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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돌비 공포라디오 더 레드 - 무서운 실화 레전드 괴담집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by 일루젼 2026. 1.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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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돌비
출판 : 아르테(arte)
출간 : 2025.07.23


       

 

직장인 대다수의 꿈이자 목표인 경제적 자유를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까지는 근로 소득의 힘도 필요한 상황인데, 최근 근무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겨서 좀 심란하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되길...

 

평소에 유튜브 영상을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듣는데 -화면은 잘 보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휴게 시간에 <돌비공포라디오> 채널을 주로 틀어둔다. 1년 전쯤 처음 알게 된 채널인데,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자신의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들무'에 빠져들고 말았다. 

 

집에서 혼자 듣고 있으면 너무 무서우니까, 아껴뒀다가 외출했을 때나 직장에서 듣는 편인데-

가만 생각해 보면 병원, 새벽, 1-2인의 소규모 인원, 코드 블루, 지하... 

직장에서 듣는 게 더 무서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돌비공포라디오>에서 지난 사연들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

<돌비 공포라디오 더 레드>.

영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무속편'과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들을 모은 '인간편'으로 나뉘어 있다.

 

음. 참여자들의 목소리로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을 활자로 다시 만나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기존 이야기를 알고 읽는 거라 어디가 생략되었는지, 어떻게 다듬어졌는지가 보였는데 애청자(?) 입장에선 이런 부분도 재미있었다.

다만 영상을 보지 못한 입장에서 활자로 처음 접한다면- 아무래도 오싹함이나 전체 이야기가 맞물려 들어가는 순간의 짜릿함은 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영상으로 다시 보세요

 

채널장에 대해서는 중립.

듣고 싶은 내용을 끌어내기 위해 살짝 유도하는 모습이 보일 때는 좀 움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사회자이자 호스트로서 필요한 자질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웬만한 무속 관련자보다 용어나 문화에 더 빠삭해 보인다. 나는 한 번도 실시간 영상을 보지 않아서 모르는데, 댄스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모양.  

 

크리에이터보다는 컨텐츠에 대한 흥미로 즐기는 중인데, 이제 대충 다 봤나 싶으면 새로운 레전드들이 나타나서 끊을 수가 없다. 

참여자들이 계속 바뀌므로, 자신과 잘 맞고 흥미로운 참여자의 이전 에피소드들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좋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즐거웠다. 

 

 


   

 

1부 무속편


할머니가 친손녀에게 한 짓 - 김펠트

무당집 마당에서 춤추는 여자 - 릴나스

절대 풀려서는 안 될 귀신을 봉인하는 산과 귀신 붙은 친구 - 혼파

숙희의 영안이 트인 이유 - 옥수수짬바

귀신에게서 나를 구해 준 박수 할아버지 - 계란과자

김수영 사주 바꾸기 - 개깍남

신을 버린 무당이 받는 신벌 - 육오빠

 


2부 인간편


수상한 여아 입양사건 - 플렉스

공장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언니 - 팔레트

베트남 여사장의 저주 - 과자과자

피를 말리는 사랑, 스토킹 - 고비

수상한 공인중개사 - 제진석

수상한 지하 중고 명품샵 - 동네꼬마

무서운 이야기 세 편 - 버몬트

사이비 종교 이야기 - 이세계여행자

 




- "그것들은 너한테 절대 해코지를 하지는 못하니까 그냥 못 본 척하고 살아. 그럼 돼."
그 후 숙희는 20년 가까이 영 존재를 보며 살아야 했다. 숙희의 구원자가 될 남편을 만날 때까지는.


