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소영] 식물의 책 -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일루젼 2024. 7. 2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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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소영
출판 : 책읽는수요일
출간 : 2019.10.25


       

아름다운 세밀화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그에 더해 부러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을 여러 식물들에 관해 재미난 상식과 유래들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향나무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잎이 동시에 난다거나, 복숭아와 무궁화는 사실 중국이 원산이라거나, 개나리는 인간이 계속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를 상황이라거나, 계수나무는 가을 낙엽에서 달콤한 향이 난다거나 하는 것들. 

(기회가 닿는다면 가을 수목원에 방문해 맡아보고 싶다.)

 

이전에 그림을 자주 그릴 때, 나도 세밀화에 도전해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몇 차례 시도한 후 바로 포기했는데... '세밀화'는 보기에 섬세한 것도 중요하지만 대상의 특징을 최대한 정확하고 눈에 띄게 포착해야 한다. 즉 관찰력과 집중력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요구되는 일이었다.

 

만약 저자처럼 세밀화를 직업적으로 그린다면, 거기에 더해 당장 눈앞의 한 대상만이 아닌 전체적인 종의 특성 또한 고려해 가장 적합한 '하나'를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아마도 훨씬 고된 사전 작업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고려된' 그림이라는 점이 세밀화가 갖는 큰 장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한 바는, 따라 그려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세밀화들이었다는 것. 그 한 마디를 이렇게 길게 늘여 쓴다. 

 

인간의 삶은 거의 전체를 식물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생활만이 아닌 생활 전반에서 '식물'이 제공해 주는 것들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종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 순환에 대해서는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특히 일상에서 종이를 자주 접하는 나 같은 경우는 이런 생각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이런 순간에도 인간의 입장에서 유용과 무용을 분리해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자신이 행동할 때 담았던 의도로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별 의미 없는 행위에 지나치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를 볼 때면 '저 이는 저 행동에 의도를 담았던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나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하다.  

 

앞으로의 삶에는 식물들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햇빛을 받으면 그저 기뻐하고, 자라나고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 시간. 

음. 어쩌면 이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매 순간이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몸부림치지만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거울은 존재한다. 

 

오늘의 단상은 여기까지.  기분 좋은 책이었다.  


   

 

    

 

 


 

- 저는 식물세밀화를 그립니다. 제 작업은 어떤 식물을 그릴지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이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들은 어쩌다 숲에서 도시로 오게 되었는지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식물에 관해 좀 더 알게 된 다음에, 직접 식물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서 형태를 관찰하길 반복해, 그림을 완성합니다. 바로 그렇게 제가 걷는 길 콘크리트 사이에 핀 제비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종을 가진 식물이란 것을, 제가 즐겨 먹는 딸기 한 알에 씨앗이 이백 개가 넘는다는 것을 식물세밀화를 그리며 알게 되었습니다. 

- 카밀라 베르너는 제가 정리한 잡초 목록을 죽 훑어보더니, 그중에 혹시 약용식물이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이 약효가 증명된 약용식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잡초라 여겼던 식물들이 어딘가에서는 집약적으로 재배해 판매되는 약용식물이었던 거죠. '잡초'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피어난 식물 혹은 농경지에 심은 작물들 옆에 자라서 생장에 방해가 되는 식물, 내가 유도하지 않은 식물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잡초로 여기는 식물도 알고 보면 제각기 쓸모와 역할이 있습니다. 

- 우리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잡초의 대표 격인 민들레를 한번 살펴볼까요. 민들레는 도시 어디에서든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만나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들레라 알고 있는 이 식물은 정확히 부르자면 '서양민들레 Taraxacum officinale Weber'입니다. 사실 '민들레'는 종이 아닌 가족의 이름이거든요. 제가 앞으로도 '종'과 '속', 혹은 '과'란 단어를 자주 언급할 텐데, '종'은 생물의 가장 기본 단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개인 한 명에 해당하는 거죠. 그리고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이 있듯이, 식물에게도 가족이 있는데 그게 바로 '속'이에요. 그보다 더 큰 단위가 '과'고요. 

