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조용미
출판 : 초록비책공방
출간 : 2020.08.30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심장이 마구 뛰는 그 느낌.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 고양감.
너무너무 좋아서 그대로 넘어가버릴 것 같은 달콤한 고통.
대략 이러한 것들이 덕후가 덕주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흥들이다. (라고 한다)
일반인과 덕후 사이 그 아슬아슬한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많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관심이 없는 건 아니야.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질감.
한 발을 뗐으면, 그 발을 다시 되물리든 다른 발을 내딛든-
경계선을 넘어서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덕주를 찾기로 했다.
약간 부끄러워지더라도, 그보다 더 큰 애정으로 당당하게 '덕후'라고 말하며 매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희한한 책이다.
그리고 나도 저자처럼 내 삶의 중심이 되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부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나'라는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사랑'으로 '더 나은 삶'을 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 덕주를 만난 저자에게 감사와 부러움을 전하며.
26년에는 나에게도 덕통사고가 일어나길 바라며 -하지만 적당한 정도였으면 좋겠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
세상의 모든 덕후들과 예비 덕후들과 (아직) 덕후가 아닌 이들에게.
화이팅.
천둥(조용미)
천둥처럼 하늘을 울리지 못한들 어떠리 한껏 소리쳐 보는 거지. 당신에게도 번쩍 하고 가닿기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즐겼다. 오십이 다가오자 어느 날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되면서 시들해졌는데 덕질을 하면서 다시 재생 버튼이 눌러졌다.
덕질은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덕심으로 시작한 매일 그림 그리기를 3년째, 매일 글쓰기를 1년째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하다 보니 <어서 와, 학부모회는 처음이지>를 쓰게 되었고, 그림책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를 독립 출판했다.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면을 돌보는 일,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그림책 작가가 꿈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꿈이 깃들 것이다.
-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 "무슨 음악 좋아해?"라는 질문이 싫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제한 질문이니까. 그랬던 내가 덕후가 되었다. 공연을 보겠다고 전국을 쫓아다니고 '내 가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 가수를 좋아하는 일로 친구를 가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내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제일 좋다'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에 기대어 내 행동에 대한 명분을 '철학적'으로 만들기로 했다.
-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은 '교양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펼친 명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담은 책이다. 페이지 수가 얼마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곱씹어야 할 대목이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앞부분은 사유의 깊이에 비해 사례가 적고 강의를 옮겼다는 한계도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덕질'이 비에리가 말하는 '교양'과 너무나 흡사하게 느껴져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교양이라는 단어를 덕질로 바꾸어 읽어도 조금도 위화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 교양은 교육과 달리 자신을 위해 혼자 힘으로 쌓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덕질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나는 덕질이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놀이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여러 경험에 이해 가능한 빛을 비추려는 시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철학이다."라고 했다. 덕질이라는 중요한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았으니 나는 철학을 한 셈이다. 또한 페터 비에리는 "존엄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라고 했다. 덕질이라는 특정한 삶의 방법이 존엄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 덕질은 '덕주'라는 대상을 통해 거울처럼 나를 비추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마주 보게 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깊이 들여다보고 이토록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그게 바로 덕질이다.
- 팬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지극히 자기애적인 사랑을 하는 존재였다(덕후라는 표현과 팬이라는 표현을 섞어서 쓸 예정이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뭔가 덕후 입장을 표현할 때는 덕후가 맞고 덕주 입장에서 표현할 때는 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이를 핑계 삼아 단단하게 박힌 덕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시간을 벌고자 했다. 편견은 우월하다는 거만함에서 오는 것이다. 덕질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내 우월감은 생각보다 뿌리 깊었고 그 깊은 뿌리는 아직도 어딘가에 고개를 처박고 숨어있을 것이다. 존재의 변화로, 그러니까 내가 완벽하게 덕후가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녹아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 덕질하는 모든 이가 나처럼 각자의 이유로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로 살았으면 좋겠다. 젊은 사람은 젊어서 늙은 사람은 늙어서 좋다며 자신의 덕질을 그렇게 정당화했으면 좋겠다. 덕질은 아니 어떤 경험이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들이닥치는 것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체화되는 거니까.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처럼 덕질을 하면서 나는 많이도 괴로워했다. 내 정체성이 덕후인 것을 받아들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덕질을 하고 앉아있는가'라는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생산적인 일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의미 있는 일만이 잘 사는 길이라고 여겼다. 아니라고, 즐거운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무리 나를 설득해도 어느 순간 처음 ...
