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일루젼 2023. 11. 1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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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병모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18.11.10


 

 

이 책을 읽은 지 근 한 달 정도가 지났다. 발췌문을 정리하며 생각한 것은 무언가를 접한 직후와 시일이 지난 후 감흥이 변해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발효와 부패를 나누는 기준은 오직 '인간의 이익'일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리 만이 영원하다던가. 

인간의 기억은 날카로웠던 문장과 그 순간 진동했던 감정들을 쉬이 잊는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짤막한 한두 문장 혹은 한두 단어를 접하는 순간 그 전체가 즉시 되살아나기도 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문장>은 이전까지 내가 읽었던 -몇 편 되지 않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어쩌면 저자가 발표한 모든 소설들 중 가장 자기 개인을 담아낸 작품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다작을 한다 하여 매번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그 고통이 반드시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음에야.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작가 자신도 의도한 바 없었던 것들을 '분석'하고 '추출'해내어 난도질하는 날카로운 면도날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누군가의 말과 글은 화자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서 무엇을 읽어내느냐 하는 독자와 청자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필터이다. 많은 자유를 얻은 대중은 '대중'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한 가면을 방벽 삼아 허락되지 않은 자유까지 누리고자 한다. 무언가에 대한 평가나 호오는 그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귀속된 것임을 쉽사리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오래된 구절은 결국 진동의 진폭와 주기는 고정되어 있으며, 파고의 순간을 매번 최초의 것으로 감각하는 개별적 인간들만이 나고 질뿐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처음 책장을 다 넘긴 뒤에는 알 수 없는 벅참에 경도되어 버렸었다. 그 모든 환멸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놓을 수 없는 자의 숙명 같은 것, 그 가시밭길을 홀로 걸어가는 고독에 관한 환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 다시금 읽어보는 <단 하나의 문장>은 조금 다르다. 평생 토해내고야 말아야 할 '단 하나의 문장', 그것을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겸손과 좌절이 보인다. 

 

그에 대해, 그저 발표된 작품을 눈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인 내가 이렇듯 여러 문장들로 토를 다는 행위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감사히 읽었다.   


   

 

- 소설가 P씨의 계정을 팔로한 지는 이 년 남짓 되었다. P씨의 팔로워는 오만여 명인데 팔로잉은 세 명에 불과했으며, 그것은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들의 계정이었다. 그는 일 년에 평균 한 권 꼴로 육 년째 저서를 출간했는데 모두 소설이었고 웬만큼 쓴다는 작가라면 으레 한 권쯤 낼 법도 한 산문집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P씨는 신문 잡지 방송 어디에도 칼럼을 싣는 법이 없었다. 생활밀착형 미셀러니를 비롯하여 무게감 있는 에세이나 사회 문화 논평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소설 아닌 글은 무엇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 소설은 인물이나 줄거리 따라가는 재미에 집중하느라 티가 잘 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적은 산문에서는 저자의 평소 사고 수준과 문장의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그가 평소 SNS에 올리는 토막 단상들은 그럴듯한 삽화를 얹어 책으로 대강 엮어 팔기에 큰 무리는 없지만 범상한 문장만큼이나 사유 또한 단순하여 지나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그 정도 말은 구사할 수 있겠다 싶은, 말하자면 저자 특유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었으니, 산문집을 굳이 출간하지 않는 것은 암만 수익지상주의 업체라도 글을 보는 최소한의 눈 내지는 출판의 사회적 책무를 고려하는 양심이 있다는 뜻이며, 이 세상의 푸르른 나무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일 터였다.

-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문체와 살짝 빈곤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P씨가 매해 꼬박꼬박 신간을 내보내며 꾸준한 판매 지수를 유지하는 한편 웹에서는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까닭이라면 역시 그거지. 첫 책이 16부작 케이블 드라마로, 두 번째가 영화로, 세 번째가 20부작 웹드라마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박은 첫 번째뿐이며 작품이 유명세를 탔다고 하여 그걸 쓴 작가가 셀러브리티는 아니겠으나, 이후 꾸준한 중박으로 업계 입장에서는 뭘 해도 본전치기는 하겠다 싶은 작가가 그리 흔치 않지. OSMU가 가능한 작가 중 하나, 계산기 두드려봤을 때 손해는 안 나고 언젠가 다시 터질 잭팟에의 기대를 완전히 접을 필요도 없는 고른 작품 수준 -알다시피 우리가 대형 마트의 팝업 보드나 식당 메뉴판에서 종종 발견하는 '고른 품질' 내지는 '균질한 맛' 따위의 표현은 딱 가성비에 준하든가 그보다 살짝 밑도는, 하여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거기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본명과 성별 및 나이와 직업, 거주지등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은둔자 이미지도 한몫할 터다. 

- 매년 발표하는 소설마다 소비되기 좋고 소진되기도 쉬운 적당한 감흥을 안겨주는 P씨의 계정을 처음 팔로했을 때의 이유는, 마침 그 무렵 논란이 된 사례에 대해 P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그보다는 이런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일상을, 그의 토막글과 사진만으로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였다고 할 것이다.

- 당시 P씨가 발표한 신작은 그전까지 재개발 구역의 휴먼코미디 - 병원 배경의 미스터리 로맨스 - 고등학교 신임교사의 참교육 도전기 등으로 이어져온 일련의 소설에서 따뜻하고 푹신한 톤을 덜어낸 것으로, 소위 사회파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때 주인공을 통해 선악의 모호한 경계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는 북 섹션 리뷰와 함께, 기존 그의 작품들이 거쳐온 수순대로 영화사에서 수시로 접촉이 들어온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그런데 인물들을 하나씩 톺아보면, 주인공 옆에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악인은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였고, 그 외에 시골 총각과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가산을 돌라내어 도망가다 잡히자 배 째라고 내미는 캄보디아 여인에다, 주인공의 보조자로 미모의 청각장애인이 등장했다. 인물만 열거해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법한 소설이라는 점은 접어두고, 삼백오십여 쪽의 책에서 열두 개 문단 정도가 캡처 편집되어 서브컬처 게시판에 올라가자 아직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은 그 편협함과 낡은 세계관에 경악했고, 이미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들의 둔감함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누구에게 선물로 줄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 책을 세 부 정도 장바구니에만 담았다가, 끝내 결제 버튼을 클릭하지 않고 이듬해 보관함으로 이동시켰다. 

 

- 게시판에서 SNS로 이동한 편집본이 리트윗 단계로 넘어가자, P씨의 소설은 외국인 노동자가 악인이라는 편견을 고착화하여 기피 대상으로 규정하는 데에 한몫하며, 매매혼에 다름 아닌 현 사회의 뒤틀린 국제결혼 문화에 대한 반성과 고찰 없이 외국인 신부를 사기꾼으로 몰아간 데다 그녀의 서툰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어 희화화하는 한편, 선한 행동에서 성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내는 청각장애인 여성이 주인공의 보조자에 그침으로써 장애인은 모두 착하고 순박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강요된 이미지를 재생산 및 배포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주인공이 제 분을 못 이기고 그녀에게 '병신'이나 '귀머거리'라고 반복적으로 토해내는 장면은 해당 인물의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하기보다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명칭을 공고히 하며, 설령 그것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형상화하기 위한 장면이라고 주장한들, 반드시 한 주체의 인격을 짓밟음으로써 갈등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면 작가의 소양이 저급하다는 뜻이라는 사람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주인공의 폭언을 듣지 못하나 입 모양과 행동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여성이 분노하기는커녕 그를 포옹하는 장면은 모성 판타지의 일종이겠는데, 이때 그녀가 하필이면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사전 묘사는 각종 혐의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고작 한 권의 소설에서 이렇게 용납하기 어려운 대목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그 저자가 평소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는 댓글과 타래들이 달렸다. 

 

- 구도 잡는 방식이 거칠고 대범하며 아기자기한 소품에는 관심이 없는 한편,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몇 번이나 가놓고도 테이블의 음식 사진이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고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은 전무한데, 서로 다른 디지털카메라의 스펙을 비교하는 장면이나 무언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장면이 종종 올라온 것으로 보아서 안정적 수입원이 있는 남성일 확률이 높다든가, 아니 굳이 사진으로 판단할 거 없이 이미 발표한 소설마다 매번 삼십 대 중반의 남성이 중심화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알조라거나, 일상에 찌든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미술관과 여행지 사진으로 보아선 결혼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녀가 없는 우아하고 윤택하며 기품 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으리라는 추측, 어딘지 모를 초등학교 운동회 장면이 최소한의 연출과 구도를 무시한 채 올라온 걸 보면 아이를 둔 부모라는 또 다른 추측, 그 정도야 단지 지나가다 찍은 풍경일 수 있다는 반론, 아니 확실히 일련의 다른 사진들에 비해 소재가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결이 달라 결이, 뭐가 됐든 사진과 글을 주로 올리는 시각으로 볼 때 회사원은 아니고 자영업자겠지, 아니 자영업이 가게 놔두고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나, 결론은 프리랜서나 전업 작가, 그런데 포털 연재도 아닌 연 한 권 전작 출간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전업 작가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으며, 매번 영화나 드라마의 2차 판권료를 억대로 받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않나, SNS에 비교 분석기가 올라온 그의 카메라를 보자면 렌즈 포함 오백만 원에 이르니 애당초 돈 좀 있는 딜레탕트이겠다든가, 아니면 또 다른 필명으로 대중성 있고 접근성 좋은 플랫폼에 좀 더 로맨틱하거나 에로틱하거나 속도감 넘치는 무언가를 연재하여 생계를 해결할지도... 같은 식이었다.

 

- 그러나 그전까지의 짐작이 일종의 유희 차원에서 오간 이야기였다면, 이번 경우는 P씨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벌어지는 중인데 관련 피드백 없이 파도가 덮쳐오는 찰나를 찍은 사진만 올리다니, 책을 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이 도를 넘어 독자를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라는 평이었다. 

- 그러자 재차 해명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막간을 틈타, P씨의 첫 책부터 의심스러운 대목이 깻단 속 낱알처럼 털려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재개발 구역의 경우, 이미 반쯤 헐려 벽 너머가 드러난 집에서 맘에 두고 있던 여성과 다른 남성이 관계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인공이 그쪽에 대고 소변을 발사하는 장면이나, 우연히 이 소변 줄기를 맞은 길고양이를 학대 살해하는 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장면이 문제점으로 꼽혔으며 이 단락의 캡처본은 동물사랑협회 관계자들에 의해 대거 리트윗 되었다. 

 

- 특히 세 번째 책 같은 경우는 당시 전형적 힐링물로 평가받기도 해서, 자녀 교육 문제에 관심 있는 주위 엄마들에게 몇 권이나 선물로 돌렸었다. 그 뒤 교내 봉사활동 모임 후 커피숍에서 만난 엄마들의 감상평이 대략 어땠는가 하면, 자신의 딸과 아들이 꼭 그 주인공들처럼 자랐으면 싶은 바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는 교사를 돕다가 겪은 각종 환난을 생각해 볼 때, 가능하면 튀지 않고 조용히 수행평가와 입시에 전념했으면 좋겠다는 염려가 공존한다는, 상식적 보편적 차원의 것이었다. 그중 한 엄마는,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감을 잃지 않고 갈등을 일소하면서 큰 방황 없이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은 인물 형상화의 성공적 요인이 입체성에 있다고 여기는 만큼,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평면적이고 나이브한 것 같다고 첨언했다. 그러자 다른 엄마는 고작 극적 구성을 위해 아이들이 크게 잘못된 길에 빠졌다가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나태하거나 개연성 없게 여겨진다면서, 처음부터 맑았던 아이들이 큰 굴곡 없이 끝까지 맑다는 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특색이자 강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또 다른 엄마는 문학의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항상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말했고 마지막 엄마는, 그러면 남은 선택지라곤 처음부터 탁했던 아이들이 끝까지 탁한 인간으로 남는 것뿐인데 혹시 소설 속 아이들이 파멸하기를 바랐던 거냐고 반문하면서, 이 소설은 인물들이 정규 교육을 받는 고교생들이라는 점에서 학교밖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과 돌봄을 배제한 반쪽짜리라 말했다.

 

- 그들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기에, 나는 어려운 건 잘 모르겠으나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고 일상에 널린 참괴와 환멸을 용의주도하게 피해 가며 자신의 삶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뒤 아이를 최소한 넷은 낳아 길러서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 적 없어 보이는 사람이 쓰는 반듯한 세계관의 이야기를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동문서답으로 때워서 그들 가운데 적어도 세 명을 실망시키거나 혼란에 빠뜨렸고, 이때 서로 언성을 살짝 높인 두 사람의 사이가 싸늘해졌기에, 다음에는 실로 취향이 통하는 친구가 아닌 다음에야 섣불리 책 선물 같은 것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 어쨌거나 거론되는 사안들의 파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임라인에서 그대로 밀려날 듯하면서도 잊을 만하면 한두 번씩 되는 리트윗으로 고로롱팔십의 밭은기침처럼 생명력을 획득했기에,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었는지 그사이 P씨와 협의를 마친 듯한 출판사가 메인 트윗에 자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의 링크를 걸어놓았다. 그러나 그 공지는 안 그래도 미적지근했던 P씨의 대응에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한 독자들을 분노의 단계로 이동하도록 부채질했다. 

 

- [본사에서 발간한 P작가의 신작 소설에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P작가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저자라는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의 계정이 아닌 출판사가 대리 발표하는 점을 헤아려주시면 고맙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데뷔 당시부터 관심을 가지고 삼 년간의 자료조사와 구성 끝에 완성한 것으로, 소설에 등장한 각종 사례 ... ]

 

- 이 공지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그 똥 참 길게도 싸네였다. 결국 이것도 못하겠고 저것도 안 되겠으니 너네가 다 이해해라, 싫으면 보지 마라네? 독자를 무시하는 ○○사의 책은 오늘부터 모두 불매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대규모 성토의 타래가 뒤를 이었다. 우선 '과도한' '다소' '부족함' '가능성'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들로 때워서 자사 발간 도서의 문제점을 깨끗이 인정하기보다는 외부에서 핑곗거리를 찾는 느낌을 주며, '대다수의 문제'라는 말로 다른 멀쩡한 작가들 머리채를 잡아 끄는 물귀신 작전에, 맥락도 못 찾는 사람들로 독자 수준을 후려치고 있다는 원성이 나왔다. 그중 독자로서의 목소리 이전에 도서를 구입한 행위에 초점을 맞춘, 즉 실속에 예민한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부족한' 소설을 출간하고 유료 판매한 출판사의 비양심적 상혼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앞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여겨달라니, 아무리 사소한 공산품이라도 각종시험과 검수를 거친 합격품을 내놓는 법인데 돈 받고 파는 책이 미래를 위한 발판 수준의 시험작이라니, 독자를 봉 취급하는 데에도 정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 늘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사람들의 반응을 눈여겨본다든지 하는 일도 일종의 사치였다. 육체적 실무와 감정 노동을 제외하더라도,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꾸리는 일이란, 생각보다 높은 열량을 필요로 했다. 친밀한 사람들 -그보다는 서로 조심해야 할 관계- 로 이루어진 그물망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단순성과 모호성을 동시에 장착하고 자유로이 구사해야 했다. 삶을 오엑스 퀴즈로 간주하고 그 중간에 발을 걸쳤다가, 어느 쪽으로든 건너오라는 요구를 받으면 다수가 선 자리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반드시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스처라기보다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올바름이었다. 

 

- 유수 종합 출판사가 P씨의 책만 출간한 것도 아닌 데다 당장 그의 책이 수십만 부 베스트셀러라도 되어서 특별 관리 보호 작가로 돌보는 상황도 아닌 모양, 지속적 피드백에 신경 쓰지 못하고 마침내 총알받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이틀 뒤, P씨가 자신의 계정에 다음과 같은 간단명료한 글을 올렸다. 
[저는 다큐가 아닌 소설을 썼을 뿐입니다. 소설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불편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 [어쨌거나 깔린 책은 회수 안 하시겠다는 거죠?]
[최소한 이미 팔린 책에 대해서는 토해내시는 게 맞죠. 도의적 책임이라도 느끼신다면 말이지만.]
[그동안 자랑질했던 카메라들도 인세니 계약금이니 받아 샀을 텐데. 다 팔고 기부라도 해야 하지 않나.]

- 그러자 다음날엔 2차 해명 대신 좀 더 구체적인 감정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설정상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용 진행을 위해서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직업이나 처지나 성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봐도 느낌이 살지 않아서 원래 생각대로 썼습니다.]

- 첫 번째 트윗이 삼십여 회 리트윗되는 동안 P씨는 두 번째 연결 트윗을 올렸다.
[서로 다른 입장들을 고려하고 지나치게 균형을 맞추려다 전체의 그림이 어그러지도록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설의 개연성과 완성도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보았습니다. 현실에 아주 없는 일을 쓴 것도 아니고 소설적 과장과 허구가 들어간 겁니다.]

 

- 그의 육성이 조금 더 추가되자 빠른 속도로 반응이 달렸다. 한 시간 만에 이백여 회의 리트윗이 되고 타래는 이러했다.
[느낌 안 산다는 것도 자기 생각일 뿐. 어떻게 해도 느낌이 안 산다면 능력 부족의 증거.]
[타인을 배려하고 균형을 맞추는 행위가 지나친 일이라는 분, 잘 가세요. 멀리 안 나가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도 아니고 언제 균형 맞춰달랬나요?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랬지. 누군가를 꼭 불편하게 만들고 싶으면 님이나 님 가족을 제물로 삼지, 왜 애매한 사람들을 갖고 그러는지.]
[설정상 그렇게밖에 안 된다면 애당초 설정부터 바꿨으면 되는 문제잖아요? 출판사나 님이나 지금 계속 전체 그림 무너진다고 징징대는데, 그렇게 무너질 그림이면 처음부터 그리지를 말라고.]
[그놈의 소설적 과장과 허구는 왜 만날 약자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모름...]
[그런 구린 방법을 써야만 내용 진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가 얼마나 게으른지를 광고하는 거 아닌가... 지금껏 버셨으면 이제 그만하심이.]
[됐고, 그래서 지금 님한테는 이 개연성이랑 완성도가 만족스러운가 보죠?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걸 내다 버리셨다니까. 그것만 한번 말씀해 보세요.]

 

- P씨가 입을 열수록 사태는 진정되기는커녕 게 자루를 풀어놓은 듯했다. 전체 타래 가운데 비웃음이 약 오십 퍼센트로 제일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삼십 퍼센트가 맹비난이었다. 이십 퍼센트는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이나 <인생의 첫출발> 같은 목록을 예로 들며 예로부터 풍자적 묘사란 기괴한 이방의 존재들, 신체가 뒤틀리거나 왜곡된 사람들,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나 부스럼쟁이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온 만큼, 현대의 작가가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오락적 소재로 삼았다고 하여 비난하는 것은 폭력적 염결주의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으나, 이는 P씨를 얘기하는데 본질을 벗어나서 이국의 라블레와 발자크를 끌어오느라 먹물들이 퍽이나 애쓴다는 조롱과 함께 묻혔다.

 

- 그사이 시일이 두 달 남짓 흘렀으므로 P씨의 신작은 자연스레 종합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뒤로 미디어 판권이 계약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책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기회를 잃었으므로, 사람들 대부분의 기억에서도 밀려났다. 매일 새로운 사건이, 주로 사고가 있었으며 그전의 사건은 너무 익어 발끝에 떨어진 무른 열매 같았다. 이미 출판사는 자사의 다른 신간 홍보에 집중하느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종 실용서와 교양인문서를 소개하는 중이었고, 실상 그런 책들이 더 많이 화제도 되고 팔려나갔으므로, P씨의 거취에 대해 출판사 계정에 문의하는 글은 곧 뜸해졌다. P씨의 계정에는 다시 일상적인 사진이 가끔가다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분위기 있게 찍힌 사진을 관성적으로 리트윗만 할 뿐 더 이상 그의 지나간 책에 대해 캐지 않았다. 그것을 힐문할 만큼의 관심과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타래를 떠나가 다른 주제에 집중하느라 P씨와 그의 사생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새 책을 내놓음으로써 사정거리 안으로 재진입하기 전까지는. 
 

