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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민]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 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5. 12. 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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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차승민
출판 : 아몬드
출간 : 2021.07.15


       

 

혼란스러울 때마다 세포를 생각한다.

특정 지을 것 없는, 하나의 셀(cell). 

 

세포의 생존을 위한 세포막.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것은 배출한다.

그러면서도 유연성과 유동성을 가지고 내부를 보호하고 정체성을 유지한다. 

때로는 '항상성'을 위해, 전체의 생존을 위해 아까까지는 흡수하던 물질을 배출하기도 한다.

 

'세포막'은 분자끼리 강력하게 연결된 랩이나 종이 같은 것이 아니다.

물 위에 둥둥 뜬 거품들처럼 쉽게 뭉쳤다가 쉽게 흩어지는, 일종의 기름막 같은 인지질 막이다.  

 

절대적인 완결무결한 원칙보다

그 순간과 상황에서의 최선과 자신만의 중심을 찾는 쪽으로.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역시 그런 책이다. 

막연하게 품고 있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약간 다른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러므로 용서해야 한다가 아니라, 앞으로의 상호 안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건강한 세포들은 조직을 형성할 수 있다. 

더 큰 개념으로, 하나의 개체를 형성할 수도 있다. 

 

건강한 개개인이 모여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개념과도 유사하다. 

 

모든 것이 버거울 때는, 일단 하나의 세포만 생각하자.

여유가 생겼을 때는, 세포 단위가 아닌 조직 단위, 개체 단위에서-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의 이익을 생각하자.

자신의 건강과 정당한 이익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고. 

        

   


   

 

추천의 말



정신질환 범죄자 중 일부는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소로 간다. 저자는 그곳에서 일하는 전문의다. 내 잔혹한 피고인은 저자의 애처로운 환자가 된다. 치료감호소의 근무 여건은 악명 높다. 정신질환자 일고여덟 명이 한 방을 쓰고, 풀타임 의사는 다섯 명뿐이다. 급여는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의사 일인당 환자는 160명으로 일본의 20배다. 감호소는 오래전부터 포화상태다. 밀려드는 새 환자의 자리를 만드느라 기존 환자를 교도소나 사회로 빨리 돌려보낸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잘 알지만 별 대책은 없다. 아니, 의료진의 희생이 유일한 대책이다. 환자도 의료진도 위태롭다. 그런데도 저자는 담담하다. 환자가 있는 한 의사는 치료할 뿐이란다. 사명감 따윈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 공포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직도 그날 기억을 떠올리면, 그리고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직업이 같다는 이유로 이런 기분을 느끼는데 유족의 마음은 오죽할까. 세상이 원망스럽고 가해자에게 그리고 정신질환자들에게 분노를 퍼붓고 싶을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유족은 크나큰 슬픔을 삭히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외쳤다.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건이 정신질환자를 향한 낙인과 혐오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고, 끝까지 동료와 환자를 생각하던 고인의 마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 내 환자들은 누구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다. 범죄자이자 정신질환자다. 내가 범법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이 병원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첫 반응은 "무섭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고 임세원 교수님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어쩌면 너무 겁 없이 이곳에 온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임 교수님의 유족이 건넨 이야기를 접하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나만은 이들을 '애처롭게' 생각해주고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말이다. 

- 이 책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고민이 많았다. 범죄자를 너무 감싸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혹시 환자에게도 해가 되지는 않을까.

-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주로 성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 말라는 의미로, 최근에 N번방 사건 가해자에 관해 언론이 도 넘는 내러티브 보도를 하자 이 말이 많이 쓰였다. 누가 봐도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부여하는 지나친 서사에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허락되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그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벌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사전에 계획하고 특정한 의도를 가진 채 범죄를 저지른 '악인'과 도매금으로 '나쁜 놈'으로 몰린다. 나는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모두 대변할 마음도, 능력도 없다. 또 이들을 그저 불쌍하게만 보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 병원에 오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정신질환 증상이 무엇이었는지,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의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다. 

- 이 책에는 내가 직접 만났거나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환자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환자 이름을 익명으로 하고, 내용을 각색해 대상을 특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널리 알려진 사건을 다룰 때만 실명을 적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의 목록에서 지우거나, 덮어놓고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관리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위험할 뿐, 모든 정신질환자가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한마디 거들 수 있다면 좋겠다. 