- 시간이 흐르고 숙희는 오랜 친구 명주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명주가 조심스레 숙희에게 물었다.
"숙희야, 너 요즘도 귀신... 보니?"
"이제는 괜찮아. 연애를 하면서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아, 이제는 안 보이는 거구나. 대체 어떻게 그게 된 거야?"
명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숙희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남편 기가 세서 다 눌러 준다고 하더라. 갑자기 안 보이는 게 이상해서 무당한테 찾아갔더니 그래."
"그거 다행이다. 그 민자 이모인가 하는 사람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아이가 필요했다면 입양을 하면 됐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마지막으로 무당한테 찾아갔을 때 그러더라. 민자 이모는 결코 좋은 곳에는 못 갔을 거라고. 남한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고..."
말끝을 흐리는 숙희의 눈길이 카페 너머 먼 곳을 향했다.

 

<숙희의 영안이 트인 이유 - 옥수수짬바>


 

-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영자의 할머니는 갑자기 무속 일을 그만두고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냥 성당에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례와 세례명까지 받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런 후 세월이 지났고 육오가 태어났다. 어린 육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외가댁 친척과 즐겁게 지내곤 했다.

- 그날은 명절이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있는데 네 살쯤 먹은 육오가 혼자 흥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유오 춤 잘 추네~"
"그러게, 애가 흥이 넘치네. 제 엄마도 안 그러고 아빠도 안 그런데 대체 누굴 닮았대?"
"아니, 거 있잖아! 옛날에 돌아가신 분, 그 무당 하셨던 그분 말이야. 그분이 막 저렇게 펄쩍펄쩍 잘도 뛰고."
"오메! 그러네. 맞네. 저 머리 돌리는 것 좀 봐. 세상에, 피는 어디 안 가는구먼."


- 친척 어른의 수군거림이야 어떻든 육오는 신명 나게 머리를 돌리며 춤을 잘도 추었다. 어려서부터 춤꾼의 자질을 보였던 육오는 자라는 내내 몸을 쓰며 움직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무용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 무용을 배우던 중 육오는 한국 무용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배우게 된 무용은 '살풀이춤'이었다. 음악이 흐르고 육오는 선생님을 따라 몸짓을 하나하나 따라 했다. 춤을 추던 중 어느 순간, 그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살풀이를 한 것이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육오가 무용을 배우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셨다.
"인마! 사내자식이 무용이 뭐야! 그따위 것 당장 그만둬!"
예전부터 아버지는 육오가 춤추는 것을 반대하셨기 때문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독 아버지가 더욱 격렬하게 반대를 하시는 게 몹시 수상했다.
'뭔가... 있구나.'
그때까지 육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짐작 가는 일을 겪기는 했었다. 유체이탈 경험도 있었고, 예지몽 역시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반대는 이런 영적 체험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무용과를 자퇴했다. 

 

- 이후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삶이 굴곡지기 시작했다. 뭔가 촉은 오지만 애써 그것을 믿지는 않으려 했다.

- 혹시 싶었던 영자가 육오와 함께 증조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가 정리를 하면서 찾아낸 부적도 수십 장이었다. 그러다 결국 오래된 집을 허물고 땅도 다 메꿔 버렸다. 그렇게 모든 일이 해결되는 줄만 알았다.
 
- 육오가 뱉어 낸 것은 이빨이었다. 꿈 속이었지만 당황한 채 이빨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영매야.>
'어?'

육오가 눈을 들어 보니 웬 색동옷을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육오에게 소고와 채를 건네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육오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 '뭐야. 이빨 빠지는 꿈이라니 불길하게...'
잠에서 깬 육오는 찝찝한 기분에 잠도 오지 않아 '영매'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영매]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의사가 통하여,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람. 곧 무당이나 박수가 이에 해당한다.
"아, 이런 뜻이야?"
뜻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육오는 심드렁했다. 하도 이런 꿈을 자주 꾸곤 하니 그러려니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육오에게는 자주 있어 왔던 일이었다.