- 그다음 해에 출간된 P씨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은, 전작의 논란을 의식했음인지 상대적으로 안전한 수비 범위 안에서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겪어내고 직접 부대끼며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그러므로 현장감 좋고 굴절률이 작은 묘사를 기대할 수 있는 일상생활 테마의 가족극이기도 했거니와, 문제적 인물이나 상황이 줄었으며, 큰 굴곡 없이 평탄하다 가끔 완만한 곡선을 그린 뒤 제자리로 안착하는 갈등구조를 지녔다. 그러고 보니 P씨는 이미 그전에도 불륜 묘사에서 증명한 바, 다른 쪽의 역량은 몰라도 으레 중대히 다뤄질 법한 상황과 사건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 잔잔한 터치 감각 정도는 있었다. 샘물과 바람과 나뭇잎과 다람쥐 정도만 존재하는 듯싶은 세계를 그려내는 것도 재능이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서사를 한 권 분량으로 흥미를 유지시키며 이끌고 나갈 엄두는 처음부터 내지 못한 듯, 인물들이 한 번씩 폴리스 라인을 넘을 뻔했다가 돌아오는 고전적 패턴이 엿보이기도 했다. 오래 앓던 시모의 장례가 끝난 뒤 아내가 남편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한 통만 남긴 채 트렁크를 끌고 가출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바로 그녀가 중심 화자가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그전에 내내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추정되는 삼십 대 중반의 남자들만 전면에 내세웠던 P씨가 조금은 달라지려 노력했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편 그녀의 고교생 딸은 학교를 일찌감치 떠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가 일행의 꼬드김에 빠져 삼십 대 중반의 회사원과 조건만남을... 가졌다면 또다시 큰 파장을 일으켰겠지만, 사태는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약속장소에 나타난 회사원은 아빠의 부하 직원이었던 것이다.  

 

- 친구의 함정에 빠진 여학생이 순전히 남자 어른의 변심과 동정에 기대어 그 상황을 모면한다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남자가 하도록 하여 여학생을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고, 그런 품위 있는 남자란 적어도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남성들 일반에 씌워진 혐의를 벗겨보고자 몸부림치는 작가의 작위가 느껴지는데, 그래봤자 애당초 조건만남에 응하여 그 자리에 나온 것부터가 이미 틀려먹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물 묘사의 일관성마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P씨는 이번에 큰맘 먹고 엄마와 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했겠으나 실은 자신이 그것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에 취했을 뿐, 사유 부족 또는 공부 부족으로 그전과 달라진 점은 없다는 종합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소설의 절정과 결말은 비교적 순하게 흘러간 데다 화제성과 세일즈포인트 또한 전 같지 않아서 예년과 달리 출판사의 계정으로 민원이 폭주하지는 않았고 다만 '당신이 집에서 부인을 어떤 존재로 취급하는지 잘 알겠다' 내지는 '솔직히 말해봐요 조건만남 해봤죠? 여고생이 나오는 바람에 철창 갈까 겁나서 용돈만 쥐여주고 보내셨다거나?' 정도의 비소가 한두 달에 걸쳐 간간이 달렸다. 적어도 입장 표명이나 해명 요구의 움직임이 있던 전년도보다는 나았지만 나는 이번에도 P씨의 책을 장바구니 대신 기약 없는 보관함으로 옮기고, 누구에게든 선물할 생각을 접어두었다. 도대체가 이 시대에 책 선물이라니 어림 반푼어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 읽고 볼 것들 천지인데 원래 책이란 꼭 필요한 것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된다고 보통 여기니까. 신간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조소가 사라질 무렵, P씨는 그전의 누적된 멘션들에 대한 일종의 답을 -이제 와선 누구도 새삼 확인하러 들어오지 않을 한마디를- 올려놓고 또다시 SNS 휴식기를 가졌다.  

 

- [현실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며 무엇보다도 저한테는 아내가 없습니다.]
그간의 글 모두를 털어 비로소 밝힌 P씨의 유일한 개인 정보였다. 아내 없음.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반응만 달린 채 타임라인 바깥으로 밀려났다.
[현실에서만큼은, 이라면 소설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는 뜻인가요?]
[소설을 읽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가 보네.]

 

- 어쨌거나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조난자가 된 사람들은 그런 맑은 서사를 구호물자처럼 여기기도 하며, 이야기책 속에서마저 비애나 고난을 목도하기 원치 않는다 하나, 일부 고정 독자들은 냉소 가운데의 예기치 못한 폭소, 고소 苦笑 가운데 은근한 미소가 주력 상품이었던 P씨가 차포다 떼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구심과 실망 섞인 의견을 내놓았다. 잔잔한 것도 좋지만 정도껏 이전에 그의 잔잔함에는 그래도 간과하지 못할 긴장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밋밋하고 굴곡 없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이고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겠네요. 하차합니다. 정말로 이제는 그만 써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면도날들을 저마다 혀 밑에 숨기거나 손끝에 꽂고 있어서, 종합 순위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 농구 이야기 역시 서사의 포가 떠지는 걸피해갈 수 없었다.  

 

- 어쩐지 P씨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종료하고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에 조용히 스며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봐도 부족한 말들의 숲을 어설피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며, 어디서도 그의 발자국을 다시 발견하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이. 

 

- 문자메시지가 연달아 네 개 도착한 걸 확인하느라 인터넷 창을 닫았다. 하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감방 가지 않게만 도와달라는 남동생의 문자. '누나 그동안 알게 모르게 벌어둔 거 내가 모르지 않거든' 따위 말만 덧붙이지 않았어도 맘이 움직일 뻔했다. 그다음, 아버지의 검사 결과와 검사비 이십사만 원이 찍힌 영수증 사진 파일은 엄마가 보낸 거였다. 다음 문자는 큰형님한테서 왔다. 내일모레 제사에 몇 시까지 올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예 형님, 저 아이들 학교 보낸 다음 바로 찾아뵐게요. 아이들은 학원까지 마치고 저녁때 시간 맞춰 오도록 할 거고요. 전송 아이콘을 클릭하고 마지막 문자를 열었다. 정말로 다 없던 일로 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선생님 의향을 존중할 거고요, 기지급 된 계약금 이백만 원을 저희 쪽에 따로 돌려주실 필요는 없으세요. 

 

- 거기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채 좀 이따 하교할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났다. 문득 다시 펼쳐보지 않을 책들의 일렬로 늘어선 등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방을 나섰다. 돌보아야 할 남편과 아이들, 엄마 아빠 동생까지 있는데 유일하게 나한테 없는 건 아내였다...

 

- 펜 끝에서 한번 번져나가기 시작한 말들이 그리는 궤적을 바라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흘러가는 말들을 포착하여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물방울의 표면에 새겨나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은 원래의 가장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기에, 그리고 말의 죽음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일 뿐이다.  

-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 학교에서 수년간 이완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부터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이완은 지금 있는 학교에서 사 년째 근무 중이었고, 교장 교감 학부모 모두에게 불미스럽게 치여 심신이 지치기도 했겠다 순환 발령 시기도 마침 되었겠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정주에게 상의 없이 1학기 말에 본가가 있는 도시로 전출 희망 서류를 쓴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도시는 전출입 희망 대기자가 언제나 많았고 매번 경쟁률이 높아서, 전출입 인원의 맞교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선순위가 아닌 이들은 밀려났으므로 실제 원하는 곳으로 발령 날 확률은 희박했다. 그런데 2학기에 교감이 작성하라며 내민 것은 이완도 정주도 전혀 연고 없는 모분교로의 전근 신청서였다. 그저 형식상 써두기만 하면 된다고, 한 학년마다 이미 근무 중인 교사들이 있으니 거기 배정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우며 그럼에도 당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의 심신 평화를 위해 적절한 노력의 제스처를 보일 필요가 있어서일 뿐이라고 교감은 그랬었다. 이완은 교감의 말을 조금이나마 신뢰한 것이 제 발등을 찍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 뭐라고?
노인분들께는 분명하고 큰 음성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하고 때론 듣기 쉬운 말로 바꿔야 비로소 원뜻이 올바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정주는 문득 떠올리고 목소리를 좀 더 높였다.
별채라고 하기엔 좀 거창해요.
별채가 좀 뭐?
어, 그냥 창고예요. 가서 보시겠어요.
정주가 굽혔던 허리를 펴고 바깥을 향해 팔을 뻗어 보일 때 노부인은 비로소 정주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어디 보자, 배가 크고 펑퍼짐하니 아래로 처진 게 딱 고추네.

그렇게 말하며 노부인의 손길이 배를 슬쩍 건드리는 순간 정주는 이루 말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혔지만, 산골 어르신이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 노부인이 이어서 대답했다.
대대로 조상 잘 모셨으면 고추지 뭘.
정주는 앞으로 이런 전근대적인 발화를 수시로 듣게 되리란 걸 예감하면서, 노부인의 손가락이 배에서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기에 별채로 나가는 척 뒤로 한 발 물러섰다. 

 

- 나 얼마 전 읍내까지 나가 신문에서 봤는데, 요즘 젊은 여자들이 그렇게들 애를 안 낳는다며, 아주 못돼가지고들. 새댁은 애를 갖다니 정말 장하네. 
예, 고맙습니다.
이런 어르신에게 '여자들이 애를 안 낳는다'는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아이들이 태어날 거라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거나,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요' 같은 최소한의 이유를 첨언해 보았자 좋을 일은 없다는 걸 정주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몇몇 신문에서 불러주는 대로 그것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한편, 사람의 출산을 발목에 감기는 기름진 흙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영토에서의 추수 같은 일련의 풍요와 긴밀히 관련짓는 구시대적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건 세상을 향한 통로가 마땅치 않아서일 것이며 그걸 탓할 수는 없었다. 

 

- 이런 어르신들의 세계 속 어린이들은, 차 없는 거리에서 아무런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고 다방구나 땅따먹기로 왁자하게 뛰놀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각자의 집으로 뛰어가는 생물들이었다. 거기서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세계에는 네발자전거나 축구공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그림 같은 세계에서 어미란, 한 아이가 더 태어나면 상위에 숟가락 하나만 추가로 올려놓으면 되는 존재였다. 

- 뭐 그냥, 아이들 가르쳐요.
이쪽에서 겸손하게 둘러대면 보통은 상대방이 알아서 의미를 캐치하고 추어올리게 마련이었다.
아 학교 선생님이신가?
예, 뭐 그렇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본인이 정규교육을 받았고 어느 정도 지적 성취를 이루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 묻는 경우도 흔했다.

- 일 년에 두 번 방문하던 시가에서라면, 정주는 아무리 피로하고 어색하더라도 이완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갑게 대하려 노력하는 제스처를 -대화가 지나치게 일찍 끊어지지 않도록 덧붙이거나 되묻는 등의 적절한 호응을- 아끼지 않았을 터였다. 정주는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예, 이제 막 부임해 와서 그이도 저도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세요. 예, 그랬군요, 왜 이사 갔을까요? 중학교는 더 멀리 외곽에 있나 보군요. 고등학교라면 전교생 기숙사 학교가 곧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러한 연속성에의 시도 없이 정주가 점점 단답식으로 무성의해지자, 노부인은 머쓱해하며 대문을 향했다. 

 

- 젊은 새댁이 이사해서 힘든가 보구먼. 몸도 무거운데 이제 쉬어요.
예,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리 좀 되고 다음에 날 잡아서... 남편더러 인사 다니라고 할게요.
어이구, 인사야 새댁이 돌면 되지.
몸이 이래서요.
정주는 집과 관련된 자지레한 일들이 당연히 아내 몫이라고 여기는 어르신과 말을 길게 섞을 여력이 없었다. 이완에게 읍내 어디를 헤매든 알아서 오늘내일 사이로 이사 떡을 맞춰오라는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노부인이 떠난 뒤, 정주는 전화기에 뜨는 안테나 개수를 가능한 한 늘리려 팔을 뻗어보다가 포기하고 나머지 청소를 하느라 문자 보내는 것을 잊었으며, 이완은 그날 교감과 교사들이 따라주는 대로 환영주를 마시고 자정이 되어서야 동료 교사인지 누군지 모를 이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뭐라도 이벤트를 꾸준히 만들어야 활기를 띠고 돌아가는 소규모 지역사회에서, 일종의 신고식 비슷하게 이런 일은 앞으로도 자주 있을 터였으므로 정주는 놀라지 않았다. 이튿날은 공휴일로 오래도록 깨어나지 않았고, 정주는 잠든 이완의 등을 한번 내려다보곤 전날 정리가 덜 된 자리들을 쓸고 닦았다. 떡은 인터넷 지도를 검색하여 가장 가까운 곳에 전화 주문하면 배달해 줄 터였다. 인터넷 설치기사는 모레나 되어야 올 터였고, 스마트폰 데이터를 조회해 보니 이달치 제공 용량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 당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쏙쏙 뽑아가는 신이한 귀를 지니고 있었다. 이완이 아이들 다툼에서 비롯된 학부모 간 분쟁을 중재하다가 오히려 학폭위에 불려 가 교감과 한바탕 했다든지 학년부장과 주먹다짐이 오갈 뻔했다든지, 결국 혼자서 경위서 작성을 덤터기 썼다든지 일련의 사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아서 좋을 일 없었으므로 -시골에서는 그런 얘기 입도 뻥긋하는 거 아니란다, 한마디라도 밖으로 냈다간 굽이치는 길목마다 얘기가 와전되어 네 서방은 어느새 학부모와 바람나서 쫓겨온 걸로 둔갑해 있을 거란다... 떠나오기 전 모친이 건넨 당부였다- 정주는 남편을 향한 타인들의 호기심을 자기한테로 돌리는 데에 주력했다. 

 

- 카페인 부족으로 말마저 조리 있게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며 정주는 이제 빨리 돌아가서 물을 끓이고 싶었다.
원래 취향이 그러시면.
최씨가 허리를 숙였다가 꺼내 들어 보인 것은 김이 올라오는 커피메이커 서버였다.
마침 다 내려와서요.
회사 근처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에는 댈 수 없는 소박하고 어설픈 향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정주는 별다른 고민 없이 진열대 앞 미니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커피를 마신 시간은 다 해야 이십 분을 넘기지 않았고, 최씨와 마주 앉아 오고 간 얘기는 네댓 마디에 불과했다.
시루떡 잘 먹었습니다.
예, 별말씀을요. 전 또 뭐라고, 한참 전의 일인걸요. 커피 맛있네요.
천천히 드세요.
... 원래 여기 분 아니시죠? 아닌 것 같아요.
뭐 피차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그렇죠 저도요. 그런데 이렇게 조용한 데서 잘 지내지세요? 잘 지내는 게 뭔지에 따라 다르겠지요.
아마 최씨는 그저 지내기만 하면 됩니다, 같은 말을 뒤이어 붙였을 테지만 정주는 클래식 연주의 잔향과 커피에 취하여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그가 구 조직원의 잔당이든 등판에 문신이 있든 이 자리에서 웃통을 까고 보여줄 게 아니라면 상관없었고, 밀랍으로 봉한 봉투를 뜯어 열듯이 그에게서 뭔가 끌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다.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가 엿보인다면 적당히 추임새라도 넣어주었겠지만, 정주는 어차피 오랫동안 알고 지낼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그의 눈 밑 상처의 배경에 훅 불면 흩날릴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라 믿었고, 김 할머니를 비롯한 동네 어르신들을 그동안 보아 오면서 깨달은, 타인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자세였다. 
남편과 함께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윤 할머니가 길가 건너편에서 이쪽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선을 정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 ... 깡패 새끼라더라. 가까이 가지 말라더라. 넌 어떻게 된 게 밖에 하루종일 나가 있는 내가 그런 소리를 듣게 만드냐?

출산 전 마지막 진료여서 차를 내고 시내 병원으로 동행한 이완이, 돌아오는 길에 대뜸 그리 말했다. 빗물이 점점 빠른 리듬을 갖고 제 몸을 부딪쳐오는 차창 밖을 내다보던 정주는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는데, 얼마 못 가 쓴웃음으로 바뀌더니 입가에서만 조금 나부끼다 멎었다. 가게에서 커피를 샀을 뿐이며 쉬어가는 셈 치고 커피를 얻어마셨을 뿐이라는 설명이나, 최씨가 인상만 험악하고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뿐 깡패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변호 또한 나오지 않았다. 해명을 해야 하나 싶은 상황 자체가 모욕이었고, 이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내 신변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보기 민망하다는 얘기였으므로, 설령 변명이나 나아가 거짓말까지 필요한 일이 발생했던들 정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터였으며, 해보았자 그 말들이 마찰력을 잃고 미끄러져 허공에 부서지리라는 걸 예감했다. 정주의 태도에서 못마땅함을 기미 챘는지 이완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니 공연히 무슨 일에 엮이기라도 하면 걱정되니까, 그런 구멍가게에 뭐 쓸 만한 물건이 있다고, 뭐든 필요하면 나한테 시켜, 들어오는 길에 사 갖고 오면 되잖아. 정주는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그를 비웃으려던 참이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실소와 함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퍽이나. 이완이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정주는 반사적으로 배를 감쌌다. 아니 미안 믿어, 믿는데... 적신호에 걸리자 이완은 양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핸들에 고개를 묻었다. 굳이 남들한테 그런 얘깃거리 제공할 필요 없잖아. 그래서 하는 얘기지.

 

- 부엌 전기를 켜고 겉옷을 벗을 때 정주는 휴대전화가 없어진 걸 알았다. 이완이 전화를 걸자 병원 옆 커피숍 알바생이 받았다. 넌 이제 막 들어왔으니까 쉬고 있어, 내가 금방 다시 다녀올게. 온 길을 고스란히 두 번 걸음 하게 만든 것은 직전 그의 언행과 무관하게 미안한 일이긴 했으므로 정주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완은 이완대로 핸들까지 내리친 게 마음에 걸렸는지,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전화를 떨어뜨렸느나는 잔소리 없이 정주의 눈치를 보다가 집을 나섰다.    

가는 데 이십 분, 오는 데 이십 분.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내리그어 감속하리란 걸 감안하더라도 한 시간이 넘도록 이완은 돌아오지 않았다. 

 

- 그가 몸을 굽혀 안전띠를 채우곤 빙 돌아가 운전석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는 동안에도 정주는 추위에 이가 부딪치고 눈앞이 아득하여 사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차가 달리는 동안 눈에 고여 출렁이는 물방울 너머로 그의 희부연 옆모습만을 바라보았다. 몇 개의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감싸는 동안 어느새 히터가 들어왔고, 정주는 점점 감기는 눈꺼풀에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았다. 

 

- 모친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면회 사절을 걸어놓은 산후조리원의 개인실 안에서 젖을 먹이며 정주는 통화 중이었다. 예, 이사님도 잘 지내시죠. 다른 게 아니고 지난번에 왜 경력 좀 있는 사람 찾으셨잖아요. 그 자리 제가 가면 안 되나 해서요. 아니 최대한 민폐는 안 끼칠 거예요. 저 아시잖아요, 할 때는 얼마나 이 악물고 하는지. 우리 뻔히 다 아는 사이에, 이사님도 지금 한창 자리 잡으실 타이밍인데 그 보수로 그만한 경력자는 사실 구하기 쉽지 않은 거 아시죠. 출퇴근이나 야근 특근만 가끔 조율 좀 해주시면 서로 어떻게든... 예, 당연히 생각할 시간 필요하시죠, 그 정돈 알죠. 그러면 검토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애 운다, 또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 정주는 다 식은 미역국을 한 숟갈 뜬 뒤 입가에 묻은 기름을 혀로 훑으며 식판을 물렸다. 아이의 목을 흔들림 없이 팔에 받쳐 안고 일어나 토닥이며 쓴웃음을 흘렸다. 신출내기 평균의 팔십 퍼센트에 해당하는 급여로 십 년차 경력자를 찾는 날도둑들이 태반인 현장이었다. 그런 사람 없다고 장담하며 저라면 그 돈에 기꺼이 일하겠노라 매달렸지만, 사실 정주는 알고 있었다. 그만한 돈에 자신의 재능을 거의 반 이상 기부할 고학력자가 지천에 널리고 깔렸으며 대신 그 반작용으로 그들은 끝없이 퇴사 및 부속 교체 되리라는 것을. 이럴 때 아이를 안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물러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킨 채 한때 투명해지기만 했다.

- 정주는 시내 병원에서 눈을 뜬 뒤 -그곳은 평소 다니던 여성 전문의원이 아닌 좀 더 큰 종합병원이었으며, 그러고 보니 정주는 최씨에게 무슨 병원으로 가 달라는 얘기도 못하고 축 늘어졌을 텐데 양수가 터진 다음의 신속 처치를 고려하면 최씨의 현명하고 순발력 있는 선택의 결과였다- 신생아실로 들어간 아이의 얼굴을 창문 너머로 한번 본 다음, 마을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이완과 모친에게 통보했다. 먼 길 달려온 모친은 당장 이유를 묻지 않았으나 왠지 알조라는 듯 혀만 찼다. 이완은 말문이 막힌 채 정주를 노려보기만 했다. 장모가 있는 자리여서도 그랬지만 몸을 푼 지 얼마 안 되는 산모와 병원에서 고성이 오고가봤자 지역 좁은 바닥에서 자기 얼굴만 깎아먹는다는 최소한의 예상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에 그는 두 사람의 전화기를 모두 쥔 채로 다른 급한 일을 보러 다녀오다 때를 놓친 상황이었던 만큼, 어째서 하필 또 문제의 깡패 새끼라는 자가 정주를 이리로 실어 날랐는지, 그 덕에 병원에서는 동행한 그를 남편이라고 일시적으로 착각하지 않았겠는지부터 시작하여 묻고 싶은 게 분명 많을 텐데도, 거기에 토를 달지 못할 입장임을 알았던 것이다. 