-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랑과 다른 미움을 배웁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새로운 말들과 새 은유를 배웁니다. 구사할 수 있는 단어와 개념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기가 겪은 경험을 세분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이는 뒤집어 말하면 사건을 더욱 세밀하게 분화시켜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문학뿐 아니라 예술은 영혼의 영역이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 내 영혼에 속살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매일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예술을 하는 덕주의 감정을 잠시라도 느껴본다는 것, 그 순간순간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골목 여기저기 같았다. 때로는 심심하고 때로는 지루했지만 나는 지치지 않고 골목을 누볐다.
- 어느 날, 나무가 형태로 보이는 게 아니라 색채로 보였다.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져 나무라는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뭇잎도 테두리나 선이 아니라 색채의 온도로 이루어져 빛조차 그중 하나로 보였다. 아직 그것을 그림으로 형상화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또 다른 층위의 세상이 열렸다. 본다는 것, 보인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가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화가는 자신이 본 대로 그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영혼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 인간은 누구나 다른 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에 귀 기울이고 무엇을 서로에게 보여주고자 애쓰는 것일까. 예술이 나를 세밀하게 분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 공연을 할 때 무대 뒤로 영상이 띄워진다. 음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미지화한 것인데 영상, 그러니까 그림을 주의 깊게 본다. 전에는 노랫말과 악기가 하던 말을 각각 알아들었다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에는 영상과 함께 3D 형태로 전달된다. 그들은 음악으로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무대 구성, 장치, 동선, 모든 것이 그들의 언어였구나, 새삼 느낀다.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고스란히 감각화되어 드러난다.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가고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느슨해진다. 세상은 제법 아름답다.
-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도를 찾다가 우연히 플랫폼 '삼천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덕후들이 덕주에게 월 3000원씩 월급을 주자'라는 콘셉트의 사이트이다. 예술인들이 사이트에 등록하면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월정액을 내는 방식이다. 이 회사를 만든 대표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도 누군가의 덕후였다고 한다. 어느 날 덕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날의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늘 덕통사고를 당했는데 이제 다시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없다니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내 덕주는 내가 살리자, 예술인들이 지속 가능한 예술을 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자. 그의 실행력이라면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실현해 줄 것 같았다. 그 회사로 기획서를 가지고 갔다. 불행히도 그들은 아직 기반을 다지는 중이었다. 더구나 내가 아무런 능력이 없는 걸 알고(하다못해 커뮤니티 스텝이라도 되어서 실험적으로라도 후원 화환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위치라면 모르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낯선 상암동 거리를 방황하며 머리만 박다가 돌아왔다.
- 기획 컨설턴트인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프로골퍼들이 홀인원을 하면 후원기업이 사회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부금이 어려운 소년소녀 골퍼들에게 갈 수 있도록 지정하는지는 모르겠단다. 게다가 팬들이 하는 기부라니 팬들이 손쉽게 기부금을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 카카오페이가 있었더라면 이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을 텐데, 아쉽다. 물론 그랬다면 내 아이디어는 카카오의 것이 되어버렸겠지만 말이다.
- 결국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배우고 얻은 것도 많다. 덕주를 통해 생각지 못한 사회의 단면을 보게 되었고 생각보다 문화예술을 아끼고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인디 문화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시간도 가졌다.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던 내게는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 굳이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를 글로 남기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실현해 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 초기에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
뭐든지 시도하고 도전해 보자. 지금 생각하면 너무 떠먹여 주는 것만 받아먹었다. 좀 더 검색도 해보고 안 해본 것들을 시도했다면 지금보다 덕력(덕질 능력)도 높아졌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움짤(움직이는 사진이나 영상)이나 영상이 그러했다. 사진도 못 찍는 똥손이라 영상은 엄두도 못 냈다. 금손님들의 영상이 훨씬 훌륭하니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래도 움짤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어플 사용하는 것조차 겁을 먹었다. 떨어지는 움짤 줍줍(줍는다는 표현)하며 다녔다. 배워서 손해날 게 없다는 말은 덕질 세계에서 극대화된다.
- 덕질은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다. 현세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탈바꿈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던 대로 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 내가 가장 못하는 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금손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내 40대 덕후는 옷을 리폼하고 캘리그라피를 배워서 다른 분야에 재능기부까지 한다. 바쁜 현세가 발목을 잡거들랑 발목을 잘라버려라(나쫌 과격한가? 하지만 그런 각오로).