- 민들레 속은 세계적으로 400종 안팎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0여 종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우리나라에는 '서양민들레', 우리 토종의 그냥 '민들레', '털민들레', '흰민들레', '산민들레', '민들레' 등이 있어요. 우리나라와 식생이 비슷한 일본에는 아예 민들레로만 이루어진 꽤 두꺼운 도감이 있을 정도로 연구가 많이 되어왔고요.

- 민들레는 특이하게도 환경에 따라 그 형태가 많이 변합니다. 같은 종이라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 잎이 민무늬거나 거치가 많다든가 하는 식으로 환경 변이가 큰 편이에요. 그 때문에 종의 형태적 특징을 단정 짓기 모호해서 식물학자들이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로는 서양민들레와 토종민들레가 있습니다. 이 둘을 식별하는 데 가장 큰 열쇠(분류)는 꽃잎 아래, 꽃받침과 비슷한 '총포'입니다. 총포가 꽃을 향해 위로 올라가 있다면 토종민들레, 아래로 쳐졌다면 서양민들레입니다.
 
- 낮의 길이를 통해 식물들이 계절을 인식하는 거죠. 플로리겐 florigen이라는 호르몬 덕분에 가능해요. 온도의 영향과 관련해서도, 단순히 기온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겨울을 온전히 지내고 나서야 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겨울의 낮은 온도에 노출되어야 꽃의 분화가 일어나고, 그래야 봄에 꽃이 피는 거거든요.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대사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도 겨울을 났기 때문에 비로소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 매년 개화 시기 예측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봄꽃이 있습니다. 바로 개나리예요. 보통 명칭에 접두사 '개'가 붙으면 조금 못하거나 가짜라는 의미가 더해지는데요. 그래서 가짜나리라는 뜻에서 '개나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다른 유래로는 조선시대 기록에 개나리를 가리켜 '개날'이라고 표기된 바 있다며, 나리에 접두사가 붙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명사로 '개날'이라는 명칭이 존재했다고 보기도 해요.

- 언뜻 개나리는 외국 수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나리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의 종소명이 '코레아나 koreand'라는 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식물이라는 뜻이겠죠. 개나리는 우리나라 원산의 자생식물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밖에 없는 특산식물이라는 거예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한다니 의외죠? 그런데 사실개나리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는, 개나리가 스스로 번식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심었기 때문이에요. 보통 아파트나 건물 울타리용으로 개나리를 많이 식재하지요. 하천 주변에도 많이 심어두었고요. 그럼 자생하는 개나리는 어디 있을까요? 산에 있겠죠? 그런데 산에서도 개나리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만약 산에서 개나리를 보았다면 그건 개나리가 아니라 다른 종인 산개나리이거나, 자생한 것이 아니라 등산로 주변에 개나리 모종을 심은 경우일 거예요. 

- 그렇다면 개나리는 어떻게 처음 발견된 걸까요? 개나리를 처음 발견하고 존재를 알린 사람은 러시아의 식물학자 이반팔리빈 Ivan Vladmirovich입니다. 그는 1900년 개나리를 처음 발견했는데, 이 식물을 개나리가 아니라 중국에 있는 같은 속의 다른 식물로 착각했습니다. 이후 1924년, 구상나무를 발표한 적도 있는 식물학자 윌슨 Earnest H. Wilson이 개나리를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라고 발표했습니다.  

- 은행나무가 암수딴그루인 것처럼 개나리도 장주화와 단주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엄밀히 따지면 암꽃, 수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한데요. 장주화는 수술이 퇴화하고 암술만 발달한 꽃이고, 단주화는 반대로 암술이 퇴화하고 수술이 발달한 꽃입니다. 번식을 위해서는 장주화와 단주화 모두 있어야 할 텐데, 우리가 도시에 심는 개나리는 모두 단주화입니다. 개나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암술이 짧고 겉에 수술만 길게 나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수정도 하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죠.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꺾꽂이 등의 방식으로만 번식하는 거예요. 비록 지금이야 우리 주변에 개나리가 흔하지만, 이렇게 자생하는 개체도 없는데 유전적 다양성마저 없는 경우 최후엔 멸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개나리를 좀 더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단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는 어린 시절, 꽃 중에 가장 먼저 외운 단어가 아마 '개나리'나 '진달래'일 거예요.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식물이니까요.  

