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기쿠가와 세이지 / 김정환
출판 : 스펙트럼북스
출간 : 2010년 4월 10일
<슈카월드>의 서브 채널 <슈카코믹스>를 구독 중이다.
일본의 서브 컬처부터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을 종횡무진하는 숏돌이 알상무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는데, 이제 JTBC에 노출되어 버렸으니 조용히 응원하기보다는 대놓고 응원하려 한다.
(하지만 여의도, 금융권 부부, 비축된 금, 고급 정장과 안목과 미각을 보건대 내가 응원하기보다는 나를 응원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에 대해서는 많은 금융 서적에서 언급하지만, 동시에 어디에서도 깊게 다루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함, 대를 걸쳐 쌓아 온 부와 권력.
그들이 그리는 그림대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거대 가문들.
데니얼 트루소니의 <천사학>에 나오는 그리고리 가와 네피림들이 떠오른다.
(이 소설에서 록펠러 여사는 인간 편이지만)
음모론은 '이런 의견도 있다'는 밸런스 차원에서 접하고 즐길 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존 퍼킨스의 <어느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 떠올라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장강은 도도하지만 개개인은 풀잎과도 같아 작은 물살에도 급류를 만난 양 뒤엎인다.
웬만한 포지션은 거의 정리하고 관망세를 유지하는 중.
크게 벌지도 못하겠지만 크게 잃지도 않을 것 같다.
올해는 일단, 이렇게 유지하고 계속 금융 관련 도서들을 읽어나갈 계획.
배당금 좋다.
- 이 보도를 봐도 명백하다. 어쩌면 부시는 2008년 7월에 일본에서 개최된 G8 정상 회담에 참석하면서도 무엇을 위해 그곳에 왔는지조차 몰랐던 것은 아닐까?
이런 부시의 나쁜 평판을 두려워해 공화당 의원조차 현역 대통령에게 선거 응원을 부탁하지 않는 보기 드문 상황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 '연출된 금융 위기로 오바마가 당선되다'
부시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지지율은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해, 투표 1개월 전인 9월 14일까지는 양자의 지지율이 박빙이었다.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직후인 8월 20일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매케인 46%, 오바마 41%로 매케인의 지지율이 5% 더 높았다. 이대로 가면 매케인이 당선되지 않겠느냐는 보도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후 이러한 교착 상태를 무너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9월 15일에 리먼브라더스 Len_Lehman Brothers Holdings Inc. 가 파산한 것이다.
- 표면화된 금융 위기로 그때까지 미국이 추진해 온 금융자본주의(시장 만능 사상·자유 경제 예찬)의 가면이 벗겨지자 전 세계 사람들은 그것이 사상누각에 불과했음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미국발 금융 위기를 조지 부시 이하 공화당의 무대책이 불러온 사태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민주당에 큰 기대를 보내게 되었다. 그 결과 10월 2일의 텔레비전 토론 직후에는 오바마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10%나 상승했다! 즉 오바마 당선의 배경에는 투표일 직전에 일어난 금융 위기가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음모에 대해서는 제5장에서 자세히 기술하겠다.
- 대통령 선거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의 경제 상황이다. 즉 경기가 좋냐 나쁘냐가 선거를 좌우한다. 이라크에서는 4,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가 사망했고 100만 명이 넘는 현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미국의 일반 국민들로서는 자신들의 경제생활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금융 위기 후의 경기는 당연히 나빠지기 마련이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국민들이 마침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갈아탈 것을 결심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 국민들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오바마가 국민의 열망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오바마 당선 후인 현시점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기 부양인데, 현재 미국 경제는 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이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악의 상태"라고 말했을 정도이기 때문에 누가 방향타를 잡든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투표일 당일에 전 세계적으로 상승했던 주가가 투표일 다음날에는 일제히 하락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오바마의 당선을 환영하며 주가가 상승했지만, 구미에서는 현지인 미국에서조차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즉 '오바마 정권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구미 각국의 시각은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외교 문제에 이르러서는 부시 정권과 다를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나도 이런 예측이 단순한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내가 이렇게 비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 그런데 오바마 당선의 계기가 된 '금융 위기'라는 연출은 사실 이 시기에 일어날 예정이 아니었다. 원래는 매케인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한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금융위기뿐만이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원유 가격의 갑작스러운 하락도 모두 계산되어 있었다. '어떤 목적'에 따라 인위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가격이 자유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 이러한 가격 조작을 일으킨 흑막은 로스차일드 가문과 록펠러 가문으로 대표되는 소수의 초거부들이다. 이러한 금융 과두 권력, 세계의 돈을 움직이는 국제 금융 자본가들을 이 책에서는 '어둠의 세계 금융'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 지배(세계통일정부수립, 통제경제, 인구관리·억제 등)를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 원래 그들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부시의 다음 대통령도 공화당에서 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자 그들은 예정을 급히 변경했다. 11월 4일의 투표일 이후로 계획했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9월 15일로 앞당긴 것이다.
- 어둠의 세계 금융의 세력은 원래 유럽을 무대로 활약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축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현재는 세계의 경제와 군사의 중심이 된 미국을 본거지로 삼는 록펠러 가문(당주 데이비드 록펠러)이 모든 일의 표면에 나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목적은 '지배'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2008년에 일어난 '미국발 금융 위기'와 '원유 가격의 하락'이라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준 두 사건 ...
- 제목에 호기심을 느껴 이 책을 선택한 독자 여러분들은 '프리메이슨 Freemason'이나 '일루미나티 Illuminati'라는 비밀 결사의 명칭과 함께 세계를 관리·지배하려 하는 음모가 있다는 소문을 한두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그룹이 어떤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해당 결사나 조직에 본인이 가입해 있지 않는 한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세계 지배의 흑막을 논하는 음모론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억측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 그런데 만약 그룹 내부에 있는 사람이 세계를 움직이는 위치에서 그 목적과 활동에 대해 써 준다면 그보다 확실한 정보가 과연 있을까? 과거에 그런 류의 자료가 나온 적도 있지만, 출처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아 그다지 신빙성이 높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히틀러가 유대인 배척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으며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유대인의 음모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고 하는 <시온 현자들의 의정서(Protocols of the Wise men of Zion)>도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여러분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음모의 존재를 상세히 적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출처까지 명확한 책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에 출판된 <비극과 희망(Tragedy and Hope)>이다.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력 조직의 존재가 그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의 입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저자인 캐럴 퀴글리 Carrol Quigley 1910~1977는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으며,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에는 조지타운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국방부와 해군의 컨설턴트였던 사람이다. 또 빌 클린턴 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이 1992년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할 때 "어렸을 때는 존 F. 케네디의,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이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했을 정도의 인물이다.
- 퀴글리 교수는 살아생전에 책을 4권 썼는데, 그중에서 <영국계 미국인의 권력 조직에 관해 (The Anglo-American Establishment: From Rhodes to Cliveden)>는 1949년에 탈고되었지만 출판을 의뢰한 출판사에 모조리 출판을 거절당한 사연 있는 책이다. 다행히 훗날 이 원고가 발견되어 출판되었는데, 그 시기는 그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982년이었다. 다만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이 책이 아니라 1966년에 출판된 <비극과 희망>이라는 1,348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 책은 출판되고 얼마 안 있어 미국 전역의 서점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1990년에 복간판이 다시 간행된 덕분에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표지의 크기가 가로 16센티미터, 세로 23.5센티미터, 책의 두께가 6.5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책의 표지를 넘기면 그 안에는 돋보기를 쓰고 싶어질 정도로 깨알 같은 글자가 가득하다.
- 이 책에서 교수는 "사적인 금융 기관을 통해 전 세계 국가들의 정책을 지배하려 하는 자들이 있다. 나는 그 권력 조직의 일원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그리고 그 권력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양의 거대 은행을 움직이고 있는 자들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과 록펠러 가문으로 대표되는 국제 금융 자본가들, 즉 '어둠의 세계 금융'인 것이다.
- 19세기 중엽의 유럽에서는 1743년 이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전상을 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왕후와 귀족을 상대로 한 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해 서서히 자산을 늘려 가고 있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엽에는 세계의 부의 절반을 소유했다고 하며,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국제적인 금융 자본가들의 정점에 서 있다. 미국을 지배하는 록펠러 가문의 배후에도 로스차일드가 자리하고 있다.
- 그 시작은 프랑크푸르트의 게토 Ghetto라고 부르는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서 초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Mayer Amschel Rothschild 1744~1812가 환전상과 대부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19세기 초엽에 그의 아들 중 장남은 본거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남고 네 아들은 런던과 파리, 빈, 나폴리로 가서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왕후와 귀족을 상대로 사업을 전개한 뒤로 크게 성장했다. 왕후와 귀족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그들은 권력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을 금융을 통해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다. 재력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이치다. 지폐 다발이 눈앞에 쌓이면 죄를 범하고 마는 연약한 면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욕망을 이루어 왔다.
- 그들의 수법을 소개한 책이 다수 출판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비즈니스맨으로서 상당한 수완가였음은 틀림없다. 흥미가 있는 사람은 <세계 금융의 미래>(아베 요시히로 저)나 <교과서에서는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어둠의 세계사 Pawns in the Game>(윌리엄 G. 카저) 등을 추천한다. 또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프리카에서 자행한 잔학한 행동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어둠 속'의 속>(후지나가 시게루 저)도 있다. 이 책들을 참고하면 그들의 수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로스차일드 가문에 관한 수많은 책 중에서 전 영국 군사첩보부 제6부 MI-6의 장교였던 존 콜먼의 <로스차일드의 음모>에는 흥미로운 사항이 많이 적혀 있다. 콜먼은 대영 박물관에 가서 그곳에 보존되어 있는 자료를 사용해 기사를 썼기 때문에 신빙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나도 그 책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 일루미나티 Illuminati라고 부르는 비밀 결사가 현재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중심 도시인 뮌헨에서 1776년에 결성되었다. 이때 창시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Adam Weishaupt 1748~1830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람은 로스차일드 5형제의 아버지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 비밀 결사는 세계 통일 정부의 수립을 주목적으로 내세우며 동시에 사유재산의 철폐와 민족의식의 근절, 가족 제도와 결혼 제도의 철폐, 종교의 철폐를 주장했다.
