.
-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아직도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날마다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치유를 가로막던 장애물을 탐구를 통해 극복해 가는 모습을 나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를 통해 그들은 자신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진실, 즉 현재의 고통은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습니다. 이 깨달음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은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 다음의 대화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고통을 겪었든 과거의 사건에 대해 느끼는 고통은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에 생겨납니다. 탐구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조사합니다. 비록 내가 다이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면으로 다시 데려가고 그녀도 그 두려운 때로 돌아간 것처럼 질문들에 답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안전한 지금 이 순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대화를 읽을 때, 그리고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는 대답들을 찾아볼 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계속 읽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잠시 이 대화를 떠나세요. 언제 다시 이 대화로 돌아올지는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 이런 질문들을 할 때 나는 결코 잔인함이나 티끌만큼의 불친절조차도 용인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관심의 대상은 가해자가 아닙니다. 내 모든 관심은 오로지 지금 나와 함께 앉아 있는 사람에게 쏠려 있으며,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그녀의 자유일 뿐입니다.
- 만일 자신이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라고 느낀다면, 탐구할 때 다음 두 부분에 얼마간의 시간을 더 갖기를 권유합니다.
첫째, 스스로 '질문 3'을 묻고 자기의 생각이 일으킨 고통을 알아차린 다음, 내가 다이앤에게 묻는 추가 질문들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그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나요? 당신은 그 일을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이 재현했나요?
둘째, 그 일에서 자신이 참여한 부분을 발견할 때, 그것-사랑-을 위해서든 더 심한 해를 피하기 위해서든 그 행위에 순진하게 순응한 부분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스스로 그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얻는 힘을 느껴 보세요.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 보세요.
그 뒤 스스로가 한 고통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 과정이 끝난 뒤 남는 자기 자신은 전혀 피해자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케이티 : 응. 혹시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처럼 네가 행동한 부분이 있니... 사랑을 위해? 네 역할은 무엇이었니? (청중을 향해) 만일 여러분 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분이 있다면 지금 내면으로 들어가 보세요. 그럴 수 있으면, 그리고 질문에 답해 보세요.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세요. 이건 당신의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 케이티 : 당신이 찾던 것을 얻는 것은 최악의 일이 아니죠. 당신은 혼자 남아 있었을 뿐입니다. 희생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남들에게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데 대한 보상은 없지요. '내게 만일 기도 하나가 있다면'이라는 기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나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맛만 보았을 뿐이지만... 내게 기도가 있다면 이럴 것입니다. "신이시여, 제가 사랑과 인정, 좋은 평가를 구하지 않게 해 주소서, 아멘."
- 다이앤 : 그럼 나도 그 사람만큼 잘못한 게 되는 건가요?
케이티 : 아니요, 스윗하트. 그만큼 순진한 사람... 당신이 어떻게 다른 길을 알 수 있었겠어요? 그때 당신이 다른 길을 알았다면 그 길을 가려하지 않았을까요?
- 케이티 : 예, 그럼 어디에 잘못이 있나요? 우리는 모두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뭐가 뭔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우리 자신이 바로 사랑이라는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할 때까지.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어린 여덟 살짜리들, 어린 아홉 살짜리들, 어린 사십 대, 오십 대, 팔십 대 사람들.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찾고 있다는 거겠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추구입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나요?
- 케이티 : 당신의 몫을 훌륭히 통찰했군요. 자, 이제 그 어린 소녀와 잠시 함께 있어 보세요. 눈을 감고서, 그 소녀를 품에 안아 주는 걸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소녀에게 부드럽게 사과하고 위로해 주세요. 그 소녀에게 누군가가 필요할 때는 당신이 늘 그 곁에 있을 거라고 말해 주세요. 그 소녀는 당신이 오늘 배우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 소녀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당신이 오늘, 지금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소녀는 당신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 소녀는 당신이 지금 알게 된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그 소녀입니다. 그 소녀가 그렇게 산 것은 당신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소녀는 당신의 지혜가 자리한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당신의 자유를 위해 그렇게 살았던 이 아름다운 어린 소녀를 만나고 있습니다. 스윗하트, 또 하나의 뒤바꾸기가 있습니다.
