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마이클 루이스 / 장진영
출판 : 이레미디어
출간 : 2025.01.24
크리스마스가 코 앞인데, 나의 주식 계좌는 산타랠리를 시작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상승만 먹고 안전 중심으로 바꿔야지 하다가 물렸는데...
아쉬운 대로 여유자금으로 인버스 ETF로 헷지하는 중이다. 살려주세요
금융 쪽에 깊은 지식이나 경험, 식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투자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결과적으로 손실이 나더라도 배우는 바가 있고 물론 손실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자본과 함께 버는 편이 훨씬 빠르고 큰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력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노동 수익만으로 노후를 대비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고부가 가치를 추구하건, 총수익 증가를 추구하건, 기타 수익 개발을 추구하건 모든 수익에는 세금이 붙는다.
어떤 영역에서 몇 퍼센트의 세금을 낼 것인가-
점점 이 질문이 중요해지고 있다.
<라이어스 포커>는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것 같은데, 상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새로 읽었다.
저자는 <머니볼>, <플래시 보이스> 등을 저술한 마이클 루이스.
개인적으론 그의 책들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잘 안 읽히고 유머코드가 다르다
트레이더가 아닌 채권 세일즈맨의 입장에서 본 월가, 그중에서도 살로먼 브러더스의 이모저모를 담은 책인데- 개인적인 경험들을 나열하는 형태에 가깝다. 금융계 종사자나 진입 희망자들에게는 다르게 읽힐지도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소위 업계 큰손들의 거래가 생각보다 주먹구구식이랄지 충동적이랄지 놀라운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걸 살짝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
하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쓴 책들이 더 재미있으니 그쪽으로 찾아보실 것.
끝.
- 런던 채권 트레이더들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날 굿프렌드가 메리웨더에게 한 말은 살로먼 브러더스가 어떤 곳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전설이 됐다.
"단판 승부. 판돈 100만 달러, 군말 없이 승복하기."
- 메리웨더는 굿프렌드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비즈니스위크 Businessweek>에서 '월가의 제왕'이라 추켜세우는 굿프렌드가 100만 달러를 판돈으로 걸고 단판 승부로 '라이어스 포커'(카드 게임의 일종. 에이스와 킹을 놓고 베팅을 하는 게임이다-역주)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 트레이딩이 마무리되는 오후, 굿프렌드는 메리웨더와 그의 밑에서 일하는 젊은 채권 차익거래 트레이더 6명과 이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의 패자는 대개 굿프렌드였다. 몇몇 트레이더들이 굿프렌드가 게임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사방팔방 전했다. 그가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뭔가 의도가 있어서 일부러 져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 어느 날 굿프렌드는 엄청나게 큰 판돈을 불렀다. 지금까지는 돈을 걸더라도 수백 달러가 넘지 않았다. 100만 달러는 들어본 적 없는 액수의 판돈이었다. '군말 없이 승복하기'는 패자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겠지만 돈을 잃었다고 징징대거나 욕하거나 불평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패자는 그저 쭈그리고 앉아 돈을 잃어 쓰라린 속을 홀로 삭여야 할 것이다.
- 그런데 그는 왜 이런 게임을 제안한 것일까? 월가의 제왕이 아닌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이런 게임을 왜 한 것일까? 무엇보다 굿프렌드는 왜 다른 손쉬운 상대들을 놔두고 메리웨더에게 도전한 것일까? 메리웨더와 라이어스 포커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메리웨더는 살로먼 브라더스 트레이딩룸에서 게임의 제왕이자 라이어스 포커의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 트레이딩룸에서 일하면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굿프렌드 같은 승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마음속에는 어떤 윤곽이 잡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나는 굿프렌드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정도로 그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채권 트레이더가 도박을 즐겼고, 이는 굿프렌드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알았다. 굿프렌드는 안전장치 없이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소년처럼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고 싶어서 이 게임을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메리웨더 말고 더 좋은 상대가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렇게 큰 판돈이 걸린 머니 게임을 할 정도의 현금과 배짱을 지닌 사람은 메리웨더밖에 없었다.
- 이 예기치 못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전후 사정을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메리웨더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경력을 쌓으면서 수억 달러를 벌어온 인물이다. 메리웨더는 표정 관리를 잘해서 어떤 상황에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많은 트레이더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싶어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말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이 돈을 벌고 있는지 아니면 잃고 있는지 드러낸다. 돈이 오갈 때 그들은 지나치게 풀어지거나 과하게 긴장한다. 하지만 메리웨더는 말이나 행동만 봐서는 ...
- 트레이더들의 성격을 시험했으며, 트레이더들의 본능을 날카롭게 연마했다.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좋은 트레이더가 됐고, 좋은 트레이더는 이 게임을 잘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
- 라이어스 포커는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이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선 뒤 남들이 볼 수 없도록 1달러짜리 지폐를 가슴에 바짝 대고 든다. 라이어스 포커는 카드 게임 '다우트 Doubt it'와 비슷하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1달러짜리 지폐의 일련번호를 속여야 한다. 참가자 중 한 명이 값을 외치면 게임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숫자 6이 셋"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게임 참가자가 들고 있는 1달러짜리 지폐의 일련번호에 숫자 6이 최소한 3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누군가가 숫자 6이 3개라고 외쳤다면, 그 사람의 왼쪽에 선 참가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은 2가지다. "숫자 71 셋" 또는 "숫자 9가 셋"이라는 식으로 더 큰 값을 부르거나, 다우트처럼 "너 뻥카지. 까봐"라고 외치는 것이다. 모두가 "너 뻥카지. 까보자"라고 말할 때까지 값은 커진다. 모든 참가자가 패를 공개하는 데 동의하면 각자 들고 있던 1달러짜리 지폐의 일련번호를 공개해 누가 일련번호를 속였는지 밝혀진다.