- 공산주의 사유재산의 금지의 근간에 있는 일루미나티 사상이 사유재산의 철폐와 종교의 철폐를 이론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33와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1895;35가 쓴 <자본론>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산당 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
- 다만, 원형은 2,500년 전의 플라톤이었다고는 해도 로스차일드의 지원으로 2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일루미나티의 사상을 빼놓고서는 현재의 미국을 황폐화시킨 이유와 앞으로의 미국을 이야기할 수 없다.
- '만물을 꿰뚫어 보는 '호루스의 눈''
<로스차일드의 음모>에 따르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창시자인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끈질긴 의지와 유대교에 대한 뜨거운 신앙심이 있었다. 또 그는 매우 약삭빠르며 주위의 빈축을 살 정도로 타고난 교활함을 지니고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직 세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던 시절에 일루미타니 설립에 자금을 제공한 것을 보면 마이어 암셸은 꿈이 컸던 사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 이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은 1776년에 설립되고 8년 후인 1784년에 바이에른 정부에 해산을 당했는데, 이 조직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로고가 1963년에 디자인된 현재의 미국 1달러 지폐의 뒷면에 인쇄되어 있다. 만물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명 '호루스의 눈'이 13단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호루스의 눈을 둘러싼 원형 디자인 아래에는 NOVUS ORDO SECLORUM이라는 라틴어가 인쇄되어 있다. 놀랍게도 바이스하우프트가 쓴 책의 제목과 똑같은 문장이다. 이 말의 의미는 영어로 'New World Order'라고 해석된다. 즉 '신세계 질서'인 것이다. 이 말은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나기 딱 10년 전인 1991년 9월 11일에 아버지 부시가 의회 연설에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아버지 부시의 연설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gl=JP&hl=ja&v=7a9Syi12RJo) '뉴 월드 오더'라는 키워드는 닉슨 Richard Milhous Nixon 1913~1994도 종종 사용했다.
-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현재의 미국은 이 비밀 결사와 관련된 조직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적인 황폐화는 일루미나티의 행동 강령을 바탕으로 세계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 무력을 사용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세계 통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했다. 그들은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정부를 뜻대로 조종하며 세계통일 정부의 수립을 달성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금도 그 계획은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 권력 조직 속에 있었던 퀴글리 교수의 눈으로 볼 때는 50년 이상 전에 이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 '로스차일드의 가훈, '눈에 띄지 마라. 표면에 나서지 마라.''
일루미나티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에 대해 잠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소개할 역사상의 사실은 이미 여러분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과는 다른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으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해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 로스차일드 가문은 18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에 남을 수많은 사건에 관여했는데, 그 창시자인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자녀들에게 세 가지 가훈을 남겼다. 그 가훈이야말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어둠의 세계 금융의 정상의 자리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 그 첫째는 "자산을 가족 내부에서 유지하고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그 결과가 빈번한 혈족 결혼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조카와의 결혼이나 사촌끼리의 결혼이 많다. <로스차일드의 음모>에 따르면 암셸의 자손 58쌍 중 29쌍이 혈족 간의 결혼이었다고 한다.
- 둘째는 "자산을 절대 외부에 공표하지 말 것"이다.
현재 록펠러 가문의 자산은 11조 4,800억 달러 혹은 그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어느 정도 숫자가 공개되어 있다. 그에 비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은 모두 합쳐 100조 달러에서 400조 달러로 알려져 있다. 편차가 300조 달러나 되는 까닭은 그 실태를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14년간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독주해 온 빌 게이츠 Bill Gates의 총자산은 590억 달러로 발표되었다. 14년간 세계 최고의 수입을 자랑한 빌 게이츠와 위의 두 가문의 자산을 비교해 보면 이 두 가문의 자산이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셋째는 "로스차일드의 이름을 결코 표면에 내세우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무엇을 하든 자신들을 직접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대리자를 뒤에서 조종해 뜻을 이루는 그들 행동의 기본 지침이 되었다. 잡지 <포브스 The Forbes>가 매년 발표하는 억만장자 명단에 록펠러의 이름은 있지만 로스차일드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은 이 가훈에 있는 것이다. <포브스>뿐만 아니라 어떤 잡지나 신문에도 로스차일드의 이름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 한 예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딴 투자 은행을 가지고 있는데, 이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은 외부에 발표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듯하다. 회사 정보를 게재하는 한 기업 소개 사이트에는 로스차일드사의 정보도 나와 있는데,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다른 회사는 매출과 이익 모두 명확한 수치가 나와 있으나 로스차일드사의 매출은 물음표로 되어 있을 뿐 명확한 숫자가 나와있지 않다(기업을 안내하는 회사의 사이트 http://www.vault.com/companies/company_main.jsp?co_page=1&product_id=27893&gclid=CKWr1Kb8_ZYCFQquGgodnC-NSYg) 매출이나 이익은 가장 중요한 회사 정보다. 그것이 없는 회사 정보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로스차일드 사는 세금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말일까? 아니면 기업 상장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회사 소개에 매출을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 그리고 이번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한 다음 달인 9월 16일에 이미 로스차일드에 교섭 대리를 의뢰했다. 그러나 이건에 관해 이곳 미국의 언론에서는 로스차일드의 이름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결국 리먼의 아시아 부문은 노무라 증권 Nomura Securities Co., Ltd. 이 매수하게 되었는데, 그 교섭 창구가 바로 로스차일드사였다(http://biz.thestar.com.my/news/story.asp?file=/2008/9/20/business/2078251&sec=business) 노무라 증권은 2005년 2월 이래 로스차일드사와 제휴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리먼의 아시아 부문을 노무라가 매수했기 때문에 2008년 10월에는 제휴를 취소했다.
- 뉴욕에 여행을 가서 맨해튼 관광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록펠러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유엔본부가 지어져 있는 부지를 비롯해 뉴욕에는 록펠러 가문이 기부한 건물이나 기부를 통해 시작한 명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 나는 유럽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억측밖에 할 수 없지만, 유럽 여행에서 로스차일드의 이름을 볼 기회라고는 보르도 산 최고급 와인의 이름 정도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것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조의 가훈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중세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역사상 막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은 로스차일드가 처음이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독특한 점은 최근에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긴 세월 동안 자선 사업이나 기부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고 더 많은 재산의 축적과 권력의 획득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연결되면 부자가 될 기회가 생기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진리다. 로스차일드가 그 이상의 목적, 즉 세계 통일 정부 수립을 목표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현재의 혼돈스러운 사회 정세의 커다란 원인인 것이다. 자신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치권력과 지배력을 가진 대리인을 이용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훈을 중시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방침인데, 이것은 21세기인 현재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 '로스차일드 가문의 손에 키워진 디즈레일리'
<로스차일드의 음모>에 다음과 같은 그들의 수법이 소개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국제 금융업의 세계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일족이다. 그러나 이 일족의 '진짜' 역사의 전모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도록 조작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전설, 로스차일드 신화 같은 지어낸 이야기가 다수 유포되고 있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정치가와 국왕, 귀족, 고위 성직자를 사고팔아 온 처절하고 냉혹한 그들의 진짜 모습은 거의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혁명을, 전쟁을, 대변혁을 일으켜 유럽뿐만 아니라 극동과 미합중국의 양상을 뿌리째 뒤흔드는 대활약을 했지만, 사실 그들은 그 역할을 다하면 '공식적인 역사 교과서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 로스차일드 일족에게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장기말에 불과했다." - <로스차일드의 음모> 43페이지
- 그 한 예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총리가 되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Benjamin Disraeli 1804~1881(재임 기간 1868년, 1874~1880년)라는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다. 무명 시절에 이미 점찍어 놓았다가 성인이 된 뒤에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형적인 수법을 이 인물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 그의 최고 공적으로는 1875년에 국제 수에즈 운하 회사의 주식을 44% 취득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때 그는 긴급을 요하는 17만 주의 주식 매수에 필요한 2,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라이오넬 로스차일드 Lionel Walter Rothschild 에게서 융통했다. 물론 이것은 영국 정부의 빚으로서 이자를 붙여 갚아야만 하는 돈이다. 유대인은 유대교의 교의상 어떤 정당의 당수가 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유대인인 디즈레일리가 영국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와 큰 관련이 있다. 1804년에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디즈레일리는 유대교의 관습에 따라 8일째에 할례를 받고 유대 신앙 속에서 자랐다. 그런 디즈레일리가 13세가 되던 1817년 7월 31일에 크리스트교의 세례를 받은 까닭은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례를 받지 않고는 영국 사회나 정치 조직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디즈레일리는 물론 라이오넬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역사에서는 디즈레일리를 무명의 존재에서 성공한 인물로 묘사했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 이러한 디즈레일리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말을 남겼다.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인물의 손에 움직이고 있다."
