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정보라] 고통에 관하여

일루젼 2024. 6. 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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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보라

출판 : 다산책방

출간 : 23.08.31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을 상당히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신선한 시각, 비극적인 순간에도 유머를 놓지 않는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고통에 관하여>는 내가 읽었던 이전작들에 비하면 훨씬 무게감 있는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뒤표지에 뽑힌 문장 때문이었다. 

"고통과 쾌락은, 그 근원은 같다"는.

 

감각이란 결국 신경 말단의 신호 전달을 통해 인식되는 어떠한 자극과 반응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그것에서 고통과 쾌락,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감각과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어째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일 수 있는가.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서도 감각의 경계는 흐려지고, 변화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만의 고통을 감각하는 방식과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다 달랐듯이, 그럼에도 '과연 고통에는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듯이. 

<고통의 관하여>를 줄거리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미국의 중독성 약물과 마약에 착안해 이 소설을 썼다고 설명했지만, 이 소설 안의 '고통'은 수많은 것들로 치환되어 읽힐 수 있다.

개인이 타인에게서 얻기를 갈구하는 것들은 모두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인정', '사랑', '관심'... 

 

주요 등장인물인 경이 손쉽게 고통을 차단할 수 있는 약물을 거부하고 견뎌내는 장면은 경이롭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했다. 그것이 옳다거나, 미련하다거나 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갈릴 것이다. 내가 그 장면에서 바라본 것은 '자신만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결핍과 중독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뿐.

동시에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언제나 자기 자신뿐.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육체라는 한계를 넘어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감각할 수 없다.

자신의 감각 기관을 통해 해석된 세계를 감각하고 있을 뿐이다.

 

... 그것은 당신에게는 '고통'인가? 

 


   

 

- 여자의 허벅다리 안쪽에는 칼로 그은 긴 흉터들이 얽혔다. 여자의 팔 안쪽에는 불에 탄 크고 작은 흉터들이 촛농처럼 뭉치고 흩어졌다. 
남자의 한쪽 손목에는 이미 수갑이 채워져 침대 기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다른 쪽 손목에도 수갑을 채워 침대 기둥에 묶었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여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목 안쪽에도 칼로 그은 흉터가 있었다. 

-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의 본질 아닙니까?"
변호사가 말을 마치자 법정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검사가 변호사를 흘끗 쳐다본 뒤에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거짓말을 하면 안 되잖아?"
남자는 형에게 화를 냈다.
"그렇게 애써서 작업을 했는데 이제 와서 교리를 어기면 어떡해!"
"실제로 저 여자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려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가 대신 나서서 설명했다.
"이건 그냥 전략이에요. 피해자의 흠결을 드러내서 그렇게까지 애도할 만한 고결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세상에 제대로 밝혀야 선생님의 형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다."

- 그는 더욱 화를 냈다. 형량은 문제가 아니었다. 감옥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작업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념이었다. 변호사는 그의 신념을, 교리를, 교단을 모욕하고 있었다.


-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의 교리와 신념이 있고, 저에게는 저의 교리와 신념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저는 변호사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슨 수를 쓰든 제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끌고 가서, 의뢰인이 가능한 한 가장 적은 형랑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저의 역할이고, 최선을 다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저의 신념이고 교리입니다. 현재 저의 의뢰인은 선생님이시므로 저는 선생님이 최소한의 형량을 받도록 어떤 전략이든 쓸 겁니다. 그게 싫으시면 다른 변호사를 고용하시면 됩니다."
그는 반박할 말을 잃었다.

- 남자가 그 비행기에 타게 되리라는 사실, 12년 만에 남자를 다시 마주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생각하고 협상한 끝에 동의했다.

- 교단은 살인을 권하지 않는다. 남자는 설명하려 했다.
고통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교단이 추구하는 것은 구원이다. 죽음은 목표가 아니다.

 
- "이젠 저의 교단이 아닙니다."
여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메마르고 비뚤어진 웃음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넌 여전히 얼간이니까."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구원을 추구할 뿐이지, 여전히 구원이 있다고 믿잖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국제통증학회의 정의에 따르면 통증은 '조직 손상이 있거나 있었다고 생각되는 사건에 연관되어 나타나는 감각적 또는 정서적 불유쾌한 경험'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통증은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몸이라는 '기계'에 손상이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로 이해되었다. 몸에 손상이 일어나면 우선 신경계에서 통증을 감지하여 뇌로 전달한다. 그러므로 통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말단감각체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법과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못하게 막는 방법이 있다. 진통제는 만성통증 환자와 암 환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안전하게 공급할 목적으로 NSTRA-14를 개발했다. 그리고 회사는 본래 목적을 대체로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통증 치료의 관점과 접근방식까지 완전히 변화시켰다. 

- 통증을 대하는 의학적 관점은 데카르트의 이분법으로 돌아갔다. 통증은 '몸'이라는 기계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통증은 그 원인을 찾는 즉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특히 만성통증은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조절해야 하는 삶의 방식에서 근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근절할 수 있는 질환으로 변했다. 통증 전문 의료진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 주의해야 했던 '진통, 신체기능 활동, 중독 및 부작용'의 네 가지 사항들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를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부 당국에서도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감시 및 관리했으나 NSTRA-14의 안전성이 입증되고 중독성이나 내성이 없다는 사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확인되자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 만성통증 환자와 암 환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안전하게 공급할 목적으로 NSTRA-14를 개발했다. 그리고 회사는 본래 목적을 대체로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통증 치료의 관점과 접근방식까지 완전히 변화시켰다.

- 특허 기간이 끝난 뒤에 NSTRA-14의 제네릭 제제가 출시되었고 이후 같은 성분이지만 용량과 종류에 따라 일부 제품은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중독되지 않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 강력하고 안전한 진통제의 등장은 고통의 개념, 통각의 문화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꾸었다. 통증은 그 부위나 정도와 관계없이 참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조절하거나 퇴치하는 것으로 변했다. 내성이 두려워 진통제를 기피하고 고통을 견디거나 진료비 걱정 때문에 의사에게서 적절한 처방을 받지 못하고 버틸 이유가 없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NSTRA-14가 주는 짧고 가벼운 도취감을 남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NSTRA-14도 말단신경계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작용하는 기전은 이전의 마약성 진통제와 같았기 때문에 처음 복용했을 때 아주 짧은 순간 도취감을 느낄 수도 있었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이후에 묘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이나 오래 지속되진 않는 무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NSTRA-14를 통증 치료용이 아닌 오락용으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NSTRA-14의 실제 효과와는 관계없이 피상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NSTRA-14를 마약과 똑같이 여기기도 했다. 고통은 신체적인 통증보다 좀 더 넓은 의미가 있다. 고통받는다는 것은 통증이나 괴로움, 곤란, 상실 혹은 죽음의 위협을 견딘다는 뜻이다. 통증과 고통은 명백하게 관련되어 있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고통이 단순한 신체적 감각보다는 마음이나 의식의 상태와 더 깊이 관련 있는 것으로 정의하며,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통증과 고통의 정의는 겹치거나 혹은 연결되기도 한다. 

- NSTRA-14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인 감각에 중점을 둔 통증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사회적·문화적·철학적·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고통은 의학적인 문제였고,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 교단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은 데카르트를 읽고 고통이 주는 통증 신호가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영혼이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 주목했고,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라 결론지었다. 그들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는 고통을 겪지 않는 인간은 신의 구원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 이러한 철학적 결론을 바탕으로 교단은 고통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집중했다. 교단은 단계별로 고통을 배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자가 신에, 구원에 더욱 가까워진다고 설교했다. 인위적으로 배치된 고통은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단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결 통제 가능하고 극복 가능해 보였다. 이것은 통제 불가능하거나 종결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조그만 고통을 겪고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들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교단이 주는 인정과 치하는 삶의 의미 혹은 그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
이것은 사이비종교와 불법 다단계 사업체 등으로 대표되는 착취적인 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흔한 방식이다. 교단 또한 세력을 확장하고 신도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같은 방식에 의존했다. 신도들은 고립되어 고통받았고,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고립되었으며, 그 고통의 끝에 그들의 삶에는 교단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 "그래서 이제는 너의 교단이 아니라는 거야?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에?"
여자가 물었다. 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의 어머니는 왜 당신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태가 여자에게 물었다.
"공범이었으니까."
경이 대답했다.

