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앤드루 랭 / 오스틴 돕슨 / 지여울
출판 : 글항아리
출간 : 2023.12.13
독서가, 장서가, 수집가...
한때는 장서가에 발끝 정도는 걸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의 정체성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요즈음이다. 독서가라고 부를 만큼 충분히 양질의 도서를 읽는 것도 아니요, 장서가라 할 만큼 공을 들여 책들을 돌보는 것도 아니며, 수집가라기엔 너무나도 가볍고 보잘것없는 책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해 명확한 확신이 없는 건 아니다.
'회색의 인간'.
확실한 한 쪽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지는 알고 있는.
그 바운더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지점이 모호해서 고민스럽다면, '속하지 않은' 곳들을 지워가며 남는 영역을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서 큐레이션으로 '이달의 도서'로 소개한 책이었다.
표지도, 제목도 관심이 가서 읽어보았는데 선정된 그 한 달 동안 이 책을 눈여겨보고 읽으려고 시도한 유일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한 번에 읽지 못해 반납 후 재대출을 했는데도 그 긴 기간 동안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내가 깜빡하고 꽂아둔 책갈피가 그대로 꽂혀 있음을 확인한 순간의 당황스러움이란.)
전문 용어가 많고 가독성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소개된 작품이나 작가 다수가 국내에서는 생소한 편이기도 했고, 작가의 위트가 애매한 수준의 독자인 내게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았었고 비슷한 고민과 즐거움을 누렸다는 것.
그 안에서도 다양한 취향으로 나뉘고 대립했었다는 것.
모으는 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질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는 것.
그런 소소한 공통점들에서 나 역시 기쁨을 느꼈다는 것.
장정파들의 섬세한 안목과 취향을 엿보는 것도 좋았고, 보물찾기에 매진하는 사냥꾼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좋았다. 필사본을 고르는 법, 책 얼룩을 빼는 법이나 보관하는 법, 타인에게 책을 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저마다의 소신을 소개해준 부분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짤막한 소개 내용을 바탕으로 판화나 삽화, 표장을 검색해서 찾아보는 일은 정답을 확인할 길 없으니 수고로우면서도 유쾌했다.
해서, 즐거웠다.
책이라네, 책, 그리고 다시 한번 책이라네.
책은 우리의 주제라네,
미친 짓이라 악담하는 이들도 있다만,
그래서 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만,
큰 책이든 작은 책이든 상관도 안 하고 말이지.
하지만 그대, 서가와 서점의 노예여!
다 해진 2절판 책을 품에 안고 있는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라.
"그 작고 진귀한 책, 고색창연한 그 책"을 칭송하리라.
- 오스틴 돕슨
- 디브딘 박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을 주제로 책을 쓰는 저자라면, 아무리 경험이 없는 수집가에게라도 응당 수집해야 하는 책의 법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해서는 안 된다.
- 물론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책이 있다. 고대와 현대의 고전들, 세계가 이미 그 가치를 인정한 책들이다. 이런 책은 어떤 판본으로 갖고 있든 간에 책 수집에 필수불가결한 토대다. 장서의 규모가 아무리 작다 해도 마찬가지다. 호메로스, 단테와 밀턴, 셰익스피어와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와 몰리에르, 투키디데스, 타키투스에 더해 기번, 스위프트, 스콧에 이르기까지, 활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작가들의 작품을 원서 혹은 번역서로 소장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고전의 목록은 실제로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사람들의 취향은 그야말로 폭넓게 갈라지기 시작한다. 스콧이 어린 시절 사들인 브로드시트판의 이야기시와 스크랩북 등의 수집품들은 시인과 마법사, 연금술사와 이야기꾼의 작품으로서 풍성한 스콧도서관의 중심이 되었다. 연극 속 인물들이 등장하는 채색 동화책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다운 취향으로부터 두스, 멀론, 쿠쟁의 작품을 수집한 희곡 장서가 탄생하기도 한다.
- 인류 역사의 한 시대를 연구하는 이들, 인류가 배출한 천재들의 과거 시절이나 작품을 연구하는 이들은 다른 수집가에게는 쓰레기처럼 보일법한 당시의 하찮은 책들을 열성적으로 수집할 것이다. 이를테면 몰리에르를 연구하는 학자에게 <재녀들이 사는 왕국의 지도 La Carte du Royaume des Précieuses>와 마주치는 일은 그야말로 행운일 테다. 이 책은 작가가 그 유명한 작품인 <웃음거리 재녀들 Les Précieuses Ridicules>을 쓰기 1년 전에 발표된 지리학 소논문이다. <웃음거리 재녀들>에서 마들롱은 마스카리유가 등장할 무렵 <작품 선집 Recueil des Pièces Choisies>의 저자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있는데, 이 소논문은 바로 그 <작품 선집>에 수록된 것이다.
- 호러스 폴이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고 이름 붙인 능력이 있다. 이 단어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문학작품을 발견하는 행운을 뜻한다. 별스러운 취향을 지닌 책 수집가들은 모두 세렌디피티의 즐거움을 알고 있지만, 이 즐거움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향유한다. 어떤 이는 설교집 한 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며 다른 이는 커다란 도서 목록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 덕분에 책을 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품 넓은 군용 외투의 주머니가 한층 늘어났을 것이다. 이런 외투는 샤를 노디에 책 사냥을 나설 때 입곤 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고딕체로 인쇄된 책에 매료되고 또 다른 이들은 내비스나 글랩손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희곡에 사로잡힌다.
