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쓰쓰미 구니히코 / 박미경
출판 : 소명출판
출간 : 2025.06.30
시간이 참 빠르다.
인테리어 때까지만 해도 하루가 여삼추 같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 인테리어 견적 상담을 갔던 것도 벌써 1년 전이다.
'이사만 끝나면 다 해야지' 했던 것들도 떠오른다.
그중 어떤 것들은 계획대로 실행이 되었고, 또 어떤 것들은 많이 달라졌거나 손도 대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그래도 절반 정도는 건드려 봤으니, 아주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런대로 많은 것들에 도전했던 한 해였단 생각이 든다... 고 혼자 위안해 본다)
그렇게 고이 남겨져 있는 목표 중 하나가 어학이다.
영어, 일본어, 한자...
욕심은 많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는데, 이번 겨울에 하나 정도는 마음먹고 시작해볼까 싶다.
원래 겨울이란 움츠리고 파고드는 것에 잘 어울리는 계절이니까.
따뜻한 간식, 포근한 담요, 적당한 집중거리 같은.
이런 의식의 흐름이 된 이유는.
<에도괴담걸작선>의 발췌에 한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OCR 기능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자 인식 기능은 아직 살짝 아쉽다)
<에도괴담걸작선>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기담들을 모은 괴담집이다. 각 장 도입부마다 해당 주제에 관한 해설을 제공하는데,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으신 분들은 건너뛰어도 지장은 없을 정도의 가벼운 내용이다.
괴담/기담들이다 보니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는 않다. 대부분이 개인적 원한으로 인한 복수, 이상 현상, 또는 엇갈린 정담에 관한 이야기들인데 저자의 해석처럼 후기로 갈수록 그에 대한 교훈적 내용이 추가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여러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쓰럽게 생각한다. 이야기마저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교훈' '교화' '주제의식'이란 목적을 덧씌워야 했던 것 같아서.
(잠시 다른 길로 새보자면 나는 아동 도서에 흔히 들어가는 '~~ 생각해 보자' 같은 부록을 정말 싫어했다. 정말 다양한 관점을 떠올려 볼 수 있게 하는 질문이면 또 모르겠는데, 어른의 시각에서 보는 '정답'을 정해놓고 유도해 가는 질문이 대다수. 아이가 진정으로 독서를 즐기고 창의력을 키우길 바란다면 이야기는 이야기로 남겨두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삽화들.
다양한 판본의 삽화들을 연결되는 이야기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 보다는, '일본의 특정 시대에 유행했던 기이한 이야기들과 그 배경'을 다루는 책에 가깝다.
즐거웠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쓰쓰미 구니히코
일본 에도시대는 대중문화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 전국시대가 끝나고 법과 질서에 근거한 평화를 사람들은 받아들였습니다. 문자를 배우고 언어를 구사하는 서민교육의 확산을 배경으로 민중의 지적 리터러시는 16세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시작된 출판문화는 오락용 읽을거리부터 실용서, 지도나 명소를 소개하는 관광 가이드북 같은 책, 그림책과 우키요에 같은 출판물을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여 서민들에게 교양의 일부가 되어 갔습니다. 현대의 일본 만화와 여행의 인기는 에도의 대중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도시의 극장에서는 악을 물리치는 영웅이 주인공이 되는 역사 드라마가 인형극으로 각색되어 조루리 극장에서 상영되고, 또 유녀의 세계를 그리는 가부키가 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었습니다. 극장은 그야말로 대중문화의 발신지가 된 셈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일각에 요괴나 유령을 그리는 괴담물이 문예, 연극, 그림책으로 제작되어 괴담의 유행을 불러왔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공포 영화의 원점 또한 에도 괴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에도시대는 '괴담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서민들에게 세상은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과 질서의 시대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혹한 인내를 강요하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유교 사상에 기초한 도쿠가와 막부의 강권적인 지배 아래 서민들은 가혹한 복종과 억압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이런 가혹한 막부의 권력 아래 신분이 낮은 자, 특히 약자였던 여성이 유령이 되어 에도 괴담의 주역이 되어 갑니다. 이 책의 괴담 속에 여성 유령의 이야기가 눈에 띄는 이유도 그 당시에도 민중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괴담은 그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옮겨 놓은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400년 전 일본 민중의 생활 속에서의 감정과 시대상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저는 고전 괴담을 소개하면서 가능한 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다운 말투로, 여성은 여성의 말투를 살려 번역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어와 다른 고전적인 정취와 표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미경 선생님의 한국어 번역은 이런 문체의 특성을 고려하여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옛 일본의 감성과 괴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일본 옛 여름 풍속이라고 하면 빙수, 모기향, 불꽃놀이, 환등회, 라디오 체조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쇼와 시대'를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풍속이라면 납량 특집 귀신의 집이나 공포영화 만한 게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더위를 쫓는 데 가장 적합한 풍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매년 여름이 돌아오면 사찰이나 신사의 경내 근처 강가나 공터에 '귀신의 집'이라는 가건물이 늘어서고 여기저기 영화관에서는 <요쓰야 괴담(四谷怪談)>이나 <가사네 연못(黑ケ淵)> 같은 고전괴담 명작들이 여름 흥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봇대에 붙은 귀신 영화의 섬뜩한 포스터는 그 앞을 지날 뿐인데도 간이 쪼그라들게 만들었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동서고금의 괴담 명 작이 영화관뿐 아니라 심야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쇼와의 여름은 괴기와 환상으로 넘쳐났습니다.
- <요쓰야 괴담> : 원록 연간에 일어났다는 사건을 바탕으로 쓰루야 남보쿠(鶴屋南北)가 창작한 가부키 극본으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 에도의 요츠야쵸(四谷町)(현 토요시마구(豊島区))를 무대로 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부인 오이와(お岩)가 남편 타미야이에몬(田宮伊右衛門)에게 살해당하고 유령이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로, 여러 차례 연극이나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화 되어 왔다.
- <가사네 연못> : 이바라키현 조소시 하뉴 마을(茨城県常総市羽生町)에 전해지던 카사네라는 여귀와 그 제령에 관한 이야기. 에도의 극작가 4대 쓰루야 남보쿠가 <色彩間苅豆(이로모코카리마메)>라는 제목으로 가사네 이야기를 가부키 시리즈로 만든다. 또 산유테이 엔초(三遊亭円朝)는 이 이야기로 <신케이 가사네가후치(眞景累ケ淵)>를 썼다.
- 1970년대 말, 8월이었을 것입니다. 요코하마 시외의 한절에서 나카가와 노부오(中川信夫) 감독을 초대해 그의 영화 <요쓰야 괴담>을 상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밤, 정령을 맞는 향 연기에 휩싸인 경내 구석에서 혼을 위로하는 종교적 분위기와 은막의 오이와(お岩, <요쓰야 괴담>의 여주인공)가 하나가 되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정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귀신 이야기를 즐기고 무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전통적 추석 행사가 벌어지는 시공간과 융합되어 괴담의 계절감을 훌륭하게 연출한 행사였습니다.
- 괴담이 여름을 대표하는 풍속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마도 그것은 17, 18세기 괴담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도시대 오락 문화의 확대와 함께 여름 괴담은 마치 연중 행사처럼 서민 생활 속에 정착하였습니다.
