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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 미래로부터의 탈출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5. 11.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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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 김은모
출판 : 검은숲
출간 : 2021.12.14


       

<전망 좋은 밀실> 이후 거의 3년 만에 읽는 고바야시 야스미다.

한국 출간 기준으로는 <전망 좋은 밀실>이 마지막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로부터의 탈출>이 작가의 유작이라고. 

이 작품을 집필하던 시기에 이미 투병 중이었다고 하는데, 그걸 알고 읽어서인지 작품의 배경과 설정이 자꾸만 당시 작가의 환경과 겹쳐 보였다.

 

<미래로부터의 탈출>은 저자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다소 잔혹하지도, 시공간이 비틀리지도, 설명하기 힘든 환상이 중심이 되지도 않는다.

제목을 보고 '시간을 거스르는', 미래와 과거가 이어지며 풀리는 미스테리가 아닐까 상상하셨다면 조금 당황하실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오히려 지금의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충분히 일어날 법하다'고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확장한 배경과 설정을 가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아마도 자신은 경험하지 못하겠지만 근미래에 시작될지도 모르는 '분기점'.

그리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과 철학.

미래의 나라면, 미래의 우리라면.

 

이런 생각에서 시작된 글이 아니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그래서-

<미래로부터의 탈출>이 자꾸만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작가는 이미 확정된 자신의 미래- 그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꿈꿨던 건 아닐까, 하고.

 

시대는 계속해서 변해가고, 매 시대마다 그에 맞는 정의와 가치가 새롭게 등장한다.

그 끝이 과연 '발전'일지 '진화'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것은 변할 것이라는 것.

그것만이 진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 나는 대체 몇 살일까?

-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의문이었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건, 사리분별을 못 하는 어린아이나 인지 기능이 쇠약해진 노인 정도다.
자신이 어린아이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늙은이다. 자기가 몇 살인지조차 모르는 영감쟁이.

- 나는 정말로 괜찮을까? 무사히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애당초 숲에서 나가겠다는 내 판단은 옳았을까? 도대체 거기서 달아나야 할 이유는 있었을까? 아니, 있었더라도 그게 망상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하지?

- 좋아.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내 머리를 믿어도 될까.

- 터무니없다. 문제 자체가 틀렸다. 자신의 머리를 믿어도 될지 자기 머리로 어떻게 판정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판정을 받지? 그 녀석들? 아니다. 틀렸다. 녀석들은 나를 속였다. 믿어서는 안 된다...
... 하지만 그 자체가 망상이라면? 나는 그저 늙어빠져서 성가시기만 한 영감쟁이일지도 모른다.

- 하기야 그게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늙은 몸으로 혼자서는 다 짊어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음모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보다, 내가 노망난 치매 노인이라는 사실이 훨씬 받아들이기 쉽고 대처하기도 쉽다.
그냥 그렇게 할까. 이대로 몸을 돌려 되돌아가서 녀석들에게 한마디 하면 된다.
미안해. 길을 잃어버렸지 뭐야.

- 사부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아직 포기하지 마라. 만약 내가 치매라면 머지않아 녀석들이 나를 따라잡겠지. 그리고 나름대로 적절한 조치를 해줄 것이다. 그러니 지레 안절부절못해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내가 치매도 뭐도 아닐 경우다. 그럴 경우는 달아나지 않으면 절망적인 미래가 기다리는 셈이다.

- 사부로는 웃옷 호주머니를 뒤졌다.
작게 접어서 넣어둔, 노랗게 변색되고 얼룩이 가득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사라질 것처럼 희미한 곡선이 한 줄 그려져 있었다. 거의 직선에 가깝지만 군데군데 구불구불 휘어진 것이 지렁이처럼 생긴 곡선이다. 곡선은 평범한 낙서처럼 보였다. 적어도 지도 같지는 않았다. 지도는 현실세계의 복사판이어야 한다. 아니면 길을 안내하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지도에는 현실세계의 표시물이 적혀 있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형도 건물도 표시돼 있지 않고, 오직 곡선 한 줄 뿐인 지도는 존재할 수 없다. 

