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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일곱 명의 술래잡기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7.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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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24.01.02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널리 알려진 놀이다. 강렬한 섬뜩함과 함께. 

 

일본의 '다루마가 굴렀다'는 한국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상당히 유사한 놀이인데,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이 놀이와 관련한 의문의 연쇄 사망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다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P/F의 확률이 있는, 말 그대로 게임의 룰은 존재하는 열린 계였다면 

<일곱 명의 술래잡기>에서는 대상은 고정되어 있고 순서만이 달라지는 닫힌 계였다는 차이는 있겠다.

(추가.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2013년에 출간되었던 바 있으나, 24년에 새롭게 개정판이 재간되었다.)

 

어린이들의 놀이가 무시무시한 것과 연결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생각보다'인 이유는, 그것이 아이들의 상상일 거라 흘려버리기 때문에.

애초에 그 놀이가 어디에서 온 것일지는 깊게 조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여섯 명이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중년에 접어들어 '잊고 있던 무서운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은 차례로 한 명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어렴풋하게 떠오른 기억 속의 아이들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 여섯...?

어라. 

나는 술래인데.

왜... 여섯 명이지...?

 

이 작품은 미쓰다 신조 스타일이 집약된 작품이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호러가 아닌 미스터리에 속할 것 같다. 말 그대로 경계에 속하는 작품.

하지만 구조를 살펴보면 작가 시리즈와도 무척 닮아 있는데, 하야미 고이치와 오오니타 다츠요시는 각각 미쓰다 신조와 아스카 신이치로에 대응한다. 

 

중심화자인 고이치는 작가로, 제목도 같은 <일곱 명의 술래잡기>라는 작품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추리 파트너가 오오니타 다츠요시.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일곱 명의 술래잡기>가 이야기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클라인 병 같은 세계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해서 만약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셨다면, -혹은 실망하셨더라도- 모쪼록 호러 쪽도 한 번만 시도해봐 주시길.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서부터 실화인지 그 경계를 흔드는.

이야기를 이야기로만 남겨두지 않고 현실에 한 발 걸쳐두게 만드는.  

미쓰다 신조가 가장 빛나는 장르니까.

    


   

 

- [다~레마가 죽~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흐릿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누마타 야에의 등줄기에 오싹한 오한이 퍼졌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아이가 음침한 억양으로 읊조리는 동요 같기도 하다. 그 불길한 목소리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곧바로 뇌리에 떠오른 것은, 어둠 속에서 어린아이가 속삭이는 이미지였다. 

 

- 젊었을 때 잃은 아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들어서 어지간한 일로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는데, 그것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듯 기분 나쁜 노랫소리가, 더욱 생생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되어서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런 시간에?
앞으로 10분만 더 있으면 자정이다. 목소리로 생각하면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대여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 아니면 여자아이. 

 

- 부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람?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지만 곧바로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이가 어디에 연결되는지 알고서 전화를 걸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야에는 생명의 전화 사무국에 있었다. 그녀는 현재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에서 야근을 하는 중이고, 조금만 더 있으면 오늘의 근무를 끝낼 참이었다. 그녀와 교대할 상담원은 이미 출근해 있다. 전화 한 통을 받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을 생각하면, 이 전화는 다음 상담원으로 돌려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 하루 중에도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의 시간대에는 생명의 전화에 걸려오는 전화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는 상담자와 전화 회선의 숫자를 주간보다 늘린다. 하지만 당연히 사람에도 전화에도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전화를 받을 수는 없다.
'몇 번을 걸어도 연결이 안 된다.’
생명의 전화에 보내오는 의견 중에 가장 많은 불만이 이것이었다. 물론 상담원들도 평소에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모처럼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주었는데도 응할 수 없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로운 상황이다. 

- 생명의 전화는 현재 각 도도부현(일본 전역을 47개로 나누는 행정구역 단위_역주)에 하나 이상의 센터를 두고 있다. 하나의 센터가 24시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200명 이상의 상담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담원은 전원 자원봉사자들이며,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물론 야에도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만으로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전화 상담원 일이 만만치는 않다. 고민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돕고 싶다는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를 항상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 일기일회 一期一會(평생에 단 한 번 있는 만남-역주).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오는 상담자와 그것을 받는 상담원만큼 이 사자성어의 의미에 딱 맞는 관계도 없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10년이 지난 뒤쯤이었을까. 그것을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눈앞의 전화가 울렸을 때, 야에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은 것은 그렇게 축적된 과거가 있었던 탓이다.

- "네."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를 기다린 뒤에 천천히 수화기를 든다. 갑자기 받으면 깜짝 놀라서 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담원 쪽도 그전에 받은 전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새로운 상담자로 전환해야만 한다. 그래서 벨이 울리는 십여 초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입니다."

-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도호쿠 출신의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대형 부동산회사에 취직했다. 대졸자에게 밀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일했다. 덕분에 과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해서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퇴직하게 되고 말았다. 한동안 같은 업종의 작은 회사들을 전전했지만 잘되지 않아서, 3년 전부터 자동차 공장의 기간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작년 3월에 갑자기 해고되었다. 
본가로 돌아간 그는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보낸 곳만 200 군데가 넘었지만 그중에 면접까지 갈 수 있었던 회사는 열 곳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첫 회사를 퇴직한 뒤에 전직이 많았다는 점과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경력, 적지 않은 나이를 이유로 들며 어디에서도 채용해주지 않았다. 면접을 거듭할수록 남자의 자존심은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이윽고 저축한 돈도 바닥나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부모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점차 아버지와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해서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쿄로 나왔다. 그러나 가진 돈이 금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직장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죽는 수밖에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 [사실은 유명한 아오키가하라의 수해 (일본 야마나시현에 있는 거대한 숲. 자살의 명소로 유명하다-역주)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어째서인지 문득 교통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정말인 듯했다. 그럼 그 돈을 뭔가 다른 일에 쓰자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하자. 그러나 그래봤자 고작 수천 엔이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끝에 생명의 전화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전화를 걸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야에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인사를 하자, 남자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전화 너머에서 흐릿하게 숨죽인 오열이 흘러 나왔다. 그때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괴로운 체험을 이야기할 때에도 울지 않았던 남자가 그녀의 한마디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 "아무래도 혼선되었던 것 같네요."
자기도 믿기 힘든 해석이었지만 일단 야에는 그렇게 말했다.-그쪽에는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렸나?
"네. 이렇게 늦은 시간이라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굉장히 걱정했어요."
[혼선이라...]
"죄송합니다."
[나는 생명의 전화에 전화하는 것까지 방해받는 건가...]
남자의 자조적인 목소리에는 명백히 어두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야에를 긴장시켰다.

- 애초에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라면, 어디의 누군지 모르는 아이라고는 해도 안부 정도는 신경 쓸 것이다. 일단은 '괜찮을까',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는데' 하는 상식적인 말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자신이 건 전화인데도 방해를 받았다며 한탄하고 있다. '생명의 전화에까지'라는 표현으로 보면, 이제까지 그것 말고도 많은 괴로운 일을 겪고 불합리한 경험을 해왔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 전화 상담원 양성 강좌 지원자 중에도, 자신의 성공 혹은 실패한 인생 경험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취득한 전문지식을 활용해서 상담자를 돕겠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당사자가 그런 생각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오만한 자세는 실제 상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명의 전화 상담원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상담자의 좋은 이웃이 되는 것, 그것뿐이다. 아주 간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의 이야기에 그저 귀를 기울인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그 심정에 바짝 다가간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을 알고, 걱정하고, 건강히 지내길 바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런 마음을 전하는 것이 생명의 전화의 역할이다.

 

- [역시 운이 좋았을까.]
"전화가 연결된 게 말인가요?"
[그래.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에는 목을 맸을 테니까.]

갑자기 남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생명의 전화의 연수 과정에서는 '희사관념 希死觀念'이라는 낯선 단어를 배운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상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그 때문에 막상 전화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상담자는 많다. 그러나 상담원이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에 절망이나 고독, 자책이나 자포자기 같은 상대의 감춰진 심정이 보이기 시작하고 상담자에게서 위기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 희사관념을 확인한다. 물론 상담을 통해 신뢰관계를 쌓은 상태에서 아주 진지하게 진행해야만 하는데, 상대에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존재하는지 어떤지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이다. 

 

- 그런데 상담자 중에는 직접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는 사람도 있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자신의 괴로움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 기대감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자살하고 싶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리라. 
당연하지만,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원 일을 아무리 오래 했더라도 자살하겠다는 말에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항상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 남자는 일단은 자살을 단념했다.
만약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끊어버렸다면... 하고 생각하면 오싹해지지만, 일단 야에는 안도했다. 어쨌든 지금이 남자는 목을 매지 않고 전화 통화를 하고 있으니까.

