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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5. 2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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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세랑
출판 : 창비
출간 : 25.03.19


       

 

다시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야구나, 야구 비슷한, 야구...-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도 그랬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옥상에서 만나요>를, 배명훈 작가를 만나며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기병과 마법사>의 작가 후기에 <옥상에서 만나요>와 화살편지가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언급된 작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옥상에서 만나요>는 여전히 좋았고, 어디가 개정되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정세랑 작가와 작품이 변한 만큼 나 역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의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전만큼 좋았던 건 <옥상에서 만나요>와 <영원히 77 사이즈>.

새롭게 좋아진 건 <웨딩드레스>와 <알다시피, 은열>.

완전히 잊었던, 그래서 다시 빠져든 건 <이마와 모래>, <이혼 세일>.

 

두 번이나 '처음' 읽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체험이다. -사실 '두 번'이라고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싶다- 

어렴풋하게도 기억나지 않는, 기시감 없는 재회. 

 

정세랑 작가가 후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보늬>, <해피쿠키 이어>, <피프티피플>,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시선으로부터>, <효진>, <웨딩드레스>는 닮아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이라는 조각과 반짝임에 관한 이야기들. 타인에게 이런 관심을 기울일 수 있기에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다른 닮음들도 있다. <알다시피, 은열>과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 한 걸음 떨어져서 쓴다고 해야 할지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쓴다고 해야 할지- 그만의 미묘한 거리감으로 매끄럽게 펼쳐내는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마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져오는 직조 패턴 같기도 한 무늬들- 하지만 직물의 무늬는 읽어내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정세랑이 역사의 조각들에서 읽어내고 보여주는 무늬는 가장 화려하지는 않을지라도 담박하게 아름다워 눈을 떼기 어려운 무늬다.

 

기상천외한데도 극사실주의적인 글들도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 <영원히 77 사이즈>, <목소리를 드릴게요>, 그리고 아마도 -사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발랄하면서도 신랄한.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에게 '어떠어떠하다'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렇게 느꼈다'는 감각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담담하되 건조하지는 않은.

때로 따스하고 때로 서늘하지만 습하거나 고이지는 않은.

제각기 다른 것 같아도 손끝으로 더듬어보면 같은 감촉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정세랑의 글을, 즐겁고 행복하게 다시 읽었다.

그리고 기원한다. 

새로운 <설자은>이 곧 나오기를.     

 

   


   

 

 

- 그 드레스는 2013년 7월, 캐나다데이 세일 기간에 밴쿠버의 작은 창고에서 픽업되어 한국으로 수입되었다. 신인 디자이너의 드레스라 할인 폭이 컸다. 가격표에 붙은 가격은 15000달러, 최종 할인가는 3500달러였다. 사이즈는 4. 하지만 살짝 크게 나온 데다가 끈을 조여가며 조절할 수 있어서 55에서 77까지 입었다. 

- 1.
드레스는 한참을 선택받지 못했다. 화려하지 않은, 기하학적인 선의 드레스였다. 수제 레이스도 비즈나 시퀸도 없어서 마치 종이접기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숍에서 괜히 들여왔나, 하고 후회를 할 즈음 첫 번째 여자가 그 드레스를 골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드레스를 입고 나올 때 특수효과 넣어주잖아요. 갑자기 더 예뻐 보이게. 그거 거짓말인 거 알고 있었지만 정말 아무 효과 없네. 그냥 나네요." 
여자는 화장도 머리도 하지 않고 찾아와서는 아주 건조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까 것 다시 입어보시겠어요?"
"아뇨, 이걸로 정할게요."
"최초로 입으시는 거예요. 아시죠? 드레스 수명은 일곱 번 안팎이 끝인 거."
숍에서 강조했지만 여자는 특별히 인상 깊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 2. 
"세게 조이지 말아 주세요. 쉽게 기절하는 편이라..."
두 번째 여자는 긴장하면 종종 미주신경성 실신을 하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드레스를 볼 때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코르셋 부분이 얼마나 숨 쉬기 편할지를 따졌다. 여자에게 조이는 옷은 도움이 될 리 없었다. 상대적으로 가슴통이 여유 있게 나온 수입 드레스 위주로 찾다가 그 드레스를 골랐다. 그럼에도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 4.

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지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신발을 털어보고 신었다. 하는 수 없이 일부러 야근을 했고, 일찍 퇴근한 날은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잠만 겨우 얕게 잤다. 잠결에도 입을 벌리고 자지 않으려 곤두선 노력을 하면서... 그 큰돈을 들인 집에 들어가기 싫다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지네 독은 별로 독하지도 않다며 해결을 여자에게만 미룬 남자에게도 화가 났다. 그런 상태에서 자잘한 결혼 준비를 혼자서 맡아하다가, 결혼식 이틀 전에 터지고 말았다. 
"지난 한 달 같은 날들이 이어지느니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어."
남자는 그제야 부산스럽게 집의 틈새 몇 군데를 찾아내 막았다. 엉성하게 실리콘을 쏘았다. 여자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해 상한 얼굴로 드레스를 입었다.

- 5.

다섯 번째 여자는 어렸다. 스물세 살이었다. 모든 것은 어른들이 결정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 쪽 집안에서 서둘렀는데 흔히 말하는 '알아주는 집안'이었으므로 여자의 부모는 졸업도 하지 않은 딸의 결혼에 동의했다.
"어리고 깨끗하지."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피부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마음속에서 의문들이 부글거렸지만 아직 표면까지 떠오르진 않았다. 

- 6.
여섯 번째 여자의 목덜미에는 타투가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여 머리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나이트메어 머신'(Nightmare Machine)이라는 장난스러운 문구였는데, 숍에서 시험 삼아 머리를 업스타일로 틀어 올리자 아주 잘 보였다. 여자를 지켜보던 남자 쪽이 돌연 비난을 해 왔다. 
"너는 그거 할 때 결혼할 생각은 하나도 안 했냐? 진짜 보기 싫어. 철들었으면 레이저로 지우든가 했어야지."
스물다섯 살에 한 타투였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원래는 업스타일을 하지 않거나 파운데이션으로 가릴 셈이었지만, 남자의 갑작스러운 짜증에 그 온건한 계획들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내 몸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야. 지금은 너보다 마음에 들거든?"
2주 동안의 팽팽한 신경전 끝, 식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자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돌아보았다. 역시나 멋진 타투였고 드레스와도 잘 어울렸다. 내 몸은 내 거야.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내 몸은 내 거야. 내 마음대로 할 거고 다들 보라고 해.
44명의 여자 중에 가장 멋진 워킹으로 입장했다.

- 8.
여덟 번째 여자는 칼럼니스트였다. 여자는 결혼해서 사는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혼잣말을 했다.
"이제 환멸에 대해서는, 웬만큼 쓸 수 있겠군."

- <웨딩드레스>

 

 

- 냉장고 아래 칸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을 때, 평소 나를 싫어하던 선배가 위 칸을 갑자기 여는 바람에 날카로운 모서리에 찍혀 이마를 다쳤어. 누군가 급히 건넨 냅킨으로 찢어진 부위를 누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어. 조용히 운 것도 아냐. 왈칵 울었어. 서른 명이 복작거리는 주방에서 소리를 죽이지 않고, 겉껍질이 떨어져 나가 속살이 드러난 크루아상처럼 서러웠어. 그날만은 그 선배도 잘해주었지만, 문을 벌컥 여는 행동의 저 바닥에는 분명 적의가 있었다고 생각해. 의식에든 무의식에든 말이야. 금방 떠나버릴 외국인, 무책임한 외국인, 질 나쁜 외국인,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모른 척 웃고 있었으니까. 진짜로 웃지 않는 걸 들켜버려서 더 미움 받았으니까. 

- 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그 나쁜 입자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비슷한 게 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간편한 에어샤워 같은 것.

- 울면서 만든 베리타르트의 맛을 두고 컴플레인이 걸려오진 않았어. 슈거파우더로는 거의 모든 걸 덮을 수 있지. 사람들의 관계의 가장 저열하고 싫은 부분까지도 말이야. 그리고 그날 퇴근하면서 너를 떠올렸어. 내가 다친 이마의 그 부분은 언젠가 네 얼굴에 무지개가 맺혔던 부분.

 

- 내가 너를 떠올릴 때, 항상 너의 옆 이마엔 무지개가 맺혀 있어. 두장의 유리가 맞닿은 틈이 프리즘처럼 무지개를 만들어냈지. 학교 앞의 별로 예쁘지도 않은 카페였는데 유리창이 간간이 그렇게 재주를 부렸어. 관자놀이에 무지개가 있다고 말하자, 너는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옆으로 굴렸어. 마치 그러면 볼 수 있을 것처럼. 그러지 않으면 무지개가 사라지고 말 것처럼.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몇 년 전의 휴대폰 카메라엔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

- 지난번에 통화하다가 너는 말했어. 내가 꼭 네 머릿속에만 있는 인물인 것 같다고. 너도 여기 여러 번 왔고 나도 매년 귀국하고 그저 몇 달 보지 못했을 뿐인데 그런 기분이 든다고 했어. 나도 도쿄도 정말로는 없는 게 아닐까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멋대로 도쿄를 없애지 마, 하며 웃었지.

