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페니 피어스] 감응력 - 꿈을 실현시키고 직관을 깨우는 힘

일루젼 2023. 8. 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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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페니 피어스 / 김우종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10.06.22 


       

여유시간은 외부적 자극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종일이라도 도파민 중독적인 행동을 할 수도, 고요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난 일주일을 돌이켜보면 내 경우에는 중독성 있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새로 시작한 피아노 연습과 장르 소설 탐독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서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무척 행복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나는 적절한 선택을 했던 것일까?' 

 

많은 영성적 가르침들은 '자유의지란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므로 당신이 행하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될 수는 없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에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곤 한다. 그것은 불쾌감이나 분노 같은 격렬한 감정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미묘하고 은근한 불일치감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들조차 '안배된' 것일 테니 나는 아무것도 변화시키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간단하게 답하기란 어렵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어나는 상황들이 안배되어 있을지라도 그 순간을 감각하는 '나'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거기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감정과 생각까지도 선택할 필요없이 그저 지켜보며 흘려보내는 차원을 연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흔히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들 말하는 '깨달음'이란 특정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고 있음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상태에서 의지대로 행할 수 있다면 그때의 '의지'는 말 그대로 '근원'이자 '신의 뜻'일 것이다.

 

<감응력>의 저자 페니 피어스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직감을 보다 예리하게 단련시키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녀에 따르면, 누구나 아침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작은 결정부터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큰 결정까지 자신의 몸-감정(마음)-영혼의 가이드를 받을 수 있고, 그것은 언제나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소개된 연습법이나 질문을 깊게 받아들인다면 일시적인 충동이나 감각적 이끌림과의 구분법 또한 체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직감 향상'이 이 책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좀더 정제된 감각을 갖게 되면, 외부에 대해서도 훨씬 정확하고 놀라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대상이 반드시 생물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물질과 비물질 모두 일종의 에너지체 -원자와 전자와 양자의 단계에서 보자면 동일한- 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자신을 감각할 수 있는 이는 -꾸준한 연습과 집중을 통해- 모든 것으로부터 듣고 느낄 수 있게 될 수 있다.

 

어느 지점부터 비약이라고 느끼게 되실지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 같다. 그러나 목표하는 단계가 다르더라도 스스로를 잘 감각할 수 있고, 자신과 잘 맞고 맞지 않는 것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이지 않은가? 이른바 공기를 읽고 분위기를 느끼는 '감각', 선택의 순간 긴장과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결정할 수 있는 '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외부적 도구로 2차 검증을 하는 편인 나로서는 무척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끝.    

 

 


   

- 당신이 집어든 이 책은 죽은 물질, 즉 정해진 서체와 판형대로 잉크가 묻은 그저 그런 종이가 아니다. 진실은 당신 눈의 시각, 손의 감촉, 마음속의 해석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무엇이 이 책을 당신의 전자기장 속으로 처음 끌어당겼을까? 그것은 이 책의 지혜로운 메시지와 당신 사이의 에너지 동조였다. 이 책의 저자인 페니는 당신의 에너지장, 즉 당신 고유의 에너지 진동을 당신의 근원 주파수' (Home frequency)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책장 위에 새겨진 낱말들의 에너지도 고유한 주파수로 진동한다. 

 

- 전 세계의 과학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에너지야말로 만물의 구성 요소이며, 에너지는 일종의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말한다. 지구가 무한한 전자기장 속에서 자전하듯이, 모든 에너지는 회전하고 소용돌이치고 진동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주의 에너지가 지구 밖 머나먼 어딘가에서 우지직 소리를 내며 불타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그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 우리의 개별적 자아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대기권 안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 우리들 각자는 활동하며 살아가는 동안 우주의 구석구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에너지체이다. 따라서 에너지 진동이란, 추상적인 영역 속에서 진동하는 신비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내적 공간(inner space)'을 직접 가리킨다. 예수회의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이 내적 공간을 '내면성'이라고 불렀다. 자연계와의 교감을 통해 이 단어를 만든 샤르댕은, 우주란 물질의 복잡화와 의식화를 향해 쉼 없이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 직관적 에너지의 활용이 영매나 신비가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사실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발달 수준에 맞게 그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페니는 우리도 이 책의 연습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직관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또한 우리는 통찰, 직관, 영감이 가득한 태초의 보고 -안팎의 모든 곳에 실재하는 생명의 원천- 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올 수도 있다.  

- 사념 에너지의 훈련과 활용은 자아 변성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카를 융은 열두 살에 겪었던 변성의 체험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갑자기 나는 짙은 구름으로부터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단번에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구나!' 마치 내가 안개가 사라지는 지점에 서 있는데, 뒤편으로 조금 물러나면 '나'라는 것이 도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나는 단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에게 '나'라는 것이 생겨났다." 

 

- 스스로 에너지체임을 깨닫고 내면성 속으로 들어가 의식의 신비를 탐구하기 시작할 때, 우리 자신에게는 '우리'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아직도 자기 성찰, 묵상, 명상, 그 외의 내적 수행들을 비정상적인 자기도취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과학 분야의 임상연구들은 내적 수행이 당사자의 에너지 진동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경험적 증거를 계속 발견하고 있다. 전자기학, 중력학, 양자역학 할 것 없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현대과학은 역사상 모든 전통의 위대한 영성가들이 태초부터 말해온 바를 밝혀내고 있다. 우리는 참된 자아를 실현하고 우주의 진화에 동참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창조적 지성이자 빛나는 에너지체라고 말이다. 

 

- 이 책은 근원 주파수 속에 머물기 위한 탁월한 훈련법, 저자의 경험, 상담사례 등을 폭넓게 담고 있다. 또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주적 삶으로 나아가는 단계들도 빠짐없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 처방이다. 


- 마이클 버나드 벡윗, <영적 자유>의 저자

 

 


 

- 끝없는 자극들이 몰고 오는 과도한 흥분 또는 무력감을 끝장내고 싶은가? 당신의 미래, 사건사고, 지인들에 대한 미묘하고도 비언어적인 정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는가? 당신은 그것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중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콕 집어내지 못한다. 

- 당신은 학문, 권력, 재물을 좇는 동안 잃어버린 감각과 영성을 되찾고 싶을 수도 있다. 냉철한 태도로 사업적 성공을 이루었더라도, 이제는 전적인 쇄신과 내적 동기의 유발, 비대해진 조직의 혁신을 요구받을 것이다. 당신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배워 새로운 길로 들어섰는가? 그리고 최신의 현실 원리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가? 원하는 삶을 창조하기 위한 의지(will)와 믿음(trust) 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고 싶은가?

 

- 진실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몹시 불편하고 불행하고 부족하다고 느낄 때 찾아오는 법이다. 고민에 떠밀리는 그런 순간에야, 우리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 또는 더 진실한 답을 찾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스캇 펙

 

 


 

- 당신은 참된 자아로서의 더 높은 체험과 더 나은 삶을 가로막는 껍데기(에고)를 혼자 힘으로 부숴버릴 수 있다. 구루(스승)가 없어도 상관없다. 초자연적 체험 속으로 날려 보내주는 특별한 사건도 필요 없다.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초개아적(transpersonal) 사건들이 평범해 보일 만큼, 당신은 현재의 육체 그대로 높은 주파수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빠져 있던 그림 조각들은 절로 당신의 의식 속으로 날아들고, 새로운 인식은 직관의 시대를 향한 '임계점' 가까이로 우리 모두를 데려가는 중이다. 

 

- 이 책의 목적은, 감추어진 변성 과정의 영향력을 당신에게 이해시키고 그 단계들을 수월하게 통과하도록 돕는 것이다. 당신은 감응력을 키워 감정의 벽을 허무는 기법들을 통해 무수히 다양한 진동 상태 속에 숨은 메시지를 해독해 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맞는, 가장 빠르고 본질적인 진동을 찾아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낮은 주파수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감응력'을 얻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내적 진동을 조절하는 사람은 막강한 힘을 얻는다. 

 

- 당신의 성장 과정을 확인하는 확실한 방법은 일지를 쓰는 것이다. 당신은 이런 '정보체'(body of information)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각 장에서 제시된 개념들을 직접 실습해 볼 수 있는 간단하고도 다양한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을 직접 해보고 그 결과를 적어보라. 당신은 어떤 통찰을 얻었는가?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놀라웠는가?

 

-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아무런 검열 없이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받아 적는 자동기술(direct writing)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당신 의식의 깊은 곳으로부터의 반응을 자석처럼 이끌어낼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라. 첫 단어가 찾아들게 하라. 그것이 다음 단어들을 이끌고 올 것이다.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이상한 단어가 떠올라도 그대로 기록하라. 단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그 흐름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글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 것이다. 당신은 그 글의 생기와 정확함에 놀랄 것이다. 

 

 

무언가를 알려거든,
잉크와 펜처럼 그것 속에 당신 자신을 담가보라.
그것이 스스로의 말을 당신을 통해 꺼내놓게 하라.

- 엘리자베스 에어즈

 

 

- 직관은 직접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이다. 직관은 몸, 감정, 마음, 영혼 등으로 나뉘어 있는 당신의 의식을 통합하는 데서 비롯된다. 직관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긴장 없이 깨어 있을 때, 몸과 감정의 신호와 소통할 때, 의지만으로 밀어붙이지 않을 때, 순수하게 열려 있을 때 솟아난다. 직관은 본능적인 끌림 또는 거부감이다. 또는 오감 중의 한 형태이거나 복잡한 의미, 구조, 예지, 정보 패턴에 대한 번뜩이는 이해일 수도 있다. 

 

- 실로, 보이지 않는 우주가 보이는 우주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관념이 노련한 과학자들에게 오늘날만큼 널리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전통의 공통된 사상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을 "물질에 스며든 영혼"이라고 불렀다- 을 잊지 않고 있는 선각자들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신비주의 철학은 빼어난 논리로 각광받고 있다. 비물질적인 세계관, 에너지장과 파동과 마음의 영향력 등이 그러하다.   