-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 참가자는 머릿속으로 확률을 계산한다. 무작위로 만든 일련번호 40개에 숫자 6이 셋이나 포함되어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라이어스 포커를 잘하는 사람에게 이런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게임에서 어려운 부분은 다른 참가자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모두가 어떻게 허세를 부리고, 허세에 허세로 대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기 때문에 게임이 진행될수록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 참가자들은 라이어스 포커를 하면서 트레이딩 할 때의 기분을 그대로 느낀다. 기사들이 마상 창시합을 하면서 전쟁터에서 싸우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게임을 하면서 참가자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트레이더가 트레이딩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 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현명할까?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상대는 얼마나 교활하지? 그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나? 모르고 있다면 그의 무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상대가 큰 값을 부르는데 저 사람은 지금 허세를 부리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좋은 패를 갖고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은 내가 멍청한 짓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는 정말 좋은 패를 가지고 있나?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확률을 계산하고, 패턴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가 자신에게 똑같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 퍼스트보스턴 First Boston, 모건스탠리 Morgan Stanley, 메릴린치 Merrill Lynch 등 월가금융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들은 매일 일종의 라이어스 포커를 하고 있는 셈이다. 메리웨더 덕분에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게임은 살로먼 브러더스 뉴욕 지사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 라이어스 포커의 법칙은 높은 수익을 기대하면서 위험이 큰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법칙과 비슷하다. 트레이더는 모든 도전을 수락해야 했다. 이 법칙 때문에, 정확히는 메리웨더 스스로 만든 이 법칙 때문에 그는 굿프렌드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이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알았다. 그의 입장에서 굿프렌드의 도전을 받아들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었 ...
- 내 경력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됐는데 그곳에 발을 디딘 바로 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앞길이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다른 연수생들은 이미 몇 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가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그곳을 드나들었던 모양이었다. 곧장 강의실로 걸어 들어가는 나와 달리, 그들은 복도나 강의실 뒷문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가족처럼 친근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장 좋은 사물함은 그들 차지였다. 그들은 낯선 얼굴을 경계했다. 그들은 구석 자리에 모여 누가 '좋은' 사람이라는 식의 말을 은밀하게 속삭였다. 누가 채권 트레이딩팀으로 가고, 누가 실패자가 될 거라는 정보가 떠돌았다.
- 몇몇 사람은 동그랗게 모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들이 무슨 게임을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라이어스 포커였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욕을 하고, 서로를 흘겨보면서 서로 엄청 친한 친구인 것처럼, 그리고 자신이 베테랑 채권 트레이더인 것처럼 행동했다.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시간이 지나면 살로먼 브러더스가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하지만 투자은행가답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황금색 달러 표시가 크게 그려져 있는 밝은 빨간색 멜빵을 살짝 드러냈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중에 동료 연수생이 좋은 의도로 내게 충고를 하나 해줬다. "그런 멜빵은 매지 않는 게 좋아. 채권트레이딩팀에서는 오직 이사급이나 그런 멜빵을 하고 다닐 수 있거든. 자네가 그런 멜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대체 저 녀석은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욕할지도 몰라."
-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이 있다. 처음 출근한 날 아침에 강의실을 들어섰을 때였다. 한 여자 연수생이 소리가 잘 안 들리는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땅딸막한 체구의 그 여자는 베이지색 트위드 스리피스 차림에 지나치게 커다란 흰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한 손에 전화기를 든 채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여자들에게 소리쳤다.
"이봐, 750달러에 정장 여섯 벌을 줄 수 있어. 이건 최상품이야. 가격이 정말 좋지 않아? 다른 데 가면 이런 가격에 못 구해."
- 순간,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그녀는 트위드 정장을 팔려고 그 더운 날씨에 그런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신입사원 연수장을 물건을 팔 시장으로 본 그녀의 생각은 옳았다. 그녀는 그들이 돈을 물 쓰듯 쓰면서도 싼 물건을 찾고, 정장이 거의 없다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그래서 동양 어딘가에 있는 열악한 공장에 겨울옷을 대량 보내달라고 전화로 흥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남자 옷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결코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연수생 동기가 내게 옷을 팔려고 하다니, 과연 살로먼 브러더스에 어울리는 연수생 환영식이었다.
- 나는 다른 연수생들 사이에 트레이딩룸에서 나와 일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들은 트레이딩룸에 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그들의 친구들은 나에게 점점 호기심을 보였다. 마침내 내가 함께 일하고 싶었던 팀장의 귀에 내 이야기가 들어갔고, 그는 내게 아침을 함께 먹자는 제안을 했다.
- 이게 계산적이고 정도를 벗어난 행동처럼 보인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팀장이나 임원에게 전적으로 맡기거나, 자신이 일하고 싶은 팀을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팀장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팀장과 임원은 누군가가 데려가주기를 기다리는 멍청한 연수생을 무가치하게 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많은 연수생이 자신이 일하고 싶은 팀으로 가서 그 팀의 팀장이나 임원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호소했다. 그들은 위대한 군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신하처럼 자신들이 일하고 싶은 팀 팀장의 발아래 납작 엎드려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놨다. "나는 당신의 겸손하고 헌신적인 하인입니다. 그러니 위대한 분이시여, 제발 저를 데려가주세요. 당신이 하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나이다." 그들은 팀장이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흡족해하며, "고개를 들라. 젊은이여, 두려워할 것 없다. 그대가 내게 진실하다면, 나는 그대를 악과 실직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같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 이런 전략은 가끔 먹혀들기도 했지만, 실패하면 본전은커녕 그대로 헐값에 팔리는 재고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연수생들은 어떤 순간에 이런 비굴함이 먹히는지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살로먼 브러더스의 모든 시스템은 누가 압박감에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는지를 보기 위해 설계된 것 같았다.