- 아래에서 자라는 몬스테라는 그만큼 받을 수 있는 빛의 양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몬스테라 자체도 잎이 많은 식물이라, 만약 몬스테라 잎에 구멍이 없었다면 식물의 아래쪽에 있는 잎들은 빛을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나마 잎에 구멍이 뚫려 있어 구멍 사이로 빛이 통과해 아래쪽 잎까지 닿을 수 있는 거죠. 말하자면 빛이 귀해서 그 귀한 빛을 고루 나눠 가지기 위해 잎에 구멍이 난 상태로 진화한 것입니다.

- 그래서 실내에서 몬스테라를 키울 때도 자생지의 환경과 비슷하게 반그늘 상태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늘진 환경에서도 약간의 광합성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요. 몬스테라는 잎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넉넉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창가나 공간의 구석에서 키우면 벽에 부딪쳐 잎이 제대로 자랄 수 없어요. 참고로 식물을 심는 화분은 무조건 최대한 크고 깊은 것이 좋습니다. 물론 화분보다 좋은 건 노지에 식재를 하는 것이지만요. 그만큼 식물이 뿌리를 뻗을 화분을 최대한 자생지의 환경처럼 만들어주는 게 최선이에요. 우리도 움직일 공간이 좁으면 불편하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죠. 

- 품종은 델리치오사입니다. 여기서 '델리'라는 말에는 '맛있다'라는 의미가 있는데요. 잎이 맛있다는 뜻은 아니고, 몬스테라의 열매가 맛있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에요. 보편적으로 식용되는 과일은 아니지만, 먹을 수는 있습니다. 파인애플이랑 바나나가 섞인 맛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열매는 몬스테라에서 유일하게 독성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몬스테라의 줄기와 잎에는 모두 독성이 있습니다. 열대우림에서 초식동물들에게 쉽게 먹히지 않기 위함이겠죠. 섭취하면 혀와 입가, 목 부분에 돌기가 난다고 해요. 수액은 뾰루지가 나게 하고요.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동물들이 몬스테라를 먹지 않도록 주의해주셔야 해요. 그런데 왜 열매에만 독성이 없을까요? 당연히 번식을 위해서죠. 나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열매만 먹어서 종자를 퍼뜨려달라는 거예요. 정말 똑똑하지요. 그렇다고 몬스테라에 독성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잎에서 포름알데히드를 억제하는 성분이 나와 새집증후군을 개선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해요. 

- 우리는 관엽식물을 키우면서 그 아름다운 모습만 소비할 뿐이지, 정작 그 식물의 잎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어떤 환경을 좋아할지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 작년에 서울제비꽃의 세밀화를 그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제비꽃은 우리나라 중북부에서 볼 수 있는데요. 다른 제비꽃들보다 색이 밝고, 잎이 긴 편에 털도 많이 나요. 제비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꽃 뒤편에 주머니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어요. 바로 꿀주머니인데요. 그 안에는 곤충을 유인하는 꿀이 들어 있지요. 꿀벌은 혀를 길게 내밀 수가 있어, 기다란 꽃을 지나 꿀주머니에 있는 꿀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다른 곤충은 쉽게 먹을 수 없는 구조로, 제비꽃 매개 꿀벌을 가려내기 위해 이런 형태로 진화된 거예요. 

- 그렇다면 이제 다시 그 청취자 분의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제비꽃은 꽃을 피우지 않아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제비꽃은 '폐쇄화'라고 해서 꽃이 피지 않은 채로 스스로 수분을 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거든요. 수술을 암술에 직접 닿게 해서 스스로 수분을 하는 방식이죠. 원래는 꿀벌의 도움으로 수분을 하곤 하지만, 봄 동안 기다렸는데도 곤충이 오지 않으면 여름 즈음엔 차선책으로 스스로 수분을 하여 열매를 맺는 거예요. 제비꽃을 보면 식물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정말 체계적이고 강인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 주목은 살아서 천년 살고 죽어서도 천년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목도 빙하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식물 중 하나로, 천천히 자라면서 또 오래 살기도 하는데요.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건 죽은 이후에도 그 사실이 바로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설악눈주목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고지대에 군락을 지어 200만 년이 넘도록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서 그 유용함을 알고 수탈도 많이 해갔습니다. 요즘엔 등산객들에 의해서 피해를 많이 입고 있고요. 씨앗이 발아하는 데만 2년 넘게 걸리다 보니, 가지째 번식시키려고 많이 들 베어가거든요. 백 년 넘게 산 주목이 약효가 좋다는 잘못된 소문 때문에 베어가기도 하고요. 

