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토마스 린치 외] 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일루젼 2025. 4. 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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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토마스 린치 / 크리스티나 패터슨 / 달지트 나그라 / 네드 보먼 / 패트릭 맥기네스 / 카요 칭고니이
마크 레이븐힐 / 임티아즈 다르커 / 나오미 앨더만 / A. L. 케네디 / 아비 커티스 / 애니 프로이트
키분두 오누조 / 윌리엄 파인스 / 필립 커 / 김소정
출판 : 아날로그(글담)
출간 : 2020.02.04


       
           

'내가 이걸 샀었다고?' 하는 물건들이 발견될 때가 있다.

지금은 이게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한 물건을 구매해서 쓰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어쩐지 선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신선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살갗 아래>도 그렇게 발견하게 된 책이다.

아마 '토마스 린치'라는 이름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라는 문구에 홀렸던 것 같다.

 

화려한 라인업의 저자들이지만, 시인들과 과학적인 '장기 臟器'의 만남은 내 기대만큼 시적이지는 못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어서, 사실 선택했던 걸 살짝 후회하기도 했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훌륭하지도 않았다 정도.

 

귀와 신장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된다는 점은 새로웠다.

흔히들 신체를 커다란 원통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가 먹고 삼키는 것들은 정확하게는 우리의 몸을 관통해 지나간다. 소화과정과 흡수과정을 거쳐 여러 물질들이 흡수되고 배출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화강은 빈 공간이다.

 

하지만 저자들의 지적처럼 소리라는 파동이 내부적 신호로 변형되어 인지되는 귀와 혈액이 소변으로 변화하는 신장은 경계를 형성한다.

(귀만 특별 취급하는 게 조금 걸리긴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감각기관은 모두 해당되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지방은 어디서나 경계가 되는 모양이다.

 

성질머리를 흘려보내는 데에는 어떤 간식이 좋으려나.  

   


   
 
    

추천의 글

몸, 내 영토의 전부



-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다. 몸은 피부를 경계로 안과 밖으로 나뉜다. 안쪽에는 뼈와 근육, 피, 장기, 세포 등이 있고, 바깥쪽은 '나'라는 형상으로서의 물질인 몸이 있다. 몸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몸으로 살아가며 가끔은 영혼의 일탈이나 해방을 꿈꾼다. 하지만 영혼은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때로 몸이 곧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 어느 날 카페에서, 사람들이 꼭 자기 몸처럼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걸음걸이, 서 있는 자세, 표정, 몸의 곡선, 목 어깨 골반 무릎을 통과하는 몸의 정렬 상태, 살집, 근육의 분포, 체취, 머리카락의 색과 굵기, 눈빛, 낯빛, 몸의 기운까지! 여기까지가 그 사람이다. 몸을 둘러싼 에너지가 곧 그의 성정이나 형질을 반영한다.

 

- 겉만 봐서는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표면이 곧 심연이다"라고 한, 니체의 의견에 동의한다.

- 몸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신호를 받아 표시하는 '신호등'이다. 화가 나거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 뺨은 홍조로 물든다. 몸은 쉽게 감정에 지배당한다. 슬픔이나 기쁨이 극에 달할 때 몸은 눈에서 눈물을 내보낸다. 눈물은 방귀나 오줌, 똥처럼 자연스럽다. 몸은 감정 소모로 피로해진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감정의 불순물을 내보낸다. 그러니 눈물은 찌꺼기로서 '감정의 오줌'이다. 몸은 자기 안의 찌꺼기를 내보내며 스스로 정화한다. 몸의 신호를 더 살펴 ...

- ' ... 대장, 뇌, 자궁'으로 이어지는 책의 차례를 보고, 나는 읽기 전부터 전율했다. 과장이 아니다.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몸을 이루는 기관 하나씩을 정해서 쓴, 내밀하고 시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책을 읽으며 '상상력과 관찰이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한편 한 편의 글이 '매혹'으로 읽히는 이유는, 사실보다 진실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들의 태도 덕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자기 몸과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시인 박연준

 


 

 

사람들은 자기 몸에 관해 얼마나 자주 깊이 생각할까?

 



- "우리는 신체 부위 각각의 조합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살 속에서 홀로 분투하는 독립 개체다."
마이클 헤퍼난 Michael heffernan은 자신의 시 <그것을 칭송하여 In Praise of It>에서 "몸을 갖는다는 것은 비통함을 배우는 일"이라고 했다. 이 시가 실린 헤퍼난의 첫 시선집은 국제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시인이 쓴 아주 얇은 시집들이 거의 그렇듯 다섯 개 대륙에서 모두 외면받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이 우연히 발견해 시로 표현해 놓은 저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안에 깃든 갈망, 슬픔, 기쁨은 오직 몸 안에만 머문다. 마음이 부서지면, 흉골 아래에 처박히고 심막 안에 갇힌 우리의 심장은 약강격의 박자로 쿵쾅거리며 뛴다. 뼈는 우리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망하거나, 과거의 상처와 오래된 손상, 오래전에 패배했거나 이겼거나 멈추게 하려고 싸운 투쟁의 잔해를 느끼는 곳이다. 그리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는 암, 심장마비, 심근경색, 동맥류, 색전 같은 원인으로 우리 몸의 일부를 통해서만 소멸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몸의 서로 다른 부위와 양상들이 연결되고 녹아들어 가고 불가사의한 구성 요소들 간의 협력이 작용함으로써 구체화되고 유형화된 생물 종이다. 

- 단언하지만 우리의 말조차도 살이 된다.

- 우리는 신체 부위 각각의 조합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살 속에서 홀로 분투하는 독립 개체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수 루던 웨인라이트 Loudon Wainwright는 아들 루퍼스를 위해 지은 새로운 세기를 맞는 노래 <원 맨 가이 One Man Guy>에서 "3세제곱 피트의 뼈와 피와 살은 내가 사랑하고 아는 전부"라고 노래한다. 

 

이 책은
작가 열다섯 명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몸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고찰하고 써 내려간
열다섯 편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 내장과 두뇌의 어떤 특성이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만드는 걸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심장 판막이나 발이 안쪽을 향해 휘어져 굳어버린 내반족, 암에 걸린 방광,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가 우리 자신이라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일까? 진실은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눈, 아버지의 이마 선이 우리를 만들까? 아니면 주근깨, 다리, 심장병이 우리를 만드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된 이유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 이 책에서 열다섯 명의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이루는 부분들을 이해하면 우리가 처한 모든 곤경과 상황을 조금은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더 큰 동물과 몇몇 그보다 작은 동물이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체계들, 다시 말해 내장과 폐 그리고 담낭이나 피부 같은 유력한 용의자들의 목록을 만들어 살펴보았다.

- 트위터에 맹렬하게 글을 올린 사람이 그다음 날에는 똑같은 신체 기관을 이용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심장은 사랑과 열망, 슬픔과 사별을 나타낼 때 으레 사용하는 은유가 되었다. 그러면 과연 뇌하수체에는 어떤 상징을 붙여줄 수 있을까? 장이 용기를 품고 있는 장소라면, 소뇌는 영혼이 머무는 곳일까? 그렇다면 소장의 첫 부분인 십이지장(창자)은 무엇을 품고 있는 장소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런 궁금함은 어원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십이지장 duodenum은 '열둘 씩'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둬데니 duodeni'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는 작은창자에 관해서는 분명히 길이가 중요했음을 의미한다.

 

- 실제 이 책에서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각각의 신체 부위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지적인 동물을 이해하고, 인간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잡다하지만 조금은 중요한 글들을 모아보았다. 열다섯 편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독자들을 살갗 아래, 그 경이로운 세상으로 안내할 것이다.

 

작가들을 대표해서, 토머스 린치






- 어쩌면 기적은, 대부분의 경우에 피부가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몸의 기관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 기관은 대개는 발진이나 진물이 흐르는 염증으로 뒤덮여 있지 않다. 대체로 피부는 설계된 대로 제대로 작동한다. 피부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 우리 몸이 생존할 수 있도록 적당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필요할 때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고통을 느낄 때 경고해 준다.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고 사랑하는 이의 손길에 전율할 수 있게 해 준다. 

-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피부도 새로운 세포를 쏟아낸다. 우리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피부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고 상처 입으면 낫는다. 흉터가 남더라도 피부는 상처를 낫게 하지만, 복숭아 같은 뺨은 더는 남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많은 생을 살아갈수록 피부는 복숭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오래 살아갈수록 이 세상과 당신을 가르는 이 탄력적인 장벽은 당신이 싸우고, 결국 이겨낸 전투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상흔들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집안은 시크교도여서 내 천식을 치료한 치료사들도 주황색 가운에 긴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두른 시크교 치료사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치료를 하는 장소는 콘서트홀이나 교회 위층, 강둑처럼 아주 다양했고 치료 장소만큼이나 처방도 다양했다. 한 달 동안 검은 닭을 우린 수프를 매일 두 번씩 먹으라는 사람도 있었고 인도의 한 도시인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가서 신성한 강에 머리를 담그라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전생의 죄를 짊어지고 태어나 천식에 걸렸으니 매일 한 시간마다 속죄의 기도문을 외워야 한다고 근엄하게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사람은 내 양쪽 귀를 뚫어 걸어두라며 면실을 두 가닥 준 사람이다. 그때 나는 다섯 살 쯤이었는데 검은색 면실로 만든 귀걸이를 걸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이 귀걸이의 영험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서 며칠 지나지 않아 천식의 공격을 다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내 양쪽 귀에는 천식을 치료하려고 뚫었던 부분이 조그맣게 뭉쳐서 도톰해진 채로 남아있다. 