 

- 그럴 힘도 나지 않았어. 아빠가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빠의 눈에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니란 걸 터득한 지는 꽤 되어서 결국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고, 소환되어 온 오빠가 나 대신 싸웠어. 건성으로 싸웠는데도 아빠를 설득해 냈어. 오빠의 결정적인 한마디는 '남들이 흉본다'였지. 어릴 때 내내 때리고 괴롭혔던 걸 그 설득으로 갚았다 쳤어.

- 집을 떠나면서 나는 명절에도 돌아가지 않는 애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 띄엄띄엄 돌아갈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거기가 내 집이 아니란 것만 확실해졌어. 스무 살 때부터 나의 끝없는 불효가 시작된 셈이야. 입학하자마자 너를 만나서, 너와 같이 살면서 완벽한 파트너까지 얻었지. 내 목표는 두 가지였어. 하나는 서울 최고의 디저트들을 한 번씩 먹는 것. 계절 따라 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가게들을 놓치지 않고 추적해서 대표 메뉴와 숨은 메뉴를 다 먹어보고 기억하겠다고 말이야. 나머지 하나는 아빠가 그렇게 무시하는 타 지역에서 서울로 몰려든, 포장지가 다르고 알맹이가 다른 남자애들을 모조리 만나보는 것이었어. 만나보고 맛보기. 나는 그렇게 팔도 컬렉터가 되었고, 너는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경험 없는 남자애들만 계속 만나서 체리 컬렉터가 되었으니 우린 정말 딱 맞는 ... 

- 그사이 언젠가부터 근이와 나는 헤어져 있더라.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어. 맨홀에 낀 굽을 빼주는 정도의 귀여운 일은 흔히 일어나고, 근이는 좀처럼 집요한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억눌리지도 뒤틀리지도 않은 사람이 집요하기란 쉽지 않아, 그치? 

- 그 면접은 물론 통과하지 못했고, 2년이 더 걸렸구나. 근이가 이마제모를 받고 나서 됐으니까. 나는 약간 좁은 듯한 그 이마도 좋아했는데 평범하게 넓은 이마를 만들고 나서야 근이는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어. 나중에 대머리라도 되면 진짜 아깝겠네, 근이가 전화해서 그렇게 말했을 때 너무 서울말이라서 놀랐어. 고집부리듯 고치지 않던 사투리를 드디어 완벽하게 고친 건데 이상하게 그게 싫었어.

- 늘 바쁘고 피곤해했지만, 성실하고 다정해서 괜찮지 않을까 했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계셨는데 인사를 하러 오라고 해서 어지간히 긴장한 채 찾아갔지. 그 집에 막 들어섰을 때의 풍경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어. 장식대 없이 바닥에 바로 놓인 텔레비전 앞에 개지 않은 요와 이불이 도롱이벌레가 벗어놓고 간 껍질집처럼 놓여 있었거든. 만약 그 이불이 개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가끔 생각해 보는데 그랬을 것 같진 않아. 그 사람 어머니는 완충이 될 만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돈 얘기를 꺼냈거든. 자기가 꼭 받아야 하는 용돈의 액수와 우리가 마련해줘야 하는 주거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꼭 끼는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식탁에 앉아서 자세를 고칠 때마다 의자에서 나는 소리에 불안해했어. 얼마 동안 난방을 하지 않았는지 스타킹을 신은 발이 얼다 못해 아팠어. 정말로 날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아들이 모아둔 돈은 자기 것이라고 확실히 하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 좋은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왜 나 같은 대학원생과 만나는지 모르겠다고 거의 직접적으로 말했어. 곤란한 얘기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옆에서 휴대폰 게임을 했어. 뾰롱뾰로롱 하는 효과음도 줄이지 않고서. 도망쳐야겠다, 돌아와서 혼자 있게 되자마자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왔어.

-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뛰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천천히 헤어졌다고 믿었는데 그 사람에겐 그렇지 않았나 봐. 그 점잖던 사람이 웬 인터넷 사이트에 내 이름과 얼굴을 다 공개하며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홀어머니를 대놓고 무시하면서 도망간 여자라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거든. 가난하기로 치면 내가 더 가난하고 사실 내가 도망친 건 가난보다 좀 더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였는데 나는 무슨 무슨 녀라고 유행하는 비속어들로 요약되어 버렸어. 그 사람은 새벽에 전화해 돌아와 달라고 울면서도 매일매일 글을 올리더라. 욕설이 섞인 게시물과 간절한 전화 사이의 간극이 소름 끼쳤어. 이름이 흔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했지. 일단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를 갔어.

 

- 그러고 보니 그때 종종 이유 없이 토했는데 아무래도 위험했었나. 갑자기 마른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턱 옆에, 귀 아래에 튀어나온 부분이 보이기도 해. 나도 그 부분이 불룩 나왔었는데 토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거 같아서 그런 연예인들은 조금 걱정하게 돼.

- 너는 그 사람을 처음 만나보고 나서 애는 엄청 쓰는데 재미있는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어딘가 열등감이 있을 것 같다고 싫어했는데... 네가 만나본 내 남자친구 중에 제일 싫다던 그 말을 왜 제대로 듣지 않았을까. 하여튼 그땐 추스르기 바빠 너한테도 자세히 못했던 얘기야.

- 처한 상황 전부에 진저리를 치고 있을 즈음 학회에서 만난 일본 교수님이 방문 연구원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해 오셨어. 하루도 고민해보지 않고 가겠다고 했어. 그렇게 효율적인 성격이 아닌데 준비를 어찌나 착착 해나갔던지 몰라. 그런데 그렇게 수월할 리가 없잖아.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시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하던 엄마가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거든. 마지막으로 집에 갔을 때 요즘엔 요양원도 있고 요양보조금이라는 것도 있다며 이러다 엄마가 암이라도 걸리겠다고 대들었다가 아빠한테 뺨을 맞고는 다시 가지 않았었는데, 정말로 암에 걸렸다고 했어. 초기이고 예후도 좋은 종류라 해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자 그다음 말이 가관이었어. 이제 나더러 내려와 집안을 꾸리라는 거야. 어차피 제대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분수에 맞게 해야 한다며 살림을 하고 간병을 하라고 했어. 당연해하고 당당해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끔찍했고, 다 멈추고 내려가기엔 내가 그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어. 똑같이 나와 살아도 오빠는 애틋해하고 나는 원망했던 엄마였으니까 공평하다면 공평한 일이지만. 다음 달에 내려갈게요, 하고는 그다음 주에 비행기를 탔어 두 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하네다공항에서 수화물을 찾으며 내가 느꼈던 안도감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더 멀리 날아갔다면 더 큰 안도감을 느꼈을까.  

- 유학생들 모임에서 제과학교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거야. 나는 계속 떠나고 끊어내고 헤어지는 인간인데 그러면서도 줄곧 좋아해 온 건 단것밖에 없지 않은가 했어. 태어난 곳으로부터, 소속된 모든 집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관계로부터 떠나왔어.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 남보다 못한 가족들과도 어떻게든 연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처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지옥 같은 회사를 개선시키고, 성격이 안 맞는 애인과 다투고 다퉈서는 안정에 다다르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끊임없이 옮겨갔어. 위기의 순간이 오면 핑글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지. 정말은 위기의 순간이 오기도 전에 움직인 걸지도 모르고. 

- 혹시 나의 특징은 도망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타고나게 잘하는 일은 다르잖아. 그게 내 경우에 도주인 거지. 참 잘 벗어나는 사람인 거야. 상황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다치기 전에,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빠져나오는 사람. 타이밍과 속도를 조절해서 탈출하는 사람. 자기 보존에 강하다는 거, 뭐가 나빠?  

- 직접 가지러 갔어도 되었을 텐데, 내가 나가길 기다렸다가 마셔도 되었을 텐데. 그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어. 상처를 주고 싶었던 거라고 봐. 인생은 아주 불행한 거라고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거야. 잔인하고 이상한 어른이었지. 만지지 않았지만 만진 것만큼 나빴어. 보이지 않는 곳에 흔적을 남긴 거야. 나는 그때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것 같아. 예고된 불행으로부터 힘껏 멀리. 움직이는 걸 멈추면 알코올램프보다 더 나쁜 걸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고, 의식의 밑바닥에서 두려워해왔는지도 모르겠어. 

- 어딜 가도 보이는 부분만 달콤할 거라고 생각해. 무지개퀼트로 장식된 가게 안쪽 주방은 스테인리스스틸이지. 마감이 좋지 않은 산업용 냉장고 문으로 이마를 찢는 선배들은 하와이에도 헬싱키에도, 세상 가장 친절한 사람들의 도시라 해도 분명 있을 거라 확신해. 그래도 어떤 휴지기가 필요했어. 타르트 반죽의 휴지기처럼, 사람에게도 그 비슷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 아, 휴지기를 모르는구나. 반죽을 잘 식히지 않으면 구멍이 나.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구멍을 몇 개나 냈는지 셀 수 없어. 단계마다 15분씩 냉장고 ... 

- <효진>



-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는 걸까, 버스가 터널에 들어설 때 입안으로 중얼거렸는데 터널을 벗어날 때쯤 깨달았다. 망했다.
'이야기'라고 말해버린 시점에서 이미 끝나버린 거다. 내 논문은.

