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브룩 보렐]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 - 공포, 히스테리, 집착, 박멸의 연대기

일루젼 2024. 1. 1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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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브룩 보렐 / 김정혜
출판 : 위즈덤하우스

출간 : 2016.12.08


       

23년 가을, 한국은 유럽에 이어 패닉에 빠져들었다.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던 빈대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살아있는 빈대가 발견된 것이 시작점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세계는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미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유럽은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했었고, 한국 또한 그 소식을 접한 후 알게 모르게 보다 의식적인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한 결과- 발견 사례가 급증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외래종처럼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생물이 유입된 것과는 다소 다른 상황이니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관심들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해서 나 또한 호기심이 일어 빈대에 관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리뷰는 지금 남기지만 책을 읽은 것은 23년 11월이다)

 

저자 브룩 보렐은 우연히 자신의 집에서 빈대에게 물린 후 그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저자가 목가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녀는 2004년 뉴욕 도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발진과 가려움으로 인해 고통 받는 동안에도 '빈대'의 가능성을 떠올리지조차 못했던 그녀는, 이후로 '빈대'라는 곤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2010년에 들어 미국 CBS는 빈대 사태에 대해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과학 관련 기사를 쓰던 저자는 마침내(?) 찾아온 기회에 '빈대'에 관해 진심으로 취재해보기로 결심한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빈대에 관해 우리들이 가질 법한 모든 궁금증과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빈대라는 존재의 생물학적 특성부터 알아본다. 의외로(?) 분류상 정식 곤충에 속하는 빈대의 종과 행동양식, 성과 번식에 관해 다소 신랄하게 설명하는데 5단계의 유충기를 좀 더 상세히 다뤄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에는 역사적 기록 속에서 빈대를 확인해 가는데, 의외로 성경이나 탈무드(미드라시) 같은 종교적 기록에서도 빈대로 추정되는 기록이 발견된다고 한다. 

 

저자는 빈대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면, 당시 사람들이 이런 고통스러움을 그냥 참고 넘어갔을리가 없다고 추론한다. 해서 인류가 빈대와 어떤 전쟁을 벌여왔는지에 관해 주술적 믿음부터 생화학적 방법까지 다양한 빈대 퇴치 방법들에 관해 살펴본다. 현대적 방식에 이르러서는 빈대 퇴치 산업과 연구의 일선 과학자 및 사업가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빈대에게 피를 먹이는 장면을 참관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느날 뚝 떨어진 생명체가 아닌 한, 이 작지만 큰 존재감을 가진 곤충은 '어딘가'로부터 인간에게 왔을 것이다.

 

 

'빈대의 기원'은 어디인가?

 

 

여기서부터는 저자의 집념이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저자는 야생 빈대와 빈대의 아종들을 연구하기 위해 동굴이나 오지로 채집 탐험을 떠나는 빈대 연구팀에 지원 동행하기도 한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빈대는 박쥐로부터 전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는데, 원시 인류는 거주지를 직접 만들어내기보다 자연발생적 동굴 등에서 생활했음을 고려할 때 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연구자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지만, 독자로서는 저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길고 긴 '빈대를 찾아서' 연대기가 끝나면, 그제서야 독자는 일생에 한두 번일지라도 '빈대에게 물려본' 경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에 대해 조금쯤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004년의 '그 경험' 이후 저자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서 말이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학술서도 에세이도 아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구성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굉장히 적절한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뭐랄까, '빈대'에 관한 내용이지 않은가.

 

그렇게 마지막에 다다르면 "자 이제 물어봐"라고 말하는 듯한 부록이 등장한다.

이렇게 빈대에 관해 알아볼 만큼 알아본 저자가 말하는 '빈대 예방법' 혹은 '빈대 구제법'은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들은 발췌를 참고하시되, 가급적 본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끝.  

 


   

 

수년간 저녁 식사 동안 빈대 이야기를 참고 들어준
남편 마이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 2004년 늦여름 뉴욕에서였다. 어느 날 오른쪽 다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톨도톨한 돌기가 돋았고 정강이 부근에서 시작해 종아리 중간까지 퍼졌다. 주치의를 찾아갔더니 볼펜으로 돌기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면서 "붉은 자국이 이 원 밖으로 벗어나면 응급실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 주치의와 나는 그 증상이 거미부터 모기와 진드기까지 온갖 집벌레에 물려서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몸의 다른 부위에도 발갛게 부풀어 오른 자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치의의 권유로 진드기가 옮기는 라임병 Lyme disease 검사를 받았고,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했다. 아마도 염증은 너무 심하게 긁어서 2차 감염된 결과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통증을 동반한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스테로이드 연고도 처방받았다. 그 증상은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나타났다.

 

- 그런데 라임병 검사는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한편 약을 복용한 덕분에 여러 줄로 나 있던 붉은 반점과 종기는 없어졌지만 안심도 잠시, 오래가지 못했다. 두 달간 해충 방역업자가 다섯 번이나 다녀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무언가에 물렸고, 매번 내 침대에서 자고 나면 물린 자국이 생겼다. 정체가 무엇이든 밤중에 내 방을 몰래 숨어드는 무언가가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 드디어 그 미스터리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의지했던 전문가들이 아니라 생뚱맞게도 캔자스에 사는 아버지가 그 대답을 찾아주셨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피부 전문 병리학자였던 아버지가 피부과 전문지에서 내 문제와 관련 있는 정보를 우연히 얻으신 모양이었다. 어느 밤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내 문제를 설명하자 아버지는 "혹시 네 아파트에 빈대가 있는 게 아니니?"라고 물으셨다. 
"빈대요? 말도 안 돼요. 그런 게 실제로 있긴 해요?"

 

- 그러나 전화를 끊은 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 상상의 괴물에 대해 조사했고 마침내 빈대가 '진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빈대는 시멕스 렉툴라리우스 Cimex Lectularius라는 정식 학명을 가진 생물종으로서, 100여 종의 곤충과 함께 빈대과에 속해 있음도 알았다. 빈대가 동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곤충이라는 내 믿음과 적절한 린네 분류법에 의거한 공식 학명을 가진 동물이라는 새로운 발견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 나서, 나는 새로운 해충 방역업자를 고용했다. 또한 몇 주에 걸쳐 옷가지와 침구류를 아파트 건물 지하에 위치한 세탁실로 전부 가져가서 온수로 세탁하고 고온으로 건조시켰다. 여기에 더해 옷장을 발칵 뒤엎었고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몇 번이고 뒤집었으며 서랍장의 서랍을 모조리 비웠다. 그런 다음 빈대가 슬지 않은 의류를 가방에 담아 단단히 묶어놓고, 몇 시간이나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 쪽매널 마루의 미세한 금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청소했다. 

 

- 이 모든 야단법석을 부린 끝에 반대 한 마리를 찾아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매일 밤 각기 다른 시골 여관에 묵었던 아일랜드 여행에서 따라왔을 수도 있고 긴 주말 연휴를 맞아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을 때에 묻어왔을 수도 있다. 두 지역을 유력한 용의자로 꼽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빈대에 물리기 직전 한 달 동안에 그 두 곳을 다녀온 데다가 빈대는 피곤한 여행자들의 짐에 섞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파트 관리인이 이제까지 벌레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맹세했지만, 어쨌든 옆집 아파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 마침내 나는 옷장을 본래 상태로 되돌렸고 의류와 침구류를 적절한 장소에 다시 보관했다. 이듬해 봄 나는 <뉴요커 New Yorker>에서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 이스트빌리지 East Village의 아파트에 함께 살던 젊은 여성 세 명이 집에 빈대가 들어와서 고생한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빈대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외로움도 약간 줄어들었다. 결국 빈대로 인한 오명은 농담의 소재가 되었고, 빈대 경험은 이제 술자리에서 들려줄 법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파트는 차츰 예전의 여인숙과 아지트의 면모를 되찾기 시작했다.

 

- 그러나 5년 후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두 번씩이나. 하지만 이번에는 헬스 키친 구역이 아니라 브루클린에서였다. 같은 해 여름에 각기 다른 아파트에서 두 번씩이나 빈대와 마주친 것이다. 첫 번째는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Greenpoint에 살던 남자 친구의 아파트에 빈대가 찾아들었다. 지금은 그 남자 친구가 나와 한 이불을 쓰는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그가 샌디에이고를 방문했을 때에 머물렀던 호스텔에서 빈대가 옮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샌디에이고에서 그와 한 방에 머물렀던 친구도 샌프란시스코의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에 그곳에서 빈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두 번째 빈대는 남자 친구의 아파트에서 열 블록 떨어진 내 아파트에 등장했다. 빈대들이 남편의 아파트에서 딸려 온 것인지 아니면 새 룸메이트가 인터넷에서 중고로 구입했던 침대 겸 소파에 묻어온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가끔 논쟁거리다. 짐을 싸고 청소를 하고 매트리스와 박스 스프링에 고가의 방충 커버를 씌우려고 낑낑대며 보냈던 그해 여름에 나는 뉴스, 블로그, 시트콤에서 빈대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제 빈대는 일상적인 대화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시비에스 CBS는 2010년을 "빈대의 해"라고 선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걸까? 
 

- 언론에서 빈대 보도가 폭발할 즈음 나는 과학 전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빈대에 관한 짧은 기사를 싣자고 과학 월간지 <파퓰러 사이언스 Popular Science>의 편집장을 설득했다. 이제는 내 아파트에 빈대가 처음 나타난 5년 전에는 없던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더군다나 기사를 위해 취재하는 것이니만큼, 곤충학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빈대와 관련해 내가 원하는 만큼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정당한 핑계거리가 생겼다.

 

-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적인 살충제를 개발함으로써 박멸되었다고 생각하는 빈대가 사실은 고대부터 존재한 해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빈대는 적어도 파라오가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인류와 동거했고, 어쩌면 빈대의 기원이 그보다 훨씬 전, 구체적으로 말해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도 전인 홍적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때에 빈대는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는 물론이고 가끔 은신처를 찾아서 동굴로 찾아들었던 현생 인류의 가까운 친척들을 흡혈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빈대는 역사 전반에 걸쳐 인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인류가 영구 주거지와 도시에 정착하자 인류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했으며 작은 흡혈 개척자로 세계를 정복했다.

 

- 이런 새로운 정보를 접하자, 어릴 적부터 빈대에 대해 전혀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갈수록 이상하게 생각됐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빈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미래에 어린이들이 바퀴벌레, 개미, 파리에 대해 모를 거라는 생각만큼이나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이 빈대에 얽힌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는 사실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 빈대가 오늘날 재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정상으로의 복귀였고 "생태계 항상성 ecological homeostasis"을 보여 준다.   
  

 

자, 이제 빈대가 돌아왔다. 

 

 

 

- 내가 빈대에 처음으로 흡혈 식사를 제공했던 2004년, 뉴욕의 주택보존개발부 Department of Housing Preservation and Development에 보고된 빈대 발생 건수는 확인된 것만 82건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10년에는 4,80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심지어 빈대가 출몰한 지역은 뉴욕만이 아니었다. 오늘날 빈대는 미국의 모든 주에서 발견된다. 2013년에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방역업자 중 99퍼센트 이상이 전년도에 반대 방역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수치가 2010년에는 95퍼센트, 10년 전에는 25퍼센트, 그 이전에는 11퍼센트였다는데서 알 수 있듯, 빈대가 점점 확산되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빈대가 확산되는 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호주에서는 빈대와 빈대의 사촌 격인 열대빈대 tropical bed bug를 합해 2000~2006년 사이에 개체 수가 무려 4,500퍼센트나 증가했다. 비슷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진다. 비록 일각에서는 빈대의 확산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오히려 세계적인 그 해충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는 곰팡이처럼 갈수록 작은 도시와 마을들로 계속 뻗어 나가고 있다.  

 

- <파퓰러 사이언스>에 실을 기사를 작성한 후에, 빈대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빈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빈대가 어떻게 그토록 맹렬한 기세로 귀환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빈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 호기심에 이끌려 빈대 탐험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은 결국 출판 프로젝트로 일이 커졌다. 덕분에 나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했다. 빈대에게 인공혈액공급기와 심지어 자신의 팔다리를 흡혈 식사로 제공하는 과학자들도 만났고, 맨 앞줄에 앉아서 빈대에 관한 오프오프브로드웨이 off-off-broadway 록 오페라도 관람했으며,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에 있는 공공주택도 방문했다. 그뿐 아니라 반대를 쫓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던 곤충학자들이 남긴 문헌을 조사했고 슬로바키아 동부에 있는 로마족 Roma 정착촌과 체코공화국에 있는 박쥐 서식지를 찾아갔다. 이 모든 탐험 여행에서 나는 기껏해야 사과 씨 정도에 불과한 작은 이 해충에게 우리 인간이 얼마나 강렬하게 반응하는지 끊임없이 놀랐다. 

 

- 그리고 빈대도 알면 알수록 정말 놀라운 생명체였다. 이제부터 같이 알아보자.

 

- 머릿속으로 침실을 그려 보자. 당신의 침실이어도 좋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침구가 깔려 있고 갓 세탁한 이불이 매트리스를 포근히 감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널브러진 옷가지 하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마 곱게 개어 서랍장에 두었거나 옷장에 걸어 두었으리라. 혹은 이것과는 사뭇 다른 침실 풍경이 떠오를 수도 있다. 꾸깃꾸깃한 침구에 비뚤비뚤하게 대충 매트리스를 뒤덮은 이불 하며 어제 입은 청바지가 옷바구니 옆의 방바닥을 뒹군다. 침실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없다. 은밀한 작은 벌레가 당신의 어줍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침실 어딘가의 틈새나 구멍을 용케 파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침대 이음새나 탁자 뒤편의 나사머리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직도 풀지 않은 채로 방 한구석에 처박아둔 여행 가방의 솔기일 수도 있다. 벌레들은 적갈색을 띠고 몸통은 납작하고 편평하며 작고 비좁은 공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기다리며 보낸다. 무엇을? 바로 당신이다. 

 

- 그 벌레들은 무엇일까? 일명 침대 벌레 bed bug라고 부르는 빈대다. 곤충학자들이 종종 빈대를 은둔 곤충 cryptic insect이라고 부르는 것도 작은 공간에 몸을 숨기는 습성 때문이다. 그러나 빈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한 번도 빈대를 보지 못한 이유를 종종 오해한다. 빈대 가 잘 숨기 때문이 아니라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틀린 생각이다.

 

- 어찌 되었건 고대부터 존재한 이 해충과 함께 걸어온 인류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가 전 세계의 대대적인 박멸 작업으로 빈대는 60년간 지구에서 잠깐 자취를 감췄고, 이런 사실로 말미암아 빈대가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아주 작은 벌레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요컨대 빈대는 상상의 위협인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되었다. 이랬기에 빈대가 지구의 당당한 일원으로 즉 우리의 세상과 우리의 침대를 공유하는 진짜 동물로 귀환했을 때에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고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빈대는 몸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해서 마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벌레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는 빈대를 직접 보았던 사람들이 생생히 증언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빈대가 다리가 여럿 달린 핏방울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한편 빈대의 생김새를 덜 끔찍하게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충이 된 빈대는 크기와 모양이 렌틸콩이나 사과 씨를 닮았다는 것이다. 빈대를 무엇에 비유해도 좋다. 확실한 것은 빈대가 실체가 있는 물리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말인즉슨 당신은 빈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도, 빈대의 작은 두 눈을 들여다볼 수도, 빈대가 당신의 매트리스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다. 