- 이 책에는 내가 자주 들었던 질문들, 이를테면 "환자가 무섭지 않느냐",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이 감형받으려고 속이려 들면 어떻게 알아보느냐"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도 담겨 있다. 또 '나라가 왜 범죄자를 치료해야 하는가', '화학적 거세는 인권침해가 아닌가', '사이코패스나 자발적 음주도 심신미약으로 인정해줘야 하느냐' 같은 논쟁적 테마에 관해서도 전문가 입장에서 정확한 정보와 솔직한 의견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 나는 평범한 정신과 의사다. 엄청난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선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기 때문에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버틴'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을 구원해야겠다는 거창한 마음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신과 치료를 제대로 받아야 할 환자로 대하기 때문이다. 

- 정신의학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적어도 3년은 양육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커야 한다고 설명한다. 제때에 사랑받지 못하면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 환자들에게는 바로 지금이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때다. 입원하고 있는 지금 이때 충분한 치료와 관심을 받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냥 범죄자라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조치 없이 방치되고 비난받는다면 이들은 분명히 또 다른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 꽤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왜 범죄자를 치료하는 데 우리 세금을 써야 하느냐고. 솔직히 나도 예전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환자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들에게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치료는 범법 정신질환자 개개인을 위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다. 이들을 치료하는 일은 결국 재범 방지로 이어진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긴 어렵지만 '재범을 막는 일'은 대개의 피해자가 원하는 일일 테고, 사회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 환자가 자신의 주치의나 다른 의사 혹은 간호사들을 고소하거나 민원을 넣는 일은 국립법무병원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워낙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면서 법에 빠삭하게 된 환자도 많고 또 이렇게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좋아하는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환자에게 고소를 당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두렵지는 않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성실히 답변서를 써서 공주 경찰서로 보내면 거의 대부분이 기각된다. 하지만 B처럼 자신의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주치의로서 안타깝다. 단지 나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에 복귀해서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자신이 겪는 일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면 살아가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 가끔은 면담을 하다 사소한 일로 다른 환자를 고소하겠다고 씩씩거리고 흥분하는 환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 모든 것을 고소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사회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텐데 그럴 때마다 고소를 남발하면 결국 무고죄가 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좀 해보자고.  


- 폐쇄 병동에 관한 가장 큰 오해가 '환자를 교도소처럼 좁은 병실에 가두어 생활하게 한다'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병실 문은 항상 개방해 둔다. 단지 병동과 외부를 연결하는 가장 큰 문을 열쇠로 잠가 통제한다. 환자가 의료진 몰래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외부인이 함부로 병동 안으로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 병동을 폐쇄하는 이유는 뭘까? 폐쇄병동의 가장 큰 목적은 환자의 안정이다. 증상이 심한 정신질환자는 자극을 최소화하려면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서도, 너무 많은 일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곳은 당신이 아는 의사와 간호사, 보호사들만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어야만 외부로부터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는 취약한 환자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렇게 제한이 많은 곳에서 환자들은 무엇을 할까? 폐쇄병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관리하도록 돕는 장소다. 전공의 1년차 때 환자들과 함께 폐쇄병동에서 생활하며 좋았던 점은 규칙적이고 단순한 생활 패턴 속에서 살게 되니 무료하지만, 잡념이 사라지고 내 생활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불안정한 상태에서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제때 식사하고, 제때 약을 먹고, 제때 잠을 자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게 폐쇄병동의 목적이다. 

- 피부과 의사는 "어디가 가려워요?", 산부인과 의사는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신과 의사는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할까? "밥은 잘 먹어요? 잠은 잘 자요?"가 아닐까. 지금도 회진할 때 잠 잘 자느냐, 밥 잘 먹느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는데, 환자들은 왜 선생님은 매번 똑같은 것만 묻느냐고 한다. 그럴 때면 근엄하게 대답해 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처럼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고.

- 무라카미 하루키는 루틴을 활용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조깅이나 수영을 하고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는 그는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이 정신력과 체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규칙적인 운동이 몸의 근육을 길러주듯이 규칙적인 일상이 마음의 근육을 길러준다. 몸 근육을 기르면 갑작스럽게 달리기를 하거나 어떤 동작을 취해도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고 식사를 하는 루틴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기른다면,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환자가 속이려고 할 때 알아내는 법]
형사정신감정에 대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피감정인이 의사를 속이려고 할 때 어떻게 알아내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라도 진료실에서 한두 번 잠깐 얼굴만 본다면 피감정인의 거짓된 증상 호소에 속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 기간은 한 달이다. 그 긴 기간 동안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계속 피감정인의 행동을 관찰해 면밀히 기록을 남기고, 정신과 의사도 수시로 면담하기 때문에 피감정인이 속이기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피감정인이 하루 24시간씩 한 달 내내 계속 미쳐 있는 척 연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정신질환자가 24시간 미쳐 있는 것은 아니다]
2017년에 형사정책연구원에서 형사정신감정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그때 같이 연구하던 법학박사, 법대 교수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법대에 들어가 법학과 의학 분야를 두루 섭렵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바로 법조인들은 정신질환자가 24시간 내내 미쳐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었다.