- 에도 초기의 출판 문화의 융성을 바탕으로 이미 17세기말에는 삽화가 들어 있는 괴이 소설들이 차례로 간행되었으며 가부키(歌舞伎) 등에 나오는 변신 요괴 이야기, 원령사의 조루리(歌舞伎) 등에 나오는 변신 요괴 이야기, 원령사의 흥행이 괴담의 유행에 한층 박차를 가했습니다. 18세기에 등장한 요괴 사전 형식의 그림책(토리야마 세키엔(鳥山石燕) 등)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도상화하고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나아가 유령이나 괴이의 사상적 배경을 만들어낸 통속 불교의 보급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가제도 아래서 세력을 넓힌 에도 시대의 사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쉬운 인과, 인연 因緣의 무서운 보복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망령의 존재와 그 진혼에 법력을 발휘하는 고승의 활약상을 소리 높여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 반면 민간의 유생이나 학자들은 괴이를 부정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있을 리 없는 유령이나 요괴의 다양한 변주'를 박물지적으로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오락과 표현 문화의 실태나 사상사, 종교사 혹은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에도 시대는 그야말로 괴담의 세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인간은 발정기가 따로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일년 내내 이성 異姓에 대해 생각하는 동물인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사랑의 문학이나 노래가 끊긴 예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 무엇보다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하고 감미로운 장면만을 그린다고는 할 수 없다. 엇갈리는 마음,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 배신하는 사랑, 이런 연애의 어두운 부분을 가장 잘 표현한 것 중 하나로 남녀의 연애사에 얽힌 괴담의 유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전근대 특히 에도시대 소설들은 때때로 남편, 아내, 첩 사이의 갈등이나 여자들 사이의 다툼을 소재로 다룬다. 괴담의 세계에 있어서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에도 괴담의 경우 여자의 질투심을 괴이한 일이 일어나는 계기로 보는 경향이 한층 더 강하게 엿보인다. 남편의 재혼을 시기하는 아내의 망령, 후처를 저주하는 전처, 혹은 남자의 배신에 분해하다 미쳐버린 여자의 복수극. 그들의 피도 얼어붙을 듯한 공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분명 아내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남자는 귀신의 복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음양사 陰陽師의 저택을 찾아갔다.
"이거 참 큰일이군. 이 악귀를 봉인하는 것은 보통의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네. 그렇다고 손쓸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꼭 살아남고자 한다면 알려주겠네. 단, 그로 인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르네. 자네에게 인내와 용기가 있다면 얘기해줄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하게나."
남자는 동요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 음양사는 해가 저물 무렵 꽁무니를 빼려는 남자를 억지로 끌고 죽은 사람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소문만 들어도 무서운데 하물며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니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래도 남자는 북받치는 공포심을 견디며 음양사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방 한가운데 아내가 있었다. 확실히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조금도 썩지 않았다. 긴 검은 머리가 엎드린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음양사는 이를 부딪히며 떨고 있는 남자를 설득하여 마치 말을 탄 것처럼 시체 등에 탈 것을 명했다.
- 그런데도 남자는 얼어붙은 듯 검은 머리카락을 붙들고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상태를 살피러 온 음양사는 멍하니 넋을 잃은 남자를 송장에게서 끌어내리며 상냥하게 물었다.
"어젯밤에는 아마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을 거야. 머리카락을 놓지는 않았겠지?"
"네, 말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렇군. 힘들었겠군."
음양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위로하는 진혼의 주문을 정성껏 외우고 말했다.
"이제 괜찮을 거야. 좀 가혹한 방법이었나 보군. 자네의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었으니 용서하시게."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음양사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그 후 그는 이렇다 할 큰 이변 없이 장수하며 자손대대로 번성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의 음양사의 후예가 지금도 교토 京都의 오토노이 大宿直라는곳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제24권
- 급기야는 낮에도 부인의 귀신에게 시달리는 판이니 더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해 진 뒤에는 집 전체가 처참한 저주에 휩쓸려버렸으며 미쳐 날뛰는 망자의 혼이 벌이는 이 끔찍한 광란을 보지 못한 이가 없었다.
- 사쿠베는 제 몸에 붙은 아내의 원한에 겁을 먹고 저택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집을 옮겨도 반드시 귀신이 먼저 와서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던 가운데 사쿠베는 명이 다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이 괴이한 사건은 에치고 지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참고로 사쿠베와 본처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이 지금도 에치젠(越前, 지금의 후쿠이현(福井県))의 어느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한다.
- 히라가나본(平仮名本), <인가모노가타리(因果物語)> 제1권 제8편
- 호레키 宝暦 연간(1751~1763) 경, 오와리(尾張, 지금의 나고야(名古屋)) 지역에 지레이 知礼라는 진종 眞宗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불도 수행을 위해 교토의 대본산 혼간지 本願寺의 객사에 머물고 있었다. 이 스님의 안색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창백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같은 방수도승이 무슨 사연인지 물었다. 다음은 지레이가 고백한 체험담이다.
- 지레이가 아직 어렸던 때의 일이다. 나고야에서 7~8리는 멀리 떨어진 교외의 농촌에 구보타 마을 久保田村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의 어느 집에서 심부름꾼이 찾아와 말했다.
"갑자기 저희 마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독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입관의식은 이미 끝났으니 독경만 하시면 됩니다."
지레이는 장례식에서 밤샘 독경을 하는 것은 승려의 소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달려갔다. 어느덧 밤이 깊어 하인들은 다른 방에서 쉬고, 지레이 혼자관 앞에서 염불을 외고 있었다.
- 잠시 시간이 흘렀다. 어둑어둑한 등불에 비춰진 관 안에서 갑자기 죽은 사람이 신음 소리를 냈다. 시체를 빼앗는다고 널리 알려진 전설의 화차의 짓인가 아니면 변신한 여우의 짓인가. 지레이는 의아하게 생각해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 뚜껑이 덜컹덜컹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가 안에서 열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지레이가 순간 양손으로 뚜껑을 잡았지만 터무니없이 큰 힘에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 이렇게 염불을 외자 죽은 부인은 두 눈에서 분노의 빛이 사라지고 손에 들고 있던 남녀의 목을 관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힘이 빠진 듯 쓰러졌다. 염불의 힘에 의해 원래의 시체로 돌아온 것이다. 가족들이 부탁하는 대로 관 안의 목을 주우려 했으나 손을 뻗어보니 너무 차갑고 비린 독기에 닿아서인지 온몸에 털이 곤두설 정도로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부터 이런 안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래저래 온갖노력을 다했는데도 두 번 다시 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레이의 불가사의한 체험에 혼간지 수도승들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불법의 자비에 감동을 받았다.
- <젠아쿠고호인넨슈(善悪業報因縁集)>
- 분고(豊後, 지금의 오이타현(大分県)) 지역에 사이좋은 부부가 있었다. 올해 열일곱이 되는 아내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미인이었다. 남편은 아름답고 젊은 아내를 무척 아꼈으며 평소에 사랑을 나눌 때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다시는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정하게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었다.
- 남편은 하녀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혀 마당의 사당으로 달려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옻칠로 굳힌 본처의 발밑에 후처의 잘린 목이 피투성이가 되어 굴러다닌다.
