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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기관 - 호러 작가가 사는 집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7. 2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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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출판 : 한스미디어
출간 : 11.12.29


       

           

읽을 때는 괜찮았다. 

외부에서 읽을 때도 많았고,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 내용이 생생한 상태에서 새벽에 정리하는 '미쓰다 신조'는-

절로 '역자 후기'가 떠오르는 것이다. 

 

<기관 - 호러작가가 사는 집>은 미쓰다 신조의 데뷔작이자 <작가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작가 자신과 동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데다 이력이나 발표한 작품들이 대부분 실제와 동일하다. 미쓰다 신조의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메타 소설 -그것도 호러- 작가로서의 면모는 이미 데뷔작에서부터 빛나고 있다.

 

작중 미쓰다 신조가 말한 란포에 대한 평가는, 어떤 면에서는 신조 본인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란포가 탐미 소설가와 추리 소설가로서의 자아 충돌을 겪었다면 

신조는 일찌감치 호러 소설가와 미스터리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작가 시리즈>와 <도조 겐야 시리즈>로 분리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관 - 호러작가가 사는 집>을 추리 소설로 읽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게 읽어도 나쁜 작품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설명과 트릭을 중요시하는 일본 추리 소설에 익숙하다면 조금은 미진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찝찝함이 미쓰다 신조식 호러의 백미다. 

 

만약 <기관>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어질 <작자 미상>과 <사관장>, <백사당>까지 한 번에 달려 보시길.

인상 깊은 여름이 될 것이다.   

 

 

덧) <일곱 명의 술래잡기>에 등장하는 '덴잔텐운'과 덴잔 덴카이,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도조 마사야', 작가 시리즈에서 활약하는 '아스카 신이치로'를 눈여겨 보자.

<기관> 중 집과 소년은 <집 시리즈>로, 함께 상황을 해석하는 친구는 <일곱 명의 술래잡기> 외 여러 작품으로 이어지는데-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가 어린 시절 강렬한 체험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벡사당>으로...

 

히히히.  

 


   

     

 

- <백물어 百物語라는 이름의 이야기>라는 내 작품인 듯한 소설이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 응모되었다고 소후에 고스케가 알려온 것은 일찌감치 여름의 열기가 물러가기 시작한 9월 중순이었다.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의 기척이 빨리 자취를 감추어 기뻐하면서도 조만간 다시 더워질 것이 뻔하다고 두서없는 생각에 빠져있던 어느 날 밤, 그에게서 그런 기묘한 연락이 왔다. 

- 고스케는 대학 동창이다. 함께 어느 문예부에서 활동한 사이라서 졸업 후에도 서로 연락은 주고받고 있었다. 하기야 그가 졸업과 동시에 간사이 지방에서 도쿄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만날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내가 2년 정도 전에 도쿄로 전근한 다음부터는 가끔씩 만나 오래된 우정을 되살렸다. 나는 교토와 도쿄에 거점을 둔 한 출판사의 편집부에 근무하고, 고스케는 이른바 글쟁이 일을 하고 있으니 둘 다 어떤 면에서는 학창 시절에 했던 활동의 맥을 잇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그런 그가 최근에 자주 의뢰받는 일이 바로 미스터리 계열 문학상의 원고 읽기였다.

최근에 미스터리 소설 붐이 일자 각 출판사는 자사의 상을 신설해 일반 응모를 받기 시작했다. 대개 베테랑 작가나 인기 작가 세 명에서 다섯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응모작을 읽고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장편상과 단편상의 차이는 없지만 상 하나에 모이는 작품의 수는 적어도 이삼백, 많으면 천 편에 가깝다.

 

- 물론 심사위원이 모든 작품을 읽을 시간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응모작 수는 엄청나지만, 그중에서 소설로 읽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킨 작품, 즉 문장상 문제가 없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 미달의 작품은 처음 몇 장을 읽으면 대충 알 수 있다. 우선 그런 응모작을 제외하고 나면 일단 소설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남는다. 다음에는 남은 작품 중에서 소설로서 플롯이 잘 짜인 작품이 얼마나 있는지 판단한다. 아무리 문장이 좋아도 내용이 없으면 허사다. 이 단계에서 후보작은 몇십 편이나 열 몇 편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상에 어울리는 요소를 지닌 작품을 골라낸다.

 

- 당연히 꼭 이처럼 논리 정연한 절차를 밟는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상마다 특징도 있기 때문에 덮어놓고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특히 생짜 신인을 뽑는 경우, 문장이나 구성보다도 아이디어 그 자체를 평가하는 비중이 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주 일반적인 심사 절차는 대개 이런 법이다. 그리고 고스케 같은 사람, 이른바 그 분야에 정통한 독자 몇 명이 방대한 응모작들을 읽어 심사위원이 굳이 눈길을 줄 필요가 없는 작품을 제외한다.

- 실제로 응모작 중에는 어처구니없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문장이 엉터리인 작품은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한 모양이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은 그럭저럭 잘 써서 마지막까지 읽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한다. 에도가와 란포 상의 원고를 읽을 때 담당한 작품 중에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다룬 소설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범인은 왜 엽기적인 살인을 되풀이하는가'라는 동기에 흥미의 초점이 맞추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동기의 설명이 '범인은 미쳤으니까'로 끝. 고스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편해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신이 읽고 심사위원에게 넘긴 작품이 수상하면 역시 기쁘기는 한 모양이다.

- 미스터리 계열이라고 했지만 고스케는 괴기 환상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제1회 때부터 일본 호러소설 대상 응모 원고를 읽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도 알기 때문에 늘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응모작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신이 담당한 원고 중에 내 이름이 있어서 놀란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나왔지만...

 

- 그 역시 내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4, 5년 전에 <안개 저택>이라는 단편이 고분샤 光文社 문고의 <본격추리>에 입선했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그래서 <백물어라는 이름의 이야기>라는 작품도 자기 몰래 응모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덧붙여 <안개 저택>에 등장하는 아스카 신이치로 飛鳥信一郞라는 청년은 나라 奈良의 안라 杏羅라는 곳에 실제로 살며, 우리 둘 공통의 친구이다.

 

- 하지만 일은 일이다.
"설마 미쓰다도 내가 자기 원고를 읽을 줄은 몰랐겠지."
그렇게 쓴웃음을 지음과 동시에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고 괜스레 긴장한 모양이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읽으면서 뭔가가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뭔가 응어리가 맺힌 듯하더니 원고를 넘길수록 그 응어리가 점점 커져갔다. 묘한 기분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을 때 정말로 내가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학창 시절에 시온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어 활동한 터라 서로의 작품은 몇 편인가 읽었다. 졸업 후에는 그럴 기회도 적어졌지만, 창작에 대한 서로의 자세나 취향, 기호는 훤히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 

- "도작이라면 메리트가 있나?"
"몰라. 못된 장난질일지도 모르지."
"너의 문학적 명성을 떨어뜨리려고..." 
"빈정대지 마."
결국 이 이야기는 수수께끼인 채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출판사에 "저는 그런 작품을 응모하지 않았습니다"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스케는 기분 나빠하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일단 다른 작품과 똑같은 취급을 하겠다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작품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 그 작품의 내용이 더 신경 쓰였다. 만약 보낸 사람 본인이 쓴 작품이라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까. 순수하게 똑같이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흥미가 일었다.

- 게다가 작품 속의 서술자인 '나'가 작가 자신인 '미쓰다 신조 三津田信三'라는 것이다. 쓰구치 이자히토라는 필명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내 이름을 사칭해서 응모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 작품 속의 일인칭 인물이 나 자신이라고 하니까 더더욱 떨떠름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등이 근질근질했다. 마치 홀로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여행하는 곳을 누가 미리 정해두었다는 걸 알아차린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런 짓을 하는 이유를 모른다. 정말로 부조리한 공포를 맛보는 한편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강렬한 흥미가 마음을 자극했다. 흡사 난해하지만 매력적인 수수께끼를 눈앞에 둔 탐정과 같이... 

- 하지만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관여하지 마'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릴 적에 '백중날에는 강에 들어가지 말거라, 백중날에 강에 들어가면 강에 사는 요괴들이 다리를 잡아당긴다는 속설이 있다'하고 할머니가 자주 주의를 주었다. 그 말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즉, 그 소설에 관여하는 것은 백중날에 강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가는 짓과 매한가지라고 의식한 것이리라. 나는 어릴 적에 백중날이 오면 강에 들어가기는커녕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이 일이 내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관계없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지만, 이 일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나는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서양식 건물로 이사했으며, 거기서 <모두 꺼리는 집>이라는 소설을 썼고 료코와도 알게 되었으니까... 

-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도쿄로 전근했을 때 '지구 발견 매거진'이라는 콘셉트로 진행되던 월간지 <GEO>의 편집을 담당했기 때문에 살 곳을 느긋하게 찾을 여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연말에 발간될 호를 편집하느라 바쁜 11월에 편집부가 통째로 이사를 한 것이다. 편집부 이사만 해도 큰일인데 편집부원 개개인도 이사를 해야 한다. 그것도 편집 작업을 진행하면서 말이다. 결국 편집부 이사를 먼저 마무리하면서 일주일 동안은 호텔에 머물고, 그다음에는 위클리 맨션일주일 단위로 임대하는 단기 임대형 주택에 들어가 임대기간 한 달 안에 살 곳을 ...