- 이러한 내용을 작성해서 감정서를 보냈는데, 법원에서 추가 질문이 있다고 했다. 질문 중 정신질환에 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오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피감정인이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고, 변호인과 이야기할 때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가족들에게 보였던 공격성이 관찰되지 않고 차분했는데, 조현병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증상이 심한 환자는 하루 종일 기괴한 행동만 하고 누가 봐도 이상한 말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식사나 용변도 스스로 해결하고, 위생 관리도 잘하며 이웃들과도 문제없이 지낸다.  


- 인간에게는 어릴 때 어머니를 독차지하려는 마음, 즉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보고 콤플렉스를 느끼며 증오하는 심리가 있다는 이론이다. 이때 제대로 된 아버지상을 만나면 증오가 선망으로 바뀌고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좋은 아버지상을 만나지 못하면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소하지 못한 충동성과 불편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김성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모든 걸 다 받아주고 자애롭기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엄할 때는 엄하고 다정할 때는 다정한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유 없이 때리는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어린 아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아버지가 자기를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적절하게 해소되었어야 할 공격성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래서 주눅 들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는 공격성이 폭발적으로 분출된다. 김성수의 이런 면은 군대 훈련소에서도 나타났다. 권위적인 대상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켜 4주 훈련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었다. 

- 내가 감정을 마칠 때까지도 김성수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계속됐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악마처럼 묘사되고 보도됐다. 물론 김성수가 저지른 범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김성수를 면담하고 난 뒤부터는 나 혼자만이라도 무턱대고 그를 비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수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굉장히 많이 표현하고 힘들어했다. 병동에서도 처음에는 식사도 하지 않고 대체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내가 해준 말은 한 가지였다. 당신이 한 일을 충분히 반성하는 과정, 그 속죄하는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고. 
 
-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폭력의 피해자는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나중에 어쩌면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 가해자가 되면 그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가정 폭력은 단순히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다.  

- 아니 짐승도 아니고, 어떻게 자신의 딸이나 손녀를 대상으로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인가. 특이할 만한 점은 피해자가 여자아이인 경우를 많이 보도하지만, 연구 결과에 의하면 피해자의 60퍼센트가 소년이다. 소년이든, 소녀든 피해자 입장에서 몇 번을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범죄인 것은 분명하다. 

- 성충동 약물치료는 앞서 말했듯이 가역적인 치료다.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보통 3년의 보호관찰이 끝나고 치료를 종료하면 대상자들의 남성호르몬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성적 충동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충동 약물치료를 종료한 이들이 재범을 저지른 적은 없다. 

- 성충동 약물치료는 단순히 남성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치료의 장점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성범죄자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음지가 아닌 양지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에게 그냥 전자발찌만 채워둔다면 보호관찰관 혼자 관리하느라 애쓰는 것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치료를 받는 환자는 한 달에 한 번 보호관찰관을 만나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온다. 병원에 오면 피검사도 하고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는다. 그러면서 또 여러 병원 직원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도 하고 근황도 묻는다. 물론 의사도 만난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요새 힘든 것은 없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 사는 이야기를 한다. 또 심리치료사도 만난다. 

- 병동에 반사회성 성격장애 환자가 입원하면 정신과의사 대부분이 매우 힘들어한다. 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이 결국은 반복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병동에서 충동성을 자제하고 잘 지내는 듯하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고, 2주 정도 지나면 슬슬 본색이 나온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거짓말하는 건 기본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조롱하고 병동 규칙을 허수아비로 만든다. 다른 환자의 물건을 훔치고,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환자를 협박해서 성적으로 괴롭히거나 때리기도 한다. 지능이 높은 반사회성 성격장애 환자는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의료진 사이를 분열시키거나 다른 환자와 의료진과의 치료 동맹도 깬다. 그리고 병원이 교도소보다 훨씬 편하고 좋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의료진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려고 한다. 