 

- 70년대 초부터 나는 직관력 향상에 힘을 쏟아왔다. 또한 마음을 다스려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도 수련해 왔다. 불교도들이 "깨어 있기(skillful perception)"라고 부르는 수행법 말이다. 직관의 신비를 밝히려는 나의 열정은 한 번도 시들해지지 않았다. 나는 직관을 연구하는 동안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들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삶을 순탄하게 해주는 비밀들도 많이 찾아냈다. 나는 직관력을 훈련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의 앎이 좀 더 포괄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거나 해체될 필요가 있는지를 꾸준히 자문했다. 때로는 윤회와 전생 등에 대한 호기심이 -그것들은 몇 년간 나의 중요한 세계관이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더 큰 무언가로 확장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전의 관심사들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잃었고 나 또한 그만큼 눈길을 덜 주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향해 그렇게나 열광했다가 금세 확 식어버린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솔직하고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가장 정확한 것은 바로 우리의 '직관'이다.

 

- 페루 출신의 잉카의 영적 사자인휠라루 후야타 Willaru Huayta는 이렇게 말한다. "고대 이후로, 그 마지막 황금시대 이후로도 태양의 아이들은 존재해 왔다. 한 해에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네 종류의 거대한 우주 시대가 순환한다. 황금시대 다음에는 은의 시대가 온다. 다음은 동의 시대이고, 그다음은 철의 시대로서 이것이 지난 수천 년간 지속되어 왔다. 이 마지막 금속의 시대는 강한 물질적 성질을 지닌 어둠의 시기였고, 사람들은 이기주의(egotism)에 빠져들어 어머니 자연의 힘을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그것은 전쟁의 시대, 금속과 같은 냉정함의 시대였다. ... 긴 겨울과 같았던 철의 시대가 이제 끝나가고 있다. 마치 봄처럼, 새로운 황금시대가 세상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계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몸을 신전과 같이 여기며 우주 법칙을 인식하는 자연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각각의 개인은 하나의 성스러운 신전이다. 가슴은 그 신전의 제단이다. 거대한 빛의 반향인 사랑의 불이 이 제단 위에서 불타오른다. 이 내면의 빛은 반드시 알려져야 하고, 보살펴져야 하고, 숭배되어야 한다. 이것이 태양의 아이들의 종교이다." 

 

- 이런 첫 단계의 대표적인 증후는 몸과 마음의 조화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심리학, 통합의학, 스포츠,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영적 수행들에서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영혼 또는 영성이 드러난다. 문득 당신은 그것이 언제나 만물 안에 존재해 왔음을 깨닫는다. 몸과 통합된 상태의 느낌을 알게 되고, 각각의 세포가 얼마나 의식적인지를 실감한다. 상황에 따라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할 때면 당신은 그런 변화와 이유를 즉시 알아차린다. 당신은 모든 물질이 일종의 의식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 교회 또는 영성 단체의 가입, 속세의 영성화, 깨어 있기(being mindful), 직관력 개발, 자각몽, 삶의 소명, 크롭 서클·영체·영능력·신비주의 종교·임사 체험 등을 매개로 한 초자연적 영역과의 접촉 등등의 주제들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물리학, 천문학, 미생물학, 해양학, 유전학 등이 찾아낸 생명의 근간을 진지하게 탐구하거나, 에너지 공급 부위(차크라) 또는 숨겨진 비밀들 -고대의 신비, 새로운 의학, 멸종된 인류, 생명체의 잃어버린 고리, 지하 문명 등등- 에 관심을 쏟게 될지도 모른다. 

 

- 당신은 지금껏 거부해 온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한 후에, 그 에너지 흐름을 타고 다시 밝은 측면으로 이동해 온다. 당신은 밝음과 어둠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 원천이었는지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깨닫는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팔괘적 흐름에 반하는 당신 내면의 장애물들 -편견, 고착, 저항- 이 먼저 부각된다.

 

- 물론, 자신에게는 무의식적 고착이 없다고,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어. 이건 시끄럽게 굴면서 야단법석을 피운 네 잘못이야." 당신은 너그러울 수가 없다. 당신은 외모, 성격, 지성, 기술, 에너지 수준이 자신과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과 대상들을 거부하려 든다. 당신은 위협, 배신감, 질투를 느낀다. 당신은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며, 양극성 -좋고 싫음, 매력과 혐오, 공격과 방어, 소유와 거부- 의 틈새에서 끝없이 변덕을 부리는 신세가 된다.

 

- 논쟁과 욕설, 대립과 비난이 증가한다. 속이고, 비난하고, 불평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소통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문제를 일으키고 곤경에 처해 파국에 이른다. 이혼, 법정 싸움, 이웃과의 갈등, 가족 간의 언쟁, 완벽한 영혼의 짝(soulmate)에 대한 갈망 등을 경험한다. 증오 범죄, 고문, 관음증, 금기의 파괴, 리얼리티 쇼, 법정과 범죄 수사, 당파에 빠진 정치 지도층, 신랄한 토크쇼 진행자, 각종 심리요법 등등의 현상들이 갈수록 일상화된다. 천식, 정신분열, 양극성 · 경계선 장애, 간질 등의 공황성 질병과 혼란이 증가할 수도 있다. 

 

- 이 단계의 긍정적인 결과는, 만약 상위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사랑과 인내로써 현실에 대처한다면, 싫어하는 한쪽 면만을 회피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모든 선택지를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사람들이 서로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되비추기(mirroring)'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당신은 무엇에든 양극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며, 지금껏 거부해 왔던 자신의 일부분으로부터 정보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배운다.  

 

- 당신이 백 살까지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로 대단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니 고착과 소유와 냉담함과 거부감을 더욱 심화시키기보다는 참된 본성과 연결되고, 마음과 가슴을 열고, 진화의 과정을 수행하는 데 전념해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 오랫동안 감내해 온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감정적 상처들을 단호하게 치유해 가는 만큼, 당신의 에고 -두려움과 자기 방어에 기반을 둔 마음의 일면- 는 간섭하고 소리친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것은 '힘들지만 익숙한 낡은 방식들의 보존을 위해 싸우고, 내려놓음과 인내심에 힘껏 저항한다. 당신은 생존을 위한 행동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에 돌입하고 그 교묘한 습성에 농락당한다.
"나는 바뀌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나만의 세계 속에 산다. 나는 옳다!"

 

- 당신은 자신의 성격, 엄격한 개인주의, 애국심을 옹호하게 된다. 더욱 독선적이고, 허풍스럽고, 자아도취적이고, 성마르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당신은 유명해지고, 강하고, 부유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화려한 소유물들을 취하고 싶어 한다. 주변 상황과 타인들을 통제함으로써 안정을 구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거친 태도, 냉소, 빈정거림, 공격적인 무관심과 무례를 드러낸다. 필요하다면 부적절하고 불친절하고 비도덕적인 일들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 군대, 기업, 종교와 같은 장식 권력 구조를 통해 필사적이고 교묘하게 타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혹, 최면, 뻔뻔한 거짓말, 공포의 조장으로써 그 통제를 유지한다. 
"사람들은 나를 미치게 한다. 그들은 멀리 꺼져버려야 한다! 나는 투쟁의 덫에 걸려든 것처럼 느낀다."

 

- 만일 당신이 투쟁 회피자 성향이라면, 위협적인 생각들을 다시 억압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안정을 갈망하게 된다. 거대한 텔레비전으로 안락하게 장식된 완벽한 집 안에 파묻히거나, 부모 또는 부모를 대신할 위압적인 인간관계로 빠져든다. 당신은 음식들에서 위안을 찾느라 과식으로 살이 찌거나, 반대로 입맛을 잃어 식욕부진을 겪는다. 조그만 전자제품들을 통해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음성과 영상에 마비당하기도 한다. 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쾌활함을 가장한다. 과거를 향한 향수, 유행, 판타지 세계 속으로 탈출하거나 심지어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미지상의 삶은 끝났다고 느끼면서 천사들이나 외계인들의 틈에 끼고 싶어 할 것이다.

 

- 이 단계의 긍정적인 결과는, 당신이 삶의 모든 분야에서 돌연한 도약을 상처를 치유시킬 통찰을 포함하여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비롯된 문제들은 실제로 흩어져버리고, 타인과의 협동이 늘어나면서 고독감이 물러가며,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일들이 이제는 그다지 괴롭지 않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혼돈을 꿰뚫어 보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아주 명쾌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한다. 

 

-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그리 오래 저항할 수 없다. 개인적-사회적 수준에서 에고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이제는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뱀의 허물 벗기와 같다. 실상은 당신의 정체성이 제한된 자아에서 매우 확장된 자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독단적이고, 방어적이고, 위압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이런 질서들은 그 즉시 부정적인 반향을 창조해 낸다. 이럴 때는 친구, 요법가, 성직자, 구루, 12단계 프로그램, 또는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이 좋다.

"어떤 짓도 소용이 없다. 내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떠나보내야 한다. 나도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 두려움에 토대를 둔 과거를 정화시키는 법을 배우는 동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과 의미 있다고 여겼던 방식들이 쓸모없고 심지어 지겨워진다. 당신은 그것들을 떠나보내게 된다. 상호의존에서 비롯된 인관관계들이 사라진다. 낡은 방법들은 결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실패한다. 낡은 습관들은 죽고, 낡은 제도들은 무력화되고 붕괴한다.  
 

- 그동안 집착했던 사람들, 소유물, 상황, 개념, 습관 등을 떠나보내도록 강요당한다. 극적인 재산 손실 또는 파산을 겪거나 직업, 집, 친구, 개나 고양이, 가족 등을 잃기도 한다.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죽음이 목격된다. 잘 짜여 있던 계획이 손쓸 틈도 없이 틀어져버린다. 그뿐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활동하는 집단들 위압적인 정치가들, 부당하게 많은 연봉을 받는 기업가들, 특혜 받는 유명인사들, 소아기호증 사제들을 비호하는 교회 등등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쇠락하고 새로운 고주피의 활동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낮은 것 속으로 흘러든 높은 것은
낮은 것의 본성을 높은 것으로 변성시킨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낡은 방식들이 해체되는 동안 당신은 환멸을 경험한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의지할 수 있는지, 또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던 경계들이 흔들리고 세균, 기생충, 알레르기, 위협적인 친구들, 도둑, 테러리스트, 비물질적 존재들의 침입에 취약해진다. 실패 또는 사고와 상해가 닥쳐와서 하던 일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당신의 몸은 졸도, 설사, 파킨슨병, 치매, 복합적 경화증 등의 만성병에 대한 억제력을 잃는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부각될 수 있다. 주식시장의 폭락, 유명인사의 타락, 혼돈 이론, 블랙홀, 죽음, 사후의 삶, 아마겟돈, 환생, 변성, 영웅의 여행, 괴물과 초자연적 존재들, 유령, 천사, 용서, 단식, 영적 치유 등등. 
 