- 이들 신앙 치료사의 묘약과 주술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에 나는 그 영적인 세상에 대해 어떤 감흥도 받을 수가 없었다. 성장하면서 나는 부모님의 전통이나 신앙과는 점점 멀어지고 말았는데, 어쩌면 어린 시절에 나를 괴롭혔던 그런 기억들 때문에 더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나는 종교의 주술이 아니라 시가 가진 주술적인 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런던의 가이스 병원에서 폐에 관해 알아보며 서성이다가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인 존 키츠 John Keats를 실물 크기로 만든 아름다운 청동 동상을 발견했다. 키츠는 1821년에 불과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죽기 전까지 런던 가이스 병원에서 의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결핵은 폐가 끔찍하게 감염되어 걸리는 질병이다. 

- 로빈슨 교수는 폐는 흉곽이 확장하고 가로막이 아래로 움직이면서 폐에 생긴 진공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면 산소는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는 내뱉는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공기를 흡수하거나 내뱉는 과정에서 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폐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방법이 없다. 나는 폐가 천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섬세하면서도 온화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좋았다. 폐는 놀라울 정도로 가볍다는 사실을 말해주면서 이안 프록터의 눈은 자연스럽게 위를 쳐다보았는데, 내 눈에는 그가 마치 몸에서 벗어나 하늘로 자유롭게 올라가는 폐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두 병리학자를 만나고 돌아온 뒤에 나는 폐를 뜻하는 영어 lung이 독일어로 '가볍다'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고대 영어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폐가 '가벼운 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폐는 탄력 있고 매우 가볍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다. 자르려고 해도 칼이 잘 들지 않는데, 수백만 개의 공기주머니가 연골에 둘러싸여 계속 열려있기 때문이다. 폐를 이루는 모든 공기주머니를 쫙 펼쳐놓으면 테니스장 하나를 덮을 정도로 넓게 퍼진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기관은 우리를 전혀 짓누르지 않는다.  


- 영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시형인 약강 5보격도 사실 5보격이 아니라는 주장은 늘 있었다. 가운데 있는 약한 운율을 기준으로 양쪽에 있는 강한 운율을 두 부분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 한 작품의 1행을 살펴보자.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해도 될까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하는 이 행은 일정한 다섯 박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되지만 가운데 부분에서 잠시 쉬어도 된다. "Shall I compare thee"까지를 강한 어조로 읽고 "to a”를 아주 약하게 읽으면서 다시 "Summer's day"를 강하게 읽는 것이다. 중간에 살짝 숨을 들이마셔서 마지막 두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어 호흡에 변화를 줄 수 있다.

 

 

- 감정의 상당 부분, 서정시의 분위기는 시구를 호흡하는 숨결 가운데 존재한다. 블랙 마운틴 시인 그룹(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 대학에 있던 찰스 올슨, 로버트 던컨, 로버트 크릴리 등을 중심으로 <블랙 마운틴 리뷰>지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시를 발표한 시인들)이던 찰스 올슨 Charles Olson은 1950년대에 "시에서 가장 강력한 부분은 호흡이라는 압력을 조절하는 시인의 통제력 안에 있다"라고 했는데, 나는 '압력'이 가해져 시가 노래가 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든다. 시는 함께 연주하는 타악기도 현악기도 없지만 언어라는 자신만의 풍부한 패턴을 가진 음악이기에 시인이 제대로 통제만 한다면 호흡이 압력을 가하는 음악이 되고, 독자들은 시가 가진 호흡이 내뱉고 들이마시는 박자를 느끼면서 시라는 음악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 따라서 나는 시가 '육체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시는 독자들이 흉곽과 가로막에 관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시는 흉곽 안으로 들어간 공기를 전율하게 해 폐가 침착하게도, 성급히 돌진하게도 만든다. 위대한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Zbigniew Herbert가 "시는 숨을 쉬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이것이 그의 마음속 여러 생각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격동의 20세기 폴란드를 목격하면서 헤르베르트는 시를 짓는다는 행위는 사회와 정치가 드러내는 야만성 앞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완성된 시, 영원히 존재할 시, 숨결 같은 승리! 그럼으로써 마침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시스템 위로 시와 노래의 절망과 강인함, 그리고 기쁨이 올라탄다. 

- Appendix 맹장 : 쓸모없는 것이 한순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 애초에 나로서는 원하지도 않았고, 나를 위해 어떠한 일도 해준 적이 없는 이 기관이, 이 죽어있는 묵직하고 쓸모없는 소용돌이 같은 기관이, 내 인생에 끔찍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그 기관이 맞다면 그 터무니없음과 이유 없음, 부당함과 심술궂음은 이 우주가 그토록 많은 시간 동안 하고 있는 일들과 너무나도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뉴욕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표면적으로는 내 소설의 미국판 판매를 증진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사실은 타코와 버번위스키를 먹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와 예술가를 많이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오바마케어'로 더 잘 알려진 '건강보험개혁법(저소득층까지 의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법안)'을 자신이 구상한 '끔찍한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 미국에서는 고용주가 직원들의 의료보험을 든다. 그래서 오바마케어 실시 전에는 고용주가 없고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브루클린에서 고군분투하는 소설가에게 의료보험 가입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미국 의료보험료는 지구에서 가장 비싸며 해마다 5 퍼센트 정도 인상된다. 그 말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야 하더라도 보험이 없으면 파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나는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기에 오바마케어 대상자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 머물 때는 여행자 보험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 보험을 믿지 않는다. 작은 사고가 나서 보험 처리를 해야 할 때 보험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처리하는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도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위급 상황에서는 일단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병원비를 내고, 그 후에는 미처 읽지 못한 깨알처럼 작은 지급 조항 때문에 보험료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만을 최선을 다해 신에게 비는 수밖에 없다.

- 나는 영국 납세자로서 암과 같은 병에 걸리면 곧바로 런던으로 날아가 국립건강의료보험의 품으로 쓰러지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뉴욕에서 생활할 때면 항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신경병적인 공포를 느낀다. 하나는 택시가 나를 칠 수도 있다는 공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맹장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맹장에 관해서라면 다음과 같은 확고한 몇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맹장은 사랑니나 몸소름, 꼬리뼈같이 특별한 기능이 없는 흔적 기관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 경고도 없이 터질 수 있으니 옆구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면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만약 그 병원이 미국에 있다면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침대 옆 은쟁반에 향수를 뿌린 봉투가 놓여 있을 것이고, 그 봉투에는 족히 10만 달러는 될 청구서가 들어있을 것이다. 

- 그런데 이 에세이를 쓰면서 그 같은 확신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째서 사실이 아닌지는 앞서 나열한 확신과 반대 순서로 확인해 보겠다.

- 첫 번째 오해는 금액에 관한 것이다. 미국에서 맹장 수술을 받은 뒤에 내야 하는 수술비는 평균 1만 4,000달러(약 1,600만 원)라고 한다. 물론 엄청난 돈이지만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원래 추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도대체 왜 내가 1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여행자 보험으로도 맹장 수술비는 보장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언젠가는 여행자 보험이 맹장수술비를 보장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될 테지만, 성인이 되어 얻는 지식의 대부분이 늘 그렇듯 아마도 알아야 할 시기를 조금 놓친 상태에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다시 맹장 수술을 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기적이 일어나 잘라낸 맹장이 다시 자라거나 원래부터 맹장이 세 개였다면 또다시 맹장 절제술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사실 맹장은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온 기관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모함이 널리 퍼진 이유는 어쩌면 찰스 다윈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유래 The Descent of Man>에서 다윈은 강한 어조로 맹장에 붙어있는 벌레처럼 생긴 충수는 우리 조상이 하등 포유류였을 때 나뭇잎과 풀을 소화하는 데 사용했지만 지금은 '아무 쓸모없이 달고 있는 흔적(퇴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과 논쟁을 벌일 때 툭하면 이 맹장을 예시로 꺼내 든다. 정말로 신이 인간의 몸을 만들었다면 어째서 과도한 병원비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이 조그마한 악당을 만들었는지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 그런데 다윈이 죽고 20년쯤 지났을 때 의사들은 맹장에 림프 조직이 가득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스코틀랜드의 해부학자 리처드 J. A 베리 Richard J. A. Berry는 그 사실을 증거로 "사람의 맹장은 ... 흔적만 남은 구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특수하게 분화된 소화관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학교에서 잘못된 ...

-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귀가 그토록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귀가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생물학이나 해부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인지적으로나 영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

 

- 귀는 단순히 우리 몸 안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뇌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문이자 현관이다. 귀는 항상 열려있다. 귀에는 몸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막을 차단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체의 모든 스위치가 꺼지는 엄청난 순간(그러니까 죽음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되는 순간)인 잠을 잘 때도 우리는 귀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듣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하는 방법은 소리의 이야기, 혹은 소리가 하는 여행을 이야기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여행이고, 외이·중이·내이라는 세 공간으로 이루어진 귀는 처음-중간-끝이라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Blood 피 : 내 몸에 흐르던 것은 붉디붉은 수치심이었다

- HIV 검사를 받은 뒤에야 나는 HIV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를 건널 수 있었다. 그것은 닫아 내리고 있던 칸막이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날 이후 거의 13년이 흘렀지만 이제야 나는 '혈액 질환'이라고 부르는 것이 수치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내가 들고 있던 수치심을 놓아버려야만 내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던 추가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 디너파티 같은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가족이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올 때면 나는 얼마나 내가 입을 조금만 열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는 한다. 만약에 내가 말이 많은 외향적인 사람 옆에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적절한 소리만 낼 수 있다면, 이 실험은 정말 놀라울 만큼 성공적으로 끝난다.

-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내 입에서는 거의 아무 말도 나가지 않는데도 여전히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과정은 정말로 흥미롭다. 왠지 장난을 치고 싶을 때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일부러 꾸며내기도 한다. 그 속임수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있는 것이다. 아주 무표정하게 말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아주 회의적인 사람도 잠깐 동안은 속일 수 있다. 