- 데이비드 록펠러는 미국의 '제왕'으로서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을 능가할 정도의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록펠러 가문의 시조인 존 D. 록펠러조차도 로스차일드 가문에 사용된 장기말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전쟁과 폭락을 비즈니스로 삼다'
존 콜먼은 대영 박물관 소장 문서 중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1770년 이래 모든 반란과 전쟁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썼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일반인에게는 피해밖에 주지 않는 수단을 거액의 재산 축재를 위해 자주 사용한 것이다. 1940년에 출판된 <로스차일드 머니 트러스트 Rothschild Money Trust>라는 책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수천억 달러의 재산 중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돈은 단돈 1달러도 없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피해나 손해를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의 습성이 잘 드러난 예를 소개하겠다. 마이어 암셸의 다섯 아들 중에서도 가장 영리해 형들도 그에게 상담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셋째 아들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사용한 재산축적 방법이다.
- 그는 훗날 런던에 본거지를 건설하지만 처음에는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공업도시 맨체스터로 갔다. 그 무렵 맨체스터는 직물공업이 발달해 있었는데, 네이선은 그곳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배웠다. 남들보다 먼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원료인 면화를 매점한 다음 면화가 필요한 상인에게 정상 가격의 몇 배나 되는 비싼 값에 팔거나 때로는 팔기를 거부한 것이다. 누구보다 빨리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선은 유럽의 각 도시에 비밀 연락원을 두고 빠른 말과 선박뿐만 아니라 전서구까지 활용했다. 그는 맨체스터에서 5년간 살다가 런던으로 이주했는데, 사실 이것은 그의 지나친 탐욕에 화가 난 시민들 때문에 신변의 위험을 느껴 맨체스터에서 살 수 없게 된 그가 런던으로 도망을 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그런데 그가 이주한 런던에는 증권 거래소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단 하루 만에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다. 그 유명한 일화를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한때는 유럽 전체를 통일할 것처럼 보였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1821이 유배지였던 엘바 섬을 탈출해 또다시 군대를 편성하고 영국과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연합군과 대전한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를 이용한 것이다.
- 어느 날, 아침부터 네이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증권 거래소로 찾아와 가지고 있는 정부발행 국채를 팔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연합군이 졌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장 전체가 팔자 일색이 되었고, 날이 저물 무렵에는 국채의 가격이 대폭락 했다. 한편 이 아수라장 속에서 네이선은 몰래 대리인을 통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어진 채권을 사들였다. 그리고 다음 날, 영국이 승리했다는 소식과 함께 국채 가격은 폭등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대량의 국채를 네이선이 헐값에 싹쓸이한 뒤였다. 훗날 그는 "5년 동안 재산을 2,500배로 불렸다."라고 말했는데, 가장 이익을 많이 본 때는 바로 이날이었다.
이 일을 통해 네이선은 국채 가격을 조종함으로써 거액의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이때 수많은 동업자가 파산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후 영국의 금융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 미국을 둘로 쪼갠 사건이 그것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 발발의 진상은 유럽의 은행가들이 꾸민 '분단 전략'이었다. 소국 프러시아의 재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k 1815~1898가 한 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남북 전쟁이 끝난 지 11년 뒤인 1876년에 한 발언으로, 역사 시간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 "똑같은 국력을 지닌 균등한 두 개의 연합 정부로 미합중국을 분열시키는 것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유럽 금융계의 지배자들이 결정해 놓은 사항이었다. 만약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결속을 유지한다면 경제적으로나 금융적으로나 독립성을 쟁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노리는 세계지배가 실패할 것임을 은행가들은 두려워했다." - 비스마르크
- 수많은 소국으로 분열되어 서로 으르렁대던 독일을 1871년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통일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도 로스차일드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833년에 디즈레일리를 통해 18세의 젊은 비스마르크와 친교를 맺은 라이오넬 로스차일드는 그를 미래에 유럽을 이끌 보수계 지도자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데도 뒷이야기가 있다.
- 러시아 황제가 퇴임한 지 1개월 뒤인 1917년 4월, 그들은 대륙 횡단 열차를 봉인해 속에 누가 탔는지 알 수 없게 하고 5~600만 달러에 이르는 금괴와 함께 레닌을 태운 뒤 당시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독일 국내를 가로질러 러시아로 보냈다.
또한 록펠러 가문은 국외추방 처분을 받아 뉴욕시의 로워이스트사이드에 있었던 트로츠키에게 당시 돈으로 2,000만 달러를 주고 러시아로 보내려 했다. 트로츠키를 태운 배가 275명의 동료들과 함께 1917년 3월 27일에 뉴욕을 출항했는데, 첫 기항지는 캐나다의 핼리팩스였다. 그곳에서 캐나다 당국은 국제적인 위험인물인 트로츠키를 체포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거액의 돈도 몰수한 뒤 교도소로 보냈다. 그런데 닷새 뒤에 갑자기 영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트로츠키를 풀어 주시오!"라고 압력을 넣었다. 결국 트로츠키는 미국 여권을 사용해 캐나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금을 소지한 이 두 명은 러시아 국내로 돌아온 뒤 뇌물과 교활한 지혜, 잔악한 행동, 사기적인 행위를 구사해 임시 정부의 내부를 있는 대로 뒤흔들었고, 10월에는 정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레닌은 12월에 신설된 비밀경찰을 서시베리아로 보내 조용히 살고 있던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 7명, 종자 3명, 주치의 1명을 1918년 7월 18일에 총살했다. 참고로 이때 트로츠키는 니콜라이 2세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레닌에게 묵살되었다.
-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세력 싸움에서 승리해 정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로스차일드 계열 은행이 거금을 준비해 그들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역사시간에는 "러시아 황제의 압정에 신음하던 민중이 봉기해 부를 일반 민중에게 평등하게 나눠주는 사회제도로서 공산주의 국가가 설립되었다..."라고 가르치지만 그 실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구미의 은행가들이 지원을 했음에도 이 사실은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계의 부자들이 공산주의를 지원했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으므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미국 국내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레닌 일당의 잔학성은 유명해서, 자유의 나라 미국의 국민들은 1933년까지 공산 소련의 국가 승인을 하지 않았다. 레닌 일당의 잔학성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는 장래에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미국의 '적'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편으로 미국 국내에도 공산주의 사상을 퍼트리려고 했으니, 언뜻 모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행동은 나로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 1953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조지 마셜 George Catlett Marshall 1880~1959이었다(<공산 중국은 미국이 만들었다(AMERICA'S RETREAT FROMVICTORY:THE STORY OF GEORGE CATLETT MARSHALL)> 참조. '매카시즘'의 장본인인 조지프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1908~1957) 본인이 쓴 책의 반세기만의 복각판). 즉 교과서에서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지만,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두 강대국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 '이스라엘 건국의 거짓말'
이번에는 역사의 거짓말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거짓말을 소개하겠다.
큰돈을 가지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은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이 만져보지 못했던 거금을 손에 넣었을 때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런데 한편으로 원래부터 돈이 많았던 사람은 지루함을 달래고자 거대한 프로젝트를 생각해 내고는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도 신경 쓰지 않고 그 과정을 즐길 때가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로스차일드가 생각해 낸 이스라엘의 건국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마이어 암셸이 꿈꾸던 세계 통일이라는 목적에 역행한다. 따라서 다섯 갈래로 갈라진 로스차일드 일가가 반드시 항상 일치단결해 행동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로스차일드가 건국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한 중동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목적인 세계 통일 역시 완성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 이스라엘 건국에 직접적인 공헌자가 그 무렵 팔레스티나 땅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 정부로부터 유대인 국가 설립을 약속받은 런던의 로스차일드 가문이었음은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건국의 실질적인 공로자는 파리의 로스차일드 당주 에드몽 로스차일드 Edmond James de Rothschild 1845~1934다. 그가 당시 영국의 위임 통치령이었던 팔레스티나의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건국(1948년)하기 66년 전인 1882년이었다. 그리고 건국 후 30년이 지난 1978년에는 이스라엘 국토의 80%를 로스차일드가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인 사이먼 샤머 simon Schama가 쓴 <두 명의 로스차일드와 이스라엘 Two Rothschilds and the Land of Israel>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로서 7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 밀도도 일본보다 높다. 유엔의 분류로는 선진국에 들어갈 정도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로스차일드가 토지를 산 것에 비하면 생각만큼 유대인의 입식이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도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 잔학성이 잘 드러난 사례를 소개하겠다. 현재 그들의 사상과 행동의 원천인 일루미나티 운동이나 여기에서 파생된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잔인하다. 그 좋은 예가 스탈린의 숙청이나 마오쩌둥의 문화 혁명이다.
- 한때 나는 서양인의 잔인함이 수렵 민족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Khmer Rouge(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결성한 캄보디아의 혁명파 조직을 일컫는 말 - 옮긴이)도 대학살을 자행한 것을 보면 잔인함은 수렵민족의 민족성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무래도 사상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도 1972년에 일어난 아사마 산장 사건(일본 적군파 멤버 5명이 아사마 산장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삼아 열흘 동안 농성한 사건. 경찰이 산장으로 돌입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어 89.7%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옮긴이)으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받은 일본 적군 日本赤軍(1971~1972년에 걸쳐 활동한 일본의 좌익 무장 전투 조직. 정확한 명칭은 연합 적군(連合赤軍)이다 - 옮긴이)은 심한 린치 끝에 동료를 죽이는 것을 '총괄 總括'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행동을 일상적으로 저질렀으니 잔학함은 민족이나 인종과는 관계가 없는 듯하다.
- 잔학함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혁명이 최초일 것이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설립한 일루미나티는 독일 바이에른 정부의 단속으로 1784년에 역사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조직을 프리메이슨 조직 속에 숨기는 데 성공했다. 역사 속에는 일루미나티와 프랑스혁명의 직접적인 관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프랑스혁명에 사용된 표어인 '국가와 종교와 사유 재산을 없앤다.'는 원래 일루미나티가 사용하던 것이다.