- 이 단계의 긍정적인 결과는, 만약 당신이 필요치 않은 대상들의 해체를 허용한다면, 실제로 그런 외적 규범들은 별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내면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또한 자연의 조화와 질서라는 타고난 보편적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당신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내면의 궁극적 지혜로부터 인도받는다. 낡은 체제의 실패는 삶이 당신의 새로운 자아를 위해 준비해 놓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 당신은 마침내 투쟁과 발버둥을 멈출 지점에 도달한다.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당신은 바닥을 친다. 또는 신비한 깨달음의 순간이 당신을 휩쓸고 지나가며 단순한 진리를 드러낸다. 당신은 통제적 자아로부터 빠져나와 지금 이 순간 속으로 완전히 진입한다. 예전에 무척 쓸모 있었던 방식들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당신은 처음으로 영혼의 진동을 실감한다. 그것은 단순하고, 드넓고, 고요하고, 자유롭고, 평화롭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처음 마주하게 되면, 마치 그것이 텅 빈 것처럼 느껴져서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익숙한 행동과 생각과 분주함 속으로 다시 튀어 들어갈 수도 있다. 만약 이때 되어가는 대로 내맡긴다면 당신은 존재의 심연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안도감과 은혜로움, 궁극적인 기쁨의 체험이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홀연히 깨닫는다. 당신은 내려놓았고, 참된 중심을 찾았으며, 그 기분은 끝내준다! 에고 ego? 개나 줘버리라지! 이것은 환상적인 기분이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진짜 당신이다. 당신은 '종점'에 도착했다. 뭔가를 더 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 이제 당신에게는 별다른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마치 홀로 딴 세상에서 사는 것만 같다. 당신은 자연 속에서 머물거나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갈망한다. 지금껏 해온 모든 일과 목표가 무의미하거나 시시해 보이고, 당신은 그것들에 의문을 품는다. 그렇다고 피해의식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별난 생명체를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당신은 훨씬 중립적인 사람이 된다. 당신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내맡기고, 신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영혼의 주파수에 흠뻑 젖고, 내면의 중심으로부터 미세하지만 분명한 신호를 수신하는 일에 능숙해진다. 이때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의식을 수양하고, 감각을 섬세하게 하고, 아름다움과 소박한 기쁨에 감사하고, 어린아이 같이 천진하게 행동하는 식으로-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 상대적인 고요함 속에서, 당신의 우선순위와 신념체계와 분자들이 재배열된다. 당신은 자신이 '재배선(rewired)' 됨을 느낀다. 당신은 거짓된 삶의 마지막 잔재들을 발견하고, 이제는 세상일에 허위적으로 가담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당신은 이 사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익숙한 습관들로 복귀하라는 다른 사람들의 강압에 단호히 저항한다. 

 

- 이것은 각자 '자신만의 근원 (최고) 주파수'를 체험함으로써 영혼 수준의 '감각'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당신은 너무 멀리 떠밀려가거나 혼란에 빠질 때마다 그 감각을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중심에 둘 수 있다.  

 

- 창조의 길은 변화와 변성을 거쳐 나아가고, 그럼으로써 세상만물은 자신의 참된 본성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위대한 조화를 따르는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더 발전된 것이고 끝내 이뤄지는 것이다. 

 

- 여섯 번째 단계를 거쳐 거대한 전환점을 돌면, 당신의 에너지와 의식은 그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오직 '상승' 할 뿐이다! '영혼의 진동'과 하나 되면 낡은 자아에서 새로운 자아로 전환될 뿐만 아니라 삶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작용한다. 이제 당신은 애를 써서 삶을 꾸려갈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이미 그것이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안다.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당신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보완한다. 삶은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당신을 돕는다. 당신은 내적 실현과 책임을 함께 달성하고자 한다. 당신은 최상의 감각 속에서 온전하게 존재하며, 몸 - 마음-영혼의 공동 창조로부터 비롯되는 뭔가 혁신적인 일이 하고 싶어 진다. 

 

- 나는 내 존재의 목적을 기억해 냈고, 이제 그것을 실현하고 싶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 앞에 흥분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낮은 수준에서 진동할 때조차도, 나는 내 새로운 주파수를 쉽게 유지할 수 있다. 

 

- 아직 전환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당신은 두렵지 않다. 그들은 당신을 끌어내릴 만큼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신은 선생, 치유가, 조언자의 역할을 맡아 자신의 높은 주파수를 더 훌륭한 미덕을 위해 사용한다. 당신은 희망적이고, 열정적이고, 긍정적이고, 충실하며, 영감으로 가득하다. 혁신이 일어난다. 당신은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그것과 뒹굴고, 그것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정을 품는다. 당신은 자신의 소명과 자기실현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존재해 온 그 깊은 의도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그것이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달성되도록 그 이외의 휘몰아치는 충동들을 제거한다. 이제는 직관력을 개발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열고,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방향과 장소와 후원자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당신은 도움, 메시지, 기회, 기적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가치 있고 격려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 당신의 가장 진실한 동기는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따라 '형태 변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면화'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삶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올 때마다 스스로 철저히 다른 무언가로 바뀌는 것이다. 이제 목표를 실현하는 일이 더욱 쉽고 재밌어지며, 당신의 시간 개념은 완전히 변화되어 과거와 미래는 확장된 현재 속으로 사라진다. 

 

- 이제 당신은 개인의식과 집단의식이 어떻게 직접적으로 서로 엮여 있는지를 실감하고, 자신을 개인적 자아(나)인 동시에 집단적 자아(우리)로서 본다. 당신은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안다. 당신은 자발적으로 친절한 행동과 생각을 선택한다. 당신은 황금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그만큼 남을 대접하라- 을 일부러 기억해 내어 실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 당신은 음陰(수용적) 에너지와 양陽(활동적) 에너지, 우뇌와 좌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킨다. 수용적-직관적 원천적 측면과 활동적-집중적-창조적 측면을 균형 있게 발달시킴으로써, 당신의 직관은 더 큰 유연성과 창조성과 역동성을 갖는다. 당신은 음양 에너지의 균형을 남녀관계에도 적용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궁합이 맞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발현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 마야의 인사인 "에인 라흐 케쉬 In La' kech"를 직역하면 "나는 또 다른 너이다"라는 뜻이다. 당신은 함께 모였다가 서로 멀어지는 영혼들의 목적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시작되거나 끝날 때 좀 더 고요해지고 연민을 느낀다. 당신은 사랑 그 자체의 장엄함에 압도당한다. 결혼, 가족, 팀워크, 단체, 심지어 국제정치에 대해서도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 현재에 존재하는 것으로 시작하라.

그저 있으라, 바로 여기, 바로 지금에.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라. 안정감을 느끼라. 다른 곳은, 갈 만한 다른 곳은 없다. 모든 곳은 열려 있고, 그 하나의 공간 안에는 의식이 있다. 그것은 당신에게로 서서히 퍼져온다. 그것은 당신의 참된 모습이고, 당신 자아의 다음 수준이며, 신성의 현존이다. 그 의식은 당신의 삶과 과거와 미래를 전부 포함하고, 다른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부 포함한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열린 가슴, 진리라는 광대한 들판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여기서 당신은 실재이며, 여기서 당신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아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모든 것을 보살피는 의식이 어떻게 당신을 품고 있는지를 느껴보라. 그것은 결코 당신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안전하다. 

 

- 여기서 당신은 무한한 에너지와 상상력을 가진다. 생각이 일어나도, 당신은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주변을 떠다니는 것들을 자각하고, 그것이 흥미로워 보인다면 잠깐 멈춰 세운다.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떠나보낼 수도 있고, 그것에 에너지를 보태주어 형태를 만들었다가 다시 떠나보낼 수도 있다.- 옳은 일이란 없다. 그것은 그저 창조성이고, 재미이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당신의 영혼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유연해지라. 현실들이 왔다가 가도록 놓아두라. 당신의 에너지와 의식은 당신의 피부를 뚫고 나아가 멀리멀리 방출된다. 당신에게 끝이란 없다.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그저 또 다른 종류의 앎일 뿐이다. 그것들이 당신 안에 포함되고 뒤섞일 때, 당신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체험한다. 당신은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은 당신 안에 있다. 알려지거나 창조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문득 당신 안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로 떠오르거나, 당신을 통해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당신은 그것을 정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이다. 

 

 

우주는 물질보다는 음악에 더 가깝다.

- 도널드 해치 앤드루스
 

 

- 당신은 운전을 하거나 커피숍에 앉아 있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과 진동들이 당신의 주변을 얼마나 많이 교차해 가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전화 통화들이 당신의 귀에는 들키지 않은 채로 씽씽 지나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혹은, 오늘날 당신의 사방을 에워싸고 부딪쳐 오는 전자기적 '오염'에 대해 알고 있는가? 주변사람들의 신체적 고통과 감정 상태들은 또 어떤가? 너무나 많은 무형의 진동과 정보들이 전송 또는 방출되고 있다! 

 

- 감응력이 높아질수록 당신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느끼거나, 새로운 에너지가 편안한지 불안정한지를 식별하거나, 옆에 있는 낯선 사람의 결혼계획 또는 신체 질환을 감지하기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그 정보들은 '진동'을 통해 직접 수신된다. 어떤 수신 장치도 필요 없다. 이처럼 직접적이고 증대된 감응력은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상당히 새로운 능력이다. 하지만 사전 준비나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은 상상도 못 했던 삶의 방식을 실감하고서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할 것이다. 

 

- 머지않은 미래에, 당신은 생활 속의 미세한 영향력들을 훨씬 더 많이 감지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어떤 진동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를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보면 그에게 행운이 올지 불행이 닥칠지가 느껴진다. 당신은 미래의 사건이 언제부터 파기 시작하는지, 언제부터 주파수가 변화하며 그것에 적응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어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길잡이(guidance)가 문을 두드리며 등장할 때, 또는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겨서 사람들이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의 몸은 그것을 먼저 알려줄 것이다. 감응력을 발달시킴으로써 당신은 많은 출처로부터 오는 진동들 가운데 어떤 것이 참되고 유효한지를 분별하게 되고,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동을 발산할 수도 있게 된다. 