- 책을 수집하는 취향은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한 가지에서만은 의견을 함께한다. 바로 활자가 인쇄된 종이에 대한 애정이다. 엘제비어판 Elzevir 만을 선호하는 수집가라도 찰스 램이 "코번트가든에 있는 바커의 서적상에서 집까지 무겁게 들고 온 보몬트와 플레처의 폴리오판"에 대한 애착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램이 "셰익스피어의 폴리오 초판본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것은 또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애서가는 실로 무슨 말이든 지껄일 수 있는 법이다.
- 그러나 책 수집이라는 분야 안에서는 문학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모든 수집가가 소유하고 싶어 하는 책들이 있다. 자신의 장서가 아니라면 동료의 장서를 위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그야말로 진귀한 보물들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징 때문에, 활자나 종이 자체의 아름다움 혹은 그 장정이나 삽화의 아름다움 때문에, 과거 유명한 인물과의 인연 때문에, 그 희귀함 때문에 귀하게 여겨지는 책들이다. 여기서는 바로 이런 책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 이제부터 이런 책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책의 적들에 대해서, 이런 책을 어디에서 사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참이다.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이 주제는 예술에 관한 취미보다 희귀함에 관한 취미와 좀 더 가깝게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문학보다는 책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비평보다는 서지학, 즉 문학을 향한 예스러운 가정교사 duenna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려 한다. 얼핏 지루한 주제이지만 재미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선 프랑스 작가들의 표현과 일화를 너무 자주 빌려 쓰는 일을 사과하고 넘어가려 한다. 이는 테니스와 펜싱에서 프랑스어로 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엘제비어판 : 네덜란드의 인쇄업자 루이스 엘제비어가 찍어낸 판본을 가리킨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판형에 낮은 가격의 책으로, 현대 문고판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 보몬트와 플레처 : 두 사람 다 영국의 극작가로, 공동 작업으로 연극을 썼다.
- 책을 책으로서 사랑하는 서지학이라는 분야에서, 프랑스는 여전히 테니스나 펜싱에서 그러하듯이 유럽의 스승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에드워드 3세의 법관이었던 버리의 리처드는 저서 <필로비블론 The Philobiblon>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시온의 신 중의 신이시여! 파리로 향할 기회가 올 때마다 휘몰아치는 기쁨의 물결 ... "
- 모르강과 파투 서점도 있다. 이곳에서 나는 항상 헝가리에서 제일가는 장서에 둘러싸인 브라시카누스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도서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유피테르의 품 안에 있는 것이다 non in Bibliotheca, sedin gremio Jovis."
이런 사유지에서 낚싯대를 던져볼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곳들은 공작이나 백만장자만을 위한 장소다. 분명 옛 록스버러의 공작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공작 앞으로는 최고의 서점과 경매장, 그리고 플로어스의 그 유명한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강들이 모두 활짝 열려 있었으며, 공작은 책 수집과 낚시라는 두 분야에서 모두 최고의 것들만 마음껏 누렸다.
- 한편 좀 더 소박한 노점과 눈에 잘 띄지 않는 연못이 있는, 작은 지류 같은 거리들이 있다. 검소한 책 낚시꾼들이 엘제비어판이나 옛 프랑스 희곡, 셸리의 초판본, 왕정복고 시대의 희극을 낚아올리기를 기대해 볼 법한 곳이다. 이런 기대는 대개 충족되지 못한다. 그러나 존 마스턴의 시집 진본이라든가 토머스 러벌 베도스의 <사랑의 독화살 Love's Arrow Poisoned>, 뱅크스의 <귀신 들린 붉 ...
- 소위 낚시꾼들이 말하는 "물때"는 오전 일곱시 반부터 아홉시 반까지 열린다. 고서적 노점상들은 바로 이 시간에 새로운 책을 꺼내 진열하기 시작하며, 한층 규모가 큰 고서적상의 대리인들은 노점을 찾아 가치가 있음직한 책을 모두 골라간다. 이 고서적상의 대리인들은 아마추어 책 사냥꾼의 즐거움을 망치는 주범이다. 이들은 전국의 모든 고서적상의 도서 목록을 예의주시하다가 팔릴 만한 가치가 있다 싶은 책을 전부 잡아챈 다음, 실링 단위였던 값을 파운드 단위로 바꾸어 팔아치운다.
- 레스베크는 두 고서적상이 이미 뒤지고 난 상자 안에서 라로슈푸코의 <격언집 Maxims> 초판본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자신의 책에서 맹세코 주장했다. 또한 이 수집가는 장 드 라브뤼예르의 진본 일체를 짧은 시간 안에 모아들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프랑스 과자장인 Pâtissier Français>의 엘제비어판을 한 부에 6수라는 싼값으로 구하기도 했다. 이 엘제비어판 요리책의 인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판본은 최근 600파운드에 팔렸다. 스너피 데이비의 <체스 시합 Game of Chess> 일화도 레스베크의 행운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이런 행운을 기대할 수 있는 수집가는 1000명 중 한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최근 한 대학생이 고서 노점상에서 펄럭이는 종이 몇 장을 닳아빠진 실로 한데 엮어놓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노점을 지키던 노파는 셰익스피어의 <존 왕>의 4절판 진본에 1실링도 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독자들이 지나친 희망에 부풀지 않도록, 여기서 필자의 경험을 한 가지 덧붙이려 한다. 필자에게 일어났던 유일한 뜻밖의 횡재 trouvaille는 헛장에 레옹 강베타의 이름이 적힌 상태가 깨끗한 1844년 판본의 <기독교인의 하루 La Journée Chrétienn> 한 권뿐이었다. 진귀한 책들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층 더 진귀해지고 있으며 4펜스 상자의 바닥에 남아 있는 것은 대개 희망뿐이다. 그러나 파리의 책 사냥꾼은 사냥을 포기하지 않는다.
