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출판 : 비채
출간 : 22.02.28
이사 후 집들이 선물로 받았던 금전수 화분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살아있어서 기쁘다.
그간 상당한 수의 식물들을 식물별로 보내주었는데... 각 개체의 특성을 숙지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감히 변명을 해보자면, 환경의 특수성도 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쪽엔 음지식물을, 채광이 좋은 곳엔 잎이 넓고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을.
금전수는 반사광이 환한 곳에 적당히 건조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다만 최근 잎이 한 두장 연해지고 있어 일광욕 시간을 늘리고 보충제를 투여 중이다)
나는 식물이 많은 공간은 좋아하지만, 식집사를 지망하지는 않는다.
꾸준한 관리, 흙갈이, 화분갈이, 광도 조정...
사랑할수록 들여야 할 수고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임이 빤히 보여서다.
(이런 식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나는 식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충분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헌신할 정도의 열정과 에너지가 없기 때문일까,
그만큼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을 아직 찾지 못해서일까.
꽤 오래된 의문이지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라는, 실제 책과는 그닥 관련이 없는 잡생각들을 하며, <몽환화>를 읽었다.
<몽환화>는 그런 이명이 붙은 노란 나팔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중심 사건과 그것을 쫓아가며 서서히 나타나는 숨겨진 조각들이 꽤 흥미롭다.
처음 집필할 때는 새로운 시리즈로 발표하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가모 요스케의 설정이나 대사에서 '다 드러나지 않은 과거'가 이렇게나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한 두 편 정도는 더 썼을 것 같은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을 찾아본 것은 아니라 (그러기엔 솔직히 너무 많다) 추정만 해본다.
<몽환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착각'이다.
도서관 서가를 살펴보던 중 '미쓰다 신조'의 <걷는 망자>를 읽고 싶다고 생각했고, 예전에 읽었던 동 작가의 <우중괴담>이 떠올랐고, 거기에 언급되었던 <~~ 화>라는 책이 있었는데- 하고 보니 마침 일본 문학 서가라 <몽환화>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제로 언급된 책은 <몽환화>가 아니라 <예지화>였고, 심지어 花가 아니라 畵였다-
이런 식이다.
뭐, 이런 정도의 여백과 변수는 삶에 적절한 양념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는 딱히 고칠 마음이 없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날 듯하다.
발췌문을 정리하다 일본의 한 학생이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쇼츠를 봤다.
애벌레 시절의 기억이 성충이 되어서도 남아있으며, 세대를 넘어 유전되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더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아서 완전한 정설로 믿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 전달되는 DNA는 한 종류가 아니다. 미토콘드리아의 DNA 같은 경우는 모계로 유전되며, 체세포 DNA와는 동일하지 않다. 어쩌면 감정이나 기억도- 성향이나 성격의 형태로 어느 정도는 전달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라는 본문의 문장은- 적절하다.
책과는 큰 상관이 없는 잡담 하나 더.
최근 들어 '드러났다'와 '들어냈다'를 반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거슬리는데-
'드러나다'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타나다'에 가깝다.
숨겨둔 감정이 드러나다, 비밀이 드러나다, 파묻혀 있던 유물이 흙더미 사이로 드러났다 등이다.
'들어냈다'는 '종양이나 불순물 등을 제거했다'에 가깝다.
장기를 들어냈다, 끼인 조각을 더미가 무너지지 않게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냈다, 조직 분위기를 망치던 인물을 결국은 들어냈다(해고했다) 등이다.
뭐랄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들 하는데...
언젠가 바르지 않은 표기법을 사용하는 이들이 맞춤법에 맞는 표현을 보고 오해해서 화를 내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심심한 사과를 표하다'는 말에 사람들이 분개했다는 뉴스를 보고 '일부의 오해겠지' 했었는데 요즘엔 정말 잘 모르겠다.
이렇게만 살아가면 될 것 같다가도 금세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려워지니-
이런 것도 재미라면 재미겠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마음에 들게 살아봐야지.
즐거웠다.
- 마당에서 참새가 지저귀고 있다. 얼마 전, 쌀을 뿌려주니 신나게 먹어대던데 그 참새가 다시 온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닌 듯하다. 친구를 데려왔나.
가즈코가 좌식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있는데 구슬발을 제치고 신이치가 들어왔다. 이미 옷을 갈아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있다. 와이셔츠는 반소매다. 벌써 9월에 접어들었는데 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이었다.
신이치는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튼다.
"와! 조개 된장국이네. 고마워라."
"숙취는 없어?"
가즈코가 물었다.
어젯밤, 신이치는 불쾌한 얼굴로 들어왔다. 동료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청주를 마신 모양이었다.
- 매년 칠석 무렵, 온 식구가 모두 장어를 먹으러 가는 것이 가모 가족의 연례행사였다. 그 자체에는 소타도 불만이 없었다. 사실 장어를 무척 좋아한다. 제발 좀 봐줬으면 하는 것은 그전에 거쳐야 하는 행사다.
- 이 시기, 다이토 구 이리야에서는 나팔꽃 시장이 열린다. 모두가 그곳을 두 시간 정도 둘러보고서야 겨우 시타야에 있는 유서 깊은 장어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모두라는 것은 부모님과 형, 그리고 소타 본인까지 더한 네 명이다. 부모님은 유카타(목욕을 한 뒤 또는 여름철에 입는 무명 홑옷)를 입는 경우도 있다. 그런 차림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리야 역까지 온 후 나팔꽃 도매업자나 수레를 끌고 나온 행상들 사이를 걷는 것이다.
- 어릴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소타는 점점 이 행사에 함께하는 게 귀찮아졌다. 이미 열네 살이다. 축제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와 함께 움직이는 게 우울했다. 장어만 아니라면 절대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소타는 왜 이런 일이 가모 가족의 연례행사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 관해 아버지인 신지에게 물어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팔꽃 시장은 여름의 볼거리야. 그러니까 일본의 문화지. 그걸 즐기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
하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럼 안 오면 되잖아, 대신 장어도 없다"라며 아버지는 차갑게 내뱉었다.