 

- 일단 빈대가 당신을 발견하면 갈고리발톱이 달린 발을 이용해 피부에 착 달라붙는다. 그러고는 주둥이라고 하는 기다란 관 모양의 입을 길게 뻗어 흡혈하기에 가장 좋은 부위를 찾아 피부를 탐색한다. 가끔 부리 beak라고도 불리는 주둥이 안에는 구기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것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인 작은턱 maxilla 과 큰턱 mandible으로 이루어진다. 피부 탐색이 끝나고 공격 부위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는 미세한 이빨이 달린 큰턱을 움직여서 마치 가위처럼 피부를 잘라 작은턱이 들어갈 길을 낸다. 그런 식으로 피부 안으로 침투한 구기는 혈관을 찾아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고인 피를 빨아먹는 일부 곤충과는 달리, 빈대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혈관에 흐르는 피를 직접 빨아먹는 흡혈충이다. 고압 상태인 숙주의 혈관과 저압 상태인 빈대의 텅 빈 몸통 사이의 압력차이 덕분에 빈대는 수도꼭지에 부착된 물 풍선처럼 피를 쪽쪽 빨아들인다. 

 

- 한편 완벽한 공격 지점은 혈류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부위다. 빈대는 자신의 주둥이로 그런 지점을 찾기 위해 피부를 탐색하는 동안 이따금씩 90도 이상으로 몸을 꺾는 등 현란한 곡예 기술을 펼친다. 일단 성공적으로 혈관을 찾으면 빈대는 마흔여섯 가지 단백질로 이뤄진 침을 분비한다. 그 안에는 혈액이 굳는 것을 막아 주는 항응고제가 함유되어 있는데, 흡혈 식사 중에 혈전, 쉬운 말로 핏덩어리는 반쯤 씹은 고깃덩어리가 목에 걸리듯이 빈대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빈대는 혈전에 관한 한 상당히 취약하다. 빈대의 주둥이는 직경이 고작 8 마이크로미터로 비단실 한 가닥보다 더 가늘고, 직경이 7.5 마이크로미터인 인간의 적혈구를 간신히 삼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빈대의 침에 함유된 다른 단백질로는 혈관확장제의 역할을 하는 것도 있고 혈액이 지속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지혈을 억제하는 성분도 있다. 이외에도 항균 작용을 하는 단백질, 윤활 성분으로 흡혈 활동에 도움을 주는 단백질도 있다. 그뿐 아니라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했지만, 빈대는 다른 흡혈 곤충과 마찬가지로 마취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통해 숙주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그래야 들키지 않고 흡혈 식사를 맛있게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 빈대 성충의 식사 시간은 대략 8분 정도다. 피를 빨아먹는 동안 편평했던 몸통이 점차 부풀어 평소 크기의 두 배까지 커지거나 심지어 세 배까지 팽창하기도 한다. 유충이라고 불리는 어린 빈대는 성충보다 필요한 식사량이 적다. 그러나 빈대는 성충이 되기까지 다섯 단계의 유충기를 거치는데, 각 단계마다 피를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충이 각 단계에서 피를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 단계에서 성장이 영원히 멈추거나 굶어 죽는다. 빈대는 피를 빨아먹은 다음 단백질이 풍부한 적혈구를 농축시키고, 나머지 성분, 즉 주요 성분이 액체인 혈청은 흡혈 활동을 하는 도중에 몸 밖으로 배출한다. 빈대는 이런 식사 찌꺼기와 나중에 완전히 소화된 혈분을 침구 위로 배설하고, 이런 배설물이 말라 굳어검은 얼룩으로 남는다. 이 얼룩이야말로 빈대가 다녀갔다는 확실한 증거다. 게다가 가끔 빈대는 마치 서명처럼 인체에 일직선의 깨문 자국을 남기는데, 이것은 피부와 침대 시트가 만나는 지점에서 여러 마리의 빈대가 함께 피를 빨아먹은 결과다(어떤 위생곤충학자는 이것을 "돼지 여러 마리가 여물통에 나란히 코를 박고 먹이를 먹는 형국"이라고 묘사했다)

 

- 식사로 배를 불린 빈대 성충은 분당 최고 1.2미터의 속도로 이동해서 은신처로 신속하게 돌아간다. 침대 이음새든 나사 머리든 여행 가방의 솔기든 각자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말이다. 이에 반해 유충은 성충보다 움직임이 꽤 굼뜨다. 성충이든 유충이든 모든 빈대는 특수한 감각기관을 통해 길을 찾는다. 가느다란 더듬이에는 물론이고 어쩌면 발에도 분포할 수 있는 그 감각기관은 곤충들의 사회적 행동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기관은 또한 은신처로 돌아온 다른 빈대들이 분비하는 화학물질도 감지한다. 페로몬이라고 알려진 이 화학물질은 동종끼리 무리를 이루도록 조장한다는 이유에서 집합 페로몬 aggregation pheromone으로 불린다(또한 모든 빈대는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개체들에게 이를 경고하는 신호로서 경보페로몬을 분비하고, 특히 암컷은 유충들이 생애 첫 먹잇감을 사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화학적 신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집합페로몬을 감지하고 은신처가 안전한 곳이라면 빈대들은 성충과 유충을 가리지 않고 다섯에서 열 마리씩 집단을 이룬다. 그렇게 무리를 이룬 빈대는 알들 사이에 서로 밀착한 채로 지내면서 허물을 벗고 배설한다. 특히 빈대는 여러 마리가 함께 있을 때 퀴퀴한 곰팡내와 달콤한 과일 향이 뒤섞인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1936년에 어떤 곤충학자는 그 냄새를 "불쾌한 단내"라고 말했다. 
 

- 흡혈 식사로 속을 든든히 채운 빈대는 가끔 자연계에서 가장 난잡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짝짓기에 돌입한다. 식사 후에 짝짓기를 시도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배가 부른 암컷의 행동이 느려지는 데다가 몸통이 통통해져 수컷이 올라타기가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언젠가 술집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말인데, 어떤 곤충학자는 이런 짝짓기 습성을 빗대어 빈대가 "통통한 몸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다고 말했다). 빈대는 무척추동물 중에서 외상성 수정 traumatic insemination이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짝짓기 하는 소수의 생물종에 포함된다. 빈대의 교미 방식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형태인 동시에 연구 대상으로도 가장 인기가 높다. 그렇다면 빈대는 어떻게 교미하는 걸까? 먼저 수컷이 암컷의 등에 올라타고, 그런 다음 대략 목 부위에 해당하는 암컷 앞가슴의 위쪽 배판에 머리를 턱 하니 걸친다. 수컷은 발에 달린 갈고리로 암컷을 붙잡은 다음 복부를 집어넣어 몸을 동그랗게 말아 암컷을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암컷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칠게 포옹한다. 수컷의 복부 끝에는 피하기관이 하나 있는데, 송곳형 생식기 lanceolate paramere라고 불리는 것으로 사실상 수컷의 음경이다. 수컷은 날카로운 생식기로 암컷의 복부를 순식간에 찌르고 암컷의 체강에 정액을 직접 주입한다. 이것은 낭만적인 합방이라기보다는 마구잡이식 찌르기에 가깝다. 

 

- 몸통 아무 데나 찔러 대는 수컷의 이런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암컷 빈대도 나름의 보호기관을 진화시켰는데, 정자유도관 spermalege이 그것이다. 암컷의 복부 오른쪽에 브이자 모양의 작은 홈이 파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자유도관이다. 생긴 것은 그래도 정자유도관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말 그대로 수컷의 생식기를 정확한 부위로 유도하는 임무다. 다시 말해 수컷이 날카로운 생식기를 아무 데나 마구 찔러 대도 암컷은 수컷이 정확한 목표 지점을 찾아가도록 교묘히 이끈다. 정자유도관내부에는 혈구 hemocyte라는 면역 세포가 다량 분포하는데, 그것은 포유류의 백혈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즉 암컷이 수컷의 생식기 표피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주고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한편 정자는 자체적인 항균성이 있어서, 두 가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정자 자신이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할 뿐 아니라 암컷에게는 혈구와 더불어 추가적인 보호막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암컷의 체내에 들어온 정자는 암컷의 순환계까지 도달하고, 궁극적으로 자궁에 붙은 작은 주머니인 저정낭에 모인다. 암컷은 저정낭에 정자를 보관하면서 수정할 때마다 곶감 빼먹듯 조금씩 빼 쓰고, 추가적인 교미가 없어도 저정낭에 보관된 정자만으로 길게는 5~6주에 걸쳐 수정이 가능하다. 이것은 가령 소박맞은 암컷이 새로운 은신처에서 홀로 생활할 때 특히 유용한 전략이다. 

 

- 수정 후에 암컷은 매주 다섯 개 남짓한 알을 낳는다. 일생 동안에는 수백 개의 알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에 대한 접근성과 서식지의 온도 같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암컷 빈대가 낳는 알의 개수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몇 개의 알을 낳든 어미빈대는 끈끈한 점착성 물질을 분비해서 알들을 한데 뭉친 다음 서식지의 표면에 단단히 부착한다(언젠가 브루클린의 어떤 방역업자는 걸걸한 목소리로 빈대 알들이 "마치 작은 캐비아 같다"고 말했다. 반면 나는 나중에 빈대알들이 작은 쌀알을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 암컷은 생식기를 통해 산란하는데, 암컷의 생식기는 좀 더 전통적인 교미 수단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수컷은 필요 이상으로 자주 암컷의 몸을 찌르고 사정을 한다. 암컷 빈대가 가장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는 최적의 교미 간격은 식사네 번에 짝짓기 한 번이다. 그러나 대체로 수컷은 같은 기간에 스무 번에서 스물다섯 번까지 짝짓기 한다.

 

- 만약 하나의 개체군에 암컷보다 수컷의 개체 수가 너무 많으면 어떻게 될까? 끓어오르는 정력을 주체 못 한 수컷들은 암컷들을 마구 찔러 상처를 내고 더군다나 상처에서 회복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아 결국 암컷들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아니 일부 과학자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 이렇듯 빈대의 기이한 짝짓기 의식에 대한 곤충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빈대는 어째서 그토록 괴이한 방식으로 교미하는 걸까? 대답은 성적 갈등 sexual conflic이라는 진화생물학적 개념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것은 특정한 종의 수컷 혹은 암컷이 이성性을 희생시키면서 번식 가능성을 높여 주는 특징들을 진화시킨다는 이론이다. 그들의 파트너도 이런 달갑잖은 진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공동으로 진화시킨다. 이런 성적 군비경쟁 sexual arms raceIce 은 자연계에서 꽤나 보편적이다. 가령 초파리의 세상에서는 암컷의 생식기에서 가능한 한정자를 오래 살려 두려는 수컷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암컷 사이에 총성 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한편 사향오리 수컷은 기다란 소용돌이 모양의 음경이 있는 반면, 암컷은 음경의 소용돌이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진 복잡한 질을 가지고 있어 원치 않은 구애자들을 쫓아버릴 수 있다. 빈대의 경우, 수컷이 암컷의 몸에 생식기를 직접 찌르는 방식은 다른 수컷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 생식기를 암컷의 몸에 직접 찔러 넣어 난소에 좀 더 가까워짐으로써, 수컷은 전통적인 교미 방식을 선택한 다른 수컷보다 자신의 정자가 조금 더 빨리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만들려는 걸 수 있다.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암컷의 저정낭에 마지막으로 도달한 정자가 난소에 가장 먼저 안착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암컷과 맨 나중에 교미한 수컷이 아버지 되기 경주에서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수컷들이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짝짓기를 해 대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수컷의 행위를 좌절시키고자 하는 암컷의 적응 전략에 대항해서 수컷이 그런 교미 방식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이다. 이유야 무엇이건 과도한 교미에 대한 적절한 저항 전략이 부족한 암컷 빈대에게는 불행하게도 현재 교미를 둘러싼 성 대결에서 패자처럼 보인다.
 

- 이 모든 활동은 시멕스 렉툴라리우스라고 불리고 15 년 전부터 전 세계 온난 기후대에서 다시 출몰한 빈대의 숨겨진 은밀한 세상을 설명해 준다(이 책에서 말하는 '빈대'는 주로 시멕스 렉툴라리우스를 의미한다). 빈대와 비슷한 음지의 삶을 영위하는 동족 생물종이 100여 종이나 되고, 대부분은 우리의 침실보다는 새 둥지나 박쥐 서식지에 기생하면서 비둘기, 닭, 참새, 생쥐귀박쥐의 피를 빨아먹는다. 이런 곤충을 통틀어 빈대과 Cimicidae 혹은 Cimicids라고 명명한다. 
 
- 린네 분류법에 따르면 빈대과 곤충은 반시류  Hemiptera, 영어로는 두 단어로 '진짜 곤충 true bug'이라고 부른다. 곤충학자들이 반대를 영어로 두 단어인 '베드 버그 bed bug'로 부르는 것은 빈대가 진짜 곤충에 속하기 때문이다(반면에 집파리 house fly의 영어 이름이 두 단어인 것은 파리가 진짜 파리이기 때문이지만, 나비 butterfly의 영어 이름이 한 단어인 것은 나비가 진짜 파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반시류 곤충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먹잇감의 외피에 구멍을 내어 내부의 액상 물질을 빨아들이기 위해 흡수형 구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액상 물질은 나무 이파리의 수액이나 다른 벌레의 체액 혹은 반시류의 경우처럼 더욱 복잡한 체계를 가진 동물의 혈액일 수도 있다.

 

- 진짜 곤충들을 총칭하는 반시류라는 용어는 '절반 half'을 뜻하는 그리스어 헤미 Hemi와 '날개 wing'를 뜻하는 프테라 Ptera에서 유래한다. 반시류는 몸통에 붙어 있는 날개의 위쪽은 딱딱한 껍데기로, 끝 쪽은 얇은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헤미프테라, 즉 반날개 혹은 반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많은 반시류 곤충의 날개는 접었을 때 특유의 엑스 x 자 모양을 이룬다. 하지만 반시류 중에서 유독빈대과 곤충은 발육이 정지되어 흔적으로 남은 유명무실한 날개를 가지는데, 아마도 동물이 가진 가장 단순한 먹이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냥 앉아서 먹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 말이다. 그런 곤충은 어차피 때가 되면 새가 둥지로 돌아가고 박쥐가 서식지로 돌아가듯 우리가 밤이면 늘 침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굳이 날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날개는 식사 중에 날개의 깃털과 몸통의 털이 서로 뒤엉키는 것처럼 빈대과에게는 되레 성가신 기관일 수 있다. 