- 모든 망한 논문의 시작이 대개 그렇듯이, 그동안 아무도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나만이 포착해 냈다고 믿었다. 징검다리처럼 내 앞에 놓이는 사료들을 믿었고, 엉킨 오색실 같은 운명을 믿었고, 하여간 학자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통째로 다 믿었다. 주변에서 몇 마디 우려의 말들을 해줬던 듯도 한데 전혀 듣지 못했다. 

- 처음의 미세한 스파크는 관계사 세미나를 위해 가왜(假倭)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발견한 한 구절에서 발생했다. 가왜란 고려 말부터 조선에 걸쳐 수탈에 지친 백성들이 거짓으로 일본계 해적인 척하며 약탈과 방화를 저지른 경우를 칭하는 말로, 드문드문 남아 있는 관련 사료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그 한 구절을 맞닥뜨린 것이다.

- [가여운 백성이 산과 바다와 계곡에 모여 거짓으로 왜적이라 칭하니, 한탄할 뿐이다. 이와는 달리 은열(隱熱)과 그 휘하의 무뢰한들은 실제 왜인과 청인들을 끌어들여 서쪽 섬들을 잠식하여 그 위세가 두려울 정도다.] 

『청도문집(淸刀文集)』


- 청천강 하구 박천군 출신 무장 청도 이병연의 문집 일부였는데, 다른 내용을 찾기 위해 건성으로 넘겨보던 차였다. 은열이 누구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저 전근대 시대에 국경을 뛰어넘어 다국적 집단을 이뤘다는 그 무뢰한들에게 흥미를 느꼈을 뿐이었다.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세계시민들에 대한 가벼운 감탄에 가까웠다. 그런데 못 본 척할 수 없는 조각들이 마치 의도를 가진 것처럼 내게 굴러들었고 눈뜨니 두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겨울이 지난 후였다. 모든 취미생활을, 심지어 밴드 연습까지 딱 접었다. 건우 선배가 미친 듯이 전화하고 찾아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수가 없었다. 은열, 나의 은열. 오래전에 죽고 없는 자에 대한 친밀감은 이상할 정도로 밀도가 높아서 머릿속에 음악조차 흐르지 못하고 멈췄던 시기가 있었다. 

- 은열은 고아였다. 그냥 고아가 아니라 홍경래의 난에서 살아남은 고아였다. 고아들을 모아 이끌던 고아였다. 나는 가끔 홍경래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어린 은열을 생각한다. 물론 절대 그랬을 리 없겠지만, 이건 결코 역사적인 상상이 아니지만, 상상 속의 윤곽은 점점 더 세밀해진다. 본 적 없는 것을 본 것처럼 그리는 걸 그칠 수가 없다. 내 머릿속에서, 당시로선 진보적이고 파격적이었던 가치들을 조용히 빨아들이는 소녀가 떠나질 않는다. 그렇다, 소녀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은열은 여성이었던 듯하다. 홍경래의 난이 끝나고 가담자 2983명 중 여자와 아이를 뺀 1917명 전원이 일시에 처형당했다. 그때 은열은 여자였을까, 아이였을까. 정확한 생몰년을 모르니 그 가운데쯤이라고 어림해 버린다. 고아들의 맏언니 과부들의 맏딸. 후에 은열이 섬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은 홍경래가 섬에서 다시 봉기하리라 믿었던 당시 민중의 바람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 간절히 은열에 대해 쓰고 싶지만, 이 논문은 격추당할 것이다. 지도 교수님이 안식년이라 그나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벌써 석사 5학기, 결론은 한 달째 한 줄도 쓰지 못했 ... 

- 뭇 여인들이 창량을 사랑해 그가 지날 때마다 감귤 따위를 던졌는데 중앙로를 지나고 나면 한 수레더라. 오만해진 창량은 창극이 끝날 때마다 다른 여인을 안아 원성이 자자했으나, 원성보다사랑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바깥 바다에서 온 은열이라는 자가 있어, 키가 6척이고 창량보다도 수려하여 더 많은 귤을 받았다. 창량이 전해 듣고 호기심과 분을 이기지 못해 무대에서 내려서자마자 분장도 지우지 않고 은열을 찾아갔는데, 그날 이후 열패를 인정하고 수년 동안 여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 사모하는 공자에게 귤 따위의 작은 열매를 던지는 것은 중국 강남지역의 낭만적인 전통이다. 잘못 맞으면 아야, 하는 망상을 잠깐 하긴 했지만 설마 온 힘을 다해 강속구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은열이 남성으로 그려졌다는 점인데 은열이 집단 내의 우두머리 직책을 이르는 명칭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편의상 남장을 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창량이 "수년 동안 여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라는 기록은 낭만적인 거짓이 된다. 

- 꽤 매력적인 방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여 남경을 자주 분란에 빠뜨렸던 창량은, 은열을 만난 후로 활동반경을 넓히는 동시에 예인으로서 정점에 오르게 된다. 

- 다만 상황에 꼭 맞는 꼭 그 나라 말로만 해야 하는 농담들은 몇 개 알게 되었다.
은열들과 시로들과 창량들도 그렇게 농담을 나눴던 듯하다.

- [창량과 그 무리가 구주에서 강호까지 이르는데, 마을마다 최고의 희언(戱言)으로 후한 대접을 받으니 남아나는 그릇이 없고 길마다 사기 파편이더라. 못하는 노래가 없었고 못하는 나라말이 없었다.]

『구주희언집(九州戱言集)


- 부스러지는 종이 너머로 그들은 즐거워 보인다. 보지 못했으니 보인다고 말하면 안 되지만 즐거워 보인다.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그릇을 한 번만 쓰고 깨버리는 것이 당시 일본의 풍습이었는데, 거의 사신단과 비슷한 접대를 받은 수준이었고 이 시기에는 전문 연희단의 성격이 더 강했을 성싶다. 밤이 새도록 이어지는 노래와 이야기, 횃불 아래의 비단 무대... 그렇게 즐거웠기 때문에, 계속 같이 살자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 그 여정을 끝으로 그들은 정착 생활을 시작한다. 막연히 서도(西島)라고 기록된 그곳은 경작이 가능한 본섬을 포함하여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데, 매화도인 듯도 장산도인 듯도 보길도인 듯도 하고 아니면 아예 다도해 인근일 가능성도 있다. 관군의 탄압이 있기 전까지 6년 반 동안 꾸준한 정착 생활을 영위했는데, 그 기간 동안은 어느 나라 사료에도 그들의 외부 활동에 대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대마도 소가의 문집에 실린 시로의 짧은 글이 길지 않았던 평화를 짐작게 한다. 이상향에 대한 간략한 의견을 적어놓은 글이라 구체적인 생활상은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대충 옮기자면 "윤회의 바퀴가 셀 수 없이 거듭 돌아 본래의 육(肉)과 혼(魂)이 먼지만큼도 남지 않을 세월 속에서 함께 있고 싶은 이들과 하루라도 함께 있다면 그 하루가 극락이다" 정도인데, 만족감이 엿보인달까. 행복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원본을 그대로 옮긴 필름엔 시로의 글에 덧붙여 세필로 "나도 그렇게 생각해"(我如想之)라고 적혀 있다. 그 다른 필적이 은열의 것이 아닐까 잠깐 두근거려하고 말았다.

- 그런 식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하곤 하는데, 역사를 공부했다고 모든 사안에 정갈한 의견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고 설득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솔직히 역사는 그 시간을 살았던 그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전근대사는 무기로 쓰면 안 되고, 근현대사에 있어선 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겠지. 민족주의자 말고 각자 나라에서 좋은 시민들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야. 어디 가서 이렇게 솔직히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요즘 애들은 스스로 무장해제 하느냐고 한마디 들을지도 모르고."
네 사람은 가만히 듣더니, 의견을 통일했다.
"나도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야겠다."
바보들, 포인트는 그렇게 얘기하면 공격당한다는 거였는데. 어쨌든 우리는 민감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감정적이 되기보다는 조용히 각자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우리 세대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일들이 나아질까 확신하지 못했다. 같은 나이라도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네 말은 그거잖아. 우리가 언젠가 뿔뿔이 돌아가고 '알다시피'에 다른 멤버들이 들어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 것이라서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거. 다른 사람에겐 지분이 없다는 거. 효짱 얘기가 그 얘기 아니야?"
드문드문 똑똑해지는 타케루의 명료한 정리에 마음이 편해져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건우 선배는 '알다시피'는 이 멤버로 끝을 내고 다음부터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혹은 '알듯 말듯' 같은 이름으로 하겠다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 어쩌면 나는 내가 믿는 것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 말았어야 할 투사를 계속하고 있었는지도.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성격을 설명하려 했고, 당사자들은 전혀 품지 않았을 근대적인 사고관을 멋대로 뒤집어씌웠으며, 은열을 무슨 여전사의 이미지로 그렸고, 정말은 의로웠는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 의적 집단으로 교묘하게 테두리를 쳤다. 약탈, 방화, 살인의 흔적들은 과장과 위조였다고 무시하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소름 끼치는 건 그들이 세 명이 아니라, 규모를 갖춘 집단이었단 사실을 자꾸 잊는다는 점이다. 시대착오적인 영웅 중심 기술에 언제나 반감이 있었는데도 그러고 말았다. 영웅도 아닌, 난폭했던, 죽고 없는, 내가 모르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 여백은 채울 수 없고, 채워서도 안 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규정지을 수 없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비웃고 만다.