- 그 어떤 것도 조작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내 인생을 틀리게 추론해도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된다.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자란 곳을 이야기해 주면 그들은 내가 그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

- 처음 만나는 사람과 처음 대화하게 될 때 내 생애 가장 괴로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상대방을 조금 더 잘 알려고 노력하는 순간이 되면, 서로가 모두 무덤덤하면서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야 할 때면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진실을 '가볍게' 만들 방법은 없다. 누군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해 물어온다면, 나는 그저 '두 분 모두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할 수 있는 한 빨리, 아니, 아주 당연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 버린다. 

- 흔히 사람들은 부모는 아이들이 어릴 때 죽을 리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내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공유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분명히 얼굴로는 "어쩌다 돌아가셨는데요?"라고 묻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가 살지도 않은 인생을 내가 살았다고 믿어버리는 것을 보는 쪽과 내 말을 들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것을 보는 쪽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면 나는 보통은 전자를 선택한다.

- 바로 이 질문, '우리 부모님은 어쩌다 돌아가셨나?'가 나를 '피'라는 주제로 이끌었다. 왠지 솔직하게 말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나는 "부모님은 혈액 질환으로 돌아가셨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핵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지만, 두 분 모두 HIV ... 

- 그것은 닫아 내리고 있던 칸막이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날 이후 거의 13년이 흘렀지만 이제야 나는 '혈액 질환'이라고 부르는 것이 수치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내가 들고 있던 수치심을 놓아버려야만 내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던 추가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 나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받아들여야지만, 나는 진정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진정한 나로 존재해야만 누군가 나에게 우리 부모님에 관해 물었을 때 그분들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으며,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지금도 마음 아프며,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프더라도 나는 여전히 여기서 살아가고 있고, 내가 나인 한 그 고통이 내가 느끼는 전부가 되지는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Gall Bladder 담낭 : 몸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 내 머리에 난 털은 여전히 내 몸을 이루는 필수 구성요소라는 느낌이 든다. 벌써 20년 전에 남성형 대머리라는 것 때문에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도 말이다. 정말 이상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내 몸이라고 느끼면서도 그 가운데 일부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고 일부는 그저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 2년 전, 바르샤바에 도착한 첫날밤. 내 흉골 아래쪽이 내리 눌리는 것처럼 아팠다. 이 통증은 밤새 가시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침대 위에서 뒤척이고, 온 방 안을 서성이면서 가능한 한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려고 애썼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주먹이 계속해서 내 가슴을 강타했다. 잠도 자지 못하고 신음하면서 심각한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암은 아니에요. 일단 병실을 잡아드릴 테니 입원하시고 내일 아침 췌장에서 담석을 제거하시면 됩니다. 점심때쯤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날 아침에 병실로 외과의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환자분 수술을 진행할 집도의입니다. 담석을 제거하는 동안 담낭(쓸개)도 함께 제거할 생각입니다. 일단 담석이 담낭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장기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또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럴 가능성을 아예 제거하는 게 좋습니다." 
"담낭을 제거한다고요? 담낭이 없어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아, 물론입니다. 담낭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담낭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냥 떼버리는 게 좋습니다. 나중에 뵙지요. 물론 환자분은 절 보지 못하시겠지만요."

- 나는 구글에서 '담낭'과 '담즙'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스마트폰 배터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담낭이 필요 없다는 말이 사실일까? 담즙을 사람의 기본 체액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 않나? 담즙이 사람의 기질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틸야드 E.M.W. Tillyard와 엘리자베스시대의 세계관에 관해 들었던 오래전 대학 강의를 떠올려보려고 애썼다(틸야드는 영국 고전문학 학자로 <엘리자베스 시대를 상상하다 The Elizabethan World Picture>(1942)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세계 질서를 보는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그중 인간의 네 가지 체액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맞아, 정말로 그랬지. 혈액, 가래, 담즙, 그리고 또 한 가지 액체가 사람의 몸을 도는 네 가지 체액(혈액, 가래(점액), 검은 담즙, 노란 담즙)으로, 이 네 가지 체액이 균형을 유지해야만 사람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했는데?

- 이런, 담낭이 이런 식으로 격하되다니!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담낭은 우리 몸의 네 가지 기본 기질 중 하나를 분비하던 중요한 역할을 맡은 기관이었는데 이제는 레이저로 몸을 약간만 절개해서 빼낸 뒤에 병원 뒤 어딘가에서 불에 타버릴 하찮은 기관이 되었다(불에 태운다는 건 내 추측일 뿐이지만). 

- "이제 가슴은 나에게 쓸모가 없어요. 그러니 그냥 떼버리는 게 훨씬 안전할 수도 있어요."

그녀는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 담낭이나 맹장을 제거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아주 오래전부터 특별한 상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적으로도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으니까. 하지만 의학 기술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몹시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됐다. 우리 신체 기관 가운데 어느 부분이 의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일까? 나는 내 몸이기는 한 걸까? 나는 내 신체 기관을 어느 정도나 필요로 하고 원하고 있을까?

- Liver 간 : 감정이 머물고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곳

- 장기를 하나 선택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깊은 감정은 간에 들어 있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아랍 의사들은 간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머무는 곳이며, 그저 혈액을 돌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혈액을 새로 만들고 감정과 기질과 성격을 조절하는 가장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장기라고 생각했다. 시인인 나에게 간은 독특한 창조력과 재생력을 떠오르게 한다. 

- 어렸을 때, 내 친구 캐서린과 나는 항상 서로의 집을 들락거렸다. 캐시의 엄마는 캐시를 자신의 '달콤한 심장 sweetheart'이라고 했고, 엄마는 나를 자신의 '간 조각 piece of her liver'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표현을 단 한 번도 이상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엄마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집안의 규칙에 따라 당연히 사용하는 언어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간은 기적을 일으킨다. 간은 재생 능력이 있어서 잘라낸 뒤에 다시 자라는 유일한 내부 장기이다. 간은 25퍼센트 이하로 잘라내면 아주 빠른 속도로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의사들은 간을 이야기할 때면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언급할 때가 많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아주 끔찍하고도 기묘한 벌을 내린다. 산등성이에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배가 찢기고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내린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매일 밤 다시 자랐고, 다음 날이면 같은 벌을 받아야 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벌이었다. 확실히 제우스는 간에 재생 능력이 있음을 알았고(물론 벌을 내리는 시간 간격을 사람의 간이 재생되는 시간이 아니라 쥐의 간이 재생되는 시간에 맞추기는 했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간이 생명과 지능, 불멸하는 영혼이 머무는 곳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버밍엄의 한 외과 의사가 아르곤 플라스마 응고법 argon gas coagulator(고주파 전류로 생성된 아르곤 플라즈마를 이용해 지혈을 하거나 조직을 태우는 방법. 아르곤 레이저 점막파괴술이라고도 한다)을 이용해 간을 이식하는 복잡한 수술을 하다가 환자의 간에 자기 이름의 이니셜을 새긴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신과 같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도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사는 몇 년 뒤에 다른 외과 의사가 그 환자를 수술하던 중 그 이니셜을 발견하는 바람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병든 간의 표면이 옅은 노란색으로 변하는 바람에 이니셜이 눈에 띄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의사가 같은 범행을 여러 번 저질렀다는 것도 밝혀졌다. 

- 그 의사가 환자의 간에 자기 이니셜을 새긴 이유는 어쩌면 불멸 위에, 다시 말해서 영원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란 시인 루미 Rumi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샴스 타브리즈, 이 미친 심장이 당신의 이름을 나의 간 위에 새겼다." 엄마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엄마의 간에 덩어리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엄마 간의 덩어리가, 간을 옭아맨 그 고통이 보이는 것만 같았고 마치 거기에 내 이름이 쓰인 것처럼 느껴졌다.

- Nose 코 : 후각은 의식보다 빠르게 기억을 소환한다

- 어떤 특정한 냄새들은 단순히 동물적인 침범이 아니다. 그 냄새들은 시간 여행이며 기쁨이고, 고향이자 비통함이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나 흐른 뒤에 거리를 걷다가 한 남자에게서 맡은 할아버지의 애프터셰이브 로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의 단편소설 <코>에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코가 사라져 버린 코발료프라는 공무원이 나온다. 코뼈가 튀어나와 있어야 할 자리가 그저 평평하고 매끈할 뿐이었다. 코발료프는 코가 없으면 일을 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으며, 심지어 밖으로 나가는 것도 두려운 일일 뿐임을 알게 된다. 더 최악인 것은 코발료프에게서 해방된 코가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처럼 '금몰(금실을 꼬아서 만든 끈)이 달린 깃 높은 제복과 벅스킨 바지를 입고 계급장이 달린 모자를 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 고골 자신도 큰 코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터무니없이 계급에 집착하는 전제군주국 러시아를 풍자한 것이다. 그래도 이 소설에는 코와 관련된 지혜가 가득하다.

- 살아가는 동안 코는 용감하게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며 시간이 지나면 부드럽게 밑으로 처지면서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면 그런 변화는 성숙해지고 지략이 풍부해짐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는 우리가 표정을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코가 없거나 손상되면 아주 이상한 얼굴이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코가 손상되면 진짜 코 대신 붙일 가짜 코를 활용해 왔다. 16세기에 살았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 Tycho Brahe는 황동으로 만든 코를 붙이고 다녔다(튀코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수학 공식 때문에 사촌과의 의견 충돌로 결투를 벌이다 코 대부분이 잘려 나갔다. 이후 그는 가짜 코를 붙이고 다녔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안면 손상 부상병들은 섬세하게 색칠한 주석 코를 달았고 아주 조악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최초로 기록된 이식 수술은 1795년경에 인도에서 이뤄졌다. 성형 수술은 이제 우리의 코를 만들거나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현재 코를 만들거나 복원하는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코 성형 수술'이 엄청난 인기라는 사실은 사람들 앞에 내놓는 기관을 완벽하게 보이게 하는 일이 사람의 자부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우리 코가 보유한 후각은 우리 의식보다 훨씬 빠르게 기억을 소환해 음식의 맛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가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상당 부분 냄새 때문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사과를 먹으면서 석유 냄새를 맡아보시길! 사고나 병으로 후각을 상실해 냄새를 맡지 못하면 보통 점차 식욕을 잃게 되고 먹는 즐거움도 사라진다고 한다.