- 덕질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에게 묻고 내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카스텐의 가사를 보면 너와 나, 1인칭과 2인칭뿐이다. 3인칭이 없다. 2인칭인 너도 내 안의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덕질이어야 한다. 덕주도 나를 위해 존재한다. 나에 의한 덕질이어야 한다. 내 안에서 기인하는 어떠한 동기가 나를 덕후로 만들고 절실하게 만든 것이다. 덕주에 의해 덕후가 된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물론 '대상이 하현우라면 덕질하지 않기 어렵지'라는 자부심은 가져도 좋지만 그 또한 나의 자부심이다.
- 덕질하면서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평온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온 것이다. 나의 일상, 나의 태도, 나의 마음가짐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 덕후는 덕을 쌓게 된다. 덕은 돌고 돈다(덕 쌓은 자에게는 못 구한 티켓도 굴러 들어온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마다 (너무 좋아서 또는 너무 하잘것없어서)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다스리고 구제하는 덕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 덕후들이 카메라를 사고 굿즈를 사니까 덕질은 돈 있고 시간 있는 것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편견이 있다. 후배가 가난한 유학 시절을 보냈는데 그 와중에 작은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져도 취미라는 걸 가지고 사는구나 냉소적으로 바라봤었다. 그만큼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을 덕후가 된 이후에 알았다. 그 말은 동시에 취미가 없어도 될 만큼 내가 살 만했다는 것이다. 덕질은 돈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줄이고 줄여서라도 할 만큼 간절한 것이다. 주변의 시선이 어떠하든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덕질이 되길!
- 가정에 분란이 일어나는 사람도 봤고 생활이 어려운데도 공연비를 우선하는 사람도 봤다. 사생팬이 되어 덕주에게 지나치게 다가서서 같은 덕후가 봐도 걱정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모두 떨어져 나갔다.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좋다면 더 천천히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덕업일치를 최고로 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어느 학생 팬은 평소 학업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적당한 이유를 가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물론 모든 덕후가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멀리 등대가 비추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주변의 요란한 불빛에 그저 마음이 들뜬 건지 구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덕질은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영역이기 때문에 자신의 참된 마음도 자신만이 안다.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위하여 화이팅!
- 안 하던 일을 하려면 안 하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나의 선 자리는 덕질을 동력 삼아 안 하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매일 그림 그리기를 3년째 하고 있고 매일 글쓰기를 1년째 하고 있다. 노력이란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다. 나를 더 적극적으로 돌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덕주의 태도를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덕주의 보폭에 조금 좌절은 했지만).
-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 쓰는 시간이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세상 속 나를 정확히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싶다. 그런데 덕후로서 내가 좋아하는 국카스텐 덕질생활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이보다 성공한 덕후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그림책 작가를 꿈꾼다. 그림책은 다른 장르와 달리 아름답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에게 내가 사는 세상을 안심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의 고약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도 마무리는 따뜻하게 끝난다. 그림책이 아니라면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자신이 없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읽고 보고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이 팬들에게 직접 쓴 엽서를 나눠준 적이 있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이 나의 거울입니다."
그들에게 거울은 1집 타이틀곡이며, 국카스텐이라는 밴드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하현우는 거울 악보의 첫 부분을 몸에 새겼다. 덕후로서 그들의 거울이 되려면 그들 앞에 누가 되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덧. 세상을 대하는 태도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한다. 덕후가 된 후 알게 된 중요한 가치이다. 바로 위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위트를 던지려면 절망 끝에 붙은 지푸라기라도 뒤집어써야 한다. 웃는 것 말고 웃기는 것 말이다. 돌부처처럼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덕주가 우리를 웃기기 위해 애쓴다. 귀엽기 위해 귀여운 짓을 남발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뭐라고 웃기지 않고 점잔을 때는가 말이다. 매일 글을 쓰면서 '어떤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웃겨줄까'를 고민한다(여기까지 읽었는데 별로 못 웃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웃겨드리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 "저길 봐, 니가 온 세상들은 더 이상 바다가 아냐."
내가 살아온 세상이 바다 같은 자유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자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바닷속에 갇혀 지냈던 건지도 모른다. 경계를 넘어서라고 속삭인다. 버려지고 허기진 물고기가 먹이를 바라보면서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금지'라는 문을 의심한다. 싱싱한 먹이와 내가 살던 바다를 넘나드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미늘을 넘어선다. 미늘은 무언가를 낚아채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본성이 있는데 그 속성조차도 넘나드는 자유의지를 가지라 한다. 그렇게 수없이 듣다 보면 내 안의 우주 질서를 뒤바꾸는 힘을 느낀다. 미늘에 대한 일기를 네 번쯤 썼을 때 그제야 알았다. 내가 주군을 찾고 미늘을 들으며 울부짖는 이유를. 일기에서조차 나를 속이는 나. 아름다운 바다였다고 믿고 싶은 그곳에서 허우적댄 것은 내가 던진 미늘 탓이었다.