- 물론 주목은 실제로 대표적인 약용식물입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인디언들이 주목을 가져다 염증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제약회사에서도 연구를 시작해 주목에서 택솔 taxol성분을 추출해 냈어요. 이것을 이용해 난소암, 유방암, 폐암 등의 치료에 탁월한 항암치료제를 개발했죠. 그런데 주목의 독성이 강해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하면 부작용으로 위장염이나 심장마비까지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항암제로 택솔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고 합니다.

- 사실 주목의 모든 부위에 독성이 있는데요, 특히 줄기 껍질과 잎의 싹 부분은 독성이 매우 강해요. 열매의 경우 과육은 괜찮지만 씨눈에 독성이 많아 열매를 먹더라도 씨는 꼭 뱉어야 합니다. 열매는 눈에 잘 띄게 빨갛고, 과즙은 달면서도 씨앗엔 독성이 있는 것. 주목의 생존 전략입니다. 새들이 멀리서 붉은색을 보고 날아와 열매를 먹고, 독성이 있는 씨만 변으로 배출하면 계속 번식할 수 있으니까요. 

- 시간이 흐를수록 유용 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100년 가까이 복용해 온 아스피린도 버드나무 성분을 이용한 것이고, 요즘엔 해독을 돕는다는 헛개나무로 음료도 만들잖아요. 유엔에 따르면 자생식물을 연구해 약으로 이용하는 가치가 매년 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해요. 꼭 돈을 위해 식물을 연구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약용식물들이 식물 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 "토마토는 채소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토마토는 채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라며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결국 존 닉스는 관세를 내야 했지만, 그 판결 내용에 따르면 토마토는 과일이기도 하고 채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과일, 풀에서 열리는 열매는 채소라고 구분하곤 합니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는 씨방 또는 이와 관련된 기관이 자란 것을 과일, 밭에 심어서 가꿔 먹는 식물은 채소라고 정의합니다. 열매 말고도 잎, 뿌리, 꽃 모두 채소라고도 하고요. 이 정의를 기준으로 보아도, 토마토는 역시 과일이면서도 채소입니다. 정확히는 과일의 '과' 자와 채소의 '채' 자를 따서 '과채류'라 부릅니다. 채소 중에서 열매와 씨앗을 식용하는 경우 이를 과채류라 하고, 토마토 말고도 참외와 오이, 가지, 콩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 토마토는 가지과 식물입니다. 열대 기후에서는 다년생이고, 온대 기후에서는 일년생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시설을 이용해 연중 내내 토마토를 재배합니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로 추정됩니다. 700년경 아즈텍인들에 의해서 발견된 토마토는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 탐험가들이 미대륙을 발견하고 이후 식민지화하면서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죠. 토마토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세밀화로 기록을 남겼는데요, 지금까지 전해진 토마토 세밀화 대부분이 그때 그려진 것입니다. 

- 18세기 초기까지 토마토는 주로 관상용 화훼식물로서 테이블 위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맛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색과 형태를 가진 아름다운 품종으로 육성되었지요. 그러다가 남유럽에서 이들의 식용 가치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토마토가 몸에 좋고 맛도 좋다는 것이 알려져 식용식물로서 품종 육성이 이어졌습니다. 토마토는 남아메리카 원산이다 보니 따뜻한 환경에서 잘 자라, 주로 북유럽보다는 남유럽에서 사랑받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토마토의 인기가 선풍적이었는데요. 이탈리아의 대표 요리인 피자와 파스타의 소스가 토마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 그런데 세밀화로 남겨진 초기 토마토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지금보다 그 크기가 훨씬 작은 걸 알 수 있습니다. 흔히 야생의 큰 토마토를 간편하게 먹기 위해서 인류가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로 개량했을 것이라 추측하기 쉽지만, 토마토의 원종은 방울토마토라고 할 수 있는 꽈리토마토 Lycopersicon esculentumvar. cerasiforme입니다. 