- 냄새는 마음도 바꿀 수 있다. 쓰레기 냄새를 맡으면 윤리적 판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좀 더 보수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집을 구할 때 능수능란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무리해서라도 당신에게 따스한 바닐라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은, '음, 이 아파트는 꼭 사야겠어. 어릴 때 먹었던 케이크 냄새랑 그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하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매 순간 들이마시는 숨은 말하고 노래하고 맹세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기운을 우리에게 불어넣는다. 우리의 민감한 후각망울 olfactory bulb은 특정한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어서 수백 가지 물질이 섞여 있는 커피 향기 속에서도 로즈옥사이드 이성질체를 감지하고 우리 뇌를 행복하게 해 준다.

- 실제로 우리 코에는 구멍이 네 개 있다. 두 개는 외부에 있고 나머지 두 개는 목구멍 입구 옆 비강 뒤쪽의 오른편에 있다. 콧구멍은 복잡한 냄새를 파악하고 냄새가 나는 위치를 알아내려고 계속해서 진동한다. 외부 콧구멍은 한쪽 구멍마다 1,000개 정도 되는 털이 나 있다. 코털은 한때 우리의 수염이었다.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코털은 들어오는 공기를 청소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코에서 분비되는 점액도 같은 역할을 한다. 코점막 세포 표면에 있는 미세한 섬모를 자극하면 분비되는 점액에는 질병을 물리치고 꽃가루를 막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우리 코는 매일 1만 4,000리터에 이르는 공기에 습기를 더해 편안하고 효과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다. 코 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가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코발료프의 걱정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셈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는 후각은 원시적이어서 당연히 항문기와 관계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의도를 담지 않고 사용하는 단어라고 해도 냄새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어떤 의미가 담긴다. 이제 막 호감이 생긴 사람에게 "당신 냄새는..."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도해 보자. 그 문장을 "과자가게나 천국의 냄새 같아요"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고 해도 이제 막 싹트려고 했던 관계는 위태로워지고 말 것이다. 

- 사람은 동물이지만 동물 같은 냄새가 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우리 몸에서 체취, 발 냄새, 입 냄새, 땀 냄새를 없애주겠다며 돈을 쓰게 하는 산업 규모는 수조 달러가 넘는다. 미생물의 존재를 알기 전 우리는 나쁜 냄새 - 독기 miasmas - 에 감염된다고 믿었다. 냄새를 의미하는 중립적인 단어는 거의 없지만, 반대로 나쁜 냄새를 의미하는 단어는 악취, 구린내, 썩은내, 곰팡내 등 아주 많다.

- 이런 편향이 나타나는 데는 신경학적인 이유가 있다. 불쾌한 냄새는 편도체를 통과하는 지름길을 택해 뇌로 전달된다. 편도체는 아주 감정적이고도 확고한 대뇌변연계(인체의 기본적인 감정, 욕구 등을 관장하는 신경계)의 구성원이다. 대뇌변연계는 우리를 아주 본질적이고도 동물적인 단계로 데려간다. 좀 더 상쾌하거나 중립적인 냄새는 우리의 대뇌피질에서 처리된다. 스트링 치즈와 데오도란트를 발명하고, 향기를 맡는다고 감정에 휩싸이지는 않는 영리하고 훨씬 정교하게 진화한 층이다.

 

- 진화와 관련해 말하자면 나쁜 냄새는 위험이나 부패, 공포, 고통, 쫓김, 싸움과 관계가 있다. 여러 문제를 감지하고 재빨리 반응하려면 나쁜 냄새를 빨리 인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구린 냄새가 난다거나 썩은 내가 진동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뇌가 은유적인 역겨움도 진짜로 역겨운 자극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서다. 역겨운 냄새를 방치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의식을 잡아끄는 자극일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다른 냄새는 어떨까? 냄새는 생존에 매우 중요하므로 대뇌변연계나 뇌간(뇌줄기)처럼 초기에 진화한 뇌 부분과 아주 많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냄새를 초대하지 않은 침입자처럼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에서 작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냄새는 언어를 담당하는 좌측 신피질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 이는 우리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않을 ... 

- Eye 눈 : 눈을 통해 세상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다

- 눈은 두개골 안에 자리 잡고 뇌라는 단독의 특이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는 특별함을 지닌다. 어느 정도 눈은 사회를 창조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각은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눈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스크린 뒤에서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 그 방은 어둡다. 멀리 벽에 마름모꼴 빛이 두 개 보이는데, 하나는 붉은색이고 또 하나는 녹색이다. 나는 플라스틱판에 턱을 괴고 있다. 그때 목소리 하나가 나에게 빛을 보라고 말한다. 셔터가 한 번 내려가고, 밝은 빛 속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나무뿌리 같은 무늬가 보인다. 나는 불빛을 따라 내 시선을 옮긴다.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남자의 머리 윤곽이 앞뒤로 움직인다. 그 남자의 숨소리가 들리고 내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선다. 이런 기묘한 가까움 속에서 나는 내 눈에 흐르는 혈관의 그림자를 본다. 찰칵찰칵 렌즈를 몇 개 더 끼우자 흐릿했던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들일까, 렌즈를 빼면 보이는 흐릿한 글자들일까?

-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고, 이제 막 근시가 시작되었다. 학교 칠판이 흐릿해지고 내가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되었다. 안경 가게에서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나와 주차장을 걸으면서 자동차 앞 유리에 낀 먼지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온통 부드럽게만 보였던 세상이 이제 다시 더럽고 불완전한 곳으로 되돌아왔다. 

- 내 아기는 태어났을 때 크고 선명하고 움직이는 물체만을 볼 수 있었다. 아기가 볼 수 있는 범위는 12센티미터 정도이기에 정확하게 내 얼굴과 내 피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자라면서 아이는 훨씬 더 먼 곳에 있는 물체를 자세히 볼 수 있어 지금의 나로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비행기가 하늘에 남긴 자국도 볼 수 있고 낮에 뜬 희미한 달도 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은 경계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본다는 행위가 단순히 무언가를 찾고 확인한다는 실용적인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 사람이 지닌 다섯 감각 가운데 가장 강렬한 감각은 시각이다. 시각은 우리 의식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19세기말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은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확신했다. 강력한 천체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찰하던 로웰은 자신이 화성에 존재하는 문명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지적 존재가 만든 운하가 있다는 사실은 한 사회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로웰이 망원경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가 화성에 지적 공동체가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던 운하는 로웰 자신의 눈 뒤쪽에 있는 아름답고 복잡한 혈관망을 본 것이었다. 정말 가슴 아프도록 슬픈 이야기다. 로웰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화성 운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눈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연결해 주지만 아주 묘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기관이기도 하다. 눈은 두개골 안에 자리 잡고 뇌라는 단독의 특이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는 특별함을 지닌다. 한 가지 점에서는 로웰이 옳았다. 어느 정도 눈은 사회를 창조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각은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눈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스크린 뒤에서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눈의 '유출설 extramission theory'을 믿었다. 눈에서 빛이 나가 주변에 있는 물질을 '환하게 비추어 밝히기' 때문에 사물이 보인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까? '유출설'은 나중에 '유입설 intromission theory'에 밀려난다. 중세 아랍 학자 알하젠 Alhazen은 1,000년 전에 <광학서 Book of Optics>를 지어 눈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설명했다. 눈은 세상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 나는 여행을 가면 커다란 SLR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홱홱 돌아가며 맞춰지는 카메라 렌즈는 비루한 내 시력을 보완해 준다. 나는 17세기 초반에 세상을 기록하는 유리로 만든 기묘한 기구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암상자)'가 우리 눈과 같다고 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의 설명도 사랑한다.

 

- 언젠가 검안사가 내 눈 안쪽을 찍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사진에 찍힌 내 눈은 분명히 하나의 행성이었다. 그물처럼 복잡한 혈관이 요동치고 있는 잊을 수 없는 분홍빛을 띤 구였다. 케플러가 천체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갈망했던 천문학자였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 수정체, 망막, 동공, 작은 구멍을 갖춘 살로 된 유기체 암상자는 시신경이라는 가느다란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상을 처리하는 고급 암실인 뇌와 연결되어 있다. 아주 복잡한 눈에는 아주 흥미로운 설계상의 결함이 있다. 시신경이 모여서 나가기 때문에 상이 맺히지 않는 맹점 punctum caecum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 우리가 서로 '눈을 맞출 eye contact' 때 외부에 보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파란색, 녹색, 갈색, 적갈색, 회색 홍채다. 모여드는 폭풍 같은, 갈아놓은 땅 같은 색실들은 모두 동공이라는 블랙홀 위로 모인다. 나는 아이섀도와 마스카라, 아이라이너로 내 눈을 꾸미는 일을 사랑한다. 두개골에 자리 잡고는 내가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관에 경계를 표시해 주는 일이 좋다. 시력이 좋은 사람의 눈동자는 동그란 구처럼 생겼지만 근시인 내 눈동자는 조금 더 납작해져서 원반처럼 생겼다. 원시인 사람의 눈동자는 어뢰나 레몬처럼 생겼다.