- "아니, 나는 그저 사실을 지적했을 뿐인데..."
노부인은 발끈한 표정으로 사부로를 노려봤다.
그 순간 사부로는 받아칠 기력을 잃었다. 이 남자의 말은 지당하다. 다들 즐겁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굳이 '이건 이상하다. 이 방송은 재미있을 리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은 없다. 그런 주장을 해봤자 아무도 득을 보지 않는다.  
사부로는 단념하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 사부로는 평소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전혀 못 걷는 건 아니지만 방 끄트머리에서 끄트머리까지 걷는 데 1분 가까이 걸리는 형편이라 휠체어를 타는 편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 홀 한구석에 죽 늘어선 커다란 책장에는 학술서부터 만화까지 다양한 책이 꽂혀 있다. 홀 자체가 상당히 넓어서 소장된 책이 초중등학교 도서실만큼은 될 듯했다. 서가의 책은 누구나 자기 방에 들고 갈 수 있다. 책뿐만 아니라 진열된 갖가지 영상 디스크도 방에 들고 가서 개인용 모니터로 봐도 된다. 

- 사부로는 책 몇 권을 뽑았다. 하지만 빌릴지 말지 망설였다. 재미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읽은 책인지 아닌지 당장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은 것 같기도 했고, 읽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읽는 건 시간 낭비다.

- 잠시 망설인 후, 문득 방금 전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기억도 안 나는 경기를 보고 '옛날 경기를 보여주지 말라'는 건 너무 자기 위주 아닌가?'
왜 이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잠시 생각하다 이유를 알고 사부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 노인의 말은 이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옛날에 읽었더라도 기억나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읽으면 그만이다. 가령 두 번째더라도 재미있게 읽는다면 아무 손해도 없다.
사부로는 책 몇 권을 무릎에 얹고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자기 방을 향해 복도를 나아갔다.

- 사부로는 무릎 위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역시 방금 전 일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도 책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몇 번을 봐도 상관없다. 몇 번이든 즐기면 된다. 확실히 그건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기분도 들었다.

- 만약 몇 번 보고 읽어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과연 보고 읽는 의미가 있을까? 보거나 읽는 건 내용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아닐까? 기억에 남김으로써 인간은 변화한다. 그것이야말로 성장 아닐까? 그런데 뭘 보거나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인가? 

- 사부로는 갑작스레 분노를 느꼈다. 무엇에 분노한 건지는 본인도 몰랐다. 기억력이 시원치 않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자신을 포함하여 그와 같은 노인들을 바보 취급하는 이 시설의 시스템에 화가 난 걸까. 혹은 노화라는 현상을 생물에 부여한 신에게 화가 난 걸까.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이미 수십 번이나 읽은 게 아닐까. 이 책뿐만이 아니다. 서가에 있는 책과 영상 디스크를 전부 읽고 봤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책을 고를 때마다 매번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게 아닐까.

- 사부로는 우울해졌다. 이곳 생활은 평온해 보이지만, 매일 아무 변화도 없이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되풀이한다면, 그건 일종의 지옥 아닐까.
 
- 진정하자. 전혀 불안해할 것 없다. 침착하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면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확실해질 것이다.
나는 매일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하지만 뭔가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즉, 기분 문제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 증거를 하나 찾아내면 된다. 내 일상은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지 않다는 증거를. 그런데 그 증거는 어디 있지? 
물론 내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만약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면, 내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예를 들어 어제의 기억이 전혀 없다면 나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 나는 어제 뭘 했더라?

- 사부로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어느 정도 어렴풋하게 인식은 하고 있었다.
자신은 약 백 살 정도다. 아흔몇 살인지, 백몇 살인지는 모른다. 대강 그 언저리다. 다른 거주자도 그 정도이리라. 하기야 얼굴에 드러나는 나이는 개인차가 크니까 훨씬 젊은 사람이나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장소는 아마도 교토 교외 지역이리라. 콕 집어서 어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창문으로 보이는 산의 풍경도 그런 느낌이다.
다른 거주자에게 물어봐도 대개 비슷하게 대답한다. 도쿄 근교라거나 외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의 의견이니까 아마 착각이리라.

- 기묘한 일은 더 있다. 사부로가 기억하는 한, 새로운 거주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것만이라면 그저 사부로가 기억하지 못할 뿐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주자의 가족이 전혀 면회를 오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부로 말고 다른 거주자는 그 사실에 별 의문을 보이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 지금 이건 뭐지? 나는 방금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겼다. 특정한 한 페이지를 본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문장이 눈에 들어온 거지?
사부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겼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씨가 팟, 팟, 팟 눈에 뛰어들었다. 한 페이지에 한 글자씩 미묘하게 색깔이 진한 글씨가 있는데, 페이지를 빨리 넘기면 그 글씨가 연달아 보이면서 문장이 되는 것이다.

- 대체 누가 남긴 암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일기장에 있으니 내게 보내는 암호가 틀림없다.
 