 

- 당신은 이미 이런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다만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파동과 사이클, 주파수 대역과 에너지장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정확히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에너지의 작용을 감지하고 흐름과 리듬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도 그에 휩쓸리지 않는 능력이 포함된다. 게임에 참여하려면 먼저 그 게임의 규칙을 배우고 필요한 기술부터 익혀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긴장을 풀어야 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의식 기법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을 배우듯이 먼저 안팎의 다양한 주파수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 물질 또는 질량은 진동수가 느려진, 응축되고 축적된 에너지이다. 즉,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의 다른 양태이다. 이 개념은 점수를 내는 핀볼 게임기처럼 내 마음을 딩딩딩 울려버렸다. 바위도 에너지이고, 쿠키도 에너지이고, 난로 안의 땔감도 에너지이고, 내 몸도 에너지이고, 나 자신도 에너지이다! 만물은 서로 다른 속도로 진동하고 있고, 물질은 조금 더 또는 조금 덜 활성화된 에너지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 예컨대 물은 증기 또는 얼음이 된다. 그렇다면 나란 존재는 무엇으로 변환될 수 있을까? 
 

- 에너지와 물질은 현실 속에서 공존하지 않는다. 그 둘은 오직 잠재적으로만 공존한다. 어떤 입자의 위치를 측정할 때는 그것의 운동량을 알 수 없게 되고, 파동을 관찰할 때는 그것의 위치가 모호해진다. 따라서 양자라는 것은 실체라기보다는 가능성을 뜻하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양자는 '중첩'이라고 불리는 다중의 가능태 속에 존재한다. 관찰 또는 측정이 시작되는 순간, 그 중첩은 물리적 현실(입자)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파동성을 붕괴시킨다. 많은 가능성 중의 한 가지가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매 순간 속에는 실현 가능한 무한한 미래가 포함되어 있다. 눈앞의 현실은 그중에서 당신이 주의를 기울인 한 가지일 뿐이다. 

 

- 각각의 가능태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파동이 특정 형태로 밀집되거나 붕괴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발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현실과 결과는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나쳐버린 병존하는 삶'이라는 형이상학적 관념 -당신이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동안, 당신 영혼의 다른 꼴로서 살아가는 다수의 또 다른 당신들이 있다- 에 몇 가지 토대를 제공한다. 당신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를 고정되고 한정된 존재라고 여기는 걸까? 왜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와 기적이 불가능하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믿는 걸까? 

 

-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고, 무한한 잠재적 현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모든 것이 진동하고, 에너지 파동들이 사방팔방으로 전파되는 세계 속에 당신은 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 또한 몸을 통해, 생명이라는 소우주를 통해 하나의 진동체로서 작용하고 있다. 당신의 몸속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무엇이 느껴지는가?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가? 우선은 호흡의 파동이 감지될 것이다. 당신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셔 산소를 허파에서 혈액으로 전달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혈액으로부터 폐로 내보내 날숨으로 방출한다. 다음으로, 당신은 혈액을 동맥으로 뿜어내고 정맥으로 끌어오는 반복적인 심장박동을 감지하게 된다. 당신은 한 걸음 나아가 더욱 빠른 진동을 발견하고 그것에 동조될 수 있다. 시냅스를 통해 흐르는 뇌와 신경계의 전기적 신호들(전하) 말이다. 당신은 그것의 찌릿찌릿한 느낌을 감지할 수 있다.

 

- 더 깊이 들어간다면, 세포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과 생화학적 작용의 미세한 진동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다음으로 세포 그 자체의 진동을 느낄 수도 있다. 세포의 진동을 지나서, 마침내 당신은 분자와 원자, 더 나아가 양자의 진동을 감지하게 된다. 이렇게 진동을 통해 몸속의 중심으로 하강하는 과정을 상상함으로써, 당신은 낮은 주파수(호흡과 심장박동)로부터 높은 주파수(분자와 원자)로 이동하게 된다. 원자 속으로 들어가고 마지막 입자(양자) 속으로 빨려들 때, 당신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에너지 파동으로 변성되고 시공간으로부터 해방된다. 아직 물리학은 그런 해방의 체험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에너지와 의식이 하나가 될 때 생기는 체험이다.  

 


 

몸의 진동들을 통과해 가는 여행


1. 편안히 앉으라. 손바닥을 넓적다리 위에 올리고, 머리를 바로 세우고, 숨을 고르게 쉬라.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당신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보라. 무엇이 느껴지는가?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가? 아마도 어떤 팽팽함, 떨림, 출렁임, 분주함, 또는 왕성함이 느껴질 것이다. 몸의 생명력과 함께 머물라. 그것은 생존이라는 제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당신의 몸과 생명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느껴보라. 

2. 이제 호흡의 순환을 알아차리라. 맑은 공기를 폐 안으로 가지고 오는 들숨, 방향을 바꿔 천천히 노폐물들을 몸 밖으로 가지고 가는 날숨, 그 흐름을 멈추지 말고 따라가라. 날숨의 끝에서는 그것이 방향을 바꿔 다시 안으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라. 그 파동의 움직임과 함께 머물고, 그 흐름과 하나가 되고,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놓아두라. 

3. 다음으로, 당신의 심장박동과 온몸의 곳곳에 분포하는 맥박에 주의를 집중하라. 그 진동은 당신의 호흡보다 조금 더 빠를 것이다. 심장박동 속으로 녹아들고, 심장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을 느껴보라. 

4. 이번에는 신경계의 전기적 신호를 느껴보라. 이것은 당신의 심장박동보다도 진동이 빠르고 주파수가 높다. 당신의 몸을 훑어가면서 찌릿찌릿한 부위들을 모두 감지해 보라. 

5. 더 깊이 들어가면서, 몸속의 신경전달물질과 생화학적 작용 - 세포 속으로 침투하거나 빠져나오는 중요한 화학성분과 영양소들 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지 살펴보라. 

6. 이제, 당신의 몸속 어딘가에 있는 세포 덩어리의 진동에 초점을 맞춰보라. 현미경으로 그것을 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당신은 그것의 미세한진동, 그 떨림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보라. 

7. 계속 내려가라. 그리고 당신 자신이 그 세포를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분자 속으로 빠져들도록 하라. 여기서 당신은 극도로 정제된 진동 -예컨대 세포를 형성하고 있는 수소나 탄소와 같은 기본 요소들 중 하나의 진동-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8. 다음으로, 분자를 거쳐 하나의 원자 속으로 떨어져 내려가서 그 안에 담겨진 놀라운 생명력을 느껴보라. 당신은 대단히 높은 주파수(빠른 진동)에 도달하고 있다. 

9. 마지막으로 그 원자 속의 미소한 파동자들 중의 하나, 즉 하나의 양자 속으로 빠져들어가라. 당신의 여행이 그 마지막 입자에까지 이르렀다면, 그것이 신비하게도 펼쳐지거나 흩어지면서 에너지와 의식의 파동으로 변성되는 것을 느껴보라. 당신 자신이 시공간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관찰해 보라. 

10. 이제 당신은 어떤 동요도 없는 대단히 고요한 곳에서 출렁이고 있다. 당신은 퍼져나가 모든 곳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것이 알려져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존재' 하는 것뿐이다. 당신은 그저 '존재' 하면서,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새로운 안내와 가르침과 에너지적 청사진을 흡수한다. 당신은 더욱 충만하고 거대해진다. 그리고 새로운 양자로서, 시공간 속의 새로운 입자로서 현실 속으로 다시 튀어나온다. 

11. 빠르고 높은 주파수로부터 느리고 낮은 주파수를 향해 진동들을 거슬러 내려오는 여행을 시작하라. 원자, 분자, 세포, 생화학적 리듬, 신경계, 심장박동, 호흡... 당신은 돌아왔다! 새로운 생명력, 새로운 사명감과 함께 당신은 다시 젊어졌다. 

 


 

-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아직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이것은 몸-마음-영혼을 수양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상당히 명백한 사실이다. 짧게 설명하면, 물리적 주파수(뇌파)는 의식의 주파수와 짝을 지을 수 있다.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하다 보면 뇌파 상태에 따라서 체험과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데, 이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뇌파의 작용이 불러오는 다양한 의식 상태에 익숙해진다면, 당신은 빠른 베타파가 일상의 얕은 의식과 분주하고 직선적인 마음에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마음이 흥분되고 수축될수록 의식이 미치는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좁은 의식 수준의 작용이 곧 '에고 ego'라고 말한다. 
   

- 뇌파가 세타파까지 더욱 느려지면, 당신은 참된 자아의 본성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게 된다. 에고가 '죽기' 시작하고 영혼의 의식이 그것을 대체한다. 이것은 마음의 방향이 안쪽을 향하여 내적 성찰에 집중할 때, 특히 외부 자극이 차단되면서 뇌파가 베타파로부터 알파파를 거쳐 세타파까지 내려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종종 깊은 세타파 상태로 들어가는 명상가들은 내적으로 통합되고 다른 모든 존재와 합일하는 느낌을 얻는다. 한 가지 모순된 사실은, 그 상태를 평소의 각성상태에서 회상해 보면 마치 꿈이나 무아지경처럼 생각되지만, 깨어 있는 의식을 갖고 그 상태에 들어가면 훨씬 더 확장된 인식이 눈을 뜬다는 점이다. 
 

- 델타파 상태에 들어가면 마치 자신이 몸 밖에 존재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당신의 정체성은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시공간이 사라지고, 당신은 다른 의식 차원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델타파는 에고를 압도하는 통합적, 전체적 의식 속으로 당신을 데리고 간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자각하는 것보다는 잠에 빠지는 것이 더 편한 '탈출구'이기 때문에, 분주한 의식을 가진 채로 이처럼 깊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델타파의 상태는 모든 평행우주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양자물리학의 다중우주 현실로 여겨지기도 한다. 

 

-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면, 길잡이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승강기에 다시 올라타라, 당신은 다른 층으로 가서 이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고, 1층의 평범한 각성 의식으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진동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느껴볼 수도 있다. 