- 형인 요스케가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소타는 불가사의했다. 요스케는 소타보다 열세 살이나 많아 스물일곱 살이다. 가방끈도 길고 공무원이라는 든든한 직업도 있다. 게다가 외모도 나쁘지 않아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사귄 여자가 몇 명 되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 행사에 매년 착실히 참여하고 있다. 보통 칠석날 밤에는 가족보다 연인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의문을 본인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소타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을 어려워했다. 이 경우에도 별것 아닌 질문을 한다고 바보 취급이나 당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나팔꽃 시장에 오면 요스케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나팔꽃을 보곤 했다. 그 표정은 즐겁다기보다 뭔가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과학자 같은 눈이었다.
- 새 운동화인 데다 멋을 내느라 양말을 신지 않은 탓이다. 그런 말을 하면 혼날 것 같아 잠자코 있기로 했다.
기시모진(해산과 육아, 양육을 수호하는 여신) 당 입구 부근은 매우 혼잡했다. 고개를 드니 제등이 늘어서 있다.
오른발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운동화를 벗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새끼발가락 옆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발이 아프다고 시마코에게 호소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발을 보고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앞서 걷고 있던 아버지와 형에게 얘기하러 갔다. 아버지는 마뜩잖은 얼굴로 뭐라고 대꾸했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쩔 수 없으니까 쉬라고 하시네. 장어집에 가는 길은 알고 있지? 그 길로 꺾이는 모퉁이에 가 있어."
"알았어."
살았다. 아픈 발로 걷지 않아도 되는 데다 나팔꽃을 보는 일도 면했다.
- 행상 거리에는 중앙분리대가 있다. 걷다 지친 사람들이 그곳을 의자 삼아 앉아 있다. 소타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얼마 후 바로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유카타와 게타(왜나막신)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성이나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게타의 끈이 분홍색이었다.
"아프겠다."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소타는 흠칫 옆을 봤다.
-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소타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 올랐다.
"나는, 가모 소타야."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지금까지 여자에게 자기소개를 해본 적이 없다.
"가모... 군?"
"이상한 성이지. 일본 두꺼비(일본어로 가마가에루라고 발음함) 같고."
소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 한자를 알려줬다. 가모의 가 蒲 자에 대해서는 "우라야스 浦安(지바 현 북서부에 소재한 도시)의 포 浦자 위에 풀 초 艹를 붙이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소녀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바 다카미라고 한다. 다카미에 들어있는 효 孝자에 대해 "효도할 때 효인데, 부모님은 나보고 불효녀라고, 자주 말씀하셔"라며 웃었다.
- "할아버지, 이건 무슨 꽃이에요?"
붉은 꽃 몇 송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화분을 가리켰다.
"제라늄이란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지."
"이건요?"
직사각형 화분 속에 피어 있는 보라색 꽃을 가리켰다.
"버베나, 처녀 벚꽃이라고도 하지. 우리 리노를 닮았구나."
연둣빛 싹을 갓 틔운 작은 화분이 눈에 띄었다.
"이건 무슨 꽃이에요?"
슈지가 다가와 화분을 들여다봤다.
"이 녀석은 아직 뭐가 나올지 모르겠구나."
"어머, 그런 것도 있어요?"
"뭐, 대강은 알고 있지만."
슈지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 "할아버지, 정말 행복해 보여요. 꽃을 진짜로 좋아하시나 봐요."
슈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힘들어. 그런데 꽃은 거짓말을 안 하지. 마음을 담아 기르면 꼭 거기에 응해주거든."
'누가 최근에 할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 건가.'
- "그래서 결국 이 꽃은 뭐예요?"
슈지가 책을 책장에 다시 꽂고 거실로 돌아왔다.
"응, 그건... 아직 얘기할 수 없구나."
"네? 왜요?"
"분명하지 않아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란다. 앞으로가 문제야. 앞으로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슈지의 눈이 생기로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흥분해 있음을 리노는 알아차렸다.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 하야세가 원룸 맨션의 자기 방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내일 아침에 수사본부가 개설될 예정이라 그 준비에 쫓겼다. 게다가 경시청 우리나라의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 수사1과의 수사관이 몰려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쪽도 상대해줘야만 했다.
방 불을 켜자마자 수돗물을 컵에 받아 마셨다. 그리고 넥타이를 풀고 안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을 테이블에 놓은 다음 상의를 벗어 침대에 던졌다. 소매에 부딪혔는지 머리맡에 있던 액자가 쓰러졌다.
하야세는 혀를 차고는 와이셔츠 단추를 풀면서 침대로 다가가 액자를 다시 세웠다. 액자에는 아들 유타의 사진이 들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현재 아들은 중학생이다. 새로운 사진이 있으면 좋겠는데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다.
- 아내와는 사 년 전부터 별거하고 있다. 유타도 아내와 살고 있다. 하야세의 불륜이 원인이었다. 상대는 교통과 소속 경찰로 이 년 남짓 이어지던 관계가 사소한 일로 발각되었다. 하야세가 상대에게 돈을 건넨 것도 아내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아내는 이혼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이혼하면 생활만 힘들어질 뿐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을 피운 남편과 같은 지붕 아래에서 계속 살 마음은 없었다.
"집에서 나가줘요. 당신도 그쪽이 좋겠죠? 원하는 여자와 마음대로 만날 수 있으니까."
아내는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로 선언했다. 하야세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 현재 월급의 반 이상을 생활비로 보내고 있다. 아내와 아들이 사는 맨션의 대출금도 아직 상환이 끝나지 않았다. 하야세의 수중에 남는 것은 좁은 임대 맨션에서 검소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뿐이다. 별거의 원인이 된 상대 경찰과는 바로 헤어졌다. 원래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기분 전환 정도였는데 관계가 조금 깊어졌던 것이었다.
스스로도 한심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 그다지 불만은 없다. 자업자득이고 애당초 자신에게 결혼생활은 무리였을지도 모르니까. 금전적으로 힘겹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 유일하게 걸리는 점은 유타였다.
별거의 원인을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이나 되었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야세는 부모로 인해 아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가슴 아팠다.
별거를 시작하며 아내와 합의한 사항 중에는 하야세가 아들을 찾아와서는 안 된다는 게 있었다. 만남은 아내나 유타가 원할 때만 ...
- "정말 생각도 못 했다네."
그렇게 말하고 슈지는 웃었다.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구나' 하야세는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게 싫어서라도 모른 척하고 가버렸을 텐데. 다소 기개가 있는 사람이라도 증언은 할지언정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타는 수없이 고개를 숙였고 이 은혜는 꼭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슈지는 손을 저으며 그런 생각할 필요 없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세상에는 다른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구나. 슬픈 얘기지만."
