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출판 : 현대문학
출간 : 24.06.25
집중력은 뇌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가 아닐까.
긴 호흡으로 하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이 조금씩 버겁게 느껴진다. 이것이 숏폼에 익숙해진 나의 뇌 때문인지, 추운 계절 동안 한껏 움츠러들어 활동량이 떨어진 체력 때문인지 판단이 어렵다. 어쩌면 노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저런 고민을 하는 중, 나를 안심시켜 준 것이 <라플라스의 마녀> 시리즈다. 아직 이 정도는 무리 없이 이어서 읽을 수 있어, 하는.
작품 내 시간 흐름으로 본다면 <마력의 태동>, <라플라스의 마녀>, <마녀와의 7일> 순서지만,
가급적 발간 순서대로 <라플라스의 마녀>, <마력의 태동>, <마녀와의 7일>로 읽어보시는 것을 더 추천한다.
(<마녀와의 7일>을 첫 작품으로 읽는 것도 괜찮을 지도. 다만 <마력의 태동> 만큼은 마도카에 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하나의 세계관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품들도 있지만, <라플라스> 시리즈는 각각의 작품이 느슨한 고리로 연결된 체인 같은 작품들이다. 마도카를 중심으로 <라플라스의 마녀>와 <마력의 태동>은 아마카스 일가와 그 사건을, <라플라스의 마녀>와 <마녀와의 7일>은 다케오 외의 모험(?)을.
사족이지만,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스쳐가듯 언급된 '다케오의 본가가 양계장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마녀와의 7일>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꽤나 반가웠다. 또 이전까지는 소녀에 가까웠던 마도카의 이미지는 <마녀와의 7일>에서는 완전한 성인 여성에 가깝게 성숙했다. '마법 소녀'에서 '마녀'가 된 듯한 아우라도, 이제는 능숙하게 거리감과 태도를 결정하는 노련함에서도 그녀의 성장이 느껴진다.
이렇듯 작은 정보들의 중첩이 반가움과 놀라움을 주기도 해서- <라플라스>는 읽는 순서가 감상에 꽤 영향을 주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차이점. <마녀와의 7일>에서는 AI나 데이터 분석 기술에 관한 내용을 깊게 다룬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수집되었을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어떤 식으로 활용 또는 악용될 수 있을지, 신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라진 것들과 새롭게 태어난 것들이 어떤 식으로 교차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오프라인과 아날로그가 강세라고 알려진 일본에서 발표된 작품이라 더 흥미로웠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결백성에의 집착.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때때로 지나치게 '선'을 표방하는 서술들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만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싶어서. 사법거래는 부담스럽지만 이복형제는 괜찮은 걸까 싶기도 하고.
흐름에 저항하며 마지막 문을 닫는 것.
흐름에 몸을 맡기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
.
.
.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
생각이 많은 나날이라 그런지, 상념이 많이 섞이는 독서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 학교 정문을 나서면서 리쿠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두툼한 잿빛 구름이 번져가고 있었다. 비 쏟아지겠네. 아침 일기예보에서 비 모양 표시를 봤는데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다. 7월에 접어들었지만 장마는 아직 한참 더 이어질 모양이다.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발걸음은 항상 다니던 그 길로 향했다. 집과는 반대 방향이다.
- 이윽고 도착한 곳은 역 앞에 있는 10층 빌딩이었다. 도쿄 중심가 오피스빌딩처럼 세련된 디자인으로 벽면이 금속처럼 빛을 반사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복합공공시설이다. 시청과 도서관, 커뮤니티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5년 전에 완공된 건물이라서 그야말로 최신 설비가 다양하게 갖춰졌다.
- 리쿠마는 정면 현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데다 번거로운 수속도 필요 없다. 다만 곳곳에 설치된 방범카메라가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공공연히 알려진 건 아니지만, 아버지 가쓰시의 말에 따르면 그 영상이 실시간으로 경찰에 의해 감시된다고 한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이 눈에 띄면 그 즉시 AI가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얼굴 인식 시스템으로 지명수배 중인 범인을 간단히 잡아낼 수 있으니 누구든 복잡한 수속 없이 드나들게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였다.
- 엘리베이터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1층에 멈춰 있었는지 리쿠마가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에 들어가 3층 버튼에 이어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문이 스르륵 닫히기 시작했다. 30센티미터쯤 남았을 때, 밖에서 뭔가 데굴데굴 굴러와 양문 사이에 끼었다. 센서가 작동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문틈에 낀 것은 테니스공보다 조금 작은 빨간 공이었다. 재질은 나무인 것 같았다.
- 빨간 공을 주워 들고 여자는 휠체어를 밀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리쿠마가 내내 열림 버튼을 눌러준 것을 알았는지 "고마워" 하고 인사를 건넸다.
"몇 층이에요?" 리쿠마가 물었다.
여자는 불 켜진 버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3층."
아름다운 사람이구나,라고 리쿠마는 생각했다. 끝이 살짝 올라간 큼직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 여자가 어깨에 멘 토트백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 리쿠마는 흠칫했다. 겐다마였기 때문이다. 방금 주운 빨간 공을 뾰족한 막대 끝에 끼워 다시 가방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문을 막았던 빨간 것이 겐다마 공이었다. 하지만 왜 끈이 달리지 않았을까.
- 3층은 도서관이다.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 들르는 게 리쿠마의 일과였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공짜인 데다 리쿠마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로 가득하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모험소설이다. 요즘 나오는 신간이 아니라 이삼십 년 전에 출간된 옛날 소설 중에 마음에 드는 게 많다.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인터넷도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려면 발 빠르게 뛰어다닐 필요가 있었다. 때로는 적의 아지트에까지 잠입했다. 동료와 연락을 주고받는 방법도 제한적이라서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물리적 어려움을 지혜와 용기로 차례차례 뛰어넘는다. 그런 부분이 리쿠마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책을 읽을 때마다 적잖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모험소설 코너를 천천히 둘러본 끝에 오늘 읽을 소설책 한 권을 골랐다. 소련의 군인이 최신예 원자력잠수함을 이용해 미국으로 망명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출간된 지 40여 년이나 된 책이다. 지금의 러시아를 예전에는 소비에트연방, 줄여서 소련이라고 했다는 것을 리쿠마는 교과서로 배워서 알고 있었다.
소설 앞부분을 읽자마자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타입의 작품이지만 그야말로 흥미진진해서 다음 장, 그다음 장이 견딜 수 없이 궁금했다. 하지만 상당히 두툼한 책이라서 오늘 하루에 다 읽지는 못할 것이다. 내일부터 한동안 책을 고르느라 고민할 일은 없겠다고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 문득 깨닫고 보니 창밖이 어둑어둑해졌다. 게다가 유리창에 빗방울이 투둑투둑 찍혔다. 리쿠마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길거리의 행인들이 모두 우산을 쓰고 있었다.
- "그럼 꽤 멀잖아." 그녀는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내가 좋은 거 알려줄게. 지금부터 15분 뒤에 일단 비가 그칠 거야. 지금이 5시 반이니까 5시 45분쯤이야."
- "다마가와강 경호원 사체 유기 및 살해 사건과의 관련은?"
'피해자 자택에서 860미터 거리. 피해자의 장남이 재학 중. 이상입니다.'