- 나에게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장애 환자가 있다. H는 동네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자주 돈을 내지 않아 경찰서를 밥 먹듯이 드나들던 사람이다. 법적인 문제가 반복되자 책임을 회피하려고 스스로 도망치듯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 처음 몇 달은 매우 모범적으로 지냈다. 병동에서 증상이 심해 자기 관리를 못하는 환자를 자발적으로 돕기도 하고 병동생활을 하며 불편한 점을 다른 환자 대신 간호사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양상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분위기를 장악했다고 생각하자 병동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 들었다. 예를 들면 환자 자치 모임에서 정한 오전 탁구 시간을 다른 시간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오전에 낮잠을 자야 하는데 탁구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간섭 대상은 점점 직원으로까지 확대됐다. 간호사가 병실 위생 관리 규칙을 설명하자 듣기 싫어하는 것은 물론 자신은 지킬 수 없다며 거부했다. 간호사뿐 아니라 주치의인 나도 조종하려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수시로 면담하기를 원했으며, ...

- 아직도 가끔씩 H가 면담실 앞에 서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나를 부르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이 당혹스럽고 불쾌했던 그 순간의 감정이 떠오른다. 그에게는 병동 규칙도, 사회 법규도, 사람들 사이의 질서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만 중요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고 들 뿐이었다. 이렇듯 반사회성 성격장애 환자들이 입원하면 병동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지옥을 맛본다. 

- 환청이나 망상 치료제를 엄청 많이 때려 부어도 별 효과가 없다. 그래서 정말 나쁜 의도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심신미약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법정신의학에서는 '정신질환이 범죄를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인지', '정신질환으로 인해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정신이상 행동을 보일 때 구금보다는 정신과 치료를 하는 것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긴 하지만, 모든 정신이상 행동에 면죄부를 씌워주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조현병 환자나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정신감정 문제가 뉴스에 보도되면 인터넷 댓글창이 폭발한다. 일부러 환청이 들리는 척하는 것일 수 있다. 아프면 다 봐줘야 하나 등 정말 날선 반응이 많다. 모든 댓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치료받아야 할 정신질환자와 사회규범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는 사이코패스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리고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감정을 하면서 이 둘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예전에 읽은 <괴물의 심연>은 뇌 과학자가 뇌 영상사진들을 모아서 분석하던 중 우연히 너무나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골랐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뇌였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사이코패스는 유전과 양육,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 저자가 자신의 뇌를 살펴본 후 가족 내력을 거슬러 오르니 조상 중에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적절한 양육을 받아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고 뇌 과학자로 성장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통해 저자는 '어떻게 키우느냐'가 '범죄자가 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이기적인 욕망이 있다. 자기 이익이 최우선이고, 자신이 제일 편하고 싶은 욕망. 빨간 신호등에서 기다리기 싫고, 숙제하기 싫고, 비싼 물건을 그냥 가져오고 싶고, 성욕이 생길 때 상대방과 합의 없이 나의 욕구만 채우고 싶은 욕망. 이런 욕망에 굴복해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사회가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것이 작동해 스스로를 감시하고 조절한다. 이것을 정신과에서는 초자아(superego)라고 부르는데, 본능을 조절하는 일종의 '감시자'다. 하지만 양심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때 '양심에 구멍이 났다'라고 말하는데, 실제 사이코패스를 분석할 때 '초자아 공백 상태(superego lacuna)'라는 표현을 쓴다. 초자아가 스스로를 감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고려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사회 규칙이나 타인의 이익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 조현병은 대표적인 정신질환이다. 100명 중 한 명 꼴로 발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흔하고 그 증상 또한 다양해 많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 조현병 범죄를 각인시킨 사건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페미니즘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항상 이 사건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자가 '여자이기 때문에'일어난 살인사건이었기에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고, 다수의 언론이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보도했다. 대개의 정신과 의사에게 이 사건에 관해 묻는다면,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전형적인 피해망상으로 인한 살인사건이라고 답할 것이다. 

- 의사로서 다시금 치료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입원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약을 중단한 적이 없었고 세밀하게 조절해 가며 먹였는데, 대체 망상이란 얼마나 끈질기고 부서질 수 없는 태산 같은 것인가.

 

- 정신과 의사의 치료 지침 중에는 환자와 망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의 태도에 관한 것도 있다. 망상을 인정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망상을 인정하면 환자의 잘못된 믿음에 동조하는 셈이라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망상을 부정하면 의사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다며 환자가 의사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망상 때문에 환자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괴로움과 불안감은 거짓이 아니다. 

- 그 이후에도 G는 가끔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어머니에게 더 잘했어야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어머니가 자기 밥에 독을 탄 것은 잘못이라는 말로 끝맺는다. 벌써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째지만 G는 어머니가 적이었던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미국에서도 정신병원 입원이 까다로워진 이후에는 살인사건 수가 증가했는데, 정신과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면서 살인사건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제때에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이 폭력적인 범죄의 증가와 깊이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벌써 여러 번 강조했지만, 모든 조현병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은 위험할 수 있다. 치료받은 또는 치료 중인 조현병은 위험하지 않다. 