- 하지만 나는 시력 상실을 탐구하지 않고는 눈을 생각할 수 없다. 1980년대에 시력을 잃기 시작한 신학자 존훌 John hull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땅거미가 질 때면 나는 작업실에 앉아 홀이 녹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책상에 앉아 녹음기에 대고 조용히 말하고 있는 홀을 상상해 본다. 그가 시력을 상실해 가는 여정은 슬픔을 탐구하는 과정이자 의식이라는 감각이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홀은 특히 얼굴을 잃으면 자아와의 관계도 느슨해지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의 아내 마릴린은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고 내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어요 ...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도 받을 수 없었어요 ... 아주 가까운 사람이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건 정말 크나큰 상실일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 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시력을 잃는 당사자뿐 아니라 더는 그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보지도 못하는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남편을 상상해 본다. 시력을 잃은 뒤에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꿈에서 보았다는 훌의 이야기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그 아이의 얼굴은 훌로서는 절대로 보지 못할 얼굴이었지만 그의 무의식이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 결국 홀은 자신의 시력 상실을 '어둡고 기묘한 선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는 비가 외부 세계의 모습을 아름답게 반영하는 방식을 곰곰이 생각해 본 뒤 '안에도 내리는 비와 같은 그런 것이 있다면 방의 전체 모양과 크기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을 품었다. 비는 또 하나의 보는 방식일 수도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본다는 것, 안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를 띨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시각을 상실하면서 얻게 되는 친숙함이 한 사람의 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훌의 말이 나에게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 나는 안과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가까운 교육병원으로 갔다. 그 사람은 내가 '그렉'이라고 부르게 될 사람이다. 나를 만나러 온 그렉은 아주 번잡한 대기실에서 힘차게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사람을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렉은 뇌졸중으로 20년 전에 시력을 상실하면서 주변시 peripheral vision(시야의 주변부에 대한 시력, 시력과 색각은 약하지만 약한 빛이나 움직임을 보는 힘은 강하다)만 남게 되었다. 사람의 얼굴은 범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모자이크 처리한 사람들처럼 뿌옇게 보인다고 했다. 그렉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 말을 생각했다. 그에게 내 얼굴은 텅 빈 공간일 것이다. 나는 위장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 

- 하지만 그렉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렉은 그 편을 더 선호한다. 그는 시력을 상실하고 처음 몇 년간은 분노하고 분개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아주 슬퍼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시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흰 지팡이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아주 슬픈 말투로 머지사이드 주에서 맹인인 것을 나타내는 그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은 강도를 부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렉은 자신이 만나는 환자들이 느끼는 육체적, 감정적 기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온 '어둡고 기묘한 선물'을 결국 받아들였지만, 당연히 한참 동안 애도 기간을 보낸 뒤에야 슬픔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렉은 자신이 만난 한 환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30대인 그 환자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단 한 번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과학이 발전해서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기를 소망하는 그렉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존 홀의 말처럼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를 투영하는 하나의 세상 a world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세상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세상 the world 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세상"이다.

-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눈은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눈은 정말로 너무나도 쉽게 잘못될 수 있다. 나무뿌리처럼 생긴 아름다운 혈관은 정말로 취약하다. 그것들은 포도 덩굴처럼 너무 과도하게 자라서 치료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터져버리거나 균열이 간다. 시신경은 부드럽고 두꺼운 다중통신망 섬유 조직처럼 그들이 받아들인 상을 붉은 커튼이 쳐진 뇌의 극장(시각 피질)으로 보낸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시신경이 손상되면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시력이 손상된다.

 

- 하지만 시신경이 손상된 것이 아니고 실명의 원인이 백내장이라면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지는 질환이다. '백내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 'cataract'의 어원은 특이하게도 시적인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로 성 입구의 '내리닫이 쇠창살문 portcullis' 또는 문 gate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백내장은 '(폭포나 아래로) 세차게 굽이쳐 내린다 down-rushing'는 역동적인 감각도 함께 지니고 있다. 

-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King Lea>에 나오는 'caterickes(카타르시스 Katharsis)'라는 표현은 표면적으로는 격렬한 폭풍의 일부를 가리키고 있지만 한편으로 장님과 다름없는 리어왕의 윤리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불어라, 바람아. 네 뺨을 부숴버려라! 분노하라! 불어라, 너 폭풍아, 허리케인아! Blow wind & crake your cheeks, rage, blow Youcaterickes & Hiracanios!"

물기를 머금은 단어가 내 흥미를 돋운다. 결국 백내장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막, 시야를 가리는 쇠창살문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관찰자에게는 소용돌이치는 폭포의 심연처럼 보인다.

- 1688년, 아내가 앞을 보지 못했던 아일랜드 과학자 윌리엄 몰리뉴 William Molyneux는 태어났을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시력을 되찾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했다. 그전까지 뇌가 분석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과 형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촉각과 시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까, 서로 분리되어 있을까? 알고 있는 세계가 시각 세계일 필요는 없다.

 

-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는 어렸을 때는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중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버질 Virgil'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버질의 경험은 간단하지 않았다. 버질 앞에 새롭게 펼쳐진 형태와 선은 헤쳐 나갈 수 있는 구조나 건물, 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구조물들을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이 버질에게는 없었다. 계단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계단을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에셔 M.C. Escher(네덜란드의 판화가, 예술작가. 수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2차원 평면 위에 표현하는 3차원 공간, 대칭과 균형, 확장과 순환, 반복 등을 담아낸 초현실 작품으로 유명하다)의 작품처럼 역설 속에서 존재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 병원에서 나는 눈은 상당히 쉽게 으깨질 수 있음을 생각했고, 그토록 연약한 눈을 찌르고 만지고 주사를 놓은 과정을 환자들이 어떻게 참아내는지 궁금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안과 의사 해럴드 리들리 경은 깨진 조종석 창문 파편이 박힌 비행기 조종사들을 치료하면서 유리 파편과 달리 아크릴 파편은 눈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혼탁해진 수정체를 플라스틱 수정체로 교체하는 아주 간단한 의학수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작가 존 버거 John Berger는 <백내장 Cataract>에서 자신이 받은 백내장 제거 수술을 "건망증을 제거하는 수술에 비견할 수 있다. ... 시각의 르네상스"라고 했다. 수술 후 그에게 잊어버렸다는 자각조차 없었던 경험들이 다시 돌아왔다. "하늘의 어느 한 곳에 보이는 잿빛의 정확한 농도, 쥐고 있던 손을 펼 때 손가락 마디마디에 잡히는 주름의 모양, 집 저 너머로 보이는 푸른 들판의 굴곡, 이런 세부적인 모습들은 잊고 있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 이런 시각 상실은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볼 수 있는 능력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라는 자아감은 거의 은밀하고도 무의식적으로 시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각 상실, 특히 아주 어렸을 때 겪는 시각 상실이 아니라 조금 늦은 나이에 겪는 시각 상실은 처음에는 가족이 죽었을 때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한 이상하고도 은밀한 덫에 갇혀버렸다는 기분이나 지하 감옥으로 떠밀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시력을 잃는다면, 그 사람의 의식도 변할 수밖 ... 

- 작품에서 본 콩팥을 떠오르게 하는 유려한 곡선을 기억해 냈다. 건축가이자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내 할아버지 에른스트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아들이다)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콩팥처럼 생긴 연못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여전히 콩팥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느꼈지만 어쨌거나 주무르고 자르고 양념하고 요리하고 먹고 쳐다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 나는 콩팥에 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저명한 콩팥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콩팥을 사랑했고 심지어 열정적으로 콩팥의 근면함, 복잡함, 유능함을 찬양하기도 했다. 엄청난 '미세 조정'이 가능하며 '어긋남 없는 정교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한 번 심장이 뛸 때마다 심장에서 나간 피가운데 25퍼센트는 콩팥으로 간다'라거나 '매일 24시간 동안 43번이나 콩팥은 혈장을 3리터씩 걸러낸다'는 등의 놀라운 통계를 들어가며 설명하기도 했다. 

- 지역 보건의로 25년간 근무한 내 이웃이자 친구인 마커스 솔디니는 두 콩팥을 서로 다른 '나무' 두 그루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한 그루는 피를 공급하는 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피를 배수하는 나무인데, 두 나무의 제일 바깥쪽 가지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말이다.

"동맥이라는 굵직한 기둥으로 들어오는 혈액을 생각해 보세요. 이 혈액은 계속해서 나뉘며 작은 가지들을 따라 나아가는데, 가지들 끝에는 사구체라고 하는 아주 작은 모세혈관 뭉치들이 있어요. 사구체는 콩팥마다 100만 개 정도가 있지요."

- 마커스는 배수계를 담당한 콩팥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가지들이 사구체를 어떻게 둘러싸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손을 오므려서 도토리깍정이에 감싸인 도토리처럼 아늑한 보먼주머니 Bowman's capsule로 감싸인 사구체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는 "콩팥의 기본 단위는 네프론 nephron이라고 하는데, 네프론의 분열하는 막이야말로 소변 여과 과정이 본질적으로 일어나는 곳이에요. 외부 세계와 우리 몸이 접속하는 장소 중 한 곳인 거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바로 그 순간이 나에게는 '천둥이 치듯'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이라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분명 이해해 주리라고 확신한다. 단편적인 지식밖에 없던 나에게 전문 용어가 마치 시처럼 다가온 순간이었음을 말이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틴어로 '달콤한 분수 sweet fountain'라는 뜻이 있는 '당뇨병 diabetes mellitus'이라는 용어는 이 질병이 갖는 여러 가지 증상 중에서도 소변에 들어있는 포도당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극도의 탈수 상태에서 콩팥이 생산하는 고도로 농축된 소변의 양을 필수량 volume obligatoire이라고 한다.