- 불투명하게 문제를 처리한 적이 있다. 반드시 징계해야 하는 사건에서 발설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덮어버렸다. 정의롭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직을 해체했다. 거기서 걸려 넘어져 놓고 엄한 주군 타령을 하고 있었던 거다. 진짜 세상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이제 넘어진 그곳에서 다시 진짜를 경험해야 한다. 직면하고 일어서는 것. 그게 자유다.
- 한 번쯤 주저앉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갱년기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다가올 날을 모색하는 한발 물러섬의 시기였던 것이다. 한발 물러섬 다음은 도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게, 깊고 어두운 갱년기를 벗어났다.
- 그래도 이정길이 부럽다. 그들의 성장통을 통찰력 있게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주군이 있다는 것이(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주군 타령이라니). 대신 내게는 덕주가 있다. 자신을 속이던 나를 깨우쳐주는 덕주의 음악이 있다.
- 덕질은 잠시 나를 내려놓는 시간이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다른 세상을 구경한다.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든 순간을 잠시 잊고 다른 세상, 저 상상의 세계에 다녀오면 보이지 않던 길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 40대 초반에 인문학자 고미숙 님의 영향으로 사주명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60 갑자를 배우게 된 고미숙 님은 음양오행이 자연과 인간을 연결한 실용학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주명리학 관련한 강의를 두 달 남짓 들었지만 그 오묘하고 깊은 뜻을 천분의 1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조금 감이 잡혔다. 내 사주 풀이를 해보았는데 10년마다 오는 대운이 이번에 크게 바뀐다고 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기운이니 준비를 잘하라고 했다.
-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비어져 나오는 그 고독 말이다.
꿈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나면 다시 새로운 시작 선에 서야 한다. 거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아직 꿈을 이룬 기쁨을 마음껏 느껴보기도 전에 이미 이전과 다른 자리에 대한 부담이 다가온다. 가진 것들을 짊어지고 그 무게감을 이겨내야 한다.
- 나는 나 혼자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 다시,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약했던 나는 차라리 꿈을 무르고 싶었다. 일상에서 이루는 작은 성취마저 내려놓고 싶을 만큼 겁이 났다. <펄스>를 듣고서야 알았다. 꿈을 이룬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을 이루어준 것은 내 옆에 선 수많은 사람 덕분이라는 것을. 그들도 같이 꿈꾸었고 그 꿈을 함께 이루었다는 것을. 그러니 그들이 또, 같이, 발을 내디딜 힘을 주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내가 선 자리 옆에 선 수많은 사람과 함께 나는 그저 하던 대로 떠밀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또 나아가면 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다른 이의 숨을 마셔 다시 또 숨을 쉰다."고.
- 이토록 덕주 님이 최고의 자리에서 나약한 인간의 한숨 소리를 기록하고 노래해 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사랑이란 한눈에 빠지는 것이고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은 사랑의 이유가 되었다가 이별의 이유가 되는 것인데. 그저 가만히 서 있는 뒤태만 봐도 앓는 소리를 내고 새끼손가락 하나만 세워도 자지러지는 것이 사랑이고 덕질인 것을. 그 누가 '앓는 것은 아는 것이라고 했던가. 앓는 만큼 알아가니 덕질은 곧 앎이다.
-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숨어있었다. 학부모 활동가로서 살아왔고 나름 깨어있는 교육적 지향을 가졌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내 아이가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이토록 숨은 재능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동안 내가 보고 깨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언제나 아이 편이 되어주는 것.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가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 그게 부모이듯 덕후란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 친구가 물었다.
"하현우가 노래 잘하는 건 알겠고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야?"
덕주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멋진 생각으로 음악을 만드는지, 얼마나 본받을 만한지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내가 그들을 뭘 알겠는가. 내 자식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굳이 객관적일 필요가 있을까.
- 신해철 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주관적이고 맹목적인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티스트의 몫이지 다른 누구의 몫도 아니다. 게다가 남의 말에 아주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은 아티스트가 못 된다. 창작자란 에미, 애비의 말도 안 듣는 것들이다. 굳이 팬이 아니라고 해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 줄 남들은 얼마든지 있다. 또 실체 이상으로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자들도 부지기수일진대, 굳이 객관적 팬을 어디에다가 갖다 쓰란 말인가."