- 마음에 들어 그곳으로 정했다. 또한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지명에서 구니키다 돗보(国木田 独歩, 1871~1908,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편집자)의 <무사시노 武蔵野>와 오오카 쇼헤이(大岡昇平, 1909~1988, 소설가이자 평론가)의 <무사시노 부인>의 이미지가 솟아올라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 작품의 내용에 공감한 것은 아니다. 가령 문학작품에 영향을 받아 살 곳을 정한다면 그야말로 에도가와 란포의 수필 <아사쿠사 浅草 취미>를 모방해 아사쿠사에 살든가, 단고자카의 헌책방 2층에 하숙하든가, 도에이칸 東栄이라도 찾았으리라. (아사쿠사 취미는 아사쿠사를 좋아한 에도가와 란포가 쓴 수필집이다. 단고자카는 에도가와 란포가 등단하기 전에 헌책방을 경영한 곳으로, <D언덕의 살인사건>의 무대가 된다. 도에이칸은 <천장 위의 산책자>의 무대가 되는 하숙집이다.) 하기야 소설에 그려진 고풍스러운 낭만의 세계는 이미 사라졌지만...

 
- 그런데 무사시 나고이케도 마찬가지였다. 무사시 나고이케에 살기 시작해 주변을 산책하면서 깨달은 것은 생각했던 만큼 무사시노의 정취가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이른바 '무사시노의 잡목림' 같은 이미지가 펼쳐질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F장 근처에 있는 이발소에 들어갔을 때도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잡목림은 아주 옛날에 택지 개발되어 사라졌고 지금도 그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은 다마가와 상수 玉川上水 언저리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쉬는 날에 마음이 내키면 남은 미련을 질질 끌며 1년도 넘게 주변을 산책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주말마다 헤매고 돌아다닌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두세 달이나 ...

 

- 문득 정신을 차리면 주위는 이미 밤이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아까 전까지는 희미하게나마 햇빛이 비쳤는데...

두 눈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든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미 밤이었다. 나중에 오마가도키(逢魔が時, 저녁 무렵을 가리키는 말로 어두워지면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마물과 마주칠 수도 있는 시간이라는 뜻에서 유래)라는 말과 그 의미를 알았는데, 그때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뭔가가 이 세상이 밤이 되는 순간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혹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 뭔가는 사람이 깨닫기 전의 아주 짧은 순간에 이 세상을 밤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 처음으로 암흑 언덕에 올랐을 때, 그런 어릴 적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떤 의미로는 이 언덕이 오랜 세월 동안 품어온 의문에 대답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이 언덕의 낮과 밤의 경계를 통과할 때마다 어쩐지 엄숙하고 장엄한 통과의례를 거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경계를 지나가면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진다. 단순히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것이 건물 바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껴서 정말로 이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보이는 것은 양옆에서 덮듯이 언덕을 감싼 나무들만이 아니다. 마치 천공의 마인이 거대한 손으로, 아니 거대한 집게손가락으로 단구를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후벼 파기라도 한 ... 

- 그때 코토히토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다케마타의 행동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탓에 속이 메슥거렸고 뭐라고도 할 수없이 끔찍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런 5, 6년 전의 기억이 느닷없이 되살아났다.
지금 한순간 느낀 무언가는 당시의 끔찍한 기분과 똑같을 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했다.
그때는 귀뚜라미를 짓뭉갠다는 행위의 잔혹함이나 벌레들의 무참한 사체는 둘째 치고, 즐거운 듯이 그런 짓을 하는 다케마타의 정신 상태에 물든 기분이 들어 토하는 줄 알았다.
여기서 느낀 것은 그것과 비슷한 뭔가였다.
도대체 뭘까?
코토히토는 불안해졌다.

 

- 코토히토는 지금까지도 몇 번인가 '섬뜩'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섬뜩한 느낌이 든 일을 그대로 진행하거나 섬뜩했던 장소에 계속 머무르면 반드시 험한 꼴을 당했다
가즈히토는 그것이 영감 혹은 예지 능력이라고 그랬다. 옛날에는 불길한 징조라고 했다고 하는데, 원래 동물인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수 능력이라고 한다. 코토히토는 이 '섬뜩'한 느낌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귀뚜라미 일이 떠오른 만큼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건물 대부분은 사진과 함께 나와 있었다. 아마도 일본에서 똑같은 콘셉트의 책을 편집하기는 무리이리라. 분명 게재된 건물은 백 년 전이나 이백 년 전의 건물이고, 유령 그 자체가 그 나라에서는 역사로 취급된다는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는 하나 유령의 집이다. 게다가 어떤 건물은 폐가가 아니라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 건물을 사진과 함께 '영국에 있는 유령의 집'으로 소개하다니 정말로 부럽다. 유령의 집이라는 성질상 그 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기적으로 새로운 사건은 범인뿐 아니라 피해자의 이름도 감춘 저자에게서 그 인품을 읽을 수 있었다. 

- 특별히 어디를 읽는다는 생각도 없이 책장을 훌훌 넘기는데 문득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펼친 페이지에는 하프팀버 양식의 집이 나와 있었다.
"이런, 이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이게 공시성이라는 걸까. 하기야 책이 책이다. 비슷한 집과 마주치는 게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뒤 페이지를 넘기자 똑같은 양식의 집이 나열되어 있었다. 각각의 제목을 보니 '참극이 되풀이되는 집', '마녀의 저주, 일가족을 죽이다', '못을 박는 광신도 일가'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의 두 채가 영국 맨체스터, 나머지 한 채가 셰필드에 실제로 있는 집이라고 한다. 이런 글을 읽은 마당에 어찌 책을 덮을 수 있으랴. 

-하지만 서양식 건물에 살 수 있다는 기쁨과 비교하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별것 아니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횡횡 소리를 내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잎이 다 떨어진 나무 사이로 걸음을 옮기자니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황무지를 헤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조금 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울창하게 우거진 대나무 숲이 눈앞에 나타나 아까와는 달리 일본의 토착적인 마경에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뭐라고도 할 수 없이 기묘한 이 분위기의 전환은 어느 틈엔가 거대한 속임수 그림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충격을 항상 내게 선사했다. 

 

- 마치 인형장으로 향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발걸음을 옮기자 이윽고 대나무 숲 사이로 그 집의 모습이 얼핏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 발견했을 당시는 집이 서 있는 특이한 환경에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오늘 찬찬히 보니 놀랍게도 이 집은 극히 고전적인 하프팀버 양식 건물이었다. 
이 양식에서는 집의 골조, 즉 토대, 기둥, 들보, 도리를 구성하는 목재를 짜 맞추고 나서 그 사이에 다양한 재료를 채워 넣어 벽을 만든다. 목재를 짜 맞추는 방법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특색이 있다. 요전에 이 양식은 영국 북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동부와 서부 그리고 웨일즈 일부에서도 볼 수 있고 각각 나무골조의 형태가 다르다. 인형장은 분명, 구조를 중시하는 동부와 서부 양식과는 달리 장식에 치중하는 북방형 하프팀버였다.

- 게다가 내부로 들어가자 놀랍게도 완벽한 오픈 홀 형태였다. 이 형태는 영국의 매너 하우스장원의 영주나 대관의 주거를 말하며 본격적인 방어시설을 갖추지 않은 중세 후기의 저택으로 비교적 일찍이 정세가 안정된 영국에서 전형적으로 발달의 원형으로 1층에 마련된 커다란 홀에 특징이 있다. 일찍이 홀은 거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집의 중심에 넓게 자리를 잡았다. 홀 안쪽에는 침실 따위가 있었고, 앞쪽에는 통로를 끼고 취사장이 설치되었다. 집이 커지면 침실과 취사장 위에 2층을 만들고 홀 위쪽은 뻥 뚫어놓았다. 이러한 형식이 확립된 것은 14세기에서 16세기 무렵으로 17세기 이후에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 하나 백 년이나 이백 년보다 더 오래된 집이 현존하는 영국에서는 아직도 옛날 집을 볼 수 있었다. 

- 어쩌면 이 집은 현존하는 오픈 홀 형식의 하프팀버로서는 상당히 귀중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축 허가를 잘도 따낸 셈이다. 하기야 일찍이 중앙에 화로를 놓은 홀의 봉당에는 판자를 대었고, 각각 독립되어 있던 오른편과 왼편의 2층 부분을 건널 복도로 연결하는 등 순수한 오픈 홀 형태가 아니라 개량한 부분도 눈에 띈다. 시대의 추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변한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다만 흥미로운 집이기는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다. 아마도 일본으로 이축한 후에, 그것도 빈집이 되어 구스노키 토지 건물 상회가 취급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여느 때라면 엄마도 다른 사람한테 집을 보여줄 수 없다면서 분명 거절했으리라. 하지만 들어보니 아빠의 대학교 후배인 데다 상당한 미남이라 마음에 쏙 들었는지 그의 부탁을 쾌히 받아들인 모양이다.
딱히 안내인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누나가 안내하겠다고 자청했다. 뭐, 어디까지나 외부인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셈이니까 누가 함께 있는 편이 낫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누나 상태라면 설령 이자히토가 집에서 뭔가를 가져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어쨌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이때 코토히토는 생각했다. 이자히토와의 대화는 재미있었지만, 굳이 고르라면 <탑 위의 마술사>를 마저 읽고 싶었다. 