 

- 일상의 현실은 당신에게 또 다른 일련의 진동들을 전달한다. 당신의 몸-감정-생각의 상태에 해당하는 진동들 말이다. 날마다 당신은 편안함과 불편함, 활동과 휴식, 행복과 고통, 논리와 영감 사이의 여러 단계들을 거침없이 오르내린다. 다음 페이지의 표는 당신이 얼마나 넓은 범위의 진동들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항목들은 수평적으로는 서로 관련이 없음에 유의하라. 

 

- 한 개인의 진동이 하루 동안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마음속에서 그려본 새로운 조각 작업을 시작하려는 강한 의욕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고, 촉각적 경험에 굶주려 있다. 당신은 우선 이메일부터 확인하려다 컴퓨터가 오류를 일으키자 화가 치민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주말의 저녁식사에 초대하자 행복감 속으로 되돌아온다. 당신은 조각 작업을 시작하고, 의도치 않게 조각칼에 상처를 입는다. 당신의 몸은 고통을 느끼고 당신의 손은 종일 떨린다. 그 탓에 마음이 흐트러지고 피로가 느껴진다. 

 

- 다음 장에서 우리는 삶의 소명을 다하고 성공을 얻고 있는 그대로의 행복과 즐거움을 받아들이도록 최적화된 진동 수준을 유지하는 법, 그리고 감응력을 건강하게 발달시키는 법을 더욱 깊게 파고들 것이다. 

 

- 당신의 뇌파는 일곱 차크라의 의식으로부터 사후 체험과 다른 차원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수준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당신은 감응력을 활용하여 주파수 단계들을 오르내리며 각각의 주파수들 속에서 새로운 세계와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의 고유 진동 또는 에너지 상태는 움츠러들거나 확장된 주파수들의 혼합체로서 바로 그 순간의 몸-감정-생각을 반영한다. 영혼이 빛을 발하도록 자신을 내맡길수록 당신의 고유 진동은 더욱 높아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또는 주변의 진동들에 영향을 받지만, 당신의 기분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 심리학자 일레인 애런은 <감응력이 높은 사람>(The High Sensitive Person)이라는 책에서 대략 15~20퍼센트의 성인들이 '감응력이 높은 편'에 든다고 밝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지하고, 주변상황의 문제와 가능성을 깊이 이해하며, 때로는 받아들인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더 넓은 장소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고통과 무력감에 과도하게 휩쓸리기 쉽고, 천성적으로 내향적·직관적·예지적이며 자신의 영혼과 영적인 삶에 관심을 보인다. 카를 융은 감응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예언적 통찰이 담긴 중요 정보들에 이르는 통로인 무의식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애런의 연구에 의하면, 조사 대상 중의 30퍼센트 정도는 '보통 수준의 감응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50퍼센트의 사람들은 스스로 감응력이 낮거나 전혀 감응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당신은 부모의 신념과 무의식적인 몸짓에 맞춰 행동하면 에너지가 불쾌하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 확장해갈 수 없다면, 자기표현을 멈추고 부모를 모방하는 편이 더 낫다. 처벌이 주어지기 때문에 당신은 창조성을 한껏 발휘할 수 없다. 부모의 불편함과 긴장 탓에 당신은 애정을 거둬들인다. 어머니의 무감각한 눈과 아버지의 닫힌 가슴은 당신의 눈과 가슴이 발산하던 따스한 빛을 꺼뜨린다. 당신은 어머니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거나, 아버지를 흡족하게 만들고자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거나,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일에 중독된 부모의 무관심보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 낫기 때문이다.   

 

- 에너지를 흘려보낼 수 있는 몇몇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당신은 주체적인 활동을 멈춘다. 당신은 부모의 신념과 몸짓, 편향된 감정에 순응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영혼이 인정받지 못할 때, 당신은 생존을 위해서 아무리 사소한 짓이라도 실행한다. 철저하게 거부당한 당신은 잔뜩 움츠러들고 육체적, 영적 성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당신의 감정 습관들은 시작된다. 당신은 특정한 방식으로 몸을 억압하고, 특정한 종류와 강도의 에너지만을 허용하며, 자신의 참된 모습이 눈에 띄게 드러날 때는 감시체제를 가동한다. 당신은 자기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며 삶은 '이러저러한 식으로 작용한다'고 정의 내린다. 

 

- 제한된 환경, 조건적인 사랑, 불완전한 수용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해 온 만큼, 현시대의 빠르고 새로운 진동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은 이런 새로운 에너지가 낯설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자극들을 감당할 수 없다. 이것들은 잘못되고 위협적이며 당신을 무력화시키는 듯 보인다. 당신은 탐지 신호의 반작용을 경험했던 어린 시절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늘날 쏟아져 들어오는 높은 주파수를 보면서, 당신의 깊은 잠재의식은 이렇게 외친다. "이건 뭐야? 답이 안 나오잖아!" 당신은 혼란과 충격을 경험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주파수에 저항한다.

 

- 앞서 설명했던 변성 과정의 초기 단계들을 기억해 보라. 몸속의 에너지가 가속화되면 낮은 주파수의 장애물들 -그것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 체념, 애정결핍에 단단히 고착되어 있다- 은 더 이상 잠재의식 속에 숨지 못한다. 그것들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고, 당신은 낡은 선택과 잘못된 인식들을 재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다. 높은 주파수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퍼트릴 수 있는 사랑의 크기를 다시 설정하고, 움츠러든 감정 습관들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당신의 주된 과제이다. 물론 오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일은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 인내와 반복과 연민이 필요하다. 당신은 준비가 되었는가? 진실로, 당신은 어린 시절의 열린 상태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의 영혼(참된 자아)을 회복시키는 중이다. 지금 당신은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왜 여기에 있는지를 깨달아가고 있다. 

 

- 두려움에서 비롯된 감정 습관들을 분석해 보면, 그중 일부는 두려움의 대상을 벗어나고 회피하겠다는 선택에서 비롯되었고, 다른 일부는 두려움의 대상과 싸워 통제권을 얻겠다는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진동이 멈춘 듯 보일 만큼 느려졌다면, 상황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자신이 창조(물질화) 능력을 지닌 무한한 영혼이자 멋진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무기력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우선 부정적인 진동에 붙잡히는 내적 과정을 살펴보고, 그런 후에 이 패턴을 역전시켜서 지독히도 헛된 시간들로부터 더 빨리 탈출하는 방법들을 알아보자. 

 

 

그대는
늘 그대를 칭찬하고, 다정하게 굴고,
뒤로 물러나주는 이들의 가르침들만 배워온 것은 아닌가?

그대는 자신에게 단단히 맞서고 이의를 제기하는
그런 이들의 위대한 가르침들을 배워왔는가?

- 월트 휘트먼

 

 

- 불쾌하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자주 누적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깊은 수준에서 충격과 두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움츠러들고 뒷걸음질 치게 한다. 클라우디아를 평가했던 그 두 남자는 말 한마디 없이도 그녀를 잠재의식 차원에서 위협했다. 열정과 열망으로 가득했던 높은 주파수가 순식간에 자신감이 결여된 낮은 주파수로 위축되었다. 우리는 부정적인 경험을 할 때, 대개 내적 진동이 하강하여 '나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주파수가 낮으면 부정적인 경험을 마주하기가 더 쉬워지며, 그것은 당신을 더욱 부정적인 내적 진동으로 이끈다. 

 

-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은 경험들에 "나쁘다 / 틀렸다 / 고통스럽다" 등등의 꼬리표를 붙이기 좋아하는데, 그 꼬리표는 당신의 정체성에도 들러붙는다. 이제는 당신 자신이 "나쁜 / 틀린 / 고통스러운" 존재가 된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은 의지로써 그런 경험들을 거스르거나 벗어나려고 하고, 인생의 흐름은 차차 느려진다. 느려진 내적 진동은영혼의 실재를 가로막고, 당신은 끊어진 흐름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다음은 당신이 '갇히게 되는' 일곱 가지 상황이다. 

 

- 1. 하나의 성장 주기가 완성되었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사실을 모르므로 떠나보내지 않는다. 

2. 당신은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3. 하나의 경험이 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4. 당신은 현실이 아닌 것, 일어나지 않은 일,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좋아하지 않는 것, 하지 않은 일,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엉뚱한 것에 신경을 쓴다. 
5.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삶, 다른 장소와 시대, 또는 가상현실들에 온 마음과 에너지를 투사한다. 
6. 당신은 자신의 창조물, 습관, 한계, 정체성에 집착하며 일종의 '정체상태' 속에 머문다. 
7. 당신은 지나치게 무언가를 거부하고 통제하려 듦으로써 에너지가 고갈된다.  

 

- 파동들은 장애물이 있어도 제 갈 길로 흐르므로 거기에 끼어들지 않는 편이 상책이다. 실제로, 당신 자신을 파동과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파동 그 자체라고 여기는 편이 훨씬 유용하다. 당신은 진동의 바다를 항해하는 진동체이다. 당신은 쉼 없이 변화하는 삶의 에너지와 뒤섞이고 발맞추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은 의지력을 완전히 새롭게 사용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작위作爲(willfulness)는 우리를 걸림돌처럼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 또한 어릴 때 당신에게 권위자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온갖 말들을 내면화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지금 당신에게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들었던 때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나 자신을 돕는다면 신조차 필요 없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 푹 빠져 지냈었다. 아무튼, 그로 인해 나는 굳은 의지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성취를 이루려는 자급자족의 길로 접어들었다.

 

- 이제 당신의 영혼이 지혜와 의도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고 상상하라. 그것은 당신의 삶, 육체, 개성을 창조하기 위해서 의식의 옥타브를 따라 하강해 온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 속에는 많은 그림자, 뭉친 곳, 단절된 틈새 등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중에서 일부만을 투과시킬 수 있다. 거름막의 열린 구멍을 통과한 빛만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상위의 차원에 그림자 또는 단절이 있다면, 당신의 삶과 육체에도 그에 해당하는 위축과 무의식적 공백이 생길 것이다. 감정적 상처와 그로부터 비롯된 신념들은 몸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때 당신은 그 상처와 상응하는 부위에서 고질적 통증, 질환, 또는 상해를 겪는다. 

