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히노 에이타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일루젼 2025. 2. 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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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히노 에이타로 / 이소담 / 양경수

출판 : 오우아
출간 : 2016.05.25


        

 

이 책이 발간된 뒤 얼추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 시대의 분위기가 바뀌는 데는 대략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IMF 이전 1900년대에는 한 번 입사한 회사는 은퇴까지 다녀야 할 '평생직장'이었다. 직장은 말 그대로 직원의 일생을 책임지며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생의 큰 조각이었고, 고용의 형태 또한 완전고용에 가까웠으며, 정직원 계약이 보편적이었다. 후발주자로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했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개인의 시간들을 모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개인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금자탑은 더 이상 확실한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전체의 거대한 성공보다 개인의 소소한 행복이 중요해지는 과도기-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그런 시기를 잘 반영한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 아직도 한국보다 '회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훨씬 무거운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직업이 단순히 '생존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아실현'의 장이 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보람'이라는 미끼로 생존을 담보로 잡고 '위협'하는 분위기는- 구시대와 함께 사라졌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모여 꿈꾸는 것은, 한 사람이 꿈꾸는 것보다 더 아름다웠으면. 

 

나는 아직도 몽상가이고, 앞으로도 몽상가일 것이다.

근데 이제, 배부름을 곁들인.  

 

 


   

 

- 상사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면서 그 순간 면담을 중단할지도 모른다.

 

- '보람보다는 돈이 더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뿐인데, 지금껏 쌓아 올린 당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높다. 


- 회사에서는 '보람은 필요 없다' '야근수당이 필요하다' 같은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특히 일의 '보람'을 부정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금기'라고 할 수 있다.

 

- '보람이야말로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돈은 어디까지나 덤이니 생활하기 어렵지 않은 정도면 된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금전적으로 절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을 매일같이 강요받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 '돈보다 보람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직장인이 일에 대해 가져야 할 규범적 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소리다.
'보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생각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 '일의 보람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까 최대한 편한 일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많으니 굳이 보람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겉으로는 일의 보람을 존중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꽤 많지 않은가.

- 우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대가로 약속된 것은 기본적으로 '월급' 뿐이다.
일을 일답게 해주는 것은 결국 '회사에 제공하는 노동'과 그 대가로 받는 '월급'이라는 두 가지 요소다.
보람은 어디까지나 이 두 요소를 충족한 후 사람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덤'일 뿐이다.
고작 덤에 불과한 보람을 위해 노동의 정당한 대가인 '야근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보람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일의 강도와 수준에 전혀 합당하지 않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 이 책의 제목이자 앞에도 적은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지극히 당연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회사, 그런 회사가 파다한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 현대에는 '노동' '일'과 관련된 비참한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수많은 회사에서 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서비스 야근'이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너무나 불명예스럽게도 과로사 Karoshi라는 단어가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되었다. 한 회사에 부임한 외국인은 동료들이 가족이나 자기 건강보다 일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무척 놀라워했다. 신규로 채용한 장래성 있는 젊은이를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부려먹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블랙 기업'의 존재가 이미 사회문제로 대두한 지 오래다.

- 한편 애초에 업무 일정이나 체제가 도저히 쉴 수 없도록 짜이기 때문에 유급휴가를 쓸 타이밍 자체가 아예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회사는 사원 모두가 주어진 유급휴가를 전부 사용한다는 상황을 전제로 업무 일정을 짜지 않는다. 대부분 달력에 평일이라고 표시된 날에는 예외 없이 전부 출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제로 계획을 세운다. 그렇기에 '유급휴가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여겨진다. 혹시 유급휴가를 사용하더라도 가족 중에 누가 아프다거나 본인의 몸상태가 안 좋다거나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로만 한정된다. 혹시라도 '여행을 간다'거나 '오늘 하루는 집에서 느긋하게 자고 싶다'는 이유로 유급휴가를 쓰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회사도 상당수라고 들었다. 

- 유급휴가를 쓰지 못한다고? 그건 명백한 '계약 위반'!
유급휴가를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한 환경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이 많은데, 사실 이것은 '이상'하다.

- 유급휴가는 자유롭게 쓸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1년에 유급휴가가 ○일 있다'의 의미는 회사와 사원이 그 일수만큼은 어떤 용무로든 쉬어도 좋다는 계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주어진 유급휴가를 전부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입사계약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유급휴가를 마음대로 사용하면 입지가 난처해진다거나, 애초에 업무량이 너무 많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이는 회사의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 유급휴가는 법적으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로, 부여된 일수에 한해 기본적으로 언제 사용하든 무방하다. 시기변경권이라고 하여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회사가 종업원에게 유급휴가 취득일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역시 '변경'만 가능할 뿐이다. '유급휴가를 쓰는 것' 자체를 회사가 거부할 수는 없다.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에도 유급휴가에 대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 명시되어 있다.)