- 사실 약물 없이 면담만으로 우울증이 좋아지기는 어렵다. 그리고 꾸준한 면담 없이 그냥 약만 먹는 것도 진정한 치료가 아니다. 두 가지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우울증은 치료된다.

- [우울증 상태에서 범죄가 가능할까?]
국립법무병원에 근무하기 전에는 우울증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조증 상태에서야 워낙 머릿속에서 생각이 날아다니고 현실 판단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만난 우울증 환자는 대부분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어 집 밖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우울증 상태에서 무슨 범죄를 저지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G를 만나고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 병동에서 항상 차분하게 남을 돕고 열심히 생활하는 G는 대부분 조현병이나 경도지적장애 환자들이 많은 병동에서 보기 드문 우울증 환자다. 아무래도 경도지적장애 환자나 정신병적 증상이 눈에 띄는 조현병 환자는 일상생활의 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활동에서 완성도가 낮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조울증이나 우울증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러 가지 활동을 잘 해낸다. G는 성실한 아버지이자 대기업에 다니던 건실한 직장인이었다.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라서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다. 두 아들과 부인에게도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그러다 믿었던 후배가 하던 사업에 거금을 투자했는데 후배는 파산했고 금전적인 손해에 대해 G도 같이 책임을 지게 되면서 힘들어졌다. 그 뒤로 잠도 자지 못하고, 모든 일에 기운이 없고, 불안하고, 밥맛이 없어졌다. 직장에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휴직을 권해 병가를 내고 몇 개월간 쉬었다. 정신과에 찾아가서 약도 처방받았다.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G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인지라 직장을 계속 쉴 수는 없었다. 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할 날이 다가오자 G는 '또다시 직장에 가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G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참다못한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남자가 돼서 대체 왜 그러느냐." 그 말은 불안해하던 G를 자극했다. G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내에게 덤벼들어 목을 졸랐다.

- G는 이 사건으로 정신감정을 받는 과정에서도 우울증 증상 때문에 힘들어했다. 의사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병실에서도 거의 누워만 지냈다.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우울감과 죄책감에 시달렸고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제대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모든 행동이 느렸는데 이것 때문에 또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G는 징역 5년형과 치료감호형을 선고받고 입원치료를 하게 되었다. 충분한 기간 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상태가 호전됐고 국립법무병원에 온 지 7년째에 퇴원했다. 

- 우울증 중에 좀 특별한 종류가 하나 있다. 바로 산후우울증이다. 보통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은 많이들 겪는데 나도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경험했다. 덜컥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변화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고, 생소하고 당황스러운 데다 갑작스러웠다. 출산하고 하루 이틀은 아이도 신기하고 이 상황도 신기하고 벅찬 마음이 들더니, 산후조리원으로 간사흘째에 이유도 없이 다 싫고 귀찮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한참을 울다가 '내가 대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레지던트 동기한테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진단을 내려줬다.
"언니. 'postpartum blue' 같은데?"

- 그때부터 머리는 내 상태를 이해하지만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2주 정도 지나니 처음에 느꼈던 심한 우울감은 사라졌다. 이렇게 분만한 지 3일에서 5일 이후 며칠 동안 슬픔, 우울감, 혼란스러운 감정 같은 기분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산후우울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대개는 저절로 호전되기 때문에 치료는 필요 없지만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산후우울증'을 고려해야 한다. 산후우울증의 경우 분만한 지 12주 이내에 증상이 시작되고 우울한 감정, 과도한 불안, 불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고픈 생각에 빠지는 경우에는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 Y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국립법무병원에 왔다. Y는 평범한 엄마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았고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남편의 사업이 점점 어려워졌다.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노래방 도우미 일을 나갔고 그렇게 번 백만 원 정도로 한 달을 겨우 버텼다. 그러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처음에는 매우 기뻤으나 임신한 후일을 그만두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남편과 갈등이 생겼다. 둘째를 출산했는데 여전히 돈은 없고 남편과 자주 다투게 되니 Y는 힘들었다. 도와주지 않는 시댁이 미웠고 일찍 돌아가신 친정부모님도 원망스러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았고 세상이 자신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둘째 딸의 기저귀랑 분유를 사고 나니 돈이 다 떨어져 이 일로 새벽까지 남편과 다퉜다. 싸우다가 남편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하자 Y는 더욱 절망했다. 남편과 이혼하면 딸이 보육원에 갈 텐데, 그러면 자신처럼 딸도 버림받을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버림받게 하느니 그냥 딸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남편이 나가자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으나 결국 딸만 죽고 Y는 살아남았다. 