"오, 너란 년은 무슨 끔찍한 짓을 한 거야. 이 괴물아!"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무나 처참한 광경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옻칠한 시체를 불단에서 끌어내리며 주먹으로 쳤다. 몰아세워진 검은 여자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사랑했던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리고 말았다. 아주 간단하게.
시커먼 피바다 속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
- <쇼코쿠햐쿠모노가타리(諸国百物語)> 제2권 제9편
- 이 이야기는 시모쓰케노쿠니(下野国, 지금의 도치기현 栃木県) 가와치군 야쿠시지 祠内郡藥師寺와 가까운 다나카 田中 마을의 유서 깊은 가문의 노구치 덴고자에몬 野囗伝五左衛門이 전하는 세상 무서운 괴담이다.
고우카 弘化 3년(1846) 가을 해 질 무렵, 나이 37~38세로 보이는 품위 있어 보이는 수도 중인 여승이 노구치 가문의 문을 두드렸다.
"저는 보다시피 여러 지역의 영지를 순례하는 비구니입니다. 여행의 피로로 몸 상태가 나빠져 고생하고 있습니다."
- 울퉁불퉁한 검푸른 물건, 인간의 손목이 마치 생물처럼 좌우의 가슴을 움켜쥔 채 말라붙어 있었다. 주의해서 보면 손톱까지 난 채 뼈도 되지 않고 썩지도 않은 채 찰싹 비구니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 이 기괴한 물건에 얽힌 원념에 대해 비구니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에도 말 분세이 文政 연간(1818-1830)에 있었던 일이다. 에도 시내 어느 다이묘 저택, 관동 일대에 광대한 영지를 가진 영주가 있었다. 아내 외에 두 사람의 후처를 두고 젊은 아들딸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불편 없는 삶에 어느덧 먹구름이 낀다.
- 그것은 분세이 12년(1827), 야요이 弥生, 음력 3월 중기였다. 활짝 핀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아침, 안방 머리맡에 영주를 비롯한 일가족이 모여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하늘은 맑고 따뜻한 햇살은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영주는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아내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3년 동안 자네가 건강해지기만을 바라며 사방팔방으로 다 손을 써 보았지만 이것도 천명.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네."
- "이 몸으로는 일어날 수가 없네요. 유키코, 제발 저를 업고 툇마루까지 데려다주지 않겠어요?"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심각한 병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분명한 어조로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영주가 두 여인 사이를 중재하며 말했다.
"유키코야,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렴."
본래 배려심 많은 여자였기 때문에 유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앞으로 훌쩍 나와 뒤를 돌아 엉거주춤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화창한 봄볕에 두 여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어디에 이런 힘이 남아있었을까. 환자는 벌떡 일어나 유키코의 등에 붙자 순식간에 두 손을 그녀의 목덜미에서 기모노 속으로 집어넣고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손의 차가움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는 유키코 부인은 섬뜩한 미소를 가득 띠고 신음한다.
"이제야 소원이 이루어졌다. 진짜 궁금한 건 정원의 벚꽃이 아니야. 아름다운 꽃의 생명이지! 남편을 후리는 계집애의 색기가 신경 쓰여 죽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야말로 소원을 성취했다. 아이고 기쁘고 고맙구나."
야비한 조롱의 외침을 남기고 부인은 서른셋의 생애를 마쳤다. 무시무시한 최후의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은 소름 끼치는 집착에 잠시 말을 잃었다. 뒤를 돌아보니 유키코는 시체를 뒤집어쓴 채 쓰러져 있었다. 곧바로 의사를 불러 죽은 자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두 손바닥이 가슴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집안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 다음날이 되었다. 유키코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마침내 영주는 각오를 하고 시체의 손목을 절단하기로 했다. 유명한 서양 외과의사가 초청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치료를 실시했다. 부인은 고귀한 핏줄로 태어났으나 마음에 생긴 질투의 악념 때문에 결국 손이 없는 시체의 모습으로 매장되었다. 이 소문이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 한편 유키코는 목숨은 건졌지만 사망자의 손목이 감긴 채 목욕은 물론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영주를 떠나 당시 유명한 고승의 암자를 찾아가 부처님께 구원을 청했다. 그리고 머리를 밀고 다쓰세쓰 脱雪로 이름을 바꾸고 수행 길에 올랐다. 죽은 사람의 손목과 함께...
그녀의 바람 중 하나는 부인의 악념을 떨쳐내고 그 영혼을 성불시키는 것이 다른 하나는 애증의 지옥을 겪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것이었다.
- 그로부터 18년의 세월이 흘러 다쓰세쓰는 오늘은 동쪽, 내일은 서쪽으로 수행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도한 보람도 없이 으레 소쩍새가 울 때면 메마른 손목이 난폭하게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고, 그 순간 견딜 수 없는 굴욕을 여승의 육체에 안겨주는 것이었다.
"늘 있는 일이라 이젠 익숙해졌어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내 몸의 인과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만한 처지는 아니지요. 아, 그리고 주군의 이름만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영주님 가문에 불명예가 되는 일이니까요."
울면서 전하는 과거 이야기에 듣는 이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 다음날 아침, 하룻밤 신세진 것에 감사의 예를 표하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 여승 다쓰세쓰의 행방은 묘연하다.
- 쇼림 하쿠엔(松林伯円), <미미모노가타리(耳物語)> 제14화
- "설령 네가 죽더라도 나는 후처는 들이지 않을 거야. 만약 약속을 어겼을 때는 주저할 것 없어. 혼례 날 밤 귀신으로 나타나면 되잖아..."
병상의 아내에게 그렇게 속삭이던 남자가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재혼한다. 그런데 귀신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 3년째 기일 밤에 나타난 아내에게 "이제 와서, 왜!"라고 묻는 남편에게 얼굴을 붉히며 귀신이 대답한다.
"왜냐하면 입관할 때 빡빡 깎여버린 머리가 부끄러웠거든요. 머리카락이 자라길 기다렸어요."
- 라쿠고(落語), <3년째>
- '그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어'. 그런 생각은 인생에 한 번쯤 꼭 해보는 것이 아닐까. 비위에 거슬리는 상대가 생사의 권한을 휘두르는 상사나 교사라는 부류일 경우에는 분노도 어지간해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 사실 이런 '약자의 분노'는 에도 괴담을 지탱하는 주요 테마 중 하나였다. 영주와 가신, 주인과 하녀, 중앙관리와 지방관리, 무사 집안과 서민... 신분제도가 있었던 시대에 횡행했던 불합리한 처사와 이름 없는 자들의 복수. 그러한 도식은 어느덧 영주 가문에 재앙을 부르는 귀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사소한 잘못으로 책망당하고 무정하게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의 분노가 떠도는 난폭한 귀신이 되어 주인 집안을 덮치고 마침내 집안의 대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나중에는 일족의 영화를 말해주는 빈황폐한 저택만 남게 된다. 무서운 귀신 이야기의 계보는 명문가 붕괴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로 에도 시민 사이에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 오사카 大阪성이 망할 무렵의 일이다. 도요토미 豊臣 측의 여인이 생포되어 에도로 보내졌다. 여인은 도쿠가와 가신단의 무사에게 넘겨져 가이 甲斐 지역의 영지에서 노비로 일하게 되었다. 저택에서는 아직 풋풋한 도요토미 측 여자 포로에게 호기심과 모멸이 뒤섞인 눈빛이 쏟아졌다.
