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정세랑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5.01.20
종합소득세 신고를 일찌감치 마치고 6월 휴가를 계획 중이다. 길었던 조율 과정이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무사히 승인되기를.
지난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리뷰에서 밝힌 바처럼 나는 2권에 해당하는 <설자은, 불꽃을 쫓다>를 먼저 읽었다. 발췌문을 정리하다 보니 책을 읽을 당시에는 놓쳤던 부분들이 꽤 많았는데- 혹시 아직 <설자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가급적 <금성>부터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정세랑 작가의 문장은 굉장히 미묘하게 상황과 심리를 건드리고 넘어가므로, 이전 이야기부터 이어지는 맥락을 놓치고 읽으면 그냥 심상히 넘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려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 싶다가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던 건 김노길보.
작가는 그를 목인곤의 입을 빌어 "세상을 버린 것인지, 세상을 탐내는 것인지 모르겠어. 둘 중 하나이지 싶은데.", "의외로 두 부류는 분간이 어려워서. 무늬가 겹치지."라고
내 상상 속의 김노길보는 검은 장포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북두칠성이 새겨진 준마 위에 당당히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다. 세상에는 관심이 없는 듯 무심하고 권태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도, 그 작은 틈새 사이로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마는, 그래서 알기 때문에 숨겨야 하는 지침과 부침이 있는 인물. 티 나지 않게 주변을 살피고 배려할 줄 알면서도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일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 시대와 때를 다르게 만났더라면 또 다른 빛을 냈을지도 모르는, 송곳인지 검집을 잃은 칼인지 부러진 칼인지 알 수 없는 금붙이.
'자은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소리였고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울 뻔했다.'에서 벅차올랐다. 좋았다. 이런 애달픔이 좋았다. 단지 친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정을 주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이야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련함. 괴롭지만, 괴롭고 괴로워서 피하고 싶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결심'과 '결정'을 사랑한다. 생을 살아감에 있어 그런 선택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할 수밖에 없어서 해내는 이를, 그 결과를 지켜보는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라진 자리 위에 놓여진 왕좌였을까. 아래에서 기어오르는 이들의 정념과 위에서 그들을 밀어내고 베어내는 이의 공포. 이제는 역사에서 그런 것들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것들을 헤아리다 인간에게 실망하고 경멸하고 경원시하다가도 아주 작은 따스함을 찾아내고 다시 기대하는, 그런 사람들이 사관이 되는 걸까 생각한다. 정세랑의 글은 사관의 것이라기엔 너무 다정하고, 낙관론자나 이상론자의 것이라기엔 서늘하다.
삼국유사와 야사 사이 어디쯤에서 읽었던 토룡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느 두품 -아마도 육두품이었을 것이다- 집 고명딸의 방에 언젠가부터 밤만 되면 사내가 드나든다는 소문이 돈다. 기함한 아버지가 딸을 다그치자 딸은 잠에 들면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은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하며 정을 청했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나 잠이 들면 나타나 눈을 뜨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에 방도를 수소문하니, 꿈속에서 남자가 나타나면 그 옷자락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두면 진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과연 그러하니 해가 뜨고 이어진 실을 따라 좇으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땅 속에서 바늘을 꽂은 토룡(土龍)이 있었다 한다.
토룡의 뜻 중에서는 지렁이도 있다. 이 이야기는 기담이었을까? 사실을 담은 풍자였을까? 남자는 어느 집안의 어떤 핏줄이었기에 용이자 지렁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정말로, 견훤은 그리 태어났을까?
작가가 의도하고 쓴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읽어버린 것 같았지만, 또 그랬기에 좋았다.
행복하게 읽었다.
어서 다음 <설자은>이 나와 주었으면.
- 이 이야기는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기록과 유물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사건들입니다.
- 처음에 설자은은 매가 새겨진 검이 상징인 줄로만 알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어느 한 점을 향해 맹렬히 몸을 던진 칼자루의 매 형상은 보면 볼수록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흰 매는 살아있는 것만 같았고, 저만의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검을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치라는 명을 받았다며 시위부에서 사람이 사흘마다 한 번씩 오기 시작해, 그저 들여다보라고 준 물건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 어린 시절 목검을 들고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왜 사흘 간격으로 가르치러 오는지 처음에는 궁금했으나, 하루 배우면 이들 누워 있어야 해서 사흘임을 깨우쳤다. 큰물을 두 번 건너며 상할 대로 상한 몸은 뜀박질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 "무엇을 읽고 있느냐?"
한 번은 왕이 물었다.
"유가를 많이 읽지만 도가나 묵가도 읽습니다."
"잡가도 읽는다고?"
특별히 화를 내는 기색 없이 재차 물어왔다.
"군자 됨에 있어 여러 길을 살피는 것은 해 될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군자가 되고자 한다?"
하필 천장이 높은 전각이라 왕의 흩어지는 목소리가 한층 더 갈래갈래 나뉘었다. 자은은 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읽는 이 중에 군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가 있겠습니까? 읽음은 결국 어짊에 다다르기 위한 것이지요."
"누구나 군자가 되려 한다..."
위험한 말을 해버린 것인지, 자은은 가슴께가 조여들었다. 기왕 위험해진 김에 속내를 뚜렷이 내비쳐보기로 했다.
- "선현들에 대해 읽으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초야에 묻혀 재상의 자리도 피한 이들이 많았더이다. 제게 주어진 것이 재상의 자리는 아니나, 제 그릇을 모르고 덜컥 일을 맡아 무엇도 베지 못하고 있음이 부끄럽사옵니다."
납작 엎드렸다. 금성에 돌아오기로 한 후, 엎드리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
"만약 네가 베지 말아야 할 것을 급히 베며 칼날을 매일 피로 적셨다면, 오히려 거두었을 것이다."
왕이 말했고 거둔다는 것이 검이나 관직이기를, 자은의 목숨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너는 무엇을 베어야 할지 보는 순간 알 것이다. 아직 보지 못했기에 베지 못했음이야."
- 그 말은 틀리지 않아서 자은은 처음 검을 그 소용대로 휘둘렀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느끼지 않았다.
- "무슨 일인가, 걸마지?"
"걸마형입니다!"
착각해 미안하다고 말하려다 급한 상황인 것 같아 관두었다. 점이라도 달리 났으면 구분이 쉬웠을 텐데.
"불이 났습니다! 바로 근처입니다!"
그제야 코끝에 타는 냄새가 스쳤다.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었으나 한밤중이라 규모가 바로 파악되지는 않았다.
"병사들로 부족하면 일꾼들도 다 데려가게. 누구보다도 인곤을 깨워 재빨리 데려가게."
- 인곤이라면 늘 쓸모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자은은 달려가다가 걸마형이 인곤을 어깨에 메고 쫓아오는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깨우는 데 실패했던 것인지, 평소에 사이가 데면데면했던 탓인지, 자은이 명령을 한층 정확하게 했어야 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인곤은 무척 화가 났을 테지만 자은이 돌아보았을 때는 흔들리는 궁둥이밖에 보이지 않아 모르는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 남자 노인과 젊은 여자, 어린아이 둘이 사는 집이라고 했다. 시신의 크기로는 틀리지 않아 보였다.
"아이들의 머리통 모양이 특이하군. 이마가 가파르고 정수리가 뾰족한 두상이야. 불에 타서 이렇게 된 건가?"
자은이 작은 시신들 위로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인곤이 함께 들여다보며 답했다.
"여인이 아이들의 어미라면, 어미를 닮지는 않았나 보군."
"노인 쪽은?"
"노인 쪽도 평범한 두상인데."
"아비를 닮은 걸까?"
자은은 같은 방에 사는 이들을 불러 그 집에 살던 이들이 확실한지 확인하게 했다. 함께 화마를 입을 뻔했던 이웃들은 질린 얼굴로 들여다보면서도 확언하지 못했다.
- "더러운 금성을 불로 깨끗이 정화시킬 거라고요."
"그자가 자신이 지귀라 그랬니, 지귀가 돌아올 거라고 그랬니?"
