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가메히로 사토시, 나쓰카와 다쓰야] 피곤한 게 아니라 우울증입니다 - 마음의 병이 찾아온 평범한 직장인의 정신과 상담 이야기

일루젼 2024. 7. 18. 19:26
728x90
반응형


저자 : 가메히로 사토시 / 나쓰카와 다쓰야 / 이은혜

출판 : 키라북스
출간 : 2020.11.10


       

최근 긴장으로 인해 몸이 많이 굳어있다는 걸 느꼈다. 요가나 스트레칭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한 이유겠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긴장 강도가 올라간 게 주요한 것 같았다. 

 

그러던 참에 이 책이 나와서 바로 읽어보았다. <피곤한 게 아니라 우울증입니다>는 정신과 전문의가 작가와 함께 소설처럼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풀어낸 '일상 교정기'다. 자신이 얼마나 우울하고 힘든지,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의 울분을 토로하는 글은 아니다. 그보다는 왕꿈틀이 젤리와 오렌지색 선글라스가 등장하는 산뜻하고 밝지만 유용한 조언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신체적 증상으로 인지할 정도라면 이미 경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무지근한 피로나 근육 뭉침이 사실은 신체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인지했더라도 자신의 생활 전반을 돌아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당장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기분이 좋아질 만한 탐닉거리들을 찾게 되지 않을까. 기껏 큰 결심을 하고 클리닉을 찾더라도 짧은 상담 후 항우울제를 받아 들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약물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우선적인 방법이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가상의 인물 히나타 씨를 내세워 자신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는 법, 기분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법, 호흡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법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coping)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한다. 

 

이 모든 노력들은 수면, 식사, 운동이라는 삼 박자의 중요한 리듬과 함께 해야 한다. 어느 한 축도 무너지지 않도록 일상을 지키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인식을 재점검하는 인지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가는 히나타 씨를 응원하다 보면 내 안에 맺힌 것들도 왕꿈틀이와 함께 흘러나가는 기분이 든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필수적이며, 과민해졌을 때일수록 오히려 적당한 자극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감각을 일정 수준 이하로 차단시키면 오히려 조현 증세가 찾아오기도 한다는 도널드 헤브의 실험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므로 내게 '꼭 필요한 만큼, 꼭 필요한 형태'의 자극이 찾아오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저항하지 않고 충분히 느껴주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거하려고만 노력했는데, 그 또한 필요한 에너지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에너지는 가타부타 판단을 내리지 말고, 강렬한 에너지 자체를 정화해 내 것으로 흡수하기로 했다. 마침 에너지 레벨이 낮아져 있는 것 같다 생각하던 참이었으니 양으로 흡수해 진동을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부분이 편안해졌다.

탈피를 위해서는 껍질이 필요한 법이다. 

고마운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해보려 한다.            

   


   

 

- 마음의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은 물론 내 곁의 소중한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먼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병을 방치하면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과에 가기를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 지금부터 얼떨결에 정신과 클리닉을 찾게 된 스물일곱 살 평범한 직장인이 마음의 병과 우울증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우울 상태를 치료하며 회복해 가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병을 이해하는 것부터 의학 이론에 근거를 둔 호흡법, 생활 지도, 인지행동 치료로 약에 기대지 않고 우울증을 다루는 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 겪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함께 읽으며 마음의 작은 위로와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늘 그랬듯 역까지 걸어가서 같은 시각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평소와 똑같은 풍경이 지나갔다. 날이 좋았으니 하늘은 분명 파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은 온통 흑백이다. 마치 색을 잃어버린 모래 그림처럼.

-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겨우 출입문 옆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밀어 넣기 시합이라도 하듯 한 무더기 사람들이 또 밀고 들어왔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갈비뼈 바깥쪽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쓰러질 것 같아서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축축이 배어 나왔다.   

- "혹시 최근에 많이 바빴나요?"
어떻게 알았을까? 의사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나는 요즘 시작한 방문 영업에 잘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달에는 매일 외근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서 야근하며 다음 날의 업무계획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불평도 늘어놓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서없는 내 말을 잘 들어주어서였을까? 이상할 정도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 한바탕 쏟아내자 그가 물었다. 
"밤에 잠은 잘 자나요?"
그러고 보니 요즘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저께도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에 눈이 떠졌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더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출근 준비를 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있는 힘을 쥐어짜서 겨우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알람 소리에 놀라 출근 준비를 하고 기듯이 집을 나섰다고 이야기했다. 

 

- "그랬군요. 그럼 보통 아침에는 기분 좋게 일어나나요?"
'그러고 보니 그렇지도 않네.'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눈을 떴을 때 배 위에 묵직한 모래주머니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더 일어나기 힘들어요."
"음, 스트레스가 상당한 모양이군요." 
화려한 검은 테 안경 속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 그러자 그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니,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어요. 우리 병원에 한번 들러요."

"병원이요?"
"마음을 고치는 병원, 정신과 클리닉이에요."

- 그의 입에서 선뜻 나온 '정신과'라는 단어를 듣자 문득 작년에 정신적 문제로 장기 휴직에 들어간 회사 선배가 떠올랐다. 그 선배는 그늘져 보였으며 열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늘 축 처져서 멍하니 있거나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당황하며 부정했다.
"정신과에요? 아니,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요. 마음이 약해져서 몸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으니까.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신적 문제라고요? 그럴 리 없어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 몸이 안 좋아서 이렇게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거야. 마음이라니?'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마음에 골절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예요."

- 마음의 병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건 들어봤는데 '마음의 골절'은 또 뭐야?
그래도 골절이라고 하니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병이라고 해서 뭔가 겁나고 어려운 병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 무엇보다 골절이라면 금방 나을 수 있지 않을까? 


- "마음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데, 운이 나쁘면 부러지기도 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정신적 문제는 마음이 약한 사람한테나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해 더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의욕이 없을 때가 많았지. 종일 위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한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싫다는 괜한 자책에 짓눌려 버릴 것 같기도 했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나고 '악!'하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잖아.'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긴장할 필요 없다고 해도 정신과라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요."