- 7월 14일은 파리 축제(혁명 기념일)로 유명하다. 학교의 역사 시간에는 이날 민중이 궐기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테마인 자유·평등·박애가 그 후 전 세계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유·평등·박애라는 미명에 감춰져 있기는 하지만, 단두대에 목이 잘린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1755~1793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비정한 학살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먼저 바스티유 감옥의 사령관과 사관 세 명, 수비병 세 명이 길 한복판에서 목이 잘려나갔으며, 군중들은 그 목을 창끝에 꽂아 높이 들고 시내를 행진했다. 그리고 시 청사에 도착한 군중들은 시장과 다른 두 고관의 목을 잘랐고, 그들의 목도 앞의 일곱 명과 똑같은 운명이 되었다.
- 지금까지 세계제패를 위한 기본적인 개념과 그 과정, 로스차일드 가문이 과거에 보여준 상법을 소개했다. 이것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 소개할 로스차일드 가문의 미국 대리인들이 미국에서 일으킨 수많은 사건의 수법과 목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 와 난로용이었는데, 전부 미국산이었으며 그중 90%가 스탠더드 석유의 제품일 정도로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이 무렵 석유의 이용 주체는 등유였다. 훗날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는 등유를 뽑아낸 다음 남는 산업 폐기물로서 독특한 냄새가 나며 휘발해 폭발할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에 록펠러는 한밤중에 몰래 강에 버리곤 했다. 그는 이 산업 폐기물의 사용 방법을 궁리하다 그 무렵 일반적이 되기 시작한 내연 기관의 연료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휘발유를 엔진에 사용하면 엔진 내부가 지저분해지고 폐기 가스도 나오지만, 어차피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싼 값에 휘발유를 팔기 시작하자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이 산업 폐기물의 재이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그의 약진의 비밀이었다.
- 현재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에는 10% 정도의 에탄올이 섞여 있다. 자동차가 길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19세기 말엽만 해도 자동차의 연료는 100% 알코올이었다. 이것도 정보 조작의 하나로 생각되는데, 알코올을 사용한 자동차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포드 T형 항목을 찾아보면 "엔진은 휘발유와 에탄올 양쪽을 사용해 달릴 수 있었다."라고 짧게 적혀 있다. 그러나 어느 페이지를 뒤져 봐도 알코올 엔진에 관한 기술은 전혀 없으며,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 이르러서는 포드 T형 항목에서 알코올이라는 글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만, 여러분의 자동차가 알코올과 휘발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두 개의 간단한 장치만 있으면 된다. 명차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포드 T형에 붙어 있었던 장치는 단 두 개뿐이다. 알코올의 연소 온도가 휘발유보다 높기 때문에 스파크의 연소 타이밍을 빠르게 하기 위한 레버와 알코올 자체가 분자 구조에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 C2H60 엔진 속에서 연소될 때 휘발유만큼 산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산소의 양을 조절하기 위한 초크, 이 두 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포드 T형은 컴퓨터 같은 것이 달려 있지 않아 가벼웠다고는 하지만 1갤런(약 3.785리터)의 알코올로 34마일(약 54.4킬로미터)을 주행했다고 한다. 이는 컴퓨터로 연소제어를 하는 현재의 일본 소형차가 고속도로에서 30마일, 도시에서 20마일을 주행하는 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연비다. 이 포드 T형은 제조가 중지될 때까지 전 세계에서 1,500만 대를 판매했다. 이 기록을 깬 것은 딱정벌레라는 애칭으로 친숙한 폭스바겐의 2,100만 대뿐이다.
- 자원의 유지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 농업 생태계의 개발을 연구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쓴 대체 연료에 관한 한 서적에는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져 버린 알코올과 자동차의 관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David Blume 저 <ALCOHOL CAN BE A GAS!>). 저자는 요즘 표현을 사용하자면 친환경 농업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식물의 잔해를 비료로 사용해 매우 효율적으로 알코올을 추출할 수 있는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고안해 미국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알코올 연료에 관한 가장 종합적인 책'을 목표로 무려 2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집필을 한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회사나 재단 등의 조직으로부터 단돈 1센트도 원조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간섭 없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을 매우 감사히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수많은 연구소와 조사 기관이 록펠러 재단이나 카네기 재단으로부터 자금 원조를 받고 있어 그들이 원하지 않는 조사결과나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 연료용 알코올인 에탄올은 일반적으로 사탕수수나 옥수수로 만들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떤 식물이나 곡물, 콩류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 이 책의 첫 항에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이 일반 시민들을 속이기 위해 언론을 통해 정보 조작을 한 결과 일반인들 사이에 형성된 '알코올은 대체 연료로서 휘발유보다 열등하다.'라는 통념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
-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연 기관의 연료로는 알코올이 더 뛰어난 것이다. 그래서 헨리 포드 Henry Ford 1863~1947는 알코올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의 개발에 몰두했을 정도였다. 4행정 사이클 기관이 만들어진 지 30년 정도가 지난 뒤부터 휘발유가 연료로 등장하면서 비로소 알코올과 휘발유 양쪽이 연료로 사용되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알코올이 주된 연료였다. 참고로 옥탄가 100인 휘발유를 스탠더드 석유가 개발한 시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나치스 독일의 전투기가 성능이 뛰어났던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록펠러는 전쟁 중에 나치스에 옥탄가 100의 하이옥탄 휘발유를 공급했던 것이다.
- 발매 초기에 록펠러는 자동차용 휘발유를 캔에 담아 가격을 크게 낮추고 등유의 판매 경로를 이용해 소매점에 팔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가솔린을 이용했지만, 어디까지나 주류는 어디에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알코올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주유소가 생긴 때는 1920년인데, 이것은 1919년에 금주법이 성립되어 알코올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교외로 나가면 얼마든지 알코올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가 필요 없었다. 1906년에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변성알코올의 세금을 없애고 동시에 위스키와 진의 가정용 양조기 사용 신청 절차를 간소화했다.
-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한 배경이 있다. 한편, 이 무렵 크리스트교의 일파 중에 '악마의 럼주'를 죄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알코올의 판매를 금지하는 운동을 열심히 펼치던 집단이 있었다. 존 D. 록펠러는 침례교의 가르침을 평생 지켰는데, 이때는 경건한 기독교인을 가장해 그들의 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당시 돈으로 400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5,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운동자금을 마련해 먼저 주 의회에, 다음에는 연방 의회에 로비를 벌여 헌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또 동시에 그는 록펠러 집안의 사람들을 반주점 연맹을 비롯해 금주운동을 펼치는 조직의 임원으로 보냈다. 반주점 연맹이라는 조직은 오하이오 주에서 1893년에 결성되었는데, 2년 뒤에는 그전까지 활동하던 여성 기독교도 금주 연합이나 금주법당을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세력이 큰 금주운동 단체가 되었다. 이 무렵부터 록펠러의 금전적, 정치적 지원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여타 금주운동단체와는 다른 꿍꿍이 속이 있었을 것이다.
- 헨리 포드는 음용 알코올만을 금지하고 산업용 알코올은 남겨 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록펠러의 진짜 목적은 산업용 알코올의 제조를 금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외의 농가에서는 자신들이 알코올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를 금지한다고 해도 연소용 알코올의 사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 석유를 지배하는 록펠러가문의 세상이 되었다. 즉 구미 여기저기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금주법의 시행은 휘발유를 팔 기 위한 록펠러가문의 음모였던 것이다. 이 또한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역사의 진실이다.
- 공기를 사용한 엔진이라는 획기적인 발명이 실용화되다 그런데 대체엔진 이야기가 나온 김에 획기적인 엔진으로 주행하는 자동차를 소개하겠다. 휘발유 대신에 물을 사용하는 엔진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겠지만 공기를 사용하는 엔진은 나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 자동차는 압축 공기로 피스톤을 움직이기 때문에 배기가스 문제가 전혀 없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구조지만 1.5유로(180엔)의 비용이면 되는 단시간의 압축공기 주입으로 20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110킬로미터나 된다.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리는 데는 적합하지 않지만 시가지 주행에는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성능이다. 또 성능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렴한 가격인데, 판매 가격이 3,500유로(700만 원)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발명된 이 자동차는 독일 자동차 회사의 협력으로 제조, 판매가 결정되어 가까운 미래에 판매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판매 지역이 유럽과 인도로 한정되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뉴스에 나온 영상만을 놓고 보자면 차체는 유럽형 디자인으로 꽤 괜찮은 수준이다.
- 앞에서 소개한 게리 앨런의 책 <신세계 질서에 '노'라고 말하라>에는 '신세계 질서의 3부문'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문장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어둠의 세계 금융이 신세계 질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세 부문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한다. 하나는 급진적인 방법이며, 다른 두 가지는 비교적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이 세 부문은 바로 국제적인 거대 은행가들(국제 금융 자본가)과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점진적 사회주의), 소비에트 연방이다. 많은 개인과 단체가 세 부분 중 하나에 속해 있는데, 개중에는 두 개, 세 개 부문에 걸쳐 발을 담그고 있는 예도 많이 알려져 있다.
- 그 사생아로서 록펠러 가문이 리더가 되어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외교문제평의회다. 유럽을 총괄하는 빌더버그 그룹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을 지배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이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안으로 쑥 들어가고 록펠러 가문에 실권을 넘겨준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넬슨이 죽은 뒤에는 막내인 데이비드가 록펠러 가문의 실권을 쥐고 왕립국제문제연구소나 빌더버그 그룹과 상의하면서도 자신이 의장으로 있었던 외교문제평의회 회원들을 최대한 활용해 결국 '제왕'이라고 불리게 될 만큼의 지위를 쌓았다.