 

- 상담자의 희사관념을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에 상담원은 자살의 위험도를 판단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계획', '수단', '장소', '시기'의 네 가지 항목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첫 번째인 '계획'이란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미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두 번째인 '수단'이란 어떤 방법으로 죽을 생각인가, 그 수단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세 번째인 '장소'란 실행할 장소를 정했는가, 아직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네 번째인 '시기'란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죽을 생각인가, 아니면 몇 달이나 나중의 계획인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 말할 것도 없이 첫 번째부터 세 번째 항목이 상세할수록, 그리고 네 번째 항목인 시기가 빠를수록 자살 위험성은 높아진다.
남자의 말로 추측해 보면 이미 오늘 밤까지 몇 번인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듯하다. 즉 계획을 한창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수단은 목을 매는 것. 장소는 알 수 없다. 시기는 그야말로 지금이다.

 

- 침착해. 아직 괜찮아.
야에는 상대를 향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다.
자살 위험이 있는 상담자에 대한 대응은 긴급도가 높은 '실행 중'과 '예고·통지', 긴급도가 비교적 낮은 '염려·위험'의 세 가지 중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실행 중'은 전화를 걸어온 단계에서 이미 손목을 그었다, 약물을 삼켰다, 혹은 투신할 건물을 물색하고 있다, 처럼 거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조속한 대처가 요구된다.
'예고·통지'는 실행 중에 비하면 아직은 유예 시간이 있다. 단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살 위험도를 판단하는 네 가지 항목을 상담자로부터 신중하게 알아내야만 한다.
'염려·위험'은 자살의 시사, 이른바 죽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에 비하면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오는 상담자에는 원래부터 희사관념을 가진 사람이 많다. 염려·위험 단계에서 자살의 신호를 알아차리면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 이 남자의 경우는 완전히 실행 중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에 어떤 법칙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것도 전화에 관련되어 있다. 야에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 정말 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았던 탓에 친구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나중에 그 친구가 알게 되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전화 게임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본인의 목숨이 걸려 있는 데다 불합리하게도 친구까지 정신적 고통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상담자에게 그것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 '죽다니, 그런 짓은 그만두세요', '절대 안 돼요' 같은 직접적인 명령이나 '당신이 죽은 뒤의 주위 사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같은 간접적인 설득은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남자는 여전히 자조적인 말투였지만, 야에는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상담자가 목을 맬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누군가가 말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받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법칙을 정한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옛 친구들이라면 어느 시절의 친구들인가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친구야.]
"상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셨네요."
[30년은 됐을까...]
추억하는 듯한 남자의 말에 그의 나이가 서른여섯에서 마흔둘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러나 현재 이 남자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무래도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인 듯했다. 잠시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조금씩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은 이 남자가 있는 곳도 밝혀내야만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다행히 그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신사에서 어떤 놀이를 하셨나요?"
[가장 자주 했던 것은... 그렇지. 친구들에게 이 장소에 대해 말할 때 힌트로 알려줬던 놀이였지.]
"그러고 보니 어떤 힌트였는지 못 들었네요."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다~루마가 굴~렀다~.]
어린아이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에는 몹시 당황해서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 평소의 어조로 돌아온 남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흐릿한 한기에 감싸이고 있었다.

우연인가...?
이 전화를 받았을 때에 새까만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이 전해져 왔던 그 어린애 같은 목소리의 억양과 지금 이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린다.
다~레마가 죽~였다...


- 그것은 '다루마(달마의 좌선 모습을 본뜬 인형이나 장난감. 독특한 얼굴과 둥글고 큰 눈이 특징이다-역주)가 굴렀다'를 빗댄 말장난인가? '다루마'를 '다레마'로, '굴렀다'를 '죽였다'로 바꾼 걸까?
무슨 의미일까?

- 다루마가 굴렀다. 이것 자체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놀이다.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이고, 조금 널찍한 공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단히 할 수 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술래가 된다. 술래는 건물 벽이나 담벼락, 혹은 전신주나 나무 같은 곳 앞에 다른 이들에게 등을 보이는 상태로 선다. 다른 사람은 술래로부터 몇 미터 정도 떨어져서 술래의 등을 보는 자세로 선다. 준비가 되면 술래가 "다루마가 굴렀다!"라고 외친다. 이것은 빨리 말해도 되고 일부러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은 "다루마가 굴렀다!"라는 말이 들리는 동안에 될 수 있는 한 빨리 술래에게 다가간다. 단 술래의 말이 끝나자마자 술래는 돌아본다. 그때 아직 움직이는 모습을 술래에게 들키면 "누구누구가 움직였어"라고 지적받고서 포로가 된다. 포로는 술래의 어깨에 한 손을 얹은 채로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술래가 등을 보이고 있는 사이에 움직이고, 돌아볼 때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정지한다. 이 움직임과 정지의 반복이 '다루마가 굴렀다'란 놀이의 재미다.

- 놀이가 진행됨에 따라 포로의 숫자는 늘어간다. 그 한편으로 술래에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도 생긴다. 움직이는 모습을 들키지 않고 술래의 곁까지 갈 수 있었던 사람은, 술래의 어깨에 대고 있는 포로의 손을 손날치기로 잘라낸다. 포로가 한 명도 없는 경우에는 술래의 등을 때린다. 그 순간 모두 일제히 도망치는데, 술래가 돌아보고 "스톱!"이라고 외치면 그 자리에서 멈춰야만 한다. 술래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세 걸음을 뛸 수 있다. 

- 확실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자원봉사로 하고 있는 자살 희망자의 구조 활동에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 역할은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규 근무시간 내에서라면."
마쿠마의 대답은 지극히,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관료주의적이었다.

 

- "정신보건 및 정신장애자 복지에 관한 법률에 기초해서 도쿄 도민의 정신적인 건강 유지와 향상, 거기에 정신장애자 의료의 충실과 사회적 자립 촉진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며 추진하는 것이니까."
새삼스럽게 듣지 않아도 매일 그런 업무를 하고 있으니 요시미츠도 충분히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기에 정신적인 고통으로 희사관념을 품게 된 사람을 돕는 일이야말로 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니시도쿄 정신보건 복지센터는 이 지방자치단체가 시행 중인 자살대책의 핵심적인 위치를 담당하고 있다.

 

- 그렇다고 해도...
하다못해 대외적으로는 좀 제대로 된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 쪽의 야마가타 사무국장은 분명 기가 막혀하고 있겠지. 그것을 실감하는 만큼, 요시미츠는 항상 비참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
애초에 마쿠마는 과장의 업무는 고사하고 평사원 중 선배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하를 지도하는 데 서툴다. 아니, 그냥 서툰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목까지 잡는다. 게다가 어린애처럼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상사에게는 능력 있는 관리직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면 보통은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그에 대한 상부의 신임은 두텁다.
자신을 포함한 과장의 부하들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요시미츠는 생각한다. 마쿠마 본인이 해야 할 업무까지 대부분 부하들이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과장에 대한 평가는 너무 높다. 처세술이라도 뛰어났다면 그것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인정하겠지만 그것도 영 서툴다. 
어지간히 강력한 연줄이나 배경이 있는 게 아닐까. 

- 요시미츠는 20대 후반까지 대학 연구실에 있었고, 그 뒤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올해 봄에 이 직장으로 전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로 나가면 다양한 고난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폐쇄적인 대학보다는 개방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마쿠마 과장처럼 무능력한 인간이 활개치고 있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한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이것이 공무원 사회인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신입치고는 많은 나이로 이 센터에 배속되게 되었을 때, 요시미츠는 골칫덩이 과장을 돌보는 역할을 떠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살대책을 위한 특별 프로젝트 팀을 짜기 위해서라고 들었는데,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던 것이 아닌가 그는 의심하고 있었다. 

- 어느 친한 여성 동료가 말하기로는, 마쿠마는 부하 중에서도 요시미츠를 가장 심하게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요시미츠'가 아니라 '요시코'라고 모멸적인 어조로 부른다고 한다. 신참이기 때문이냐고 묻자, 그녀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믿겨지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분명히 도키와 씨의 외모를 질투하고 있는 거예요."
요시미츠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여자아이 옷을 입혔을 정도로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용모를 갖고 있었다. 목소리도 예뻤고, 변성기를 맞이한 다음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성뿐만이 아니라 동성으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은 적도 있었다.
"... 영문을 모르겠군요."
요시미츠가 당황하자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충고했다.
"저기요, 여자보다도 남자의 질투가 무서운 법이에요."

 

- 결국 다마 시에 살고 있던 마쿠마 호세이에게 연락이 된 것은 그날 오후였다.
그런데 상담자에 대해서 자세히 듣더니, 처음에는 늘 그렇듯이 의욕이 없었던 마쿠마가 웬일인지 차츰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야마가타에게 받은 자료를 팩스로 보내 줘."
열 살 이상이나 연상인 사무국장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여전히 탐탁지 않았지만, 마쿠마는 웬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남자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오늘 밤까지 서로 생각해 두자고. 그렇지, 10시에 자네 집까지 차로 데리러 가지. 거기서 마다테 시까지 30분 정도면 될 거야. 차 안에서 의논도 할 수 있겠고." 
사전에 시간을 들여서 대책을 짜지 않는 부분은 평소대로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장 스스로 오늘 밤에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혼자서 대응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요시미츠는 더욱 놀랐다.
설마 아는 사이인가...?
요시미츠는 곧바로 상담자와 과장의 관계를 의심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한 느낌이다.  