 

<신을 버린 무당이 받는 신벌 - 육오빠>

 


- 살다 보면 때로 겪지 않아도 될 끔찍한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런 끔찍한 일은 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 2011년, 플렉스는 첫째 아이의 돌을 앞두고 있었다. 대개 아기들은 첫돌을 맞이하기 전에 아픈 일이 많다. 플렉스의 아기 역시 돌을 앞두고 심하게 아팠고 결국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됐다. 그녀의 아기가 입원한 병원의 소아병동에는 아기들의 놀이공간과 엄마의 쉼터가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명선을 처음 만났다.

 

- "그럼 명선이 남편은요? 자기 아이도 아닌데 자기 애라고 거짓말까지 해서 출생신고까지 했는데. 어쩜 저희한테도 한마디도 안 하고! 능력이 안 되면 키우지 말아야지, 어쩜 그래요? 강아지도 아니고, 아무리 명선이가 졸랐어도 안 된다고 했어야죠!"

"안 그래도 출생신고 보증 건 때문에 원장 선생님이랑 선생님, 조사받으시게 됐습니다."

정선의 순한 겉모습만 보고 호의를 베풀었던 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 [게다가 머리에도 멍이 들어 있고, 팔뚝이랑 안 보이는 데에도 멍이 있더래요. 우리더러 왜 그걸 못 봤느냐고 묻는데, 둘째가 막내랑 장난치면서 그런 거라고 했거든요. 아니,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을 믿지 뭐라고 해요?]
선생님은 몹시 답답하셨는지 울먹이면서도 플렉스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 얼마 후 어린이집은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더한 반전이 남아 플렉스의 뒤통수를 때렸다. 알고 보니 아픈 큰 아이 역시 남편의 아이가 아니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동거할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이 헤어지자고 했다. 명선은 남편과 헤어질 마음이 없었고 임신했다며 거짓말을 하여 붙잡았다. 하지만 없는 아이를 어떻게 낳는단 말인가. 명선은 임신한 척 꾸미고 시간을 끌다가 불법 사이트에서 갓 태어난 남자아이를 구하여 남편을 속였다고 한다. 본래 아픈 아이를 데리고 왔던 건지, 혹은 키우다가 학대하여 아프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조차도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명선은 그걸 빌미 삼아 기자에게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은 거였다.
결국 명선은 8년의 실형을 살게 되었다. 그 사건은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었다. 

- 플렉스는 지금도 가끔 그 일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곤 한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벌인 거였을까...? 어쩌면 명선은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자신만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명선처럼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는 바로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상한 여아 입양사건 - 플렉스 >

 


- 콘센트를 뽑았다가 다시 꽂는 순간 스파크가 팍 튀더니 지훈의 팔에 불꽃이 붙었고 그만 큰 화상을 입고 말았다.
"으으으, 이게 뭐야!"
보통 그렇게 작은 스파크가 튄 정도면 부분적으로 작은 화상만 입고 마는데, 이번에는 팔의 3분의 1에 화상을 입었다. 지훈은 할 수 없이 병원에 가야 했다. 
"하, 이거 요즘 운이 되게 안 좋은가 보네."
이때까지만 해도 지훈은 '그럴 수 있지'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 지훈은 차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뒤로 두 발짝 정도를 물러섰는데 사이드미러가 그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뒤였다. 만에 하나 지훈이 그대로 서 있었다면 그는 꼼짝없이 차에 부딪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 뭐야, 죽을 뻔했어. 요즘 왜 이러지? 진짜 무슨 마라도 낀 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지훈은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살지 말라는 뜻인가? 나 진짜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진짜... 뭔가 꿈을 이루려고 그랬는데. 자리 다 잡고 잘하려고 그랬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서러운 마음에 지훈이 혼자 신세한탄을 했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그는 마치 조각상처럼 멍하니 밤새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여전히 탁자 앞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똑똑. 
그래야 지훈은 정신에 번득 들어 얼른 문을 열었다.
"나무아미타불."
탁발승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자주 볼 수 없지만 종교 국가인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탁발승이 아침마다 공양을 위해 가게에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음식이나 돈을 얻으면 시주자에게 기도를 해 주었다. 지훈은 비록 없는 형편이었지만, 어제 사온 재료 중 바로 먹을 수 있는 것 일부를 조금 나눠 드렸다. 스님이 합장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맨 뒤에 서 있던 스님 한 분이 유독 지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스님의 눈빛을 느낀 지훈이 물었다. 
"스님, 왜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
그러나 스님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아, 이건 아닌데..."