 

- 세미나를 두 개 더 들어가기로 했다. 뭐라도 남는 주제를 하나 받아서, 아주 재미없는 주제라도 하나 받아서 학위를 따고 졸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은열들의 이야기도, 누가 한번 들었다 놓은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토록 매력적인데 아직 묻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기 중을 떠도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물고기처럼 어떤 아이디어는 지표면에 가깝게, 어떤 아이디어는 성층권쯤에서 부유하다가 사람들의 안테나에 슬쩍 지느러미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비슷한 발명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되고, 비슷한 전설들이 먼 땅에서도 태어나는 건 그렇게 설명 가능하다.

-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안테나를 찾아.
나는 죽고 없는 사람들에게 중얼거렸다.

- <알다시피, 은열>



- 다음 주에 만나서 얘기해 줄게. 결국 그 말만 하더라고.
오랜만에 네 사람이 다 모였어. 언니들은 나를 마주 보고 셋이 한편에 앉았지. 이를 데 없이 마녀들처럼.

 

- "나만 빼고 잘 사니까 좋아요? 사람들이 의리가 없어. 비결 좀 알려줘. 나도 결혼 좀 하자."
"너도 하고 싶긴 하니?"
명희 언니가 물었어.
"뭐 어느 정도는요? 왜 안 하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해요?"

그러자 언니의 시선이 그날따라 손질을 안 해서 부스스한 내 머리칼에 와닿는 걸 느낄 수 있었지.

- "우리가 비결을 말해주면, 다른 데 안 말할 자신 있어?"
의자 깊이 기대어 있던 소연 언니가 물었어.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진하고 믿음직한 얼굴을 했고,
그러자 예진 언니가 얄팍하고 누리끼리한 노트 같은 걸 하나 내밀었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야."
"고려대에 뭘 주문한다고요?"
"이 바보 자식, 똑바로 들어 오더 (order) 말고 스펠(spell)라고!"

 

- 소연 언니가 발끈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했어. 언니들이 단체로 맛이 갔나 싶었거든. 워낙에 사주 보러 다니고 점 보러 다니고 그런 거 좋아하는 언니들이긴 했지만 나름 단단한 생활인들인데 이거 왜 이러나, 셋이 짜고 놀리는 건가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

- "... 고대로부터 내려왔다는데 왜 인쇄물이에요?"

"고대로부터 내려온 걸 구한말이나 식민지 시대 초기에 인쇄한 거 같아."
"어디서 구했어요?"
"동대문 청계천 쪽 헌책방."
"야, 안 믿기면 하지 마. 그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하지 말란 말이야!"
"아, 알았어. 절박하다고, 절박해요."
언니들의 서슬에 질려, 나는 얼른 책을 받아 왔지.

- <규조녀비서(中操女祕書)>라는 말도 안 되는 제목의 그 책에는 제목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주문들이 가득 모여 있었어. 남편의 시앗을 제거하는 주문, 학문에 뜻이 없고 주색잡기만 하는 장남을 정신 차리게 하는 주문, 엉덩이 ... 

- "북쪽 산이 보이는 강 건너 언덕은 어떡하지?"
"회사 옥상이 딱이야. 주말에 철문 잠그고 거기서 해. 고대의 주문이 언덕 대신 빌딩도 쳐주더라, 얘."
"이거 정말 효과 있어요?"
"일단 해 봐. 깜짝 놀랄걸?"

- 주문에 필요한 준비물을 다 갖추는 데는 거의 두 달 가까이 걸렸어. 눈물은 쉬웠으나, 주기가 겹쳤던 언니들이 없으니 생리가 좀 불규칙해지고 말았거든.
막상 일요일 쌀쌀한 저녁, 회사 옥상 문을 잠그고 오컬트 행위를 하고 있자니 마음이 착 가라앉았어. 누가 보면 어쩌나 싶던 불안감도 건조한 서울 공기에 날아가고 말았지.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는 소원을 비는 탑처럼 보였고. 
주문서에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목욕재계를 하고 새로 산 속옷을 입었어. 너는 분명 내가 뭘 잘못했을 거라고 여길 거야. 하지만 아냐, 정말로 아냐. 나는 간절하고 신중했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어.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친근하게 팔을 잡는 척하며 손등으로 가슴을 건드리는, 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치는 척하며 허벅지 안쪽으로 손가락을 돌리는 역겨운 놈들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변화를 원했어. 탈출을 원했어. 계급 상승을 원했어. 그 모든 것의 답이 결혼이 아닌 줄 알면서도.

- 번개라도 칠 줄 알았지.
아무 빛도 소리도 없었어.
나는 실패한 줄 알고, 예의 벤치 대신 쓰는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았어. 가을이 깊어 실외기는 멈춰 있었지. 끊었던 담배가 매우 간절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먹는 주전부리를 찾아 백팩 안을 더듬었어. 담배를 닮은 가는 막대 과자를 찾았어. 언제 넣어놨는지도 모르는, 이미 뜯어져 산화될 대로 산화된 과자에선 먼지 맛이 났어. 구부정하게 앉아 오독오독 씹었지. 주전부리를 항상 주변머리라고 잘못 말하던 전 남친도 잠깐 떠올랐어. 그놈이라도 잡을 걸 그랬나... 미리 가지고 올라간 양동이의 수돗물로 소환진이나 지워야겠다,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였어. 
거기 남편이 있었어.
그걸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야.

- "언니 언니, 소환 말야!"
"어, 했어?"
"그거 말 그대로 소환이었어요?"
"응, 나타났지? 아휴, 우리 남편은 오동나무 깎던 걸 들고 있었고, 소연 언니네는 큐대를 들고 있었고, 명희 언니네 형부는..."
"아악, 됐고 됐고, 처음부터 사람이었어?"
"에이, 남자는 천천히 사람 만드는 거야. 놈팡이에서 사람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거지."
"그게 아니라 외모가!"
"왜? 그렇게 못생겼어?"
"못생기고 잘생기고를 떠나서 일단 사람이 아닌데요?"

"뭐?"

나는 빼꼼, 다시 소환진 쪽을 내다보았어.

 

- 사무실에 있으면 철새들이 날아가다 남편 곁에서 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 천장에서 자갈자갈 꽥꽥, 자갈 꽥, 자갈 꽥, 그런 소리가 나. 처음엔 귀여웠는데 날이 갈수록 시끄럽게 느껴져. 내가 올라가면 금방 날아가버리는 것도 빈정 상하고. 부산에서 갈매기들한테 하듯이 새우깡을 줘보려고 했더니 잘 안 먹더라. 과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남편과 오래도록 서 있고 싶지만, 그러면 나는 팔이 아파지고 철새들은 배가 아파지겠지. 
남편은 묵직하게 내 곁에 머물러 있고, 나는 지금 하는 일에 꽤 만족해. 얼마 전엔 지역 신문에서 취재도 왔었어.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셨다고요, 비결 같은 게 있나요?"
기자가 물었지.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배경 삼아 인터뷰 사진도 찍었어.

 

- 말이 없어진 남편에게 섭섭하진 않아. 오래된 부부는 다 그런 거지. 가끔 나는 상담실 문을 잠그고 혼자 옥상에 올라가 남편을 눕히곤 해. 나지막이 팔베개를 해달라고 조르거나, 절망이 굳어 단단하고 딱딱해진 몸 위에 누워보기도 하고 아름다운 결정, 짙은 형상, 내 운명적 사랑을 안고 하늘 아래에... 머리를 기르진 않았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휘젓게 두고 싶어서.

 

-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만한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 하지만 너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는, 아마도 그 옥상에 자주 가겠지. 너에 대해 과한 책임감 따위를 느끼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게. 연민도 아냐. 연민은 재수 없잖아. 그저, <규중조녀비서>를 받을 사람이 너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너는 분명 울 테고, 운다면 비가 들지 않는 가장 안쪽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아 울겠지. 너의 귀걸이나 반지, 라이터나 휴대폰 같은 게 떨어져서 그 밑으로 들어간다면 좋을 텐데. 밑면에 내가 방수 처리를 해서 붙여놓은 편지와 비서를 발견할 수 있도록.


-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 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 <옥상에서 만나요>



- 언니가 죽었다.
돌연히, 갑자기, 순식간에 불현듯, 눈 깜짝할 사이에, 그냥, 느닷없이, 금세 한순간, 난데없이, 대뜸, 황망히, 별안간, 돌발적으로, 급작스럽게, 찰나에 죽어버렸다.

- "애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다면 안 죽었을까?"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망연히 아빠에게 물었을 때, 아빠는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언니의 이름은 보늬였다. 밤의 속껍질. 반투명한 가루가 날리는 이름이었다. 엄마는 이제라도 언니의 이름을 율피(栗皮)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흩어지는 말들이 들리지 않는 척하며, 상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갈색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언니는 내게 머리색을 바꿀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아빠가 일어나다가 비틀거려서, 한쪽에 참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삼촌들이 뛰어왔다.  