그는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 정말 우울증일까?
"지금부터 히나타 씨의 증상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 짚고 갈게요. 초진에서 문진표를 받고 15분 정도 진찰한 후에 바로 약을 처방해 주는 클리닉에는 가지 않는 게 좋아요."
"보통 병원이 다 그렇지 않나요?"
"마음의 병은 그런 진찰로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 "네, 그리고 여기는 일반 병원이 아니라 정신과 클리닉이에요.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요. 병원은 한글이고 클리닉은 영어죠."
어이쿠! 무천도사가 마치 콩트 속 개그맨처럼 휘청거리며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너무나 무천도사다운 반응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게 아니라 1차 의료 기관과 2차 의료 기관의 차이예요."

그는 병상 개수로 의료 기관을 구분한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 여섯 종류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었고 그저 '역시 나도 우울증인가' 싶어 불안과 걱정이 교차했다.
"치매도 우울 상태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클리닉에서는 진료하지 않으니까 제외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화이트보드에 여섯 가지 질병을 써 내려갔다.

- •  양극성 장애
•  주요 우울장애(우울증)
•  우울 반응(신경 발달 장애 동반 질환으로 넓은 의미의 적응장애 포함)
•  증후성 우울 상태
•  정신분열형 우울상태
•  약물성 우울상태

- "이 가운데 실제로 항우울제가 듣는 병은 딱 하나, 주요 우울 장애(우울증)밖에 없어요."

- "즉 많은 사람이 우울 상태에만 초점을 맞춰 '우울증'이라 진단받고 우울증에만 듣는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건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맞아요. 항우울제로 낫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 시간을 들여 다각도에서 진찰한 결과 A 씨의 상태는 경조증(조증의 증상이 경미한 상태 - 옮긴이)으로 보였다. 경조증인 사람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잠도 거의 자지 않으며 휴일에 출근하거나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다니는 등 활동적인 시기가 있다. 이 기간에는 기분이 상쾌하고 다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차분히 있지 못한다고 한다. 또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A 씨가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고 화를 낼 때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런 많은 정황을 근거로 무천도사는 A 씨가 우울증이 아닌 '제2형 양극성 장애'라고 진단했다. 제2형 양극성 장애는 조증의 정도가 가벼워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10년간 먹던 항우울제를 끊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무천도사와 함께 치료 프로그램을 계속한 결과 A 씨는 멋지게 복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 A 씨의 사례를 들은 나는 팔짱을 낀 채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 무천도사가 말했다.
"의사마다 추구하는 치료 방법이 다양합니다. 저는 최대한 약에 기대지 않는 복직 프로그램으로 치료하려고 합니다."

- 눈물이 나고 덥지도 않은데 땀을 흘리거나 갑자기 심장이 고동치고 현기증, 이명, 두통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한편 사고와 기분, 의욕을 관장하는 중추 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마음의 균형이 어긋나 버린다. 누구나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고 의욕이 넘칠 때와 없을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이 감정의 파도를 경험한다. 일반적으로 사고와 기분, 의욕이라는 세 가지 파도가 서로 보조를 맞춰서 움직인다. 기분이 우울하면(기분) 의욕이 안 생기고(의욕)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사고). 반대로 기분이 좋으면 의욕이 넘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추 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사고와 기분, 의욕의 파도가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 무천도사는 파란색과 빨간색 펜으로 화이트보드에 두 개의 파형을 살짝 어긋나게 그렸다.
이런 과정을 수개월에서 몇 년에 걸쳐 반복하는 것이 양극성 장애다. 파형이 어긋나 조증과 울증 상태가 동시에 나타나는 혼재 상태가 특징이다.
의욕은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초조하다.
기분은 좋은데 뭔가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 "하하하, 그럼 스트레스가 원래 뭔지 알아요?"
막상 질문을 받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싫어하는 일, 압박, 부정적인 감정. 단어 몇 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갑자기 무천도사가 책상 위에 있던 빨간색 풍선을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기 풍선이 있어요. 좀 전에 불었어요. 손가락으로 풍선에 힘을 가하면 모양이 조금 변하죠. 이렇게 몸과 마음에 부하가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 알겠어요. 이해하기 쉽군요. 그럼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 좋은 거죠?"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요. 스트레스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해요."
"스트레스가 꼭 필요하다고요?"
 
-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탄생부터 입학, 졸업, 입시, 취업, 이직, 결혼, 출산, 사별 같은 인생의 모든 사건이 스트레스라는 말이에요."
"네? 그런가요?!"
놀라는 나를 보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해 봐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환경이 변하죠. 그에 따라 우리는 긴장하거나 슬퍼지거나 우울해지곤 해요."
"하긴 낯선 환경은 어떤 의미에서 스트레스죠."
"하지만 입학이나 졸업, 만남과 이별이 전혀 없는 인생은 어떨까요?"
"그건 좀 심심하겠어요."
"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 고통은 물론 다른 이에게 어려운 부탁을 받았을 때,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돈이 모자랄 때 등등. 이런저런 모든 일이 스트레스 요인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스트레스 없는 생활은 불가능하겠군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없애려 하지 말고 사이좋게 공생할 필요가 있어요."

- 스트레스를 무조건 없애거나 피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마음속에 작은 등불이 하나 켜졌다.

 

- 무천도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외부 자극이 없는 환경 속에 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연구한 실험이 있었어요. '감각 차단'이라고 하죠."

- 1951년 캐나다 심리학자 도널드 헤브는 외부 자극을 배제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에 착수했다. 열네 명의 학생을 각각 방음실에 넣고 식사와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침대에 누워만 있도록 했다. 모든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 피실험자에게 고글과 손발 덮개를 씌웠다. 또 귀 주변을 U자 모양 쿠션으로 감싸서 냉난방기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한 상태에서 6주간 관찰하기로 했다. 

- "엄청난 실험이었겠어요."
"지금은 금지된 실험이에요. 피실험자들이 6주는커녕 4일도 못 버텼거든요."
"정말이요?"
"전원 체온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사고력과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세뇌당하기 쉬운 상태가 됐죠. 그뿐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간단한 산수 문제도 못 풀었어요. 진짜 무서운 것은 망상, 환각, 환청 같은 조현병 증상까지 나타난 거예요."