 

- 당신이 닫힌 감정과 신념들을 풀어내고 이해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면, 암점(dark spot)들이 사라진 당신의 존재장은 영혼의 다이아몬드 빛을 더 많이 투과시킬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당신의 주파수는 상승하고, 당신은 더 많은 지혜와 사랑으로 가득 차며, 당신의 몸은 치유되고, 당신의 삶은 오름세를 탄다. 이처럼 영혼을 가로막는 감정과 생각들을, 즉 파괴적인 감정 습관들을 치워버림으로써, 당신의 내적 진동은 자연스럽게 가속된다.

 

- 당신의 호불호, 성공과 실패, 미래 계획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오지 말라. 당신은 애완견이나 고양이처럼 완전한 실재, 완전한 행복, 완전한 가능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당신은 경이로운 힘이다. 그 힘은 아름답고 맑은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즐겁게 진동하는 몸을 통해 뿜어져 나온다. 당신은 에고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참된 존재가 될 수 있다. 에고를 놓아버린다고 해서 당신이 휙 하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 물론 무서운 결말이 어른거리는 순간들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의 에고는 영리한 술책들을 수없이 동원하며 자기의 통제력을 유지하려들 것이다.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며 '땅을 놀리겠다'는 생각에 대해 에고는 이렇게 울부짖을 것이다. "하지만 난 멈출 수가 없어!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외톨이가 될 거야." "내게는 해결해야 할 청구서와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어." "나는 저 아래로 추락하고 휩쓸리고 말 거야."

 

- 당신의 에고는 철이 지난 그 낡은 직업으로 되돌아가서 안전을 도모하거나,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희생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꼬드긴다. 틀림없이 에고는 '내려놓음'이 '모 아니면 도'인 것처럼 꾸며서 어떤 선택도 편치 않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더 이상 내게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면 나 자신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공허 속으로 뛰어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내려놓음은 그저 존재(Being)로의 귀환일 뿐이다. 진실로 내려놓았을 때,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간다. 
  

- 그것은 그저 존재로의 귀환일 뿐이다. 그것은 당신을 '행위'에 열중하는 상태로부터 좀 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상태로 옮겨놓는다. 그때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에 감사하고, 그것들과 함께 머문다. 내려놓음은 소음 속에서 침묵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진실로 내려놓았다면,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가 반드시 자신의 근원 주파수에 이르게 된다. 

 

- 새것과 헌 것의 중간, 즉 휴식과 성숙의 단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중단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당신이 완전한 휴식을 경험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일주일, 하루, 혹은 단 몇 분이라도 좋다. 당신의 영혼이 원하는 것은 순수한 여백뿐이다. 영혼은 그 여백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당신의 삶을 살찌워서 아주 실감 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흐름을 멈추고 안절부절못하며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하고 묻는 것은 아무 도움도 안 된다.

 

- 마가렛은 최근에 병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 때문에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얼마 전 부모님을 여의었고, 유산을 관리해야 했고, 부부관계가 멀어졌고, 그림을 그릴 장소가 없어 작품 활동을 포기했다. 치유사로서 새 출발을 했지만 많은 손님을 끌어 모으지도 못했다. 그녀는 우울함과 속박을 느꼈다. 그녀는 변화를 원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집은 멋들어진 그림, 주물, 희귀한 수집품으로 가득했다. 문제는 그것들이 너무 많아서 청소를 해도 해도 먼지가 쌓인다는 점이었다. 또한 어질러진 마당에는 쥐가 우글거렸고, 이웃집은 울타리를 부숴놓고도 전혀 고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처럼 삶이 엉켜버린 것은, 그녀의 에고가 '내려놓기'를 거부하고 잠재의식 속의 두려움만을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꼬여버린 삶 속에서 자신의 근원 주파수를 망각해 버렸다. 혼란과 번잡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당신이 '당신 자신' 속에 충분히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찾아주려고 하는 것이다.  

 

- 나는 우선 계속 변주되고 있는 내면의 대화 -"난 못해. 난 ...해야만 해. 다른 수가 없어."- 를 멈춤으로써 스스로 진 짐을 내려놓으라고 그녀에게 권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너그럽고 유쾌하고 창조적인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좀 더 즐거운 상태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살피고, 잠시 동안 그런 일들에만 전념했다. 실제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찌그러졌다가 다시 원래 형태로 서서히 되돌아가고 있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라고 상상했다. 또한 나는 방에서 소품들을 모두 치워서 텅 빈 벽의 널찍한 느낌과 함께 머물러보라고 그녀에게 권했다. 그때 어떤 감정과 잠재의식적 문제들이 떠오르는지를 살펴보고, 그 방과 궁합이 맞는 물건들을 다시 골라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 나는 '치유사'라는 소명을 타고났다고 말해준 다른 상담가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화가가 아니라 치유사가 되려 한다는 그녀의 말을 일축해 버린 적이 있었다. 치유사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그녀가 만났던 다른 치유사들의 겉모습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간 털어놓았던 다른 이야기들에 의해 감춰져 있었다. 진짜 문제는 '치유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의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 마가렛은 자기 자신에게 원하는 대로 행동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개성을 꽃피우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가치관에 맞춰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역할을 떠맡으며 살아왔다. 그녀는 박탈감과 피해의식에 빠져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눈 밖에 나면 자신이 몰락하고 말 거라는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 나는 그녀에게 삶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과 관념을 내려놓고 그저 순수한 '존재'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라고, 호기심과 열망이 솟아날 때마다 그것을 좇을 권리를 자신에게 선물하라고 재차 일러주었다. 그러면 그녀에게 꼭 맞는 '치유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정말 그녀의 운명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그녀가 늘 흥미를 가져왔던 예술, 교육, 음악이 그 일에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저, 그녀는 낡은 패턴을 멈추고 자신의 근원 주파수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온 나는 몹시 속이 상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명상을 시작했고, 명상 중에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나는 점성가가 들려주었던 그 불행한 미래가 저 멀리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 내보낸 것이었다. 그것은 검은 배경 위에 펼쳐진 녹색 네온 빛의 격자무늬로서 불행한 사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는 컴퓨터그래픽의 설계도와 비슷했다. 나는 그것을 관조하다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점성가의 예언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생명력을 보태주고,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가! 

 

- 그러자 그 격자무늬 전체가, 즉 나의 잠재적 미래가 반쯤 각도를 틀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 거기에는 부드러운 검은 배경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동시에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침묵이자 고요였다. 내가 조금 각도를 틀자 그 격자들, 즉 부정적인 가능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또 각도를 틀면 다시 거기에는 허공뿐이었다. 나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젖은 담요처럼 나를 내리누르던 끔찍한 미래보다 훨씬 더 즐거운 느낌이었다. 미래 또는 계획을 소유하지 않는 상태가 다소 낯설긴 했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깨달았다!  

 

- 선한 마음과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즐거움 속에서 그저 머물기만 한다면, 나의 미래는 그 검은 배경 위로 어떤 한계도 없이 펼쳐지리라. 
 

- 진동을 통한 직접적 삶에 더욱 숙달될수록, 당신은 삶이 다양한 측면에서 개선되고 있으며 이 새로운 자각의 힘을 통해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을 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품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방향을 읽고 의미 있는 정보들을 알아차리는가?' 

 

- 이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근원 주파수 속에 머물면서, 그 느낌을 의도적으로 몸 바깥의 사방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모든 것을 품어 안의면서, 동시에 특정한 대상에 뚜렷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때 당신은 그 대상과 '감응'하게 된다. 감응이란, 당신의 감응력을 무언가에 침투시켜 그것과 하나가 되고 잠시 동안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와 감응할 때, 그것은 당신의 일부가 된다. 당신은 그것과 친숙해지고 즉각적인 앎을 얻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그 대상의 역할을 당신 스스로 연기해 보는 것(role playing)과도 비슷하다.

 

- 여기에는 끝이 없다. 당신이 시간을 들여 감응할 때마다 그것들은 저마다의 내적 본질을 드러낸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과 하나 되어 함께 존재하는 동안에는 일종의 삼투압 현상이 일어난다. 주변의 세상과 감응할수록, 당신 자신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 이처럼 진동들 간의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몸의 느낌과 내적 진동의 변화를 주변 상황의 지표(barometer)로서 활용하는 단계이다. 기억하라. 당신의 몸은 마치 소리굽쇠처럼 그 순간의 환경에 맞춰 쉽게 공명한다. 예를 들어 아주 활기찬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 또한 자극받을 것이다. 

 

- 감응력이 충분히 다듬어질 때까지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선택을 통해서 한 발씩 나아가라. 중대한 갈림길이 가까이 다가왔어도 그것에 압도당하거나 미리 앞서 나가지 말라. 큰 선택은 작은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아침식사로 원하는 것이 달걀인지 오트밀인지를 자각하는 연습부터 해보라. 약속에 맞추려면 집에서 언제 출발해야 할지를 느껴보라. 어느 곳부터 전화를 걸어야 할지도 느껴보라. 에너지의 흐름이 어떤 움직임을 원하는지, 무엇이 당신의 근원 주파수와 가장 조화로운지를 살피면서 의식적으로 이런 선택들을 내려보라. 중요한 선택을 향해 가는 동안 안팎의 진동을 '읽어' 긴요한 통찰들을 모으는 능력을 기르라. 

 

- '직접 체험', 즉 마음이 개입하지 않는 느낌과 감각을 통해서, 당신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풍부한 의미가 담긴 인상(impression)들을 획득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세 곳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다고 하자. 어느 곳이 가장 좋을까? 당신의 몸은 첫 번째 면접에서는 추위를 느꼈고, 두 번째 면접에서는 나른함을 느꼈고, 세 번째 면접에서는 상쾌한 꽃향기를 맡았으며 유난히 말도 술술 나왔다. 직관적으로 당신은 친근하고 편안한 기운을 주는 세 번째 회사에 호감을 느낀다. 면접 후에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갈 때는 그 건물을 떠나는 것조차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당신은 이런 인상을 신뢰할 수 있다. 당신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당신은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종의 텔레파시를 통해 '제대로 안 듣고 있다'고 불평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문득 그것이 고객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당신은 그 즉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나요? 제가 뭔가 오해한 부분은 없나요?" 당신의 높은 공감 능력 -상대방 내면의 빛을 사랑함으로써 형성되는 유대감- 은 상대방에게 필요한 바를 당사자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당신은 가족의 식습관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거나 한 친구에게 외로움을 달래줄 나들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 물건을 하나 선택하라.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라. 그것으로부터 오는 모든 인상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라.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새로 사귄 친한 친구처럼 호기심을 가져보라. 그것을 시각적으로 살피는 작업부터 시작하라. 그러고 나서는 촉각을 활용하라. 실제로 만지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빛몸을 육체보다 더 크게 확장하여 유동적인 에너지장으로 만들라. 그리고 그 에너지장의 일부가 구름처럼 몰려가서 그 물건을 휘감도록 해보라. 그 구름 속에 당신의 눈이 있다고 상상하라. 당신의 눈은 분자들까지 보일 만큼 그것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다. 당신의 빛의 입자는 그 물건의 빛의 입자 속으로 침투할 수 있다. 이제 당신은 거의 그 물건의 관점에 밀착되었다. 