- 호에이 宝永 연간 말기, 저택의 주인인 사무라이가 슨푸성을 경호하는 보직에 임명되어 자신의 영지를 떠났다. 부재중에 자택을 지키는 부인은 평소에도 눈엣가시로 삼았던 여자 포로를 더욱 괴롭히고 사소한 실수로도 엄벌에 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열두 살이 되는 영주의 딸이 갑자기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점복술로 원인을 알아보니 안방마님에게 원한을 품은 여자 포로의 저주라고 나왔다. 부인은 물론이고 집안 모든 사람들의 분노가 여자 포로에게 모아졌다. 특히 아가씨를 돌보던 유모의 가학적 행동은 글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여자의 지시로 처벌이 밤낮없이 이어진 탓에 마침내 여자 포로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목에 무거운 차 茶 맷돌을 맨 채 깊은 우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여자의 시체가 오래된 우물 바닥에서 끌어올려졌다. 한창 검시 중에 무슨 일인지 한 치 정도의 작은 뱀이 검푸르게 변한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 사라야시키 皿屋敷 괴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도 5번지에 전해지는 요시다 고텐 吉田御殿에 대한 전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는 도쿠가와 3대 쇼군 将軍 이에미쓰 家光가 통치할 무렵이다. 5번지의 담당 관원인 가신단의 요시다 다이젠노스케 吉田大膳亮의 저택이 막부의 명에 따라 아카사카 赤坂로 이전되었다. 2,500평에 달하는 가신의 저택이 철거되어 광대한 공터가 되었으므로 에도의 민중들은 이곳을 평지 저택, 즉 '사라야시키 皿屋敷'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머지않아 사라야시키는 새 주인이 될 덴쥬인 天樹院을 맞이하게 된다. 이 여자는 2대 쇼군 히데타다의 장녀 '치히메 千姬'로 일곱 살에 오사카성의 도요토미 히데요리 豊臣秀頼에게 시집을 갔다. 덴나 天和 원년(1615), 이에야스 家康가 도요토미를 공격하던 때 거센 불길에 휩싸인 오사카성에서 구조된 후, 나중에 에도로 옮겨져 도쿠가와 德川의 가신인 혼다 本多 미노노카미 美濃守와 재혼했다. 미노노카미의 죽음과 함께 덴쥬인이라는 호를 받고 요시다 고텐 御殿의 여주인이 된 것이다. 이때 덴쥬인은 아직 서른 안팎의 한창나이였다.
- 당시 이 일대에도 거리를 뒤흔든 대도적의 우두머리 무코우자키 진나이 向畸甚内라고 불리는 자가 있었다. 원래는 아오야마 근처의 슈겐도 修験道 도장의 사범을 하고 있었으나 노름에 미쳐 악행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저택을 터는 도둑이나 노상강도 등 도적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손이 워낙 빨라서 포박을 하려던 포졸들이 차례로 당하고 마는 상황이었다.
- 슈젠도 이 사건으로 늦은 밤까지 난감해하던 가운데 밀정으로부터 요즘 진나이가 학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포졸을 보내어 간단히 그를 잡았다. 피의자 심문을 하고 책형 선고가 내려지고 진나이는 아사쿠사 도리고에 浅草鳥越 다리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무카이자키 진나이는 그해 열여섯 살이 되는 외동딸이 있었다. 이름은 오키쿠 あ菊라고 하며 얼굴이 예쁠 뿐만 아니라 꽤 싹싹한 젊은 여자였기에 슈젠의 저택에 넘겨져 물 긷기 등 힘든 일을 하는 노비로 평생 일할 것이 명해졌다. 불쌍한 오키쿠는 아직 젊디 젊은 몸으로 자유가 없는 노비의 처지에 놓여 슈젠의 뜻에 따르는 일생을 보내야만 했다. 오키쿠를 괴롭힌 것은 죄인의 딸이란 오명을 씌운 슈젠의 모진 처사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미모를 시기한 부인은 남편과의 ...
- 슈겐도 修験道 : 산에서 엄격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산악신앙이 불교와 도교와 융합된 일본의 독자적인 종교이다. 슈겐도의 수도승을 야마부시 혹은 슈겐샤라고 부른다.
- "하나, 둘, 셋, 넷..."
아홉까지 세면 유령은 으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아니야! 하나 부족하잖아. 아! 애석하구나. 분하구나"라고 한탄하며 슬퍼한다.
기괴한 일이 그치지 않자 아오야마 가문의 시종들은 하나둘씩 작별을 고하고 마침내 손님도 없어지고 부부 둘만 남게 되고 말았다.
- 아오야마 가문의 괴이한 이야기는 머지않아 막부에까지 들어가 주인의 잘못된 행적을 따지고 더욱이 영지를 거두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으며, 결국 아오야마 집안은 멸문의 아픔을 겪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던 토지를 잃고 가문의 명예에 오점을 남긴 것도 모두 아오야마 집안에 대한 오키쿠의 저주 때문임이 틀림없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러나 아오야마 가문의 멸문에 관계없이 우물의 귀신은 사라지지 않고 반쵸의 황폐한 저택을 중심으로 매일 밤 슬픈 표정으로 이승에 나타나 '하나, 둘...' 하고 접시를 셌다. 무섭기 짝이 없는 이 귀신 이야기가 태평성대라고 떠들어대던 에도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반쵸 사라야시키 괴담은 눈 깜박할 사이에 에도 시내에 떠도는 소문이 되어 시내 사람들을 공포의 수렁에 빠뜨렸다.
- 막부는 민심을 혼란시키는 요망한 귀신이 나오는 폐가를 내버려 둘 수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윽고 이 건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고이시카와 덴즈인 小石川伝通院의 명망 높은 승려 미카즈키 료요 三日月了誉가 뽑혀 왔다. 정토종의 석학이며 수많은 원령 봉인을 위해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고승에게 괴이한 사건의 처리와 오키쿠의 망혼 구제를 의뢰하기로 했다. 관가에 든 료요는 정토종의 비법에 따라 망령 성불의 의식을 행했다.
- "오키쿠의 저주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는 우리 종파의 염불 의식으로 성난 영혼을 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미타 阿彌陀 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지요."
염주를 굴리며 료요는 염불을 외우고 이내 반쵸 사라야시키로 향했다. 밤의 장막이 내려 주변은 조용하다. 우물가에 앉은 료요의 염불이 칠흑 같은 어둠을 정화시킨다. 밤 12시가 되었다. 푸르게 빛나는 도깨비 불과 함께 우물에서 오키쿠가 나타나 접시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점점 목소리가 떨리며 "아홉"에 이르면 "한 장 모자란다. 앗! 애석하다. 분하다!"라고 몇 번이고 고함을 친다. 아무리 염불을 외쳐도 귀신의 탄식은 그치지 않았다.
"이 떠도는 원혼은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군."
료요는 이것저것 궁리한 끝에 다음날 밤 다시 한번 우물가에 ...