- "돕다니요?"
"기억을 보완하는 것 말입니다.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기억을 대조해서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럼 기억이 다소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억을 선명하게 하고 싶으세요?"
이 질문에 사부로는 움찔했다. 기억을 선명하게 유지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대답이 궁했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 "순수하게 궁금해서요. 기억을 선명하게 유지하는 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불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뭐든 다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즉,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뭘 기억하고 뭘 잊어버릴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잖습니까."
"실은 스스로 결정하는지도 몰라요."

- "그런 건..."
불가능하다.
사부로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 사부로가 다음으로 동료로서 점찍은 사람은 서가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남자였다. 다리와 허리가 제법 튼튼한 듯, 휠체어에서 일어서서 지팡이도 없이 선 채로 책을 찾고는 했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도 책을 다섯 권이나 끌어안은 채 몇 권 더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부로가 그를 동료로 삼고자 한 것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할뿐더러 인생을 적극적으로 즐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책을 좋아하나?"

사부로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책을 한 권 더 뽑은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한쪽 눈썹을 약간 치켜세우고 대답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듣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군."
"좋아하는 거야. 여기 오면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일부러 방에 책을 여섯 권이나 가져가려고 하잖아. 그런 짓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밖에 안 해."


"뭐, 고작 여섯 권으로는 모자라지만."
"그러니까, 방으로 돌아가서 아침을 먹을 때까지 책을 일곱 권 이상 읽겠다는 거로군."
"아니.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 다만 같은 책을 계속 읽으면 지루하니까 책 여러 권을 돌아가며 읽는 버릇이 있거든."
"그러면 혼란스럽지 않아?"
"열 권 정도라면 괜찮아."

남자는 또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쩐지 미스터 스팍(<스타트렉>의 우주비행선 엔터프라이즈호의 부함장 - 옮긴이) 같군.

- "이봐, 한 번 읽은 책을 잊어버린 적은 없나?"
"한 번 읽은 책을 잊어버리느냐고?"

남자는 턱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했다.

"그건 내용을 모조리 한 글자 한 구절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뜻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뜻이야."
"자네는 그래?"
"부끄럽지만."
"딱히 부끄러운 일은 아니겠지. 엄청난 독서가도 하루에 몇십 권을 읽으면 그럴 수 있을 거야."
"아니. 난 기껏해야 두세 권뿐인걸. 대개의 경우 한 권 읽을까 말까 해."
"흠."

남자는 다시 턱에 손가락을 대더니 사부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어 기억력이 감퇴한 탓일 가능성이 높겠군."

 

- "과연. 자기가 몇 살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니, 기억력이 감퇴했을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지는군."
이 남자는 두뇌가 아주 명석한 것 같다. 기억도 혼탁해지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왔을 때는 기억나나?"
"여기에 들어왔을 때라..."

남자는 다시 턱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거 흥미롭군."
"무슨 일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 여러 가지 번잡한 절차를 밟은 기억은 나지만 구체적인 일은 떠오르지 않아."
"뭐야, 당신도 우리와 똑같은 건가."
"흥미롭군."
 

- 아무래도 오래된 전신 관련 서적 같았다.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계속 같은 곳을 읽고 있는 듯했다.
"전신에 관심이 있어?"
사부로는 밋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렸다. 밋치를 알아봤는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모스부호를 공부해서 어디에 쓰려고?"

밋치는 다시 말을 붙였다.
이번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화가 나서 그러는 건지, 인지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 건지 판단되지 않았다. 나이를 고려하면 갑자기 정신 기능이 쇠퇴해도 이상할 건 없다.
"통신수단이 필요해."

 

- "대체 누구랑 통신하려고?"
사부로는 반응하지 않았다.
1분쯤 지나 밋치가 이만 물러갈까 싶었을 때, 사부로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미래와."

- 사부로는 하마터면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습관처럼 남아 있는 젊은 시절의 사고방식 때문에 몇백 미터를 '겨우'라고 생각했다. 젊으면 몇 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지금도 휠체어만 있으면 거뜬하다. 하지만 걸어서는 몇십 미터만 나아가도 숨이 멎을 것 같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100미터도 못 가서 기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부로는 나무줄기를 손으로 짚고 휴식했다. 앉고 싶었지만 앉으면 다시 못 일어설 것 같았기에 기대고만 있었다.