"명심하겠습니다."
유타는 복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 범인 둘은 곧 체포되었다. 아키야마 슈지가 찍은 사진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범인 한 명이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알루미늄 포일로 방범 태그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마침 옆에 있던 유타의 가방에 상품을 넣었다고 했다. 만약 무사히 가게를 나가면 유타를 위협해 상품을 빼앗을 생각이었다면서. 하지만 경보기가 울렸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가게를 벗어났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노인이 불러 세우더니 가게로 돌아가 당장 사과하라며 훈계를 하니 화가 나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 이후 하야세는 슈지와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타가 고맙다는 편지를 써 보냈다는 말을 아내에게서 들었다.
그 노인이 살해됐다.
- 깨알 같은 글씨를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팠다. 하야세는 수첩을 덮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손끝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면서 목을 돌렸다. 관절이 뚝뚝 하고 소리를 냈다.
부조리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장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슈지처럼 정의를 관철했던 인물일수록 부조리한 불행을 맞는다.
갑자기 아키야마 리노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셨어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하야세는 생각했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도 정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관철하는 사람은 적다. 아키야마 슈지에게는 모두가 불성실하게 보였을 수 있다.
나는 어떤 아버지로 보일까,라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명목뿐인 아버지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할 자격이 없다.
-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안 돼, 와야 해. 네가 없으면 친척들한테도 그렇고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네가 오사카까지 간 것 자체가, "
"알았어. 알았다고 갈게, 가면 되잖아."
서둘러 말을 가로막았다. 잠자코 있으면 어머니의 불평이 한없이 이어질 것이다.
- 아마도 어머니는 소타의 말을 그대로 형에게 전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은 스스로 취직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하더구나, 정도가 아닐까. 옛날부터 그랬다. 시마코는 늘 요스케의 낯빛만 살폈다.
후지무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상한 말이 어디 있냐? 태어나고 자란 집에다, 가족이잖아? 맞고 안 맞고가 어디 있어?
후지무라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다.
-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나오토가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나도 누나랑 같은 마음이야." 도모키가 말했다. "솔직히 형이 없는 '팬드럼'이 내게 무슨 소용이겠어. 아무려면 어떠냐 싶기도 하고. 하지만 마사야 형과 다른 형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내가 안 가면 틀림없이 신경 쓸 것 같아. 이대로 밴드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할지도 모르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응원하기로 했어. 형의 몫까지 힘내줬으면 해서."
-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장난 같지는 않았다. 왜 그 화분이 없어졌을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란 꽃이다. 그것은 도대체 무슨 꽃이었을까. 리노가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려 하자 할아버지는 황급히 말렸다. 그것도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을까.
- 리노는 그런 기업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면허증 사진은 눈앞에 있는 인물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름은 가모 요스케였다. 생년월일로 보면 서른일곱일 것이다.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어쨌든 가명은 아니시네요."
"일단 그 점이라도 증명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얀 이를 보이며 요스케는 면허증을 도로 집어넣었다.
사실 가모 요스케는, 리노의 직감에 따르면 믿을 만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예리하고 진지한 얼굴 표정에 자세가 반듯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무슨 운동을 했는지 체격도 좋았다.
- 요스케는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요스케는 주변 사람을 의식하는 듯 고개를 돌린 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 리노는 본인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움켜쥐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저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약속해 주십시오. 만약 그 꽃의 씨앗을 발견하면 곧바로 제게 연락해 주십시오. 아시겠죠?"
리노는 턱을 당기고는 요스케를 노려봤다.
"그건 약속드릴 수 없겠군요. 너무 그쪽 마음대로시네요."
"그게 싫다면 씨앗은 전부 버리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말을 던지고 요스케는 계산서를 들고 일어났다.
- "소타에게는 알리지 마. 그 녀석은 지금 중요한 시기야. 이런 일로 공부할 시간을 빼앗아선 안 된다."
그때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암의 진행은 예상보다 빨랐고 증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내일은 꼭 소타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시마코가 결심한 바로 그날 밤에 신지는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소타의 속내는 복잡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그다지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국 그 정도 인연이었구나 하고 체념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쓰야도 장례식도 마치 다른 사람 일인 것처럼 냉랭한 기분으로 보냈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 무엇이었나.
- 자신이 아버지와 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소타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알려준 사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근처 구둣방 주인이었다. 게다가 용무가 있어서 소타가 그 가게에 들른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가게 앞에 나와 있던 주인이 가슴에 단 이름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 가모 씨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이구나. 많이 컸네."
듣는 순간 '두 번째 아들'이라고 얘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부인'이라는 한마디가 더 붙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얘기했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가르쳐줄게"라고만 대답했다.
-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동안의 일이 앞뒤가 맞아 들었다. 형 요스케와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더 나는 점, 요스케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어딘가 조심스럽게 느껴졌던 점 등이다.
그 이후 아버지와 형을 보는 소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두 사람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을 상징하는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리야의 나팔꽃 시장이다. 소타는 아버지와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앞에서 걷는 두 남자의 눈에는 뒤에서 따라오는 후처와 그 자식의 모습은 없는 듯했다.
- 요스케가 동생의 얼굴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가모 가의 장남이 빠진다고?"
"그러니까." 구두를 다 신은 요스케가 소타를 똑바로 쳐다봤다. "차남이 대신하라고,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어."
"지금, 얘기하잖아. 그러면 충분하지 안 그래? 너도 성인이니까 어머니 잘 도와드려."
- "나팔꽃? 이게? 거짓말이죠? 나팔꽃은 더 둥글지 않나요?"
"널리 알려진 것은 그렇죠. 하지만 나팔꽃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변화 나팔꽃이라고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는 종류가 있어서 조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꽃이 생겨요. 옛날에 집에 있었던 책에서 봤어. 이런 형태의 나팔꽃도 있었고,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음, 이런 나팔꽃도 있구나."
소타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만약 이게 진짜 나팔꽃이라면 아주 대단한 거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진짜일지도 몰라요."
"어째서요?"
이상하다는 듯 묻는 리노의 얼굴을 보고 소타가 말했다.