자은이 묻자 아이의 눈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기억이 불분명한 듯했다.
- "지귀가 뭔데? 도깨비 같은 것인가?"
내내 곁에 앉아 함께 듣던 인곤이, 뒷집 사람들이 물러나자 물었다.
"불귀신이라 해야 하나? 선덕여왕 시절에 영묘사와 그 인근을 홀랑 태워먹을 뻔한 자가 있었네. 연달아 불을 내고는 여왕을 사모하여 그랬다고 했지. 불에 홀려 저질러놓고 별 망령된 핑계를 댔건만 떠들기 좋은 핑계인지라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어.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그 유사한 짓거리를 몇 명이 시도했는지 몰라. 툭하면 지귀에 씌었다 외치며..."
자은이 설명해 주자 인곤이 아아, 하고 알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불을 다루다 보면 불에 홀려버리곤 하지. 숯이나 철을 가까이하다가 그렇게 되어버리는 자들을 가끔 본 적이 있네."
"나오고 또 나오지. 지겨울 정도로."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 보는가?"
인곤의 물음에 자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불에 매혹된 자는 잡아 묶기 전에는 그 짓을 멈추지 못하지 않나? 불이 또 나는지 살피면 알 수 있겠지."
"그런 자라고 해도 이렇게 사방이 지켜보는 눈들인 금성에서? 한동안은 숨죽이지 않을까?"
자은은 인곤의 말이 맞기를 바랐지만 아니었다. 그날로부터 나흘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불이 났다.
- 두 번째 불은 제법 떨어진 곳에서 났기에 자은과 자은의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는 이미 진화가 시작된 지 한참이었다.
"이게 누구신가? 설대사가 납셨네."
도울 생각 없이 구경을 나왔는지 비단옷을 느슨히 걸친 진오룡이 떨어져 서 있다가, 자은이 도착한 것을 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자은은 달리다가 흐트러진 머리와 옷을 매만진 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진오룡이 말발굽으로 자은을 밟으려 했던 것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불귀신보다도 재수 없는 면상이로고."
인곤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자은이 얼른 날리는 재에 목을 고르는 척, 말소리를 덮었다. 인곤의 뼈가 또 부러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 "왕께서 따로 쓰신다 들었지만, 그래도 집사부에 얼굴을 너무 비추지 않는 게 아닌가?"
"지엄하신 왕께서 저를 그늘에서 그늘로 움직이시기에..."
왕을 거스르지 말고 내버려 둬 달라는 뜻을 숨기지 않고 흘렸다. 물론 진오룡은 자은을 그대로 보내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러면 어떠한가? 집사부 사람들이 자네를 알고 싶어 하니 궁금증도 풀어줄 겸, 자네의 환영식을 내가 베푼다면?"
진오룡은 '베풀다'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은은 오룡이 무슨 속셈일지 고개를 들어 살폈다. 탄력 있는 붓으로 그린 듯한 오룡의 얼굴에 붉은빛이 일렁였다.
"그리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신다면 백골이 되어서도 감사할 것입니다."
불러다가 백골로 만들 셈이냐, 묻고 싶은 마음을 담아 답했다. 진오룡은 자은이 거절할 줄 알았는지, 수락의 말을 듣자 환하게 웃었다. 지나치게 환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자은은 산아가 이 남자의 진면목을 알고 있을지 심려되었다. 산아에게만이라도 좋은 지아비라면 자신이 오며 가며 당하는 일쯤은 참을 수 있었다.
- "애써 격자 모양으로 낸 방리도로가 불이 쉬이 번지지 않도록 막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아오라 하셔서..."
자은은 거짓말을 했다. 오룡에게는 아무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살피고 있는지, 쫓고 있는지 들키지 말라는 명까지는 없었지만 괜히 저어 되었다. 오룡은 왕의 명령이 대수롭지 않은 것인 게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은 따위를 따로 써보았자 흙길을 다지는 일 정도구나, 하는 인상을 주고 싶었고 목적을 이룬 듯했다.
- "자네, 북쪽의 말갈인들을 직접 본 적이 없지? 구려가 달래어가며 부릴 때가 나았는지도 몰라. 어찌나 거친지 요즘도 북쪽에선 약탈에 방화에... 조만간 하슬라 너머로 새 성을 쌓아야 할 테지. 이젠 금성 한가운데에서도 불을 지르고 다니는군."
뒤에 서 있는 걸마지와 그 형제들이 신경 쓰였다. 그들이 말갈인이라는 걸 오룡이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말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오룡이라면 양쪽 다 가능했다.
"말갈인의 집에 말갈인이 불을 질렀단 말씀입니까?"
- "흉터라면 상처가 아문 것이니 이 일과는 상관이 없지 않을까?"
자은이 말했다.
"그야 그런데... 무엇이 이런 흉터를 만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아닌 게 아니라 남자의 등과 배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찔린 상흔이 있었다. 찔린 곳이 작고 얕은 걸로 보아 흔한 무기가 남긴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작고 얕은데도 쉽사리 아물지 않았기에 흉터로 남은 것일 터였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남자의 옷을 여며주던 인곤이 문득 굳은 듯 멈추었다.
"이건, 눈에 익은 물건인데."
인곤이 중얼거렸다. 죽은 남자의 허리띠를 들어 올린 채였다. 인곤은 허리띠에서 작은 청동 꾸미개를 떼어내 손바닥에 두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가?"
자은이 다가가 함께 들여다보았다. 뒷면에 버드나무가 새겨진 청동거울이었다. 엄지 두 개쯤을 붙인 크기라 실제 거울로 쓰기보다는 악한 귀신을 쫓아주길 바라는 장신구에 가까웠다.
- "군복에다가 옷깃은 청백색, 청금서당에 속해 있는 자인가 보군. 백제 잔민에 목씨인 것까지 더하면 이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겠어. 지난번 공격을 받은 것은 흑금서당이었던 자들인데, 이번에는 청금서당이라... 불을 지르는 자가 왕경을 지키는 군인들을 공격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첫 번째 집 사람들도 군인의 가족이었을까? 그 집에 군인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지만 가족일 수는 있지 않나?"
"백제 잔민이었다면, 숨기고 싶었을지도."
인곤의 말에 자은은 끄덕였다.
"일찍이 신라에 몸을 맡긴 백제인과, 끝까지 다시 백제를 일으키고자 했던 이들 사이에는 구분이 있지. 후자가 더 경계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어."
- "재밌지 않나?"
"무엇이?"
"일전에 우리가 소판 댁에 갔었잖아. 구려의 왕족은 진골로 받아들여졌고, 유민들도 높게는 육두품까지의 관등을 받았지. 그런데 백제의 왕족 중에 그런 대우를 받은 자는 없어. 포섭된 자들도 높아보았자 오두품이고."
"대우가 같을 리 없지. 신라와 백제는 지긋지긋한 사이니까. 의자왕이 무열왕의 딸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심상하게 포로로 잡았다 돌려줬으면 되었을 일을 왜 그렇게까지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건지..."
자은이 턱을 짚으며 탄식했다.
"신라인들은 신라의 원한만 기억하는군.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을 그렇게까지 해버린 건 신라도 마찬가지야. 성왕의 머리를 베어다가 월성의 계단 밑에 묻어버린 건 떠오르지 않나? 그것도 아주 자주 쓰는 계단이라지? 눈을 부릅뜬 머리가 둥둥 떠다닌다는 소문은 없는지 궁금하군."
인곤이 지적했다. 맞네, 그 계단, 하고 자은이 무릎을 쳤다. 자은도 종종 지나는 계단이었다.
- 자은은 이제 없이는 지내지 못할 것 같은 식객을 유심히 살폈다.
"백제인들이 받은 신분을 따지고 있었다니. 자네도 관직에 나아가고 싶은가? 마음에 차지 않는 자리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네 재주에 어렵지 않은 일일 거야."
인곤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매이고 싶지 않네. 목간을 목에 두른 항아리 꼴은 피할 테야. 구분되어 표가 붙기 전까지는 내가 안쪽에 귀한 것을 품고 있는지 삭힌 물고기나 품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상태가 좋아."