- 모든 것을 각자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연수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연수가 시작됨과 동시에 팀장과 임원들에게 잘 보이겠다고 결심한 연수생들은 강의실 앞에 앉았다. 이들은 연수 기간인 5개월 내내 맨 앞줄에 앉아 입술을 꽉 다문 채 강의에 집중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소중히 여기거나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연수생들은 맨 뒤에 앉아 강의에 관심 없는 척하며 강사에게 종이를 뭉쳐 던졌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일부는 두 부류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었다. 그중 두세 명은 연수 초반에 특정 팀에서 일하기로 담당 임원과 이야기를 끝낸 상태였다. 이들은 노예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자유민처럼 종잡을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바람에 회사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강의실 뒤에 앉았지만 부양할 아내와 자녀가 있어서 무례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다. 이들은 무시하기 때문에 앞에 앉은 연수생들에게 냉담하게 대했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뒤에 앉은 연수생들에게 냉담하게 대했다.
- 나는 스스로 예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사람 옆에 앉아서 그가 그린 조직도를 쳐다봤다는 이유로 앞줄의 범생이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나는 그저 그가 성공적으로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사족이지만 그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정식으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나는 지나치게 많은 질문을 해서 뒤에 앉은 꼴통들에게 강사의 환심을 사려는 범생이 같다는 비난을 들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기에 오해라고 뒷자리의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중요한 트레이더의 강연 시간에 어설프게 종이 뭉치를 던져 오해를 풀려고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 주식팀은 먹히지도 않는 강연은 집어치우고 전도유망한 젊은 인재를 강의실로 보냈다. 주식팀이 아끼는 신입사원인 그는 뛰어난 재기로 우리를 황홀경에 빠뜨리고 과학적 지식으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하라는 임무를 받고 강의실로 왔다. 그는 주식팀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인 프로그램 트레이딩을 담당하고 있었다. (맞다. 프로그램 트레이딩은 1987년 주식시장 붕괴의 주범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강연을 마친 그에게 시카고에서 온 MBA 출신인 프랭키 시몬 Franky Simon은 다음의 질문을 던졌다
"주식옵션을 거래할 때, 감마(옵션 가격이 주식 가격의 변동에 얼마나 민감한지 나타내는 델타의 변화율-역주)와 세타(시간의 흐름에 따른 옵션 가격의 변화-역주)를 헤지하나요, 아니면 델타만 헤지하나요? 그리고 감마와 세타를 헤지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주식옵션 전문가였던 강사는 시몬의 질문을 받고 10초 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시몬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시몬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모두에게 몹시 불쾌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그가 자존심 때문에라도 한날 연수생에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슬쩍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며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더없이 궁색해 보였다. 그는 말했다.
"그 질문의 답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트레이딩 하는 데 애를 먹나 봐요. 한번 알아보고 내일 말해줄게요. 옵션 이론은 잘 모르거든요."
그러자 시몬이 뻐기듯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주식팀에 있는 거예요."
- 그 말이 직격탄이었다. 주식팀이 야심 차게 강의실로 파견한 이 젊은 인재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작은 공처럼 몸을 움츠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연수생에게 저격당하다니 이 얼마나 굴욕적인 순간인가!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식팀과 어울리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팀이 연수생 봉사 활동을 시작했으니 우리가 얼마나 경악했겠는가. 비리니는 연수생들과 돌아가면서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우리 중 누군가가 댈러스 지사 주식팀에 발령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모두들 자신이 주식팀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우리는 달아날 순 있었지만, 더 이상 숨을 수는 없었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 구두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면세점에서 새 구두를 사야 했다. 라니에리는 800달러짜리 오버코트를 입고 굽이 15센티미터나 되는 19달러짜리 밝은 주황색 짝퉁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채 고객을 만났다. 이것은 월가에서 가장 용감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 트레이딩룸에서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똑같이 능력 있는 두 사람이 같은 트레이딩룸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한 명은 2,000만 달러를 벌고, 다른 한 명은 2,000만 달러를 잃는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라이어스 포커 챔피언인 존 메리웨더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미래의 인재를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완벽한 트레이딩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실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손실이 날 때마다 이성을 잃는 트레이더를 고용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자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그 트레이더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는 "날 잡으러 올 거예요. 잡으러 온다고요!"라고 계속 소리쳤다. 누군가가 잔뜩 흥분한 그를 트레이딩룸 밖으로 끌고 나갔다.
- 멍청이를 한눈에 알아보긴 쉽지 않지만, 재능 있는 사람은 한 번만 봐도 알 수 있다. 루빈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감각 있는 트레이더였다. 라니에리는 루빈을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트레이더"라고 평가했다. 다른 트레이더들은 루빈을 두고 라니에리를 가장 많이 닮은 트레이더라고 말했다. 한 트레이더는 "루이가 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1억 달러 어치나 채권을 샀어요.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더라고요. 그러자 루이는 채권을 20억 달러어치 더 사 들였어요. 루이가 채권을 더 사들이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더라고요. 루이가 채권을 대량 매수해서 시장의 하락세를 상승세로 돌렸던 거죠. 루이는 우리를 보면서 '봐, 내가 시장이 상승할 거라고 했지'라고 말했어요."라고 말했다.
- 루빈은 1982년 가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곧장 살로먼 브러더스에 합류했다. 라니에리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루빈에 대해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부분은 그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블랙잭 테이블에서 카드를 읽어내는 데 몇 년을 썼다는 점이었다. 알다시피 카드를 읽는다는 것은 패가 열린 카드를 기억해서 특정 카드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카드를 읽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은 정말 흔치 않은 존재다. 말하자면 그는 옛 살로먼 브러더스와 새 살로먼 브러더스가 합쳐진 인물 같았다.
- 루빈은 TV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하루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루빈과 대학 동창은 우연히 탐사 보도 프로그램 <60분 Sixty Minutes>에서 블랙잭에서 카드를 읽으면서 돈을 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에 루빈은 '저런 남자도 할 수 있는데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카드 읽는 법에 관한 책 ...