 

- 등 뒤에서 마쿠마가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뭔가 이상하다고, 저거..."
요시미츠의 목덜미 털이 곤두섰다. 오싹하는 전율이 곧바로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무리해서 벼랑 아래의 그것을 부르고 있는지. 사실은 그것에 관계해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고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서 스스로 얼버무리고 있다는 것을.
요시미츠가 곧바로 도망치지 않았던 것은 얄궂게도 마쿠마가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장님, 가죠."
벼랑 앞을 벗어나서 요시미츠는 돌계단으로 향했다.
"가? 가다니 그만 돌아가자는 얘기야?"
마쿠마가 당황하며 뒤를 따라온다. 요시미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발밑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최대한 빨리 걸었다. 돌계단을 내려갈 때도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모순되는 행위였지만 그는 그것에 최대한 집중했다.
 
- 부스럭부스럭...
그렇게 요시미츠의 등 뒤에서도 똑같이 초목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앞쪽만이 아니라 뒤쪽에도? 깜짝 놀라 돌아보니, 마쿠마의 모습이 없다. 아무래도 쏜살같이 달아난 모양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왔던 수풀 쪽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가신 게 사라져서 잘됐네.
요시미츠가 그렇게 기뻐한 것은 정말로 잠깐 동안이었다. 부스럭부스럭, 와삭와삭, 하고 눈앞의 수풀 속에서 꿈틀거리는 누군가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그도 견딜 수 없이 무서워졌다. 
어쩌면 그것은 요시미츠와 마쿠마의 대화를 수풀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요시미츠가 수풀 속을 들여다볼 생각인 것을 알아차렸기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건 남자, 야마가타의 자료에 적혀있던 자살 희망자가 그런 기묘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풀 속에 있는 것은...
정신이 들고 보니 도키와 요시미츠는 그 자리에서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었다.

- 월요일 아침, 하야미 고이치는 평소대로 7시 반에 일어났다.
세수를 한 뒤에 신문을 읽으면서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커피를 끓이고 서재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체크한다. 바로 훑어봐야 할 것과 답신이 필요한 것에만 대응하고, 나머지는 저녁까지 내버려 둔다. 아침 시간은 귀중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안에 '원고'라고 적힌 아이콘을 클릭한다. 그리고 표시된 십여 개 중에서 '일곱 명의 술래잡기'라고 되어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면서 그의 하루 일이 시작된다.

- 고이치는 3년 전에 호러 미스터리 <심홍의 어둠>으로 데뷔한 신인 작가다. 데뷔작을 발표하기 전에는 학술서 전문 출판사인 치소샤에서 15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작은 어디까지나 취미고, 작가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리뷰자 주 : <붉은 옷의 어둠>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 당시에 그와 친하게 지내던 저자 중에 벌써 10년 이상 알고 지내는 덴코쿠 대학의 시테가와라 후미오라는 인물이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체형은 거의 사각형이고 덤으로 입도 험해서 옛날부터 학생에게는 '시테가와라'가 아니라, 도깨비기와라는 뜻의 '오니가와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예순을 넘겼으니 조금은 온화해질까 생각했지만, 그 고약한 성격을 최근 들어 더욱 갈고닦고 있는 듯했다. 


- 시테가와라는 근대문학 교수인데도 전문 분야에 대한 저서보다도 환상문학이나 괴기소설, 요정이나 유령이 나오는 민간전승, 장송의례나 빙의신앙 등의 괴이한 민속학, 더 나아가서 호러영화에-관한 책 등 취미 쪽의 저서가 많은 괴짜였다. 그 덕분에 뒤에서 오니가와라라고 불리고 있어도 학생들로부터 묘한 인기가 있다. 
다만 고이치 같은 학술서 출판사의 편집자에게는 상당히 성가신 인물로, 그는 만날 때마다 회사의 경비로 먹고 마시려 하곤 했다. 그러면서 조금도 자신의 전공 분야에 관련된 원고를 쓰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지만 어쨌든 괴이한 존재에 대한 조예가 깊다. 그것 때문에 같은 취향을 가진 고이치와는 언젠가부터 업무 관계를 넘어선 사이가 되어 있었다. 

- 언젠가, 역시나 회사 경비로 장어구이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던 시테가와라의 입에서 '덴잔텐운'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직후에 데뷔한 괴기환상 계열 작가로, 탐정 소설도 썼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곤보 계곡의 참극>, <후텐 병원 살인사건>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는 게 적은 고이치는 모르는 작가였다.
"덴잔텐운의 작품은 상당한 개성이 있었지. 일반 대중에게 먹힐 작품은 절대 아니었지만, 일단 매료되면 계속 찾아 읽게 돼. 잡지만 발표하고 단행본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찾아 읽는 보람이 있는 작가지."
"선생님께서는 전부 다 모으셨겠죠?"
"뭐, 그렇지."

 

-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지식을 얻은 것뿐이지, 특별히 고이치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처럼, 장어구이 도시락값을 어떻게 회사 경비로 때울지나 고민했겠지.
그러나 이어서 시테가와라가 묘한 소리를 했다.
"책과 작품이 실린 잡지는 대부분 모았지. 한데 그 작가에게는 마지막 원고가 있었어."
"절필인가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군."
"집필 중에 돌아가신 거군요."
"아니, 행방불명되어버렸어."

- 듣기로는 사연이 있는 묘지의 취재를 하던 중에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그때 집필 중이었던 <심홍의 어둠>이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와 함께, 완전히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교수에 의하면 암브로즈 비어스나 후지모토 센처럼 행방불명인 채로 소식이 끊긴 작가는 그 외에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덴잔텐운 정도로 수수께끼 같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상황에서 사라진 사람은 보기 드문 모양이다.

- 고이치는 이 에피소드에 곧바로 매료되었다. 창작 의욕을 크게 자극받아 단숨에 호러로도 미스터리로도 볼 수 없는 장편소설을,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완성시키고 말았다. 일단 작품을 완성하면 누군가에게 읽어보게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공교롭게도 시테가와라밖에 적임자가 없었다.
또 뭔가 한턱내라고 하겠군.
자비로 지불할 것을 각오하고 교수의 연구실에 가서 원고를 보여주었다. 시테가와라는 "옷!" 하고 조금 놀란 얼굴을 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고이치가 뭐라고 말해도 ...

- 장난으로 끝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시테가와라 선생님에게 진짜 작가는 누구냐고 물어보니, 몹시 놀라서 당황하셨다고 하더군요."
"교수님이 순순히 털어놓으셨습니까?"
"... 아뇨. 쓸데없는 저항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편집장님이 '선생님의 저작물로 출간된 뒤에 만약 다른 사람의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막대한 손해배상이 청구될 수 있습니다만'이라고 말하자마자, '그냥 장난 좀 쳐본 것뿐이야'라고 말씀하셨던 모양이라..."
정말 무서운 인물이다.
"서, 설마 학생의 작품에도 똑같은..."
편집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때도 선생님은 이건 자기가 쓴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편집장님이 원고에 나오는 젊은이들 은어의 의미를 물어보자 엉뚱한 대답을 해서 단박에 들켰다고..."
"그렇군요."
너무나 시테가와라 교수답다.

 

-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자신도 피해자이지만, 곧바로 고이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테가와라에게 분노를 느끼기보다도 먼저, 교수의 나쁜 평판이 퍼지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본인을 마주했을 때는 전혀 달랐다.  

- "저는 작가예요! 신경 쓰인단 말입니다."
"뭐 하다면 공저로 내 이름을 올려도 괜찮네."
그 뒤로도 시테가와라의 어드바이스라는 이름의 딴지를 피하면서, 하야미 고이치의 데뷔작인 <심홍의 어둠>은 무사히 출간되었다. 타이틀은 편집자와 상담해서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덴잔텐운의 절필에 대해서는 소설 내에서도 제대로 언급하고 있기에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 사실을 보고했을 때의 교수의 의기양양한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진해 보였다.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은 도저히 칭찬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 <심홍의 어둠>은 무슨 상을 받은 것도 아닌 신인의 데뷔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적어도 두 번째 집필 의뢰는 들어왔다. 거기서 고이치는 처음으로 '삼부작'의 구상을 짰다. 그것이 다음 해의 <선혈의 그림자>와 다음다음 해의 <주묵 朱墨의 밤>으로 완결된 통칭 '적흑 시리즈'라고 불리는 세 작품이다.