 

- 또한 당신은 내면의 주시자와 협상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가 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피해망상 속에서 살아가는 대신에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 "곧 닥칠 자동차 사고의 위험이 정말로 제게 드리워져 있다면, 저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차려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만약 주변의 위협들이 사실 저와는 큰 관계가 없다면, 저로 하여금 그것들을 모르고 지나치게 해 주세요. 저는 제가 알아차림으로써 뭔가 손써볼 여지가 있는 정보만을 원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긴장을 풀고 자신의 감응력과 내면의 주시자를 신뢰하는 것이다.

 

- 감응력과 진동을 통해 길을 찾을 때는, 당신의 근원 주파수와 조화롭게 공명하고 깊은 안정감을 주는 사람 또는 기회를 선택하라. 당신은 자신과 기막힌 화음을 이루는 사람, 기회, 장소, 해결책 등을 골라낼 수 있다. 당신의 근원 주파수를 건반 중앙의 '도' 음이라고 친다면, 그것과 같은 음을 내는 사람 또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같은 '도' 음이지만 당신보다 옥타브가 높거나 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당신과 같은 중앙의 '도' 음이지만 '음색'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같은 음정이더라도 바이올린과 튜바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그것들은 멋지게 어우러진다. 당신의 근원 주파수와 조화되지 않는 사람, 계획, 기회 등을 만난다면 거기에 끼어들지 말라.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깊게 관여하지 말라.   

 

우리는 주시자들이다. 
우리는 하나의 의식이다. 
우리는 사물이 아니다.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무한하다.

- 돈 후앙 /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 다음은 새로운 사람과 기회를 앞에 두고 심사숙고할 때 직시해야 할 몇 가지 질문이다.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라. 

1. 이 선택은 나의 파장과 일치하는가? 이것의 옥타브는 나의 근원 주파수보다 높은가, 낮은가? 이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는가? 
2. 잠재적인 상호작용을 상상해 볼 때,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흐름, 협력, 원활한 소통, 대등한 주고받음과 이익이 존재하는가? 이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기분 좋게 여겨지는가? 이 선택이 나의 감응, 공감, 자각 능력을 더욱 향상해 주는가? 아니면 퇴보를 막기 위해 나 자신을 보호하게끔 만드는가? 
3. 이 기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나는 내 몫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보조하거나, 변화시키거나, 맞상대해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희생시켜야 하는가? 
4. 이 사안과 영향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어떤 교훈을 얻게 될 것인가? 

- 솔깃한 유혹들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조화되지 않는 진동들을 더 적게 받아들일수록 -그 어긋남의 정도가 아주 작더라도- 당신에게는 더 많은 에너지와 지고한 창조성이 주어진다. 지금까지는 소모적인 직업을 견딜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 그것은 당신을 질식시키는 듯 느껴질 것이다. 당신 자신만의 음정을 설정하라. 높은 주파수 수준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청함으로써, 당신은 직관의 시대에 꼭 맞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더욱 확실히 신뢰하게 된다. 

 

- 그 두 여사업가는 똑같은 교훈을 얻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영적인 자극이 주어지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빨리 확장해 버렸고, 재력과 술책과 유명세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무심코 동료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높은 근원 주파수의 창조력 속에서 마법과 같은 성취를 경험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느린 진동을 가진 사람들을 동료로 선택함으로써, 두려움과 에고 -낡은 현실- 가 좋은 일을 어떻게 망쳐놓을 수 있는지를 목격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각자의 근원 주파수를 회복시킨 후에, 그것과 조화롭게 공명하는 새로운 동료와 기회를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 주파수를 분별해 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나의 참된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요구에 의해
움츠러들고, 묻히고, 심지어는 끊기기도 한다.
참된 자아는 가슴으로 말한다.

- 줄리아 캐머런

 

 

- 당신은 내적 후각을 사용해서 건강한 몸 또는 좋은 해결책이 풍기는 냄새를 구분해 낼 수도 있다. 미각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당신은 그 상황이 달콤한지 씁쓸한지를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신성한 사념(Divine Thought)이
거대한 흐름을 일으키며
온 사방의 에테르를 진동시킨다고,
그리고 그 진동을 느끼는 사람은 영감을 얻게 된다고 확신한다.

- 리처드 바그너 

 

 

 

- 당신의 감응력은 다른 신체, 대상, 장소, 사건, 동향, 내력, 과정, 심지어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정보들까지 수집해 온다. 당신은 감정적 상처, 치유, 동기, 복잡한 사고방식의 본질을 홀연히 깨닫고, 궁극적으로는 고차원적 의식에 해당하는 감정 상태 황홀경, 환희, 지복까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감응에 적합한 의지의 활용법이 따로 있다. 감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주변의 에너지장으로 주의를 확장할 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밀어붙이지 말라. 그저 개방되고, 부드럽고, 확장되고, 호기심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라. 다가오는 것들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 내면의 주시자가 보여주려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열어두라. 당신이 할 일은 확장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눈을 들여다볼 때는, 억지로 그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눈을 이완되고 수용적인 상태로 두라. 그러면 줄줄이 이어지는 정보들을 수신하게 될 것이다.

 

- '찾아다니는' 감응과 '받아들이는' 감응은 다르다. 여전히 분리감에 빠져 있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 생각, 사건, 과정 등을 '찾아다닌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은 단선적인 소통만을 허락할 것이다. 당신은 그것과 자신 사이의 틈새를 건너뛰어야 하고,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의 중심을 떠나야 한다. 또한 짧은 여행이 끝날 때마다 다시 자신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면 반드시 자신의 중심으로 되돌아와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것은 나에게 유용한가?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중심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샛길로 빠져서 다른 사람의 현실 속에 붙잡히거나 소모될 것이다. 
 

- 하지만 당신은 항상 내적 중심에 자리를 잡은 채로 그저 의식의 장을 확장함으로써 어떤 대상이든 간단히 품어 그것을 이해할 수도 있다. 당신은 '집', 즉 근원 주파수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  

 

- 높은 주파수의 삶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뛰어난 유동성과 만족감을 선사해 준다. 

 

- 물질화의 원동력은 주의(attention) 또는 관심(interest)이다. 물질화는 당신이 경험해보고 싶은 어떤 아이디어에 관심을 기울일 때 시작된다. 그 대상은 이미 당신의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 당신이 관심을 기울여 에너지장 바깥으로 불러냈으므로, 그것은 당신의 심상(image-ination) 속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심령적 질량을 갖기 시작한다. 당신이 그 아이디어에 더 오래 관심을 기울이고 에너지를 쏟을수록, 그것의 진동은 더욱 느려지고 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의 옥타브 수준을 거쳐 물질의 수준으로 하강한다. 물질화된 아이디어는 시공간 상의 긴 거리를 건너 당신에게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당신의 내적 진동을 통해 울려 퍼지고, 당신 뇌의 세 가지 수준을 통과하고, 서서히 물질적 감각적 정보를 띠고, 당신의 파충류 뇌가 '진짜'로 인식할 때까지 더욱 생생해진다. 마침내 그 아이디어는 물질의 주파수를 갖춘 새롭고 조그만 에너지장으로서 당신의 에너지장 바깥에서 응결된다.

 

- 물질화는 당신이 실제로 그 아이디어와 교감하고 감응하고 하나가 된 결과이다. 당신과 그 아이디어가 3차원의 '견고한 현실' 속에서 공존하게 될 때까지, 물질화 과정에는 당신 의식의 모든 옥타브 -영적,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가 총동원된다. 물질화는 사랑의 한 측면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할 때 나타나고, 당신에게 여백이 필요할 때는 통합장 속으로 다시 소멸해 들어간다.

 

물질적, 유기체적, 정신적, 영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실제로 에너지의 변성을 일으킨다.
모든 생각과 감각과 감정은 에너지의 교환에 의해 생겨난다.

- J. G. 베넷


 

 

- 당신이 물질화시킨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내적 진동을 담고 있다. 당신이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면, 당신의 물질화시킨 세상도 같은 정도의 피해의식을 품는다. 당신은 희생당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나, 당신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과 엮여 손해와 배신을 겪을 것이다. 당신이 즐겁게 산다면, 당신 앞에 펼쳐지는 삶도 유쾌할 것이다. 당신이 생계를 위해서는 혹독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임금이 적거나 근무시간이 긴 직업을 물질화시킬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특권을 가졌고 보호받는다고 느낀다면, 어떤 유산이 물질화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질병과 상해도 부정적 감정에서 비롯된 내적 청사진과 일치한다. 부정적 감정은 특정 신체 부위의 고통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폐의 문제는 커다란 슬픔, 목의 문제는 고집과 불신, 발의 문제는 태도와 행보의 망설임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 또는 부정적인 환경이 '이끌려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내적 진동 속의 어딘가에 그곳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파괴적 감정 습관들이 모여 있다. 무시당하는 느낌과 처벌받거나 버림받는 데 대한 두려움 등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 무언가를 온전히 물질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신의 몸이 그것을 '진짜'처럼 인식해야 한다. 