- NBOLI가 짧은 안도감 뒤에 무시무시한 격통을 가져다주었던 것을 경은 기억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팠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 고통이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 감각적으로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모든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스러웠다는, 고통스럽다고 느꼈다는 기억은 남아 있었으나 그녀는 그 고통을 재구성할 언어를 갖지 못했고 그녀의 몸에는 고통의 흔적도 증거도 남지 않았다. 죽고 싶었는데,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살아남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앞으로 찾아올 고통을 또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주했는데, 존재를 태워버릴 듯한 공포와 분노와 절망 또한 몸 안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경은 칼날로 살을 가르고 불로 몸을 태웠으나 그 역시 새로운 절망과 분노만을 남길뿐 그 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졌다. 흉터는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시간과 함께 바래고 쪼그라드는, 오래된 절망의 초라한 흔적일 뿐이었다. 자신의 몸 전체가 존재 전체가 아마 그러할 것이라고 경은 흉터를 보며 가끔 생각했다. 

- "남들은 이런 약 돈 주고 사려고 난리야. 그런데 너는 공짜로 주는데도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아?"
경의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심장이 망가져서 죽었다는 기도회 사건 피해자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경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 어린 소년의 눈에 호수는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숲은 어둡고 물은 푸르렀으며 짙은 밤이면 그 푸르고 맑은 물 위로 둥근 불꽃이 떠다녔다. 어머니는 그 불꽃이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린 태는 도깨비가 나타나기를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둥근 불꽃은 호수 위를 떠돌다 사라졌고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린 태는 그래서 매번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짙은 밤의 푸른 물 위를 밝히는 불꽃은 아름다웠고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않은 채 엄마와 형과 함께 호숫가에서 수면 위에 떠다니는 불꽃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 그것은 그의 어리고 짧은 생에서 아마도 처음 경험하는 행복이었다. 

- 태는 호숫가에서 도깨비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깨비불에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도깨비불이 사실은 도깨비가 아니라고 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호수의 표면 위에서 일렁이는 둥근 불꽃은 사실 큰 바람뱀의 눈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바람뱀은 몸이 바람과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통 사람은 하늘과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바람뱀의 눈은 너무나 밝아서 태양보다 환하게 번쩍이기 때문에, 낮에 바람뱀이 밖으로 나오면 바람뱀을 질투한 태양이 거센 햇살을 내리쪼여 바람뱀의 몸을 이루는 구름을 증발시키고 바람을 흩어버린다고도 알려줬다. 그래서 바람뱀은 낮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동굴 안이나 바위 밑의 축축한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둥근 불꽃같은 눈을 번쩍이며 밖으로 나와서 먹이를 찾는다고 했다. 바람뱀은 등불 같은 눈으로 어두운 밤에 길 가는 나그네를 속여 등불을 든 사람이 지나간다고 믿게 한다. 밤중에 낯선 곳에서 불빛을 비추는 길동무를 만났다고 생각한 나그네가 반갑게 다가서면 바람뱀은 호수나 늪에 불운한 나그네를 빠뜨려 죽인 뒤에 그 영혼을 먹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그네의 혼 없는 시신은 호수나 늪의 바닥에 깊이 가라앉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러니까 엄마가 없을 때는 절대로 호숫가에 혼자 나가면 안 된다고 태의 어머니는 어린 태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태가 밤에 호숫가에 나가고 싶어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어두울 때에 그런 곳에 가면 바람뱀에게 홀려서 혼을 먹힐 거라고,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될 거라고 겁을 주곤 했다.

- 도깨비불은 사실 매일 밤마다 나타나지는 않았다. 밤중에 호숫가에 나가 보아도 열 번 중 여덟 번은 춥기만 할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태와 형이 함께 조르면 가끔은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을 데리고 호숫가에 나가서 짙은 어둠과 별이 빛나는 하늘이 거꾸로 비친 호수를 바라보곤 했다. 태의 어린 시절에서 적어도 그 시간만은, 가족 모두 조용하고 평온하고 안전했다.

- 그리고 어느 밤에 태는 혼자 호숫가로 나갔다.
빛나는 것이 그를 불렀다. 어머니도 형도 잠에서 깨지 않았고 태는 그들을 깨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빛나는 것은 어머니도 형도 아닌 태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태는 밖으로 나가서 호숫가까지 걸었다.
태는 아직 매우 어렸고 보호자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시기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린 태는 자신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느꼈다. 부르는 소리와 빛나는 것이 태를 안심시켰다. 태는 그 소리와 빛을 따라갈 뿐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 둥근 불꽃이 호수 위의 허공에 반투명한 무늬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무늬는 무작위하지 않았다. 방향과 목적이 있었고 빛나는 것의 의도에 따라서 일정한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허공에 새겨진 그 반투명한 무늬는 반짝반짝 빛나다가 얼마 안 가 사라지곤 했다. 그사이에도 둥근 불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허공의 짙은 어둠 속에 새로운 무늬를 새겨 나갔다. 어린 태는 빛나는 것이 매번 다른 무늬와 모양을 만드는 모습을 몇 시간이나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 [흥미롭니?]
빛나는 것이 어린 태에게 물었다.

"네!"
어린 태가 신나서 대답했다.
[어째서?]
빛나는 것이 다시 물었다.
"예쁘니까요!"
어린 태가 대답했다.
[미학적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은 흥미롭다는 감정과 동일하니?]
빛나는 것이 물었다. 어린 태는 이해하지 못했다.

 

- 짙은 어둠과 차가운 공기와 맑은 수면 위의 반투명하게 반짝이는 도깨비불은 아름다웠고, 그러므로 어린 태는 행복했다.
"예뻐요!"
어린 태는 자신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 빛나는것이 태를 바라보았다.
[기억해라.]
빛나는 것이 명령했다.
[기억하지 마라.]
그리고 빛나는 것은 호수 표면 위 허공에 화려하고 커다란 무늬를 만들었다. 어린 태는 기뻐서 웃으며 소리 질렀다.

- 이후 태의 인생을 이끈 것은 신념이 아니었다. 빛의 도취와 이 한 번의 대화였다. 태가 삶과 세상을 이제 막 인지하고 기억이라는 형태로 의식 속에 저장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던 무렵, 호숫가로 태를 불러낸 빛나는 것과 그것의 내는 소리였다. 태는 빛나는 것의 의지에 따라 이 대화를 잊었다. 그러나 그것이 태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의 운명도. 

- 한의 기억이 되살아난 이유는 아버지의 고함에 나타난 언짢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문밖에 나간 한과 멀리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아버지의 눈이 마주쳤고, 그때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한의 기억을 되살린 것은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에 깃든 반가움과 즐거움이었다. 그 반가움과 즐거움이 담긴 목소리 때문에 한은 단번에 전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반가움과 즐거움이 얼마나 빨리 짜증과 노여움으로 변했는지, 어렸던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얼마나 두려웠는지. 특히 그 혼란과 두려움의 기억은 한 자신도 놀랄 정도로 커다랗고 생생했다. 그래서 한은 문간에 서서 밖으로 완전히 나가지도, 안으로 도로 들어가지도 않은 채 멀리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고함을 질렀다. 한이 예상했던 그대로 아버지의 고함에 나타났던 반가움과 기쁨은 아주 짧은 간격을 두고 노여움과 좌절감과 울화로 바뀌었다. 한은 그 목소리를, 그 어조를 잘 알았다. 자기 자신도 놀랄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했다. 

- 호수는 컸다. 효가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호수 못지않게 컸다. 짙은 남색 어둠이 하늘과 수면을 한 가지 색으로 물들였고 그 수면 위에는 둥근 불빛이 떠돌고 있었다. 불빛은 어두운 공기에 반투명한 흰색으로 반짝이는 무늬를 그렸다. 효는 머리가 아픈 것도 숨이 답답한 것도 모두 잊고 넋을 잃은 채 춤추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 [어디로 가고 싶어?]
빛나는 것이 효에게 물었다.
[고통과 쾌락의 근원은 같은데, 너는 어디로 가려는 거지?]

- [고통과 쾌락은 같지 않지만, 그 근원은 같아.]
빛나는 것이 효에게 답했다.
[네가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몸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야. 네 몸이 고통의 근원이자 쾌락의 근원이고, 모든 인지와 정서와 감각의 근원이야.]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해?"
효가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빛나는 것이 되물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효가 말했다.
[몸을 갖지 않으면 돼.]
빛나는 것이 간단히 대답했다.

- "몸이 없이, 고통도 없이 존재하고 싶어!"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숲의 나뭇잎과 가지가 바람에 쏠려 스산한 소리를 내었다.