- 책 정리는 즐거운 반면, 중노동일 뿐 아니라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을 상당히 빼앗긴다. 고향 집에 있던 수천 권과 도쿄에서 사모은 수백 권이 다이기에 개인 장서로서는 극히 보잘것없지만, 그저 책장에 꽂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출판사, 판형을 생각하면서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제법 어렵다. 게다가 자료로 자주 사용하는 책은 꺼내기 쉬운 곳에 꽂아두고 싶고, 에도가와 란포, 존 딕슨 카, 스티븐 킹, 아와사카 쓰마오, 렌조 미키히코 같은 작가의 책은 역시나 특별한 취급을 하고 싶다. 결국 책을 꽂는 순서와 넣는 장소가 결정될 때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리할 때 옛날에 산 그리운 책이 몇 권이나 나와서 그때마다 일을 멈추고 책장을 훌훌 넘기며 내용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래서는 작업이 진척될 리 없기에 나는 책에 파묻힌 서재에서 책을 정리하며 꼬박 이틀을 보냈다. 뭐, 그 시간이 아주 행복한 한때였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 사흘째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모든 정리를 끝냈다. 분류하고 마지막에 남은 책 두 더미를 책장에 꽂고 나서 아까 전까지 훑어보던 책 중에서 오늘 밤 침대에서 읽을 책으로 우에쿠사 진이치(植草甚一, 1908~1979, 평론가이자 수필가)의 <비가 내리니까 미스터리라도 공부하자>를 골라 서재에서 나왔다. 저자가 거론한 외국 책 중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도 있기 때문에 지금 읽으면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 걸출하기는 하지만 장대한 만큼 다양한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공포를 즐길 수 없다. 그 혼자만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스티븐 킹은 완전히 새로운 괴기 환상 문학을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연재소설에서는 허버트 러셀 웨이크필드의 <붉은 오두막집> 같은 정통 유령의 집 소설을 쓰고 싶었다. 깔끔한 플롯을 짜기보다 역시 모호한 심정으로 그저 멍하니 생각하는 듯 마는 듯 생각하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 무대는 인형장, 바로 이 집이다. 실제로 소설을 쓰기 전에는 가공의 무대를 설정하는 편이 재미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에도가와 란포의 괴기 환상 단편에 푹 빠진 후에 <탐정소설 40년>을 비롯한 소설 이외의 문장을 읽었을 때다. 에도가와 란포의 현실적인 생활 체험이 그가 그려내는 이계를 얼마나 크게 뒷받침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 환영의 성주가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었을 줄이야.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때 에도가와 란포의 마계에 푹 빠져 있던 만큼 그 충격은 상당히 컸다. 이윽고 소설을 쓰는 흉내를 시작한 다음에는 현실을 비현실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는 마치 귀신의 집 무대의 뒤편을 본 것처럼 뭐라고도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을 맛보았다. 

- 이번처럼 집이 중심인 작품에서는 처음에 무대의 공간적인 배치를 알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작가에 따라서는 그런 것 없이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실제로는 세세한 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간적인 배치를 모르면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 다음은 괴이한 현상 그 자체이다. 유령의 집 소설이니까 어떤 괴기 현상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집에 찾아오느냐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처음부터 유령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사하러 온 학자 그룹이냐, 아무것도 모른 채 이사 온 가족이냐, 아니면 담력을 시험하러 온 젊은이들이냐. 또한 찾아온 사람의 목적에 따라 집에 머무는 기간도 달라진다. 담력을 시험하러 온 젊은이들이라면 하룻밤, 조사를 하러 온 학자들이라면 몇 주에서 몇 달, 이사 온 가족이라면 1년 이상일 것이다. 당연히 괴기 현상의 종류와 연출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덧붙여 괴기 현상의 정체를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소설의 성격상,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생각해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체를 결정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을 일으켜야 할지, 즉 어떤 괴기 현상이 어울릴지 종잡을 수 없다. 

- "미스터리를 쓰는 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아직 제대로 구상하지도 않은 연재소설에 일단 '모두 꺼리는 집'이라는 새 제목을 붙여보았다. 역시 뭘 생각하든지 간에 제목이 없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러브 크래프트의 <모두 피해가는 집>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 날은 제목과 집필의 방향성만 결정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다음부터는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글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 "백물어(일본의 전통적인 괴담회 중 하나로 백 가지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 진짜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야. 특이한 건 소설 속에 실제로 아흔아홉 개의 무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지."
"이야. 그거 재미있겠는데."
"다만 그 이야기들이 문제라서 너 자신이 취재한 이야기라는 형식이거든."
"..."
"네 홈페이지 '백가지 방'이 바로 떠오르더라. 거기에 네가 실제로 취재한 괴담을 올려놨잖아. 전에도 가끔씩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훑어봤더니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가 있더라고. 전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백가지 방'에서 제법 많이 베낀 게 틀림없어."
"그래서 내 이름을 썼다고..."

- 몇 년 전일까. 친구를 비롯하여 일 관계로 알게 된 사람들한테서 무서운 이야기를 수집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본인의 체험담이 바람직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본 이야기가 아닌 한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도 개의치 않고 수집했다. 그런 이야기가 딱 아흔아홉 개 모였을 때 인터넷을 시작했기 때문에 '백가지 방'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야기들 중에서 인터넷에 유포해도 지장이 없을 만한 내용만을 골라 게재했다.

- 고스케는 쓰구치 이자히토가 이 '백가지 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 이번에는 아무런 주저 없이, 오히려 말을 준비한 것처럼 재빨리 대답하더니 다른 말을 꺼냈다.
"그것보다 작가 선생님의 소설은 좀 어때?"
자기가 먼저 그 소설 이야기를 꺼내놓고 더 이상 이야기하면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이야기를 돌렸다. 나도 굳이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모두 꺼리는 집이 어떻게 진척되어 가는지 이야기한 다음 그날 밤의 통화를 끝냈다.

- 연말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다만 한밤중이나 새벽에 잠이 확 깰 때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꿈속에서 내가 뭔가를 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분이 묘했지만 불면증에 걸린 것도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혼자 사는 친구들은 남김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자러 오겠다던 후에 고스케도 바빴던 모양인지, 31일 오전까지 철야 작업을 한 후에 지금 고향에 돌아간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적막함을 즐기면서 쌓아둔 책을 읽고, 집 뒤쪽 대나무 숲과 근처를 산책했다. <모두 꺼리는 집> 집필에 열중하다가 밤에는 호러 비디오를 감상하고 이사 알림장을 겸한 연하장을 썼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날 밤, 그 작은 문 앞에 섰다.
왜 31일까지 기다렸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특별한 일을 하며 한 해를 넘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세상이 경사스런 신년을 맞이하려고 할 때 나는 뭔가 불길한(그 문에서 불길한 낌새라도 난 걸까) 것에 얽혀야겠다는 개구쟁이 기질이 발동했으리라. 결과를 말하자면 세상은 새로운 한 해로 나아가는 희망의 문을 열었지만 나는 비밀스러운 문을 열 수 없었다. 
 
- 거짓말처럼 글이 척척 나와서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 <모두 꺼리는 집> 제1회가 게재된 미궁초자 4월호가 배송되었다.
기쁘게도 오랜만에 작가 특집이 포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특집의 주인공은 바로 도조 마사야 東城雅弥였다. 도조는 내가 편애하는 괴기 환상 작가 중 하나다. 여행자가 산속에서 맞이한 하룻밤 동안의 공포를 그려낸 외딴집 전설의 괴담 <아지랑이 암자>, 주작 신사의 두 무녀 전설에서 소재를 얻은 환상담 <몽매의 저녁놀>, 변격 탐정소설의 괴작 <아홉 바위 석탑 살인사건> 등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걸작이 있다.
덴잔 덴카이는 내가 도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듯, 동봉한 편지에서 특집 내용을 가볍게 다루면서 귀형의 마음에 들면 좋겠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또한 <모두 꺼리는 집>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전개를 크게 기대한다면서 덴카이 이외의 동인들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마그렛 어윈(1889~1967), <이른 아침의 예배>

존 멧칼프(1891~1965), <죽은 자의 향연>

레슬리 폴스 하틀리(1895~1972), <포도로 섬> <W. S>

데니스 휘틀리 (1897~1977), <뱀>

엘리자베스 보엔(1899~1973), <뜀뛰는 고양이> <악마 같은 연인>

로버트 에이크만(1914~1981), <열차> <구석진 방>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마을>
전부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주된 작품을 다시 읽는 것만 해도 중노동이다. 하기야 그 중노동이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그런데 음울하게 흐린 하늘이 펼쳐진 어느 일요일 오후에 이 작품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2층 서재에서 윌리엄 하비의 <시계를 읽다>가 새삼스레 섬뜩해서 좀 무서웠다.

- 생각해 보면 이 시기는 일, 독서, 창작, 덧붙여 사는 집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불가사의한 색채에 감싸여 있었다. 그야말로 박명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상태다. 하지만 황혼의 저 건너편에는 암흑의 세계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아직 햇빛이 남아있는 시간대에 머무는 동안은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어둠 속에 발을 들여놓으면... 아니, 어둠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저쪽에서 다가오는 법이다. 약해져 가는 햇빛을 찾아 무턱대고 달려봤자 황혼은 이윽고 암흑이 되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탓에 거기 누구냐고 던지는 질문은 저건 도대체 뭐지,라는 두려움으로 변모한다. 

- "도플갱어라고 알아? 누가 너한테 어제 어디 가지 않았었느냐고 물어. 하지만 넌 간 적이 없어. 그렇게 자기가 모르는 곳에 또 하나의 자신이 존재하는 게 도플갱어인데, 어쩌면 네가 본 것도 도플갱어에 가까운 존재인지 몰라."
"그거, 자기 자신한테도 보여?"
"응, 본인이 봤다는 경험담도 많아. 밖에서 돌아와서 방에 들어갔더니 누가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더래. 그래서 누구냐고 말을 걸었더니, 뒤돌아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또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누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뒤돌아본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그건 그냥 괴담이잖아."
부정적인 대답과는 달리 코토히토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이쪽을 힐끗힐끗 살피던 엄마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코토히토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아차릴 여유조차 없었다.
"아니, 이 이야기는 옛날부터 그것도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어. 괴테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자신의 도플갱어를 봤다나 봐."
"그거 보면 어떻게 되는데?"
"..."
가즈히토의 수다가 딱 멈추었다. 침묵이 마치 아뿔싸,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즈히토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다음에 대답했다.
"죽어..."