자은은 물을까 말까 하다가 마저 물었다.
"이 일에 백제인들이 깊이 연루되어 있다면, 자네도 편치 못할 것 같은가? 머릿속이 흐려질 것 같으냐 이 말일세. 그렇다면 돕지 않아도 좋네. 당분간 다른 일에 골몰해도 괜찮아."
인곤이 고개를 털듯 흔들었다.
"설대사, 이제 부하가 많다고 내가 필요하지 않나? 나의 쓸모를 제대로 보여주어야겠군."
그렇게 말하며 웃는 인곤이 평소의 모습과 같아 자은은 안도했다. 자은은 죽은 목씨와 여인의 시신이 방치되지 않도록 특별히 집으로 옮겼다.
- "재미있지 않나?"
"또 뭐가?"
"백제와 신라의 골이 그토록 깊은데, 이 남녀는 함께 밤을 보내다 죽었다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나라와 나라의 골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죽은 사람들을 재밌어하다니 자네는 늘 웃고 있지만 성정이 차."
자은이 고개를 내둘렀다.
"그에 반해 자네는 웃지 않지만 차지 않지. 사람들이 우리 둘의 성정을 거꾸로 판단하는 게 가끔 재밌네."
- "서라벌 토박이로,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남자와 혼인했으나 혼인하자마자 남자가 죽어버렸대. 농기구에 발등이 찍혔는데, 며칠 몸이 부어오르다 그대로."
"별것 아닌 상처를 입어도 가끔 그렇게 되는 이가 있지."
없는 일은 아니라고 자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럴까? 왜 어떤 상처는 그토록 덧나버릴까?"
인곤의 궁금증이 순간 깊어지는 것 같아, 일단 도은에게 집중하라는 뜻으로 인곤의 무릎을 가벼이 쳤다. 도은은 세숫물을 물리고는 말을 이었다.
"나리향은 근데 수완이 좋았나 봐. 남편과 함께 일구던 밭을 혼자서도 꽤 잘 일군 모양이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타다 남은 집이 꽤 윤택해 보였던 듯도 했다.
- "몇 년 부지런히 지내다가 청금서당의 그이와 만난 이야기도 들었는데."
도은이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자은과 인곤은 둘 다 더 잘 듣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다리를 걷고 일하다가 그만 풀숲의 뱀에 물렸는데, 마침 근처를 지나던 청금서당의 병사가 달려와 허리띠를 풀어 다리를 묶고 입으로 독을 빨아주었다네?"
셋 다 머릿속으로 푸르른 들판에서 일어났을 그 강렬한 첫 만남을 그리고 말았다. 튼튼한 다리 위를 젊은 입술이...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었겠지만 호감이 일어나지 않기가 어려웠을 것이었다.
"나리향이 후에 이웃 여인들에게 털어놓기를 뱀을 보자마자 독사가 아닌 걸 알았는데 상대가 워낙 진지하게 임하기에 하는 대로 두었대. 잘생기기도 했고 해서."
"뭐라?"
자은마저 얼굴이 빨개졌다. 생사가 오간 것은 아니었구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로군. 독사와 독사 아닌 것을 항시 구분할 수 있어야지, 쯧쯧."
인곤은 약간 빗나간 감상을 내놓았다.
"과부 된 지 오래라, 도리도 그만하면 다한 듯하고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 집까지 업어달라고 했다네. 자연스레 집을 가르쳐주고 또 찾아와 달라 한 거지. 남자 쪽도 싫지 않았는지 여러 계절 오가며 운우지정을 나누게 되었대."
"요즘 세상에 나쁘지 않은 한 쌍이었는데 어찌 그리 끝나게 된 걸까."
도은이 알아온 사정이 애틋할수록, 만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영 몰랐어도 좋았을 성싶었다. 끝을 알고 거슬러 올라가려니 속이 상했다.
- "백제 남자라도 괜찮았던 건가?"
인곤이 갸웃해하며 혼잣말을 했다. 도은이 인곤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금성에 와서 너무 윗물들만 만났나 봅니다? 윗물들이나 이것저것 따져가며 답답하게 살지, 복잡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여자들은 활개를 치고 다녀요. 집과 밭이 있는 나리향 같은 여자가 뭐 그리 남의 눈을 신경 썼을라고요."
거기까지 말하던 도은이 멈칫하곤 자은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 집과 밭이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았을지도 몰라. 나리향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나리향의 형제들은 물론 죽은 남편의 가족들까지 달려와 성화였다 했어. 독이 깨지고 그릇이 날아다닌 게 여러 번이었대."
- "재산 문제였구나. 언제나 결국은 재산 문제야. 시신을 장례 치르는 쪽이 재산도 가져가는 흐름이 될 테니..."
- 인곤의 답이 인사치레인지, 정말 갈 셈인지 자은으로서는 가르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해홍주와 그의 부하들이 목래업의 시신을 거두어 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들이 담장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곧바로 물러나려는 인곤의 소매를 자은이 확 잡았다.
"아직 잠들기엔 이르지 않나?"
"엉?"
"아까 하던 이야기를 더 합세."
인곤을 끌고 다시금 안으로 들어갔다. 인곤은 이끌려 앉으면서도 내키지 않는지 몇 번 자세를 고쳐 잡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할 이야기가 뭐 있다고."
"서운하네."
자은이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뭐가."
인곤이 눈을 피했다. 이 반듯한 듯 보이나 꼬인 자식, 자은이 속으로 욕을 했다.
- "어린 나이에 갇혔단 이야기를 왜 하지 않았나? 얼마나 갇혔던 건가?"
"에헤이, 대단한 일도 아니야. 일 년 남짓이었네."
"일 년이나? 그게 대단치 않은가?"
"아니, 좁긴 좀 좁았지만 음식도 주었고... 그리 끔찍하게는 대하지 않았네. 다만 햇빛이 얼마간 고팠으려나?"
자은은 이마 위로 힘이 들어가 복두가 날아갈 듯 싶었다.
"슬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 비밀이 없는데, 목숨과도 같은 비밀도 맡기고 사는데, 알고 보니 자네는 묻어두고 내비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군. 내가 왜 서운해하는지 모르겠나?"
자은의 토로에 인곤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부터가 떠올리기 싫었던 것뿐이네. 게다가 그보다 나쁜 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 우리를 다 죽여버릴 수도 있었네. 솔직히 그 편이 가두고 먹이는 것보다 간편했을 듯한데 그러지 않은 게 어딘가? 전쟁의 양상이 확실해지자 결국은 풀려났고. 아이들이라도 풀어준 건 인의가 있는 일이었지."
"정말 그리 여기나?"
"만약 자네라면 어떻게 했겠나?"
인곤이 웃음기를 지우고 자은에게 물었다.
"군사의 움직임을 들킬 수 있는 길목에 사는, 배를 빠르게 잘 모는 적국의 백성들을 자네라면 어떻게 처리했겠어?"
자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은이라도 가두었을 것이었다.
"쯧, 말머리를 왜 그리 돌리나?"
- 한 사람으로서의 자은은 하지 않을 일을, 관직에 있는 자은이라면 망설임 없이 할 것이었다. 거인의 손가락 중 하나이기에 어딘가 구름 속에 있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했을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더 큰 힘에 종속되어 버렸다. 그 힘을 끌어 쓸 수 있는 대신 본연의 모습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스스로만 느끼는 줄 알았더니 곁의 인곤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 "그래,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의 자네라면 그보다 나쁠 수 있었음을 이해하겠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에는 위로도 아래로도 끝이 없네. 그 틈새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나는 운을 충분히 누린 거야. 그러니 그저 햇빛에 매일 감사할 뿐, 지나간 날들을 곱씹지 않아."
금성을 떠나지 않은 미은이라면 믿었을 말을, 자은은 믿지 않았다.
"어떤 궤를 벗어난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의 마음에 어둠이 남네. 이제 와선 자네 앞에서 세상 불행을 다 끌어안은 척 했던 게 부끄럽지만, 나는 조금 굶었던 것만으로 안쪽에 어둠이 고였어. 음식을 삼키면 뱃속에서 그 그림자도 함께 흔들리지. 자네 안에 그런 게 남지 않았을 리가 없어. 자네의 늘 웃는 얼굴은 일종의 마개인가 보군."