-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측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별 소득 없이 추측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또한 책 사냥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일부다.
- 한편 "어디로 가는가?"라는 또 다른 의문은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의 보물은 어디로 흩어질 것인가? 이 책들은 친절한 주인을 만날 것인가? 혹여 책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운명, 즉 현실주의자의 손에 떨어져 결국 트렁크 제조업자에게 팔려가게 되는 건 아닐까? 책장이 낱낱이 뜯겨 상자의 안감을 대거나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곱슬곱슬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지는 않을까? 희귀본이라면 앞으로 한층 더 진귀해져 마침내 막대한 값으로 팔릴지도 모른다. 운 나쁜 사람들은 살아생전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도 있다. 장서를 팔아치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이들이다. 장서를 팔다니, 참으로 쓰라림과 분노와 실망으로 점철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 책을 파는 일은 친구를 잃는 일만큼이나 괴롭다. 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슬픔이 없을 정도다. 책은 만날 때마다 인상을 바꾸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병석에서 회복하는 동안 어떤 책을 읽었다고 치자. 몇 년이 지난 후 그 책을 다시 읽는다면 거기서 받는 인상은 우리 내면의 변화에 따라 분명 달라질 것이다.
- 한편 수집가의 취향과 지론이 발전하면서 자신의 장서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시와 발라드'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열변을 토하던 사람이 <소르델로 Sordello>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책은 마치 친구처럼, 우리 자신처럼, 세상 모든 것처럼 변화한다.
- 책이 주는 변화가 특히 짜릿하게 다가오는 때는 이 변화가 가장 급격하고도 대조적으로 일어나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비웃었던 친구가 쓴 책이 성공을 거두거나, 우리가 그 재능을 믿었던 친구가 쓴 책이 어처구니없이 실패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중 어떤 경우든 그 책의 의미가 과거의 모습, 과거의 시간에서 멀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가 책장을 펼칠 때마다 사라진 과거는 되살아난다. 시간의 부침은 얇은 옥타보판 안에 인쇄되고 포장되어 있다. 욕망과 희망의 조각난 유령은 오직 우리의 마음속과 상상 속에서만 금지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가 이 유령들을 언제라도 쉽게 상기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때 그토록 강렬하게 생명으로 넘쳐나던 감정, 지금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의 기억보다 한층 더 빛바래고 하찮게 변해버린 감정을 한층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 소르델로 : 로버트 브라우닝의 서사시로, 난해하다는 그의 시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 옥타보판 : 전지를 여덟 등분한 판형의 명칭이다.
- 책은 친구이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친구로서 우리 자신의 변화 또한 환기시키는 존재다.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다소 불편하더라도 책을 곁에 두어야 한다. 책이 세상을 떠돌다 결국 싸구려 노점의 먼지 쌓인 상자에 처박히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앨프리드 테니슨의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읽었던 모든 책의 일부이며 이 과거의 친우들을 위해 약간의 존중을 남겨둘 필요가 적어도 방 한 칸을 내어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미 싫증이 나버린 과거의 친우들은 야망의 허망함과 인간 의지의 나약함을 일깨워준다. 낡은 교과서와 대학 교재를 볼 때면 우리는 예전에 그토록 고생하며 습득한 지식을 지금은 어떻게 이토록 까맣게 잊어버렸는지를 기억한다. 심지어 이 오락에는 나름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경매장에 신사들이 있다면, 경매인은 물론 책의 소유주 또한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입찰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성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무모하게 높은 값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장사꾼들의 다소 노골적인 비웃음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 테니슨의 원문은 "I am a part of all that I have met"으로, "나는 내가 조우했던 모든 것의 일부이다"로도 번역된다.
- 책 사냥에서 사냥감의 성향은 수집가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어떤 이들은 성서를 수집하고 어떤 이들은 발라드만 수집한다. 희곡을 뒤쫓는 이들도 있고 연극 전단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힐 버턴은 수집가인 찰스 커크패트릭 샤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샤프는 고딕체 파도 아니고 상하 여백을 많이 두고 재단한 책 취향도 아니다. 다듬재단을 하지 않은 언커트본이나 일부러 들쭉날쭉 거칠게 재단한 책만을 수집하지도 않는다. 영국의 초기 희곡 수집가도 아니고 엘제비어판의 수집가도 아니다. 16세기 통속소설이나 풍자시의 추종자도 아니고 낡은 송아지 가죽 장정파도, 그레인저파(이 말은 다른 작품의 판화를 오려내어 자신의 책에 '삽화로 넣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다. 이런 관습은 그레인저가 <영국 인물사 Biographical History of England>를 출간한 이후로 널리 퍼졌다 -원주)도 아니다. 황갈색 모로코가죽파도, 금박 장정파도, 대리석 무늬 내지도 아니며 초판본 editioprinceps 파도 아니다."
여기 나열된 이름들은 수집가들이 어떤 부류로 나뉘는지를 간략하게나마 보여준다.