- 물론 불덩어리에는 얼굴이 없었으므로 어디를 바라보는지는 확정할 수없었다. 그러나 경은 불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꼈다.
너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두운 불꽃이 경에게 말했다.

 - "당신을 만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태가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경이 다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 경이 다가왔다. 태의 몸 위에 앉았다. 손을 뻗어 태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태는 눈을 감았다.
"뭐든지 대답하겠습니다."
태가 눈을 감은 채로 속삭였다.
"당신이 알고 싶은 건, 뭐든지 다..."
경이 태를 끌어당겼다. 경의 입술이 태의 귓바퀴를 스치고 목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어떤 확실한 사실을 캐내려는 게 아냐."

-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까지 전부 알아내고 싶은 거야.'
경은 생각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태는 눈을 꽉 감고 양손으로 침대 기둥을 힘주어 붙잡았다.

- 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태 자신이 교단에서 고통에 대해 배운 방식은 다분히 개인적이었다. 대모 혹은 대부가 태의 피부를 가를 때나 불로 태울 때나 물리적인 힘으로 고통을 가할 때에 태는 이미 자신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단계와 의미에 대해 충분히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인 후라서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고통의 현장에는 언제나 자신보다 해당 단계를 먼저 겪은 사람이 옆에서 태를 붙잡아 주었다. 그러므로 태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도,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강당에 몰아넣는 것도, 대모와 대부는 물론 자신과 한이 안에서 고통을 함께하지 않고 문밖에 서 있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고 여겼다. 

- 호수를 그리워했다. 숲도, 아주 가끔씩만 가볼 수 있었던 마을도, 심지어 토네이도를 예고하는 초록색 하늘과 숨 막히던 공기까지도 그리웠다. 그러나 강당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광란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곤 했다.

- 태는 고개를 돌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죽일 생각이었어?"
"이미 말씀드렸듯이 살인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닙니다."
태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경의 시선을 피한 채로 대답했다.
"죽일 생각이었구나."
경이 웃었다.

- "왜 그랬습니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경이 다시 웃었다.
"넌 날 죽이려고 했지? 난 내가 죽으려고 했기 때문에 살았어."
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는 쓰레기라는 거야."

- 경이 침대 옆에 선 채로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넌 왜 안 죽었어?"
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같이 죽지, 넌 왜 리모컨 들고 길 건너에 숨어 있었는데?" 

경이 다시 물었다.
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홍이 남편을 떠난 이유는 아이가 아프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으면 돼요."
아이가 말했다.
"약을 먹으면 아프지 않으니까, 아빠가 때려도 울지 않을 거예요. 약을 먹으면 저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아이는 여섯 살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의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이 기묘하게 무감각했고 초점이 흐렸기 때문에 홍은 아이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가방 하나에 당장 필요한 소지품만 넣어 들고 집을 나왔다. 

- 결혼하기 전 홍의 남편은 언제나 기운이 넘치고 함께 있으면 무척 즐거운 사람이었다. 남편이 특별히 긍정적이거나 세상에 대해 호의적인 성격이 아니라 정서적 흥분 상태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홍은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남편은 항상 미친 듯이 기뻐하거나 미친 듯이 슬퍼하거나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 중간의 평온한 상태가 드물게 찾아오면 남편은 지루해서 어쩔 줄 몰랐다. 평온한 상태의 남편은 냉소적이고 무례한 사람이었으며 홍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곤 했다. 그리고 지루해하고 초조해하다가 아주 조그만 일에 흥분하며 감정적으로 도취될 꼬투리를 어떻게든 찾으려 애썼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남편이 언제나 타고 있던 분노와 슬픔의 롤러코스터가 홍을 향한 물리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그러므로 남편이 큰아들을 때린다는 사실, 반복해서 때리고 있다는 사실을 홍은 너무 늦게 알았다. 계기는 진통제였다. 홍은 생리통 때문에 약을 먹었다. 홍이 진통제를 먹는 것을 본 큰아들이 자기도 약을 달라고 부탁했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얻어맞고도 웃는 아이가 되기 위해서 아들은 약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홍은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떠났다. 

- 집을 떠나 첫 3개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홍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의지할 만한 친척은 많지 않았고 친정에 돌아가면 남편이 곧바로 찾아올 것이 명백했다. 그러므로 홍은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찾았다. 어린 자녀를 둘이나 동반하고 입소하여 오래 지낼 수 있는 쉼터는 많지 않았다. 일단 어린이를 동반하고 쉼터에 입소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쉼터의 규칙과 엄격한 일상을 아이들이 전부 따르기에는 무리한 지점도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찾아왔다. 집에서 나올 때 분명히 전화기를 버렸고 쉼터의 위치는 비밀이라고 했는데 남편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냈는지 홍은 이해할 수 없었다. 쉼터 직원들이 경찰을 부르고 남편과 골목에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는 동안, 경찰이 실제로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한 시간 40분 동안 홍은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당장 꼭 필요한 소지품만 챙겨서 다른 입소자들과 함께 쉼터 뒷문으로 도망쳐야 했다.

- 홍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은 놀랍게도 적지 않았다. 홍과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공식적인 사회적 지원은 놀라울 만큼 적었다.
그때 홍의 눈에 들어온 것이 어느 종교단체의 간판이었다. 산동네의 골목길에 있는 조그만 건물 창문 위에 달린 간판에는 '초월체험실 숙박 무료'라고 적혀 있었다. 어떻게 봐도 간판의 내용은 이상했다. 그러나 홍의 눈에는 '숙박 무료'만 보였고 그 앞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숙박 무료'. 홍에게는 숙박할 곳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당장 단 하루라도 마음 놓고 잠잘 곳이 필요했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홍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홍은 애초에 도망쳐 나왔던 상황과 똑같은 입장에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홍과 홍의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려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

- "네 일이나 잘해."
선배 미화원이 홍을 돌아보지도 않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배는 언제나 수다스럽고 명랑하고 친절했다. 이렇게 차갑게 쏘아붙이는 모습을 홍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홍은 충격을 받아 선배가 빠른 걸음으로 직원실에서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홍은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안내 방송 때문도, 토네이도 때문도 아니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홍은 자신이 훔쳐야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 '어딘지 모를 곳에 가서 무엇인지 모를 물건을 가져와라.'
홍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동화를 떠올렸다.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이었던가.'
생각하며 홍은 조금 웃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웃어야 했다. 아이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홍은 생각했다.

- 홍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손에 쥔 녹색 출입증을 들여다보았다. 녹색 출입증은 흐릿한 비상등 불빛 속에서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홍도 오래전 한때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원증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지낼 장소를 가지고 있었고, 삶을 가지고 있었다.

-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자신은 알지 못하는데 남편이 아이들을 찾아왔다. 이 사실에 홍은 굉장히 충격을 받고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지도부 사람은 홍에게 최대의 위협이자 교단에 귀의한 가장 큰 이유였던 남편이 아직도 건재하며 홍과 아이들을 찾고 있으니 바깥세상은 위험하고 교단만이 안전한 쉼터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홍에게 남편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홍은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교단이 아이들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못하고 있다고 홍은 확신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교단을 떠나야겠다는 홍의 결심은 그때부터 더욱 구체적으로 굳어졌다. 

- "어떻게 도망칩니까?"
태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태가 잠시 생각한 뒤에 확언했다.
"그래?"
경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리고 태의 자유로운 오른쪽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침대 기둥에 대고 눌렀다.
"그래서 도망치지 않는 거야?"
경이 태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엽은 생각했다. 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혹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그다지 능숙하게 감당하지 못했다.

- 예를 들면 지금 엽의 앞에 있는 욱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그러했다.
"일루미나티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욱의 삶에 관하여 엽이 물었을 때 욱은 가장 먼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배후는 외계인이다. 외계인들은 지구의 자원을 탐내서 인류를 말살시키고 지구를 지배하려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엽이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그래서 엽은 욱의 발언을 상당히 흥미롭게 경청했다. 그러나 욱의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엽은 욱이 외계인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욱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다른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 욱의 삶을 정의하는 한 단어는 난치병이었다. 욱은 갑자기 병들어 오랫동안 아팠다. 의사들은 욱이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여러 의사와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욱은 조금 나아지는 듯 보이다가 다시 심하게 앓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욱은 절망했고 절망으로 인해 마모되었다. 그러면서 욱은 심한 병을 앓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엄밀히 말하면 의사라고 할 수 없는 이들, 환자의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다는 선서를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을 찾아가기도 했으며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는 기꺼이 타인의 심신에 해를 끼칠 용의가 있는 자들의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 이런 해로운 자들을 방문하는 절망의 과정은 마침내 욱이 너무 아파서 집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게 되었을 때야 종료되었다. 그때쯤 욱은 질병의 고통 속에서 통증과 죽음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도 감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욱은 병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나았다.