- 딴 길로 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곧바로 회사에 취직해 그대로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삶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도상 설계 실수다. 

- 2006년경 일본에는 '재챌린지'라는 단어를 강령으로 내세워 '취업활동이나 대학입시에 실패한 사람이 몇 번이든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재챌린지'는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결국 레일을 벗어나면 삶 자체가 순식간에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레일을 벗어나 '챌린지'하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아 분명 사회의 활력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 이렇게 '노예처럼 일할 것을 강요받는 사람'을 가리켜 '사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축'을 이런 의미로 간주해도 문제없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다루려고 한다.

 

- 사축 =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
나는 '사축'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축'의 의미를 이렇게 정하면 회사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회사원은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사축'의 다양한 예시에 포함될 수 있다.

- 예를 들어 경영 상태가 안정적인 대기업에 입사해 정년까지 일할 것을 전제로 35년 만기 주택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고 해보자. 업무가 그렇게 힘들지 않더라도 그 회사에만 특화된 일이라면 자신의 업무능력을 살려 다른 회사로 전직하는 것은 어지간해서 불가능하다. 이러한 경우, 아무리 축복받은 업무 환경이라고 해도 그는 계속 회사에 들러붙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소 문제다. 그러면 회사와 자기 인생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므로 이런 사람 역시 사축에 해당하는 것이다.

- 안타깝게도 직장인 대부분이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기는커녕 '회사는 가족이다' '회사에 헌신해야 한다'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다.

- 이런 가치관에 깊이 빠지지 않았더라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평생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절대 소수가 아니다.
그만큼 많은 직장인들에게 '회사'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인 대부분을 사축이라고 볼 수 있다.

- 사축이라 할지라도 그럭저럭 행복하던 시절도 있었다.


- 그렇다면 사적 가치관, 다시 말해 자신과 회사를 지나치게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사고방식은 어떻게 시작될까?
이 문제를 생각하려면 종신고용·연공임금이라는 고용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 어떤 노동관을 고수하느냐는 물론 개인의 자유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그것이 회사에만 이로운 사고방식인 경우가 있다. 앞서 설명한 좀비형 사축처럼 자신의 노동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 가치관에 깊이 빠져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한번 세상에 뿌리를 내린 여섯 가지 사축적 노동관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 

- 일 이야기에는 반드시 '보람'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 설명회에 가면 "그 일을 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나요?"라고 질문하는 학생을 자주 볼 수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도 현역 사원이 일의 보람에 대해 말하는 콘텐츠가 꼭 있다. 이처럼 사방에서 보람을 강조하다 보니 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월급이나 노동시간이 아니라 마치 보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 "월급은 그다지 많지 않고 휴가도 웬만해서는 못 쓸 정도로 매일 바빠 죽겠어. 그래도 일 자체는 굉장히 보람이 있어서 만족스러워."

눈을 반짝이며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을 본 적 없는가?
이런 자세로 일하는 사람을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을 듯한데,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 회사원처럼 고용된 처지가 아니라, 사람을 고용하는 쪽, 즉 경영자에게는 '월급보다 보람'을 더 중시하는 직원이 아주 고마운 존재다.
일의 강도와 수준에 맞지 않게 월급이 낮으면 보통 노동자는 불만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반면 보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설령 월급과 업무의 수준이 전혀 맞지 않더라도 그 일에서 보람만 발견할 수 있다면 불만이 없다. 불만을 말하기는커녕 보람 가득한 일을 하게 해 준 회사라는 존재에 고마워하며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까지 있다. 

- 단호하게 말하겠는데,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경영자에게 '절호의 먹잇감'이나 마찬가지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바람직한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노동 조건이 나쁜 블랙 기업일수록 일에 잠재된 보람의 가치를 내세우려고 한다. 보람이라는 단어를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보람의 착취'에 발목을 잡힐 위험이 있다.

- 보람을 느끼며 일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을 하는 데 보람이 가장 중요하므로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월급이 아무리 적어도 괜찮다, 혹은 아무리 야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사축적'인 발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녔다면 노예형 사축이나 하치코형 사축이 되기 쉽다. 

- '힘들어도 좋으니까 성장하고 싶다!'
보람과 마찬가지로 일에서 강조되는 또 하나가 '성장'이다.

- '일을 통해 성장하면서 나를 인간적으로 더욱 완성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학생이 꽤 많은 듯하다.
성장을 지향하는 태도 자체는 물론 나쁘지 않다. 성장 지향적인 사람은 노력가이면서 의욕도 넘쳐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필사적으로 해내려고 한다. '성장하고 싶어,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이라도 아끼지 않겠어'라는 태도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인정머리 없는 회사나 경영자에게 마음껏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 일의 보람을 중시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일에 상응하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구조와 똑같다. 