- 그렇다. 팬이란 근본적으로 맹목적이다. 맹목적으로 예뻐하고 무조건 '한 편'이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덕후이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 그러다 '내 새끼'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옆에 서서 편이 되어 밀어주는 것이다.
- 깨인 덕후는 평온을 지킨다. 내 덕주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나와 같이 좋아해 줄 사람을 만나 그들과 덕질한다. 현세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 그 평온을 흔드는 자들과 회의적 거리를 둔다. 누굴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내 삶이 평온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안다. 철저한 반성과 비판적 의식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향하게 한다.
- 덕후가 평온이 깨지는 순간은 신곡이 나왔을 때다.
- "시선에 대한 평가가 특별히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때에도 우리는 나 자신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덕밍아웃은 이제 그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다. "외부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과 동일시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이 특별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을 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평가하려 드는 이들이 있다. 감정에 '가치'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옳고 그름을 잰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흠칫 뒤로 물러나게 되고 타인과의 간격은 점차 더 멀어지게 된다.
- 덕후라는 표현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도, 내 감정이 무언가로 "명명되는 순간 나만의 감정에 힘을 잃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은밀한 감정이 덕후라는 이름하에 일반화되는 게 아쉬웠다. 그렇기에 이왕이면 "품위 있게 드러내고" 싶었다.
- 이 책의 발간이 덕후로서 더 기쁜 것은 품위 있는 덕밍아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동시에 덕후로서 존엄해지고 싶다.
- 반색하는 경우는 대체로 나의 덕심을 아주 가벼이 생각한다. "나도 국카스텐 좋아해."라는 반응이 제일 많다. 음악대장으로서의 하현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도깨비>하는 무렵에 공유 좋아하고, <사랑의 불시착> 하는 무렵에 현빈 좋아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공감해 준다(공유 님과 현빈 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가벼운 거라는 뜻이 아니랍니다. 누구나 좋아한다는 의미라는 거 아시죠?). 음악대장을 기억해 주고 사랑해 주는 이들이 참 많다. 음악대장 노래가 담긴 유튜브는 여전히 인기 있고 조회 수도 날마다 치솟는다. 나도 음악대장을 아직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덕주는 과감히 음악대장을 떠나보냈다. 가장 붙잡고 싶은 당사자지만 빨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음악대장은 저 별나라로 돌아갔다."라고.
- 이제 음악대장이 아닌 국카스텐을 기억해 주고 국카스텐 음악을 한 번 더 들어주길 바란다. 게다가 음악대장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도 덕후인 나는 할 말이 많다. 덕후와 일반인의 애정을 과연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애정이라는 것은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주는 기쁨'만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랑을 주는 기쁨을 누렸으므로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다고 느끼는 이타적인 것이다. C에게 하늘이가 온 것은 그것대로, 내게 덕주가 온 것은 또 그것대로 각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덕질의 감정을 가장 가깝게 이해하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 우리의 덕질은 열정이 아니다. 한순간 불태워버리는 감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덕통사고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일 뿐이다.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기어이 움직여 열광하게 만든다. 덕주를 향한 뜨거운 환호가 한여름 소나기처럼 구름 속에 머물지 못하고 쏟아져 내린다.
- 우리의 덕질은 접속이다. 가족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제3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매개체로써 우리에게 온 것이다.
<이방인>을 들으며 덕후들이 서로에게 바로 그 매개체, 즉 이방인이 되어주었다는 걸 깨닫는다. 하현우는 <이방인>으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시 그의 영혼이 몸서리치게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 남편은 이상한 사람 중에 가장 이상해서 남들처럼 열심히 하지 말라고 내게 말한다. 남들보다 못한 체력으로 남들처럼 열심히 하면 남들보다 먼저 넘어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못하는데 남들만큼도 안 하면 더 못하게 되잖아." 했더니 "남들보다 못하는데 남들만큼 해봤자 되겠어? 그러니까 다르게 해야지."라고 한다. "다르게 어떻게?" "다르게, 열심히 하지 마." 뭔가 맞는 말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고, 아닌 것 같아도 내게는 맞는 말 같아서 묘하게 설득되어 버린다.
- 안방 한쪽에 내 책상을 마련했다. 아이들도 모두 독립해서 집에는 나 혼자 있다시피 했지만 나만의 공간, 작가의 책상을 따로 두고 싶었다.
