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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여] 나는 보았습니다 - 삶과 죽음 그 너머의 경이로운 이야기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by 일루젼 2026. 1. 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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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진여
출판 : 김영사
출간 : 2025.02.24


       


조금 아쉬웠다.

기존 출간된 영성 도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와 모아둔 느낌.

자신만의 경험이나 통찰을 녹여내기보다는, 기존 틀에 살짝 덧붙였다는 느낌이다.

 

예전에 좋았던 것들이 여전히 좋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더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것 같다.

나이대에 따라 관심사가 변해가듯, 변한 건 나일 테니까.

 

상당히 다양한 책들과 영성가들이 인용으로 소개되니 관심이 가는 분들은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다.

절판된 경우도 있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면 읽어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여는 글
인생이라는 여행의 목적을 찾아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날은,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다."

- 마크 트웨인, 미국의 소설가

 


-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갑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문제는 없지요. 그러나 어떤 이는 큰 우여곡절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어떤 이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불행하게 살다 죽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단 한번 주어진 것이라면, 억울하고 원통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사람들은 모두가 인생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에 도착하는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오릅니다.  


- 그렇게 많은 사람을 리딩하다 보면, 저는 명상 중에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나 우주의 비밀이 담긴 거대한 도서관에 방문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도서관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온 일기책이 보관되어 있지요. 저는 저에게 질문한 사람에 관한 전생의 일기책을 찾아 읽어줍니다. 1931년 강연에서 에드거 케이시 Edgar Cayce (1877~1945)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체험을 묘사하며, 그 과정에서 하늘에 있는 기록의 창고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원으로 들어가서 매우 큰 방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도서관 같았다. 여기에는 인간들의 인생을 기록한 책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모든 행위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의 기록을 꺼내기만 하면 되었다."

- 이 무한한 우주에는 엄청난 도전과 비밀의 법칙들이 존재합니다. 이 책이 개인의 삶을 넘어서, 더 깊은 우주적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은하계 중에서 자신의 영혼이 왜 지구별을 선택하고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생의 삶에서 자신의 영혼이 전생에 계획하고 약속한 목적 ...

- 피타고라스는 오늘날 수학의 정리를 만든 사람으로 주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는 불꽃같은 능력을 지닌 신비주의 현자였다. 그는 비바람을 다스리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밀교였던 '미스테리아 Mysteria'에 따르면, 그는 예수처럼 미래를 예견하고 영적 진리를 전하며 병자들을 치유했다고 전해진다. 피타고라스는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가르쳤으며, 결코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또한 "신을 믿기만 하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당시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하루가 끝나는 밤마다 그날 자신이 했던 모든 사건을 떠올리며, 높은 자아의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하루 동안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돌아보며, 잘못된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고,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지은 잘못을 직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신의 존재를 찾으려 했다. 

-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정신세계의 무한한 영역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 한다.

- 20세기 초 영국의 구도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종교학 교수이며, <티베트 사자의 서>를 영어로 번역 출간한 W. Y. 에반스 웬츠 Walter Yeeling Evans-Wentz(1878~1965)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식물이나 나무들이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이 재화신 再化身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러나 그는 인간이 나쁜 카르마로 인해 축생 畜生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견해는 부정했다.
"인간이 인간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차원의 축생, 심지어 벌레나 곤충의 세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으며, 진화의 법칙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티베트 밀교'라고 스스로 칭한 가르침을 내세웠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이 수탉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환생이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수탉은 시킴 sikkim(인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주의 이름)과 티베트 지역의 대승불교가 설명하는 윤회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욕망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요즘 운 좋게 태어난 반려견들은 젊은 시절에는 요트를 타고, 나이가 들면 전용 요양원에서 지낸다고 한다. 얼마 전 일본 사이타마현 가즈시에 위치한 '애니멀케어하우스'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곳의 한 직원은 치매가 있는 노령견을 무릎에 눕혀 직접 식사를 떠먹이고 있었다. "치매가 있는 노견은 먹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먹여야 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식사를 마친 노령견들은 전용 쿠션에서 낮잠을 자거나, 에어컨이 켜진 넓은 방에서 건강관리를 받으며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의 '인간화 humanization'가 진행되고 있으며, 반려동물을 위한 고급 음식과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관련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생'보다 '견생'이라는 말이 더 좋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히말라야의 요가 수행자 스리 스와미 시바난다 sri Swami Sivananda(1887~1963)는 호강에 넘치는 개들은 진화의 사다리에서 굴러 떨어진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 핀란드를 대표하는 국민음악의 대가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1865~1957)는 자신이 몇백만 년 전의 전생에 백조나 야생오리와 관련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동물들을 보면 아주 친밀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도에서는 백조(산스크리트어로 'hamsa')가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 영혼을 상징한다. 성자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사람을 파라마함사 paramahamsa라고 부르며, 이 호칭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최고의 백조'라는 뜻이다.