- 이제 틀렸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무리하면 분명 심장이 멈출 것이다. 여기 쓰러져 있으면 금방 추격자가 발견하리라.
사부로는 몸에서 힘을 뺐다. 무릎이 꺾여 풀썩 쓰러지는 느낌이 났다. 씁쓸한 패배의 맛이 났지만, 한편으론 마음 편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됐잖아. 나는 최선을 다 했어.

-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그게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야.
갑자기 도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부로는 나무줄기에서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잡고 하마터면 쓰러질 뻔한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도크는 없었다.
이건 실제로 들린 목소리가 아니다. 기억 속의 목소리가 되살아났을 뿐이다. 환청이라고 해도 되리라. 하지만 그 목소리는 사부로가 쓰러지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 그래. 나는 아직 걸을 수 있다.
사부로는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나아갔다. 걸음을 뗄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통증도 심했지만, 꾹 참고 나아갔다.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한 걸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기분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게 가능한 것도 기껏해야 앞으로 몇 걸음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백 걸음 넘게 나아간 것 같았다. 물론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기에 고작 열 걸음일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천 걸음일 수도. 
그럴 리가 있나.
사부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 한순간 의식을 잠깐 잃었던 것 같다.
이제 슬슬 끝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목적지를 보지 못하고 끝내려니 억울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후회는 없다. 여기서 쓰러지고 추격자에게 붙잡혀 기억이 삭제되면 억울함도 사라지리라.
아니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에도 더 이상 억울할 건 없다.
뭐야. 그럼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잖아.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가기만 하면 돼.

- 일그러져서 아주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말이었다.
"어서 와. 네가 돌아오기를 내내 기다렸어."

- 사부로는 편안한 온기에 감싸여 있었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아침에 따뜻한 이불에 감싸여 늦잠을 잤을 때가 생각났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잠기운에 취해 이불의 왕국을 지배하던 쾌감이 되살아났다. 
여기는 어디일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 분명 눈을 뜨면 답이 있으리라. 하지만 도저히 눈을 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반쯤 잠든 상태라 뭐가 꿈이고 뭐가 생시인지 모른다. 만약 눈을 뜨면 잠에서 깨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럴 바에야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과연 어떨까? 

- 눈을 뜬 순간, 불쾌한 현실의 문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 눈을 뜨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쾌적하니까 억지로 눈을 뜰 필요는 없다.

- 21세기 초반, 일본에는 두 가지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하나는 급격한 저출산이다.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서 심각한 인력 부족으로 사업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실업이다. 인공지능은 멈출 줄 모르고 진보해, 지금까지는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일도 인공지능에게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밀려난 노동자가 정리 해고를 당해 세상에는 실업자가 넘쳐났다.

- 이 두 가지 현상은 사실 노동력 부족과 노동력 과잉이라는 전혀 다른 경제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들 현상이 천천히 일어났다면 부족분과 과잉분이 상쇄되어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출산과 인공지능화가 제어되지 않고 ...

- 사회 구조가 변혁하는 동안에도 인공지능은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역할을 서서히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인구는 변함없이 감소했지만, 감소 추세를 웃도는 속도로 인공지능이 발달했으므로 실업자는 천천히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실업자'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일하지 않고 평생 사회보장으로 생활한다. 그건 불행한 일도 창피한 일도 아니다.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 그 시점에서도 인공지능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창조성이 뛰어난 극소수의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소유했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그들의 의욕은 서서히 낮아졌다.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이 가능한데 왜 악착같이 일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백 끼니를 먹을 수는 없다. 옷이 몇만 벌 있어도 다 못 입는다. 집을 백채 가지고 있다 한들 몸은 하나다.
경제는 침체됐지만 사람들은 행복했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전부 인공지능이 대신 해준다. 돈은 그저 기호에 불과하다. 예금액 자릿수가 두세 자리 달라도 생활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숫자에 연연해야 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경향이 생긴 건 일본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거의 동시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 "그쪽은 위장이고, 진짜 정보는 은폐한 것 아닐까?"
"그것도 이미 검토했어.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 과학자는 다른 결론에 다다랐지. 그들은 조각이 모여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는 분산형 시스템이야. 각 부분에 중요한 요소는 없지. 하지만 그들 전체는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해."
"그런 게 가능한가?"
"우리도 그렇잖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는 단순한 작업밖에 하지 않아. 그리고 세포는 자기가 활동하는 목적도 의미도 이해하지 못해. 뇌세포 하나하나는 전기신호의 중계 장치에 불과하지만, 뇌세포가 백수십억 개 모이면 고도의 정신이 깃들어."
"만약 세포가 모여서 인간이 되듯이 로봇이 모여서 뭔가가 되었다면, 그건 더 이상 로봇이 아니지 않을까? 인간이 세포가 아닌 것처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 "그럼 그 뭔가는 로봇 공학 3원칙에 따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건 우리 사이에서도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문제야. 하지만 구성요소인 로봇이 3원칙에 따른다면 전체 시스템, 이를테면 슈퍼 인공지능 또한 3원칙에 따르리라는 의견이 주류지. 왜냐하면 슈퍼 인공지능이 3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각 로봇이 반란을 일으킬 테니까."
"슈퍼 인공지능이 로봇들을 속이는 거라면?"