- 채권 시장이든 인력 시장이든 균형점을 찾게 마련이다. 르 페리고드에서의 저녁 식사로부터 2년이 흐른 뒤 살로먼 브러더스 모기지팀은 무너져버렸다. 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살로먼 브러더스는 루빈의 요구를 거절하고 절약한 100만 달러로 루빈 같은 신입사원을 10여 명 채용했다. 후임자들은 전임자들과 똑같이 젊고 유능했지만, 살로먼 브러더스에 전임자들만큼 많은 돈을 벌어다 주진 못했다. 전임자들과 달리 그들은 최고의 트레이더들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 시어슨 리먼 Shearson Lehman,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드렉셀 번햄, 퍼스트 보스턴, 그리고 메릴린치가 살로먼 브러더스 출신 트레이더들을 대거 채용하면서 살로먼 브러더스는 전 직장으로 써먹기 좋은 곳이라는 농담을 입에 담는 트레이더들이 월가에서 점점 늘어갔다. 살로먼 브러더스는 본의 아니게 유능한 모기지 트레이더 수십 명을 키워내 다른 회사에 갖다 바쳤고 그 결과, 살로먼 브러더스는 월가 투자은행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자산인 '독점권'을 잃어버렸다.
-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초창기의 나를 솔직하게 평가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살로먼 브러더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취미 삼아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게 다른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렇게 분석당하는 대상에서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립록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입에 물고 있는 펜을 질겅거리며 나의 신입 시절이 어땠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누구든지 마지막에 대화를 나눈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얼간이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첫 출근한 나를 보고 내가 얼마나 귀가 얇은 인간인지 알아챘다고도 했다. 내가 모기지 트레이더와 얘기하고 나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모기지채권이 얼마나 좋은 투자 상품인지 설명하고, 회사채 트레이더와 말하고 나면 최근에 발행된 IBM 채권이 금광이나 다름없다고 떠들어댔다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는 큰 손실을 본 뒤에야 내 약점이 무엇인지 분석해 줬다. 사실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는 정글의 법칙에 따라 살고 있었다. 정글의 법칙에 따르면, 얼간이 세일즈맨은 트레이더들에게 맛 좋은 날고기나 다름없었다. 회사채 트레이더가 IBM 채권이 따끈따끈한 투자상품이라고 나를 속일 작정이었다면,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간 내가 잘못한 것이다. 만약 립록이 IBM 채권이 그 정도로 매력 있는 투자처는 아니라고 나를 깨우쳐줬다면, 그 회사채 트레이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다음 보너스를 깎아버렸을 것이다. 립록은 나를 좋아했지만, 보너스가 깎일 위험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와 다른 팀원들에게 많이 의지했다.
- 우리 팀은 나와 립록 외에 여자 1명과 남자 2명으로 구성돼 있었고, 커다란 책상 하나를 다섯 등분해서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전화기가 100대나 있었는데, 그 전화기들을 타고 돈, 씁쓸한 농담, 그리고 각종 뜬소문이 흘러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농담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알고 싶다면, 채권 트레이더의 책상에 하루만 앉아 있어 보라.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했을 때, 전 세계 6개 지점에서 6명의 사람이 내게 전화해서 "나사 NASA는 '또 다른 7명의 우주인이 필요해요 Need Another Seven Astronauts'란 뜻이라며?"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 소문은 시장을 움직였기에 나쁜 농담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었다. 우리는 당시 모스크바의 지저분한 방에서 작은 대머리 남자가 서양 시장에 기반을 둔 경제를 초토화시킬 거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소문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체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소문이 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지난 2년 동안에 볼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서 사임한다는 소문이 일곱 번이나 돌았고, 그가 죽었다는 소문은 두 번이나 돌았다.
- 전 세계 살로먼 브러더스 사무실에는 확성기가 설치되어 있다.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성공했는가는 그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냈는가 외에 확성기에서 그의 이름이 얼마나 자주 불리느냐로 판단할 수 있었다. AT&T 회사채 트레이더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크게 울려 퍼졌다.
"마이클 루이스가 방금 우리 AT&T 회사채를 300만 달러 팔았습니다. 좋은 거래였어요. 수고했습니다. 마이클."
나는 뿌듯함에 얼굴이 한껏 상기됐다. 첫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자부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뭔가 개운치 않았다.
'우리 AT&T 회사채라니 무슨 의미일까?'
나는 AT&T 회사채가 살로먼 브러더스 거래 계정에 들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나는 그가 다른 회사의 어느 바보 같은 딜러에게서 AT&T 회사채를 빼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T&T 회사채가 처음부터 살로먼 브러더스의 것이었다면...
- 확성기 소리를 듣자마자 립록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날 노려봤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정말 그 채권을 팔았어요? 대체 왜?"라고 다그쳤다.
"그 트레이더가 좋은 거래가 될 거라고 해서요."
그는 "안 돼에에에"라며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더니 이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트레이더가 뭐라고 했는데요?" 그는 멍한 내 얼굴을 보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설명해 줬다. "그 트레이더는 수개월이나 AT&T 회사채를 갖고 있었어요. 그건 처음부터 저평가되어 있었어요. 그걸 처리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였지요. 내가 이런 말을 해줬다고 그에게 말하지 말아요. 아무튼 된통 당했네요."
- 립록은 다시 한번 말했다. "된통 당한 거예요. 새내기(얼간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새내기한테는 다들 그렇게 해요." 그는 내 잘못이 아니라며 몇 마디 더 위로의 말을 건네더니 이내 입에 펜을 물고 질겅거리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전화가 울리더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 도대체 AT&T 회사채 가격이 얼마죠?" 헤르만은 더 이상 침착하지도, 확신에 차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다른 트레이더에게 자신이 실수했다는 말을 들은 듯했다. 나와 헤르만을 빼고 런던에 있는 모든 이들이 살로먼 브러더스가 AT&T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처리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헤르만은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 이것이 살로먼 브러더스의 이익을 위해 고객이 희생을 감내하게 되는 순간에 거치는 통상적인 절차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트레이더는 엉뚱하게 기계 탓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숫자들이 AT&T 회사채 가격인데 보이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척을 했다. 그는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 "그 채권은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소리쳤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한테 거짓말했군요!"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그쳤다. "이봐. 당신은 대체 누굴 위해 일하는 거야? 그 고객이야, 살로먼 브러더스야?"