 

- 또한 새로운 빈대는 털도 줄어들었는데, 박쥐보다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인체를 쉽게 오르기 위해서였다. 한편 다리는 박쥐에 기생하던 빈대에 비해 길어졌다. 다시 말해 털로 뒤덮인 박쥐의 몸을 쉽게 붙잡으려면 짧고 강한 다리가 유리했지만, 덮쳐 오는 인간의 손을 잽싸게 피하려면 길고 날렵한 다리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박쥐들이 동굴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는 낮이 아니라 밤에 먹이 사냥을 할 수 있도록 24시간 주기리듬 circadian rhythm에도 변화가 생겼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빈대는 숙주의 수면 주기에 맞춰서 식사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한다. 새로운 빈대는 이런 유익한 특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류가 마을 등지에서 정착해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서로의 생활공간이 한결 가까워졌다. 그러자 인류와 빈대와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졌다. 빈대는 인구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주택지에서 번성했고, 난방기를 사용하는 집 안의 열기가 빈대들의 번식과 확산에 일조했다. 더군다나 초기 문명은 무역과 여행을 통해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확대시켰고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문명이 점점 옮겨가자, 빈대 사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 인류가 빈대와 공존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로 가장 오래된 것은 텔 엘 아마르나 지역 Tel el-Amarna에서 나온다. 대략 기원전 1352~1336년 사이에 형성된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인 그곳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7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곳에 존재하던 도시 아케타텐 Akhetaten에서 아케나텐 Akhenaten과 스멘크카레 smenkhkare라는 두 명의 파라오가 통치하던 시절 약 25년간 거주했다. 아케타텐은 스멘크카레에 이어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 투탕카멘 Tutankhamun 이 통치를 시작하기 직전에 몰락했다. 그 지역의 덥고 건조한 날씨 덕분에 벼룩과 몇몇 식품해충 food pest 등 다양한 곤충의 살점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런 곤충 화석 중에 빈대도 포함되었다. 특히 빈대 화석은 당시 수도인 아마르나 지역에서 무덤을 건설한 노동자와 경비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발굴되었다. 그뿐 아니라 빈대는 기원전 3세기에 작성된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1,000년 이상을 살아온 것이 틀림없다. 그파피루스에는 빈대를 몰아낼 주문이 적혀 있다. 또한 빈대는 그 이후에도 아마르나 지역에 계속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랍 출신의 학자인 알자히즈 Al-Jahiz에 따르면, 최소한 9세기에 이르러 빈대가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빈대는 따뜻한 피를 먹으며 특히 인간의 혈액을 아주 좋아한다. 빈대는 보호색같이 자신을 보호해 줄 아무런 장치가 없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집트를 비롯해 환경이 비슷한 여러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 초기의 역사 문헌은 빈대와 열대빈대를 구분하지 않았고, 특히 빈대와 열대빈대가 공존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중동 지역에서 발원하고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경전들에서 빈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 먼저 기독교부터 살펴보면, 2세기 사도들의 전설을 설명하는 <신약외경>에 빈대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신약외경>에서 요한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빈대가 밤중에 요한을 공격한다. 요한이 빈대에게 말한다. "벌레들아. 내가 이르노니, 오늘 밤은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얌전히 머물 것이며, 하나님의 종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그러자 벌레들은 다음날 아침까지 요한의 충고를 따랐다. 요한은 벌레들의 착한 행동을 칭찬하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벌레들은 "문에서 침대로 서둘러 돌아갔고 침대 다리를 타고 올라가 이음새 사이로 사라졌다." <신약외경>에서 그 벌레를 '빈대'라고 명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비록 먹잇감이 하나님의 종이든 아니든 빈대는 결코 그렇게 착하게 행동하지 않지만) 그 벌레들이 빈대처럼 침대의 이음새에 숨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 유대교의 <탈무드>는 최소한 두 군데서 빈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둘 중에서도 더욱 확실한 구절은 4~6세기에 기록된 랍비들의 전통적인 구전 율법인 <미쉬나 Mishnah>의 월경법 Niddah에 나온다. 여성의 순결과 월경에 관한 규칙을 설명하는 <미쉬나>의 월경법에는 침대보나 옷에 월경 피를 묻히는 여성은 불결하기에 7일이 지난 뒤 정화 의식으로 목욕을 하기 전까지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상처에서 배어 나왔거나 낮에 도축하는 과정에서 묻었거나 혹은 으깨진 빈대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침대보나 옷에 묻은 피가 월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여성은 순결하다고 여겨졌다(오늘날 유대인의 공통어인 이디시어 yiddish로 빈대는 반트슨 yantsn으로 불리는데, 의미 그대로 옮기면 '빈대'를 뜻하고 의역하면 '혐오감을 주는 작은 생명체'를 지칭한다. 키가 작은 사람들을 욕보이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반첼 vantzel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바로 반트슨이다).

 

- 마지막으로 이슬람교에 등장하는 빈대 이야기를 해 보자.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9세기에 기록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 Hadith> 중 사히흐 알부카리 Sahih al-Bukhari의 기록을 보면 빈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 경전에서 무함마드는 "침대에 누울 때는 옷자락으로 침대 먼지를 세 번 털어 내야 한다"라고 이른다. 학자들은 이 문장을 잠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빈대 은신처를 청소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 빈대의 확산 경로에 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오늘날 중동으로 불리는 지역과 북아프리카를 기점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는 설이다. 빈대가 지중해를 어떻게 횡단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해상무역이 왕성했던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를 종횡하는 무역선을 타고 전파되었다는 시나리오가 꽤나 설득력이 있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의 설명에 따르면, 적어도 기원전 423년 무렵에는 빈대가 그리스에서 존재했다. 그뿐 아니라 훗날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와 디오스코리데스 Dioscorides도 빈대를 언급했다. 그리스에서 빈대는 코리스 koris라는 이름을 얻었고, 일부 곤충학자들은 그 단어가 독특한 향을 가진 식물인 고수 coriander의 어원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으깬 고수 씨앗에서 속이 느글거릴 만큼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그것이 빈대 무리가 풍기는 냄새와 비슷하기 때문인 듯하다.

 

-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은 빈대가 해충인 동시에 수많은 질병에 효능이 있는 동종요법 치료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가령 빈대를 쫓아 버리기 위해 그저 토끼나 수사슴의 발을 침대에 매달아 두었던 반면, 열이 날 때는 빈대를 고기와 콩과 함께, 뱀에 물렸을 때는 빈대를 하고, 거머리를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빈대를 포도주 혹은 와인과 섞어서 섭취했다. 여기에 더해 비뇨기 통증을 치료하거나 빠진 속눈썹을 다시 자라게 하고 싶을 때는 빈대를 으깨어 만든 연고를 사용했고, 빈대의 체액으로는 제모제를 만들었다. 

 

- 서기 77년 즈음에 빈대가 오늘날의 이탈리아 땅을 밟게 되었다고 로마시대의 학자이자 백과사전 편집자였던 대 플리니우스 Gaius Plinius Secundus가 말했고, 이후에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Quintus Horatius Flaccus의 시에도 등장하게 된다. 로마인들은 빈대에게 근대 라틴어 명칭의 앞부분인 시멕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시멕스는 '벌레'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약 1,000년이 흐른 후 생물분류학의 아버지인 스웨덴 출신의 위대한 식물학자 린네가 시멕스에 단어 하나를 추가해 마침내 빈대의 학명인 시멕스 렉툴라리우스가 완성되었다. 이는 '침대 벌레' 혹은 소파 벌레'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플리니우스도 빈대가 약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고, 콩과 함께 섭취하는 그리스인들의 처방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귓병에는 빈대를 태운 재와 장미유를 섞어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 유럽을 출발해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입성한 식민지 주민들에게는 자신들도 모르는 동행이 있었다. 바로 빈대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심지어 메이플라워호에도 빈대가 있었다. 일부 영국인들은 실제 이야기는 그것과 정반대라면서, 빈대가 신대륙에서 출발한 목재운반선에 실려 영국으로 잠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빈대는 나무가 아니라 인간의 혈액을 빨아먹고 살기에, 가공되지 않은 원목에 빈대가 처음부터 기생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1748년에는 영국의 식민지에서부터 캐나다까지 빈대가 확산된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빈대가 식민지의 관문이었던 항구 마을에 상륙한 다음 무역과 여행을 통해 차츰 내륙의 식민 정착지로 이동했다. 

 

- 식민 정착지가 확장하면서 빈대의 영역도 덩달아 확대되었고, 급기야 빈대는 "빨간 코트 red coat"와 "적갈색 납작 벌레 mahogany flat"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빈대는 중고 가구, 여행자들의 가방, 하녀의 세탁 바구니에 몸을 숨겨 가정으로 잠입했고 점차 이웃집과 인근의 공동주택으로 확산되었다. 빈대는 주택만이 아니라 사무실과 극장에서도 창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대는 개척지를 찾아 떠나는 숙주들과 함께 긴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숙주들과 함께 포장마차를 타고 미국 서부를 정복했고 훗날에는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점령했다. 척박하고 거친 대초원에서의 삶을 회고하는 어떤 글에 뗏장집의 벽을 숟가락으로 긁어서 빈대를 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빈대 천지였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빈대가 얼마나 만연했었는지 쉽게 짐작된다.

 

- 마침내 미국 원주민들도 빈대를 일컫는 단어를 만들었다. 나바호족 Navajo은 우시츠일 리 wósits ti로, 체로키족 Cherokee은 갈루이스디 galwisdi로 부른다. 한편 호피족 Hopi은 빈대 혹은 빈대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곤충을 통틀어 페세츠올라 pesetsola라고 총칭하는데, 이는 '빈대 사냥에 나서다'는 뜻으로 누군가가 잠이 드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페세츠올마크누마 pesets'olmagnuma라는 동사가 그 단어에서 파생했다.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역사기록 중에 빈대가 등장하는 문헌은 아주 소수다. 그런 문헌에 따르면 호주에서도 빈대는 미국 대륙과 비슷한 경로로 침투했다. 1700년대 후반 최초 유럽 정착민들과 함께 호주에 첫발을 디딘 다음 점차 대륙 전체로 확산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비단 미국과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온대 지역에 위치한 다른 유럽 식민지들도 똑같은 경로로 빈대의 침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다들 빈대와 관련해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1900년대 초반 미국은 그야말로 빈대에 점령당했다. 뒷골목에서부터 고급 호텔에 이르기까지 출몰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뉴저지 주에 베드버그 힐 Bed Bug Hill이라는 지명이 생기고 캘리포니아에 베드버그 Bed Bug라는 광산 도시가 생겨났을까. 심지어 과학기술 전문지인 <파퓰러 메카닉스 Popular Mechanics>와 <빌보드 Billboard> 같은 잡지는 모형 빈대 한 봉지를 약 10 센트로 판매했다. 또한 빈대는 예술계에도 침투했다. 가령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는 빈대를 가지고 짓궂은 장난을 쳤다. 빈대 가족을 수채화 물감으로 실물과 가깝게 그린 다음 하나하나를 오려서, 화가였던 월터 티틀 Walter Tittle의 베개에 붙여 놓은 것이다. 미국인들은 변비, 기침, 치질, 간질환, 근육수축, 피부 질환, 유정, 잦은 하품 등에는 물론이고 말라리아 환자의 고열과 오한을 치료하기 위해 빈대를 팅크 tincture 및 여러 의료용 혼합제제와 섞어 사용했다. 그리고 미시건 주립대학교는 1926년에 특별 농업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빈대가 아주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 퍼져 있던 터라 '빈대 없는 미국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을 듯싶다"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 빈대의 침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빈대는 일상생활만이 아니라 그것에 관한 예술적 표현에까지 파고들었다. 예컨대 영국의 위생곤충학자로 1950~1960년대에 다양한 실험으로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강력한 저항성을 증명하는 일조했던 제임스 로널드 버스바인 James Ronald Busvine은 흡혈충이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소재임을 이해했다. "빈대는 경건함, 사랑, 인간의 무가치함에 대한 상징으로서 문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또한 빈대는 상스러운 글 가짜 약, 병적인 흥미의 주제이기도 하다." 

 

- 사실 빈대는 업튼 싱클레어 Upton Sinclair, 싱클레어 루이스 Sinclair Lewis, 랭스턴 휴스 Langston Hughes,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 존 도스 패서스 John Dos Passos, 윌리엄 버로스 William Burroughs,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헨리 밀러 Henry Miller 같은 위대한 문호의 작품에 당당히 얼굴을 들이민다. 특히 헨리 밀러는 자신의 대표적인 일곱 개의 작품에서 빈대를 등장시킬 만큼 빈대에 대한 애정이 아주 각별했다.

 

- 문학만이 아니다. 빈대는 음악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BlindLemon Jefferson의 <검은 뱀의 신음 Black Snake Moan>에서부터 로니 존슨 Lonnie Johnson, 퍼리 루이스 Furry Lewis, 베시 스미스 Bessie Smith 등등 많은 블루스 가수들이 불렀던 <비열하고 늙은 빈대 블루스 Mean Old Bed Bug Blues>에 이르기까지, 초기 블루스 음악에서 빈대는 탄식의 대상이다. 그뿐 아니라 <비열하고 늙은 빈대 블루스>는 블루스를 넘어 미국의 컨트리음악에 진출했다. 텍사스의 음유시인으로 불렸던 어니스트 브 Ernest Tubb가 1936년 그 노래를 기타 연주와 요들이 포함된 버전으로 녹음한 것이다. 1950~1960년대에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칼립소 Calypso가 빈대와 성적인 주제를 결합시켰다. 예를 들어 마이티 스포일러 Mighty Spoiler는 <빈대 The Bed Bug>라는 제목으로, 로드 인베이더 Lord Invader는 <환생 Reincarnation>이라는 제목으로 불렀던 노래를 보면, 여성의 엉덩이를 깨물기 위해 빈대로 환생하고 싶다는 가사가 나온다. 그리고 로드 키치너 Lord Kitchener가 부른 <뮤리엘과 벌레 Muriel and the Bug>에서 벌레가 뮤리엘의 보물을 찾는다. 

 

- 다시 당신의 침실 이야기로 돌아가자. 깨끗하든 지저분하든 혹은 당신이 누구든 간에 상관없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뭐에 물렸는지 몸이 가렵거나 침대보에 마른 핏자국이 묻어 있다고 하자. 혹은 곰팡이나 후춧가루처럼 생긴 작은 얼룩이 매트리스 가장자리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을 수도 있다.  
 

- 디디티는 1943년 후반 연합군이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로부터 북아프리카와 남부 이탈리아를 탈환한 후에 명성을 떨칠 결정적인 기회를 맞게 된다. 나폴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규모가 작은 몇몇 이탈리아 마을들이 발진티푸스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대유행으로 번질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지난 15년간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발진티푸스가 크게 유행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그곳 주민들은 발진티푸스에 특히나 취약했다. 주민 열 명 중 약 아홉 명이 이에 옮은 걸로 추정되었다. 게다가 그 지역은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통치자가 갑자기 바뀌는 통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식품과 비누 등의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는 운송 및 연락 망이 붕괴됐고, 주민들은 독일군과 연합군의 공습을 피해 나폴리의 석회암 언덕에 있는 수백 개의 방공호로 피신했다. 고로 발진티푸스가 대유행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 그해 말 디디티는 그 지역에서 말라리아모기 퇴치하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디티는 전 세계 전쟁터에서 제일가는 살충제가 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은 디디티의 도움으로 인류의 전쟁사를 새로 썼다. 미국의 경우 전투로 인한 전사자보다 질병으로 말미암은 병사자가 더 적은 최초의 대규모 전쟁인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도 최근 벌어진 전쟁들 중에서 병사자가 적은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다. 뮐러는 디디티의 접촉성 살충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 다우 Dow와 듀폰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은 농장, 정원, 가정에서 디디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직접광고를 내보냈다. 그뿐 아니라 미국 농무부도 그런 곳에서 디디티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안내 책자를 배포했다. 특히 살충제 브랜드인 플리트 Flit의 유명한 광고캠페인 하나에서는 시어도어가이젤 Theodor Geisel이라는 유망한 신예 만화가가 삽화를 그렸다. 그는 훗날 닥터 수스 Dr. Seuss라는 이름을 달고 아동작가가 된다. 또 다른 유명 광고로는 1947년에 발행된 <타임>에 펜솔트 케미컬 Pennsalt Chemicals사가 게재한 전면 컬러 광고가 있다. 그 광고를 보면 강아지, 사과, 주부, 암소, 감자, 닭이 즐겁게 노래한다. "디디티는 나한테 정말 좋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소수일지언정 전 세계 곳곳에는 살충제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빈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디디티에 저항성이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그런 빈대의 디엔에이에 숨어서 화려하게 귀환할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빈대가 귀환할 기회를 엿보던 몇십 년 동안 7,6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는 운 좋게도 빈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로 살았다. 이는 그들의 형제자매들은 물론이고 아들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빈대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에 지구상에 잠깐 존재했던 곤충이라고만 알 따름이었다. 