- 욱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욱의 회복 또한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건강을 되찾았을 때 욱에게는 앞으로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신의 육체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고 앞날을 위해 저축을 하고 생활을 구축하는 시간 동안 욱은 모든 것을 바쳐 질병과 싸워야 했다. 그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었고 욱은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해서 긴 절망과 고통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승리는 욱에게 외로움만을 남겨주었다.

- 가족이나 친구들은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욱을 떠났다. 욱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욱의 곁을 계속 지킨 사람들도, 욱이 겪은 것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욱의 투병과 회복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 고통은 욱을 더욱 깊이 고립시켰다.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욱에게는 통증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하여 전달할 언어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을 칼로 긁어내는 것 같은', '온몸의 신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몸이 끓는 것 같은' 등의 비유와 비교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유와 비교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그 의미가 왜곡되었다.  

 

- 신체의 고통이 그러할진대 마음의 절망을 표현할 언어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의 발달도 지식의 진보도 제아무리 충실한 의료 지원체계도 인간이란, 생물이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채로,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욱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직접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어째서 그토록 고통받고 절망해야 했으며 또 어째서 갑자기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했는지 아무도 욱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공할 수 없었으므로 욱은 직접 찾아내야 했다. 시간은 많았다. 앞으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삶이 갑자기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을 어떻게 살고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무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 "시민결합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괜찮으시다면 저의 배우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경은 변호사가 합석한 자리에서 현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의 경은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간신히 입을 열어도 언제나 속삭이는 소리 이상으로 말할 수 없었다.

- "왜 저예요? 왜 결혼이죠?"
경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경은 숨을 들이쉬며 지친 목을 달랬다. 옆에서 변호사가 남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했다.
"범인이 단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체 측에서 다시 위해를 가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 경 씨는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 씨에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회사를 책임져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사회와 주주들이 공격할 만한 빈틈을 남겨두지 않으려면 시민결합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의 결혼이 안전할 것이라고 저희는 결론 내렸습니다." 

- 변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현은 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당신을 신뢰합니다'에서 현은 이미 승낙하기로 마음먹었다.

- 현은 여성과 성애적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다. 테러라는 비일상적인 사건과 그 뒤에 이어진 일련의 상황들이 아니었다면 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선택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도 현도 모두 이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결혼에 동의했다.
혼전계약서에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되었다. 혼전계약서에 따르면 경과 현은 혼인 기간 동안 각자 자유롭게 혼외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다만 혼외관계에 소모할 수 있는 금전적, 물질적 지출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계약서에 상세하고도 엄격하게 명시되어 있었으며 이렇게 명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지출로 인해 혼인관계에 해를 끼칠 경우에는 재산분할 없이 이혼당할 수 있었다. 
현은 '자유로운 혼외관계'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조항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반대의견은 표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와 경은 서로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 "누가 낳든지 아이가 태어나면 친권과 양육권은 다제가 가지라고요? 사장님은 양육비만 지급하고?"
현이 물었다.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왜요?"
현이 물었다.
"제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가? 대체 뭘 믿고,라는 표정을 현의 얼굴에서 읽어내고 변호사가 중재했다.

- "이게 뭐예요?"
현이 태블릿 화면의 해당 조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변호사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저의 동의와 허락 없이 임신 출산하는 경우에는, 어, 모든 재산을 제가 가진다고요?"
변호사가 경을 쳐다보았다.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 "왜요?"
현이 물었다. 변호사가 곤란한 얼굴로 경을 쳐다보았다. 경이 목쉰소리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분명히 제가 이상한 놈한테 걸려서 머리가 돌았을 테니까요."

- 일어서려 할 때마다 새로운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어지럼증 때문에 다시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경은 토했다. 화장실에서 나갈 수 없었다. 일어서려던 경은 화장실 바닥에 몸을 눕혔다. 바닥이 차가웠다. 바닥에 닿은 팔이 뻣뻣하게 굳었다. 팔에 이어 목이 굳어갔다. 두통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위장에서는 여전히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구토의 욕망이 고동치고 있었다. 경은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 한 손으로 명치를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도 주먹을 쥐려 했지만 바닥에 닿아 뻣뻣해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경은 눈을 감았다. 
자고 싶다. 잠들고 싶다.
여기서 잠들 수는 없다. 바닥에 힘없이 닿아 있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바닥의 냉기가 얼굴에 전해졌다. 바닥에 닿은 머리 한쪽이 천천히 전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일어나야 한다. 

- "내일부터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경이 물었다. 그리고 현을 쳐다보았다.
현은 이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 현은 미래를 알지 못했다. 미래를 결정할 권한도 없었다. 사장은 경이었으며 현은 일개 직원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현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이 당황하며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이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내일은 쉬시고, 모레 와주세요."

경의 표정은 다시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현은 인사한 뒤에 커다란 집에 경을 남겨두고 나와 문을 닫았다.
이틀 뒤에 현이 찾아왔을 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 "아프면 약을 먹든지 치료를 받으셔야 하잖아요..."
경은 대답 없이 현의 손을 힘껏 잡고 결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현은 경과 함께 거실 바닥에 누웠다. 이불속에서 덜덜 떠는 경을 끌어안고 현은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언니하고 결혼하면 좋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어."

경이 나중에 말했다.
현은 경이 이렇게 앓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그래서 경이 이렇게 물었을 때 조금 놀랐다.
"나랑 결혼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현은 알고 있었다. 혼전계약서에 명시된, 현에게 유리한 모든 조항은 위험수당이나 다름없었다.
"해봤는데, 결혼하고 나서 했어요."
현이 자백했다.
"결혼 전에는 너무 얼떨떨해서, 깊이 생각할 경황이 없어서..."
"밀어붙이길 잘했네요."
경이 웃었다.

- 경은자기 나름대로 아마 이사회가 동성혼의 지속성을 얕보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어느 쪽이든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 현은 계속 법무팀에서 일하면서 방송통신 과정으로 재무회계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 회계팀으로 이동했다. 법무팀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계팀은 법무팀과 마찬가지로 사장의 젊은 동성 배우자를 일반 직원으로 대하는 것을 거북해했다. 인사실이나 비서실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들었으나 현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새로 취득한 자격증에 걸맞은 대우 외에는 승진도 거절했다. 현은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고 결혼 이전과 결혼 이후의 삶이 가능한 한 연속적이기를 원했다. 

- 현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경은 대학을 졸업했다. 학부는 약학을 전공했으나 경은 약학이나 제약회사 경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부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서 학교와 과제와 수업에 대해 불평하는 경의 이야기를 들으면 현은 가끔 자신이 다 큰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 경은 생존을 위해 부모를 대할 때 언제나 긴장으로 팽팽해진 채 경계하며 대하는 법을 평생에 걸쳐 체득했다. 현의 어머니와 자매들은 전혀 달랐다. 경은 이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가족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는 현의 모습 또한 경은 낯설게 느꼈다. 고통과 공포가 지배하지 않는 어린 시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은 잘 상상할 수 없었다.

- "난 아이 안 낳고 싶어."
경이 말했다.
"나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너무 무서워."

현은 말없이 경을 안아주었다. 경의 어머니가 어째서 경을 데리고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오지 않았는지 현은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답을 알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 통증이 찾아오면 경은 자신의 몸과 싸우지 않았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럴 때면 현은 옆에 함께 누워서 창백해진 경의 어깨를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 륜 형사는 신임 형사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좌충우돌 캐릭터 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하고, 그만큼 고집도 세고, 머릿속이 자기 자신으로 가득해서 주위를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전부 입으로 쏟아내서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신임 형사는 륜 형사가 신중하거나 사교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마다 노땅이나 꼰대로 취급하고 못마땅해했으며, 륜 형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신임 형사는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에 접근하는 능력이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마구 소리 내어 말하며 정리하는 방식이 산만해 보이지만 그 산만함 속에 그 나름의 질서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륜 형사는 파트너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이해했다. 그렇게 산만한 질서 속에서 헤매다가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당장 노선을 수정하는 것이 신임 형사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가장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려는 고집과 한 번에 여러 가지 관점을 고려하는 산만함이 적절히 조화된 결과였다. 