- 참고로 <심홍의 어둠>의 인세는 전부 고이치가 받았다. 일단 시테가와라에게도 이야기는 했지만, "필요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출간 축하 파티를 하자며 고급 중화요리점에 끌고 갔고, 돈을 낸 사람은 물론 고이치였다.
다행히 신작을 낼 때마다 전작이 증쇄되어, 작가로서의 고이치의 인지도도 조금씩 올라갔다. 작년에는 <주묵의 피>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살육시계>와 <저녁놀 언덕의 마물>이란 작품도 발간되었다. 그리고 이번 달 하순에는 <심홍의 어둠>의 문고판 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 치소샤는 2년 전, 아직 <선혈의 그림자>를 집필하던 중에 퇴사했다. 마침 사업 축소에 따른 인원 정리 이야기가 나와서, 스스로 손을 들었다. 데뷔하자마자 전업 작가가 되는 것에 전혀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편집자와 작가를 겸업할 경우, 1년에 한 작품이 한도일 것이다. 이른바 일요작가다. 원래부터 취미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자신이 작가로서 어디까지 통할지 시험해보고 싶은 기분이 끝없이 솟아났다. 돌아보니 30대 후반까지 너무나 평범한 인생을 걸어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전혀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그런 크고 무게 있는 결단 같은 것은 그때까지 한 기억이 없다. 지금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이것을 놓치면 후회하지 않을까. 여기가 하야미 고이치의 터닝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몹시 망설이며 고민한 끝에, 고이치는 샐러리맨에서 작가로 전직했다. 그의 등을 민 것은 '쓰고 싶다'라는 자신의 창작 의욕과 <심홍의 어둠>을 향한 수많은 비평과 감상 같은 평가들이었다.

- 나중에 시테가와라에게 그것을 보고하자, 그는 아주 화를 냈다.

"나하고 의논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서두른 건가."

"죄송합니다."
"두 가지 일을 겸업하는 건 나도 하고 있으니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힘드시겠죠."
"당연하지. 하지만 휴가를 내든 땡땡이를 치든, 매달 제대로 급료가 지급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유급휴가를 얻는 것은 괜찮아도 땡땡이치는 것은 월급 도둑질이겠지. 평범한 회사라면 잘릴 것이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고이치는 입을 다물었다.

- 드디어 7월이 되자 고이치는 신작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메인 테마와 전체의 골격은 전부터 막연하게 머릿속에 있었다. 그것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플롯을 짤 필요가 있다. 고이치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짜기보다는, 생각난 장면째로 플롯을 짠다. 그것을 반복해서 조금씩 전체를 구축해 간다. 이제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플롯을 짜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의외로 속을 썩였다. 몇 가지 단편적인 것은 떠오르지만 좀처럼 하나의 장면으로까지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작업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를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고이치는 초조해졌다.

- 신작은 그의 저서로서는 여섯 번째지만 연재 없이 출간하는 오리지널 단행본으로는 네 번째에 해당한다. 즉 완결을 낸 적흑 시리즈 다음에 처음으로 나오는 신작 장편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테마를 고를 때도 최대한 이미 나온 다섯 권과는 다른 것을 찾았다. 솔직히 이전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 새로운 하야미 고이치를 보이고 싶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런 부담감이 아무래도 좋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7월도 첫 주가 지나고 둘째 주가 지나서 이미 하순에 접어들어버렸을 무렵, 간신히 '일곱 명의 술래잡기'라는 타이틀만이 정해진 신작을 고이치는 일단 쓰기 시작했다. 
이 이상 이것저것 생각해 봤자 전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작가들 중에는 메인 아이디어만이 머릿속에 있고, 이후는 집필하면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새로운 테마에 도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번에는 집필 스타일도 바꿔보자.
 
- 이어진 말에 고이치는 더욱 놀랐다. 에이스케로부터 지난주 금요일 심야에 어쩐지 뒷맛이 나쁜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설마...
어쩌면 에이스케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 고이치는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그럴 수가...
엄청난 후회의 마음이 단숨에 밀려 올라왔다.
전화를 한 번 다시 건 정도로 포기하지 말고, 역시 본가를 방문했어야 했다. 아무리 신작 집필이 정체되어 있어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오랜 친구를 죽게 내버려 두다니...

- "여보세요? 하야미 씨?"
정신이 들자, 형사가 부르고 있었다.
"대체..."
고이치는 에이스케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려고 하다가 인터폰으로 나눌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단념했다.

"자,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행히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라, 일단 황급히 주방의 테이블 위부터 정리했다. 거실에는 긴 소파 하나밖에 없다. 옆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저쪽도 불편해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현관문을 열자 연배가 있는 형사와 젊은 형사 두 사람이 이 더운 날씨에도 양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아뇨, 이쪽이야말로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합니다."
연배가 있는 형사는 겸손한 태도에 어조도 부드러웠지만, 젊은 쪽은 사무적인 모습에 약간 차가운 인상이었다.

- "대체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황급히 그는 고이치가 당황할 정도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쪽이 알고 싶은 것만 계속 묻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죠."
"아뇨, 그게 일이실 테니..."

사실 다몬 에이스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채로 계속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부담이 된다. 그것을 참작해 주기를 바란다고 고이치는 말을 잇고 싶었지만 하세가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감사하죠. 역시 미스터리를 쓰시는 작가님답습니다. 경찰 수사에 대해서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시군요." 
"그렇지는..."
"아뇨, 일반인에 비하면 틀림없이 그렇겠죠."
"하아..."

 

- "그래서 다몬 씨가 이야기한, 자신의 상황이란 건 뭡니까?"

고이치는 형사가 자신의 질문을 능숙하게 피해 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아서, 고이치는 일단 순순히 통화내용을 이야기했다. 작년 말에 에이스케가 정리해고 당한 것부터, 그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은 뒤 빚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계속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에이스케가 했던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형사들이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곳 같아...
확실히 낯이 익긴 하지만, 완전히 낯선 동네처럼 느껴진다. 그런 거리의 모습이 그가 가는 길 앞에서 계속 나타났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 고이치는 자문하다가 간신히 깨달았다. 동네 전체는 이미 알고 있던 곳이지만 눈에 보이는 건물 하나하나는 모르는 것이다. 아마 보존지구로 정비된 결과 세부적인 인상이 변해버린 탓이겠지. 그곳은 어릴 적에 그가 알던 '낡고 오래된 마을'이 아니라 이미 '전통적인 가옥이 보존된 귀중한 마을'로 변모해 있었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알게 되자, 적잖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시절의 고이치는 이 동네의 어딘지 모르게 빛바랜 빛깔과 문득 떠도는 나무 냄새, 좁은 골목을 불어 나가는 바람,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조용하게 흐르는 시간... 같은 것들을 몹시 좋아했다. 여기서 놀았던 적은 없고 그냥 지나다니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사이에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이 사랑스러웠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감정조차 깨닫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다시 방문해서야 간신히 실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니까. 

- 문득 나타난 골목에 들어갔다 나오거나 하며 무작정 동네 안을 방황했다. 날에 따라서 들어가는 골목을 바꾼다. 그러면 같은 길이라도 반대편부터 시작하게 되므로 동네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걷는 루트를 조금 변경하는 것만으로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어느 때인가 고이치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골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반대편에서 한 소년이 걸어왔다. 깜짝 놀라 멈춰 서려는 참에 저쪽도 이쪽을 깨닫고 앗, 하고 놀라는 것을 알았다.

 

- 소년은 뽀얀 피부에 홀쭉한 체형으로, 어딘지 모르게 병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어두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의 경우에는 그런 용모나 인상이 일종의 기품이 되어 나타나 있었다. 교토의 초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던 느낌이었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연상 같기도 연하 같기도 했다. 어쩐지 신비한 이미지였다. 
두 사람은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소년이 걷기 시작해서 고이치도 골목으로 들어갔다. 지나치기 한참 전부터 각자 좌우로 비켜나 있었다. 지나치는 순간, 가볍게 소년이 인사를 해서 고이치도 당황하며 인사했다. 어쩐지 부끄러운 듯, 간지러운 듯한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 골목을 나가서 돌아보니 소년도 반대편에 멈춰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이치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뒷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다. 당시의 고이치가 아는 어휘 속에는 없는, '낯간지러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분이었다.
소년은 오른손을 들고, '바이바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서둘러 고이치도 같은 동작을 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 이곳을 방문할 때까지는 자신이 이 정도로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변했다고는 해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풍경을 보고 뇌가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엄청나게 길고 높게 느껴졌던 돌계단도 지금 이렇게 보면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경사가 급하다는 점은 당시의 기억 그대로다. 덕분에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에는 땀에 흠뻑 젖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래서는 그때의 에이스케하고 똑같잖아."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다가 문득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하니, 어쩐지 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바닥돌이 깔려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틈새에는 잡초가 멋대로 자라 있는 길을 나아가자 온몸이 이끼와 잡초로 뒤덮여 있는, 예전에는 고마이누였던 물체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제는 악한 기운을 쫓는 상이라는 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돌덩어리처럼 변해 있었다.
"거의 요괴처럼 되어버렸구만."
그 두 물체의 사이를 지나자 완전히 허물어져가는 사당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괴가 된 고마이누가 지키기에 어울리는, 폐가 특유의 흉흉한 분위기를 발하고 있다. 이미 사당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하물며 신사란 이름을 붙이기도 죄스러울 정도의 황폐함에 보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뒤로도 계속 방치되어 있었구나."