 

- 1965년 메릴랜드 주 애버딘 Aberdeen에 소재한 제한전쟁실험소 Limited WarLaboratory의 군 소속 곤충학자들은 빈대를 전장에 투입할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베트남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졌고, 베트콩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예상한 것보다 전투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베트콩은 밀림에 익숙한 덕분에 미군을 매복 공격하기가 쉬웠고, 따라서 미군은 밀림에서 게릴라들을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미군은 밀림의 울창한 숲이 더는 게릴라 공격의 은폐물이 될 수 없도록 에이전트 오렌지 agent orange와 여러 고엽제를 사용해서 무성한 녹색 숲을 파괴했다. 또한 파괴된 밀림에서 숨어 다니며 은밀하게 활동하는 베트콩들을 색출하기 위해 후각이 예민한 셰퍼드들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애버딘의 연구가들은 빈대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유용한 정찰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1958년 런던 의학대학원의 제임스 로널드 버스바인이 빈대의 디디티 저항성과 더불어 디디티와 비슷한 몇몇 살충제에 대한 교차저항성 cross-resistance을 증명했다. 특히 널리 사용되던 천연 살충제 피레트린 pyrethrin에 대한 저항성은 무려 열 배나 증가했다. 1964년 과학자들은 5년 전에 저항성이 증명되었지만 이후에는 어떠한 살충제에도 노출되지 않았던 빈대로 저항성 실험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빈대의 디디티 저항력은 여전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거미류를 포함해 디디티에 강한 면역력을 보이는 이, 모기, 집파리, 초파리, 바퀴벌레, 진드기, 열대빈대 등의 곤충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1969년 어떤 곤충학 교수가 그런 현상에 대해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지난 25년간 벌어진 사건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가르친다. 첫째, 인류가 개발한 화학적 해충 방역 수단은 거의 모두가 결국 무용지물이 된다. 둘째, 해충 방역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역동적인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다른 말로화학 방제와 해충의 경주에서는 언제나 해충이 앞선다." 

 - 시비에스는 2010년을 "빈대의 해"로 명명했고 해충을 그해의 가장 중요한 건강 기사 중 하나에 포함시켰다. 물론 이런 기사들이 빈대에 관한 최초의 언론 보도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통해 빈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외계인만큼이나 생소한 해충이 우리의 성역인 침대 속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마우스를 한 번 클릭하거나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위 여부와는 무관한 모든 이야기가 공유된다.  
 

- 진짜 빈대의 재출현은 최초 언론 보도가 있기 몇 해 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인구밀도가 높은 미국의 동부 해안 지역과 대도시들에서 산발적으로 빈대가 나타났고,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빈대가 재출현했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뉴욕에서 빈대가 최초로 보도된 사례 하나는 1996년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사이드 Upper West Side에 위치한 어떤 호스텔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 빈대 서른대여섯 마리가 알코올에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그 유리병을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 바로 아래에 고이 모셔 두었고, 가끔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잡아 천천히 빙빙 돌려 보곤 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아주 자주, 그것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그러면 스노 글로브 snow globe를 흔들 때처럼 빈대가 투명한 액체 속에서 공중제비 넘듯 움직이고, 유리병 바깥에 붙은 라벨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빈대, 시멕스 렉툴라리우스 L. 집에서 기른 개체군, 2010년 9월, 메릴랜드 크라운스빌, H. J. 할런." 빈대들이 할런의 팔에서 피를 배불리 빨아먹는 동안 나는 그 상황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몸을 앞으로 기울여 관찰했다. 빈대의 몸이 빵빵해지고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느낌이세요?"
"무언가가 아주 살짝 찌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참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어찌 보면 붓으로 팔을 문지르는 것 같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그림 그릴 때 쓰는 약간 뻣뻣한 붓 말입니다."
     

- 소방관들이 도착하고 20분 만에 화재는 진압되었다. 새까만 숯이 된 증거와 몇몇 목격자들의 증언을 짜 맞추어 소방관들은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 살던 젊은 남자가 빈대를 잡기 위해 침대에 소독용 이소프로필알코올 isopropyl alcohol을 뿌린 것이 화재 원인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소방 당국은 그 남자가 이소프로필알코올을 뿌린 다음에 담뱃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켰다가 폭발하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재산 피해가 최소 2만 달러에 이르렀고, 아파트 관리인은 그의 가족을 아파트에서 내보냈다. 

 

- 그러나 뒷이야기는 약간 달랐다. 인터넷으로 오하이오의 어떤 신문에 실린 그 화재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정말 빈대가 사람을 그렇게까지 무모하게 만들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방 전체에 알코올을 뿌리고 라이터를 켰을까? 만일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나도 그와 똑같은 절박한 선택을 했을까? 그 기사를 다시 찬찬히 읽어 보니, 비록 정확한 번지수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아파트가 위치한 거리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다. 화재 발생 장소를 내 눈으로 꼭 보아야 했다. 다행히도 직접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구글의 스트리트뷰 Street View로 신시내티의 그 거리를 검색했고 이미지를 확대했다. 그리고 문제의 아파트 단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몇 블록을 샅샅이 뒤졌다. 드디어 찾았다. 그런 다음 이미지를 다시 확대해 가능한 한 모든 각도에서 그 건물을 살펴보았다. 벽돌 건물은사방이 깔끔한 잔디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번지수는 보였지만 그 외에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내 나는 화재가 발생한 세대의 정확한 주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아파트 계약 정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평범한 그 동네에서 추운 가을날새벽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시켜 줄 정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부동산 임대 웹사이트에서 그 아파트의 세대 하나가 매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빈대로 얼룩진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 나는 답장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아파트 관리인에게서 온 전화였다. 처음에 관리인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짝 혼란스러워했고 또한 내 짐작이지만 내가 아파트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실망한 듯했다. 그런데도 관리인은 자신이 아는 대로 그 화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신문에서 읽은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단 한 가지,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담뱃불을 붙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침실에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물 담뱃대에 불을 붙였어요. 그런데 담뱃대가 마치 대포처럼 방을 가로질러 날아갔어요. 그래서 알코올에 불이 옮겨 붙었고 모든 것이 불타 버렸죠."
"물 담뱃대요?" 내가 반문했다. "대마초 피울 때 사용하는 담뱃대 말씀인가요?"
"네. 맞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게다가 케이크를 굽는 중이라 오븐을 켜 놓고 있었대요. 오븐만이 아니라 집 안의 가전제품은 모조리 전원이 켜져 있었대요.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박혔기에 새벽 3시에 그런 짓을 할까요?" 

- 그렇다면 마약에 취한 사람만이 빈대를 불태워 죽일 무모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았다. 옛날 신문 기사를 좀 더 검색하다가, 미국 전역에서 빈대 때문에 의도치 않은 화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민간 처치법으로 빈대를 직접 잡으려다가 실수로 집에 불을 냈던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침대나 소파에 소독용 알코올이나 인화성의 일반 살충제 또는 둘 다를 뿌린 다음 담뱃불을 붙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가 빈대를 죽인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후 히터나 라디에이터의 온도를 지나치게 올렸다가 집에 불을 내기도 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대개는 수천 달러 하는 전문적인 열처리 비용을 아끼려다가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전문가들도 불을 낼 뿐만 아니라 그런 사건에 대비한 특별 보험도 있다고 한다. 

 

- 나는 표백제, 염소 가스, 약국에서 판매하는 정원용 살충제에 중독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분무식 살충제가 빈대를 죽이지 못한다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어설픈 불꽃놀이를 하듯 그런 살충제를 너무 많이 그것도 동시다발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1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and Prevention가 발표한 '주간 질병률과 사망률 보고'에서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어떤 남성이 우발적인 사고로 65살의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읽었다. 그의 아내는 평소 심장에 문제가 있었고 신장질환, 제2형 당뇨병,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미등록된 두 종류의 살충제와 스프레이 깡통 살충제 일곱 통을 집 전체에 뿌리는 바람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었다.

 

-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방역업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몇 가지 방법을 혼용한다. 이른바 병해충종합관리 integrated pest management라고 불리는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에는 살충제 외에도 일반 청소와 진공 청소, 빈대가 고춧가루처럼 빨개질 때까지 열을 가하는 열처리, 의류와 침구류를 뜨거운 물로 세탁하고 고온으로 말리는 방법, 산업용 증기 분사기를 사용한 가구 증기살균 등이 포함된다. 또한 규조토 diatomaceous earth라고 불리는 석회화된 해조류나 이산화규소로 만든 분말을 방에 뿌리는 방법도 포함되는데, 규조토와 이산화규소는 곤충의 외부 골격에 함유된 지방을 흡수하고 탈수 증상을 유발시켜 죽인다. 그뿐 아니라 천막을 쳐서 밀폐시킨 건물이나 트레일러에 독가스를 가득 분사하는 것을 비롯해 황화 불소 sulfuryl Auoride를 이용한 훈증 소독법도 사용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화학 산업에 우호적인 전문가들은(비록 대부분이 화학 산업에 우호적이지만) 빈대 문제가 아주 심각할 때 가격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면서 효과적인 대안은 살충제라고 주장한다. 한편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는 저항성이라는 복병이 있다. 다시 말해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해도, 저항성을 가진 까다로운 빈대를 퇴치하기에는 살충 효과가 너무 느리다. 그리하여 오하이오의 해충 방역업자들에게는 더 강력한 살충제가 필요했다.  

 

- 18조 면제조항은 연방 살충제 살균제·살서제 법으로 환경보호청에게 미국 내 살충제를 통제할 권한을 부여한다. 이 면제조항에 따라서 환경보호청은 주 정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등록 외적인 용도로 특정 살충제를 사용하도록 허락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먼저 그 살충제가 반드시 필요한 긴급 상황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살충제가 요청된 방식으로 사용해도 합리적 수준에서 안전해야 한다. 빌은 대학의 곤충학자들과 화학 회사의 대표자들에게서 지지 서한을 다섯 통 받았다. 그리고 신시내티 외곽에서 물 담뱃대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일주일 전에, 그런 지지 서한을 첨부해 환경보호청에 세 가지 프로폭서 제품에 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런 다음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빈대에 관심을 갖고 탐구를 시작했던 초기의 일이다. 나는 버지니아 공대의 곤충학자로 미국에서 현대적인 빈대 실험실을 최초로 설립한 사람 중에 하나인 디니 밀러를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살충제를 오용해서 집을 홀라당 불태우거나 스스로 중독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느 저녁 태국 식당에서 만났을 때 밀러는 자신이 연구와 에너지를 대부분 집중시키는 버지니아에서 빈대와 공공주택이 연출한 극적인 드라마를 시간 순으로 재빨리 설명했다. 나는 카레 음식을 먹는 짬짬이 그녀의 이야기를 간추려 노트에 기록했다. 밀러는 살충제와 관련된 법률이 빈대 발생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빈대 확산을 통제하는 데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런 다음 대화는 살충제와 살충제를 규제하는 방식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살충제 규제 방식은 해충 방역업자들이 빈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런 대화를 통해 프로폭서 논란과 오하이오 주와 환경보호청 간의 대치 상태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리스크 컵 risk cup 개념 전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 나는 기록하던 손을 멈추고 밀러를 쳐다보았다. "네? 리스크 컵이요? 진짜 컵 같은 건가요?"

밀러는 나를 쳐다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서 연민과 체념이 느껴졌다. 리스크 컵 개념은 쉬운 주제가 아니었고, 그녀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기요,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군요.' 그런 다음 밀러는 아이스티와 물이 담겨 있던 유리잔을 교육 도구로 삼아서 환경보호청의 리스크 컵 개념에 대해 속성 과외를 해 주었다.

- 밀러는 상상의 컵으로 우리의 살충제 노출 정도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말해 그날 태국 식당에서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리스크 컵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였다. 나는 며칠 동안 담당 기관인 환경보호청의 문서를 이 잡듯이 뒤졌다. 또한 환경보호청 담당자와도 장장 한 시간여에 걸쳐 고통스러운 전화 상담을 했다. 그제야 비로소 리스크 컵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리스크 컵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설명해 주겠다. 작은 컵 하나를 떠올려보라. 감기약의 병뚜껑처럼 눈금이 새겨진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다. 그리고 당신의 수명이 70세라고 하자. 평생 동안 미량의 살충제가 당신의 체내로 유입될 때마다 각 살충제의 잔류 성분이 그 컵에 축적된다. 씻지 않은 사과를 먹고, 욕실 싱크대 아래서 바퀴벌레를 발견한 후에 레이드 스프레이를 사방에 뿌리고, 프로폭서가 함유된 벼룩 잡는 목걸이를 목에 건 강아지와 최근에 제초제를 뿌린 뒷마당에서 공 던지기 놀이를 하는 등등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컵이 꽉 차지 않는 한 그런 살충제 때문에 암 같은 건강상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노출되면 컵이 넘치게 된다.  
 

- 리스크 컵 아이디어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30여 년 전이었다. 그러나 현대판 리스크 컵 개념은 1996년 식품품질보호법 Food Quality ProtectionAct에 명시되어 데뷔했다. 식품품질보호법은 연방 살충제 살균제 살서제 법과 그것과 관련 있는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 Federal Food, Drugand Cosmetic Act의 개정법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식품 안전을 위해 도입한 식품품질보호법에는, 최신 과학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되었고 어느 정도는 레이첼 카슨과 그녀의 저서 <침묵의 봄>이 남긴 유산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새로운 살충제 안전 요건이 포함되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식품 품질보호법을 도입한 것은 일반적인 살충제가 국민의 건강, 특히 어린아이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확실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 미국 연방 정부는 식품 품질에 관한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농업용 살충제에 노출될 수 있는 모든 환경과 관련해 살충제각각에 대한 리스크 컵 개념을 적용했었다. 그런 환경에는 식품, 식수, 집안팎, 공원과 골프장 같은 오락 시설 등이 포함됐다. 한편 환경보호청은 농업용 살충제의 위험 허용치를 결정하기 위해 화학 회사들에게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 데이터를 요구했다. 그런 다음 동물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최대 수치의 100분의 1로 일일 인체 노출 허용량을 설정했다. 

 

- 각 컵은 해당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잠재적인 모든 환경의 총합으로 결정했다. 무슨 뜻일까? 가령 어떤 살충제가 수원지로 스며들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농작물, 일반 가정, 잔디밭, 애완동물, 다양한 주거지역에서 사용된다고 하자. 이럴 경우 그 살충제에 할당된 리스크 컵의 내용물은 그런 모든 장소에서 잔류하는 살충제의 양을 포함한다. 또한 새로운 법률은 각 계열별 살충제가 신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토대로 계열별 누적 효과를 고려했고, 각 계열마다 별개의 리스크 컵을 할당했다. 예컨대 나트륨 통로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해서 신경계를 파괴하는 살충제들의 리스크 컵은 다시, 동종 계열 살충제의 누적 리스크 컵에 합쳐졌다. 환경보호청은 종래처럼 모든 살충제에 대해 동물 독성 실험 데이터를 계속 요구하는 한편, 허용치를 추가적으로 열 배 더 낮추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신경계의 발달이 완성되지 않아 살충제에 더욱 취약한 어린아이들의 건강을 배려한 조치였다. 