- 누굴 위해서 일하냐고? 이것은 채권 세일즈맨들을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질문이다. 트레이더가 고객의 뒤통수를 쳐서 세일즈맨이 속상해하면, 트레이더는 세일즈맨에게 "도대체 누굴 위해 일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너는 살로먼 브러더스와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연말에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겨줄 테니 얼간이 신참은 잠자코 있어라. 맞는 말이다.
- 괴로워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채권 시장의 법칙은 '카베트 엠프트르 Caveat empiro'다. '매수자위험 부담 원칙'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채권 시장 관계자들은 술 몇 잔 들어가면 라틴어를 마구 썼다. 내가 흔히 들었던 라틴어 중에 '메움 틱툼 파툼 Meum dictumpactum'이 있다. 이것은 '내 말이 곧 보증수표'란 말인데, 그저 농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그에게 AT&T 회사채를 매수하는 것이 좋다고 했을 때 그가 진심으로 그 말을 믿을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다.
- 이 일에서 내 독일인 고객을 제외하고 피해를 본 사람이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고객의 고통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살로먼 브러더스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인 고객의 은행은 6만 달러를 잃었다. 이는 곧 그 은행의 주주인 오스트리아 정부 등이,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 납세자들이 손해를 봤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보유한 전체 자산과 비교하면 6만 달러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액수다. 다시 말해서, 그 거래를 진행한 당사자를 제외하면 동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거래를 진행한 그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 그는 내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나는 얼간이 신참에 불과했고, 모든 결정은 고객인 그가 내렸다. 이것이 고객이 누리는 특권이자 세일즈맨이 짊어진 부담이다.
- 그의 말은 옳았지만, 나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나는 어린애처럼 유치하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 정글에 있고, 정글에서는 게릴라전이 제격이다.
- 드디어 대학에서 배운 예술사를 직장에서 써먹을 때가 됐다. 나는 사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경쟁 관계에 있는 화가가 당신이 그린 그림을 훔쳐서 그 그림에 자기 이름을 쓰고 팔아버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면 비슷한 그림을 그려서 그에게 똑같이 그려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게 내가 기회주의자에게 하려는 복수였다. 비유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워런트는 렘브란트나 잭슨 폴락의 그림보다 위조하기가 더 쉬웠다. 나는 그가 완전히 사기꾼이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가 그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주장에 의심의 씨앗만 심으면 됐다.
- 기회주의자는 자기 혼자서 워런트를 생각해 냈다고 주장했다. 그게 거짓임이 드러나면 그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이 어느 정도 훼손될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거래를 구상했다. 의도적으로 첫 번째 거래를 진행했던 고객과 아주 유사한 거래를 추진할 계획을 세웠다. 알렉산더는 복수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짓궂은 장난에 힘을 보태줬다. 이번에는 독일 국채가 아닌 일본 국채가 대상이었다. 워런트는 앞선 것과 기본 구조를 조금 다르게 설계됐다. 이 거래의 목적을 고려하면, 지금 그 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 같다. 이 거래를 구상할 때 나는 기회주의자와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에게 특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기회주의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거래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뉴욕의 41층 트레이딩룸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말을 흘렸다. 이것은 일종의 몸풀기였다.
- 아마도 나는 살로먼 브러더스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나 자신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다음에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내가 트레이딩룸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를 날려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인 줄 몰랐다. 그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기쁨이 나를 사로잡았다. 불편해하거나 불안해하거나 화내는 대신에 나는 차분하게 그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했다.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그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 기회주의자는 침착함을 되찾더니 고통스러울 정도로 신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분별 있는 사람이지만, 성층권까지 뚫고 올라갈 정도로 자만심이 강했다. 게다가 그는 영리했다. 하지만 그는 살로먼 브러더스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만큼은 영리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어떤 물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펜이었고, 그걸 집어 들더니 가볍게 흔들어댔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난 자네를 인정한다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멍청하지. 나는 자네가 그들보다는 똑똑하다고 생각했어."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으레 이런 식으로 말했다.
- "큰돈을 벌 수 있는 거래를 왜 방해하려고 하는 거죠?"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나는 그가 수익이 높은 거래, 즉 일본 국채 워런트 거래를 방해하려는 이유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공으로 삼기 어렵다면, 그는 아무리 좋은 거래라도 성사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도움 없이 이 대단한 거래가 성사된다면, 그가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새로운 워런트 사업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환상은 완전히 깨져버린다. 반대로 그가 성공적으로 그 환상을 지켜낸다면 연말에 엄청난 보너스를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게 그를 화나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화를 낸 게 그의 최대 실수였다. 그는 마구 소리 질렀다.
"난 전화 한 통으로 널 해고할 수도 있어! (그는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그냥 내 상사에게 전화를 하거나 존 굿프렌드)에게 전화해서 널 해고하라고 말하기만 하면 돼."