- 그래선지 윤회의 수레바퀴를 천천히 돌리는 지장보살처럼 장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륜, 륜, 륜, 바퀴가도는 걸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 규진이는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주섬주섬 꺼냈다.
"내가 뭘 좀 만들었어..."
창을 하나 열더니 군청색 바탕에 하얀 점과 점선들이 몇 개 떠 있는 걸 보여주었다. 점 아래에는 사람 이름과 나이로 보이는 숫자가 콤마를 사이에 두고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언니의 이름을 찾는 건 쉬웠다. 
"이게 뭐야?"
화가 난 건 아니었는데, 목소리가 새되게 나오고 말았다.

"나도 모르겠어."
당황해하며 규진이가 말을 이었다.
"너희 누나도 그렇고, 그 형도 그렇고 이건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 사이트의 이름은 '돌연사.net'이었다. 열 몇 명이 홀로 떠있거나 점선으로 이어져 있거나 했다.

- "점선은 뭐야?"
"점선과 점선 사이에 회색 점 있지? 그건 지인들이야.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 혹시 서로 아는 사이가 있을 수도 있잖아. 몇 다리나 건너가는지 표시해 둔 거야. 일단은 거의 다 우리 업계 사람들이지만. 참 많이도 죽었지?"

-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왜?"
규진이가 나의 의아한 시선을 당황해하며 피했다.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누나 이름은 지울게."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뭐 하러?"
"나도 너도 매지도 모두 한 명씩은 알고 있잖아. 모으고 모아서 연결해 보면 뭔가 답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나 아무래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내가 그런데 그럼 넌..."
"이거, 지도구나."
나는 언니의 이름을 살짝 터치해 보았다. '이보늬, 32'.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라도 팝업으로 뜰 줄 알았는데.

 

- "키스맵이랑 비슷한 거네?"
매지가 심드렁하게 말했을 때, 나와 규진이는 그게 뭔지 몰랐다. 알고 보니 젊은 외국 애들이 심심하면 만드는 것으로 누가 누구랑 키스를 했는지 그 관계망을 죽죽 이어나가는 거란다. 유사한 것으로 메이드아웃맵과 섹스맵도 있다고 한다. 남들이 그렇게 즐거운 걸 만들 때, 우리는 돌연사 ... 

- 잘못 등록된 경우는 대개 사고사들이었다. 교통사고, 추락, 감전, 태풍에 떨어진 간판에 맞거나, 심지어 타살이 의심되는 사례들까지... 돌연한 죽음이었지만 돌연사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간단한 안내 메일을 보내고 데이터를 삭제해야 했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그런 메일을 보내는 건 도무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 "냉정해져야 해. 위로가 목적이 아니니까."

- 삭제하기 애매한 사례들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친구의 죽음을 등록하면서, 비계에서 떨어지기 직전 분명 어지러워하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래도 결정적 사인은 결국 추락 아냐?"
매지가 물었지만, 이 사례는 보류해 두기로 했다. '허완수, 21.' 하얗게 이름을 띄웠다.

- 위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이용자들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자살은 여섯 명 정도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돌연사는 몇 명의 인생을 흔들어 놓을까? 
우리는 이용자들이 간단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했다.
 
- 처음엔 주로 30대 이하의 죽음들이 등록되었기 때문에, 조금 의아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중장년층의 소식이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기 시작했다. 30대에 돌연사가 더 많은 게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가 건조하게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매번 읽기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 사람(김영현, 54), 회사 체육대회에서 쓰러진 사람(홍건익, 55), 고등학교 동창들과 산에 가서 쓰러진 사람(정문규, 50), 저녁을 먹다가 가슴 통증을 호소한 사람(이학용, 58)... 언니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언니는 야근을 하다가 이상을 느끼고 스스로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한다. 회사에 혼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따로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도 언니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을 거다. 그런 사람이었다. 구급대가 왔을 때 여기요,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 국제암연구소는 심야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죽는구나. 뭐가 그 사람들을 몰아붙인 거지?"
규진이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생계?"
매지가 약간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회사는 악독하지만, 어떨 때는 갑옷이기도 하잖아. 조직 밖의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혼자 세상이랑 싸운다고."

 

- 그건 아마 매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었다. 매지는 공연을 하기 위해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입시무용학원에서 일한다. 작업과 생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곁에서 보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한 번은 발목을 다쳐서 강사 자리를 잃은 적도 있었는데, 기댈 제도 같은 것도 마땅치 않았다. 후유증이 남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장기적인 문제가 되었더라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 "학원 학생들 귀여워하고 좋아하는데... 보고 있으면 뭔가 꽉 막혀오는 기분이야. 저 중에 안정적으로 춤을 추면서 살 수 있는 애들이 몇이나 될까 싶어서, 위태로운 생활로 다음 세대를 밀어 넣고 있는 거면 어쩌지? 똑같은 동작들을 가르치면서 난 또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싶고."

- 그렇지만 모든 케이스에 들어맞지는 않았다. 도무지 왜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도 많았다. 말 그대로 그냥 죽어버린 사람들 말이다. 전조도 없이 죽은 다음, 마땅한 이유도 남겨주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유전자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그 사람의 심장이 너무 지쳐버렸나. 셋이서 고민하기도 하고 혼자서 고민하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아예 고민하지 않기도 했다. 어쩌면 일정 퍼센트의 어린 개구리들도 그냥 죽는지 모른다. 일정 퍼센트의 낙타들도, 박쥐들도, 악어들도, 문어들도. 우리가 인간이라서 자연스러운 도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며불며 이렇듯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마음이 드는 그런 날이 있었다.

- 언니는 도태된 것일까. 종(種)이 가만히 버리고 가는 일부였을까. 달팽이 진액처럼 뒤에 남았나.

- 집에 돌아와서는 언니의 칫솔을 버렸다. 매일 아침 거기 언니의 칫솔이 있었고, 아빠도 엄마도 그 칫솔을 계속 보고 있었을 텐데 아무도 버리지 않아서, 나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버려 버렸다. 며칠 반응을 살폈는데 칫솔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 "이야, 너 정말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받아 적었네."
친구들이 놀렸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그 기자가 특유의 눈빛과 빠른 걸음으로 건강히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기를 가끔 응원 삼아 떠올린다. 

- 전시 직전에 완성된 3D 돌연사.net은 아름다웠다. 규진이의 지인이 솜씨를 부려놓아 말머리성운을 옮겨둔 것 같았다. 원형으로 가벽을 세운 전시장 가장자리를 따라 VR기기를 주욱 매달아 놓아 관객들이 써볼 수 있게 했다. 공개 전날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잠시 써보았다. 몇 걸음 서성거리지 않았는데, 가운데 딱 좋은 자리에서 빛나는 언니 이름이 보였다. 언니의 관계망이 언니를 그 좌표에 둔 것인지, 아니면 규진이가 언니를 중심으로 돌연사.net을 뜨개질한 것인지 가볍게 궁금해졌다. 

- 21세기에 죽는 사람들은 결국 다 데이터가 될 거란 생각도 했다.

- 의외로 반향은 문화예술계가 아니라 의료계에서 왔다. 자료 요청 메일이 심심찮게 도착했고, 매지가 심술을 부렸다.
"아니, 뭘 맡겨둔 것처럼 자꾸 내놓으래?"

- <보늬>



-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 둬도 죽을 것을 왜?
"갑오년에..."
그것이 크롱,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갑오년이면 언제지?

"마지막 전투에서 관군에 완전히 둘러싸였을 때, 우리 접주가 이 칼로 나를 지금처럼 만들었어요. 그래서 기념으로 품고만 있었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

- "그런데 그쪽은 아주 고전적인 데가 있어요. 그쪽이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피라고 하기에도 너무 오래 고인 것... 크림 리큐어와 비슷한 맛이 났다. 희미해졌던 감각이 점점 돌아왔다. 여자는 아주 혼란스러운 기분이 되었는데, 맥박과 호흡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각이 돌아오면서 여자의 옷 중에 두 번째로 비싼 코트가 망가졌다는 데에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왜 이 순간에 이렇게 쓸데없는 것이 신경 쓰이나, 여자는 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었지만 그럴 힘은 없었다. 여자 위로 고개를 숙인 그것에게서는, 그것의 벌어진 가슴팍에서는 조금씩 먼지가 날렸다. 이내 그것의 심장이 바닥나고, 여자의 심장도 완전히 멈췄다. 그렇게 죽었다. 

- "이제 일어나도 돼요."
여자가 눈알만 굴려 그것을 봤다.
"뭐, 더 누워 있고 싶으면 그래도 되지만."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삶과 죽음에 그토록 분절이 없었다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한 번의 암전도 없이 이어질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마침표까지는 아니라도 쉼표는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 여자는 제 딴에는 기지를 발휘해, 사슴 피를 주문했다. 몇 번인가 보통 음식들을 시도해 본 후였다. 음식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장기에 걸려 지겹도록 오랫동안 썩었다. 억지로 물을 마시면 밀려 내려가기는 했다. 물조차 전혀 흡수되지 않고 흘렀다. 마시면 거의 곧바로 배출되는 식이었다. 술도 마찬가지였는데, 송년회 시즌이었으므로 여자는 성인용 기저귀 하나면 술자리를 평정할 수 있겠구나 잠시 산만하게 묘책을 세웠다. 