"남의 얼굴을 마개라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흥, 지켜보기로 하지. 자네의 어둠이 어느 순간 새어 나오는지."
- 그렇게 말한 자은이었지만 다음날 인곤의 방을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으로 바꿔주게 하였다.
같은 날, 나리향의 시신을 태워 함에 담아두게도 하였다. 그 재를 한동안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겠다고 나리향의 양쪽 가족에게 전했다.
- "설대사, 포악하게 시신을 빼앗고 다닌다면서?"
비파곡의 김노길보가 찾아와 걸터앉자마자 말했다. 지나가던 길에 개들을 보러 온 모양인데 개들은 노길보를 얼마간 반겼지만 인사를 마친 후 바로 인근의 발치에 가 앉았다. 여러 마리를 키우다 보니 한 마리 마다와는 그리 깊은 정을 들이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노길보도 괘씸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사람들이 제가 하고 다니는 일을 그렇게 간추리던가요?"
무도를 넘어서 포악인가, 자은은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바다를 건너 다녀온 설대사는 파리한 안색에 길고 검은 머리를 드리운 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죽은 자의 옷을 벗기고 쿡쿡 쑤시고 뒤집어도 본다고 하던 걸. 그것도 수상한 백제놈, 말갈 놈들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자은은 평판을 바로잡기를 포기 ...
- "열흘쯤 한 끼씩을 헐하게 먹기로 하고, 약간은 줄 수 있겠어."
도은이 앞장서 창고로 갔다. 이윽고 꺼내준 양은 자은의 바람보다 훨씬 너그러운 양이었다. 앞뒤 사정을 아는 도은의 혜량이었다. 자은은 고마움을 표했고, 호은은 억울함을 표했다.
"너, 자은에게만 후한 까닭이 무엇이냐? 동기간에 이렇게 대하는 게 차이가 있어서 쓰겠느냐?"
하지 말지, 하면 안 되지, 하고 인곤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 모르면 오라비는 이치를 하나도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이치를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집안을 대표하여 나다니는가?"
도은이 호랑이처럼 부르짖었다. 울림통도 크지 않으면서 감탄할 만한 성량을 내었다.
"이치라니... 이게 그런 말까지 나올 일인가? 내가, 이치를...?”
호은이 중얼거리고는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 다음날 해질녘, 김노길보가 이끄는 대로 서라벌 외곽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길은 비고 등불은 띄엄띄엄해졌다. 눈에 띄는 칼은 집에 두고, 흔한 물건을 허리에 찼다. 자은은 걸음도 숨도 편해지는 걸 느꼈다. 아무도 아닌, 어디에도 ...
- 자은은 머릿속으로 놀이의 방법들을 되새겼다. 쌍륙은 열다섯 개의 말을 주사위 두 개로 움직이고, 저포는 말이 여섯 개에 주사위가 다섯 개였다. 바둑을 두면 한 상대를 깊이 알기에는 마땅하겠지만 시간이 길게 들지 않을까 했다. 편을 먹고 하는 놀이에 슬쩍 끼어드는 게 한 번에 여러 사람을 알기 좋으리라 어림하였다.
- 도착한 방은 평범한 민가 여럿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전체가 노름장이었다. 창으로 어른거리는 사람 그림자들과 새어 나오는 탄성, 작은 나무 말들의 잘그락거림 때문에 아무리 위장을 했다 해도 알려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니 금성을 관장하는 이들이 알면서도 묵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쥐 잡듯이 잡으면 엉뚱한 곳에 숨어 도사릴 테니 두고 지켜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
노길보가 묻지 않았는데도 설명해 주었다. 세 사람은 처음엔 같이 들어서서 노길보의 소개로 자리를 잡았고, 이내 여러 판을 거치며 한 사람씩 흩어져갔다. 세 놀이 중에 자은의 성미에 가장 잘 맞는 것은 쌍륙이었다. 다른 이들이 자은의 손을 지나치게 자세히 보는 게 싫어 소매를 끌어내린 채로 주사위를 굴렸다. 다행히 아무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고, 자은이 죽은 말을 기가 막히게 다시 움직이는 것에 감탄해 여기저기서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 바깥바람을 쐬니 살 것 같았다.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밤새워 책을 읽는 자은이었지만, 그렇게 자지 않는 것과는 다른 피로함이 있었다. 피로해서 노름꾼은 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즐거울 줄 알았는데 즐겁지 않았다. 이기고 있을 때조차 지지부진하게 느껴져, 조악하게 깎은 나무토막들에 온 정신을 싣는 쪽들이 신기했다. 호은과 달라 다행이었다. 발만 살짝 담가본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었지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 아까의 눈짓을 잘 해석한 게 맞나 싶을 때쯤 노길보가 나왔다. 말도 없이 쭉 걷기 시작해 얼른 따라 걸었다.
"오늘 보니, 판이 작아졌어."
다른 누가 들을 수 없는 곳까지 가서 노길보가 말했다.
"죄 신라인들밖에 없던데요?"
인곤이 더한 말에 자은은 놀랐다.
"진짜?"
"억양을 들으면 알지. 다들 노력해도 완벽히 숨기기는 어려우니. 같은 신라인들은 몰라. 떠나 흘러든 이들끼리는 바로 알아채는 것을."
노길보가 밤에 만난 얼굴들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는 듯 찌푸렸다.
"그 말이 맞군. 알던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어."
- 딱히 뭘 쏘지는 않고 자은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자은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다. 그저 자은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으로 부른 것인지, 낮에 앞당겨 부름으로써 재촉의 뜻을 전하려는 것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 햇빛 아래에서 왕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 밤이거나, 밤이 아니어도 전각의 안쪽 해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자은은 저도 모르게 왕을 평소보다 길게 살폈다. 해 아래에서는 사람 같지 않음이 덜한가? 얼굴에, 손에 난 작은 흠집들이 왕을 사람답게 하는가?
"왜, 너도 쏴보고 싶으냐?"
왕이 자은의 눈길을 오해하고 무릎에 기대두었던 활을 내밀었다. 기껏 시위부를 보내 무예를 익히게 했는데 형편없이 활줄을 당기지도 못하면 낭패였다. 자은은 종일 먹은 것을 전부 쓸 셈으로 힘껏 당겼다. 화살은 부끄럽지는 않은 수준으로 날아가 나무 둥치에 얕게 꽂혔다. 시종 하나가 화살을 거두러 뛰어갔다.
"가벼운 활을 주면 제법 쏘겠구나. 금성의 가장 그림자 진 곳에서 너를 보았다 하기에, 성한가 확인하고자 해가 지기 전에 불렀다."
누가 본 것일까. 자은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곳에 왕의 눈이 있음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자가 자은의 얼굴을 안다는 것은 얼마간 거슬렸지만.
- "일의 처음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맡기시면 엉뚱한 자를 베고 끝이 났다 아뢸 것이옵니다. 제게 그대로 맡겨주시면 베어 마땅한 자를 찾아내 베겠습니다."
"네가 베지 못할까 물은 것이 아니다."
자은은 왕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 고개를 들었다.
"흰 매를 굳이 웅덩이 같은 곳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 싶어 물은 것이지."
고고한 일만을 맡을 생각은 없었다. 자은은 허리에 찬 검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매의 깃털은 진창에 닿아도 쉬이 젖지 않더이다. 이대로 맡겨주시지요."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에게 손짓해 자은에게 음식을 내주게 했다. 자은은 왕이 말을 시키면 언제든 말할 수 있도록 조금씩 베어 씹었다.
"치워야 할까? 네 보기엔 어떻더냐?"
- 비슷한 나이대와 벌어진 어깨들로 보아 황금서당 소속이 맞긴 한 것 같았다. 두어 판쯤 진행되었을 때, 말이 잡히고 궁지에 몰리자 인곤이 탄식하며 심한 백제 억양을 썼다. 자은으로서도 인곤이 그러는 걸 처음 들어보았는데, 어렸을 때 떠난 것치고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인곤이 북쪽 억양을 간파한 것처럼 북쪽에서 온 이들도 인곤의 서쪽 억양을 바로 알았다.