- 처음 Y의 주치의가 되고 난 뒤 환자가 계속 우울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면담을 했다. Y와는 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우울한 이유를 모를 수는 없었다. Y의 사건 기록을 읽으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Y는 분명 범죄자다. 하지만 Y의 병과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저 범죄자라며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Y는 둘째를 낳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우울했고 도와줄 이는 없었다. Y는 지금도 면담할 때 사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고 나도 굳이 꺼내지 않는다. 지금 Y의 기분과 증상에만 집중하려 한다. 지금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죗값을 치르며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 말에 동의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감기가 폐렴이 되고 잘못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가족과 사회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 우리 병원 환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사건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의 피해자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병동으로 환자를 만나러 간다. 

 


- 배운 것 없이 맨몸으로 가정을 꾸린,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던 할아버지는 왜 아내를 그리 믿지 못하게 된 걸까. 안타깝게도 망상장애는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 조현병, 조울증 환자는 항정신병약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머리를 가득 채웠던 기괴한 피해망상, 과대망상이 조금씩 옅어진다. 그러나 망상장애 환자들이 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지진 않는다.

 

- 망상장애 환자가 이야기하는 망상의 내용들은 가만히 들어보면 절대 기괴하지 않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그럴듯한 내용이기는 하다. 그래서 망상장애 환자들은 망상에서 비롯된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서 재판을 받게 되거나,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족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낸다.

- [완치가 아니라 기능 보존]
다수의 연구는 노인 범죄를 신체적·심리적 요인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먼저 신체적으로 노인은 노화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하락하면서 의심하고 자주 다투고 고집을 부리는 등의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심리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퇴직으로 인한 정체성 상실과 경제적 어려움, 자녀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자괴감,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고독감, 일상생활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감 등이 우울증을 심화시키고 이런 모든 것이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 예전에 노인정신의학회 강의에서 우리보다 한참 전에 고령화 사회를 겪은 일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은 벌써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노인의 생활을 돕고 있었다. 방송사에서는 노인을 위한 근력 운동 영상을 꼭 방송한다. 승강기 안에는 노인이 잠깐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구비되어 있고, 택시나 버스에도 노인이 넘어지지 않도록 곳곳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면 퇴원 후를 대비하기 위해 입원 3일 후부터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이 되어 환자를 집중 상담하고, 퇴원 후 생활환경과 가족, 주로 돌볼 사람을 조사한다. 퇴원 직전에는 실제 사는 곳을 방문해 구조를 살피고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수한다. 집에서 살기 어려운 경우에는 노인 보건 시설에 거주하도록 알아봐 주거나 생활 서비스가 모두 제공되는 노인 홈을 알선해 준다. 노인 전용 주택을 지을 때는 걸려 넘어질 만한 문턱을 모두 없애고 집 안 곳곳에 손잡이를 단다. 또 일본 전역에 노인들끼리 어울려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고령자 클럽도 20만 개나 있다. 초고령 사회가 될수록 고립되면 더욱 노쇠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제도와 시설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초고령 사회에서 의료의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기능 보존'이다. 

- 아직 우리나라는 고령 사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 노인병원에만 노인 친화적인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법무병원만 해도 지금은 노인 환자가 전체 환자의 10퍼센트에 못 미치지만 장기 입원이 늘수록,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노인 환자 수는 많아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이곳에 입원한 노인이 생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 사람들이 대인 관계를 맺으면서 종종 "저 사람은 성격이 더러워"라고 말한다. 성격이 더러운 것도 병인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맞다. 성격이 너무 더러워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고 자기 인생도 괴롭히고 있다면 성격에 병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격은 무엇인가? 백과사전은 성격을 "개인을 특징짓는 지속적이며 일관된 행동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성격은 어떤 사람이 사회에서,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응하는지를 나타내는 고유의 특성이다. 이런 성격이 너무 이상해서 주변 사람이 힘들고 자기도 힘들고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 바로 '성격장애'다. 

- 또 어렸을 때 자신을 성추행했던 사촌 오빠, 강간했던 남자 친구 등 과거 일이 떠올라 너무 괴로웠다. 먹고사는 문제도 힘들었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은 데다 전과자인 자신을 써주는 일자리가 없었다.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나 어머니를 칼로 찌른 자신을 오빠와 동생이 미워할 것 같아서 몇 번하다가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 주변에 누군가가 어슬렁거리는 듯해 겁이 났고, 그 사람이 마치 자기를 해칠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들이 떠올랐다. 참다못한 B는 칼을 챙겼다. 그리고 그 남자를 찌르려고 마구 쫓아갔다.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이 B를 말렸고 그 남자는 죽지 않았다. 그렇게 B는 국립법무병원에 또다시 오게 되었다. 