"꽃과 잎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색깔이지. 나팔꽃에 대해선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노란색 나팔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소회의실 문을 노크하자 "들어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야세가 문을 열자 회의용 테이블 건너편에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삼십 대 후반, 체격이 좋아 양복이 잘 어울렸다. 예리한 눈빛을 보고 형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곧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장 사람에게는 이런 기품이 없다.
"하야세 형사님과 야나가와 형사님이시죠."
남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하야세의 이름을 먼저 댄 것은 그가 계급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만."
하야세가 대답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민 명함을 보고 하야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경찰청이라는 문자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직책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생활안전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억제대책실 실장 가모 요스케'라고 적혀 있다. 경찰청이 수사활동에 끼어들 생각이라면 형사국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 "그렇군요." 요스케는 야나가와에게 시선을 옮겼다. "야나가와 형사님은 어떻습니까?"
야나가와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듯 천천히 호흡했다.
"우리는 상부의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표정 없이 듣고 있던 요스케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참고가 되었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회의실로 돌아온 야나가와는 주임에게 다가갔다.
"뭡니까, 저거?"
"뭘 물었지?"
"이 사건 수사에 대해서요.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쓸데없는 소리는 안 했겠지?"
"당연하죠. 이상한 말이 서류에 남으면 안 되니까요."
"그럼 됐어. 경찰청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 일을 하고 있다는 실적을 남겨야 하니까 신경 쓰지 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하야세는 위화감을 안았다. 그 가모 요스케라는 인물의 예리한 눈빛이 인상에 남았다. 그것은 할당된 일이나 하는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을 지닌 남자의 눈이었다.
- "노란색 품종이 없는 꽃에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사용해 노란 꽃을 피우려고 하는 연구는 지금도 몇몇 연구기관이 하고 있어. 파란 장미꽃을 만든 주조회사도 그중 하나야. 노란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효소와 그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는 이미 발견했지. 이 유전자를 주입하면 본래 빨강이나 파랑이 될 꽃이 노란색으로 변한다고 해. 이 기술을 사용해 노란 토레니아 개발에도 성공했어."
"노란 나팔꽃은요?"
"내가 조사한 바로는 만들어졌다는 정보는 없어."
"그쪽 형 말에 따르면, 완전 극비라 발명된 것도 공표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야 당연하죠."
소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고. 그런 귀중한 정보를 우리 형이 가지고 있을 리 없어. 몇 번이나 말했지만 형은 식물 연구원이 아니야. 경찰청 관료라고."
- "조금 전, 그 노란 꽃에 해당하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건 현존하는 식물에 한한 이야기야. 전에도 얘기했듯 노란 나팔꽃은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예전에는 드물지 않았어. 에도시대에 나팔꽃 재배가 번성했던 때가 있어서 유명한 자료가 남아 있어. 그 안에는 노란 나팔꽃도 실려 있고."
- 나팔꽃의 대표적인 자료로는 <나팔꽃 표본>과 <나팔꽃 총람>이 있다. <나팔꽃 표본>은 1818년에 만들어진, 문자 그대로 꽃을 눌러 말린 표본집이다. 이세 마쓰사카의 호시카(정어리의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말린 것) 상인인 오즈 가문의 후손이 보존해 왔다. 그 안에 '기마루 黃丸'라고 하는 말린 나팔꽃 표본은 그 이름 그대로 옅은 노란색 꽃잎을 가지고 있다. 색이 바랬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래 색은 조금 더 선명한 노란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나팔꽃 총람>은 1817년에 에도에서 처음 간행된 나팔꽃 도감인데 그 안에 '고쿠키자이'라고 소개된 꽃은 짙은 노란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밖에도 노란 계열의 나팔꽃은 몇몇 문헌에서 보이고 있다.
-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거예요? 왜요?"
리노의 물음에 소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잘 모르겠어. 메이지유신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고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으로 귀중한 씨앗들이 소실되었다는 설도 있어. 진상은 수수께끼야."
-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건 아직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타트라인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정보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데 화분 도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불명확한 점이 많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겁니다."
하야세는 리노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내뱉는 정중한 말투에 어쩐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일은 가모 형제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상대가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데 나만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만약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이용할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 꽃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예요. 다른 질문이 없으시면 이만 가볼게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요."
- 하야세는 테이블 계산서를 왼손에 든 채, 오른손으로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제게 연락해 주세요. 경찰서나 다른 형사가 아니라 제 쪽으로 연락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건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니까요."
받아 든 명함에는 손으로 직접 쓴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 1층으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거실로 가자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리라. 그러나 소타를 보자마자 폴더형 전화를 서둘러 탁 닫는 게 신경에 걸렸다.
"뭐 하고 있어? 메일?"
소타가 물었다.
"응. 그렇지 뭐."
어머니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일어났다.
"혹시 형이야?"
어림짐작으로 물었는데 어머니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꽃 개발이라는 게 실제로는 어떤 겁니까?"
히노가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그에게 돌렸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 교배도 있고 유전자 조작도 있습니다. 세포융합이라는 경우도 있고요. 다만 그것들은 우리가 하는 일의 아주 일부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은 꽃을 기르는 거죠. 유전자 조작을 했다고 한 시간 후에 원하는 꽃이 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키우고 무사히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대부분이죠. 날짜를 최대한 단축하느라 하루 종일 온실이나 조명을 켜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화시기를 좌우하는 메커니즘은 식물에 따라 다르니까요."
- "아키야마 씨가 전부터 나팔꽃을 재배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알기로 전에는 마당에 나팔꽃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히노는 소타를 보고 말했다. "육종은 십 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제 지인도 나팔꽃을 키우는데 몇 년을 투자했는데도 좀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제오늘 시작해서 바로 환상의 노란 나팔꽃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 "가령 제가 노란 나팔꽃을 만들라는 미션을 받았다면 우선, 교배를 제일 먼저 해볼 겁니다. 비슷한 종의 노란 꽃과 합쳐보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겠지요 교배가 아니면 세포융합이라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팔꽃의 세포와 다른 노란 꽃의 세포를 융합시키는 겁니다. 또는 유전자 조작. 노란 색소를 내는 효소 유전자를 떼어내 나팔꽃 유전자에 도입한다, 이전에 이 방법으로 노란색 아프리카제비꽃에 도전한 적도 있습니다. 잘되지 않았지만. 이런 방법이 모두 소용없다면 방사선을 쏘여서 강제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요행을 바라는 수단입니다. 어쨌든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되풀이해야 하는 일입니다. 단번에 잘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아키야마 씨가 극비로, 게다가 집에서 그런 연구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 "그거, 나팔꽃인가요?" 리노가 물었다.