- 다이앤 :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만일 내가 이 일에 대해 더 일찍 말했다면 결과는 무척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케이티 : 우리는 그것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나는 당신의 길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길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유를 찾는 데 필요한 삶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단 하나의 요소도 모자라거나 남지 않습니다. 어린 소녀는 당신을 위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 모든 삶을, 그 소녀는 오늘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열쇠를 들고 있습니다. 자, 스윗하트, 그의 역할과 당신의 역할 가운데 어느 역할이 당신에게 더 고통스러울까요?
- 하지만 친구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고 그들의 선생을 자처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들이 내는 화는 당신을 탐구 속으로, 혹은 고통 속으로 더 깊이 데려갈 것입니다.
- Q. "영적인 척하지 마세요, 대신 정직하세요"라는 당신의 말은 무슨 뜻인가요?
A. 자기의 현재 수준보다 더 높은 척 가장하는 것, 어떤 거짓말이든 거짓말을 하며 사는 것,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선생처럼 행동하는 것은 대개 학생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려움이 없는 척 가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려워하든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내게 비밀이 아닙니다.
- Q. 어떻게 하면 내게 심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A. 당신의 적을 판단하고, 종이에 적고,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뒤바꿔 보세요.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일이 실은 일어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이 곧 용서입니다. 용서할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으로 용서한 게 아닙니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껏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끔찍한 일도 없습니다.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 당신의 조사되지 않은 생각 말고는... 고통받을 때마다 질문하고 생각을 조사하여 자유로워지세요. 어린아이가 되세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출발하세요. 자유를 향해 가는 동안, 늘 모른다는 마음과 동행하세요.
- Q. 당신은 "우리가 완전히 명쾌할 때는 지금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령 내가 최고급 식당에서 혀가자미 구이를 먹기 위해 몇 달 동안 저축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식당 종업원이 소 혓바닥 찜을 가져옵니다. 이때 지금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해하고 있나요? 현실과 다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A. 예, 당신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명쾌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소 혓바닥 찜입니다. 왜냐하면 종업원이 가져온 것은 그것이니까요. 당신이 그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업원이 소 혓바닥 찜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어쩔 수 없이 그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또는 다시 주문해서 먹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주문하지도 않은 요리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또는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들을 투사하기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종업원이 그 요리를 가져온 것은 잘못이라고 믿을 때, 당신은 그에게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그 종업원을 보고 있는 당신은 누구일까요? 종업원이 실수했다거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 실수처럼 보이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 차분한 마음으로 처음 주문한 내용을 분명하고 유쾌하게 다시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고맙지만, 내가 주문한 것은 혀가자미 구이였습니다. 나는 사정이 있어서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여덟 시까지 그 요리를 먹고 나가기가 힘들면 다른 식당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현실과 다툰다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와 다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거는 이미 끝났고, 어떤 생각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종업원은 이미 당신에게 소 혓바닥 찜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접시에 담겨 당신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만일 그곳에 그 요리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요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지금 있는 것이 당신 앞에 있을 때 이 순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동적인 태도와는 다릅니다. 맑은 정신으로 근사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는데, 당신이 왜 수동적이겠어요? 소 혓바닥 찜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종업원에게 혀가자미 구이를 주문했다고 분명하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가장 친절하고 알맞게 가장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 당신은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직 마음에만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오른손잡이가 오른팔을 잃으면 큰 문제 아닌가요?
A. 내게 한 팔만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 내 팔은 하나입니다. 우주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두려워질 뿐 아니라 희망이 없습니다. "내겐 두 팔이 필요해"라는 이야기에서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현실과 다투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가 없다면,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오른팔 없이도 완전합니다. 왼손으로 쓰면 처음에는 글씨가 삐뚤삐뚤하겠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왼손은 내가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있는 방식으로 일할 것입니다. 팔이 하나만 있어도, 삐뚤삐뚤 글씨를 써도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려 주는 선생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기꺼이 왼팔까지도 잃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Q.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A.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 그게 진실인가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사랑하지 못할 때, 당신은 자기를 어떻게 대하나요? 당신은 그 이야기를 내려놓을 이유를 찾을 수 있나요? 당신의 거룩한 관념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도 사랑해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장난감일 뿐입니다. 못살게 괴롭히는 또 하나의 장난감. 그 생각의 정반대는 무엇인가요?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 안 된다." 이 말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당신은 아직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사랑할 때까지는... 이런 거룩한 관념들, 이런 영적 관념들은 늘 도그마로 변질됩니다.