좋아,라고 중얼거리고 검색모드를 해제했다. 깜빡 잊고 그냥 두면 와키사카가 소리를 낼 때마다 AI가 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
- 교문을 지나 바짝 마른 운동장 옆을 지나가면서 이런 곳에 발을 들인 게 몇 년 만인가, 하고 잠시 감회에 젖었다. 체육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두 명씩 차례대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 50미터 달리기 기록을 재는 모양이다. 요즘 중학생들은 몇 초쯤 나올까. 나는 아슬아슬하게 7초대에 드는 게 고작이었는데, 하고 20여 년 전 일을 떠올렸다.
- 모바일을 리모트 워크 모드로 바꿔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잡았다.
"와키사카예요. 방금 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몇 초 뒤에 반응이 있었다.
'오, 역시 활기차네, 학생들은.'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것은 실제 인간의 목소리다. 와키사카의 직속 상사 모가미 주임이다.
'이런 땡볕에 달리기라니, 자네는 괜찮겠지만 나한테는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저도 못 해요."
'뭔 소리야, 요즘 같은 초고령화 시대에 자네는 한창 젊은 축에 속한다는 거 잊지 마. 여차하여 범인이라도 잡으려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줘야지, 안 그러면 곤란해.'
- 모가미는 냉방이 빵빵한 특별수사본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이제부터 와키사카가 만날 예정인 참고인과의 대화를 방청하려는 것이다. 중간에 뭔가 지시를 내릴 확률도 매우 높다. 이 방식 때문에 수사원은 단독 행동이 기본이 되었다. 탐문수사를 할 때, 본청 형사와 관찰서 형사가 한 팀으로 움직이던 관례는 이미 몇 년 전에 없어졌다.
- "유품을 보고 부친의 것이라고 금세 알아봤습니까?"
아니,라고 모가미는 말했다.
'잘 모르겠다고 했대. 너무 더러워져서 모르겠다고. 아버지 옷이라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그렇습니까..."
냉철한 편이구나,라고 와키사카는 생각했다. 그 옷가지를 와키사카도 봤지만 분명 하나같이 회색으로 변해버려 판별하기 힘든 넝마 조각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족들은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다. 타인의 사체를 가족이라고 생각해 인수해 가는 일까지 있었다.
'머리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모가미가 불쑥 말했다. 똑같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 케이스는 카메라 기능이 있어서 상대의 얼굴을 촬영해 준다. 그 이미지가 모바일을 통해 특별수사본부로 송신되는 구조다. 이렇게 관계자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수집된다. 위법은 아니라지만, 와키사카는 아직도 양심에 찔리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부터 나누게 될 대화도 모두 실시간으로 특별수사본에 전송되지만, 이 사실을 상대에게는 밝히지 않는다. 이 또한 위법은 아니라는 모양이다.
- "그 얘기는 나도 들었어. 그래서 혹시나 하고 학교로 전화해 봤지. 네가 등교했다는 말을 듣고는 솔직히 좀 놀랐어. 아마 오늘은 학교에 못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리쿠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볼을 긁적였다.
"집에 있어봤자 할 일도 없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와키사카는 생각했다. 함께 슬퍼해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느니 학교에 나오는 게 그나마 마음이 풀릴 것이다.
- "그러면 아버님의 스마트폰을 슬쩍 본 적도 없었겠네?"
"당연하죠. 그런 짓을 왜 해요? 그런 거. 저는 엄청 싫어해요. 혹시 앞으로 아버지 스마트폰을 찾더라도 그걸 들여다볼 생각은 없어요.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라도 프라이버시는 침해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는 중학생의 말에 와키사카는 새삼 양심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통신기기의 분석은 이제 수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쓰키자와 가쓰시의 스마트폰을 발견하긴 어렵겠지만, 이미 통신사에 정보열람 청구 수속은 해두었다.
- 아니 아니 하며 와키사카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가택수색은 범인으로 보이는 자의 집이나 사무실 같은 데를 수색해 범행 증거를 찾아낼 때 하는 거야. 우리는 그게 아니라 아버님의 인간관계나 최근의 상태를 파악할 만한 게 필요하거든."
- 작은 몸집의 담임 선생님은 평소에는 그리 미덥지 않았는데 이번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가르쳐주었다. 특히 장례식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고 화장만으로 간소화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시청에 상담해 보면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동상담소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리쿠마의 처지에 대해서는 이미 전달했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헤어지는 참에 선생님이 말했다.
실은 돈 문제로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우리 엄마는 친구가 집에 온다고 하면 카레밖에 생각이 안 나는가 봐. 언제까지고 어린애인 줄 안다니까." 준야가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어쩔래?"
"글쎄 어떻게 할까."
"억지로 오라는 건 아니지만, 네가 와주면 나야 고맙지. 네가 안 오면 아마 우리 엄마가 걱정할 거야. 아, 너 말고 나를 친구라고 하더니 실은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었네 하고."
하하하하고 리쿠마는 웃음소리를 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후로 처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말해주는데 안 가는 것도 큰 실례겠지?"
"그치, 그렇게 나오셔야지."
준야가 리쿠마의 어깨를 툭 쳤다.
- 미야마에 준야와는 중2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시업식을 마치고 하교하는 길에 갑작스레 리쿠마를 부르면서 곁으로 뛰어왔다.
모처럼 같은 반이 됐으니까 친하게 지내자,라고 그는 말했다.
"뭐, 좋아. 근데 왜 하필 나야?"
"굳이 말하자면 인스피레이션이라고 할까.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재미있는 소재를 잔뜩 갖고 있을 거 같았어."
"그런 거 없는데?"
"너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뿐이야. 아무튼 같이 가자. 자기소개는 걸어가면서 하고."
통통한 동급생은 리쿠마에게 몸을 찰싹 붙이면서 등을 밀었다.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덥잖아."
이상한 놈이네,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내 페이스가 이상하게 꼬여버린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온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 미야마에 준야라고 이름을 밝힌 동급생은 걸어가면서 자신에 대해 말했다. 아버지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한다, 대학생 누나가 있다. 자신이 통통한 것은 다이어트 중인 누나가 남긴 음식이 아까워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이다,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소설가가 될 생각이라고 했다.
"근데 전업 작가가 되려는 건 아니야. 요즘 세상에 소설만 써서 먹고사는 건 어렵잖아. 본업과는 별개로 취미 삼아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래서 쓰키자와 네 얘기도 듣고 싶어. 분명 이래저래 참고가 될 거 같아."
"그런 소재 같은 거 없다니까."
"너는 없어도 너희 아버지는 있겠지."
"아버지?"
"자기소개 때 말했잖아, 전직 형사였다고. 미스터리를 쓸 때 참고가 될 거야."
- "고민 중이야. 일단 자동차 정비공장이라는 게 좀 그렇잖아. 아무래도 장래성이 없을 거 같아."
"왜? 자동차가 없어질 일은 없잖아."
"자동차는 없어지지 않아도 정비공장이 없어질 가능성은 있어. 우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어. 내 차를 갖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잖아. 자기 차를 사더라도 약간 흠집이 나건 말건 전혀 신경을 안 써. 외관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그냥 잘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요즘 자기 차에 왁스칠 하는 사람 봤어? 나는 몇 년째 못 봤다."