- 요괴와 귀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일본의 대지에는 산천초목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렇듯 자연에 기반을 둔 존재를 요괴라고 한다면, 귀신은 분명 우리 인간의 감정과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귀신이란 죽어서도 생전의 삶을 이어서 살고(?) 있는 존재이다. 울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몸부림친다. '억울하다. 억울해'라고 울부짖으면서 나타나는 귀신은 모두 그런 모습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배신한 연인에 대한 분노의 정, 혹은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성애 등은 이 세상에 미련이 남은 귀신에게 빠질 수 없는 출몰의 동기가 된다. 그러한 정념은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짝사랑인 경우도 있고, 부모와 자식 혹은 부부의 인연처럼 끊기 힘든 관계인 경우도 있어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다.
- 부하들은 괭이를 가져다 무덤의 흙을 걷어내고 안에 있던 관을 파냈다. 뚜껑을 벗기자, 완전히 썩어버린 시체 옆에서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기가 배를 곯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어머니 귀신이 사 온 떡을 먹고 이제까지 목숨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도 여전히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켰다. 차가운 땅속에서 아기를 낳아 남편의 마음이 담긴 돈 서푼에 의지해 그날그날 양식을 얻고 있었다니.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식을 돌본 귀신의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 '이 무슨 안타까운 사연인가!'
구니아키라는 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활을 버리고 가문을 버리고 불문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 아기를 객주 주인에게 맡기고 쇼군께 그만둔다고 전한 후 곧 동쪽 지방으로 내려가 정토종·시종의 총본산 總本山으로 유명한 유교지 遊行寺의 문을 두드렸다. 그 후 '고쿠아'라고 이름을 바꾸고, 오랫동안 불도 수행에 힘썼다고 한다. 고쿠아 스님의 법덕과 위업들이 지금도 쇼호지의 연기 縁起에 수록되어 있다.
<기이조단슈(奇異雜談集)> 제4권 제5편
- 또 귀신의 소생인 남자아이는 성인이 된 후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여 어느 지방 영주의 신하로 들어갔다.
한페이의 본래의 성은 '오토모 大友'였으나, 그 아들은 기구한 태생인지라 위패의 글자를 따서 '니쿠르베 산야 釈迦牟尼仏三弥'로 개명하였고,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 쇼코쿠모노가타리(諸国百物語) 제5권 제1편
- 덴메이 天明 2년(1782) 여름이 시작될 무렵, 에도지역 아사쿠사 浅草의 아타라시바시 新橋 부근에 유복한 집안의 첩이 된 여자가 있었다. 첩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임하여 건강한 아들을 낳았는데, 산후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젖이 잘 나오지 않았기에 아기는 양자로 보내졌다. 어머니는 요양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좀처럼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아이를 데려간 양부모의 집 문간에 병석에 누워 있어야 할 친어머니가 불쑥 나타났다.
- 승려라고 해도 사람의 자식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교토의 젊은 수행승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의 전말이다.
에도시대 초의 일이다. 어느 정토종의 절에 몸을 담은 수행승이 있었다. 그에게는 불가에 입문하기 전에 깊은 관계를 가진 애인이 있었는데 절에 들어간 뒤에도 여인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남몰래 만남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도 종지부가 찍히게 된다. 스승의 명에 따라 젊은 스님은 관동의 학문소에 들어가 정토종의 기초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 처음에는 여인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아픈 척하며 출발 날짜를 미뤘다. 그러나 대충 둘러대는 거짓말이 언제까지 통할 리 없다. 결국 스님은 눈물로 연인과의 이별을 택했다. 여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며 남자 소매를 붙잡고 애원했지만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떠나는 날 아침이 왔다. 스님은 아직 어두운 가운데 절을 떠났다. 배웅하러 온 여인은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손과 손을 맞잡고 결국 도심 밖의 아와타구치 粟田口까지 따라오고 말았다.

- "그건 이런 이야기였지요."
비와코 호수의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구사쓰 草津 마을은 도카이도의 역참 마을로 번창했다. 구사쓰 어느 주막의 여자는 호수의 남쪽 지역인 오쓰 大津에 사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매일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오쓰의 남자도 자신을 연모해 주는 여자를 사랑스럽다고 여겼지만 만남이 잦아지자 점점 싫증이 났다. 자주 상대하기도 귀찮아졌다. 남자의 이기적인 기분은 어느새 매력을 잃은 정부를 섬뜩하게 느끼기에 이르렀다.
-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바쁘게 일했을 것이 틀림없는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매일 밤 계속 올 수 있는지 의아했다. 구사쓰의 지인 중에 여자가 있는 주막에 드나드는 사람이 있어서 은근슬쩍 상황을 물어보았다.
"아, 그 아가씨 말인가요? 그분은 너무 성실한 분이시지요. 저녁 10시에 일을 마치고 자기 방에 돌아가서 아침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으러 나오시죠. 매일매일 그런 상황이니 도저히 밤중에 밖에 나갈 여유는 없을 거예요."
이 이야기에 남자는 더욱더 의심을 품었다. 구사쓰와 오쓰 사이는 편도 6리(24km) 길이다. 어떻게 하면 한밤중 짧은 시간에 자기에게 올 수 있었을까. 매일 밤이다. 도저히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는 그날 밤 평소처럼 잠자리를 함께 한 뒤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다그쳤다.
"밤마다 정을 통하는 사이 아닌가. 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 줄 수 없겠는가. 어떻게 하면 여자의 몸으로 6리 길을 이렇게 빠르게 올 수 있는 거지?"
처음에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너무 강하게 다그치자 마침내 여자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결코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어요. 비와코 호수를 건너는 '야바세 矢橋의 나룻배'는 아시지요? 그 배처럼 구사쓰 선착장에서 오쓰까지 호수의 물살에 몸을 맡기고 단숨에 헤엄치면 바로 당신의 집에 도착하는 거예요. 비록 달이 없는 캄캄한 밤이라도 손거울을 이마에 묶고 건너면 괜찮아요. 건너편에 관음당의 밤을 비추는 등에 불빛이 날카롭게 반사되어 앞의 호수면을 밝혀주지요. 그야말로 환해서 안심이 되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오쓰의 항구가 보입니다. 이제 당신의 집 바로 뒤편 물가를 기어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놀라셨어요?"
의기양양하게 어두운 밤의 호수를 건너는 비밀을 털어놓고 여자는 재빨리 몸단장을 마치고 빙긋 웃으며 나갔다.
- 마침 그날은 그믐밤이었다. 오늘 밤도 호수에 몸을 담그고 이마의 손거울에 의지해 헤엄쳐 돌아갈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섬뜩해진다. 섬뜩함에 예전의 연정이 거짓말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어둠 속을 물밀듯이 헤엄쳐 오다니 이 여자는 마물 魔物이 아닌가'
- "분명 등불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호수를 건너지 못해 물에 빠져 죽었을 거야"
모두 그렇게 소곤거렸다.