- 두 번째 입원한 B는 처음에는 불안정함 그 자체였다. 어느 날 하루는 B가 다른 사람을 죽일 만큼 때렸다고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익히 B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식사 시간이었는데 옆자리에 서 있던 다른 환자가 일부러 들리게 자기를 비웃었다는 이유로 정말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심하게 때린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가 불안정할 때는 어떤 다른 정신질환보다 정신병적 증상이 심하다

- 항정신병약제 주사를 놓고 필요하면 사지를 침대에 고정하는 강박 조치까지 한 후 겨우 입원실에 올라간다. 물론 몇 번 설득하면 못 이기는 척 손잡고 입원실로 올라가는 환자도 있지만 가끔씩 이렇게 실랑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환자를 진료할 때 정신과 의사의 내공이 나오기도 한다. 전공의 1년차일 때는 소위 '말빨'이 없어서 말싸움에서 지거나 환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경력이 오래될수록 차분하고 휘말리지 않는다. "입원치료가 필요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병식이 없는 환자는 대개 "나를 환자 취급하는 거냐"며 화를 낸다. 내가 이럴 때 쓰는 방법은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 보니 정말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환자는 더 크게 화를 낸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더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꼭 입원하셔야겠네요"라고 말한다. 어이없는 말싸움 같지만 이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고, 여러 이유를 들어 설명해 봐야 환자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 어떤 의사는 환자가 너무 공격적이지만 않으면 환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보호자와 함께 다정하게 입원실로 올라간다고도 하고, 어떤 교수님은 별말씀 안 하시고 입원하지 않겠다는 환자 이야기에 공감해 주며 쭉 들으시다가 아무 말 없이 입원장만 쥐어주신다고 들었다. 이러면 환자들은 엉겁결에 입원한다고 한다. 아마 병식이 없는 환자랑 설전을 벌여야 별 소득이 없음을 각자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다들 말을 줄이고 조용한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 병식이 없는 환자를 입원시키고 난 뒤에도 주치의는 편치 않다. 퇴원을 언제 할 수 있는지, 약은 왜 먹어야 하는지 회진할 때마다, 면담할 때마다 묻고 소리도 지르기 때문이다. 전공의 1년차 때 공격적인 환자를 어렵게 입원시킨 적이 있는데, 당직 때마다 그 환자가 당직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악몽을 꿨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환자가 무서웠다. 그래도 한두 달 지나면 약물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환자도 적응하기 때문에 조금씩 수월해지기는 하지만 병식이 없는 환자의 치료를 시작하는 일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 국립법무병원에서 일을 할 때 어떤 면에서 수월한 점은 이곳으로 오는 환자들의 입원 여부를 주치의인 내가 아닌 사법부에서 결정해 준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보호자가 갖은 애를 써서 진 빠지게 입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판에서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아 오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재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증상과 그 증상 때문에 일으킨 사건을 직면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 민간 정신과 병원에 가보면 길게는 10년씩 입원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가 간혹 있다. 이들을 보면서 혹자는 병원이 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담당 주치의가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입원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일주일만 그 병동에서 생활해 본다면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환자를 폐쇄병동에서 내보내는 것이 과연 인권을 지키는 일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입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 체계 없이 퇴원시켜 지역사회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또한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 나는 진정한 환자의 인권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정신질환자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나는 모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증상이 발병했을 때 재빨리 치료받는다면 충분히 일상을 유지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범죄만 보고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기 전에, 적기에 치료받을 방법이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한 번쯤 떠올려주었으면 한다. 

- 보호관찰관을 괴롭히고 준수 사항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보호관찰관의 관심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보호자가 없거나 있다 해도 환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때 관찰관은 제2의 보호자처럼 이들을 챙긴다. 만약 입원이 필요하면 지역 내 정신병원을, 돈이 없다고 하면 나라에서 지원받을 만한 것들을 알아봐 준다. 그 밖에도 소소하게 생일을 챙겨주거나 힘들 때 상담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등 여러모로 마음을 쏟는다. 

- 환자의 인생에 있어서 병원 생활보다 퇴원 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범법 정신질환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중 편견의 굴레에서 살아가기 십상이다. 편견의 굴레에 갇히면 생기지 않아도 될 사건 사고가 더 많아진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양지로 나와 치료를 잘 받고 재범 위험성도 줄어든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앞서 말한 사회복지사와 보호관찰관이다. 