다하라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난텐, 구루마자키."
"네?" 리노가 다시 되물었다.
다하라는 조금 전 리노가 꺼냈던 책을 책장에서 뽑아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에 있지. 사진의 꽃을 보면 잎의 특징은 난텐이라는 거야. 구루마자키는 나팔꽃의 겹꽃 종류 중 하나지."
-
"게다가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이건 노란색이 아니야. 그렇게 보일 뿐이지. 꽃잎을 조사해 봤더니 표면이 아주 세밀하게 너울거리고 있었어. 그것이 광선을 미묘하게 반사해 크림색처럼 보이게 한 거지. 이 사진은 잘 찍은 거지만."
다하라는 벽 한 면에 붙어 있는 사진을 둘러봤다.
"꽃의 색깔이란 색소로 결정되지. 나팔꽃의 색깔은 파랑, 보라, 짙은 빨강, 밝은 빨강, 이것들의 조합에 따라 결정되는 거지. 기본적으로 노란 색소는 없어. 다만 색소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하얀 나팔꽃이 바로 그거야. 색소에 관한 유전자에 결함이 생긴 거지. 아까 본 내 노란 나팔꽃도 그런 경우 중 하나야."
- "무슨 일에든 예외가 있어. 기본적으로 노란 색소가 없다고 했지만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아주 소수지만 캘콘, 오론, 플라보놀이라는 옅은 황색 색소를 포함하고 있는 나팔꽃도 있어. 우연히 이 계열의 색소가 강하게 발현한 것이 거기에 찍힌 사진일 게야. 그러나 그 정도라면 세상의 호사가가 가끔 만들어내기도 하지. 내게 사진을 보낸 사람도 있어. 너무나 멋진 노란색이라 놀라 전화를 걸었을 정도야. 그런데 상대는 부끄러워하면서 '선생님, 사진은 그렇게 보여도 실물을 보시면 실망할 겁니다. 그런 노란색은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해. 그런 색소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단 말이지."
"그럼 어떤 색소가 필요한가요?"
소타가 물었다.
"짙은 노란색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색소가 꼭 필요해. 이것은 현존하는 나팔꽃에는 포함되지 않아. 그래서 환상의 꽃인 거지."
"그럼 예전에 존재했다는 노란 나팔꽃은 어떻게 된 거죠? 그것들도 역시 눈의 착각 같은 걸로 노란색으로 보였던 겁니까?"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당시 자료에 따르면 틀림없이 선명한 노란색이었다고 해.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색소를 가진 유전자가 당시에는 존재했다는 말이지."
- "없네. 그러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
"무슨 얘기입니까?"
"노란 나팔꽃은 금단의 꽃이라는 이야기야."
- "내가 나팔꽃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의 영향이야. 삼촌이 다양한 변화 나팔꽃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흥미가 생겼지. 하지만 삼촌은 어느 날 내게 말했어.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몽환화?"
"몽환 夢幻의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 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담담한 어투의 다하라의 말에 소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리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어려운 말이 나온 것 같네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런 거야. 현실에는 이 정도의 우연은 빈번히 일어나. 문제는 그것을 깨닫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나는 지난번 공연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어른이 된 모습을 확인했어.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사진을 봤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그랬다면 그 우연은 일어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지. 예지몽을 믿는 사람들 있지? 실제로는 수많은 꿈을 꾸는데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우연히 맞아떨어진 꿈만 기억하고 꿈대로 되었다며 유난을 떠는 거나 마찬가지야."
- 아무도 없나 생각했는데 유리 케이스 너머로 빼꼼 얼굴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하얀 두건을 쓴 아주머니였다. "어서 오세요" 하고 미소를 짓자 얼굴 가득 주름이 잡혔다.
손님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탓에 소타는 유리 진열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조요만주(참마를 섞어 만든 만주), 가노코모치(꿀에 졸인 팥을 팥찰떡에 묻힌 일본 과자), 네리키리(찰기가 있는 흰 소를 착색하여 다식판 모양의 틀에 눌러 모양을 만든 생과자)까지 모두 너무 달아 보였다.
"선물하려고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 네. 너무 달지 않은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물 양갱이 어때요? 아니면 구즈모치(콩가루를 묻힌 찰떡)도 달지 않고."
- 읽으면서 납을 삼킨 듯 위장이 묵직해지는 것을 하야세는 느꼈다. 유타는 당연히 이 편지를 아버지가 읽을 것을 알았다. 이걸 읽고 조금이라도 각성하길 바란 것일까.
- [아버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 그러나 변호를 해보자면 세상의 많은 남자는 가정의 일원으로 실격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마찬가집니다.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지요. 아내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병상에 누웠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제 연구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나 몰래 차를 끊고 기원을 들이고 있었더군요. 물론, 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유타 군의 아버님도 지금은 이미 스스로의 과오를 깨달았을 겁니다. 충분히 자신을 원망하고 있겠지요. 그럼에도 지금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 결정은 존중해야 합니다.
유타 군은 받아들이기 힘든 대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알아주길 바랍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 편지를 마감하는 문장을 읽고 하야세는 복잡한 심정에 휩싸였다. 아키야마 슈지는 하야세의 내면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고뇌가 사실 아주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편지는 이것으로 끝났나 싶었는데 편지지를 촬영한 이미지가 한 장 더 있었다. 그곳에는 추신이 적혀 있었다.
[추신. 아내를 보내고 나서 저도 차를 끊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사죄입니다.]
- 차를 끊다... 신불에 기원할 때 일정 기간 차를 끊는 것.
깜짝 놀랐다. 아키야마 슈지는 차를 끊고 있었단 말인가.
- 리노는 초조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신경과, 신경내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안 가본 곳이 없어요. 하지만 소용없었어요. 어디든 심리적인 원인이라고만 하지 해결은 해주지 않더라고요. 코치도 마찬가지. 정신적인 충고를 엄청나게 해 줬지만 제게 효과는 없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의사가 얘기해 준 것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분간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영은 생각하지 않는다, 치료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답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현기증이 없었으니까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타는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정은 하지 말아 줘요.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 제일 싫었던 건 모두가 마음을 써주는 거였어요. 나는 내 의지로 결단했으니 동정받고 싶지는 않아요. 무슨 종기를 만지는 것 같은 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고요."