그림 도구 몇 개와 컴퓨터, 그리고 벽에는 덕주 님이 그린 자화상을 오려 붙였다. 어쩌다 그림이 좀 괜찮게 그려지면 덕주 님 그림 옆에 나란히 붙였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림으로 바꿔 붙이면서 뿌듯해한다.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그림을 공부해야 했지만, 과연 덕질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그림 그리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가끔 덕주를 그리는 게 좋다고. 덕주를 그리면서 그림 그리는 일은 즐거운 것이라고 뇌를 속이면 일하기 위해 그림을 그릴 때도 뇌는 즐겁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뇌 속이기 작전을 썼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재능도 없는 내가 매일 그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꾸만 불안이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그냥 덕질하는 거야, 덕주를 그리기 위한 덕질이야.'라고 되뇌어서 물리쳤다.
- 빛을 그러모은다고 누구나 프레드릭이 될 수는 없다. 그림을 그려보고 시도하는 오랜 시간과 과정이 성과로 나타나지 못한다면 그냥 집순이 덕후일 뿐이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기회를 얻어야 했다. SNS에 그림이나 글을 올려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
- 그래도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표시를 내야 했다.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나도 살고 있다는 표시 말이다.
대부분의 덕후는 나처럼 백수가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덕질까지 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딱히 하는 일 없이 덕질만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을 너무 한심하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눈 떠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삶의 무기니까. 그게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는 자기 세계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나이 들어서는 그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남들처럼 열심히 하면 탈 난다는 남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원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뭐든 대충 해서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일머리도 없고 정리도 잘 못 하고 손끝이 야무지지도 못하다. 매일 하는 의지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느 것 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덕주 님을 만나 그나마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 하현우는 어릴 때 공부도 못하고 학원에 보내도 딴짓만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주산학원에 보냈는데 주판을 타고 놀았다는 일화가 있다). 화가가 꿈이었던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미술학원을 보내주었지만 입시 미술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학원 선생님이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도약하는 비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바로 시간을 들이는 꾸준함이었다. 그때부터 하현우는 새벽에 학원 문을 열고 그림을 그리다가 학교에 가고 다시 학원에 와서 밤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학원 문 닫고 오는 생활을 했다. 그림을 제일 못 그리는 그룹에 속했던 그가 제일 잘 그리는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미대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작곡을 하고 가사를 쓸 때도 그는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방법, 시간을 들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부족함을 채워 넣었다. 그는 지금도 그렇게 사는 듯하다.
-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매일 하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사람을 적게 만나고 가급적 일을 만들지 않았다. 매일 쓰고 그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오늘은 오늘의 글과 그림에 충실한다. 내일 쓰고 그럴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비우면 채워진다. 그리고 매일 걸었다. 해를 피해 밤에 나가 걸었다. 비가 오고 눈이 오면 계단을 올랐다. 걸으면서 움직이는 내 몸의 근육과 자세에 마음을 두었다.
-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은 왜 이상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같은 공연이라고 해서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선 이틀간 덕친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공연장 부근에 숙소를 잡았는데 모든 예약이 그렇듯이 수많은 검색과 비교분석, 그리고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그 지난한 결정의 과정에서 매 순간 행복했다고 하면 믿기는가?
- 10여 년 전에 집을 지은 적이 있다. 집 짓다가 폭삭 늙고 이혼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싶었다. 다행히 좋은 건축업자를 만나서 바로 이 지혜를 배웠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 10가지를 쓰라고 했다. 부부 중에서도 주로 자신과 일을 진행할 주 고객인 나와 그렇지 않은 남편을 구분하고 남편에게는 3가지만 쓰게 했다. 그 외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무사히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결국 잃었지만(앞서 집을 날렸다는 바로 그 집이다).
-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한다. 원하는 것을 딱 한 가지씩 정하라고. 내 결혼식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혼식장으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게 정말 소중한 한 가지만 내 뜻대로 하고 나머지는 전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
- 나도 어설픈 그림이지만 가방에 로고를 그려준다. 누구는 덕질 상자에 고이 담아둘 것이고 누구는 보란 듯이 들고 다닐 것이다. 누구는 더 갖고 싶어 하고 누구는 더 나눠주고 싶어 한다.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모든 이를 아우르게 하는 것이 덕질이다.
-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 종이에 아무 연필로 그냥 그렸다. 조금 정보가 쌓이면서 그림에 따라 도구를 달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다. 그림 도구를 사고 싶었지만 막상 미술용품점에 가보면 무엇을 사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도, 질문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취미예술가' 양성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학원이나 정식 코스를 잘 선택하지 않는 내게 적당할 것 같았다. 야매(?)가 좋다. 가볍게 배워야 내가 채울 것이 많다.