 

- 다루마 신사도 그것을 모시는 표주박산도 전부 다레마 가의 소유지였다. 이 산의 동쪽에 위치한 조금 더 작은 산, 옆으로 눕힌 표주박의 낮은 쪽 봉우리에 해당하는 산 위에 세워진 커다란 저택이 다레마 가다. 
옛날에는 1년에 한 번씩 큰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에이스케나 사야카가 태어나기 몇 년 전부터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이 산과 사당도 점차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고이치 일행이 놀고 있던 무렵에는 완전히 쇠락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다.
사실 다레마 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훌륭하게 지어진 커다란 저택이었지만, 이미 그 당시부터 어딘가 폐가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건물의 외관이 낡은 탓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고이치에게는 한 시대를 쌓아 올리고 부귀영화를 자랑하던 지배자 계급의 일족이 어떠한 실패를 계기로 조금씩 몰락해 가는 모습을 마치 그 저택 자체가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 사당도 무너지기 직전까지 와 있다는 건가."
표주박산에 올라오고 나서 혼잣말이 갑자기 늘었다. 목소리를 냄으로써 막연하게 느끼기 시작한 불안을 불식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이미 저녁이라고 해도 주위가 어두워질 때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있었다. 다만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에 뒤덮인 표주박산의 돌계단, 그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경내에는 밤이 일찍 찾아온다. 낮 동안에는 그늘이 져서 시원하지만,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이곳에는 한 발 앞서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숨바꼭질이나 깡통 차기를 하며 놀다가 자기 혼자만 남게 되었을 때, 문득 무서워졌던 기억이 몇 번인가 있다. 나무 뒤편에서 얼굴을 내밀고 찾아보면, 술래가 된 친구의 모습이 ...

- 꽂아놓았던 것인지, 작은 구멍과 재가 남아 있다.
에이스케의 명복을 비는 건가...
그렇지만 대체 누가? 아직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향을 피웠을까.
게다가 완전히 타버렸는데 어째서 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걸까.
... 였다.
그때, 또다시 문득 고이치의 뇌리에 뭔가가 되살아나려고 했다.

어?
한순간이지만, 기분 나쁜 노랫소리 같은 것이 귓가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등 뒤가 무서워졌다. 재빨리 돌아본 순간, 뭔가가 보였다. 아니, 누군가라고 말해야 할까.

- 여자아이...?
곧바로 그렇게 느꼈다. 고야나기 사야카는 아니다. 자기들보다 연하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런 아이는 모른다. 같이 놀았던 아이들 중에서 여자아이는 사야카뿐이다. 사야카 이외의 여자아이는 전혀 짚이는 것이 없다.

 

- 지금 느껴진 것은 뭐였지?
직전에 본 것은 경내의 동쪽에 우뚝 선 벚나무와 나무 밑동에 재가 되어 있던 향뿐이다.
이 나무와 향 중 어느 한쪽이 자신의 기억을 자극한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짚이는 것이 없다. 혹시 다루마 사당인가 하고 다시 돌아보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아닌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사당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이 거목 앞까지 왔을 때에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역시 나무나 향 때문인 것일까. 

-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은 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보았는가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 망각의 저편에 있던 기억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것은 두 번 다시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흉측한 과거였다.

- 표주박산을 방문한 다음 날 오전, 하야미 고이치는 잠이 부족한 머리를 안고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일곱 명의 술래잡기'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든 매일 꾸준하게 쓸 수밖에 없다. 그러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의 전개를 생각하려고 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고 보면, 다몬 에이스케 사건에 대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완전한 우연이지만, '일곱 명의 술래잡기'에 등장하는 과거의 기괴한 사건이 딱 표주박산의 경내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는 설정이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했던 술래잡기 놀이를 테마로 하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이스케의 사건에 생각이 미치고 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아이디어로 바꿀 수도 없고...."
그런 짓을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으로 소설 집필이 순조로워진다면 물론 문제는 해결된다. 그렇지만 그럴 거라는 보증은 당연히 어디에도 없다.

- 어제는 마다테 시 마에나카 초의 상점가에서 저녁을 먹고서 8시 반쯤에 집에 돌아왔다. 표주박산에서 내려온 뒤에 누군가의 본가에 방문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잠시 고민해 보고 그만두었다. 그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소식을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정보에 민감한 요즘 세상에서는 괜히 경계를 받게 될 뿐일 것이다. 어쨌든 초등학교 동창이 갑자기 얼굴을 내민 것이니까. 

 

-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 돌아가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자기 전에 술을 한잔 마시는 중에, 그리고 잠자리에 들고 나서도 계속 고이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가설과 하나의 의문이 뒤얽히고 있었다.
하나의 가설이란, 에이스케가 전화를 건 상대 중에 그를 살해한 범인이 있다는 것.
하나의 의문이란, 어째서 범인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 에이스케를 일부러 살해했는가 하는 것.
가설이 올바를 경우, 의문은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어 앞길을 가로막게 된다.
의문이 의문이 아닐 경우, 즉 범인이 에이스케가 자살하고자 하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무차별 살인마에게 우연히 습격당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경찰의 견해를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고이치가 자신의 가설을 이야기했을 때, 하세가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에이스케가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을 뿐이다.

- 극적인 내용인 것치고는 저자의 관점이 확실히 잡혀 있기 때문인지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때때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통찰이 있다. 그의 저서에는 학술적 엔터테인먼트 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독특한 재미가 가득 차 있었다.
편집자였던 고이치는 기회를 봐서 다츠요시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무렵에 근무하고 있던 치소샤는 학술서 전문 출판사였지만 다츠요시의 책이라면 기획이 통과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고이치가 대학 연구실을 찾아가 거의 16년 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역시나 첫인사는 서로에게 어색했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지던 중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오오니타 군", "고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란 정말 신기한 것이다.
다츠요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굳이 달라진 점을 들자면 고이치와 알게 되었을 무렵의 다츠요시, 고고한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던 다츠요시로 조금 돌아가 있었다는 것 정도다.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것보다 혼자서 연구에 몰두하는 쪽이 훨씬 적성에 맞는 듯 보였다. 

- 재회한 그날, 두 사람은 곧바로 <괴이의 공간과 디자인>이라는 전 6권의 시리즈 기획을 구상했다. 곧바로 회사의 기획회의에 들고 갔지만 통과된 것은 절반인 3권까지 뿐이었다. 한 권 한 권 볼륨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여섯 권 전부를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나머지 세 권은 1권부터 3권까지의 매상을 보고 판단한다. 회의 결과를 정리하면 그랬다.

 

- 고이치는 난처해졌다. 6권 구성을 3권으로 압축하는 것 자체는 기획을 다시 짜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3권으로 끝날 경우도 상정하면서도 순조롭게 팔리면 6권까지 낸다'라는 유동성을 처음부터 고려해야만 한다. 그런 무리한 조건은 반드시 책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 어쩔 수 없이 당초의 내용보다 수준이 떨어지게 되고 만다.
다츠요시는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한 것은 기획이 통과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는 회의의 결과를 인정하고 깔끔히 포기하려 했다.
"아니, 이대로 6권 기획으로 가자."
그러나 고이치는 기획을 강행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사전 시장조사에서 '이것은 팔린다'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지만, 출판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예상이 크게 빗나갈 위험도 당연히 따라온다.
"팔리지 않아서 3권으로 끝났을 경우, 시리즈로서는 미완성으로 마치게 되잖아."
"그렇다고 3권으로 정리해 버리면 잘 팔렸을 때에 후속권을 이어나갈 수 없게 돼."
"즉,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
"하지만 절반이라곤 해도 3권까지는 승부를 걸어볼 수 있잖아."
한동안 다츠요시는 묵묵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서로 마찬가지야. 오오니타 군도 저자로서 어정쩡한 시리즈를 냈다고 비판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군. 하지만 난 평판은 별로 신경 안 써. 그렇다면 기획을 진행하자."

- 다행히 1권은 호평이었다. 중판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게다가 2권을 냈을 무렵에 적은 부수나마 1권이 중판되었다. 3권을 간행할 때에도 다시 중판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1년에 한 권씩 <괴이의 공간과 디자인>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

-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모를 다츠요시의 말에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잠깐 기다려. 택배가 왔을지도 몰라."
고이치는 우선 수화기를 내려두고 서재를 나와서 복도에 설치된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하야미 씨 되십니까. 경찰입니다."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서 화들짝 놀랐다. 그저께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때의 형사와는 확실히 다른 목소리다.