- 위에 소개한 세 부문 중 하나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Fabian Socialist의 중심은 19세기 후반에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영국의 지식인들이 창립한 페이비언 협회다.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1856~1950와 H. G. 웰스 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등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 계급의 대다수가 이 협회 소속이었다. 현재 영국의 정권을 잡고 있는 노동당의 전신인 노동대표위원회의 설립에는 많은 페이비언 협회 회원이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내내 노동당은 페이비언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협회는 온건한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로 상징되는 거북이를 로고 마크로 사용했을 ...
- 사람들 앞에서는 온후하고 친절한 신사의 가면을 쓰고 있다. 사실 어떤 인간이든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강한 악마성이 항상, 그것도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한 예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이 보여준 반대파에 대한 잔인한 탄압이다.
- 제정 러시아를 타도할 때 자금을 대준 곳은 구미의 로스차일드 계열 은행이지만, 1917년에 볼셰비키가 정권을 탈취하고 5년 뒤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기까지 레닌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발전시킨 주역은 록펠러 가문이었다. 스탠더드 석유(초대 록펠러가 만든 회사)가 진출하는 곳에는 항상 체이스 내셔널 은행(체이스는 록펠러 2세의 은행이며 현재는 JP. 모건체이스 은행이 되었다)이 대규모 투자를 실시했다. 이 스탠더드 석유는 분명히 국유화되었을 터인 노벨(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의 형 로버트) 소유의 광대한 유전 중 50%를 사들였으며, 1927년에는 러시아 혁명 이후 첫 미국기업의 투자가 된 석유정제소를 건설했다. 그리고 그 직후 유럽에서 소련산 석유를 판매하는 계약이 맺어져 공산당에 7,500만 달러의 대출이 성사되었다. 또 1928년에는 러시아 공산당 채권을 체이스은행이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록펠러 가문은 공산러시아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만, 1977년에 개봉된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는 군사기밀인 설계도가 소련으로 흘러들어 가는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본드가 처음 운전하는 수륙양용차의 옆에 타고 있던 러시아 여스파이(바바라 버치가 연기했다)가 본드도 익숙하지 않은 차 안에서 미사일 발사 스위치를 눌러 공중에 떠 있는 헬리콥터를 격추시킨 것이다. 본드가 깜짝 놀라자 여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예전에 설계도를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다. 007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 Ian Lancaster Fleming 1908~1964은 영국 정보국 비밀 정보부 MI6 SIS에서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실제로 안전보장조정국 BSC의 스파이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소재로 007을 썼다는 이야기가 솔직히 수긍이 간다.
-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소련의 기술 중 90% 이상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제공받거나 훔쳐 온 것이다. 이러한 첨단 기술의 대량 이전을 암시하는 것이 노벨상 수상자의 수다. 2008년까지 미국은 305명인 데 비해 소련은 19명에 불과하다. 이를 보면 당시부터 미국에 비해 과학기술이 상당히 뒤처져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소련이 미국보다 일찍 유리 가가린 Yurii Alekseevich Gagarin 1934~1968을 우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국외에서 얻은 첨단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 언뜻 별것 아닌 듯이 보이는 항목이지만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자재는 전부 들어있었다. 게다가 다음에 추가된 항목은 더욱 놀랄 지경이다. 라이플 청소 세트와 전기기기, 레이더가 비전략 항목이 된 것이다. 이 전쟁에서 베트남(남베트남 해방 민족 전선, 공산주의측)이 사용한 전쟁 물자의 85%는 소련과 그 동맹국에서 온 것이었다. 록펠러 가문의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중에 록펠러 가문은 2억 달러를 들여 소련 국내 10여 곳에 다이아몬드 공장을 건설했다. 게다가 소비에트 최대의 트럭 공장을 건설하고 5,000만 달러의 비용으로 알루미늄 공장도 지었다. 물론 어떤 언론도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5만 명의 미군 병사들은 록펠러 가문이 제공한 재료와 공작 기계로 만든 총과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의 일반 시민의 목숨을 벌레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초거부들의 잔학한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가 있기에 진주만 공격의 일시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미국 태평양 함대에 알리지 않아 병사 2,345명과 민간인 57명을 희생시키고, 9.11 테러 때는 2,749명의 일반시민을 불태워 죽이는 참사를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죄의식이라고는 ...
- 정유소에 긴 줄이 늘어서고 있는데 파이프라인에 석유가 흐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즉시 지인의 집으로 달려간 목사는 지인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두세 달 전에 석유회사에서 사람들이 와서 파이프라인을 닫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작업원에게 물어봐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자를 찾아가 물어보니 "정부의 명령으로 파이프라인을 닫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지인은 말해 줬다. 목사는 1974년에 알래스카로 돌아가 Mr.X에게 와이오밍 주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Mr.X는 "저희 석유 회사는 에너지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의 명령에 따라 몇몇 대륙 횡단 파이프라인을 닫고 중요한 특정 지역에 있는 정유소의 생산을 감소시켰습니다."라고 말해 줬다고 한다. 참고로 1973년은 제4차 중동 전쟁의 발발에 따른 OPEC의 감산과 가격 인상으로 전 세계가 커다란 영향(제1차 석유 파동)을 받은 해였다.
미국이 자국의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산유국에 미국 채권을 팔기 위해서다!!
- 린지 목사의 첫 번째 책인 <에너지 무위기>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의 강연 내용을 녹화한 DVD에서 그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따르면 알래스카에서 선교활동을 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고 한다. 린지 목사는 전화가 온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엽으로 생각된다. 그 사람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세상에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있는데 목사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있다고 주의를 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 DVD에서 목사가 하는 말은 모두 경고를 준 사람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것으로, 이야기에 일관성은 전혀 없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기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록펠러 형제 기금에서 일하던 헨리 키신저가 1970년대 초반에 산유국을 돌며 두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미국이 석유를 대량으로 구입하므로 그 결제를 앞으로 달러로 할 것을 승낙받았다. 즉 산유국이 석유를 팔 때 받는 대금을 달러만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 무렵 달러는 금과의 태환 지폐였으므로 산유국으로서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달러는 그 후 세계의 기축통화라는 지위를 확립했다.
둘째,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미국 채권 구입에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아랍 산유국으로부터 받아냈다. 이에 따라 달러가 항상 매수되게 됨으로써 달러의 가치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자국의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자국의 석유를 사용하면 석유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국채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이다.
- 그러나 이 계약에 사인하지 않았던 나라가 둘 있다. 바로 이란과 이라크다. 제2차 이라크 전쟁 뒤 부시 일당이 이란 침공을 계획했다는 것은 중동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실행은 못했지만, 부시가 퇴진하기 전까지 이란 침공 가능성이 30%는 남아 있었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그는 알래스카 석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했다. ARCO가 2년 반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석유 채굴을 시작한 때는 1977년이었다. 그때 석유 전문가들은 ARCO의 유전의 매장량이 170만 배럴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20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알래스카의 석유는 지하의 압력으로 자연히 분출되는데, 계측한 압력은 1,500파운드였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가 분출되고 있으며, 압력도 변함없이 1,500파운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뽑아낸 석유의 양은 440만 배럴에 이른다고 한다.
이 신기한 현상의 이유를 린지 목사는 석유가 지구 내부에서 계속 보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여러분은 믿어지는가? 참고로, 석유는 화석 연료가 아니라는 설을 소개하는 사이트도 있다.
- 예나 지금이나 내부 거래를 가능케 하는 물밑 작업이 있었다 부를 얻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주가를 조작해 주가가 비쌀 때 팔고 싸졌을 때 되사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이 좀 더 대규모가 되면 금융위기를 일으켜 파산하는 은행이나 기업의 재산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이 된다. 앞장에서 소개한 린지 목사는 "주가폭락이나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목적은 부의 이동이며, 12년에서 15년 단위로 계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주가가 내려갈 때와 금융위기가 일어날 때를 사전에 알고 있는 사람이 부를 거머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곳이 중앙은행이다.
- 독립국에는 대부분 설치되어 있는 중앙은행의 모델케이스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다. 연방준비은행은 모두 12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12개 연방준비은행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다. 이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이용해 주가 폭락을 일으킨 결과 세계 공황까지 야기한 최초의 대사건이 1929년에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다. 그 수법은 제2장에서 소개했듯이 마진콜이었다. 이 새로운 대출 상품을 이용해 적은 자본으로도 많은 주식을 손쉽게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이었던 것이다.
- 2008년 금융위기는 과거 20년간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 폭락으로 거액의 자산 감소가 발생한 1980년대의 저축대부조합 S&L 위기와 1990년대의 IT 거품 붕괴에 이은 세 번째 사건이다. 2008년 10월 1일 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금융위기로 발생한 주가 하락률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과거 최고치를 기록한 2007년 10월 말의 주가를 기준으로 한 하락률이다.