- 캐나다의 작가 맨리 P. 홀 Manly P. Hall (1901~1990)도 이렇게 말했다.
"환생과 업의 법칙은 모든 생명체의 부단한 진보를 가능하게 만든다. 인간뿐만 아니라 막대기, 돌, 그리고 별까지도 인간과 더불어 성장한다. 우주 만물이 다 같이 생을 펼쳐나간다. 다시 말해 모든 생명체가 우주 안에서, 그리고 우주를 향해서 성장 발전하는 것이다."

-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 역시 윤회설을 주장하며, 사람의 영혼이 동물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그는 철저히 채식을 고수했고, 제자들에게도 채식을 시켰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남긴 일화 중 하나로, 어느 날 그가 매를 맞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불쌍히 여겨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 매질해라. 내 친한 사람의 영혼이다."

- 그러나 나의 전생 리딩 능력과 영적 수준은 아직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높은 진동수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명상과 기도를 통해 더 높은 차원을 투시할 수 있는 공부를 의미한다. 명상은 내면의 신을 만나는 것이며,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주의 지혜를 전한 사람 중에서는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우주의 법칙을 깨달은 영혼들이었고, 무의식 상태에서 그 법칙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 반복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 꿈의 내용이 자신의 전생과 연결된 통로일 수도 있다. W. Y. 에반스 웬츠는 이렇게 말한다.
"꿈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요기들은 자기 의지대로 꿈의 상태에 들어갔다가 깨어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해서 두 상태가 모두 환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훈련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 죽음은 꿈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고, 탄생은 깨어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영혼의 세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로시 이디는 빙의된 것이 아니라 '워크인 walk-in (육신을 떠나는 영혼과 교체되어 들어오는 영혼)'이 된 것이다. 영적 차원에서 환생과 워크인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도로시 이디는 3세 때 계단에서 일어난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당시 의사는 그녀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3,300년 전 이집트 무녀였던 벤트레시트의 영혼이 도로시 이디의 빈 영혼의 공간을 차지했다. 그 이후 이디는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기적적으로 소생해 77세로 사망할 때까지 벤트레시트의 영혼으로 살았다. 그녀의 영혼은 3세 때 바뀌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의 업적은 학계에서 냉담하게 평가받고 배척되었다. 그녀가 풀어낸 수수께끼들은 여전히 이집트 고고학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도로시 이디에 따르면, 벤트레시트 Bentreshyt는 고대 이집트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2대 파라오인 세티 1세 시대의 여성으로, 아비도스 Abydos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에서 활동했다고 밝혔다.

- 일반적인 빙의는 인간의 몸속에 다른 영혼이 들어와 두 개 이상의 영혼이 혼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도로시 이디의 경우에는 사망 선고를 받은 순간 이디의 영혼이 몸을 떠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영혼이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도로시 이디의 사례는 워크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힌두교나 불교의 경전에 기록된 환생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과거 생에 살았던 영혼이 어떤 극단적인 사건으로 특별한 생명적 위기에 처한 사람의 육체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리딩은, 육체가 가진 영적 환경이 맞으면(영적 진동수가 일치하면) 충분히 그 육체에 깃들고 머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의 전개는 미리 짜여진 영적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