"...?"

스님은 끝내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가 버렸다.

- 그날 점심시간이었다. 아침에 그를 유독 빤히 쳐다보던 스님이 혼자 그의 가게에 찾아왔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최근에 안 좋은 일 없었습니까?"
최근 안 좋은 일들을 겪기는 했지만, 살다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 여겨 지훈은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니, 그냥 뭐... 그냥 그래요."

- '양밥이라고 하던가? 한국에서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이 모든 일을 경찰 앞에서 들었지만, 경찰도 뭘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칼을 휘두르거나 살해 행위를 한 게 아니라 오컬트, 즉 무속 행위를 한 것뿐이라 법적 처벌을 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지훈은 사진만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오면서 여사장이 훔쳐 갔었던 증명사진을 살펴보니 뒤에 뭔가 끈적끈적한 잉크 같은 것으로 쓴 붉은 글자가 보였다. 
"스님, 이게 뭡니까?"
"이건 고대 베트남어로 저주를 하는 주문입니다. 안 들으시는 게 좋아요."

- 잠시 후, 스님이 지훈에게 말했다.
"시주님, 지금 보니까 저 사람이 저거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아직도 시주님한테 남아 있는 거 같고요. 그러니까 가게로 가지 말고 우리 사원에 가서 한 며칠만 묵으면서 기도를 하고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네."
지훈은 그 길로 스님을 따라 사원으로 갔다. 거기서 일주일간 정말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친 후 마침내 지훈은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사원에서 나왔다. 

-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며칠 동안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가 어디로 가든 반드시 그 여사장네 가게 앞을 지나야 했다. 시장을 가려 해도 거기를 지나야 했고, 동네를 떠나려 해도 그 앞을 지나야 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훈의 고민은 어이없이 해결되었다.
알고 보니 지훈이 없던 사이에 그 여사장이 도망가 버리고 없었던 것이다.

경찰도 오고 스님도 오고 하다 보니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 "저 여자가 저쪽 한국 사장님 시샘해서 저주 걸었대."
"저주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면서? 세상에! 진짜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네!"
동네 장사인데 동네에 그런 흉흉한 소문이 돌자 손님이 찾아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게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생겨났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직 미신을 많이 믿는 편이라 그런 소문이 퍼지면 버틸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 여사장은 도망치듯 이 동네를 떠나 버렸다.

- 지훈이 베트남을 떠나는 날, 스님이 그를 찾아왔다.
"시주님이 몇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쌓아 두었던 선업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선하게 사십시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작별 인사를 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탔다. 떠나기 직전 지훈은 그를 구해 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당한 일들이 정말로 그 여사장의 저주 때문이었을까요, 절묘한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침통한 지훈의 말에 스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시주님을 지켜 준 것은 분명 시주님이 베풀었던 자비와 사랑의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부디 그 마음 변하지 말고 사십시오." 
담담한 스님의 말씀은 지훈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베트남 여사장의 저주 - 과자과자>



- 고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살던 방으로 가서 나머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창 정리 중인데 집주인이 열쇠를 받으러 왔다. 집주인은 들어오면서 쪽지를 고비에게 건네주었다. 
"또 붙여 놨네요."
들어올 때만 해도 없었는데 그새 붙이고 간 모양이었다. 집주인도 그 여자 때문에 골치라는 말을 들었다. 집세는 8개월이나 밀려 있는데, 고비가 살던 집에 편지를 자꾸만 붙여 놓고 기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푸념이 늘어졌다. 고비로서는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나가면서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각종 고지서와 팸플릿 사이에 경찰에서 보낸 우편물이 하나 끼어 있었다. 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것을 꺼내 읽었다.
"귀하의 사건은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어서 완결 처리... 뭐야. 결국 아무것도 된 게 없잖아? 모르겠다. 나야 떠나면 그만이지."
고비는 그 통지서를 마지막으로 지긋지긋한 빌라에 안녕을 고했다.