    

- 환경보호청은 리스크 컵이 가득 차지 않은 살충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용도를 등록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컵이 넘친다면 화학 회사는 해당 살충제가 기존 데이터보다 독성이 낮아졌음을 증명하는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법률에 의거해 환경보호청은 이미 유통 중인 제품이라도 더욱 엄격해진 안전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독성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폭서의 운명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었다. 환경보호청은 이런 조항과 관련해 1997년부터 화학회사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최초 대상은 신경계에 작용하는 두 화학물질인 카바메이트계와 유기인계였는데,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하는 증거가 갈수록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 환경보호청이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사실 첫 번째 편지를 받는 데만도 무려 8개월 이상이 걸렸다. 그것마저도 당시 오하이오주지사였던 테드 스트릭랜드 Ted Strickland가 진심을 다해 빌의 요청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낸 덕분이지 싶다고 빌이 말했다. 환경보호청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우려되는 노출 시나리오는 아이들의 흡입 위험과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행동을 포함합니다." 그 후 스트릭랜드가 편지를 두 번 더 보냈다. 그러나 환경보호청은 여전히 결정을 미루었고, 결국 그들 사이의 무전기는 침묵만 흘렀다(빌을 만나고 몇 주 후 나는 환경보호청의 담당자에게서 프로폭서가 "규제의 연옥에 빠져 있으며 오하이오든 어디에서든 새로운 독성 데이터를 제출할 때까지 그 연옥을 탈출하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 빌도 내 시나리오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오직 허가를 받은 해충 방역업자들만이 프로폭서를 구매할 수 있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프로폭서가 디디티나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만큼 남용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사실 허가를 받은 방역 전문가만이 구입할 수 있는 프로폭서에 반해, 아무나 구매할 수 있었던 디디티나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는 노출된 거의 모든 곳에 낮은 수준의 잔류 성분을 남겼다. 빌의 이론은 이랬다. 치사량보다 낮은 수준으로 살충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저항성을 키우는 아주 좋은 방법인 반면, 훨씬 치명적인 무언가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곤충이 저항성 유전자를 복제하고 확산시키기 전에 곤충의 개체 수를 크게 낮출 수도 있다. 
 

- 나는 빌의 아이디어를 진화생물학자 두 명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일부 빈대는 자연적으로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게 된다면서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만일 살충제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그들의 형제자매 빈대가 살충제로 인해 죽고 나면 번식 경쟁이 사라지고, 이는 저항성을 지닌 빈대 개체 수가 급증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일례로 호주의 위생곤충학자인 스티븐 도깃 Stephen Doggett은 프로폭서에 관한 오하이오주의 움직임은 "어리석고 멍청한 행위"라고 일침을 놓았다. 카바메이트계에 저항성이 있는 빈대들이 이미 호주와 영국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도깃은 어차피 디디티와 피레스로이드와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구시대의 살충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빌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적어도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동안 프로폭서와 교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살충제가 개발될 때까지만이라도, 프로폭서는 오하이오 주가 공공주택, 아파트 단지, 양로원 같은 빈대들의 집단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도록 해 줄 거라고 주장했다. 

  

- 이미 새로운 빈대 퇴치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피레스로이드와 네오니코티노이드 neonicotinoid를 혼합한 살충제였다. 한편 합성 니코틴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여러 환경문제 중에서도 특히 뚜렷한 이유 없이 꿀벌 개체 수가 감소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빌은 주민들이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여러 가지를 억지로 뒤섞고 마구잡이로 함께 사용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우발적인 방화자와 살충제 남용자들이 있었고, 분진이 사람의 폐에 축적되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규조토를 남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가족이 먹을 음식을 사야 할 돈을 살충제에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빈대를 공격하는 것이 타당하고 실용적인 행동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오하이오의 어떤 주민은 전문가들이 그에게 에어로졸 살충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빈대를 아파트 건물 전체로 퍼뜨리게 할 뿐이라고 충고했을 때 이렇게 대꾸했다. "내 집에서만 반대가 사라진다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빌이 말했다. "절박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빈대와 관련된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뜻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프로폭서에 대한 오하이오 주 정부의 속사정을 내비친 것이었다.

 

-  한편 최근 몇백 년 동안에는 빈대 피해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트랩을 놓는 등 약간 단순한 방법을 동원했다. 또한 침대의 각 다리 밑에 파라핀이나 등유를 가득 채운 접시를 놓는 민간요법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빈대는 미끄러워서 침대 다리를 타고 매트리스 위로 기어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침대에 부착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가문비나무 판자나 버드나무로 만든 바구니도 사용했는데, 이는 빈대에게 대안적인 은신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 간밤에 판자 구멍이나 바구니 틈새에 숨어든 빈대들을 잡아 으깨어 죽였다. 한편 192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왕립군대 Imperial and Royal Austro-Hungarian Army가 발간한 보고서에는 발칸 반도에서 널리 사용된 민간요법 하나가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침대 아래에 콩잎을 두는 것이었다. 나는 독일어로 작성된 보고서밖에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손으로 직접 베껴 쓴 다음 일일이 번역했다. 간단히 소개하면, 빈대가 콩잎을 지나갈 때 잎의 솜털이 덫의 역할을 하면서 빈대를 단단히 가두면 나중에 콩잎을 수거해서 불태웠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훨씬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1670년대 말 영국의 철학자인 존 로크 John Locke는 말린 강낭콩 잎을 베개 아래나 침대 근처에 놓아두면 빈대를 막을 수 있다고 적었다. 그뿐 아니라 1777 년 프랑스 루이 15세의 보좌관은 프랑스 신문에 보낸 편지에서 콩잎이나 컴프리 comfrey 잎이 빈대를 막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25-비 제품들은 하드웨어 매장과 동네 약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일부는 대형 할인 마트에서도 판매되는데, 마케팅 전략의 차원에서 빈대 방지 매트리스 커버 바로 옆에 진열되어 있다. 그런 제품들은 대개 "100퍼센트 천연 성분", "닿기만 해도 빈대가 죽는다!", "미 환경보호청 승인 획득" 같은 슬로건을 떡하니 달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맞는 말이지만, 그런 슬로건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들 제품의 유효 성분들이 합성이 아니라 천연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천연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거나 좋은 제품이라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가끔은 마케팅전략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또한 그 제품들이 접촉성 살충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아마 맞는 말이겠지만, 표면에 들러붙는 잔류성이 없다면 이것은 빈대가 한밤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정확한 순간에 스프레이를 뿌려야만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격분한 어떤 곤충학자는 “빈대가 나타나는 순간에 스프레이를 뿌려야 한다면 차라리 망치로 때려잡아 돈을 아끼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25 비 제품군이 환경보호청으로부터 안전성 승인을 받았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서 함정은 환경보호청이 화학 회사에게 유효성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환경보호청은 25-비 제품들의 살충 효과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그는 존 로크와 옛날 발칸반도 사람들이 사용했던 빈대 트랩을 직접 시험하기 위해, 강낭콩 이파리 뒷면에 빈대들을 내려놓았다. 1940년대에 미국 농무부 소속의 과학자들은 강낭콩 이파리에 나 있는 솜털이 일명 찍찍이 테이프처럼 빈대 다리의 뻣뻣한 털을 꽉 쥐고 빈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바인 캠퍼스의 과학자들은 고성능 주사 전자 현미경 scanning electron microscope으로 콩잎에 들러붙은 빈대를 관찰함으로써 이런 가정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나는 곤충학회에서 콩잎의 날카로운 모상체 마치 고기를 매달아 놓는 갈고리처럼 빈대의 발을 뚫은 사진을 보고는 경악했다. 찍찍이에 걸려서가 아니라 갈고리에 발이 꿰어서 빈대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발표자는 인조 형태로 모상체를 만들어 빈대 트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그뿐 아니라 동료 빈대들에게 특정한 방식의 행동을 유도하는 페로몬을 모방한 미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런 가짜 페로몬을 감지한 빈대들은 동지가 발산한 페로몬으로 착각해 페로몬의 신호대로 행동하게 된다. 예컨대 런던 의학대학원 과학자들은 흡혈 식사 후 은신처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집합페로몬이 빈대 배설물에 함유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배설물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빈대의 배설물에서 발산되는 작은 냄새 분자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 반대의 더듬이에 있는 화학물질 감지기에 들러붙는다. 그러면 빈대들은 점점 더 강한 냄새가 나는 쪽으로 이동하다가 마침내 은신처까지 도달하는데, 이는 은신처에서 가장 짙은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런던 의학대학원 과학자들은 현재 집합페로몬의 화학물질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일단 분리에 성공하고 나면 그 화학물질로 끈끈이 트랩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그 트랩이 그들의 계획대로 작용한다면, 화학물질이 빈대를 유인해서 트랩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 예나 지금이나 트랩으로 빈대를 잡는 데는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다. 트랩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빈대가 반드시 트랩을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빈대가 트랩을 지나간다고 해도, 그것은 방에 빈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모든 빈대를 트랩에 가두거나 죽인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확실한 킬러가 필요하다. 합성 화합물질로 만든 살충제는 비싸면서도 확실한 효과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빈대를 독물로 처리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 그는 자신과 몇몇 자원자들에게 개와 가축의 심장사상충 예방에 널리 사용되는 구충제인 이버맥틴 ivermectin을 투여했다. 이버맥틴은 1980년대 말부터 주로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회충에 의해 감염되는 사상충증 river blindness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가끔은 머릿니와 사면발이에 옮았을 때 그리고 옴에 걸렸을 때에도 처방된다. 그 의사와 자원자들은 이버멕틴을 복용한 후에 살아 있는 빈대를 자신의 팔에 올려 흡혈하도록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버멕틴이 함유된 혈액을 먹은 일부 빈대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모든 빈대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현재 안전하다고 증명된 기간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이버멕틴을 복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 방법을 가정에서 사용하지 마라(나는 이버멕틴의 제조사인 머크 사에게 그 실험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물어보았지만, 정중히 거절당했다. 또한 머크 사가 이버멕틴을 살충제로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임상 시험을 할지도 의심스럽다. 약품에 대한 새로운 라벨을 승인받는 데는 일반 살충제보다 돈도 훨씬 더 많이 드는 데다가 시간도 더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 혈액을 안전하게 또는 손쉽게 오염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다른 대안은 혈액이 반대의 소화기관에 도달한 이후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2009년 일본의 쓰쿠바에 위치한 산업기술총합연구소 National Institute of Advanced Industrial Science and Technology의 과학자들이 빈대의 내장에 분포하는 공생 박테리아를 손상시키면, 빈대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의 공생 박테리아는 볼바키아 속 Wolbachia에 포함되는데, 볼바키아라는 명칭은 1924년 모기의 창자에서 그 박테리아를 발견한 과학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곤충의 체내에 기생하는 유익한 박테리아 중에서 가장 흔하고 지구상에 알려진 모든 곤충종들의 약 3분의 2에서 발견되는 볼바키아는 음식에서 핵심 영양소를 흡수할 때와 생식 능력에 도움을 준다. 또한 볼바키아는 위글스워디아글로시니디아 Wigglesworthia Glossinidia처럼 곤충에서 번성하는 미생물 생태계의 일원이다. 한편 곤충 호르몬의 권위가인 위글스워스 경의 이름을 딴 위글스워디아 글로시니디아는 특히 체체파리가 비타민 B를 합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곤충만이 아니라 인체에도 건강에 필수적인 다양한 비타민을 생산할 때 유용한 장내 미생물이 존재한다.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빈대 내 볼바키아가 비타민비 합성에 관여하는 위글스워디아 글로시니디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추정했다.  

 

-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많은 조건이 엄격이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얻은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항생제가 현실에서도 빈대를 죽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더군다나 인체에 항생제를 투여한다면 갈수록 심화되는 약물내성 박테리아 문제를 가중시킬 뿐 아니라 현재의 빈대 문제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추가될 수 있다. 즉 빈대의 볼바키아도 항생제에 저항성을 키우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모든 기초연구가 흥미롭기는 해도, 어떤 연구도 빈대를 완벽히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신에 그런 연구 결과들을 기존의 종합적 방역 전술에 통합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트랩이든 화학물질이든 혹은 생물학적 조작이든, 아무리 좋은 전술이 나와도 버지니아에서 만났을 때 디니 밀러가 언급한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 "빈대 방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빈대 자체가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무엇이 가장 어렵습니까?" 내가 되물었다.
"바로 사람입니다."
  

- 그렇다. 집주인에게 빈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도 사람이고, 방역을 하지 않는 것도 사람이며, 살충제 라벨에 적힌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 것도, 해충 방역업자의 지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아예 처음부터 빈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현명한 조언을 무시하는 것도 전부 사람이다. 심지어 의도치 않게 소독용 알코올과 성냥으로 매트리스에 불을 지르는 짓도 사람이 한다. 단언컨대 사람이 이렇게 하는 한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우리를 빈대로부터 구해 줄 수 없다.

 

- 사실 알고 보면 빈대를 냉동실에 숨겨 두는 것은 그리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나는 아노키와 댈린을 만나기 몇 달 전부터 빈대 피해자들을 인터뷰했었다. 그들도 빈대와 관련해 나름대로 의식을 치렀고 충동적인 행동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가령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벼운 밤술 한 잔을 마시듯 항히스타민제를 먹는 아파트 건물 소유주도 있었다. 그는 항히스타민제가 어떤 술보다 신경을 누그러뜨려 준다고 말했다. 또한 빈대로 식겁한 어떤 가족은 자동차 두 대를 포함해 살림살이며 옷이며 거의 모든 것을 내다 버렸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방역업자가 처음부터 그녀의 집에 빈대가 없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 모았던 신문스크랩북과 수십 권의 일기장까지 죄다 버렸다. 내 친구의 지인은 한술 더 떴다. 그의 아내는 평소에도 불결함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극장들에서 빈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걱정이 얼마나 심했든지 둘 다 폴리에틸렌 polyethylene 방호복을 입지 않고는 절대 극장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이 납이나 석면을 제거할 때 입는 방호복 말이다. 그래서 부부는 딱 한 번 방호복을 입고 극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관객들이 어찌나 불편해하고 불안해하던지, 부부는 아예 극장에 발길을 뚝 끊어 버렸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집에도 빈대가 들었는데, 빈대를 옮긴 범인은 분명해 보였다. 룸메이트의 남자친구였다. 친구의 집에 빈대가 나타나기 전에 그의 집에 빈대가 먼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는 집 안을 샅샅이 방역한 후에도 몇 달간이나 거미딱정벌레와 새끼 바퀴벌레의 사진들을 찍어 방역업자의 휴대전화로 전송하면서 물었다. "빈대 아닐까요????"  

 

- 곤충이 불안감을 야기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곤충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 다른 말로 곤충공포증 entomophobia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1,9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온몸이 마비되는 그런 불안감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들도 곤충을 보면 혐오감이나 역겨움을 느낀다. 철학자이자 곤충 생태학자인 제프리 록우드 Jeffrey Lockwood는 저서 <오염된 마음 The Infested Mind>에서, 이런 감정적 반응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인류의 진화적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현재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는 곤충의 기이한 생김새와 빠른 움직임에 공포를 느끼는 성향이 있다. 무엇보다 일부 곤충은 맹독성의 침을 분비하거나 치명적인 질병을 옮길 수도 있어 사실 매우 위험하다. 우리 조상들의 입장에서는, 진짜 곤충은 물론이고 곤충처럼 보이거나 곤충처럼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무관심하다가 그들의 제물이 되느니, 차리라 무조건 피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평범한 나비에도 깜짝 놀라는 사람은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질지언정, 오래 살아서 자신의 분신을 남길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분신 역시도 곤충을 보고 쉽게 놀랄 것이다. 반면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무심코 틈새에 손을 집어넣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쏘이거나 찔려 죽을지도 모른다. 록우드는 우리의 현대 문화가 이런 성향을 더욱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가족과 또래들의 행동에서 곤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예컨대 어릴 적에 부모님이 바퀴벌레가나타날 때 비명을 지르고 얼굴을 찌푸린다면, 우리도 똑같이 반응할 가능성이 더 크다.