- 그레인저는 <영국 인물사>에서 다른 책의 삽화를 오려 붙일 수 있도록 아예 백지를 철해 넣었다.
- 이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수집가가 있다. 역사 장정파로서 과거 위대한 예술가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나 유명한 수집가의 장서였던 책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혹은 자메파, 즉 루이 라신의 친구였던 자메가 냉소적인 문투로 '여백'을 끼적거렸던 책만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셸리, 키츠, 테니슨, 에버니저 존스까지 현대 시인의 초판본만을 탐내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욕망의 대상을 1830년대 자유롭게 꽃피웠던 프랑스 낭만주의자들의 책으로 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넓은 땅과 큰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면 각 나라의 역사에 대한 책을 수집하려고 할 수도 있다. 더러는 에상을 비롯하여 코생, 그라블로나 스토서드, 윌리엄 블레이크 등 지난 ...
- 책은 순회도서관이 생기기 전 시대의 유물로서 학문에 뜻을 두었던 몇몇 조상이 남기고 간, 글자가 적혀 있는 물건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호수가 맞지 않는 잡지 몇 부, 입문서와 설명서 몇 권, 설교집과 소설 몇 권이 일반 영국 가정의 도서관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둔 수집가들은 절대 이런 평범한 장서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다. 우리의 수집가는 희귀본과 솜씨 있게 장정된 책, 다시 말해 책을 만드는 데 있어 예술적인 안목이 결여되지 않은 책을 좋아한다. 우리의 수집가는 몽테뉴의 예를 따라 서재를 갖고 싶어 한다. 그 서재는 하인이나 아내, 자녀의 훼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곳, 오로지 혼자서, 혹은 이미 죽은 걸출한 위인과 문학의 천재들과 함께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종의 성지다. 빛이 많이 들고 통풍이 잘되며 따뜻하고 습하지만 않다면, 동향이든 서향이든 남향이든 상관없다.
- 책의 수많은 적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두려운 적은 바로 습기다. 여기서는 이 위험에 대항하여 취해야 할 예방책을 설명하려 한다. 우선 현대의 판본이나 일상에서 필요한 책을 비롯하여 수집가가 문학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든 책을 앞쪽이 막히지 않은 서가에 보관하라고 권한다. 서가에 채울 책이 많다면 책장의 높이를 천장까지 올려도 좋다. 다만 서가의 등이 벽에 바짝 붙지 않도록 약간 간격을 두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좀 더 귀중한 책들, 아름답게 장정된 보물들은 유리문으로 단단히 닫을 수 있는 책장에 보관해야 한다.
-(윌리엄 블레이즈는 자신의 저서 <책의 적들 Enemies of Books>(트뤼브너 출판사, 1980)에서 "환기가 되지 않아서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책장에 유리문을 다는 것에 반대한다. 반면 루베르는 햇살이 좋은 날 책장 안의 공기가 환기될 수 있도록 책장의 유리문을 열어두라고 당부한다. 다만 날이 저물면 둘을 닫아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방이 날아들어 보물 같은 책 속에 알을 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레이즈의 의견도 지망하긴 하지만 우선 유리문은 책에 먼지가 타지 않게 하는 유용한 방책으로 보인다 - 원주)
- 책의 연약한 가장자리가 서가의 나무에 부딪혀 다치지 않도록 선반에는 벨벳이나 섀미 가죽으로 안감을 줘야 한다. 책장 선반 뒤쪽에 가죽 안감을 대주면 습기를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작가는 잘 건조한 떡갈나무처럼 결이 고을 나무로 책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작은 문학의 성소라면 마호가니나 새틴우드로 책장을 만들고 삼나무나 흑단으로 안을 대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굳이 버리의 리처드의 충고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욕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쥘 미술레의 주장에 따르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지만)에 살았던 옛 시대의 수집가는 책을 읽는 이들의 더러운 손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또한 더러운 지푸라기를 책갈피처럼 끼우는 습관이나, 책장을 펼쳐두려고 맥주잔을 책 한가운데 내려놓는 습관에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 비록 본인이 그런 짓을 하지 않을지라도, 수집가는 헛장과 여백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여백에 낙서를 갈겨쓰는가 하면 헛장을 찢어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이런 사람들이 한번 손대고 난 다음 남아 있는 책의 잔해를 본 사람이라면 날카로운 그리스식 과장법의 진가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책장을 넘긴다"고 말하지 않고 책 위를 "거닐면서 짓밟는다 πατεϊν"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책을 더럽히고 기름투성이로 만들거나, 언커트본의 책장을 손가락으로 자르거나, 책을 불 근처에 두어 표지가 쩍쩍 갈라지게 만드는 일쯤은 별것이 아니다. 책을 함부로 다루는 촌뜨기들에게 이처럼 단정치 못한 습관은 훌륭하고도 남자다운 행동처럼 보이는 듯싶다. 그러나 이런 습관은 카이사르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 지른 불만큼이나 확실하게 책을 망가뜨린다. <속물들의 무관심에 대처하는 법 Contre l'indifférence des Philistins>을 집필한 쥘 자넹은 "현명하고 성실한 인물만이 훌륭하고 가치 있는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수집가들, 그리고 모든 교양인은 앞서 말한 야만인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여기서 우리의 생각은 책의 또 다른 무서운 적으로 향한다. 바로 책을 빌리는 이들과 책을 훔치는 이들이다. 몇몇 위대한 인물은 책이나 다른 소유물을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파뉘르주는 이렇게 표현했다.