- '그런데 대체 왜 나였지? 아니면, 내가 살던 방?'
어느 쪽이었든 그 여자가 저지른 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일 뿐이었다.
상대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끔찍하게 나쁜 행동.

 

<피를 말리는 사랑, 스토킹 - 고비>



- '이건 뭔가 수상한데?'
곤란해하는 현미를 보자니 진석의 촉이 발동했다. 어차피 봉사활동도 강제로 하게 된 거고 하기도 싫어진 참이었다. 핑곗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한 진석이 백수를 불렀다. 
"야, 백수야. 우리 현미랑 함께 가지 않을래? 여자 혼자 방 보러 다니면 위험하잖아. 서울도 아니고 이런 외진 곳에 오빠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우리가 함께 가자."
백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모양으로 '왜?'라고 물었지만, 진석은 모른척하며 그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백수는 영문을 몰랐지만, 진석이 그러는 데엔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 진석과 백수가 현미와 함께 가겠다고 하자 공인중개사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안 된다고 할 명분이 없어서 말은 못 하지만, 명백히 싫은 표정이었다. 반대로 현미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떫은 감 씹은 표정을 한 공인중개사가 앞장서고 한두 발짝 뒤를 현미와 진석, 백수가 뒤따랐다. 
"어? 현미야. 차로 안 가? 걸어가? 내가 방을 자주 구하러 다닌 건 아니지만, 항상 차로 움직였는데?"
으레 차를 타고 이동할 거라 여겼는데 걸어가자 의아해진 진석이 현미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물었다.
"실은 방세가 싼 대신 집이 좀 외진 곳에 있대."

- "아, 뭐예요! 여기까지 15분 걸어서 왔는데, 마음에 들지 안 들지는 내부 구경하고 이 동생이 판단하는 거죠. 걸어온 게 아깝잖아요. 그냥 빨리 보고 마음에 들지 안 들지 판단하고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평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진석이 조금 공격적으로 공인중개사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는 막무가내로 문 앞에 서서 막고는 길을 터 주지 않았다.
"아이, 다른 매물 보여 드린다니깐."
이쯤 되자 진석도 백수도 슬슬 화가 치밀었다. 15분도 넘게 걸어왔는데 집 앞에 도착해서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간다니!
"아, 씨발! 그럼 여기까지 왜 걸어오게 한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요?!"
문을 열려는 진석과 못 열게 막는 공인중개사의 실랑이가 있던 중이었다.

-진석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앞에 서 있던 공인중개사의 엉덩이에 콱 부딪혔다. 안에서 웬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깜짝이야!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 이분은 집주인입니다."
문에 부딪힌 엉덩이를 움켜쥐고 팔짝팔짝 뛰던 공인중개사가 당황하여 대답했다.
'보통은 집 보러 오면 서로 불편하니까 자리 비웠을 때 가지 않나? 집주인이랑 공인중개사랑 아는 사이인가?'
진석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 안으로 들어간 현미는 조금 자신감이 생긴 듯, 물은 잘 나오는지 화장실과 싱크대 등의 수압을 체크했다. 그리고 곰팡이가 핀 곳은 없는지 인테리어 하자는 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진석은 그런 현미를 보며 자신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백수는 어느 틈엔지 먼저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 중인 것 같았다.
집에는 방이 2개였다. 여자 혼자 살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너무 외진 곳에 있다는 것만 아니면 자신이라도 이곳에서 살고 싶을 것 같았다.
"꽤 괜찮은데? 이건 뭐야? 붙박이장도 있어? 수납공간 넓네."