 

- 마을로 돌아가지 않음이 곧 이완과 결별한다는 뜻이 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모친의 도움을 얻어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완으로부터는 당분간 생활비만 받는 쪽으로 이야기 가닥을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완은 가족이란 함께 있어야 옳은 것이며, 월급만 부치는 원거리의 기러기로 살고 싶지 않다고 이미 확고하게 얘기했던 바 있었으므로 여기 선뜻 동의할지는 알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의 의견 불일치로 이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엔, 결혼이 이튿날 리본과 풍선의 잔해를 청소할 일만 남아 허무해지는 아이들 파티가 아닌 칼날 같은 계약과 무거운 책임이라는 점과, 갈라섰을 때 양쪽의 리스크 또한 크다는 점을 어필할 예정이었다. 길어야 사 년만 참으면 된다고, 그때 가서 함께 생활하지 못했던 딸아이와의 서먹함은 부부가 공동으로 감당할 몫이라고 정주는 말해줄 참이었다. 그 어떤 불편도 부작용도, 정주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그때 폭우 속에서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정체나 이완의 내력이나 소재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병원까지 실어다 준 최씨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정주는 의아해졌다. 마취제와 항생제를 비롯한 온갖 약을 맞아가며 아이를 낳다 보면 며칠에서 몇 주간은 이미지가 철저히 또는 처절히 붕괴되고 통증이 용해된 현실은 어느새 허구에 가까워지는 등 기억의 질이 급락하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라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녀가 한 번쯤 고개를 제대로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일 터였다. 그래도 이렇게 인상 자체가 떠오르지 않을 줄은 몰랐다. 마을을 떠날 정주에게 그는 오로지 눈 밑 상처만으로 남아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왼쪽이었는지 오른쪽이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 아이들은 물속 깊이 머리를 담갔다 빠져나와선 서로에게 물을 튀기면서 악을 썼으며, 나중에는 일행이든 생면부지의 타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렇게 했다. 휴양지에서 물이나 눈싸움 등으로 낯 모르던 또래끼리 일시적인 놀이 무리가 형성되는 수도 종종 있겠지만 상휘는 그런 무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 자태가 갓 쓰고 도포까지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앉은 양반의 풍자화 같았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오로지 필요한 만큼 물을 느끼고 물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서인 듯, 물과 신중한 악수를 나누며 물을 탐색하고 물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함부로 물속에 머리를 디밀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는 상대를 대할 때처럼. 다치지 않을 만큼만 다가가며 숨쉴 수 있을 정도로만 빠져들기. 상대에게 자신의 모두를 내맡기지 않기. 무엇보다 상대를 온몸으로 느끼지 않기. 

 

- <지속되는 호의>

 

 

- 짐짓 우스개를 섞어 핀잔을 줘보지만 어쩌면 그때 이미 토기가 올라오려던 참인 듯하며, 간호사는 눈살을 찌푸리곤 누가 벌써 주사를 놓았다고요? 이게 지금 막 처방 나온 주사약인데 어떻게 된 거지.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전산차트 좀 확인할게요. 그러고 보니 지금 이 단발머리 간호사야말로, 의사의 문진이 있기 전 혈압과 체온을 재준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단발머리 간호사가 지금 여기 한둘이 아니며, 모두 똑같은 색 카디건을 입은 까닭에 그 간호사가 저 간호사처럼 보이고, 아까 주사를 놓고 간 간호사는 대체 어디... 그녀에게 물어보면 분명할 텐데... 가만, 그녀의 카디건에도 지금처럼 명찰이 붙어 있었던가... 그 카디건 색은 지금 눈앞의 카디건과 명도에 차이가 있지 않았나. 색과 형태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자가, 고작 통증과 조명에 영향을 받아 그 정도 분간을 못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녀는 정말로 간호사가 맞았나? 같은 다소 무리한 상상에 의식이 접촉하는 순간 내장을 행주처럼 쥐어짜서 흔드는 욕지기, 양쪽 옆머리를 죄어오는 이명, 상반신을 일으켜 앉자 콧구멍으로 흘러내리는 뜨끈한 콧물인지 코피인지, 설마 뇌수는 아니겠지, 최초의 약효로 반점이나 팽진은 이미 상당량 사라졌음에도 온몸이 그전보다 가렵다, 어디를 긁어도 마찬가지며 이럴 바엔 피부의 발진이 차라리 나은데, 살가죽은 할퀴어 뜯 ... 

 

- 전무는 나를 보자 안쓰러움을 과장되게 드러내다가, 의례적인 반응과 성의는 충분히 보였는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클라이언트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없었던 일로 할 테니, 두 달간 우리 팀에서 만들던 걸 엑기스만 뽑아다 김팀장 쪽에 넘겨서 성과를 밀어주라고 한다. 기본 틀이 다른데 그걸 끼얹어줘 봤자 모양새만 어색해질뿐더러 지금 무슨 말씀이시냐 반문하자 전무는 혀 한번 차기를, 알잖아, 초짜도 아니고 왜 모르는 척해. 그런 사건과 관련된 사람을 클라이언트 앞에 내놓기가, 우리 입장에서 껄끄러워. 번이나 만나고 술자리도 함께한 담당자들한테, 지금처럼 모습이 바뀐 걸 일일이 다니면서 어떻게 설명할래? 자칫 프레젠테이션 자체보다 다른 데 더 관심이 쏠릴 수도 있고, 그럼 그거대로 김팀장 입장에선 공정성 떨어진다 여길 수 있는 거거든. 이미 윗선에서는 외부 눈에 띄는 거나, 업무 외 사건으로 공연히 시끄러운 거 원치 않아서 자네를 당분간 총무부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네. 자네 팀원들은 김팀장네랑 합치고, 사정 좀 나아지고 조용해지면 새 거래처 틀 때부터 다시 기획팀으로 합류해. 그게 서로 낫지 않나? 전무님, 이게 말이 좋아 제가 도리상 경쟁 프레젠테이션으로 모양을 만든 거지, 실은 처음부터 저희가 뚫었고 우리 쪽 일이었습니다... 아 이 사람, 그걸 누가 몰라? 그거 내가 잊지 않고 여기 다 파일 남겨둬서 참고하니까 이번만 양보해, 회사생활 하루이틀도 아니고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이런 식으로 두 달간의 노고를 눈앞에서 빼앗긴다.

 

- 전무 말마따나, 남의 돈 먹는 일을 하면서 자기가 만든 물건 내지는 시스템을 상사나 동료에게 갈취당한 경험이 전혀 없는 자는 드물 것이다. 대학 조교는 실험 논문의 팔십 퍼센트를 만들고도 제 이름 석 자를 공동 연구자로 간신히 끼워 넣는 경우가 빈번하며, 그림에 채색을 넣는 정도를 넘어 데생 콘티까지 도맡고도 수업료 명목으로 차비 수준의 보수를 수령하는 데 그치면서 오롯이 제 작품이 스승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걸 바라보아야 하는 미술 쪽 어시스턴트는 또 어떤가.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니다. 나는 그런 시절의 밑바닥을 이미 거쳐왔고 내 팀원을 거느린 팀장이다. 이 바닥에서 이 악물고 십 년을 구른 군필자다. 나는 도제공이 아니고, 이십 대의 애송이가 아니며 힘없는... 생물학적으로 불리한... 까지 생각하다 체머리를 흔든다. 아무려나 목전에서 성과를 가로채이고도 체념해야 하는 상황과 다시 마주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내게 이런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는.

 

- 이것이 앞으로 코앞에서 닫힐 수많은 문의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예감. 돌아서서 전무실을 나서는데 꼭뒤를 잡아채는, 격려인지 힐난인지 모를 말소리. 위로금 조로 월말 급여 두 배 정도 나갈 거야. 턱도 없겠지만 병원비에 보태고 옷도 좀 사. 지금 그 옷 자네한테 하나도 안 어울리고 남의 옷 훔쳐 입은 것처럼 보여. 그 머리도 좀 어떻게 해보고. 어쩔 거야, 어떻게든 지금 처지에 맞게 꼴은 갖추고 살아가야지. 대답 대신 가능한 한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닫음으로써 소심한 항의를 표하지만 부질없고, 머리를 식히고자 직원 화장실로 간다. 입구에서 잠깐 멈칫하고 주위를 둘러본 다음 들어가선 거울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열 오르는 얼굴을 세면대에 파묻고 물을 뿌린다.

 

- 굳이 병원비로 말하자면야 턱도 없지는 않다. 병원 측에서는 일단 자기네들도 된통 잘못 걸렸다는 입장이며, 피해자에게 뭔가 해주긴 해야겠어서 혈액을 비롯한 각종체액을 있는 대로 뽑아내다가 임상검사를 실시했고, 그밖에 여러 고가의 장비들을 동원한 몸속 부위별 촬영 끝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지금으로선 없다는 현실확인만 해주었다. 원무과에서는 예의 도의적 책임이라는 편리한 말을 여기저기 갖다 붙임으로써 빚 탕감과 동시에 생색내기를 겸하며 0원이 적힌 별도의 수납 용지를 내밀었다. 혹시 향후 몇 년 뒤가 되더라도 각종 실험이나 신약 개발 과정의 피험 및 외과적 수술 시도를 원한다면, 그 모든 것을 무료로 집행해 주는 대신 부작용과 결과에 대해 일절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비롯하여 각종 서류를 준비하라는 설명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일단 관계 문서를 챙겨 오기는 했다. 당장 큰돈이 들어갈 구멍은 주로 변호사가 될 텐데... 

 

-  그것이 유일한 삶의 조건이다. 세상이 나에게 이 영수증만 한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크기의 불운을 떠 안겼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는 것. 
 

- 그녀의 야근으로 수차례 미뤄졌던 만남이 드디어 성사되는 날, 저녁 명동 거리를 가로지르다 쇼윈도에서 선이 날렵하고 괜찮아 보이는 스트라이프 바지 정장을 발견하고 멈춰 선다. 전무의 말이 다시 떠올라서는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옷을 사본 지가 이 년은 넘은 듯. 주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외에 회사 안에서 격식을 갖춰 입을 일은 많지 않아서 캐주얼한 느낌을 강조하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옷 여러 벌을 돌려 입으며 지내왔고, 그 외에는 그녀가 작년 여름휴가 때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사다준 명품 상하의가 한 벌 있으니 버틸 만했었다. 부서도 바뀐 마당에 양복 한번 입어줘야 하나, 쇼윈도 앞에서 머뭇거리다 가격은 이따 묻기로 하고 그 자리를 뜬다. 옷 보는 눈이 나보다 나은 그녀를 데려와 의견을 구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계제도 아니고 우리는 오늘 서로의 입에서 어떤 대화가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나와 미리 자기 몫의 커피를 사서 앉아 있는 것은, 마침 저녁 시간이니 파스타집에서 보자고 문자 했을 때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커피전문점이 낫겠다고 답장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정중한 이별 절차의 하나이다. 오늘 헤어져야 할 사람이 사는 마지막 저녁식사가 귀나 코 중에 어디로 들어가겠나. 적어도 입은 아닐 것이다.

 

- 오래 기다렸어? 그녀는 입구에서부터 나를 발견했으나 내가 다가가는 동안에도 멍하니 있다가, 코앞에 서자 비로소 사태를 실감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먼지처럼 얼굴을 뒤덮은 황망한 표정을 떨어내듯 고개를 젓는다. 마지막 순간에 나한테서는 삼천팔백 원어치도 얻어먹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아메리카노잔을 내려다보다가, 나는 내 몫의 커피를 계산하고 진동벨을 받아 온다. 놀랐으면 놀랐다고 해도 돼. 본론에 부드럽게 들어가기 위해 가볍게 던지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 끄덕이며, 아니 뭐, 그럴 수밖에 없잖겠어, 그 뒤로 몇 주에 걸쳐, 조악한 그래픽으로 형상화된 'H씨'의 사례로만 사건 개요를 접했을 뿐, 이렇게 보고 목소리 듣기는 처음이니까. 그녀는 이어서 그동안 건강은 좀 나아졌는지 다른 추가 부작용은 없었는지 성의껏 안부를 묻지만, 범인을 잡았는지 최소한 윤곽은 잡혔는지 등의 질문은 피차 한숨밖에 나오지 않으니 혀 밑에 접어둔다. 갱신할 만한 소식이 있다면 이미 뉴스로 접했을 테고, 범인은 한두 명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집단으로 추정되는 데다, 그중 몇을 잡아내더라도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길은 요원하지 않나. 원한이나 치정과 무관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주사기 테러는 올해 들어 벌써 여덟 번째이고, 그 가운데 사건 발생 장소가 종합병원인 경우는 내가 최초 사례...

 

- '주사기' 테러임에도 불구하고 각 병원에서 테러 방지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까닭은, 그전 사건들에 비해 발생 장소가 이례적이어서다. 주로 피해자들이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된 장소는 인파가 많은 유흥가의 뒷골목 쓰레기장, 어쩌다 노래방이나 안마방 층계 같은 곳도 있었으며, 각 업소에서는 자기네 영업장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속적 면피를 해왔다. 만취 상태로 주사기에 당한 이들 가운데 두 명은 약물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들 모두 아직 살아 있는지. 남들 이목은 물론 자괴감도 만만치 않을 테니 사건 관련자들끼리 고통과 번민을 공유 및 해소하는 모임은 물론 결성되지 않았으며, 나 또한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무의미한 행위나 하자고 그런 모임을 나서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과 다른 것이다...  발견 장소와 직전의 행적으로 미루어 동정의 여지가 많지 않았던 자들도 꽤나 있었다는데... 나처럼 '올바른' 피해자는 대체 어디다 부당함을 호소해야... 주사기 테러 피해자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찾아간 보도 방송이 작년에 한 차례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언론 노출을 꺼렸으며, 다니던 직장을 잃고 가정도 깨지고 소주 한 병 깔 돈도 없는 참에 거마비나 많이 집어주면 인터뷰에 응해는 드리겠다고 자포자기조로 내뱉던 피해자는 그나마 모자이크 처리에 음성 변조로 등장했었다.   

 

- 커피를 반쯤 마시다 말고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는지 베이지색 부직포에 싸인 가방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그건 작년 크리스마스에 내가 선물한 보스턴백이며 그 안에는 14K 금반지와 실버골드 팔찌, 목걸이 등이 사 년간 교제했다는 증거 품목처럼 담겨 있을 터. 자주 신은 구두는 닳아서 돌려줄 수 없지만 가방은 몇 번 안 들어서 깨끗해, 처분 가능할 거야. 책이나 CD는 환금성도 없고 그냥 기념으로 갖고 있을게. 나는 허탈하게 웃음 터뜨리며 고개 젓는다. 가방이랑 다 그냥 가져, 나중에 필요 없으면 네가 팔든지. 나도 입던 옷 못 돌려주는데 비겼다 치고. 지금 우리 서로 싫어져서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비록 이미 낡은 옷값만큼 손해를 볼지언정 나한테는 일 원도 빚진 거 없길 바라는 네 마음 잘 알겠고, 돌려받은 걸로 할 테니까 도로 넣어둬. 얼른, 나 화낸다. 그녀는 개운치 않은 기색으로 가방을 담아 왔던 쇼핑백에 다시 밀어 넣지만, 종종 연락하고 친구로 지내자는 형식적인 당부는 빼먹지 않는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려 하다가 마지막으로 전철역까지 배웅만 하게 해 달라는 내 말은 뿌리치지 않으며, 나는 반도 비우지 않은 커피잔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그녀와 함께 나선다. 걷는 동안은 내내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 그녀는 최근 자신이 맡은 기사의 내용과 취재 과정에서 마주치는 진상들에 대해 토로하고 나는 거기다 적당히 추임새를 넣는 한편, 지나간 클라이언트 가운데 유사한 인물들의 사례를 골라 들려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런 일상의 묘사만으론 정말로 편안한 동성 친구 같다.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조금 달라진 위치와 입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지내도 될 것이다.거야말로 여성들이 바라마지않는다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이별의 모습 아닌가... 문득 아까 지나쳤던 가게 앞에서 나는 이제 친구 하기로 합의했으니 지나가는 말투로 대수롭지 않게 -너를 어떤 대상으로도 여기지 않는다는 무신경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묻는다. 저 정장 어때, 괜찮아 보여?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 젓기를, 나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고 정장도 예전만큼 자주 안 입어. 나는 그 순간, 내 몸에 일어났으며 충분히 인지했다고 믿었으나 피부로 와닿지 않았던 어떤 중요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그래도 조심스레 되묻는다. 아니 나한테 어울리냐고 물어본 건데. 그녀는 멈춰 서서 침통한 표정을 다른 무언가로 바꿔보려 애쓰며,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설득조를 유지한 채 대답한다. 머리가 세미롱 길이쯤 자라면 그땐 어울릴 것 같아... 오해하진 말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여자 옷인 건 알지?  

 

- 간헐적이고 불규칙적인 연쇄 테러리즘의 희생자들을 언론에서는 처음에 '주사기 테러의 희생자'라고 부르다가 요즘은 보도의 경제성 편의성만 챙기기로 작정했는지 '변이체'라는 말로 부른다. 그 직관적인 이름은 비교군으로 설정된 실험실 마멋을 떠올리게 한다. 변이체들은 사는 지역도 나이도, 사회적 위치니 직업이니 정치적 성향들을 포함한 분석가능 요소를 모두 계량했을 때 단 하나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그건 모두가 사건 발생 이전에는 남자로 살아왔으며 치사량의 독극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호르몬제 화합물을 맞고 급격한 여성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 변호사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듯 호쾌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확실히 승소하겠다 장담하는 한편, 그나마 책임 소재를 물을 곳이 있으며 보상금을 받을 가능성도 높은 데다 각종 검사를 무상으로 제공받는 내 처지가 얼마나 다행인지에 강조점을 찍는데, 그 어조나 태도 및 표현이 흡사 서울로 유학 다녀온 교회 오빠가 주일학교 여중생을 달래는 식이다. 산골짜기에서 문명의 혜택을 덜 받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계도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말투, 업무 관계로 법조계 방송계는 물론 정신세계에 도저히 호응해 주기 어려운 크리에이티브 무리까지 온갖 인간들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고압적인 말들과 저급한 위협 따위에 직면해 보았으나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유년기 이후로 처음인 듯. 나 말고 다른 의뢰인들에게도 이러나 싶지만 어쨌든 승소시켜 준다 하니, 다른 법률사무소를 섭외하기도 번거롭고 토 달지 않기로 한다. 

 

-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 건 이 초나 채 됐을까, 곧바로 얼굴을 돌리지만 거기 비친 모습이 망막에 아로새겨지기엔 충분한 시간. 문득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손을 보면 한결 나아질 법한 부분을 순간체크하고 견적을 내다 움찔한다. 단지 오랜 업무를 통해 몸에 배었을 따름. 더 좋은 것, 예쁜 것, 균형 잡힌 것을 추구하는 습관. 이 감각은 과도하게 변형된 호르몬으로 인한 일시적 생리적 착오가 아니라, 기획안을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창작자로서의 당연한 욕망과 시선. 지금은 변한 내 얼굴이 그에 알맞은 도화지로 여겨질 뿐.