 

- 1. 당신이 가진 것을 살펴보고, 그것을 감사히 사용한다. 당신은 예전에 그것을 창조했다. 당신이 이미 주어진 것을 사용하기 전까지 진짜 새롭고 좋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2. 파괴적인 감정 습관들과 부정적 사고를 제거하고, 당신의 새로운 확장을 막는 기존의 대상들을 소멸시키라. 당신은 새로운 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장애물부터 제거하라. 자신이 새 집에 살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말고, 옛 집을 내려놓으라. 하나의 현실을 비물질화시키는 것은 새로운 현실을 물질화시키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다.    
3. 에너지를 모으고, 영혼의 사랑 속에서 머물고, 근원 주파수와 공명하고, 높은 차원의 청사진이 어떤 느낌과 모습인지를 확인하라. 자신이 어떤 느낌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 '느낌'과 일치하는 주파수의 청사진을 찾아낼 수 있다.    
4. 그 아이디어를 살피고, 주의를 기울이고, 상상하고, 감응하라. 그것에 생명과 사랑을 주라.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더욱 생생한 감각적 현실로서 상상하라. 그 아이디어가 당신의 뇌 속에서 하강하게 하라. 그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으라. 그것을 당신의 삶의 일부로서 초대하라. 그것이 제공하려는 경험을 느껴보라. 
5. 당신의 내적 진동을 정화하고, 에너지장을 통일장과 연결시키라. 근원 주파수로 당신의 몸과 감정과 생각을 채우라.  

6. 당신의 물질화 과정에 모든 존재를 포함시키라. 모든 영혼과 입자가 당신의 내적 진동에 공명하면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상상하라. 그들은 당신의 성장을 도움으로써 자기 자신도 성장한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라. 당신도 그들에게 같은 일을 해주고 있음을 알라. 긴장을 풀고, 이 우주가 당신의 청사진에 맞춰 스스로를 조율하도록 시간을 주라.   
7. 물질화되는 아이디어에 주의를 기울이라. 당신의 몸이 새로운 현실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즐기고, 행복해할 때까지 그 느낌을 계속 키우라. 그 새로운 현실이 당신의 일상이 될 때까지 계속 주의를 기울이라.

 

- 당신이 자신의 영혼을 신뢰하는 순간, 당신의 소망은 완벽한 길과 시기를 찾아낸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에게 행운을 안겨다 주고, 당신은 모든 일이 척척 들어맞는 그 길을 만끽할 수 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그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베스는 영혼을 신뢰했기 때문에 영감 어린 결과물이 아닌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당신도 날마다 행운을 경험할 수 있다. 그저 기회들이 저절로 나타나고, 동시성 현상이 일어나서 독특한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나날의 흐름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을 관찰하라. 행운의 느낌을 선택함으로써, 당신은 근원 주파수를 선택하고 '직관의 시대'에 합당한 원리들을 재차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놀랍거나 극적인 사건이 있을 때만 "행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당신은 앞으로 좋은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안다. 

 

- 내슈빌에 사는 헨리는 '미리 값을 치른다'는 신념을 몇 년 전부터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20달러를 주면서, 그중 반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를 풀어놓으면 그것은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형태로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헨리는 물질화란 진실로 자유로운 주고받음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 습관적인 일상과 업무, 또는 주파수가 낮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서 당신의 의식이 마비당하고 다소 중심을 잃게 되는 시기도 찾아온다. 당신은 용감하게 새로운 행동을 취함으로써 상황을 개선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시기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삶의 방향을 새롭게 이끄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당신의 행복하고, 패기 있고, 낙관적이고, 모험심 강한 자아가 회복될 수 있을까? 빠르게 흐르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야 할까? 모든 것을 버리고 발우만 챙긴 채로 떠돌아야 할까?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할까? 
 

- 여전히 당신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 속에 있다. 당신은 돌파구를 찾고, 수정처럼 투명해지고, 사랑을 깊이 체험하기도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집단적인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무엇이 실재인지를, 자신이 얼마나 진실 속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지를 떠올린다. 당신이 몸속에서 사는 동안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원 주파수로서, 영혼으로서 살아가는 제2의 천성을 회복하는 일은 점점 더 쉬워질 것이다. 

 

- 진화 과정 속에는 커다란 자비가 있다. 당신이 변성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 다른 무언가가, 예컨대 가장 힘겨웠던 과제가 덜어진다. 파울로코엘료가 <연금술사>에 쓴 말은 사실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운명대로 살고자 진심을 다할 때, 그런 의도로써 무언가를 염원할 때, "온 우주는 당신이 그것을 성취하게끔 음모를 꾸민다."

 

-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이 로켓처럼 가속되는 듯 보이더라도, 내적으로 느슨해진 당신의 입자들은 다이아몬드빛을 내뿜고 있다. 그것은 당신을 통해서 부드럽게 주변으로 퍼져가며, 영혼의 지혜로써 당신을 안정시키고 가득 채운다. 내적으로 당신은 더욱 부드럽고 확장되어 있다. 당신 안에 있는 것들은 가열되고, 개방되고, 부풀어진다. 

 

- 변성 과정은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연속적인 파동 또는 물결로서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먼저 깨닫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먼저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직접 본보기가 되어 길을 밝혀준다.  

 

- 나는 지적인 한 친구에게 깨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는 우물대며 그 화제를 피했다. 그는 그 개념을 너무 멀리 있거나 최종적인 것으로, 마치 깨달음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책임이 수반되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깨달음이 어떤 의미이며, 깨달음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를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아마도 지금 자신의 삶 같지는 않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실례를 별로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깨달은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명상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면서 살거나, 길거리에서 우리 곁을 스쳐가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달음이란 일종의 절정 체험이라고 말했다. 환한 빛으로 둘러싸이고, 천사들의 합창이 들리고, 단번에 우주의 지혜 전부를 전수받고, 그 후로 죽 성자로 살게 된다. 그는 농을 쳤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네 친구가 되어주겠어?"  

 

- 나는 계속 물었다. "하지만, 깨달은 다음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친구는 생각 끝에 답했다. "아마도 내가 지금 하는 선택들을 상당 부분 똑같이 하게 되겠지만, 그때는 걱정이 없겠지. 내 능력이나 방향이나 창조적인 충동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야. 처벌이나 희생 대신에 자비로운 관점과 상부상조의 해결책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겠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 상황 뒤에 숨은 의미와 은혜를 이해하고, 단순한 삶을 살겠지. 모든 것이 그냥 더 단순해질 것 같아."

 

- 얼마나 정확한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매우 다르다. 깨달음을 상상하는 것은 자신이 지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거나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상상하는 것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평소 사고방식과 크게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모순되게도 그다지 다른 점이 없다. 당신은 그저 자신이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지를 알게 될 뿐이다. 

 

- 세상의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투명하고 영적인 체험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변성 과정을 통과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쉬운 일이 되어갈 것이다. 자신의 근원 주파수 속에서 머물고 휴식하라는 말은 뻔하게 들리지만, 자신의 주파수를 그 통합된 음조에 일치시키는 경험은 실로 전지전능하다. 그것은 지상의 당신을 천상의 상태로 들여보낼 수 있다. 

 

- 나는 오랫동안 영적 성장을 세상의 주류 종교들과는 다르게 이해해 왔다. 아마도 그것은 '직관의 시대'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남성적(陽) 에너지와 여성적(陰) 에너지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에, 역사상에 나타난 영적 성장의 관점들은 대부분 남자들의 경험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의심받는 일 없이 전달되어 왔다. 그것들은 남자들의 생리적인 기질과 뇌의 화학적 변화에 토대를 두고 있다. 여성들은 그와는 다른 영적 성장을 경험한다. 나는 페미니즘을 내세우거나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통합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여성의 몸과 뇌가 이 우주와 깨달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결국 남녀 모두에게 더 완전한 그림을 제공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음과 양의 관점을 합침으로써, 우리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최고의 의식 수준에 도달하는 통합의 길을 찾을 수 있다. 

 

- 간단히 말해서, 남자의 좌반구와 우반구는 더 적은 신경섬유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남자들은 양자택일, 즉 한 번에 한쪽 뇌만 이용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분석과 분별의 기술이 뛰어나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우뇌의 직관을 작동시켜야만 한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분리를 통해서 신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길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지, 세상과 하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남자들의 자기실현은 물리적 유혹을 끊고, 사색하고, 공부하고, 구체적인 의례를 만들고, 스승에게 헌신하고, 고립된 수도 생활을 하는 데 토대를 둔다. 예를 들어 선불교에서는 세상만물을 중립적인 것으로 본다.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 / 모든 것이 특별하다." 천국 또는 극락은 이 세상의 바깥 또는 상위에 있는 목표이다.  

 

- 다른 한편으로, 여자들은 뇌의 좌우반구가 많은 신경섬유로 연결되어 있다. 여자들은 통합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을 타고났으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어렵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영혼조차도 쉽게 분간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관계, 대화, 양육, 어울림, 감정, 직관을 즐긴다. 당연하게도 여성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속세의 인간사 속으로, 즉 이 세상으로 '하강'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마치 자기 몸의 일부처럼 물질적 세계와 비물질적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여성들은 이 세상이 되고자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쉽게 느끼므로, 그들의 삶을 보살피고 어루만지려 한다. 여성들에게 깨달음은 분리된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저 깊은 아래,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이다. 

 

- 직관의 시대에는 마침내 인류 전체가 새로운 인식을 불러오고 완전히 꽃 피울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감응력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공감과 자비라는 깨어 있는 ...

 

-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세상을 뒤덮고 우리의 숨을 장악하려고 드는 공포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내적 진동을 안정시키는 것뿐이야. 세상에는 더럽고 유독한 공기와 맑고 투명한 공기가 있는데, 그 둘은 한 장소 안에 공존하고 있어. 우리는 공기를 맑고 풍요로운 것으로 바라보면서, 거듭해서 그런 식으로 숨을 쉬어야 해.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감정과 마음이 영혼과 영적가치에 조화되도록 유지시키는 일이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 나쁜 뉴스가 우리를 잡아끌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말려들지 않아. 우리는 그 뉴스를 무시하지 않지만, 자신이 그것에 의해 쪼그라들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아."

 

- "그리고 이 세상에서 더 경쾌하게 살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사회의 변성 과정과 함께 좀 더 창조적으로 흐르게 해 줄 생각들이 떠오른다면, 그것들을 영혼의 관대함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실천해 봐. 걱정하면서가 아니라. 기름 잡아먹는 차를 좀 더 분별 있는 탈것으로 바꾸고, 지역의 농산물을 사고, 일주일에 몇 시간쯤은 마음이 끌리는 곳에서 봉사를 하고, 의식 수준이 높은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 네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척척 들어맞는 각자의 운명이 이끄는 자기표현법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필요가 없어. 그저 단호하게 작정하고 나아간다면, 동료애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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