- 8회차 수업이었는데, 첫날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강사에게서 뭔가 선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강사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초초보인 우리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낙서를 끄적거리다 보니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더란다. 힘든 삶 속에서 아무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게 좋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그림이 취미에요."라고 말하기에 그림은 너무 고급한 쪽에 속해 있고 그렇다고 예술이 아닌 취미로 취급받는 것은 싫은, 그래서 취미 예술가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기술(예를 들면 한 선 드로잉이나 젠탱글)도 가르쳐주었지만 그보다는 내 그림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팁이 아주 유용했다. 외곽을 더 굵게 그리라는, 절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알못(그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만 몰랐던 것들 말이다. '종이 6 : 붓 3 : 물감 1'이라는 놀라운 진리(이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도 알려주었는데, 실력이 아니라 도구를 탓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정말 유익했던 것은 간단한 도구를 선물로 주었는데 물붓과 수채 연필이었다. 그것들은 내 그림에 컬러 시대를 열어주었다.
- 각자 자기 재주를 뽐내는 부스도 있는데 나는 여기서 타로를 봤다. 내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겠냐고 물었는데 "잘 될 겁니다."라는 1초 답을 들었다. 분위기는 진짜 점성술사 같던 그 이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는 더 이상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고맙다고 말하고 뒤로 물러났다.
- 덕후의 가장 큰 단점은 고독을 느낄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언제나 약간 조증 상태의 은은한 충만감이 있다. 어느 곳에서나 덕질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일이 있다가도 덕질의 양념을 조금만 톡톡 뿌리면 금세 빙그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작가는 조금 고독해야 인간 내면에 깊이 박힌 짙푸른 언어를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 '나는 그냥 웃게 하는 작가가 되련다.' 하고 마음먹는다.
- 요즘 정덕(정치 덕후)들의 혐오가 심상치 않다. 일관된 태도로 상대를 깎아내린다. 서로 각자 뱉어내기만(이걸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고 상대의 말은 아예 듣지 않는다(상대가 아예 없기도 하다. 나와 다른 대상은 모두 차단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하지만 여기도 끝까지 팩트만을 찾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덕질의 폐해를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 밑바탕에 깔린 덕후에 대한 혐오가 몇몇 덕후들이 하는 악플 속 혐오보다 나을 게 없다. '내 새끼 소중하듯 남의 새끼도 소중하니 내 덕주 소중하면 남의 덕주 까내리지 말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그동안 일상에서 배웠던 혐오와 존중에 대한 그 어떤 배움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
- 조공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들었다. 기껏 몇 년간의 덕질생활, 그것도 하나의 장르 안에서 덕질을 했기 때문에 내가 팬덤 문화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하자. 이미 말했듯이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 예전에 국카스텐이 팬들과 트위터에서 질의응답 놀이를 한 적이 있다. 한 팬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없어지지 않게 해 줄 수 있나요?"라고 답했다.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팬들은 없어지지 않게 해 주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한다. 편지를 쓰고 선물도 보내는 것이다.
- 후원과 조공의 차이가 뭘까? 그것이 선물이든 현금이든 여럿이 모아서 하든 개별적으로 하든 강요된 것이 아닌 모든 후원과 조공을 나는 찬성한다. 강요하거나 눈치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제발 많이 주자. 여유가 있다면.
- 옛날에는 귀족들이 문화예술인들을 후원했고 지금도 골프 등 스포츠 선수들은 공식적인 스폰서가 있어 후원금으로 운동을 한다. 정치나 경제연구소도 기업이 후원하고 그 연구 결과를 공신력 있다고 인정하며 언론에서도 인용한다. 음악인이라고 해서 왜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되는가. 앞서도 말했다시피 3,000원씩 모아 내 덕주 내가 살리자는 운동도 있고 나는 그 방식이 빨리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이다.