-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거기에 대응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가죠. 스트레스를 풍선으로 설명한 것은 사실 이유가 있어요."
그는 빨간색 풍선을 꽉 쥐었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던졌다.
"봐요. 손을 놓으면 풍선은 원래 형태로 돌아가죠."
공중으로 던져진 풍선은 조금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풍선을 받고 꼭 끌어안았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며 무천도사가 다정하게 말했다.
"우선은 '스트레스 stress'와 '스트레서 stressor'를 혼동하지 말아야 해요."

- 마인드풀니스 Mindfulness.
빨간색으로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명상'이에요."
 
-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마음속을 '현재'로 가득 채우는 겁니다. 그게 마인드풀니스예요."
마음속을 현재로 채우라니 무슨 말일까?
"호흡이 기본이에요. 우선 이 의자에 앉아봐요."
무천도사가 말하는 대로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장 앞에 있는 의자로 이동했다.
"등을 곧게 펴서 등받이에 기대지 말고 앉으세요. 몸에 힘을 빼고요."

수상한 최면술사가 떠올랐지만 그의 지시를 따랐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쉬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는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느리게 내쉬었다. 그러자 무천도사가 지적했다.
"아니, 아니에요. 대부분 의식적으로 호흡할 때 들이마시기부터 하는데, 호흡은 내쉬고 나서 들이마시는 거예요. 먼저 가슴속에 담아둔 공기를 전부 내쉬어요." 

-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막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뜨자 한꺼번에 시각과 청각으로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호흡에 집중했을 뿐인데 머릿속이 맑아져서 깨끗한 백지상태가 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의식을 깨우도록 해요."
그의 말에 따라 나는 목과 어깨를 가볍게 몇 번씩 돌리면서 '아~'하고 소리를 냈다.

 

- "마음이 지쳤다는 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망상에 얽매여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져요."
"현재의 자신을 의식하는 거군요."
"맞아요. 호흡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 이외에 자율 훈련법이라는 방법도 있어요."

- 무천도사는 화이트보드에 여섯 가지 요소를 적어 내려갔다.
"여기 쓴 것처럼 팔다리, 호흡, 심장, 배, 이마에 의식을 집중시키면 마인드 원더링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증폭을 막을 수 있어요. 자연히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도 억제되죠."

- 자율 훈련법의 주요 내용

1. 양팔, 양다리가 무겁다. 2. 양팔, 양다리가 따뜻하다. 3. 호흡이 안정적이다. 4. 심장이 천천히 뛴다. 5. 배가 따뜻하다. 6. 이마가 차갑다.

- 진짜로 기분 나쁜 일을 떠올리거나 상상하면서 고민하던 시간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규칙적으로 하려면 1번과 2번을 자기 전이나 목욕하기 전 등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좋아요."
나는 힘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익숙해지면 바로 현실만 의식하는 상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오늘부터 해볼게요."

- "이것 말고도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효율적인 훈련법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뭐죠?"
"바로 '실황 중계법'이에요."
"실황 중계법이요?"
"걸으면서 '나는 지금 걷고 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이렇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서 자기 행동을 실황으로 중계하는 거예요."

 

- 내가 정말 효과가 있는 방법인지 미심쩍어 하자 그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머릿속 사고와 감각,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을 '싱글 태스킹 singletasking'이라고 합니다. 싱글 태스킹도 셀프 모니터링이나 셀프컨트롤 훈련에 속해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멀티 태스킹과 달리 싱글 태스킹은 뇌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서 전두엽을 쉬게 해 줘요."
 
- "마인드풀니스랑 자율 훈련법은 언제 해요?"
무천도사의 질문에 나는 노트를 꺼내며 대답했다.
"침대에 누워서 잠들 때까지 하고 있어요."
"좋아요."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 "자율 훈련법을 할 때 '팔다리가 무겁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팔다리가 따뜻하다'는 솔직히 느낌이 잘 안 와서 금방 끝나버려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꾸준히 하면 돼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율 훈련법을 시작하고 최근 며칠간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았다.

- 친절한 눈길로 나를 보던 무천도사는 "좀 어려운 이야기를 할 까해요"라며 먼저 양해를 구했다. 또 강의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호흡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각자 조절하는 뇌의 부분이 달라요."
언뜻 듣기에도 어려운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원리를 이해해야 훈련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경험했기에 무천도사의 말에 집중했다.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하는 호흡(대사성 호흡)은 뇌간이 조절합니다. 우리가 연습하는 호흡법처럼 의식적으로 하는 호흡(행동성 호흡)은 대뇌피질, 마음에 따라 동요하는 호흡(정동성호흡)은 편도체가 담당해요."

 

- "불안하거나 짜증이 나면 호흡이 얕아지거나 빨라지죠. 그게 정동성 호흡을 한다는 증거예요. 정동성 호흡을 조절하는 편도체는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정동 중추이기도 해요." 
"감정과 호흡이 뇌의 같은 부분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인가요?"
"네, 흥미로운 사실이죠? 불안하거나 짜증이 나서 호흡이 얕아지고 빨라지는 게 아니라 호흡이 얕아지고 빨라져서 불안하고 짜증 나는 감정이 생기는 거예요. 근육이 긴장하거나 혈압이 상승하기도 해요." 

- "정동성 호흡이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다시 말해 불안하거나 짜증 날 때 일부러 천천히 호흡해서 반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죠. 정동성 호흡을 행동성 호흡으로 바꾸는 겁니다."

- 호흡의 예상치 못한 효과에 나는 감탄했다. 무천도사는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계속했다.
"그러니까 '호흡법'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마음과 호흡은 서로 이어져 있어요."
 
- "한자로 자신을 의미하는 스스로 자 自자에 마음 심 心자를 붙이면 뭐가 되죠?"
"스스로 자자에 마음 심 자면, 우와, 숨 쉴 식 息자군요!"

내 대답에 무천도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만큼 호흡이 중요한 거예요. 앞으로도 3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쉬기를 잊지 말아요. 호흡은 편도체도 속일 수 있으니까요."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 "지금까지 설명했지만 마인드풀니스랑 자율 훈련법은 집에서 안정을 취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사실 스트레스는 일하는 중에 폭풍처럼 덮쳐오곤 하죠."
맞는 말이다. 일하는 도중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는 걸까? 무천도사가 해결책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차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
"큰 사건이나 문제보다 일상적으로 쏟아지는 작은 스트레스가 마음을 더 어지럽히죠.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책을 알고 있으면 무척 유용해요." 