- 복숭아는 복사나무의 열매로, 복사나무 Prunus persica L.Batsch의 속명이 프루누스 Prunus인 것에서 벚나무나 매실나무와 가족인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죠. 실제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벚나무의 벚꽃과 버찌, 매실나무의 매화와 매실처럼 열매를 부르는 말과 꽃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는 건 열매만큼 꽃도 오랫동안 관상식물로서 사랑받았기 때문이에요.

 

- 종소명이 페르시카 persica인 것에서 복사나무의 원산지가 페르시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페르시아에서 재배를 가장 많이 해오긴 했지만, 중국이 원산입니다. 복숭아는 재배 역사가 무척이나 오래된 작물로, 그 시초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복숭아의 기원이 곧 농업의 기원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래서 막연히 페르시아를 복사나무의 원산지로 여겨왔지만, 메이어라는 미국의 식물학자가 중국에서 복사나무 원종을 발견하면서 이들이 중국 원산임이 밝혀졌습니다. 메이어 Frank N.Meyer가 처음 복사나무를 발견하고 미국 농무성에 보낸 서한에서 그 원종의 생김새를 그려볼 수 있어요. 
"나는 처음으로 황토 절벽 바다 위 4000피트 고도에서 복사나무를 보았다. 원주민에 따르면 이들은 분홍색 꽃을 피운다고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재배 복숭아보다는 크기가 작고 나무 수형도 작다." 

- 추측해 보건대 복숭아는 처음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에서 페르시아로 전해졌을 테고,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에서 복숭아를 발견해 유럽에 소개했을 겁니다. 그리고 스페인 등 유럽 사람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도 전해 졌겠죠. 중국에서는 복숭아가 장수의 의미가 있는 행운의 과일로 통합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고요. 세계 최대 생산지이기도 해서, 800종 이상의 품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다른 나무들이 단풍이 들기 전, 먼저 낙엽을 떨구는 나무가 있어요. 계수나무인데요. 계수나무가 단풍이 드는 초가을 무렵만 되면 수목원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곤 했어요. 처음에는 무슨 냄새인지 몰라, 소풍 온 아이들이 솜사탕을 먹나 했었죠. 그러다 수목원의 열대온실 입구 근처에 있던 계수나무를 지날 때면 그 달콤한 냄새가 더욱 강하게 난다는 걸 발견했어요. 달고나 냄새 같기도 하고 솜사탕이나 캐러멜 냄새 같기도 한 달콤한 향이 계수나무에서 나고 있었어요. 그걸 알고서는 매해 그맘때가 되면 그림을 그리다가 계수나무 쪽으로 가서 향을 맡으며 잠시 쉬곤 했죠. 그렇게 계수나무 냄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냄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끔 길에서 만난 계수나무에서는 수목원의 계수나무만큼은 냄새가 진하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수목원의 계수나무는 우리나라에 처음 심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계수나무의 어머니와도 같은 나무였어요. 유전적 요인으로 냄새도 가장 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 계수나무는 중국과 일본 원산의 식물입니다. 학명의 종소명도 자포니쿰 japonicum이에요. 1860년대 들어 일본이 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일본 자생식물이 미국에 많이 전해졌는데요. 그때 계수나무도 뉴욕에 처음 전해져 그 이후 널리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공원에나 가로수로 계수나무를 많이 심고 있죠. 계수나무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이유를 일본에서 연구했는데요. 계수나무는 앞서 말했듯 다른 식물들보다 조금 이르게 나뭇잎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때 낙엽이 부서지면서 말톨이라는 분자를 방출하는데, 그 향이 꼭 달달한 캐러멜 냄새와 같다고 해요. 실제로 말톨은 설탕을 태울 때 방출되는 분자이기도 합니다. 계수나무의 하트 모양의 잎 모양과도 잘 어울리는 냄새예요. 이 향을 향수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 계수나무 하면 <푸른 하늘 은하수>의 가사인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계수나무와 달을 연관 짓습니다. 중국 설화에는 오강이라는 자가 큰 죄를 짓고 달에 갇혀 '계'라는 나무를 베는 벌을 받았는데, 그때 옆에서 토끼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해요. 이를 두고 '오강벌계'라고 했죠.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시를 짓는 등, 설화가 널리 퍼져 이웃인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됐지요. 그래서 다들 토끼와 계수나무, 도끼를 함께 엮어 떠올리는 거고요.