- 또한 록우드는 갈수록 증가하는 도시 공간 덕분에 우리가 곤충을 아니 적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1,000만 종의 곤충 대부분을 더욱 쉽게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위험한 곤충과 무해한 곤충을 구분하는 우리의 능력이 퇴화된 것이다. 항균 처리되어 위생적이고 외부 세상과 점점 더 철저하게 분리되는 현대의 생활공간에서는 곤충의 출현은 침략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항균 비누와 다양한 청소용 스프레이 덕분에 청결함에 관한 우리의 기대 수준이 한 차원 높아졌다. 결국 우리는 곤충을 가끔 마주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 그렇다면 빈대가 그런 곤충과 무엇이 다르기에 이런 푸대접을 받는 걸까? 
빈대가 우리를 한밤중에 공격한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잠을 잘 때 우리는 나약해진다. 인간은 렘수면 REM 즉 급속안구운동 rapid eye movement이라고 불리는 휴식 단계에 의존하는데 렘수면은 기억 강화, 학습, 감정 통제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가 가장 강렬한 꿈을 꾸는 수면 주기이기도 하다. 하룻밤에 여러 차례 경험하는 렘수면 중에 우리의 몸은 사실상 마비되어 꿈을 신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한편 진화론적으로 말하면, 렘수면을 경험하는 인간과 여타의 동물들은 수면을 취하기 위해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일단 그런 곳을 찾으면 가능한 한 기생 곤충까지 포함해서 어질러진 주변을 말끔히 청소한다. 그런 다음 그 공간을 안락하게 만들어 주거나 천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나뭇잎 아니면 다른 물건들로 채운다. 동물들은 예전보다 한층 안전해진 오늘날의 주거 공간에서도 이런 의식을 이어간다. 가령 잠을 자기 전에 개는 자신의 침대 주변을 순찰 돌고 사람은 문단속을 한다. 이와 똑같은 충동이 아마도 우리 조상들을 동굴로 이끌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가끔은 그랬을 것이다. 빈대의 기원에 관한 이론 하나는, 빈대 출현이 안전한 잠자리를 찾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가정한다. 

 

- 잠을 자는 동안 우리 인간이 무방비 상태로 나약해진다는 사실은 밤이 어둡다는 이유로 더 큰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집단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다. 수면 역사학자 sleep historian인 로저 에커치 Roger Ekirch는 말한다. "밤은 인간 최초의 필요악이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주 출몰하는 두려움이다." 에커치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의 서구 문화에서 밤은 도둑과 짐승은 물론이고 살인과 여타 폭력적인 행위에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망토를 제공했다. 더군다나 그 시절에는 집안을 밝히는 유일한 빛인 화롯불이 모두가 잠든 사이에 집을 불태울 수도 있었다. 과거에는 귀신, 마녀,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어둠의 존재도 밤에 더욱 기승을 부렸던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집의 모든 문을 잠그고 성문을 내리고 밤 기도문을 읊조림으로써 이러한 실질적인 위협과 인지된 위협 모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뿐 아니라 편안한 수면을 위해 밤마다 침대를 샅샅이 점검하면서 이와 벼룩과 빈대를 잡기 위해 '벌레 사냥'에 땀을 흘렸을 것이다. 에커치는 이와 벼룩과 빈대를 초기 근대 곤충학의 불경한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깨끗하고 안전한 침대야말로 수면의 성소인 동시에 친밀한 밤의 대화와 성생활의 성역이었다. 

 

- 해가 진 다음에도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전깃불 등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밤에 대한 인간의 본연적인 두려움이 줄어들고 밤의 의식 일부가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기세를 떨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런 두려움을 부추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일례로 작가인 테주 콜 Teju Cole은 2011년에 발표한 소설 <무방비 도시 Open City>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빈대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주인공이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 모두에서 만연하는 빈대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되짚어 보는 장면에서다. "빈대에 대한 두려움은 원시적이었다. 피의 주술적 힘, 꿈을 꾸는 시간, 가정이라는 이름의 성소, 식인 행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공격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혼합되어 있다."

 

- 이런 생각은 내가 "당신은 왜 빈대를 두려워합니까?"라고 물어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달라도, 요점은 침대가 휴식의 공간 다른 말로 가장 힘든 날에도 편안함을 제공하는 보호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자고 눈을 감고 완전히 무장해제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 바로 침대다. 우리와 침대를 함께 쓰면서 안전한 수면을 방해할 뿐 아니라 피까지 빨아먹는 무언가는 현관 밖에서 윙윙거리는 웨스트 나일 모기보다, 뒷마당에 내놓은 쓰레기를 뒤지는 쥐보다 더 강력한 침략자요 더 큰 위협처럼 느껴진다. 요컨대 빈대는 성스러운 침대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환상을 깨부수는 원흉이다. 

 

- 20세기에 진행된 어떤 실험도 빈대와 질환을 성공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빈대가 인간에게 유해 미생물을 감염시킨다고 확인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빈대가 지난 10년간 급속도로 밀려들자 빈대의 질병 매개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이내 되살아났다. 예컨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과학자들은 묘조열 다른 말로 고양이 할큄병 catscratch fever을 유발시키는 박테리아인 바르토넬라 Bartonella 발생과 빈대와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바르토넬라가 노숙자 쉼터와 호스텔 등등 미국 남부 전역의 빈대 창궐지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3년 그들 과학자는 그동안 실험한 모든 빈대에서 바르토넬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어떤 곤충학자는 빈대가 배설물을 통해 병원균을 전파시킬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빈대들이 흡혈 식사를 하고 배설하는 것을 관찰했을 뿐 아니라 빈대가 숙주의 몸에 얼마나 자주 배설하는지 계산하기 위해 식사와 배변 간의 시간 간격과 두 행위 사이의 거리도 기록했다. 만약 빈대가 숙주의 몸에 정기적으로 배설하고 병원체가 빈대의 배설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특정 질병이 이런 식으로 전파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도 없다. 

 

- 그렇다면 빈대가 정말로 질병을 유발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될까? 버지니아 공대의 곤충학자들은 아직까지 누구도 빈대와 질병과의 관계를 확실히 증명하지 못한 것은 조사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놨다. 2013년 버지니아 공대 곤충학자들은, 빈대를 대상으로 시험한 바이러스성 병원체 대부분은 흡혈 곤충을 매개체로 삼아 전파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에이치아이브이가 흡혈곤충의 체내에서 성공적이고도 규칙적으로 생존한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에이치아이브이 등등 많은 바이러스의 경우, 곤충과 함께한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또는 곤충의 체내에서 생존하고 증식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급격히 도약해서 빈대를 자신들의 숙주 목록에 새롭게 포함시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버지니아 공대의 연구팀은, 빈대가 박쥐와 조류 같은 동물의 체내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기생하고 있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시나리오가 더욱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런 바이러스는 빈대에서도 생존할 뿐 아니라 조류들 간에 또는 박쥐들 간에 전파되도록 진화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상황에서, 키스벌레와 트리파노소마 크루지 기생충의 관계에서처럼 우리 인간이 그들의 관계에 갑자기 끼어든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질병에 접촉하게 될 수 있다. 

 

- 어쨌든 이제까지 밝혀진 대로 빈대가 질병을 전파시키지 못한다면, 빈대는 무해한 곤충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령 빈대에 물리면 즉각적인 피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어떤 피부과 전문의의 말마따나 빈대는 피부에 많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빈대의 입은 아주 작아서 피부에 명확한 자국을 남기지 않고, 또한 작은 피하 주사기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순식간에 피부를 찌를 수 있다. 그러나 빈대에 물린 후에는 빈대 침에 함유된 단백질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각자의 독특한 면역 시스템에 따라서, 이런 알레르기 반응은 가렵고 부어오른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 빈대 물림으로 유발되는 더욱 심각한 증상은 바로 혈액 수포이다. 언젠가 곤충학 학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 농무부 소속의 어떤 연구가가 사람들로 가득 찬 회의실에서 옆 걸음질 치며 내게 다가왔고, 프레젠테이션 틈틈이 자신의 희한한 빈대 경험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2009년 빈대 실험을 하던 중에 우연히 빈대에 물렸고, 그 후에 피부의 모세혈관에 염증과 출혈을 유발하는 피부 혈관염이 생겼다. 이번에 빈대에 물린 것은 사고였지만 예전에 일부러 빈대에 물린 적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30여 년 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 다녔을 때, 대학원 동기를 도와주기 위해 실험실에서 키우던 빈대와 이에게 직접 수혈해 준 것이다. 당시에는 빈대에 물려도 커다란 문제는 없었고, 그저 발진만 조금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부 혈관염이 생기자 그는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빈대의 알레르겐 allergen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급성 통증 반응이 나타난 것이라고 추론했다. 아마도 그의 추론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음식과 약물은 물론이고 곤충에 물려 발생하는 알레르기 반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면역 시스템이 그런 알레르겐에 대해 갈수록 강력하고 표적화된 공격을 개시하기 때문이다. 
  

- 그뿐 아니라 빈대는 천식과 지극히 드문 사례지만 과민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아나필락시스 Anaphylaxis라고도 불리는 과민증은 전신 발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반응으로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빈대에 물리면 사람들은 가려워서 피부를 긁어 생채기를 내고, 그 상처를 통해 다양한 미생물이 체내로 침투해서 2차 감염증에 걸리기도 한다. 10년 전쯤 나도 그런 2차 감염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게다가 빈대 한 마리가 한 번에 빨아먹을 수 있는 혈액은 소량이지만, 매일 수 백 혹은 수천 마리의 빈대에 물린다면 혈액 손실이 누적되어 급기야 빈혈이 생길 수도 있다. 

 

- 빈대에 자발적으로 수혈하는 사람들조차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헤럴드 할런도 내게 그런 문제를 호소한 적이 있었다. 2011년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빈대에게 혈액 식사를 제공하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독특한 면역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빈대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흡혈 횟수를 평소의 두 배로 늘린 것과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고 말했다. "일종의 불안증세가 나타났고 미열도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게다가 좀체 그런 경우가 없는데 소화불량 증세도 약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이 주는 횟수를 줄였고, 그러자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유싱어의 저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유싱어는 빈대에게 직접 수혈해 주었던 7년간 헤모글로빈수치가 정상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헤모글로빈은 적혈구 내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허파에서 몸 전체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유싱어가 경구용 철분제를 복용하고 철분 주사를 맞은 다음에도 증상은 지속되었고, 빈대에게 수혈을 일절 중단하자 그제야 호전되었다. 

 

- 빈대가 이토록 다양한 신체 반응을 유발하니, 의사들이 빈대 물림 증상을 진단하기가 어려운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사들의 오진이나 불확실한 진단이 순전히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노키를 진찰했던 피부과 의사는 그의 몸에 생긴 발진이 빈대 때문인지 아닌지 몰라 쓸데없는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놓았고, 내 주치의도 내게 불필요한 라임병 검사를 받게 했다. 훨씬 심각한 사례들도 있다. 그런 사례의 거의 대부분은, 인구통계학적으로 빈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인 노인, 장애인, 극빈자들에게 가해지는 의료적 방치의 우려스러운 징후를 보여 준다. 

 

- 1930년대 후반에 관련 논문을 최초로 발표한 스웨덴의 신경학자 카를 악셀 에크봄 Karl Axel Ekbom 의 이름을 따서 에크봄 증후군ekbom syndrome이라고도 불리는 망상성 기생충 감염은 곤충이나 벌레 또는 진드기가 피부를 파고든다고 착각하는 정신 질환이다. 개중에는 자신을 감염시킨 기생충이 아직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이라고 생각하는 에크봄 증후군 환자들도 있다. 이런 망상은 다시, 기생충은 물론이고 아무것에도 감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의사, 곤충학자, 해충 통제 조사관들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가령 어떤 전문가가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물이 빈대가 아니라고 말하면 그들은 먼지와 보풀이 든 봉투나 용기를 다른 전문가에게 보내는 식이다. 

 

- 망상이 더욱 심각해지면, 자신을 괴롭히는 상상의 벌레를 끄집어내기 위해 가위나 족집게로 피부를 후벼 파는 상황까지 악화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곤충 공포증을 앓아 온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도 발작을 일으킨 중에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발작은 에크봄 증후군 때문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달리는 자서전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 La vie Secrete de Salvador Dali>에서 그 사건을 들려준다. 언젠가 파리를 방문했다가 편도염에 걸린 달리는 호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다가 천장에서 벌레 두세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천장에 벌레가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벌레들이 자신에게로 떨어졌다고 확신했고,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마침내 목 뒤에 들러붙은 벌레를 발견했고 그 벌레가 진드기나 빈대라고 생각했다.  

 

- 상업 박람회와는 달리, 빈대 정상회의는 과학과 산업을 억지로 결합시켰다. 과학자들은 프레젠테이션 주제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고, 복도 반대편의 전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이 효과가 없음을 보여 주는 데이터를 공개했다. 한편 베드버그 센트럴은 행여 과학자들이 소개하는 제품에 잠재적인 갈등 요소가 있어도 그것을 솔직히 알리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일부 연구가들은 자신이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바로 그 기술을 직접 발명했고, 또 많은 연구가들은 화학약품이나 여타의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 물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그런 관계에 대해 아무도 명백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내가 만나본 거의 모든 미국인 빈대 연구가들은 거대 화학 기업들로부터 규칙적으로 후원금을 받고, 그들은 해당 기업의 살충제를 시험하고 다른 연구들에 도움을 제공한다. 이런 학계와 산업 간의 공생 관계는 어느 정도는 빈대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제품을 판매하는 공급업체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자 비판가들은 악덕업체조차도 회의 참가비라는 명목으로 당당히 돈을 내고 참석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치며, 그런 기업을 정상회의에 포함시키는 베드버그 센트럴의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 게다가 빈대의 복잡한 습성으로 말미암아 되레 더욱 까다로운 문제를 유발하는 제품들도 있었다. 다양한 방충 커버 제품이 대표적인 경우다. 연구가와 방역업자 대부분은 그런 제품이 적어도 곰팡이처럼 보이는 빈대 얼룩으로부터 침대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음에 동의한다. 또한 그런 커버 제품은 침대 나무 프레임의 이음새 박스 스프링 아랫면에 박힌 나사 머리의 작은 틈새같이 빈대의 잠재적 은신처를 원천 봉쇄시켜 빈대 퇴치를 쉽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바 조시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보면, 인위적으로 부드럽게 만든 표면은 빈대를 박멸하기는커녕 방 안의 다른 은신처를 찾도록 만들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쿠퍼 페스트솔루션즈와 프로텍트 에이 베드 Protect-A-Bed와의 관계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둘은 오래전부터 사업 관계를 맺어오고, 심지어 필 쿠퍼는 프로텍트 에이 베드의 제품 디자인에 도움을 주었다. 매트리스 커버등 각종 기능성 침구를 생산하는 브랜드인 프로텍트 에이 베드는 빈대정상회의에서도 제품을 대대적으로 전시했다(필 쿠퍼는 프로텍트 에이 베드의 주주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 회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 "나는 자금을 끌어모으고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잠재적 방법을 고려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 딱 까놓고 말해 나는 조금도 꿀릴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버그 센트럴은 비영리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사람들이 베드버그 센트럴이 빈대 세상의 월마트이며 효과 유무와 상관없이 아무거나 판매한다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은 딱 하나뿐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품을 아주 까다롭게 선정합니다." 그는 빈대 관련 기업들이 베드버그 센트럴의 사업 파트너가 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소문에 대해 억울한 마음도 털어놓았다. 물론 돈을 받는 것은 맞지만 사람들이 주장하듯 큰 액수는 아니라고, 구체적으로 각 기업은 1년에 수만 달러가 아니라 7,500달러 선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것에 불평을 토로하는 파트너들이 하도 많아서 그 사업 모델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 빈대와 관련해 전문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문제는 소비자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라고 어떤 컨설턴트가 진단했다. 빈대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식이 여느 해충들과는 다르고, 그래서 사람들은 전문가라면 빈대를 퇴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해충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이런 기대를 갖지만, 바퀴벌레 한두 마리는 피를 빨아먹는 빈대 한 마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충박멸 산업이 아니라 해충 방역 산업으로 불린다고 그 컨설턴트가 말했다. 해충 박멸 산업은 나쁜 사업 모델일 것이다. 가령 방역업자들이 우리의 집에서 곤충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인다면 그들은 결국 파산하지 않겠는가. 그 컨설턴트에 따르면, 오히려 방역업자들은 자신의 정직하지 못한 행위에 잠깐 양심이 찔리더라도 눈 질끈 감고 일부 해충을 살려둘 필요가 있다고 한다. 훗날 나는 그 컨설턴트가 최악이라고 말한 업체들을 포함해 많은 빈대 관련 기업들에게 이런 방역 대 박멸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대답이 똑같았다. 자신들은 철저하게 박멸에 초점을 맞추노라고, 자신들 말고 다른 업체들 쉽게 말해 악덕업체들이 단순한 방역에 만족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컨설턴트는 양심적인 해충 방역업자와 서비스를 추천해 주지만, 그에게 그런 목록을 받으려면 컨설팅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가령 도시에서는 우리 집의 쥐가 이웃의 쥐고 우리 집의 바퀴벌레가 이웃의 바퀴벌레다. 그렇다면 빈대는 어떨까? 물론 빈대도 우리와 이웃 모두의 공동 소유다. 해충은 집과 집 사이의 벽을 통해서, 복도를 따라서, 연결된 지하실을 건너서 이웃집으로 이동하고 그래서 임대차계약과 각종 권리증으로 구분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경계가 해충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교외의 단독주택은 어떨까? 비록 이웃에게 옮길 가능성은 낮겠지만, 넓은 면적으로 인해 방역 비용이 올라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방역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한편 아파트나 주택 혹은 빌딩이 고가의 전문가적 서비스를 이용해서 꼼꼼하게 방역한다면, 빈대에서 완전히 해방될까? 어림없는 소리다. 빈대들이 이웃 아파트나 주택 혹은 빌딩을 통해 옮겨 오거나 임신한 암컷 한 마리가 여행객의 가방에 숨어 와서 새 둥지를 틀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다. 