 

- 긴 복도를 따라 한 층 올라가서 구석에 자리한 휴게실 문을 열었더니 하필 김팀장이 먼저 와 있다. 또 몇 마디 시비를 걸어오리란 예감이 들지만 말로 두어 마디 지분거리는 정도 한 귀로 흘리면 그만, 오히려 돌아 나가면 나만 우스운 사람 되어버리지. 말 섞기 싫어 고개만 까닥하곤 자판기 커피를 뽑아 공기청정기 옆에 선다. 등을 돌린 채 커피를 홀짝거리는데 뒤에서 어깨를 주물럭거리듯 건네는 말, 덕분에 우리 프레젠테이션 통과 아주 산뜻하게 잘됐고 그걸로 제작 들어가. 사람이 말을 거는데 씹기도 뭐하여 건성으로 대꾸한다. 예예, 그거 잘됐네요. 절반 이상이 우리 팀의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을 전 팀원으로부터 문자 받아 알고 있었다. 머리 많이 자랐네? 김팀장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끝자락을 훑고 지나가는 걸 흔들어 떨어낸다. 같은 직급이지만 그는 연장자라는 이유로 평소에도 내게 말을 툭툭 던지고 나는 그를 높여주었는데, 이런 몸이 되어 저런 말을 들으니 거기에 한층 더 하대가 섞인 것만 같은 느낌은 나의 자격지심일 터. 자를 겁니다. 왜 아깝게,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르지. 자른다고요. 말투가 삐딱하다? 사람 걱정해 주는 거 안 보이냐? 사람이 말이야,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쪽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더니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김팀장이 내 덜미를 잡아채선 제 앞으로 돌려세운다. 그 몸을 해가지고 열심히 살아보겠다 맘먹었으면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예전 같은 줄 알아. 너 아직도 네가 팀장이고 남자인 줄 알지? 왜 이래, 백날 애써봤자 이제 넌 글렀어. 이어 손바닥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진짜 어쩌냐. 보들보들 뽀얀 게 완전 여자 얼굴 다 됐어. 자네 이제 수염도 거의 안 나지? 아침마다 깎을 필요 없어 그건 참 편하겠다. 응? 뺨을 두어 번 토닥거리나 싶더니 마지막엔 딱 소리 나게 올려붙이는데 그 바람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때, 김팀장 입에서 담배 태우고 믹스커피 마신 뒤 가글하지 않은 중년 남성 특유의 구린내가 훅 끼친다. 쪼인트 까이던 시절에 대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 입을 막 대기 시작한 종이컵을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 넣고 돌아 나오려는데 놈이 문 쪽을 막아서며, 뽀얗대서 이게 또 확 경천동지 하게 예뻐진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변해서 참 거시기하단 말야? 함께 일하는 사람들 생각 좀 해라. 분칠하고 줄 좀 긋지 그래, 응? 이거 봐, 옷은 왜 아직도 이렇게 남자처럼 입고 다닐까. 너 지금 가슴 나왔어, 알아? 브래지어 안 했지? 유두 거 쓸리면 아프다던데? 진짜 여자들에 비하면 아스팔트에 껌딱지 붙은 거밖에 안 되더라도 말이야, 밖으로 도드라지지 않게 가려줘야 서로 좀 편하지 않아? 딴 사람 눈 둘 데도 배려해야지. 그러면서 내 가슴을 꾹꾹 주무르며 밀어붙이는데 참으로 애매한 높이로 봉긋 솟아 조금 심한 여유증 정도로 보이는 이물감 가득한 살덩이가 출렁거리니, 싫은 걸 넘어 찌르듯 아프고 원한다면 네가 갖다 붙여라 싶다. 군대에서 워커로 쪼인트, 사회 나와 구둣발로 쪼인트, 생각할 수 있는 쪼인트는 다 떠올려가면서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안 난다고 머릿속을 다스리는 터에... 근데 너 아직 그건 붙어 있냐? 아침마다 서긴... 해? 여기서 머릿속 끈이 툭 끊어져서 나는 한 손으로 김팀장 멱살을 잡아 밀어붙이는데, 예상 견적과는 달리 그 육중한 몸은 두어 걸음 밀릴 듯하다 말고 외려 내 손목을 잡아 젖힌다. 삼겹살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근육인가, 아니... 내가 최소한 두 손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고 소파에 나가 넘어져서야 깨닫는다. 몸이 이렇게 된 뒤로 피트니스센터에 못 나간 지 두 달이 넘은 것이다.   

 

- 됐다, 키가 확 쪼그라든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해볼 만하다. 놈은 흐르는 코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뒤로 물러난다. 너 이 새끼, 내가 회사 안이니까 이 정도로 봐줄까 했는데 얻다 대고 감히 대갈빡을 꽂고 새끼가, 코뼈 나갔는지 내가 어디 찍어볼 거야, 깽값 많이 벌어놔야 할 거다. 뭐 이 새끼야 먼저 지랄해 놓고 깽값 찾아? 발로 둥근 테이블을 걷어차지만 놈의 정강이 근처에도 못 가고 흔들리다 만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고, 그래, 그거 누가 증명해 줄 건데? 여기 CCTV도 없어 새끼야. 난 코피 났지만 넌 증거도 없지? 회사 윤리회고 뭐 꼬질러봐, 누구 말 듣나. 안 그래도 조용히 입 닥치고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어디 한번 좋을 대로 해보든가. 여기 좀 보세요, 변이체가 우리 회사 다녀요, 한 마디만 밖으로 새나가서 사람들 찾아오고 귀찮게 굴면 넌 그날로 사표 써야 돼. 우리 회장님 시끄러운 거 제일 싫어하시는 거 알지? 오십 명 넘는 직원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쉬쉬하고 감싸주면 고마운 줄 좀 알고 죽어지내라, 응? 바닥까지 짓눌린 용수철처럼 튕겨나가 온몸을 던져 덮치자 비로소 김팀장의 몸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싱거운 그의 반응과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보고 나는 비로소 사태를 알아차린다. 고개를 돌리자 전무와 회장의 아연실색한 얼굴빛이 거기 있다. 

 

- 그전까지도 썩 협조적인 관계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반목에 가까웠지만 서로 날 선 말로 툭툭거리는 정도였지.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그가 내게 억하심정을 품을 일이란 뭘까. 서로가 직접 목을 조른 적 없음에도 사람은 사소한 열등감만으로도 얼마든지 악의를 품게 되지. 이런 몸이 아니었다면 체감하지 못했을 증오와 분노의 민낯. 내가 이런 몸이 되지 않았다면 그 자식 아쉬워서 어쩔 뻔했어, 이때다 싶어 완전 날 잡았던데. 바에 앉아 세 번째 데킬라를 비우며 중얼거리는 옆자리에서, 안 그래도 마감으로 파김치인데도 줄곧 내 말을 들어주던 그녀가 자기 잔에는 입을 대지 않고 위로 차 건넨다는 말이, 그런 새끼한테서는 합당한 이유를 찾으면 안 돼. 그녀 입에서 새끼라는 말이 나오는 게 처음이다.

 

- 월간지 만들면서 만난 수많은 진상들에게 적응하고 헤쳐 나오는 동안, 나도 잘 안 쓰는 말들을 일상적으로 내뱉지 않고선 견디지도 수습하지도 못할 상황과 얼마나 많이 마주했을 텐가. 새끼 좀 심해? 새끼 소리 들을 만한 새끼면 뭐. 그런 놈들은 옆에서 아무나 뭐든지 이유를 찾아 붙여주고 자신의 행동이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받는 데에 익숙해졌을 거거든.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아이고 안 됐네, 딱하기도 해라, 같은 거. 하지만 그놈은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고 하필 그 자리에 있던 게 가장 만만한 만만해진 너였을 뿐이니, 공연한 생각 마.

 

- 내가 먼저 그러자고 했지만 그녀는 이제 정말로 나를 동성 친구 대하듯 편안하게 말을 던진다. 헤어진 연인을 술이나 푸자고 불러내는 게 아무래도 미안했지만 이런 얘기할만한 사람이 또 없다.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붙들고 내일 다시 만나지 않을 작정으로 넋두리하자면 변이체가 된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놀라움과 의혹의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놀라움은 그렇다 치고 의혹이란, 말하자면 이 인간은 이렇게 변이체가 되어도 싼 과오를 범했으리라는 지레짐작 같은 것. 시청자 게시판의 몇 페이지나 채웠던 사건 본질과의 상관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무수한 비난과 마찬가지로. 애당초 난 무얼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걸까. 왜 김팀장 같은 새끼를 놔두고 하필 내가 그 많은 새끼들 중 랜덤으로 당첨됐냐고?

 

- 자부하기도 민망하지만 나는 내가 그동안 그녀를 비롯한 여성들을 대함에 있어서 꽤 모범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여자를 돈 주고 사본 적 없고 원하지 않는 여자를 건드린 적 없다. 때로는 여자가 원하더라도 술에 취한 사람은 손대지 않았다. 아이돌 몰카 동영상 같은 거? 그래, 그거 좀 친구들끼리 구워 보고 돌려 보고 품평했다. 직접 찍어 돌린 것도 아니고 출처 모를 걸 받아다가 돌렸는데 그 정도도 안 하는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취기로 내 목소리가 내 귀에 잘 안 들리는 바람에 점점 언성이 높아졌는지, 바 건너편 여성 일행이 눈살을 찌푸리며 빌지를 들고 일어난다. 너 목소리 조금만... 그녀의 난처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나 말하기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말끝마다 여자가 같은 소리도 팀원들한테 습관적으로 뱉어본 적 없어. 치마 길이에 핀잔준 적도 없고, 회식 때 술 쏟아서 닦아준 것 외엔 무릎에 손대본 적 없고 그마저도 일부러 쏟은 게 아니라고... 그런데도 자꾸만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나도 모르게 잘못한 게 뭐가 있지? 같은 생각을 하게 돼. 그럴 만한 일 뭐라도 확, 저질렀어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 같아서. 클라이언트의 빈 잔에 술 좀 따라드리라고 눈치 줬던 거? 사회생활하면서 그 정도도 안 하나? 운동 좀 하고 살 빼라고 핀잔줬던 거? 그 친구가 하도 자기가 쪘다 어쩌나 망했다 노래를 부르기에 듣기 싫어서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것도 내 탓이야? 월차를 그리 자주 낼 바엔 휴직하라고 권한 거? 아픈 애 친정에 맡겨놓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기저귀 어딨네 약이 몇 스푼이네 복도 나가서 전화받으면 다른 팀원들이 그 빠진 몫만큼 고생하니까, 팀장으로선 당연한 조치였다고. 막상 캐내기 시작하니 밤새 풀면 몇 꾸리에 이를 사례가 뇌리에 풍성하게 고치를 튼다. 그럼에도 내가 가벼운 비난을 넘은 생물학적 응징을 받을 만큼 죄질이 나빴던 적은 없다... 단톡방에 '편의점에 돌진한 김여사' 같은 링크 올리고 시시덕거린 팀원한테도 경고 날리고 퇴장시켰던 나. 나는 정말로 세상 모든 여자들을...

 

- 뭐 알고 지내온 동안 네가 평타 이상 치는 사람이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말이야. 그건 이 사회가 말하는 평타의 허들이 워낙 낮아서가 아닐까. 너 나름대로 퍽 준수하다고 여겼던 그거, 옵션 아니고 기본인 건 알지? 그거 인정받고 싶니? 그녀 어조가 다소 신랄하여 술이 깰 것만 같다. 딱히 내가 완벽했다는 얘길 하려던 건 아닌데? 그녀는 티슈라도 찾는지 가방 속을 들쑤시며 고개 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지. 그전까지 네가 나름대로 애썼다고 자부심을 피력한 부분은 사실 '고작' 내지는 '최소한'에 속하거든. 그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다는 것부터가 에러라고.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건 반드시 그럴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야. 내가 삼십오 년간 너희 김팀장 같은 자들의 마수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었는지 너는 상상 못 할걸, 아니 이제는 짐작 가능하려나. 네가 가졌으면서도 호흡만큼이나 당연한 까닭에 가진 줄도 몰랐던, 반푼어치 권력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야. 지난번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민감한 화제는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으려 주변만 두드리다 서둘러 일어났던 그녀가 다시 만날 때는 여자끼리 만나자고 장난식으로 주고받았던 걸 기억하는지 이젠 편안한 정도를 넘어 말을 고르지도 않는다...

 

-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나도 모르게 연애 기간에 그녀에게 상처 준 게 있나 싶어 진지하게 묻는데, 그녀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막 뽑은 병 한 개를 칵테일 잔 옆에 올려놓는다. 박카스 반만 한 갈색 병으로 내용물의 색은 알 수 없고 그녀는 어떤 설명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것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것만 같다는 느낌에 머리로 피가 몰리자 나도 모르게 문답무용으로 그녀 멱살을 틀어쥔다. 흥분하지 마, 네가 멋대로 생각하는 스토리랑 조금은 다르니까. 

 

- 셔터를 막 내리려는 심야 당번 약국에 들어가 주사기와 주삿바늘을 산다. 주사기는 있는데 바늘로는 뭐 하시게요. 취기에 초췌한 내 얼굴을 보고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약사가 묻는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 다만 취한 김에 뽕 맞을 것처럼 생겼나 보다. 강아지 백신 놓게요, 하니까 군말 없이 내준다. 가방에 무기를 넣고 나니,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언제든 할 수도 있다는 심정이 되어 든든 ...

 

- 그(녀)들에 의해 일어난 일들의 대부분은 치우고 싶은 바로 그놈이 아니라 그놈을 투영하거나 대신할 만한 대상이라면 누구한테든 상관없이 무차별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것이 테러리즘의 속성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나는 그(녀)들이 한 것과 같은 일을, 김팀장이나 김팀장을 떠올리게 하는 누군가에게 머지않은 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김팀장이나 김팀장을 닮은 누군가는 또 다른 김팀장이나 김팀장을 닮은 누군가에 의해 내가 겪은 수모와 비슷한 일을 거친 다음, 또 다른 김팀장이나 김팀장을 닮은 누군가를 찾아서...  실내등이 꺼지고 쇼윈도가 까매지자 지금의 내 얼굴이 거기 비친다. 그게 좋겠다. 마주 세워놓은 두 장의 거울 안에 무한 복제되어 맺히는 전염병 같은 왜상의 끝을 본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없다. 

- <미러리즘>

 

 

- 아는데 그래도 나 돈 필요합니다. 우리 아기 아직 어리다. 어 지금 시어머니한테 맡겨 있어요. 

 

- 듣기 괜찮으시나요. 불편하지 않은가요. 한국 온 지 일 년 됐고 말 충분하지 않아요. 남편하고 필리핀에서 살 땐 쭉 영어로 했어서요. 학당 따로 안 다녀, 그냥 독학이었어요. 한국어로 예쁜 말 좋은 말 남편이 많이 배워줘서 아는 건 좀 알아요. 표현이 다 돼요. 그러나 문법 힘들고 특히 접속사 조사, 활용이랬나 어미? 같은 거 어려워요. 그래도 명사 형용사 두루 아니까 뜻은 통할 거요. '댁네' 같은 말도 알잖아요. 액땜, 아까 이건 쓰임새가 틀렸다 해야 하나, 포크 놓을 자리에 스푼 올린 격이지 실상 무슨 뜻인지는 알아요. 또 전문용어 같은 거 보면 발음 재밌고 글자 신기하니까, 눈에 쏙 들어와 알죠. 정식 제대로 안 배워 그런가 평범한 말 끄집어내는 게, 일상 말이 오히려 어렵기도, 영어 할까요? 당신이 원하시면 영어로 해드려. 그런데 그전 보니까, 통역을 잘들 안 모시고 와요. 비용 따로 든다고. 물론 제가 영어 말해도, 다들 공부 잘하시니 얼추 알아는 들으시는데, 듣던 기자님, 웬만하면 한국어로 말해달래요. 나 그거 왜 그런지 알아. 말 서툴면 내가 조금 더 안타깝게 보이라고, 더구나 백인도 아니고 하니 사람들한테 되도록 안쓰러워 보이라고 그런 거 같아. 그저 추측인데 그 추측도 지나고 나서야 그런가 했지, 그때는 경황없어 하라는 대로 했어요. 

 

- 자료화면이라고 설명 따로 나가지 싶은데요. 그래도 일에 순서란 거 있으니 그냥 쭉 처음부터 얘기할게요. 저는 몇 번째 하는 이야기지만 여러분네 팀은 오늘 나 처음 보니까. 이 사람 평소 하는 일 프로그래머요. 자주 유료 게임 만들고 다운로드 횟수나 아이템 구매에 따라 인센티브 받아 살아. 그러나 그거보다 진짜 잘하는 일은 데이터 움직이는 건데, 움직인다 말하니 이상합니까. 어디 가입하거나 소속된 거 아니라 취미로 이런저런 것 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데이터 리스토러, 데이터 마이너, 데이터 레커, 데이터 컨스트럭터... 이것들 두루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 가리켜 데이터 플레이어라고 불렀는데 이 사람 그런 거였어요. 이름 거창하지만 소속이 있기를 해, 정체성이 분명하기를 해, 누가 인증서 내주는 단체도 아니라 나라에서 무슨 조직 사이트 해킹하라 시키면 그거 하고, 금융 쪽에서 뭐 보안 패치 하라 하면 그것도 만들고, 크게 막 대놓고 잡혀갈 일 안 했소. 이거 오프 더 레코드인가, 봐서 편집하면 그만요. 일 이렇게 된 마당에 이이가 하는 일들 감춰 뭐 할 거야. 나랑 외국 있을 때도 이미 그런 일 발 오래 담갔던 사람이에요. 따지려 보면 이 문제가 된 공간, 익스피리언스 파크도 그런 사람들 모여 만들었지. 그런 사람들이 조금 삐끗 맘 잘 안 먹으면 악성 해커 되기가 예사. 당신은 익스피리언스 파크 가보셨나요.  

 

- 한번 들여다보아요, 장소상으로 구역이 전체 테마파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가. 아무리 작아도 내부 수용 인원은 최대 백이십 명. 봄가을이면 거의 전국 학교에서 예약 꽉 채워 성수기라고 하죠, 그맘때는 일반 가족 단위손님은 주말 공휴일만 입장 가능할 정도입니다. 전교생 사백 명이 현장 체험학습 온다 치면, 파트 나눠 일부 여기서 시간 지내고 나머지가 다른 놀이기구 다 타고 한 바퀴 돌면 그다음 교대하는 형식이다. 아니면 전교생 수가 적은 학교는 처음부터 이거 하나만 옵니다. 아무래도 일정이나 시간 관계상 이거만 하는 수가 더 많아요. 엄청나게 생생하고 무지막지 오래 걸리니까. 어떤 프로그램을 가동하느냐에 따라 총 체험시간 조금씩 다르지만, 학생들 이곳에서 수영이나 말 타기해보고, 치즈농장 요리 체험 같은 사소한 학습 말고도, 독일이니 이탈리아 같은 데까지 다녀올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기술 얼마나 발전했는지, 얼마나 진짜와 닮았는지... 아니 실질 그대로인지. 이제 번거로이 비행기 안 올라도 <로마의 휴일> 나오는 분수대에 손대고 만져볼 수도 있고, 콜로세움가까이서 보고 그 앞에서 사진 찍고들 하는 거예요.

 

- 귀족들 우아하게, 몇 억대 부자나 사회 지도층 같은 이들, 배운 거 많은 이들은 그래요, 암만 미디어 매개성이 좋아봤자 그게 그림이지 가짜지. 근데 평생 가도 외국 한번 못 나가보는 사람들 많단 말이에요. 그 어떤 풍경이나 사건을 한 번도 제 손아귀에 장악해 볼 기회가 없는 이들은, 가상현실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나이아가라도 보고 에펠탑도 만지고 하는 거죠. 촉감 백 프로 구현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솔직히 플라톤이 동굴 이데아 주장한 이후로 진짜라는 게 어디 있는가 말입니다. 그 어떤 진짜를 표방하는 것들도 어느 정도껏 결핍을 전제로 하거나, 진짜를 담보로 가짜를 드러내기 아닙니까.   

- 높은 분으로 추정되는 어딘가에서 이이한테 연락온 건 그로부터 사흘 뒤였어요. 현실에서는 사흘 뒤였으나 그 프로그램 안에서 아이들한테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저는 안 써봐 모르고, 이 사람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며 그 당시 테마파크 설계했을 때 관계자들, 하여튼 죄다 극비리로 전화 돌렸대요. 부름 받은 거의 즉시 나갔어요. 고민하루도 안 했어요. 아니 실은 내가 거의 등 떠민 거와 다름없다. 여보 저 데이터 세계 안에 갇힌 게, 우리 라리가 저기 있다고 생각해 봐. 그랬더니 아무 소리 않고 이튿날 새벽에 문자 하나 달랑 남겨놓고 갔지 뭐겠어요

 

- 교사들 함께 탑승할 수 없어요. 애들은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별도의 AI 인솔자를 따라가고, 애들한테 무슨 일 생기는지 교사 눈은 바깥에서 두루 살펴야 하니까. 그럴 일 없지만 혹시 캐노피가 헐거워져 열리진 않나, 기계가 고장 나거나 멈추고 말아버리진 않나, 설마라도 호흡곤란에 놓인 아이는 없나 지켜봐야죠. 폐소공포가 갑자기 나오는 수도 있고, 아까 치즈 농장 어떻다고 했는데 그런 사소한 거 말고 현실에서 못 가보는 것들요, 바다생물 탐험이나 우주정거장이나 이런 데로 가면 그... 비약이라고 하나, 이미지랑 소리가 공격적으로 자기 온몸에 확 파고드는 건데, 적응 못하고 경기 일으키는 애들도 간혹 있다 하네. 그런 생체데이터의 변화가 외부 디스플레이로 전체 모니터링을 가능합니다. 물론 교사가 지켜본대서 무슨 일 생긴 때 그거 직접 해결할 못해요. 근데도 빠른 신고 접수해서 문제 처리하라 종용, 독촉하는 어른은 꼭 붙어 있어야 하니까. 만약 발생한다면 대부분 프로그램이나 기계상 문제인데, 전문가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그러나 기계 관리실 옆에 바로 있고 지켜보는 직원 있지만 그들 다 임시직이고 그나마 어떨 때는 직원조차 아니라 자원봉사 나왔거나 어린 알바생이었습니다. 