- 전생을 기억해내는 수련 중 가장 쉬운 방법은 하루하루의 일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무슨 생각을 했고, 낮에는 어떤 행동을 했으며, 저녁에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마쳤는지에 대해 관찰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참회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전생을 떠올려보면 오늘 하루와 연결된 전생의 이야기들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한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그와 연결된 여러 상상의 장면들을 만나보라. 이러한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전생으로 가는 미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전생 수행은 영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마치 육체적으로 허약한 사람이 물 한 병만 들고 사막을 횡단하려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될 수 있다. 정신적·육체적 균형이 잡혀 있지 않으면 영계의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해롭고 사악한 영혼이 그 사람의 영혼 속으로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환생 연구가인 제임스 H. 브레넌 James H. Brennan(1940~2024)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의사가 당신에게 흥분을 피하라고 권고했다면, 전생을 탐구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것은 편안한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여행을 할 준비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다." 

- 현재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타고난 기질과 오랜 수행이 필요하다. 수행의 목적은 오직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의식에 대한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악몽 같은 영적 현상들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는 것과 같을 수 있다.

- 이럴 때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 있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 선한 사람이 악에 의해 고통을 받을 때,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한 신이 창조하고 다스리는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모순을 다루는 종교철학과 신학적 질문을 '악의 문제 Problem of evil'라고 한다.

 

- 이에 대해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함과 옳음을 변호하고 설득하는 이론을 '신정론'이라고 한다. 신은 어떤 경우에도 옳다는 것이며, 신은 악조차도 사용하여 최종적인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 이에 대해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후에는 그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 세상에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선한 신이 악한 자들의 잘못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조로아스터교의 교의에 따르면, 선과 악의 대결은 3,000년 주기로 진행되며, 현세에서는 아직 그 승부가 끝나지 않은 상태 ...

- 자연종교 自然宗敎, 또는 자연신교 自然神敎라고도 불린다. 이신론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창조한 신이 비인격적인 거대한 힘, 즉 자연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인격적인 신이 존재하되, 그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로 더 이상 세상의 운행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본다.  

- 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있었다. 병든 자식의 치유기도를 하기 위해 새벽마다 교회에 가던 언니는 <성경>을 손에 든 채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했다. 언니는 모태 신앙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평생을 착한 심성으로 살아온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를 왜 신은 보호해주지 않았을까, 그녀는 궁금해했다. 

- 이 의문은 자연의 계율인 카르마의 법칙을 적용해 보면 풀린다. 전생에서의 마녀 재판관과 억울하게 죽은 미망인이 현생에서 모녀로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행위의 결과에는 인과에 따른 카르마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리딩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이어졌다.
'부자였던 어머니(마녀 재판관)의 죽음으로 딸(미망인)은 과거 생에 빼앗겼던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고(되찾다), 딸은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 카르마의 법칙으로 보면, 영적 완성은 영적 균형에서 이루어진다. 영적 균형은 한 번의 생애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과 악은 신이 인류에게 준 지상 최대의 숙제라 할 수 있다. 선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고, 악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상대가 선하다고 여기는 것이 나에게는 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이 숙제를 잘 풀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다. 인간이 가진 육체의 원형은 선과 악의 두 가지 개념을 포함하며, 이 두 요소가 없이는 육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

-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한 생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적 평가가 어떤 균형을 향해 나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선악의 힘은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선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참회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영혼은 악한 마음을 정화하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결국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영적 균형의 비율이 결정된다.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뜻하며, 정의를 따르면 선을 만날 수 있고, 정의를 이해하면 악이 정화된다. 이렇게 영적 균형이 이루어지면, 궁극적으로 영적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신도들은 카르마와 윤회, 그리고 신과의 합일을 믿었다. 이들은 강경한 유대 민족주의자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죄책감에 자살한 뒤, 여러 생을 거치며 업을 갚고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습니까?" 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죽음도 함께 약속하고 온다고 한다. 고대 유럽인들은 환생을 깊게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의 우리와는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죽음을 기쁘게 맞이했다고 한다. 

- 예수는 <요한복음> (16:19~21)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며 죽음과 탄생을 동일시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진통을 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해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이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인생 공부가 잘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가 많을수록 죽음은 더욱 두려워진다. 또한 집착과 욕심이 많아 돈과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도 그것을 다 가져갈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태복음> 19:24)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산다는 것은 세속적 가치보다도 선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이타심을 가지고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죽음은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더 나은 상태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토머스 모어 Thomas More(1478~1535)는 "이제 영원한 기쁨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했고,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1724~1804)도 임종 직전에 "좋다"라고 했다. 중국 전국시대 철학자 장자는 "삶과 죽음은 낮과 밤의 교차와 같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퇴계 이황은 임종을 앞두고 심경을 묻자 "조용히 떠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했다.