- 사슴피는 흡수가 되긴 했으나 심한 두통과 구토를 동반했다. 사슴이 문제인지, 가공 과정에서 들어간 항응고제와 방부제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기능이 멈췄는데도 감각만은 오히려 생생해졌고, 공정하게도 통감(痛感)까지 포함이었다. 여자는 첫 포에서 사슴 피는 아니란 걸 깨달았지만,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비우며 2주 정도를 연명했다. 그간 회사에서는 속이 메스꺼워 구역질을 하는 여자를 두고 여러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 친구가 하는 중소 의료기기 회사에 낙하산으로 취직한 것이라 꽤 곤란했다. 결국 식사 시간마다 큰 소리로, 새로 다이어트용 한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부작용이 끔찍하다며 떠들어댈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77사이즈였다. 가끔은 88을 입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납득했고 소문은 잦아들었다.

- 잠을 자지 않는데도 꾸물거리다 지각을 했던 아침, 전철을 타기 위해 뛰다가 여자는 깜짝 놀랐다. 가볍게 뛰었을 뿐인데 속도가 엄청났다. 여자의 표범 같은 스프린트에 사람들이 다 돌아봤을 정도였다. 무사히 전철에 올라탄 후, 여자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렇게 쫄쫄 굶는데, 이렇게 빨리 뛸 수 있게 되었는데 영원히 살이 빠지지 않을 거라니! 여자는 77사이즈에 갇힌 기분이었다.  

- 진한 딴생각에 빠질 뿐이었다. 예를 들면 여자는 2년인가 3년 전 먹었던 곶감의 맛을 기억하려 애썼고, 그것에게 몰래 곶감을 먹이기 위한 별로 치밀하지 못한 계획들을 끝없이 세웠고, 뒤이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음에 대해 언제나 팔 하나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다니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가볍게 어깨에 손을 얹는 친구라고 표현했던 것을 떠올렸다. 여자의 의식은 매일 매시간 희미한 단어나 조각난 이미지가 아닌 완벽한 구조를 갖춘 문장으로 이루어졌고 그 점이 여자를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갔다. 어떻게든 무딘 상태로 밤을 보내기 위해 밤새 텔레비전을 봤다. 수많은 채널 중에서 가장 질리지 않는 방식으로 극적인 것은 뉴스 채널이었다. 세상엔 여자보다도 이상한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이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건조한 위로를 받던 어느 날,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관련 뉴스가 눈과 귀를 잡아챘다.
"현재 RH+A형 피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 버려지는 실정이지만 나머지 혈액형, 특히 O형의 경우 비축분이 2주밖에 남지 않아..."
해마다 반복되는 뉴스였고, 익숙한 헌혈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지나가는데 여자는 충격을 받아 몸을 반쯤 일으켰다. 헌혈받은 피가 버려진다고 했다. 여자는 토끼나 마시 ... 

- <영원히 77 사이즈>



- "언제나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상상했어요. 두상이 예쁘고 근사한 안경에, 파리 6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무슨 얘기예요?"
"외국인이랑 잔다면 말예요."
"너무 구치적이다."
"구체적."
구체적, 하고 한번 더 따라 하면서 나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해졌다. 두상이 예쁘지도 않고 안경도 안 쓰고 파리엔 가보지 못했고 수학 전공도 아니라서. 
"하지만 자기도 제법 괜찮아요."
여자친구가 위로해 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여자친구의 골반 양쪽 튀어나온 뼈를 손잡이처럼 잡고 돌렸다.

 

- 그에 반해 서울의 길은 지나치게 매끈하고 차들은 믿을 수 없이 빨랐다. 질주하는 버스를 타고 있을 때면 낮은 난간을 뚫고 아래로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한강은 너무 넓었다. 너무 길었다. 아마도 너무 깊을 것이다. 그 위에 놓인 다리들은 심지어 고칠 때도 사용하면서 고쳤다. 차들은 공사 구간을 지그재그로 누볐다. 나는 눈을 내리깐 채 버스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상상에 쉽게 빠지곤 했으므로 빨간 망치 아래 자리를 골랐다. 앞 좌석을 지지대 삼아 두 발로 꽉 버티며, 물속에 떨어져도 유리창을 깨고 나오리라 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떤 날엔 빨간 망치를 하나 훔쳐 가방 속에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었다. 외국인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외국인 도둑은 더더욱 환영받지 못할 터이므로 관뒀다.

- 서울은 춥기도 추웠다. 겨울 기온은 내가 자란 도시보다 15도쯤 낮았으며, 머물던 집이 형편없어서 한층 추웠다. 외국인 기숙사가 리모델링 중이란 말을 들었을 때 혹 모종의 차별로 내게 방을 주지 않는 건가 싶었지만, 건물이다 뜯겨나간 걸 확인하고 나서는 대충 그 근처에 방을 구했다. 반지하방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반보다는 3분의 2 지하쯤 되는 방이었다. 원래 큰방이었던 것을 둘로 쪼개어 ... 

- "그래도 맛있지?"
한국의 과자라는 건 이름에 아주 충실할 때도, 충실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정도가 이틀째의 소감이었다.
"형, 알바 안 할래요?"
"무슨 알바?"
"삼촌이 과자공장을 하는데 며칠 와서 도와달래요. 용돈 많이 주겠다고."
계형이의 눈빛은 호의로 가득했고, 돈이 빠듯하긴 해도 별로 급하진 않다고 말하면 재수 없을 것 같았고, 그 당시 내가 상상했던 과자공장은 조금 큰 빵집 정도였으므로 그러자고 했다. 거절을 하기엔 덜 친한 사이였다. 이틀 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를 타고 경상북도로 갔다. 경상북도라니, 한국을 많이도 보는구나 속없이 좋았다. 

- 과자공장은 거대하고 몰개성한 미색 건물이었다. 과자의 가벼움과 즐거움으로부터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나와 계형이는 적재를 돕느라 외부에서 간단히 일했지만,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꼼꼼한 방진복을 입고 창문도 없는 곳에서 일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다. 계형이네 삼촌이 우리를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삼촌은 어째선지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내가 말이 통할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한국 사람들 눈에나 비슷해 보이지 수백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 흘러들었으므로 서로를 어정쩡하게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오다가다 마주쳐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인데 동시에 사장님 조카 친구라니, 어정쩡함의 극치였다. 

- 여기서 먼저 변명을 하자면 그 공장은 유수 제과업체들에 양질의 제품을 납품하던 16년 차 외주공장으로, HACCP 인증을 받은 수준 높은 곳이었다. HACCP을 '해썹'이라 읽는다고 해서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내 귀에는 무슨 힙합 인사처럼 들렸던 것이다. 어쨌든 수준 높은 작업장에서도 사고라는 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러면 16년 무사고 기간이 0일로 되돌려지고 만다. 공장이라는 곳은 과자같이 작고 중요하지 않은 걸 만든다 해도 늘 위험하다는 점을 이해했어야 했지만 그때의 나는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작은 사고는 얼마나 흔한지, 희고 반짝거리는 방진복 아래 숨겨진 자잘한 부상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상상하지 못했다. 유탕기와 포장 기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위험했다. 상상력 부족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며칠 동안 박스를 날라주다 서울로 돌아갈 셈이었다. 아르바이트생과 관광객의 중간쯤이었으니 상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일이 잘되려면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잘되듯이, 일이 잘못되려 해도 마찬가지로 맞물려 잘못된다. 세 단계에 걸쳐 사고가 일어났다. 사악한 손이 설계한 도미노 같았다. 간단한 배관 용접 중에 불꽃이 포장재로 옮겨 붙었고,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빙과 창고로 이어진 암모니아관을 터뜨렸고, 반쯤 찬 밀가루 사일로가 과열되면서 분진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사고는 과자공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형태였지만, 다행히 직원들은 제때 공장 부지밖으로 대피했다. 계형이는 운 좋게 삼촌 심부름을 나간 상태였고, 나는 탈출 행렬의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챙기지 않고 다 나가버린 건 아니었다. 사태가 심각한 줄 모르고 스스로 앞줄을 양보했다는 게 맞겠다. 폭발음에 이어, 등과 귀가 뜨거워졌을 때에야 약간 후회했다. 

- 차나 바이크나 별반 차이 없는 것 같다고 역시 속으로만 생각했다.
"기자, 잘했을 것 같아요."
그 말만은 밖으로 나왔다.
"왜요? 어디가요? 나 재수 없어요?"
"한국에서도 기자들은 재수 없어요?"
"세계 어디서나 그렇지 않을까나."
"그런 뜻은 아니고요, 안 어울린다는 점에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아무 데에도 안 어울려요. 그래야 잘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어울리지 말아야, 따로여야 할 수 있는 일?"
실제로 말했을 때는 더 엉망으로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제대로 알아들었고 기뻐했다.

- "이상해. 진짜 가까운 사람들도 몰라주는 부분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온 사람이 알아채준다는 건."
"별로 안 달라요. 생각보다 안 달라요."
그런가, 여자친구는 내내 기분 좋아하며 경주까지 열심히 운전을 했다.