- "그쪽은 겁도 안 나나보오?"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 겁내야 하오?"
인곤이 되묻자, 자기들끼리 웃었다.
"백금서당인가? 청금서당이면 당연 알 텐데."
괜히 꾸며냈다가 말이 맞지 않으면 안 되니 인곤은 아둔하고 흐린 표정을 짓는 데 그쳤다. 앞으로 인곤이 저런 표정을 할 때 조심해야겠군. 지켜보던 자은은 생각했다.
- "그물에 걸린 자가 기껍기까지 하겠는가?"
인곤은 자은의 말이 우습다는 듯 답했다.
"기껍지도 않건만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속이 궁금해. 지긋하다면 그만두면 될 일 아닌가? 달리 갈 곳이 없어서일까?"
"갈 곳이야 많겠지, 이 크고 훤한 금성에."
"그러면은?"
"가만 눈감고 있는 걸 도무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거야. 발을 다 써버리고 망쳐야 다시 낮을 살 수 있는 이들이."
- "밤을 못쓰게 망쳐야 낮을 살 수 있다?"
자은은 인곤의 말을 따라 했다.
"혼자 깨어 있으면, 잠의 옷자락 아래 기어들지 못하면... 쫓기는 마음이 들지 않나? 그러니 비슷하게 눈이 벌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밤을 새우는 거지. 잊을 수 있으니까, 쫓기고 있다는 걸."
"무엇에 쫓기나?"
"지난날의 과오에 쫓기는 자가 많을 테고, 오지 않은 날들에 쫓기는 자도 더러 있을 테지. 어느 쪽인지만 명확히 알아도 덜 쫓길 텐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긍휼히 여기게 쫓기다 사로잡힌 자들을."
"자네는 어떻게 그 속내를 아나?"
"어른 없는 어린아이가 먹고살려면 밤의 심부름꾼이 될 때가 있으니 아네. 밤 심부름꾼이 살아남으려면 사람의 무늬를 알아봐야 하고. 어느 바다 어느 땅에 가도 반복되는 무늬가 있다네."
"사람은 내가 더 잘 간파하는 줄 알았는데."
자은은 인곤을 점점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웃는 얼굴의 식객, 바람에 팔락거리는 백양나무 잎처럼 간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 "자네야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채는 거고 나는 그걸 못하니 닮은 사람들을 이리저리 묶어보는 거지."
인곤의 대답은 진심을 감추는 대답이었다. 인곤 역시 쫓겨봤기에 아는 것이리라. 따지고 보면 자은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장안에서, 배 위에서 쫓기는 마음이었다. 자은은 놀이패를 쥐지 않고 책 위에 엎드렸지만, 발 한쪽 정도는 밤을 망치는 자들의 영역에 두었을지 모른다.
- 둘 사이 잠시 말이 잦아들었다. 자은이 흘끗, 바둑 판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김노길보님의 무늬는 어떠한가?"
아아. 하고 인곤이 팔짱 낀 몸을 젖혔다.
"노길보님은... 세상을 버린 것인지, 세상을 탐내는 것인지 모르겠어. 둘 중 하나이지 싶은데."
"당연히 버린 것이겠지."
자은은 인곤이 되도 않는 말을 한다고 일축했다.
"의외로 두 부류는 분간이 어려워서. 무늬가 겹치지."
- 자은은 얽힌 일을 망치지 않고 풀어내 밤에 깨어 있는 자들과 멀어지고 싶었다. 복잡하게 뭉개진 무늬를 지니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은을 비웃기라도 하듯 멀리, 지나치게 낮게 뜬 별처럼 붉은빛이 보인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 걸마지가 설마 잊은 건가 하고 황당히 자은을 보았다. 표정의 변화가 크지는 않았으나 읽을 수 있었다. 윗사람을 의심할 때의 눈빛, 저 눈빛을 하지도 들키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자은이었다.
"누군지는 알겠는데, 내가 그자를 잡아오라고 했던가?"
"저희가 잡은 건 아닙니다."
걸마지의 대답이 짧았다. 더 설명을 해야지 거기서 멈추면 어쩌란 말인가, 자은이 걸마지를 물끄러미 보았다. 걸마지가 잠깐 정리하는가 싶더니 다시 말했다.
-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손 쳐도 우리를 그렇게까지 바짝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등뼈라곤 없는 백제 잔민 놈들 같으니! 신라에 대한 충성을 그딴 식으로 증명하겠다고 지레 나서는 꼴이 치가 떨리게 싫었습니다."
"그래도... 시킨 자들이 더 싫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인곤이 우숙에게 물었다.
"이긴 자들이 기고만장한 것보다, 진 자들이 비겁한 게 왜 더 싫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닮은 처지라서 그랬을지도요. 우는 애들을 그렇게 밤새 괴롭히다 죽일 필요는 정말이지 없었 ... "
- 자은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았다. 자은은 인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의 신라에서는 모두가 모두를 덩어리로 보지. 구려인은 구려인, 백제인은 백제인, 말갈인은 말갈인. 덩어리들끼리는 또 결코 하나로 뭉쳐지지 않네. 만약 내가 전쟁에서 사로잡혀, 항복하여 신라에 복속되었더라면 나 역시 나일 수 없었을 거야. 감시받는 덩어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겠지."
"감시라니. 감시까지는 아니지."
자은은 저도 모르게 신라의 변명을 했다.
"감시가 아니라면, 왜 서당들은 그런 식으로 나뉘었나? 바깥에서 온 자들이 이제 다 신라인이라면 흩어서 골고루 넣었어야 하지 않나? 옷깃의 색깔을 달리 한 것은, 구분 짓기 위해서 아닌가? 그 구분으로 인해 신라에서 태어난 이들조차 여전히 말갈인이기에 우리에 갇혀 죽임 당한 것 아니겠는가?"
- "신라인만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또 없을 텐데, 진정 사라질까?"
인곤이 재미있다는 듯 자은을 바라보았다.
"백제가 이겼다면, 이것과 달랐을 것 같나?"
가르고 또 가르는 습성이 신라의 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자은이 물었다.
- "그걸 알기에 나는 백제를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군. 내가 신라에 복속된 게 아니라 자네에게 복속된 게 다행일 뿐이지."
얼핏 다정한 듯도 들리지만, 자은은 복속이란 말이 거슬렸다.
"식객도 객이네. 자넨 언제까지고 나의 손님이니 복속된 처지로 여기지 말아 주게."
"아니야, 나의 처지엔 기꺼움이 있어."
인곤이 평소처럼 웃어서 안심이었지만, 그 기꺼움은 자은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잠시 멈춰 이해해보고 싶었으나 두 사람은 곧 사면될 청금서당 병사들을 미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신속히 옮겨야만 했다.
- "사면이라 하지 않았나?"
인곤이 물었다.
"... 중한 죄를 지은 이들은 제외하고."
"그 제외를 자네와 높은 분이 영 달리 해석한 듯하군."
흉악한 자들은 거리에 풀지 말아 달란 요청은 여러모로 해석될 수 있었다. 왕은 이 김에 옥을 한꺼번에 비워야겠다고 마음먹었으리라.
- "보관해 두었어. 식구들의 재를."
병사는 불탄 곳을 보았다가 다시 자은을 올려다보았다. 재가 저기 있지 않느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자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따로 온전히 담아두었다."
그래도 자은의 말이 병사에게 닿지 않는 듯했다. 물바가지를 들고 온 인곤이 웅크린 자세로 병사에게 다가갔다. 일단 물을 먹이며 자은은 잘 모르는 말로 그를 달랬다. 어감으로 보아 천천히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라는 뜻 같았다. 백제에서 쓰던 말이었을 테고, 새삼 다른 나라였구나 싶었다.