"그 기분은 알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소타가 말했다.
- "가장 힘든 건 많은 사람의 꿈을 빼앗은 거예요. 특히 우리 부모님, 엄청 신경을 쓰셨거든요. 내가 수영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정말 크게 실망하셨어요. 그런 부모님을 주위 사람들이 동정하고 위로하고. 나는 정말 불효녀예요."
"그렇진 않아. 자식은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꿈을 의탁하는 건 당연해요. 그걸 뭐라고 할 순 없어요.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어 실망하는 것도."
리노는 후하고 입술을 풀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영을 그만둔 후에는 거의 집에 가지 않았어요. 친구와도 만나지 않았고 수영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라. 수영을 그만두고 깨달은 것은 내게서 수영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날 상대도 갈 곳도 없어요. 한심하죠."
-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 주었어요. 시합이 있으면 멀어도 꼭 와주셨고요. 그러면서도 올림픽 같은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리노가 수영하는 걸 보는 게 좋다고만 하셨죠. 수영을 그만둔 후에도 왜 그만뒀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틀림없이 누구보다 슬퍼하셨을 텐데.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걸 알고 계셨던 거죠."
리노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 이미 전략을 다 세워놓았지만 다시 머릿속으로 정리해 봤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하고 몇 가지 대책을 준비해 두었다. 박보장기(장기 묘수풀이)의 순서를 확인하는 작업과 비슷했다. 적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반드시 내가 원하는 위치로 몰고 가야만 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긴장한 듯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양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팔꿈치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그 움직임을 도중에 멈췄다. 기다리던 인물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양복 상의를 어깨에 걸치고 조금 피곤한 걸음으로 걷고 있다.
- 히노의 움직임이 스톱모션처럼 멈췄다. 몇 초 후, 그는 수첩을 덮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하야세 쪽을 봤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말투에서 소심함이 사라졌다.
'결심을 했구나.'
하야세는 느꼈다.
- "모르십니까? 차를 끊는다는 거 말입니다. 일종의 기원입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차를 마시지 않는 겁니다. 지금은 다양한 음료가 있으니까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커피도 주스도 없는 시대에는 차를 끊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었겠죠."
- 하야세가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커피포트를 든 직원이 다가왔다. 그는 두 사람의 잔에 커피를 부어주고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요스케가 물었다.
하야세는 커피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게다가 리필이 무료라니. 이런 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해가 될 것도 같네요."
잔을 놓고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곳에 저장해 둔 한 장의 사진을 액정화면에 띄웠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당신의 목적은 범인 체포가 아닙니다. 다른 것을 쫓고 있죠. 아닙니까?"
- 하지만 하야세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요스케는 심각한 표정으로 먼 곳을 노려봤다. 마침내 그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옅은 웃음을 짓기 시작하더니 몸을 조금씩 흔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실례했습니다."
요스케는 장갑을 낀 손을 흔들었다.
"하야세 씨, 당신은 보은 하겠다는 심정으로 이번 사건에 매달릴 결심을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게 왜?"
그러자 요스케는 물끄러미 하야세의 얼굴을 바라봤다.
"당신의 그 보은 덕분에 다른 은혜가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뜻입니까?"
"당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지켜질 거라는 뜻입니다. 힘드셨겠지만 아무래도 사건은 해결된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감사해야겠네요."
- "무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피의자 연행 때에는 현장에 동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두겠습니다. 그 밖에도 중요한 곳에는 동석시켜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이해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말투는 정중했지만 좋고 싫음을 논할 수 없는 위압감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점이 그야말로 톱클래스의 관료다웠다. 하야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래 자신이 수갑을 채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TV 드라마와는 다른 것이다.
- 취조실로 끌려온 오스기 마사야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췌했다. 가뜩이나 새하얀 피부가 잿빛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입술은 보랏빛이었다.
성명과 주소를 대라는 등의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던진 후 주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사건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오스기 마사야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만히 책상 표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왜 말이 없습니까!"
주임이 재차 물었다.
그래도 오스기 마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항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짓말을 둘러댈 기력조차 없는 것이라고 하야세는 간파했다. 같은 생각을 한 듯 여기서 주임은 다음 한 수를 뒀다.
-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했으면 좋겠는데."
안에는 작은 알갱이가 잔뜩 들어 있는 것 같은 감촉이었다.
"우리가 가쓰우라에서 합숙할 때 가끔 사용하는 건데 이걸 쓰면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 일종의 기분 전환이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도 아티스트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
구도는 주머니 속의 내용물을 손바닥에 꺼냈다. 그것은 밀리미터 단위 크기의 검은 알갱이였다. 자세히 보니 식물의 씨앗 같았다. 이게 뭐냐고 마사야가 묻자 먹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먹으면 세상이 변해. 말로는 표현 못 하겠는데 시험해 보면 알아. 괜찮아, 불법은 아니니까. 조금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복통도 있지만 참을 만 해. 만약 불쾌하면 그만두면 되니까. 그때는 남은 씨앗은 돌려줘. 귀한 거니까."
마사야는 작은 씨앗을 바라봤다. 세계가 변한다? 아무리 봐도 그런 힘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그날 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 시험해 보기로 했다. 구도가 음악을 틀어놓는 게 좋다고 말했기 때문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는 최근에 녹음한 곡이 흘러나왔다. CD 플레이어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씨앗을 꺼냈다. 한 번에 다섯 알만 먹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조금 무서웠지만 입에 넣고는 눈을 질끈 감은 뒤 콜라로 삼켰다.
콜라랑 같이 먹으면 넘기기 쉽다고 구도가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침대에 앉았다. 십여 분 후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 우선 눈앞의 풍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력이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경치의 흔들림에 방향성과 리듬이 있었다. 얼마 후 그 정체를 깨달았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이었다. 그 멜로디와 리듬에 호응해 주위의 풍광이 흔들려 보이는 것이다.
변화는 시각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청각도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귀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모든 악기의 음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 그것들에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호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란 이런 것이어야만 했다. 만드는 것도, 조립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토록 간단한 것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게다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음악의 본질만이 아니라 만물의 진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왜 내가 태어났는지도 알 것 같았다. 동시에 부모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넘쳤다. 마사야는 눈물을 흘렸다. 이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기타를 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맘대로 움직였다. 이제까지 발상한 적이 없는 선율이 차례로 떠올랐다.