"흠집쯤이야 그냥 타고 다닐 수 있지만 고장 나면 어떻게 해? 자기 손으로 수리는 못하잖아."
"근데 요즘 자동차는 성능이 좋아서 웬만해서는 고장도 안 나. 그나마 아직까지는 운전 실력이 형편없는 운전자라든가 음주운전을 하는 미친놈이라든가 무면허로 나온 멍청이들이 사고를 일으켜준 덕분에 아버지 공장이 망하는 일은 없었어.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도 없어질 거야. AI에 의한 자동운전이 보급되면 사고가 급감할 테니까."
"이쪽 업계에도 AI가 등장하는 거야?"
"AI가 앞으로 활발하게 등장하는 분야가 될걸. 사고나 고장이 없어도 차량 점검은 해야 하니까. 물론 자동차 정비공장은 필요하지. 근데 정비공 대신 AI가 조종하는 로봇이 일할 거야. 사람보다 몇 배나 빠르고 경비도 절감돼. 그러면 가격경쟁이 일어나 요금은 자꾸 내려가겠지. 어때, 이래도 장래성이 있겠냐?"
"그건 그러네. 너도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구나."
-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도 AI 때문에 피해를 봤어."
"그래? 어떤 일로?"
"우리 아버지가 형사였다는 건 얘기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한 적은 없지?"
"응, 어쩐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서 나도 못 물어봤어."
"주위에 떠벌리지 말라고 아버지가 단단히 주의를 줬거든. 아버지는 형사라고 해도 좀 특수한 업무였어. 너, 미아타리 수사원이라는 거 알아?"
- "미아타리 수사원은 전국의 지명수배자를 길거리에서 찾아내는 일을 해. 수백 명에 달하는 지명수배자의 얼굴 사진을 기억한 뒤에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냥 열심히 지켜봐. 그러다 지명수배자가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체포해."
"길가에서라니, 어떤 길가에서?"
"여기저기 많아. 일단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사람이 갈 만한 곳이라고 했어. 탑승객이 많은 역이나 터미널 근처라든가. 그리고 경마장이나 파친코점 앞. 지명수배자는 취업이 어려우니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도박장에 들락거리는 자가 많대."
"그걸 얼굴 사진만으로 찾아낸다고?"
"맞아. 우리 아버지는 이만큼 두툼한 노트를 항상 갖고 다녔어."
리쿠마는 엄지와 검지로 3센티미터쯤의 두께를 만들었다.
- "근데 왜 그런 일을 그만두셨어?"
"자진해서 그만둔 게 아니라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 2년 전이었나, 미아타리 수사반 인원을 대폭 감축했거든."
"왜?"
"그 일을 대신해 줄 게 나타났기 때문이야.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비교가 안 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단숨에 확인할 수 있다... 뭔지 알겠지?"
준야는 몇 차례 눈을 깜작거린 뒤, 퍼뜩 생각난 모양이었다.
"혹시 AI?"
딩동댕! 하며 리쿠마는 검지를 번쩍 들었다.
"요즘에는 사방에 방범카메라가 있잖아. 경찰이 설치한 것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설치한 것도 정말 많아. 그 영상이 실은 모두 다 경찰에 보내진다는 거, 알고 있어?"
- "공공연히 밝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그렇대. 영상은 실시간으로 경찰의 감시 시스템에 입력되고, 상시 조회가 가능해. 지명수배자가 있으면 한 방에 찾아낼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되니까 아무래도 행동반경에 한계가 있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서만 지명수배자를 찾는 미아타리 수사원은 당연히 존재가치가 떨어지겠지."
- 사람이나 물건이 카메라 앞을 가로지르는 일도 있었다.
그런 때가 아버지 같은 잠입 감시원들이 나설 차례다. 몸에 여러 개의 소형카메라를 장착하고 일반 참석자들 사이에 섞여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다. 물론 경호원 제복은 입지 않는다. 수상한 인물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좀 더 근접한 위치에서 촬영하게 된다.
- 그러면 수상한 인물이란 어떤 자들인가. 첫째로는 문자 그대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이다. 부자연스럽게 배회하거나 누군가를 쫓아가는 듯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AI가 경고를 보낸다. 방범카메라가 설치된 장소를 확인하는 사람도 요주의 인물로 간주된다.
- 그런 행동을 일절 하지 않더라도 AI가 경고를 발하는 경우가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오른 요주의 인물을 발견했을 때다. 지명수배자가 거기에 해당한다. 얼굴 이미지를 통해 조회하는 얼굴 인식 시스템이 근간이지만, 걸음걸이의 특징으로 개인을 식별하는 '법 보행 분석' 시스템 등도 연동하고 있다. 복수의 데이터가 갖춰졌을 경우, 행사장에 흘러든 수배자를 AI가 놓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해도 무방하다.
-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오른 사람이 지명수배자 뿐만이 아니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한다. 실은 지명수배가 떨어지지 않은 사건 용의자나 교도소 출소자의 데이터도 들어 있는 것이다. 다만 가쓰시에 따르면 그런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입수되었는지는 모른다. 경찰에서 제공했다는 소문이 있고 아마 그게 틀림없겠지만, 진위 여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국내에서 DNA형 데이터베이스의 운용이 시작된 것은 2005년부터였다. 등록된 DNA형은 피의자의 구강 등에서 정식 채취한 피의자 DNA형과 범죄 현장에 피의자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혈액이나 피지 등에서 검출한 유류 DNA형, 두 종류가 있다. 그 숫자는 해마다 증가해서 현재는 전 국민의 50명 중 한 명 꼴로 DNA가 등록되어 있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실제로 그 두 종류뿐일까 하고 의심할 만한 사례가 나왔다. 현장에서 채취한 유류 DNA형을 과경지원국에 보내자 체포 이력이 전혀 없었던 인물의 이름이 돌아온 것이다. 체포된 적이 없더라도 수사 협조라는 명목으로 일반인에게서 DNA를 채취하는 일은 있지만,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확인되면 즉시 폐기하도록 정해져 있어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 언제 어떤 식으로 해당 인물의 DNA가 등록되었는가. 이 질문에 과경지원국은 답하지 않고 있었다. 극비사항이라는 것이다.
마땅히 폐기되었어야 할 DNA형까지 실은 비밀리에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게 아니냐고 뒤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숫자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불특정 다수의 DNA형을 대량 채취해 등록한다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방법을 명확히 지적하기가 어려웠다. 본인에게 무단으로 그런 일을 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위법이다.
- "사진이 엄청 많네. 이게 대체 몇 명이야."
"4백 명이 넘을걸요."
"이걸 모두 기억한다고? 실감이 안 난다."
"얼굴 사진을 기억하는 요령이 있다고 했어요."
"요령? 어떤?"
"단순히 얼굴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요. 이 사람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고 현재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을 희생하며 살고 있는가. 그런 식으로 열심히 상상하다 보면 사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점점 변해간대요. 인간이란 살다 보면 반드시 얼굴이 변한다. 인생이 배어 나온다. 그걸 가미해서 기억해 나간다. 그런 작업을 날마다 반복하면 단 한 장의 얼굴 사진만으로도 사진 속 인물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워진대요. 친한 친구라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미아타리 수사는 그런 감이지 이론이 아니다,라고 아버지가 알려줬어요."