- 이게 바로 내가 그의 입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네 번째 에이스 카드를 뽑은 셈이었다. 기회주의자가 허세를 부리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온종일 트레이딩룸에 앉아서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허세를 부리는지 아닌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허세를 부리는 게 눈에 다 보이는 게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그를 다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낚싯바늘에서 풀어줄 수도 있고, 낚싯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나는 이미 낚싯바늘에 걸린 이 물고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기회주의자는 선을 넘었다. 그는 나를 해고하기는커녕 해고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이런 위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 시궁창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군가를 파괴하는 데 있어 이보다 효과적인 계획은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전까지 나는 누군가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의미가 없었다. 나는 겁먹은 체하며 그에게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곧장 이야기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내 말을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 기회주의자가 책략을 짤 때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전지전능한 존재에 대한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려는 것은 신이 아니다. 트레이딩룸에는 신디케이트 매니저(금융계에서 다양한 거래의 위험과 효율성을 관리감독하고, 거래의 순서 등을 조율하는 사람-역주)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모든 거래를 조율하는 책임을 맡았다. 살로먼 브러더스 런던지사에 있는 신디케이트 매니저는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영향력을 지닌 여자로, 우리의 독일 국채 워런트 거래에도 관여했다. 신디케이트 매니저들은 투자은행에서 백악관의 참모총장이나 전문 스포츠팀 단장 같은 역할을 했다. 굿프렌드도 한때 신디케이트 매니저로 명성을 쌓았다. 신디케이트 매니저로 활동하면 현실 정치의 대가, 즉 진정한 권모술수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신디케이트 매니저들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다. 따라서 신디케이트 매니저의 뜻을 거슬러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크게 다치게 된다.
- 다음 날 나는 런던 지부의 신디케이트 매니저에게 전날 밤 기회주의자와 내가 나눈 대화에 대해 모조리 이야기했다. 그녀는 독일 국채 워런트 거래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거래가 성사되는 데 그녀의 역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화를 냈다. 그녀는 기회주의자와 다른 방식으로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기회주의자의 운명을 그녀의 손에 맡겨버렸다. 이는 금붕어를 도둑고양이에게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약간 후회되기도 했지만 일을 되돌리기에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렇다고 많이 후회했던 것은 아니다. 나의 양심도 계산적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안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죄책감만 느꼈지, 그에게 복수를 관둘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다.
- 내가 기회주의자의 최후를 듣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회주의자와 나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들은 그녀는 손수 기회주의자를 챙겼다. 기회주의자는 엄청나게 많은 보너스를 받고 임원으로 승진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데 있어 승진은 매우 중요했다. 런던 지사의 신디케이트 매니저는 전화를 대여섯 통 걸더니 그의 계획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나는 연말보너스가 지급되는 12월 말에 그 결과를 알게 됐다. 승진 명단은 연말 보너스가 지급되기 일주일 전에 발표됐다. 기회주의자의 이름은 승진 명단에 없었다. 그는 보너스가 계좌에 입금되자마자 회사를 그만뒀다.
- 1986년 가을, 나와 회사의 운명이 갈렸다. 나는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연신 이익을 냈으나 내 전화선을 타고 쏟아져 들어온 돈은 살로먼 브러더스의 재무 상태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채권 시장의 강세는 예전 같지 않았다. 11월 채권 시장이 잠시 폭락하자 적자생존의 논리가 업계를 잠식했다. 변변치 못한 트레이더들은 일부 고객과 함께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자취를 감췄다. 고객이 줄어들고 트레이더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은 채권 거래량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일즈맨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투기성 투자자들의 전화가 크게 줄어들자 바쁜 척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연말에 보너스가 지급되긴 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살로먼 브러더스 사람들은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다.
- 런던 트레이딩룸에서는 작은 국지전이 발발했다.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던 프로이센식 이름을 지닌 직원들이 책상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의 <전쟁론 on War>을 펴놓고 읽고 있었다. 투자은행가들은 보통 이 책을 아무도 모르게 읽는다.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게 들킬까 봐 겁이 나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전쟁론>에서 알 수 있는 테크닉을 눈치채는 게 싫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이센 동료 중 한 사람에게 중국의 전술가인 손자의 책 <손자병법>을 추천해 줬다. 그러나 그는 중국인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느냐는 듯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 돈 냄새가 풍기지 않는 트레이딩룸은 음악이 끊긴 뮤지컬 극장 같았다. 일부는 자기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사투를 벌이는 다른 직원들의 모습을 놀랍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살로먼 브러더스가 누리던 위대한 영광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살 길을 찾느라 바빴다. 다들 누가 그 위대한 살로먼 브라더스를 망쳤는지 궁금해했다. 트레이더들은 왜 우리 세일즈맨들은 우리 채권을 멍청한 유럽 투자자들에게 못 파느냐며 짜증을 냈고, 세일즈맨들은 왜 우리 트레이더들은 끔찍한 채권들만 들고 있는 거냐며 화를 냈다. 내 고객에게 AT&T 회사채처럼 쓸모없는 채권을 헐값에 처분하려고 애쓰던 한 트레이더는 내게 팀플레이어처럼 행동하라고 말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무슨 팀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가 갖고 있던 채권을 팔아서 몇 푼 정도 벌어다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나와 고객의 관계가 훼손될 게 뻔했다.
- 유럽 기관투자자들과 미국 기관투자자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니, 있었다. 우리 지사에 몇 시간만 있어보면 뉴욕에서 온 모든 트레이더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미국 투자은행계는 오랫동안 과점 체제를 유지해 왔다. 소수의 '이름 있는 투자은행'이 자본 조달 시장을 놓고 경쟁했다. 미국 투자자들(돈을 빌려주는 주체)은 소수의 대형 투자은행하고만 거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다. 일반적으로 뉴욕에서는 투자자들의 이해가 돈을 빌려 가는 기업들의 이해보다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뉴욕에서 채권과 주식 거래는 투자자들(돈을 빌려주는 주체)이 채권과 주식을 매수하길 원하느냐가 아니라 기업들(돈을 빌려 가는 주체)이 자금을 조달하기를 원하느냐에 의해서 움직였다.
-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빌려 가는 기업도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처럼 중개인에게 착취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월가의 과점 체제에서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들에게서 비싼 수수료를 받는 것은 돈을 빌려 가는 기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업은 몇 개 되지도 않는 투자은행들을 서로 경쟁시킬 만큼 똑똑했으며, 애초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어 월가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기업은 채권의 거래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된다. IBM을 속여서 헐값에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IBM은 월가에서 함부로 화나게 해서는 안 되는, 너무나도 중요한 고객이었다. 그래서 IBM은 항상 아주 비싼 값에 주식과 채권을 발행했고, 월가의 세일즈맨들은 지나치게 비싼 IBM의 주식이나 채권을 팔려고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녔다.