- "물론이죠. 방법이 있어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알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말을 메모하려고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코핑 coping '이라고 해요."

- "코핑 방법은... 스스로 찾는 거예요."
맙소사. 스스로 찾으라고? 놀라서 휘청하는 나를 보고 무천도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코핑은 스스로 해소책을 찾아서 실천하는 방법이에요."
마인드풀니스나 자율 훈련법처럼 지금까지 몰랐던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줄 알았던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 "어떤 일에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떻게 하면 다스릴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생각해서 실천하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맞춤형 코핑 방법을 만들 수 있어요."
당연히 내가 직접 생각해 내면 맞춤형이 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다스리는 방법을 잘못 찾으면 증상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네? 무슨 뜻이죠?"
"예를 들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기분 전환 삼아 여행을 갔다고 해봐요. 기분은 나아졌지만 몸이 너무 피곤하고 잠도 잘 못 잤어요. 그러면 휴가가 끝나고 일하기가 더 힘들어지죠. 이처럼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에요."

- "따라서 '스트레스 해소 = 기분 전환 = 여행'이라고 단순화하지 말고 먼저 자기 성격과 성향, 생활 리듬을 잘 생각해봐야 해요. 한정된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하는지가 중요해요. 기분 전환을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무척 위험할 수 있어요."

 

- 갑자기 무천도사가 검지를 세워서 "첫째!"하고 외쳤다.
"그럼 이제 맞춤형 코핑을 찾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먼저 자기가 언제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객관적으로 관찰(모니터링) 해야 합니다. 이게 지난번에 말한 셀프 모니터링이에요." 
"셀프 모니터링. 나를 관찰하라고요?"
"막연하게 그냥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봐요."

- "셀프 모니터링이 익숙해지면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가 아니어도 평소의 자세나 호흡, 사고를 반복적으로 관찰하도록 할 거예요.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일상적으로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단계까지 가도록 훈련하는 거죠."
"꽤 힘들겠어요."
"네.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힘든 훈련이에요. 하지만 그 수준까지 도달하면 사소한 전조 증상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요. 재발 방지에 아주 효과적이죠. 굳게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그때 무천도사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워서 "둘째!"라고 외쳤다.

"다음으로 나의 스트레스가 어떤 스트레스인지 관찰해요." 


- "셋째! 스트레스에 맞는 해소법을 스스로 찾는다."
"해소법을 찾으라고 하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을 때는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찜질방은 어때요?"
"그런 것도 효과가 있나요?"
"물론이죠. 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일반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특히 노래방처럼 기분 전환을 위한 행동은 주의해야 해요."

- "기분을 고조시키는 행동은 경조증 상태를 불러와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 과활동을 초래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혼재 상태나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 "열 가지 중에서 각각의 스트레스에 맞는 해소법을 찾을 거니까 가능한 다양하게 생각해 두는 것이 중요해요. 생각나는 대로 적어봐요. 스트레스 해소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스트레스 해소대책이 되거든요."
"쇼핑 삼매경에 빠진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괜찮나요?"
"음, 그건 좀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기분이 고조되는 상상은 경조증을 초래할 수 있어요."
"상상하는 것도 안 돼요?"
"노래방이랑 마찬가지로 경조 상태나 혼재 상태에 빠져서 과활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요. 아무래도 올라가면 다시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 [좋아하는 만화책 보기. 상사 얼굴의 점 세기. 부모님 댁 고양이 사진 보기.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영화 보기. 의식적으로 호흡하기. 멀리 있는 경치 바라보기. 치즈케이크 먹기.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하기. 친구와 전화하기. 근처 산책하기. 책 읽기. 네일 숍에 가기. 미용실에서 염색하기.]
무천도사는 목록을 훑어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좋은데요. 상사 얼굴의 점을 세는 것은 금요일에 잔소리 들을 때 딱 맞는 방법이겠어요. 그런데 단 음식을 먹는 방법은 혈당치 조절을 위해 내장 기관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드니까 일시적인 코핑이에요. 치즈케이크처럼 달콤한 음식의 과다 섭취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피하는 편이 좋아요."
메모하면서 듣고 있던 내게 예상치 못한 지적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저장해 놓은 영화를 보는 것은 좋은 취미지만 뇌와 눈에 피로가 쌓여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적절하지 않아요."
냉정한 지적에 살짝 풀이 죽었다.
"그리고 친구와 전화하기도 설령 기분은 나아질지 모르지만 뇌는 피곤해져요. 결국 과활동을 초래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전문가와의 대화 말고는 적극적인 대화도 자제하는 편이 좋아요. 기분을 좋게 만들려 하기보다 평온한 상태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요."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 "과한 참견 같겠지만 이 부분에서는 엄격하고 철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 치료가 어려우니 명심해요."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떤 스트레스에 어떤 해소법을 사용해야 효과적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느끼는 스트레스의 성질을 파악한 다음 해소법 목록에서 잘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에요." 
"스트레스의 성질이요?"
"네, 예를 들어 가슴이 조여 오는 통증은 몸이 느끼는 증상이잖아요. 그럴 때는 신체적인 해소법인 호흡법이 유용하겠죠. 호흡법을 실행하기 어려우면 음료를 마시기만 해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을까요? 위장에 수분이 들어가면 부교감 신경이 자극을 받거든요. 그 밖에도 목을 천천히 돌리는 등의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도 효과가 있어요." 
신체적 증상에는 신체적 해소법이라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끄덕이는 나를 보며 무천도사의 조언이 계속되었다.

- "외부 요인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갈 길이 멀지만 천천히 가봅시다. 우선 내일부터 스트레스 해소법을 실천해 봐요." 

- "뭔가 크게 변한 건 아닌데요. 말로 표현할 수 없던 불안감이 조금 안정된 기분이에요."
"좋아요. 길고 치열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니까 걱정할 건 없어요. 매일 코핑에 신경 쓰는 것을 잊지 말아요."