"...."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대."

- 여전히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돌 하우스는 의식 한구석으로 쫓아낼 수 있었지만, 쓰구치 이자히토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 연락을 하려고 해도 <백물어>라는 이름의 이야기에 기재된 주소는 내 고향집 주소다.
예의 열쇠를 받은 다음 날, 혹시나 싶어 덴잔 덴카이에게 전화해서 배달된 편지에 보낸 사람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후에 덴잔 덴카이가 불러준 주소는 역시 고향집 주소였다. 덴잔 덴카이는 내가 받은 편지에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느냐고 미심쩍어했지만, 적당히 얼버무린 다음에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순간 고향집에 전화해볼까 싶었지만, 해봤자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전화를 받은 부모님께 뭐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가. 괜히 걱정만 끼칠 뿐이다.  

- 쓰구치 이자히토를 <모두 꺼리는 집> 제2회에 등장인물로 출연시킨 것은 이 당시의 정신상태가 초래한 결과였으리라. 즉, 특별히 깊은 의미는 없었다. 아니, 깊은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책장 뒤의 작은 문과 숨겨져 있던 다락방, 돌 하우스까지 현재 집필 중인 <모두 꺼리는 집>에 집어넣었다. 아무리 이 인형장을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고는 하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 의도도 없이 소설에 마구잡이로 집어넣다니 괜찮을 리 없다. 

- 창작을 하다 보면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이야기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다지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써나가길 잘했다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면 쓰는 본인이 무서워진다. 그래도 소설 연재는 이미 시작되었다. 게다가 창작 그 자체가 정체 상태에 빠진 것도 아니다. 나 자신이 한 구상에서 동떨어져간다고는 하나 나는 <모두 꺼리는 집>을 더 쓰고 싶었다.
 
- 하기야 소설에서 특별한 내용이 전개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일가가 어떤 집에 이사를 온다. 가족 중에 단 한 사람, 소년만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감이 몹시 좋은 소년만은 그 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 소년조차 그 집의 실체는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영국의 고전적인 괴기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중후한 분위기는 나지 않으리라.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유령 이야기로서 전형적인 전철을 밟아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덴잔 덴카이는 분명 조만간에 유령의 집 소설답게 괴상한 현상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자니까 당연히 안다는 상식적인 문제가 아니다. 나도 모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당연한 소리지만, 자동서기 상태로 집필하는 것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플롯을 짜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해서 쓴다. 그런데 실제로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각해 놓은 줄거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처음에는 아주 약간 어긋났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어긋나고 말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확실히 소설을 쓰다 보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도 그렇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연재를 하면서 점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쓰면 쓸수록 어쩐지 들어가면 안 되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 줄 쓸 때마다... 한 문단을 쓸 때마다 한 회 분량을 쓸 때마다...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곰팡이나 잿물 같은 것이 서서히 몸에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겨우 그 곰팡이나 잿물 같은 것이 사실은 공포라는 감정이 아닐까, 하고 깨닫기 시작했다. 

- 괴기소설을 쓰는 작가 스스로 공포를 느끼는 소설.
그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상황이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가 어떤 의미에서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 소설은, 좀 거칠게 말해 괴기소설로서는 실패작이리라.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작품 중에 <목이 비틀린 재닛>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탈고 후에 아내에게 그 작품을 읽어준 후 아내는 물론 스티븐슨 본인도 두려움을 느꼈다는 일화가 있다. 괴기소설이 무섭고 안 무섭고는 결국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감각적인 문제이겠지만, 괴기소설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는 일화 아닐까. 


- 하지만 나는 지금 유감스럽게도 작품 그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와 작품 속의 묘사, 행간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느끼는 것은... 나는 도대체 뭘 무서워하는 걸까...?
그렇다. 나는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이 무섭다는 감정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내 마음속에 축적되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쓰고 싶다. <모두 꺼리는 집>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렇게 무서워하면서도 이야기를 자아내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이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다는 바람과도 같은 감정이 들끓었다. 지금 내 몸속에는 작가로서의 나, 독자로서의 나, 그리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나, 이렇게 세 사람의 내가 있다. 게다가 세 번째 내가 느끼는 공포보다 첫 번째 내가 쓰고 싶다는 욕구, 두 번째 내가 읽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강하다.

- 아직 장마가 오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그날은 우중충하게 흐린, 정말이지 기분이 축 처지는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원래 괴기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니 여느 때라면 이런 날씨를 반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암흑 언덕으로 향하면서 이런 기분이라니 뭔가 모순된 거 아닐까... 하지만 암흑 언덕은 확고한 일상이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어둠이다. 햇빛을 받는 현실이 없으면 밤의 꿈은 존재할 수 없다. 설령 밤의 꿈이 진실일지라도 현실은 존재해야 한다.
이때 나는 반쯤 잠에 빠진 것처럼 멍한 상태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들자 눈앞에 암흑 언덕이 있었다.

- 때마침 구름 틈새로 햇빛이 후광처럼 쫙 쏟아져 내렸다. 햇살의 온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천천히 암흑 언덕으로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뻐끔히 벌어진 암흑 언덕의 입구가 서서히 커졌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아우웅, 아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고래에게 삼켜진 피노키오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고, 이탈리아 보르마초 정원(이탈리아 보르마초에 있는 정원으로 자연석을 조각하여 만든 괴물 조각상이 많다)에 있는, 거대한 입을 벌린 식인귀의 머리가 떠올랐다.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경계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만, 미쓰다 신조 선생님 아니신지..."
뒤돌아보았을 때 내 발은 이미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 때문에 캄캄한 그늘로 들어갔던 눈이 바로 햇빛을 받아 한순간 현기증과도 비슷한 환혹에 사로잡혔다.
약간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지만 자세를 가다듬고 마치 자다 일어나서 앞이 제대로 안 보일 때처럼 눈을 계속 깜박였다. 카메라로 연속촬영하듯이 팟, 팟, 팟, 하고 하나의 화상이 고정되어 갔다. 밝은 배경 속에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리고 원피스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마치 네거 필름을 보기라도 하듯 인물과 배경이 반전되어 있었다. 

- "실제로 존재하는 분위기 있는 성이나 서양식 건물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말씀인가요?"
"예, 맞아요. 건물, 마을, 자연의 풍경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무대가 있으면 거기에 자극받아 소설을 쓸 때가 있죠. 특히 폐쇄성이 강한 종류의 본격 미스터리를 쓸 때는 처음에 트릭을 만들고 그다음에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물이나 무대를 설정하는 방법과 처음에 인물과 무대를 설정해 놓고 그 속에 트릭을 끼워 맞추는 방법, 크게 두 종류의 작법이 있어요. 이 작법은 작가와 작품에 따라 구분되어 쓰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어느 쪽이 낫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이사까지 하시다니, 어지간해서는 그러기 힘들 텐데요."
위험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가 싶어 료코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반은 감탄하고 반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창작을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부수적인 문제죠... 결국 그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창작 운운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뒤집으면, 그런 분위기 속에 자신을 놓아두지 않는 한 재능이 없는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예요."

- "오구리 무시타로 小栗虫太郞가 쓴 <흑사관 살인사건>은 아세요?"
"예, 전에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소설은 중후하면서도 현란한 저택의 한 방에서 양피지에 깃털 펜으로 집필하기라도 한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만, 사실은 소변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단층 연립주택에서 쓰였습니다. 중요한 건 재능과 열정이죠."
"..."
"분위기 운운하는 건 그 양쪽 다, 특히 재능 없는 사람들의 변명 같은 거예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풋내기의 잘난 척이 부끄러워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료코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료코가 입을 열었다.
 
- "아니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미쓰다 씨는 그런 것과는 별도로 서양식 건물이라는 무대 설정에 애착을 가지고 계신 것 아닌가요? 분명 <안개 저택>에서도 영국식 저택이 무대였죠."
"예, 하프팀버입니다. <모두 꺼리는 집>과 똑같이..."
지적받을 때까지 생각조차 못했다니 조금 충격이었다. 충격받았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해 일부러 자학적인 말을 꺼냈다.
"본격 미스터리에는 저택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똑같은 양식의 집을 쓰다니 제 상상력도 참 빈곤하군요."
그러자 료코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요, 상상력의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 "말하자면..."

"..."
"홀린 거죠."
"흘려요?"
"예, 집에 홀린 거예요..."
그렇게 말한 료코가 이쪽을 보았을 때, 두 사람은 또 다른 암흑 언덕에 도착했다.

- 료코도 그 이상은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점점 넓어지기 시작한 음울하게 흐린 하늘을 머리 위로 쳐다보면서 묵묵히 조림지 속을 둘이서 나아갔다. 지금 누가 이 광경만 본다면, 내 모습은 희생자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는 푸른 수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다. 게다가 신경 쓰이는 일도 있었다.
엄마의 말만 들으면 마치 엄마가 쓰구치에게 과외를 부탁한 것 같지만, 오늘 돌아갈 때의 모습으로 보건대 아마도 쓰구치가 먼저 바라지 않았을까. 물론 직접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코토히토를 걱정한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넌지시 이야기를 끌어내면 엄마가 먼저 부탁하리라는 예상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  
코토히토는 그런 쓰구치의 말과 행동에서 뭔가를 느꼈다. 다만 그 뭔가의 정체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굳이 가까운 말로 표현하자면, 악의라고 불러야 할까. 