- 유럽 투자자들(내 고객)은 만기일을 연장하거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을 한 번은 골탕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 투자자들과 달리 그들은 살로먼 브러더스가 아니더라도 주식과 채권을 살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있는 살로먼 브러더스 트레이더는 내게 "런던 지사의 문제는 고객을 길들이지 않는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왜 그들이 길들여지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싫으면 영국이나 프랑스나 일본 투자은행과 거래하면 된다. 다른 나라의 투자은행이 우리보다 더 고객 친화적이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우리 같은 투자은행이 수백 개나 존재했다는 것은 안다.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 슬픈 현실을 우리 경영진에게 알릴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당장 목이 달아날 게 뻔했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 "다른 투자은행이랑 우리가 다를 게 없다는 게 무슨 소리지? 설령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소리군."
- 버킹엄 팰리스 로드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우리가 이사한 넓은 새 사무실이 나왔다. 입구에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크롬과 거울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통로를 지나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게 높은 곳에 있는 트레이딩룸에 도착했다. 트레이딩룸이 건물 꼭대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는 하얏트 리젠시 호텔로비 같은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소파, 화초, 그리고 전력 질주하는 토끼 모양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 토끼 동상은 불합리한 추론의 결과였다. 벅스바니 Bugs Bunny(미국 애니메이션 <루니툰 Looney Tunes>의 캐릭터-역주)가 함정을 요리조리 피하며 엘머 퍼드 Elmer Fudd(미국 애니메이션 <루니툰>의 캐릭터-역주)를 앞서서 달리는 것처럼 월가 투자은행이 용감하게 미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레이더들은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토끼 동상 꼬리에 커다란 은색 장신구를 걸었다. 사람들은 그 장신구를 영국말로 '윌리 willy(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역주)'라고 불렀다.
- 살로먼 브러더스 영국 지사는 새 사무실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만큼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초현대적인 에스컬레이터와 노출식 천장의 로비는 나선형 원목 계단과 각종 명화로 장식되었다. 이런 모습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에서 한순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로 옮겨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 나의 일상적인 업무는 거의 멈춰졌다. 상사의 사무실에 나오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살로먼 브러더스라는 이 작은 사회에서 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관련 강의를 1,000개 듣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있었다.
- 자신이 보너스로 얼마를 받게 될지 듣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나뉘었다. 대개 안도, 기쁨, 분노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이 3가지 중 1가지 반응만 보였다. 세 감정이 순서대로 나타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이 얼마를 받게 될지 듣고 나면 안도하다가, 보너스로 뭘 살지를 상상하며 기뻐한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됐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너스를 얼마나 받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표정이 있었다. 초콜릿 파이를 너무 많이 먹으면 구역질이 나는 것처럼 너무나 지긋지긋해서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이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대개 고통스러운 일이다.
- 1987년 1월 1일이 되면 단 하나의 숫자를 제외하고는 1986년에 있었던 일은 모두 잊혔다. 그 숫자는 바로 지난해 동안 자신이 일해서 받은 돈이었다. 이 숫자가 모든 것을 요약했다. 성스러운 창조주를 만나서 한 인간으로서 당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듣게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무엇을 인내해 왔는지 한순간에 알게 된다. 보너스를 받는 날, 사람들은 오직 성공만을 향해 뛰어온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뿌듯함과 함께 뭔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됐다. 이것 역시 하나의 게임이었다. 보너스를 받자마자 흡족해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비춰졌다. 보너스를 많이 받은 사람들과 예상한 수준으로 보너스를 받은 사람들은 안도했으나 어떤 반응도 보여선 안 됐다. 놀라는 것도 좋지 않았다. 무반응이 좋다. 무표정을 유지해야 했다. 어쨌든 모든 것이 끝났으니 말이다.
- 나는 명령을 완수한 뒤 마피아 대부 앞에 선 행동 요원처럼 냉정하고 빈틈없어 보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더 긴장하고 예민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되느냐였다. 답을 알기 위해선 쿠젠의 생각보다 긴 연설을 끝까지 듣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 쿠젠은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더니, "살로먼 브러더스에 입사해서 첫해 놀라운 실적을 올리는 신입 직원들을 많이 봤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사례로 몇몇 젊은 임원들을 거론했다. 그는 "하지만 자네만큼 대단한 실적을 올린 사람은 본 적 없어"라고 말하더니, 다시 몇몇 이름을 거론했다. "윌리엄, 리치, 조도 자네만큼은 아니었어. 심지어 '피라냐'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네"라고 했다. 심지어 피라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는 "축하한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5분이나 이런저런 말을 했던 것이다. 물론 원하는 효과를 얻어냈다. 그가 말을 끝냈을 때, 나는 그에게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일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쿠젠은 나의 이 보잘것없는 능력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만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살로먼 브러더스에 대해 내가 가졌던 냉소와 씁쓸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살로먼 브러더스, 수많은 상사, 굿프렌드, AT&T 채권 트레이더, 그리고 기회주의자를 빼고 살로먼 브러더스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눈앞의 남자가 내가 한 일을 인정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쿠젠이 내 보너스가 얼마인지 알려주기 전에 이토록 길게 이야기한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살로먼 브러더스의 급여 담당자들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돈은 심사숙고한 뒤에 나오는 결과로, 내가 풀어야 하는 매듭 속에 있었다.
- 그는 내가 연수생 동기들 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이야기해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3명이 나와 같은 연봉을 받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받는 것인지 알기 위해 9만 달러를 파운드화로 환산해 봤다. 계산해 보니 5만 6,000파운드 정도였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 이상의 금액이었다. 분명 내가 한 일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사회 기여도를 고려한다면, 나는 연말에 보너스를 받기는커녕 돈을 토해내야 할 것 같았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지금의 나와 동갑인 26세 때 벌었던 것보다 많은 액수였다. 내가 알고 있는 또래 중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하! 나는 부자다. 나는 살로먼 브러더스를 사랑한다. 살로먼 브러더스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우리의 미팅은 마무리됐다.