전화 중이니까 잠시 기다려달라고 전한 고이치는 바로 다츠요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현관까지 급히 달려가서 문을 열자, 온후한 이미지의 하세가와와는 대조적으로 어쩐지 차가운 신사 같은 느낌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하세가와보다는 어려 보이지만 요전에 같이 왔던 젊은 모리타 형사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인다. 고이치보다도 네댓 살은 위일까.
"마다테 경찰서에서 오신 분입니까?"
고이치가 그렇게 물었다.
"경시청에서 왔습니다."
다시 놀랄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 "네. 낮에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좀처럼 땀이 마르지 않습니다. 바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고 해서..."
여기까지 한 말에 큰 거짓말은 없다. 다만 어디에 갔는지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집에 돌아오시고 나서는?"
"...
저녁을 만들어 먹고, 그 뒤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요리도 하십니까."
"혼자서 산 지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대단한 솜씨는 아닙니다."
"아니, 훌륭하십니다."
의례적인 칭찬을 하는 엔카쿠에게, 고이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건 알리바이 조사입니까? 그렇다면 저에게 알리바이는 없습니다만."

 

- 그런데 몇 번째인가 돌아보던 술래가 좀처럼 앞을 보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에 얼굴을 묻지 않고 다른 사람들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 너무 길잖아!"
정지해 있는 사람들로부터 항의의 목소리가 일었다. 물론 입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술래는 그저 사람들을 계속 바라볼 뿐이고,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야, 이젠 됐잖아!"

계속해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술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술래는 열심히 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한 명이 많다.
술래가 진을 치고 있는 커다란 나무를 향해서 다가오는 사람의 숫자가, 어느샌가 다섯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 있었다.
일곱 명째가 있다...

- "많이 늦겠지만 꼭 이쪽으로 오겠다면서. 아마도 교토에서 바로 오는 거겠지. 고짱, 시간은 어때?"
"으응... 괜찮아."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바로 질문을 했다.
"그래서 사야카는 언제,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 "경찰이 어떻게 판단할까가 문제군."
다츠요시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고이치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커피를 끓일 준비를 했다.
"귀한 원두를 입수했거든."
"그래..."
맞장구쳤지만, 고이치는 오로지 사건에 대한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몬 에이스케가 전화를 건 상대는 역시 초등학교 시절의 우리들, 표주박산의 친구들이었던 게 아닐까?"


- "왜 그래? 납득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몬 에이스케가 맨 처음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고야나기, 아니 결혼했으니 오다기리 사야카가 세 번째라는 것도 납득할 수 있어. 학교의 성적은 어떨지 몰라도 그 애는 머리가 좋았으니까. 하지만 아리타 유지가 두 번째라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 여기에 들어갈 건 오오니타 군이잖아." 
"나는 두 번째로 죽었어야 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어이없다는 그의 얼굴에 고이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높이 사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 경우에는 누가 누구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든가, 기억력이 좋았다든가 하는 건 전혀 상관없을지도 몰라."
"어째서?" 
"문제가 되는 과거의 일에 대해 모두가 균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야. 개인차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실제로 고짱하고 나는 좀처럼 기억해 낼 수가 없잖아?"
"... 듣고 보니 그러네. 그렇다면 일곱 번째의 인물도 우리보다 에이스케하고 친했던 누군가란 얘기가 되나?"
 
- "하지만 에이 군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얘기는 고짱도 뭔가 조금 걸리지?"
"조금이 아니야, 많이 걸려."
"역시 그렇군."
"만약 우리 말고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면 분명히 에이스케는 자랑했을 거야. 아니, 그전에 표주박산으로 데려와서 끼워달라고 말했을 거야."

 

- "네, 떠올린 것은 막연한 두려움뿐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그 전화가 다몬 씨에게서 온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부인의 두려움은 자신의 사법시험이나 가게 쪽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더군요."
"지극히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납득하는 다츠요시와는 반대로, 고이치는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부부간에 오간 대화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다만 요시유키 씨도 지금은 정서가 불안한 상태이니, 부인과 한 이야기를 완벽하게 기억해 내서 진술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그건... 어쩔 수 없겠죠."
"네. 그 외에 남편이 증언한 것은 부인이 동요 같은 것을 중얼거리고 있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 동요?"
고이치는 묘하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놀이와 연관된 노래 같다고 하더군요."

- "그렇습니다. 뭔가 짚이는 것은 없으십니까?"
가만히 바라보는 엔카쿠의 시선에, 어째서인지 고이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이 경부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흐릿하게 떠오르려고 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감각이었을 뿐, 정작 중요한 내용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 "다루마가 굴렀다... 에서 뭔가 짚이는 거라도?"
"..."
"하야미 씨?"
... 였다.
또다시 그 이상한 노랫소리가 되살아날 듯했다.
여자아이.
그리고 낯선 아이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려고 한다.
"하야미 씨?"
"... 등 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고이치 스스로에게도 의외의 말이었다.
"네?"
그러나 그 뒤가 이어지지 않는다.

- 자신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야미 씨?"
갑자기 덮쳐오는 압도적인 어떤 감정의 파도가 순간적으로 고이치의 온몸을 감쌌다. 그것은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그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이 있었다.
등 뒤가 무섭다...
하야미 고이치는 무방비한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뭔가에 그저 떨고 있었다.

-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었고, 그는 모두와 함께 그 술래의 뒤쪽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래서는 등 뒤가 무섭다는 자신의 느낌을 설명할 수 없다. 등 뒤의 뭔가에 전율을 느끼는 것은 고이치가 술래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지만 그 술래의 시점에서 보이는 광경이 떠오르지 않는 기억하고는 아무래도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이 모순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고이치는 벚나무 앞에서 돌아본 채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번쩍이는 탁한 황색 석양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그저 끊어질 듯 말 듯한 가느다란 기억의 실을 더듬어 나간다. 그러나 도무지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해 질 무렵의 요사스러운 햇살은 자꾸만 그의 뇌를 자극했다. 완전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한다.
이렇게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에 너는 그것을 보지 않았는가... 같은 속삭임을 몇 번이나 귓가에 반복하면서 집요하게 다그친다. 고이치의 기억이 되살아날 때까지 계속 괴롭히려고 한다.
"대체 어릴 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또다시 무서워졌다.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하는 자신과 그것을 방해하는 자신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 방어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야미 고이치라는 인간이, 과거에 일어난 흉측한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경험을 한 기억 따윈 그대로 기억의 창고 속 깊고 깊은 저 구석에 집어넣어 버리고 영원히 봉인해 버리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이도 저도 안 되잖아."
자조적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강해지고 있다.

- 고이치는 거목의 옆을 벗어나서 조금 급한 걸음으로 돌계단으로 향했다. 어쨌든 이제 곧 해가 진다. 아직 날은 밝지만 이 산 위에는 한발 빨리 밤이 찾아온다. 돌아갈 거라면 지금이다. 어둠 속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신중하게 돌계단을 더듬어 내려가면서 언젠가부터 고이치는 전혀 진전이 없는 '일곱 명의 술래잡기'의 원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인 이상 그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작품의 완성보다도 그 내용에 대해서였다.
이번 사건하고 어딘가 비슷하지 않나...