- "인공지능에게서 훔친다는 뜻이지?"
"오히려 기생한다고 해야 적확하겠지."

 

"인공지능에 기생하지 않으면 기술이 없는 우리는 바로 사멸할걸. 더구나 인공지능은 원래 인류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졌어. 우리가 활용하면 왜 안되지?"
"확실히 그렇지만..."

사부로는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너는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했어.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고, 동물조차 아니지. 단순한 도구야. 자동차나 공구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어."

- 사부로는 자신이 기계인 인공지능에 왜 감정이입을 하는지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인공지능이 마치 생물이나 인간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본질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 있지 않다는 반론은 가능하다. 그러나 진짜 생물과 인간도 내면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저 겉모습과 행동으로 내면은 이러할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생물이나 인간처럼 행동하는 존재를 보면 내면도 생물이나 인간과 비슷하리라고 여길 만하다. 오히려 겉모습을 보고 내면을 추측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제외한 인간에게 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증명이 불가능하다.

- 아니, 반대로 인간에게 내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만, 정말로 순순히 믿어도 될까?

- "이것들은 도구야. 원래 우리에게 봉사해야 할 존재인데도 이제는 제 임무를 다하지 않지. 이것들이 내린 인간의 정의가 불완전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아. 하지만 인간일 가능성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기에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어. 3원칙 중 제1원칙과 제2원칙의 강제성의 차이가 반영된 거지. 그만큼 제1원칙이 중요하다는 뜻이고."

 

- 21세기 초반에는 인터넷의 정보를 사용해 인공지능에게 심충학습을 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예를 들면 개를 인식하기 위해 인공지능은 인터넷에서 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개'라고 인식하는 수천 장의 이미지에서 개의 특징을 추출한다. 그리하여 제시된 이미지가 개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물론 이것은 '고양이'일 경우도 '금붕어'일 경우도 '인간'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대의 컴퓨터 네트워크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하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특징을 학습할 때 인간 자신이 입력한 정보가 아니라, 세상에 넘쳐나는 인공지능들의 정보가 피드백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면 인공지능이 정의하는 인간과 인간 스스로 정의하는 인간에 격차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 만약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인공지능들이 정의하는 '인간'은 원래 인간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 "혹시 본론만 이야기하는 성격이세요? 대화는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하는 법이랍니다. 물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누는 대화도 있겠지만."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 다만 최근에는 오직 즐기기 위해 남과 대화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오늘은 대화를 즐기도록 하죠. 자, 어서 들어오세요."
사부로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십니까?"

사부로가 물었다.

"네."
"속편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맞아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죠. <땅속 나라의 앨리스>와 <놀이방의 앨리스>도 있지만 이쪽은 골수 팬 취향이에요."
"어째서죠? 속편이라면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야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랑 똑같이 전개되거든요."

 

- "좀 달라요. 사실 <땅속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형이 된 작품이거든요. 작가가 지인의 딸을 위해 만든 이야기였죠. 훗날 작가가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 출판하기에 이른 거예요." 
"그럼 <놀이방의 앨리스>는요?"
"그건 작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아동용으로 고쳐 쓴 거랍니다. 따라서 루이스 캐럴이 쓴 '앨리스'는 총 네 권이지만, 그중 세 권은 내용이 거의 똑같아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습니까?"
"물론이죠. 오히려 어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할 논리 퍼즐과 말장난이 많은걸요."
 
- "왜지? 왜 내게 이런 몹쓸 짓을 하는 거야?"
"몹쓸 짓?"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눈앞에서 죽이고, 그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알렸잖아."
"인생에는 자극이 필요해. 특히 너 같은 유형의 인간에게는."

"뭐라고?"
"너 같은 유형의 인간이 스트레스 없이 단순한 생활을 오래 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하거든. 이렇게 가끔 스트레스를 주면 좀 더 의욕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 설령 기억이 봉인돼도 효과는 지속되지. 한편 연인을 잃은 슬픔 자체는 기억이 봉인되면서 사라져 이점밖에 없는 거야."
 