 

- 일단 시스템이 돌아가면 프로그램은 올바른 순서에 따라 마치기 전에는 캐노피가 안에서 열리지 안 합니다. 바깥에서 강제 개방이야 되는데 크게 문제 발생합니다. 이용자가 현재보유한 데이터 있어요, 우리 인간요, 생체, 기억, 의식, 그리 죄다 섞인, 섞이고 나면 뭐가 결과물로 나올지 모르는, 그 뭐랬지 복불복, 데이터의 총합이면서, 총합이 구성하고 배열해 낸 수억 수조 경우의 수 가운데 한 가지의 모습에 불과하다. 그런 임의 데이터를 이용객이 자기 걸 시스템에 전송 등록한다고. 그러면 시스템이 그 데이터를 가지고... 요리합니다. 변환, 조합, 확산, 증폭, 분리, 그로써 이용객이 프로그램을 최대한 실제같이 즐기게 하는 저도 뭐 설명 어렵고 분명히 아는 게 아니나 이를테면 한 명 한 명 인간 데이터를 아예 이거 체험장의 용도로 재배열하고 마는 거요. 나쁜 말로 하면 데이터로 규정된 자기 존재를... 그냥 헝클어놓는다. 그러면 이용객은 머리에 이 HMD 쓰고 손 장착 다 하고 프로그램 가동되기 시작하면 디 엔드 뜰 때까지 잠들어버립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알던 꿈 꾸는 잠 말고, 의식을 탁 놓아버리는 거나 같아요. 상승도 하강도 느낄 수 못하는, 희부연 안개 닮은 막이나 층도 없이 죽음에 맞닿도록 밀도가 높은 잠, 깨어나면 그 시간이 도려내진 거나 같은 체험이 끝나면 광속으로 역연산 과정을 거쳐 원래의 자기 데이터로 돌아옵니다. 제 몸이 세상 모든 것이 원래 그대로이며 남겨 있는 건 의식을 내버려 놓아두었던 때 했던 경험만. 그러니 얼마나 가성비가 좋겠는가.

 

- 가성비 좋음에는 어쩌면 그만한 대가가 따라가는지 모릅니다. 조금 전 제가 실제 같이라 말했는데 같이 정도가 아니라, 실제 그 자체입니다. 데이터 세계에서 발신한 부작용이라도 그게 현실 나한테 미칩니다. 데이터 세계에서 등에 칼 맞는다고 체험 기계 안에 들은 내한테서 피가 확 쏟는다는 그런 뜻 아니라요. 등에 칼을 맞으면 내 몸이 피를 쏟을 때와 유사한 생체반응을 보인다고 하면 알아들으시나요. 더구나 데이터 세계가 절차에 따라 종료 맞아야 하는데, 도중에 뚜껑 열고 이용객을 확 잡아 꺼내 채면 안 돼요. 역연산이 덜된 상태에서 해당 사람의 데이터가 엉켜버리오. 자신의 데이터가 왜곡되거나 비틀려 단층이 생기면, 의식 못 찾거나 그전 기억 없어지거나 인격 달라지거나 여러 부작용 받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쭉 이런 일 생기지 않을뿐더러, 데이터 세계에서 프로그래밍된 이벤트가 아니고야 다른 돌발 사태가 일어날 것 도무지 없으니까요. 그런 가능성 때문에도 사람들 처음에 시위하고, 물론 시위 주된 까닭은 나라는 인간의 데이터 갖다가 어떻게 저놈들이 뭐 할지 아느냐. 개발 측에서는 그럴 일 없다 데이터 다 돌려준다. 시위 쪽에서는 데이터 복사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데이터와 인간 윤리개인정보 보호 이런 문제 많이 대두되었잖아요.  

 

- 기계 안에 들어간 채로 사흘이나 지났는데, 데이터 세계에선 두 시간 정도 경과된 모습이었다 하지. 그러나 애들은 이미 누군가는 아주 기절했고 누군가는 울다 지쳐 딸꾹질만 하거나 잠들고 만 상태였다고. 아이러니한 일 않습니까. 아이들 기계 안에 잠들어 있는데 데이터 속에서도 이중으로 잠들었다는 게. 그렇게 아예 감각 정보를 닫아 건 아이들이 나중에 회복도 좀 더 순조로웠다곤 합니다만요. 
 

- 건물 안에서 인질이 되자마자, 시스템에 존재했던 AI 가이드는 테러범들에게 반격을 시도하다 사살당했다며 합니다. 그의 시신은 데이터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대요. 그러니 아이들 얼마나 혼란과 충격에 빠졌겠느냐. 분명 현실은 아닌데 빠져나갈 수도 없지, 누가 확 뚜껑 제끼고 꺼내주는 것도 아니지, 여기서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 외침이 몸 밖으로 나오기도 안 하고, 울던 애 하나가 고작 데이터로 구현되었을 뿐인 테러범 중 하나에게 뺨 맞고 나가떨어졌지, 친구 얼굴에 든 파랑 멍을 보니 거짓말 상황이라도 심각하다는 걸 애들이 알아버렸지... 바깥에서 교사와 직원들 어른은 어른대로 발만 동동구를 수밖에요, 데이터 세계에서 너무 큰 상해를 입어서 현실과 데이터가 거의 구별되지 않아지면,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인간이 본래 자기 데이터가 손상된 상태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데이터 속에서 죽기라도 하면 현실에서마저 죽을 가능성 완전히 배제 못한다고. 아니 그전까지 그런 부작용이 생길 일이 없었다니까요. 그래서 그 어떤 주사위의 수도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니까요. 어쨌든 분명한 거라곤 섣불리 손댔다가 영영 안 깨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다 같이 있었다는 터예요. 
 

- 그 핵심 상황만은 차단 진행되어 방송 관계자 아무도 볼 수 못했지만, 난 한참 뒤에 데이터 플레이어의 가족 자격으로 남은 화면을 자세히 반복 보고 브리핑도 받고 그랬답니다. 데이터 플레이어들은 아이들 상태를 모니터링한 뒤, 어디서 누가 쑤셔 넣었는지 모를 나쁜 데이터를 재구성하거나 파괴하려고 했어요. 예, 발생한 걸 바꿔보려 했어요. 그러나 안 됐어요. 침입자들이 구축한 장벽이 워낙 빈틈이 없었다고, 사물이나 배경 일부 같은 세부 조건 변형은 되는데, 사태가 아주 없던 일만큼 처음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고. 무질서와 혼돈이 이미 디폴트값이 되고 만 양, 세끼 밥 먹고 그거만 해대는 전문가 일곱 명이 매달려서도 파괴되지 않는 강력한 오류였다고. 그러면 이제 어쩌면 좋은가, 그대로 셧다운 하고 뚜껑 열어 애들을 끌어내는 게 최선인가. 아이들이 건물 안에 인질로 잡혀 있는 이 사태가 만약 다른 공간이었다면 어떻게 됐을 텐가? 뉴스에서 가상현실 전문가 분들이 나와 논평했어요. 도시 탐방이 아닌 심해 탐험이었다면? 우주선 탑승이었다면? 그런 장소에서 뭔가 데이터 오류가 났을 땐 이미 아이들은 가상공간에서 질식사했을 거라며, 기계에 누운 아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바이털 사인만 남고 크게 잘못됐을 거라고, 이제 우리는 하드웨어적 사고 일변도로 투우사를 향해 돌진하는 소처럼 미디어에 머리를 들이받을 게 아니라, 이런 최악의 경우부터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 아무래도 소식 없으니 부모들 중 누군가가 닿지 않는 중앙제어센터 창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네요. 곧 너도 나도 따라 던지기 시작. 부모님들을 지탱해 주러 온 학생들, 그 초등학교 졸업생들이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울면서 구호를 외쳤어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뜨락에 잔돌이 한 장도 안 남았을 만치 현관에 창문에 쏘아댔지만 괜히 중앙제어가 아닌 모양, 쉽게 안 깨져요. 이러시면 안 된다고 말리던 알바 아이들 넘어지고 구르고, 경찰들도 우는 부모님들 뜯어내고, 그 와중에 테마파크 측에서는 문제가 생긴 관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틀간 내내 영업 돌린 거여서 더욱 난리가 났죠. 그러고 싶을까요? 그런 돈이 벌리면 좋을까요. 주말이라고 성수기라고, 영문 모르고 찾아온 손님들 문 앞에서 돌려보낼 수 없으니 개방했다, 이게 말인가요. 

 

- 상황이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데이터 플레이어가 직접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가서 불량 데이터, 끼어든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해결하고 파괴해서 복원 시점을 설정한단 말입니다. 만약 그 일에 성공한다면 연산이 별도로 필요 없고요. 화재가 났으면 불을 끄고, 홍수가 났으면 물을 막고, 다쳤으면 치료하고... 그 논리대로 따른다면 이 경우에는 테러를 진압해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거였어요. 동유럽의 데이터 플레이어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이다 불리는 이른바 데이터 마스터도 모의 상황이나 일 년에 두 번쯤 치렀을까, 더구나 이런 상황 조건에서 실제로는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었지요. 데이터 마스터 중에는 군인이나 정부 요원 출신이 간혹 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의 경우. 외국에도 이 일은 애당초 알려졌으므로 지원 인력 요청을 시도해 볼 만한 부분이었는데, 바로 요구가 인정받더라도 최소 열두 시간 뒤에나 인력이 도착할 만했고, 부모님들은 대개 일반적인 생활인 분들이라 관련 설명을 들어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실 테며, 사실상 그 순간 그분들께 중요한 건 아이들이 무사히 기계에서 해방되는 것이지 이해 여부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 그래서 더 지체 이거 안 된다, 플레이어 가운데 네 명이 자원하여 여분의 기계에 탑승하지. 나머지는 모니터링을 하다 양동작전이 성공하는 대로 데이터를 초기화하는 작업을 하기로 하고요. 엄청나게 타이밍 중요하고 손발 맞아야 가능한 일이래요. 밖에서 플레이어들이 제때 데이터 제공 변경을 못 맞춰주면 안에 무방비로 들어가 있는 플레이어들도 못쓰게 된다고요. 그리고 남편은 탑승 멤버에 속했습니다.  

 

- 나쁜 데이터를 보낸 자들이 이를 눈치챘는지 계속 방해 데이터가 들어오는 기미가 보였지만, 이쪽에는 테마파크 설계자의 기획 멤버가 있잖아. 둘이 계속 맞부딪치면 어느 쪽 부러지겠나요. 결국 최초의 원인 제공자 집단은 자기들 만든 데이터가 변형되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고 그 공간을 떠난 모양이에요. 재미를 볼 만큼 봤으니 더 이상 기를 쓰고 맞서기가 시들해졌다는 뜻인지, 그럴 거면 그 왜... 자기가 싼 쉿은 안 치우고 가고. 아무래도 외국발 데이터 조작이라 수사 협조가 빠르게 되지 않았더랬는데, 어쩌면 그때 좁혀간 수사망을 피하느라 냅다 도망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이런 일을 벌인 게 반드시 한 사람이나 일개 팀이라는 보장도 없고, 도중에 누가 재접속하여 무슨 방해 공작이 실시간으로 일어날지 모르니, 작전 시작에서 종결까지 십 분간 타임 리미트를 걸어놓았습니다. 십 분에 걸친 프로그램을 결말까지 모델링하여, 그 시간 안에는 외부 어떤 추가 데이터가 개입이나 공격이 못 오게 조치한 거였어요.  

 

- 나로선 역시 사태가 종결된 뒤 어느 정도 마음 평정을 돌이킨 상태로 열람해서 그런 걸 텐데, 외부 플레이어들이 설정 및 제공한 각종 무기와 도구를 나눠 들고 건물에 침입을 시도한 이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와이어 하나에 매달려서 창문 깨치고 뛰어드는데 어디서 저런 걸 배웠을까, 데이터 세계라서 구사 가능한 동작도 일부 있었을 테고, 건물 진입로와 문이니 방어벽이 이쪽의 동선에 맞게 조작된 결과겠지만, 그 위험한 지경 한복판에서도 거짓말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남편이 거기 뛰어든 순간 외부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별은 사라지고, 지독한 현실감만이 나의 내장을 흔들었습니다. 탐색이 아닌 투신, 기피가 아닌 접근, 막연한 대상이자 현실 아닌 모든 것들에 파열음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어요. 이이가 건드리고 지나간 곳들마다 진실이 생성되었어요. 어떤 열망이나 간절함이 부풀어 오른 끝에 현실 착오에서 착오만 골라 집어삼키는 듯했소. 남편은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리더로 설정된 듯한 자의 목을 무릎으로 치며 죄었고, 다른 분들도 무기를 쏘아대면서 한 놈씩 맡아 굴렀습니다. 그들이 난사한 총탄이 천장에 가서 박히고 벽에 금을 그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들만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느라 이분들이 유해 데이터 제거에만 주의를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네 분 모두 팔다리에 총을 두세 발씩 맞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강인한 통증이었을지, 그때마다 이분들이 움찔하며 몸을 뒤틀자 체험기 캐노피가 들썩거릴 정도였다고, 나중에 알바 아이들이 말했어요. 
 
- 그런데 그 와중 남편만은 팔다리가 아니라 배에 맞았던 거요. 피가... 그러고도 어떻게 아직 두 다리로 서 있는지, 이곳이 총체적인 오류와 미정으로 가득한 데이터 공간이라서 그런지를 따져볼 겨를 없이, 그게 정말 코끼리 아닌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양인지 모르겠는 피바다가, 남편의 두 발아래 펼쳐졌다오. 설상가상으로 테러범 가운데 한 명이 자폭을 시도하면서 무너져 내린 철근 구조물이 남편을 찍어 깔렸어요. 등 아래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거요. 남편은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뿜으면서도 원래 계획대로 아이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라고 손짓했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혼절한 아이들을 안고 끼고 뛰는 것을 수차례 반복하여 모두를 빼냈어요. 

 

- 동료 플레이어가 마지막 어린이를 안고 건물에서 빠지자마자 타임 리미트 걸어놓은 딜리트 명령이 자동 실행되었어요. 누군가가 이이를 찾으러 도로 들어간다든지 뒤를 돌아볼 틈도 안 하고, 그 자리에 건물이 무너짐과 동시에 한 조각 잔해도 없이 깨끗이 소거되었어요. 게임 속 퍼스트플로어에서 하급 몹을 무찌른대도 이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가 어려울 거야. 건물과 함께, 그 안에 있던 모든 집기들과 함께, 그 밑에 깔려 있어야 할 남편도 사라졌어요. 남편은 가공된 데이터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었는데, 그 세계에서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동등한 데이터로만 취급되어 지워졌다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정말이지 이해하고 싶지 않아.  

 

- 이이는 그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부서지다 못해 사라졌는데, 이렇게 생체 반응만 남은 껍데기로 만들었습니다. 외부 모니터링을 했던 플레이어들 하는 말이, 그는 이미 데이터 세계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까닭에, 현실에서도 혈압이 떨어지고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편의 몸까지 완전히 죽이지 않기 위해선 그 당시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럽니다. 더구나 아이들의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로 데이터 세계에서 그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는군요. 이의의 여지가 없는 현명한 결정이었군요. 안 그랬더라면 딜리트 명령과 함께 그곳 전원 날아갈 일이었으니. 

 

- 나는 물론 원망은 하지만 그들을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기차의 딜레마 잘 아시오. 통제 불가능한 기차가 달리는데 선로를 왼쪽으로 바꾸면 다섯 명이 치이고, 오른쪽으로 바꾸면 한 명이 치이는데 당신은 어디로 바꾸겠느냐. 그럼 누구라도 오른쪽으로 레버를 당기겠다죠. 내가 기관사였던들 그렇게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을 테지. 만약 그것이 지금 여기 있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영웅들이 거미줄에 매달리거나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다니는 영화 속이었다면,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양쪽 선로의 도합 여섯 명을 살려내겠지. 그래야 지켜보는 시민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관객의 기분도... 정신도? 아무튼 사고도 통합할 테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왜 우리는 다섯 명인지 한 명인지 고르라고만 할 뿐, 애당초 다섯 명에게도 한 명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는 못합니까 말이에요. 

 

- 이것은 현실에서 발생한 테러가 아니며, 남편은 어느 회사에게서도 소속된 사람이 아니기에, 산재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이이를 불러들였던 높은 분들도, 셧다운을 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책임을 돌렸을 뿐 자신들은 기피했어. 정 필요하면 당시 참여했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고소하든지 하라며 내 말을 들어주지는 안 해요. 이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일을 함께했던 분들께 내가 차마 그럴 수 못한다는 걸 알고 배 내라... 그, 배 째라는 거겠네요. 그러면 이제 나는 누구에게 호소하는가. 이렇게 여러 번... 구차한데도 사람들한테 알리고 나설 수밖에 없는 거네요. 

 

- 제가 말주변 부족이나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혹시 짐작하는 부분 있으셨을지 모르겠는데, 이이는 익스피리언스 파크의 개장 당시 계약직 멤버입니다. 이이 말고도 정말 많은 이들이 팀으로 묶어 움직였고, 파크 설계하는 일로 귀국한다고 자주 떨어져 지내다 결국 내가 따라 한국 들어오기로 한 이유 포함입니다. 그 프로젝트에 줄곧 따라가는 줄로 알았고, 계약은 명분과 형식일 뿐 실로는 매해 갱신되는 거라 믿었어요. 그러나 기업에서는 이 사람 비롯해서 그 많은 이들, 개장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다 파이어, 잘라버렸습니다. 그 자리 기계 조작 기초만 가르쳐 어린 알바 아이들로 채웠습니다. 안전한 체험만 이루어진다면야 열고 닫고 승하차 돕고, 매뉴얼대로는 대강 어찌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러했고요. 그러나 알바 친구들, 아무리 열심히 살고 배우고 했대도 시간제 교대하는데 위기 상황에 대응 잘할 수 있습니까. 그 기계를, 프로젝트 전체를 설계하고 프로그램 짰던, 데이터를 빚어내고 조작하는 이들과 완전히 대체합니까. 내내 그것만 들여다보고 팠던 이들과, 수시로 리필 갈아 끼우는 학생 아이들과 비교를 가능합니까. 그래 놓고 막상 이래 급한 사고 생기면 위험하거나 때로 목숨 걸어야 할 일은 뿔뿔이 흩어진 자들 다시 끌어 불러서 외주로 맡기는 게, 정상인가요. 전문가들을 항상 옆구리에 정규적으로 끼고 있으면 그만큼 비용이 발생한다고, 그 어떤 아름답고 거대하고 충실한 콘텐츠라도 돈이 안 맞으면 소용없다고, 그 얄팍함에 눈멀어 이런 날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 어쩌면 이이는 자신을 팽한 곳에 감정이 나빴을 수도 있는데, 높은 데서 사정 애원해도 안 가고 싶었을지 모르는 그걸 내가 떠밀었으니 책임 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임하지 않았으면 그만큼 마음이 무거웠을 테요. 내킬 만큼 쓰고 필요 다했다 버려졌어도 남편은 그럼에도 갔을 텝니다. 그건 세상의 모든 라리를 위해서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설계한 데이터가 더럽혀지는 걸 눈 뜨고 못 보겠다는 직업적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대체로 큰 희생의 결과로 위대해지곤 하지만, 그걸 치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에는 의외로 작고 평범하며 개인적인 이유가 작용하기도 한답니다. 

 

- 나는 말이지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위인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리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뭐 낭중... 가죽을 뚫고 나온다 하던데. 그러나 뚫고 나오면 뭐 할 거냐고, 수틀리면 잘라내버리지 않나.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기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뚫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원해.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신 타이츠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요.  
 