한편, 남자는 자신의 죄의 무거움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머리를 밀고 승려가 되어 시코쿠 四囯 순례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전하던 가나자와 상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후 소문에 의하면 끌어올린 여자의 시체는 이상하게도 겨드랑이 근처에 뱀의 비늘 같은 것이 세 장 정도 자라 있었다고 합니다. 검시관에게서 직접 들었다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호수를 헤엄쳐 건너는 사랑의 집념은 원래 이 여자의 육신에 깃든 뱀의 성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으로 쌓이는 그릇된 집착과 배신당한 원한이 여자를 뱀으로 만들어 버린 것인가. 많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채, 오늘도 비와코 호수의 수면은 고요하기만 하다.
- <산슈키단(三州奇談)> 제2권 <인뇨도수(淫女渡水)>
- 인간이 '이계 異界'와 만날 때
현대의 구술채록 형식의 괴담집이라고 할 수 있는 <신미미부쿠로 新耳袋>에는 오사카 센니치마에 千日前에서 있었던 엘리베이터에 관한 공포 체험이 실려 있다. 늦은 밤, 어떤 사람이 술집에서 일하는 분위기의 여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간층에서 내리고 문득 깨닫는다. 몇 년 전 화재로 최고층의 카바레가 불타는 바람에 많은 여자들이 타 죽었던 일을... (제5야(夜) 25화) 바로 그 횡사 橫死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괴이 怪異를 다룬 이야기였다.
- 괴이와 만나는 장소를 결합한 괴담의 유래는 거슬러 올라가면 <곤자쿠모노가타리슈 今昔物語集>부터 존재한다. 예를 들면 영귀담 靈鬼談을 모은 27개 이야기 중 첫 번째에 등장하는 교토 라쿠추 名中의 <귀신님 鬼殿>의 유래는 땅에 스며든 죽은 자의 영혼이 귀신으로 나타나 재앙을 일으키는 이야기이다.
- 이러한 괴이담의 전통이 에도 괴담에서는 어떻게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었을까. 이 장에서는 괴이와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 초점을 맞추어 옛 전장, 산중, 호수 위의 섬 등 지리적 경계와 조상의 영혼에게 제사를 지내는 추석 명절을 배경으로 한 에도 괴담의 여러 작품에 주목하고자 한다.
- 항상 우리 집에 드나드는 장님 비파 법사로 <헤이케 이야기 平家物語>를 아주 잘하는 자토 座頭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남자가 기묘한 말을 꺼냈다.
"제게 헤이케 비파 이야기를 전수해 주신 스승님은 반슈 播州 아마가사키(尼ケ崎, 현재 효고현(兵庫県)) 지역의 호시야마 고토 星山勾当라는 분입니다. 헤이케 비파의 비곡으로 유명한 제9권을 배울 때 스승님께서 명심하라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 들어라, 이 권의 명장면 중에 고자이쇼노 쓰보네(小宰相の局)가 강에 몸을 던지는 장면이 있네. 이걸 읊을 때는 충분히 조심해야 해. 부주의하게 읊다가 귀를 잃은 비파 법사도 있으니.'"
- 자토 : 에도시대 맹인의 계급 중 하나, 맹인들은 침, 안마, 비파법사 등의 직업에 독점적으로 종사하는 것을 용인하여 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제도가 있었는다. 비파법사는 겐교(檢校), 벳토(別当), 고토(勾当), 자토(座頭) 등으로 불렸다.
- 제9권의 이야기를 다 읊고 나니, 단이치의 솜씨에 칭찬의 말이 오가고 비파의 선율과 미성에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중이었다.
"어쨌든 멋진 이야기야. 자, 잠시 휴식을 취하게."
- 안주인의 하명으로 단이치에게 다과를 대접하는 사이, 그곳에 모인 마마님들의 화제는 고자이쇼노 쓰보네의 투신자살과 남편 미치모리 通盛의 심경까지 이르렀다.
"아무래도 이치노타니 一ノ谷에서 갈라져 야시마 屋島 섬으로 달아난 헤이케의 일가는 무척 낙담했을 테지요. 특히 에치젠 越前의 삼위 三位 다이라노 미치모리 平通盛 님의 아내인 고자이쇼 마님의 경우는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죽임을 당하고 너무나도 분했을 것이 틀림없어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결국 투신하고 만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가엾게도."
"아니, 불쌍한 것은 고자이쇼 님만이 아니지요. 다이라노 미치모리 님은 나이 16세 되던 해부터 아가씨를 만난 이후 줄곧 마음에 두고 계셨잖아요. 고자이쇼 님을 진영에 남겨두고 출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말 괴로웠을 거예요. 미나토가와 湊川 전투에 나가게 되었을 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무사의 심중은 짐작하고도 남지요."
늘어뜨린 발 저편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탄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눈물 머금은 안주인의 말에 시녀들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탄에 잠긴 그 자리의 분위기는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고 이상했다.
- 안주인은 그렇게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단이치에게 말을 걸었다.
"한 소절 더 부탁하고 싶네."라는 분부에 자토도 승낙했다.
"그럼 다음은 무엇을 읊어 드릴까요?"하고 묻는 자토에게 안주인은 뜻밖의 부분을 원했다.
"나는 이 고자이쇼의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드네. 한 번 더 같은 곳을 들려주시게."
- 아무리 감동했다 하더라도 고자이쇼 장면을 되풀이하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단이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 주인마님의 뜻대로 비파를 다시 집어 들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읊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또 차분하게 낮게 음미하는 애상의 헤이케 비파.
이야기가 최고조에 달한 바로 그때, 문득 어디선가 주지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와 영탄하는 절정 부분에서 연주를 멈췄다.
"누구냐, 그런 곳에서 헤이케를 읊는 게!"
- 단이치는 비파 켜기를 멈추고 당황했다. 어째서 주지스님이 이방에 있는 것일까. 손으로 더듬어 주위를 살펴보니 곳곳에 이끼 낀 석탑과 썩은 경문이 적힌 판자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는 어디에 있는 것이지요?"
- "미련이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닌지... 이렇게 되면 이제는 금기를 행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만 괜찮아. 나에게 맡기려무나. 마의 장막으로부터 너를 구할 방법이 하나 있으니."
이렇게 말하고 자토를 목욕재계 시켜 몸을 깨끗이 하게 하고 전신에 악마를 쫓는 주문과 반야심경의 문장을 썼다. 그러나 깜박하고 왼쪽 귀에만 경문을 쓰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주지 스님은 모르고 있었다.
- 부적과 경문을 몸에 두른 단이치를 향해 주지스님은 다짐하듯 일렀다.
"분명 오늘 밤도 마물이 찾아올 것이야. 하지만 아무리 무섭더라도 결코 소리를 내거나 움직여서는 안 되네. 설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하지 말고 가만히 아침까지 참는 거야. 알겠는가."
- 이윽고 석양이 산 너머로 지고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긴 밤이 찾아왔다.
새벽 두 시경, 문 앞에서 어젯밤 데리러 왔던 그 여자가 불렀다.
"단이치 님 계십니까?"
자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싸우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상하네, 어디 갔지?"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 같다. 방에 들어온 기척이 든다.
"자토 님, 단이치는 거기 없느냐!"
귀신의 차가운 손이 단이치에게 닿았다. 하지만 경문의 공력 ...