물을 다 마신 병사가 울기 시작했다. 이번엔 눈물이 흘렀다. 삼킨 물이 얼마 만에 눈물이 되는지 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위에서 열넷이라, 합당히 골랐구나. 나머지는?"
"옥이 비었으니 가두어 뉘우치게 하십시오."
그러마고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골랐으니 네가 베어라."
뒤에서 인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자은은 각오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왕이 단을 더 내려와 가장 아랫단에 섰다. 가까이 보기 위함이었다.
- "신라의 군인과 백성을 죽인 죄. 금성을 불태운 죄. 국고를 도둑질한 죄. 삼한일통을 부정한 죄. 그 죄들의 대가로 목숨을 거두겠다."
자은의 선고는 비명에 가렸지만 그래도 빠뜨릴 수 없었다. 소매를 걷고 칼을 뽑았다. 흐린 날에도 빛을 잃지 않는 게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자루가 손바닥에 붙을 만큼 감겼고 매의 부리가 손목 위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을 미리 베어본들 사람을 베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기에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았었다. 시위부의 수많은 손이 한 명씩을 잡아 고정시킨 채였는데도, 실제로 휘두르고 긋자 그려본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비명을 지르는 목구멍들. 자은은 그 목구멍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을 알았다. 오만하고 잔혹했던 죄인들을 쫓고 골라내 벤 것에 후회는 없다 해도 틀린 것을 베지 않았음에도.
- "그 꼴로 돌아갈 셈이냐? 옷을 갈아입고 가라."
왕과 함께 조원전에서 멀지 않은 전각으로 갔다. 새 옷뿐 아니라 목욕통에 더운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앞에 망연히 서자 네 방향의 발이 내려왔다. 낯선 곳에서 옷을 벗는 일이 비할 데 없는 두려움이었는데, 어느새 그 정도의 두려움에는 무뎌졌는지 자은은 떨지 않고 씻었다. 새 옷의 비단은 지금껏 자은이 입어본 적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칼이 자은에게 꼭 맞았던 것처럼 옷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뿐히 떠오르는 바람에 구름을 입은 것 같아서 입은 것 같지가 않았다.
- 발을 도로 올렸을 때 왕이 손을 내밀었다.
"예?"
"손바닥을 보자."
자은이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올렸다. 닿을 때는 찼는데 곧 열기가 느껴졌다.
"베이지 않았구나. 용하다."
왕은 다른 이가 베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베는 것까지가 자은의 소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베게 한 것은 왕의 힘이 자은을 통해 흐른다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서였고, 자은도 그 뜻을 읽었기에 수행했다.
"다음 열닷새는 쉬어도 좋다."
"그렇다면 지금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 병약한 집안이니 며칠 앓다 죽었다고 하고 재차 가짜 장례를 치르면 안 될까? 집안에 여자 한 사람이 느는 것 정도는 그럭저럭 꾸며낼 수 있을 듯한데, 그 무서운 왕은 시신을 보자고 하려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도 뎅겅 뎅겅 멸족시켜 버리는 왕이었다. 역시 이쪽에서 다른 뜻을 품기보다는 왕이 다른 자에게 눈이 팔려 자은을 잊기를 바라는 편이 나았다. 수족으로 부릴 재주 있는 자야 이 대단한 금성에 한둘이겠는가? 적당히 하고 놓아주소서, 피비린내가 아닌 먹비린내의 세계로 돌려보내주소서, 그리되게끔 만사가 맞물리게 해 주소서, 도은의 소원은 묘한 것이었다.
- "무엇을 그리 간절히 비셨나요?"
탑돌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산아에게로 가니 산아가 물어왔다.
"소박한 소원이었지만 금방 이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은이 웃을 듯 말 듯하며 답했다. 산아는 자세히 묻지 않고 작은
상에 놓인 다과를 권했다. 절에 시주하고 적은 양을 남겨둔 모양이었다. 무슨 꿀을 썼는지 향기롭게 달아서, 도은은 하나쯤 자은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졌다. 단것이라면 그래도 좀 넘기는 자은이었다. 문득 산아가 도은을 불러 앉힌 것도 자은의 안부를 묻고 싶어서가 아닐지 짐작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으려나 고민이 되었다. 산아에게 먼저 묻게 할 수는 없었다.
- "권세가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오라비는요."
푸념의 형태를 택했다. 산아를 보지 않고,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던지듯 말했다.
"아, 요새 대사님이 고되신가요?"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허우적대는데, 옆에서 보기 딱해요."
산아가 잠시 회답이 없어, 그저 잘 지낸다고 할 걸 그랬나 하고 도은은 산아를 살폈다.
- "그렇지만 권세가 지나치게 입맛에 맞는 이에게 주어지는 일만큼 무서운 일도 잘 없지요."
가볍게 웃는 산아의 옆모습이 그림 같아 도은은 눈길을 빼앗겼다. 이 사람 곁에서 온전히 사고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잠깐 머리를 흔들었다. 산아의 답에는 신경 쓰이는 데가 있었다. 혹 산아의 남편 쪽이 권세를 멋대로 부리는 자가 아닐지?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인곤이 다쳤을 때와 연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고는 얼마 전에 뻔뻔스럽게 자은을 위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는데, 자은은 거의 도망치다시피 돌아왔다. 자세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쾌한 환영회였던 모양이었다. 도은은 걱정할 만한 일들에 대해서는 반쯤 털어놓다마는 자은이 마땅찮았다.
- "그에 따른 되갚음이라면 몸값을 요구하기는커녕 백주대로에서 곧바로 자은을 찌르는 형태였을 터..."
"아니, 지금 그걸 위로라고?"
도은은 인곤을 뜨악해하며 바라보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 식객도 아주 옳은 정신은 아니었지, 하고 눈을 희게 뜨고 말았다.
"말이 좀 잘못 나온 듯한데, 최악의 자들에게 잡혀간 것은 아닐 거란 뜻이었습니다."
"알았으니, 맡은 일을 잘 마치고 돌아오십시오."
도은은 인곤을 배웅하곤 한숨을 쉬었다.
- "노길보님은 단출히 다니시다가 험한 일을 안 만나십니까?"
"나나 잘하라고?"
짐짓 버럭 하는 데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젊었을 땐 지금처럼 다닐 수 없었지. 금성이 부글부글하고 차후가 어찌 될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럴 땐 나 같은 자 등에도 눈들이 다글다글 달려 있었네. 그 매일같이 징그럽던 날들이 끝나서 청적하군. 이제 아무도 나를 개의하지 않고, 나 역시 당장 흙 위에 엎어져도 후회 없을 나이지. 그렇지만 자네는 아직 엎어져 죽기에 이르지 않나?"
비록 자은이 삶에 발톱을 세게 박아 넣고 매달리는 편은 아니라 해도, 흙에 덮이고픈 마음 또한 없었다. 자은은 노길보의 충고를 진중히 새기기로 하고 끝으로 한동안 궁금했던 것을 슬쩍 물었다. 노길보의 입 옆, 웃음 주름처럼 보이는 칼자국에 대해서.
- 자은이 기대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형제들이 얼마나 덕이 있는 사람들인지 칭송하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기에 더욱 그랬다. 괜한 것을 물었다는 후회에 씁쓸히 노길보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렸다. 노길보가 산어귀에 홀로 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 "번잡한 거리에 눈에 띄지 않게 섞여 들고 싶었습니다."
"옷차림도 수수하군. 어떤 지위에 이르렀는데 애써 수수하게 다니는 것도 난 일종의 오만이라고 여기네. 혹은 기만이라고 말이지."
노길보는 웃으며 허를 찌를 줄 아는 이였다.
"거짓되게 수수히 다니지는 않겠습니다."
"자네는 신라에 몇 남지 않을 참된 칼의 주인이니 그 명성을, 악명까지 감당하게나."
악명이란 말에 자은이 흐리게 신음하자 노길보가 마지막으로 잔을 채워주었다.
- "점성이 좀 다릅니다. 뭐가 섞였지? 아무래도 납인 것 같은데요."
"점착성을 높인 연분이군요. 쌀가루는 금방 지워지고 마니까요."
산아가 알려주었다.