리쿠마는 긴 얘기를 줄줄 풀어냈다. 아마 아버지에게서 여러 번 들은 얘기일 것이다.
- "이 얼굴 사진을 보면서 나한테 범인이 어떤 사람 같으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사진을 들여다봤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래서 전혀 모르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버님이 뭐라고 하셨어?"
"그거면 됐다고 했어요. 아버지도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의 얼굴에서는 살아온 인생이 느껴져서 사진만으로도 그걸 감지할 수 있는데 이 사람한테서는 인생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대요. 어떤 인물이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니까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얼굴이 바뀔지 상상이 안 된다. 이 사진만 받아서는 나는 못 찾아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찾아낸 AI는 역시 대단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아버지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네."
"그렇죠? 나도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는데 아니, 여기까지만 하자, 라면서 아버지가 얘기를 끊어버렸어요.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거 같아서 나도 더 이상 묻지 못했고."
- 기묘한 에피소드였다. 와키사카는 다시금 니지마 시로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 얼굴이다.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집에서 아버지 하고 엄마가 걱정하더라. 너희, 저금해 둔 게 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겠지만."
"실례는 무슨? 뭐, 전혀 제로는 아니지만 크게 기대할 정도도 아닐 거야. 어쨌든 일단 확인해 보려고 오늘 은행에 갈 생각이야. 잔액뿐만 아니라 다달이 얼마나 돈이 입금되고 출금됐는지도 알아봐야지. 아버지가 통장은 거의 쓰지 않아서 아무것도 기입된 게 없더라고."
"좋아. 나도 같이 간다."
- 드디어 장마가 걷혔는지 한여름 햇살이 쨍쨍한 가운데 학교를 나와 은행이 있는 상점가로 향했다. 편의점에서는 통장 정리가 안된다는 것쯤은 중학생도 알고 있다.
"어차피 가는 거, 계좌를 개설한 지점으로 가볼 생각이야. 사정을 얘기하고 돈을 인출할 수 있는지도 물어보려고."
그러자 준야가 발을 멈췄다.
"그거,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왜?"
"내가 들은 얘기가 있어. 섣불리 계좌 소유주가 사망했다고 말했다가는 돈을 펼 수 없게 된다. 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임대료와 카드, 공공요금의 자동이체도 다 정지된다는 거야."
"헉, 진짜?"
"은행에서 계좌를 동결해버리거든. 은행 측도 상속인이 확실해질 때까지 본인 이외에는 돈을 내줄 수 없는 거야."
- 마도카가 다시 리쿠마와 준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수리학연구소라는 무기질적인 명칭이 붙었지만, 이곳에서 하는 일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야. 특히 지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방면으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어. 그중 하나가 익스체드에 관한 연구야."
"아, 그 단어..."
"알고 있어?"
"연구소 공식사이트에서 봤어요. 논문을 발표한 분은 우하라 젠타로라는 가이메이 대학 뇌의학부 뇌신경외과 교수님이었어요."
"그 우하라 젠타로 교수가 우리 아버지야. 나도 조수로 연구를 거들고 있어. 뭐, 그건 상관없고. 너희들 '기프티드'라는 단어는 알고 있어?"
리쿠마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옆에서 준야가 알아요,라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높은 지능을 타고난 아이를 말하는 거죠? 초등학생인데 고등 수학을 풀거나 여러 나라의 언어를 말할 줄 알거나."
맞아, 하고 마도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신이 선물해 주신, 이라는 뜻으로 기프티드야.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특별교육을 시키기도 한다는데, 아직은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우리 연구소에서도 그런 특수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지능에 대해 연구하고, 특히 의학적 견지에서 해명하려고 하고 있어. 연구 대상은 단순한 기프티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뇌에 질환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야. 장애가 뇌기능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연구야."
"서번트 증후군 같은 건가요?"
준야가 질문했다.
"너, 아주 박식하구나. 맞아, 서번트 증후군도 그 일종이라고 할 수 있어. 최근 들어 뇌신경질환을 가진 아이들 중에 그런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게 차츰 밝혀지고 있어. 그런 아이들을 우리 연구소에서는 익스체드라고 부르고 있어. 장애와 맞바꿔 능력을 얻었다는 데서 '바꾸다'라는 뜻의 '익스체인지'를 줄인 말이야."
- "혹시 그 휠체어 탄 남자애도 익스체드?"
"맞아. 그 아이는 아까 준야가 예로 든 것처럼 고등 수학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 고차 방정식 문제를 순식간에 풀기도 해. 그 대신 몸의 균형을 잡는 기능에 이상이 있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외출할 때는 넘어질 위험이 있어서 휠체어를 타는 거야."
"그럼 혹시..."
리쿠마는 데루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데루나는 뛰어난 기억 능력을 가졌어."
마도카가 말했다.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아. 글씨나 그림을 완벽하게 기억해 내는 거야. 그 대신 목소리를 내지 못해."
리쿠마는 흠칫해서 데루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급히 시선을 돌렸다.
- "특히 인상적인 풍경을 봤을 때는 그게 완전히 뇌에 새겨지는 거야. 그리고 그걸 그림으로 재현해 내는 능력을 가졌어. 그 능력이 신께서 주신 것이라면 그 아이가 신께 바친 것은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야. 데루나와는 달리 목소리는 낼 수 있는데 말을 못 해. 글자도 못 읽고."
리쿠마는 새삼 그림을 살펴보았다. 단지 기억에만 의지해서, 게다가 유성 펜으로만 그려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밀한 것뿐만 아니라 색채까지 풍부한 것이다.
“이 연구소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 특수한 능력을 선물 받은 게 그 아이들에게 행복한 일인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그게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해."
마도카는 그림에서 리쿠마와 준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데루나 마음의 상처도 치유해 줘야겠지."
- "익스체드는 감정 표현이 서툰 케이스가 많아. 데루나도 그래. 하지만 몹시 슬퍼하고 있어. 다키코 씨에 의하면 어제부터 한숨도 못 자고 있대. 그게 그 아이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야."
가슴이 덜컥했다. 내내 울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데루나가 다시 마음 편히 잘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
- "단순히 근무시간이 달라서 그렇죠. 저 같은 경우에는 오늘 밤에 야구장을 모니터해야 하기 때문에 밤 시간 당번이 됐어요."
"모니터라는 게 뭡니까?"
"여기 모니터실에서 방범카메라나 잠감의 카메라 영상을 체크하면서 지시를 내리는 거예요. 같은 장소에만 계속 머물면 촬영할 수 있는 영상이 제한적이니까요. 그리고 수상한 자가 발견됐을 경우에는 즉시 전달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실례지만, 잠감이라는 건?"
"아, 미안해요. 잠입 감시원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에요. 아, 잠입감시원이라는 건..."
"그건 알고 있습니다. 몸에 장착한 카메라로 주변을 샅샅이 촬영한다고 들었어요.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한 차례 행사를 하면 촬영한 영상 데이터가 엄청나게 많겠는데요."
"네, 그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니까요."