-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인디언의 말처럼, 어느 명상가나 철학자의 말처럼, 내가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나는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죽음을 편안하게 맞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왜 태어나고 죽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 전생 리딩의 선각자 에드거 케이시는 그의 전생 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삶의 장면을 떠올렸다. 케이시는 자신에 대한 전생 리딩에서 수백 년 전 이집트에 살았던, 위대한 신비력을 개발한 고승이었다. 그때 케이시는 자아가 강하고 관능적이어서 결국 파멸을 자초했다. 이후 그는 페르시아에서 내과의사로 태어났고, 그 무렵 사막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홀로 버려져 사경을 헤맸다. 그는 먹을 것도 물도 없이 3일 동안 극한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지내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의식을 풀어놓으려 했다. 케이시는 육체에서 의식을 분리하는 시도에 성공했고, 이것이 그가 현생에서 마음을 풀어놓는 능력을 지니게 된 바탕이 되었다. 현생의 모든 미덕과 결점이 모두 그의 과거 생에서의 경험에 연유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육체와 의식의 분리는 매우 어렵고 난해하다. 인간에게 육체와 의식의 분리는 죽음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영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을 통해 스스로 의식과 육체를 분리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의식의 분리는 어느 정도 영적 진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영적 진화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한 봉사와 사랑, 이해와 용서의 삶을 살면 자연의 법칙이 주는 선물로서 영적 진화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야 죽음 앞에서 육체와 의식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두려움에서 태연할 수 있다.

-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조건으로 이승에 태어난 존재이다. 인간은 육체와 혼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육체는 삶 속에서 카르마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며, 혼체가 진정한 자아이다. 그런데 혼체에는 삶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감정체가 남아 있고, 그중 가장 강렬한 것은 분노와 저주, 증오가 만든 미움이다. 이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이 계획했던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 나는 어려운 리딩을 할 때, 내 의식과 육신을 분리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야만 어떤 사람의 심층 깊숙이 숨겨진 전생의 장면들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산소통 없이 숨을 참아야 하는 잠수부처럼 호흡을 멈추고 그 순간에 적절한 의식작용을 해야 한다. 그런 순간에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 "우리는 역경을 극복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매 생애에서 비슷한 역경을 겪는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생에서 다른 형태와 상황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반복된다."

- 고사성어에 '불원천불우인 不怨天不尤人'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모든 답도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 에드거 케이시의 리딩에서도, 인생은 연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는 상태는 물리적이든 의식적이든 과거의 언젠가 자신이 만든 결과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레테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믿었다. 레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 또는 망각의 여신이다. 이 강을 건너면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죽은 자가 '기억의 샘물'을 마시고 오른쪽 길로 가면 하늘에 이르며, '망각의 잔'을 마시고 왼쪽 길로 가면 다시 환생한다고 한다. 영지주의의 <구세주의 대화>에도 비슷한 교리가 있다. 

- 앞서 언급한 우물에 몸을 던진 여인의 일부 의식 속에는, 당시의 기억이 혼백 魂魄에 잔존해 있었다. 남아 있는 혼백의 기운이 리딩에서 보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과 혼은 육체를 떠나지만, 육체에 남아 있는 칠백의 일부는 죽은 장소에 남아 있기도 한다. 생전에 강한 집착이나 애착, 혹은 극단적인 미움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일수록 혼과 백이 분리되지 않고 혼백으로 남아 귀 鬼(귀신)가 된다. 

 

- 삼혼칠백에 대한 설명은 종교와 사상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여기에서는 도교를 기준으로 간략히만 적는다. 삼혼은 태광 台光, 상령 爽靈, 유정 幽精이다. 칠백은 시구 尸拘, 복시 伏矢, 작음 雀陰, 탄적 呑賊, 비독 非毒, 제예 除穢, 취폐 臭肺로 설명한다.