큰방에 들어간 진석은 무심코 방에 있는 커다란 붙박이장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수상한 공인중개사 - 제진석>

 

 


-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의 한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곳까지다. 당신의 상식과 지식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이 당신 세상의 경계선이다...

- "아, 형님. 이상하잖아요. 벌써 세 명이나 이런 식으로 연락이 두절되는데, 신경이 안 쓰여요?"
그제야 형님은 그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건달 세계에도 층이 나뉘어 있어. 신상명세서 받았다고 했지? 그거 있으면 오만 정보 다 알 수 있다고. 아마 그 오른쪽 방으로 안내된 사람들은 사라져도 누구 하나 신고할 만한 친척이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거야. 친구가 굳이 실종 신고까지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명의만 남긴 채 세상에서 사라졌을 거야. 그 명의로 나쁜 짓을 하는 거지. 작게는 과태료부터 크게는... 네가 말한 실리콘 손가락들 있지?]
"네, 가득 있었죠."
[그게 있어야 서류 떼기 편하거든.]
형님의 말을 듣자니 모든 일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동주는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만 같았다.

- [동주야, 이건 그냥 괴담이야. 도시괴담. 그렇게만 생각해. 우리가 그냥 밑바닥이면 거기는 심연이거든? 우리랑 아예 어두운 정도가 다른 곳이야. 행여 너 신고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마. 남의 일이잖아, 넘어가. 이런 거 괜히 쑤시지 마.]
장난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님의 음산한 목소리에 동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형님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 [다신 그 ㅇㅇ 명품샵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우리나라 치안이 좋은 것 같지?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옆집에서 진짜 사람을 해치는 사건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고 나쁜 약을 거기서 제조하고 있을 수도 있는 나라에 살고 있어. 원래 사람이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는 법이야. 결코 네가 아는 상식이 전부가 아니야. 그렇지만 그냥 살아. 네가 지금 보는 것만 믿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는 동주의 등으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과연 그의 고객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형님은 그저 도시괴담이라 생각하라고 했지만, 정말 그러면 되는 것일까...?

<수상한 지하 중고 명품샵 - 동네꼬마>



- "어, 그런갑다. 닮았네."
"니 일로 와봐라. 까자 묵을래?"
"네, 고맙습니다."
겉보기엔 무서운 아저씨들이었지만 그들은 버몬트에게 친절한 편이었다. 과자도 주고 삼겹살도 구워 주었다. 그렇게 아저씨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중이었다.
'아빠는 언제 오시지?' 

 

- 문득 버몬트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위화감이 드는 곳이 하나 보였다. 얼핏 보면 욕실 같은데 욕조 대신 타일로 된 수족관과 고무통이 여러 개 있었다. 그리고 가정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배수구도 있었다.
'저긴 뭐지?'
과자를 우물거리며 그쪽을 기웃거리는데 거기서 아이들 몇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버몬트와 비슷한 또래도 있었고 더 어려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아저씨 아이인가?'

- Rrrrrrr-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앉아 있던 아저씨 중 한 사람이 전화를 받더니 버몬트에게 말했다.
"야, 너희 아버지 왔단다. 넌 집에 가도 된다."
아저씨의 말에도 버몬트는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그보다는 욕조에 있는 아이들이 더 궁금했다. 버몬트는 귀가 없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 저기 화장실인지 욕실인지에 있는 아이들은 누구예요?"

"허허허허, 야, 이 새끼, 존만아, 니 눈에 저게 보이나?"
못 볼 것을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한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어린 버몬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 곧 다른 아저씨를 따라 차를 타고 항구로 갔다. 
항구에 도착하니 버몬트의 아버지가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건은?"
아저씨가 짧게 물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커다란 등산용 가방 하나를 그들에게 건넸다.
"열어 보지 않았겠지?"
아버지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들이 돌아간 후 아버지가 버몬트에게 속삭였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자. 엄마 알면 기절하신다."