 

-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여자친구의 입에 진짜 휘슬을 물려보았다. 은색 조그만 휘슬, 여자친구가 볼을 부풀리자 새소리 비슷한 게 났다. 여자친구에게 맞춤이었다. 옳은 불화라는 것도 있을 테다. 옳은 불화로 기우는 개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할 테다. 여자친구는 마치 희귀 새 같았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를 왜 원하지 않는지, 왜 괴롭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여자친구와 동료들이 보도한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징계가 떨어진 근거는 그들이 입사 시에 서명했던 계약서와 사내 규칙의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 관련 조항이었다. 하지만 비리를 밝히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가? 오히려 깊이 따져보면 이익이 되는 쪽이 아닐까? 부당한 징계에 반발하여 다른 구성원들도 나섰고, 회사 측이 이들의 편집권을 방해하면서 신문사도 방송국도 제대로 운영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커졌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용역 깡패들이 먼저, 외부의 조력자들이 간발 차로 뒤이어 달려왔다. 

- "지금은 고착상태지만, 결국은 괜찮아질 거예요."

여자친구가 약간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첫 번째로 해직당했고 마지막으로 복직될 거예요."

- <해피쿠키 이어>



- 이재의 초대를 받은 경윤은 그 단순한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재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는 독한 종류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 결행할 모양이었다. 이혼 세일이라니. 시간은 여섯 명의 친구가 며칠에 걸쳐 어렵게 정했고, 장소야 당연히 경윤이 격주로 드나들었던 이재의 집이었다. 크고 작은 살림들을 처분하는 게 일차적 목적이지만, 이재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 경윤이 나머지 네 친구보다 이재의 집을 훨씬 자주 방문한 편이었던 것은, 장아찌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집은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까이 살기도 했다. 그래서 종종 음식이 잘되거나 많이 되거나 하면 편하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서로의 전화기에 이름이 뜰 때마다, 이번엔 뭘 만들었지 했을 것이다. 소소한 반가움과 함께 이재의 전화를 받았던 기억들이 났다. 

- 아영은 이재와 경윤이 가까운 동네에 사는 걸 질투했다. 다 함께 모였을 때,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게 싫었다. 게다가 그 내용이라는 게 반찬 만들기에 대한 시답잖은 정보들인 것도. 고등학생 때 아영과 가장 친했던 이재가 결혼 후에 다소간 멀게 느껴져서 속상했었다. 한 그룹 안에서도 한층 친한 친구였으면 했다. 그래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을 때, 몇 번째 순서로 말해주는 걸까 궁금해했고 그걸 궁금해하는 스스로가 약간 싫어지고 말았다.

- 어쨌든 가장 많은 정보를 알려준 상대는 아영인 게 틀림없었다. 직장에서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로 서로를 부르다가 그렇게 된 모양이라고 말하는 이재의 목소리는 무척 절제된 톤이었다. 아영이 즐겨 보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 같았다. 도마뱀의 짝짓기 장면을 단조롭게 서술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어쩌면 쇼크 같은 것에 빠져 있는지도 몰랐다. 이혼 세일이라니, 역시 이상행동처럼 느껴졌다.

- "그래서 뭘 살 거야?"
같은 싱글이라 몇 년 새 더 가까워진 민희가 물었다. 두 사람은 종종 목요일 저녁쯤 만나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았다.
"몰라, 걔 물건은 다 탐나지."
아영은 솔직히 말했다. 이재가 걸치면 평범한 카디건도 근사해 보였고, 남들 다 신는 생고무 밑창 스니커즈도 달라 보였다.
"235 신는 건 나랑 이재뿐이니까. 역시 신발을 살까?"
우리는 발 사이즈도 같아, 언젠가의 10대 시절에 서로 신을 바꿔 신으며 이재와 아영은 속삭였었다.
"나는 적금 깰 기세야."
민희가 말해서 아영은 울컥하던 마음을 잊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솔직히 내가 여섯 명 중에 취향이 제일 없잖아. 무색 무미 무취하지."
"아니, 뭐... 너 나쁘지 않아."
"나쁠 만큼도 취향이 없으니까. 내가 봐도 그래. 위로해주려 하지 마. 마네킹 입은 거 싹 사듯이 사버려야지."

- 아영은 민희의 솔직함에 어쭙잖은 시도를 멈추었다. 이재는 늘 흉내 내고 싶은 대상이었다. 이재를 질투한 적이 있었던가?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남녀공학이었다. 이재는 앞머리 모양을 유행시키고, 양말 접는 방식을 유행시켰다. 학기 초엔 아무도 이재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여름방학이 될 때쯤엔 반 남자애들 반쯤이 이재를 좋아하고 있었다. 더 예쁜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어쩌면 다들 이재보다도 이재가 이끌고 다니는 공기 같은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면 감각이 감미롭게 깨어나고 시간이 제멋대로 흘렀다. 이재의 반경에선 모든 모서리와 테두리가 달라졌다. 공간을 장악하듯이 둘러싼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떨어뜨리는 희한한 아이였다. 아영은 이재를 좋아했고, 이재와 함께 있는 자신을 좋아했다. 질투하진 않았다. 경윤을 질투하기 전에, 이재의 대학 친구들과 직장 친구들을 질투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 "역시 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래. 그 이재도 실패하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 리 없어."
참고 있던 탄식을 해버렸다.
"그래? 나는 그래도 결혼하고 싶어. 요즘 들어 더 하고 싶어."
민희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영은 민희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다음 휴직은 휴직이 아니라 퇴사가 될지도 몰라."
근무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회사에 들어간 민희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지병이 생겼다. 쉬었다 복귀했다를 벌써 몇 번 반복했다. 아픈 직원을 제대로 대해줄 회사가 아니었다.

- "파트너가 있으면 내가 다른 직장을 찾을 때까지 바통 터치를 할 수 있잖아. 주변에선 많이들 그러던데, 서로 이직할 때 버텨주고. 나는 혼자 버텨야 해. 이러다 아픈 게 심해지면... 혼자는 서럽고 무서워."
"음, 그런 문제는 나라가 해결해 줄 문제 아닌가?"
아영이 망설이다가 반문했다.
"나라는 별로 믿음이 안 가고, 40대가... 50대가 보이질 않아. 선배들 다 어디로 사라졌지? 우리 업계는 특히 싹 사라졌어."
민희가 몸을 주무르며 말했다. 아영이 테이블 너머로 민희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서 깜짝 놀랐다.
"이재 꼬드겨서 우리 셋이 살까? 실직하면 우리끼리 밥 먹여주면서?"
"그럴까? 정말 그럴까?"
떠오르는 대로 말했을 뿐이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애가 안 생겼던 게 천만다행이다, 애가 있었으면 어쩔뻔했어, 하고 지원은 이재의 이혼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그런 말들을 입 밖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이혼 세일>



- 대식국과 소식국 사이의 평화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첫 번째 전쟁 후 정확히 30년 만의 일이었다. 29년도 31년도 아니고 30년이었던 것은 휴전 30주년 기념 전쟁 재현 행사에서, 소식국의 배우가 대식국의 장군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기가 실감 난다고 생각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렸는데, 소식국의 배우가 목을 가다듬고 극단적인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해서야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의 이름은 '호수'였다. 소식국 말로 더 정확히는 '파문 없이 잔잔한 호수'를 뜻해서 당대에도 후대에도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 대식국과 소식국의 '식'은 흔히 쓰는 것처럼 나라 이름을 가리키거나(郞), 불꽃을 의미하거나(堤), 번성함의 정도(殖)를 말하는 식이 아니라 먹을 식(食)이었다. 두 나라의 문화가 많이 먹는 것과 적게 먹는 것으로 쉽게 요약될 수 있기에, 다른 나라들이 두 나라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었다. 물론 대식국과 소식국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들은 따로 있었지만, 그다지 본질을 담고 있지도 못했고 자주 바뀌었으므로 이제는 대부분 잊히고 말았다.

- 소식국의 식사에는 확실히 독특한 측면이 있었다. 소식국의 주식은 완벽한 도형 모양의 다식(茶食)이었다. 정다각형의 모서리 수가 늘어날수록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이었다. 정구각형을 최고로 쳤는데 아홉 개의 협곡을 뜻해서이기도 했고, 그 이상 각이 많아질 경우 원으로 보여서이기도 했다. 두께는 깎은 듯이 일정했고, 계절별로 입히는 가루의 재료에 따라 색깔이 달라졌다. 꽃과 열매, 잎과 뿌리로 만든 서른두 가지 종류의 가루를 입혔다. 차와 다식에 더해 산양과 염소젖을 가공한 몇 가지 음식이 소식국 식문화의 전부였다. 많이 먹지 않는 것, 완벽한 도형을 입안에서 오래 녹여 먹는 것이 최상의 경지에 다다른 식사이자 수양이라고 여겼다. 공복감이야말로 정신적 고양을 가져오는 데 제일이라고 말이다.

- 고원에 위치한 소식국에 비해, 대식국은 항구도시와 그 주변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항구 사람들은 땅과 바다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먹었다. 흉측한 심해어가 해변에 떠밀려와도 신나게 요리를 했다. 이국의 향신료를 두려워하지 ... 
 
- "하지만 음식은 맛이 없겠지."
"그렇지. 굶기겠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취소할래."

그때 30년간 늘어난 사정거리를 자랑하며 소식국 쪽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올랐다. 긴 띠로 격서가 매달린 세전(細箭)이었다. 보초병들이 섬찟해할 정도로 가까이, 위협하듯 내리 꽂혔다.