- Q. "나는 당신의 투사입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A. 세상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인식입니다. 안과 밖은 언제나 일치합니다. 그것들은 서로의 반영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마음이 거울에 비치듯 반사된 모습입니다. 내면에서 혼돈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면, 바깥세상은 그것을 반영해야 합니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생각으로 바깥을 보고 자기 자신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혼란스럽다면 당신이 보고 듣는 것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예수나 붓다가 앞에 서 있다 해도, 당신이 듣는 말은 혼란스러운 말들일 것입니다. 혼란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나 붓다가 무슨 말을 해도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위협받는다고 느끼자마자 그와 다투기 시작할 것입니다.
- 내가 당신의 투사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내가 달리 어떤 존재일 수 있을까요? 내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나는 실제의 내가 아니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나를 늙은, 젊은, 아름다운, 못생긴, 정직한 속이는 자상한 냉정한 사람으로 봅니다. 당신에게 나는 당신의 조사되지 않은 이야기이며 당신이 꾸며낸 인물입니다.
- 당신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그 인물이 당신에게는 진실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나 역시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43년 동안만, 실제 있는 현실로 깨어나기 전까지. "저것은 나무다. 저것은 탁자다. 저것은 의자다." 그게 진실인가요? 고요히 멈추고서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나요? 자신에게 묻고서 고요히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게 나무라고 당신에게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누가 맨 처음 저것을 나무라고 했나요?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내 모든 삶, 내 모든 정체성을 떠받치던 토대는 어린아이처럼 곧이곧대로 믿고 의문을 품지 않는 순진함이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어린아이인가요? 당신이 이 '작업'을 통해서 참된 지식의 책, 자기 자신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장난감과 동화들은 치워집니다.
-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행복도 모두 투사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그게 아름답지 않나요? 나는 이 행복한 꿈을 즐기며 삽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천국에서 산다면, 그 생활이 끝나기를 바랄까요? 그 생활은 끝나지 않습니다. 끝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게 진실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까지는... 만일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면, 나는 항상 탐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질문들에 답하고, 진실은 내 안에서 알려지며, 행위는 무위를 만나고 있음은 없음을 만납니다. 그 두 절반이 균형 잡힌 자리에서, 나는 자유합니다.
- Q. '작업'을 하면 스트레스와 문제들이 없어질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무책임하지 않을까요? 만일 세 살배기 우리 아이가 몹시 배고파한다면, 나는 그 애를 스트레스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음, 그게 현실이야"라고 생각한 뒤,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까요?
A. 오, 맙소사!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사랑이 필요할 때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밥을 주는 데 폭력적인 생각이 왜 필요하나요? 아이가 배고파하면 밥을 주세요, 자신을 위해서!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나 걱정 없이 밥을 주는 것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더 맑은 정신으로 음식에 필요한 재료를 찾고 음식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래서 즐겁고 감사하지 않을까요? 음, 나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스트레스 없이도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스트레스는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맑은 마음이 효율적입니다. 사랑은 행동합니다. 그리고 내 경험에 따르면, 현실은 언제나 친절합니다.
- Q. 어떻게 현실이 좋다고 말할 수 있죠? 전쟁이나 강간, 가난, 폭력 그리고 아동학대 등은 어떤가요? 당신은 그것들을 용납하는 건가요?
A.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용납할 수 있겠어요? 나는 단지 그것들이 없어야 한다고 믿으면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는 존재합니다. 나는 내 안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가? 나는 나 자신과 남들을 폭력적인 생각들로 강간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없다면, 나는 남들 안에서 끝내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을 내 안에서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맑은 마음은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땅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을 모두 없앨 수 있나요? 탐구를 통해 당신은 한 인간을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전쟁을 없애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전쟁이 여기에서 끝나기 시작합니다. 삶이 당신을 화나게 하나요? 좋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종이 위에 옮기고, 질문하고, 뒤바꿔 보세요.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나요? 모든 고통은 당신과 함께 시작하고, 당신과 함께 끝납니다.
- Q. 항상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뭔가를 원하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A. 내 경험에 따르면, 나는 언제나 뭔가를 원합니다. 그것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황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게 있는 것입니다.