- 덕질은 휘게처럼 인생의 굽이굽이를 아늑하고도 풍요롭게 해 준다. 코로나 시대를 무사히 건너게 해 줄 소중한 덕목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뭔가에 임하는 자세가 덕후의 그것이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면 좋은 칼을 갖고 싶어 하고 칼을 갈고 야채를 줄 세워 썬다. 딱 맞는 쿠킹 도구를 찾아 웍을 검색하고 닦고 길들인다. 언젠가 겨울에 군밤을 구워 먹은 적이 있다. 이웃들을 초대한 자리였는데 남편이 군밤을 굽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순간 군밤장수를 모셔온 줄 알았단다. 군밤을 굽기로 마음먹는 순간 남편의 눈앞에는 오롯이 불과 밤만 남는다. 숯불이 허락하는 온도에 순응하며 밤의 몸통을 잘라 불기운을 입힌다. 따닥따닥 입을 벌리는 군밤이 제 색을 갖출 때까지 때를 기다리며 집게와 한 몸이 되어 그물망을 지킨다. 요즘은 술을 빚는다. 고두밥과 누룩을 비벼야 하는데 어찌나 정성껏 비비는지 누가 보면 전쟁터에 아들 보낸 부모가 정안수 떠 놓고 무사 귀향을 기원하는 줄 알겠다고 놀릴 정도다. 매일 술 익는 소리를 확인하며 효모의 발효와 배양에 대해 내게 설명한다(안물안궁이지만 두 손 모으고 들어준다). 정성을 들이니까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숙성되고 있는 술을 들여다보며 누구에게 이 맛을 보여줄까 고민하는 남편을 보면 자기 돈 들여 사진을 뽑고 스티커를 만들어 이걸 누구에게 나눠줄까 설레하는 덕후가 생각난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
- 덕주는 등산을 좋아한다. 가끔 산에 올라 푸른 나무와 오래된 뿌리, 그리고 새나 다람쥐 영상 등을 SNS에 올려준다. 등산이 얼마나 좋은 건지 하도 이야기해서 등산을 시작한 국덕이 많이 생겼다. 나도 한동안 산에 다니다가 날씨 변화가 많아서 그만두었다. 산에 오르는 내내 덕주가 같이 오르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었다.
- 어느 날 남편이 등산을 시작했다. 나이 드니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지는데 할 일이 없단다. 앞산 등산로를 모두 섭렵하고 나더니 친구들을 모아 유명한 산을 찾아다닌다. 등산복을 사고 무릎에 무리가 안 가도록 테이핑 하는 법을 검색한다. 내가 못 가는 산에 남편이 대신 가주니 그것도 좋았다. 등산 가는 남편에게 덕주가 등산 가서 먹는 양갱을 챙겨주고 (덕주처럼) 새에게도 나눠주라고 하고 다람쥐를 보면 좀 찍어오라고 한다. 남편은 관심인 줄 알겠지만 내게는 덕질이다(미안, 남편. 어쨌든 관심이잖수).
- 덕질은 이렇게 일상 속으로 은밀하고도 세밀하게 파고든다. 하루하루를 심심하지 않게, 단순하지만 한 번쯤 웃을 수 있게, 그리고 가끔 삶에 깊은 발자국을 내기도 한다. 누구나 덕후처럼 무언가에 마음을 담고 깊이 좋아하고 곁에 두고 즐기고 기꺼이 사랑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어떤 이는 커피에 빠져 그라인더를 사고 커피 종류를 익히다가 바리스타가 되고, 어떤 이는 사진에 빠져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그러니까 이것은 딱히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덕후라는 특정한 지칭으로 설명할 필요 없는 일반적인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 삶은 가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싱크홀처럼 무너져 내린다. 움켜쥔 것들이 구멍이 난 손바닥으로 술술 빠져나가 버리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모든 것이었으므로 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렇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을 두 손 가득 움켜쥐려 하고, 움켜쥐고, 또 움켜쥐고서 두려워한다. 우리는 도망한다. 도망하는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결국 삶을 간파한다. 아, 삶이란 죽음 앞에서 묵주 하나 손에 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로구나. 그마저 내려놓을 수 있기 위해 평생을 애써야 하는구나.
- 영화 <벌새>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엄마는 말한다. "어떻게 그게 무너지니..." 아니, 어쩌자고 우리는 그걸 믿고 건너 다니는 걸까. 흐르는 물결을 거스르고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그토록 위태롭게 이루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자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길을 나서는 걸까. 어른들은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라며 그런 세상 속으로 등을 떠민다. 미안해하지도 않는 어른들이 역겹다. 불합리함을 외치지 못하는 나도 역겹다. 무모하게도 우리는 "내 손가락은 그래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잖아."라는 말을 믿으며 어른이 된다. 결국 우리가 믿을 것은 그것뿐이기에 불변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변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 삶은 "찌꺼기로 만든 손바닥" 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마음을 다한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삶에 속는 것이다. 구멍이 난 손바닥으로 “나를 대신할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 잘난 손가락을 움직여 움켜잡는 것이다.
- "오래오래 늙어지도록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오래오래 좋아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잠시 잠깐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쟁이는 것이다. 허망하더라도 그것 말고는 모르기 때문이다. 삶을 달래는 방법을. 잘 숨어있는 것이다. 또 어떤 고통에 낚아채이더라도.
군밤은 낮은 불에 오래 익혀야 맛있게 익는다.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시.
" (중략)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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