- 오사카의 히라노 平野에 다이넨부쓰지라는 절이 있다. 장사 차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우연히 들른 이 다이넨부쓰지(大念仏寺)의 법회에서 사찰의 보물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 그날 나는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이는 본당 한쪽 구석에 앉아 법회가 시작될 때까지 심심풀이로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자네들은 이 절에 전해지는 영보 靈宝 '진 沈의 향합 香箱'의 유래를 알고 있는가? 어느 장인의 솜씨인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훌륭한 세공이라네. 법회 뒤에 봐두는 것이 좋을 거야."
허리가 굽은 노인이 다른 지역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 향합은 천축에서 전래된 명품이라던데? 설마 하늘에서 내려왔다거나?"
남자의 물음에 노인은 웃었다.
"아니, 아니 그렇지 않소. 더 슬프고 영묘한 내력이 있지 않겠소. 염불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후학을 위해 말씀드리지요."
- 장지문을 열어젖힌 방 안에서 스무 살 남짓의 여인이 등을 밝히고 책을 펼쳐 들고 탐독하고 있다. 그 용모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설마 선녀가 아닐까. 도저히 보통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슌지가 동료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여자는 귀신이거나 목귀 木鬼가 둔갑한 게 틀림없어. 우리들의 불심을 방해해 색기에 빠뜨리고 정욕을 일으켜 그 틈을 타 잡아먹는 게야. 이것은 함정이야. 당장 이 마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큰일 날 거야."
그러나 슌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비록 도망쳐도 상대는 둔갑이 가능한 놈이잖아.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겠지. 게다가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수행의 재료가 아닌가. 일단 지금은 저 여인의 정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
- 마음을 정한 두 스님은 서원 쪽으로 걸어가며 벌벌 떨면서 여인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소생들은 여러 지역을 떠도는 수행자입니다. 후지산 산등성이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디 오늘 밤 이곳에 묵게 해 주시겠습니까?"
여인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수행에 지친 스님을 돌보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 밤은 먼 길을 떠나신 주인어른께서 밤늦게 귀가하시는지라 주인어른의 부재중에 독단적으로 손님을 묵게 하는 것은 주인어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정말 죄송스럽지만 다른 곳을 찾아봐 주시겠습니까?"
기품 있는 태도에 승려들은 마음을 빼앗겼고 더욱더 여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만약 누가 되지 않는다면 주인어른이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게 해 주시오."
그들의 청에 여인도 뜻을 굽히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이쪽으로 오시지요."하고 옆방으로 두 사람을 데려가 말했다.
"여기서 쉬고 계세요."하고 미소를 지었다.
- 장지문을 닫고 물러가 여인은 다시 서원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등불에 여인의 그림자가 검게 흔들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아름답다. 역시 둔갑하는 요물인가... 아니면 이 집 주인이란 어떤 분일까. 방심은 금물이야. 잡아먹히는데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슌닌과 슌지는 입으로 계속 호신의 주문을 외고 구 九자를 긋는 주법으로 주위에 감도는 요기를 물리쳤다.
- 그날 밤 뜬눈으로 괴이의 출몰을 기다렸다. 이윽고 새벽 두 시를 지날 무렵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와 말 재갈 소리가 났다.
- "마침내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고 싶군. 고맙고 고맙네."
상황에 너무 몰입하는 듯한 사무라이의 모습에 심상치 않은 요기를 본 스님이 되물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어떤 분이셔서 이런 산중에 틀어박혀 지내고 계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성함을 알려 주십시오."
스님의 말에 남자와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처지지만 이것도 부처님의 연이라 여기고 모든 것을 말씀드리리다. 사실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지난 500년 전 옛날, 나는 후지산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던 소가 曽我 쥬로스케나리 十郞祐成, 그리고 아내는 오이소 大磯의 도라 虎라네. 우리 육체는 죽어 들판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혼백은 이 세상에 남아 오백 년의 긴 세월 동안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과 부부의 정에 붙잡혀 이승을 헤매다가 밤이 되면 영원히 싸움을 계속하는 수라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네. 하지만 내 동생 고로 도키무네 五郞時致도 마찬가지로 후지산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어릴 때부터 불도를 따르며 매일 법화경을 주창한 공덕으로 얼마 전 가이 甲斐 지방 다케다 武田 가문의 아들로 환생해 하루노부 이리미치 신겐 晴信入道信玄이라 불리네. 그렇지만 당사자는 전생의 일을 전혀 모르고 살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스님들께 부탁이 있네. 신겐에게 가서 고로 도키무네의 환생이라는 것을 알리고 수라의 장소를 떠도는 형을 위해 추선공양 追善供養을 지내 성불시켜 달라고 일러주지 않겠나. 이 물건이 도키무네의 환생을 증명해 줄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금으로 된 칼의 장식을 건네었다.
- 오이소의 도라 : 가마쿠라(鎌倉) 초기의 사가미(相模)(가나가와현(神奈川県))지역 오이소의 유녀. <소가 모노가타리(曾我物語)>에 소가쥬로스케나리(酋我十郎)의 애인으로 등장한다. 후지(富士)의 스소노(椐野)에서 소가 형제가 일으킨 전쟁 (1193)에서 쥬로스케나리가 죽자 포박되어 조사를 받지만 결국 죄가 없다는 판결이 난다.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소가 형제의 어머니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하코네에 올라 형제의 공양을 하고 전쟁이 일어났던 장소도 찾아다닌다. 하코네의 산속에는 실제로 소가 형제와 도라의 무덤이 현재도 남아있다.
- "밤이 깊었네. 오늘 밤은 피곤했을 게야. 모두 베개를 나란히 하고 그만 자자구."
망자의 권유에 따라 승려들은 그 자리에 누웠다.
잠시 졸다가 소나무 숲을 뚫고 나가는 한줄기의 바람에 놀라 '헉'하고 눈을 뜨니 저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황야의 억새풀 벌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른 풀 사이로 이끼 낀 두 묘석이 썩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소가쥬로와 오이소의 도라의 망령이었는가?"
- 슌닌과 슌지는 그 길로 고슈 甲州로 가서 성주 신겐 信玄을 만났다.
이야기를 들은 신겐은 품에서 검의 장식 반쪽을 꺼내 망자에게서 발견된 다른 쪽과 맞춰 보았다. 그러자 잘린 부분의 문양이 조금도 다를 것 없이 딱 맞는 것이 아닌가.
- 신겐 정도 되는 장군이 망자의 전언을 믿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은 그의 탄생의 비밀로 거슬러 올라간다.
- 이것은 한 세공 장인이 만난 이계의 이야기이다.
그는 칼 한 자루만 쥐여 주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절묘한 재주를 펼치는 장인이었다. 기계장치 새를 만들어 실제로 날리거나 저절로 술을 따르는 술병과 자연스럽게 열리는 구조의 꽃을 만드는 등 항상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 어느 날 이 장인은 비와코에 떠 있는 지쿠부시마 竹生島 영지 순례를 결심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곳은 땅밑 곤린자이 金輪際에서 솟아난 신비의 섬이며, 장엄한 신전에는 목수가 마음을 다해 정성껏 새긴 명작들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더욱 연마하기 위해 그는 호수 위를 오가는 세타의 나룻배를 빌려 홀로 고적을 향하고 있었다.