"차라리 물고기가 허공에서 즐겁게 헤엄치게 만드는 게, 송아지 떼가 대양 바닥에서 풀을 뜯게 만드는 게 더 쉽겠다. 아무것도 빌려주려 하지 않는 악당 무리를 변호하거나 참아내는 일보다는 말이지."
- 알브레히트 뒤러가 장서표를 디자인해 선물한 빌리발트 피르크하이머 또한 기꺼이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었으며, 뒤러가 그린 장서표에도 <그 자신과 친구들에게 Sibi et Amici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애서가로 유명한,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장정기술자로 오해받는 일이 많았던 그롤리에의 장서에도 <장 그롤리에와 그 친구들의 것 Jo. Grolierii et amicorum>이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다. 존 레스터 워런이 <장서표 연구 A Guide to the Study of Book-plates>(피어슨출판사, 1880)에 쓴 글에 따르면 크리스티앙 샤를 드 사비니는 모든 장서를 뒤에 남기며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non mihi sed aliis>라고 선언했다.
- 파뉘르주 : 라블레의 작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박식하지만 교활한 인물이다.
- 그러나 다른 수집가 대부분은 무례하더라도 한층 현명한 문구를 장서표에 새긴다. "신을 모르는 이들만이 책을 빌리고 다시 돌려주지 않으리라"라든가 "책을 파는 이들에게 직접 사서 읽으리" 같은 문구다. 극작가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개릭은 셰익스피어의 흉상이 들어간 자신의 장서표에 메나주의 말을 인용하여 새겨 넣었다.
"책을 빌린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책을 읽는 것이오. 그래야 빨리 돌려줄 수 있을 테니."
- 하지만 책을 빌리는 족속의 머릿속에는 빌려온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으며, 나중에야 빌린 책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듯하다. 메나주는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은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행동을 대단히 몹쓸 비행처럼 묘사했다.
- 이런 처치는 전문가의 손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의 저자들은 낡은 책을 직접 수선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수집가는 솜씨에 자신이 생길 때까지 고서 노점의 4펜스 상자에 있는 아무 낡은 책을 골라 연습해보아야 할 것이다.
- 책에 생길 수 있는 얼룩 중 '기름 얼룩'이 있다. 엄지손가락 자국이나 등유 자국(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있던 흔적) 일 수도 있고 낡은 셰익스피어에 오래된 파이 껍질부스러기나 촛농이 떨어져 생긴 자국일 수도 있다. '얇은 얼룩'도 있다. 진흙이 묻은 흔적, 봉랍을 붙였던 자국, 잉크 자국, 먼지나 습기 얼룩이다. 책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본된 책을 풀어내고 낡은 표지를 떼어낸 다음 오래된 실 땀을 잘라내고 책장을 한 장씩 분리해야 한다. 그다음 '기름 얼룩'이 묻은 책장을 꺼낸다. 꺼낸 책장을 뜨겁고 평평한 다리미로 다린 다음 얼룩 부분에 깨끗한 압지 한 장을 대고 누른다. 압지가 기름을 다 빨아들이면 낙타털 붓에 데워놓은 테레빈유를 묻혀 얼룩이 졌던 자리에 붓질한다. 종이의 색이 빠졌다면 데운 알코올에 적신 결이 고운 손수건으로 색이 빠진 부분을 부드럽게 눌러준다. 이 방법으로는 어떤 종류의 얼룩도 뺄 수 있지만 손가락 자국만은 지우지 못한다. 손가락 자국이 있을 때는 그 자리를 깨끗한 비누로 덮어두고 몇 시간 내버려 둔 다음 뜨거운 물에 적신 해면으로 닦아내야 한다. 그 후 약한 산성 용액에 종이를 적신 뒤 깨끗한 물을 담은 통에 담근다. 잉크 얼룩이 묻은 책장은 처음에는 강한 옥살산 용액에 적신 뒤 염산을 여섯 배의 물로 희석한 용액에 담근다. 그다음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서서히 말려두면 끝이다.
- 영국 방식도 몇 가지 소개하겠다. 해넷은 <제본술 Bibliopegia>에서 "기름이나 봉랍 얼룩은 클로로포름이나 벤진으로 씻어낸 다음 하얀 압지 사이에 끼워 넣고 그 위를 다리미로 다리면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염소 용액으로 잉크 얼룩을 지울 수는 있지만 동시에 종이가 표백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열매 하나 크기"(코코넛 열매인지 개암 열매인지 모르겠지만) 만큼의 석회 염화물을 1파인트의 물에 넣은 다음 낙타털 붓에 적셔 얼룩진 부분을 인내심 있게 닦아낼 수도 있다. 낡은 가죽 표지에 윤을 내기 위해서는 "달걀노른자를 분리하여 포크로 으깬 다음 해면에 묻힌다. 이후 마른 플란넬 천으로 깨끗이 닦아놓은 가죽에 발라준다". 그러나 이보다는 다른 작가가 주석과 질의에 쓴 주장 쪽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더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한층 쉬운 방법은 장정기술자가 사용하는 광택제를 사는 것이다." 광택제는 달걀노른자를 사용하는 방법과 같은 식으로 쓸 수 있다. 양피지로 만든 표지는 비누와 물로 씻어낼 수 있으며 상태가 나쁜 표지라면 레몬즙에 소금을 넣은 묽은 용액으로 씻어내면 된다.