- 처음 신임 형사와 파트너가 되었을 때 륜 형사는 이전 파트너가 좌천된 이유를 짧게 언급했다. 그리고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앞으로 함께 일하는데 문제가 될지 물었다.
"그게 왜요?"
신임 형사가 물었다.

 

- 신임 형사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이 언제나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신임 형사에게는 타인의 개인사 따위에 이유 없이 개입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륜 형사의 법적 성별이 무엇인지 화장실에 갈 때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등의 자질구레한 사항들에 대해 신임 형사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륜 형사와 파트너로 지내는 것에 대해서 더 정확히는 근무 중에 화장실에 가는 문제나 출장 시에 숙박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다른 동료들이 신임 형사에게 캐묻는 광경을 륜 형사는 우연히 엿본 적이 있었다. 신임 형사는 자신이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려 본 적조차 없는 사적인 질문을 쏟아붓는 동료들을 조금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쳐다보다가 큰 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존나 지저분하네."
그리고 신임 형사는 귀에 기기를 꽂고 등을 돌리고 하던 일에 몰두했다. 이 일로 인해 신임 형사는 이후 선배 경찰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륜 형사에 대한 뒷소문을 집중적으로 조장하던 해당 선배 경찰이 범죄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사적인 연락을 하며 만나자고 강요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면되었고 경찰서는 평화를 되찾았다. 

- "그런 놈들은 하나만 하지 않지."
서장이 해당 경찰의 파면과 이와 관련된 형사처벌사실을 알리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논평까지 한 뒤로는 아무도 륜 형사나 신임 형사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 태가 천천히 말했다.
"너무 많은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뒤에 물었다.
"테러를 저지른 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태가 황급히 말했다.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고, 다시 돌아간다면 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자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더라면 지하고 생각합니다."
태가 더듬거렸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게 아쉽다는 겁니다. 잘 설명할 수 없는데...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제가 선택했지만...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제게 주어져 있었던... 그런 것 같습니다."
태는 말하면서 조금씩 더 당황하다가 어물거리며 문장을 끝맺었다. 의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이라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경찰에 자수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고..."

- 그것은 오래전에 한 기자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기자들이 수없이 몰려 서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질문을 외치는 와중에 그 질문 하나가 귀에 꽂혔다. 그는 자수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폭탄테러를 저지르지 않고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다는 선택지도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그 사실 자체를 그는 그 기자의 질문으로 인해 처음 깨달았다. 그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충격을 기억했다.

- "건물 안에서, 폭탄이 터졌을 때 같이 죽는 방법도 있었을 거고..."
"자살을 생각하세요?"
의사가 그의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태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최근에 누가 그런 말을 해서..."

"누가요?"
의사가 다시 물었다.

- "그 사람의 부모하고... 저하고... 그때 폭발해서 같이 죽었으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어떤 의미에서 깨끗하다는 걸까요?"
의사가 그 특유의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죽으면 끝이니까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태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 "인간의 삶은 고통이고, 모든 의미는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도, 앞으로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도, 자신의 행동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게 된 것도 고통입니다. 맞지요?"
의사가 말했다. 태는 고개를 저었다.
"교리 같은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전 교단하고 인연 끊었습니다."
"잠깐만 참고 끝까지 들어보세요."
의사가 격려했다.
"어쨌든 당신의 삶의 근간이 되었고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리이고, 그 교리는 고통에 대한 믿음이고, 그러므로 지금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최대한도로 풍부하게 겪어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꼭 저의 형처럼 말씀하시네요."
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의사가 미소 지었다.
"저도 오랫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요."
태는 웃지 않았다.

- "이젠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믿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의사가 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요. 뭘 크게 믿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들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의미는 그 뒤에 찾는 거죠. 절대적인 믿음 같은 게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요."

- 태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닙니다."
태가 천천히 말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이고 큰 믿음을 갖도록 길러졌는데, 그건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삶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도록 교육받았고, 그것 역시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길러지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지만, 그게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춰진 상태로저에게 주어졌는데 이제 와서 믿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의사가 말했다. 태는 의사가 조금 웃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조금이라도 떠오르면 즉시 얘기하세요."
면담은 거기서 끝났다.

- 태의 형과 욱과 함께 오두막집에서 발견된 젊은 여성의 이름은 민(晉)이었다. 민은 경찰을 믿지 않았다.
민에게는 자신만의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민이 오랫동안 자신만의 고유한 이론과 관점을 발전시킨 결과였다. 민의 이론과 관점은 현실적이었으며 흔한 음모론과는 달리 논리적으로 앞뒤가 들어맞는다고 민은 확신했다. 그리고 민은 그 이론과 관점을 입증할 증거도 성실하게 찾아내어 갖춰가고 있었다. 

 

- 민은 제약회사가 교단을 소유하고 조종한다고 믿었다. 교단은 오래전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마을에 남겨진 시설을 이용하여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약을 재창조했고 그 약을 사용해서 고통에 관한 교리를 전파했다. 민은 제약회사의 목적은 모든 기업이 그러하듯이 이윤추구라 상정했다. 세상에 고통이 존재해야만 사람들이 고통을 없애주는 약을 계속해서 구입할 것이므로 고통을 숭배하는 교단과 겉보기에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약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는 결국 비밀리에 손을 잡고 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정하에 민은 교단에 잠입했고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도 수집했다. 그리고 민은 이제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 물론 한 개인으로서 민이 소유한 자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민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듯이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을 이용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동영상과 사진과 글을 정기적으로 세상에 내놓는 방법으로 민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믿는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제약회사가 피해자인 척하지만 사실은 교단과 한통속이며 고통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시키는 방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다는 주장에 상당히 많은 낯선 사람들이 동조했다. 민은 그렇게 해서 욱을 알게 되었다.

- 민의 동조자들은 제약회사가 교단과 몰래 손잡고 있다면 어째서 교단 사람들을 살해하는지 궁금해했으며 그 내막에는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러므로 그 내막을 밝히는 것이 민의 다음 임무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부여한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민은 교단의 신자가 되었다.  


- 기도회 사건, 약물을 이용한 살인, 폭탄테러는 모두 마을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한 눈속임이었다고 민은 확신했다. 더 많은 약을 팔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약회사는 고통을 필요로 했으므로 고통을 제조하고 배포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는 민의 고향을 망가뜨렸고, 마을을 교단에 넘겨주었고, 민이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언니 친구의 인생을 망쳤고, 이제 사람을 죽이고 있다. 제약회사는 악의 축이었으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했고 핵심인물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은 선과 악의 투쟁이었고 민은 절대적인 선의 투사였으며 이 투쟁은 이제 민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였다.

- 이 모든 정보와 자신이 수집한 증거와 추정과 결론을 민은 자신이 운영하는 여러 채널에 반복적으로 공개했다. 그러므로 현은 사실상 민에 대해 굳이 합법적이지 않은 방식을 동원하거나 애써서 깊이 조사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민이 가상공간 여기저기에 공개한 자료들만 모아도 충분히 방대한 분량이 형성되었다. 현의 변호사는 놀라워했다. 일단 자료의 분량에 놀랐고, 다음으로 그 내용에 놀랐다.
"이걸 진짜로 믿는다고요?"
현의 변호사가 몇 번이나 물었다.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명예훼손 소송 같은 걸 해야 하나요?"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별로 얻는 게 없어요. 그리고 소송 같은 걸 하시면 자기를 탄압한다고 더 크게 문제를 일으킬 거예요."

- "한두 군데도 아니고 사방에 이런 글을 올리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비방을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요?"
현이 걱정했다. 사실 현은 회사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있을 경이 이 글을 보았을지, 앞으로 보게 될지, 경이 이런 비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현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비방글의 논지에 따르면 경의 부모는 스스로 교단과 짜고 자기 자식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초래했으며 그런 끝에 자발적으로 폭탄테러를 일으켜 스스로 죽은 셈이 된다. 이런 주장에 경이 어떻게 반응할지 현은 알고 있었다.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감정적으로 전혀 표현하지 않겠지만, 몸이 아플 것이다. 또다시 둥글게 웅크린 채 누워서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몇 날 며칠이나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받는 경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러므로 날조와 비방은 멈추어야 했다. 현은 경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 그들은 태의 형이 이단이라고 했다. 교단의 가르침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 자신의 구원을 모색하는 것인데, 태의 형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뿐이라고 그들은 분노했다.
"스스로 고통받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사이비들끼리도 이단이 있나 봐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임 형사가 중얼거렸다.
"저 안에도 내부 갈등이 있다는 뜻이겠지.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다 그런 법이니까."

