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왓섭 / 베베
출판 : 북오션
출간 : 2025.02.21
아직 11월인데, 마음은 벌써 12월에서 맴돌고 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때문일까, 눈 내린 풍경이 보고 싶기 때문일까.
기담류는 여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계절일 때에 읽어도 색다른 매력이 있다.
해서 올 초에 시작된 기담 기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선천일괴담>은 <공포라디오>를 진행하는 유튜버 왓섭과 작가 베베가 함께 쓴 소설이다.
책 소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해당 채널에 소개된 조선 괴담들을 모은 기담집인 줄 알고 읽었는데, 첫 장부터 의외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다양한 요괴와 귀들을 소개하려 한 의도는 전해지지만, 아쉽게도 소설로서의 매력은 강하지 않다.
첫째로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데, 주인공이 이복형제라는 설정과 쇼우지 남매의 설정이 모순된다. 주인공이 궁의 밀지를 수행한다는 내용도 넣고, 남매의 갈등과 신물도 넣고 싶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둘째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등장인물들은 계속 바뀌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남매에게 가다 보니 중심을 잡아줘야 할 주인공의 흡입력이 살짝 약하다. 조각조각들이 딱 맞게 연결되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
셋째로 등장하는 요괴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요괴의 특징과 명치은 허구가 아닌데, 주석이나 삽화로 그 점을 짚었다면 몰입도가 더 좋아졌을 듯.
가벼운 기분으로 읽기엔 나쁘지 않다.
끝.
- 아이는 괴로운 신음을 냈고 이현은 급히 그 손들을 빼내었다. 그리고 급히 봇짐에서 가는 새끼를 꺼내어 손가락들을 묶어 봉했다. 손은 답답하다는 듯 들썩였는데 손가락이 기괴한 모습으로 꺾이며 꿈틀댔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네 정체가 무엇이냐! 썩 나타나지 못하겠느냐!"
이현이 호통을 치자 이윽고 발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현의 복부를 노리는 듯 자꾸만 날아올라 공격했고 이현은 들고 있던 부채를 접어 발을 찰싹 때리며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사람의 형태를 한 조각들이 떨어졌고 이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 손만을 제외한 사람의 형태가 완성되었는데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정체를 직감한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원요라..."
- "도대체 이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죽이려 드는 것이냐?"
"네까짓 게 알 바 아니다!"
여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현에게 앙칼지게 소리 질렀고 그런 모습에 이현은 그녀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그대의 말을 들어줄 터이니 진정하고 말해보아라."
- 염주를 끼자마자 이렇게 조금씩 잦아들다니 필시 요괴의 짓이렸다.
이현은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세종의 처소를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을 텐데,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이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현은 영안으로 요괴를 보기만 할 뿐이지 아직은 그렇게 많은 요괴들을 알지 못한다. 자문을 구해야 세종이 나을 것인데, 자문을 구할 자가 그리 많지 않다.
- 그때 이현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움찔했으나 곧이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빠르게 그의 도움을 받으러 갈 줄이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찾으러 가는 꼴이 아닌가?
- 그러자 대군은 생각났다는 듯 서책을 한 권 더 내밀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신주무원록>이다."
- 필시 두 분이서 짜고서 나를 이용하는 것이구나. 이현은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으나 이들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 꼭대기 위에서 술잔을 기울일 분들인 것이다. 사람 좋게 허허 웃으며 평온한 표정의 저 얼굴 뒤에 정말 무서운 내면이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알까? 물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대충 알아채겠지만 그 외엔 아무도 모르겠지. 형제는 역시 형제다. 둘은 닮아 있었다. 표현 방식이 세종이 다소 거칠며 직설적이고 효령이 외유내강일 뿐이다.
- 신주무원록 : 법의학서로 실제 검시 등에 이용하게 된 지침서
- "불빛을 봤던 것 같은데..."
"불빛 말입니까?"
"그래, 뭔가 반딧불 같으면서도..."
'허공의 불!'
세종의 말을 듣는 순간 이현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떠올랐다.
'허공의 불 중에서도 인로골설인가.'
- "전하. 혹시 벌레가 두개골 모양으로 진을 띄고 있었습니까?"
- "내 지금 고인의 시신을 검험할 터이니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봉이는 야무지게 입을 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은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작은 묵례를 하며 시신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일단 은비녀를 시신의 입에 넣고 난 후 봉이와 함께 종이로 시신을 덮고 술지게미를 발랐다. 그리고 초주를 여기저기에 뿌린 후 한참이나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자,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니 종이를 걷어내 보거라."