- 사실 이 세 번의 금융위기와 1929년의 '검은 목요일' 사건에는 공통되는 패턴이 있다. 법령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금융상품, 혹은 돈벌이 방법을 만들어내 주식시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즉 주가를 거품 상태로 만들어 이익을 내는 투자은행의 이익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투자은행이 각종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법률로 금지되어 있는 상품은 만들 수 없다. 그런 신상품을 판매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률 개정은 미국의회의 몫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원흉인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의 채권화는 분명히 투자은행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전에 새로운 법령의 제정을 통해 사전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국제 금융 자본가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주도면밀한 준비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 이번 금융위기의 원흉이 된 법개정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국제 금융 자본가들에게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령 제정의 사전 포석이 된 법으로는 1968년의 공평 주택법 The Fair Housing Act과 1974년의 기회균등 금융법 The Equal Credit Opportunity Act, 1975년의 주택 담보 대출 공개법 The House Mortgage Disclosure Act 등이 있다. 이런 법률들은 차별을 없애자는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은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 특유의 법률이다.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성별, 나이, 기혼 미혼 등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 1964년의 미국 공민권법의 사상을 계승했다. 말하자면 '금융판 공민권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미국은 사는 지역에 따라 인권과 연수입이 전혀 다른 곳이 많다. 지도상에 붉은 선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도시 중심부의 이른바 다운타운이라고 부르는 흑인 빈민가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근처 은행도 계좌 개설이나 대출, 신용카드 발급 등을 해주지 않는 등 차별적인 대우가 일상적으로 벌어져 왔다. 미국의 형사 드라마를 보면 흑인들밖에 살지 않는 매우 분위기가 살벌한 지역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붉은 선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21세기에 들어선 현재도 자동차 보험 회사에서는 이와 같은 거주 지역에 따른 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주가 다르면 보험 납부액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같은 주라도 사는 마을에 따라 내는 돈이 크게 달라진다. 가령 뉴욕주에서 보험료가 가장 높은 곳은 뉴욕시인데, 옆 도시로 주소를 옮기기만 해도 보험료가 20%에서 30%는 떨어지는 것이다.
- 이것을 보면 부시 정권은 악덕 대출 회사를 일부러 단속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정부가 악덕 대출 회사를 공인했다!'
- 집을 살 때 대출을 제공하는 대출 회사는 연방 정부의 관할이라기보다는 주정부의 관할이기 때문에 이 이상 악덕 대출이 활개를 치지 않도록 전미 50개 주의 모든 주정부가 협력해 대출 회사를 규제하려 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부시 정권은 주정부들의 그와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부시 일당에 용감하게 반기를 들고 <워싱턴 포스트>에 '약탈적 대부업자라는 범죄자의 동업자'라는 제목으로 정부를 고발하는 기사를 투고한 용기 있는 주지사가 있었다. 이 인물은 주지사가 되기 전에 그 주의 사법 장관으로서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의 능력을 보였으며 주로 월스트리트의 범죄에 엄격했다. 그런데 부시의 흉계를 규탄하는 기사가 2008년 2월 중순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직후, FBI가 그 주지사의 섹스 스캔들을 언론에 흘려 그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그는 아직 살아있지만, 내가 볼 때는 케네디처럼 암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암살을 당한 그는 앞으로 평생 동안 가족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지 모른다. 이 비극적인 사내의 이름은 엘리엇 스피처 Eliot Spitzer라고 하며, 뉴욕주의 지사였다. 이 섹스 스캔들 사건은 FBI의 도청으로 발각되었다고 보도되었는데, 그가 출입했다는 고급 데이트 클럽을 이용한 다른 손님의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체포도 되지 않았다. '넘버 9'이라는 번호로 불리던 스피처만이 표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 이 사건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이 봤을 때 아직 주가가 더 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어 그 시점에서 대출 회사를 단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일으킨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즉 이번 금융위기는 자유 경제를 신봉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린스펀을 방패로 앞세우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공민권법을 구실 삼은 금융 완화가 커다란 요인이었다. 금융업계를 규제해 온 법률을 서서히 없애 규제에 걸리지 않는 독립 대출 회사들을 세상에 풀어놓음으로써 엄청난 숫자의 서브프라임론 계약을 유도했다. 부시 일당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몰래 주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돈벌이에 눈이 먼 월스트리트의 간부들이 채권화, 증권화해 전 세계에 판매함으로써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질 정도로 거대해진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그 근거를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 '각본·연출 록펠러, 그리고 불쌍한 부시의 역할'
다음으로 데이비드 록펠러는 '지능이 초등학교 4학년 수준'(마이클 무어 감독)이라고 하는 부시를 2000년에 부정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의견 없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사내가 꼭두각시로는 최고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의 간택을 받은 'W'(부시의 애칭)는 주위의 부추김 속에서도 훌륭히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했다. 평생 학생의 기분을 버리지 못하는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의 이 'W'라는 사내는 좋은 집안 덕분에 명문대학을 졸업한 뒤 석유 관련 사업에 손을 댔다. 한때는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극복했으며, 마침내 텍사스 주지사가 되었고 주위의 추대 속에 어느새 대통령까지 된 강운의 소유자다.
-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W'는 정말 불쌍한 사내다. 취임 첫해에 일어난 9.11 동시 다발 테러부터 퇴임하기 직전에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까지, 역사에 남을 두 가지 대사건을 담당해야만 했다. 여기에 측근이 가르쳐 준 대로 말할 때는 괜찮았지만 이따금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다 말실수를 해서 텔레비전 등에서 철저히 놀림감이 되어 왔다. 요즘 나이트의 사회자들은 "오바마는 텔레비전 방송에 적합한 화제를 입밖에 내는 일이 없어 방송에서 써먹기가 힘들다. 그러니 부시가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관객을 웃길 정도다.
- '제왕' 록펠러의 눈으로 금융위기의 과정을 연대별로 추적해 보자.
2000년 : 씨를 뿌리고 커다란 결실이 맺기만을 줄기차게 기다리던 그에게 경매에 넘어가는 물건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호소가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호소를 무시하도록 연방준비은행에 지시하고 좀 더 큰 과실로 자라기를 기다렸다.
2001년 : 주택 시장이 활기를 띠어 대출 상품이 더욱 팔려 나가도록 그린스펀에게 단기 대출 금리를 낮추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2001년 중반부터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한 단기대출 금리가 2002년 1월에는 1.75%까지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기준금리와 집의 가격이 반비례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낮으면 집 가격은 올라간다. 바로 이 무렵부터 부동산 붐이 일어났다.
2002년 :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플레이션 추진파 버냉키를 연방준비은행 이사로 배치해,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그린스펀과 교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까운 시일 안에 장기 계획이 달성될 것임을 느끼자 이 해에 <회고록>을 집필했다. 2004년 그린스펀에게 슬슬 기준 금리를 올리도록 지시했다. 오랫동안 1%대였던 단기대출 금리가 2004년 12월에는 2%로 상승했다. 그 후 금리는 서서히 상승했고, 2006년에는 5%대에서 안정되었다. 기준금리가 오르자 부동산 붐은 막을 내렸다.
- 서브프라임론을 계약한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던 것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집을 구입하고 4, 5년 뒤 상환액이 급격히 증가하기 전에 집을 팔면 상승한 금액만큼 수중에 돈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오르자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집을 사려는 사람도 줄어들면서 그들은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었다.
- 2005년에 접어들자 서서히 서브프라임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슬슬 연방준비은행 의장을 교체할 시기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버냉키를 대통령 경제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혔다.
2006년, 서브프라임 문제가 표면화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연초에 그린스펀을 퇴진시키고 버냉키를 의장에 앉혔다. 또 동시에 과실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서브프라임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 중 한 명인 골드먼삭스의 CEO를 재무장관으로 앉혀 정부 내부의 서브프라임론 규제 움직임을 차단하도록 지시했다.
2007년 가을, 어느 주가 이 이상 서브프라임이 확대되지 않도록 주의 권한으로 대출 회사를 단속하려 했지만 'W'에게 이를 저지하도록 시켰다.
2008년 2월에 그 주의 지사가 연방 정부의 방해를 규탄하는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 록펠러는 즉시 FBI에 명령해 지사의 섹스 스캔들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렸다. 말초적인 화제 때문에 정의감 강한 지사의 호소가 담긴 정당한 신문기사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리고 3월 8일에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라는 주택 금융기관의 파산에 대비해 연방준비은행에 주택 대출 계약서를 담보로 대출을 허가한다는 통지를 보내게 했다. 그다음 주인 3월 14일에 베어스턴스의 파산이 알려졌지만, 체이스 은행을 출동시켜 매수하게 함으로써 더 큰 사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7월 13일.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파산 소식이 보도되었지만, 계획대로 연방준비은행이 즉시 세금을 투입해 불량 채권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해 이 또한 더 큰 사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하이라이트'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가 승리를 확정한 직후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사태인 그루지야 침공으로 시기를 앞당겨 발표하게 되었다.
- 이것으로 제1단계는 막을 내렸다. 'W'의 역할은 끝이 났고, 마무리에 접어드는 제2단계는 다음 대통령에게 인계되었다. 일이 어긋날 경우도 예상해 선거 운동을 진행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도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 이상은 금융위기에 이르는 과정을 '지휘자'인 데이비드 록펠러의 눈으로 바라본 대략적인 흐름이다.
- '세상에 우연은 없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정치의 세계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역사에 남을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까지 30년 이상에 걸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린스펀은 레이건 시절에 FRB 의장으로 지명되기 전까지 특별히 연방준비은행의 제도나 금융제도에 대해 공부한 시기가 없었다. 그는 1926년에 뉴욕의 워싱턴 하이츠라는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헝가리에서 이민 온 유대 교도였다. 그의 성은 독일어에 히브리어가 섞인 말인 이디시어 철자를 영어식으로 고친 것이다.
- 여기까지가 도입부이고, 지금부터 본론에 들어간다.
의원: 과거 2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장기간에 걸쳐 실업률이 3배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1994년 이래 실업률은 계속 상승했으며, 4조 달러의 국가 채무를 안게 되었습니다. 1억 4,000만 명의 사람이 건강 보험을 해약당했고, 수많은 노인들이 처방전의 약이 너무 비싸 사지 못하고 있으며, 중산층이 돈이 없어 자녀를 대학에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도산 건수는 과거 최고치인 23%나 상승했습니다. 기업의 투자가 과거 50년 사이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CEO들은 자기 회사 종업원의 500배나 되는 높은 급료를 받고 있어 중산 계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큽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상승하고 있는 경제입니다. 상승하고 있다는데도 상황이 이런데, 이 나라의 경제가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도 끔찍합니다.