 


- 욕조 속에 있는데도 묘하게 몸이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의 불길한 영상을 씻어내기라도 하듯이 코토히토는 뜨거운 물을 연거푸 얼굴에 끼얹으면서 나쁜 일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 내어 말했다.
전에 가즈히토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 말하면, 과장을 좀 보태서 자기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가령 쓰구치 이자히토가 과외 이야기를 꺼냈다고 해도 이유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이 집에 흥미가 있었으니까,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집에 드나들 수 있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원한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토히토가 마음에 들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사한 후로 상태가 이상한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힘이 되어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합쳐져서 쓰구치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 그 원념을 직접 상대에게 방출하지 않고, 사람의 모양을 본떠 상대의 대용품으로 만든 인형(가타시로 形代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에다 원념을 담는다고 한다. 이른바 유명한 축시의 저주 때 사용하는 짚 인형이 그런 인형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사람을 저주할 때 사람의 모습과 닮은 것으로 저주한다면, 집을 저주할 때는 집의 모습과 닮은 것으로 저주하지 않을까. 그 돌하우스는 이를테면 저주의 짚 인형 아닐까. 

- 어쩐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싸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내달렸다.
한순간에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등 뒤가 무서웠다. 뒤쪽에 등을 돌리고 있기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해서 뒤를 보려니 더 무서웠다.
그래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 발로 기는 자세로 엎드려 돌 하우스를 위에서 덮을 듯한 몸짓을 취한 쓰구치 이자히토가 얼굴만 들어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돌아본 코토히토와 눈이 마주치자 히히히, 하고 웃었다.


사진이란 제4권 도쿄 편 중에 가몬 나나미 씨가 집필한 '도쿄의 다이라노 마사카도(헤이안 시대 중기의 호족, 현재 마사카도에 관한 열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관해'라고 제목을 붙인 장에서 사용할 마사카도 관련 사진, 아베 마사미치 씨가 집필한 '산유테이 엔초(에도 시대 말기에서 페이지 시대에 활약한 만담극의 명인)가 수집한 유령화를 감상하다'라고 제목을 붙인 장에서 사용할 엔초의 무덤, 그리고 13장에서 내가 쓸 예정인 '에도가와 란포의 도쿄 환상 공간을 방황하다'에서 사용할 란포 관련 사진이다. 

 

- 마사카도와 관련된 곳으로는 유명한 오테마치 大手町의 머리 무덤을 비롯해, 제신으로 모셔진 간다묘진 神田明神 투구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는 투구 신사, 갑옷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는 갑옷 신사, 그 밖에 귀왕 신사, 쓰쿠도하치만 筑土八幡 신사, 미즈이나리 水稲荷 신사, 가라스모리 烏森 신사, 간다산 神田山 니치린지 日輪寺 절, 도리고에 鳥越 신사를 꼽을 수 있다. 전부 도쿄 도내에 있다고는 하나 하루 만에 다 돌아다니기는 좀 힘든 데다 ...

- 기본적으로 '월드 미스터리 투어 13'의 표지 사진은 영국의 사진작가 사이먼 마스덴의 작품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촬영한 경험이 없다. 따라서 '도쿄 편'과 그다음으로 예정된 '교토 편'의 경우, 사진을 새로 찍을 필요가 있었다. '런던 편'은 영국의 어떤 교회의 '이탈리아 편'은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줄지은 벽면의, '파리 편'은 베르사유 궁전 안의 조소 작품을 피사체로 삼은 사진을 골랐기 때문에, 그다음 책에서도 같은 취향의 사진으로 통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도쿄 편'과 '교토 편'은 짝을 맞춰주고 싶었다. '교토 편’ 사진으로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이나리 稲荷 조각상이 떠올랐기 때문에 '도쿄 편'은 고마이누 狛犬로 해야겠다 싶었다.

(역주. 이나리는 오곡신의 사자로 여우다, 고마이누는 마귀를 쫓기 위해 신사 앞에 놓은 조각으로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 그런데 고마이누를 찾느라 고생했다. 결국 등잔 밑이 어둡다고 '도쿄 편' 1장의 주제이자 요괴 건축가라고 불린 이토 주타 伊東 忠太의 작품인 쓰키치 혼간지 築地本願寺 절에 고마이누가, 그것도 주타가 만든 것답게 날개가 달린 고마이누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사이먼 마스덴의 사진에서 배어 나오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카메라맨과 협의해 백중 연휴가 끝나는 날에 촬영을 했다. 

 


-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늘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밀함이 싹트기 시작한 남녀의 산뜻한 분위기가 감돈 셈이다. 그게 좋고 나쁘고는 둘째 치고...
다시금 정말 신기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료코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 내게 아사쿠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항상 향수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사쿠사'라는 네 글자를 보면 묘한 그리움이 느껴졌고 그 말의 음감조차 친근했다.
이것은 오로지 란포의 마계에 등장하는 아사쿠사에 몇 번이나 드나든 결과이자, 란포의 수필에 그려진 아사쿠사에 몇 번이나 발걸음을 한 까닭이다. 전근해서 살기 전까지는 출장으로 방문하는 정도라, 흥미가 없다기보다 어쩐지 귀찮다는 인상밖에 받지 못한 도쿄지만, 아사쿠사만은 달랐다. 오랜 세월 동안 란포를 가까이하다 보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아사쿠사만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미화되어 갔다. 나는 그런 사정을 료코에게 설명했다. 


- "역시 미쓰다 씨는 장소에 끌리시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집에 홀렸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런 의미일까...

"그럴지도 모르죠."
별생각 없이 대답하자 료코가 되물었다.
"무섭지는 않으세요?"

"어..."
말문이 막혔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그런 생각이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다.
"자기가 끌리는 장소에 사로잡히거나 얽매일 것 같아서 무섭지는 않으세요?"

- "음,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겠네."
적당히 넘길 대화는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요전에 간 머리 무덤만 해도 거기에 실제로 마사카도의 머리가 묻혀 있는 건 아니에요. 머리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그 밖에도 많죠. 하지만 거기는 특별히 더 그런 장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말았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인정하고 전승해 왔어요. 그렇게 되면 거기 머리가 묻혀 있고 말고를 떠나서 어엿한 머리 무덤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결국은 사람의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세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생각은 없지만 기본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 "오이와 お岩, 알아요?"
"요쓰야 四谷 괴담(오이와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에몬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의..."

"그래요. 그럼 오이와라는 말을 듣고 뭐가 떠올랐어요?"
"그 반쯤 짓무른 무서운 얼굴, 요쓰야 괴담의 연극 무대와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가 재앙을 입었다는 이야기... 정도일까요."
료코는 할 말이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무서운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아니요, 괜찮아요. 문제는 그 재앙 이야기니까."

- "요쓰야 괴담은 모르더라도 오이와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거나 오이와가 재앙을 내린다는 소문을 아는 사람은 많을 거예요. 그 대부분은 연극 무대나 영화에서 오이와 역할을 한 여배우, 혹은 스태프나 관계자가 요쓰야의 오이와 이나리 다미야 於岩 稲荷田宮 신사와 묘코지 妙光寺 절의 무덤에 참배를 하지 않아서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거나 때로는 죽기도 한다는 이야기죠.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연극 무대나 영화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오이와의 재앙일지도 모른다고 소란을 피우곤 해요."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런 괴담을 들은 적은 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의 재미있는 점은 이른바 재앙이나 저주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를 떠나, 요쓰야 괴담에 그려진 사건은 실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 불행히도 A가 밟는 바람에 계단에서 떨어진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전부 반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A는 밤중에 오줌이 마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도 구슬은 밟지 않을지도 모른다. 구슬을 밟았지만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계단에서 떨어져도 머리는 부딪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부딪쳐도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중요한 것은 '확률'의 범죄라는 점이다. 잘 될지 안 될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잘 되면 이득이다. 이 범죄의 밑바탕에는 그런 생각이 있다.
나는 조금 열띤 말투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 "그 <도상>이라는 작품은 재미있나요?"
내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료코가 물었다.
"아니요, 작품의 완성도는 <붉은 방>보다 훨씬 떨어져요. <도상>은 확률의 범죄를 그린 작품의 효시이기는 하나, 문학자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아내를 죽이고 싶지만 실력 행사까지는 하지 못하는 남편이 그 살의를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 아니 표출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다룬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죠. 물론 다니자키 준이치로도 이 범죄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재미는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재미를 다 살리지 못했다고 할까. 적어도 그런 식으로는 쓰지 않았어요." 
"란포는 달랐군요."

 

"미쓰다 씨의 말씀처럼 가정의 연속이니까, 성공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겠어요?"

"아아, 그 시간이요. 실은 그게 이 범죄의 난관이죠. 하지만 자신의 살의가 증명되지 않을 상황을 설정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성격이 느긋한 범인이 아니면 좀처럼 실행할 수 없겠네요."   