"귀한 물건이지요?"
자은이 미은으로 주어진 삶을 살았더라면 잘 알았을 영역이지만, 이제는 뭇 남자들이나 다름없어 확인해야 했다.
"예, 귀한 물건입니다."
- "도은이 너는?”
"얼굴에 바를 쌀가루가 있으면 점점 늘어나는 군식구나 먹여야겠지."
도은이 대답했고, 인곤이 '그 질문에 답이 이리 튀다니?' 하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 자은은 여전히 석연치 않아 하며 돌을 내려다보았다.
- "데려가 그린 게 호은 오라비인 걸 깨닫고 거듭 수를 꾸미면 어쩌려고?"
도은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럴 틈을 주지 말아야겠지."
자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김노길보의 충고처럼 세 명이 아니라 서른 명을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뿐한 발걸음으로 좁은 길을 누빌 수 있었던 날들이 끝났다는 것을, 자은은 삽삽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 더하여 태자 책봉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늦어지고 있었다. 왕의 심중은 알 길이 없었고 말들이 무성했다.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여러 시름을 안고 계시겠지만 그렇다고 나 같은 것을 굳이 확인해야 했나?"
자은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없을 것도 같았다. 그 말에 도은이 어둠 속에서 웃었다. 그 웃는 표정이 전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져 자은은 놀랐다.
"총애를 받고 있고, 총애의 상징을 매일 들고 금성을 누비는데 신경 쓰이시겠지."
"내 칼을 말하는 거야?"
"호은 오라비가 한번 차보고 싶어 할 만큼 굉장한 물건이잖아. 누가 만들었겠어? 왕실의 장인들 여럿이 여러 날에 걸쳐 만들었을 테니 왕후께서는 그 칼이 만들어질 때부터 설자은의 존재를 알고 계셨다고 봐야 해. 게다가 최근에 옷까지 하사 받았잖아? 그건 또 누가 짰겠어? 왕실 장인들이지."
"거듭 주목을 끌고 말았나... 그런데 내가 여인인 것을 어찌 아셨을까?"
그 말에는 도은이 고개를 저었다.
"여인이든 아니든 옷은 벗기셨을걸. 얼굴도 몸도 탐할 만한지 확인하신 걸 거야."
- 대수롭지 않게 위험한 말을 하는 도은 때문에 자은의 귀가 뜨거워졌다. 도은은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그 밤에 내가 사자춤을 보다가 깨달았는데, 신라 사람들은 탐할 만하다면 뭐가 달렸든 개의치 않고 어우렁우렁 몸을 맞대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사자춤? 그러고 보니 산아님이 사자를 언급하며 네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라 하셨다."
"아아."
도은은 한숨을 쉬었다.
"그 이야기는 물론이고 원래의 자은 오라비와 산아님이 어떻게 만나 가까워졌는지도 들려줄게. 하나도 모르지? 내가 들었어."
- 계절이 바뀌고 나서 왕후가 하사품을 내리는 집안 목록에 자은의 집안이 처음으로 들었다. 몸값으로 가져다 바친 것을 크게 상회할 만큼 풍족한 양이 도착했으므로, 설호은의 풍채가 그다지 경계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범주에 들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었다. 역시 호은은 모르는 게 나았다.
- 자은은 서란전과의 일을 몇 번인가 왕에게 고할까 고민했지만 하지 않았다. 왕이 알고 있으면서 내비치지 않았다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 테고, 모르고 있다면 굳이 알릴 필요 없을 듯했다. 거미 두 마리가 겹쳐 친 거미줄에 굳이 걸려들고프지 않았다. 고하지 않았던 게 드러나면 경찰 일인지 따져보았지만 모진 일을 겪은 것은 이쪽이니만큼 괜찮지 싶었다. 대신 월성에 들 때 서란전을 크게 둘러 가려 노력했고, 낡아 호은이 입지 않는 관복을 부러 입었으며, 흰 매가 새겨진 칼이 보통의 물건처럼 보이도록 수수한 천을 감았다.
- 왕의 눈길이 몇 번 가려진 매에 머물더니 결국 물어온 것은 겨울이 깊었을 때였다.
"칼을 가리고 다니는 연유라도 있는가?"
"그저 손이 시려서입니다."
"더운 계절에도 마찬가지던데?"
왕의 날카로움을 얕본 탓에 말이 막혔다.
"쓰이기 좋아 쓰이는 자일뿐인데 총애를 받는다는 오해가 있어 눈에 띄는 부분이라도 누그러뜨리면 어떨까 했습니다."
총애라고 말하고 나니 민망했다. 한결 밋밋한 표현을 찾았어야 했는데 늦었다. 왕의 눈이 슬쩍 커졌다 가늘어졌다. 그 눈가에 웃음기가 두드러졌다.
"너는 지금 나의 총애가 문제가 아닐 텐데?"
- "그것 또한 오해입니다. 오해 다음 오해로 첨벙첨벙 걸어가는 형국입니다."
"오룡을 불러다 너를 죽이지는 말라 타이를까?"
그래주십사 하는 마음과 자존심이 안쪽에서 싸워 후자가 이겼다. 자은은 알아서 해결하겠노라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진오룡이 도리를 티끌만큼이라도 아는 자라면 산아와 파경을 맞은 울분을 자은에게 풀지는 않을 것이다.
- "부인, 기와의 질이 영 눈에 차지 않습니다."
목인곤이 내내 안절부절하다가 집 짓기에 난입한 것은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은은 식객의 눈치 없음에 한탄했다.
"기가 막힌 녹회빛이 나왔어. 기와의 빛을 두고는 각자 높이 치는 빛이 다르지만, 나는 역시 녹회빛이 좋아."
"그럼 우리 집은 다음번엔 구려인들처럼 붉은 기와를 써야겠군."
"뭐? 진심은 아니지?"
물론 그런 튀는 행각이 가능할 리 없었다. 자은은 산아를 닮아 우아한 산아의 집이 두 계절에 걸쳐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종국에는 산아의 방이 자은의 방과 마주 보는 위치에 놓인 데다 두 방 사이에 아주 낮은 담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건 넘으라는 담이네."
도은이 제 허리도 겨우 오는 담에 기대어 말했다.
"늦기 전에, 늦은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 "가장 빠른 말들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만큼 주마."
그 말에 자은은 멈칫했다.
"많은 말을 먹일 수 없으니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일이 끝나고 준마들이 덩그러니 남아서는 곤란해 확실히 해두어야 했다. 왕이 웃었다.
"다 너처럼만 내게 가리지 않고 말한다면 고심할 일들이 반은 날아갈 텐데 말이다."
신하들이 솔직하길 원했으면 목을 덜 잘랐어야 했던 게 아닌가, 자은은 품은 의문을 들키지 않으려 눈을 내리감았다.
- 설씨 친척이 금성을 떠나기 전날, 자은은 도은과 함께 여자 옷을 입고 그 집으로 향했다. 호위를 맡은 걸마지가 떨떠름함을 숨기지 않았다.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냥 말하도록."
자은이 걸마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 치마가 너무 짧습니다."
정확한 지적인 것이 자꾸 발목이 보였다. 자은의 키가 큰 편이라 딱 맞출 수는 없었다.
"짧은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걸 신경 쓰시지 않는 걸음걸이가 문젭니다. 제 미련한 눈에도 여자의 걸음걸이로 안 보이니 들킬까 우려됩니다."
뭘 들킨단 말인가? 까볼 테면 까보라지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자은은 부하의 충고를 받아들여 치마 허리를 내릴 수 있는 데까지 내렸다.
- "형편없군. 아무도 믿지 않겠어.”
"예?"
자은은 집안 어른의 평가에 당황했다.
"눈빛이 너무 맞서는 눈빛이지 않나? 마주쳤을 때 미끄러지는 맛이 있어야 여자지. 얼굴은 죽은 자네 누이들을 합쳐둔 것 같지만 눈이 틀렸어. 아이고, 이를 어쩌나, 속으면 바보일 거야. 멀리서는 몰라도 가까이서 보면 이거 사내놈이네, 알아채고 칼을 뽑을 걸?"