- 어디에서 소멸되었는지 모를 슬리핑맨의 데이터를 찾아 복구해 보겠다. 현실의 그를 동화 속 왕자님 구하듯 두드려 깨워보겠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하겠다. 비행기 삯이나 체류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 다 젖혀두고 라리 아빠를 위해 오겠다. 하는 메일들을, 영어로 된 건 그냥 저한테 소트하고 다른 언어로 된 메일은 번역해서 넘겨줬어요. 관계 기관과의 협의가 순조로이 되지 않고, 파크 측에서도 그 뒤로 정상 영업만 지속할 뿐 우리의 꾸준한 타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오히려 사건의 적극 공론화로 인해 이용객이 확 줄고 매출이 떨어졌다며 자기네 어려운 사정만 내세우는 중이라- 그 고마운 분들께 한국으로 와달라 청하지는 아직 못했지만, 어쩌면 진짜로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몇몇 특출난 데이터 마스터가 아니라 이 많은 도움 모아주는 분들이라고 믿어. 이분들이 있는 한 언젠가 이이는 깨어날 거라고, 이 세상에는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힘이 분명 있다고, 무엇보다 사람은 기계나 물리나 생체 데이터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존재만은 아니라고 말이오. 
 
- 그러니 나를 동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지금 비록 나 이렇게 말 어수룩하고 불쌍해 보이겠지만 크게 잘못 여기는 겁니다. 나 정말은 내 나라에선 할 만큼 하던 사람이고 약한 사람 아니며, 화면 너머에서 눈 돌리지 않고 나를 바라봐주는 바로 당신들 덕분에 이이는 깨어날 텝니다. 그때는 더 이상 슬리핑맨이 아닌 웨이큰맨으로 불러주시오. 스스로 깨어나기만 한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깨우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름이 어울릴 겁니다. 게다가 그 자신이 깨어남은 물론 그를 둘러싼 모두를 깨워주는 사람, 라리 아빠만이 아니라, 그가 현실로 돌아와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자며 애써주는 당신들 모두를 가리켜서 말입니다. 

 

- <웨이큰>

 

 

- 예순네 살의 시내버스 운전사가 급성 심장마비가 찾아와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다가, 그 방향이 하필 바깥쪽 가드펜스인 데다 마지막 순간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는 바람에 교량 난간을 부수고 고가도로 밑으로 떨어지면서, 그 아래 도로를 달리던 차들마저 날벼락을 맞았다는 속보를 접한 것은 오전 여덟 시경이었다. 심장마비란 시간이 지나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후속 보도에서 나온 얘기고, 일단은 평일 오전 출근길 피크에 일어난 사태라 아수라장이 된 현장 위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아래 깔린 차량과 급정거하다 부딪친 차량을 포함하여 총 스물네 대가 뒤엉킨 참사였다.

 

- 당시 버스에 몇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여덟 명 사망 서른일곱 명 중상, 차체에 깔리거나 찌부러진 버스 내부에 신체가 끼인 이들 가운데 열한 명을 아직 구조하지 못한 관계로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는 현장 취재 기자의 단호한 표정과 명료한 목소리. 그 구체적인 숫자에 일순 압도될 뻔했지만 지금의 내게는 어디까지나 딴 세상 이야기였다. 한때는 나도 일 년가량 통근에 저 길목을 이용한 적 있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통근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이 피부로 와닿기보다는 게르니카의 한 폭처럼 느껴진대서 나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도시생활자는 없을 터다... 가 아니라 애당초 규칙적 통근이라는 행위 자체와 멀어졌다는 데에서 비롯한 박탈감 뒤섞인 무관심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겠지. 나 포함 해장국집에서 전날 매달린 술기운을 걷어내려 저마다 식탁을 차지하고 앉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곤 저저저거 어떡하나 아이고, 탄식을 밥알처럼 우물거리며 티브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한창 어금니로 씹어 삼키는 선지 덩어리에 엉킨 발음이 하나같이 기묘했다. 그리하여 아침의 그 사건은, 화면 바깥에서야 보험 관계나 보상금 등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겠지만 나를 포함한 개개인의 내면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삼킨 선지가 소화될 즈음 함께 종료될 예정이었다.

 

- 시한부로 중앙 매대에 올라 있다가 다른 촉망받는 저자의 신간 또는 유력 출판사의 물량공세에 밀려 서가 구석으로 밀려나는 책과 비슷한 운명을 지닌, 한 입짜리 소식. 길어봤자 스물네 시간가량의 생명력을 지닌, 날마다 새롭고 더욱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토할 만큼 발생하며, 기존의 사건이 우리의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점점 더 줄어든다. 전날의 사건은 웬만한 크기와 무게로는 다음날의 사건을 압도하기 어렵다. 데일리 미디어라는 게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 태어나 거기 길들여진대서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정선배는 언젠가 그거야말로 너의 패착 요인이라고 일갈한 적 있다. 돌아볼 줄 몰라, 곱씹을 줄 몰라, 입속에서 굴릴 줄을 몰라. 그냥 뭐 하나 건졌다 싶으면 자기 안에서 삭힐 줄 모르고 퉤퉤 뱉어내더라. 그러니 깊고 그윽한 맛이 나지 않을 수밖에, 하드 한 개 먹을 동안이면 머릿속에서 사라질 이야기나 끼적거리면서 소설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소설이야, 최상등 소뼈를 손에 넣고 삼십 분 고아 먹고 버리는 꼴이야, 허구한 날 입 벌리고 앉은 조개껍데기가 잠깐 입 처닫는다고 모래가 진주 되나. 

 

- 그러면서도 기획사 사무실에 간이의자와 독서실용 책상이라도 자리를 만들어준 건 정선배뿐이었다. 이때다 싶어 싼값에 부려먹을 만한 인력을 위하여. 돈도 안 되는 거 계속 깔고 앉는다고 되겠냐, 암만 봐도 네 재주 딴 데 있으니, 어 그래 알겠다고 네 맘 안다고, 그러니까 들어와서 너 하고 싶은 거 하다가 틈날 때 마감이나 잠깐 도와라. 그러나 그 자리에서 직급이든 실무든 내가 뭘 하는 사람으로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 도무지 의심스럽고, 딴에는 이런저런 눈치 보거나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지내게 해 주기 위해서라지만 마주친 사람에게 되도록 눈길 안 주는 공기 취급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관하는 직원들의 태도 역시 마뜩잖아서, 처음부터 고정 출근을 명시한 바 없었으나 그나마도 데면데면히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간격을 더욱 벌리던 참이었다. 

 

- 해장 겸 아침을 챙겼으니 오늘은 또 어디 가서 취재와 미팅을 구실로 사무실에 들어가기를 최대한 지연시킬 수 있을까. 거의 날마다 하던 이 궁리도 조만간 정리할 노릇이다. 처음에는 그저 너 편하게 작업실처럼 쓰면서 가끔 우리 쪽 애들 일이나 가볍게 좀 봐주면 돼, 교정이니 카피니 너 전에 늘 하던 일이고 하나도 안 어려워... 같은 말로 사람을 구워삶곤, 짧고 사소한 교열부터 시작하여 은근히 업무 참여 비율을 늘리더니 이제는 매일 제시간에 나와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간다. 그럼 그렇지, 내 입에 맞는 떡이 어디 있으려고, 알량한 쪽방 하나 내주곤 이 문구 어때? 그 작가 친해? 분량 좀 봐줄래 몇 줄밖에 안 돼 하다가 결국 내게 처음부터 다시 쓰도록 유도하는 한편, 근근이 면식 정도나 있을 뿐인 네임 밸류 상당한 작가들을 싸구려 기획물에 초저가로 섭외하기를 종용하는 등, 손 안 대고 코 푸는 재미를 맛보더니 이제 날로 먹으려 든다. 제시간 출근이라니 장난하나. 사대 보험이나 월급 따위 지급할 생각 꿈에도 없으면서, 이미 지금까지 내가 써내고 고친 문구는 건당 받기로 했던 외주비의 적정선을 한참 넘은 분량인데, 누굴 탓하나, 다내 죄인 것을.

 

- 옆 사람을 매몰차게 내치지 못하는 죄 언젠가는 내 쪽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고 그땐 설마 상대가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한 올의 기대와 더불어, 부탁하면 하는 대로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결국 들어주고 마는 죄, 그 미소에 담긴 의미를 상대방이 알아서 캐치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자기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은 행간을 읽어내더라도 모른 체하고 일을 밀어붙이거나 덮어씌우기 일쑤, 그러고 나니 내 시간 조금 더 빼주면 되는 일인데... 싶어서 할 수 없이 떠맡는 나, 말마따나 조금 더 빼주면 되었던 시간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제 몸을 굴려가며 부피를 키워왔고. 이 성정 가지고 사업하긴 평생 글렀지. 하여 나는 확언이나 도장 없이 어렴풋한 제안만 오가다 말았으나 페이가 두둑한 기업인의 자서전을 맡게 되었다는 구실로 정선배 사무실의 자잘한 일에서 손을 뗄 작정이었다.  

 

- 정선배에게 오늘의 거짓 일정을 통보하려고 휴대전화 암호를 입력하는데, 먼저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모르는 번호인데 평소 이 시간마다 오던 각종 스팸 광고와는 숫자 배열패턴이 다르다. P씨 맞으십니까. 그런데요? 받아보니 통화감이 멀고 주위가 소란하다. 

 

- 뭔가 임팩트 넘치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채어 박아둘 만한, 갈고리 내지는 거멀못 같은 사건을 언제 어디서든 사냥하고 싶을 뿐이겠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혹시나. 수많은 사람에게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다르게 벌어진 다양한 사건의 조각들을 기워서 펼치는 일은, 이제 습관을 넘어선 본능, 그림이 나온다면, 얘기만 된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 자체는 내 안에서 지워지고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 가능한 한 덩어리의 오브제만 남지. 
그 같은 습관적인 자조도 어느새 해당 경찰서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 담당 경찰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범죄수사물에서 보던 것처럼 어느 스산한 냉동고로 데려가 시신을 직접 보여준 게 아니라, 그저 마주 앉아서 시신 안치소에서 찍어온 얼굴 사진을 데스크톱 모니터로 보여준다. 순간 맥이 탁 풀리며 기가 막힌 까닭은, 시신을 직접 확인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법을 선호해서가 결코 아니다. 사진을 암만 확대해 보아도, 그렇잖은가, 내게는 오래전 슬쩍 안면이나 있던 사람의 눈감은 얼굴을 찍은 사진만으로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볼 만한 놀라운 기억력이 없다. 구제하기 힘든 안면 인식 불능증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예전에 조우했던 인물인지 아닌지, 흉터나 반점 같은 선명한 특징이 없다면 평범한 사람인 이상 눈을 들여다보거나 마주쳐야, 눈을 중심으로 둘러싼 얼굴의 윤곽이나 안색을 비롯하여 안경이니 곱슬머리니 조합되어 기억을 완성시키지 않나. 안면뿐 아니라 체형도 그 사람의 특징일 터인데, 어깨 위로만 찍었으니 키가 작은지 근육질인지 얼굴은 야위었으나 실은 뱃살만 나왔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러고 보니 시신의 얼굴이라면 대체로 눈이 감겼을 수밖에 없는데, 이럴 바엔 휴대전화로 전송해서 확인시킬 일이지 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나... 가 아니라 조사 중인 사건의 희생자 얼굴을 일반인의 전화에 보내는 경찰이, 상식적으로 있을 리가. 영화에서 그러듯 중요한 강력사건이 벌어지는 음지에서 다급히 용의자를 확보해야 할 때라면 알게 모르게 경찰 개인의 판단으로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최소한 나한테 벌어질 상황은 아닐 테니.  

 

- 아무리 돌이켜봐도 정말 모르는 분이네요. 옛날 다니던 회사나 동창이나 죄다 이름 짚어가면서 생각해 봤는데 누군지 모르겠어요.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어쩌지요. 제가 워낙 잡다하게 일을 많이 벌여놔서 명함만 하루 기본 수십 장 돌리는 바람에... 그러다 보면 일행 중에 그리 관계없는 분이 껴 있어도 예의상 하나 또 건네고, 그렇게 되니까요. 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글을 씁니다. 아니 그런 대단한 거 아니고요. 사람들 참 신기한 게, 글 쓴다고 하면 바로 그냥 습관처럼 시나 소설이냐 묻더라고요. 시고 소설이고 죽어라 안 팔리는 나라에서. 그러니까요. 정작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영화나 방송이나 게임인데 말이지요. 예, 아시죠? 시도 소설도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 패널들이 둘러앉아 개그 치면서 띄워줘야 한철 장사나 될까 말까 하는 거 보셨을 거예요.  

 

- 그의 입에서는 병원에서 지낸 불과 한나절 사이에 본 것 들은 것이 술술 쏟아져 나온다. 버스 기사는 고혈압 진단을 받고 꾸준히 약을 복용 중이었으나 평소 앓던 심장질환은 없었으며 그 유가족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는 사실에다, 현장 사망 및 이송 치료 중 사망한 피해자들의 개인사까지 어느새 콩 꺼풀처럼 벗겨져 퍼져나간 모양이다. 그것도 한 사람이 줄을 잡고 들려주는 풀 스토리를 녹취한 게 아니라 이 간호사의 옆구리를 찔러 한두 마디 얻어듣고, 저 기자가 데스크한테 불러주는 전화 통화를 주워듣고, 다른 부상자가 또 다른 부상자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최소 두 다리 건너서 듣고... 그 과정에서 장면들은 조각이 나게 마련, 그중 귀를 확 트이게 하고 심금을 울리는 조각들이 선택되어 퀼트처럼 짜 맞추어진 모양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동안, 원본은 최소한의 신빙성만을 남겨둔 채 소멸되다시피 각색을 거치며 어떤 사건이 결국 누구에게 일어났다는 건지 전말이 모호해진다.

 

- 그러나 남자의 거침없는 말투와 마치 신명이라도 난다는 듯한 진행 때문에 사건 관련자들의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윤색되고, 거기에 병실옆자리 사람들까지 그거 아닌데? 내가 들은 거랑 좀 다른데? 하면서 끼어들기 시작하자 한 편의 서사가 다른 몇 종의 이본으로 완결성을 지니기에 이른다. 이는 창가 자리 한 노인이 헛기침하며 거 잘 모르면 남의 얘기 떠들지들 좀 맙시다, 일갈을 내리기 전까지 이어진다. 그러자 또 다른 장년의 남자가 친근한 척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율한답시고, 그런 식으로 훈수 두시면 요즘 애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선비질 집어치우라 그래요. 노인이 잘 못 알아듣는지 선지? 뭐 생비지? 하고 퉁명스레 되묻자 그의 간병인이 끼어든다. 우리 할아버지가 많이 지치고 피곤하셔서 그래요, 공동 병실에서 소리 좀 낮춰주시지들. 그러나 정작 간병인부터가 자신의 환자를 변호하기 위해 이 할아버지가 어디 참전 용사라는 둥평생 남의 것 탐낸 적 없이 고생만 하고 사셨다는 둥 정부에서 지원금이 안 나와 이중 삼중의 곤경에 빠져 있으니 양해해 달라며 본질과 무관한 전형적 감성팔이의 패착을 저지르고 마는데, 이를 놓칠세라 귤을 씹어 삼킨 남자는 간병인에게 내뱉기를, 아 이 나라 살면서 그만한 일 한번 안 겪은 사람 나와보라 그래.

 

- 그리하여 나는 천천히 전화를 한번 열어본 다음, 공연히 병실을 소란스레 만들었다고 굽실거리면서 몸을 일으킨다. 어르신들 모두 쾌차하십시오. 제가 이제 회사에서 들어오라 성화를 부리니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들은 한때 자신보다 치열한 현장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고로 사내란 정당한 보답을 주장하기 이전에 일터에 충성부터 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세대로, 회사에서 불러들인다니 젊은이 어서 가보게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 배웅하듯 손을 흔든다. 

 

- 최저가 목면 제품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하자 기자와 카메라 쪽은 서로 눈짓하며 고개 끄덕이고 기자는 어머니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이며 마이크를 조용히 거둬간다. 스태프 중 한 명이 누나 잃은 동생들의 등을 은근히 엄마 쪽으로 밀며 가서 위로해 드리라 속삭이자, 줄줄이 엄마에게 달라붙어 통곡하는 아이들을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포착하며 촬영은 끝난다. 영정 속 얼굴은 눈이 크고 입매가 또렷하며 무심코 지나치다가도 한 번쯤은 다시 뒤돌아보고 싶을 인상이다. 기사 헤드라인이 어떻게 나갈지 이리저리 낱말을 꿰어보다 '상하복 오만 원 미만'은 반드시 강조의 형태에 가깝게 삽입되리라 생각하며, 나는 조의금 오만 원이 담긴 봉투를 함에 투입한다. 일단 '아침에 짜증을 부리면서 나가던 아이'는 '늘 밝은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로 각색되겠고, 평소와 달리 짜증을 부렸다면 그 이유로는 월경증후군이나 교우 관계 및 연애 사정 등의 다양한 맥락이 제거된 채 '다음 학기에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명기될 것이다. 그와 함께 모친의 마지막 말은 '이럴 줄 알았으면 괜한 장학금 고민 말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나 실컷 해보라고 할 것을' 같은 탄식으로 변경될지도 될지도... 가 아니라 필히 그래야 사람들이 희생자의 꽃다운 나이와 펼치지 못한 아까운 인생에 대해 보다 즉각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형 사고 및 재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될 터. 그것이 떠난 이들의 영혼이 이 지상에서 수행하는 마지막 역할이다.

 

- 이때 그들이 인간이기에 풍길 수밖에 없는 냄새를 지우고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전인이자 인격체로서의 흔적만 남겨야 할 터. 무조건적 애도를 받아 마땅한 위치에 그들의 이름을 올려 클릭 한 번을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미디어의 본분. 분명 사실도 있고 진실도 있는데 그중 쓸 만한 화소의 조합으로 인해 원래의 발화와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게 번역되는 진술들.

 

- 한때 내가 했던, 지금도 남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다듬을 때 종종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이때 숭배할 만한 대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서사적 전략이며,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미모가 뛰어날수록 그 대상으로 등극할 가능성은 무한등비수열로 높아진다. 그와 함께 당초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도 높게 다루어졌어야 할 본질들 -고령 버스기사의 근무 교대 문제, 일 년 단위 건강검진 의무화 및 버스 노후 점검 문제 등- 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서사의 완성을 눈앞에 두었을 때 고인의 지인이나 원수 등을 통해 뜻밖의 카톡 메시지나 악의 가득한 이메일, 과오로 점철된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경의의 대상에 환멸만 남을 법한 사례와 증언이 돌출되는 수도 있는데, 기사 제작 과정에서 그 증거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소거되거나 엠바고에 걸린다. 일단 대상이 만들어지고 충분히 격이 상승한 다음에는 그것들을 원색적으로 폭로하거나 정중히 공개해도 무방하다. 이는 또 다른 클릭을 유도하는 아티클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이다. 
  
- 방송 카메라가 엄마 품에 잠든 아기를 향해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데 그걸 손 내저어 뿌리칠 여력도 없이 부인은 기진하여 모로 죽은 듯 누웠으며 아이가 검정 저고리 밖으로 내놓은 엄마의 불은 젖을 빨고 있으나, 유가족 가운데 방송 카메라를 제지할 경황이 있는 이가 없다. 회사에서는 모범적인직원이었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의무적 음주 외에는 즐기지 않는 절제의 삶을 살았으며, 집에서는 좋은 아빠이자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들로서 -이때 그가 생전에 신었던 밑창 떨어진 구두 한 켤레를 클로즈업한 화면을 삽입하면 어떨까- 해마다 겨울이면 쪽방촌 연탄 나르기 봉사 활동에 임하며 근면 성실한 청년의 표본인데 하필 이 날따라 사무실 대신 거래처로 바로 출근하던 길에 날벼락을... 역시 병실 곳곳에서 들은 사연의 조각을 합산하여 완결성을 지닌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면서 눈을 들고 영정을 바라보 ...

 

- 검시의가 스테인리스 서랍처럼 생긴 시신 보관함을 연다. 길게 뻗은 서랍이 검시의의 신중한 손놀림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온다. 얼굴을 가린 흰 수건을 걷는다. 화면으로 몰랐던 게 직접 본다고 달라질 리가.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고, 그럼에도 이토록 기시감이 드는 까닭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왔거나 내 알량한 머리에서 꾸며지고 손끝에서 쏟아진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인 양 친밀감마저 느껴져서겠다. 
 

- 그러나 당신은- 세상에 있는 사람의 수만큼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이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대하장편으로도 모자란다는 이들이 숱하며, 제아무리 어떤 사고뭉치나 가해자였더라도 아름다운 대상으로 화장하여 경의의 대상으로 등극시키는 다양한 술법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어째서 당신에게만은 이름이 없고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가. 어째서 당신은 그 어떤 남루하고 상투적인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가.