- 그런데 이 설화에서 '계'라고 불리는 B나무가 계수나무인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번역상에서 잘못 옮겨졌을 수도 있거든요. 계수나무가 아닌, 월계수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밖에 육계나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육계나무는 우리나라에는 분포하지 않는 나무인데요. 육계나무의 수피가 바로 계피예요. 이렇게 달에 있는 나무가 계수나무인지, 월계수인지, 육계나무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실제로는 '목서'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서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계화나무'라고 부르거든요. 

- 그래도 전설 속 달에 있는 나무가 계수나무라고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계수나무가 은행나무만큼이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무이기 때문일 거예요. 적어도 180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나무거든요. 그런데 그런 계수나무가 지금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종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요. 계수나무가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해 달콤한 향기를 앞으로도 계속 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깍정이가 납작하고, 졸참나무와 신갈나무 도토리의 중간 정도 되는 계란 형태입니다. 졸참나무의 열매는 이름만 봐도 추측할 수 있듯 가장 작고 가늘거든요. 떡갈나무는 잎으로 떡을 쌌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에요. 그만큼 잎이 넓은 편입니다. 잎 바깥은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고, 열매 깍정이의 비늘이 길쭉하고 많습니다. 뒤로 젖혀지기도 하고요. 굴참나무는 열매가 좀 둥글고 떡갈나무 열매와 비슷하게 깍정이에 비늘 조각이 많습니다. 나무의 수피가 두꺼운 코르크질이라서 푹신하기 때문에 집 지붕을 잇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은 집을 굴피집이라고 하죠. 신갈나무는 가장 높은 곳에서 자라는데, 잎자루는 거의 없고 잎이 물결 모양의 곡선입니다. 옛날에는 짚신 바닥이 해지면 신갈나무 잎을 바닥에 깔았대요. 거기에서 신갈나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죠. 

- 겨울에는 식물의 꽃도 지고 잎도 다 떨어진 채로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나 있지만, 사실 겨울에도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 가지에는 붉은 열매들이 많이 열려 있기도 하고요. 오히려 나뭇잎이 없다 보니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던 나무의 온전한 형태도 마주할 수 있지요. 그리고 1년 내내 푸른 늘푸른나무('상록수’의 우리말)도 있잖아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바늘잎나무가 산림의 반 정도를 이루고 있어,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겨울에는 바늘잎나무의 잎이나 솔방울 같은 열매를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 바늘잎나무는 겨울에도 잎을 틔우기 위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사람들도 겨울에는 추위에 닿는 표면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몸을 웅크리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늘잎나무도 추위에 노출된 잎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이다가 결국 바늘잎으로 진화한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원래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측백나무 등 바늘잎나무가 산림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기후변화와 산불, 벌목 등으로 이제는 40퍼센트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바늘잎나무 종 대부분을 그렸는데요. 그리던 당시에는 바늘잎나무의 구조가 복잡해 그려야 할 요소도 많고, 나무의 키가 크다 보니 채집할 때도 쉽지 않아 힘들었어요.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급속도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간의 작업 중에 가장 뿌듯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향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해 온 나무 중에 하나예요. 이름대로 나무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서 향을 피우는 데 많이 쓰였죠. 가지나 잎뿐만 아니라 수액에서도 냄새가 나요. 옛날에는 향나무 가지를 꺾어다 향을 피웠기 때문에, 제사를 많이 지내는 절이나 궁궐 같은 곳에는 꼭 심었죠. 그리고 나무가 무덤을 지켜준다는 속설이 있어 묘지 근처에도 많이 심었고요. 또 물을 맑게 한다는 말도 있어, 우물이나 개울 근처에도 많이 심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래된 향나무가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데요. 특히 중남부 지역과 울릉도에 많습니다.

-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L. 의 종소명인 '차이넨시스 chinensis에서 알 수 있듯, 향나무는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L.'은 명명자인 린네를 이르죠. 1767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 Carl Linné가 중국에서 처음 발견하여 명명하고 발표한 식물입니다. 중국 외에도 우리나라, 일본, 몽골 등지에 분포하고 있어요.