걸음걸이 다음은 눈빛으로 타박인가? 한숨이 나왔다. 도은이 옆에서 입술을 물었다가 아예 돌아섰다. 머리가 아픈 듯 문질렀지만 웃음을 참는 것일 터였다.
- 자은은 먹은 것이 올라와 목구멍이 따가웠다. 비파곡의 까마귀, 서라벌 토박이라면 모를 리 없는 얼굴과 유난한 곱슬머리, 입가의 흉터.
- "지금 비파곡으로 가시겠습니까?"
걸마달이 물었다.
"아니, 김노길보님이 금성을 벗어나면 쫓아 움직인다. 절대 들키지 말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도록."
자은의 명에 걸마달이 고개를 끄덕이자 턱을 타고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몸을 말리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뛰쳐나가는 걸마달을 불러 세우려다 말았다. 닦고 말려도 어차피 젖을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 거기 선 자은을 보고 노길보가 놀랐더라면 안도했을 것이었다. 노길보는 털끝만큼도 놀라지 않았다. 닥칠 일이 닥쳤다는 것을 아는 자세여서 자은은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달려들어 밀고 때리고 울며 매달리고 싶었다. 옳고 싶지 않았는데 옳아버려 비통했다.
- "인사를 채 못하고 금성을 떠나왔네. 도리 없었군."
굳어 있던 자은을 대신해 노길보가 입을 열었다.
- "우연히 그리되었습니까, 노리고 쫓았습니까?"
"그게 왜 궁금한가? 무슨 차이가 있다고."
"궁금해하는 것이 제 일이라서요."
노길보가 자은을 볼 때 여전히 아끼는 눈빛이어서 자은은 견딜 수 없었다.
"같은 사슴을 쫓다 마주쳤는데 사냥 오두막으로 초대하더군. 그때까지는 죽일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그 오두막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 잔뜩 있지 무언가?"
- "틀렸어. 설자은, 일부러 틀리게 말하는 수는 내게 통하지 않아."
노길보가 고개를 들어 자은을 똑바로 응시했다.
- 그 집에서 돌아 나올 때 인곤이 망설이다 물어왔다.
"자은, 자네는 왕을 믿지 않는 건가? 왕이 여인들과 아기들을 다 죽이리라 여기는 건가? 왕이 그럴 분인가?”
"나의 왕이 어떤 분인지는 중요하지 않네. 어느 왕이든 균열의 싹이라면 여인들과 아기들을 죽여. 읽을 만큼 읽은 나는 고래로부터 그래왔음을 아네. 왕을 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지. 왕이 입을 열어 죽이라 하지 않아도 왕의 이름으로 긴 팔이 뻗어 나와 여기까지 미칠 테야. 그러니 우리는 구할 수 있는 대로 뼈를 구해 다른 소경들에도 가야 해. 늦지 않게 신속히."
- 인곤은 자은의 말을 소화해 냈다.
"내가 하지. 자네는 금성으로 돌아가게. 자네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찌 보면 산적질보다도 왕경을 거스르는 일일 텐데 날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겠나?"
그 의견이 맞았다. 자은은 금성을 오래 비울 수 없었다.
자은은 자신의 짙은 그림자가 되려는 인곤에게 쉽게 표현하지 못할 안쓰러움을 느꼈다.
"자넬 위해서가 아닌걸.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은 여인들을 위해서야. 나 보이는 것보다 여인들을 아주 좋아하네."
인곤이 싱글거렸다.
- 자은은 인곤이 찾아온 비늘 잔들을 산산이 부수어 남천에 버렸다. 물빛에 유리가 곧바로 가렸다.
- 김노길보는 삼십구 일의 심문을 버텼다. 단 하나의 이름도 대지 않았다. 자은은 김노길보를 왕경까지 압송한 후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피하려 해도 노길보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왕이 자은을 부른 것은 노길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고 난 후였다.
- "제가 이자의 마음을 돌려보겠습니다."
자은은 노길보에게서 진실을 얻고 싶은지 노길보를 며칠 더 살게 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아니다. 베어라. 네가 잡았으니 네가 베도록 아껴두었다."
왕이 영광을 내린다는 듯 명했기에 자은은 세상이 높이 두는 영광과 자신이 원하는 영광이 어찌 그리 다른지 비탄하였다. 이미 한번 겨눈 적 있는 칼을 꺼냈다. 혼에도 굳은살이 잔뜩 덮인 듯하였다. 모든 것을 느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는지 덜 느끼도록 없던 층이 자라났다.
칼을 치켜든 자은은 노길보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지켜보는 눈들이 지켜보게 두면서.
- 자은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소리였고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울 뻔했다.
- 역시 노길보에게만 들리게 답했다.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자은을 위해주었던 사람, 자은이 따르고 싶었던 사람, 처음부터 어쩐지 좋았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겁탈자의 무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은은 받아들였다. 어그러짐을, 오염을, 곤죽이 되고 범벅이 된 온갖 것들을 평정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날뛰는 것들을 삼키고도 태연함을 내보이는 법을 배웠다.
작가의 말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책을 실컷 읽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오천 년 역사 중 유난히 마음을 끄는 십여 년을 골라 여러 경로로 통과 중입니다. 어느 시점에 읽기를 멈추고 쓰기 시작해야 할지 가늠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낙이 깃들곤 합니다.
<화마의 고삐>는 구서당(작중 시점에는 팔서당이었습니다만)에 대한 궁금증과 지귀 설화에 느꼈던 매료를 담아 썼습니다. 말갈인들은 한반도 안에 그토록 긴 시간 존재해 왔는데 줄곧 이방인으로 여겨졌고, 서당을 나타내는 색도 하필 불길한 흑적색을 배정받았습니다. 백제인들과 백제 잔민들을 따로 나누었던 점도 그 당시에 대해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복속시킨 병사들이 부담스러웠다면 왜 골고루 흩지 않고 모아두었을지 이제 와서는 알 수 없을 이유를 지어내보았습니다. 법흥왕 때 고래잡이가 금지되었던 사실과 유채의 북방한계선까지 더해져 서랍 속의 소재가 몸집을 키웠습니다. 목인곤의 과거와 선택 모두를 담고도 싶었습니다.
<탑돌이의 밤>은 월성과 남천의 지형을 가벼이 끌어안은 이야기입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앞뒤 편 사이에서 편안한 완충이 되길 바랐습니다. 산아와 원래 자은의 사정이 두 번째 책에 꼭 들어갔으면 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독자분들도 많이 읽어주셔서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진오룡의 진씨 집안은 꾸며낸 부분입니다. 다루는 시기의 상대등이 진복이라는 분이었는데 구십구 퍼센트 김진복이셨겠지만 기록에 성이 누락되어 있어 그 누락을 이용했습니다. 혹 시험을 보시다가 혼란을 느끼실까 소설을 절대 믿지 마시라고 강조해 둡니다.
<용왕의 아들들>은 오소경과 오소경으로 떠났던 사람들을 그려보고자 썼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길을 닦을 때 크기가 다른 자갈과 종류가 다른 점토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패거나 망가지지 않는 단단한 길들이었겠지요. 막 지어진 오소경은 또 얼마나 새롭고 근사했을까요? 설자은과 목인곤이 다섯 곳을 전부 방문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 좋은 일로 보내지는 못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설자은이 시련을 겪게 하고 싶었습니다. 적뿐 아니라 아꼈던 내 편도 벨 수 있어야 설자은이 공소의 영역에 들어섰음이 뚜렷해지리라 믿었습니다.
존재한 적 없는 주인공들의 얼굴이 선명히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의 쌀쌀한 밤공기 같은 것이 슬쩍 스칠 때도요. 책 한 권을 쓰는 동안 몇 초 정도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 몇 초를 위해 계속 쓰지 않나 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그 순간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책에서 뵐 때까지 반듯한 징검돌만 이어 만나시길 바랍니다.
2025년 초입
정세랑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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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로] 신 전래특급 - 너무나 낯익지만 잔혹한 이야기 (1) | 2026.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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