- 솔직히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속이 울렁거리며 불안한 감정이 생길 때가 종종 있었다. 너무 괴로워서 약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의 진료를 통해서 마인드풀니스나 자율 훈련법, 코핑, 셀프 메디케이션을 제대로 활용하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 "좀 전문적인 얘기지만, 2017년 나고야에서 개최된 일본 정신신경학회 학술총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알려줄게요. 국립정신신경의료센터의 미시마 가즈오 선생에 따르면,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를 포함한 기분장애 mood disorder라는 질병이 '서캐디안 리듬 circadian rhythm'의 이상'을 방치해서 생긴다고 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요점은 '서캐디안 리듬의 이상'을 바로잡으면 마음의 문제를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서캐디안 리듬이 뭔가요?"
"쉽게 말해서 생체 시계가 고장 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 "히나타 씨도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예상보다 일찍 일어나는 일이 있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캐디안 리듬이 이상해진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다가 기분장애를 초래한 거예요."

- "서캐디안 리듬에 이상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자각 증상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다가 깨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증상이에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면 수면제를 처방받을 뿐이죠. 미시마 가즈오 선생은 그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일본 정신과 의사는 약을 너무 쉽게 처방한다는 거죠."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 수면제를 처방한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니죠. 그렇지만 서캐디안 리듬에 생긴 이상은 수면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요. 다시 말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잔다고 해도 근본원인은 치료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결국 기분장애로 이어지고요." 
 
- "사람은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 분비로 졸음을 느끼는데 이 멜라토닌이 서캐디안 리듬을 조정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고 자면서 서캐디안 리듬은 조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깊게 잠들지 못해서 피로를 풀어주는 성장 호르몬 분비도 적어지죠."
"그러니까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건가요?"
"네, 계속 잠이 부족한 기분이 들어요. 수면과 의식 소실은 전혀 다르니까요. 수면제는 속임수일 뿐이에요. 잠을 못 자는 환자의 의식을 잃게 만들어서 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죠."

- "그럼 체내 시계가 고장 나서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는 어떤 치료가 좋은가요?"
"우선은 생활 지도를 해야 해요. 저는 때때로 한약과 비타민을 쓰기도 하죠."
 
- "문제를 일으킨 생활 습관을 바꿔서 본래 수면이 가진 의미를 되찾아주는 거예요. 적어도 수면제를 처방하기 전에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는지 확인해봐야 해요." 


- "대서사시 같아요."
"그런데 현대인은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텔레비전, 야광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에 계속 노출되잖아요. 뇌를 각성시키는 블루라이트에 밤에도 노출돼 있으니 서캐디안 리듬이 무너지는 게 당연해요."
"그게 이 선글라스와 무슨 관계가...?"
내 말을 자르고 그가 계속했다.
"수면제를 먹기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햇빛을 쐬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까지 푹 자는 생활 리듬을 되찾으면 마음의 문제를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어요. 거기에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 바로 이 선글라스예요."
"이 오렌지색 선글라스가 필수 아이템이라고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말했다.
"오렌지색 빛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25퍼센트 높여줘요."
"25퍼센트나요?"
"히나타 씨에게도 지금까지의 생활 습관을 개선하도록 할 생각인데 뭐든지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잖아요?"
 
- "뇌 작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기는 무엇일까요? 힌트는 '한 글자'예요."
"귀!"
어이쿠! 무천도사가 몸 개그를 하듯이 휘청거렸다.
"죄송해요. 한 글자라고 해서 무심코 튀어나왔어요."
"정답은 제2의 뇌라고도 하는 '장'이에요."

- "우선 뇌와 서캐디안 리듬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어요. 수많은 신경 전달 물질을 만드는 장은 뇌 작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요. 서캐디안 리듬을 안정시키려면 장 건강을 챙기는 게 효과적이에요. 장내세균이 면역의 7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고도 하니까요."
 
- "네, 달리 말하면 장은 마음과도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장이 건강해지면 서캐디안 리듬이 안정되고 우울 상태에 빠질 위험성도 줄어들어요. 그러니 마음도 건강해지죠. 반대로 마음에 병이 생기면 장 속 유익균이 줄어들고 유해균은 증가합니다. 그만큼 장 건강이 중요한 거예요. 그럼 장에 가장 좋은 식품은 뭘까요?" 
"음, 단 음식일까요?"
"그건 히나타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고요."
"하하, 들켰네요."
"코핑 이야기를 할 때도 말했지만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은 정신적 불안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네, 주의할게요."
"정답은 발효 식품이에요."

- "그럼, 어려운 말은 다 잊어버리고 그냥 몸에 좋은 지방이라고 생각해요."
"몸에 좋은 지방..."
"오메가3 지방산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식물성 ALA, 동물성 DHA, 그리고 EPA가 있죠."
"DHA와 EPA는 들어본 적이 있어요."
"ALA도 알파리놀렌산이라고 하면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 "알파리놀렌산은 견과류에 많이 들어 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호두에만 들어 있어요."
 
- "호두 말고 다른 음식으로 알파리놀렌산을 섭취할 수 없나요?"
내가 묻자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음식 이름이 튀어나왔다. 

"치아시드도 있어요."
 
- "그리고 반대로 주의해야 할 지방이 트랜스지방산이에요."

"들어본 적 있어요."
"트랜스지방산은 식품으로 섭취할 필요가 없는 기름이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방인데 마가린, 쇼트닝, 팻 스프레드에 들어 있어요."

- "그리고 장 건강을 위해서 식이 섬유를 챙겨 먹어야 해요. 현미, 배아미, 옥수수, 콩, 팥, 고구마, 토란, 곤약, 우엉, 머위, 셀러리, 아스파라거스,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미역, 한천, 우무, 바나나, 참외 등에 많이 들어 있죠." 
무천도사의 설명은 점점 열기를 띠었다.
"그리고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으면 안 돼요."

- "오래 씹는 게 중요하거든요. 한 번에 30번 이상 씹어야 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일이 바빠서 점심을 급히 먹곤 했다.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 되고요. 씹는 행동은 리듬 운동이라 멜라토닌의 재료인 세로토닌 생산에도 도움이 돼요."

- 점심뿐 아니라 최근에는 집에서 먹는 저녁도 제대로 차려 먹은 기억이 없었다. 대충 김밥이나 햄버거를 사 갖고 들어가거나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만 했다. 우울 상태가 내 생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체온 조절 기능이 안정되니 수면의 질도 좋아져요."