- 실제로는 성장하는 데도 다양한 길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 역시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성장과 회사가 사원에게 요구하는 성장이 똑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배울 기회가 많아 자신의 인재 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배움의 기회가 반드시 포함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월급에 비해 힘든 일을 시키면서 성장이라는 단어로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 막연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면 '성장의 덫'에 빠진다. 그 너머에는 사축이 되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노동을 강요받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 '돈을 받는 이상, 프로다!'
"월급을 받는 이상 프로니까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라."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더라도 돈을 받는 이상 프로답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래야 사회인이라는 억지 이론으로 무장하고 이른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공격한다. 
이 말은 얼핏 보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월급에 맞지 않는 큰 책임을 강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많은 이들이 '책임감 있는 사람'을 훌륭하게 여기는 한편,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에게 그에 상당하는 월급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월급은 적게 받으면서 책임만 무겁게 짊어지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들은 종국에 그대로 노예형 사축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가 받는 월급 이상의 책임을 짊어지는 이유는 애당초 이 사회에 일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나누는 관습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축으로 키워진다.

- 앞장에서 사축의 유형과 특성을 설명했다.
이번 장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학창 시절을 거쳐 회사에 취업해 최종적으로 '사축'이 되는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설명해 보겠다.
사축을 만드는 세뇌는 회사에 취업하기 훨씬 전인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부터라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르지 않아?'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보람'을 중시하는 사축노동관은 초등학교에서 진로직업교육을 하는 시점에 이미 각인되기 시작한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

이상하지 않나?

-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관해 자주 글을 쓰게 한다.
우리는 이때 말하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라고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종사가 되고 싶다' 혹은 '미용사가 되고 싶다'처럼 구체적인 직업을 적으면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지만, '매일 뒹굴뒹굴하면서 살고 싶다' 혹은 '귀여운 여자애의 강아지가 되고 싶다'고 적으면 잔소리를 듣거나 다시 써야 한다.


- '매일 뒹굴뒹굴하면서 살고 싶다'거나 '귀여운 여자애의 강아지가 되고 싶다'는 것도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꿈을 간절히 바라고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고민하는 것도 멋진 자아실현의 과정인데, 학교 교육에서 말하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

- 초등학교 직업교육에서부터 줄곧 각인된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기 분석을 시작하면, '내가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의 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 편견 없는 시선으로 자기 분석을 하면 '나한테는 일보다 취미가 더 중요해' 혹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직업과 연결되지 않는데...' 같은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활동을 위해 자기 분석을 할 때는 이런 결과가 나오면 절대 안 된다.
'애초에 나는 일이랑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떻게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에 가까운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
그 결과,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좋아할 거야. 그러니 이 직업을 택하면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겠지. 그럴 거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하며 자기분석을 스스로를 속이고 납득시키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 자기 분석의 결과가 진정한 의미에서 쓸모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인가?'라는 제약 조건에 휩쓸리면 안 된다.

취준생에게 "학생일 때 해두면 좋을 일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아서
"미리 잠을 충분히 자두세요"라고 대답했다. 


- 30세, IT 컨설턴트

  

 

 

- 고생해서 취업활동을 한 끝에 내정받은 대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4월이 되면 드디어 회사에 들어간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신입사원 연수다. 신입연수의 일반적인 목적은 비즈니스 예절이나 기술, 회사의 업무 내용 등을 배우기 위함인데, 일부 회사에서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는 연수가 이루어진다.

- 한때 아래와 같은 연수를 시행한 회사가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역 앞에서 목청껏 사가를 부른다.
· 자루를 짊어지고 마라톤을 한다.
· 팀을 이루어 땅에 구멍을 판다.
· 새벽 3시에 일어나 등산하고, 텐트에서 생활한다.
· '나를 버리기' 위해 남 앞에서 고릴라 흉내를 낸다.

· 병영 체험에 참가한다.

- 이런 연수가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일은 어지간해서 없을 것이다. 아주 특수한 업무가 아닌 이상에야 일하면서 땅에 구멍을 파거나 자루를 짊어지고 마라톤을 하진 않을 테니까.

 

- 이는 연수가 아니라 군사훈련에 가깝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회사에서 이러한 연수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신입사원은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군대식 가치관에 따라 회사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말도 안 되는 명령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는 사원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업무 지식보다 순종적인 태도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군대식 연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연수의 목적은 신입사원이 어떤 명령에 순종하는 병사가 되도록 '세뇌'하는 것이다.

- 일단 무너지면 원상복귀에 시간이 걸린다. 상황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무너질 때까지 가느니 차라리 전부 다 내던지고 도망쳐버리자. 적절한 시점에 도망쳐서 몸과 마음을 지켜내자.


- 도망칠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책임감'이다.
'내가 도망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남은 사람들도 힘들 텐데 나 혼자 무책임하게 굴 수는 없다.' 

이런 책임감 때문에 '이거 도망치면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 책임감이 강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정말 한계에 몰렸다면 주변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내 몸부터 지켜야 한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결국 주변에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 이러나저러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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