- 마지막으로 수집가는 로운데스의 <서지학 Bibliography>이나 브뤼네의 <입문서 Manuel> 같은 책을 반드시 수중에 두고 있어야 하며, 책값이 표시된 여러 서적상의 도서 목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한 많이 갖고 있는 편이 좋다. 쿼리치나 본, 퐁텐, 모르강과 파투의 도서 목록은 책의 시장 가격을 파악하는 데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르누아르가 쓴 알다스판에 대한 책이나 빌렘이 쓴 엘제비어판에 대한 책, 프랑스 판화에 대한 코엔의 저서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디브딘의 책은 다소 부정확하고 장황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따금 재미 삼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조사하는 일이 무의미하다. 이런 유의 필사본이 완전히 똑같은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①에서 ④까지의 필사본이 있다면 수집가는 빠진 책장 여부를 찾아내기 위해 반드시 책 전체를 주의 깊게 살피며 캐치워드가 있는지 알아보고, 캐치워드가 있다면 그것이 다음 장의 첫 단어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쪽매김', 즉 양피지 낱장의 아래쪽 난 외에 장정기술자가 책장을 올바른 순서로 '모을' 수 있도록 써놓은 표시가 있다면 각 장의 표시마다 그에 상응하는 '백지'가 있는지도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다.
- 성서의 낙장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캐치워드나 쪽매김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캐치워드나 쪽매김이 있다면 앞선 설명한 것처럼 이 두 가지를 먼저 확인한 다음 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첫 장에는 반드시 독자에게 보내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서간 Epistle of St. Jerome이 들어 있어야 한다. 성서에는 속표지 역할을 하는 책장이 없다. 나는 지난 세기의 무지한 복제 기술자들이 속표지가 없는 책은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억지로 속표지를 끼워 넣은 성서를 자주 보았다. 서간 다음으로는 성경책들이 순서대로 등장해야 한다. 다만 이 성서의 순서는 오늘날과는 사뭇 다를 뿐만 아니라 필사본끼리도 각기 차이가 있다. 외경은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신약은 별다른 표시 없이 바로 구약에서 이어진다.
- 성서의 말미에는 히브리어 이름과 그 뜻을 라틴어로 풀어둔 색인이 수록되어 있다. 설교자들에게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우화의 비유적인 의미를 풀어 설명해 주려는 의도로 마련된 것이다. 성서 전체의 마지막 줄에는 대개 발행 정보가 수록된다. 이 부분에는 필경사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고 필사본 완성에 걸린 시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단지 "... 끝났다. 신에 찬미를 Explicit. Laus Deo"이라는 문구만 적힌 책도 있다. 이 문구는 오늘날 수많은 현대의 판본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색인 바로 앞부분에 실리는 판권지에는 흥미로운 글귀나 각 성서의 제목을 담은 6보격의 시, 인명과 지명을 기억하기 위한 글귀가 수록된 경우가 많으므로 수집가는 반드시 판권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필사된 한 성서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다.
- 그러나 실제로 여기 소개된 차례를 전부 수록한 필사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기도서 필사본 대부분에는 달력과 성무일과, 일곱 편의 통회 시편과 호칭 기도가 수록되어 있다. 기도서 필사본을 구매하려는 수집가는 채식 장식이 잘려 나가지 않았는지 반드시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는 묶인 책장을 일일이 세어봐야 하는데 이 작업은 제본한 부분을 뜯어내지 않고서는 대개 불가능하다.
- 영국에서 필사된 '호라이'는 그 가치가 가장 높다. 영국에서 사용되던 (사룸 Sarum 전례나 요크 전례, 혹은 기도서가 있던 곳의 전례를 따른) 기도서 중에는 해외, 특히 노르망디에서 영국 시장을 겨냥하여 필사된 책들도 있다. 이런 필사본 또한 불완전하더라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성무일과가 수록되기 바로 전 책장의 가장 아래쪽에 다음 문구가 붉은색으로 쓰여 있는지 확인해 보라.
"사룸 전례에 따라 일과(시간)가 시작된다 Incipit Horæ secundum usum Sarum."
때에 따라 다른 문구가 쓰여 있는 책도 있다.
- 사룸 전례 : 영국 솔즈베리를 중심으로 발전한 전례이다.
- 미사전서의 필사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우며 그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한편 미사전서는 그 안에 캐치워드나 쪽매김이 있지 않는 한 낙장 조사가 극히 어렵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사전문이 없는 필사본은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보통 미사전문은 필사본의 중간에 들어 있으며, 채식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필사본이라면 미사전문과 마주 보는 책장 전체에 커다란 십자가 그림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 큰 크기의 완전한 미사전서에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① 달력 ② '절기별 주요 축일' ③ 미사통상문과 미사전문 ④ 모든 성인의 통공 通功 ⑤ 성인축일과 특수축일 ⑥ 봉독, 성간, 성복음집 ⑦ 찬가, '산문', 칸티쿰.
이 목록 또한 윌리엄 티트 경의 것이다.
- 통공 : 가톨릭에서 세례 받은 모든 이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신앙과 사랑의 친교를 가리킨다. 성도는 성찬의 전례에 참여하면서 다른 신앙인들과 영적인 일치를 이룬다.
- 성간 : 성찬식에서 낭독하는 사도행전의 발췌를 뜻한다.