- 영혼의 세계는 정말로 복잡하고 신비해서, 현생에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또 다른 자신의 혼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과학자들은 증명되지 않은 이런 이야기를 터부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혼백은 인간계에 미움과 원망의 형태로 남아 '떠나지 않고 돌아온 자'라는 의미를 가지며 일종의 심령적 형태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 병 등의 해를 끼치기도 한다. 혹자는 이러한 영적 현상을 지박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존재에 대해서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 리딩으로 본 전후 상황을 종합해 보면, 과거 생에서 며느리였던 이의 영혼이 경험했던 처절한 감정의 잔상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 시어머니의 깊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녀의 무의식에 일부의 귀혼 鬼魂이 남아 있어, 그때 며느리였던 자신의 처참한 경험을 지금의 며느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리딩을 들은 후 그 여의사는 평소 감정이 예민해지는 날에는 접시에 담긴 물만 봐도 온몸에 두려움의 전율을 느낀다고 말했다. 리딩에서 그 감정은 우물에 빠지기 직전 며느리의 두려운 마음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 귀신은 사후에 생전의 집착에 대한 미련으로 잔상이 사라지지 않은, 인간의 마지막 의식과 연결된 미해결의 말나식 末那識이다. 말나식은 불교에서 말하는 제7식으로 심층의식을 의미한다. 말나식은 마지막 식(제8식)인 아뢰야식(저장과 집착)에서 비롯되어, 그 일부를 자신이 가졌던 어떤 감정의 대상으로 집착한다. 이 말나식은 무지, 갈망, 그리고 갈애의 에너지다.  

- 불교에서 말하는 8식은 인간의 의식과 인식을 분석한 개념이다. 제1식 안식 眼識, 제2식 이식 耳識, 제3식 비식 鼻識, 제4식 설식 舌識, 제5식 신식 身識, 제6식 의식 意識, 제7식 말나식 末那識, 제8식 아뢰야식 阿賴耶識이다. 1~5식은 감각적 인식에 해당하고, 6식은 판단과 사유, 7식은 집착, 8식은 근본적 무의식을 설명한다. 
 
- 혼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자궁 속에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흔적이 있었다. 이는 현생에서 아내가 죽기 전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부 남편이 내연녀를 구하려 필사적이었던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아내의 임신 사실은 모르고 말이다. 그때의 카르마 때문에 아내는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 리딩은 말했다.

- 이런 말이 있다. "애착과 미움의 상념은 집비둘기 같아서, 언젠가 그 마음의 집인 영혼으로 다시 찾아온다." "악하게 살지 마라. 그러면 악인을 만나지 않는다." "선하게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 은혜를 만날 수 있다."

- 나는 오랜 시간 전생 리딩을 해오면서 영적 현상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심한 불면증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잠을 잘 때 내 주위로 많은 영가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가야 할 저승길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지 물어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러한 존재들의 영적 호기심(?)이 내 수면의 질을 극도로 떨어뜨린다. 쉽게 말해서 잠을 못 자게 계속 깨운다고 설명하는 것이 맞겠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예술인 중에도 수면의 질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예술적 재능이 어떤 영적 에너지와 연결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2001년 9월 외신은 '빈민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더 테레사 수녀가 1997년 선종하기 전에 심장질환으로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악령을 내쫓는 구마의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인도의 앙리 드수자 대주교는 테레사 수녀가 의학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악마의 공격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고 했다.

- 귀신은 온전한 의식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생전에 집착과 욕망으로 인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상태의 상처 난 영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귀신은 같은 처지의 영혼이나 가장 가까운 혈족의 의식과 전오식을 빌려서 보고 느끼는 감각욕을 해소하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생전에 오식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마음과 행동을 선하게 하여, 죽을 때 오식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 귀신이 되지 않고 바로 저승으로 갈 수 있다. 