- "식생활이 무척 중요하군요."
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무천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생활 개선은 우울 상태 치료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 "수면과 식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어요. 무엇일까요?"
무천도사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했다.
"자고 먹는 것 다음은 움직이는 것일까요?"

- "수면과 식사, 그리고 운동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기 위한 세 가지 기둥이에요."
"세 가지 기둥이요?"
"네, 요컨대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평소에 운동해요?"

- 무천도사는 최근 나의 상태가 '체력 충전(낮잠) - 밤잠 설침 - 리듬 깨짐 - 월요일이 괴로움 - 주말까지 억지로 버팀 - 체력 충전'이라는 최악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조증 상태라 겉으로 티가 나지 않더라도 피로가 점점 쌓이면 몸은 언젠가 강제 정지할 수밖에 없다.

- 무천도사는 휴일을 보내는 방법으로 '적극적 휴식'을 추천했다. 약간 피곤해도 가능한 청소나 걷기, 스트레칭, 요가, 사우나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피로를 푸는 행동을 습관처럼 하는 방법이다. 그게 익숙해지면 주말에 사우나를 안 가면 몸이 찌뿌둥한 기분이 들어서 저절로 패턴을 중시하는 생활을 하면서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 "또 비만은 우울상태 증상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무천도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장지방은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분비해요. 염증은 우울 증상을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죠."
 
- "저는 학교 다닐 때 하던 맨손체조 밖에 모르는데요."

무천도사는 자기 전에 10분 정도 스트레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 1. 목에 의식을 집중해서 좌우로 기울인다. (1분×2)

2. 어깨에 의식을 집중해서 앞뒤로 어깨를 돌린다. (1분×2)

3. 상반신에 의식을 집중해서 손을 깍지 끼고 위로 올린다. (1분X2)

4. 등에 의식을 집중해서 몸을 앞으로 숙인다. (1분×2)
5. 몸통에 의식을 집중해서 좌우로 비튼다. (1분×2)

- "잠이 안 온다고 술이나 수면제를 먹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봐요!"

"감사합니다."
 
- "조금씩 틀어진 톱니바퀴를 천천히 되돌려놔야 해요."
초조해질 때면 무천도사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아침에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걸었다. 3주간 걸었더니 몸이 조금 탄탄해진 느낌이 들었다. 또 매일 김치와 낫토를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30번 씹어 먹기도 잊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마인드풀니스와 자율 훈련법도 꾸준히 했다. 오렌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는 것은 어느덧 익숙해졌다. 덕분에 잠들기까지 시간도 짧아졌다.

- 하지만 방문 영업은 여전히 괴로웠다. 갑자기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변하지는 않았다. 길에서 주저앉아버릴 만큼 심한 증상은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천근만근 무겁거나 일하는 도중에 전부 팽개치고 집에 가고 싶을 때는 있었다. 하지만 초조하고 두려웠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다. 아니 안정되어 있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 "오랜만이에요! 히나타 씨, 좀 어때요?"
3주 만에 듣는 무천도사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나는 그동안 쌓여온 초조함에 불쑥 말을 꺼냈다.
"아직도 가끔 갑자기 가슴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들거나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군요.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단번에 좋아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한 걸음씩 갑시다."

- 무천도사는 스트레스를 받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은 계절에 따라서, 혹은 기온이나 습도, 기압의 변화에 따라서, 사건에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분이 안 좋아지던데...' 하는 생각이 들면 영락없이 우울해진다. 따라서 증상이 오기 전에 미리 알고 대처해서 자기 기분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 "그럼 '내 몸 사용 설명서'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조각을 찾으러 가봅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진찰실 안쪽 벽으로 다가가더니 그쪽에 있는 문을 천천히 열었다.
"사실 건너편에도 방이 있어요."
열린 문 너머의 광경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찰실보다 무려 열 배는 더 넓고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방이었다. 넓은 공간을 칸막이로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 놓았다. 앞에는 화이트보드가 여러 개 놓여 있고 50개 정도의 의자가 앞을 향해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 텅 비어 있는 의자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어요."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습관처럼 맞장구를 쳤지만 진심으로 동감하기는 어려웠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었다. 

-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울 상태의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해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정신적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쪽으로 생각하는 버릇은 없는지 돌아봐야 해요. 히나타 씨는 지금부터 스스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살펴봐요." 

- "이 방은 인지 행동 치료라는 그룹 치료를 하는 곳이에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생각으로 행동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을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 볼 거예요."
"같이요?"
별로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내가 약간 경계심을 드러내자 그가 대답했다.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꾸려면 다양한 시점에서 의견을 듣는 편이 좋거든요. 이 분들은 그룹 치료를 지도해 줄 작업 치료사예요."

 
- "우리 클리닉에서는 작업 치료사를 중심으로 재활 치료를 하고 있어요. 이 치료는 비약물요법의 중요한 부분으로 의학과 생리학적으로 병의 구조,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알려주고 영양학이나 인지행동 치료를 지도해요. 또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 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완전히 달라진 식생활과 운동 습관을 떠올렸다.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같은 행동이 바뀌면 인간의 마음도 반드시 변해요. 약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죠. 중요한 건 환자가 문제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 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 "목표를 달성해서 상사에게 칭찬받은 적도 있죠?"
"네, 가끔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지 제 실력이 아니에요. 오히려 칭찬해 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것 봐요. 모처럼 좋은 일이 생겼는데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고 있어요. 상사가 칭찬을 해줘도 기쁘다기보다 민망하다고 생각하잖아요."

-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지만 완전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완벽주의라고 말할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어요.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가면서 생각하는 작업을 시작해 봅시다."


- 사고방식의 습관은 신경 세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부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사고를 할 때 신경 세포는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흥분(전기 활동)하고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전류가 경로를 지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경로는 쉽게 활동하게 된다. 근육 운동과 마찬가지로 훈련을 통해 경로를 단련시킬 수 있다. 무천도사는 긍정이 좋고 부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양쪽 경로를 균형 있게 사용하도록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 "뇌의 컨디션이 치우쳐 있으면 다른 사람의 기분이 눈에 안 들어와요."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일시적 버그가 생긴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기분이나 생각이 특정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조금씩 시야를 넓혀서 다양한 시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아까 말한 상사 말인데요. '굳이 칭찬까지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좋아할까요?"