- ... 인쇄된 책이 눈과 취향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책조차 나름의 추종자와 수집가를 갖고 있다. 위대한 알두스 마누티우스도 이따금 하늘색 종이에 책을 인쇄했다.
- '큰 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언커트' 판본 이야기도 해야 할 것이다. 책의 소유주들은 대부분 장정기술자의 손을 빌려 책의 머리, 배, 밑에 금박이나 마블링으로 책갓 장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책의 여백이 일부 잘려 나가는데 장서가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 장정기술자의 재단기가 닿지 않은 책, 즉 언커트 판본은 드물어서 귀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언커트 판본은 책장을 쉽사리 넘길 수 없다는 점에서 불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책 수집 유행에서 엘제비어판의 희귀한 언커트본은 수백 파운드의 가치가 나간다. 한편 여백이 바짝 잘려 나간 책은 값을 후하게 쳐준다 해도 수십 실링밖에 받지 못한다. 4절판 셰익스피어 전집이 언커트 판본으로 갖추어져 있다면 아마 코네마라의 상당히 비옥한 토지보다도 더욱 비싸게 팔릴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집가는 새로 나온 언커트 판본을 찾아봄 직하다.
- 19세기에 들어 아돌프 라로즈는 여러 책의 삽화에서, 특히 <맛의 생리학 La Physiologie de Goût>(파리, 주오스트 펴냄, 1879)을 위해 그린 장식 그림에서 자신이 에상이나 코생과 비견될 만한 상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 여기서 이 모든 판화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거의 전적으로 '상태'에 좌우된다는 점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테다. 처음 찍어낸 시험쇄가 나중에 만들어진 시험쇄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당연하겠지만 에칭화는 좋은 종이에 찍어낸 작품이 한층 더 선호된다. 이를테면 와트만지에 찍어낸 라로즈의 판화는 베르제지에 찍어낸 삽화만 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프랑스의 오래된 비네트 vignette를 수집하는 이라면 누구나 앙리 코엔의 <수집가를 위한 안내서 Guide de l'amateur>(파리, 루케트 펴냄, 1880)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영국에서 출간된 삽화책 중에서라면 다양한 취향을 지닌 수집가들이 좋아하는, 상상력 넘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와 크룩크의 동판화, 그리고 토머스 뷰익의 목판화가 실린 작품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오스틴 돕슨이 '영국 삽화책'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말이 나온 김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 Songs of Innocence> 초판본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저자가 직접 글을 쓰고, 삽화를 그려 넣고, 인쇄하고, 채색하고, 표지까지 만든 이 책은 애서가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할 만큼 매혹적인 책 중 한 권이다. 새와 꽃과 나무 열매가 둘러싼 테두리 안에 블레이크의 시가 쓰여 있으며, 모든 요소가 부드럽고 매혹적인 색조로 물들어 있다. 인간의 인쇄기에서 찍어냈다기보다는 요정 나라의 오베론 왕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처럼 보인다. 블레이크의 '예언' 시리즈에 수록된 그림이나 <욥기>에 붙인 삽화를 보면, 회화의 기술적인 어려움보다는 상상력 쪽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했음을 느낄 수 있다.

- 다음으로 알아볼 희귀본으로는 알다스판이나 엘제비어판처럼 유명한 인쇄업자들이 펴낸 책들이 있다. 다른 인쇄업자들이 일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에스티엔이나 지운타, 플랑탱 같은 인쇄업자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되곤 한다. 배스커빌이나 폴리스에서 펴낸 작품을 열심히 모으는 수집가도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알다스판과 엘제비어판에 대한 신뢰는 오랜 세월과 경험을 ...
- ... 시집이나 <프랑스 과자장인> 같은 책은 그 가치가 400~500파운드에 이른다. 요즘에는 라블레나 몰리에르, 코르네유 작품의 판본이 상태가 '좋은' 경우, 한때 사랑받았던 <그리스도를 본받아>(연대 불명)나 1646년 출간된 <베르길리우스> 보다 훨씬 큰 인기를 누린다. 이 <베르길리우스>는 심한 인쇄 오류로 가득한 판본이지만 아우구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와 92쪽의 단락에서 보이는 붉은 글자 덕분에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엘제비어 출판사의 일반적인 표장 標章은 구체와 늙은 은둔자, 아테나, 독수리, 불타는 나뭇단이다. 그러나 수많은 서적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작고 낡은 책에 구체 표장이 찍혀 있다 해서 모두 엘제비어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인쇄업자들이 엘제비어판의 표장을 훔쳐 사용하면서 아이기판과 세이렌, 메두사의 머리, 교차된 왕홀 같은 장머리 장식 도안까지 베껴 썼기 때문이다.
- 엘제비어 출판사도 해적판을 펴내는 시기에는 익명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얀센파를 위한 책을 낼 때는 속표지에 가상의 필명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내는 책의 제목에서 사용했던 가명은 (네 권의 책을 제외하면) 오직 두 가지뿐이다. 레이던의 장과 다니엘 엘제비어는 '장 상빅스'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암스테르담에서는 '자크 르 죈'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엘제비어 가문의 이름에 걸맞은, 위대한 마지막 후계자였던 다니엘은 1680년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아브라함은 레이던에서 1712년까지 고군분투했지만 그 이후 나온 책들은 엘제비어의 이름에 걸맞다고 볼 수 없다. 엘제비어 가문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지만 더는 네덜란드에서 책을 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포펜스나 볼프강 같은 다른 인쇄업자들이 펴낸 12절판도 엘제비어판의 수집품에 포함시키곤 하는데, 볼프강에서 출간된 책들에는 야생벌 둥지를 터는 여우를 묘사한 표장에 '구하라(찾아라) Quaerendo'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881년 당시와는 달리 현재 엘제비어 출판사는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의학 및 과학 기술 관련 책을 출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가 되어 있다.