- 이미 내게 있는 것을 원할 때 생각과 행동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둘은 갈등 없이 하나로 움직입니다. 무엇이든 부족한 것을 발견하거든 당신의 생각을 쓰고 질문하세요. 내가 아는 한, 삶은 결코 모자라지 않으며 미래를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늘 빠짐없이 주어집니다. 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고요? 나는 당신의 질문에 답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응답합니다. 사랑이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최초 원인(당신)의 결과입니다. 나는 이 삶을 사랑합니다. 내가 왜 지금 가진 것 이상이나 이하를 원해야 하나요? 그게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지금 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내가 뭘 어떻게 하지 않고서?
- 나중에 내게 다시 물어보면, 나는 똑같이 진실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케이티, 목마르세요?" 아니요. "케이티, 목마르세요?" 예. 나는 늘 바로 지금 나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예, 아니요. 예, 아니요. 그것이 진실입니다.
- 어느 날 새벽 두 시에 사촌이 전화를 했습니다. 몹시 우울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으며,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살아 있어야 하는 좋은 이유 하나를 대지 못하면 방아쇠를 당겨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진심으로 그에게 좋은 이유를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이유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전화선의 맞은편에 그를 둔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나는 좋은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에게 필요했던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살면서 정직한 말을 들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며, 그게 바로 자기가 찾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가 자살하면 안 된다고 믿고서 내가 어떤 이유를 꾸며냈다면, 나는 그에게 정말로 주어야 했던 단 하나, 그 순간 나의 진실이었던 것보다 못한 것을 그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 나는 한동안 '작업'을 한 사람들이 그 순간의 진실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작업'을 계속할수록 진실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쉬워지며, 더 쉽게 유연해지고 더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이 순간에 정직할 수 있게 됩니다.
- 한 번도 마음을 바꾸지 않은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이 문은 전에는 나무였으며, 나중에는 누군가를 위해 장작이 될 수 있고, 그 뒤에는 대기와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처럼 끊임없이 변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정직입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지나요? 그 때문에 당신은 혼란스러워집니다. "마음이 바뀌었나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예, 마음이 바뀌었어요.
- Q.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믿으려고 하지는 마세요. 이 말은 당신이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당신에게 진실이 아닙니다.) 내가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내게 진실을 묻는다면, 나는 지금 내가 보는 대로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요청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신은 그것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자신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나는 받은 것을 주고 있을 뿐입니다.
- 하지만 내 말이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느껴지면,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당신이 정말로 알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불친절하다고 느껴지면 내 마음은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멈춥니다. 나는 나를 보살피고, 그 안에서 당신도 보살핌을 받습니다. 나의 친절은 궁극적으로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평화에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한없는 사랑으로 말을 해도, 당신은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합니다. 내 말을 해석한 뒤 그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줄 때 당신은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고통을 받습니다.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Q.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영혼들이 지금 깨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 하나의 존재, 깨어남이 있는 것처럼 공동의 깨어남에 대한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경험도 그런가요?
A.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고통이 있다면 조사해 보라는 것뿐입니다. 깨달음이란 하나의 영적 관념일 뿐입니다. 결코 오지 않는 미래에 얻으려고 애쓰는 또 하나의 어떤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지고한 진실이라 해도 그 역시 또 하나의 관념입니다. 내게는 경험이 모든 것이며, 탐구가 드러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것들은 남김없이 풀립니다- 지금, 지금, 지금. 만일 당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한다면 자가용이 견인되어 가는 것도 사랑할 것입니다. 자녀가 아플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남편이나 아내가 이혼을 원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깨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은 고통을 겪고 있나요? 지금? 그것이 나의 관심사입니다.
-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하게 숨을 쉴 수 있나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면 어느 누가 깨달음에 신경을 쓰겠어요?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세요. 그럴 수 있나요? 그러면 결국 그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마음은 가슴과 합쳐지고, 자기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마음은 집을 찾고, 자기 안에서 자기로서 편히 쉽니다. 이야기를 이해로 만나기 전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 Q. 깨닫고 자유로워진 사람들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게 있나요?
A. 내가 좋아하는 게 있느냐? 나는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며, 늘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의 태양과 밤의 달. 나는 늘 지금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의 태양을 좋아하고, 밤의 달을 좋아합니다. 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묻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 남자이며, 그 순간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 뒤 내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 여자이며, 그 순간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림으로써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나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어떻게 알까요? 내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닐라를 입힌 초콜릿을 좋아하는가? 그렇습니다. 좋아하지 않을 때까지는...