이현의 말에 봉이는 시신을 덮고 있던 종이를 걷어냈고 여기저기에 이상한 흔적들이 나타난 것이 보였다. 등에 두 곳 그리고 복부에 한 곳이 푸른 멍으로 물들어 있었다. 봉이는 신기하다는 듯 들여다보았고 이현은 검험에 대한 기록을 했다. 그리고 그전에 뽑아낸 은 비녀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독살은 아니었다. 검험을 끝낸 후 기록한 것을 들고는 수령에게 간 이현은 잠시 이야기하자며 그의 앞에 앉았다.
- "네가 가진 힘 모두 다 내가 먹어버릴 거거든."
이현은 미동도 않고 있다가 쇼우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포부 한번 그럴싸하군."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 수 있는지 볼까나?"
쇼우지는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과연 네가 내 말을 듣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이현, 새타니를 들어보았는가?"
"새타니?"
이현은 빠르게 생각했다. 분명히 가지고 있던 서책엔 없는 내용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들켰는지 쇼우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미소 지으며 이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린아이의 원귀를 그렇게 부른다지. 어린아이를 죽여 신력을 올리기 위한 용도로 쓰는 거야. 금지된 술법 중 하나이니 모를 만도 하군."
-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두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나 굶긴 후 먹을 것을 갖다 놓아 그것을 먹기 위해 내미는 아이의 손을 잘라 그 넋을 손에 봉인하는 거야. 그리고 시체를 48조각으로 잘라 태운 다음, 자른 손은 궤짝에 넣어 99일을 지나게 하면 그 아이의 영혼을 조종할 수 있는 거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강력하게 신력을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야."
- "닥치시오.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게 그 누구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소."
"큭큭, 정말 흔하고 올바른 답변만을 하는군. 자, 그럼 이건 어떨까?"
쇼우지는 이현을 도발하는 것이 재밌다는 듯이 말했고 곧이어 이 말도 덧붙였다.
"그 새타니로 인해 설화가 죽은 것이라면?"
- 이현은 그 모습에 큭큭거리며 웃다가 마침 떨어진 물고기를 더 달라고 보채는 영노를 보다 쓰다듬었다.
"요괴가 이렇게 귀엽게 느껴진 건 처음입니다."
이현이 말하는 중에도 영노는 배가 계속 고픈지 빈 물통까지 씹고 있었다.
"비야가 좀, 일반 영노 같지 않은 면은 있지.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순해 빠져서 덜렁거리는 모습이 있소. 그래도 영노가 맞다고 느낄 때가 있지. 바로 지금 같은 행동을 할 때요. 부패한 양반을 보면 망설이지 않고 입 안에 넣으려고 하는 점 말이오."
빙글 웃는 소진의 모습에 영노는 기분이 좋은지 비늘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갑자기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영노가 하늘로 올라 밖으로 나갔고, 덕분에 고치고 있던 지붕이 다시 부서졌다. 봉이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 "이게 무엇인가?"
쇼우지는 영노의 주위를 빙그르르 돌더니 부채로 영노를 툭툭 쳐보았다.
"이것은 영노라고 해서 이 지역에만 있는 요괴입니다."
"그것 참 특이하게 생겼군. 용도 아닌 것이 이무기도 아닌 모습인 게 말이야."
- 곧 목여거는 못이 있는 곳에 다다르더니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곧 두 눈인 횃불만 공중에 남고 거대한 몸체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횃불이 둥둥 떠다니다가 곧 어디론가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이현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그런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목여거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걸 보여주는 것 같진 않다.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구나."
이현의 말에 해천과 봉이는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횃불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험한 길인 데다 나뭇가지도 많아서 이리저리 긁히며 도착한 곳은 어떤 동굴 앞이었다.
- "일단 해칠 것 같진 않으니 이들이 가는 곳으로 가보도록 하자. 해천인 어떤 걸 보았느냐?"
"모든 것이 화마에 삼켜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산천초목은 물론 연못마저 마르게 하고 바닷물은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화마였습니다. 나으리가 위험해질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해천의 말과는 다르게 이현은 계속해서 뭔가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피할 수가 없을 테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겠지.
- [그대로 허기를 채우라는 뜻이겠지.]
그는 혀로 날름 입술을 핥으며 말했고 그때 이현은 그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뱀 같은 혀와 매서운 눈동자, 그것은 누가 봐도 이무기의 모습이었다.
'이다지도 열기를 내뿜는 이무기라... 강철이인 것인가?'
이현은 조금 놀라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고 그 모습을 본 그는 조금 크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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