- 기대 대 현실은 일반인도 구입할 수 있는 빈대 제품과 관련해서도 서로 충돌한다. 우리는 제품의 라벨에 적혀 있는 약속을 믿고 싶어 한다. 특히 새벽 2시에서 동틀 무렵까지 빈대가 우리 몸을 노략질할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옷을 다 입은 채로 손전등을 확 움켜쥐고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운동 장비, 주름 개선 크림, 야채 절단기 등의 쓸데없는 물건들이 옷장과 잡동사니로 가득 찬 서랍장 한쪽 귀퉁이에 점점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제품 하나가 나타나서 침대의 성스러움을 보호해 주기를 기대한다. 대개의 경우 이런 믿음은 애매모호한 약속에서 비롯한다. 가령 자사 제품이 "닿기만 해도 빈대를 죽인다"고 주장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문구를 보고 소비자는 집 안에 있는 모든 빈대를 완전히 박멸시킨다는 뜻으로 확대해석한다. 

 

- 빈대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빈대에 대한 우리의 기억상실은, 경제학자들이 비대칭 정보 asymmetric information라고 부르는 현상을 떠받치는 환상의 짝꿍이다. 비대칭 정보는 이론적으로 볼 때, 거래의 한쪽 당사자가 상대 쪽 당사자에 비해 특정 제품의 효용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기술적인 혹은 과학적인 지식이 없다면, 특히 특정 해충에 관한 기본적인 생물학, 심리학, 행동에 관한 지식이 없거나 각제품이 그런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른다면 소비자는 정보에 입각해 현명한 구매 결정을 할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유 시장 경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무언가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식 부족과 정보부족을 비교적 자유롭게 악용하고, 별다른 제제 없이 제품의 효능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판매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악의적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 때까지는 그렇다. 

 

- 대개는 투숙객이 호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령 2013년 캐나다의 퀘백 호텔 Hotel Quebec은 투숙 중에 빈대에 물렸다고 여행 전문 웹사이트에 악평을 올린 투숙객을 고소했다. 언론이 그의 악평을 보도하면서 일이 커지자 호텔 측은 그의 이야기가 날조되었고 호텔의 평판을 크게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텔은 9만 5,000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빈대와 관련된 모든 소송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만, 소송 대부분은 연방 법원이 아니라 주 법원에서 이뤄지고 비록 확실치는 않지만 호텔과 투숙객 간의 분쟁보다는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의 분쟁이 더 일반적이다. 이제까지 가장 큰 빈대 소송은 2010년 아이오와 주 대법원에 제기되었고, 빈대 재출현 이후 최초의 빈대 집단소송이었다.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약 300명의 세입자가 지난 2년간 빈대에 시달리며 고생했지만 아파트 소유주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지 않았다면서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원고들은 총 74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편 단일 세입자에 대한 최대 보상액은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 Annapolis에서 나왔다.  

- 육중한 여러 문들을 지나가서 경비원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로비의 벽을 따라서, 예전의 의료 도구와 여러 신기한 물건들이 전시된 유리 상자들이 있었다. 로건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각 유리 상자에 붙은 설명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유리 상자 하나에는 1946년에 발행된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 You and Your Children>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있었는데, "어둠에 대한 공포"와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는 두 챕터로 구성되었다. 다른 상자에는 구식의 분만겸자 obstetric forceps 다섯 개가 가죽 두루마리 케이스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니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언젠가 편자공들이 편자를 박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 가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덴먼 Denman의 천공기라는 라벨이 붙은 두꺼운 가위도 있었다. 옆에 있는 작은 설명서에 따르면, 제왕절개술이 안전하다고 여겨지기 이전에 난산일 경우 태아가 좀 더 순조롭게 질을 빠져나오도록 태아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자리에 앉았다. 

 

-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마침내 로건이 급히 달려와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악수를 청했다. 젊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로건은 깔끔한 카키색 면바지에 체크무늬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널찍한 계단을 내려가서 학생들로 시끌벅적한 지하 카페테리아로 갔다. 우리는 환한 분위기의 카페테리아에서 구석에 있는 낮은 의자에 자리를 잡았고, 이내 로건의 동료로 곤충학자인 메리 캐머런 Mary Cameron이 합류했다. 먼저 우리는 내 프로젝트와 영국에서 내가 방문한 몇몇 전문가들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로건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조심하는 것이 좋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고, 개중에는 잘 모르면서도 아는 척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학물질을 미끼로 사용하는 빈대 트랩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빈대 배설물 샘플을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왜 하필 배설물이었을까? 배설물에는 빈대들이 맛있는 흡혈 식사를 한 후 은신처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집합페로몬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현재 그들의 연구는 어떤 단계에 있을까? 어떤 화학물질이 빈대들을 유인하는 최상의 미끼가 될지 찾기 위해 화학물질의 범위를 줄이는 중이라고 했다. 

 

- 한편 유싱어는 저서에서 자신이 아프로시메스 콘스트릭투스를 발견한 동굴들을 자세히 소개했는데, 50년 전에 출판된 유싱어의 저서는 빈대들이 서식하는 많은 동굴의 위치를 설명하는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만약 살아 있는 특정 종의 빈대나 박쥐빈대를 찾고자 한다면 유싱어의 저서가 최고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글이 아주 흥미로운 데다가 완벽하고, 게다가 사실상 매우 정확해서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할 때 최고의 길잡이가 됩니다."  

- 시바 조시 팀은 많은 동굴을 찾아냈다. 줄잡아도 스물네댓 개나 되었다. 유싱어가 설명한 동굴들 말고도, 나이로비 Nairobi 인근에 위치한 규조토 광산에 동굴이 하나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완벽한 군집체를 이룬 박쥐들이 서식한다고 했지만 시바 조시 팀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낯선 이방인들을 광산에 들였을 때의 책임이 두려웠던 광부들이 시바 조시 일행을 광산에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이로비 외곽의 키암부 Kiambu에 위치한 실낙원 공원 Paradise Lost Park에도 동굴이 있었는데, 시바 조시 팀은 그곳에서 청동색 태양새 sunbird, 가슴이 계피 색깔인 벌잡이새 bee-eater, 등 부분이 검정색인 때까치 puffback를 보았다.

 

- 그러나 그 동굴은 개발이 많이 되어 있어서 전깃불이 동굴 내부를 환하게 밝혔고 결국 그들이 찾던 야생 생물은 흔적조차 없었다. 케냐의 인도양 연안에 있는 몸바사 Mombasa 섬의 시모니 Shimoni에도 동굴들이 있었는데, 예전에 잔지바르 Zanzibar의 노예시장으로 가는 길에 노예들이 머물던 곳이었고 오늘날에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시모니의 동굴들에도 박쥐가 서식하지 않았고 따라서 빈대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비록 썰물 때에만 접근이 가능했지만 어쨌든 자칭 성자라는 어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스멜라니 Smelani 동굴을 찾아냈다. 그는 그 동굴이 성스러운 곳이라면서, 시바 조시 팀을 그곳으로 안내하겠지만 동굴에 들어가려면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제단에 케냐 은화 다섯 개를 헌금하고 좋은 일이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한 다음 신발을 벗어야만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일행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시바 조시는 동굴 바닥이 족히 수천 마리나 되는 "바퀴벌레 천지"였다고 말했다. 또한 박쥐 구아노로 뒤덮인 가시를 맨발로 밟았는데, 가시가 발바닥 앞쪽의 볼록한 부분에 박혔었다고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고생이 허사였다. 박쥐는 수천 마리나 있었지만 빈대는 한 마리도 없었다. 

 

- 시바 조시는 그곳에 코끼리도 있다면서, 코끼리 무리는 엘곤 산의 등성이에 검점이 박혀 있는 많은 동굴들을 돌아다니며 동굴 벽에 엄니를 문질러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나는 코끼리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끼어들었다. 예전에 리처드 프레스턴 Richard Preston의 <위험 지대 The Hot Zone>에서 읽었던 내용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프레스턴의 저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Marburg virus와 에볼라 바이러스 Ebola virus로 인한 치명적인 출혈열 발병에 대해 설명한다. 
"맞습니다. 바로 그 동굴들입니다." 시바 조시가 말했다.
"그런 동굴에 가려 했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반문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는 차분하고 세련된 그의 언행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있는 그가 전형적인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생각이불쑥 들었다. 체코공화국에서 나 홀로 빈대 모험을 계속하는 편이 더 나을 성싶었다.

- "빈대 몇 마리 채집하자고 왜 그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쓰세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내가 물었다. "그처럼 위험한 곳을 왜 굳이 가세요?" 
"간단합니다. 과학이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돈벌이도 되지 않은 일을 왜 계속하냐고요? 내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과학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다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버스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 것보다 박쥐 동굴의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 죽는 편이 낫습니다.

- "박쥐 서식지에서 채집한 모든 개체군에서 박쥐빈대는 인간을 숙주로 삼는 빈대들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훨씬 컸고, 두 종류의 빈대 사이에 관련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부스가 말했다. 말인즉슨 박쥐 서식지에서 사는 빈대와 인간의 생활공간에서 기거하는 빈대 사이에 공통된 유전정보가 별로 없었고, 이는 두 종류의 빈대가 상호작용하지도 이종교배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지도상의 데이터가 두 개의 확연한 그룹을 형성한 이유다. 데이터만 놓고 보면, 이런 차이는 최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형성된 것이 분명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략 25만 년 전이다. 게다가 박쥐에 기생하던 빈대의 유전적 다양성이 더 높다는 사실은 빈대가 인간과 살기 위해 분리되었을 때 유전적 병목현상 geneticbottleneck이 발생했음을 암시했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박쥐 기생 빈대가 유전적으로 더 다양하다는 것은 지도상에 나타난 기준점들이 더욱 분산되어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새로운 숙주에게로 맨 처음 옮아간 개척자들은 후손들에게 모든 유전적 물질을 제공해야 했고, 궁극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은 박쥐에 기생하는 빈대가 인간에게로 옮아가는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뜻인가요?" 내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과정입니다." 부스가 대답했다.

 

- 요컨대 빈대는 종 분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모든 연구들이 그렇듯, 가장 단순한 동인도 있다. 바로 우리의 호기심이다. 무언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고 싶은 욕구는 과학적 탐구를 시작할 충분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 수십만 년 전 반대의 조상적 기원과 최근에 재출현한 빈대의 기원과는 상관없이, 빈대 탐험으로 내가 깨달은 한 가지 진실은 빈대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빈대라는 것이다. 인류 전체가 빈대의 존재에 일조했다. 애초에 빈대를 동굴에서 주택으로 이사시킨 것도 인간이었고, 나아가 전 세계로 퍼뜨린 것도 우리 인간이었다. 빈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독특한 특징들에 적응함으로써 이 숙주를 흡혈하도록 진화했고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여행하고 상호작용하는 내내 인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오늘날, 우리는 합성 살충제를 사용함으로써 저항성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빈대종을 탄생시켰다. 요컨대 우리는 빈대를 싫어하고 혐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빈대를 창조한 것 또한 우리 인간이었다. 
 
- 이런 양식은 빈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에 발병하는 대부분의 전염병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다양한 해충,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 우리의 몸에 기생함으로써 에너지를 빨아먹는 기생충 등과 언제나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어떤 해충도 어떤 전염병도 어떤 기생충도 인간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해충, 질병, 기생충 모두는 생존을 위해 우리의 농작물이나 주택 혹은 신체를 이용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이런 전염병의 생태학적 은신처의 근원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동시에 박멸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체로 우리는 갈수록 정교해지는 과학적, 기술적 도구를 앞세워 그런 전염병과 싸운다. 예컨대 빈대를 박멸하기 위해 빈대의 생물학을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그런 전술이 매우 현명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디디티로 도포하는 것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근시안적인 접근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빈대와 우리 인간 모두는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편안하며 살기 좋은 각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될 무도회다. 

 

- 사라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정말? 확실해? 어떻게 빈대가 있지? 농담 아니지?"
결국 내가 옳았다. 호텔 관리 부서에서 나온 직원 둘이 내 침대를 샅샅이 뒤졌고 내게서 정식으로 진술을 받았으며 내 목과 팔 그리고 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객실을 조사하는 동안 사라와 나는 빈대 한 마리를 찾아냈는데, 몸통이 빵빵하게 부푼 암컷이었다. 십중팔구 내 피로 배를 불렸으리라. 호텔 직원 중 한 명이 그 빈대를 종이컵에 담았다. 빈대가 종이컵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나는 얼마 전에 저놈들에 관한 책을 썼어요. 정말이에요."

"설마요. 농담이시겠죠." 그가 대답했다.

 

- 다른 직원이 우리를 새 방을 옮겨준 다음, 무료로 세탁해 주겠다면서 우리의 세탁물을 전부 챙겨 갔고 아침 뷔페 식사권까지 주었다. 그리고 그날 늦게 호텔의 보안 책임자가 전화를 해 왔다. 그는 내가 사용했던 침대보에서 빈대 몇 마리를 더 찾았고 그래서 침대를 내다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겠으며 내가 나머지 기간 동안 호텔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 내가 이 책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빈대라는 곤충과 빈대가 내 아파트를 침입한 것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빈대에 대한 깊은 호기심도 작용했다. 도대체 이 벌레가 무엇이고 어디서 온 것일까? 빈대가 실재하는 곤충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어떻게 25년 가까이 살아올 수 있었을까? 만약 가능한 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빈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안다면,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 시카고에서의 경험은 적어도 위의 물음 가운데 하나에 답을 들려주었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팔과 목에서 빈대에 물린 자국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런던에서 생겼던 원인 불명의 발진과는 달리 이번에는 빈대에 물린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덜 힘들다는 말이 있듯, 10년 전에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이번보다 견디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더는 빈대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또는 빈대가 여행 짐에 숨어서 내 집까지 따라올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시카고의 그 호텔에서 전형적인 예방 조치를 따랐다. 여행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지 않았고 객실에서 빈대를 발견하자마자 호텔에서 세탁을 했으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세탁했고 여행 가방과 짐을 샅샅이 점검했다.