웃으면서 료코를 보자 료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어쩌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가요?"
"예를 들어 친척의 재산을 가지고 싶다든가 남편의 불륜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식으로 살의를 느낀 상대를 바로 죽이고 싶은 동기가 있는 경우는 별개예요. 하지만 무슨 이유로 복수하고 싶은 경우, 예를 들어 부모님의 원수라고 해볼까요. 그럴 때는 범인의 심정상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아닌 상황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컨대 죽인다는 행위 자체는 최종적인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예, 상대가 미우면 미울수록, 원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가 바로 죽으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

- 읽으면 안다고는 하나, 미스터리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니 역시 신선하다.
"결국 란포라는 작가가 지닌 괴기 환상 소설가로서의 자질과 본격 탐정소설가로서의 지향,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무슨 말씀이세요?"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는데, 란포 작품 중에 본격 미스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아주 적어요. 여기에는 당시의 독자들이 아직 미국과 유럽 풍의 이지적인 본격물을 이해할 힘이 부족했다는 배경이 있죠. 즉 독자의 취향을 받아들인 결과, 괴기 환상 계열 작품이 많아졌다는 견해예요. 본격 계열의 작품이 적다고는 하나, 완성도가 극히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니라고요...?"
"본격 계열 작품이 적다고 해서 작가로서의 자질이 없었다고 딱 잘라 말하는 건 분명 난폭한 해석이겠지만, 사실 그 해석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당시 탐정소설계의 사정과 란포 자신의 취미와 기호 따위는 제외하고, 순수하게 작품만 읽었을 때 자연스레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아까 전에 말씀하신 자질과 지향의 문제인가요?"
"예."
나는 눈 아래로 시노바스노이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 계열의 작품에는 분명 딱딱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하기와라 사쿠타로(1886~1942, 일본 근대의 시인)와 유메노 규사쿠(1889~1936, 일본 미스터리 3대 기서 중 하나인 <도구라마구라>의 작가) 역시 그런 지적을 했죠. 에도가와 란포가 쓴 본격 계열 작품에는 항상 서양의 작품에서 빌려온 듯한 느낌이 달라붙어 있다고요."

 

- "하지만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그 자신이 탐미파니까 단순히 자신의 취향을 말한 것 아닐까요? 유메노 규사쿠라는 사람은 모르지만요..."

돌계단을 내려가자 나온 연못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면서 촬영에 적합한 곳을 찾았다.
"음, 그럴지도요. 반대로 말해 본격파 작가들은 란포의 본격 계열 단편을 인정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실은 거기에 장르를 넘어선 작가의 비극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장르를 넘어선 작가의 비극..."

 

- "지향과 자질의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란포라는 작가는 분명 탐미파였어요. 그런데 탐정소설이라는 새롭고 매력적인 문학이 눈에 들어오고 말았죠. 게다가 탐정소설은 매사에 싫증을 잘 내고 인생을 지루하게 느끼던 그에게 최고의 자극제였어요. 그리하여 란포는 당치 않게도 일본 탐정소설의 창시자가 되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자질과 완전히 반대 방향을 지향한 건가요?"

료코가 어쩐지 서운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란포는 창작할 때, 자기는 문학적인 측면으로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애하는 우노 코지(1891~1961, 일본의 소설가로 요설적인 문체와 인간의 미묘한 정서를 꿰뚫어 보는 인간 관찰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의 문체를 흉내 냈다고 했어요.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죠. 이지적인 본격 탐정소설을 이해하면 할수록 장황하게 늘어지는 우노 코지의 문체가 미스터리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판단할 수 있었을 거예요. 확실히 당시에는 본격 탐정소설에 어울리는 문체의 본보기가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제일 선택해서는 안 될 문체를 하필이면 란포 자신이 선택하고 말았죠. 왜냐하면 그 문체로 적기가 제일 쉬웠기 때문이에요. 즉, 란포가 지닌 작가로서의 자질 그 자체가 문체의 선택에 관련되었다는 말이죠." 

- 연못 주변에는 곳곳에 노점상 판매대가 나와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연꽃잎이 연못 전체를 덮어서 수면을 찍을 수는 없다. 4분의 1 정도 돌았을 때, 연못 가운데 위치한 섬에 지어진 변재천 사당을 연꽃잎 너머로 찍기로 했다.

- "그건 그렇고 란포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은 참 대단해요."

연못을 둘러싼 울타리 사이로 카메라를 꺼낸 내 뒤에서 료코가 말을 걸었다.
"천재 하고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역시 재능이겠죠. 그리고 엄청나게 노력했을 거예요. 란포의 내면에서 작가로서의 자질과 지향이 갈등했기 때문에 일련의 명작들이 태어난 겁니다. 그리고 <음울한 짐승>에서는 마침내 자질과 지향이 융합됐죠. 그래서 그 작품은 그렇게 압도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막다른 곳에 다다른 거겠죠."

거의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뒤돌아보자 생각에 잠긴 듯한 료코의 얼굴이 보였다.

-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고요. 탐정소설의 역사를 훑어봐도 이런 작품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거든요. 실제로 일본 미스터리의 창시자인 란포의 작품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어요."
울타리에 기대고 있자니 료코가 옆에 와서 나란히 섰다.
"란포에 필적하는 작가는 음울한 짐승이 발표된 지 50년도 넘게 지나서야 나타났어요."
"누군가요...?
"렌조 미키히코요."
"<연문>을 쓴 그분..."
"예, 같은 탐미라도 방향성은 다르지만, 화장 花葬시리즈를 비롯한 초기 단편에는 이지와 탐미가 아주 멋지게 융합되어 있어요."
"렌조 미키히코가 미스터리 소설도 썼던가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연문>이 발표된 후에 렌조 미키히코를 알게 된 독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반응하리라. 

- "원래 하이카이(俳諧, 일본 특유의 짧은 시가)는 시정잡배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쓰오 바쇼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어요. <바쇼 한 명의 문제>에는 탐정소설계에도 그런 바쇼가 한 명 나타나면 탐정소설이 1급 문학이 되는 날이, 예술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내용이 적혀 있죠.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감정이 북받쳤어요. 란포는 뛰어난 탐정소설을 읽으면 '탐정소설의 혼'이 머리를 쑥 쳐든다고 했죠. 그리고 그러한 '혼'에 빙의된 란포가 쓴 평론이나 수필을 읽으면 이쪽까지 탐정소설의 혼에 씐 듯한 상태에 빠져요. 개중에서도 이 <바쇼 한 명의 문제>는 '혼'에 씐 것 이상으로 엄청난 기백과 숭고함을 지닌 분위기로 가득 차 있어요. 진노한 표정을 지은 부동명왕이 실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느낌과 가깝다고 할까요."
"정말 엄청난 글일 것 같네요."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료코는 놀라움과 놀림이 반씩 섞인 표정을 지었다.

"교사로 일하던 쓰치야 다카오(1917~2011, 추리작가, 일본 추리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에게 주는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을 받았다)가 그 글을 읽은 후에 자신이 그 바쇼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일화도 있어요. 사실 쓰치야 다카오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아주 양심적인 본격 미스터리를 썼죠. 그런 의미에서는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어엿한 마쓰오 바쇼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 거울을 보자 확실히 시원찮아 보이는 얼굴이 비쳤다. 몸도 나른했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간 나는 카메라에서 꺼낸 필름을 다마가와 야스에게 건넸다. 
"미안한데, 이거 사진관에다 좀 맡기고 올래?"
"사진 찍다가 퍼진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같이 가겠다고 그랬는데. 그런데 어땠어요? 좋은 사진 많이 찍었어요? 재미있었어요?"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그녀는 불평을 하면서도 몸을 내밀듯이 서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일만 부탁해 놓고 입을 싹 닦다니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 주말에는 오랜만에 잠이나 푹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토요일에는 오후까지 잤다. 일어난 후에도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자고, 다시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다시 잤다. 료코도 저녁에 잠시 찾아왔을 뿐 바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나는 료코가 손수 만들어 가져온 슈크림을 몽땅 먹어치웠다.

 

- 낮에 너무 많이 자면 밤에 잠이 안 오는 법인데, 그럴 때는 시시한 호러 비디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최고다.
얼마 되지 않는 컬렉션 중에서 골랐다. 그러다가 다리오 아르젠토의 작품이 보고 싶어졌는데, 그래서는 도리어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니, 다리오 아르젠토라고 해도 잠이 오는 작품은 있지만, 그의 비디오를 수면제 대용으로 쓰기는 싫었다. 결국 무난하게 <악마의 비>로 하기로 했다. 악마의 비를 맞은 사람이 녹는 장면이 화제가 된 오컬트 영화인데, 비디오로서는 희소가치가 있는 편인지 중고 비디오 가게에 가보면 제법 높은 가격이 붙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지루해서 맥주 롱캔 하나면 잠들 수 있다. 
반 정도 보다 보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맥주를 더 들이켰다. 그리고 간신히 3분의 2 정도 보았을 때, 바로 이때다 싶어서 그대로 침대로 직행했다. 
다만 이럴 때는 밤중에 꼭 한 번은 깬다. 이날 밤도 그랬다. 하지만 그럴 때는 책 따위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또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침대 속에서 눈을 뜬 채 기다려보았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는 데다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 슬슬 덴잔한테 제4회 원고를 보내야 한다.
제3회는 보냈을 터이다. 아니, 보냈을 터이다가 아니다. 제3회가 실린 8월호를 받은 기억이 있다.
8월호는 어디 있지? 아직 봉투를 뜯지도 않았나?
다음 제4회는 이거다. 화면 위를 흘러가는 이 원고. 이걸 슬슬 보내야 하는데... 
하지만 보낼 수 없다. 과연 이 원고를 보내도 될까. 그걸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제4회 원고를 쓴 기억이 없으니까...

-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입을 타고 나왔다. 그 후에도 말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의식한 순간, 다음에 나와야 할 말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머릿속에는 그 여운이 남았다. 뭔가. 아니,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내용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 내려고 의식하면 할수록 말이 스윽 멀어져 간다. 한층 집요하게 쫓아가니 희미하게 남아 있던 말이 지닌 의식 그 자체도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떠올랐다.