- 향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한 개체에서 두 종류의 잎이 난다는 것입니다. 개체마다 어떤 나무에서는 이런 모양의 잎이 나고 또 다른 나무에서는 저런 모양의 잎이 나는 게 아니라, 한 개체의 한 가지에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형태의 잎이 나요. 하나는 뾰족한 가시 모양의 바늘잎, 그리고 다른 하나는 측백나무처럼 기다란 비늘잎입니다. 그래서 어떤 식물도감을 찾아봐도 향나무는 잎 사진이 두 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다음에 향나무를 만난다면, 그 나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잎을 모두 찾아보세요.

- 향나무는 그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 식물세밀화 작업을 하면서 애먹었던 경우를 꼽아보라고 하면, 딸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아리'이라는 신품종 딸기를 그린 적이 있는데요. 과실에 씨앗이 정말 많이 붙어 있어서 다 그리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딸기 하나에 씨앗이 200여 개는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씨앗이 굉장히 균일한 간격으로 박혀 있어, 그리면서 자연의 배치가 참 수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딸기가 다른 과일과 달리 바깥에 씨앗이 붙어 있는 이유는 꽃턱이 자란 헛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과일은 식물의 열매로, 우리가 섭취하는 것은 열매의 살과 같은 부분입니다. 열매는 꽃의 여러 부분이 변해서 만들어지는데, 감이나 사과, 배 등 대부분은 꽃의 씨방이 자란 참열매예요. 그런데 딸기는 꽃턱이 부풀며 자란 것으로, 꽃턱 바깥의 씨방은 작은 씨가 되어 딸기의 겉에 붙어 있어요.

- 딸기는 장미과 식물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딸기를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들은 딸기를 '프라가 fraga'라고 불렀습니다. '향기로운 것'이라는 뜻의 '프라그'에서 따온 이름이죠. 딸기의 속명인 '프라가리아 fragaria'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고요. 우리가 먹는 딸기는 향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지만, 그 당시 로마인이 재배했던 딸기는 다른 품종으로 향이 굉장히 강했나 봐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이 재배한 '프라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 그러다 17세기 무렵, 칠레에서 일하던 프랑스 육군 공무원이 야생 딸기를 하나 발견합니다. 프라가리아 칠로엔시스라는 종이었는데, 몇 포기를 채취해 프랑스에 가져갔죠. 그 딸기를 상관에게 선물로 주었고, 그 상관은 그것을 다시 심었지요. 몇 년 뒤, 칠로엔시스 암꽃과 기존에 심겨 있던 버지니아나라는 종의 수꽃이 우연히 혼식되어 교잡으로 새로운 종, 우리가 요즘 먹는 딸기와 비슷한 형태의 밭딸기가 생겼어요. 이를 계기로 딸기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이렇듯 늘 우연한 ...

- 화랑, 한얼단심, 신태양, 설악, 새영광, 새아침, 한사랑, 첫사랑, 아랑, 한얼, 파랑새, 아사달, 평화...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무궁화 품종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신기하게 늘 광복절 즈음에 만개합니다.

 

- 아마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무궁화를 잘 알고 있을까요? 혹시 등산하다가 산에서 무궁화를 본 적 있나요? 아니면 도시의 꽃가게에서 무궁화를 사본 적이 있으세요? 무궁화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 분 계신가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이렇듯 무궁화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식물이지만, 정작 무궁화를 가까이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가까이에 있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는 않은 꽃이죠.

- 무궁화 Hibiscus Syriacus L. 의 학명에서 '히비스커스 Hibiscus'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보통 차로 마시는 그 '히비스커스'가 맞습니다. 같은 가족이죠. '히비스'는 이집트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궁화의 종소명은 명명자가 이 식물이 시리아 원산이라 생각해서 '시리아쿠스'라 붙였는데요. 이후 중국 원산임이 밝혀졌습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이다 보니, 당연히 원산지가 우리나라일 거라고 생각할 텐데요. 사실 무궁화는 중국 원산의 식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는 볼 수 없는 거죠. 