- 이따금 화면에 비치는 그린스펀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의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의원: 저는 당신이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만, 당신은 수많은 미국의 노동자를 모욕했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은 자신의 정책이 옳다고 자기변호를 해 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최저임금제의 폐지이며, 억만장자에 대한 세금 공제입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의 정책은 또 한층 저급해졌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이 의원은 천하의 그린스펀을 초거부들의 하수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사실은 정말 그렇지만...
의원: 당신은 이 나라의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지요. 최근 2년 동안만 해도 무수히 많은 제조 관련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월마트가 제너럴모터스를 대신해 이 나라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최대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월마트라는 회사는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밖에는 주지 않는 곳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이 당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당신은 시급 수십 엔을 받고 일하는 중국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든, 시급 20달러를 받을 수 있는 버몬트주(필자 주: 샌더의 의원의 지역구)에서 만들어지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국민에게 지지한다고 공언한 자유무역 정책은 국민을 팔아 치우고 있을 뿐입니다. 공장을 멕시코나 중국, 인도 등 국외로 이전하려고 하는 CEO들에게만 이로운 정책입니다. 당신은 훌륭한 공화당원이신 캐슬 씨를 모욕하셨습니다. 2, 3분 전에 캐슬 씨는 제조업만 하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컬러인 IT 산업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퍼스트 리서치사는 앞으로 15년 동안 3억 3,000만 개의 서비스 산업 일자리와 1,360억 달러의 임금이 인도와 러시아, 중국, 필리핀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당신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일이 아니란 말입니까?
당신은 이 나라의 중산층 노동자에게 분별력 있는 관심을 향할 마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저의 질문입니다.
- 질문 자체는 짧고도 매우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한 그린스펀의 대답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린스펀: 의원님, 저희는 세계에서 가장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기 변호가 이어진다.
- 그런데 이 나라의 실정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게 해 주는 또 다른 자료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국민 중 자신의 집을 대출금 없이 소유하고 있는 인구는 2%이며,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 중 자동차 대출을 받지 않은 사람은 1%다. 그리고 미국인구의 60%가 3개 이상의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사용하고 있다. 무엇을 사든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이 나라의 실태가 잘 나타나 있는데, 이런 나라에서 은행이 ...
-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는 MF의 산하로!?'
2008년 미국에서는 세가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석유 가격의 하락'과 '금융위기', 그리고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다.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사건은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다.
지금부터 순서대로 살펴보자.
- ① 석유 가격의 하락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계속 상승해 오던 석유가격이 2008년 7월 3일에 갑자기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석유 가격을 5년이나 상승시키다가 갑자기 하락시킨 것은 오닐 머니로 윤택해진 산유국(특히 러시아)을 국제 금융 자본가들의 지배아래 두기 위해서다. 1980년대에 산유국으로부터 석유 가격 결정권을 빼앗았을 때와 같은 수법이다. 그러나 산유국은 석유 가격의 고가 안정에 따른 예상외의 수입을 이번에는 금괴를 사는 데 쓰지 않고 미국 부동산과 농지, 우량 기업에 투자했다. 그 예로, 현재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의 소유자가 아랍 에미리트 연방인 것을 비롯해 미국 중서부의 수많은 농지가 오닐머니에 매수되었다. 또 아랍에미리트연방 UAE의 아부다비 정부계 투자회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시티를 매수했으며, ...
- 서방 국가의 정전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8월 26일에 남오세티아의 독립을 승인한 그는 8월 28일에 CNN에 출연해 미국인이 보는 앞에서 "이번 무력충돌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부시 정권이 그루지야를 부추긴 것이다."라고 항의한 것이다. 푸틴은 KGB 출신으로 지금도 정보기관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쪽에서 얻은 정보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푸틴의 말처럼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침공 직후에는 매케인이 오바마를 5포인트나 앞섰다. 원래 산유국을 곤란하게 하기 위한 이번 유가 하락의 주된 목표는 통제가 듣지 않게 된 푸틴이었다. 그런 푸틴이 변함없이 강경하게 나오자 금융위기의 예정을 앞당겨 선거 전에 터트린 것이다.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대폭 감소한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잉여 자금을 투자하고 있던 기업의 자산마저 이번 금융위기로 반토막이 나 버렸다. 동구권과 러시아를 합쳐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모스크바의 러시아 주식 거래소의 주가는 4개월 만에 50%가 넘게 하락했고,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소식이 알려진 16일에는 매도 주문이 쏟아져 하루 만에 11%나 하락했다. 이에 새파랗게 질린 푸틴은 다음 날인 17일에 러시아 주식 시장과 나스닥의 러시아판인 RTS 시스템의 폐쇄를 명령했다.
- '러시아 증권 거래소, 주식·채권·투자 신택의 거래를 정지'
러시아 증권 거래소 MICEX는 17일, 채권과 투자 신탁의 거래를 일시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1시간 정도 전인 0810 GMT(일본 시각으로 오후 5시 10분)에는 MICEX와 러시아의 제2위 거래소인 RTS가 주식 거래를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당국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정지할 예정이라고 한다.(모스크바 2008년 9월 17일 로이터) 여기에 유가상승으로 호경기를 만끽하던 2007년 가을에 '유럽 최고'를 목표로 수도 모스크바 중심부의 재개발 지역에서 착공한 초고층 타워 '러시아'가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다고 <인테르팍스 Interfax>가 11월 말에 보도했다. 벼랑 끝에 몰려버린 것이다.
- 한때 패닉으로 주식 시장의 폐쇄를 명령했던 푸틴은 19일에 다시 주식시장을 재개시켰다. 그런데 러시아 주식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다시 폐쇄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듯, 거래 재개 후 매도 주문을 쏟아내 일시적으로 폐쇄 전의 50%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나중에 구소련 연방의 국가들이 도움을 요청해 와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푸틴은 지금쯤 '세계 황제' 데이비드 록펠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 그런데 금융업계에서는 연초에 이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파산이 발표된 직후에 우연히 JFK 공항에서 만난 친구는 내게 "5월 무렵에 헤지 펀드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리먼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라고 말해줬다. 2007년에 과거 최고실적을 기록하며 12월에 호탕하게 거액의 보너스를 뿌렸던 회사인데, 반년도 지나지 않아 동업자들 사이에서 파산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친구는 "다음에는 워싱턴 뮤추얼이 위험해."라고 덧붙였다. 분명히 리먼브라더스 다음으로 파산한 회사는 당시 전미 제6위의 은행이며 2007년에 3,219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워싱턴 뮤추얼로, 9월 25일에 19억 달러라는 가격으로 JP모건에 매수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파산할 회사의 순서까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 ③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
11월 4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오바마가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되었다.
남오세티아 분쟁이 일어났을 때, '황제' 데이비드 록펠러에게는 금융위기를 일으킬 시기에 대해 두 가지 복안이 있었다.
[계획A: 매케인 당선안] 푸틴의 오만함을 눈감아 주고 금융위기를 당초 예정대로 대통령 선거 후에 발생시켜 매케인을 당선시킨다. 이 계획으로는 금융위기를 일으킬 때까지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황제' 데이비드 록펠러가 푸틴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가 의미를 잃는다.
[계획B: 오바마 당선안] 금융위기를 당장 일으켜 푸틴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오바마가 당선된다. 데이비드가 매케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한 이유는 오바마의 공약인 이라크 철군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바마는 세계화와 북아메리카자유 무역 협정 NAFTA에 반대를 표명했다. 오바마도 외교문제평의회의 멤버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세뇌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따라서 오바마보다는 매케인이 대통령이 되는 편이 어둠의 세계 금융의 계획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를 생각해미리 손을 써 놓았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계획 B를 선택하고 금융위기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 투표일로부터 이틀 후인 11월 6일에 오바마가 "(변혁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 이상 적임자는 없다."라며 수석 보좌관을 발표한 순간, 데이비드가 사전에 손을 써 놓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 수석 보좌관이라는 자리는 대통령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이며 백악관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지위인데, 그 중대한 임무를 맡을 사람은 램 이매뉴얼 Rahm Emanuel이라는 일리노이 주 출신의 하원의원이었다. 앞으로 적어도 4년 동안 그 중요한 지위에 있을 이 인물은 히브리어로 '높다', '숭고한'이라는 뜻인 '램'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대교도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제1차 이라크전쟁 때 이스라엘 국방군에 자원입대해 이스라엘 북방의 군사기지에 배속되기도 했다. 또 지금은 포기했다고 하나 한때는 미국국적 외에 이스라엘 국적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시오니스트 중에서도 초과격파 집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 정부가 '테러 집단'이라고 부른 유대민족군사기구, 통칭 '이르군 Irgun'의 멤버다. 즉 그는 부시 일당의 외교 정책을 결정해 온 네오콘과 뿌리가 같으며 게다가 가장 과격한 사상을 가진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것이다. 이런 인물에게 새 정권 발족을 위한 인재 배치에서 조직 개혁까지 모든 것을 일임한 오바마 신정권이 과연 얼마나 '변혁'을 실행할 수 있을지 나는 매우 의문스럽다. 공화당의 하원 원내 총무로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워싱턴의 변혁을 외치는 대통령 치고는 아이러니한 인사다."라고 오바마를 비판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다만 오바마로서는 오랫동안 선거 운동을 함께 해 온 관계상 그를 지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인사는 장기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장기말'을 배치하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준비한 오바마 포위진의 일각인 것이다.