 

- 그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나는 동안 빈대가 집까지 따라왔다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동안 나는 원고 수정에 매달렸다. 이제는 빈대를 생각해도, 심지어 빈대와 하룻밤을 보내도 아무런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혐오스러운 그 작은 괴물들에게 내키지는 않지만 경외심마저 생겼다. 빈대는 매력적인 곤충이며, 빈대가 우리 인간의 삶에 적응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방식은 그처럼 작은 생명체로서는 커다란 위업이다. 빈대는 생존자이고, 만약 빈대를 그런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빈대의 역사와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 아직도 내 책상에는 헤럴드 할런이 주었던 선물이 그대로 놓여 있다. 죽은 빈대들이 담긴 작은 유리병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윌리엄 개스  William Gass의 단편소설 <곤충 세상의 질서 The Order of Insects>가 생각난다. 한때 그가 생애 최고 역작이라고 말했던 그 소설을 보면, 어떤 주부가 매일 아침마다 집 안에 나타나는 의뭉스러운 바퀴벌레 사체에 대해 설명한다. 살아 있는 바퀴벌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처음에는 바퀴벌레 사체를 보고 섬뜩하고 무섭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채로 진공청소기로 그것을 빨아들이고, 심지어 청소기로 빨려 들어가며 내는 달그락 소리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바뀐다. 바퀴벌레의 아름다운 껍질과 딱딱한 외골격에 나타나는 완벽한 균형의 기하학적 질서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구식 타자기의 리본 통에 바퀴벌레의 사체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하고 이따금씩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불가사의한 생명체에 감탄한다. 뉴저지 태생의 빈대들이 담긴 내 유리병도 그랬다. 그 빈대들은 호기심이 아주 많은 어떤 과학자의 자발적인 수혈로 생명을 유지했었다.  

- 호기심과 공포는 발견의 어머니이자 동인이다. 특히 공포는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동시에 황홀경에 빠뜨려 눈길조차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기이하고 작고 무시하고 싶은 것들을 받아들여라. 그런 것을 배우는 데서 기쁨을 찾아라. 19세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해 20세기에 독일에서 활동한 생태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를 폰 프리슈 Karlvon Frisch는 1960년 <열 명의 작은 동거인 Ten Little Housemates>이라는 얇은 책을 발표했다. 집 안에서 발견되는 가장 혐오스러운 위생 해충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이로움을 다룬 그 책에서 프리슈는 빈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세상에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예외 없이 위대한 발견으로 보답해 준다." 

 

-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빈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특정한 방법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특정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말해 줄 수 있다. 물론 내가 제안하는 방법이 빈대를 없애 주거나 빈대에 옮는 것을 막아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내가 선호하는 방법이 당신과 생활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누군가에게 적절하다고 또는 당신이 갖고 있는 신체 질병이나 정신 건강 문제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행여 내 제안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발 나를 고소하지는 말아 달라.
 
- Q. 방역업체를 고용해야 할까요?
A. 방역 전문가들은 내 대답에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공간에 빈대가 다시 침입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나는 방역업자에게 곧바로 전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경우는, 빈대 알레르기가 심해서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반대의 존재를 감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그렇다손 치고, 다른 사람들도 무엇 때문에 기다려야 하느냐고? 방역 비용은 비싼 데다가 빈대는 많은 살충제에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살충제 외의 다른 대안들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아서다. 나라면, 내 돈이든 아니면 집주인 돈이든 방역업자에게 수백 달러 혹은 그 이상을 쓰기 전에 빈대가 집 안에 들어왔다는 확신을 갖고 싶을 것이다. 빈대가 만연한 대도시에서 빈대 방역에 계속해서 돈을 쓰는 것은 단언컨대 금전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물린 자국을 발견하고 또한 잠을 자는 동안 무언가에 물린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빈대에 물린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면, 나는 며칠 혹은 일주일 정도 더 두고 볼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불과 침대보 등등 빨랫감을 전부 찾아내 세탁하고 침실 구석구석까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깨끗이 청소할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물린다면 손전등을 사용해 매트리스, 침대 헤드보드, 박스 스프링을 샅샅이 살피면서 빈대, 빈대 몸통 잔해, 검은 배설물 얼룩을 찾아볼 것이다.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그리고 오염 부위가 매우 작다면, 빈대가 서식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모든 것을 세탁해서 건조시키거나 오염 부위를 열처리하고 혹은 아예 내다 버릴 것이다. 여담으로 나는 증기 분사기를 하나 구입했다. 또한 진공청소기로 꼼꼼히 청소하고 가능하다면 세탁도 다시 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계속 물린다면 나는 마침내 패배를 인정하고 방역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 Q. 빈대 방역 비용은 집주인이 내줄까요?
A.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내가 거주하는 뉴욕의 경우는 빈대 방역 비용에 대한 금전적 책임이 거의 대부분 집주인에게 있지만, 건물의 종류가 다양하니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인 것 같다. 만일 내 집에 빈대가 다시 나타난다면, 곧장 집주인에게 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법률적 방법부터 알아볼 것이다. 

 

- Q. 방역업자를 고용한다면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도록 요구해야 할까요? 
A.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 놓고 보면, 나는 방역업자에게 피레스로이드와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섞어서 사용해 달라고 요구하지 싶다. 현재로서는 그 살충제들이 빈대에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러나 빈대가 그런 합성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는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면, 더는 적절한 선택일 수 없다. 영원히 말이다. 다른 화학물질의 경우, 내 개인적으로는 성장억제제는 고려조차 하지 않을 성싶다. 법적으로 허용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사용해야만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판 중인 또 다른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최근에 발표된 학술 연구를 살펴볼 것이다. 그런 문서를 어디서 찾을지 모르겠다면, 구글 학술검색 Google Scholar 같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빈대와 살충제를 검색어로 입력해 보거나 저명한 과학 뉴스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해 보라. 

- Q. 100퍼센트 천연 재료로 만든 분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아마 규조토를 말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규조토는 미세한 수중 유기체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인 규조류 화석을 분쇄해서 만든다. 규조토와 몇몇 비슷한 분말형 제품들은 건조제로서 사실상 빈대와 다른 곤충들을 말라서 죽게 만든다. 비록 켄터키 대학교가 최근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규조토의 효능을 문제 삼았지만, 나라면 방역업자에게 규조토를 사용하도록 할 것 같다. 만약 당신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닐 만큼 아주 많은 양을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규조토를 사용하는 데에는 커다란 위험이 전혀 없다. 규조토가 허파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호흡기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일부 건조제들은 살충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따라서 만일 당신이 직접 그런 제품을 사용할 생각이라면 라벨을 꼼꼼히 읽어 보고 사용 방법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 

 

- Q. 100퍼센트 천연 성분의 스프레이 살충제는 어떤가요?
A. 앞서 본문에서 내가 최소 위험 등급의 살충제 성분인 25-비 카테고리를 소개한 부분들을 읽고 짐작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25-비 화학물질과 다른 모든 '접촉성 살충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제품은 효능도 확실치 않은 데다가 연방거래위원회가 이런 제품을 허위 광고한 혐의로 최소한 기업 두 곳을 조사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제품에는 단 한 푼도 쓰고 싶지 않다. 그뿐 아니라 광고에서 "천연 성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서도 갈수록 의심이 깊어진다. 천연 성분이라는 말은 제품이 효과적이거나 안전하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그저 지속 가능성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선의의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사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 Q. 그렇다면 최근에 미국 환경보호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식물성 살충제 님 Neem은 어떤가요?
A. 내가 님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언젠가 오하이오에서 몇 달간 남으로 방역했는데도 여전히 빈대가 나타나는 어떤 주택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집을 나온 후 몇 시간 동안이나 내 옷에서 님의 냄새가 났다.  

 

- Q. 트랩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A. 나는 빈대 알레르기가 심해서 한 마리라도 집 안에 들어오면 빈대가 트랩에 걸리기 전에 내 몸이 먼저 말해 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해서 아마나는 트랩을 사용하지 않을 테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예전에 빈대문제가 아주 심각했거나 빈대 문제가 자꾸 재발하는 곳에 산다면, 침대다리 밑에 놓는 트랩과 이산화탄소와 페로몬을 미끼로 사용하는 몇몇 방법을 함께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방법들은 특정 방역법의 효능 여부를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곤충학자들이나 방역업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 Q. 비전문가들도 사용할 수 있는 시중 제품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나는 빈대 전문 제품들은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그런 제품은 실질적인 살충 효과보다는 심리적인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비행기 여행 중에 찌그러지거나 잃어버리기 십상인 자가 발열식 여행 가방, 효능이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끈끈이 트랩, 다양한 스프레이 살충제에 수백 달러를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매달 한 번 이상 여행을 가는 것처럼 여행 횟수가 잦고 호텔이나 호스텔에 머문다면 집에 돌아올 때마다 여행 짐을 열처리할 수 있는 자그마한 자가 발열 상자를 구입할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행여 따라올지도 모르는 빈대를 박멸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매우 효과적이다. 아니 적어도 내 아파트에 빈대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부터는 죽 효과적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옷가지를 전부 세탁하고 여행 짐을 샅샅이 살펴보며 증기 분사기로 증기를 꼼꼼히 쓰인다. 이것은 빈대가 창궐했던 버지니아와 오하이오의 공공주택 단지를 방문했다가 돌아왔을 때도, 거의 3주 간에 걸쳐 유럽 전역의 호스텔과 호텔을 머물다가 돌아왔을 때도 효과적이었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내가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여행 중에 빈대를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아서였을 수 있다.

- Q. 빈대 없는 집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요?
A. 만약 내 집에 빈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완벽히 밀봉되는 플라스틱 통과 가방에 옷가지와 여분의 침구류를 담아둘 것이다. 그리고 몇 주가 걸리든 혹은 몇 달이 걸리든 빈대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대로 둘 것이다. 물론 그전에 옷과 침구류를 고온으로 세탁, 건조하거나 고온의 증기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배낭, 지갑, 재킷 등등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나 다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할 때 들고 다니는 물건은 가급적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관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빈대를 퍼뜨리지 않기 위해 그런 물건을 자주 점검한다. 심지어 뜨거운 김이 닿아도 상관없는 재질이라면 집을 나서기 전에 증기 분사기를 사용해서 가방, 재킷, 신발에 뜨거운 김을 쏘아 소독한다. 

- Q. 호텔에 머물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나는 여행 가방이나 옷가방을 절대로 침대 위에 올리지 않는다. 방에 처음으로 들어갈 때 문 옆에 여행 가방을 둔 다음, 매트리스는 물론이고 벽에 붙어 있지 않은 침대의 경우에는 헤드보드까지 꼼꼼히 살펴본다. 설령 빈대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한다고 빈대를 찾아내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매트리스와 헤드보드는 빈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빈대가 없는 것이 확실해지면, 옷장에 옷을 걸어두되 옷이 벽에 닿
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리고 여행 가방은 미리 조사를 마친 선반에 올려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옷을 서랍장에 보관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나보다 한술 더 떠서 여행 가방을 욕실에 보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방 때문에 욕실을 사용하기가 불편해도 상관없다면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특히 룸메이트가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방이 욕실에 있으면 불편하다.

- Q. 이 책을 쓰고 난 후에 행동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A.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여행을 갈 때 내 짐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고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짐을 더욱 철저히 점검한다. 그리고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 청소할 때도 더욱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전부터 그래왔듯 중고 가게에서 옷을 구입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요즘은 중고 가게에서 쇼핑할 때는 샅샅이 살펴보고 밀봉이 되는 가방에 넣어 두며 가능한 한 빨리 세탁을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극장과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도 여전히 출입하는데, 사실 이런 장소에서 빈대에 옮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편 파티에서 주최자가 무심코 "코트는 벗어서 침대 위에 올려 두세요"라고 말할 때 나는 농담을 하면서 코트를 둘 만한 다른 장소를 애써 찾는다. 그러나 주최자가 말한 곳에 코트를 두었을 때도 파티에서 빈대에 옮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렇다. 

-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빈대 때문에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지 말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행동이 스스로 빈대의 제물이 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고 가게에서 쇼핑하거나 극장에 가는 등등 사실상 빈대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당신의 결정을 지배한다면, 나는 그것 자체도 삶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빈대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당신의 결정을 지배한다면, 
나는 그것 자체도 삶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 주의하라,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 

 

- 저자는 무조건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빈대라는 작은 곤충의 안팎을 완벽히 해부해 빈대 주의보를 내린다.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하면서 과연 저자가 빈대에 대해 무슨 말을 들려줄지 자못 궁금했다. 어쨌든 빈대는 책 속이나 언론 기사에서 간간히 접할 뿐 우리의 일상생활과 상당히 동떨어진 곤충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빈대를 알고자 하는 저자의 열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국, 동유럽, 독일 등지를 방문하고 곤충학회 회의와 빈대 정상회의에 참석해 학계와 산업계의 전문가들을 두루 만났으며 많은 박물관과 연구소를 찾아다니는 등 저자가 빈대를 정확히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 책 전반에 걸쳐 고스란히 드러난다. 

- 저자는 자신의 빈대 탐험을 과학 전문 기자답게 다양한 과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한다. 빈대의 습성, 생물학, 생리학은 물론이고 살충제의 작용기작까지 어려운 용어를 가능한 한 배제한 채 상세히 풀어 준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지만 잊고 있었던 용어들이 등장하는데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진 않는다.

 

- 저자가 빈대 탐험을 시작한 것은 궁극적으로 볼 때 빈대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오래전에 잊혔던 빈대가 갑자기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저자의 빈대 탐험을 따라가면서 나는 내가 몰랐던 신세계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밀림에 숨어 활동하는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한 염탐꾼으로 빈대를 연구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또한 빈대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빈대 게놈 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더군다나 빈대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뿐 아니라 빈대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것 외에 정신에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준다고 한다. 발진과 가려움이야 시간이 지나면 낫기 마련이지만, 정신적 충격은 일종의 사회적 낙인처럼 후유증이 심각하다. 저자는 일부 빈대 피해자들의 경우 "삶의 질과 심리적, 사회적인 기능이 손상되었으며, 본인의 경험처럼 사회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고 말한다.

- 저자에 따르면 빈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거의 같이한다. 빈대의 기원에 관한 가장 유력한 이론은 약 20만 년 전에 중동과 아프리카 같은 지중해 인근 지역을 기점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설이다. 그리고 빈대를 확산시킨 주범은 여행과 무역 등을 통해 갈수록 활동 반경을 넓힌 인류였다. 빈대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 문서는 고대 이집트시대의 것이고 심지어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경전들에도 빈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거나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다. 게다가 중국, 독일, 프랑스 등등의 수백 년 전 문헌에도 빈대가 등장한다. 이렇듯 인류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오랜 역사를 가진 빈대지만, 사람들에게 빈대는 공포의 대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잠을 자는 동안 우리를 공격하고, 집 안 특히 침대 주변에 서식하면서 우리를 호시탐탐 노린다는 점이 빈대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이지 싶다.  

- 요즘 들어 빈대가 재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살충제 남용에 따른 부작용의 하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발달시킨 빈대가 우리의 주거 공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질병이나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곤충과의 전쟁에서 언제나 패자라고 말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증명하듯, 빈대가 어떤 곤충인지 안다면 빈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빈대의 생물학을 좀 더 철저히 연구함으로써 환경 친화적인 빈대 퇴치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

- 렌틸콩이나 사과씨 혹은 저자의 말처럼 쌀알 크기에 불과한 작은 빈대에 놀랄 만큼 다양하고 신기한 사연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 사연 대부분이 우리 인류의 역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뒤 물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빈대를 만나게 된다면 훨씬 너그러운 눈으로 빈대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 12월
옮긴이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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