- 버려졌다는 상실감과 배신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모진 마음으로 딸을 버렸던 어머니는 그 말이 살아생전 수행하던 철을 찾아가 참회의 기도를 많이 올렸다. 리딩에 따르면 그 말이 현생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전생이라고 한다. 현생에서 아들의 죽음은 전생의 달에 내성에 세운 영적 계획의 일부라고 리딩은 말했다. 전쟁에서 어머니에게 버려졌던 딸은 현생에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그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모두 받았다. 그러나 예정된 죽음(계획된 영적 프로그램)에 따라 아들(전쟁의 딸)은 다시 어머니를 버렸다. 아들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처절한 외로움과 상실감, 깊은 상처를 겪게 되었다.

 

- 카르마의 법칙은 징벌이나 단죄가 목적이 아니다. 그 법칙은 서로의 경험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맞바꾸어서 이를 통해 각자의 영적 균형을 맞추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때 버림받고 죽었던 딸의 영혼은 현생에서 아들로 태어나 전쟁에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을 어머니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경험했던 영적 상처를 어머니에게 돌려줌으로써, 그의 영혼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 트라우마를 치유받을 수 있었다. 리딩을 통해 본 아들의 영혼은 영계에서 비교적 차분하고 편안해 보였으며, 지구에 다시 환생해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부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였다. 

- 영혼들은 지도령의 가르침에 따라, 다음 단계인 청정한 빛으로 가득한 천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분노의 신을 만나는 영혼들은 그들의 사악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받으며, 엄청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암흑의 함정에 갇힌다. 암흑의 함정은 지옥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전에 지은 죄업의 투영에 의해 만들어진 사후의 꿈이다. 이곳에서 영혼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 고통과 슬픔을 되돌려 받는다. 영혼이 지닌 업의 질량은 각기 다르게 작용하고 적용되는데, 최악의 경우에는 지옥보다도 낮은 단계(영혼이 소멸하는 단계)로 추락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영혼도 있다. 

- 세 번째 단계: 천국으로의 귀환 또는 환생
평화의 신을 만난 영혼들 중 일부는 고향별(천국)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지상의 삶을 선택하는 영혼들도 있다. 이들은 높은 차원의 천상 프로그램에 따라 지도령의 안내를 받아 자신이 태어날 부모를 선택한다. 영혼이 지상에 다시 태어날 시간이 다가오면, 영혼은 자신의 부모를 보고 알게 된다. 그러나 영혼이 육신의 옷을 입고 태어날 때, 의식은 망각 속에 잠기고 무의식의 심층에 묻혀버린다.

- 티베트 불교의 대가 파드마삼바바가 쓴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 이승이든 내생生이든 생각은 사물이 되고, 또 선하든 악하든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된다. 그대는 씨를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 삶은 선과 악의 합성물이다. 전생에 착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면 죽어서 천국이 보일 것이고, 만약 전생에 악하고 부끄럽게 살았다면 지옥이 나타날 것이다.

- 고대의 미스테리아에서는 영혼이 여러 생을 거듭하며 영적인 깨달음, 즉 그노시스를 얻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믿었다. 고대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계몽되지 않은 영혼은 카르마의 힘 때문에 계속해서 환생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혼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영혼이 육체를 입는 것은 마치 새가 새장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영혼이 육체 속에 오래 머물며 이번 생에 익숙해지면, 인연과 오랜 습성 때문에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 육체로 돌아오게 되고, 세속적 욕망과 인연을 끊어버리지도 떨쳐버리지도 못하게 된다." 

 

- 플라톤은 환생할 때 필요한 육체를 일종의 감옥으로 보았다. 그는 또한 환생을 '차꼬(족쇄)'를 차는 것에 비유하며, "영혼은 자신이 지은 죗값을 모두 치를 때까지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 석가모니는 이 지상의 삶에 대한 집착이 인간을 윤회의 쳇바퀴에 가두어버린다고 강조한다. 집착과 욕망을 버리는 것만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가르치면서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착이 있기 때문에 타락이 있다. 집착이 없으면 타락이 오지 않는다. 타락이 오지 않는 곳에 평온이 있으며, 평온이 있는 곳에는 욕망이 없다. 욕망이 없는 곳에 오고 감이 없으며, 오고 감이 없는 곳에는 태어나고 죽는 일이 없다. 태어나고 죽는 일이 없는 곳에는 이 세상도 없고 저세상도 없으며 그 중간 세상도 없으니 이것이 비극의 끝이다." 