술래잡기와 다루마가 굴렀다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쪽이나 아이들이 하는 놀이다. 관련되어 있는 아이는 양쪽 다 전부 일곱 명씩이다. 게다가 둘 다 옛날 어릴 적의 기억이 열쇠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에이스케에게 전화를 받기 전이었다...
즉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는 건가,라고 생각하다가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그럴까? 이것은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다만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회사가 사토시와 같은 경험자를 필요로 했다. 실제로 그는 거의 부탁받다시피 하며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그랬기 때문에 사토시에 대한 대우도 좋았고 본인도 의욕에 차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회사도 영업부도 사토시 개인도 완전히 시대에 역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사한 후 한때 호전되었던 직판영업부의 매출은 다시 하락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매출은 조금 올라갔다가 더욱 떨어지는 꺾은선 그래프를 그리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형 상품인 개설서 시리즈는 이미 기획조차 되지 않게 되고, 중형 상품도 신상품의 숫자가 점차 줄어가면서, 정신이 들고 보니 재고 처리 상품만 남아 있는 현실이었다. 
취급하는 상품이 점차 재고 상품들로 바뀌어가는 것에 반비례해서 매월 판매 할당량은 늘어갔다. 이윽고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토시보다 오래 회사에 머물러 있던 한 과장은 오차노미즈의 캡슐호텔 세면실에서 숨을 거둔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회사는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과장이 지나친 노동을 강요받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 그래도 사토시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자신에게 잘 맞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대하는 데는 서툴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만의 관계라도 괜찮다면, 그래도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예전의 팔방미인다운 성격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이 된 것이다. 학급이나 회사의 직장에서 매일 같은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항상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과 만나는 편이 그에게 맞았던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침대에 뒹굴면서 사토시는 문득 심장 마비로 죽은 과장에 관한 기묘한 소문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 죽어 있던 곳은 거울이 있던 세면실이었다...라고 했지.”
밤중에 세면대 거울 안을 들여다보면 무서운 것이 보인다...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지금, 왜 그런 기분 나쁜 소문과 괴담이 머리에 떠오른 걸까. 자기도 호텔의 방에 있기 때문일까? 다만 여기는 캡슐호텔이 아니다. 과장은 분명히 숙박료를 아껴 줄어들기만 하는 급료에 보태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싸구려 캡슐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거울이 있는 세면대에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계속 불길한 상상을 하고 있다. 역시 맥주를 한 캔 더 마시자. 술에 취해서 자버리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전혀 몸을 움직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 "뭐야, 사건 의뢰가 아니었나."
다시 명탐정 기분을 내려고 하고 있어서 고이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다테 시의 다레마 가를 아십니까?"
시테가와라는 조금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 아, 태평양 전쟁 후로 기묘한 신을 모시던 일족이군."
"다루마 말인가요?"
"뭐야, 알고 있지 않은가."
어린이처럼 토라진 말투로 툴툴대서 고이치는 당황하며 얼른 설명했다.
"아뇨, 초등학생 때에 사당 같은 것 안에서 기분 나쁘게 생긴 다루마 같은 걸 본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 곧바로 시테가와라가 묻기에 고이치는 기억해 낼 수 있는 한 묘사를 했다.
"으음, 그건 진짜 같군."
"어떻게 아시죠?"
"두 눈에 구멍이 있었다는 것하고 검은색을 띤 뭔가 이상한 물체를 봤다는 자네의 기억에는, 말하자면 신빙성이 있기 때문이야."
"그 검은 물체는 뭐죠?"
"머리카락이지."
"네에? 다루마에요?"
"정확히는 체모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지."
"... 설마요. 다루마에 있는 털이라고 해봤자 끽해야 눈썹하고 수염 정도라구요. 그것도 결국은 그림으로 그린 거잖아요."
고이치가 의외라는 듯이 이야기하자, 시테가와라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작가라면서 어찌 그리 아무것도 모르나. 먹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썹이나 머리카락이 나 있는 다루마도 존재한다고. 나가노의 마츠모토 다루마나 가나가와 현 히라즈카의 소슈 相州 다루마 같은 것이 그렇지. 아니, 다른 현의 예를 들 것도 없어. 도쿄에는 다마 다루마가 있지 않은가."

- 마다테 시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고이치는 다레마 가의 다루마 신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사고의 흐름을 읽은 건지, 교수가 바로 부정했다. 
"그렇지만 다레마의 다루마하고는 관계없을지도 몰라."
"전혀요?"
"그래. 애초에 다루마란 것은 복을 부르는 물건이야. 군마의 다카자키 다루마는 눈썹이 학, 수염이 거북을 표현하고 있어. 수염과 눈 주위의 원과 콧구멍이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고."
"학과 거북이에 소나무와 대나무에 매화까지..."
확실히 복을 부르는 것들뿐이다.
"그것에 비해서 다레마의 다루마는 처음부터 두 눈이 뻥 뚫려 있지. 보통 다루마하고 다르다는 증거야. 무엇보다 애초에 중국에서 가지고 돌아온 물건 아닌가."
"누노비키 초의 묘지에서 만난 노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참고로 선생님은 그 다루마를 보신 적이..."
"아니, 없어."
아주 아쉽다는 듯이 시테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 "난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일본 각지의 각종 괴담과 기담을 좋아하지. 그래서 다레마 가문의 다루마에 대해서도 꽤 옛날부터 몇 번이나 소문을 들었어. 일반적인 소문이 아니야. 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행각을 하고 있는 종교가들 사이에서 어느 시기부터 돌던 특수한 소문이지."
"무슨 내용인가요?"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뒤에, 만주에서 전사했다는 통보가 날아왔던 다레마 가의 장남이 살아 돌아왔어. 그때 그 남자는 기묘한 다루마 상을 가지고 돌아왔다더군. 게다가 그걸 선조 대대에 걸쳐 모셔왔던 집안 신으로 합사하고 싶다고 했던 거야."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문외한이 멋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잖나."
시테가와라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그렇겠죠."
"다만 문제는 그 부분이 아니지만."
"무슨 의미죠? 뭔가 더 큰 문제가 있었나요?"
"당연히 다루마의 정체 아닌가."
"... 정체?"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든 다루마는 일본 특유의 물건이야. 빨간색은 고승이 입는 주홍색 옷을 나타낸 것으로, 옛날에는 천연두나 홍역 등을 쫓는 부적이었지. 다레마 가의 다루마가 종이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겉모습만으로는 똑같은 것 같아. 그런 것이 왜 전쟁 중의 만주에 있었는가. 다레마 가의 장남은 무엇을 위해서 일부러 가지고 돌아왔는가. 이 기괴하게 생긴 다루마에 대해서는 온통 수수께끼 투성이야."
"비슷한 이야기가 그 밖에는 없나요?"
"내가 아는 한에는 없어."

- "그런데 그 다루마를 합사한 뒤로 다레마가의 가세가 갑자기 번창하기 시작했던 거야."
"...?”
"다레마 가로 말할 것 같으면 태평양 전쟁 전에는 마다테 지방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지역 유지였는데, 전쟁 뒤의 농지개혁으로 많은 토지를 잃었지. 전후에 단숨에 세력이 약해진, 그 무렵에는 드물지 않은 몰락한 명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그러던 가문이 기묘한 다루마를 모시게 된 뒤로 운세가 트였다고요?"
시테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손대는 사업마다 대성공을 거둬서 정말 위세가 대단했지. 전쟁 전부터 마다테 시 행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한때는 도쿄에까지 미칠 정도였어."
"그 퇴락한 저택의 가문이... 말입니까."
어릴 적에 받았던 인상으로는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만 영화를 누린 것은 고작 20년 정도였지."
고이치와 친구들이 태어나기 몇 년 전부터 아무래도 상황이 바뀐 모양이다.
"이후에는 하는 일마다 전부 안 좋은 결과만 나오기 시작했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일족 중에도 정신이상을 일으킨 사람, 갑자기 기행을 저지르는 사람, 끝내는 행방불명된 사람이 계속 생기게 되었지."
"그, 그중에 '다레마의 귀신 들린 아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없었나요?"
자기도 모르게 고이치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시테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 "그렇지만 그렇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 대충 1970년대 중반에 다레마 가에 나타난 것은 틀림없어."
"실제로 뭔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던 건가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모양이야."
"그렇게나..."
"다만 다레마 가에서 어떻게든 수습해서 경찰에 잡혀가거나 한일이 한 번도 없었던 거겠지."
아주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 그렇게 말하면서도 교수는 자기 나름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물건은, 간혹 초반에 지나칠 정도의 행운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
"일부러 말입니까?"
"그래. 아마도 그러는 편이 피해가 커질 테니까."
오싹... 하고 고이치의 등줄기가 떨렸다.
"그 물건이란 것은 뭔가요?"
"당연히 다루마지."
 
- 때가 올 때까지는 둘이서 해보기로 결심했다.
다츠요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둘이 논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엔카쿠가 돌아간 뒤에 다시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을 뿐이다.

- 토요일 아침, 고이치는 곧바로 표주박산으로 향했다. 향을 피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지 현장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벌레 쫓는 스프레이를 챙겨 가 책을 읽으며 두 시간 가까이 버텨보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거기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서, 다마 시에 있는 니시도쿄 정신보건 복지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창구에서 명함을 내밀면서 코이치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전했다.
"요전 일요일에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로부터 의뢰를 받아 다몬 에이스케 씨의 일을 담당하셨던 분과 만나보고 싶습니다. 저는 다몬 씨의 친구로, 하야미 고이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서른 살 중반 정도의 남성 직원이 나왔다. 건네받은 명함에 직함은 없었지만, 도키와 요시미츠라고 자기를 소개한 남자는 단정한 용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금세 동성인 고이치까지도 매료시켰다.
"작가이십니까!"
고이치가 응접실 소파에 앉자마자 요시미츠는 절로 미소 지어질 만큼 순수한 호기심을 내비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전부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었다. 상대가 완전히 작가를 만난 독자처럼 행동하는 탓에 고이치도 일단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 질문을 던져댄 끝에 겨우 만족했는지, 도키와 요시미츠는 공무원의 얼굴로 돌아왔다.

- "...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살의를 넘은 악의..."
그것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그 자리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도키와 씨는 이른바 영감 靈感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묻자 요시미츠는 곧바로 부정했다.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요시미츠는 또다시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하야미 선생님은, 역시 영감 같은 걸 갖고 계시는 건가요?"
"네? 아뇨, 전혀 없습니다."
"그러십니까. 호러소설을 쓰신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 의외라는 듯한 요시미츠의 표정을 보고 고이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일반 독자란 의외로 그런 법이다. 애초에 부조리한 세상을 다루는 호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미스터리의 차이를 알고 있는 독자가 대체 얼마나 있을까. 그 수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적다는 사실을 고이치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옛날에 유명한 SF 작가가 UFO가 실존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일소에 부쳤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희가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니..."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그 산에서는 자신도 오싹한 감각에 사로잡혔던 것을 고이치는 떠올렸다. 다만 그것을 도키와 요시미츠에게 전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사태를 성가시게 만들 뿐이다. 