- 여기 누운 사람 중에 그만한 사정없는 사람도 다 있나?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자 검시의가 제지하고 담당 경찰이 내 어깨를 뒤에서 잡아챈다.  

 

- <사연 없는 사람>

 

 

- 그것을 뒤집는 순간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무생물이 된다. 전복된 말에서는 비밀스러운 힘이 빠져나가고 말이 구현하던 세계는 실재의 선로에서 이탈한다. 모든 말에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무관한 사물 및 사태가, 대체로 과잉과 혼동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담보로 부여되므로, 말이 지닌 힘과 더불어 기왕에 펼쳐진 현실을 축소하고 접어 가두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압축과 생략 그리고 전복이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스펙터클은 그것을 뒤집거나 달리 부르는 순간 의미가 마모되며 형태는 단순해지거나 소멸할 것이다. 호랑이는 고양이로 늑대는 강아지로.

 

- 또는 우리의 존재가 어느새 숲에 있지 않을 것이다. 젖은 흙 속에서 썩어가는 나뭇잎 냄새도, 짐승의 찢어진 살갗에서 풍기는 쇳내도, 어느 암벽에서 떨어져 부스러지는 돌무더기 소리도, 무엇보다 우리의 급박한 숨소리도 없을 것이다. 모든 융기는 가라앉고 매끈해지며 평평해질 것이다. 말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용 범위의 말을 줄이면 줄이는 만큼 그 말을 쓰는 존재도 쪼그라든다. 단 스무 마디의 말로 만물을 표상하고도 모자람 없던 대자연 속 인디언 부족은 오늘날 더는 남아 있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대상을 분별했던 모든 구획과 경계가 흩어지고 말하지 않으면 존재는 망각되기를 넘어 처음부터 없었던 듯 지워질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없음뿐이다. 눈앞에 막 솟구치며 어둠 속에 섬광을 긋는 거대한 발톱 또한 부러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에 일시적이며 육체적인 안도감과 맞교환하여 남는 것은 가벼운 착란과, 방향을 잃어 맹목으로 핏발이 선 두 눈동자. 포획한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을 잡아 소유하라. 소유하지 못하면 부수라. 

 

- 서로의 존재를 알고만 있었을 뿐 일면식은 없는 네 명의 중고 신인이 어쩌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게 됐다고 하여 거기서 제 잔을 들고 바로 일어서는 건 면이 서지 않는 일일 뿐더러 인간에 대한 예의 또한 아니라는 것이,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 주관이었다. 호탕하고 즐거운 웃음소리와 잔 부딪는 경쾌한 유리 소리가 흐르는, 즉 메인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깊은 인연까진 아니더라도 가느다란 맥락이나마 닿아 보임이 분명한 이는 -또는 언젠가 메인으로 건너갈 테고 거기 자신을 위한 고정석을 마련하고야 말겠다는 투명한 욕구를 감추지 않는 이는- 저쪽 은사 또는 선배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겠다며 부드럽고 예의 바른 미소와 함께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그 경우 대개는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자연히 이 자리에는 어디서건 딱히 적도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환영받을 일도 없는 이들 네 명이 남았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들 중 내가 최고령자였다. 서로 눈을 내리깔고 자기 술잔만 말없이 내려다보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듯한 의무감과, 그러기엔 리더십도 광대 기질도 전무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시간에 집에서 원고나 한 줄 더 썼지 싶은 초조감 같은 것들이 혼화하여 부풀더니 곧 머리꼭지를 간질이며 새어 나오기 직전이었다. 마침 그와 비슷한 농도의 강박을 느꼈을 법한 최연소자 디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 맞은편 피의 잔을 바라보며 맥주병을 들어 보였고 피는 일순 조금 뜬금없다는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다가 곧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이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잔을 들었고 무엇을 위하여, 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서로의 잔을 일단 부딪쳐보았다.   

 

- 피가 자신도 같은 경험이 있다며 손뼉을 쳤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 습관적으로 즐겨 쓰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자꾸 흘리게 되나 봐요. 지나치면 쓰는 게 아니라 거의 흘리는 수준이 되죠. 저는 문단 단위는 아니고 두 페이지에 걸쳐서 '분노'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뭐가 그렇게 화날 일이지, 하면서요. 그런데 소설의 진행을 보니 주인공이 화가 많은 게 맞아. 그거랑 상관없이 이런 똑같은 말을 흘린 걸 미처 못 본 나 자신을 참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다른 말로 바꿔보려고 했어요. 분개, 억울, 화. 그런데 그 자리에 어떤 걸 넣어도 설명투가 되어버려서 그건 또 그거대로 못 견디겠지 뭐예요. 왜 이렇게밖에 못하나 나는. 보여주기를 해야지 왜 설명하고 앉았나. 내가 묘사에 이렇게 약했나 하는 생각까지 드니까 도저히, 이건 접어야지 싶더라고요. 고작 분노라는 낱말 하나에서 시작한 고민이 소설 전체를 접고 펑크를 내기에 이르렀다는 게 믿어지세요. 저만 유별난 게 아니겠죠. 어디 분노뿐이겠어요, 이 페이지에서 '무용지물'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장면을 떠나고 나서도 그로부터 세 페이지 뒤 다른 장면 다른 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다시 나와 신경 쓰였던 적도 있어요. 무용지물이라고 하지 말고, 아주 흔하게라도 구멍 난 페트병이든 유효기간이 지난 입장권이든 여러 가지 보여주기 방법이 있을 텐데, 저도 모르게 무용지물을 반복한 거죠. 내가 워낙 쓸데없는 작은 존재들을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런 부분이 눈에 많이 걸리는 바람에 그것도 결국 마감일을 훨씬 넘겨서 간신히 보냈지요. 그런 거 선배는 없으세요? 원치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무슨 말을 특별히 좋아하고 애착을 가졌는지 알게 되는 상황요.  

 

- 좋게 말해서 아끼지 않는다일 뿐 남들 보기엔 남발한다고, 그런 거 많이 쓰면 왜 글이 안 읽히고 더러워 보인다고들 그러잖아요, 저는 거기 신경 안 써요. 지나치게 아끼면 금욕적으로 보이고 그 나름대로 좋긴 한데 저는 더러운 것도 좋고, 취향을 가두지 않는다는 측면에선 일종의 섹시함이라고 저 혼자 멋대로 여기기로 했거든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지만 더러움은 섹시함과 통한다고 믿어요. 크레졸 냄새가 나는 사람과 먼지 한 톨 없는 공간에서 수술용 장갑을 끼고 단조로운 성직자 체위로만 청결한 섹스를 하는 게 처음 한두 번은 안전감이 들고 신선할지 몰라도 계속 그것만 고집하기엔, 섹스는 본질적으론 몸속의 것이 밖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더러움을 전제로 하는... 아니 근데 어쩌다 얘기가 이리로... 아니 저기, 몸속의 거가 반드시 소독이 필요하다거나 막 병균 우글우글, 그게 아니라 그 왜 크리스테바적인 의미로... 미안해요. 이거 수습 불가네. 아무튼 내가 그렇게 쓴다는데 누가 막을 거야, 처음 등단할 때만 가독성의 신화에 맞춰서 묘사 중심의 간결체를 잘 구사하고 당선 면허증을, 운전 면허증과 크게 다른 점은 모르겠지만, 손에 쥐었으면 그만이지 그다음부턴 내 맘이죠. 다만 근접 거리에서 비의도적으로 중복되는 말들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긴 해요. 물론 그건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기울이는 노력이겠는데... 내가 자신감 넘치는 몸짓을 하면서도 정작 혼란스러워하며 말을 마치자 좌중의 시선은 자연스레 아직 입을 열지 않은 오에게로 넘어갔다.  

 

- 올해로 서른아홉 살인 오는 실물로는 처음 만나는 셈인데, 이렇게 마주 앉아 보니 그녀의 책 표지에 실린 사진과 인상이 크게 달라서 그것이 단지 그녀가 화장법과 옷차림을 바꾸었기 때문인지, 사진이 그녀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채 담아내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그녀의 소설을 단 한 권 읽었을 뿐이지만, 그녀가 데뷔작부터 시골을 배경으로 한 서사를 주로 유지해 왔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단편소설 한두 편을 제외하곤 그녀는 농촌을 무대로 삼았고 데뷔작이 한동안 화제가 됐던 까닭이 바로 그 점에 있었다. 풍부한 삶의 경험을 담보한, 머리 희끗하고 손마디 거친 장년 남성이 아닌 삼십 대 여성이 감각적 도회 정서가 아닌 전통적 세계관에 천착하여 육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게 뜻밖이라나, 의뭉스레 눙치는 말재주에 걸쭉한 사투리와 억척스러운 이전투구를 묘사하는 생생한 현장감이 오히려 그녀의 외모와 이질감을 주어 파격이라나, 하여간 상찬의 외피에 감탄의 수를 금빛으로 놓기는 했으나 본질적으로는 편견에 가까웠던 평들이 기억의 거름망에 듬성듬성 걸려들었다. 장편 문학상의 종류가 대폭 늘면서 데뷔작 타이틀로는 시장에서 책이 움직이기에 한계가 있고, 어쨌든 시장 진입 초반에는 소설 이외에 작가 자체의 특이성에 기대서 나쁠 일 없으니 출판사에서는 아마도 그 이질감을 주요 콘셉트로 잡고 홍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의 사진을 매번 필수로 내보냈으며, 출간 기사마다 헤드라인이나 리드도 이런 식으로 달렸었다. <흙냄새가 좋아요...> <화려한 도시 불빛을 정면으로 반박하다> <농사지을 것처럼 안 생겼다고요?> 그나마 문학과 관계있게 뽑아준 헤드는 이랬다. <영글어가는 과육에 담긴 필부의 해학> ...

 

- 당시 보도자료에 나간 오의 사진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우수 어린 옆모습이 주를 이루었는데, 미용실에서 약간 신경 써서 편 듯한 세미롱 단발에 작은 얼굴과 옅은 화장기로 인해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였으며, 평범한 아이보리 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모습으로 배경은 보통의 공원 나무 아래나 출판사 건물 앞이거나 북카페였다. 출퇴근길 전철이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인의 모습 그대로였고, 얼핏 보면 대학생으로 착각할 법도 한 얼굴이었다. 한동안 베스트셀러 언저리에 다가가자 모 신문사에서는 헤드라인을 순박한 농촌 아줌마, 맑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으로 내보냈고, 그 문구는 사진 이미지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눈에 확 띄었다. 지금 이 사진 속의 사람을 가리켜 농촌 아줌마라고 한 게 정말 맞나? 맑기는 맑다만... 하는 식으로 한 번은 더 들여다보게 됐고, 실상 내가 그녀의 책을 찾아 읽은 계기도 그 기사와 이미지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그러고 나서 지나간 자료들도 검색하니 아티클마다 시작이 대체로 '문학을 배운 적 없는 33세의 늦깎이'라는 식임을 알게 됐고, 문학 담당 기자의 질문에는 거의 매번 '결혼해서 아이 낳고 농사짓다가 어떻게 겁 없이 도전할 생각을 하셨는지'가 첫 번째로 들어가 있었다.

 

- 서른세 살이 늦깎이라는 사실도 난 그때 처음 알았고 -언제는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농촌 이야기를 썼다고 놀라놓고선, 자기들 필요할 때는 늦깎이라고 하질 않나 골고루 가관이었다- 문학에 다가설 때 우선 그 위엄인지 형이상학적 오라인지 모를 것에 겁을 먹고 도전 여부를 타진해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 뒤로 출판 관계자에게서 들은 후문으로는 잡지사 한 곳에서 약간 무리수를 둔 취재를 시도했는데, 그동안 이미지와 글이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주무기로 삼았으나 첫 책에서 그 약발이 다한 만큼 이번 기사는 신작 관련해서 평이하게 나가되, 사진을 그녀의 자택이 있는 강원도 논밭에서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두 아이도 옆에 끼고 밀짚모자도 쓰고. 그러나 그러한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하면 그다음엔 장화 신고 옷도 그럴듯하게 입고 얼굴에는 진흙도 좀 찍어 발라준 모습으로 밭을 가는 장면을 연출해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용케도 했는지, 소설가로서의 본질과 점점 멀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그녀가 분명하게 거절했단다. 

 

- 그래서 의도적으로 변신을 꾀했는지는 몰라도 -아니 그동안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 개인적 취향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 현재 그녀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그래봤자 머리는 여전히 세미롱이었고 래퍼 경연대회에 나오는 센언니 스타일에는 백만 광년쯤 못 미쳤지만 두껍고 깊은 아이라인, 와인로즈색 립, 웃을 때마다 흔들리는 귀걸이, 현란한 기하학무늬로 도배된 재킷, 장난이나 역설로라도 순박하다든지 맑다고는 기록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 주민 어린이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와 그들의 씻지 못한 피부, 쓰러져가는 집과 손으로 밥을 집어먹는 행동 등의 이미지로 박제된 게 아닐까.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든지 나중에 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죽은 뜻이 돼버린 거죠.  

 

- 나와 앞자리 숫자가 다른 나이대의 동료들에게서 어쩌다 얻어듣게 되는 이토록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논의들이 이런 자리에의 방문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의식적 적극적으로 피해온 표현은 기껏해야 관용구 혹은 사이라고 불리는 것들 정도이지 않았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 가슴이 두방망이질, 맘씨가 비단, 봇물 터지듯, 같은 말은 문학에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말이며 만약 쓴다면 쓴 사람이 제 소양의 부족함 내지는 게으름을 못 견디고 나가 죽든지 절필하든지 할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관용구 사전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그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닳았다는 뜻으로 일종의 폐기 처분 내지는 적폐 청산의 목록을 정리함이며, 그 속의 말들을 골라서 적재적소에 부리기 위함이 아니라 최대한 피해서 쓰기 위한 용도였다. 데뷔할 무렵에는 의욕이 넘쳐 내 글로써 빈사의 모국어를 살려야 한다는 풋풋하고도 원대한 계획마저 있어서 글 속에서 불필요한 외국어를 배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한편 뭐뭐의 뫄뫄함 같은 소유격 쓰지 말자, 뭐뭐하게 만들다 같은 수동태를 철폐하자, 같은 현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한 편의 단편소설에서 '~적(的)'이나 '~' 같은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시절도 잠깐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런 서슬이며 기력도 빠지고 더러움인지 섹시함인지 불분명한 구실로 생각도 바뀐 마흔 중반, 내가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져 관용구나 피하자는 차원에서 머무는 동안, 젊은 동료들은 단 한 개의 낱말이라도 온 우주를 품은 씨앗이라는 듯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까지 확장하여 밀도 있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도래할 세상의 언어와 그것들이 접속하는 풍경을 장악하고도 남으리라는 예감에, 스스로가 더욱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순간이 피치 못하게 내게로 내려앉았다. 

 

- 피와 디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오는 입을 열었다. 이런 표현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싫어할 만해서 싫어한다는 것이 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거든요, 특히 어떤 낱말을 싫어한다는 것은 더욱, 조금 전 말씀하신 대로 미개하다 같은 것, 그런 건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경음화한 욕설과는 성격이 다르니 피할 만하죠. 그런데 저는 누구나 싫어할 만한 걸 싫어하는 건 아니어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어요. 얌전 빼는 듯한 오의 말에 내가 총대 메고 부추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고 애태우긴, 우리끼린데 말해봐요 그래서 무슨 말이 그렇게 손에 닿을까 봐조차도 싫은지. 저는, 곰삭다, 특히 싫어해요. 

 

- 그리하여 나는 오의 말에 성의를 다해 고개 끄덕이며 술을 몇 번 더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반쯤 꼬인 혀로, 오에게 가닿을지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되도 않은 위무의 언어를 길어 올린 듯도 싶었다. 디와 피도 거기 뭐라고 말을 얹은 것 같고 우리 모두 각자의 주량에 비해 그리 많이 마신 것도 아니며 나는 필름이 끊기지도 않았으므로 집에 몇 시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그것만은 이튿날 뇌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삼 주가 지난 뒤 오가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는. 

 

- 그런데 언제 우리가 번호 교환까지 해가면서 서로를 친근하게 부르기로 했더라. 

- 언니 그날 잘 들어가셨어요? 숙취는 없으셨고 감기 걸리진 않으셨지요. 언니 말씀대로 이제 어느 정도 준비돼서 연락드렸어요. 아... 기억 못 하시는구나. 아뇨 괜찮아요, 제가 다시 얘기하면 되죠. 그래서 어디까지... 아, 거기부터요. 예, 그때 제가 막판에 많이 취했는데 언니가 저한테 말했어요. 그런 생각 마라. 네가 진저리를 내고 도망 나오고 싶어 하는 그 자리 근처까지도 못 가본 사람이 세상엔 더 많다. 하지만 언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배부른 소리 말고 감사히 여겨라, 하는 식은 아니었어요. 왜냐면 언니는 그다음에 이렇게 말했거든요. 자기 소설 보고 곰곰 거리는 게 싫어? 곰이 미련해 보여서? 곰이라는 한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살기가 힘들어? 그건 네가 자꾸 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니까 그런 것인데 당연한 일이야. 곰 심리 실험 알아? 피험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해도 되지만 곰만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절대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더니 오히려 피험자들은 곰에 대한 생각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지. 그러니까 곰이 문제네. 곰부터 때려잡아. 일단 대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면 그 대상을 포획해서 없애버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니. 곰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버려... 는 아니고 곰을 잡아서 자기 걸로 한번 해보고 길들여봐. 한번 정복하고 나면 혹여 그 대상을 손맛 따지는 낚시꾼들처럼 도로 방류한다고 해도 더 이상 두렵지도 꺼려지지도 않을 거야. 막상 손에 넣어보면 별것 아니라는 걸 아니 내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곰 잡으러 갈 때 불러라. 나도 도와줄게. 아니 나도 좀 잡으러 가게... 그렇게 헤어졌어요. 그래서 사제 엽총 두 정이랑 함정이랑 미끼에다 올가미 만들 로프를 구하느라 시간이 좀걸렸고요, 우리 동네 가끔 곰 나오거든요. 뒷산에 있다가 읍내로 내려왔다 가고 그래요. 아주 거대한 곰은 무리고 그 아이를 좀 잡아볼까 하는데 언니 언제 시간 되세요?

 

-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 한 왕이 현자에게 세상의 진리를 구하자 십 년 뒤 현자는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해 왔는데, 너무 길어 왕이 다 읽을 수 없다 하니 현자는 십 년 뒤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해 왔고, 나이 들어 병든 왕은 한 권의 책조차 읽기 힘들다 하여 십 년 뒤 현자는 단 한 문장을 적은 종이만을 가져왔다는 옛이야기에서, 그 단 한 개의 문장은 무엇이었으며, 왕은 결국 그 문장을 읽은 뒤에 세상을 떠났는지 아니면 때가 이미 늦어 그 한 개의 문장조차 펴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는지, 백지는... 알지 못했다.
백지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 그는 영원히 부패하지 않거나, 산화하는 데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금속 폐기물 더미가 쌓인 쓰레기장 한가운데서 눈을 떴다. 떨어지는 검붉은 물이 안구를 연타하고 있었다. 기존에 자신이 보유한 정보와 성분이 다르긴 했으나, 아슬아슬한 범위 내에서 빗방울로 판독되었다. 들어 올려 눈앞에 펼친 회색 손가락 마디마다 반쯤 풀린 나사가 움직이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은색 손목을 덮은 옷소매는 바람과 물, 강한 햇빛이 오랜 세월 교차 반복하여 묻은 결과 조금만 움직여도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조각조각 떨어져 내렸다. 몸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기가 무섭게 옆으로 나동그라진 백지의 머리 위로, 구겨진 차량 보닛의 일부나 찢어진 깡통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었어야 한다는 걸 백지는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돌아보니 먼지를 피워 올리는 쓰레기가 고층 빌딩 높이만큼 쌓여 있었고, 쓰레기의 틈바구니로 백지와 닮은 모습을 한 존재들의 머리를 비롯하여 신체 일부가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백지는 자신이 그나마 쓰레기 산의 바깥쪽 둘레에 적치된 덕에 비교적 장애물 없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아직까지 다리는 두 개였고,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양쪽에 골고루 하중이 분산되었다. 몸속 회로가 재배열되면서 각 부위에 전기 신호를 흘려보내고, 꺼졌던 심지에 점화가 되듯 기초적인 지식과 사태가 백지의 빈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이곳이 어디이며 궁극적으로 어떤 세계인지 아직 분석할 수 없었으나, 둘러본 결과와 자신의 기존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맞춰보니 세상의 모든 오염 물질이 집적된 채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버려진 땅으로 인지되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시도라는 게 신체 내부에서 무작위로 이루어진 전기 합선이 가져온 어떤 불의의 신호일지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백지는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나갔다. 마지막 메모리는 2076년 12월 24일에서 끝나 있었고, 그전에 무엇의 부속이었을지 알 수 없는 검은 부품이 가까이 버려져있어서 들여다보니 생산 연도가 2086년... 날짜는 훼손되어 있었다. 백지는 각종 폐기물을 헤치고 끄집어내고 던져보았으나, 그로부터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표지가 되어줄 만한 물건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2121년까지인 합성 페미컨 깡통이 시야에 포착되기도 했으나, 저장식품은 워낙 유통기한을 최대로 잡아놓게 마련이므로 지금이 반드시 2121년 이후라는 법은 없었다.  