-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떤 노력을 해도 전문 용어라고는 생각나지 않지만, (시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조금은 부끄러운 이름의 이 장기가 나를 훅 치고 들어와 저항할 수 없는 반짝임으로, 비용이 얼마나 들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전에 손에 넣어야 하는 무언가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나는 소변이 배수관으로 내려가 신우(콩팥깔때기)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연동 운동을 하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가느다란 수뇨관을 따라 방광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마커스의 설명에 매혹되었다. 

- 콩팥에 관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요리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도싯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직전에 있었던 캄캄하고 폭풍 치던 오후를 기억한다. 흠뻑 젖은 데다 배고픔과 무거운 가방 때문에 완전히 지쳐있던 나는 브리드포트 중앙삼거리의 작은 식당 불빛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식당에는 콩팥을 넣은 토스트를 팔았는데, 가격은 4.95파운드였다. 그날, 너무나도 행복하게 먹었던 그 음식을 기억하며 나는 엘리자베스 데이비드 Elizabeth David(영국의 요리 작가로 20세기 중반에 유럽 요리와 영국 전통 요리, 영국의 가정요리법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의 요리법을 떠올렸다.

 

 

콩팥 플람베 만들기

[재료]
1인분에 돼지 콩팥 1개, 소금, 노간주나무 열매가루 흑후추, 디종 머스터드, 크림, 브랜디, 버터

[만드는 법]
1. 콩팥 외막을 벗기고 반으로 자른다. 30분 동안 따뜻한 소금물에 담궜다가 가로로 얇게 자른 뒤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2. 얕은 팬에 버터를 조금 녹이고 콩팥을 올려 굽는다. 콩팥이 오그라들지 않도록 재빨리 뒤집으며 굽는다.
3. 5분 정도 구운 뒤에 노간주나무 열매를 3~4개 정도 으깨어 넣는다.
4. 작은 컵으로 계량한 브랜디를 한 컵 넣어 재료에 불이 붙게 한다. 불이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팬을 이리저리 돌려준다.
5. 불이 꺼지면 진한 크림 4큰술에 디종 머스터드 2작은술을 잘 섞은 소스와 함께 바로 내놓는다.


 

- 이제 내 의식은 더욱더 먼 곳으로 가고 있다. 이번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Ulysses>에 나오는 레오폴드 블룸의 부엌이다. 그는 "걸쭉한 내장 수프, 견과류를 많이 넣은 닭의 모이주머니, 속을 채워 구운 심장, 얇게 저민 뒤에 빵가루를 묻혀 바싹하게 튀긴 간, 튀긴 닭의 알... 살짝 톡 쏘는 오줌 냄새가 나던 구운 양의 콩팥"을 좋아했다.

- 유대교에서 허용하는 음식을 이런 식으로 전복적으로 남용하는 블룸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즐기는 동안 나는 새로 개업한 멋진 식당들 메뉴에 내장 음식을 포함하는 요즘 유행을 떠올렸다. 요리사이자 작가인 퍼거스 핸더슨 Fergus Henderson의 구호 "코부터 꼬리까지 먹는다"도 생각났고 말이다(퍼거스 핸더슨은 자신의 책 <코부터 꼬리까지 먹는다 Nose to Tail Eating>에서 돼지의 모든 부위를 활용한 요리를 소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독특한 입맛, 나만의 경험, 은밀한 욕망...
정확한 어원을 찾을 수는 없지만 콩팥을 의미하는 영어 'kidney'는 14세기 영어 'kidnere'에서 왔다. 이 단어는 흥미롭게도 두 개의 고대 영어 단어인 자궁을 뜻하는 'cwid'와 알을 뜻하는 'ey'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 영어로 콩팥은 '자궁 - 알'이라는 뜻이다! 콩팥과 달리 몸에서 훨씬 더 중심에 있고 여러 가지 비유에 등장하는 심장이나 위, 간과 달리 콩팥은 사람에서건 동물에서 건 역사나 문학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훨씬 적지만, 역사나 문학과 맺는 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 중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나의 (혹은 그의) 콩팥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사람의 기질이 체액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고, 콩팥은 애정을 결정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 콩팥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은 기질과 성향이 자신과 같다는 의미였다.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Merry Wives of Windsor>에 나오는 팔스타프와 T. S. 엘리엇의 시 <요리용 달걀 A Cooking Egg> 속 화자의 말처럼 문학에 콩팥이 등장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상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배경과 관계있는 익살을 구사한다는 의미다. 

- 프랑스의 소설가 안느 데클로스 Anne Desclos가 1950년에 폴린 레아주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가학피학성애로 악명이 높은 소설 <O 이야기 Histoire d'O>에는 '콩팥 les reins'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콩팥이 분명한데 작품에서는 여자의 생식기를 에둘러서 가리키는 '허리'라는 뜻으로 아주 오싹하면서도 애매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 식의 묘사는 콩팥은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므로 가장 취약하다는 의식을 반영한다. 

-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에도 '콩팥'이 등장한다. 그 둘은 마치 누가 더 (여성의) 성욕이라는 실재를 외설스럽게 표현하는지를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만 같다. 샹송 <나는 더 이상 너를 좋아하지 않아 Je t'aime... moi non plus>에서 세르쥬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은 "나는 당신의 허리 (콩팥) 사이로 들어간다 je vais et je viens entre tes reins"라고 노래한다.

- 팝송에서도 콩팥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알재로, 티본 워커, 폴 웰러, 마리안느 페이스풀, 비요크, 마크 E. 스미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제이 Z와 에미넴 외에도 많은 가수가 자신의 노래에 콩팥을 넣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랭크 자파는 웅장한 자신의 노래 <피그미 트윌리테 Pygmy Twylyte>에서 콩팥을 아주 특별하게 노래한다.
 
- 콩팥이 구약성서에 서른 번 이상 나온다는 사실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뇌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사전 편찬자 웹스터의 <성서 색인서 Concordance with the Bible>에서는 성서에서 콩팥이 중요한 이유는 콩팥을 감싸고 있는 지방을 가장 순수한 부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속담에서 콩팥은 엄청난 탁월함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고 동물을 태워 제물로 올릴 때 신에게 바칠 가장 신성한 부위로 여겨졌다.

- 콩팥은 그 위치 때문에 접근하기가 특히 어려운 기관이다. 도축업자가 가장 나중에 잘라내는 부위도 콩팥이다. 그 때문에 사람의 몸에서 가장 은밀하게 감추어진 부분을 상징하게 되었고 구약성서 욥기에서는 "콩팥을 갈가리 찢는다"라는 표현으로 한 개인이 완전히 파괴됨을 나타냈다. 신성함과 감춰진 위치 때문에 콩팥은 가장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르침을 받고 자극을 받는' 콩팥은 괴로움과 기쁨을 불러일으키기에 사람의 양심을 상징하게 되었다. '아는' 것, '콩팥을 먹는 것'은 신의 본질적인 힘으로, 신이 가진 인간에 관한 모든 완벽한 지식을 나타낸다.

- 이모부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이모의 기대도 점차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모부의 심장은 왜 그렇게 빨리 뛴 것일까? 그것은 이모부의 갑상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 갑상샘은 목 아래쪽에 있는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분비샘이다. 누구의 것이든 갑상샘은 모두 녹이 슨 것 같은 붉은색으로 자연은 개인의 취향에는 관심이 없다. 갑상샘을 가장 먼저 기록한 사람들은 히포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그리스 사람으로, 두 사람 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전에 갑상샘에 관해 언급했다. 두 사람은 갑상샘이 호흡기 통로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1,000년이 흐른 뒤에도 유럽 의사들은 갑상샘의 정확한 역할을 알지 못했다.

- 그 때문에 틀린 가설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7세기에 인기를 끌었던 '갑상샘은 여성의 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관'이라는 가설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살짝 부풀어 오른 갑상샘이 백조처럼 긴 목을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기에 목이 부푼 마리아 그림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런 가설이 퍼졌는지도 모른다. 다빈치, 카라바조, 티티안 같은 르네상스 시기 거장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마리아를 그렸다. 메시아를 무릎에 안고 있는 마리아, 어린 예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마리아, 구름 속으로 승천하는 마리아. 하지만 인간사에 속해 있든, 천상에 있든, 이 시기 그림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목 아랫부분은 한결같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을 위해 모델을 서는 여인들의 부푼 목이 사실은 부풀어 오른 갑상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포유류를 해부해 갑상샘을 그려놓기까지 한 박학다식했던 다빈치는 자기 모델의 부푼 목이 갑상샘 때문임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리아를 그리려고 자신들이 선택한 토스카나 혹은 움브리아 출신 소녀들이 갑상샘종을 앓고 있다는 것을 화가들이 알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갑상샘은 티록신이라는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티록신을 만들려면 음식으로 요오드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에 요오드가 충분치 않으면 갑상샘이 지나치게 혹사당한다.


- 지능에 미치는 영향이다. 부모들은 신경외과의라도 된 것처럼 분명히 달걀같이 뇌에 좋은 음식을 우리에게 양껏 먹인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티록신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음식을 먹었건 간에 중등학교 진학 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며 결국 알파벳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백치 cretin'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행동이다. 크레틴병은 친구를 모욕하고 놀리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정말로 심각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 정말로 갑상샘은 몹시 중요하며 우리에게는 골디락스가 마신 '수프'가 필요하다(골디락스는 일반적으로 딱 적당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의 주인공인 금발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골디락스는 아무도 없는 오두막에 들어가 식탁에 차려 놓은 세 그릇의 수프를 발견하는데 막 끓여 놓은 뜨거운 수프, 식어서 차가운 수프, 먹기에 딱 적당하게 따뜻한 수프 가운데 먹기에 적당한 수프를 마신다). 너무 뜨거워도 안되고 너무 차가워도 안 된다. 완벽하게 딱 적당해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한 유명한 외과 의사가 환자들을 희생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 19세기말에는 갑상샘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갑상샘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서 열이 나고 흥분하게 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 의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갑상샘을 떼어내기로 결정했다. 어떤 기관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제거해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갑상샘을 제거하는 일은 간단했다. 목을 절개하고 갑상샘을 잘라내면 그뿐이었다.