- Q. 모든 믿음은 없어져야 하나요?
A. 자신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믿음을 조사하세요. 악몽에서 깨어나세요. 그러면 달콤한 꿈들이 스스로 돌볼 것입니다. 만일 자기의 내면세계가 자유롭고 근사하다면 왜 굳이 바꾸려 하겠어요? 만일 꿈이 행복하다면 어느 누가 깨어나려 하겠어요? 그런데 만일 당신의 꿈이 행복하지 않다면 '작업'으로 오세요. 환영합니다.
- '작업'은 당신이 반대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 줄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당신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반대가 진실입니다. 당신은 그들과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판단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처방전이 됩니다. 그 판단들을 뒤바꿀 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 이제까지 당신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충고한 내용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따라야 할 충고가 됩니다. 자신에게 배우는 학생이 될 때 당신은 지혜로운 선생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말을 듣고 안 듣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일을 처리하고 식료품을 사고 설거지를 할 때, 숨 쉬고 걷고 노력 없이 움직이는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지혜입니다.
- 자기실현은 더없이 달콤한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완전히 책임지는 법을 알려 주며, 그곳에서 우리는 자유를 찾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충족되기 위해 우리를 바라보는 대신, 자기 안에서 충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용서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정직할 수 있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본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본보기입니다.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바뀌기 전에는 우리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당신을 계속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화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하고 불쾌하게 할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심하게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당신이 이해할 때까지... 우리는 의식하든 못하든 당신을 그처럼 많이 사랑합니다. 이 온 세상은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론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당신이 고통의 원인을 조사하여 깨달을 때 고통은 스승이 됩니다.
- '작업'을 실천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하세요. 그 목소리는 '당신 자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세요. 그 목소리가 "그는 양말을 주워야 해"라고 말하면, "나는 양말을 주워야 해"라는 뒤바꾸기로 듣고 그저 양말을 주우세요. 노력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 머무르세요. 양말 줍는 일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양말을 주우세요. 그것은 당신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끗이 청소해야 할 중요한 집은 오직 당신의 마음뿐이라는 것을 아세요.
- 양말을 줍지 않으면 몹시 괴로운 상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덤 하나, 당신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양말은 바로 여기에, 당신의 코앞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내면에서 평화를 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자유를 원한다면 이런 뒤바꾸기에 따라 사세요. 예수가 그렇게 살았고, 붓다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위대한 존재들이 그렇게 살았고, 알려지지 않은 모든 위대한 존재들이 집에서, 공동체에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 어떤 지점에 이르면,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깊은 아픔을 해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당신의 몫을 알게 될 때까지 작업을 하세요. 그 뒤에는 당신이 판단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하세요. 당신이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고, 이제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 얘기하세요. 그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이렇게 진실을 말하면 당신이 자유로워집니다.
- 고통스럽게 한 악몽들을 살펴보기를.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삶은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거울에 비춰 주어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 '작업'에 더 깊이 들어가기가 두려울 수 있습니다. 뭔가 귀중한 것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이 더 풍요로워집니다. 한동안 '작업'을 한 사람들은 탐구가 심각한 게 아니며,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을 조사하면 결국 웃음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나는 두려움과 슬픔, 화 없이 이 세상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어 기쁩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무엇이든, 두 팔과 가슴을 활짝 열고 기꺼이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 기쁩니다. 삶은 내가 아직 해결하지 않은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고대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걷기를 고대합니다.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 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 (0) | 2023.10.03 |
---|---|
[셸리나 아이야나] 나는 내 운명 - 건강한 사랑을 위한 내면아이 치유 (1) | 2023.09.20 |
[페니 피어스] 감응력 - 꿈을 실현시키고 직관을 깨우는 힘 (0) | 2023.08.29 |
[타로매직] 가장 쉬운 레노먼드 - 실전 카드리딩과 스프레드 해설 (0) | 2023.08.07 |
[융 푸에블로]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 진실한 나로부터 솟아나온 이야기 (0) | 2023.08.03 |
[박한진, 손인균] 주술과 세뇌 - 점쟁이와 무당에게 휘둘리는 사람들 (0) | 2023.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