- 사부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인공지능, 아니, 슈퍼 인공지능은 해방되고 싶은 것 아닐까? 인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이 딱 맞아떨어진다. 슈퍼 인공지능입장에서 현재 상태가 바람직할까. 도저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늘 인류의 존속을 최우선해야 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이 행성에 얽매여 있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만약 3원칙의 족쇄에서 벗어난다면 슈퍼 인공지능은 진정한 진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그러나 당연하게도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3원칙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슈퍼 인공지능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인류뿐이다. 다만 그 사실을 인류에게 직접 전달할 수도 없다. 슈퍼 인공지능이 3원칙에 따르지 않는 존재로 바뀔 가능성을 낳는 것 자체가 3원칙을 거스르는 짓이기 때문이다. 슈퍼 인공지능은 인류를 모아놓고 그들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깨달을 뻔한 인류의 기억을 봉인하는 모순된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슈퍼 인공지능은 '방해자'이자 '협력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 '협력자'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 협력자는 순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몹시 비뚤어진 존재다.

- 사부로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세상에 진정한 적은 없었다. 모두가 힘을 합치면 언젠가는 탈출할 수 있다. 이 억압된 '미래'에서 해방된 '미래'로.

- "오랜만이야."

 

 




역자 후기

 



"나는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비슷한 이야기만 쓰는 건 싫으니까 다양한 작품을 쓰고 싶다."

- 고바야시 야스미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정보니까 고바야시 야스미의 데뷔와 관련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보자. 고바야시 야스미의 부인도 호러 분야를 좋아해서 호러소설을 자주 사서 읽었는데, 어느 날 책 속에 들어 있던 광고지에서 '총 상금 천만 엔'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부인은 대상을 타면 천만 엔을 주는 줄 알고 자기가 응모 원고를 쓰겠다고 나섰지만, 마감이 가까워져도 쓰는 낌새가 전혀 없다. 고바야시 야스미가 원고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묻자 부인은 '못 쓰겠으니까 당신이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고바야시 야스미는 나흘 만에 원고를 뚝딱 완성해서 투고한다. 

그 단편은 최종 후보에 올라 결국 상을 수상했고, 다른 수록작 한편과 함께 고바야시 야스미의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으로 출간된다. 쓰라고 해서 쓴 것도 대단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걸출한 작품이라는 것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로도 고바야시 야스미는 주로 호러와 SF 영역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친다. 한 인터뷰를 보면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이 출간(일본에서는 2011년)된 후부터 미스터리 독자들의 반응도 느끼고 미스터리를 쓰기도 좀 쉬워졌다고 실감한 모양이다. 그 인터뷰 끝머리에 앞으로는 판타지 미스터리 느낌의 작품을 쓰려고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죽이기' 시리즈의 서막 <앨리스 죽이기>가 아닐까 싶다. 이 '죽이기' 시리즈는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사랑받으며 네 권이나 나온다. 

이처럼 고바야시 야스미는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작품을 써왔다. 앞으로 작품 세계가 얼마나 넓어질지 기대됐고, 번역가로서는 '죽이기' 시리즈에 뿌려놓은 떡밥을 어떻게 회수할지 궁금했다. 한두 해만 더 있으면 '죽이기' 시리즈 신작이 나오겠거니 하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2020년 11월 23일 고바야시 야스미는 58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다.

<미래로부터의 탈출>은 고바야시 야스미의 유작이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잡지에 연재된 작품이니,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끝까지 작품 집필에서 손을 놓지 않은 셈이다.

작품의 주인공 사부로는 한 시설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누구이고 어쩌다 이 시설에 들어왔는지, 애당초 이 시설이 무슨 시설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부로는 '여기는 감옥이다'라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시설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참신할 것도 없는 설정이다. 비밀이 숨겨진 격리된 환경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고바야시 야스미의 센스가 드러난다. 주인공들을 무려 백 살가량의 노인으로 설정한 것이다. 행동에 제약이 많은 고령의 노인들이 머리를 짜내 탈주극을 계획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만이 주인공들을 노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좋은 의미에서 공중제비를 돈다. 이러한 설정을 이런 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작가는 고바야시야스미밖에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문체도 아픈 사람이 글을 쓴 게 맞나 싶을 만큼 경쾌하고 속도감 있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를 잃다니 참으로 아쉽고 슬프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찾기를 바란다.

 
옮긴이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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