- 수술 결과는 처음에는 아주 놀라웠다. "의사 선생님, 이제 잘 수 있어요!" 환자들은 환호했다. "심장도 제대로 뛰어요. 더는 초조하지도 않고, 벼랑에 몰려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지도 않아요" 온갖 곳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갑상샘을 떼어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 외과 의사는 성공 사례 가운데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방방 뛰던 환자들은 수술을 받고 잠잠해졌다. 그런데 잠잠해져도 너무 잠잠해졌다. 심각하게 무기력해졌고 여름에도 추워했고 일생 동안 내내 잠만 잔 사람처럼 눈이 부어올랐다. 사람들의 개성은 사라졌고 지성은 뭉개졌으며 얼굴에서는 표정이 자취를 감추고 공허해지고 멍해졌다. 갑상샘을 제거한 사람들은 그저 순무처럼 변해버렸다. 이들에게는 티록신이 필요했다.

- 그래서 초기 갑상샘 제거 수술 환자들은 돼지 등 티록신을 생산하는 여러 포유류의 갑상샘을 말려서 분쇄한 가루를 먹어야 했다. 그러다 1920년대에 영국 화학자 찰스 해링턴 Charles R. harington과 조지 바거 George Barger가 호르몬을 합성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갑상샘을 제거하면 몸이 필요로 하는 양만큼 티록신을 농축한 약을 먹게 되었고, 모두 다 괜찮아졌다. 

- 그렇다면 갑상샘에 암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갑상샘암을 치료할 때는 모든 암을 제거하는 방사선이 아니라 갑상샘암만을 공격하는 특별한 방사선을 사용해 치료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갑상샘에서 티록신을 만들려면 요오드가 필요한데, 갑상샘은 우리 몸에서 요오드를 저장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따라서 갑상샘암 환자의 몸에 방사능 요오드를 주입하면 이 요오드는 곧바로 갑상샘으로 달려가 암세포를 공격한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거의 3주 동안은 환자 스스로 마블 만화에 나오는 빛을 뿜어내는 영웅처럼 인간 토치가 되어 방사선을 뿜어낸다. 대변에서도 방사선이 나오고 침에서도 방사선이 나오고 깎은 발톱에서도 방사선이 나오고 오줌에서도 땀에서도 머리카락에서도 방사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서 나는 빛이 사라질 때까지 격리되어야 한다. 무슨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며, 이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딘 고디머 Nadine Gordimer의 소설 <인생을 즐겨 Get a Life>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방사능 요오드 치료를 받은 뒤에 18일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평가해보게 된다. 

-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도 내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내 목 아래쪽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꾹 눌러보았다. 힘줄도 느껴지고 내 정맥을 감싸고 있는 지방도 느껴졌지만 나비넥타이 같은 기관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대로였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 갑상샘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가 20세기에 태어난 덕분이다. 아프리카 서부에 살았던 내 조상은 바닷가에서 살지 않았다. 내륙 깊은 곳에서, 갑상샘에는 절실한 요오드가 부족한 곳에서 살았다. 예전에 나는 갑상샘종을 분명히 본적이 있었다. 아주 거대하고 밑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갑상샘종이었다. 갑상샘이 아주 커지면 기관을 눌러 숨쉬기가 몹시 어려워질 수도 있다. 갑상샘이 후두를 누르게 되면 목소리가 거칠어지고 굵어진다. 세계 어디를 가든 300년 전만 해도 목 밑에 커다란 혹이 나 있고 목소리가 거칠고 생리조차 하지 않아 아이가 없는 여자가 받을 취급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마녀다. 

- 이제 내 마음은 한 가지 실없는 일을 떠올린다.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거하게 벌인 뒤에 남은 허리와 졸로프라이스와 칠면조 고기를 먹고 난 뒤에 얻게 되는 복부가 있다. 혹시 티록신을 조금 먹으면 신진대사량이 늘어나고 내 지방을 조금 태울 수 있지 않을까? 이 호르몬을 살을 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슈퍼다이어트 알약으로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분명히 누군가는 수십억 파운드를 벌어들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깡마르고 성마른 사람이 되겠지. 이제는 저체중이 된다고 해서 아주 의기양양해지거나 만족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영악한 생각을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 

- 나는 이 글을 완성할 무렵에 엄청난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도 내 몸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는 가장 복잡하고도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아침에 깨어 활동을 하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거의 흥미가 없다. 하지만 내가 매일같이 쓰고 읽고 생각하는 동안 내 목의 가장 아랫부분에서는 모든 일이 골디락스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애쓰는 작은 용광로가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용광로가 말이다. 

 

- Bowel 대장 : 가장 깊은 속내를 누구에게도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

- 군중 속에서 나는 저들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멸균 가제를 붙이고 가스를 거르는 탄소 필터를 달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두 부분으로 나뉜 최신 보조 장치에 연결된 플라스틱 용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사람들 얼굴을 살펴본다. 설령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비밀 협회 회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절대로 한 번도 보지 못할 기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 통증이 시작됐을 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장이 비틀리는 것처럼 경련이 일었고, 변기 가득 핏물이 차고 열 번인가 열두 번 정도 설사를 하면서 몸은 극도로 약해졌다. 단단한 무언가가 내 몸을 꿰뚫고 지나간 듯 새털구름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유령이 된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병은 가끔씩만 걸리는 것이고, 아주 심할 때는 며칠 침대에 누워 엄마가 오렌지 주스에 포도당 가루를 타서 주고,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침실에 놓아 증기를 만들고, 내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외부 세계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의 그 통증은 새로운 경험과 언어가 필요한 전혀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다. 

- 이 세상에는 반드시 무언가 잘못되어야만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자동차 팬벨트, 전기·가스 겸용 보일러, 그리고 대장이다. 나는 대장을 떠올리면서 배꼽 뒤에 있는 끈적끈적하고 뒤죽박죽 뒤섞인 무언가를 상상했다. 

- 창문을 가지게 되고, 밤새 내 몸에서 배출한 가스로 아침이면 체펠린 비행선 zeppelin (독일의 체펠린이 최초로 발명한 경식 비행선으로 비행선을 띄우는 부양용 가스주머니와 선체가 분리되어 있다)처럼 부풀어 올라 주머니의 이음새를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만들고, 욕조에 들어가면 구명복을 입은 것처럼 내 엉덩이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주머니를 들고 다녀야 하는, 그런 속사정 말이다.

- 스토마도 충분히 내 흥미를 끌었다. 그리스어로 스토마는 '입'이라는 뜻이다. 내 오른쪽 엉덩이 위쪽에 젖꼭지처럼 솟아 있는 분홍색 돌기는 가끔씩 늘어지고 길어져서 마치 제2의 페니스처럼 내 배 위로 툭 튀어나왔다. 주머니를 갈다가 내 스토마도 아주 변덕스러운 개성이 있고 기분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부에 착 달라붙어서 유두처럼 작게 오므라져 있을 때도 있지만 마치 내 몸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아주 길게 늘어져 있을 때도 있다. 길게 늘어져 있을 때는 마치 산호초 사이 구멍 밖으로 몸을 길게 늘이고 있는 장어나 혹은 엉망이 된 방을 살펴보려고 영화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존 허트(케인 역)의 배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에이리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내가 얼마나 평온하게 있는지에 따라 스토마는 유미즙을 변기에 쏟아내기도 하고 방울방울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가끔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이렇게 쳐다보고 있어도 되는지, 액체를 쥐어짜고 있는 근육이 하는 일을, 장을 따라 대변을 밑으로 내려 보내는 근육의 연동 운동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껴도 되는지, 심장 박동처럼 자율신경이 조절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 의식을 가지고 직접 하고 있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 상당히 끔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 이 모든 것에 정말로 매료되냐고? 물론이다. 하지만 아주 역겹기도 하다. 가끔 주머니가 밤에 벗겨지는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내 배를 덮고 있는 배설물의 온기와 냄새를 느끼면서 깰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내가 온종일 들고 다니는 오물 주머니, 내 옆구리에 붙어있는 분홍색 장이라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장식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한다.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신이 그 사람의 수치를 주머니에 담아 배나 옆구리에 달고 다니게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볼 때도 있다. 

- 나에게 스토마와 스토마에 달린 부속품들은 '관능'의 반대말과 같았다. 내가 성생활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방해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어 내 셔츠 안의 대변 주머니를 보여준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안거나 가까이 서서 춤을 추는 일도 상상할 수 없다. 그 사람은 내 옷 밑에 있는 묵직하고 물컹한 똥이 담긴 비닐 주머니를 분명히 느낄 테니까. 언젠가 처음 만난 여인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대변 주머니를 달고 있지 않은 깨끗한 내 스토마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 스토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은밀하게 느껴졌던지 나는 거의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어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는 내 간이나 사실 실제로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내 심장의 판막에 입을 맞추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촉각으로만 생각해 보면 그녀의 입술은 점막 조직에 닿았을 테고 대장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속살은 그녀의 혀를 행복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 군중 속에서 나는 저들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멸균 가제를 붙이고 가스를 거르는 탄소 필터를 달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두 부분으로 나뉜 최신 보조 장치에 연결된 플라스틱 용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사람들 얼굴을 살펴본다. 설령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비밀 협회 회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절대로 한 번도 보지 못할 기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변기 옆에 꿇어앉아 자신을 비우고, 자는 동안 배꼽에서 위쪽으로 오물이 흘러나오는 기분이 어떤지를 알며, 피부에 달라붙은 주머니를 떼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옆구리에서 살아가는 부드러운 분홍색 벌레 위로 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몸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 가는 느낌이 어떤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내장에 갈라놓은 구멍을 다시 꿰매고 밖으로 나와 있던 내장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들어간 뒤에 내 속에서 일어난 일이 다시 한번 감춰지고, 인체 한가운데 있어야 할 장기가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과시하지 않는 순간이 되면, 나는 다시 자연이 원래 의도했던 완전한 몸으로 돌아가 회복되리라고 생각한다. 