- "보안경비회사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우리 회사는 단지 방법만 하는 건 아니에요. 엄청난 분량의 영상은 이른바 빅데이터가 되거든요. 그걸 분석해서 마케팅으로 연결해 가는 게 또 다른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를테면 이벤트 행사장에서 인파의 흐름 등을 분석해 어떤 행사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모였는지, 행사장의 배치는 적절했는지, 유도 경로의 설정은 적절했는지, 그런 방범 이외의 내용까지 검증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합니다. 한 명의 고객에게 포커스를 맞춰 어떤 식으로 돌아보는지, 어디서 돈을 쓰고 어떤 구역은 그냥 지나쳤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거든요. 필요하다면 언제 화장실에 갔는지까지 알려줍니다."
마치 영업사원처럼 술술 말해주었다.
"그런 분석은 얼굴 인식 시스템을 사용하는 건가요?"
"얼굴 인식 시스템도 사용하죠."
세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 둘이서 사이클링을 한다고 어제 어머니에게도 미리 얘기해 둔 것이다.
물론 단순한 사이클링이 아니다. 우하라 마도카의 초대에 응해서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 가는 것이다. 리쿠마와 준야가 사는 동네에서 1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마도카는 자전거를 타고 오라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기동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리쿠마는 일단 마도카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준야네 집에 오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 다음날의 준비물도 챙기고 보관대에 세워둔 자전거도 가져왔다.
- 자전거를 타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페달의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브레이크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도 없었다. 간밤에 준야네 아버지가 꼼꼼히 정비해 준 덕분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자 여름의 쨍쨍한 햇빛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온갖 일들이 아무려나 상관없고, 아버지의 죽음조차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마약의 환각 상태를 트립이라고 한다던데 이런 느낌인 건가, 하고 리쿠마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트립에는 여행이라는 뜻도 있다. 사이클링은 여행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이건 역시 트립이다...
- "방금 마도카 씨라고 했어?"
"그래, 마도카 씨, 맞잖아."
"이름은 맞지만, 어른을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잖아."
"뭐가 어때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우하라 씨라고 하면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잖아. 난 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왠지."
준야가 빙그레 웃으며 시선을 저 멀리로 던졌다.
"준야, 혹시 그 사람 좋아해?"
그러자 준야는 발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분명 아니라고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통통한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왜, 좋아하면 안 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인데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누구라도 좋아할걸? 혹시 너도 좋아해?"
"좋아하기는 무슨? 나이 차가 너무 많잖아."
- "여기서는 강물의 흐름이 복잡해져."
강가에 서서 마도카는 말했다.
"하지만 4일에서 10일 사이에 큰비가 내린 적은 없으니까 수위는 안정적이었어. 키 170센티미터, 몸무게 65킬로그램... 좋아. 별 문제없어."
자신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도 현장은 아니지요?"
리쿠마는 확인했다.
"응, 아니야."
다시 마도카가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몇 번 되풀이하면서 마도카는 상류를 향해 나아갔다. 리쿠마와 준야는 어쨌든 그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 "안타깝게도 거기가 아닌데. 좀 더 상류 쪽이야."
"그럼 마도카 씨가 알려주면 되잖아요."
"어떻게 설명하지? 아무튼 내 말을 믿으라고 할까?"
"나라면 믿을 텐데..."
"너라면 그렇겠지. 거꾸로 말하면, 넌 경찰은 되기 어렵겠다."
발길을 돌려 마도카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마도카 씨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마도카가 두 팔을 허리에 짚고 준야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니까 알아. 그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렇게 대답해 둘까? 나는 마녀야. 어때, 그거면 되겠니?"
빠른 말투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준야는 멀뚱히 선 채 눈만 데굴거렸다. 알았어요,라고 이윽고 풀 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 "아들 생일을 비밀번호로 설정하면 남들이 그야말로 간단히 알아내겠지. 하지만 데루나의 존재는 극히 일부 사람밖에 알지 못하니까 그럴 걱정이 없어. 단지 그것뿐이야."
"나도 같은 생각이야."
준야가 리쿠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 "그보다 얼른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마도카가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그 얼굴이 점점 흐려져 갔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모양이다.
"메일은 전부 삭제했어. 메시지도 그렇고. 하긴 처분할 예정이었다면 당연하지. 주소록도 텅 비었어. 전문가에게 맡기면 데이터 복원은 가능하겠지만."
"와키사카 형사에게 맡겨볼까요?"
리쿠마는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아."
"왜요?"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아버지의 프라이버시가 다 드러나게 돼. 주고받은 메일이며 메시지, 인터넷에서 무엇을 검색했는지, 그런 것들이 전부 경찰에 알려지는 거야. 괜찮겠어?”
마도카의 말에 리쿠마는 그 즉시 마음이 흔들렸다. 나라면 어떨까. 죽은 뒤에라도 개인정보를 경찰이라는 낯선 자들의 눈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좀 생각해 봐야겠네요."
"그게 좋을 거야."
- "바보라도 운전할 수 있다고 아빠가 얘기했었는데."
"흥, 바보라서 미안하다."
마도카가 파워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아뇨, 아뇨, 그런 뜻은 아니고요."
"걱정할 거 없어. AI를 거스르진 않을 테니까."
차가 조용히 출발했다. 뒷좌석에서 바라보니 마도카는 핸들에 가볍게 오른손을 얹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운전은 AI가 하는 모양이다.
- "근데 지금 어디 가요?"
준야가 드디어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러."
"어떤 사람을?"
"너희는 모르는 사람. 예전에 나하고 같이 다니던 분이야. 이제 나이도 있는데 또다시 불러내는 건 죄송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나이는 많아도 너희보다 훨씬 더 미더운 분이야."
"누군지 점점 더 궁금해지잖아요."
준야가 마도카를 보며 입을 툭 내밀었다.
"궁금하게 만들려는 건 아냐. 지금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보는 게 더 빠를 거 같아서 그래."
앞쪽으로 수도고속도로 진입로가 보였다. 자동차는 그곳을 통과해 본선에 합류했다.
- "모가미 씨와는 통화했어요."
후쿠나가가 말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지는 대략 알아요. 어떻게 할까요. 일단 만나야겠지요?"
"네, 부탁드립니다.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때요? 내일부터는 바빠질 거 같아서."
"괜찮습니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아니, 우리 관할서로 오는 건 좀 그래요. 모가미 씨한테서 들었는데 이거, 비공식이죠? 내 위치 정보가 윗선에 알려지면 난감해져요."
맞는 말이었다. 모바일은 이래저래 편리하지만 경찰관의 감시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러네요. 그럼 어디서?"
"도쿄역 근처로 합시다. 서로 중간 지점이니까."
- 후쿠나가가 정해준 곳은 역 근처의 호텔 라운지였다. 전화를 끊은 뒤, 와키사카는 간선도로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빈 차를 발견해 호텔로 향했다. 차 안에서 모가미에게 전화를 걸어 후쿠나가와 연락이 되었다고 보고했다.
"내가 대충 사정은 설명했어. 후쿠나가도 그 사건에 관해서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더라고.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는 다 대답해 주겠다고 했어."
"고맙습니다. 주임님도 원격으로 대화를 들어보시겠어요?"
- "피해자 일가족 중 하나인 남편이 일반 기업의 임원이었는데 실은 또 하나,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어."
후쿠나가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정킷이야."
"정킷?"
"들어본 적 없나?"
"아, 카지노와 관련된..."