- 정신을 차리자 인형장을 한 바퀴 빙 돈 상태였다.
어려운 수식이라도 풀려고 한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그대로 집에 들어갈 마음도 들지 않아 오랜만에 암흑 언덕에나 가보려고 대문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걸었다.
요전에 대문으로 밖에 나간 건 언제였더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을 대려고 했을 때,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니, 이 위화감 그 자체에 기억이 있다. 예전에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건 언제였더라. 위화감의 정체는 뭐였더라. 생각이 날 듯 말 듯했을 때,
눈과 눈이 마주쳤다.
울타리에 생긴 눈이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환각은 아니다. 눈을 거듭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이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이쪽만 쳐다보았다.

- "유령은 있어요. 밤중에 저 집 뜰을 서성거린다고요. 집 안에 들어가는 걸 본 적도 몇 번 있어요."
"그건 유령이 아니라 담력을 시험하러 온 사람 아닐까. 학생들은 자주 그런 놀이를 하거든."
실은 네 꿈이 아니냐고 말하려 했지만, 바로 말을 바꾸었다.
"으으응, 아니에요. 항상 똑같은 유령이 나타나는걸요. 여자 유령 하나만 나타난다고요."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다. 이렇게 되면 가이타가 봤다는 여자가 유령이든 진짜 인간이든 어느 쪽이라도 위험하다.

- "형은 저 집에 살지만 유령은 안 나와. 넌 확실히 뭔가를 본 모양이지만, 저 집은 괜찮아."
어느 틈엔가 가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의 표정이, 산울타리 틈새로 이쪽을 보던 때와 똑같이 변했다. 소년은 그 눈으로 잠시 이쪽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형... 홀렸잖아요."

- 멍하니 선 나를 남겨두고 가이타는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홀렸다... 뭐에... 집에? 현기증이 나서 휘청했다. 몸을 반쯤 구부려서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면서도 머릿속은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 하지만 뭣 때문에? 왜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정신을 차리자 나는 가슴 앞에다 펼친 양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 적힌 무슨 글자나 표시를 필사적으로 읽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뜰을 스치고 지나간 한 줄기 바람에 퍼뜩 제정신이 든 순간, 목소리가 나왔다.
"이유 같은 건 없어. 그저 내가 사는 집이 어떤 집인지 알고 싶을 뿐이야."
자기 자신을 억지로라도 속이지 않으면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결과이리라. 일본은 언령 말속에 힘이 있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상의 나라다. 말로 한 시점에서 그것이 현실이 된다.

- 어느새 날씨가 완전히 시원해졌다.
단란주점 미카의 마담한테 인형장에서 일어난 일가족 참살사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그 후에는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과거의 지방 신문을 검색하면 아마 사건 기사는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일이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에서 살다니 분명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지금 딱히 실제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니까(정말로 피해가 없을까) 일단은 눈앞의 생활이 먼저다. 아마도 현실은 조금 무서운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그 공포에 푹 빠질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은 듯하다. 

- 잠시 동안 현실의 공포에 눈을 감고 '월드 미스터리 투어 13'의 '제5권 영국 편'과 '제6권 동유럽 편'의 기획과 편집에 시달렸다. 특히 '동유럽 편' 때는 기구치 히데유키 씨에게 드라큘라 기행과 흡혈귀 영화에 관한 원고 두 장 분량을 의뢰하기 위해 일찌감치 편지를 보내거나, 구리하라 시게오 씨에게 꼭 흡혈귀 전설에 관한 집필을 부탁해야겠다고 고심하거나, 부록으로 흡혈귀 분포 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힘이 들었다.  
몸 상태는 변함없었지만 한때에 비하면 제법 괜찮아진 것 같았다. 더욱이 내가 기획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신체적으로는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좀처럼 지치지 않는 법이다. 다마가와 야스요는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막연하게, 아아 원래의 좋은 상태로 돌아가는구나,라는 감각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것은 일시적인 착각이었다. 이사한 집에 대해 뭔가 개운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는데, 내가 사는 집에서 옛날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서 아아, 역시 그랬구나, 하고 납득했기 때문이다. 

- 이 으스스한 우연의 일치는 뭘까...?
게다가 <모두 꺼리는 집> 제1회부터 제4회까지의 흐름을 보면 이다음에 인형장 살인사건을 재현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기억이 없다고는 하나, 단란주점 미카의 마담한테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제4회 원고를 처음으로 읽었다면 납득이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킨토시에 저장된 글을 보고 제4회 원고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단란주점을 찾아가기 훨씬 전의 일이다.
 
- 일단 어디부터 조사해야 할까...
그건 그렇고 이 집은 정말 멋지다,

- 다시 정신을 차리자 벌써 밤이었다. 그것도 심야였다. 몇 시간이나 지났다. 무단결근을 했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다...? 맞다. 몹시 추웠다.
창문을 보니 열려 있었다. 열린 창문에서 냉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춥다. 가을 한밤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춥다니 이상하다.
창문을 닫으러 가다가 문득 매킨토시의 어떤 표시를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몇 시간이 아니라 한 달이 지나 있었다.

- 그때,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이 현관문이 앞쪽으로 스윽 열렸다.

-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민들레의 솜털 같은, 무슨 식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눈이었다.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11월에 눈?
서둘러 서재에 들어가 매킨토시의 날짜를 확인했다.
17월 77일 (망 亡)
이건 뭐지? 망가졌나. 도대체 지금은 언제일까? 몇 월이지? 도대체 며칠이나 지난 거야?
언제부터.
그래... 도대체 언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

- 책상 위를 보았다. 인형장과 똑같이 생긴 돌 하우스가 있다. 이 집이 서 있다. 현관문이 열린 상태로...
그 돌하우스 앞에 내 이름과 주소가 적힌 봉투가 있었다. 이 필적은 설마.
집어 들고 뒤집어보자 보낸 사람은 안라 시의 아스카 신이치로였다.
어떻게 된 거지? 이런 편지가 언제 배달됐지? 누가 우편함에서 꺼냈을까?
봉투 속을 살펴보려다가 책상 가장자리에 기묘한 물건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쇄된 A4용지 몇 장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집어 들자 제목 같은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책 두 권 중에서 뭘 먼저 읽을지 망설이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도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이치로의 편지와 고스케의 서류를 번갈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민했다.

- 일단 첫머리에 내가 처한 상황이 몹시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그의 감상이 적혀 있었다. 요컨대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신이치로에게 알린 셈이다. 그런데 언제? 나는 언제 신이치로한테 연락을 한 걸까.

-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나중에 일어났을 때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정상이란 어떤 상태일까. 적어도 시간이 확 흘러가지 않는, 환각 같은 영상을 보지 않는, 쓴 기억이 없는 소설이 나타나지 않는... 그런 상태일까. 아니면... 아니면... 처음부터 묘한 집에 이사를 오지 않은 상태일까.

- 사건이 너무나 처참해서인지 보도 규제 조치가 내려져서 대부분의 매체는 침묵을 지킨 모양이다. 그래도 스오우 루미가 산 채로 해부당해 쇼크사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게다가 시신에 남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튄 흔적으로 보아 산 채로 해부당하는 도중에 성폭행당한 것이 확실했다.
그 기자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반드시 드러나는 범인의 도착적인 기질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점이 제일 무서웠다고 한다. 범인은 담담히, 마치 '일'을 하듯이 범행을 저질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기자가 '의식 살인' 일 가능성을 고려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오우 코지에 대한 뜻밖이면서도 정말로 불쾌한 사실이 판명되었다. 실은 이 소년도 성폭행당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성적 학대를 받은 듯하다. 그 기자가 학대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떠올리기 싫어했기 때문에 '듯하다'라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부모님과 누나를 살해당한 소년이 그 후 몇 시간 동안 더욱 무시무시한 지옥을 체험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 모든 사건에서 소년이 치명적인 외상 없이 생존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물론 이유 따위는 모른다. 어쨌든 범인의 최종적인 목적은 이것이었다... 
영국에 있는 유령의 집에서 클라인 손다크가 '빈사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부분은 오류다. 진상은 도망치려다가 건널 복도에서 거실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것이다. 크리스비 스트렌지의 목을 손으로 조른 것도 소년의 저항을 막기 위해 그랬으리라고 추정된다.
어떻게 보면 상처 없이 얼빠진 상태로 발견된 시나노메 코레히토만이 범인이 의도한 '올바른 상태' 인지도 모른다. 스오우 코지가 빈사 상태였다는 것도 클라인 손다크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보도였던 듯하다. 하기야 정신적으로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을 테고, 클라인과 크리스비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체적 외상이 조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정말로 중태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범인이 의도한 상황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건 후에 소년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공통점... 그들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관계자가 소년들을 세상 사람들의 ... 

-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끽, 끽, 끽, 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하고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계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쓰구치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할 작정일까...?
저 녀석은 거실에서 1층 복도로 나가 복도 안쪽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와 이 방에 들어오려는 걸까. 그렇다면 저 녀석이 계단을 올라오는 사이에 나는 이 문으로 건널 복도로 나가서 거실을 통해 현관으로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저 녀석이 도중에 눈치채고 되돌아오면 1층 복도에서 딱 마주치지는 않을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되지?
가즈히토라면 어떻게 할까? 기요히토라면 어떻게 할까?
도저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으면서도 울음이 터지지 않도록 꾹 참았다. 원래라면 엉엉 울 상황이지만, 너무나도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머리와 마음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게다가 코토히토 자신도 지금 자신이 울음을 터뜨리면 아마 살아서는 이 집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으리라. 
좋아, 어쨌든 확인해 보자.