- [도살자들아, 너희의 하수구 동네로 돌아가라.]

- 짧고 강렬한 편지는 곧 대식국 대신들의 천막으로 배달되었다. 대신들은 사실 누구의 신하가 아니라 대식국 권력의 정점에 선 정치인들이었지만, 옛 왕정의 자취가 남은 그 호칭을 그대로 썼다. 얼마간 겸손하게 들리기도 했고 '내가 나라의 신하요' 하고 멋들어지게 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의 천막 안, 커다란 의자에는 왜소한 소년도 하나 앉아 있었는데 소식국 말에 능하다 해서 불려 온 참이었다. 소년보다 소식국 말이 유창하고 문자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불행히도 전쟁 재현 행사에 참여했다가 소식국의 고원도시에 억류되어 있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불운 때문에 있게 된 걸 잘 알고 있어서 의기소침해했다. 그의 이름은 '모래'였다. 정확히는 사막에 드물게 비가 온 후 하루이틀 말라서 발이 빠지지 않게 된 쾌적한 상태의 모래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대식국에만 있는 단어라 옮기기 어렵다.

 

- 모래의 가족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상인들로, 대식국과 소식국 사이를 매년 수차례 오가곤 했다. 특히 지난 전쟁 이후 대식국에서 인기가 높아진 산양 고기와 유제품을 취급했다. 고기는 사막을 가로지르기 전에 훈제 처리가 필요했는데 그 꼬치를 뱅글뱅글 돌리는 것이 모래의 일이어서 어깨만은 유독 단단했다. 모래는 소식에 인질로 잡힌 가족들이 걱정되었고, 하필 배탈이 나 혼자 남았다가 자신 없는 일을 맡게 된 스스로의 처지가 불안했다. 상업 활동으로 언어를 익히면 대개 그렇듯이 모래의 회화는 유창했지만 문자 독해력은 그만큼 훌륭하지 못했다. 모래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싶다고 생각하며 소식국의 격서를 집어 들었다.

"오려내는 자들이여, 당신들의 운하도시로 돌아가시오...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쉽게 돌아갈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지."

- 모래가 일부러 비하의 뉘앙스를 걷어낸 것은 아니었다. 식문화가 발달한 대식국에서는 도축업자를 굉장히 높이 샀다. 축제 때는 갖가지 가축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누가 더 말끔히 손보느냐 겨룰 정도였다.  

- "그전부터 계속 드리려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신구를 많이 하고 오는 건데... 지금 가진 건 이것밖에 없네요. 제가 보기에 아주 간명하게 명민하셔서 좋은 교육을 받는다면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을 겁니다. 그 교육에 보탬이 되고 싶네요. 일단 이 팔찌를 처분해서 공부하시는 데 쓰세요."
간명하게 명민하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얼떨떨해하며 모래가 팔찌를 받아 들었다.
"아 참, 제대로 된 값을 받으려면 꼭 타국 상인과 거래하세요. 귀국의 상인들은 가치를 모릅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귀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올해 안이든 내년이든 소식에 오시게 된다면 저희 집에도 들러주세요. 오시지 않으면 매우 섭섭할 겁니다."
"꼭 그러겠습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빈말 같은 거 하시지 않는 분인 거 압니다."

- 모래는 그 후 수차례 소식국의 이마를 방문했다. 이마는 모래를 넉넉하게 후원했는데, 이마 사후에 재차 악화된 양국 관계를 모래가 진정시킨 걸 알았더라면 매우 뿌듯해했을 것이다. 이마가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이야기했듯이,

- 모래는 이마의 이름을 빌려 이야기했다. 이마의 미소를 모사하고, 이마의 썩 나쁘지 않았던 삶을 축약하여 인용했다. 이마는 첫 결혼에 실패한 것 말고는 오점 없는 인생을 살다 갔으며, 그 오점에 대해선 별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 그 와중에 모래는 이마의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손녀, 세 번째 결혼에서 얻은 막내딸과 그만 가벼운 삼각관계에 빠지고 말았는데 결국 딸 쪽과 이루어졌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함께 가장 간명한 꽃을 따러 나가서 햇빛이 아내의 코끝에 맺힌 걸 보았고, 그제야 모래는 젊은 날 그이를 선택한 이유를 깨달았다. 이마와 더 닮았던 것이다.

- <이마와 모래>

 

 



새로 쓴 작가의 말



10여 년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고치며 보니 무척 기괴한 이야기들이라 놀라고 말았습니다. 산뜻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었다고 여겼건만 기괴함이 압도적이라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막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라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없이 머릿속에서 날뛰는 이미지들을 꺼내 그대로 펼쳤던 듯합니다. 요즘의 저는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더 주어질지, 어떤 이야기가 꼭 써야 하는 이야기일지 고심하며 한층 신중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중함을 얻기 위해 저도 모르게 치렀을 대가들이 있겠지요. 영원을 가진 것처럼 고민 없이 썼던 시기가 그리워집니다. 다시는 쓸 수 없을 들쭉날쭉한 이야기들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만들지는 않으며 보탤 수 있는 것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달라진 용어와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고, 개연성과 핍진성을 높이기 위해 사건을 교체하거나 묘사를 더하기도 하고, 반복해서 썼던 단어와 문장 구조를 다채롭게 만드는 데 힘썼습니다. 소설들을 한번 더 통과해 보는 드문 기회를 얻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삶에 이야기를 기꺼이 초대해 주시는 분들과 길고 긴 대화 속에 머물고 싶습니다.

2025년 봄

정세랑

 


 

 

작가의 말



<영원히 77사이즈>는 <드림, 드림, 드림> 대신 데뷔작이 될 뻔했던 소설이다. 스물여섯 살에 쓴 이 단편은 늘 나를 웃게 한다. 실연과 실직이 하필 겹쳐 어질어질한 와중, 새벽에 갑자기 '곶감은 사실 언데드야!" 외치고는 그 말도 안 되는 발상 위로 나머지를 쌓아 올린 소설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의 균형을 상당히 잃은 상태가 아니었나 싶지만 때로는 곶감을 위해 80매를 써도 괜찮지 않을까?

<익명소설>의 기획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 앤솔러지는 훨씬 사랑받았어야 했다고 분하게 여기고 있다. 그때 기획자들을 믿고 참여해 준 다른 작가분들을 여전히 최고의 동료로 여기고 있다. <익명소설>에 발표했던 <해피쿠키 이어>는 오로지 작가의 성별을 속이기 위해 쓴 소설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남성 작가가 썼을 거라고 확언했는데, 그 확언들을 보며 큰 즐거움을 느꼈다. 작가의 성별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일이 의외로 잦다. 여성 작가들에게 수식어를 붙일 때 고민을 깊이 해주면 좋겠다. 더하여 한참 한국이 정치적으로 암울할 때 쓰인 것도 이 단편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인터넷에서 "그래도 중동보다는 낫잖아"라는 말이 자주 보였는데 진정 나은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화자를 중동지역 남성으로 정했다. 식품 알레르기에 대해선, 스스로의 알레르기가 힘들어서 쓴 것인데 소설 속에 나오는 주사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이 지치지 말고 위험 음식을 잘 피하면 좋겠다. 계형은 오랜 친구의 이름이다. 잘 웃는 사람이라는 점도 빌렸다. <보늬>와 <해피쿠키 이어>를 합치면 <피프티피플>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데, 역시 한 주제에 대해 각도를 바꾸어 쓸 뿐인 것 같다.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소설을 쓸 때도 있고, 한 사람을 위해서 쓸 때도 있다. <이혼 세일>은 이혼을 한 후 훨씬 건강해지고 즐거워진 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서 썼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천천히 독을 뿜는 결혼이 존재하니 해독으로서의 이혼도 존재하리라는 생각에 코팅을 입혀 써보았다.

<이마와 모래>는 배명훈 작가님의 아이디어를 선물 받아 쓰게 되었다. 배 작가님만큼 동료 작가들에게 이타적인 분이 또 없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도움 되는 정보, 좋은 기회, 주목받을 만한 지면 등을 기꺼이 나눠주시다가 어느 날 단편 소재까지 주신 것이다.

 

"화살 편지가 오가면서 점점 오해가 커지는 두 나라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때요? 왠지 잘 쓰실 것 같으니 선물할게요."

그 아이디어에 2년 정도 다른 내용을 더 쌓아서 완성했다. 언젠가 배명훈 작가님 버전의 화살 편지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마를 만들어낸 것은, 전근대의 혼인외교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어그러질 때도 있었을 텐데 그 이후 관련된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해보고 싶어서였다. 이마에게 한 나라의 전문가로서 파국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주는 게 목적이었다. 요리 소설로 읽어도 되고 전쟁 소설로 읽어도 되고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에 대한 비유로 읽어도 되고... 가끔은 읽는 사람마다 다른 출구로 나가는 미로 같은 소설이 쓰고 싶은데 <이마와 모래>가 그런 소설이다.

박지영 편집자님께 감사한다. 덕분에 얼마나 큰 부분이 나아졌는지 모른다. 책을 세상과 연결해 주실 출판사의 다른 여러분께도 인사드리고 싶다.

줄곧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언제나 이어져 있는 느낌이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2018년 11월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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