"맞아, 카지노 중개업자야. 하지만 길거리에서 손님을 불러들이는 호객꾼 같은 건 아니고, 정킷이 하는 일은 자신의 인맥 중에서 고객을 선정해 불법 카지노 업소로 유인하는 거야. 대부분 고급 클럽의 점장이 하게 되지만, 그런 클럽에 드나드는 손님이 정킷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어. 클럽에서 얼굴을 익힌 단골 친구들을 꼬드겨 불법 카지노에 데려가는 거지. 정킷이 하는 일은 딱 거기까지야. 그다음은 불법 카지노 운영자가 온갖 방법으로 신규 고객의 돈을 빨아들여. 그리고 그 돈의 몇 퍼센트는 정킷의 지갑으로 들어가고."
- "하지만 사건 나고 10년이 지난 뒤에 익명의 정보 제공이 있었다면서요?"
- "물론 음식 값은 안 내도 돼."
"와아, 먹을래요, 먹을래요."
준야가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하여 생각지도 못하게 닭꼬치를 실컷 먹게 된 것이다.
- 다케오가 어떤 사람인지 마도카는 자세하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왜 7년 전에 그녀에게 보디가드가 필요했는지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리쿠마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준야도 몹시 궁금했을 텐데 질문하지 않은 것은 리쿠마와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안쪽에서 다케오가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진한 갈색 양복 차림에 넥타이도 맸다. 어깨 폭이 넓고 가슴이 두툼한 게 그대로 드러났다. 전혀 꼬치구이 가게 주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멋짐 폭발이에요. 역시 그 차림이."
마도카도 같은 의견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입어봤어요. 한심하게도 벨트 구멍이 하나 늘었군요."
"하나 정도는 괜찮아요."
-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건가? 좋지."
두 사람은 당구대를 향해 나란히 서서 각자 손에 든 공을 대에 올렸다.
리쿠마는 다시 다케오의 귀에 입을 바짝 댔다.
"바이킹이 뭐예요?"
"보면 알아."
다케오의 대답은 무뚝뚝했다.
- "그럼 할게요, 원투..."
쓰리,라고 말한 직후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공을 쳤다. 리쿠마의 시선에서 앞쪽이 마도카의 공이었다.
두 사람의 공은 거의 같은 속도로 굴러가 반대편 틀을 맞혔다. 튕겨져서 곧장 두 사람 쪽으로 돌아왔다.
- 먼저 멈춘 것은 이시구로의 공이었다. 마도카의 공은 그보다 10센티미터쯤 더 굴러와서 멈췄다. 틀까지 2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시구로가 휘파람을 날렸다.
"오, 제법 치는데?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긴 건 마도카인 모양이다.
- "고객 중에 쓰키자와라는 자는 없어. 카지노에 출입하지 않은 거야."
"어떻게 알죠?"
"간단해. 고객 리스트에 이름이 없어."
"리스트? 그런 게 있어요?"
다케오 씨,라고 이시구로가 말했다.
"당신이 설명해 줘."
- "불법 카지노는 아무나 받아주는 데가 아니에요."
다케오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원이 확실하다는 게 절대 조건이지요. 믿을 만한 사람이 소개했다 하더라도 첫 이용 때는 본인 확인이 가능한 증명서 제출을 요구합니다. 만일 경찰의 스파이 등이 몰래 섞여 들면 큰 일이니까요. 나도 운전면허증을 제시했어요. 당연히 그런 정보는 운영자 측에서 관리합니다. 그리고 그걸 동업자 간에 공유하는 거예요."
"즉 쓰키자와라는 자가 한 번이라도 불법 카지노를 이용했다면 반드시 고객 리스트에 있어야 해."
자신들이 사용한 큐를 정리하면서 이시구로가 말했다.
"그러니 리스트에 없다는 건 고객이 아니라는 얘기지. 칩은 다른 데서 입수했을 거야."
- "그래도 알아야겠어요. 얘기해 봐요."
이시구로는 한숨을 내쉬며 마도카를 마주 보았다.
"아카사카에 있었던 카지노야. 연예인이나 프로야구 선수 같은 거물급들이 출입하던 데야. 요즘 불법 카지노에는 바카라 뿐이지만, 거기는 옛날 취향을 그대로 살려서 룰렛이며 슬롯머신도 있었거든."
"왜 과거형이죠?"
"그야 과거 일이니까 그렇지. 10년 전쯤에 이전했어."
"지금은 어디에 있죠?"
"나도 몰라. 알더라도 여기서 떠벌릴 수는 없어."
"장소는 모르는데 고객 정보는 공유했다고요? 그건 이상하죠."
"전혀 이상할 거 없어. 불법 카지노는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녀. 어디로 옮겼는지는 관계자와 회원에게만 보내주고. 그러니 더더욱 고객 정보가 중요하지. 동업자에게 장소는 비밀로 해도 고객 정보교환은 절대 빠뜨리지 않아."
이시구로는 유창한 말투였다. 옆에서 들어본 바로는 거짓말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 으레 써먹는 대사를 줄줄 읊은 것일 수도 있다.
입구 문이 열리고 남성 스태프가 돌아왔다. 이시구로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영업 시작해야 돼. 더 할 얘기 없으면 그만 돌아가."
- "그, 그걸로 뭘 하려고요?"
"당연히 가슴에 붙여야지. 돌아서봐."
리쿠마를 뒤로 돌려 앉히더니 누브라를 겨드랑이 밑으로 밀어 넣었다.
"흐익, 간지러워."
"좀 참아. 모처럼 여자가 됐는데 가슴이 빵빵한 게 좋잖아."
장착하고 보니 남아돌던 드레스의 가슴께가 탄탄해졌다. 옷 위로 더듬어보자 폭신폭신한 게 실제 가슴 같았다.
"나쁘지 않다는 표정인데?"
마도카가 살짝 곁눈질하며 말했다.
"실제로 여자들은 이런 걸 하고 다녀요?"
"글쎄요,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노코멘트."
마도카는 아까 앉았던 자리로 옮겨갔다.
"그럼 다시 메이크업을 해볼까."
- 그로부터 한 시간 가까이 리쿠마는 마도카가 만져주는 대로 얼굴을 맡겨야 했다. 파운데이션을 바른 뒤, 여러 가지 화장품으로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리쿠마는 알지 못했다. 다만 내내 무관심하던 다케오가 중간쯤부터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게 신경이 쓰였다.
-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자. 준비도 빈틈없이 마쳤고 이제 출발하자."
마도카가 목소리를 높였다.
노래방을 나와 차를 타고 긴자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셋이 나란히 <블루스타>로 향했다.
"다케오 씨, 아시겠죠? 엄청난 재벌에 고급 클럽 단골이니까 당당하게 들어가세요, 나와 리쿠마... 가 아니라 리마는 다케오 씨의 양팔을 잡고 갈 거예요."
"잘 알겠는데 어쩐지 민망하군요, 마도카 씨. 너무 매달리지는 말아요."
"무슨 말씀을? 이 정도는 해야죠."
마도카는 더욱더 다케오의 팔에 찰싹 붙었다.
- 자정을 넘은 시각인데도 긴자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 여자와 동행한 남자는 모두 부자 같고 옷차림도 최고급인 것 같았다. 구두가 반짝반짝했다.