- "고통을 받아들이고 나면 새로운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 문 안에서 여러분은 자신만의 여정을 따라 초월을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엽이 다시 질문했다.
"아까 강의에서 고통을 느끼면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인간은 정확히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이후 일정에서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받아들이면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지도자가 신비로운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열고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엽은 인간의 선택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지도자의 신비로운 미소를 보고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없으리라 짐작하여 포기했다. 고통을 직접 체험하면 알 수 있다고 하니 엽은 그 단계에 이를 때까지 좀 더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 지도자는 고통이 가해지는 순서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했다. 그것은 오래전 '교주'가 처음 인간의 고통을 탐색하기 시작했을 때 깨달음을 얻었던 순서라고 했다. '교단'에서는 이 순서에 따라 고통의 단계를 정하고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몇 개월에서 최대 몇 년까지 시간을 두고 정신을 발전시키지만, '기도회'에서는 이 단계를 압축하여 참가자들에게 일주일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초월과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 지도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고통의 단계와 깨달음의 순서는 엽이 알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엽이 기억하는 한 '교주'는 애초에 지도자가 지금 설명하는 것과 같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상세하게 단계를 설정하여 '깨달음의 계단'을 오르려 했던 게 아니었다. 당시에 '교주'는 인간의 몸에 익숙하지 않았고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주변정황과 닥치는 상태에 따라 되는 대로 탐색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초월도 깨달음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이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신체를 갖는다는 것은 욕구의 발생과 그것의 한시적인 충족이 반복되는 생존의 투쟁이며 그 모든 ...


 - 마침내 길고 폭력적인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수면이 허락되었을 때, 엽은 2층의 공동침실에서 자신에게 배정된 침낭에 누워 복부의 창상을 만지며 선택에 대해 숙고했다. 칼날이 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길었고 베인 곳을 따라 주변의 피부가 볼록하게 부어 있었다. 테이저가 전기 화상을 남긴 등 한가운데와 칼에 벤 상처가 남은 배가 쓰리고 따가웠다. 
엽의 신체는 위협에 대하여 생물학적으로 훌륭하게 반응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따라서 달린 행동에 대해, 도주와 탈출과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엽은 일단 만족했다. 

- 그러나 고통을 느끼면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처한다던 지도자의 강연은 틀렸다. 엽은 그 순간 자신에게 선택지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무 선택지도 결정권도 없이 폭력과 신체적 위협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엽은, 더 정확히는 엽의 신체는 그 상황에서 무조건 탈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절박하고 비이성적인 결정이었으며 초월이나 깨달음에 전혀 가깝지 않았다. 이름을 붙여 정의해야 한다면 그 감각은 퇴보나 타락에 더 가까웠다. 빠르다는 것만은 장점이지만 반면에 자기 자신도 예측 불가능하며, 눈앞을 보지 않고 발밑만을 감각하며 무조건적으로 움직이는 상태. 엽은 그런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뒤를 살필 여유가 있었더라면, 지도자가 말한 선택지가 정말 있었더라면 엽은 다른 참가자를 따라서 뛰어가기 전에 책임자들 중 한 명이 테이저를 꺼내 쫓아가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전기충격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과 웅크린 채로 폭행을 감내하는 것 중에서 신체적 피해가 더 적고 장기적으로 더 유리해 보이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 고통은 그냥 육체적인 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이 보내는 위험신호에는 감정도 반응했다.
두려움, 절박한 두려움, 공포, 그런 강렬한 감정들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그 결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탐색하는 데 심각하게 방해가 되었다. 지도자들의 의도대로 참가자들이 고통을 받아들이려면 지도자들은 참가자에게 공포를 유발시켜서는 안 되었다. 

- 화난 사람은 불평하면서 엽을 문 쪽으로 끌고 가려했다. 방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침낭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하면서 딴죽을 거니까 우리까지 맞았잖아! 너만 아니었으면..."
엽은 설명하려 했다. 구타와 전기충격과 다른 폭력행위는 모두 '기도회'의 일부였으며 고통의 과정이었다.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기도회'에 참가 신청을 하면서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엽의 질문 때문에 고통이 가중된 것은 아니었다. 불만을 표한다면 고통의 순서와 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치한 지도부에 불평해야 할 일이었다. 

- 화난 사람은 듣지 않았다. 지도부에 민원을 넣는 것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권위도 갖지 않는 엽을 탓하는 것이 쉬웠으므로 화난 사람은 지도부의 폭행으로 인한 정서적, 감정적 외상을 엽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했다. 엽은 이점을 쉽게 이해했다. 반면 화난 사람을 진정시키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 약을 제조하는 작업은 요리와 비슷하다. 그들에게는 요리법과 재료, 그러니까 약의 주요 성분과 각 성분의 함량이 필요했다. 그리고 약을 찍어낼 3D프린터가 필요했다.
프린터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요리법과 재료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 엽은 그 결정이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고립, 몸의 피로, 수면 부족과 식사 부족, 구타와 화상, 창상까지는 엽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약물사용과 그로 인한 사망자 발생은 예상하지 못했다.
교단이 본래 추구하는 고통은 죽음을 향한 고통이 아니었다. 엽이 교단을 만든 이유는 인간을 관찰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 엽은 '기도회'를 중단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지도자들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감을 느꼈다. '도의적'이라는 단어조차 대단히 인간적이라고, 엽은 자신의 감정을 규정하면서 생각했다.

- '기도'의 지도자들이 인간의 법률에 의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엽은 안도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뒤에 형기를 마치고 나온 그때 '기도회'의 지도자들은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교단을 조직하고 그때와 똑같은 주먹구구식 폭력을 사용하여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짜구원을 판매하려 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야 할 폐촌에 실험실이 생겼고, 금지된 약이 교단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서 엽은 결정했다.
가짜 지도자들은 제거되어야 했다.
그들이 직접 설계하고 기획한 과정에 맞추어, 그들이 강요했던 체험을 그대로 돌려주고 그들이 그토록 달콤하게 강조했던 초월에 이르게 해야만 했다. 그들이 전파하는 죽음과 구원에 관한 거짓된 노래의 후렴이 그들의 묘비명이 될 것이었다.

- [어째서?]
태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입니까?]
경이 다시 물었다.

- 경은 아픔을 견디는 데 익숙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오랜 훈련을 통해서 경은 아픔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아픈 자신의 몸을 다루는 법, 아픈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 경은 젊었고 혼자서 생활하는 여성이었다. 어디서나 경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에게 여러 가지를 제안하거나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큰돈이나 좋은 일자리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정감, 정서적 충족감, 사랑, 미래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은 반응하지 않았다. 적당히 체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경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분개하거나 더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약속하는 애정과 신뢰와 안정감과 정서적 충족감을 경은 이미 가져보았고 스스로 버리고 나왔다. 그들이 위협하기 위해 들먹이는 고통과 폭력 또한 경은 가장 가까이서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겪었다. 경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 의사가 말했다. 경이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은 어째서 자살하려고 했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고통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까?"
경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의사는 경의 놀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경이 마침내 대답했다.
"저하고 상담을 하시려는 건가요? 그러시면 이해관계 충돌 아닌가요?"
의사가 대답 대신 다시 물었다.
"당신은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경은 대답을 망설이며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도 평온한 얼굴로 경을 마주 보았다.

- 경은 의사를 잘 알지 못했다. 12년 전 재판에서 보았고, 그 이후로는 이번이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재판에서 의사는 태의 의사였으므로 경의 변호사를 제외하면 경 본인도, 경의 주변 사람들도 의사와 직접 접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의사가 태의 정신상태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며 명백히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증언했기 때문에 태는 재판을 받았고 선고를 받았으며 그 결과 병원이 아니라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경도 경의 관계자들도 모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 재판 과정 내내 경은 의사가 왠지 무섭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태도도, 조용하고 차분한 말씨도 어쩐지 그 뒤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은 의사를 직접 마주해야 할 일이 없었으므로 재판 당시에는 의사가 남긴 무서운 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경은 12년 만에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홀로 의사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경은 자신의 당황한 얼굴을 들여다보는 의사의 뒤쪽에서 뭔가 빛난다고 생각했다. 복도는 어둠침침했고 의사의 머리와 어깨 뒤에서 뭔가 동그란 불빛 같은 것이 흔들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불빛은 의사의 정수리에서 어깨를 따라 내려왔다가 의사의 가슴 앞을 지나 반대편팔과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 불빛은 내내 흔들거리고 있었으나 그것은 불안정하다기보다는 부드럽게 유혹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 불빛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경은 그런 불빛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슬프고 무섭고 그리운 곳에서...