- 그런데 오바마 정권의 각료들이 서서히 드러남에 따라 전 민주당 정권에서 클린턴을 보좌했던 인물들이 차례차례 부활하며 동창회 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똑같은 얼굴들이 재등장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자 경선에서 오바마와 싸운 힐러리 클린턴 Hillary Diane Rodham Clinton이 국무장관으로 결정되었다. 이쯤 되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오바마가 진정으로 변혁을 꾀할 생각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 그러나 수석보좌관 인선은 의문스러워도 이 각료 인사는 오바마가 변혁보다 먼저 당면한 금융위기라는 커다란 문제의 해결을 우선한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변혁을 위해 경험이 없는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경험자를 우대한 것이다. 따라서 얼마 동안은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라는 어려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보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공로자들에게 "이제 당신들의 역할은 끝났으니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오바마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11월 하순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당면한 문제를 우선하는 오바마의 자세에 호감을 느꼈다. 그런데 재무 장관의 자리에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티모시 가이트너 Timothy Geithner의 이름이 올랐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내가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음을 통감했다. 그리고 12월 초순에는 그것이 정식 발표되었으니, '제왕' 데이비드 록펠러가 이번 금융위기의 마지막 단계, 즉 금융위기 제2단계의 마무리를 오바마 정권에 맡길 생각임은 분명하다.
- 2006년부터 재무 장관을 맡은 헨리 폴슨은 골드먼삭스의 CEO였던 인물이다. 과거에 일어난 몇 차례의 금융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인 월스트리트의 대머리 독수리들의 두목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취임시킨 것은 이번 금융위기를 데이비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최고의 인사였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제왕' 데이비드의 하수인 중 한 명인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총재를 앉힌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버냉키와 힘을 합쳐 금융위기의 마지막 단계를 완벽히 매조지하기 위한 최고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가이트너는 '제왕' 데이비드 록펠러의 오른팔인 키신저의 회사에서 3년 동안 일했으며 IMF에서 2년간 일했을 때 외교문제평의회의 상급연구원으로서 외교문제평의회의 중추에 있었던, 데이비드가 키운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2003년에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지명된 것도 금융위기를 완성시킬 날을 위한 데이비드의 인사 배치였음은 틀림없다. 2009년은 데이비드의 계획이 어디까지 실현될지 자못 흥미 깊은 해가 될 듯하다. 매일 작은 뉴스에서도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바마 정권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제왕' 데이비드 록펠러의 의도대로 인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바마가 아무리 건전한 사고력을 가졌다고는 해도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밀고 나갈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 '오바마의 최고 고문인 브레진스키가 이란 공격의 가능성을 시사하다!'
또 하나의 명백한 포석은 데이비드의 심복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2007년 말부터 오바마의 외교 문제 자문으로 만든 것이다. 항간에는 브레진스키가 오바마의 최고 고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물며 브레진스키는 선거운동 때부터 자신의 입김이 들어간 사람을 여섯 명이나 오바마 진영에 보내 돕게 했기 때문에 브레진스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오바마는 과연 브레진스키나 이매뉴얼로 대표되는 군수산업과 시오니스트들의 압력을 물리치고 16개월 이내에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공약을 강행할 수 있을까?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브레진스키는 1997년에 쓴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남으려면 제국주의적인 방법(즉 무력 침공)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천연자원, 특히 석유를 지배해야 한다. 전 세계의 나라에서 이민자가 몰려와 다민족 국가가 되어 가는 미국의 일반 국민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만 외부로부터의 직접적인 대규모 위협(=9.11 테러)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이라며 테러와 그 후 감행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군사침공을 부추기는 내용을 썼다. 그런데 이라크 침공 후에 미군 전사자가 늘어나자 처음에는 부시 일당을 응원하던 국민들 사이에 이라크 침공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브레진스키는 이라크 전쟁은 실패였다며 부시정권을 비난하고 미군철수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네오콘의 중심 멤버 중 한 사람으로서 이라크 침공을 소리 높여 외쳤던 일본계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가 이라크 침공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침략 후 네오콘과 결별한 것과 같은 태도다. 브레진스키의 표변은 포스트 부시를 정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미군 철수파와 주둔파 양쪽에 모두 심복을 보낼 수 있도록 하라는 데이비드의 방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런데 이 브레진스키가 2007년 2월에 상원외교관계 위원회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한 적이 있어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는 미국 상원에서 수많은 의원들을 앞에 두고 미군의 이란침공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란의 도발로 시작되었다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매우 공격적인 군사 작전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백악관은 전쟁을 시작하는 구실이 될 미국 국내에 대한 테러 공격을 날조하거나 혹은 일부러 테러를 유도할 능력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부시 일당이 테러를 자작할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 또 금융 지원은 IMF에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아이슬란드가 IMF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일본의 제안이었다는 소문이 있다."라는 내용도 있다. IMF에서 돈을 빌리면 최악의 경우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므로 가능하다면 IMF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제안을 일본이 했다는 말은 일본에도 올바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서, 결국 IMF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 10월 6일, 하르데 총리는 아이슬란드의 모든 은행을 정부 관리하에 두는 법안을 가결하기 직전에 텔레비전에 출연해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아이슬란드의 어려운 상황을 잘 말해 준다.
"미국의 경우, 은행 구제에 거액을 쏟아부었지만 비율로 따지면 국민총생산 GNP의 5%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의 경제적 비중은 GNP의 몇 배가 됩니다."
총리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 참고로 이 아이슬란드의 비극은 일본의 저금리 정책에서 탄생한 '앤 캐리 트레이드'라는 헤지 펀드의 신종수법과 큰 관련이 있다. 또 10월 말에 세계적으로 급격한 엔화 강세가 진행되어 도쿄 시장에서 1달러 92엔, 1유로 114엔까지 상승했는데, 이러한 엔화 환율의 급격한 변화도 앤 캐리 트레이드가 큰 원인으로 생각된다. 헤지펀드가 저금리인 일본의 은행에서 돈을 빌려 그것을 달러로 바꾼 다음 금리가 높은 아이슬란드에 투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따라서 이번 아이슬란드의 위기와 엔화 강세가 헤지 펀드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 언론에서는 석유가격의 급등으로 러시아의 경제가 호조라고 보도했지만, 아이슬란드의 필사적인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을 보면 러시아도 금융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석유 가격의 하락이었다. 제3장에서 1980년대의 석유가격 변동으로 아랍의 산유국들이 농락당했다고 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랍 국가들은 석유가격의 변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반년 전까지만 해도 아랍에미리트연방이나 쿠웨이트에서는 석유 가격 상승에 따른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건설 붐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로 60조 엔에 이르는 대규모 건설공사가 잇따라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입은 타격은 아랍국가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러시아는 석유가격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을 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배분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자한 만큼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처럼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에 주가가 하락하고 있어 자산이 감소하고, 믿었던 은행은 금융위기로 융자를 꺼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푸틴의 러시아와 아랍 각국이 유가 폭락과 세계적인 주가 하락이라는 더블 펀치를 맞고 상당히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금융 문제는 보디블로처럼 서서히 영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물며 CDS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날에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예행연습으로 생각될 정도의 거대한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후기
모든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왔다
독자 여러분, 이 세상에는 이 지구를 지배하려 하는 나쁜 무리가 있다. 그들은 우리 일반 시민을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애완동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가 완성된다면 개인의 인권이나 사생활, 인간의 자주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신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지시된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감시당하는 하루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울타리만 없지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런 사회가 오지 않게 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인식해야 한다.
어둠의 세계 금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의 계획이 드러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 같이 대중을 유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동시다발테러로부터 한 달 반 뒤에 부시 정권이 성립시킨 미국 애국자법에 대해 미국 전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서서히 반대의결을 채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것은 매우 좋은 뉴스다. 이 나라에는 아직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다만 곤란한 점은, 이 바르고 정직한 사람들이 어둠의 세계 금융과 그들의 조종을 받는 권력 조직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일반 국민은 금전적인 측면에서 미국 국민보다는 착취를 당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시로'황제' 데이비드 록펠러의 세계 제패 계획을 돕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은행, EU 중앙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악행 조직인 것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까지도 외교문제평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일본에는 서양의 문화와는 다른 독자적이고 우아한 전통이 있다. 지금 일본은 독립 국가로서의 자주성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슬슬 그 부끄러운 사실을 인식하고 변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변혁을 위해서는 먼저 현실 사회의 참모습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내보내는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역의 모임에서 그 화제에 대해 토의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사회의 참모습을 이미 이해한 여러분이 그 도화선 역할을 해 준다면 기쁠 것이다. 대화를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갖는 것이 개혁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지는 모두 함께 결정할 일이다. 이야기를 나눈 결과 아무 행동도 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자신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스스로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꼭 읽어 보기를 바라는 책이 있어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기에서 소개한 책과 그 작가의 다른 저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해 줄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미카와에이타 저 <교과서에서 지워진 위인, 숨은 현인>
마에노 도오루저 <신역사의 진실>
마쓰바라 히사코 저, 다나카 사토시 <거만한 백인과 싸우기 위한 일본 근대사>
와타나베 쇼이치 저 <역사를 읽는 법>, <일본 그리고 일본인>, <일본사로 본 일본인>
또 이 책을 집필하면서 다음과 같은 책을 참고로 삼았다.
아베 요시히로 <세계 금융의 미래>
윌리엄 G. 카William Guy Carr 저. 오타 류 역 <교과서에서는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어둠의 세계사 Pawns in the Game>
스쿠센 클레온Skousen W. Cleon 저, 오타 류 역 <세계의 역사를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THE NAKED CAPITALIST>
존 콜먼 John Coleman 저, 오타 류 공저 <로스차일드의 음모 Conspiracy of Roth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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