- "히나타 씨가 걱정돼서 주말에 어머니가 오셨다고 했죠? '엄마도 바쁠 텐데 나 때문에 미안해'라고 말하면 좋아하실까요?"
"둘 다 좋아하지 않겠지만 솔직히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서 그래요.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힘이 나'라고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아하겠지만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아니죠, 히나타 씨에게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봐요."

- "그분의 건강이 안 좋다면 히나타 씨는 당연히 걱정됐겠죠. 그래서 상태를 보러 갔는데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이면 어떨 것 같아요?"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그룹 치료에서는 방금 제가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씩 다른 의견을 참고하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는지를 잘 살펴보도록 해요."

- 진료를 마치고 클리닉을 나올 무렵 나는 여러 가지 지적을 받은 탓에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클리닉이 있는 건물에서 지하철역까지의 수백 미터의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늘 진료에서 비로소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확실히 자각할 수 있었다. 

- "심오한 얘기군요."
"목표치도 물론 달성하면 좋겠지만 적당히 해도 문제는 없어요."

"해야 할 일인데도요?"
"직원 대부분이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한 쪽이 나빠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긴 하겠어요."
"선과 악, 옳고 그름, 흑백으로 나누려고 하면 불확실한 부분이 스트레스가 돼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니까 우선 세상만사 적당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봐요."

- "아니, 완벽한 '적당히'가 아니라 적당한 '적당히'가 좋아요."
"적당한 '적당히'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목표를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백점 만점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죠.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합시다."
그 말에 조금 힘을 얻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 "농구를 하는데 몇 번이나 계속 슛이 빗나가다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어요. 공을 받은 순간, 히나타 씨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음... 또 안 들어가면 어쩌지?"

"땡!"
"역시 틀렸나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자동 사고'라고 해요. 자동 사고를 보면 생각하는 버릇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렇군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거죠?"
"맞아요! 자신의 사고 습관을 알고 어떻게 바꿔야 좋을까 훈련하는 거예요."

- "방금 얘기한 농구 경기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사실 이건 유명한 농구선수의 실제 경험이에요. 슛을 할 때마다 '안 들어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계속 실패하거나 슛을 던지지도 못했다고 해요. 그때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깨달은 거죠."
"'다음에는 꼭 넣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라는 거죠?"
"그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세상만사는 적당한 게 좋아요. 정답은 '다음 슛은 들어갈지도 몰라'예요."

"아,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어요."
"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면 하산이죠. 하하하. 그럼 오늘 그룹 치료 잘 받아요."

- 다양한 단계의 사람이 섞여 있었다. 평소에는 절대 마주칠 일 없는 대기업의 임원과 신입사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들 익숙한 듯 치료는 척척 진행되었다. 피콜로와 크리링은 가끔 조언을 하는 정도였다. 물론 중요한 요점을 짚어줘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마음을 열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룹 치료는 치료의 과정인 동시에 배움의 장이었다. 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다. 

- 그룹 치료에 참여할 때마다 나는 무천도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인식이 변하면 행동이 변합니다. 컵에 반쯤 든 물을 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초조해지죠. 하지만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 여유가 생겨요. 이런 생각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요.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변하면 성격이 변해요. 성격은 습관에 따라붙는 이름표 같은 것이죠." 

- "어렵지 않아요.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않으면 돼요."
"한마디로 정리되네요."
"'나는 안 돼 → 나는 최고야'로 극단적으로 자신을 추켜세우라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최악은 아니야' 정도로 객관적인 중립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입으로 소리 내어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소리 내서요?"
"네, 말로 하는 거죠. 그렇게만 해도 어둠이 잠식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정말 그럴까 미심쩍어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긍정적 확언 affirmation'이라는 방법이에요. 마인드풀니스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우울할 때 시도해 봐요."
나는 손에 든 펜을 고쳐 잡았다.
"긍정적 확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선언 같은 거예요."

- "말에는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어요. 운동선수가 초등학교 때 쓴 작문에서 선언한 대로 꿈을 이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어요?"
"있기는 하지만 스포츠 선수는 좀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했어요."
"선언했다고 해서 다 꿈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꿈을 이룬 사람은 선언했기 때문에 이룬 거예요."
"그럴까요?"
"선언한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속 버그를 잡는 데도 틀림없이 효과적일 거예요."

- "하지만 뭘 어떻게 선언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곤란해하자 그는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히나타 씨가 하고 있는 영업을 예로 들어볼게요. 지금 마음속은 무섭다, 실패한다, 무리다, 괴롭다, 문전박대당할 것이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선언으로 꽉 차 있어요. 몸도 마음도 방문 영업에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는 것이죠. 부정과 회피의 상태를 바꾸려면 일부러 입으로 소리를 내서 몸에 새겨야 한다는 말이에요." 
"시범 한 번만 보여주세요."
"나는 영업 일이 즐겁고 좋다! 간단하죠?"
"자기 암시 같은 것이군요."
"나는 영업이 특기면 좋겠다, 방문 영업은 내 특기다.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죠. 그냥 입으로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듯이 해줘요."

- 클리닉을 다닌 지 어느덧 1년. 앞으로 더 좋은 날들이 많겠지만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이었다.

- 그 주 금요일, 나는 일을 마치고 무천도사의 클리닉을 찾았다.

"히나타 씨, 좀 어때요?"
"요즘 너무 좋아요. 이번 주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스스로 잘 조절하고 있어요."
내 활기찬 대답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히나타 씨는 우리 클리닉에 올 때 목표가 있었나요? 우리 환자 대부분은 복직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히나타 씨는 운 좋게 휴직까지 가기 전에 치료를 시작했지만요." 
나는 우연히 무천도사를 만나서 정신과에 발을 들여놓았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할 때는 막연히 우울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목표는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단순히 회사에 다시 출근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복직이라고 할 수 없어요. 바로 다시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무천도사는 세 손가락을 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지 않으려면 꼭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세 가지 있어요."

오랜만에 듣는 무천도사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 "첫째, 인간의 몸, 특히 뇌 신경계 시스템을 이해할 것."

"자기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강조했죠."
내가 맞장구를 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의욕과 기분, 사고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것."
내가 지난 1년 동안 노력해 온 부분이었다. 머릿속에서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항상 나 자신을 모니터링하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생각하면 마음이 우울해지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내 몸 사용 설명서'를 만들었다. 이 두 번째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마지막 셋째, 재발 방지책을 세울 것."