- 수집가들이 탐낼 법한 책의 종류 중 다음으로 살펴볼 책들은 흥미롭고 보기 드문 책이다. 이 범주는 아주 광범위하다. 흥미로운 책(서적상이 말하는 '호색적'이고 '혐오스러운' 책이 아니라)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다.
- 반면 영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정일지라도, 이를테면 윌리엄 로드나 제임스 개릭,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서라 할지라도 장정 때문에 책의 매력이 더해진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장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들이 현저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다.
- 값어치 있다고 여겨지는 책의 목록은 표어와 표지의 기하학적 무늬로 유명한 마이리, 그리고 그롤리에(1479-1565)의 장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으로 드투(세 개의 문장을 지녔던)의 장서가 모로코가죽에 찍힌 꿀벌 모양의 인장과 함께 등장한다. 마르그리트 당굴림의 장서는 금박을 입힌 데이지꽃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디안드 푸아티에의 장서에는 초승달과 활 문양에 왕족 연인과 자신의 머리글자로 만들어진 모노그햄을 넣은 문장이 찍혀 있다. 루이 15세의 세 딸은 장서에 각기 좋아하는 색인 연노란색, 빨간색, 연녹색의 모로코가죽 옷을 입혔다.
- 윌리엄 로드 : 16세기 영국의 성직자로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다. 학자이기도 했으며 필사본 수집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 그롤리에 : 그롤라에 장정에 새겨진 표어는 '그롤리에와 그 친구들의 것'이다.
- 윌리엄 쿠퍼부터 새뮤얼 로저스에 이르는 작가 대부분에게 상상력과 재능을 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소묘화가로서 스토서드의 재능은 보잘것없다. 스토서드가 그리는 인물은 척추가 없는 듯 축 처지고 힘이 없어 보이기 일쑤였고, 그가 묘사하는 아름다움은 진부했다. 그러나 함께 묶어 전체적으로 살피면 스토서드가 그린 그림은 대다수가 그야말로 절묘한 매력을 뽐낸다. 스토서드의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영국답지 않은 특징-즉 우아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스토서드의 뛰어난 강점이다. 그 온화한 선의 흐름, 옷차림을 표현하는 감각, 부드럽게 다듬어진 재치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존재한다. 스토서드가 묘사하는 여성과 아이는 그야말로 순수함과 천진함의 화신으로 보인다.
- 다만 스토서드는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특정 분야 안에서만 편안해하는 듯하다. 그는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보다는 목가적이고 가정적인 이야기를 그릴 때 한층 뛰어난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양식은 <페러그린 피클의 모험> 같은 거칠고 야단스러운 이야기보다는 <클러리사 할로>나 <찰스 그랜디슨 경 sir Charles ...

- 뭐라고 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한 재미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완전히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리치는 -크룩섄크를 제외하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리치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책 몇 권에도 삽화를 그렸지만,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역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아베킷의 <희극의 역사 Comic Histories>, <아일랜드로의 짧은 여행 Little Tour in Ireland>,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서티스의 모험 소설 몇 권에 그린 삽화들이다.
- 한편 현재 테니얼은 자신의 이름을 크게 내건 주간지의 만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테니얼은 가장 우아하면서도 기발한 머리글자를 그리는 화가였다. 테니얼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정확하게 그려졌으나 이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만화보다는 <펀치 포켓북 Punch's Pocket-Book>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수록된 진지하면서도 기괴한 그림들을 더 좋아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티파티> 장면보다 유쾌한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삼월 토끼의 엉망진창으로 심란해진 표정을 보라. 모자 장수는 열의로 넘치면서도 어딘가 모순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이 둘은 주머니쥐를 찻주전자에 넣으려 할 것이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 파란 애벌레가 버섯 머리 위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정확한 정보에 따르면 애벌레의 키는 딱 3인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얼마나 위엄 있는 모습이란 말인가! 그 나긋나긋한 몸가짐은 어찌나 동양적인가!

- 동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테니얼이 동물 그림의 대가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테니얼이 그린 <영국의 사자 British Lion>는 가장 인상적인 네 발 동물이다. 이 그림은 이미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소개되었으므로, 그 아름다운 존재감의 본보기를 보자고 구태여 인디언 폭동을 다룬 유명한 만화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테다. 여기서는 그보다 좀 더 작은 고양잇과 동물을 다룬 테니얼의 그림, 즉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아기고양이 그림을 소개한다.


- 이 <왕의 파티 King Luckieboy's Party>는 장난감 책의 분야에서 신의 계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한편 <아기의 오페라 The Baby's Opera>와 <아기의 꽃다발 The Baby's Bouquet>은 작은 걸작 petits chefs d'œuvre이라 할 만하다. 생각 있고 현명한 수집가라면 자녀보다는 자신의 장서를 위해서 이 책들을 챙겨두려 할 것이다. <먼디 부인의 집 Mrs. Mundi at Home> 또한 예스럽고 우아한 작품으로, 관심 있는 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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