- 한국이 좋은 나라라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환생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 환경이 아이들의 영적 진화를 위해 절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나 임신 중인 어머니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자신을 현생의 부모로 선택한 아기의 영혼은 어떤 인연에서 혹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전생 리딩을 통해 그 아이들의 영혼과 교감하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처럼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 집안의 윗대 어른으로 살았던 꽤 괜찮은 영혼이니 어머니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어떤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지금의 집안을 더 크게 발전시키기 위해 온 좋은 인연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때로는 조금 엉뚱한 영혼을 만나기도 한다. '과거 생에서 쌓은 선근 덕에 현생의 부모들이 큰 재산을 얻었으니, 그 재산을 잘 보전하여 자신에게 물려줄 것을 약속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의 영혼은 '지구의 과학과 치유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외계에서 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 한 영혼이 특정 시대에 태어나는 것은 그가 지닌 존재적 특성 때문이다. 그 영혼이 우주적 흐름과 조율 調律되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 임신과 탄생이 일어나는 것이다. 천궁도 天宮圖에 의하면, 가까운 미래에 우주 천체의 배열에 의해 특정한 에너지가 형성되는데,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위치하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곁을 찾아오는 아기들은 매우 대단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갈 신인류들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들은 금보다 소중하고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지적 생명체들이다. 세속적인 표현으로는 매우 비싸고 값진 영혼들이다. 이들은 6차원의 존재로서 지구 인류를 구하기 위해 태어나는 영혼들이다. 추가로 부연해야 할 점이 있다. 신인류로 태어나는 아이가 만약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 그 영혼은 어쩌면 부모나 조상들의 카르마를 다 짊어지고 정화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을 수 있는 보육 환경이 부족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에 드는 비용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의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거나,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자녀가 겪을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은 국가 소별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의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현재의 저출산율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일 육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 영혼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현재 시대의 상황이 그들의 가치를 실현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각종 오염물질로 가득 찬 황폐한 지구를 보고 겁먹고 망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2050년에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반도의 인구 문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 대다수 사람은 우리 아이가 지금 시대에 왜 태어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악인과 죄인들이 더 잘 살고 정직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세상을 보면서 정의가 부재하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회 환생론에 따라 여러 생을 함께 놓고 보면, 정의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환생이라는 수많은 생을 고려해야만 인생의 기쁨과 고통, 행복과 불행이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앞선 저출산 문제를 영적으로 바라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최고의 지성과 영성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국가이기 때문에, 이곳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출산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 대부분의 생명체는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사라지며 지구는 황폐해진다. 그 시점에서는 인류와 기계 인간들이 함께 공생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리딩을 통해 본 300년 후의 지구에는 약 15억 명 정도의 인류만이 생존해 있다. 300년 후에도 지구는 태양계에서 사라지지 않겠지만, 인류는 지금이라도 어리석은 전쟁과 해양자원 경쟁을 멈춰야 한다. 내 땅, 네 땅이 모두 물에 잠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한 분열과 대립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매우 답답하다. 더 이상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 현재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분명한 현실이지만, 인류의 멸종을 앞당길지 이를 막을지는 결국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 대책과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등의 작은 선택들이 모이면 미래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자손과 후손에게 돌아갈 것이다. 

- 지구별에서 태어난 우리의 영적 사명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속에서 신과 부처를 찾아내야 한다. 이를 통해 이환난의 시대를 잘 이겨내어 우리의 영혼을 더 높은 진동수로 발전시켜 원래의 고향별로 돌아가야 한다.

- 우리가 행하는 작은 선행들의 에너지가 모이면, 내일 다가올지도 모를 지구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마음선원의 대행 큰스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가 있으니, 마음이 밝은 자들은 매일 밤 촛불을 켜고 일심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나라가 처한 위기를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덕분일까? 다행히 아직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은 때때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과 생각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의지에 의해 '선한 의지'를 선택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부정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내 책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에서 '미륵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미륵불은 '미래'의 변형으로, 미래에 올 부처님을 뜻한다. 그러나 미륵불은 특정한 존재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을 닦고 선한 의지를 행하다 보면, 미륵불이 가르치는 우리 안의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의 예수 재림설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예수가 죄 많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간 그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꿈속에서라도 우리는 빛의 천사로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선한 마음과 착한 행동을 실천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며, 지구는 ...