- 불빛이 의사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경은 불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가 의사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의사는 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관찰하고 있었다. 
경은 아주 오래전, 희미한 기억 속에서 창백한 회색 불꽃이 자신을 바라보던 것을 기억했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사를 둘러싼 불빛은 그때의 회색 불꽃처럼 다정하지 않았다.

- 의사가 자신에게 뭔가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다만 그것이 무슨 시도인지 경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의사는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고 의사의 머리와 어깨를 휘감으며 움직이는 불빛은 유혹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경은 생각했다.

 

-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경이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서 의사와 불빛으로부터 멀어졌다.
경이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가장 날카롭게 발달시킨 감각은 타인의 공격성과 악의에 대한 감지능력과 자기 방어의 본능이었다. 경은 비상식적인 상황을 애써 호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다가올 고통을 대비하지 못하게 하여 자신을 스스로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경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이해했고, 도망쳐야 한다고 그만큼 빠르게 결정했다.

- ... 대해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 설명 없이 저절로 이해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태도 아무 설명 없이도 의사가 자신의 질문을 이해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아니요. 내가 죽였습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살인이나 고문은 교단의 목적이 아닙니다. 고통을 통하여 구원을 얻고 싶은 인간은 그 고통을 자신이 직접 스스로 경험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고통을 가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의사가 설명했다. 태는 문득 깨달았다.
"당신이 교주입니까?"
의사는 조금 곤란한 듯 미소 지었다.
[나는 그 호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면 어쩔 수 없죠.]

- 그래서 태는 질문했다.
"내 고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태는 간절하게 물었다.
"어째서 나입니까? 어째서 내가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습니까?"
[고통에 의미 같은 건 없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태는 분노했다.
"의미도 구원도 없다면 어째서 교단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였습니까?"
[나는 속이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와 구원을 바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나는 실험을 계속했을 뿐입니다.]

- 태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견뎌온 그 모든 순간들, 살이 갈라지고 피를 흘리는 신체의 통증부터 두려움과 공포와 고독과 후회로 마음이 찢어지던 시간들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꿈속에서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이 이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 어떤 원대한 목적을 향하여 명확하게 진행되는...

- 태의 눈앞에서 의사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의사가운과 그 아래 입고 있던 고동색 셔츠와 짙은 남색 바지가 무너져 내렸다. 옅은 색 고수머리와 희고 밝은 피부가 녹아내렸다. 인간의 외양이 모두 녹아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형체를 식별할 수 없는, 여러 색이 뒤섞인 빛과 어둠의 덩어리였다.

- [견딜 수 있겠습니까?]
태는 그 질문을 비로소 이해했다. 견딜 수는 있었다. 그러나 어려웠다.

- 밝고 짙은 색이면서 동시에 희고 투명한, 형체라고도 어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외계 존재를 바라보면서 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수천 배로 증폭시켜 한꺼번에 쏟아부은 듯한 격동 속에 무방비하게 내던져졌다. 태는 외계 존재를 마주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기쁨이고 분노이고 슬픔이었으며 고통인 동시에 황홀경이었고 매혹적인 이끌림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두려움이었으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절대적인 공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고통이었다. 물리적으로 감각하는 모든 정보를 신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마음은 그것을 고통이라 정의했다. 그러므로 기쁨도, 환희도, 초월도, 아마 구원조차도,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모두 고통이었다. 

 

- 태는 울었다. 경찰들은 태가 형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태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형 때문이 아니었다.
태는 외계 존재 - 교주 - 의사가 떠났기 때문에 울었다. 자신에게 평생 의미와 삶의 목적을 주었던 존재를 드디어 만났으나 그 존재는 떠났고 태는 남았다. 그러므로 태는 울었다. 자신이 그 존재에게 의존하여 여전히 의미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태는 울었다. 자신이 인간이라서,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태는 절망하여 울었다. 
 
- 고독하고 단단하고 매서웠던 날들이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경은 태에 대해 생각했다. 태의 흉터에 대해 생각했다.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이었다.  

-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던져야 할 질문들을 모두 던지고 나면 같은 질문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은 그 사실 또한 확실히 깨달았다.

 

- 태가 상처 입은 방식은 그녀와 유사했으나 같지 않았다. 회복의 과정과 고통의 기억을 이해하는 그녀의 방식과 태의 방식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과거를 헤집기 위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경은 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현과 함께, 자신도 현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삶을 함께 살기를 원했다.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으로 삶을 채우고 흉터가 아닌 증거들로 앞에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경은 알지 못했고 ...  

- "경 씨가 임신했대."
"그래요?"
순 형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남자애래요? 여자애래요?"
륜 형사는 순간 굳어졌다. 앞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성별 고정관념에 관한 불쾌한 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자리를 피해야 할지 순 형사에게 한마디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런 고민을 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륜 형사는 순 형사의 표정을 보고 순 형사가 농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인간의 성별은 스펙트럼이야. 공부 좀 해."
"전 인간도 싫고 스펙트럼도 싫어요. 집에 가서 고양이하고 놀래요."
순 형사가 재빨리 가방과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가면서 륜 형사에게 외쳤다.

- "미안해요.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고 륜 형사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안개비에 감싸여 축축했고 습한 땅은 가로등과 건물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과 지나다니는 교통수단의 여러 조명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륜 형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가 져서 어둡고 검은 하늘에는 가끔 드론이 날아다닐 뿐 별달리 눈에 띄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륜 형사는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를 잡으려 했던 것 같았다.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했고, 누군가 결정적인 인물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것이 뭐였는지 명확히 떠올릴 수 없었다. 생각해 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중요한 것은 기억과 망각의 가장자리에서 손에 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다가 마침내 망각의 심연으로 흘러 들어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 륜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형사였다. 잡아야 하는 놈들은 언젠가 꼭 잡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기다리는 배우자를 만나러 가야 했다. 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생활, 휴식과 사랑과 안정과 감정적 교류와 정서적 충족감의 삶을 륜은 배우자와 함께 몇 년에 걸쳐 주의 깊게 쌓아 올렸고 앞으로도 그렇게 공들여 가꾸어갈 것이었다. 륜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 독방으로 돌아가서 태는 경에 대해 생각했다. 꿈속에서 쇠창살을 붙잡은 자신의 손을 감쌌던 그녀의 손을 생각했다. 손목의 흉터를 생각했다.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자신을 향하지 않았던 그녀의 시선을 생각했다.
[어째서 너의 삶에는 죽음밖에 없는 거야?]
태는 대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에 죽음만이 가득한 건 아니라고,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믿음 삶에 대한 믿음, 고통에 대한 믿음,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고. 
그러나 경은 없었고 태에게 남은 것은 경의 몸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흉터와 자신의 몸에 온 존재로 부딪혀 오던 질문들의 기억뿐이었다. 그 기억만으로 평생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태는 알고 있었다. 그것 또한 고통이라고 그는 이해했으며, 그러므로 그는 삶의 다른 고통을 받아들이듯이 가장 큰 그 고통 또한 받아들였다. 

- 그리고 태가 그 고통을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스스로 확신했을 때 경이 찾아왔다.

- "앉아."
마침내 경이 말했다. 태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경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는 묻고 싶었다. 어째서 갑자기 찾아왔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했는지. 그리고 태는 말하고 싶었다. 그리웠다고, 보고 싶었다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고. 태는 탁자 위에 얹은 경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을 잡고 싶었다. 경에게 다가가 껴안고 싶었다. 입 맞추고 싶었다. 
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손을 얹은 채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기다렸다.

- 경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너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아주 크게 부숴놨어. 물론 이미 망가져 있어서 차라리 부숴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너한테 부탁한 적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내 인생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부술 권리가 없었어."
경이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네가 뭘 의도했든 결과는 네 의도대로 되지 않았어. 나는 애초에 너의 계산에 들어 있지 않았으니까 너한테 나를 겨냥한 의도는 없었겠지. 그러니까 더더욱, 나는 네 의도대로 되지 않아.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 경이 완전한 결별을 고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태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래전 태가 저지른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가 남긴 두 사람의 삶 사이의 연결점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경은 이제 그 연결점에 얽매이거나 돌아보지 않고 태가 남긴 잔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해 이미 나아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끝이었다.