 

- 백지는 천천히 발을 떼어놓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폐기물로 이루어진 산을 등지고 한발, 또 한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전방으로는 끝 간 데 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지만 백지는 목마를 일 없이 수십 번의 낮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 자신이 떠나온 곳에 있던 것들과 비슷한 쓰레기들을 드문드문 발견했고, 사람의 것으로 생각되는 바싹 마른 해골이 모래 밖으로 반쯤 나와 있는 모습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비록 느린 걸음이지만 한 발을 내딛을수록 무게와 균형감과 확신이 실렸고, 신체 동작을 이어가면서도 2076년 12월 24일부터 역순으로 메모리를 열람 및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이 앎이란 이제 알았다고 인식하여 의도를 갖고 행위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며 논리적으로는 분명 존재할 입출력 단계가 완전 생략되어 있었다. 애당초 자신의 이름이 백지라는 것도 '나는 백지' '내 이름은 백지' 같은 유목적적 되새김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를 이룬 전체 신체 조직의 특정하지 못할 어딘가에 편재의 방식으로 새겨져 있어서 떠오를 뿐이었다. 자신이 백지라는 사실은 매 순간 의식할 필요 없이 당위성을 지닌 화인이었으며, 이 같은 인식은 인간의 경우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에 포함되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본능적이고 협소한 범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 추출된 마지막 메모리는 뜻밖에도 단조롭고 평온한 장면으로, 특기할 만한 데가 없었다. 책을 읽고, 아마도 자신의 주인 또는 관리자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 누구네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등의 벽보를 써서 붙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읽어내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몇 세대에 걸쳐 생존 본위로 살아오면서 말과 글이 많이 섞이고 변형되는 동안 자신들이 써오던 문자의 정확한 형태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말 가운데 듬성듬성 번역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백지는 인지했다. 그러면 여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없느냐고 백지가 묻자, 경작과 추수 등의 노동을 나누면서 원형이 어느 나라의 것이었을지 모르겠는 말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는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가지의 질문과 답이 오가는 동안 백지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 어떤 변화를 겪은 결과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깨어난 이 세상에는 이야기를 짓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미스'는 거의 우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스토리 메이킹 시스템의 이름이었다. 이 시스템에는 개발진만 백 명 넘게 붙어 초기 학습에 세계 각지의 신화와 민담과 전설을 제공했다. 수천 년간 인류 유전자에 새겨져 오다시피 했던 사랑과 배신과 복수와 저주와 살해가 넘쳐나는 이야기의 화소를 반복 습득하고, 그것을 조합 및 변형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해 내는 것이 미스가 하는 일이었다. 이 시스템을 통과하여 생성된 이야기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송되었다. 사람들은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인물의 성격이라든지 외적 조건 등이 조금씩 바뀐, 알고 보면 질량이나 형태 및 방식에 있어서 과거의 것과 동일하거나 큰 변별점이 없는 사랑이며 응징 끝에 찾아오는 평화 이야기의 패턴을 끊임없이 소비했다. 기술 문명의 발전과 함께 옛날과는 다른 체계, 제도, 가치관들이 생겨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전에 전혀 존재한 적 없던, 그전 세계의 산물과 조금도 교집합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란더 이상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도레미파솔라시와 그 사이의 반음계들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진 음악에서 세상에 일찍이 없던 곡이 탄생하기란 불가능하리라는 견해와 시기를 같이하여 널리 퍼진 관념이었다.  

- 요소요소만 뜯어보자면 새롭지 않고 평범했으나 미스가 생산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그럴 듯' 했다. 말하자면 읽기에 편안하고 무리가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었다.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들거나 울리는 일은, 인간이라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과 경이는 통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으며 거기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으면 그만이었다. 또한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 만화와 애니메이션 같은 것으로 변용되기에 적절한 구조를 지녔다면 시스템 개발사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수익 창출이라는 1차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이 정도까지 뭔가를 알아서 만들어내긴 했다는 놀라움, 마치 영아의 걸음마를 보고부모가 감격하는 차원에서 주목받았을 뿐, 그것이 쏟아낸 이야기 자체는 부실했고 활용도가 높지 않아 산업 측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시기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부실하다기보다는, 미스 자체는 과학적 분석과 계량을 통해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해 냈으나 어딘가 헛웃음이 나오는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이를테면 서로 사귀는 남녀 커플 두 쌍이 있었는데 어떤 계기를 통해 바람이 나서 서로의 파트너를 교체하기에 이르렀고 넷 중 한 사람이 몇 광년 떨어진 미래의 외계에서 온 자이며 다른 한 명은 과거에서 온 사람이어서 그사이 우주 전쟁이 발발하여 과거와 미래의 싸움으로 시공이 뒤틀려 현재가 소멸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수습하기 어려운 이야기 자체의 참신성이나 개연성은 둘째치고 인물들 간의 대화가 잘 연결되지 않는 현상은 일반적이었다. A가 B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니" 물으면 B는 "그래 사랑하고말고" 같은 기본적인 응답 외에 그전까지 전개된 상황에 따라서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니" 내지는 "한때는 그랬던 적도 있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야" "네가 사랑한다는 말을 필요로 한다면" 같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는데, 이때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이 우리에게 허락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너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봐" 같이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대답도 수십만 가지나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거기서 조금만 더 복잡한 심리를 다루어야 할 적에, 이를테면 A가 B에게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뭐였을까"라고 자조적으로 말할 때 B는 "함께 지낸 동안은 좋았어"처럼 아슬아슬하게 수비범위에 해당하는 반응도 도출할 수 있었지만, 대체로 "지금 시간은 열 시 십 분이야" "앞으로도 함께 일하지 않겠니"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같은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렇듯 '그럴 듯 하지' 않았던 까닭으로, 한때 투자자가 손을 떼는 등 자금 융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개발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창조력은 이런 그럴듯하지 않은 상황을 일종의 선문답 놀이처럼 소비하고, 그 기묘한 부자연스러움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황당무계한 전개를 이어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기에 충분했다. 

- 이때 2차 개발 방향은 두 파트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이야기 학습을 이미 마치고 자가 생성 발전을 돌리는 미스를 전 세계 인터넷 도서관과 상시 연결된 상태로 만들어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학습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기존 세상에서 탄생한 무수한 이야기 속에 이미 음악과 미술과 철학, 수학, 과학, 종교, 심리학, 법학, 지리, 역사 등의 요소가 작품의 성향과 주제에 따라서 담겨 있기는 했지만, 이후 미스가 만들어낼 이야기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유기적인 이야기 연결고리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각각의 분야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학습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평균 수명 백십 세의 시대에 한 사람이 평생을 공부해도 알지 못하는 방대한 분량의 학습,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을 익히기 위한,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그 모든 것에 또 다른 것을 생성하여 보태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두 번째 파트에서는 미스를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게 재탄생시키는 계획이 가동되었다. 이야기만 뽑아내면 되는 도구 시스템에 굳이 인간의 모습을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고, 처음 각 투자사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디자인공학 관계자들은 거대하기만 하고 우중충하며 환기가 잘 안 되는 먼지와 연기투성이의 공장 느낌을 주는 시스템을 유지한 채 불완전한 이야기만 뽑아내게 하느니 차라리 작가로서의 형태를 부여하여 대중 앞에 얼굴을 파는 편이 수익 창출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글을 쓰고, 글쓰기를 위해 고뇌하는 표정과 몸짓을 하고 신작과 관련하여 미디어 인터뷰에도 응하는 콘텐츠라는 생산물 외에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소비할 구석이 있는 외모와 목소리를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에 탐닉하는 성향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 돈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고대로부터의 본능을 감안한 프로젝트로, 그야말로 무의미한 사업에 개발 비용이 구멍 난 부대에 입김 불어넣듯 바닥 모르고 투입되었다. 

 

- 그러나 인체 기초 작동을 제외한 모든 지식에의 연결을 인터넷 전송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미스의 외형을 평균 신장의 인간 정도로 콤팩트하게 바꾸고 음성을 입히는 일은, 향후 지속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긴 했으나 거대 자본과 기술력이 결탁한 결과 생각보다 순탄하게 이루어진 편이었으며, 오히려 애를 먹인 건 지식 학습 쪽이었다. 지식은 고인 물이 아니라 계속 번복되거나 새로운 이론이 추가되었는데, 지구가 돈다 같은 사실을 제외하고 어느 분야든 대부분의 이론이란 정반합이 명료하게 떨어진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수많은 주장과 주의의 충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미스가 학습 도중 오류가 나거나 연산을 강제 종료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종교에서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데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종교만으로 국한한다 치면 신은 유일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수히 많은 존재였고 그것을 부르는 이름도 민족에 따라 너무 많았으며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는 방법 또한 지나치게 여러 가지였다. 흙을 빚어 만들거나 어디서는 갈비뼈를 뽑아 만들고 다른 데선 돌멩이를 등뒤로 던져서 만들었다. 거기에 과학이 개입하자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원생세포에서 분화한 알이나 물고기가 육지로 걸어 나오면서 여러 갈래로 진화한 수많은 포유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길고 지난한 학습 과정은 미스의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었고 결국 취사선택을 통해 엄선된 분야만을 학습하도록 개발 노선이 바뀌는 등 시행착오가 따랐지만, 그 결과로 미스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 및 전체적인 선호도를 알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대체로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 신념이나 맹목에 대해서도 그전보다 세밀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그로써 좀 더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이야기,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무엇이 팔리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었다. 결국 무엇이든 팔리는 것을 내놓아야 투자사와 개발진은 거금을 회수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이야기를 연쇄적으로 무한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 인간 형태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외모와 몸짓, 성격, 목소리의 업그레이드 및 5차 패치가 완료되었을 즈음, 스토리 메이킹 시스템은 미스 대신 백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 무렵 백지는 만들어낸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영상에 바로 띄워 전송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때는 이미 실제 사람인 작가들도 손이나 손에 준하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글을 입력할 필요 없이, 머리에 떠올린 문장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도록 디스플레이에 즉각 전송하는 집필 환경을 널리 채용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백지는 작가를 직업으로 삼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보이게끔 세팅되었다. 다만 집필 분량과 속도가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닐 뿐이었다. 
   
- 백지는 드라마와 소설의 마감을 어기는 법이 없었으므로 선호 대상이 되었다. 이야기는 예전보다도 더욱 그럴듯한 꼴을 갖추어 완성되었고, 어색한 대화 반응 또한 미스였을 때에 비해 사십 퍼센트 가까이 줄었다. 그리고 수많은 평이한 상황에서 좀 더 난도가 높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B와 C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본 A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벽을 치는 단순한 행위가 즉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한 장면 건너뛰고 B와 C를 떠올리는 A의 손끝에서 멈춘 펜촉 잉크가 검게 번져나간 끝에 말라붙어버렸다는 식의 좀 더 미묘한 전개를 통해, A가 질투를 느꼈다든지 화났다든지 따위의 직접적인 심리 진술을 생략하여 보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심리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패턴과 다른 장면을 선택함으로써 A가 느낀 분노의 크기를 A의 성격에 맞게 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도 가끔 뜬금없는 선문답 같은 진행, 묘하게 어긋나는 심리와 경우에 맞지 않는 발화와 진의를 알기 어려운 문장들, 시작이나 결론에 동의하기도 따라가기도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묘사들은 따로 추려져 시라는 이름으로 포장 및 발표되거나 폐기되었다. 

 

- 본인이 직접 소설 기계로 살고 있는 소감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자 백지는 충분히 나올 수도 있었던 여러 바람직한 노선의 대답을 폐기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설 기계인가요.
예상 답지에 없던 백지의 반응을 재치라는 이름의 의도된 변형으로 여긴 앵커는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이지요! 당신은 소설을 쓰고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재미와 감동을... 교훈을... 무엇보다 위로를... 작가님?
백지의 반응이 시원찮은 것을 살피며 말 뒷부분을 어떻게든 변주해 보던 앵커의 얼굴에 조금씩 당혹스러운 빛이 스미기 시작할 때쯤, 백지는 도리어 이렇게 반문했다.
그것은 내가 만일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뒤를 바꿔서 묻겠습니다. 나는 왜, 
쓸까요.

 

 

 


앵커가 멈칫했을 때 백지는 이어서 물었다.


소설이 원래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가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요.

또는 반드시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요.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해준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 그것은 생방송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라는 의문형조차 백지 자신이 정말 궁금해서 나온 게 아니며 다만 운영체제 및 프로그램이 좀 더 세련되게 발전한 결과라는 의견을 유지했고, 겉보기에 정말 그럴듯하게 사람 행세를 하고 있기에 파는 대로 오냐오냐하며 사줬더니 자기가 정말 사람인 줄 안다고 비웃는 이들마저 있었지만, 일부 기술철학자들과 문화평론가들은 백지가 이름과 달리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객관적 사태 인식에 머물지 않고 조속한 시일 내에 욕망으로 변하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 언론이 <궁극의 빈 서판은 마침내 채워지는가?> 같은 헤드라인을 뽑아내며 백지의 변화를 특필했다. 

 

- 백지는 잠시 휴식, 당분간 침묵이라는 명목으로 점검 기간에 들어갔고, 동력원만 있다면 영겁이라도 반복 노동을 할 수 있는 존재가 휴식에 들어간다니 이 또한 지나치게 인간을 모방한 여흥이라며 대중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백지가 활동을 중단하더라도 그동안 발전한 기술력은 백지를 어느 정도 대체할 이야기 생산 시스템을 확보했으며, 적립된 이야기 데이터베이스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여 대중이 소비할 거리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므로, 개발사는 타격을 입었음에도 당장 몰락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구체적 형상을 지닌 백지 자체의 주가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 방대한 분량의 사전에 상시 연결 가능하도록 접속 통로를 열어놓았다. 한편 각 대학교 교양학부에서 배포하는 올바른 글쓰기/바람직한 작문 등의 강의를 주입했는데, 약 육십만 어휘가 수록된 사전이나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뿐 비법이나 요령을 전수하는 방식의 강의 및 데이터에는 백지의 시스템이 거부 반응을 보였다. 강의에서는 훌륭한 교사들이 번갈아 등장하여 문법에 맞는 글쓰기 용례를 보여주고, 읽는 이에게 정확한 정보와 명료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길을 전수했다. 장식이라는 이름의 기름기를 쏙 빼고, 말과 글을 빙빙 돌리지 않으며 지시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여, 최종 목적은 읽는 이를 빠르게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짧게 쓰세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만 있어도 문장은 완성됩니다. 함부로 주어를 생략하지 마세요. 한 개의 주어에 목적어를 여러 개 걸어놓지 마세요. 빼버려도 의미가 통하는 부사와 형용사는 문장의 독이라고 여기세요. 간단하게, 누구나 읽기 쉽게 엊그제 철자를 뗀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쓰세요.

 

- 강의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을뿐더러 이 무렵 백지의 목적은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데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가 날마다 쓰는 한 개의 문장은 아포리즘의 성격을 띠기는커녕 유기적 맥락도 없었으며 그 자체로선 아무런 정보 값을 담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예외적인 삶은 예언적인 삶을 포함한다" 같은 말도 썼다가 이튿날은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의 전부이다”"처럼 자기가 써놓고도 무슨 뜻인지 모를 문장을 내놓기도 했다. 강의에 나오는 지침들과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건 무엇이든 과감히 빼고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장을 정확히 알기 쉽게 써서 독자의 공감을 얻도록 노력하라고 개발진이 피드백을 주어도, 백지는 그다음 날의 문장에 그 규준을 적용하지 못했다.  

 

- 어째서 한 줄의 문장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는 용도여야만 한다는 말인가? 또한 그 설득이란 것은 문장이 발설된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한 개의 문장이 사람의 표면 아닌 심부에 가닿기 위해 첩경을 선택해야 하며, 일부러 멀리 돌아가면서 낙석 내지는 낙상의 위험이 따르는 첩첩산중이나 끝내 출구를 잃게 만드는 구절양장 같은 문장은 이 세상에 소용이 없는가? 불필요한 것은 삭제되어야만 하며, 필요성에 절대적 기준이란 있는가? 문장은 지워짐으로써 의미를 완성하는가? 그렇다면 문장은 썼다가 지울 때가 아니라 애당초 쓰이지 않았을 때에야 완벽한 게 아닐까? 백지가 날마다 제출하는 리포트는 사고 능력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개발 당시의 목적과 멀어져 갔으며, 백지가 쓰는 문장은 이윽고 쓴다기보다는 분비하는 데 가까워졌다. 백지는 문장을, 분비했다. 개발진은 이를 경이롭게 바라보긴 했으나 발전으로 여길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백지는, 번거로운 존재가 되었다. 허구의 다정과 위로의 마취제를 팔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개발진에 백지는 그전 같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 백지의 메모리는 그 이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일들이 지워져 있었다. 메모리의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의도를 갖고 지운 게 아니라 기기 노화와 파손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락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흐름으로 보아 백지는 이 세상이 질병에 녹아내리고 전쟁에 바스라지기 전에 용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확실한 사항은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쓰레기 더미에서 포착된 저장식품의 유통기한 정도는 한참 전에 초과했다는 것이며, 글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알거나 최소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백지에게 종이와 펜을 갖다 주었으나 백지는 지나온 세상에서 이것으로 글을 쓰는 행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는 백지가 태양열 외에 동력을 얻을 수단이 전무했으므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손아귀에 힘을 집중해야 했다.  
 

-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 무엇일지 모색하는 일에 가까웠다. 어울림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이미 백지는 이 세상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서서 누구도 설득하지 않는 문장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일정 부분 폐기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백지는 한계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전 세상에서 한계란 없음을 위주로 증명해 온 백지가 한계의 범위와 종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있는 대로 흡수하고 유용한 것을 추출하며 불필요한 것을 폐기 처분하는 과업 수행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중이었다. 포기를 통한 솎아내기는 그전 세상에서 자신에게 해당 사항이 없던 새로운 행위였으므로, 백지는 인간으로 치자면 이 상태를 거의 즐긴다고 할 만큼 몰입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수많은 한 문장을 쓰고 버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꿈은 이 세계 바깥의 현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라.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솟아오르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조하라. 우아함은 정열의 독이다. 이 같은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아무런 서사적 인과관계가 없었으나, 한 문장 한 문장은 저마다 자꾸만 무언가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백지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의미를. 

 
- <오토포이에시스>

 

 

- 한 작가가 특정 기간에 쓴 작품들을 한 번에 모아 읽다 보면 그 시기 작가의 내면을 점령한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대강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쓰였는데, 일별 하면 지난 삼 년간 구병모를 사로잡은 문제들은 주로 여성, 양육자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으로부터 움튼 것으로 보인다. 중심인물의 정체성이 여성, 양육자, 작가 중 어느 쪽으로 정향 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지속되는 호의>, <미러리즘>, <웨이큰>은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또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어떤 근심과 불안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탐문한다. 그런가 하면 공통적으로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들, 즉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사연 없는 사람>,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오토포이에시스>에서 구병모는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작가라면 한 번쯤 부딪칠 법한 사회적 고충, 심리적 강박, 실존적 불안, 윤리적 책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우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구병모에게 여성, 양육자, 작가라는 세 개의 정체성은 각각 따로 떼어져 병렬해 나열할 수 있는 별개의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포개어져 감각되고 경험되는 한 덩어리로서 키마이라 Chimaera의 세 머리처럼 상호 긴밀한 영향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이 소설집을 이끄는 목소리는 여성 - 양육자 - 작가로서의 자기 인식에 철저한 '삼중의 한 입장'의 것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텐데, 이 소설집 곳곳에는 그의 입장에서만 들려줄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고유한 진단이 담겨 있고 그의 입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환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 진단과 환상을 좇아 이 소설집을 읽고 나면 앞으로 거듭 곱씹어볼 만한 매력적인 질문들 몇 개를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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