- 나는 장기 탈출증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자기 몸에 스토마를 만든 사람이라도 대부분은 창자가 밖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탈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 역시 어느 날 오후에 내 스토마가 평소보다 길어진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실은 내 몸과 주머니의 간격을 떨어뜨렸을 때 스토마의 끝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비닐 주머니 안에 아주 긴 분홍색 호스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너무 놀라 주머니를 떨어뜨린 나는 15~18센티미터 정도 나와 있는 대장을 부여잡고 이렇게 계속해서 장이 밖으로 나오다가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결국 내 몸 안이 인형처럼 텅 비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나는 스토마의 원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백 년 전에 머스킷 소총탄에 배가 뚫린 병사들은 흘러내리는 창자를 자기 손으로 받아 들고 있었다고 했다.  에라스무스를 그린 그림을 보면 로마의 박해자들은 닻감개(선박 갑판에 설치해 닻을 감아올리거나 풀어 내리는 기계)로 성자의 몸에 뚫은 구멍 밖으로 창자를 빼내고 있어 사람과 기계가 아주 팽팽한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나는 내 창자를 익힌 파스타 면처럼 미끄럽고 뜨거운 상태로 체에 받치는 꿈을 꿨다. 

- 녹색 점프슈트를 입은 긴급 의료원 던이 급히 달려와 나를 침대에 눕혔다. 내 위에 선 던은 장갑을 낀 손으로 내 몸속에서 빠져나온 벌레를 다시 내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내 창자는 젖꼭지 같은 돌출부조차 없는 고래의 숨구멍처럼 내 피부와 같은 선상에 있는 입구가 될 때까지 내 몸속으로 되돌아갔다. 왠지 나는 밖으로 나온 장을 다시 넣는 과정이 전혀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도, 인간의 진화에서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는데도, 육체의 질서와 형태가 흐트러졌는데도, 위험하다는 징후를 나타내는 고통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도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만 들었다.

- 이 모든 경험을 해야 했던 때가 지금은 아주 오래전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20대를 2년 앞두고 있던 나는 내 대장이 그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외과의가 그 작은 입을 꿰매고 내 창자를 모두 다시 배 안으로 넣는 수술을 한 뒤에도 며칠 동안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스토마가 있던 자리에 붙인 거즈를 떼고 구멍이 막힌 내 옆구리를 쳐다보고는 했다. 왠지 내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금 완전한 하나가 된 것만 같아 거의 숨도 쉴 수 없었다. 

- Brain 뇌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미스터리

- 뇌는 처음으로 뇌와 머리의 지도를 제작하려고 했던 초창기 뇌 지도 제작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방식으로 탐구하고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제 작가인 내가 신경외과학에 관한 주제로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미친 생각을 하게 한 것이 내 뇌의 어느 부분인지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는 폐암 진단을 받은 중년의 고등학교 화학 교사이다. 빈털터리이던 화이트는 자신의 제자 제시 핑크맨과 함께 고체 메스암페타민(마약)을 만들어 죽기 전에 가족에게 큰돈을 만들어줄 일생일대의 범죄를 저지를 계획을 세운다. 시즌 5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의 줄거리를 제작자 빈스 길리건은 "칩스 선생님을 데려다가 스카페이스로 만드는 이야기"(칩스 선생님은 한 노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굿바이, 미스터 칩스>의 주인공으로,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교사의 표본이다. 영화 <스카페이스>는 대표적인 갱스터 영화로, 접시닦이였던 주인공 토니 몬타나는 조직을 장악하고 보스가 되지만 끝내 파국을 맞이한다)라고 아주 간단히 설명했다. 전두엽 절제술은 한때 의학 치료계의 스카페이스였다. 정신병 증상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뇌 일부를 잘라내거나 긁어내 때때로 한 사람의 성격이나 지능을 바꿔놓기도 했다.

- 하지만 나는 이 짧은 에세이에서 <브레이킹 배드>와는 달리 스카페이스를 칩스 선생님으로 바꾸는 수술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때 악명을 떨쳤던 외과 수술이 이제는 측두엽간질을 앓는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말이 더는 뇌신경외과적 개입으로 지능이 떨어지거나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마음만 앞서고 있어, 제시"라고 했던 월터 화이트의 말이 옳다. 일단 우리는 먼저 스카페이스, 즉 전두엽 절제술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 전두엽 절제술은 포르투갈 신경학자 안토니우 에가스모니스 António Egas Moniz가 1935년에 처음 실시했다. 사람의 눈꺼풀 뒤로 송곳을 집어넣어 뇌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법이 어떻게 그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두엽 절제술은 1940년대가 되면 엄청나게 증가했고, 1951년 한 해, 미국 한 곳에서 실시한 전두엽 절제술만 해도 2만 건에 이르렀다. 에가스 모니스는 '전두엽 절제술의 정신질환 치료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1949년에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전두엽 절제술은 언제나 논란거리였고 사상자 또한 발생했다. 1950년대 중반에 항정신병 약이 개발되면서 전두엽 절제술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바로 이 미숙한 초기 전두엽 절제술이 내가 제일 먼저 살펴볼 내용이다

-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가 리 하비 오스왈드 Lee Harve Oswald가 쏜 총탄에 머리(뇌)를 맞아 사망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즈메리 Rosemary Kennedy가 초기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로즈메리는 스물세 살이던 1941년에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장 영리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일기장을 보면 현대의 아주 야심만만하고 무자비한 가부장 중 한 명인 조 케네디 Joe Kennedy가 이끄는 대가족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던 사려 깊고 주의력 깊은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로즈메리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반항적이었다. 의사들은 조 케네디에게 그때도 역시 실험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제 막 개발된 치료법을 이용하면 제멋대로인 딸의 변덕스럽고 돌발적인 행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조 케네디는 아내가 의사들 의견에 찬성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지,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수술에 대한 설명이 아주 소름 끼쳤으니까.

- 의사들은 로즈메리에게 아주 약한 신경안정제를 놓았다. 집도의는 제임스 와츠 James Watts 박사였다. 그가 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드러냈고, 그들은 버터나이프 비슷한 나이프로 로즈메리의 뇌 조각을 잘라냈다. 와츠 박사가 로즈메리의 뇌를 자를 동안 월터 프리먼 Walter Freeman 박사는 로즈메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가 로즈메리에게 주기도문을 암송하라고 요구했고, 두 의사는 놀랍게도 심전도가 아닌(그때는 심전도를 측정하는 기술이 없었다), 로즈메리의 대답을 근거로 뇌를 잘라냈다. 그러니까 돗바늘로 자기 눈 뒤를 살펴봤다는 아이작 뉴턴만큼이나 무모한 방법을 쓴 것이다. 로즈메리가 기도문을 제대로 암송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뇌 절제를 멈추었다. 그리고 곧 뇌 절제술은 재앙임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로즈메리의 지능은 두 살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즈메리는 곧 보호시설로 들어갔고, 평생 말하지도 걷지도 못했으며 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조 케네디는 그 뒤로 다시는 딸을 보지 않았다. 로즈메리의 형제들이 그녀가 사라진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였다. 


- 많은 사람처럼 나도 전두엽 절제술은 책이나 영화로 접했다. 위대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Tennessee Williams의 누나 로즈도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고 평생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희곡 <지난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에서 동성애자를 '도덕적으로 제정신'으로 만들겠다며 전두엽 절제술이 사용된 것을 비판했다. 하지만 전두엽 절제술의 악명을 열 배 이상 치솟게 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1962년에 켄 키지 Ken Kesey가 발표한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일 것이다. 소설에서 거침없고 반항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 랜들 P. 맥머피는 정신병원의 사악한 수간호사를 공격한 뒤에 전두엽 절제술을 받는다. 킨지의 소설 속 화자는 그 수술이 불러온 끔찍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의 눈은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꿈을 꾸듯 멍하니 오랫동안 떠져 있는 그 눈은 마치 두꺼비집의 그을린 퓨즈 같았다.]

 

- 다른 환자는 맥머피를 보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게에 진열해 놓은 마네킹 같았다"라고 했다. 나는 영화에서 추장이 무기력한 맥머피의 몸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친구의 공허한 얼굴을 보고는 "불은 켜져 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음을(몸은 있지만 정신은 나가버린 상태임을)" 깨닫고 공포에 질리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수술을 하면서 외과의는 나에게 전두엽 절제술이 끝나면 뇌 회로는 빠른 속도로 다시 연결되기 때문에 환자는 시냅스가 새로 형성되는 동안에는 단기간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 뒤로는 평생 간질 발작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의학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송곳과 추측을 바탕으로 마구잡이로 하는 수술이 아니라 이제는 엄청난 기술과 정밀한 과학적 절차를 밟으며 매우 발전한 뇌 절제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자면 내가 수술 과정을 지켜보았던 그 환자는 이제 완전히 회복됐으며 신경외과 수술을 받은 뒤로는 측두엽간질 발작도 없다고 한다. 

- 만약 월터 화이트의 어린 범죄 파트너 제시 핑크맨이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전두엽 절제술 수술 현장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신경외과 의사와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Yo, 친구! 이게 과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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