- 절규하는 소리는 어디서 난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캄캄한 침실의 침대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망막에 아까 전 발광 현상의 잔상이 남았는지, 눈앞의 암흑 속에 형형색색의 불꽃같은 불빛이 팟, 팟, 팟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모습은 그야말로 어둠 속의 무지개였다.
그런 요사스런 빛에 눈을 빼앗기는 바람에 잠시 동안 술에 취한 것 같았지만,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침실의 불을 켰다.
바로 침대를 쳐다보았다.
돌 하우스가 있었다.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본 것과 똑같은 상태로 보였다. 작은 집 주변의 구겨진 이불을 보고 복잡한 지형 같다고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꿈은 아닌 듯했다.
꿈...?
지금의 내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 인간은 재미있다. 이런 상황에서도(아니, 이런 상황이기 때문일까) 비현실적인 일을 꿈 탓으로 돌리며 제정신을 유지하려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금 웃어버리면 멈추지 못하고 영원히 웃을 것만 같은 기분이 ... 

- 방의 불빛을 등에 지고 우두커니 선 그 모습은 예전에 사진으로 본 독일의 거대한 그림자 환영, 브로켄의 요괴산에서 태양광선 때문에 안개에 비친 등산자의 그림자가 크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를 훨씬 진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브로켄의 요괴가 신기루 특유의 아지랑이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눈앞의 그림자는 극도로 점착성이 강한 용액 같은 아니,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질퍽거리는 진흙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은 그때 돌 하우스 건널 복도 건너편에 있는 누나의 방에서 나온 그림자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부딪친 왼발의 아픔도 잊고 열심히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니, 뛰어 올라가려고 했지만...

 

 

발문

 

- * 내용을 언급한 부분이 있으니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으십시오. -편집부



- 묘한 이야기를 쓴 것 같다. 하지만 이 묘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기 말미에 '마지막으로 이런이런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운운'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예전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편집자가 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원고 하나를 책 한 권으로 탄생시키려면 저자의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 물론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 '발문'에서는 '마지막으로'라는 실례되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우선 논픽션 작가인 시마무라 나쓰 씨, 감사합니다. 

 

- 한 통은 팬레터라고 해도 될 호의적인 내용의 편지였지만, 다른 한 통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이 보낸 우편물이었다. 작은 책자가 들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글자는 한 자도 없고 동봉한 편지도 엉망진창이라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물건이었다.
그렇게 극과 극인 편지를 두 통 받은 탓인지 그 후에 편집자가 전해준 우편물을 보았을 때, 뭐라고도 할 수 없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평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내용이기를 바라며 봉투를 뜯자 우편물의 정체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적힌 편지였다. 그렇다. 어떤 의미로는 역시 정신이 나간 사람이 보낸... 

- 편지를 보낸 사람(K. F씨라고 해두자)은 내 졸작을 읽은 후에 꼭 인형장에 살고 싶어졌다고 한다. 보고 싶어졌다가 아니다. 살고 싶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 졸작에 의지하여 구스노키 토지 건물 상회를 찾아낸 모양이다. 계산해 보면, 내가 그 집에서 나오고 나서 작품이 출판될 때까지 2년 반 이상이 흘렀고, 신문에 그 사건에 관한 기사가 크게 나지도 않았으니 그 사이에 누가 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F씨의 편지에 따르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 결국 그의 희망은 이루어졌다. 현재 임대 계약을 맺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나와는 반대로 오른편, 그러니까 동쪽 2층을 서재로 왼편, 즉 서쪽 2층을 침실로 삼았다고 한다. 오픈 홀과 안쪽 방은 "아깝기는 하지만 특별한 용도가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F씨는 나와는 달리 집을 구석구석까지 "완전히 조사"했다고 한다.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또한 뭐가 나오리라고 기대했는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고 한다. 그 수확은 "미쓰다 씨를 꼭 만족시킬 만큼 엄청나기 때문에" 한번 찾아와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 편지의 요지였다.

- 편지를 읽었을 때, 솔직히 말해 바로 무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A씨가 편지를 회사 앞으로 보냈기 때문에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읽었다. 따라서 상당히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느닷없이 원고나 자비로 출판한 책을 보내면서 흥미가 있으면 출판을 허락해 주겠다는 사람이나 조만간 해외여행을 갈 거라면서 귀국하면 미스터리 투어 기행문을 쓸 테니 여비를 부담하라는 사람의 편지에 비하면 아주 정중하고 진지한 편지였다. 그런데도 그 내용에는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리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 그런데 편지를 집으로 가져와서 며칠이 지난날 밤에 무슨 변덕인지 편지를 다시 읽어보자, 뜻밖에도 그 내용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몹시 초조하고 조바심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밤에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으면 부끄러워서 보낼 수 없다고들 하는데, 그 반대의 느낌을 맛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가려니 망설여져서 만약을 위해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에 번호를 문의해 보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일단은 답장을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의 업무에 쫓기는 사이에 9월 하순이 되었다. 

- 갑작스럽지만 선령 船靈 님을 아는가. 어선 같은 일본식 배의 통기둥이라고 불리는 부분의 일부를 직사각형으로 잘라낸 후, 남녀 인형 한 쌍과 머리카락, 그리고 오곡 또는 동전을 신체 神体 삼아 집어넣고, 잘라낸 나뭇조각을 다시 끼워서 원래대로 만들어 바다의 마물에게서 배를 지키는 선령 신앙의 수호신을 말한다. 그런데 서재의 창틀 옆 기둥이 선령 님의 신체를 집어넣는 기둥과 거의 똑같은 형식으로 잘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비밀스러운 공간에서는 기름종이로 감싼 무슨 서류 같은 것이 나왔다. 집어 들고 포장을 펼치자 기름종이가 훌훌 벗겨지더니 순식간에 부슬부슬 흩어졌다. 


- 도대체 뭐가 가공의 서적과 작품인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고 독자 여러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다. 다만 <신통습유> 때도 그랬듯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책을 혈안이 되어 찾기 시작하면 작가는 생각대로라면서 흡족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 단 작품의 본질에 관련된 중요 텍스트만은 명백하게 밝혀두자. <백물어라는 이름의 이야기>라는 작품은 실제로 존재한다.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도 실제로 응모되었다. 물론 작가는 쓰구치 이자히토가 아니라 미쓰다 신조 본인이다. 웬걸, 그는 이 작품 <호러작가가 사는 집>의 메타적인 취향을 철저히 하기 위해 일부러 호러소설 대상에 응모했다는 것이다! 한편 "아무 생각도 없이" 응모해서 낙선한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속편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져서" 썼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어느 쪽이 진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다만 확실한 것은 이야기 세계 속에 메타적 취향을 포함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현실을 끌어들일 뿐 아니라 그 현실에 역류하여 허구화하는 시도를 놀랄 만큼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쓰다 신조가 거기서 무엇을 노리는지는 작품 속 에도가와 란포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미쓰다 신조가 시나노메 료코와 함께 에도가와 란포의 도쿄를 돌아다니면서 나누는 란포 담론은 단순한 마니아의 유희에 그치지 않고, 바로 란포가 아니면 안 되는 필연성으로서 ...

- 결국 온몸을 허구적 세계 속으로 푹 가라앉힌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편집자로서의 자신, 미스터리와 호러에 대한 욕구가 업무 방면에서 승화되고 마는 자신이었을까. 하여튼 작가 3부작에 나타난 문체, 구성, 제재 등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미쓰다 신조가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으로 시작되는 3부작은 작가 미쓰다 신조가 완성한 청춘의 서이다.

- 그러니 만약 당신이 이 책으로 처음 미쓰다 신조를 접했다면 부디 그 작가적 방황의 변천사를 시간적 흐름대로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이미 '도조 겐야' 시리즈의 독자라면 분명 여기저기에서 그 작가 탐정담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미쓰다 신조의 세계는 언제든지, 이 현실과 기묘하게 비틀린 상태로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는 것이다.

히히히.

 





옮긴이의 말 

 

김은모


미쓰다 신조는 미스터리와 호러를 절묘하게 융합한 작품으로 현재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대표작은 역시 방랑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가 등장하는 '도조 겐야'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 속한 작품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받았으니 호러에 미스터리를 접목한 그의 시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쓰다 신조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조금 다릅니다. 미스터리 팬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호러를 주축으로 한 '유령의 집' 소설입니다. 그런데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던가요? 역시 미쓰다 신조는 데뷔작부터 달랐습니다. 


우선 미쓰다 신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진짜 현실을 작품 속에 끌어들였다는 것부터 눈길을 끕니다.

호러와 관련된 책 편집자로서 '월드 미스터리 13'을 기획했다거나, <안개 저택, 미궁초자 제1화>라는 단편이 아유카와 데쓰야의 앤솔러지에 실렸다는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전부 사실입니다(작품 속에 소개된 소설과 인명 역시 대부분 실재합니다). 번역할 때 아마존 재팬에서 '월드 미스터리 13'의 표지를 참고했을 정도니 말 다했죠. 

이처럼 작가가 끌어들인 극명한 현실은, 작품 속의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어 독자를 혼란시키고 이 작품의 무대인 '인형장'에 기묘한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덧붙여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자신이 사는 '인형장'을 무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허구가 더욱 복잡하게 뒤얽힙니다. 

이처럼 작가의 현실과 작품 속의 사건, 그리고 작품 속의 작품이 교묘하게 결합되면서 형성되는 구도는 독자에게 공포를 안겨줄 뿐 아니라,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스릴을 선사합니다.

결합된 현실과 허구가 자아내는 묘한 분위기와 후반부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 호러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잊지 않고 양념처럼 첨가한 미스터리적 요소들. 과연 환상의 데뷔작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렇게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작품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건 미쓰다 신조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에는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지는' 부분과 '어쩐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본들 답은 나오지 않겠지요. 그때는 제일 무서운 방향으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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