- 기쁨도 잠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생각해 보라. 여긴 그 위대한 살로먼 브러더스다. 이곳은 AT&T 채권으로 내 고객을 등쳐먹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그들은 내 고객에게 했던 것처럼 내 뒤통수를 충분히 치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살로먼 브러더스를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했는데, 돈 몇 푼 쥐여주고 끝이다. 내 주머니로 들어와야 할 돈은 나에게 칭찬 몇 마디 해준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회사는 이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칭찬하는 데는 돈이 안 들어간다. 회사는 이것도 알고 있었다.
- 나는 마침내 내가 회사에 이용당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옳은 결론이다. 내가 살로먼 브러더스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만 달러는 훨씬 넘을 것이다. 채권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9만 달러는 취약 계층에게 제공되는 생계보조비나 다름없었다. 나는 회사에 당했다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 말고 어떤 기분이 들었어야 했겠나?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스스로 한 푼도 벌어오지 못했으면서도 많은 돈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알렉산더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현자' 알렉산더는 달관한 얼굴로 말했다.
"이 바닥에선 부자가 될 수 없어. 여기선 새로운 수준의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될 뿐이야. 굿프렌드는 자기가 부자라고 생각할까? 난 아니라고 봐."
- 불교 사상을 공부하고 있었던 알렉산더는 자신이 회사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불교 사상으로 설명했다. 어쨌든 그는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보너스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적용받지 않았다. 그는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기에 그토록 오만한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알렉산더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월가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확실히 집어냈다. 허기와 탐욕은 각기 다른 것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살로먼 브러더스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가장 해로운 것은 지금 당장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이다. 장기적인 탐욕보다 단기적인 탐욕이 더 나쁜 법이다. 단기적인 탐욕을 쫓는 이들은 충성심이 없다. 1986년 살로먼 브러더스 사람들은 회사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봤기에 당장 돈을 갖고 싶어 했다. 1987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보너스가 지급된 뒤 런던의 트레이더들과 세일즈맨들, 그리고 라니에리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트레이더들과 세일즈맨들은 더 많은 돈을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른 투자은행들은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트레이더들과 세일즈맨들을 데려오기 위해 여전히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었다. 진짜 돈을 만지는 늙다리 직원들은 쓰라릴 정도로 실망했다.
- 모두가 주가 대폭락을 영국 정부 탓으로 돌렸다. 영국 정부는 왜 국영 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을 민영화하기 위해서 지분매각을 강행한 걸까? 단기적인 시장 변동 요인에 집착하는 트레이더들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지분을 매각하려는 시도가 시장에 견딜 수 없는 부담을 줬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주식이 시장에 쏟아진다는 생각만으로도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서 주식 매입을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미국이 1조 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거나, 달러 환율이 불안정하다는 등 시장이 붕괴하는 데 나름대로 논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몇몇 미국인 위원들이 영국 정부의 행동을 두고 영국인 위원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한 미국인 위원은 냉소적으로 "당신네 영국인은 전후에도 이따위 짓을 하는구먼"이라고 말했다.
- 이날 전선은 금전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적에 따라 우군과 적군이 나뉘었다. 신용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은 모두 같은 팀이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외국인 혐오증은 살로먼 브러더스에만 존재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건으로 1억 달러를 손해 본 골드만삭스의 미국인 파트너는 살로먼 브러더스의 영국인 임원에게 전화해서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람은 살로먼 브러더스의 영국인 임원이 살로먼 브러더스가 아닌 영국인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신네 영국인들은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민영화 계획을 철회해야만 했어요. 우리가 아니었다면, 당신네는 지금 모두 독일어로 말하고 있었을 겁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 진짜 현명한 사람은 비난을 퍼부을 대상을 찾기보다는 궁지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건으로 인한 1억 달러의 손실을 메울 수 있을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어떻게 해야 영국 정부를 설득해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주식을 우리가 샀던 가격에 되사도록 할 수 있을까?
- 때마침 뉴욕에 있었던 런던 지사 임원이 나를 슬쩍 불러서 영국중앙은행을 설득할 방법을 들려줬다. 그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민영화로 은행들이 입은 손실이 7억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세계 금융시스템이 이 막대한 손실로 인한 자본 고갈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가가 또다시 대폭락 할 수도 있었다. 정말일까? 놀라웠다. 그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손실을 피하고 싶었던 나머지, 그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낡은 전략이었다. 내 상사는 브리시티 페트롤리엄 민영화 계획을 지금이라도 철회하지 않으면 또다시 주식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고 영국 정부에 경고할 생각이었다.
- (이는 효과가 없었다. 굿프렌드는 1987년 연간 보고서에서 사면초가 위기에 몰린 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객에 대한 의무와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민영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우리는 7억 9,000만 달러의 세전 손실을 봤습니다." 모든 정부 관계자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시장 붕괴를 경고하는 월가 투자은행을 주의하라. 그들은 당신네가 자기들 영역을 침범할 때마다 이렇게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시장 붕괴를 막을 수 없듯 시장 붕괴를 초래할 수도 없다.)
- 그날 오후 나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250명의 연수생들과 강의실에서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이다.
| [에도가와 란포] 란포 기담집 (1) | 2026.01.05 |
|---|---|
| [다카하시 루미코] 인어 3부작 -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0) | 2026.01.02 |
| [정명섭] 암행 (1) | 2025.12.22 |
| [필립 바구스,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 부의 격차를 좁히는 진짜 돈의 모습 (1) | 2025.12.18 |
| [차승민]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 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 (0) | 2025.12.08 |
| [최희정] 한 그릇 밀프렙 다이어트 레시피 - 한 번 만들어 일주일이 가벼운 12주 다이어트 식단 (0) | 202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