- "네, 또 우울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업무 강도를 조절하거나 생활리듬과 식생활을 신경 써서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덧붙여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을 궁리해야 하고요."
그 말에 공감하며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히나타 씨는 뇌 신경계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나요?"

"지금까지 선생님께 이것저것 많이 배웠으니까요."
"의욕과 기분, 사고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요?"
"그러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걸요."
 
- "이거 기념으로 줄게요."
그가 왕꿈틀이를 하나 조심스럽게 내게 건넸다.
분홍색 젤리가 마치 앞으로의 인생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나는 젤리를 손에 받아 들었다.
"그럼, 저도 하나 드릴게요."
나는 가지고 있던 왕꿈틀이 봉지를 뒤적여서 제일 긴 대왕꿈틀이를 꺼냈다.
"이거 드릴게요."
무천도사는 '고마워요'라며 그 자리에서 입에 쏙 집어넣었다. 나는 피콜로와 크리링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1년 동안 신세를 진 클리닉을 나섰다. 

- 지하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긴 치료 과정을 되짚어봤다. 무천도사 클리닉에서는 특별한 기계를 이용하거나 약을 쓰지 않았다. 우선 치료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코핑을 실천했다. 이때 단순히 기분만 전환하는 방법이나 기분을 고조시키는 방법, 단 음식을 먹는 방법은 조심해야 한다. 
또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현재'에 집중하는 마인드풀니스와 자율 훈련법, 실황 중계 방법도 실천했다. 정동성 호흡을 행동성 호흡으로 바꾸는 호흡법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 생활 속에서 꼭 실천하고자 한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다. 올바른 수면 습관을 위해 오렌지색 선글라스 쓰기와 밤에 스마트폰 보지 않기 그리고 아침 햇살 쏘이기도 지키려 노력했다.

- 식사는 장 건강을 위해 발효 식품을 되도록 익히지 않은 상태로 매일 두 종류 이상 먹고 식이 섬유를 섭취하려 했다. 또 알파리놀렌산과 DHA, EPA 섭취를 위해 등 푸른 생선과 호두, 치아시드를 섭취했다. 하루에 스무 가지 이상의 음식을 골고루 먹고 한 번에 30회 이상 씹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가능한 맞춰 먹으려 노력했다.

- 또한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운동도 시작했다. 걷기를 일상화하고 숨이 가쁠 정도의 운동을 3~40분가량 한 후 자기 전에는 스트레칭을 했다. 무천도사는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을 권했다. 마지막으로 무너진 인지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인지 행동 치료를 반복했다. 내 경우에는 긍정적 확언도 꽤 효과가 좋았다. 

- 이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클리닉 창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무천도사와 피콜로, 크리링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긴 맺음말

 가메히로 사토시 정신과 전문의 



2008년 7월 후쿠오카에서 열린 우울증 학회의 마지막 강연은 아직까지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강사는 전설적인 정신과 전문의 간다바시 조지 선생님이었습니다. 간다바시 선생님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므로 저는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옆으로는 수많은 저명한 의사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시에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감탄을 마지않는 제 앞에 간다바시 선생님이 강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틀간 우울증 치료에 관한 많은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강연에서도 어떻게 치료를 끝내는지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 정신과 치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최근 정신과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 언제 약을 끊어야 하는 걸까요? 언제 회복되어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없어지는 걸까요? 이날 이후로 정신과 의사로서 저는 '재발률 0퍼센트의 온전한 회복'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도달한 것이 가능한 약에 기대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희 클리닉은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거의 처방하지 않습니다. 항우울증제를 처방한 환자는 최근 7년간 두 명뿐이었습니다. 기분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비정형 항정신병약이나 기분 안정제를 일시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약을 먹지 않도록 줄여나갑니다. 약에 의존하기보다 생활 지도를 통해서 뇌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인지 능력을 바로잡기 위한 상담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으로 개입합니다.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바꾼다고 정말 지금 느끼는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치료 초기에는 많은 환자가 이렇게 의심합니다. 이런 망설임을 없애주는 존재가 바로 그룹 치료에 참여하는 많은 선배 환자입니다. 그들의 회복을 지켜보면 망설임이 점차 사라집니다. 그렇게 치료 종결을 향해 스스로 방향을 잡고 의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신과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다른 환자의 이야기에서 큰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환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대화를 근거로 하는 의료를 서사 중심의학 narrativebased medicine이라고 합니다. 서사 중심 의학은 환자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개인적인 배경, 가치관을 공유하는 치료입니다. 저 역시 환자를 상담하다 보면 개인의 경험을 함께 나눌 때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과학적 근거(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근거 중심 의학 evidence-based medicine은 의료의 기본이지만, 어렵고 민감한 정신적 문제를 더 가깝게 느끼고 이해하기에는 이야기가 좀 더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쉽고 친근하게 환자의 상태를 알리고 치료법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스토리텔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구성은 정신 건강 세미나 강사이자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나쓰카와 작가님이 맡아주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클리닉을 배경으로 '히나타'라는 가상의 주인공의 치료 과정을 보여주는 색다른 방식입니다. 거기에 저의 의사로서 경험과 지식을 조합하여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흥미롭게 정신과 치료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화 형식을 통해 치료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


물론 저는 약을 처방하는 정신과 치료를 전부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울증에는 항우울제가 효과가 있고 다른 약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또한 넘쳐나는 환자로 힘겨운 의료 현장에서 몸 바쳐 일하는 동료 의사들을 무척 존경합니다. 단지 너무 약에만 의존하는 환자를 수없이 만나면서 힘들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주인공이 배운 치료법 이외에도 훨씬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이 책을 계기로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정신과 치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하나라도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정신과를 찾는 분께 하고 싶은 말은 치료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정신적 문제를 직면하는 일이 간단할 리 없습니다. 더구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과정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시련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온전히 치료를 끝내고 회복한다면 분명히 좀 더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저를 지지해 주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울증 치료의 심오함과 재미를 가르쳐준 은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치료 방식을 이해하고 지지해 준 협력 회사의 경영자, 인사 담당자, 사회 보험 노무사, 산업 보건의를 비롯해 산업 보험 직원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