- 씨앗의 효과는 약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갑자기 끊어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옅어지다가 마침내 평상시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마사야는 완벽하게 기억했다. 머리가 이상해지는 게 아니라 정신이 고차원으로 올라간다는 느낌이었다. 체험한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증거로 복용 중에 떠올랐던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 며칠 뒤, 구도를 만나 복용 소감을 털어놓았다. 마사야는 얘기하는 내내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뭔가가 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지?" 마사야의 반응에 구도는 만족스러워했다. "다만 가끔 해야 해. 의존하면 안 돼. 마법은 아니니까."
알겠다고 마사야는 대답했다. 씨앗에 대해 나오토에게도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반신반의했다. 시도해 보면 안다고 마사야는 말했다.
- 어느 날 밤, 둘이서 씨앗을 먹었다. 곧 그 감각이 살아났다. 나오토의 정신에도 변화가 찾아온 듯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마사야도 기타를 연주했다. 연이어 나오는 멜로디를 녹음했다.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 녹음한 곡을 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었다. 마사야와 나오토는 흥분했다. 괴성을 질러댔다.
우린 천재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 탄생한 곡 <힙노틱 서제스천>에 다른 멤버들도 넋을 잃었다. 어떻게 이런 곡을 썼는지 모두가 물었다.
영감이야,라고 대답해 줬다. 그 씨앗에 대해서는 마사야와 둘만의 비밀로 했다.
- 고급스러운 시티 호텔은 복도를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구나 하고 소타는 생각했다. 들어가 본 호텔이라고는 싸구려 비즈니스호텔이나 리조트 정도가 전부다. 그런 호텔은 벽이 얇아 복도를 걷고 있으면 어느 방에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호텔은 숙박객이 한 사람도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물론 그럴 리 없으니 그만큼 방음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리라.
지정된 방은 긴 복도의 가장 구석에 있었다. 초인종을 울리는 스위치가 벽에 붙어 있다. 이런 것도 처음 본다.
작게 심호흡을 한 후 스위치를 눌렀다. 차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 체인을 푸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다. 넥타이 없이 단추를 두 개 푼 와이셔츠 차림으로 요스케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의 얼굴은 뺨이 살짝 야위어 있었다. 요스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사 표시이다. 표정은 부드러웠다.
- 소타는 실내에 발을 들여놓았다. 소파와 사무 책상이 있는 방이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를 비롯해 여러 개의 파일이 쌓여 있다. 침대는 없다. 침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이런 방을 스위트룸이라고 하나 이런 방은 들어가 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다.
"대단한 방이네."
거대한 장식장을 보면서 소타가 말했다. 유리 너머로 와인잔이 보인다.
"일 박에 얼마야?"
요스케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생각하는 정도는 아니야. 매사에는 이면이 있지. 전에 이호텔이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그 일을 해결한 인연으로 이용할 때 편의를 봐주는 것뿐이야."
소타는 고개를 움츠렸다.
"역시 최고 관료는 누리는 게 많구나."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널 부른 게 아니야. 우선 앉아."
- 소파 두 개가 L자 모양으로 놓여 있다. 창을 등진 쪽이 이인용이고 다른 하나가 일인용이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고민하는 참에 요스케가 말을 꺼냈다.
"너는 손님이야. 망설이지 말고 큰 데 앉아. 겨우 그런 걸로 고민하면 그릇이 큰 사람이 못 된다."
"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서."
소타는 이인용 소파에 앉았다.
"가모 가문의 남자는 그래선 안 돼.”
요스케가 방구석에 있던 수레를 끌고 왔다. 포트와 커피잔이 준비되어 있다.
"커피 괜찮니? 다른 게 마시고 싶으면 주문하면 되니까."
"아니, 커피면 돼."
요스케는 포트에 담긴 커피를 잔에 따르고 받침에 올려 소타 앞에 놓았다. 이런 대접을 형에게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소타는 왠지 ...
- "거래 시장이 형성될 테니까."
소타는 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도 하지 못한 얘기였다. 하지만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납득 가는 점이 있었다.
"혹시 노란 나팔꽃이 자취를 감춘 게 그것 때문이야?"
"똑똑한데?"
요스케가 말했다.
"모든 노란 나팔꽃이 몽환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막부는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혹시 그런 나팔꽃이 출현하지 않는지 감시했어. 노란 나팔꽃 소문이 퍼지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 씨앗을 회수했어. 세상에서 차츰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멸종하지는 않았어. 노란 나팔꽃은 막부의 관리 아래에서 계속해서 은밀히 재배되었거든. 그 강력한 환각 작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야."
"환각제를 어떻게 사용해?"
"마취약이야. 에도 말기에는 외과수술도 이뤄졌어. 때문에 안전한 마취 기술이 필요했지. 하지만 막부가 무너지자 그 계획은 좌절됐어. 다만 노란 나팔꽃 재배는 메이지 새 정부에서도 은밀히 이루어졌어.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인원뿐이었고. 그런데 얼마 후 노란 나팔꽃을 의외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새로운 방안이 제안되었어. 내무성 윗선의 제안이었는데, 그들은 경찰 수사에서 자백제로 사용해 보자고 생각했던 거야."
"경찰..."
그 말을 듣고 흠칫했다. 여기서 경찰이 얽히는 건가.
- "그 연구를 한 의학자에게 의뢰했어. 그러나 결국 그 연구도 중단되었지. 자백제로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위험했거든. 피의자 몇 명이 난폭해지기도 했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어. 즉 뇌에 미치는 영향이 사람마다 개인차가 너무 큰 거야. 이렇게 노란 나팔꽃은 더는 재배되지 않았어."
단번에 말한 후 요스케는 잔에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야만 했지."
"무슨 소리야?"
"무슨 일에나 완전함이란 없지. 엄중히 관리되었던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다양한 이유로 외부에 유출되었어. 대량의 씨앗이 사라진 거야. 하지만 노란 나팔꽃이 완전히 자취를 감춤으로써 씨앗도 소실되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 형이 커피잔에 손을 댔기 때문에 소타도 블랙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집안에 그런 복잡한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
"그야 그렇지."