- 이 중국 원산의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재배되었다는 기록은 고려시대 문헌에 적힌 '무궁'이란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어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로 지정된 건,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한창 활발할 때 민족 단합을 위한 상징물로 국화를 무궁화로 정하고부터였어요. 무궁화의 흰색이 백의민족을 상징하고, 백일 정도 오래 꽃을 피우는 속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끈기와 닮았다는 이유로 국화로 정한 것이죠. 각 나라의 국화는 그 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좋아한 식물이 자연스럽게 국화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고, 국화가 아예 없거나 둘 이상인 나라도 있어요. 그리스는 향제비꽃, 올리브 두 식물을 국화로 지정하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도 아카시아, 유칼립투스 속 자체를 국화로 지정했죠. 

- 그런데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은 꾸준히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어요. 가장 큰 이유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도 터키 원산이고, 프랑스의 장미도 서아시아 원산이에요. 꼭 그 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좋아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궁화를 좋아할까요? 확신하며 긍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1980년대엔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른 식물보다 빠르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진달래로 국화를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한번 정해진 국가상징물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무궁화를 좀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품종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이후 농촌진흥청과 산림청, 여러 식물학자들이 힘을 합쳐 무궁화의 다양한 품종을 육성해 왔지요. 

- 꽃이 피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한겨울 얼음을 깨고 노란색 꽃을 피우는 복수초예요. 복수초는 일이 월부터 초봄까지 꽃을 피우는데, 보통 1월에 제주도에서부터 시작해서 북부 지방에는 2월쯤부터 개화를 시작합니다. 한겨울에 눈을 뚫고 얼음 사이에서 피는 꽃이라고 해서 얼음새꽃, 얼음꽃이라 불리거나, 또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설연화라고도 하죠. '복수초'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우리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복'을 뜻하는 '복'자에 '장수'를 의미하는 '수'자가 합쳐진 것입니다. 복수초는 새해의 복을 바라는 설날을 상징하는 식물과도 같아요.  

- 복수초는 한 종이 아니라 아도니스 속 식물을 총칭하는데요. 아도니스 속 식물들은 서양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아도니스 Adonis'라는 이름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아도니스의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여신 아프로디테의 연인으로 사냥을 무척 좋아했는데, 사냥에 나갔다가 멧돼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때 아도니스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복수초 꽃이 되었다고 전해지죠. 복수초 꽃은 노란색인데 피라니 약간 의아하기도 할 텐데요. 서양에 분포하는 복수초 중에는 빨간 꽃을 피우는 종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때 아도니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프로디테가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흰색 아네모네가 피었다고 전해지죠. 그래서 복수초 근처에는 아네모네가 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서양에서 전래한 신화이긴 하지만, 신기하게 우리나라 숲에서도 복수초 주변에 아네모네 속인 바람꽃이 자주 피곤 한답니다. 

- 식물이 겨울에 꽃을 피우려면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온에서는 영양분과 수분 흡수를 덜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에너지도 더 적은 상태죠. 게다가 겨울에는 생식을 돕는 곤충이나 동물도 거의 없고요. 그래서 겨울에 꽃을 피우는 건 여러모로 식물에게 큰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초가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서식지인 숲의 나무들이 잎을 틔우기 전에 미리 할 일을 하려는 거예요. 복수초 같은 작은 식물들은 커다란 나무가 무성해지면 나뭇잎에 가려 광합성을 잘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다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늦겨울이나 초봄에 먼저 꽃을 피우는 거죠.

 

- 근데 겨울은 너무 춥잖아요. 그래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개화할 수 있도록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꾸밉니다. 복수초의 꽃잎을 보면 가운데 쪽으로 오목합니다. 그 덕분에 꽃잎 안쪽으로 열을 모아 주변의 눈을 녹이며 꽃을 피우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열은 매개자인 곤충의 체온도 높여 수분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암술을 따뜻하게 함으로써 씨앗도 잘 맺게 하고요.  

- 우리나라에는 세 종의 복수초속 식물이 분포합니다. 복수초와 개복수초, 그리고 세복수초이죠. 각각 생태환경의 영향으로 생김새가 다릅니다. 복수초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핍니다. 만약 꽃과 잎이 같이 있다면 개복수초나 세복수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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