- 태는 경을 바라보았다.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태는 말하지 않았다. 당신의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성장하는지 언제나 궁금해할 것이라고, 당신이 아내와 아이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나를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고... 아니,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부디 용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어떻게든 이것이 끝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태는 경을 바라보며 말하지 못했다.

- "작가와 철학자의 얘기 알아?"
경이 조용히 물었다. 태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형제애와 희생을 주장해서 유명해진 작가가 있었어. 그 작가는 모든 고통은 도덕률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생각해서 도덕과 윤리를 지키고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에 따른 최고로 고귀하고 도덕적인 행위라고 설파했어. 그래서 철학자가 그 작가한테 물었어. 네가 형제를 위해 희생해서 고귀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면 너의 희생을 받아들인 그 형제는 대체 뭐가 되냐고. 애초에 아무도 희생할 필요가 없는 게 제일 좋지 않냐고." 
경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태는 미소 짓는 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언제까지나 기억하기 위해서 열심히 바라보았다.
"너의 고통과 너의 희생을 이용하는 교단은 그럼 뭐가 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 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전에 경이 던졌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그 질문들에 대답하던 때를 생각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숨기기 위해 태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던 경의 감촉을 생각했다. 태는 오른손으로 왼손목을 움켜쥐었다. 경의 손이 경의 입술이 닿았던 여러 곳의 감촉을 생각했다. 

- "'너의' 교단에서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겠지."
경이 '너의'를 강조해서 말했다. 태는 탁자 위로 손을 뻗어 경의 손을 잡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양손을 꽉 쥐었다.
경이 천천히 일어섰다. 태는 서둘러 따라 일어섰다. 경은 작별 인사 없이 돌아섰다.  

 


 
작가의 말



2018년 미국 새너제이(San Jose)에서 열린 SF 관련행사에 참가했을 때 통증과 진통제에 관한 대담을 들었다. 미국 사회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독성 강한 진통제에 관한 대담이었는데, 패널은 현직의사, 간호사, 약사, 그리고 만성통증 환자, 이렇게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단과 처방부터 약의 판매와 복용과 일상생활의 유지까지, 통증 치료를 모든 면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아주 유익한 대담이었다. 그리고 패널 네 명 모두,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환자를 병원에서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데 매우 강하게 동의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설명은 이러했다.
 

미국은 1990년대 걸프전으로 인해 상이군인의 통증 치료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미국 정부는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진통제를 처방받고 구매하기 쉽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보험사들이 병원을 구입해서 민영화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고객만족도가 병원 운영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더 늘어났다. 약에 취한 고객은 만족하고 불평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통제 중독자가 대량으로 양산되었고 당황한 미국 정부는 서둘러 진통제 처방 자체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2018년 내가 그 대담을 들었을 때 미국 정부가 개별 병원에 비축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 재고 자체를 제한해 버렸기 때문에 암 환자나 수술 환자 등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진통제 처방이나 입수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2018년 당시 아프간 전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파병된 병사들이 부상을 당한 채 귀국하여 만성통증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다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병사들이 전처럼 진통제를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었다. 1990년대 걸프전 참전용사 중에서 10년, 20년씩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하며 통증을 다스리고 일상을 유지하던 사람들도 미국 정부가 마약성 진통제를 규제하면서 진통제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참전용사가 아닌,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만성통증이 발생한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패널로 참여한 만성통증 환자는 그래서 자신이 아는 동료 만성통증 환자들이 더 이상 진통제를 구할 수 없게 되자 길거리로 나가서 정말로 마약에 의존하거나, 범죄에 연루되거나, 길거리 마약을 투약하고 약물 과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하거나, 아니면 집에서 혼자 마지막 남은 진통제 한 병을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증언했다. 

마약 규제가 만능이 아니라고, 의료인과 환자로 이루어진 패널 네 명 모두 강하게 말했다. 병원에서 전문가가 진통제를 관리하고 처방하고 처방에 따라 판매할 경우 일단 진통제의 성분과 환자의 복용량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관리, 통제할 수 있다고 패널 네 명은 모두 입을 모아 강조했다. 통증과 관계없는 그냥 마약중독자인 경우에도 병원에서 관리, 통제하면서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처벌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


패널에 참가한 미국 의료인들의 관점이었다. 처벌 중심으로만 접근하고 제도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마약중독자는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길거리에서, 인터넷에서, 뭐 어딜 가서든 약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을 하다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막연히 무조건 마약은 나쁘다, 정도의 인식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 정부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정책 때문에 아무 죄 없는 피해자가 이렇게 많이 양산되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쟁이 사람의 몸에 그토록 길고 잔혹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사실도 처음 배웠다. 그래서 나는 고통과 진통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나의 노력 덕분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아서 비교적 건강한 편에 속하는 비장애인이다. 그래서 나는 만성적인 통증이나 부상의 후유증을 감내해야 하는 삶에 대해 무지하다. 그렇다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고통이나 통증을 과장하거나 전시하는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내용이 추상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대략 십여 년 전에 박사논문을 쓸 때 열심히 읽었던 고통과 죽음의 실존적 의미에 관한 여러 학술 자료들도 그 나름대로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나는 사이비종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탐사보도 프로그램 같은 걸 좀 지나치게 많이 보았다. 사이비종교 교주들은 대부분 자신이 재림예수나 신이라고 주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지구의 종말과 죽은 뒤의 영적인 세계를 통제할 수 있고, 그러므로 자신에게 절대복종하고 재산과 노동력과 존재의 모든 것을 바쳐야만 세상의 종말이 왔을 때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겉보기에는 여러 가지 교리나 해석들을 내놓는데 요약해 보면 똑같이 저세 가지로 압축된다. 이런 주장들은 터무니없지만, 사이비종교의 교주들은 추종자가 합리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 이거 안 할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꼼수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꼼수가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다. 밤을 새워서 기도나 노동 같은 걸 하게 하거나, 잠시 잠든 사람을 새벽에 깨워서 의미 없는 활동을 시키거나, 하여간 제대로 쉴 수 없게 한다. 여기에 더하여 시키는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밥을 안 주기도 한다. 잠 못 자고 밥 못 먹으면 사람은 급격히 약해진다. 몸이 힘들면 사람의 판단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배고프고 지친 사람한테 막 협박하고 공격하고 겁주다가 조금 친절하게 대해주고 먹을 것이나 휴식시간을 주면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 일종의 고문 기법이나 세뇌 기법인데, 아주 많은 사이비종교 단체들이 이런 기법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경험한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 뭔지 모르지만 잠을 줄여가면서 엄청나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시험을 잘 보고 내신을 잘 받고 수능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스펙을 쌓고 외국어 시험에 자격증에 인턴에 해외 연수를 하지 않으면, 죽도록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뒤에 구체적인 설명조차 덧붙일 수 없는, 언제나 쫓기는 삶의 두려움. 폐지 줍는 노인을 돌보는 사회안전망이 없고 한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니 백세 시대에 나는 죽지도 않는 질긴 목숨을 저주하며 빈곤 속에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기 위해서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밥을 못 먹기도 하면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나의 영생과 종말 이후 나의 내세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진, '교주'든 교수든, 하여간 그런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잘 보이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라는 얘기였다. 독립된 주체로서 나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과 감정을 모두 밟아 꺾고 권력자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과 감정에 무조건 동의하라는 뜻이었다. 

싫다.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분히 잘 먹고 충분히 잘 쉬고 내 몸을 잘 돌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괴로운데 탈출할 길이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경과 효는 부모가 아주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자식을 마음껏 죽도록 학대하는 환경에서 자라며 아무 데도 호소하지 못한다. 그러다 효는 결국 죽는다. 아동학대는 경제상황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어른(들)의 악의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홍은 폭력 남편에게서 어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탈출하여 거리를 떠돈다. 이런 일도 실제로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데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입소할 수 있는 피해자 시설은 아주 적다. 사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이런 경우에 경찰이 와서 폭력 남편을 체포해 피해자와 분리하고, 아무 죄도 없는 홍과 자녀들은 자기 집에서 그냥 살던 대로 살 수 있었어야 했다. 

탈출할 길이 있어야 한다.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탈출해서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나는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으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떠들고 글 쓰고 집회하고 행진하고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서 이 길고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성립하였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린다. 수고해 주신 다산북스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독자님도 편집자님도 모두 잠 잘 자고 식사 잘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사람이 신체를 가진 물리적인 존재인 한, 배고픔과 피로와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아직 늙지 않은 사람도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든 인간이 다양하게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원하므로 나는 계속 요구할 것이다. 


23년 8월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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