- [잘 지내는 환자, 못 지내는 환자]
국립법무병원에서 퇴원하면 10년 동안 무상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약값도 무료고 면담료도 무료다. 우리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서 오기 힘든 사람을 배려해 전국 5개의 국립정신병원에서도 무상 외래 진료가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는 하나다. 재발을 막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제도를 잘 활용해 꾸준히, 그것도 혼자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도 상당히 많다. 이런 환자를 진료할 때는 참 마음이 벅차다. 환자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정신과 의사, 힘들어도 아직은 할만하지' 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한다.

- 두 번째는 아직 더 입원해야 하는 환자를 퇴원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과에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 국가는 6개월에 한 번씩 이 사람이 계속 입원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심사한다. 이를 '계속입원심사'라고 하는데, 각 지자체 위원회에서 회의를 통해 환자의 계속입원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주치의가 환자에게 증상이 남아 있고 보호자가 아직 퇴원을 원하지 않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외래 통원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퇴원 결정이 나는 일이 잦아졌다. 환자가 아직 퇴원할 상태가 아닌데, 자꾸 퇴원시키라고만 하니 보호자는 난감하고 주치의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그렇게 퇴원한 환자 중 한 명은 혼자서 지내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119에 실려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퇴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계속입원심사에서 퇴원 명령이 나는 바람에 환자 오빠가 부랴부랴 월세 집을 얻어준 환자였다. 미혼이고 부모는 돌아가셨고 오빠는 결혼해서 함께 살 형편이 되지 않아 혼자 살게 된 환자는, 처음에는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홀로 지내면서 약을 먹지 않았더니 여러 가지 정신병적 증상이 재발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수돗물에 독약을 탔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으며 독약을 탄 수돗물로는 아무것도 해 먹을 수 없으니 물도 먹지 않고 밥도 해 먹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 다행히 잘 지내는지 확인하러 들른 오빠에게 발견되어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오게 됐다. 이는 비단 이 환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퇴원할 준비가 되지 않은 환자에게 퇴원을 강요하는 상황이 2016년 이후 더욱 잦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 대체 2016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럴까. 2016년 5월 국회에서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다. 개정 시행은 1년 뒤였지만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정신병원이 부당하게 인신구금을 하고 있다는 관점이 반영된 터였고, 정신과 의사들이나 정신병원협회 같은 관련 단체와 공청회 한번 없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2016년 9월 29일 헌법재판소가 당사자의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신속하고 정당한 치료를 통해 정신질환자 본인과 사회의 안전을 지키려는 입법목적과 수단은 정당하지만, 강제입원이 신체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일은 사람들에게 강제입원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각인시켰다.

- 그렇게 사직서를 던졌다. 몇 개월을 쉬다가 고민 끝에 국립법무병원으로 이직했다. 그렇게 나는 민간 정신병원을 떠났고 2017년 5월 30일, 예고대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국립법무병원은 치료감호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었고, 난 지긋지긋한 정신건강복지법의 굴레에서 당장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내가 잠깐 도망친 것일 뿐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동안에는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환자의 인권을 생각해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섬세하게 현장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을까? 환자가 퇴원한 후 지낼 거주시설이나 재활시설 등 관리 체계가 잘 갖춰진 후에 개정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우리나라는 지금 혼란 그 자체다. 

- 전체 환자 중 조현병 환자의 비중이 40.9퍼센트를 차지했는데 2018년에는 50.9퍼센트로 늘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까다로워지면서 예전 같으면 쉽게 입원이 가능했던 조현병 환자들이 지금은 제때 입원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지 못하자 결국 일부는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국립법무병원에 오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7 경찰통계연보에 의하면 정신질환 범죄 수가 2011년 5537건에서 2017년 9027건으로 증가했다. 살인, 강도, 방화, 강간, 폭력과 같은 심각한 5대 범죄는 509건에서 813건으로 증가했다. 절대 가볍게 볼 증가세가 아니다.

- 정신질환 범죄는 늘고 환자가 치료 기회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사법입원제도다. 어느 제도든 궁극적으로 완벽하지는 않겠으나 환자의 인권과 치료 모두를 고려한다는 측면에서 또 절차적 정당성과 안전장치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사법입원제도는 그나마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가족과 의사에게 맡겼던 강제입원의 결정권을 국가가 이제는 되찾아 와야 할 때다. 
 
- 내가 쓴 이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이 국립법무병원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며 대체 어떤 곳인지, 왜 요즘 들어 정신질환 범죄자가 더 늘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치료받으며 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다고 정신질환자가 '친근한 사람'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정신질환자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아마 내일 출근하는 차 안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또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고 병동에 가게 되겠지. 당분간은 지금처럼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할 생각이다. 그게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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