이런 세계도 있다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경기가 안 좋다느니 바닥을 쳤다느니 하더니만 돈이란 있는 데는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단지 내 차지가 안 되는 것뿐이다.
- 어떤 사람들이 이런 세계를 누리는 걸까. 공부를 잘한 사람들일까.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화려한 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건 환상이다. 이 세상에는 중학생이 알지 못하는 계략이 존재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자만이 승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 "마도카 씨, 저기예요."
다케오가 앞쪽을 가리켰다.
클래식한 빌딩이 멀뚱히 서 있었다. 줄줄이 내걸린 간판 속에서 BLUE-STAR라는 글씨가 요염하게 출렁이는 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 "마도카 씨는 이런 곳에 익숙해요?"
"이런 곳이라니?"
"그게..."
리쿠마는 말을 어물거렸다. 잘 표현할 수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허식과 허언을 구사하며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본성은 탐색하려 드는 곳이라면 약간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다케오 씨만큼은 아니지만."
다케오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경험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통찰력만큼은 절대 마도카 씨를 못 당합니다."
마도카는 웃으면서 살짝 고개를 젓고, 이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는 존댓말을 쓰시면 안 돼요. 누구 귀에 들어갈지 모르니까."
"아차, 실례."
다케오가 긴장한 목소리를 냈다.
- 흰 셔츠에 베스트 차림의 웨이터가 쟁반에 음료를 들고 다가왔다. 가장 먼저 다케오 앞에 차게 얼린 유리잔을 놓고 병에 담긴 흑맥주를 따라주었다. 풍성한 거품이 유리잔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차올랐다.
마도카 앞에는 구리로 된 머그잔이 나왔다. 연한 호박빛 액체에 라임이 떠 있었다. 그리고 리쿠마 앞에 놓인 유리잔에는 초록 잎이 들어 있었다.
"건배할까요?"
마도카가 잔을 들었다. 좋지, 하고 다케오가 응했기 때문에 리쿠마도 급히 유리잔을 손에 들었다.
모히토라는 건 난생처음이다. 머뭇머뭇 혀끝을 대보니 적당한 달콤함과 함께 민트와 라임향이 입안에 퍼졌다.
어른의 맛이다,라고 생각했다.
- 한숨 돌리고 나자 리쿠마는 새삼 플로어를 둘러보았다. 호화스러운 카운터 너머에서는 바텐더 세 명이 쉴 새 없이 칵테일을 만들었다. 카운터에도 손님이 있었지만 가장 화려한 곳은 역시 테이블석이었다.
누구도 시끄럽게 떠드는 손님은 없었다. 세련된 대화가 기품 있게 오가는, 그야말로 상류 사회의 사교장 같은 분위기였다. 모든 얼굴에 웃음이 떠 있었다.
- 하지만 잠시 관찰해 보는 사이에 그들의 웃음이 모두 똑같지 않다는 것을 리쿠마는 알았다. 악의 없는 태평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교활해 보이는 웃음도 있다. 오만한 웃음, 비웃음, 냉소까지 다양하다. 아부하는 웃음도 물론 많아 보였다.
허식과 허언을 구사하며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본성은 탐색하려 드는 곳...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단순한 오락의 장소가 아니다. 저마다 음험한 속셈을 가진 자들이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곳인 것이다.
- 그렇게 손님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가 옆에 있는 여자에게 뭔가 말을 건네자 이번에는 그 여자가 리쿠마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리쿠마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도카 씨, 하고 리쿠마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 "
- 상대의 명함에는 '기자 쓰노 도모코'라고 적혀 있었다. 여성이라는 얘기는 후쿠나가에게서 들었고, 오늘 아침에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 통화도 했지만 직접 만나고 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인상이 약간 달랐다. 프리라이터로 형사사건을 추적할 정도라면 상당히 활동적이고 젠더리스한 인물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우아하게 화장을 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오히려 조용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나이는 마흔 살 전후일까. 화려한 용모는 아니지만 미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기자님은 왜 T초 사건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하셨지요?"
와키사카의 질문에 쓰노 도모코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보인 뒤에 입을 열었다.
"이유는 단순해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라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 동행한 남자도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리쿠마는 사쿠라이를 보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장과의 통화일 것이다. 그 뒤에도 사쿠라이는 간간이 마도카에게 지시를 내렸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정해주거나 단독으로 걸린 숫자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런 지시를 마도카는 한 번의 실패 없이 모두 실행에 옮겼다.
그 지시가 고객들이 때로는 큰 손해를 보면서도 간간이 작은 배당을 따게 해서 마음을 풀어주고 결과적으로 게임을 계속하도록 유도한다는 건 명백해 보였다. 그 증거로 고객들의 칩은 확실하게 줄어들었지만 표정이 부루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기분 좋게 룰렛을 즐기고 있었다.
-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을 하는 손님들의 면면이 차례차례 바뀌었다. 그중에는 운영자 측이 환영하지 않는 듯한 자들도 있었다.
오전 2시가 넘어 자리에 앉은 지적인 분위기의 남자 고객은 배당률이 세 배인 칸에만 집중적으로 칩을 걸었다. 게다가 그 방식에 분명한 규칙성이 있었다. 이겼을 때는 그다음에도 똑같은 수의 칩을 건다. 졌을 때는 칩의 수를 늘린다. 연패했을 경우, 전회와 전전회를 더한 수만큼만 건다. 당연히 이기고 지기를 거듭했지만 그 방법으로 확실하게 칩을 불려 가고 있었다.
운영자 측으로서는 몹시 거슬리는 존재일 것이다. 지루한 방법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벌이는 무시할 수 없는 액수가 된다.
- "여전히 평소의 그 방법을 쓰시네?"
아카기가 지적인 남자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됩니까, 마담?"
남자가 대꾸했다.
"룰렛은 확률 게임이에요. 이길 확률이 높은 방법이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죠."
이른바 필승법이라는 것을 구사한 모양이다.
"그런 게 재미가 있나?"
아카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흘끗 리쿠마의 얼굴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도카와 리쿠마가 일하는 모습을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
- 특이한 방법을 쓰는 손님은 그 뒤에도 나타났다. 오전 3시 넘어 자리에 앉은 알로하셔츠 차림의 남자는 지적인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승부에 나섰다. 룰렛에는 서른일곱 개의 숫자가 있지만, 그중 두 개를 빼고 나머지 모두에 칩을 거는 방법이다. 서른다섯 개의 수에 칩을 하나씩 놓으면 적중했을 때는 36배의 배당금이 떨어지기 때문에 모두 합하면 칩 하나만큼은 따게 된다. 그리고 이길 확률이 37분의 35이기 때문에 95퍼센트에 가깝다.
거의 모든 칸에 칩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스 유어 베트라는 선언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알로하셔츠 남자는 움직였다. 전략을 짜는 건 난센스라는 식으로 마도카가 볼을 던지는 모습도 쳐다보지 않고 묵묵히 칩을 놓아나갔다.
- 그 방법으로 9회 연속 알로하셔츠 남자는 돈을 땄다. 그의 칩은 한 개에 1만 엔짜리여서 다음에 또 이기면 10만 엔으로 확정된다. 그러면 거기서 정리하고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마도카가 볼을 손에 들었다. 이미 알로하셔츠 남자는 칩을 걸고 있었다. 빈 곳은 0과 1이었다.