- 곤린자이 : 불교에서 대지의 최하층에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
- 순풍에 돛을 달고 배는 호수의 수면 위를 달렸다. 멀리 해안가에는 비와코 팔경의 명승이 보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좋던 날씨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구름의 흐름이 이상해지면서 배는 심한 풍파에 휩쓸려 뜻밖의 방향으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으로 갈대가 우거진 수상한 섬이 나타났다. 기슭에 배를 대고 주위를 살펴보니 온 섬이 온통 소나무와 ...
- 매년 추석이 되면 교토에서는 음력 7월 15일부터 24일 사이에 각 가정에서, 가신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전통이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된 등롱을 만들어 선반 주위나 민가의 처마 끝에 달기도 하고, 조상의 묘 주변 석탑을 장식하기도 한다. 추석의 등롱은 교토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조상을 모시는 풍습이다. 등롱에는 화조나 초목 등의 도안이 장식되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낸다. 등불을 켜 밤새 여기저기 걸어 놓았기 때문에 왕래하는 동네 사람들은 갖가지 무늬의 등을 품평을 하면서 둘러보았다. 한편 광장에는 둥글게 둘러서서 봉오도리를 추는 사람들 주위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붐빈다. 교토 사람들은 노래와 춤과 등불의 빛에 물든 여름의 정취를 밤새도록 즐기는 것이다.
- 봉오도리 : 불교의식에서 시작된 조상의 영혼을 기리는 일본의 전통 춤으로 오봉(백중) 기간 밤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추는 춤.
- 그것은 덴분간 쓰치노에사루 戊申(1548) 때의 이야기이다. 고죠 五条 교쿄쿠 京極에 하기와라 신노죠 萩原新之丞라는 사무라이가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겨운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그토록 나를 연모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습니까? 정말 독하신 분, 이 박정하신 분! 다정한 말을 믿고 몸을 맡겼는데 매일 밤 정을 나누고 새벽에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사랑의 나날은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으면서, 그걸- 그걸 저런 중놈 하라는 대로 제가 싫어하는 부적를 붙이시다니 더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만큼은 같이 와주세요. 자 이리로."
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가. 여자는 하기와라의 팔을 억지로 잡아당겨 묘지 안쪽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동행하던 이는 허둥지둥 곁에서 도망쳤다.
- 소식을 들은 노인과 인근 주민들은 만수사로 달려가 니카이도 일족의 영묘를 찾아냈다. 관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하기와라가 백골에게 안긴 채로 누워 있었다
- 이 일이 있은 후 니카이도 영묘는 만수사 스님의 손에 의해 교토의 라쿠토 洛東 지역에 있는 도리베야마 鳥辺山의 묘지로 옮겨져 하기와라의 유해와 함께 매장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이 편안하게 잠든 것은 아니었다. 얼마 후 도리케야마 부근에 출몰하는 유령의 소문이 교토에 퍼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밤, 하기와라와 여자가 손을 잡고 여자아이에게 모란 등롱을 들려 헤매고 다닌다는 것이다. 망자의 일행과 마주치는 자는 반드시 미쳐 목숨을 잃었으므로 도리야마 인근 주민들은 겁을 먹고 떨었다.
-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의 부하 중에 하시이 야사부로 端井弥三郞라는 문무에 뛰어난 사무라이가 있었다. 후에 빈고 備後 지역의 무사를 모시며 오와리(尾張, 지금의 아이치현(愛知県))의 기요스 淸洲城 성에 살고 있었다. 이 무렵 야사부로는 이누야마 犬山 성주의 아들과 남색 관계로 매일 밤 약 3리의 밤길을 오가고 있었다.
- 어느 날 성의 숙직 당번을 마친 야사부로는 이누야마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날 밤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기분 나쁜 밤이었다. 길 중간에 강변으로 가서 뱃사공을 불렀지만 공교롭게도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불어난 강물을 도보로 건널 수도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잠시 상황을 살피던 가운데 강둑 위로 흔들리는 수상한 불이 눈에 들어왔다. 점차 가까워지면서 요마 妖魔의 정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거꾸로 서서 긴 머리를 땅에 질질 끌고 두 손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다. 더구나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모습은 도저히 이 세상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야사부로는 칼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누구냐!" 소리쳐 물었다.
요부가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저는 강 건너 야무라 屋村라는 곳에 사는 촌장의 아내입니다."

- 에도 괴담에는 여자 귀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요쓰야 괴담>의 '오이와'나 <가사네 연못>의 '가사네 累'는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많은 귀신이 본래는 정숙하고 조신한 성품의 여자가 남자의 변심이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 무서운 귀신으로 돌아오는 내용의 괴담이다. 어찌 보면 당시 여성의 입장, 사회의 상황, 그리고 남성의 여성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를 저주하는 여귀의 등장은 11세기의 <곤자쿠모노가타리>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 소개한 <송장을 탄 남자>는 버려진 여자의 복수와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공포체험으로 남자의 목숨을 구한 음양사의 주술을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음양사라고 하면 아베노 세이메이 安倍晴明의 활약이 만화나 영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천년 전의 설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애증에 얽힌 실마리를 뛰어난 주술로 해결하는 도심 속의 엑소시스트로 그려져 있었다.
- 또 이 책에 수록된 <죽은 자의 손목과 함께>. <곤자쿠모노가타리>의 이 이야기는 이후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일본어 이름: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에 의해 쓰인 <그림자(影, The Corpse-Rider), 1900>에 수록되어 있다.
- 참고로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水木しげる가 그린 <곤자쿠모노가타리>는 원작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 미즈키의 만화 <아내의 원한>은 남편의 반성과 고통을 함께한 아내에게 애정을 느끼는 남자의 심리를 그리면서 끝난다. 애수 넘치는 미즈키의 개작 부분은 동일한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헤이안 시대에 전해지는 여자 귀신 이야기가 음양사가 주도하는 귀신을 봉인하는 것이 중심인 데 반해, 중세 이후의 질투가 많은 여자 귀신 이야기는 불교 사원이 설파한 "여인죄장 女人罪障, 여인성불 女人成仏"이라는 종교 윤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 사상은 여성을 태어나면서부터 죄 많은 존재로 규정하고 부처의 자비에 의한 구제를 권하는 내용이다.
- 17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히라가나본 <인가모노가타리>는 이러한 불교 설화의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에도시대의 출판 전성기 속에서 보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재편집된 작품이다. 편집자 아사이 료이 淺井了意는 정토진종 불광사파 浄土真宗仏光寺派의 승려이다. 부록에 실린 설교본 가타카나본 <인가모노가타리>에서 소재를 가져다가 그림이 들어간 괴담집으로 만든 것이 료이판 ...
| [박진여] 나는 보았습니다 - 삶과 죽음 그 너머의 경이로운 이야기 (1) | 2026.01.03 |
|---|---|
|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꿈과 죽음 - 죽어가는 사람의 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2) | 2025.12.21 |
| [카일 그레이] 엔젤 넘버 - 천사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숫자 메시지 (1) | 2025.12.08 |
| [오컬트 시스터즈] 법의 서, 그리고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1) | 2025.11.29 |
| [심야괴담회 제작팀] 심야괴담회 대본집 (0) | 2025.11.26 |
| [요시모토 바나나, 타이라 아이린] 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1) | 2025.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