- 거기서 계획했던 대로 마다테 시의 시립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다레마 가는 과거에 다양한 사건을 일으켰다고 시테가와라가 말했다. 대부분 가문의 힘을 동원해서 수습한 모양이지만, 신문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레마란 이름은 적지 않더라도, 사건에 관한 기사는 실리지 않았을까. 고이치는 당시의 신문 기사에서 그것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 그러자 8월 하순 어느 날의 지방 면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웃 시에서 여섯 살 난 남자아이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마다테 시의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9월분의 신문으로 넘어갔을 때, 고이치는 문득 8월로 돌아가서 해당 기사를 재확인했다. 어린아이가 관계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 스즈모토 다케시 군(6)이 주택 조성지의 잡목림에 간다며 나간 채로...]


- 조금 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건성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였다. 8월 하순 어느 날의 지방면에, 어린 남자아이의 행방불명을 알리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작년과는 다른 지역이었지만 그곳도 마다테 시와 접한 이웃 시였다.
[... 가쿠타니 스구루 군(5)이 고후쿠산 공원에서 놀던 중...]
고이치는 접수 카운터까지 가서 그다음 해 8월 분만 열람을 신청했다. 받아 들고 책상에 돌아오는 시간도 아까워서 걸어오면서 하순의 지방 면을 집중적으로 체크했다. 딱 책상에 도착했을 무렵, 고이치는 끝내 마다테 시에서도 똑같은 남자아이 행방불명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찾아냈다.
[... 이쿠라 요시히코 군(7)이 평소에 놀던 마다테 시 제3초등학교 인근에서...]
그전 해 가쿠타니 스구루, 그리고 2년 전 해의 스즈모토 다케시와는 달리 이쿠라 요시히코만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장소가 아주 모호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인근이라면 설마 표주박산이 아닐까...?

- 다른 두 사람이 행방불명된 것은 잡목림과 산의 공원이다. 제3초등학교 인근에 해당될 만한 곳은 표주박산이나 검은 숲 정도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당시의 고이치와 친구들도 알지 않았을까.

- "에이 군, 움직였어!"
"어... 내, 내가?"
아니라고 반론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몬 에이스케는 그대로 순순히 나무 쪽으로 나아가서 술래의 오른쪽 어깨에 왼손을 얹고 첫 포로가 되었다.
"다~레마가 죽~였다!"
조금 빨리 술래가 말하고 순식간에 돌아본다.
"유준, 움직였어!”
"안 움직였어.”
바로 아리타 유지가 부정했다.

- 이상하네?
유지보다 뒤에 있던 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래가 돌아본 순간, 유지의 움직임은 딱 멈춘 듯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래는 언제나 냉정했던 오오니타 다츠요시다. 반칙을 할 녀석이 아니다.

- "사야, 움직였어."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거의 돌리자마자 말했다.

"뭐...?"
사야카는 명백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이치도 자신을 갖고 그녀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술래의 착각을 지적하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본 유지의 얼굴에 조금 전에 에이스케와 같은 겁에 질린 표정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고이치는 굳어버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 "하물며 자기들 또래의 아이가 관계된 사건이니까 금방 반응을 보였겠지요. 그것이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식으로 나타난 거군요."
"그렇지만 역시나 '다레마'라고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죽였다'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구요."
"표주박산이라는 장소를 생각하면 더욱 위험하죠."
"그래서 앞부분의 '다레'를 일본어로 '누구?'라는 뜻의 비슷한 발음인 '다레 '라고 친 겁니다. '다레마'의 다레가 '누군가'라는 의미로 바뀐 거죠. 그리고 '마'란 글자는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게 다레마의 나쁜 소문 때문에 악마의 '마 魔'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뜻을 맞춰보자면 '어느 악마가 죽였다'란 뜻이 되겠죠."
한자로 설명을 하면서 고이치는 덧붙였다.
"어쩌면 '어느 악마가 죽였어?"라는 식의 의문형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해 내신 건가요?"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입니다만."

- "그래서 '어느 악마가 죽였어?'라고 노래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악마 같은 존재, 다레마의 귀신 들린 아이를 부르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고이치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게다가 저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게 뭐죠?"
야에가 자상하게 물었다.
"요시코가 다레마 가의 사람에게 끌려간 사실을, 어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일입니다."


- "그 빈약한 추리를 계속하지요. 조금 전에 다레마와 마쿠마가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하면 역시 다레마와 다루마 쪽이겠죠. 그 기괴한 동요도 그 점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경부님의 이름과도 연결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군요."
경부는 여전히 포커페이스였지만, 적어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다루마란 달마선사를 말합니다만 원각대사, 즉 엔카쿠 대사라고도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우연일까요?"
"네, 우연이겠죠."

엔카쿠는 태연히 대답했지만, 고이치는 신경 쓰는 눈치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 "호오, 추리의 흐름인가요."
"제가 도조 겐야 선생의 사건부 시리즈를 좋아하거든요. 민망하지만 그 형식을 따라 해 봤습니다."
"그 작품이라면 확실히..."
엔카쿠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고이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경부님은 그 '다레마가 죽였다'라는 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로 엔카쿠가 대답했다.
"생명의 전화 상담원도 듣고, 피해자 중에서도 몇 사람인가가 들었다는 그 동요 말입니까? 제가 의도적으로 하야미 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렇습니다."

 

-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게 별로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확실히 들은 사람은 생명의 전화 상담원 한 명뿐입니다."
"아리타 유지와 오다기리 사야카도..."
"아뇨, 그건 가족의 증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뭔가 동요 같은 것을 들었다,라는 극히 모호한 것일 뿐입니다.”

 

- 다츠요시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신작은 어떻게 되어 가?"
"어떻게고 뭐고... 아무런 진전이 없어."
"그 테마로는 이제 안 쓸 거야?"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구상을 새로 해서 처음부터 다시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 타이틀은 '일곱 명의 술래잡기' 그대로지만, 내용은 이번 사건을 소재로 할 생각이야."
"논픽션이야?"
의외라는 듯이 묻는 다츠요시에게 고이치는 대답했다.
"아니야."
"그러면 픽션으로서 쓰는 건가?"
"소설도 아니야."
"이봐..."
두 손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 다츠요시에게 고이치는 스스로도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나 자신도 아직 잘 모르겠어. 써보지 않으면 어떤 작품이 될지 짐작도 안 가. 그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야."
"그런가."
아무래도 다츠요시는 나름대로 납득한 듯했다. 그는 입원한 후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그게 어떤 작품이든, 고짱이라면 멋지게 해낼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협력할게."
"고마워."

- 오오니타 다츠요시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하야미 고이치의 가슴속에는 어떤 결심이 감추어져 있었다.  

 


 

 

역자 후기

 

 

미쓰다 신조는 본격 추리와 호러를 융합한 스타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특히 일본의 민속학적인 요소가 강조된 개성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일곱 명의 술래잡기>에도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쓰다 신조의 이런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지요. 이미 다들 눈치채셨겠습니다만, 작중에 등장하는 '다루마가 굴렀다'는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부르는 놀이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했던 놀이라 본문을 읽을 때 친근함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질 무렵의 시간적 배경과 합쳐지며 만들어지는 으스스한 이미지에 오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묘한 분위기야말로 미쓰다 신조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지요.

미쓰다 신조의 다른 대표작으로는 방랑 소설가가 주인공인 '도조 겐야 시리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는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작품 내에 직접 등장하는 일명 '작가 시리즈'라고 불리는 작품도 있지요. 두 시리즈 모두 국내에 소개된 상태이며 계속 발간되고 있으니 <일곱 명의 술래잡기>로 미쓰다 신조를 처음 접해보신 분들께서는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통의 추리소설들과는 다른 분위기에 푹 빠지게 되실 겁니다.

이 <일곱 명의 술래잡기>에는 내용 외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고이치가 시테가와라 교수와 이야기를 할 때에 잠깐 나오는 '미궁초자'는 앞서 이야기한 '작가 시리즈'에 나오는 소설 동인지 이름입니다. 또 고이치가 엔카쿠 형사와 대화를 나눌 때에 나오는 '도조 겐야'는 유명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주인공이죠. 그리고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잠깐 지나가는 '무코의 몸'은 미쓰다 신조의 또 다른 시리즈인 '사상학 탐정 시리즈'에 등장하는 살인범의 호칭입니다. 본 작품 자체는 내용적으로 앞의 세 작품과는 연결되지 않습니다만, 기존의 미쓰다 신조 팬들에게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메타적 요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2001년에 데뷔한 이후로 활발히 활동해 온 미쓰다 신조의 작품 중에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의 매력적인 작품들이 국내에 계속 소개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작품을 맡겨주신 북로드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현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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