버몬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며칠 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버몬트는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드르륵!
"야! 느그 엄마 아빠 어데 있노?"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누추하고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와 버몬트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밖에 나가셨는데요?"
"그래? 그마 느그 엄마 아빠 올 때까지 여 좀 있자."
"네..."
할 수 없이 대답은 했지만, 버몬트가 보기에 아저씨는 좀 이상했다. 몸에서 냄새도 나고 얼굴 표정도 좋지 않았다. 별로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버몬트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자꾸만 그를 일으켜 세웠다. 

- "저기, 아저씨, 라면 드실래요?"
그러자 아저씨가 버몬트를 쳐다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라면 있나?"
"네."
"그마 함 끼리 와 봐라."
버몬트는 바로 부엌으로 가 라면 3개를 끓여서 상을 펴고 아저씨 앞에 놓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라면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버몬트가 물었다.
"아저씨, 밥도 드실래요?"
"그래. 밥 가온나."

- 그렇게 아저씨는 버몬트가 가져온 라면과 밥 한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먹고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내가 니를 보이께네 우리 아들 생각난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아저씨는 잠시 후 품 안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내 버몬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거 너그 아버지 오마 보이 드리라. 내는 간데이."
말을 마친 아저씨는 훌쩍 나가 버렸다.
저녁때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버몬트는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후 검은 비닐봉지를 전해 드렸다.

- 그에게서 받은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 보던 아버지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봉지 안에는 회칼과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충격을 받은 어머니의 성화로 버몬트네 가족은 결국 그 동네를 떠나기로 했다.

-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의 친구인 건달 아저씨 한 분이 놀러 오셨다. 마침 그때 생각이 난 버몬트가 그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물어보았다.
"거기, 제가 잡혀갔던 데가 대체 뭐 하는 데였을까요?"
"거기가, 우리 쪽 말로 생선 배 따는 데인데... 보통은 그렇게 받은 가방을 열어 보거든? 그 안에 든 건 잡혀 있는 자식이나 가족이라도 버리고 갈 정도의 물건이 들어 있어. 근데 형님은 안 열어 본 거지. 그리고 욕조 말인데, 그냥 생선 배만 따는 데는 아니야. 그 뒤에 배수구가 큰 게 있다고 했지? 그게 오폐수가 잘 빠지게 일부러 그렇게 크게 만든 거고 대부분 바다로 흘러가게 돼 있어. 그 이상은 들어 봐야 너한테 좋을 거 없다. 그냥 잊어." 

아저씨의 무심한 듯한 말에 버몬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 판자촌은 도시 개발 사업 때문에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니 아마도 이 질문의 대답은 영원히 들을 수 없으리라.

 

<무서운 이야기 세 편 - 버몬트>

 

 

- 지금도 간혹 사이비 종교와 교주의 악행이 텔레비전 등에 보도되곤 한다. 그들은 순진한 신도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거나 성적으로 유린하는 등 종교 집단인지 조폭집단인지 구별이 안 가는 짓을 저지르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신도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사람들은 교주뿐 아니라 속은 신도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 그러나 정말 무서운 사이비 종교는 아예 비난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이비는 방송에서조차 기사화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하고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첫 번째 이야기 : 악마의 세례명
이세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같은 반에 민수라는 친구가 전학 왔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민수와 이세는 금세 친해졌고 시답잖은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경태와 이세, 민수 셋이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경태가 갑자기 이세에게 물었다.
"야, 이세야, 너 종교가 뭐야? 나는 성당 다녀."
"어? 난 딱히 종교가 없는데, 음, 집안 어른들은 절에 다니시는 것 같아."
이세가 대답하고 나자 경태가 이번에는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너는? 어디 다니는 곳 없으면 나랑 성당 가자."
"나는 교회 다녀"
민수의 대답에 경태는 조금 김이 빠진 듯 입술을 뿌우 내밀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세와 민수에게 말했다.
"야아! 너네는 세례명 없지? 나는 있다."
이세는 세례명이 뭔지 몰랐다. 다만 경태는 가지고 있다는데 저는 없으니 뭔지는 몰라도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경태에게 대답했다.
"아닌데? 나 세례명 있는데?"
"야! 교회에 세례명이 어디 있어?"
"진짜 있다니까?"