'마도카, 0에.'
사쿠라이가 말했다. 역시 이번 판에서 잃게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도카가 볼을 던졌다.
- "불법 도박은 자칫하면 반사회적인 세력의 자금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요, 어차피 돈 문제네요. 공영 도박장은 돈이 정부로 들어가고, 불법 카지노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금지한다. 돈이 흘러가는 곳이 반사회적인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건 궤변이죠. 결국 도박장을 운영할 권리를 국가에서 장악하겠다는 거잖아요. 정말로 국민의 행복을 바란다면 모두 다 금지했어야죠. 사행심을 부추기고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인생을 망쳐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영 도박장이든 불법 카지노든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정권을 쥔 자들에게 그런 발상은 없겠죠?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국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예요."
마도카는 리쿠마와 준야를 쳐다보았다.
"너희들도 똑똑히 기억해 둬. 법은 정부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거야. 국민 따위는 그다음 문제고, 더구나 정의라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어제까지는 무죄였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유죄가 되기도 해. 너희는 그런 것에 휘둘려서는 안 돼.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알겠니?"
너무도 단호한 기세에 놀랐는지 중학생 리쿠마와 준야는 눈을 껌벅껌벅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도카가 이번에는 와키사카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카지노를 적발하고 싶다면 그러세요. 하지만 이번이 아니라 다음 기회에 해주세요."
와키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마도카 씨의 계획을 들려주시죠."
- "원하는 자리에 볼을 넣다니 신기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던데."
마도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거?"
"나도 이것저것 생각해 봤는데 도통 모르겠어요. 좀 알려주시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요?"
"아까 그 말이 맞네요."
"예?"
"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
"뭐, 그렇긴 한데..."
머리를 긁적였다.
- "와키사카 씨, 자석이 왜 쇠붙이를 끌어당기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자석?"
"S극과 N극을 가까이 대면 서로 끌어당기죠. 하지만 S극끼리나 N극끼리는 반대로 떨어지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왜냐니, 자석은 원래 그런 거라서...라고 하면 안 되겠죠?"
마도카는 후훗 하고 웃었다.
"안 될 거 없어요. 그게 정답이겠죠.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그것과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이 세상에는 룰렛 숫자를 맞히는 사람이 있다. 원하는 숫자에 볼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 그거면 되잖아요?"
와키사카는 눈만 깜작거리며 마도카의 작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 "그럼 트릭이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모든 일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담으려고 하는 건 억지고 오만이에요. 그런 협소한 세계관에서 벗어났을 때 인간은 비로소 다음 단계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어요."
- "다음 단계?"
이를테면, 하고 마도카는 검지를 세웠다.
"딜러를 했던 게 내가 아니라 로봇이었다고 해볼까요? AI로 컨트롤하는 로봇이에요. 그 로봇이 숫자를 맞히거나 자유자재로 볼을 조종했다고 해봐요. 그래도 와키사카 씨는 질문을 할까요, 이 AI는 어떤 구조인 거냐고?"
"그건... 질문하지 않겠네요. 알려줘도 이해를 못 할 테니까."
"AI는 대단하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하다. 그래서 그런 것도 가능하다. 그걸로 끝이에요.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아요. 그렇죠?"
"그렇겠네요. 맞는 말이에요."
"그럼 똑같은 것을 인간이 해냈다고 놀라는 건 이상하잖아요. 인간은 좀 더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야 해요. AI 따위를 상대로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되죠."
"그러네요."
자신보다 젊은 여성의 논리에 와키사카는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엄청나게 높은 식견의 소유자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 "흑막이라니..."
"그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면 오점이라고 말을 바꿀까요? 어쨌든 공공연히 밝힐 수 없는 거예요. 거대한 조직은 가능하면 그걸 계속 숨겨둔 채 이번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조직에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이단아가 있게 마련이죠. 그는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려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폭주한다..."
마도카는 검지 끝으로 와키사카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기심이라는 단어가 못마땅하다면 정의감이라고 해도 좋아요."
와키사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호기심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내 상상이 틀리지 않은 것 같군요."
- "오점이 아니라면 굳이 숨기려고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마도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질문을 해도 될까요?"
"좋아요, 사안에 따라서는 대답을 못할지도 모르지만."
"마도카 씨야말로 왜 직접 나서서 진상을 파헤치려고 하지요? 처음부터 경찰을 의심했던 건 아니잖아요."
"단순한 호기심... 이라고 하면 안 되겠죠?"
"안 됩니다."
와키사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중학생에게 여장을 시켜 함께 불법 카지노에 뛰어들었어요. 단순한 호기심이 ... "
- "그건 당분간 발표는 못할까요? 게놈 몽타주의 존재나 전 국민의 DNA형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
다카쿠라는 고개를 살짝 외로 틀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순 없겠지."
"그런 게 드러나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닐 텐데요."
"그럴까? 어쩌면 한동안 반발할지도 모르지만 다들 금세 익숙해지지 않겠어?"
"원래 그런 국민성이라서?"
"그것도 그렇지만, 좀 더 큰 이유가 있어. 장점도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야."
- "자네한테 딸아이가 있다고 치자. 10대의 귀여운 여자애야. 어느 날, 그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됐어. 몸에는 성폭행 흔적이 있고, 유일한 단서는 범인의 DNA야. 그럴 경우, 부모인 자네는 어떻게 할까? 즉시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해 범인을 밝혀내라, 만일 데이터베이스에 없다면 게놈 몽타주를 만들어 얼굴 인식 시스템과 ID 넘버 카드로 반드시 찾아내라... 그렇게 요구하지 않겠어? 또 한 가지 예를 들지. 자네 아이가 난치병에 걸렸다고 치자. 치료를 위해서는 이식밖에 방법이 없는데 적합성 조건이 무척 까다로워. 하지만 DNA형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이식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냈어. 덕분에 무사히 이식을 받고 아이는 건강해졌어. 어때, 그래도 자네는 그 기술을 반기지 않고 끝까지 배척할까?"
와키사카가 대답을 못하자 다카쿠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힘들게 얻은 기회인 만큼 새로운 업무에 복귀하는 날까지 푹 쉬도록 해. 몸이 웬만해지면 송별회를 해줄 테니까."
와키사카는 고개를 저었다.
"송별회는 괜찮습니다."
그래,라고 말하고 다카쿠라는 문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멈춰 섰다.
"깜빡할 뻔했군. 감식팀에서 받아온 게 있는데."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닐봉투에 든 것을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화재로 전소된 아카기의 집터에서 발견되었대."
와키사카는 봉지 안의 것을 보고 흠칫했다. 스마트폰이었다.
- 잿더미 속에서 발견했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 증거로 스마트폰이 깨끗했다. 시험 삼아 전원을 켜보니 별문제 없이 작동했다.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카쿠라는 나갔다.
- 회의실을 나와 집에 돌아가려는 참에 방금 받은 스마트폰에 착신이 있었다. 표시를 보니 모가미에게서 온 것이었다.
약속 장소인 신바시의 바는 재즈 음악이 낮게 흐르는 고즈넉한 곳이었다. 와키사카 일행이 앉은 자리는 깊숙한 안쪽 벽 앞이라서 밀담에는 최적이었다.
하이볼로 건배한 뒤, 모가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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