"형은 이 얘기를 언제 들었어?"
"초등학교 때 처음 아버지에게 들었어. 노란 나팔꽃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꽃이라고 설명하시더라고. 사진은 할아버지가 입수한 것 같았어.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틈만 나면 자료를 모았지. 그 존재를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경찰청에 들어간 거야?"
"설마."
요스케는 눈가에 주름을 잡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경찰에 흥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몽환화인 노란 나팔꽃 이야기는 역사의 한 도막이라고 생각했어. 나팔꽃 시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찾긴 했어도 아마 노란 나팔꽃을 내 눈으로 보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
-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리노가 조사했었다.
"몽환화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바로 그만두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나타나는 바람에 모두 백지화됐지."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어. 계획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목적은 이뤘으니까. 완전히 다른 경로로 노란 나팔꽃의 존재를 확인했거든."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야. 뭐 또 궁금한 거 있어?"
소타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많은 얘기를 한꺼번에 들어서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 안 나. 천천히 생각하면 또 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사건 이외의 일이라면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그런 식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불만은 없어? 중학생 때부터 노란 나팔꽃을 쫓으라는 지시를 받는다는 게 어쩐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카미는 호호호 하고 웃었다.
"그렇지, 어떤 의미에서는 불합리하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가모 집안도 그렇잖아. 요스케 씨는 어린 시절부터 의무를 짊어졌잖아."
"맞아, 형은 어쩔 수 없다고 했어."
"내가 불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하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많아. 이를테면 가부키 같은 전통 예능은 그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당연히 뒤를 잇잖아. 오래된 가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건 유산이잖아. 이어나갈 의무와 함께 득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 군."
다카미는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모른 체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 감시를 계속해야만 해. 그것이 마성의 식물을 확산시켜 버린 사람의 피를 물려받은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해. 도망칠 수 없지."
물끄러미 소타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 각오와 신념이 다카미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고마워."
소타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웬 인사?"
다카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좋은 말을 들려주었으니까."
- "나오토에 대한 거야. 그 녀석은 늘 고민했어. 옛날부터, 어릴 때부터."
"어떤 걸?"
"자기가 리노처럼 되고 싶은 것에 대해."
"나처럼? 그게 무슨 소리야?"
마사야는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리노는 잘 모를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있어. 본인은 평범한 것 같은데 주위 사람에게는 눈부셔 보이는 거.”
"잠깐만,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
마사야는 침을 삼키는 것처럼 목울대를 움직였다.
"나오토는 말이야, 재능을 원했어. 재능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어 했어."
리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나오토만큼 재능이 많은 사람이 어디 있어? 운동도 만능이었고 학교 성적도 좋았어. 그림도 잘 그렸고 음악도 프로를 목표로 하는 수준이었잖아. 재능이 없기는커녕 지나치게 많았던 거 아냐?"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마사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리노는 모른다는 거야. 분명히 나오토는 운동을 잘했지만 프로가 될 수준은 아니었지. 리노처럼 올림픽을 목표로 할 정도였나? 아니지?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고 해도 그것도 한정된 범위에서였어. 나오토는 특히 수학을 잘했지만 그저 푸는 방법을 아는 것뿐이라고 늘 얘기했어. 그림도 그랬어. 하얀 종이를 보고 있으면 그림의 구상이 떠오른다고. 그에 맞춰 연필을 움직이면 멋진 그림이 완성되지.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늘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자신은 그저 그림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능숙한 것뿐이다, 다른 사람은 잘한다고 칭찬해 주지만 그것은 감탄이지 감동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마사야는 시선을 리노의 얼굴로 돌렸다.
"마침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자신에게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 있는 척할 뿐이다,라고."
리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거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잖아. 재능이 있는 사람은 한 줌이야. 있는 척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능력 자체도 대단한 거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오토도 평범한 경우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 녀석의 경우 바로 옆에 리노가 있었잖아."
"나?"
"나오토에게 자주 들었어, 리노는 천재라고. 같은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리노 주위에만 물의 질이 달라진다고. 특별한 물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고."
-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소타는 후지무라의 책상에 놓여 있던 삼색 볼펜을 들었다. 본체는 흰색인데 상단 2센티미터쯤은 검은색이다. 그 부분은 원자력발전에서 사용하는 우라늄 연료 하나의 크기와 일치한다. 몇 년 전인가 발전소를 견학했을 때 받은 것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계속하기로 했어."
소타가 말했다.
"계속해? 뭘?"
"물론 연구지. 나는 평생 원자력을 연구할 거야."
- "2030년에 가동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제로가 된다고 해도 원자력 발전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폐로 문제(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는 그대로 남아. 게다가 오십 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대량의 폐연료봉이 보관되어 있는 상태겠지."
"그야... 그렇지."
후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집은 방치하면 폐가가 돼.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달라. 방치한다고 저절로 폐로가 되는 게 아니야. 이를테면 발전을 중지해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신중하게 폐로 절차를 밟아야 해. 게다가 폐로 때는 방대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해 그것을 처리하는 장소 또한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아. 그런 장소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분명하고, 가령 처리장이 생겨 거기에 묻어도 방사능 수준이 안전한 수치로 내려갈 때까지는 수만 년이나 걸리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런 무서운 선택을 수십 년 전에 이미 내려버린 거야."
후지무라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보고 소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괜한 잔소리였어."
- "만약 앞으로도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보다 더 높은 기술이 요구될 거야. 가령 철수한다면 어떨까. 나는 추진할 때보다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제까지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해야 할 테니까."
후지무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낮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네가 얘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거, 엄청 배고플 거야.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 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후지무라는 소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도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엄청나게 멋있어졌네."
"아주 멋진 사람을 만났지. 두 사람쯤."
- 의자에서 일어나 창으로 다가갔다. 그때 휴대전화 메일이 들어왔다. 아키야마 리노였다. 그녀와는 사건이 해결된 후 만나지 못했다. 한 번 느긋하게 데이트나 하자고 약속했었다.
메일 제목은 '재도전'이었다.
[안녕. 오늘은 오사카일까.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수영장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제대로 헤엄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힘껏 뛰어들어보려고요. 우선은 결의의 보고입니다.]
메일을 읽고 소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데이트는 당분간 힘들겠구나 싶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을 감싸고 있는 하얀 구름이 살짝 갈라지며 멋진 파란색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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