 

- "기억났다!"
경태는 민수가 말한 세례명을 듣고는 재빨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경태의 검색망에 그 이름이 걸려 나왔다. 경태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세례명의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경태의 손가락이 마우스 휠을 굴릴 때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만 갔다.
"야, 뭔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조금 걱정이 된 이세가 경태에게 물었다. 민수 역시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경태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성인의 이름이 아닌데...? 세례명이..."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는 경태가 답답한 나머지 이세가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 이름과 설명을 읽었다.
"레오나르, 악마 중세 유럽에서 마녀를 핍박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악마입니다. 마녀 집회에서 마녀들을 지휘하고, 마녀들을 사탄에게 바치는 역할을 합니다...?"
설명을 읽는 이세도, 그것을 듣는 민수와 경태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사 이름도 아니고 무슨 악마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다니. 종교 쪽으로는 문외한인 이세조차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 "며칠 전에 좀 생각나는 게 있어서 할머니한테 여쭤봤거든. 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시더니 '이제 너도 성인이니까 말해 준다. 대신 충격은 받지 마라' 이러시는 거야."  

-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현석은 미친 듯이 백방으로 아이를 찾아다녔지만, 이 상자를 받고는 모든 희망을 놓아 버리고 결국 자신도 세상을 버린 것일 테다. 

- 동민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경찰에 신고하고 회사에도 사건의 전말을 보고했다. 동민에게 취재를 강요했던 상사는 일정 부분 책임을 느끼는지 동민에게 유급휴가 처리해 줄 테니 좀 쉬다오라고 했다. 그러나 동민은 끝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한 후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 버렸다. 공교롭게도 그즈음을 기점으로 사이비 종교에 관한 보도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 쪽에서는 불문율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교주와 신도 모두 싹 다 잡아 처넣을 수 있는 거 아니면 기사도 내지 말고, 취재도 하지 마라. 가족의 목숨과 맞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경로로 사이비 종교에 관한 프로그램이 오락거리처럼 방송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입을 다문 채 살아가고 있다.

 

<사이비 종교 이야기 - 이세계여행자>

 


- "오늘도 무사히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돌비는 헤드폰을 벗으며 천천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연자의 숨죽인 목소리, 중간중간 꺼지듯 흐르던 말, 그리고 마지막의 긴 침묵. 화면 속 채팅창은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마치 모두가 무언가를 곱씹는 듯, 혹은 조용히 그 여운에 잠겨 있는 듯했다. 

- 투둑, 투둑.
창밖에 내리던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는 아까보다 더 촘촘해졌다. 마치 누군가 문밖에서 조용히, 끊임없이 두드리는 듯한 소리, 돌비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는 아직 비가 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괜히 문이 잘 잠겼나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죠. 여러분도... 창문 꼭 닫으셨죠?"

그는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방 안의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모니터 불빛만이 얼굴을 밝게 비췄다.

- "무섭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아직 '정상'이라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는 그 감정, 그 떨림... 그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죠."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단순한 괴담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기억해 주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그날의 밤을 여전히 건너고 있다는 것을요."

- "긴 밤이네요. 하지만 무사히 지나갈 거예요. 무섭다면... 그건 아직 우리가 이쪽 세계에 있다는 증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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