- 나무가 가진 생명적 에너지장은 인간의 에너지장과 닮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수심이화 修心而化'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물질이 형상화(상념체)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리딩은 수목장의 나무에 의지하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수심이화'의 원리로 해석한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앞서 설명한 양자물리학적 이론이 가지는 신념과도 연결되는 표현이다. 즉, 사람의 상념이 나무와 같은 물질에 영향을 미쳐 영혼들이 그 안식처에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무는 지구의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란다. 어쩌면 나무는 인간에게 우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안테나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말 중에 '청송청죽 도통지원 靑松靑竹 道通地原’이 있다. 이는 ‘푸른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 아래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 (에너지장)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바바라 브레넌 Barbara Brennan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미국 NASA의 대기권 물리학자로 일하다가 나중에 상담가로 전향했다. 그녀는 어릴 적 숲 속에서 눈을 가리고도 나무의 에너지를 느껴 나무를 피해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의 심령적 능력을 자각했다. 이후 그녀는 인체 에너지장의 변화를 보고 병을 치유하게 되었다. 

 
- 성은 단순히 쾌락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절제되지 않은 성적 일탈은 영혼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킨다. 에덴동산에서 이브는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다. 이브를 유혹한 뱀은 사실 쿤달리니 Kundalini를 상징한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는 인간이 가진 일곱 차크라를 열어주는 우주의 예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차크라가 열리면, 송과선과 뇌하수체보다 생식선이 더 활발하게 에너지의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성적 욕망에 지나치게 몰두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를 종족 번식의 본능에 따른 자연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은 순수한 범위를 벗어나 인간 역사의 잘못된 흐름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문제이다. 성 착취나 성적 학대는 인간의 영적타락과 오염의 주범이 되어 영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인 쿤달리니는 '똘똘 감겨진 것'을 의미하는데, 에너지 형태가 뱀의 모양을 하고 있다. 쿤달리니는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속에 잠재된 형태로 존재하는 여성적 에너지이다. 각 개인의 쿤달리니 에너지는 일생 동안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뱀을 깨우는 것이 수행이고 명상이다. 

- 쿤달리니는 힌두교에서 척추의 기저부, 즉 물라다라 Muladhara(자궁)에 위치한 신성한 여성 에너지(샤크티)의 한 형태이다. 쿤달리니는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적 에너지로,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다. 이 에너지가 존재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사라지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여성은 신이 지상에 창조한 가장 위대한 걸작이자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다. 여성은 우주의 창조력이란 축복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번식에서 씨앗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그래서 지상의 삶에서 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카르마를 다 해결하기 전에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맑고 선한 영혼을 가진 여성은 희생과 봉사, 헌신을 통해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일생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한다.  


- 여기서 말하는 여성의 카르마는 일반적인 인류의 업을 말한다. 여성은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직관이 발달해 있으며, 임신과 출산을 경험함으로써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게 된다.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남성에 비해 어려운 환경에서 겸손, 인내, 용서 등의 덕목을 배울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카르마를 더욱 빠르게 정화하기 위해 영혼이 여성을 선택하기도 한다. 

- 목성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장점은 선한 마음과 이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권위적이고 자존심이 강해 마음에 상처를 쉽게 받는다는 단점이 있다. 주피터 Jupiter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에 해당하는 최고의 신이다. 목성은 유난히 밝고 큰 행성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신 마르둑 Marduk의 이름을 얻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신의 이름으로 계승되었다. 신화에서 많은 아내를 둔 제우스처럼 목성도 많은 위성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중 일부 위성의 이름도 제우스의 아내들에게서 따왔다. 중국에서는 목성의 공전주기가 약 12년이라는 점에서 이를 십이지와 연관 지어 세성이라 불렀다. 또한 도교에서는 대세성군이라 하여 흉신의 대표격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여겼다. 

- 화성의 영향을 받는 영혼들은 불같은 기질과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데, 특히 화성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만약 자신에게 적의와 같은 감정이 있다면,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방법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헌신의 마음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이 지구별에서의 삶의 균형이 보다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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